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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 4개야당 “내각 불신임”/토지분배 부정 추안 총리 실각 위기

    ◎17일 의회표결… 긴장 고조 【방콕 연합】 정부의 거액 토지분배부정사건과 관련,추안 리크파이 총리내각에 대한 의회의 불신임안 표결이 오는 17일로 다가온 가운데 태국의 야당 대표들은 9일 긴급모임을 갖고 추안정부의 타도를 선언해 태국정국이 긴장국면에 들어갔다. 최대 야당인 차트 타이당 반한 실라파 아차 당수 주재로 방콕 시내의 한 호텔에서 모임을 가진 태국 4개 야당 지도자들은 17∼18일 실시될 내각 불신임안 표결에서 추안정부를 축출하자고 다짐하고 야당이 연정내 반추안 정당과 연합전선을 결성,『부패로 얼룩진 정부를 무너뜨리고 위대한 정치사를 창조하자』고 결의했다. 한편 정부의 토지분배부정사건에 항의,지난달부터 내각총사퇴와 의회해산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여온 반체제 재야운동가인 찰라드 보라차트 전 의원도 이날 추안총리에게 퇴진압력을 넣기 위해 17일부터 국회의사당앞에서 방콕시민이 모두 모여,시위를 벌이자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태국 언론들은 오는 17∼18일이 쿠데타로 집권한 수친다 크라프라윤 총리를 물러나게한 태국의 유혈 민주항쟁 3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야당과 재야세력의 반정부 투쟁이 특히 관심을 모은다고 10일 보도했다. 태국 정부는 토지개혁 사업의 일환으로 남부 휴양지인 푸켓의 공유지 일부를 영세민에게 나눠주었으나 이 토지가 토지 무소유자로 위장한 국회의원과 그의 친인척 및 정부와 지방의 고위관리 기업주,대지주 등 유력인사들에게 돌아가 야당등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 산업인력 관리공단/김재석 이사장(인터뷰)

    ◎선진국형 인력 양성체제 구축 『국경없는 무한 경제전쟁 시대로 접어든 지금 우리 경제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력자원을 개발하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18일로 창립 13주년을 맞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김재석 이사장(54)은 『우리의 산업현장은 이론적 소양과 생산공정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식을 가진 인력층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우리 공단은 시대적 요망에 부응한 「산업인력의 세계화」를 위해 선진국형 산업인력 양성체제로 전환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산업인력 구성은 과학자·기술자·다기능 기술자·고급기능인·기능인 등 5단계로 나누어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다기능기술자의 인력층이 전체 산업인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힌 김이사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다기능 인력층이 비교적 두텁다는 대기업도 약15% 수준에 머물고 있어 산업인력약성을 위한 기능대학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내년까지 2천6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기존의 12개 기능대학 이외에 11개 정도의 기능대학을 추가로 설립,해마다 6천여명의 선진국형 산업인력을 배출해야만 산업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단산하 기능대학은 고졸자를 대상으로 3천6백시간의 2년과정으로 4년제 대학의 총 수업시간과 비슷한데도 졸업자에게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탁월한 두뇌를 가진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없는 실정입니다.머지 않아 이 문제가 해결되면 많은 인재들이 지원할 것으로 짐작되어 이에 따른 활성화 계획도 아울러 강구하고 있습니다』 김 이사장은 71년 조선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했으며 민자당 조직국장·총무국장·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 기본합의서 정신 되찾자(사설)

    남북기본합의서가 19일로 발효3주년을 맞았다.92년 2월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발효된 이 합의서는 양측 총리를 수석대표로한 책임있는 당국간회담을 통해 마련된 것으로 남북의 화해·교류·협력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담겨있는 역사적인 문서다.그러나 남북합의서가 발효된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북관계는 전혀 진전되지 못한채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촉구했으나 북한은 이를 외면해 왔다.북한의 태도는 최근들어 더욱 완강해지고 있다.미국이 한국형 경수로의 채택을 계속 강요할 경우 제네바 합의를 무효화 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는가 하면 김일성사망 조문파동에 대한 사과와 국가보안법폐지라는 가당찮은 트집을 내세워 남북대화재개를 거부하고 있다.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는 사문화될 처지에 놓여 있다.그동안의 남북대화의 전개과정을 보면 북한당국은 항상 그들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합의를 이끌어내고는 그것이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주저없이 깨버리는 행태를 되풀이 해왔다. 북한은 지금 개방과 개혁의 거센 압력을 받으면서도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북한 특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주민통제를 강화해야 하는 구조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북한이 이같은 갈등에서 벗어나려면 점진적인 개방과 개혁은 불가피하며 이것이 오히려 체제안정에 도움이 될것으로 생각한다. 남북한은 이제부터라도 당국간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현안들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우리는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성실히 이행,핵의혹을 말끔히 해소하는 한편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되살려 같은 핏줄끼리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적극 나서기를 거듭 촉구한다.우리정부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을 강구해주기 바란다.
  • 김정일에 충성 다짐/북한 군부

    북한은 20일 김정일의 군최고사령관 추대 3주년(12월24일)을 맞아 김정일에 대한 군부의 「절대충성」을 과시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우리 인민군대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 끝없이 충실한 혁명적 무장력」제하의 장문의 논설을 게재,북한군은 ▲김정일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려는 충성의 일념으로 싸워나가고 있으며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심단결,「강철의 대오」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민자 내년 2월 전당대회/김 대통령/지방선거 대비 당직 대폭개편

    ◎새총리 지명은 15일께/비경제부처 2단계 조직개편 계획 여권은 새해초 민자당 전당대회를 열어 당직을 대폭 정비,당을 지방자치제 선거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곧 있을 여권의 진용개편에서는 내각과 청와대비서실만 대상이 된다. 민자당의 당직개편이 내년 전당대회로 미루어짐에 따라 정·관가에서는 당의 지도체제 변경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12일 『당직개편은 내년초 전당대회를 마친 뒤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문화방송(MBC)의 창사33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힌 뒤 『민자당 전당대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면서 『전당대회는 당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이 당의 활성화를 위해 전당대회가 필요하다고 밝힘으로써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을 정비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당의 정비에 대표까지 포함될지의 여부는 헤아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당대회는 지구당 개편대회를 먼저 치러야 하는 점을 감안할 때 2월쯤에야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가의 소식통들은 내년 전당대회를 지자제선거를 위한 단합의 장으로 삼기위해 당직개편을 그때까지 미루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김종필대표체제는 지자제 선거이후까지 존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 일각에서는 현재의 김종필대표체제로는 지자제선거를 효율적으로 치를수 없다는 주장아래 복수 최고위원제의 신설과 최고위원 경선등을 통한 당의 활성화를 주장해 주목된다. 한편 곧 있을 개각은 국회 본회의 속개 첫날인 오는 15일쯤 새 총리를 지명,국회의 동의를 받은 뒤 새 총리와 협의해 추진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비경제분야에서의 정부조직 개편도 생각해야 한다고 2단계 정부조직개편을 예고하고 청와대 개편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손을 댈 생각은 없지만 일부는 손을 댈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현재의 지방조직은 일제시대 식민통치를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내년 6월 지방선거전에 이것을 손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개헌 가능성에 대해 『임기동안에는 결코 헌법개정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 한국통신 창립13돌/21세기 세계5대 종합통신 야망

    ◎작년 1가구 2전화시대 본격 개막/재택근무·위성통신 서비스등 계획/국내 기본통신 국제교류에 주도적 역할 담당 10일로 공사창립 13주년을 맞는 한국통신이 21세기 세계 5대 종합통신사업자로 발돋움하기 위한 미래 청사진을 마련했다. 지난 81년 체신부에서 독립,공사화된 한국통신은 84년 12월 세계 최초로 시외교환망을 완전 디지털화했고 이듬해에는 세계에서 10번째로 최첨단 기술인 전전자교환기(TDX-1)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또 공사전환 당시에는 전화 3백50만 회선(1백인당 전화 8.4대)으로 심각한 적체상태였으나 지난해 11월말 2천만 회선(1백인당 38대)을 돌파,1가구 2전화시대를 열었고 전화시설을 세계 8위로 끌어 올리는 등 국내 기본통신 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정보통신산업을 활성화 하기 위해 법률정보·소비자정보 등 각종 공공 DB를 적극 개발하고 종합정보통신망(ISDN)·전화비디오(VDT)·의료정보망·학술망서비스 등 다양한 정보통신 서비스도 개발·보급하고 있다.특히 최근에는 광케이블과 위성통신망을 통한국제통신망도 완벽하게 구축,북한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국가와 자동통화는 물론 각종 정보통신서비스의 국제교류도 가능케함으로써 정보화·세계화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통신의 뿌리는 우리나라의 근대 전기통신이 도입된 1885년 9월 한성전보총국 개설로 거슬러 올라간다.이어 1902년 3월 한성∼인천간 공중용 전화가 개통되고 같은해 6월 5명의 전화가입자로 출발한 것이 실질적인 시초라고 볼 수 있다.따라서 한국통신의 역사는 우리나라 근대통신 1백년사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한국통신은 이제 전기통신 1백년사에 큰 획을 긋고 시장개방과 치열한 생존경쟁이 기다리는 21세기를 향해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정보사회 실현을 위해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확보와 통신망의 고도화·지능화에 초점을 맞춰 2천년대초에는 선진 7개국(G7)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여기에는 21세기 첨단 통신망인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B-ISDN)구축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들어있다.B-ISDN이 완성되면 현재 서비스별로 구축된 전화망·데이터망·CATV망·텔렉스망 등을 단일망으로 통합,기존 공중통신서비스는 물론 고속데이터전송·고품위 영상서비스까지 수용하게 된다. 또한 전송속도가 기가(Gbps)급이기 때문에 현재의 ISDN(1.5Mbps)보다 1백배 이상,기존 전화선(2천4백∼1만4천bps)보다 1천∼1만배 이상의 정보전달 능력을 갖추게 된다.이에따라 일부에서 초기단계로 시범중인 영상회의·재택근무·홈쇼핑·원격의료·원격교육 등 첨단서비스를 10년후에는 보편화시킨다는 계획이다. 한국통신은 다가오는 우주·위성시대에도 대비,국제해사위성기구(인마르새트)가 추진중인 중궤도(지상 1만3천5백㎞상공)위성이동통신 계획인 「프로젝트­21」에 참여함으로써 위성통신서비스를 강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이와 함께 내년 6월 국내 최초의 상용위성인 무궁화호를 발사,지상의 위성지구국 및 초소형지구국(VSAT)을 통해 데이터통신·사내TV방송·경마중계 등 비디오통신서비스와 내년 3월부터 예정된 CATV 프로그램 전송망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또한 무궁화호 발사를 계기로 위성제작 및 운용기술을확보,2010년에는 순수 우리기술로 독자위성을 띄운다는 계획이다. 한국통신은 유선망에 의한 기본통신서비스를 탈피하고 차세대 무선이동통신으로 불리는 개인휴대통신(PCS)등 무선분야로도 사업을 확대,오는 97년부터 상용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명실공히 유·무선 종합통신사업자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이밖에 착신자요금부담서비스(080)와 부재중안내서비스,지정시간 통보서비스 등 각종 전화 부가서비스를 확대하고 전화생활정보서비스(700)·기업단위 통신서비스 등 신규서비스를 적극 개발,통신 이용자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국통신은 이같은 재도약을 위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점차 확대,2001년에는 연구개발비를 전체 매출액의 10% 수준으로 책정하고 연구인력도 현재 1천1백여명에서 2001년까지 1만명으로 대폭 증원할 방침이다.
  • 등소평 내일 90살/「포스트 등」 권력다툼 멀잖다

    ◎부도옹 심신 급격쇠락 조짐속 전기·문선 잇단 출간/강택민­이붕에 교석 대권 도전/실각 조자양도 권토중래 꿈꿔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등소평이 22일로 90세를 맞는다. 요즘도 심심하면 등의 위독설,사망임박설등이 끈질기게 나돌고 있으나 비교적 건강하게 90수를 맞이하고 있다.그의 가족들에 따르면 이따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일은 있으나 앞으로 몇년간 더 버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등이 큰병을 앓고 있다는 징후는 없으나 최근 2∼3년 동안 급격히 노쇠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1년에 한두차례씩 TV에 비쳐지는 그의 모습은 해가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어서 이제는 양쪽 어깨의 부축을 받아야 발걸음을 옮기는가 하면 손이 떨리는 수전증이 점점 심해지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다.얼굴 근육도 굳어지고 있어서 일부 서방의사들은 파킨슨씨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최근 북경에는 등의 건강과 관련,새로운 소문이 나돌고 있다.그것은 등의 몸에서 탁한 피를 뽑아낸 다음 젊고 건강한 사람의 피로 바꾸는 환혈작업이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등은 의사들의 권유에 따라 지난해부터 즐기던 수영마저 포기한채 바깥나들이를 자제하고 있으나 아침산책은 거르는 일이 거의 없고 특히 트럼프놀이의 일종인 브리지 게임은 1주일에 2∼3차례씩 즐긴다.최근에는 월드컵축구게임을 열심히 시청했다.단지 밤샘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사들의 경고를 받아들여 가족들이 새벽에 녹화해둔 것을 낮에 틀어 보곤 했다. 등은 90세를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정리하기라도 하듯 자신에 관한 많은 저작을 출간하는데 동의했다.그래서 지난해 8월에는 딸 등용이 「나의 부친 등소평」을 출판해 중국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최근에는 인민해방군출판사가 「등소평의 역정­한 위인과 그의 1세기」를 내놓았다.특히 당에서 출간한 「등소평문선 제3권」은 전국적으로 수천만부가 뿌려져 각종 학습과 보고회등을 수없이 가졌으며 신문과 방송에선 신물이 나도록 이 책을 선전해왔다. 이런 가운데 등에 대한 우상화움직임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한 예로 개혁개방의 창구격인 심수시에서는 30t의 구리를 사용해 등동상을 제작하고 있다.이 동상은 91년 1월에 있었던 등의 이른바 「남순강화」3주년인 내년초에 제막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쨌든 등의 운명의 시각이 가까워짐에 따라 새롭게 관심을 끄는 분야로는 강택민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등사후에도 현체제를 유지해갈 수 있을 정도로 권력기반을 쌓았느냐는 점이다. 일부 관측통들은 『강은 새로운 중국을 이끌어갈만한 세력과 정보,스태미나를 지니지 못해 등의 예스맨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는가 하면 모택동사후 화국봉처럼 불과 2∼3년만에 권력을 빼앗길 것이라고 점치기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일부에서는 강이 최근 2∼3년간 적극적으로 권력기반을 구축해온 결과 이제는 등없이도 「홀로서기」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그 예로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군부내 양상곤,양백빙형제의 3백명에 달하는 군장성그룹인 「양가장」을 해체하는 데 성공했고 군요직에 자신의 심복들을 두루 심는데 성공한 점등을 들고 있다. 이같이 강택민체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등사후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는 현재 당서열 3위인 교석과 6·4천안문사태로 실각한 전당총서기 조자양이 꼽히고 있다. 특히 조자양의 경우 강택민­이붕체제의 가장 무서운 복병으로 간주되고 있다.등이 76년 4인방 때문에 실각한 후 군의 보호를 받으며 연명할 수 있었듯이 조도 현재 군부의 보호우산 속에서 소나기를 피하고 있다는 관측마저 나돌고 있다.
  • 고르비 창당발표/이타르타스통신 회견

    【모스크바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63)은 18일 러시아의 보혁으로 날카롭게 양극화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에 대한 선택적 대안으로 가칭 「민주대안」이라는 새로운 정치운동단체를 창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를 잠시 권좌에서 축출했던 1991년8월의 불발쿠데타 3주년 전야에 이타르 타스 통신과 회견한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은 민주대안이 강력한 정치단체로,현정권에 대한 선택적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 정강이나 역할 또는 발족시기 등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 농협 창립33돌/농업은행·구농협 통합61년 발족

    ◎조합원수 2백만명… 제2도약 분주 농협이 오는 15일로 창립 33주년을 맞는다. 경제사업과 은행업무인 신용사업을 함께 맡는 지금의 종합 농협이 발족한 것은 지난 61년.중농정책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5·16혁명정부가 「협동조합을 재편성해 농촌경제를 향상시킨다」고 천명함으로써 농업은행과 구농협으로 2원화돼 있던 조직이 농협으로 일원화됐다. 농업은행법에 따라 지난 58년4월1일 발족한 농업은행(신용사업전담)과 농협법에 의해 그해 10월20일 발족한 구농협(경제사업전담)이 모체인 셈이다. 발족당시의 농협은 「이동조합­군조합­중앙회」라는 3단계 조직으로 출발했다.이같은 체계는 군조합이 폐지되고 지금처럼 「읍면단위농협­중앙회」라는 2단계 조직으로 바뀐 지난 81년1월까지 20년 가까이 지속됐다. 출발당시 농협은 회원조합 2만1천1백49개에 조합원이 2백24만명이었다.출자금은 2억8천만원.지난 6월말에는 회원조합은 1천4백3개로 크게 줄었고 조합원 수는 2백만6천명으로 23만4천명이 감소했다.출자금은 3천1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당시 조합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은 지금처럼 읍·면단위가 아닌 이나 동마다 조합을 뒀기 때문이다.지난 69년부터 5년간 추진된 「단위조합 합병사업」에 의해 회원조합의 수가 73년말 1천5백49개로 대폭 줄어 지금과 비슷해지고 이·동조합이라는 명칭도 73년3월 농협법이 개정되면서 지금의 단위조합으로 바뀌었다. 농협이 맡아오던 축산업무는 지난 81년 축산협동조합이 발족하며 축협으로 넘어갔다. 이같은 변천을 겪으며 성장한 농협은 지난 89년부터 중앙회장을 조합원들이 직선으로 뽑는 체제로 탈바꿈,현재 제2기중앙회장이 이끌고 있다.
  • “농수축협 신용사업 분리 반대”/원 농협중앙회장

    ◎자금달려 유통·가공 위축/독립사업부제 운영뒤 검토돼야 원철희 농협 중앙회장은 농·수·축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통합해 별도의 은행을 설립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원회장은 농협 창립 33주년(8월 15일)을 앞둔 12일 기자들과 만나 『신용사업을 경제사업과 분리할 경우 자금 부족으로 유통 및 가공 등의 경제사업이 지금보다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하고 『따라서 정부가 별도의 은행을 설립하는 것을 전제로 준비작업을 맡을 기획단을 설치키로 한 것은 성급한 감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생산자 단체 별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 독립사업부제로 운영해 본 뒤 농민에게 이익이 되는 지 여부를 충분히 검토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원회장은 『1천4백여 조합장들의 의견을 토대로 농협의 입장을 정리,정부와 국회에 낼 계획』이라며 『중앙회장 및 단위조합장에 경영권을 주지 않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농협은 오는 96년까지 「신농협7발전 3개년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서울 양재동과 창동 등에 5개소의 종합 물류센터를 세우는 것을 비롯,공판장과 직판장·슈퍼마켓·미곡종합 처리장 등의 시설도 대폭 늘린다.유통 및 가공시설의 확충으로 오는 97년 농협이 취급하는 농산물의 비중을 도매의 경우 지금의 9∼11%에서 30∼40%로,산매는 3∼4%에서 17∼25%로 각각 끌어 올린다. 회원조합을 경제권 및 생활권 중심으로 합병,현재 1천4백4개인 조합을 1천3백개로 줄인다.오는 2000년까지는 조합의 수를 5백개로 줄일 계획이다.
  • 개발경제시대 주도… 환경변화속 새위장 정립 모색/기획원창립 33돌

    경제기획원이 22일 개원 33주년을 맞았다. 지난 61년 5·16 직후 종합적인 경제계획의 수립과 시행을 위해 발족한 기획원은 개발경제 시대를 주도하며 수많은 엘리트 관료들을 배출했다. 63년 기획원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고,그 뒤 장기영·김학렬 부총리같은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 경제총수 자리에 앉으면서 기획원은 경제부처 맏형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동시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국가주도형 경제를 운영하며 오늘의 우리 경제를 일으키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60,70년 대의 고도성장 시절에는 국가가 앞에 나서는 정책이 효과적이었으나 경제규모가 커지고 대내외적 경제환경이 급변하는 국제화·개방화 시대를 맞아 종래와 같은 불도저식의 통제·계획경제의 한계가 드러났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획원의 무용론과 함께 통·폐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 직후에도 조직개편 대상으로 거론됐다.지난 연말 취임한 정재석부총리가 『기획원이 경제부처 위에 군림하지 말고 향도자(케어 테이커)가 돼야 한다』며 과감한 조직축소와 기구개편을 단행한 것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자구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 기획원은 이날 간단한 기념식을 갖고 장기 근속자를 표창한 뒤 과별로 수박과 인절미를 돌리며 자축연을 가질 예정이다.
  • “중 공산당 15년내 몰락”/보수파 등력군

    ◎“자본주의 요소 유입으로”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은 자본주의 요소들을 대거 도입함에 따라 당과 정부의 권위가 흔들려 빠르면 7년내 늦어도 15년내로 해체돼 몰락할 것이라고 「지하총서기」「소등소평」으로 불리는 중국 보수파의 최고이론가 등력군이 북경에서 주장해 커다란 파란을 일으켰다고 홍콩의 중국전문 월간지 동향 최신호가 15일 보도했다. 이날부터 배포되기 시작한 동향 7월호는 원로이론가 등력군이 당중앙판공청이 개최를 승인하여 6월21일 개최된 「건당 73주년 좌담회」에서 약50명의 당원로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공산당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중국공산당정주향망당)」는 미리 준비한 연설을 통해 몰락할 수밖에 없는 12가지의 근거까지 상세히 제시해 충격을 주었다고 말했다.
  • “남북이산가족 재회” 서명운동 전세계 확산

    ◎130국서 1,200만명 돌파/노벨상수상자·국가원수 동참/재회추진위/“8우러 1천5백만명 넘을듯”/“이제 소원 푸나” 실향민 설레어 이산가족문제가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1천만 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위원장 조영식)가 국제적으로 벌여온 서명운동의 참여자가 1백30개국 1천2백만명을 넘어서 실향민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있다. 특히 남북 이산가족 재회를 지지한 서명자중에는 이미 지난해 2월 서명한 김영삼대통령을 비롯 슐레이만 데미렐 터키 대통령,곤츠 헝가리 대통령,클레리데스 남키프러스 대통령 등 외국의 현직 대통령 3명을 비롯,코스타리카 전대통령,폴란드와 덴마크의 국무총리,대만의 학백촌 전행정원장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주교등 노벨상 수상자 40명,미국 노스파크대 데이빗 호너 총장등 외국 유명대학 총장 25명이 서명했고 지난해 유엔 총회의장을 맡았던 스토얀 D 가네브씨를 비롯해 노만 어거스틴 미국적십자사 총재등 국제적인 저명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범세계적인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서명을 한 유엔 47차 총회가네프 총장은 추진위에 보낸 메시지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가능한 빨리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런 본인의 긍정적인 생각은 냉전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찾아온 세계의 새로운 현실과 유엔의 새로운 역할에 기인한 것』이라며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추진위는 다음달 15일까지 1천5백만명 서명 목표를 무사히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8월말쯤 서명자 명부를 유엔본부및 국제적십자연맹·세계인권연맹등 국제기구에 보내 우리나라의 이산가족문제를 국제 여론화시킬 예정이다. 이운동은 6·25 43주년을 맞아 지난해 실향민 대표와 각계인사 1천2백여명이 모여 「서명운동추진 중앙운동본부」를 만들면서 본격화됐다. 추진위측 관계자들은 당시 영어·독어·불어 등 8개 국어로 작성된 서명명부 인쇄및 서명운동에 필요한 경비마련을 위해 어려차례 1백만∼1천만원씩 찬조금을 내는 한편 함명이라도 더 서명을 받기위해 동창회·이웃은 물론,가족들에게도 서명을 부탁하는등 생이별의 아픔을 푸는데 적극적이었다. 추진위 고재성이사(62)의 경우 두달에 한번씩 동창회 모임에서 동창생들에게 서명용지를 돌리며 서명을 받았는가 하면 자식들에게도 서명을 받아와 달라고 부탁까지해 1천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내는 열성을 보였다. 서명운동에 나선지 1년만에 이처럼 많은 서명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로써 남북고향방문단 교환계획이 북한측의 트집으로 2차례나 물거품이 되면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측에 호소하려는 실향민들의 염원이 국내외적인 설득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추진위원회 조동영사무총장은 『남북관계가 호전되는 시점에서 북측에서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산가족의 재회에 적극 협조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에서 반드시 거론하겠다고 밝힌만큼 북한측의 인도주의적이고 성의있는 화답으로 1천만 이산가족의 한결같은 염원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반드시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중국공산당,군 장악”/강택민,창당 73돌 기념식 참석

    【북경 AFP 연합】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은 1일 인민해방군 고위장교들이 참석한 중국공산당 창당 73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 군대는 공산당의 완전한 통제하에 놓여있다』고 강조했다. 강주석의 이날 연설은 관영 인민일보및 주요 일간지의 머리기사로 자세히 실렸는데 강주석이 중국군 통제에 대해 발언한 것은 3주만에 2번째이다. 군총사령관및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겸하고 있는 강주석은 또 『인민해방군 내의 공산당조직이 매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함께 『새로운 시대에는 중국식 사회주의및 군양성에 관한 등소평 지도자의 이론에 대한 연구에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고 밝혔다. 한편 강주석이 『새로운 시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분석가들은 몇몇 공산당지도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등사후 체제」가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 안기부/「양지」 향한 변신 “큰걸음”

    ◎33돌 맞아 공개기념행사 등 새모습/문민시대 맞춰 대공업무에 전념/국익정보 민간과 공유약속 실천 국가안전기획부가 10일로 창설 33주년을 맞았다.안기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기념식및 김덕부장의 기념사를 공개,새정부 출범후 달라진 모습을 국민앞에 선보였다. 김부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북한의 핵개발이라는 심각한 사태에 직면한 현시점에서 최대의 국가적 당면과제는 북한의 오판에 의한 돌발사태 발생의 가능성』이라고 지적,이에 대한 완벽한 대비태세를 갖춰줄 것을 부원들에게 지시했다. 김부장은 이어 21세기를 맞아 안기부가 국제경쟁력있는 선진정보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문화·효율화·과학화·국제화등 4가지 운영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속의 정보기관」으로서 거듭날 것을 당부했다. 61년 6월10일 중앙정보부로 창설된 안기부는 81년 1월1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됐으며 지난해 문민정부 출범을 계기로 정치관여에서 벗어나 법률상의 대북·대공 정보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개혁작업을 추진해왔다. 비슷하거나 중복되는 기능은 통·폐합하고 장기보직간부 70%를 교체함으로써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지난해 개정된 안기부법에 따라 정보조정협의회와 보안감사제도등이 폐지되고 수사권이 대폭 축소됐으며 국회 정보위원회로부터 예산 심의를 받도록 돼 예산운영및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의혹을 떨쳐버릴수 있게 됐다. 안기부는 나아가 국익관련 정보를 민간부문과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성실히 실천해왔다.국제환경협약집과 해외산업경제정보지등을 관련기관에 배포하고 북한정보와 이산가족 관련자료는 데이콤등에 제공하고 있다.언론인과 경제인 뿐만 아니라 순수민간단체에도 북한핵문제와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한 설명회를 여는등 정보공조체제를 강화했다.정보기관이라는 특성상 양지에서 활동할 수는 없지만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여행자의 직접신원조사 대상도 대공사범으로 제한하고 공직자 신원조사 대상을 3만2천여명에서 3천8백명으로 크게 줄였다.「공보관실」을 설치하고 국제범죄정보센터와 상담전화를 운영하며국제범죄홍보포스터를 처음으로 현상공모했다. 오는 98년까지는 국제화·개방화에 대응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인력운영체제를 개선하는 한편 2003년까지 조기경보체제를 독자적으로 운영한다는 마스터플랜도 세워놓고 있다.인력은 특정분야의 전문가로 컴퓨터와 외국어 1∼2개는 기본인 정보분석력이 뛰어난 직원들로 채워나가겠다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2004년부터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정보능력을 확보해 선진정보기관들과 어깨를 겨루게 된다.
  • 불 미테랑 집권 13년… 향후 거취 관심

    ◎이례적 TV대담… 대선 앞두고 여론 저울질/EU창설 기여·외교력바탕 국익제고 평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10일 취임 13주년을 맞아 TV방송과 대담을 가졌다. 취임기념일이면 파리시내 팡테옹에 있는 프랑스 좌파의 시조인 장 조레스의 묘역을 찾아 사회당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바치는 정도가 고작이었기 때문에 이날 방송대담은 이례적인 것이다. 미테랑대통령은 최근 작은 파문을 일으킨 핵실험금지 발언을 하면서 후임자도 이 원칙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말했다.현재로서는 내년 대통령선거에 나설 뜻이 없음을 내비추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93년 3월 좌파가 대패한 총선결과가 미테랑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표출된 것으로 분석된 만큼 그의 3선 출마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통령선거는 5월중순에 있다.정치 일정상 취임14주년 기념 대담이나 기자회견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이번에 대담을 이례적으로 가진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미테랑은 민주국가 지도자치고는 드물게 장기 집권을 누리고 있다.숱하게 열린서방선진 7개국 정상회담에서 딴 우방국 정상은 번번이 바뀌어도 그는 줄곧 좌장의 자리에 있었다.국제정치와 외교의 「거목」인 셈이다. 집권 13년동안 그는 이런 외교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위신과 국익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대표적인 예가 우루과이 라운드의 농업분야등 협상에서 프랑스의 이익을 실속있게 지킨 것이다. 그는 유럽통합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고 실제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미테랑대통령은 1차 사회당 단독집권기에 기업의 경쟁력강화 정책으로 대미수출을 크게 늘렸고 앙드레 말로를 문화장관에 앉혀 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뤘다.이 시기에 「프랑스식 사회주의 구현」을 내세웠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혼합형태 정책을 펴 좌파의 이미지는 퇴색했다. 또 사형제도의 폐지와 이민자의 적극적인 수용은 인권과 생산력을 신장시킨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에 치안불안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86년 우파 각료들에 둘러싸이는 동거정부를 감수해야 했고 그뒤 88년 54%의 국민 지지로 대통령에 재선돼 동거정부를 종식시켰으나 지난해 총선에서 좌파가 참패함으로써 또다시 동거정부를 구성해야만 했다. 이제 미테랑의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데다 벌써 대통령후보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어 우파내각과의 불협화음이 약간씩 감지되고 있다.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마찰이 심해질 것이 예상된다. 1년후 프랑스는 좌파체제를 계속 수용할지,우파로 갈아치울지 「미테랑 이후」를 결정해야 한다.
  • 양기탁선생/대한매일신보 창간… 항일의식 고취(이달의 독립운동가)

    ◎신민회 결성… 만주서 독립군 양성 주도/의용군 국내에 파견,일제기관 등 습격 양기탁선생은 국운이 꺼져가던 대한제국말기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항일의식과 애국계몽의식을 고취한 언론인이자 신민회등 비밀결사를 통해 무장항일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이다. 1871년 4월2일 출생한 선생은 1938년 4월19일에 운명,이달로서 서거 56주기와 탄신 123주년을 맞게 됐다. 평양 출신인 선생은 소년 시절 영어를 배워 1895년 미국인 게일박사의 한영자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다.사전인쇄를 하러 일본으로 건너간 길에 근대화된 일본을 보고 감명받은 선생은 귀국후 개화파들이 모인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친러 수구파에 의해 해산되는 과정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고 나온 선생은 게일박사의 도움으로 도미,3년뒤인 1901년 귀국했다. 노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에는 대한제국 황실 외교담당부서인 궁내부 예식원 직원으로 임명돼 영어통역 일을 했다. 선생은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조선의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는 등 침략을 본격화하자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신문운영이 필요하다고 판단,고종으로부터 황실판공비인 내탕금을 지원받아 신문사 시설을 마련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일본헌병대의 출판물 검열을 피하기 위해 당시 영국 데일리 뉴스 임시특파원이던 영국인 배설(Earnest Bethell·1872∼1909)을 사장으로 1904년 창간됐다. 이 신문에는 박은식선생을 비롯,신채호·최익·장도빈등이 제작진으로 참여했다.외국인 명의로 발행돼던 이 신문은 일제 통감부의 검열을 피하면서 「일인입불가」를 출입문에 써붙였을 정도로 강한 반일감정을 나타냈다. 국한문혼용인 국내용 신문과 별도로 영문판을 발행한 이 신문은 통감부의 신문지법에 다른 신문들이 얽매여 의병활동을 폭도라고 표현할 당시 의병활동을 높이 평가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의 대변지역할을 수행,1만3천여부의 부수를 자랑했다. 일제는 눈엣가시 같은 이 신문을 폐간하기 위해 우선 사장인 배설을 영국영사재판소에 치안방해죄로 고소,중국 상해로 추방했다.배설은 형을 마친뒤 서울로 돌아와 옥고 후유증으로 숨졌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안창호선생을 비롯한 이동휘·이동령·노백린·이시영·김구선생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해외독립기지 건설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신민회본부는 대한매일신문안에 두었으며 지방지국은 연락망으로 활용됐다. 전국 8백여명의 애국세력이 집결한 신민회는 1909년 독립군 창건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선생의 집에서 전국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는 해외에 독립군기지를 세우고 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진입작전을 펼쳐 독립을 쟁취한다는 「독립전쟁 전략」을 채택했다. 선생은 이 계획에 따라 군관학교를 세울 적당한 장소물색을 위해 만주를 답사했으며 1910년 이동령등이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이처럼 신민회의 활동이 뚜렷해지자 일제는 1911년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을 꾸며 신민회 중앙간부 16명을 모두 체포,투옥시켰다. 이어 일제총독 암살사건(일명 105인 사건)을 날조해 신민회원 8백명을 전원 체포,선생은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4년만에 석방된 선생은 평남 강남군 쌍용면 신경리에 유배됐다. 선생은 다음해인 1906년 유배지를 탈출해 만주신흥무관학교와 광복회에서 활동중 다시 일제에 체포,국내로 압송돼 전남 거금도에서 2년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유배에서 풀려난 선생은 동양을 순방중인 미국의원단이 서울역에 도착하자 독립만세운동을 펼쳐 또 투옥됐다. 모친 사망으로 일시 방면된 틈을 타 만주로 도피한 선생은 무장항일단체인 의성단을 결성,봉천의 만철병원 습격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1924년에는 이청천·김동삼등과 함께 대한군정서·통의부등 만주내 무장항일단체를 통합,정의부를 결성하고 의용군을 국내에 파견해 일제기관을 공격하게 했다. 선생은 또 중국내 한국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도 추진,김규식선생등과 함께 1932년 한국대일전선 통일동맹을 구성했다. 1934년 임시정부 의정원 회의에서 국무위원으로 선임된 선생은 국무회의가 자신을 국무령으로 추대하자 이를 수락한뒤 한국독립당·대한독립단·의열단·조선혁명당·신한독립당등 여럿으로 갈라진 독립세력을 규합해 민족혁명당을 결성하는등 독립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선생은 1937년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미국과 중국내 독립세력의 재규합을 추진,남경에서 한국광복전선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선생은 이 과정에서 과로로 병을 얻어 1938년 68세를 일기로 숨졌다. 정부는 선생에게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옐친화합요구 무시/“구소부활” 집회/보수·공산계

    【모스크바 로이터 UPI 연합】 러시아의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은 17일 옛 소련의 재건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짐으로써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국민대화합요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섰다.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 6천여명은 이날 소연방 보존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3주년을 기해 모스크바 중심가의 볼쇼이극장에서 붉은 기를 흔들고 옛 소련국가를 부르며 집회를 가졌다. 민족주의 지도자이며 전날 극우·보수세력의 연합전선인 「러시아의 화합」의 결성에 참여한 세르게이 바부린은 이날 집회에서 옐친의 국민대화합 호소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바부린은 옐친의 제안은 국민화합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혹평하고 『그 제안은 국민들이 이 집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앞서 보수·공산계 정당들은 지난 16일 시장개혁의 철폐와 강력한 러시아의 부활을 표방하며 「러시아의 화합」을 결성했으며 같은날 알렉산드르 루츠코이전부통령은 CIS의 사멸을 예견하면서 새로운 형태의연방창설을 제안한 바 있다.루츠코이전부통령은 17일 「러시아의 화합」에 가담했다.
  • “구소공화국들 연방구성 하자”/루츠코이,국민투표 제안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알렉산데르 루츠코이 전러시아 부통령은 16일 구소련소속 공화국들이 뭉쳐 다시 연방을 구성하는 것만이 러시아가 살아남는 길이며 이 연방구성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러시아 강경 보수파로 보리스 옐친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루츠코이는 구소련 존속 여부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3주년을 맞은 이날 현재의 독립국가연합(CIS)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는 한 가족,한 국가,한 정부로 살아야 할 운명』이라며 『굳건한 의지,동포애,공존의 바람과 함께 국민투표로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루츠코이는 지난 91년의 소련 붕괴는 비참한 생활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며 평화,상호이해,끈기 등 비폭력적 방법으로 연방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는 96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는 루츠코이는 국민투표의 형식,연방 국가의 형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 한 회장 구속 배경싸고 설왕설래/농협회장 구속 주변 표정

    ◎“직선제 문제점” 선출방법 개선론 대두/재야농민단체,“개혁적 인물 발탁해야” 한호선 회장이 5일 구속됨으로써 농협이 술렁이고 있다.중앙회 직원들과 조합원들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오는 23일로 예정된 중앙회장 선거와 농협의 진로를 걱정하는 모습. 한회장의 독주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온 전국농어민총연맹과 한국농어민후계자중앙연합회 등 재야 농민단체들은 『지금까지 농민출신 조합장이 중앙회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거대한 조직의 관리능력을 감안할 때 개혁성이 강한 참신한 인물이 발탁돼야 한다』고 종전과 다른 주문. ○…한회장이 구속된 것은 개인의 문제도 있었지만 직선제라는 제도에 원천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한회장 이전에도 직선으로 당선된 수협 및 축협 중앙회장이 지난 90년과 93년에 각각 금품살포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초대 민선 회장들이 모두 구속된 사태를 개인적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는 시각.따라서 농어민단체장을 꼭 직선으로 뽑아야 하느냐는 회의론과 함께 선출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농협 주변에서는 한회장 구속의 배경을 놓고 논란이 분분.한 관계자는 『농협 회장은 2백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단체장』이라며 『특히 한회장은 직선에 의해 처음으로 뽑힌 사람인데 회장선거를 10여일 앞두고 어떻게 그렇게 처리할 수 있느냐』고 반문. 또 다른 농민단체 관계자는 『한회장의 재선여부는 어디까지나 조합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며 『검찰수사가 한회장의 출마포기를 강요하는 결과가 됐다』고 지적. ○…농림수산부는 이번 한회장 사태의 불똥이 농림수산부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며 김태수차관 주재로 간부회의를 여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 그러나 일부 직원들은 『한회장이 직선으로 선출된 뒤 신농정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데다 거대한 조직을 배경으로 독주하는 인상을 준 점에서 자업자득이 아니냐』는 반응.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 한회장이 재출마해 당선된다면 무려 10년이나 장기 집권하는 셈』이라며 『농협 조직의 일대 수술을 위해서도 한회장의 퇴진은 불가피했다』고강조. ○…한회장은 3개 도 지회장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은 지난 4일 정치권의 풍향을 알아보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하오 김양배 농림수산부장관실에 여러차례 전화를 한 끝에 물가장관회의차 총리실에 가 있던 김장관을 찾아가 총리 행정조정실장 방에서 만났다고. 이에 앞서 농림수산부 고위 당국자도 이날 상오 한회장과의 통화에서 『사퇴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측의 분위기를 전달하자 한회장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 흔쾌히 동의했다는 후문. ◎도마위에 오른 농협의 실상/“구매사업 뒷전” 금융에 치중/예수금 13조… 상호금융 합치면 35조/회원조합 1,404개 거느린 거대공룡 농민은 줄어들어도 농협은 커지고 있다. 올해 창립 33주년을 맞는 농협의 조직은 크게 중앙회와 회원조합으로 나뉜다.중앙회는 본부와 15개 시도지회,2개의 유통사업본부,1백55개의 시군지부,5백6개 지점,55개소의 사업소를 거느리고 있다. 한호선회장이 임명직 회장으로 취임한 지난 88년과 비교하면 시도지회는 2개,시군지부와지점·사업소 등은 2백23개가 늘었다.88년 1만3천6백65명이었던 중앙회의 임직원도 1만7천5백10명으로 30%(4천68명)가 늘었다. 회원조합은 단위조합 1천3백60개,과수나 화훼 등의 특수조합 44개 등 1천4백4개이다.단위조합의 통폐합으로 88년에 비해 1백1개가 줄었으나 단위조합의 직원 수는 4만9천2백명으로 1만3천6백여명이 늘었다. 사업도 다양하다.크게 경제사업과 신용사업,공제사업 등 세가지이다.신용사업(금융사업)의 규모는 시중은행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지난 연말 농협의 예수금은 13조1천여억원(잔액)으로 전체 시중은행 중 3위이다.단위조합의 상호금융은 수신고가 22조원으로 단연 1위이다. 보험의 일종인 공제사업도 지난해 20조원의 계약고를 올렸고 올해에는 26.4%가 증가한 25조7천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고유사업인 유통과 구매 등 경제사업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비중이 약하다.농산물 공동 판매사업의 취급고는 지난해 5조2천3백62억원으로 90년보다 74%가 늘었으나 시장점유율은 30% 정도에 머물고 있다. 농·수·축협을 하나로합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중앙회장 선출 방식을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직선제 이후 정부의 말발이 안먹혀 결과적으로 농협이 비대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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