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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비의 전화」 24시간 상담체제로

    ◎조계사내 개설… 3돌맞아 거듭나기 한창/부산·대구지부 설립,사단법인화도 추진 삶의 고뇌와 번민에 가득찬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음성이 되어 고통을 씻어주는 「자비의 전화」(총재 송월주스님)가 개통3주년을 맞았다.지난 90년 3월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기위한 목적으로 조계사내 정화회관 한귀퉁이에 개설되었던 자비의 전화는 3주년을 계기로 그동안 12시간씩 운영해오던 상담시간을 24시간으로 늘리고 부산·대구지부를 설립하여 사단법인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3년동안 상담에 응한 건수는 모두 6천3백32건.연평균 45%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피상담자들의 연령층은 20∼30대가 50%를 넘어 가장 많은 분포를 차지했다.상담내용은 가정문제 부부문제 종교문제 이성문제 청소년문제 인생문제 사회문제 정신건강문제 신체건강 정보제공등 다양하다.특히 부부문제 이성문제 청소년문제등의 상담이 높은 증가율을 보여 사회상의 단면을 나타냈다. 전체 상담내용중 가장 많은것은 가정문제.그중 자녀문제가 32.8%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다음은 고부간의 갈등,부모와의 갈등,경제곤란을 기록했다.부부문제에 있어서는 배우자의 외도가 30.4%로 가장 높고 다음은 가치관차이,성생활불만,이혼상담등 순으로 나타났다.특히 배우자의 외도와 이혼상담이 급증,파괴 위험에 처한 가정들이 늘고 있음을 보였다. 청소년들이 상담해오는 문제중에는 성문제가 62.2%로 가장 높았고 그밖에 이성친구·종교관·진로및 학업·신체적 고민등이 5∼7%를 차지했다.특히 성문제는 90년 42.1%,91년 46.7%에 이어 높은 증가를 보여 청소년에 대한 성에 관한 바른 교육과 적극적 상담이 절실함을 나타냈다. 매일 상오9시부터 하오9시까지 12시간씩 상담에 임하는 자비의 전화 상담원은 6주간의 카운슬러대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원봉사자들.현재 5기까지의 교육을 통해 2백여명이 배출됐다.자비의 전화 운영은 월5천∼1만원을 내는 4백여 후원회원들의 도움으로 이뤄지고 있다.상담전화 737­7374,(팩스)737­8802
  • 엑스포/자연보호/레이디/신용카드 “전국시대”(업계는 지금…)

    ◎“수익일부 기금화” 공익성 늘어/의사·교육자 카드도 첫선… 대출·여행 서비스 외상구매와 현금서비스에 치우쳐 한때 과소비의 주범으로 몰렸던 신용카드.그러나 과소비가 진정되면서 서비스가 특화돼가며 발행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자연보호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그린카드나 장애아동 돕기카드등 공익성카드가 선보이고 여성카드,예술인카드,의사카드,교육자카드와 같이 특정계층을 겨냥한 카드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유통업체와의 제휴를 통한 할인판매등 다양한 서비스를 무기로 하는 업무제휴카드가 다투어 쏟아지고 있다.공익성을 지닌 카드는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할부구매·예약 알선 국민신용카드는 40만명으로 추산되는 유치원 및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자카드를 이달부터 발급하고 있다.회원들이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카드사가 얻는 수익금의 일부를 장학재단에 기부,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돕도록 하는 카드이다.회원에게 1천만원까지 가계자금을 대출해준다.또 국민은행을 통해 5백만원의 카드론(가계자금 자동대출)도 해주고 방학 중 해외의 문화유적지 탐방프로그램을 특별 비용으로 알선해 준다. 국민카드의 의사카드도 수익금 일부를 심장병어린이 돕기에 지원하고 있다.회원에게 5백만원 한도의 카드론과 개업시 의료기기 구입용으로 3천만원의 수요자금융 혜택을 준다.렌터카 할인과 국내외 유명 호텔의 할인 및 예약 서비스도 제공한다. 국민카드는 대하패션 금강 진도 바로크 프라자호텔 가든호텔 철도청 대한항공 동서증권 및 한신증권 동아생명 체신부등 33개 업체 및 기관과도 업무제휴를 통해 할부구매,예약등 다양한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럭키금성그룹의 엘지카드가 91년 9월부터 발매하는 그린카드도 대표적인 공익카드의 하나로 카드구매 금액의 0.1%를 자연보호기금으로 적립한다.지난 1월말 현재 가입자가 17만명을 넘었고 조성기금이 7천여만원에 이른다.이미 자연분해되는 비닐백 40만개를 10개 국립공원관리소에 기증하는등 국립공원 정화와 멸종위기의 동식물 및 자연보호 활동을 펴고 있다. ○회원정보지도발행 엘지는 또 20∼30대 여성을 겨냥,의류업체,화장품업체,미용실을 연계해 10∼30%의 상시할인,3개월 무이자할부의 혜택을 주는 레이디카드를 지난해 4월부터 발매하고 있다.결혼 적령기의 여성을 위해 서울 역삼동에 엘지웨딩플라자를 마련,가구 가전 침구 주방용품등 혼수용품을 할인판매하고 신혼여행 피로연 이사시의 할인예약,회원정보지 발행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페페,마르조,CC클럽등의 브랜드로 알려진 (주)대현은 지난 1월 패션클럽카드를 개발,전국 직영점과 대리점의 상설할인매장에서 의류구입시 일시불의 경우 5% 할인을,할부구매시 3∼6개월의 무이자 혜택을 주고 있다. 이밖에 오페라 판소리 도예전 서예전등 문화행사의 할인예약 및 미술품을 임대해 주는 예술인카드도 개발됐다.이카드는 이용금액의 0.1%를 문화예술발전기금이나 진흥사업에 지원한다. 지난 2월 제일모직의 「하티스트 클럽카드」라는 제휴카드를 선보인 삼성위너스카드도 의류업체인 유림과 의류유통업체인 메세지 및 안국화재와 각각 업무제휴를 맺고 「유림패밀리카드」「메세지패션클럽카드」「안국화재 위너스카드」를 지난 15일부터 발급하고 있다. 유림패밀리카드와 메세지패션클럽카드의 회원은 메르꼴레디 끄레아또레등 유림과 메세지의 의류를 구입할 때 전국적으로 대현과 똑같은 할인 및 할부 혜택을 받는다.안국화재위너스카드는 차량사고시 보험금 청구서류등 절차를 생략해주며 현장에서의 지급액도 다른 경우의 2배인 2백만원을 준다. 위너스카드는 또 지난달 엑스포 꿈돌이카드를 발급,카드 이용금액의 일정률을 적립해 과학기자재의 구입기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위너스카드는 91년 9월 영업 3주년 기념으로 장애아동돕기카드를 발급,조성된 기금 2천만원을 한국어린이재단에 기부했으며,의사 박사 변호사 공인회계사를 회원으로 한 멤버스클럽카드도 발행해 관련단체의 공익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 “첫 지방순방” 김 대통령의 광주행보

    ◎“「5·18」·지역감정 책임지고 해결”/“전대통령들과 전혀다른 입장”/대불공단 지원 특단대책 지시/지방청와대 활용 등 단문단답식 대화 김영삼대통령은 18일 취임후 첫 지방순방에 나서 광주직할시와 전남도를 방문,지역갈등 해소를 위해 대통령으로서 책임지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전용기편으로 광주비행장에 도착한 직후 망월동묘역으로 직행,참배할 예정이었으나 대학생들의 묘역점거로 이를 취소했고 광주시정보고에 이어 가질 계획이었던 5·18관련단체대표들과의 간담회도 참석예정자 일부가 불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역시 취소했다. ○“「선물」준비 안했다” 청와대는 『김대통령이 이번 광주·전남지역 방문에 대비해 특별한 「선물」은 준비하지 않았고 현지의 소리를 듣겠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하고 『김대통령은 그러나 전직대통령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인 만큼 5·18등과 관련한 지역화합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시청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기직전이지역 주요인사 30여명을 접견,지방순방 일정에서 최초로 광주를 택한 의미를 설명. 김대통령은 『광주사태 발발 이틀 뒤인 81년5월20일 처음기자회견을 갖고 유혈사태에 대해 비판하면서 계엄령 해제,구속자석방을 요구했다』면서 『그것이 국내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외신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돼 비로소 광주유혈사태가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회고. ○“나도 23일간 단식” 김대통령은 『홍남순변호사등 여러분들도 당시 고난을 겪었지만 나도 그 회견으로 3주년을 맞아 여러분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뜻에서 23일간 단식을 했었다』고 피력. 김대통령은 망월동 묘역 참배일정이 취소된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그러나 그것이 광주시민,전남도민 모두의 생각은 아니라고 믿으며 여러분에게 신뢰를 보낸다』고 첨언. 김대통령은 『나는 과거 민주화를 위해 싸웠지만 이제는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구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혼신의 힘을 다 기울일 것』이라고 다짐. 김대통령은 『이제는 경제를 살리고 법존중,기강확립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법을 안지키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민주주의가 방종은 아니다』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호남지역이 어떤 형태로든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과거를 잊을 수는 없지만 미래를 향해 나가는 모두가 되자』고 강조. ○쌀 예약판매 관심 ○…김영삼대통령은 이어 전남도청을 방문,업무보고를 받기에 앞서 민자당 전남지구당위원장등 주요인사들을 접견. 김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인사의 지역안배를 염두에 둔 듯 『모든 분들에게 혜택이 다 안돌아가 미안하다』면서 『앞으로 기회는 늘 있는 것이므로 나도 계속 연구검토하겠다』고 약속. 김대통령은 이균범지사의 업무보고가 끝난뒤 이지사에게 『일반인에게 공개하기로 한 지방청와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작년에 시작한 쌀 예약판매의 예약물량인가』등 단문단답식으로 질문. 김대통령은 이어 대불공단을 방문,입주자들로부터 공업용수및 항만시설부족 등에 대한 대책마련을 요청받고 『도지사와 관계장관들은 공업용수와 항만,인입철도와 도로등 지원시설이 조속히완비되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
  • 럭금,경영이념 선포/3주년 기념식 가져

    럭키금성그룹은 19일 서울 여의도 그룹본사에서 사장단및 임직원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영이념 선포 3주년 기념식을 갖고 경영이념 실천 우수자 43명을 표창했다.구자경회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종중의 경영이란 두가지 경영이념은 능력에 따른 인사등으로 사원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키워 고객의 요구를 적극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부정부패 관련자 누구든 용납못해”/김 차기대통령

    민자당은 9일 서울가락동 중앙정치교육원에서 당총재인 김영삼차기대통령을 비롯,김종필대표와 당직자 당원등 1천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3주년기념식을 갖고 새시대의 개혁과 변화를 주도하는 정당으로 거듭 날 것을 다짐했다. 김차기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우리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것이 바로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전제,『부정부패관련자는 그 누구든 절대로 용납하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차기대통령은 『권위주의는 사라지고 있지만 있어야 할 권위마저 실종되고 있으며 최근 대학입시부정에서 보듯 부정부패는 이제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며 『정치·경제·사회 모든 부문에서 변화와 개혁을 통해 활력을 되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 신한국 이끌 개혁정당 변신/민자,오늘 창당3돌… 족적과 과제

    ◎합당 후유증 극복,정권재창출 큰 성과/문민시대 걸맞는 당내민주화 따라야 민자당이 9일로 창당3주년을 맞는다. 민자당은 지난 대선에서 정권창출에 성공,집권당으로서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잡았다. 3당합당후 정권재창출까지를 민자당의 제1기로 본다면 향후 문민정부하에서 정국운영을 주도할 기간은 제2기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창당3주년을 맞은 민자당은 새로운 문민시대에 걸맞는 창조적 정당의 모습과 개혁정당으로서의 체질개선에 골몰하고 있다. 국정운영을 책임지고 의회정치의 주도권을 가진 민자당이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 것인가.이 시점에서 민자당의 행로는 국가발전과 정치발전의 성패를 가늠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민자당이 국가번영과 정치발전의 책임을 진 정당으로서 국민의 지지를 얻기위해서는 먼저 과거 합당3년간이 남겨준 교훈을 어떻게 소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또 체질개선을 전제로 새정부가 내세우는 개혁과 신한국 건설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고 의회정치를 활성화하느냐에 달려있다. 3년전 이날,민자당의 창당주역인 노태우대통령·김영삼차기대통령·김종필대표는 3당합당은 국가와 정치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구국의 결단」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3년간의 민자당은 정권창출에는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구국의 결단」을 실행에 옮긴 정당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성급하다. 물론 현재의 민자당은 3년 가까이 계속되어온 계파간의 갈등을 극복했고 집권당 사상 최초의 대통령후보 경선을 치러냈으며 정당의 최대목표인 정권창출에 성공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같은 성공적인 결과가 민자당창당 시점부터 예비된 정치발전 과정의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이 아직도 민자당을 안정되고 성숙된 정당으로 믿기에는 부족한 점이다. 계파간의 갈등은 계파간의 구국이념동참이라는 명분으로 해소된 것이 아니고 대권후보가 결정됨으로써 비로소 수그러졌다.대권후보경선 결정도 정당내 합의라기보다는 분당을 막기위한 고육지책으로 선택되어진 결과에 가깝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민자당은 안정과반수에서 1석이 모라자는 의석을 얻었으나 현재까지 탈당의원수를 웃도는 입당의원을 받아들이는 인위적인 정치활동으로 과반수의석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말 대선에서도 정당대결로 국민들의 평가를 받았다기 보다는 인물대결에서 정당지지도보다 높은 득표를 했다는 평가도 있다. 따라서 창당3년을 맞은 민자당은 이제 외부적충격이나 내부적필요에 의해 정당의 진로를 결정할 단계는 지났으며 진정 구국과 개혁의 스케줄에 따라 비전있고 예측가능한 정국운영에 나서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총재나 계파이해중심으로 움직였던 체질에서 과감히 탈피,당내합의가 우선되는 당내민주화가 제2기의 과제로 꼽히고 있다.향후 전개될 차차기대권경쟁을 염두도 둘때 민자당은 지금부터 당내 민주의사결정 전례가 축적되어야 한다.김영삼총재의 대통령당선이후 당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당무회의가 3차례나 열렸지만 아직 당무개선문제나 여야관계등 정당의 최우선업무에 대한 논의나 건의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민자당이 아직도 총재1인체제의 획일적인 당운영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지않는가 하는 점을시사한다. 또 개혁주도세력의 향배나 인사전망만이 당내관심사이지 당무개선문제등 현안에는 누구나 뒷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아울러 총리·장관·각계전문가 출신들이 포진하고있는 원내그룹의 소외감도 문제점이라는 지적도 있다.과거 국정경험을 개혁정책의 뒷받침으로 활용할수 있는 당내의견수렴이 잘 이루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민자당총재인 김영삼차기대통령은 항상 『민자당은 민심을 두려워하고 민의를 존중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하며 생산적인 국회운영의 책임을 지고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제 3돌을 맞아 집권당으로서 새출발을 하는 민자당은 일단 국민들이 정권창출에는 동의했으되 「구국」「정치발전」이라는 창당이념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유념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 부산·경남지역 「젊은 시인회의」/문학 대중화운동 활발

    ◎창립 3주년 맞아 제2의도약 위해 내실있는 기획/기성인 사고 탈피,생활속의 문학 지향/「독자와의 모임」·「시인학교」 등 확대추진/“벽 허물자” 영·호남 문학교류에도 앞장 부산·경남지역 젊은 문인들의 협의체인 「부산 경남 젊은 시인회의」(대표간사 성기각)가 새해들어 문학의 대중화를 다짐하며 활발한 문학운동을 전개한다.지난90년4월 이 지역 문단의 촉망되는 등단문인 40여명으로 구성돼 창립한 이 모임은 창립3주년을 맞는 올해를 제2의 도약기로 정하고 그동안 실시해온 화담시모임의 월례화,회보발간,여름시인학교의 확대운영등 내실있는 기획들을 준비하고있다. 문학의 대중화에 역점을 두고있는 이 젊은 시인들이 펼치고 있는 「화담시모임」은 문학이 문인들의 전유물이나 일부 식자층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호흡할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기획,실시돼온 행사. 부산시 중구 대청동 전통찻집 「화담」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시집의 저자와 동료시인,일반독자들이 함께 모여 작품에 대한 설명과 토론을 벌이며 벽을 허물고의사통로를 열어주는 자리가 되고있다. 이들은 또 매년 여름 작가지망생과 문학애호가들을 위해 마련해온 「여름시인학교」를 확대운영한다는 방침아래 보다 효율적인 프로그램들을 구상하고있다.바다를 끼고있는 지역적 특성을 십분 활용,문학의 향기가 한껏 피어나는 만남의 자리를 꾸며나가겠다는 의욕이다. 지난 90년 출범직후부터 기성문단의 눈길을 끌어온 이 모임은 우선 지역간 문화교류와 제반 사회적 모순의 문학적 수용을 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부산과 경남각지를 오가며 지역회의를 갖고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한편 이를 작품화해 중견문인들로부터 상당한 평가를 받았다.특히 90년5월 「가야문화와 김해문학」을 주제로 처음 열린 이래 마산 밀양을 거치며 공장노동자의 삶과 문학,농촌현실과 문학등을 다양하게 엮어 사회현실에 대한 문학적 접근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와 전문지를 통해 등단한 이들 30대 젊은 문인들은 자기 고유분야를 고수하려는 기성 문화예술인들의 사고에서 탈피,생활속의 문학을 지향하는데 큰 의미를 두고있다.「삶이 곧 문학이요 예술」이라는 공통된 인식아래 우리사회의 모든 현상을 문학작품에 수용,사회운동으로서의 문학을 주창해오며 지난해 7월에는 부산에서 「공해와 문학」이란 행사를 가져 호응을 얻었다.이날 행사에서 이들은 공해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학을 통한 개선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공해추방시민협의회에 가입하는 실천력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지역간 문화교류에 진취적 입장을 보이는 이들은 지난해 12월 영호남시인 54명이 지역감정을 없애고 서로의 공동체의식을 확인하는 시집을 발간하는데 앞장섰다. 이 모임의 창립주역인 정일근시인은 『젊은 시인회의는 현재까지의 성과에 만족하지않고 삶속의 문학,서민과 함께하는 문학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 중학생때의 꿈 대통령되기까지(김영삼 결단·돌파 40년:하)

    ◎정치역정/정치사 고비마다 대세 이끌어/창랑 만나 정치투신… 25세 의원당선/민주화 일념 야당 40년에 숱한 고난 정치거산 김영삼 ­. 한국정치사와 함께 성장해온 그는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결단의 정치인」 「소신과 용기의 소유자」 「대세와 순리를 중시하는 지도자」등 그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많다. 그는 만25세의 어린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돼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난과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38세에 원내총무에 올라 5회연속 피선되었으며,우리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국회의원 9선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야당총재 4번,여당총재 한번의 신기록도 갖고있다. 그러나 그를 정치지도자로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화려한 경력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국정치의 큰변화를 주도해온 결단의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현대정치사의 대세를 주도했다고 할수있다. 1950년 그는 처음으로 정치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49년 정부수립 기념웅변대회에서 외무부장관상을 타게되었고 이때 외무부장관인창랑 장택상씨와 인연을 맺게되었다.50년5월 국회의원선거에 장씨가 출마하자 그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51년부터 53년까지 장씨가 국회부의장·국무총리시절 비서관으로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25세가 된 김영삼은 제3대 국회의원에 출마,최연소나이로 고향인 거제에서 당선됐다. 이때 그는 자유당소속의원이었다.그는 경무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승만대통령에게 3선개헌의 부당성을 제기했으나 오히려 이대통령으로부터 무안을 당했다.이에 자유당의원이면서도 3선개헌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고 7개월만에 자유당을 탈당했고 이후 소장파의원들과 사사오입개헌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이때부터 김영삼은 90년1월 3당합당 때까지 37년간 오로지 야당외길을 걸었다. 4·19와 5·16은 김영삼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하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4·19후 재선의원인 김영삼은 당시 신민당소장파의원을 중심으로 정치정화운동서클인 「청조회」를 구성하는등 청년정치지도자로서의 활약이 돋보였다.5·16이후 신민당이 해체되고 대부분의 정치인이 정치정화법에 묶여있는 상태에서도 그는 「군정종식」과 야당전열재정비를 위해 힘썼으며 63년3월 군정연장반대시위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는 수난도 겪었다. 김영삼은 63년12월 제6대국회의원선거에서 전국 최고득표로 당선되었다.이후 그는 제1야당에서 5차례의 원내총무에 피선되면서 군사정권과의 투쟁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했다.3공화국정권에 대항하여 야당을 진두지휘하던 원내총무시절 그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와 결단의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1970년 그는 「40대 기수론」을 제창하여 일약 야권의 지도자로 발돋움하게된다.그의 나이 42세였다.김영삼은 70년 신민당대통령후보지명전에서 1차투표에서는 이겼으나 결선투표에서 김대중씨에게 패했다.그는 패배후 깨끗이 승복하고 김씨의 당선을 위해 힘을 아끼지않았다. 72년 유신헌법선포당시 김영삼의 행동은 그가 국민적지도자임을 나타내준다. 당시 그는 미국을 방문중이었다.그를 초청했던 라이샤워 코헨 교수와 미국무부관리들은 그의 투옥을 우려해 귀국을 만류했으나 그는 『국민과 동지들이 겪고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며 곧바로 귀국하는 용기를 보였다.귀국후 그는 곧바로 가택연금을 당했지만 유신헌법 개정운동에 착수,기나긴 반유신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74년 유진산총재가 별세하고 그는 40대나이에 만장일치로 신민당총재에 당선됐다.정계투신 20년만의 야당당수취임이었다.총재 김영삼은 이후 개헌투쟁을 진두지휘했고 이때 그가 인용한 「닭의 목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암울한 시대에 민주화의 희망을 안겨준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김영삼은 77년 2번째 야당총재에 취임,반유신투쟁의 선봉에 섰다.총재취임후 경찰의 신민당사난입,총재직무정지가처분,의원직제명등 온갖 박해가 계속됐다.그러나 그는 『잠시살기위해 영원히 죽는길을 택하지 않을것이며 잠시 죽는것 같지만 영원히 사는길을 택할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반유신투쟁을 강화해 나갔다.김총재의 의원직제명에 항의해 신민당의원들은 전원 사퇴서를 제출했고 부산과 마산에서는 소요사태까지 발생,마침내 10·26으로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다. 80년 서울의봄을 거쳐 신군부의 등장으로 그는 81년5월까지 두번째의 가택연금을 당했다.김영삼은 이때 1년간의 연금기간을 「자신과 싸운 분노의 1년」이었다고 술회한다. 83년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그가 결행한 23일간의 단식은 그동안 숨죽여온 민주화투쟁에 불씨를 당겼다. 84년 민추협결성→85년 신민당창당→2·12총선돌풍→직선제개헌운동→87년6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김영삼은 6·29선언으로 맞은 87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했다.야권분열로 인한 패배라고 그는 솔직히 시인했다.이후 총선에서는 헌정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정치·사회전분야는 혼란이 계속됐다.김대통령당선자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단행했다.헌정사상초유인 여당과 야당의 통합을 추진한 것이다.그에게는 가장 힘든 결단이었다.일각의 비난도 거셌지만 그는 극복했다. 3당합당이후 김영삼대표의 행보는 순탄치만은 않았다.내각제파동을 겪었고 이질적인 계파간의 갈등은 끊임없이 그를 뒤흔들었다.그는 합당후 2년간을 야당생활 40년보다 힘들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정면돌파식 승부로 기어이 민자당대통령후보 경선에 승리했고 이제 대통령선거에도 당당히 승리했다.제1공화국에서 제6공화국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41년간 정치행로의 총결산이었다. 그는 『역사에 단순히 기록되는 대통령이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고싶다』고 말해왔다. 국민들은 지금 그의 경륜과 탁견·소신과 의지에 큰 희망을 걸고있다.
  • 북한산 의류 백화점에 첫선/OEM방식 생산/국산품보다 싼 편

    북한최대무역항 남포에서 만들어진 신사의류가 시내 유명 백화점에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롯데백화점은 창립 13주년 특별기획 행사로 북한산 신사의류 특별기획전을 개최,남·북한 합작공단 예정지인 남포시의 남포공장에서 제작된 남성용 바지와 남방셔츠를 판매중이다. 롯데가 판매중인 북한산 신사의류는 세웅통상이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생산한 것으로 「까르지오」란 상표를 부착하고 있지만 원산지는 「북한」으로 표시됐다.북한과는 정식수교가 안되기 때문에 계약과 비행기를 이용한 운송은 중국 북경을 거쳤다. 롯데는 북한서 생산된 남방 1만2천벌,바지 1만3천벌등 2만5천벌 전량을 단독으로 판매하고 있다.태광직물의 원단을 사용,1백% 면소재인 남방과 바지의 가격은 각각 1만2천원씩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같은 품질의 바지와 남방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 롯데,영 왕세자 방한맞춰 영국문물 기획전

    ◎패션쇼 등 다채… 다이애나비도 직접 참가 11월15일 창립13주년을 맞는 롯데백화점이 영국 찰스왕세자내외의 한국방문과 때를 맞춰 창립기념 기획행사 「’92 대영국전」을 개최한다.3일부터 9일까지 롯데백화점 본점 8층 행사장과 1층 팬시가든 특설무대에서 펼쳐지는 이번행사는 영국의 문화와 상품등 각종 문물을 한눈에 볼수 있도록 영국상품전외에 패션쇼,백파이프연주,영국왕관(모조)전시회등 다채로운 특별이벤트로 꾸며진다. 다이애너영국왕세자비가 3일 상오10시45분 본점8층 행사장에서 있을 개막축하 테이프커팅에 참가하고 행사장을 관람할 예정. 영국상품전(8층 행사장)에서는 정장,니트웨어,레인코트,골프의류,도자기,욕실용품,액세서리,모자,위스키,쿠키등 영국을 상징하는 10만여종의 상품들을 종합전시판매한다.행사기간중 매일 3차례씩 행사장 입구에서 스코틀랜드 고유의상을 입은 남성7인조 연주단이 대표적인 민속악기인 백파이프를 연주한다.또 영국관광청의 협조로 영국왕관 모조품과 장신구,근위병·교통경관·경찰관복장등이 전시되며영국의 풍물을 소개하는 관광전도 마련된다.5∼6일 본점1층 팬시가든에서 영국의상패션쇼도 열린다.
  • 안중근의사 의거 83돌 기념식

    안중근의사 의거83주년 기념식이 26일 상오10시 서울 남산 안의사기념관에서 안의사 승모회(이사장 윤치영)주최로 민경배보훈처장과 안응모전내무장관등 1백여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윤이사장은 기념사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지고 우리민족의 기개를 떨쳤던 안의사의 거룩한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민족의 귀감이 되고 있다』면서 『우리 후손들도 이같은 안의사의 정신을 본받아 조국통일과 번영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일본 핵재무장 반대/시위하던 20대 자해

    26일 낮12시20분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정문앞에서 안중근의사 의거 83주년을 맞아 일본의 핵무장반대시위를 벌이던 「일본의 재무장을 경계하는 한국인연맹」(공동대표 김기백·42)소속 회원 오병학씨(25·기능공 인천시 남구 문학동78)가 길이 15㎝남짓의 과도로 할복자살을 기도했다. 오씨는 이날 낮12시부터 회원 50여명과 함께 「일본은 플루토늄반입등 핵무장기도를 포기하라」는 내용등의 플래카드 10여개를 들고 반일시위를 벌이며 가로 2m·세로 1.5m 남짓의 일장기를 불태우려다 전경10여명이 달려들어 일장기를 빼앗자 『일본 핵무장 결사반대』라고 외치며 과도로 배를 찔렀다.
  • 오늘 의거 83주년… 한·중·일 3국 입체취재

    ◎안중근의사/“동양평화 지켰다” 중국인이 더 추앙/이등 저격 하얼빈시선 해마다 확술대회/기념비 곧 건립… 여순감옥엔 유품 보존 우리는 해마다 10월이 저물어가면 의사 안중근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19 09년 10월26일 하얼빈역두에 터뜨린 총성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더 이상 침략책동자로 세워두지 않은 의거의 그날이 돌아오기 때문이다.일제는 그를 테러리스트로 매도,끝내는 교수대에 세웠다.그러나 안의사는 지금 영원한 휴머니스트이자 또 평화론자로 추앙받고 있다. 1909년 10월26일 상오 10시가 막 지나는 시각.모두 6발의 총성이 중국 흑용강성 하얼빈시 하얼빈역두에 울려 퍼졌다.의장대 사열을 끝내고 귀빈열차를 향해 몸을 돌리던 일본의 침략원흉 이등박문을 향한 안중근의사의 육혈포가 불을 뿜는 소리였다.그날의 총성이 사라진지 83돌을 맞은 하얼빈역은 신역사를 짓는 건설현장의 굉음과 종종걸음치며 플랫폼을 오가는 중국인들의 말소리만이 어울려 요란할 뿐이다. 이등박문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 1번 플랫폼앞 현장에는 뜰이 조성돼 대형플라스틱에 담긴 화분이 몇개 놓여 있었다.피격지점에서 10m쯤 떨어진 러시아군 사열대 뒤편에서 총구를 겨누었던 안의사의 저격장소는 이곳에 새로 지어진 1등 대합실건물에 편입돼버렸다.이등이 쓰러진 곳은 몇년전만해도 피살지점을 표시하는 둥근 녹쇠판이 놓여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등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안의사가 5개월에 걸친 수감생활끝에 1910년 3월26일 상오10시15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여순형무소.당시 악명 높았던 이「인간지옥」은 요령성 대연시 서쪽 40㎞지점에 「여순일아감옥구지」라는 현판아래 지난88년부터 중국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안의사가 복역한 지하감방은 간수사무실부속창고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감동 복도벽에는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이라고 쓴 액자속에 안의사의 수감당시 사진과 함께 남아있다.이밖에 유화초상화·족자·유시「장부가」가 담긴 액자등이 걸렸다. 안의사에게 교수형이 행해졌던 교형실은 감옥 동북쪽 구석에 감춰진채 15평남짓의 좁은 공간으로 남아있다.교수대는 2층으로 꾸며져 있고 시체처리통까지도 보존됐다. 현재 6만명의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하얼빈시에는 2개의 안중근연구회가 있다.안의사추모사업은 지난89년 의거80주년을 맞아 한·중·일의 학자들이 하얼빈역에서 추모회를 가진 이래 학술대회를 잇따라 열어 왔다.또 안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대형오페라가 공연되는등 추모붐이 대단했다.최근에는 새로 발굴된 자료를 모은 안중근사료집발간을 준비중이며 안의사기념비를 피격현장에 세우기위해 중국정부와 교섭도 벌이고 있다.당초 하얼빈역 광장에 안의사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도 건립할 계획이었지만 일본과의 불편한 입장을 고려한 중국측의 소극적 태도로 한걸음 물러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얼빈시내 동북열사박물관에 전시된 중국근대사소개부문에도 안의사의 영정과 기념자료등을 손문다음으로 다루는등 안의사에 대한 중국현지의 평가와 연구열기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국내/국내연구 활기­일선 “평화주의자” 새 시각/학계 동향/대중수교 계기 새 자료발굴 기대 우리나라에서의 안중근연구는 올해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짐에 따라 새로운 계기를 맞고있다.그 이유는 중국이 「역사의 현장」인데다 그동안 우리측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에 대한 접근도 가능해졌다는 데서 찾아진다. 이에따라 그동안 한정된 자료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학계의 상황도 크게 개선되어가고 있다.또 안의사의 의병활동기지였던 러시아측의 연구성과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여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길림성 조선연구소가 국내에서의 안중근연구를 희망해오는가 하면 러시아사회과학원 동방연구소에서도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우리나라에 와서 발표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최석우신부)에서는 안의사가 천주교신자였다는 점을 고려,프랑스측이 소장해오던 자료를 입수,연구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원장은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로 안중근연구에 숨통이 트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때일수록 연구자들은 일과성이 아닌 체계적 연구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새로 입수된 자료들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되지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해석이 나올 경우 안의사연구에 자칫 흠집을 남길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다.안중근의사에 대한 저술은 물론 연구결과를 집약한 논문 역시 나오지 않았다.기존의 학술자료로는 「한국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안에 수록된 공판기록문서와 주한일본공사관 기록등이 정리돼 있다.또 논문은 신용하교수(서울대)의 「안중근의 사상과 의병운동」등이 꼽힌다.저술은 주로 전기류인데 안의사 의거 이후에 쓴 박은식의 「안중근전」이 있고 해방후에는 「의사 안중근」(만수사보존회·1964년)과 「안중근자서전」(안중근의사 숭모회·1970년)등이 나왔다. 그리고 안의사를 기리는 단체는 사단법인 안중근숭모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안중근의사장학회등이 있을 뿐이다. ◎일본/올 전기 등 2권 출간… 사당건립도 안중근에 대한 가해자쪽인 일본에서 안의사 평가는 「암살자」와 「휴머니스트」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시각으로 나타났다.테러리스트 시각을 가진쪽은 안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정권담당자들이다.그리고 휴머니스트로 보는쪽은 안의사의 재판에 참여한 판사와 검찰관,여순감옥의 형리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 일본의 지식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다.안의사를 휴머니스트로 보는 시각도 두 갈래로 나뉜다.그 하나가 중천팔양교수(축파대)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이끌려지는데,여순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이 『한일관계의 원전으로 오늘날 더욱 빛나는 혜안이었다』고 극찬한다.동아시아의 제국이 우방과의 신의를 축으로 한 동맹관계를 수립,러시아에 대응방위를 해야한다는 안의사의 주장은 오늘날 일본에 좋은 교훈이 된다는 것이다. 형무소장과 변호사는 물론이려니와 검찰관·재판관들이 서 있다. 재판과 수형생활등의 과정에서 안의사의 높은 지적수준과 고결한 인품이 자신들을 매료시켰다고 회고한다.오늘날 남아있는 안의사의 유묵은 그들에 의해 고이 간직되어 온 것이 많을 정도다.또 이들의 후손들에 의해 안중근연구회가 조직되어 일본안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현재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와카야나키의 대림사에 세워지고 있는 안의사의 기념사당도 그러한 경우다. 「테러리스트아닌 독립운동가」라는 시각에 따라 「안중근 무죄론」까지 제기되어 주목을 끌었다.특히 올들어 최근 일본에서는 안중근관계 저술이 2권이나 새로 출간됐다. 그 하나가 중야태낭교수(아세아대교수·국제관계학)의 「안중근」(아기화방간행).한국관계의 원상이라는 부제로 간행된 이 저술은 이토를 저격한 안의사를 훌륭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생애와 사상/의병투쟁땐 일군포로 석방/「동양평화론」 저술한 선각자 안중근의사는 1879년9월9일 황해도 해주 한 향반의 집에서 태어났다.그리고 나서 31살을 일기로 1910년3월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기 까지의 삶은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 생애에서 안의사가 평화론자였다는 사실은 여러군데서 찾아진다.1907년 정미칠조약이 강제체결되고 고종 양위와 함께 군대가 해산됐을 때 독립전쟁을 주장하면서 의병활동에 뛰어든다.그는 의병전투기간에생포한 일본군 포로를 석방,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그러나 이 사실은 오히려 의병활동을 일본에 대한 대한제국의 독립전쟁이라는 국제공법에 근거,포로를 인도적으로 처리한 사례로 평가 되고있다. 안의사가 여순감옥에 갇힌 뒤 쓴 미완성원고 「동양평화론」은 그의 이같은 사상적 배경을 구체화한 것이다.「독립한 청국 한국 일본이 일심 협력해서 서양세력의 침략을 방어하게 된다」는 논리를 편다.그래서 개화의 역으로 진보,구주 세계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할 때 동양평화가 실현되고 또 유지된다고 주창했다. 이토는 침략의 원흉이고 동양평화에도 역행했다는 것이 안의사의 주장이다.그의 자서전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이등의 15개조의 죄목」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결론적으로 안의사는 자신의 행동을 『한국의병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토를 공격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 사내 「미스스마일」 선정/삼신 올스테이트 생명 김정구양(맹렬여성)

    ◎“보험사직원은 친절이 생명이죠” 삼신올스테이트생명보험사의 고려영업소에서 근무하는 김정구양(19)에게서는 아직 여고생티가 물씬 난다.김양은 그러나 최근 회사에서 가장 친절한 사원을 뽑는 「미스 스마일」선발대회에서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영예를 차지했다. 미스 스마일 선발 대회는 삼신올스테이트생명이 창립 3주년을 맞아 고객에 대한 친절도를 보다 높이기 위해 실제와 다름없는 상황을 설정,고객응대시 태도와 보험지식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우수 사원을 뽑는 행사이다. 지난해 12월 경복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입사한 김양은 사회 초년생이지만 주위의 선배 사원들로부터 일을 야무지게 처리한다는 칭찬을 받고 있다.하루종일 외근을 하고 돌아오는 보험모집사원들도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그녀 덕분에 쌓인 피로가 말끔히 풀린다고 한다. 『보험사에서 근무해 보니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친절이 고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상당히 기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특히 보험상품은 차별화가 거의없기 때문에 고객을 끌어 들이려면 친절함이 생명이지요』 김양은 고객을 직접 상대하지 않는 내근 사원도 불가피한 전화 상담등을 위해 모집인 못지 않은 전문지식을 갖춰야한다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청약서를 1차로 심사하고 보험금을 입금시키는 것이 제 일이예요.규정대로 하다 보면 모집인들이 애써 청약해온 보험이 미비한 점이 많아 마찰을 일으킬 때는 안타깝지요』 김양은 회사에서 막내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특히 고려영업소는 본사의 영업 전략에 의해 모집인을 모두 대졸사원으로 채용했기 때문에 다른 영업소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꼼꼼하게 처리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앞으로 보험사가 전망이 좋고 이 회사는 합작사여서 뭔가 다를 것 같아 선택했어요.학생때 보다는 경제적으로 풍족하며 하고 싶은 일도 자유롭게 할수 있어 직장생활이 점점 재미있습니다』 김양은 월급 56만원 가운데 40만원을 뚝 잘라 저축을 할만큼 알뜰하다.직장에 충실하면서 대학에도 진학,훌륭한 교사가 되고싶은 꿈도 키우고 있는 욕심 많은 여사원이다.
  • 대림 창립53돌/건설업 정상 도전,해외사업 확대

    대림산업(회장 이재준)이 9일로 창립 53주년을 맞았다. 지난 39년 10월 부평역앞 허허벌판에 목재등 건설자재를 취급하는 「부림상회」로 출발한 대림산업은 현재 12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그룹으로 성장했다. 지난 54년 서울증권설립,55년 중기사업소 설립,63년 대림콘크리트 설립등으로 성장을 해오던 대림은 지난 60년대와 70년대 건축관급공사와 월남특수에 힘입은데다 지난 79년 호남에틸렌을 인수하고 81년 대림자동차공업을 출범시키면서 명실공히 그룹대열에 들어서게 됐다. 대림산업은 오는 2000년도의 목표를 「쾌적하고 풍요로운 삶의 창출자로서 매출액 10조원,수익률 5%」로 정하는등 국내 건설업계의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특히 신규사업 비중을 전체 매출의 40%,해외사업 비중을 20%까지 확대시키고 생산성을 현재의 5배로 증대시키기 위해 인력의 고급화,기술력 고도화,해외사업의 활성화등을 세부전략으로 추진중이다.
  • 김일성 대중 메시지/“혈맹” 언급 안해

    【도쿄 AFP 연합】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30일 중국 정부수립 43주년(10월1일)을 맞아 양국간의 전통적인 친선협력관계의 강화·발전을 거듭 다짐하는 축하 메시지를 중국 지도자들에게 보냈으나 그동안 관례처럼 사용해온 「혈맹」이란 용어를 사용하지않아 주목되고 있다. 도쿄에서 수신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주석은 이 메시지에서 『중국적 특성에 맞게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밝히고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진 조중간의 우호관계는 두나라의 당과 국가,인민들의 공동노력에 의해 계속 발전돼 나갈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주석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 보낸 메시지에서 두나라간의 『깨질 수 없는 우호관계가 피로써 맺어졌다』고 강조했으며 90년 메시지에선 두나라의 관계가 『혁명투쟁에서 피로써 확인돼왔다』고 말하는등 「혈맹」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해 왔다.
  • “일,주변국과 신뢰구축을”/손 공보처장관

    손주환공보처장관은 24일 한국논단 창간3주년을 맞아 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된 「21세기의 한·일관계 국제심포지엄」참가자들을 위한 환영만찬에 참석,만찬사를 통해 『일본의 군비증강추이와 유엔평화유지활동으로 인한 전후의 첫해외파병등은 일본의 과거전력과 연관지어져 주변국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으므로 일본은 주변국과의 신뢰구축을 위해 각별히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핵문제 조속해결/최 통일원,북에 촉구

    최영철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9일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3주년에 즈음한 담화문을 발표,『남북한은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관계로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민족사회의 통합을 촉진해야한다』면서 이를 위해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핵문제를 조속한 시일내에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을 북한측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 노인도 대접받는 풍토조성 앞장

    ◎개원 3돌맞은 「사랑의 전화」 부속 노인전문병원/하루 4백명꼴 23만여명 진료/전문의료진 20명은 무급봉사/바자회수익금·후원금등으로 재정충당 「노인들도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 따라 지난 89년 문을 연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전화」(회장 심철호)부속 「무료노인전문병원」이 6일로 개원 3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이곳에서 무료진료를 받은 노인은 줄잡아 23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 병원은 3명의 전문의등 20여명의 의료진과 내과,재활의학과,가정의학과,물리치료과,안과,치과등의 현대적 의료시설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60세이상의 노인을 하루 4백명남짓 치료하고 있다. 이날 신경통 때문에 병원을 찾은 김병호씨(76·양천구 신월2동)는 『늙은이라 일반병원에서는 접수조차 하기 어렵고 겨우 접수를 한다해도 제때에 진료를 받지 못하는등 푸대접받기 일쑤였는데 이처럼 친절하게 진찰을 받을수 있으니 고맙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 사회복지관의 연간 예산은 10억여원이며 이 가운데 6천3백여만원은 국고지원액이다. 그러나 병원에 대한 국고지원은 한푼도 없어 바자회 수익금,기타단체들의 후원금과 제약회사의 약품지원등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어 해마다 적자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전문의료진은 모두 무급으로 일하고 있으며 간호원들도 박봉이다. 이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병원측은 매달 1일 「노인의 날」행사를 갖고 「노인모의국회」「노인사이코드라마」「노인레크리에이션」「중풍환자를 위한 재활치료프로그램」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병원 김종호원장(71·내과)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치료하는데 나의 의술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개원 때부터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면서 『그러나 입원실이 없어 중환자들을 돌려보내야 할 때는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 백범유족 초청 격려

    노태우대통령은 25일 낮 백범 김구선생 서거 43주년을 맞아 아들인 김신 전 교통부장관,장손자 김진씨,장손녀 김미씨등 유족들과 백범기념사업회 장충식회장(단국대 총장)등 간부들을 청와대로 초청,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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