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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인4색… 4·3진상규명 여정을 기록하다

    4인4색… 4·3진상규명 여정을 기록하다

    제76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이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4·3 진상규명의 여정을 기록해 온 사진작가 4명의 초대전이 열려 주목받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오는 25일부터 제주4·3평화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제주4·3 사진작가 초대전: 4·3을 담다’를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작가 강정효, 김기삼, 박정근, 양동규의 사진 200여점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전시는 공개적인 첫 추모제였던 1989년 41주기 추모제부터 최근까지 유족들의 모습과 학살의 풍경, 그리고 희생자들을 위령하기 위한 故 정공철 심방의 생전 모습을 담고 있다. 작가 강정효는 199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상규명운동 시기에 따라 변화해 가는 유족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4·3 역사의 진전과 함께 어둠에서 빛으로 변모하는 유족들의 얼굴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박정근 작가는 지난 2018년 4·3 70주년부터 최근까지 진행한 ‘옛날사진관’ 프로젝트에서 담은 유족들의 사진을 선보인다. 김기삼 작가는 1989년 41주기 추모제를 시작으로 2012년 강정마을 4·3해원상생굿까지 4·3의 원혼들을 달래는 자리에 늘 함께 해 온 故 정공철 심방(무당)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양동규 작가는 제주의 풍경 속에 남은 4·3의 흔적을 추적하며 그 땅과 바다에 아직 남아있는 아픔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올해 76주년을 맞은 제주4·3을 다양한 시선을 통해 기억하며, 아직도 계속되는 제주의 아픔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에 대한 기억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전시는 오는 5월 5일까지 진행된다.
  •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신임 이사장에 김종민(63) 제주4·3위원이 임명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공모 결과 김종민 위원이 최종 선임돼 11일 오영훈 도지사가 임명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김 신임 이사장은 제주 출생으로 고려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제주신문, 1990년 제민일보 등을 거치면서 4·3취재반 활동 등 4·3문제 해결에 힘썼다. 기획보도 저서 ‘4·3은 말한다(1994~1998)’,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등 10여 건의 저서·논문을 발표했다. 김 신임 이사장은 “4·3의 전국화·세계화 추진과 함께 유족회 등 4·3 관련 단체 간 화합과 소통을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 제주4·3평화재단 신임 이사장에 김종민씨 임명

    제주4·3평화재단 신임 이사장에 김종민씨 임명

    제주4·3평화재단 신임 이사장에 김종민(63) 제주4·3위원이 임명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의 정의로운 해결과 평화·상생의 제주역사 세계화 등을 이끌어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공모 결과 김종민 위원이 최종 선임돼 11일 오전 오영훈 도지사가 임명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김 신임 이사장은 제주 출생으로 고려대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제주신문사에 입사해 4·3취재반 활동을 시작으로 36년간 4·3의 역사적인 진실 규명과 진상조사, 특별법 제정 및 전면 개정 등을 기록·연구하면서 4·3문제 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경력으로는 제주4·3위원회 전문위원과 4·3평화재단 이사,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공동대표, 광주 5·18기념재단 이사 및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4·3유족회 자문위원과 제주4·3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특히 희생자 증언을 통해 4·3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기획보도 저서 ‘4·3은 말한다(1994~1998)’를 비롯해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와 ‘제주4·3사건 자료집’ 등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4·3의 역사연구를 주도적으로 수행해 10여 건의 저서 및 논문을 발표한 4·3 역사 전문가다. 또 4·3 진실 발굴로 한국기자상을 수상(1993년)했으며, 유엔(UN) 인권위원회에서 4·3에 대해 발표(2019년)하는 등 4·3 및 과거사 관련 분야에서 국내외에서 전문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김 신임 이사장은 “4·3 진상규명 및 명예 회복을 위한 ‘추가 진상조사보고서 관리·감독’, ‘4·3 수형인 재심 사건 협력’,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과 같은 ‘새로운 과제 발굴 해결’, 4·3 세대 전승사업 등에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임 이사장 시절 논란이 돼온 4·3평화재단 운영과 관련해 투명한 예산 집행 및 인사관리로 신뢰를 회복하고, 4·3의 전국화·세계화 추진과 함께 유족회 등 4·3 관련 단체 간 화합과 소통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오영훈 지사는 “4·3평화재단 이사회 의견 청취를 거쳐 첫 상근 이사장이 선임된 만큼 새로운 역할을 기대한다”며 “12일 4·3 희생자 무명신위 위패조형물 제막을 시작으로 제76주년 4·3희생자 추념식 봉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내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김 신임 이사장의 임기는 2년(2026년 3월 10일까지)이다. 4·3평화재단은 지난 2월 13일부터 2월 28일까지 공모에 응모한 후보자 중 재단 임원추천위원회의 서류·면접 심사, 이사회 의견 청취를 거쳐 최종 추천 등의 인선 절차를 진행했다. 도는 지난해말 제주4·3평화재단의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이사장을 도지사가 최종 임명하는 ‘상근 이사장’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제출해 도의회를 통과했다.
  •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4·3 광풍에 희생된 아빠가, 형님이 돌아왔습니다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4·3 광풍에 희생된 아빠가, 형님이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예비검속으로 같이 구금됐으나, 결국 형만 돌아오고 아버지는 소식이 끊겨 행방불명 됐다. 이제라도 아버지를 찾아 모시게 돼 너무 기쁘고 감사 드린다.”(4·3희생자 고 강문후씨의 아들) “4·3 당시 어머니와 누님을 잃었고 큰 형님은 군법회의로 15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됐으며 작은 형님은 사형을 받고 행방불명돼 친척집을 전전하며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며 살아오다 지난해 세계제주인대회 참석자 제주에 왔을 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형님들이 계신 4·3평화공원 행불인표석에서 눈물의 보고를 드리고 유가족 채혈에 참여했는데 이렇게 기적적으로 작은형님의 신원이 확인돼 너무 기쁘다.”(4·3희생자 고 이한성씨의 동생인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 뉴욕 회장) 4·3희생자 발굴유해 2구가 76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20일 오후 2시 30분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개최했다. 70여 년이 지나 유해로나마 가족과 상봉하게 된 유가족은 유해에 되찾은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달고 헌화와 분향으로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의 시간인 셈이었다. 1909년생 고(故) 강문후씨는 안덕면 동광리에 살다 1948년 소개령으로 해안가인 안덕면 화순리로 이주했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제주에서는 대대적인 예비검속이 이뤄졌고, 강씨는 같은 해 7월쯤 이유도 모른 채 모슬포경찰서 안덕지서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다. 4·3 때 강씨 뿐 아니라 그의 모친과 형수도 희생됐고, 딸도 행방불명됐다. 또 다른 4·3 희생자 1923년생 고 이한성씨는 제주읍 화북리에 살다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 선고를 받은 4·3 피해자다. 사형 집행 기록이 없어 최근까지도 이씨는 행방불명으로 정리돼 왔다. 이씨는 1947년 관덕정에서 진행된 3.1절 기념행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4·3피해자가 됐다. 이씨가 행방불명된 이후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역시 4·3 광풍에 휘말려 희생됐고, 이씨의 형도 행방불명으로 남아있다. 이씨의 경우 2023년 9월 26일 제3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을 통해 억울한 누명을 풀었다. 옛 화북 벌랑마을 출신인 이한성씨의 동생 이 회장은 작은 형(故 이한성)의 유해를 찾은 뒤 “우리 형님(이한성)이 한 것은 3·1절 기념행사에 참여한 것 뿐인데, 이후 경찰 등이 벌랑마을 청년들을 모조리 잡아갔다. 우리 형님도 같이 잡혀갔는데, 모두 해안가에서 총살됐다. 모두 죽었는데, 우리 형님만 살아남았다. 그게 더 큰 피해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강문후와 이한성의 유해는 2007년과 2009년 각각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에서 발굴됐다. 이날 신원이 확인돼 가족을 찾은 희생자들은 군법회의 희생자 1명, 예비검속 희생자 1명이다. 지난해 4·3희생자 유가족 283명이 참여한 채혈분과 제주국제공항 발굴유해의 유전자 대조 결과, 행방불명 희생자 2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특히 올해 신원 확인은 지금까지 채혈에 참여하지 않았던 직계 및 방계 유족의 추가 채혈을 통해 파악됐다. 한 명의 행방불명 희생자에 대한 유가족 다수의 적극적인 채혈 참여가 신원확인 가능성을 높였다. 강씨의 아들은 물론 손자, 손녀, 조카까지 유족 9명이 채혈한 끝에 신원이 확인됐다. 강씨의 아들 강기수씨는 “저의 아버지 얼굴도 모릅니다. 제가 3세때였기 때문에 남들이 아버지하고 다닐때 저는 왜 아버지가 없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라며 울먹였다. 이승덕 서울대 법의학연구소 교수의 신원확인 결과 보고를 시작으로 신원확인 유해 2위가 이름을 찾고 유가족에게 인계됐다. 오영훈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행방불명 4·3희생자 유가족의 추가 채혈을 독려하고, 유해발굴 및 유전자감식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마지막 행방불명 희생자 한 분이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가족의 품에서 평안히 안식하시기를 바라며, 통한의 세월을 버텨온 유족 한 분 한 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행방불명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발굴은 지난 2006년 제주시 화북동 화북천을 시작으로 2007년~2009년 제주국제공항, 2021년 표선면 가시리외 6개소, 2023년 안덕면 동광리 등 도내 곳곳에서 진행됐다. 이를 통해 총 413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대전골령골에서 신원이 확인된 1명을 포함해 총 144명이 됐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올해도 유해발굴 및 발굴유해 유전자 감식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지난해 도외 지역 희생자 중 최초로 신원이 확인된 한국전쟁 전후 대전 골령골 학살터 뿐만 아니라 광주형무소에 암매장된 유해 가운데 4·3 수형인들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과 대조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 70여년 만에… 제주4·3 행불 희생자 2명 신원 확인

    70여년 만에… 제주4·3 행불 희생자 2명 신원 확인

    제주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 2명의 신원이 70여년 만에 확인됐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2023년 유해발굴 및 유전자감식 사업을 통해 행방불명 4·3희생자 2명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신원확인과 함께 유가족을 찾은 희생자들은 군법회의 희생자 1명, 예비검속 희생자 1명이다. 희생자 故강문후(당시 48세)씨는 안덕면 동광리 출신으로 1950년 7월 예비검속되어 지금까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희생자 故이한성(당시 26세)씨는 제주읍 화북리 출신으로 1949년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언도받은 후 행방불명됐다. 특히 이번 신원확인은 지금까지 채혈에 참여하지 않았던 직계 및 방계 유족의 추가 채혈을 통해 거둔 성과다. 한 명의 행방불명 희생자에 대한 유가족 다수의 적극적인 채혈 참여가 신원확인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희생자 故강문후씨의 신원확인은 희생자의 아들, 손자, 손녀뿐 아니라 동생과 그의 손자까지 총 9명의 채혈 참여로 이뤄졌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올해도 유해발굴 및 발굴유해 유전자 감식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작년 도외 지역 희생자 중 최초로 신원이 확인된 한국전쟁 전후 대전 골령골 학살터 뿐만 아니라 광주형무소에 암매장된 유해 가운데 4·3 수형인들도 포함돼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과 대조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2024년 4·3희생자 유가족 채혈은 지난 1일부터 오는 11월 30일까지 제주시 한라병원과 서귀포시 열린병원에서 진행한다. 이번 2명에 대한 신원확인보고회는 오는 20일 오후 2시 30분 제주4·3평화공원 4·3평화교육센터에서 개최된다. 한편 행방불명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발굴은 지난 2006년 제주시 화북동 화북천을 시작으로 2007~2009년 제주국제공항, 2021년 표선면 가시리 외 6개소, 2023년 안덕면 동광리 등 도내 곳곳에서 진행됐다. 현재까지 총 413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대전 골령골에서 신원이 확인된 1명을 포함해 144명이다.
  • “4·3때 억울하게 옥살이 한 95세 생존 수형인이 여기에 또 있습니다”

    “4·3때 억울하게 옥살이 한 95세 생존 수형인이 여기에 또 있습니다”

    희생자 결정이 안된 제주4·3 생존 수형인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은 지난 25일 1949년 7월 2일 고등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위반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A(95)에 대해 직권재심을 제주지방법원에 청구했다고 밝혔다. A씨는 현재 희생자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4·3특별법에 의한 특별재심요건은 갖추지 못했으나 합동수행단에서 A씨의 진술을 청취하고 관련 자료 분석 등을 통해 4·3사건 당시 A씨에 대한 불법 구금 등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해 형사소송법에 의한 직권재심을 청구했다. 합동수행단은 A씨의 나이를 감안해 생존 중에 신속히 명예회복이 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직권재심을 청구했다. 강종헌 합동수행단장은 “현재 A씨는 부산에 거주하고 있고 눈앞이 잘 안 보여서 보호자 동반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A씨의 심신상태를 고려해 2월 6일 부산 동아대 모의법정에서 사실상 ‘출장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간혹 병원 응급실에서도 재판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희생자 미결정 생존 수형인에 대해 4·3특별법이 아닌 형사소송법에 의한 직권재심을 청구한 두번째 사례라는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합동수행단은 2022년 10월 27일 A씨처럼 희생자 결정이 없는 생존 수형인인 박화춘(1927년생) 할머니에 대해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직권재심을 최초로 청구했다. 같은해 12월 6일 제주지법은 박 할머니는 무죄선고를 받아 70여년만에 명예를 회복한 바 있다. 박 할머니는 1948년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지만, 피해 사실을 숨기고 살다가 제주 4·3평화재단 추가 진상 조사 과정에서 생존 수형인으로 확인됐다. 제주4·3 당시 서귀포시 중문면 강정 월산마을에 살던 박 할머니는 4·3 당시 수감생활을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 혹여나 자녀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70여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다. 이로 인해 4·3희생자로 등록하지 않았다. 4·3 희생자 결정이 안된 수형인이 4·3특별법이 아닌 형사소송법에 따른 직권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받은 첫 사례였다.당시 합동수행단 소속이었던 변진환(수원지검 안산지청 부부장검사) 검사는 최후 변론에서 “할머니, 잘못한 거 어수다(없습니다). 4.3사건 때 할머니 잘못헌 것도 어신디(없는데) 사람들이 막 심엉강으네(잡아가서) 거꾸로 돌아매고 허영으네(매달리게 해서) 막 고생 많아수다(많았습니다). 제가 재판장님한티 할머니 잘못한 거 없댄 잘 고라시난예(잘못 없다고 잘 전했으니) 아무 걱정 허지 맙서예(마세요). 경허고 너미 부치로왕 안해도 되어마씨(그리고 너무 창피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할머니 잘못한거 어시난예(없어요). 할머니는 그저 마음 편안허게 가지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 됩니다예.”라로 말해 재판장에 있던 사람들을 울렸다. A씨 역시 박 할머니와 비슷한 이유로 70여년간 꽁꽁 자신의 수감생활을 했던 아픈 과거를 숨겼다. 자식들도 최근에야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됐을 만큼 자식들 걱정 때문에 극도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익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4·3은 제주사람들에게 아직도, 여전히, ‘빨갱이(레드 콤플렉스)’라는 주홍글씨같은 아픈 과거이고, 죽을 때까지 꽁꽁 숨기고 싶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합동수행단은 1년 전부터 A씨를 만나 끊임없이 설득한 끝에 결국 직권재심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합동수행단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관련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을 2022년 2월 10일 최초 청구한 이래 현재까지 47차에 걸쳐 총 1360명을 청구했다. 이 가운데 45차로 청구한 수형인까지 총 1300명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또한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은 2022년 12월 28일 제주지검에서 1차로 10명을 청구하고 2023년 2월 22일 합동수행단이 그 업무를 이관받아 2023년 5월 11일부터 현재까지 총 70명을 청구하는 등 합계 80명이 청구됐으며 5차 청구 수형인까지 총 50명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합동수행단은 2월 6일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또 한번 이같은 최후변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어르신 잘못한 것 어수다(없습니다). 너무 걱정허지 맙서예(걱정하지 마세요)”
  • 제주도지사가 4·3평화재단 이사장 임명… 경영성과땐 1년 연임 가능

    제주도지사가 4·3평화재단 이사장 임명… 경영성과땐 1년 연임 가능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도지사가 최종 임명하는 ‘상근 이사장’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이 제주도의회에 제출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조례안(4·3평화재단 조례안)’을 30일 도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4·3평화재단 조례안에는 재단의 책임경영체계를 마련하고 도민과 유족들의 보편적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이사회 구성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도는 지난 2일부터 22일까지 20일 동안 입법예고 기간에 수렴된 다양한 의견을 이번 4·3평화재단 조례안에 수정 반영했다. 도지사가 이사장 임명시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사람에 대해 이사회에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사 임명권자를 도지사에서 이사장으로 수정해 전부개정안을 마련했다. 기존 비상근 이사장을 상근으로 전환하고, 기관장 평가를 실시해 연임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임기 2년 후 경영성과를 고려해 1회 연임이 가능하다. 또한 당연직 이사 중 제주도 행정부지사를 ‘제주도 재단 관련 업무 담당 실·국장’으로 전환하고, 도민의 보편적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주도의회 사무처장’, ‘제주도교육청 4·3 평화·인권교육 업무 담당 실·국장’을 당연직 이사에 포함키로 했다. 도는 지난 29일 도청 본관 2층 삼다홀에서 오영훈 도지사 주재로 제21회 조례규칙심의회를 열고 실·국장들과 토론을 거쳐 4·3평화재단 조례안을 심의 가결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이번 조례 개정은 4·3평화재단이 제주4·3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국화·세계화·미래화의 중심축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라며 “제주도의회, 4·3평화재단, 4·3유족회 등과 협의하면서 조례를 개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4·3평화재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지방출자출연법에 따른 출연기관의 체계를 지금이라도 구축하고 4·3특별법상 고유 목적사업을 충실히 추진할 수 있도록 바로잡아 가는 것이 도정의 역할”이라며 “앞으로 4·3평화재단이 도민과 유족들에게 책임있는 재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정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조례개정안을 놓고 고희범 전 재단 이사장이 사퇴한데 이어 오임종 이사장 직무대행까지 사퇴하며 내홍을 겪었다.
  • 70여년 억압과 화해의 역사 ‘제주4·3기록물’…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70여년 억압과 화해의 역사 ‘제주4·3기록물’…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70여년 동안 제주인들의 아픔과 한이 서린 4·3기록물에 대한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가 유네스코 본부에 제출됐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 본부에 30일 제출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이 제출한 등재신청서상 기록물 명칭은 ‘진실을 밝히다: 제주 4․3아카이브(Revealing Truth : Jeju 4·3 Archives)’다. 해당 기록물만 총 1만 4673건으로 문서 1만 3,976건, 도서 19건, 엽서 25건, 소책자 20건, 비문 1건, 비디오 538건, 오디오 94건 등이다. 제주4·3 당시부터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된 2003년까지 생산 기록물이 대상이며, 억압된 기억에 대한 기록과 화해와 상생의 기록물들이 포함됐다. ‘억압된 기억에 대한 기록물’ 에는 오랜 탄압에도 4·3희생자와 유족들이 끊임없이 이어간 증언, 아래로부터의 진상규명 운동, 2003년 정부 공식 보고서에 이르기까지의 노력이 담겼다. ‘화해와 상생의 기록물’에는 제주인들이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없이 모두를 포용하고 공동체 회복에 온 힘을 다했던 내용이 포함됐다. 주요 목록은 군법회의 수형인 기록, 수형인 등 유족 증언, 도의회 4·3피해신고서, 4·3위원회 채록 영상, 소설 ‘순이삼촌’, 진상규명·화해 기록, 정부 진상조사 관련 기록물 등이다. 유네스코 본부에 제출된 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등재심사 소위원회’에서 사전심사를 하고 ‘국제자문위원회’ 심사를 거쳐 2025년 상반기에 최종 결정된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2018년부터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조상범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6년여간 4·3기록물 수집 및 목록화, 심포지엄, 전문가 검토 등을 진행하며 등재 준비에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 3차례의 심의 속에 지난 10월 국내 신청 대상으로 최종 선정됐다”면서 “4·3기록물이 세계인의 역사이자 기록이 될 수 있도록 문화재청 및 4·3평화재단과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세계기록유산은 현 기준 전세계 84개국 496건으로,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시작으로 동의보감, 새마을운동기록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등에 이어 올해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선정돼 총 18건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제주도가 꺼내 든 처방전… 4·3평화재단 내홍 잠재우나

    제주도가 꺼내 든 처방전… 4·3평화재단 내홍 잠재우나

    제주도가 제주4·3평화재단(이하 재단) 이사장 선임 방식을 둘러싼 조례 개정을 앞두고 한발 양보하는 타협안을 내놓아 주목받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7일 오영훈 도지사 주재 도정현안 공유 티타임에서 재단 이사장을 임명하기 이전에 이사진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고 이사진 임명권을 이사장에 주는 내용의 변경안을 추진키로 했다. 오 지사는 이날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조례안 입법예고’와 관련한 최근 논의의 배경은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것”이라며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논쟁이 지속되는 상황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입법예고된 조례는 현재 비상근 이사장을 상근으로 전환하고 이사회를 개편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오 지사는 “비상근 이사장 체제에서는 기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감사위원회의 기관 경고에도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업무분장상 4·3평화재단에 대한 감독 권한은 4·3지원과에 있고, 해당 부서를 총괄하는 특별자치행정국장에게 감독의 책임이 있으므로 기관 경고에 따른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부서 직원들과 담당국장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또한 4·3평화재단 직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서도 조례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 지사는 또한 “재단 운영의 독립성과 관련한 걱정을 잘 알고 있고, 재단 운영에 깊게 관여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단언하며 “지금까지 4·3운동을 하며 국회의원 시절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을 이끌어낸 것으로 역할을 다했으며, 이제는 공적 시스템 내에서 문제를 마무리하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최근 조례개정안을 놓고 고희범 전 재단 이사장이 사퇴한데 이어 오임종 이사장 직무대행까지 사퇴하며 내홍을 겪고 있으며 김창범 4·3유족회장이 이사에서 물러났다. 한편 도는 해당 조례와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동안 수렴한 의견을 반영해 수정한 뒤 29일쯤 조례규칙심의위원회를 거쳐 30일쯤 제주도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 4·3이 울고 있다… 4·3 유족회가 또 상처 받았다

    4·3이 울고 있다… 4·3 유족회가 또 상처 받았다

    #4·3평화재단 내홍 심화… 고희범 전 이사장에 이어 오임종 직무대행까지 사퇴 ‘진퇴양난’ 고희범 전 이사장에 이어 오임종 직무대행마저 19일만에 사퇴하면서 제주4·3평화재단의 조례개정을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오 전 직무대행은 지난 21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4·3 영령의 꿈, 화해와 상생을 넘어 제주의 평화와 대한민국의 평화를 선도하는, 말 그대로 제주4·3평화재단으로 새출발을 해보려고 했으나 능력이 모자라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직을 내려놓았다”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직무대행직을 사직한다고 밝혔다. 제주도와 대화를 통해 갈등의 실마리를 풀려고 했던 그는 “일부에서 이사장 직무를 얼굴 마담이나 하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작당하고 무력화시키고 있다. 4·3영령 팔이, 4·3유족들을 들러리나 세우는 재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이사회가 조례 개정 철회시키라고 압력을 행사했으며 4·3 원혼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못하겠다고 결국 사표를 낼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오 직무대행이 사표를 낸 날, 그를 직무대행으로 앉혔던 이사회는 바로 사표 수리를 했다. 앞서 지난 2일 도는 제주4·3평화재단이 도민과 유족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전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22일까지 의견수렴하고 있다. 도는 책임경영을 명분으로 제주4·3평화재단의 이사장을 도지사가 최종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상근 이사장’ 체제로 전환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 전 이사장은 이사장과 선출직 이사의 임명권을 제주도지사가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주도의 재단관련 조례 개정에 우려를 표한다며 임기 두달 여를 남기고 이사장직을 내려놨다. 특히 조례개정 추진이 사전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으며 제주지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사회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며 ‘4·3의 정치화’ 우려를 표명했다. # 이사회측 조례개정안 철회하라고 압박당한 오 전 직무대행 “4·3원혼들에게 죄 짓는 것 같아 사표” 이날 제주4·3평화재단 이사회는 지난 20일 제131차 긴급 이사회를 열고 조례개정안을 철회할 것을 오 전 직무대행에게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직무대행은 “이사회 일부 이사들이 조례개정 철회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대화로 풀려고 하는 제 입장은 무시 당했다”며 “조례개정안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제주도는 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안 입법예고를 철회하라”며 “도가 입법예고안 처리를 강행한다면 우리 이사회는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입법 예고안이 철회된다면 4·3평화재단 운영의 발전적 방안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제주도, 도민사회 등과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입법예고안은 다음달 11일 임시회에서 통과 여부기 판가름난다. #유족회측 기고문통해 “이사회 전원 사퇴하라”… “안하면 유족회 차원 단체행동 불사” 맞불 일각에선 재단 이사회가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으려는 4·3유족회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이 기득권에 집착해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4·3평화재단은 국가와 제주도로부터 100억원 상당의 출연금을 지원받는 제주도 출연기관이다. 그러나 이 출연금의 10분의 1도 유족회에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회의 경우 직원 인건비도 제대로 못 줘 쩔쩔매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제주도 감사위원회 감사 결과 제주4·3평화재단이 16억원이 넘는 기금을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개인연금 보험 상품에 예치한 것으로 드러나 ‘기관경고’ 처분을 요구받은 바 있다. 원래는 수익높은 금융상품에 분산 적립해야 하는 게 기본인데 개인연금에 가입하고도 허위보고 한 것으로 드러나 4·3 유족들을 아프게 하고 상처만 남겼다. 박영수 유족회 감사는 재단 이사회를 향해 “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 최종 선정되는 등 등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갈등으로 인해 모든 비난의 화살이 유족회를 향하고 있다”면서 “이사회는 전원 자진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4·3(조직)을 사유화해선 안된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과거 빨갱이 짓하더니만 끝까지 말썽이네’라고 비아냥 댈까봐 무섭다”면서 “자진사퇴 하기 싫으면 도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이라고 맞섰다. 만약 이같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유족회 차원에서 단체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맞불을 놓았다. 실제 4·3희생자유족회 측은 22일 기고문을 통해 “제주4·3평화재단 이사진 전원사퇴”를 촉구했다. 유족회 측은 “도의회 의장이 협상 테이블로 나갈수 있게 도, 의회, 재단, 유족회 TF팀을 꾸려 도민사회에 사랑받을 수 있게 해결하자는 제안을, 이사에게 전달했으며, 4·3이 상처 받는다고 우회적으로 성명서 발표를 자중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몇 명 이사가 모든 전권을 행사하겠다는 발상은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반민주적 작태라 아니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또한 “해당 단체는 투명하게 4·3사업비 관련 사용내역을 전면 공개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현 사태에 책임 있는 분들이라면 3만 원혼들께 욕을 보이면서까지 도민사회에 누를 끼쳐도 본인들은 당당한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이날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과 전날 직무대행을 사퇴한 오 전회장도 이사직을 내려놨다. 한편 4·3평화재단 이사장 임기 만료가 내년 1월 16일이고 이사진은 3월 16일 임기 만료일이다. 통상적으로 한달 전인 다음달 초 임원추진위원회(임추위)가 발족돼야 한다. 임추위 구성은 도청 소속 2명, 도의회 3명, 재단 2명으로 구성된다. 도는 입법예고된 상황으로 인해 임추위 구성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보류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묵살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제주도·4·3평화재단… 봉합은 언제쯤?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제주도·4·3평화재단… 봉합은 언제쯤?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임명권 조례 개정을 놓고 제주도와 재단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고희범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2일 오전 도청기자실에서 제주도지사가 재단 이사장을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조례개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재단 장악 시도”라면서 “제주4·3은 제주도지사가 독점할 수 없는 제주도민의 피의 역사”라며 조례개정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그동안 재단은 설립 초기부터 이사장이 상근을 하면서 재단을 법적으로 대표하고 재단경영의 책임을 맡아왔다”면서 “이는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이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4·3영령과 유족들을 위로하고 4·3 교훈의 후대전승, 4·3의 남은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헌신과 봉사에 기초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라는 판단에 따라 무보수 봉사직으로 이사장직을 수행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상임 이사장이 아니어서 마치 책임경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도의회의 행정사무감사, 감사위원회의 감사, 공기업 경영평가 등에 충실히 임해왔고, 경영평가에서도 최근 5년동안 나급 또는 다급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사장이 비상임이어서 책임경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헌신적으로 무보수로 일해온 역대 이사장의 노고를 근거없이 폄하하는 것일 뿐”이라고 맞섰다. 특히 그는 “도의회와 재단 실무자들의 조례 개정 등 재단발전 방안에 대한 협의를 요청해 지난달 31일 회의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재단은 조례 개정안에 대해 분명한 반대입장을 피력했다”면서 “양측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자 제주도의회 전문위원이 중재해 조례 개정안에 대한 재단 이사회의 의견을 오는 9일까지 제출하고 다시 이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도가 이마저 팽개친 채 2일 입법예고를 전격 발표했다”고 꼬집었다. 이같은 고 이사장의 해명에 대해 이날 오전 11시 20분쯤 조상범 특별자치행정국장의 브리핑을 통해 “‘도지사의 재단 장악 시도’라는 주장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지난달 25일 고 이사장을 만나 제주도의 계획을 설명한데 이어 지난달 31일 도지사와의 면담을 통해 조례 입법예고 사실을 논의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이사장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도지사의 승인으로 선임되기 때문에 도지사 임명과 다름없는 권리가 있는게 아니냐는 재단측 주장에 대해 조 국장은 “이사회 의결을 거친 결과를 반대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만약 승인하지 않으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사회 선임과정부터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4·3의 정의로운 해결 과정에서 대의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조직 운영의 투명성과 집행 과정의 정의로움이 담보되지 않으면 대의가 무너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조례 개정은 4·3평화재단의 책임경영 강화와 미래지향적인 역할 확대를 위해 상근 이사장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조례 개정이 ‘4.3의 정치화’와 연결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시각에 대해 “막대한 재단 출연금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잘못하면 책임 소재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며 “감사위 감사 결과에서도 장학기금을 이사회 의결없이 보험상품 가입에 사용하고, 이를 도에 허위로 보고해 기관경고를 받은 적이 있으며 수년동안 이를 지적했다”고 토로했다. 도는 전임도정에서 바로 잡지 못한 것을 이번에도 방치·방임한다면 영영 바로잡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제주4·3평화재단은 국가와 제주도로부터 100억원 상당의 출연금을 지원받고 있다. 국비 53억원, 도비 66억 7000만원(공기관 대행사업 25억원 포함)에 달한다. 일각에선 4·3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 조 국장은 “도민(혈세) 앞에선 성역이 있어선 안된다”면서 “4·3도 예외일 순 없다”고 피력했다. 한편 고 전 이사장은 제주도의 조례개정에 반발, 지난달 31일 임기를 2개월 여 앞두고 사퇴했다. 재단측은 사태 수습을 위해 늦어도 주말 또는 다음주내 이사회를 열 것으로 전망된다.
  • “투명 경영” vs “정쟁 우려”… 4·3평화재단 이사장 임명권 조례 개정 ‘불협화음’

    “투명 경영” vs “정쟁 우려”… 4·3평화재단 이사장 임명권 조례 개정 ‘불협화음’

    제주4·3평화재단 고희범 이사장이 임기를 두 달 여 남기고 사퇴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제주도가 제주4·3평화재단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재단 설립 및 출연조례 전부 개정안을 2일 입법예고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국가와 제주도로부터 100억원 상당의 출연금을 지원받는 제주도 출연기관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제주도 감사위원회 감사 결과 제주4·3평화재단이 16억원이 넘는 기금을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보험 상품에 예치한 것으로 드러나 ‘기관경고’ 처분을 요구받은 바 있다. 제주도는 1일 오후 도청 기자실에서 열린 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조례 전부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에서도 이같은 감사결과를 언급하며 “투명경영과 책임경영 강화를 위한 목적에서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나 고 이사장은 이날 오전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직을 사퇴하며’라는 글을 올렸다. 이사장과 선출직 이사의 임명권을 제주도지사가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주도의 재단관련 조례 개정에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제주4·3평화재단은 4·3해결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4·3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기관이다. 4·3의 해결은 국가의 책무이며, 따라서 재단은 국가적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이사장과 선출직 이사의 임명권을 제주도지사가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주도정의 재단 관련 조례 개정을 한다면 4·3의 정치화를 부를 것이고, 4·3은 정쟁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4·3재단은 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흔들릴 것이고 4·3은 정파의 싸움터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며 “오영훈 지사는 지금이라도 조례 개정 절차를 중단하고 재단이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힘써줄 것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조례 전부 조례안은 제주4·3평화재단의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현재 비상근 이사장을 상근 이사장으로 전환하고, 도민과 유족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이사회를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사장과 선임직 이사는 공개 모집하고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도지사가 임명하도록 했으며, 감사는 공개 모집을 통해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 및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현재 도지사 지명으로 부지사가 담당하는 당연직 이사는 4·3 관련 담당 실·국장과 4·3실무위원회 부위원장이 맡도록 했다. 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이사장은 한 차례만 연임 가능하고 그 외 임원은 재단의 정관에서 정하도록 했으며, 임원추천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사항과 재단 지도·감독 관련 사항 등도 포함했다. 그러나 4·3희생자와 유족들 앞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에 대해 양측 모두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도내 다른 출자출연기관과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도의 입장에 대해 “4·3의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재단 측과의 사전 조율이 매끄럽지 못해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은 매우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조상범 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조례 전부개정안을 마련한 만큼 도와 재단 간 더욱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4․3정책 실행과 세계화에 힘쓰겠다”며 “앞으로 재단이 도민과 유족의 보편적 의견을 반영해 더욱 책임있게 운영되고 4․3유족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기념사업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도는 개정 조례안에 대해 오는 22일까지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 제주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대상 최종 선정

    제주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대상 최종 선정

    “제주4·3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의 역사이자 기록으로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발판이 마련됐습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23일 오후 제주4·3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 등재 신청대상으로 최종 선정되자 환영 메시지를 내며 이같이 밝혔다. 오 지사는 “제주의 아픔과 함께하며, 제주4·3기록물의 세계화를 위해 마음을 모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특히,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와 문화재청의 노력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는 화해와 상생의 위대한 정신을 담은 제주4·3기록물이 세계인의 가슴에 평화와 인권의 증거가 되도록, 지난 2018년부터 제주4·3평화재단과 함께 방대한 양의 4·3기록물을 수집하고 목록을 정리했으며, 심포지엄을 열고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머리를 맞대었다”면서 “제주도정은 제주4·3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당당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었듯, 과거사 해결의 모범사례를 담은 제주4·3기록물이 세계인의 가슴에 평화와 인권의 증거가 될 때까지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전했다. 앞서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는 지난 8월 제주4·3기록물 재심의에서 영문 등재신청서를 심의하기로 하고 ‘조건부 가결’했으며, 이날 4·3기록물 영문 등재신청서에 대한 심의가 진행됐다. 4·3기록물이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됨에 따라 도는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 문화재청, 4·3평화재단과 협업하며 등재신청서를 최종 보완한 뒤 11월 30일까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본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후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 문화재청 등과 적극 협력해 4·3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도록 유네스코 본부 협의에 역점을 두고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조상범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제주4·3기록물이 세계인의 역사이자 기록으로 확고한 위상을 정립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르포] “어디 갔당 이제 옵데강”… 번호 대신 이름 찾아 74년 만에 귀향했다

    [르포] “어디 갔당 이제 옵데강”… 번호 대신 이름 찾아 74년 만에 귀향했다

    #영정사진 대신 남편사진 든 며느리 부자 상봉시켜… ‘제2본 0023번’ 대신 ‘김한홍’ 이름 석자 찾아 5일 오전 10시 20분 제주국제공항 1층 도착장. 검정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일렬로 줄 서 있고 그 앞에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등과 함께 도착장 출구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무슨 영문인지 의아해하며 덩달아 시선을 모았다. 이윽고 검정 상복을 입은 남자와 고령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손엔 하얀 천에 감싸인 유해함이 들려 있었다. 이는 74년간 생사를 알수 없었던, 행방불명된 4·3희생자 고(故) 김한홍씨의 유해였다. 도외지역 대전 골령골에서 4·3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돼 74년 만에 고향 품으로 귀향하는 순간이었다. 유해함을 들고 있던 남자는 김씨의 손자 김준수씨였고 그 옆 고령의 여인은 고인 김한홍씨의 며느리 백여옥(친정아버지도 함께 행방불명)씨였다. 대전 골령골에 매년 찾아가 제를 지내며 신원이 확인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남편은 끝내 고인의 귀향을 보지 못한 채 2020년 세상을 떴다. 지금까지 발굴된 4·3희생자 유해들은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이름도 없이 ‘번호’로만 남아 봉안돼 있었다. 고인 김씨도 신원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제2본 0023번’으로 남아 있었다. 74년 만에 비로소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면서 이름 석자도 되찾게 됐다. ‘김·한·홍’. 백씨는 살아생전 남편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유해확인과 운구를 위해 전날인 4일 세종추모의집에 갈 때 영정사진(고인은 사진 한장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남편의 사진을 대신 들고 갔다. 고인의 아들인 남편이 너무나 보고 싶어했던 아버지를 사진으로나마 상봉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오영훈 지사 유해 들자마자 “어디갔당 이제 옵데강”이라며 눈물 흘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손자 김씨의 품에 안긴 유해함을 함께 들며 “어디갔당 이제 옵데강(어디에 계시다가 이제야 오셨어요)”이라고 말하자 며느리 백씨는 울음을 터뜨렸고 오 지사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유족과 유해봉환을 위해 나온 관계자들은 운구차로 향했다. 그리고 고향 북촌포구로 서둘러 공항을 빠져 나갔다. 고인의 고향은 제주시 조천면 북촌리. 4·3 당시 26세였던 고인은 4·3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마을에서 떨어진 밭에 숨어 지내다 1949년 1월 말 군에 와서 자수하면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소문에 속아 자수했다. 유족들은 자수한 김씨가 주정공장 수용소에 수용된 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 수형인 명부에는 희생자가 1949년 7월 4일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한 사실이 등재돼 있었다. 운구차가 50분여 달렸을까. 이미 포구 근처에는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는 고인을 맞이하기 위해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해가 봉환식장으로 들어서자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대전 골령골 발굴유해 신원확인 4.3 희생자 봉환식을 거행했다. 이날 봉환식에는 오 지사와 고인의 유족들, 김창범 4·3유족회장,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 송재호 국회의원, 현길호 도의회 의원, 지역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오영훈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고인에게 머리숙여 깊은 위로를 전한다. 부디 하늘에서 부자가 웃으며 만나셨기를 기대한다”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평범한 북촌청년은 1949년 4·3당시 무장 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해 총과 칼을 겨누자 산으로 도망쳤을 뿐이다.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말만 믿고 마을로 내려왔으나 주정공장으로 끌려갔고 74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실종된 지 13년이 지난 후에야 어쩔수 없이 사망신고를 했고 돌아가신 날을 몰라 생신날을 제삿날로 모셔야 했다”면서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했다는 사실도 2002년 4·3행방불명인 신고때 돼서야 알게 됐으며 그 원통함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고 위로했다. 또한 “아들인 고(故) 김문추 님은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온평생을 바쳤다. 4·3 수형인 명부를 근거로 군사재판 재심을 신청했고, 유해라도 찾으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2018년에는 DNA도 채취했다”면서 “비록 아버지의 유해를 보지 못했지만, 그 뜻을 손자가 이어받아 통한의 한을 풀어냈다. 대를 이은 노력 끝에 지난 8월 군사재판 직권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늦었지만 고향에 모시는 것으로 그 먹먹했던 세월에 위로가 되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들아, 바람불 때마다 내가 부르는가 여기거라. 파도칠 때 내가 우는가 돌아보거라 이날 김수열 시인은 고인에게 ‘물에서 온 편지’란 시를 바쳤다. 이 헌시에 참석자들은 모두 숨을 죽여 귀를 쫑긋 세웠다.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이제 그만 접어라. /네가슴을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육신의 7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냐./ 나머지 3할은 땀이며 눈물이라 여기거라. /…그러니 아들아. 바람불 때 마다 내가 부르는가 여기거라. /파도칠 때마다 내가 우는가 돌아보거라./ 물결따라 바람결따라 몇자 적어 보내거라./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어도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기 꽃소식, 사람소식/물결따라 바람결따라 너울너울 보내거라. 내 아들아.’ 봉환식이 거행된 뒤 인근 50m거리 골목 고인의 생가에서 노제를 지냈다.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돌집 흔적만 남아 그를 반겼다. 봉환식 이후에는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신원확인 보고회가 개최됐다. 신원확인 보고회를 끝으로 고인의 유해는 4.3평화공원 봉안관 유해함에 봉안됐다. 오 지사는 이날 “제주가 아닌 육지에서 희생자 유해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강조한 뒤 “복역중 희생됐지만 행방을 알수 없는 수형인은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더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4·3 수형인 명부를 통해 확인된 행방불명 수형인은 1700여 명 중 이제 한 분의 신원을 확인했다”며 “제주도정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광주와 전주, 김천 등 4·3 수형인의 기록이 남아 있는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4·3은 살아있는 세계인의 역사이다.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은 현재진행형인 과제”라며 “앞으로 4·3완전한 해결과 더불어 평화의 4·3정신이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도록 후손된 자로서 소명을 다하겠다. 다시한번 4·3영령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끝을 맺었다.
  • 74년 전 행방 끊긴 제주 4·3 희생자, 대전 골령골서 찾았다

    74년 전 행방 끊긴 제주 4·3 희생자, 대전 골령골서 찾았다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행방불명 처리된 희생자의 신원이 74년 만에 대전 골령골에서 확인됐다.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4·3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역인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한 유해에 대해 4·3 희생자 유전자 감식 시범사업을 실시하던 중 처음으로 1구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제주시 조천면 북촌리 출신의 김한홍씨다. 김씨는 4·3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마을에서 떨어진 밭에 숨어 지내다 1949년 1월 말 군에 와서 자수하면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소문에 속아 자수했다. 유족들은 자수한 김씨가 주정공장 수용소에 수용된 후 아무런 소식을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고인의 아들은 2018년 채혈했으나 끝내 아버지의 귀향을 못 본 채 2020년 세상을 떠났다”면서 “올해 손자가 다시 채혈해 신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대전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 사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와 대전·충남 지역에서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돼 묻힌 곳이다. 4·3 당시 형무소가 없던 제주에서는 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전국의 형무소로 뿔뿔이 흩어져 수감됐는데, 대전형무소에도 300여명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민 재소자 역시 골령골 학살 당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의 유해는 오는 10월 4일 유족회 주관으로 세종 은하수공원에서 제례를 진행한 후 화장해 5일 항공기를 통해 제주로 봉환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이날 고향으로 돌아온 유해에 대한 봉환식을 거행하고, 희생자를 위령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신원 확인 보고회도 개최한다. 제주도 외 지역 유해 1구의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도내·외에서 신원이 확인된 행방불명 4·3 희생자는 모두 142명이 됐다.
  • 도외지역서 첫 신원 확인… 행불 4·3희생자, 대전 골령골서 74년 만에 귀향

    도외지역서 첫 신원 확인… 행불 4·3희생자, 대전 골령골서 74년 만에 귀향

    제주도외지역에서 행방불명 4·3희생자의 신원이 74년 만에 첫 확인돼 새달 5일 제주로 봉환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생사를 알 수 없던 행방불명 4·3희생자의 신원을 74년 만에 대전 골령골에서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도외지역 발굴유해 4·3희생자 유전자 감식 시범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신원을 확인한 최초 사례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 사이에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와 대전·충남 지역에서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돼 묻힌 곳이다. 이번 유해는 2023년까지 발굴된 1441구의 유해 중 1구로 확인됐다. 특히 2021년 A구역에서 962구가 발굴돼 이 가운데 200구가 시료 채취됐으며 지금까지 70구의 신원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이 확인된 고(故) 김한홍(26)씨는 제주시 조천면 북촌리 출신으로 4·3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마을에서 떨어진 밭에서 숨어 지내다 1949년 1월 말 군에 와서 자수하면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소문에 자수하고 주정공장수용소에 수용된 후 아무런 소식을 알 수 없게 됐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다만 수형인 명부에는 희생자가 1949년 7월 4일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한 사실이 등재돼 있다.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유해 상태가 많이 안 좋은데다 부분만 남아있어 매우 안타깝다”면서 “대전으로 끌려간 희생자의 유가족 채혈은 아직도 50%에 불과해 많은 참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인 아들 김모씨는 2018년 채혈했으나 2020년 사망하자 손자가 다시 채혈한 결과 이달초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됐다. 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영문도 모른 채 타지에서 74년 간 잠들어 있던 희생자를 최고의 예우로 고향으로 맞이할 계획이다.민간인 유해가 임시 봉안된 세종추모의집에 안치된 유해는 새달 4일 유가족,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행정안전부 관계자 등이 배석한 가운데 인계 절차를 거쳐 유족회 주관으로 제례를 진행한 후 화장해 이튿날 5일 항공기를 통해 제주에 온다. 청주공항에서 오전 9시 5분쯤 출발한 유해는 제주공항에 오전 10시 15분쯤 도착하며 고향인 북촌에 귀향해 노제를 지낸 뒤 제주4·3평화공원 봉안관에 안치될 예정이다. 오영훈 도지사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대전 골령골 발굴 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과 제주4·3 유해 발굴 및 유전자 감식사업과의 연계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면서 “이번에 도외지역에서 행방불명 4·3희생자의 신원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돼 무척 뜻깊다”고 말했다. 이어 “도내지역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뿐만 아니라 광주, 전주, 김천 등 도외 행방불명인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사업도 타 지자체 등과 협업을 통해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도외지역 유해 1구의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신원이 확인된 행방불명 4·3희생자는 총 142명으로 늘었다. 그동안 행방불명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발굴은 지난 2006년 제주시 화북천을 시작으로 2007~2009년 제주국제공항, 2021년 표선면 가시리, 서귀포시 상예동 등 도내 곳곳에서 진행됐다. 발굴된 총 413구의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41명이었다.
  • “역사소설이 아닌 영화 한편 보는 듯”… ‘제주도우다’ 현기영 작가와 4·3 현장 속으로

    “역사소설이 아닌 영화 한편 보는 듯”… ‘제주도우다’ 현기영 작가와 4·3 현장 속으로

    “돼지 잡는 장면 등은 마치 손끝에서 잡는 장면 이상으로 상상력이 뛰어나올 정도로 너무 생생해 역사서를 읽는 것 보다 영화 한편을 보는 느낌이에요.”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오는 21~22일 현기영과 함께 읽는 ‘제주도우다’-여기가 제주도우다’를 주제로 2023 열린 시민강좌를 여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이같이 14일 밝혔다. 허 연구소장은 “4·3을 모르는 사람들이 읽으면 맥락을 이해하게 되고 당시 청년들의 의식을 따라갈 수 있는 4·3 교과서 같은 소설”이라며 “요즘 세대들이 무거운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선생이 4·3 이후에 우리 세대들에게 주는 필생의 선물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소설 ‘제주도우다’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과 4・3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언어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세밀한 묘사와 미학적 서사로 완결해낸 대하소설이다. ‘평산책방지기’로 지내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82세의 작가가 ‘순이삼촌’을 낸 지 45년 만에 이룬 문학적 성취가 놀랍다”면서 “필생의 역작이며 4·3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평했을 정도였다. 4년 여에 걸쳐 ‘제주도우다’를 완성한 현 작가는 “4·3 영령들이 내게 명령해 쓴 책이다. 3만 원혼을 위한 공물”이라며 “이번 책은 내 마지막 4·3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평화재단이 준비하는 이번 시민강좌는 작가의 특강을 통해 4・3의 전사와 우리가 몰랐던 소설 속 배경을 들을 수 있는 자리다. 21일 첫째날은 ‘4・3항쟁의 전사’를 주제로 현기영 선생의 특강으로 진행된다. 저자의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타는 섬’ 등을 통해 ‘4・3항쟁의 전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이튿날인 22일에는 ‘제주도우다 깊이 읽기’. 작품의 탄생과 배경, 당시 4・3의 제주섬을 살았던 청년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허 연구소장이 대담 진행을 직접 맡아 소설책에 나오는 궁금증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특히 이번 강좌에서는 제주의 소리꾼 문석범(21일)과 뚜럼 브러더스(22일)가 출연, ‘제주도우다’에 등장하는 수많은 노래 곡 중 몇 곡을 선정해 부른다. 허 연구소장은 “특히 책에 수십곡의 노래가 등장하는데 ‘가거라 삼팔선아’, ‘산타루치아’, 말모는 소리 등 당시 노래들을 그냥 읋는게 아니라 그 시름을 달래주던 노래를 이어 개사해 부르며 흥미를 더욱 유발시킨다”고 전했다. 그는 “‘산~타~아 루~치아를 ‘쌀~타~러 가자’는 식으로 부른다”면서 “4·3 때 살아남은 노인(안창세)의 목소리로 그가 살아낸 일제강점기부터 4·3까지 이야기를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는 회고담 형식으로 풀어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다음달 21일에는 책 속의 배경이 되는 현장도 찾아 나선다. 코스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소설속 배경이 되는 조천읍(당시 조천면) 신촌리, 대흘리, 와흘리 등 중산간마을로 떠날 예정이다. 한편 작가 현기영은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래 제주도 현대사의 비극과 자연 속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그는 제주4・3연구소 초대 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으며,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받았다. 이번 강좌는 제주4·3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이메일(jeju43@hanmail.net)로 접수하면 된다.
  • 내년엔 가족 품으로 돌아갈까… 삼밧구석 아이들 유해 유전자감식 돌입

    내년엔 가족 품으로 돌아갈까… 삼밧구석 아이들 유해 유전자감식 돌입

    제주4·3 때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7∼10세의 어린이 유해 2구가 발견돼 운구제례를 거행한 가운데 유가족 채혈을 통해 DNA 확인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18일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는 “동광리에 행방불명된 분(유아동 행방불명)들이 있어 지금 받고 채혈을 받는 상황인데 어린이 유해 2구가 나와 시료를 채취해 10월까지 유가족 채혈(유전자 감식)을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 시간이 흐를수록 유해 부식 정도 심해져 정확한 감식 어려워… 유해발굴 장소서 숟가락도 나와 올해 유가족 채혈 DNA 확인 절차는 10월말 마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에 검사를 실시하게 될 경우 내년 상반기에는 최종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2구 모두 머리뼈(두개골) 중심으로만 남아 있고 팔·다리·몸통 등 사지골은 확인되지 않았다. 두개골의 치아상태로 볼때 7~10세로 추정된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4·3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 조사를 통해 지난 7월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4·3희생자 추정 유해 2구를 수습했다. 지난 17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주관으로 운구 제례를 거행했다. 발굴 현장은 마을 주민 제보자의 증언을 기준으로 조사대상지를 선정했고 발굴은 올해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에서 추진 중인 ‘제주4·3희생자 유해발굴 및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감식’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조사팀 관계자는 “시료 상태나 유가족 채혈이 발굴된 두개골에서 뼈를 잘라 시료 채취했을 때 상태가 안 좋으면 DNA를 맞추기 어려워 현재로선 감식이 성공을 거둘 지 미지수”라며 “시간이 갈수록, 70년이 흐르고, 75년이 흐르면서 부식정도가 더 심해져 정확한 감식이 어려워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난 3월 마을 사람의 증언을 바탕으로 아직도 지형이 바뀌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조사 발굴을 하게 됐다”면서 “70여년 전 제주4·3 당시 어린이들이 희생된 후 묻힌 상태에서 나중에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개간하다가 유해가 나와 근처로 옮겨놨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어릴 때 동네 큰넓궤 동굴에 숨어 지낸 적 있어 4·3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는 마을 사람은 유해가 발견된 곳에서 숟가락 2개도 나와 희생자라고 판단해 잘 묻어줬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밧구석 46가구 사는 등 임씨 집성촌…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로 영화 ‘지슬’의 소재로 동광리는 4-3 시기 현재의 동광 육거리를 중심으로 무등이왓(130여가구)과 조수궤(10여가구), 사장밧(3가구), 간장리(10여가구), 삼밧구석(46가구)의 5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중산간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증순 이후 증산간 마을에 대한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이 실시되면서 마을은 모두 파괴됐고, 많은 주민들이 희생됐다. 4·3평화재단의 지역별 피해현황 자료와 4·3연구소 자료를 보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1425번지 일대 동광리 하동인 삼밧구석은 삼을 재배하던 마을이라 하여 삼밧구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4-3 시기 46가구의 주민들이 살던 마을로 임씨 집성촌이었다. 호주로는 강무학, 김여생, 김철규, 변갑출, 변기칠, 양맹호, 이갑문, 이영길, 이정학, 이태옥, 임경화, 임공숙, 임두칠, 임문숙, 임성산, 임승수, 임오생, 임원년, 임원현, 임해생, 임화명, 홍방언 등이었다. 동광리의 큰넓궤와 도엣궤는 동광목장 안에 있는 용암동굴로 1948년 11월 중순 이후 동광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던 곳이다. 동광리 주민들은 큰넓궤에서 40 ̄50여 일을 살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발각되고 말았다. 곧 토벌대는 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년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굴 안으로 대피시킨 후 이불 등 솜들을 전부 모아 고춧가루와 함께 쌓아 놓고 불을 붙인 후 키를 이용하여 매운 연기가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토벌대는 굴속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 때문에 굴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총만 난사했다. 그러다 토벌대는 밤이 되자 굴 입구에 돌을 쌓아 놓고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은 다음 철수했다. 토벌대가 간 후 근처에 숨어 있던 청년들이 나타나 굴 입구에 쌓여 있는 돌을 치우고 주민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다른 곳으로 피하도록 했다. 그러나 굴속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갈 곳이 막연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옷이나 신발 모두 변변치 않았지만 한라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다. 그 후 이들은 영실 인근 볼레오름 근처에서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잡혀 서귀포로 갔다. 이들은 정방폭포나 그 인근에서 학살됐다. 큰넓궤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입구를 지나면 5m 정도의 절벽이 나오고, 이곳을 내려서면 이 굴에서 가장 넓은 장소가 나온다. 바닥이 제주도 현무암 그대로여서 울퉁불퉁해 위험하다. 이곳을 지나면 토벌대의 총알을 막으려고 쌓아 놓은 돌담이 한 쪽에 쌓여진 곳이 있고, 양쪽으로 깨진 그릇 파편들을 볼 수 있다. 이곳부터 굴이 좁고 낮아져 조금 가면 약 30m 정도 기어들어가야 하는 곳이 나온다. 이 굴에서 가장 드나들기 어려운 곳이다. 이곳만 지나면 굴은 다시 높아져 다니기 쉬우며 그 안에는 이층굴도 나오고 좀 넓은 곳이 나온다. 삼밧구석 등의 학살 사건은 오멸 감독의 4·3 영화 ‘지슬’의 소재가 됐다. #현재까지 유전자감식 작업통해 413구 유해 발굴…141명 유족의 품으로 마을터는 동광육거리에서 오설록 방면 서쪽으로 약 900m 떨어진 곳으로 이곳 큰길가 마을터 입구에는 2005년 4월 3일 세운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서 있다. 살아남은 주민들이 동광리(간장리)에 성을 쌓고 살기 시작한 이후 삼밭구석은 재건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개간된 밭들 사이로 드문드문 서 있는 빈 집터의 대나무만이 지나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제주4·3희생자 유족회(회장 김창범)는 유해에서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 감식을 거쳐 희생자의 이름을 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한편 현재까지 ‘제주4·3희생자 유해발굴 및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감식’ 사업을 통해 413구의 유해를 발굴하고 141명의 신원을 확인해 유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올해 확보한 8억 7000만 원(전액 국비)으로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유가족 채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유족들의 한을 해소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방침이다.
  • 4·3 때 희생 추정 어린이 유해 운구 제례

    4·3 때 희생 추정 어린이 유해 운구 제례

    제주4·3희생자유족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의 잃어버린 마을 ‘삼밧구석’에서 지난달 수습된 4·3희생자 추정 어린이 유해 2구를 위한 운구 제례를 거행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머리뼈와 함께 남아 있는 치아로 유해의 사망 당시 나이를 7~10세로 추정했다. 삼밧구석 마을은 4·3 당시 임씨 집성촌으로 46가구가 살았는데, 많은 주민들이 토벌대에 죽임을 당했다. 삼밧구석 등의 학살 사건은 오멸 감독의 4·3 영화 ‘지슬’의 소재가 됐다. 서귀포 연합뉴스
  • 보복·원망 대신 화해·상생의 이름으로… 제주4·3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첫 관문 통과

    보복·원망 대신 화해·상생의 이름으로… 제주4·3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첫 관문 통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제주4·3기록물’이 지난 9일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의 심의에서 조건부 가결로 통과되자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한걸음 다가섰다며 진심으로 환영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4·3 제75주년을 맞아 사건 당시 생산된 기록, 진실기록과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담은 ‘제주4·3기록물’이 지난 9일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의 심의에서 조건부 가결로 통과됐다고 11일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4·3의 해결과정이 민간의 진상규명 노력 등에서부터 시작해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 채택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과정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외국인 입장에서 제주4·3을 이해해야 4·3기록물의 세계사적 중요성과 기록물 보존 필요성이 설명되므로 전문적인 영문 번역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영문 신청서를 다시 검토하자는 의견에 따라 조건부 가결됐다. 이에 도는 제주4·3평화재단과 함께 4·3을 소개하는 영문 영상물 등을 만들어 오는 10월 중순 한국위원회에 심의를 받고, 위원회 재심의가 통과되면 11월 말까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위원회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1948년 제주4·3이 발생한 이후 70년이 넘도록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마을에 살면서도 보복과 원망 대신 화해와 상생으로 공동체를 회복한 이유는 제주도민들의 자발적인 화해·상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제주4·3은 제주도민들의 힘으로 국가폭력을 극복하고, 해결을 이뤄낸 선도적인 세계적 모범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주4·3이 ‘세계적인 가치’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며, 제주4·3의 역사를 인류 공동유산으로 보존하는 것”이라며 “화해와 상생이라는 4·3의 평화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공인받기 위해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제주4·3희생자 1만 4660명중 생존 희생자는 116명에 불과하다. 유족회측은 “생존 희생자들이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오랜 시간 감추고 아파하던 그 시간의 진실 속에 감추어진 그 엄청난 고통과 분노가 시간이 흐르면서 돌이켜 볼 수 있는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세계인의 역사로 기억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전 세계적으로 가치가 있는 서적(책), 고문서, 편지, 사진 등 귀중한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을 진흥하기 위해 유네스코에서 1992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1997년부터 2년마다 등재를 선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시작으로 동의보감, 새마을운동기록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등에 이어 올해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선정돼 총 18건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있다. 제주4·3기록물은 4·3사건 당시 생산된 기록물(미군정, 수형인명부, 재판기록), 사건의 진실기록(희생자 및 유족의 증언)과 민간과 정부의 진상규명 기록 등을 담은 기록물로서 문서, 편지, 오디오(비디오)테이프, 영상, 도서 등의 자료 1만 7000여건으로 구성됐고, 국가기록원,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제주4·3평화재단 등에 보관돼 있다. 앞서 오영훈 지사는 지난 2월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 공식 출범때 “우리의 당당한 역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올려 세계가 인정하는 과거사 해결의 모범사례이자 어떤 비극이 있더라도 평화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세계적인 상징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조상범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보완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문화재청과 협력해 제주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기록으로 영구히 남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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