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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한 외교관들이 본는 「김정일타도」 전단

    ◎“전단은 일과성… 권력승계 영향못줘”/소수 지식층 “존재알리기 저항” 추정/군이 김정일 강력지시… 건강이 변수 북한의 평양시내 외교단지에 「김정일 타도」 전단이 대량으로 살포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 외교단지에 있는 한 서방공관이 이를 수집,본국정부에 전문으로 보고하면서였다.전단은 19일 밤부터 20일 새벽 사이에 살포됐고,김정일의 세습은 사회주의 건설에 어긋난다고 비난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전단 살포 사실이 오래 지난 뒤면 몰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곧바로 알려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양외교단지 거주 경험이 있는 한 주한외교관은 관측했다.익명을 요구한 이 외교관은 『외교단지가 평양의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북한 주민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때문에 전단 살포를 「찻잔 속의 태풍」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북한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주한 외국공관 외교관은 평양에 공관을 두고있는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중국등 모두 15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한외국공관 업무를 맡고있는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평양에서는 일반인의 외교단지에 대한 접근이 봉쇄되어 있다고 들었다』면서 『접근이 가능한 아주 소수의 지식인들이 국제사회에 자기들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해 계획적으로 저지른 것 같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다시말해 조직적인 권력투쟁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간혹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주한 외교관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북한에서 전해들은 조직적인 저항에 대한 소문등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지난해 초 원산의 대학가에 나붙은 김정일 비난 대자보와 10여명 정도의 지식인으로 구성된 김정일 비난 모임이 낙서·토론등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동아시아지역 출신의 한 외교관은 『어느 체제건 반대 세력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하면서 『북한의 권력승계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비난 전단의 살포와 승계이상설을 연계하길 거부했다. 이처럼 북한에 근무한 적이 있는 외교관들은 전단살포를 일과성의 사건으로 바라봤다. 최근 중국의 북한전문가를 만나고 온 한 인사는 『중국 지도층이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고 전하고 『그러나 리더십 경력등으로 볼때 김정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게 중국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이 인사는 또 북한군부의 동향에 대해 『혁명1세대인 오진우가 후견인인 만큼 쿠데타의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면서 『중국은 김정일의 건강문제와 김일성의 사체처리만 끝나면 권력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체제를 유지하려는 혁명1세대와 보다 개방 폭을 넓히려는 혁명3세대 사이의 갈등과정에서 이러한 반대세력의 움직임이 변수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한 서방외교관은 『비록 간헐적이지만 북한 내부의 저항은 결국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면서 지식인들의 저항이 개방의 확대와 연결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김정일 타도」 전단… 정·관가 시각/「김정일세습」 이상징후 추측도/정부/채널 총동원,후속정보 수집에 주력/여야/“일단 사태추이 지켜보자” 신중 반응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은 평양 시내 외국공관 단지에 「김정일 타도」 전단이 살포된 것에 대해 북한 권력체계의 이상조짐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고 보면서 추가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 ○…정부는 이번 사태를 일단 김정일후계체제 구축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로 분석하고 다각적인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외교및 정보채널을 총동원,후속정보 수집에 주력하는 한편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청와대는 현재 반금정일전단이 뿌려졌다는 사실밖에는 다른 후속정보가 없어 북한 내부사정을 정확히 진단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그러나 특수계층만 들어갈 수 있는 외국공관단지에 권력세습을 반대하는 내용의 전단이 뿌려진 것만으로도 김정일후계체제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로 보고 있다. 통일원은 전단사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날 아침 일찍부터 북한방송을 청취하며 북한내부동향을 예의주시.이번 사건을 점진적인 개방을 유도하는 김정일과 혁신적인 개방정책을 요구하는 일부 엘리트계층간의 노선싸움이라고 보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이런 움직임이 오히려 김정일의 입지를 강화시켜 권력승계를 재촉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실정. 외무부는 이번 사건에 너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신중한 생각이며 해외공관에 긴급전문을 보내 북한관련 정보수집에 전력을 다하라고 지시. ▷정치권◁ ○…「김정일타도」전단이 아직 북한의 권력관계에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신중한 반응. 민자당의 박범진대변인은 이날 당무회의가 끝난 뒤 『한국은 김일성사망후 새로운 남북관계등을 고려,북한의 정세변화를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면서 『조용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라고만 언급. 이날 당무회의 토론에서도 이 문제는 공식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회의에 참석했던 일부 당무위원들도 『김정일타도 전단은 과거에도 이따금 있었으며 보다 중요한 것은 군부와 당에 반금정일 분위기를 조직화할 구심이 있느냐하는 문제』라고 조심스런 반응. 민주당은 미국 국무부가 이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예로 들며 정부의 정확한 정보수집과 신중한 발표를 주문. 박지원대변인은 『이는 김정일 건강이상설과 함께 주목할 만한 사실이지만 정부가 이미 밝혔듯 대화로써 북한정권의 안정과 평화적인 핵문제 해결등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므로 조용히 북한의 변화를 주시할 것』이라고 논평. 외교통인 조순승의원은 『북한내 반체제 세력은 김일성생전에도 있었으며 문제는 반체제세력의 존재보다 김정일의 건강이상유무』라고 피력.
  • 「제3세계 핵보유소문」 사실입증/「파키스탄 핵개발」 계기론본 실태

    ◎「이」 2백기 확보 정설… 북한·인 규명안돼 의혹/이라크는 3년뒤 개발… 호·가·일 기술력 상당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나와즈 샤리프 전파키스탄총리의 발언은 핵이 더이상 미·영·불·러·중 등 5개 핵강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그동안의 공공연한 소문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핵확산의 위험이 실제로 어디까지 이르렀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충격을 준다. 북한의 핵보유 의혹이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처럼 핵확산의 위험이 커진데 따른 것이다.따라서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확인한 샤리프 전파키스탄총리의 발언은 핵확산금지를 위한 체제강화의 필요성을 또한번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파키스탄과 3차례 전쟁을 치렀던 인도는 지난 74년 핵기폭장치 폭파실험을 한 바 있으나 핵무기는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으며 주요 야당지도자들은 핵무기를 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인도는 핵무기미보유국에 대한 차별조치라는 이유를 들어 NPT(핵확산금지조약)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와 관련해서는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이스라엘의 디모나 핵발전소에서 2백개 가량의 핵무기를 제조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북한과 같은 NPT회원국이지만 군사전문가들에 의해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방전문가들은 지난 91년 걸프전에서 패한 이라크에 대해서는 핵개발계획이 와해돼 조잡한 형태의 핵무기를 제조하는데 2∼3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외에도 핵개발기술이 상당히 앞서 있는 국가로는 호주·캐나다·독일·일본·스위스 등이 있으나 이들 국가들은 아직 핵개발 의사를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
  • 세계인구/매년 9천4백만명 증가(현장 세계경제)

    ◎식량부족·자원고갈 등 심각/2100년엔 지구촌 1백억명 “빽빽”/90년대도 7억8천만 영양결핍 상태 경제발전에 따른 식량·식수·에너지부족과 환경오염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과연 무엇일까?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개도국들은 90년대 들어서도 80년대를 웃도는 꾸준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경제성장의 가시적 성과는 산업생산력의 증가뿐만 아니라 의료보호나 교육기회의 증가등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더 뚜렷이 나타났다. 그결과 55개 최빈국들은 지난 25년동안 평균수명은 53세에서 62세로,유아 1천명당 사망률은 1백10명에서 73명,그리고 안전한 식수보급률을 33%에서 68%로 늘리는등 현저한 발전을 성취했다. 그러나 급격한 인구증가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의 증가를 가져와 개도국 인구의 30%인 11억여명을 하루 1달러로 연명하는 극빈층으로 전락시켰다.특히 세계인구증가분의 54%를 차지하는 남아시아지역에는 전세계 극빈자의 62%가 밀집,지역경제발전에 무거운 부담이 되고 있다. ○빈곤층 크게 늘어 세계인구는 그동안연간 9천4백만명씩 늘어났다.이같은 증가속도라면 올해 56억6천만명인 인구는 98년 60억을 넘고 2025년 85억,2100년엔 1백억명에 이르게 된다.물론 2020년이후 8천4백만명 이하로 늘어난다는 조건하에서만 이렇다. 지역별로는 아프리카가 식량부족과 에이즈,내전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최대인 연평균 2.8%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1.8%,북미 1.1%,구소련 0.5%,유럽 0.3%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치다.이런 추세라면 50년대 아시아(55%),유럽(16%),아프리카(9%) 순서의 인구분포는 2015년에는 아프리카(19%)와 유럽(6%)은 역전될 것이 분명하다. 이같은 과도한 인구는 각종 사회간접자본과 환경이 떠받쳐주지 못하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특히 사막화로 인해 농작물수확량이 급감하고 있는 아프리카는 내전과 에이즈등 질병으로 삼중고를 당하게됐다.지난 10년동안 세계 식량생산은 인구증가를 훨씬 앞지르는 24% 늘어났지만 아프리카는 예외다.인구는 이 기간 34% 늘어난 반면 식량생산은 실제로 5% 줄어들어 아프리카인을 기아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분쟁도 잇달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94년 현재 20개국에서 식량부족현상이 일어나 개도국의 7억8천여만명이 영양결핍상태에 놓여있다.물론 식량생산 공급능력은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지만 이지역의 빈곤은 곧바로 식량부족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과도한 인구증가는 지구환경에 치명타를 가한다.적절한 기술과 인구 그리고 자원소비 수준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제어할 수 있지만 그렇지못할 경우 자원의 소모는 극에 달해 열대우림파괴,토질악화 그리고 지구온난화등 전지구적인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특히 열대우림의 파괴는 심각한 수준이다.브라질,미얀마,인도의 열대우림은 80년대 평균 1천7백만㏊씩 감소했다.그 결과 1900년 1천6백만㎦이던 열대우림은 90년 8백만㎦로 절반으로 줄었다.삼림감소는 토질악화와 수량감소,나아가서 사막화에 이은 농산물 생산감소로 직결된다. 특히 전세계 물 사용량의 69%를 차지하는 농업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90년 관개농업지역은 2억5천만㏊정도로 전세계 농산물 수확량의 3분의 1을 담당한다.물론 50∼90년 사이 관개농업지역은 2배로 늘어났다.그러나 농업용수등 각종 물공급능력은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이에 따라 국지적 물분쟁도 심심찮게 잦아 2천여개의 물조약이 체결돼 있다. 인구증가가 안고 있는 문제중의 하나는 에이즈등 질병이다.에이즈는 92년 2백70만명이 발병,90%이상이 사망했다.HIV는 감염자가 훨씬 많은 1천4백만∼1천8백만명에 이른다. ○사회문제 많아져 인구증가와 개발은 21세기의 부양능력의 상호관계를 결정한다.인구증가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는 이제 일개 국가의 노력에 의해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지구온난화등이 원인제공지와 상관없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이 그 예다.국가간 국제적 공조체제를 통해서 저출산을 유도해야 한다.특히 아시아등 개도국 가임여성의 임신과 출산율을 낮춰야만 인구의 도시집중등의 문제를 막고 경제성장의 성과가 의료혜택,교육및 취업기회 증가등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승만과 김일성 비교론/김학준교수,남북한단정 두주역을 말한다

    ◎끝까지 항일깃발… 사상적 뿌리 민주주의에/이승만/기독교신자서 마지막 스탈린주의자로 종말/김일성 대한민국 건국 46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새삼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 가운데 한 분으로 대한민국의 초대 국회의장과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박사를 생각하게 된다.동시에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는데 앞장서 북한 공산정권의 초대 내각수상으로 북한 권력구조의 정상에 오른 뒤 무려 46년동안 1인장기집권을 유지하다가 최근에 죽은 김일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똑같은 이북 사람으로 이승만은 황해도에서,김일성은 평안남도에서 각각 태어났다.두 사람은 37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났는데 그러나 차이는 연령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부분들에 걸쳐 있다. 이승만은 조선왕조의 황혼기에 태어나 고전적인 한문교육을 받다가 서울에서 배재학당을 다니며 미국 교육을 받았다.이렇게 볼때 그는 미국 교육 또는 서양 교육을 일찍받은 당대의 선진적 소수 지식인들 가운데 한사람이었다.그가 받은 교육의 내용은 서양 민주주의와 기독교에 관한 것이었다.그는 상당히 자극됐으며 그리하여 독립협회 운동과 만민공동회 운동에 참여해 싸우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석방된 뒤 그는 기독교 청년운동에 종사하다가 도미하여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 학사를,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및 역사학 분야의 석사를,그리고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및 국제법 분야에서의 박사를 각각 받았다.그의 학문적 배경만을 놓고 볼때 당시의 조선사람으로는 단연 정상급의 학자였다고 할 것이다. 이승만은 곧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다.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안에서 벌어진 심각한 노선투쟁은,특히 무장투쟁노선을 옹호하는 세력은 외교선전노선을 앞세우는 이승만으로 하여금 미국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수도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만들고 이 기구를 중심으로 미국 정부와 국제연맹을 상대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운동에 매달리게 했다. 그의 독립운동 방식이 무장투쟁 방식의 시각에서 보면 의미가 줄어들 것이다.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단 한차례도 일제와 타협한 일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항일독립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은 조선왕조가 무너진 뒤 망국민의 신분으로 태어났다.이승만이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듯 김일성 역시 기독교 집안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그러나 이승만이 평생 기독교 신앙을 지켰음에 반해 김일성은 곧 기독교를 버리고 반기독교적 입장에 섰다는 점이 대조된다. 이승만의 교육적 배경과 활동의 무대가 미국이었음에 비해 김일성의 그것들은 만주였다.이승만이 영어를 모국어나 다름없이 썼음에 비해 김일성이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썼다는 대조도 흥미롭다. 김일성의 교육은 그러나 중학교 퇴학으로 끝났다.그는 곧 중국공산당 당원이 됐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무장투쟁의 길을 걸었고 그 종착역은 소련극동군의 정보특무 대위였다. 조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이승만은 만70세의 노인으로 미국으로부터 서울로 돌아왔다.한편 김일성은 만33세의 청년으로 소련으로부터 평양으로 돌아왔다. 이승만의 사상적 뿌리는 미국식 민주주의였다.그래서 그는 북한을 점령한 소련의 국가 이데올로기,곧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소련의 영토적 팽창주의를 경계하면서 소련이 북한을 발판으로 남한까지 공산화시켜 한반도 전체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가졌다. 여기서 그는 일찍부터 단정론을 들고 나왔다.되지도 않을 남북통일에 연연하다가는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위험성이 크므로.게다가 북한에서는 「소련 점령군의 앞잡이」김일성을 중심으로 소비에트 정권이 창출되고 있으므로 남한에서도 서둘러 정부를 수립해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소련점령군의 북한 소비에트화 전략을 떠받들고 북한에 공산주의 단독정권을 세워나갔다.그는 이 단독적 공산정권이 서고나면 그것을 발판삼아 남한까지 공산화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48년8월15일에는 남한에서 대한민국이 세워졌고,같은해 9월9일에는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두 국가는 각각 상대방의 존재를 부인했다.부인할 뿐만아니라 상대방을자신에게 흡수통합시키기위해 무력의 사용도 주저하려고 하지 않았다. 전면적인 선제공격을 가해 온 쪽은 김일성이었다.그는 소련및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50년6월25일 남침을 개시함으로써 동족상잔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승만은 다행히 미국의,그리고 국제연합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압록강까지 진격해 북진통일을 기대할 수 있었다.이 시점에서 김일성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북한 공산정권의 궤멸을 막을 수 있었다.여기서 전전 원상의 회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휴전이 성립됐고 이 휴전체제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치르면서 이승만은 권위주의 체제의 길을 걸었다.부산 정치파동과 3선개헌을 거치면서 민심의 이반을 낳았던 그의 통치는 결국 60년의 3·15부정선거로 귀결됐으며 4·19학생의거에 따른 4월혁명을 만나게 됐다. 대한민국의 조지워싱턴이 될 수 있었던 그는 하야하지 않을 수 없었고,하와이로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다.5년 뒤 그는 유명을 달리한 채 귀국했다. 김일성은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스탈린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고자 했다.그것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 그리고 피치자에 대한 억압과 세뇌였다. 이승만이 하야한 뒤 대한민국에서는 정권이 여러차례 바뀌었다.헌정사에는 굴곡이 적지 않았으며 어두웠던 시절들이 때때로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이 쌓아올린 건국의 울타리 안에서 대한민국은 결국 민주주의와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일성의 북한은 한때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을 앞선 때가 있었다.그러나 1인 장기집권의 억압체제가 반세기 가깝게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활력을 잃게 됐으며 자연히 경제적 침체라는 늪속에 깊숙하게 빠져버렸다. 그리하여 북한 공산체제의 붕괴론마저 나오는 시점에서 김일성은 마침내 죽었다.이승만의 별세 이후 29년만의 일이다. 48년 이후 남쪽에서는 공화정이 여섯차례나 바뀌었고 최고권력자도 일곱사람이나 나왔다.그래서 대한민국은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교체를 통한 국민적 활력이 살아도 나고 지탱도 되어 선진국을 바라볼 수 있는 민주적 신흥공업국가로 커졌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최고집권자가 전혀 바뀌지 않은채 지내오다보니 세포가 죽어버려 결과적으로 빈곤의 땅이 됐다.이것은 김일성이 역사적으로 너무 오래 살았음을 의미한다.역사와 민족을 위해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권력에서 떠났어야 했다. 이제 미래가 대한민국의 편임이 확실해졌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라는 시대적 흐름을 탄 대한민국으로서 자신감을 갖되 신중하게 남북의 평화통일을 향해 착실하게 전진할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김정일체제의 성격과 방향을 날카롭게 주시하면서 우선은 기본적인 교류와 협력의 부문에 돌파구가 열리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년의 8·15는 해방 50주년이면서 분단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역사적 시점이다.남과 북을 통틀어 우리 겨레의 형편이 훨씬 더 개선되기를 바란다.
  • “김정일 군·기술관료층서 절대지지”/르몽드지 보도

    ◎“체제 계속성 유지할 인물” 군부 신뢰/혁명2·3세대도 중용… 충성 바칠듯 김정일은 북한 사회의 군부,테크노크라트,가족등 3대 지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프랑스의 일간신문 르 몽드가 3일자로 보도했다. 르 몽드는 이날 「북한의 새로운 주인」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오는 5일 미­북한 3단계 고위급 회담이 김정일의 대외정책을 알아볼 수 있는 신호가 될 수 있는데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해 북한 방송들이 침묵을 지킴으로써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신문은 도쿄특파원의 서울발로 두번에 걸쳐 나눠 싣는 첫번 기사에서 『김정일은 지난 83년 버마 랑군테러사건과 88년의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주범인데도 개방에 호의적인 테크노크라트들에 둘러싸인 것같다』고 지적하고 북한의 새 지도자의 이미지는 확실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 내용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김정일은 남아 있는 왕조의 정통 계승권의 혜택을 입고 있다.김일성이 생존해 있을 당시인 20년전부터 권력승계 계획이 시작돼 그가 업무를 관장하면서 권력의 잠재성을 가져다 주었다. 당분간은 북한의 지도층 엘리트들이 김정일 주위에 밀집할 것같다.군부,특히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최광총참모장같은 이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고 김정일은 정보분야까지도 장악하게 될 것이다.군부가 김정일을 지지하는 이유는 김정일이야말로 현체제의 계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92년4월 이후 혁명 2,3세대들을 대규모로 공직에 앉힘으로써 젊은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을 것이다. 북한 사회에 뿌리깊은 3백만명의 노동당원들은 3대혁명 소조에 충실, 경제의 효율성이 확실치 않더라도 중국식을 본떠 김정일을 위해서 동원되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그들은 김정일의 상대자를 제거할 것이고 노동당은 김정일이 신임하는 측근이자 매제인 장성택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 그리고 이복동생 김평일과 그의 어머니 김성애는 당분간은 김정일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같다.
  • 외국인 접촉·안전사고도 “반국가죄”/북,정치범 어떻게 다루고 있나

    ◎사형·재산몰수등 무제한 처벌/시효없고 변호인이 “자백” 강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군도가 세계언론의 표적으로 떠오른 가운데 북한의 「반국가범죄」및 「인권상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체 북한 인민들에게 가장 무섭고 가혹한 범죄로는 「반혁명범죄」,「반국가범죄」가 첫손에 꼽힌다.북한은 74년 북한형법 제2편에 「반혁명범죄」를 규정,김일성 유일지배체제 유지에 장애가 될 우려가 있는 모든 행위를 반혁명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이는 「반혁명분자들은 로동계급의 계급적 원쑤들이므로 무자비하고 철저히 처단해야 한다」며 반혁명범죄를 사법차원이 아닌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취급한 것. 북한측은 줄곧 우리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강력히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의 이 「반혁명범죄」가 비인도적인 측면에서 대내외적으로 비난을 받게되자 87년 북한형법을 개정해 「반혁명범죄」를 삭제하는 대신 「반국가범죄」를 새로이 규정했으나 이 또한 「반혁명범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반국가범죄」는 주체사상에 따른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계급적·정치적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범죄의 구성요건이 지극히 추상적·다의적이며 유추해석을 사실상 무제한 허용,반금일성부자체제의 부정적 행위해 대해서는 무제한 처벌을 가능토록 하고 있다. 더욱이 이 범죄는 형사소추시효도 적용받지 않는 데다가 사형·전재산몰수형등 가혹한 조항을 두고 있어 북한 인민들에게는 그 어떠한 법률보다도 위협적인 존재이다. 고씨를 비롯,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사상범들은 체제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이 법에 따라 기약없는 「감방살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북한은 정치범과 일반형사범을 구분,체제비판자등 이른바 「정치범」에 대해서는 재판을 허용치 않고 있으며 변호인 역시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설득을 통해 죄를 자백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반국가범죄」에는 『…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는 식의 중벌위주의 형벌규정을 적용함으로써 일단 형을 선고받으면 노동교화소나정치범 수용소에 무한정 수감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법무부 특수법령과 성영훈검사는 『북한은 근대형사법의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와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면서 『국가이익및 집단이익에 반하는 행위는 물론 단순히 외국인과 접촉하거나 사업장 안에서의 단순사고도 반국가범죄로 처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더더욱 나쁘다.아예 「인권개념」이 없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의 인권은 초국가적·천부적인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당에 의해 부여되고 보장되는 「공민의 권리」에 불과하며 자유권보다는 당의 물질적 급부를 내용으로 하는 수익권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주체사상의 중심체제 아래서는 개인의 존재는 부정될 수 밖에 없다며 인권개념을 왜곡하고 있다. 북한은 또한 외국이나 국제기구의 인권보고서 등을 『파렴치한 내정간섭』으로 호도하는 과민반응을 보여 이번 북한의 정치범 수용실태를 첫 공개한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되고 있다. ◎“억류 고통 극복… 꼭 돌아오셔요”/고상문씨 부인 조복희씨 눈물의 편지 남편 고상문씨(46·당시 서울 수도여고교사)가 북한의 승호마을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돼 있다는 소식을 15년만에 들은 부인 조복희씨(43·은평구 갈현동)는 2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에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는 심정을 담은 편지 1통을 전달하며 남편의 귀환을 촉구했다. 조씨는 이날 『어제 전달한 남편의 송환을 촉구하는 진정서와 함께 꼭 이편지를 남편에게 전달하고 남편을 하루바삐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16절지 두장 분량으로 된 『현미아빠 보세요』로 시작되는 이 편지에서 조씨는 꽃다운 28세에 결혼,10개월만에 남편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은뒤 15년의 세월이 지나 불혹을 넘긴 43세의 중년이 되기까지 남편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을 편지 구석구석에 내비치고 있다. 『당신이 갖고다니며 사용하던 소형 트랜지스터와 함께 내 선물로 산 바바리코트 꾸러미가 집으로 도착한 후 나는 심한 환청과환상에 시달렸습니다.몇차례 병원생활을 하기도 했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이루는 긴 세월을 나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마르면서도 우리의 딸 현미를 기르는 보람으로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습니다』라고 적고있다. 조씨는 특히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빠는 왜 안와,왜 편지 한장 없어」라는 질문을 계속 해오는 딸 현미를 더이상 속일 수 없어 중학교에 들어간 날 사실을 말해주자 「우리 엄마는 너무나 불쌍한 여자」라고 했다』면서 『그 때가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다』고 그간의 회한의 세월을 담담히 소개했다. 조씨는 이어 『당신과의 생이별이란 사건은 내 인생에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면서도 『당신의 핏줄 현미에게 아빠가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은 다시 나를 설레게 합니다』라며 그간의 고통을 이겨내고 남편의 무사귀가를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을 보였다. 조씨는 편지 끝에 『당신도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라며 만나는 그날까지 남편의 건투를 비는 성숙한 아내의 마음씀씀이도 잊지않았다. 조씨는 이날 편지전달과함께 딸 현미양이 대통령앞으로 보내는 편지도 소개했다. 현미양은 이 편지에서 『아빠가 돌아오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해서 펜을 들었다』면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계신 아빠의 귀환을 위해 힘써달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조씨의 편지를 국제적십자사나 북한적십자사에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검토중이다.
  • 휴전후 4백40여명 납북… 생사불명/납북자 어디서 어떻게 지내나

    ◎동진호선원 12명 송환약속 7년째 “감감”/KAL 여승무원 「구국의 소리」 대남방송/87년피랍 이재환씨 “다국기업 횡포 연구”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전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휴전 이후 북한에 억류중인 납북자들의 생사와 근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통일원과 대한적십자사 등 관계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납북자 총수는 휴전이후만 따져도 최소한 4백40여명.이들 중 대다수는 생사확인조차 안되고 있으며 북한측은 상당수가 의거귀순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납북 억류자의 근황은 크게 3가지 부류로 분류된다.즉 ▲생사불명자▲정치범수용소나 교화소 수감자▲북한당국의 고문과 회유에 의해 대남선전방송 등 북한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인사 등이다. 북한당국에 의해 체제홍보라는 악역이 주어진 대표적 납북자로는 지난 69년 납치된 대한항공 여객기의 일부 승무원들.당시 북한은 고정간첩 조창희씨(당시 42세)를 통해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등 51명을 태운 KAL쌍발 여객기를 공중납치했는 데 아직도 송환되지 않고 있는 탑승자 11명중 정경숙씨(49),성경희씨(48)등 여승무원 2명이 선전방송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85년 12월 독일유학중 입북,대남공작활동에 종사하다 자수한 오길남씨(52)의 증언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정씨와 성씨는 북한주민과 결혼해 북한이 남한내의 지하방송으로 위장하고 있는 대남방송인 「민민전」방송(일명 「구국의 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자신도 이 방송에 몸담고 있다 일가족과 헤어져 단신으로 북한을 탈출한 오씨에 따르면 현재 대남선전 방송에는 이들 외에도 제주도 출신 납북어부 양모씨(50)등 납북자 및 월북자 약 15명이 북한 주민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7년 미국유학중 납북된 전민정당 전국구(12대)의원 이영욱변호사의 장남 재환씨(33세)도 북한당국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는 첩보가 있다.지난 88년 12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국회회담을 위한 제7차 실무접촉을 취재하기 위해 나온 북한측의 한 기자는 재환씨의 근황과 관련,『북한에서 다국적기업의 횡포 등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귀띔한 사실이 그것이다. 이처럼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납북인사들의 북한내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가장 최근인 지난 87년 1월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납치된 동진호 선원 12명의 경우 북한당국은 처음엔 조사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같은 달 김만철씨 일가가 귀순하자 느닷없이 간첩선이라고 우기며 송환을 거부한 뒤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당국은 이들 행방불명의 납북인사들이 북한당국의 회유나 강압에도 불구하고 「협조」를 거부했을 경우 이에 따른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 낙천적인 스페인사람들/마드리드(아랍서 지중해까지:10)

    ◎돈키호테 후예들 거리마다 북적/“내일을 걱정하는 자는 이방인”…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흥청 스페인식 상상력? 그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대야를 투구로,빗자루를 창으로 삼아 불의와 대적하는 기사(돈키호테). 아리아를 부르는 앵무새,탬버린에 맞추어 황금달걀을 백개나 낳는 암탉,사람의 생각을 알아맞히는 원숭이,기분나쁜 추억을 잊게 해주는 찜질약,먹으면 보기 싫은 사람을 눈에 안 보이게 하는 물약 등을 잔뜩 싣고 마콘도마을에 나타난 집시들(백년동안의 고독). 연인이 언니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도 말없이 두 사람의 결혼케이크를 만드는 티타,그녀가 케이크반죽 속에 떨어뜨린 눈물 때문에,케이크를 먹고 난 모든 하객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고 구토를 한다(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여자의 얼굴은 옆모습과 앞모습이 어우러져 있고,유방은 옷 밖으로 튀어나와 목덜미에 붙어 있다.무릎을 포갠 한쪽 다리는 치마이자 그녀가 앉아 있는 소파의 다리이기도 하다(피카소). 멀리 하얀 바다와 깎아지른 단애가 있고,돌상자에 뿌리를 박은 죽은 나뭇가지에 시계가 빨래처럼 걸려 있다.돌상자모서리에 걸려 있는 또다른 시계는 지금도 계속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중이다(달리). ○스페인 부의 집결지 이들이 보여주는 황당무계한 초현실적 세계인식.스페인에 가면 일부러 무엇을 보려고 애쓰지 않고,스페인식 상상력을 몸으로 느껴본다는 것이 내 전략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방법까지도 이미 스페인 자신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야의 판화 중에는,두 눈을 가린 백작부인이 이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기의 왼손을 사기꾼같은 남자에게 내맡기고 있는 그림이 있다.음흉한 속셈을 간신히 감추고 있는 남자에 반해,그의 떨거지들은 그녀의 미래가 송두리째 자기들의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에 대해 짓꿎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야는 그녀의 도도한 모험에 대해 이런 제목을 붙여놓고 있다. ­그녀는 「예」라고 말한다.그리고 자신의 손을 낯선 사람에게 내맡긴다. 오후 다섯시에도 햇빛은 베일 듯 강렬했다.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로 가는 길이었다.길 양쪽에 즐비한 상점들은 마드리드가 스페인 부의 집결지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했다.고급상품들이 진열된 진열장 앞엔 행인들의 발이 줄줄이 묶여 있었고,매장 안엔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마침 걸치고 있는 옷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참이어서 여성용 의류상점으로 들어갔다.소매없는 셔츠 하나를 고르고 그것을 입어보는 데는 적지않게 시간이 걸렸다.거침없이 어깨와 팔을 드러내놓고 거리로 나오니 태양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듯했다. ○인생의 즐거움 만끽 「아하!」여행중 내내 꼭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저절로 벙싯 열렸다.벼랑끝까지 따라가보리라.눈을 가리고 모험을 할 바에는 스페인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남은 문제는 무엇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느냐였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맞았다. ­친구여,스페인에서는 날 찾지 마라.몸은 곁에 있어도 마음은…아니,몸도 마음도 연기처럼 증발해버리더라도 부디 찾지 말기를. 그들은 시무룩하게 내 행색을 흘겨보았다. 푸에르타 델 솔은 끝이 빤한 아주 작은 광장이었다.그곳을 중심으로 10개의 방사선 도로가 뻗어나가는 까닭에 턱없이 사람들이 붐빈다는 것 외에 그럴싸한 입상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시민들이 약속을 할 때 징표가 된다는 마드리드의 문장인 곰상이나 시계탑조차도 인파에 묻혀버린 모양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맞비비고 있는데,벽을 쌓듯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꿈꾸듯 나른한 선율이 흘러나왔다.「아랑페이스 협주곡」「알함브라의 추억」.오래전부터 내 마음을 길 위로 이끈 선율이었다. 그들은 플루트·기타·베이스로 이루어진 3인조 악사들이었다.그밖에 굶주림과 외로움을 함께 해온 개가 있었다.기타 케이스에 떨어져 있는 두 장의 지폐와 몇닢의 동전들이 부끄러울 지경으로,연주는 진지했고,그 선율은 순수했다.선율에서 묻어나는 집시의 우수가 해 저무는 들녘쪽을 가리켜 보이는 듯했다. 나는 생각했다.집에 있는 플루트를 들고 저들을 따라나서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얼굴들뿐이었다.일행들은 저만큼 마요르광장쪽으로 가고 있었다. 펠리페3세가 1617∼1619년 사이에 완성한이 광장은 사방이 4층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세번이나 화재가 발생해 개조를 한 끝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옛날에는 왕가의 의식과 종교재판의 화형식이 이곳에서 행해졌고,그후엔 투우와 야외연극,성인식,정당대회 등이 열리는 장소로도 널리 쓰여왔다고 한다. 광장에선 네덜란드축제가 열리고 있었다.높이 뜬 노란 애드벌룬이 중앙에 있는 펠리페3세의 동상을 내려다보며 축제의 현수막을 펄럭였고,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천막 앞에는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꽃씨와 구근을 파는가 하면,통나무로 나막신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한편에선 6인조 밴드가 네덜란드 민속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광장 둘레에 즐비한 카페에는 관광객과 시민들이 음료를 마시며 축제를 멀찍이서 바라보았고,다른 한편에선 거리의 화가들이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무료하게 앉아 있는 화가에게로 다가갔다. 『1960년대만 해도 스페인은 서부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다.언제부터 이런 눈부신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는가』 『1975년 프랑코체제가 무너진 이후 스페인엔 자유선거,자유시장,자유언론이 가능해졌다.이제 당신은 이 도시 어디에서도 그의 기억을 되살릴 수 없을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메손에서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얘기하기를 즐긴다고 하는데,그러고도 어떻게 다음날 일을 할 수 있는가』 『일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희생시키지는 않는다.대화·음식·가족·우정을 중요시하는 것이 우리의 풍습이다.우리는 하루를 두번 산다.낮과 밤의 생활.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이방인의 생각이다』 카페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려 빈 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그들이 가진 가장 큰 컵으로 맥주를 시켰다.광장을 둘러보고 돌아온 K가 내 앞에 놓인 커다란 맥주잔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너 그거 다 마실 수 있어?』 『그럼.그리고 또 마실 건데』 해가 저물고 있었다.도시의 각 가정에선 여인들이 거울 앞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을 법했다.라벤더향기가 코끝을 스쳐가는 듯했다. 그런데 내 앞엔 무슨 건수가 일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동료는 내가 다 못마실 맥주에돈을 낭비하는 것마저 아까워하는 판이었다. 일행들이 아르고 데 쿠치예로스거리에 있는 「엘 쿠치」레스토랑으로 갔을 때였다. 『우리 오늘밤은 이곳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밤새도록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마셔보면 어떨까요?』 ○카페 빈자리 없어 나는 일행들의 염려를 묵살하고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트리스에게 음식이름을 늘어놓았다.생야채 혼합 샐러드,흰 강남콩과 생소시지,왕새우 철판구이,오징어튀김,정어리 소금절임,가다랭이 토마토졸임,석류소스를 친 피망구이,어패류와 고기를 함께 익힌 밥,그리고 맥주 10병이었다.밤새도록 먹기 위한 나의 이 과도한 주문은,『그걸 어떻게 다 먹으려고 그래?』하는 핀잔과 함께 대폭 수정되었다. 일을 좀 저질러보려고 몸살을 아무리 앓아도,분별력 있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매우 간소한 우리의 식탁 옆에서는 마드리드의 젊은이들이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유쾌한 담소에 여념이 없었다.그런데도 웨이트리스는 연방 그들의 자리로 새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한편에선 퇴근후 바를 순회하는 사람들이 카운터에 선 채로 올리브를 안주삼아 가볍게 한잔씩 하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예」라고 대답할 태세가 갖추어져 있음에도,손을 잡아줄 그 무엇이 좀처럼 나타나주지 않았다.그것은 분별력 있는 동료들 탓이기보다,그림 속의 백작부인처럼 눈을 가리지 않은 내 탓인지 몰랐다.나 자신의 분별력이 결코 눈을 감지 못하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라나다에서 나는 마침내 일을 저질렀다.
  • 강명도·조명철씨가 밝힌 「후계자의 사생활」

    ◎“김정일성격은 급하고 저돌적”/「곁가지」 제거에 신경… 도마다 「기쁨조」 운영/세여인 사이 3남3녀… 23살 장남도 방탕 김정일의 성격은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인 편이며 건강도 아주 좋다고 귀순자들은 밝히고 있다. 북한 정무원 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씨(36)는 27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의 성격과 관련,『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할 정도며,시시때때로 성질이 왔다갔다해 북한에서는 김정일을 「패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김정숙)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 우는등 눈물도 많다고 했다. 전건설부장 조철준의 차남이자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인 조명철씨는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 졸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를 않는다고 강씨는 밝혔다. 83년 강씨의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는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밝혔다. 또 허답의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은 졸업뒤 선전선동부에 근무했으며 전문가 이상으로 피아노를 잘치는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밝혔다. 한편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그녀의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한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또 권력서열 2위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고 밝혔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 출신의 고영희(40)이며 고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정일 후계 승계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를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다는 강씨는 당시 김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특히 전쟁시 사용하기위해 홍콩의 마카오를 비롯,스위스·오스트리아·일본은행등에 외화를 넣어두고 있다고밝혔다. 강씨는 김정일 체제의 수명과 관련,『20년전부터 정치를 시작,85년부터는 사실상 정권을 총지휘해 온데다 당정의 조직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면서 『사실상 김정일은 총비서와 주석직을 다 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씨는 그러나 경제의 70%가 파탄에 이르러 경제및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주민들의 불만고조로 어려운 지경에 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일성의 이종… 북 대표적 개방파/「사위 귀순」 강성산은 누구 귀순자 강명도씨(36)의 장인인 강성산정무원총리는 현재 북한 권력서열 3위에 올라있는 실세인데다 두번째 총리를 역임하고있는,김정일의 핵심측근.지난 8일 사망한 김일성의 모친인 강반석의 큰 언니 아들이어서 김일성과는 이종사촌관계. 올해 63세인 그는 북한 경제 테크노크라트의 대표주자이며 김달현등과 함께 북한내 몇 안되는 개방파 인물. 함경북도 청진시 출생으로 만경대 혁명학원과 김일성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뒤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체코의 프라하공대에 유학하는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67년 자강도 당책임비서로 임명된데 이어 70년 39세에 평양시당 책임비서로 발탁돼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김일성부자의 각별한 신임으로 77년 정무원 부총리에 전격 임명된 이후 84년 최고인민회의 7기 3차회의에서 제1부총리자격으로 「남남협력과 대외경제활동을 강화하고 무역활동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대하여」라는 주요보고를 한뒤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이해 9월 합영법과 외국인소득세법등 개방정책관련법들을 마련하는등 광범위하고 파격적인 개방준비에 박차를 가했다.그러나 경제개혁이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86년12월 총리직에서 해임돼 당비서로 자리를 옮긴뒤 88년3월 전직총리로서는 이례적으로 함북도당 책임비서로 일했다. 그는 여기서도 두만강개발계획을 창안하는등 개방을 계속 추진해왔으며 그의 이같은 경제개혁추진능력은 김일성으로부터 공개적인 칭찬을 받았고 92년 12월 총리로 재기용됐다. 사위의 귀순이 그의 정치적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 연계활동 주목받는 남북 두단체

    ◎사노맹/주사파 배후… 조직 재건한듯/사로청/김정일체제 핵심 전위조직 ◎사회주의혁명 목표… 92년 핵심 검거/사노맹/7∼30세 젊은층 관리… 사상 주입활동/사로청 박홍 서강대총장이 주사파 학생들이 남한의 좌익조직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로맹)을 통해 북한 사회주의노동자청년동맹(사로청)의 지시를 받아 활동하고 있다고 폭로함에 따라 사로맹과 사로청의 실체와 조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사파」의 국내 배후조직으로 지목된 사로맹은 92년 4월 공안당국에 의해 백태웅(구속중·전서울대총학생회장),박기평(구속중·필명 박노해)등 핵심인물 39명이 일망타진된 이후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로맹은 89년 11월 28일 출범 이후 와해될때까지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통해 남한을 사회주의 국가화한다는 목표아래 2년여동안 한때 조직원이 3천5백여명에 달할 정도로 남로당이후 최대의 반국가좌경지하단체를 구성,전국의 학원및 노동현장에서 암약했다. 이 조직의 뿌리는 86년 5월 구성된 반국가단체 「제헌의회그룹」(CA)이며 출범선언문등에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의 건설과 궁극적으로는 북한정권과 연공통일을 노골적으로 밝혀왔었다. 당시 수사에서 사로맹이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해온 사실은 밝혀내지 못했으나 북한등 국제사회주의 세력과 연대를 모색한 사실은 드러났다. 사로맹은 백태웅등 핵심인물의 구속으로 와해된 뒤에도 잔존세력에 의해 꾸준히 조직복원을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공안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주사파는 사로맹­사로청­김정일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는 박홍총장의 주장과 관련,검찰공안관계자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와 1천만 노동자를 주축으로한 사회주의국가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로맹의 노선에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고 밝히고 『현재로서는 주사파와 사로맹의 연계및 배후조종혐의가 파악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사로맹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로청은 회원수만 5백여만명을 웃도는 북한 최대의 정치단체로 김일성 사망 발표 사흘만인 지난 11일 사로청 위원장 최용해가 김정일에대한 충성을 선언할 정도로 김정일후계체제 강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김정일의 「핵심전위조직」이다. 사로청은 구소련의 「콤소몰」(공산주의청년동맹),중국의 「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단)과 같은 청년조직으로 46년 2월 창설된 「북조선 민주청년동맹」(민청)의 후신이다. 만 14∼30세 사이의 청소년및 청년들은 이 단체에 의무적으로 가입토록 돼있는데다 만 7∼13세의 소년단도 실제 이곳에서 관할함으로써 결국 7∼30세 사이의 모든 젊은이를 사로청이 통합,관리하고 있다. 사로청의 주요사업 내용은 청년들을 당적 사상체제로 무장시켜 예비당원을 길러내고 산업현장에서 노역을 선동하는 동시에,남한 각계각층 청년과의 통일전선을 강화,반미자주화와 통일투쟁을 벌이고 김정일 후계체제를 강화하는 것 등으로 돼있다. 사로청에는 중앙조직으로 조직부·국제부·소년단·사업부·학생청년부·체육부·노동청년부·재정정리부 등의 부서와 노동청년신문사 및 사로청 출판부를 산하에 두고 있으며 지방조직으로는 도·시·군·초급단체 지부와 군지부를 두고 있다. 사로청 위원장은 전인민무력부장 최현의 아들인 최용해로 그는 지난해 2월 8차사로청 대회에서 『당과 수령을 견결히 옹호·보위하는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자』고 충성을 맹세한 데 이어 지난 11일 『우리는 오늘 이 비통한 마음과 크나큰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영도를 충심으로 높이 받들어 나감으로써 김일성 수령님이 개척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할 것이다』고 충성서약을 했다.
  • 대 물리는 가업(이탈리아 중소기업 탐방:16)

    ◎가족기업이 80%… “오순도순 경영”/“아버지는 사장·장남은 영업” 역할 분담/의사결정 빠르고 마찰 없어… 능력따라 딸이 사장되기도 이탈리아 북부의 교통 요지 베로나에서 여성 옷을 만드는 스티졸리사는 「아지엔데 파밀리아레」이다.가족들이 회사를 경영하는 「가족 기업」이란 뜻이다. 창업주인 아우렐리오 스티졸리 사장은 전반적인 경영을 맡고 장남인 알베르토는 영업을 책임진다.둘째인 아틸리노는 총무를,첫딸이자 셋째인 엔리코는 컴퓨터 및 섬유연구를,막내인 니콜라는 디자인을 각각 책임진다. 총 근로자 80명 중 관리직은 10여명.경리,비서 등 실무직 사원 5명을 빼면 가족들이 회사일을 모두 꾸려 나간다.지난 45년 속옷 생산업체로 출발할 때부터 철저한 「가족주의」였다. ○정으로 똘똘 뭉쳐 이탈리아의 중소기업들은 가족 경영이 보편화돼 있다.중소기업 협회에 등록된 업체 8만5천여업체 중 80%는 가족 기업이고 등록하지 않은 소규모 기업들까지 합치면 실제 비율은 90%를 넘는다고 한다.대부분 가족 이름을 상호로 쓰며 「정」으로똘똘 뭉쳐,경제계 「신로마 군단」의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창업 2세들은 어려서부터 직장이 정해져 있다.큰 아들만 경영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딸을 포함해 사위까지 모든 가족이 경영 일선에서 일한다.4대가 함께 일하는 곳도 숱하고 장자가 꼭 대를 잇지도 않는다.자질만 뛰어나면 딸이나 사위도 사장이 될 수 있다. 가족 기업은 의사 결정이 빠르고 경영층간에 마찰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또 가족끼리 업무를 분담,전문성을 살리면서도 의사 결정에는 총체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특색이다.그러나 근로자의 내부 승진이 어려워 생산 욕구가 떨어진다는 점,소유와 경영이 나눠지지 않아 전문 경영인의 영입이 어렵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이런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가족기업과 전문 경영인제를 혼합하는 기업이 있으나 일부에 불과하다.아직은 가족 경영이 큰 줄기이다. ○4대가 한 일터에 스티졸리사의 알베르토씨는 『어려서부터 이 곳에서 일할 생각을 가졌으며 대학에서도 이를 전제로 회계학을 공부했다』며 『가족들이 함께 일하니 호흡이 잘맞고 경영에 큰 잡음이 없다』고 말했다.사장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인사는 아버지의 고유 권한이라고 덧붙였다. 메다에서 3세에 걸쳐 전통 가구를 만드는 메데아사 역시 가족 기업이다.조반니 달리아부에 사장은 최근 경영에서 물러났다.장남인 체사르가 총괄하고 둘째인 엔리코가 재정과 생산을,셋째인 아우구스트가 영업을 담당한다. 엔리코씨는 어렸을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고등학교에서는 회계를 배웠다고 한다.『다른 일을 할 생각도 시간도 없었다.10살때부터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했으며 형이나 동생도 마찬가지 였다.가족이 함께 일해 사업계획을 짜고 비밀을 지키는 데 편리했다』고 말했다. 밀라노의 신발 생산업체 로렌조 반피사의 반피 사장은 『현재 큰 아들 루카가 영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둘째 주니어 로렌조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며 『공부가 끝나는 대로 경영에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경영의 분업화가 요구되며 더 많은 경영인들이 필요하다』며 『반피사는 세계적 규모의 토털 가죽업체를 지향하기 때문에 2명의 경영인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전문 경영인을 키울 포부도 밝혔다.가족 기업을 지향하면서 단점을 보완하겠다는 생각이다. ○내부 승진 어려워 설립된 지 20년 안팎으로 규모가 상당히 커진 기업들은 이같은 생각을 많이 한다.반피사도 지난 79년 설립됐다.이탈리아 섬유산업연합회 안젤로 파비아 회장은 『이탈리아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지 않는다.동양인 못지 않게 가족간 유대가 좋은데다 가내 수공업체들이 그대로 현대 기업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라며 『가족의 변천사가 바로 기업의 성장사다』라고 말했다. 밀라노에서 가방을 만드는 이산티사가 좋은 경우이다.현재 회장인 아마토 산티는 지난 46년 가죽가방공장의 직원이었다.그의 아버지 역시 가방 만드는 장인이었으며 어머니 또한 같은 곳에서 일했다. 이듬 해인 47년 아마토 회장은 자기가 영업을 맡고 부모는 생산을,삼촌은 관리를,부인 디바는 회계를 맡아 가족 경영의 깃발을 세웠다. 50여년이 흐른 지금 아마토는 경영을 맡고 장남인 마시모는 수출,며느리 안나와 큰 딸 에디드는 내수,사위 지노는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회장 부인 디바는 여전히 회계를 담당하고 막내 딸 수잔은 마케팅과 광고를 할당,전가족이 경영 일선에서 뛰고 있는 셈이다. 최근 경영 수업을 받는 마시모는 『대화의 벽이 없다는 게 가족 경영의 큰 장점이다.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잘잘못을 엄중히 따지고 서로의 의견을 부담없이 개진,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는다』며 『그러나 경영층으로의 승진이 막혀 근로자의 의욕이 떨어지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하오 6시에 근로자가 모두 퇴근하는 데도 산티 가족은 하오 9시까지 남아 하루 일을 정리하고 있었다.남성 정장업체 히트만사의 루이지 시스티 기술고문은 『형제 자매인 경영층끼리의 협조 관계를 노사간 협력체제로 바꾸고 소유와 경영을 어느정도 분리,일반 근로자도 열심히 일하면 회사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 혁명 2세대 「3인방」·「80그룹」이 직계/김정일의 군부인맥

    ◎오극렬·김강환·김두남… 대장급 실세/3인방/이봉원등 80년이후 급부상한 브레인/80그룹/혁명 1세대 제거 시도땐 큰혼란 올듯 김일성의 사망 이후 김정일이 원만하게 권력을 세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공산사회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택동의 말처럼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군부의 장악이 선결조건이다. 과연 김정일은 북한군부에 어느만큼 영향력을 지니고 있을까. 김정일은 현재 당국방위원회 위원장과 군최고사령관직을 함께 맡고 있다. 김일성이 생존 당시 부자권력세습을 위해 미리부터 아들에게 군요직을 이양,군부를 장악할 수 있도록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은데 힘입은 것이다. 김정일은 이에 따라 현재 북한군부에서 많은 지지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일이 군부에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25일 인민군창건 60주년 기념행사때부터.이 행사에서 북한군부는 김정일에 대해 『위대한 군사전략가이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송하고 김정일에게 북한군 최고 계급인 원수를 부여했다. 김정일은 이어 지난 4월21일 인민군총참모장 최광,사회안전부장 백학림,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 김광진과 국방위 위원인 이을설,김일성 군사종합대 총장 최인덕,국방위 위원 이두익·김봉율등 8명의 대장을 차수로 승진시켰다. 이어 4월23일 「군최고사령관 명령 제 0024호」를 발령,인민무력부장 오진우원수와 이들 차수에게 직접 계급장을 달아주는등 모두 6백64명의 군장성에게 계급장을 수여했다. 김정일이 북한군 최고지도자 위치를 굳힘에 따라 북한군 내부에는 그의 측근들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 인맥의 선두주자는 오극렬 당 민방위부장(대장·63)·김강환 당 군수부장(대장·61)·김두남 전당 군사부장(대장·63)등 이른바 3인방이다. 이들은 김정일처럼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으로 소련에서 유학한 혁명 2세대들이다. 3인방에 이어 최근 새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들은 군총정치국 조직담당 부총국장 이봉원(65)·해군사령관 김익철(65)·공군사령관 조명록(68)·포병사령관 최상욱·당군사위원 오용방등 「80그룹」이다. 「80」그룹은 80년 김정일체제가 본격 출범하면서 군부 전면에 등장했다. 이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이봉원으로 86년 12월 상장(중장)으로 진급해 당차원에서 군을 통솔하고 있으며 최근 군정책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군부를 완전장악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오진우·최광·이을설·백학림등 빨치산출신의 군원로들이 군부의 최고위층을 형성하고 있어 김정일이 섣불리 혁명1세대를 제거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보내는 혁명2·3세대로 물갈이를 시도할 경우 군부내에 큰 혼란이 초래될 전망이다.
  • 세계 자연재해감소회의 개막/1백30개국 참가… 예방·경보체제 논의

    ◎27일까지 요코하마서 【도쿄 AFP UPI 연합】 전세계 1백30여개국의 전문가와 관리들이 참석한 제1차 세계자연재해 감소회의가 23일 일본 요코하마 근교에서 개막돼 자연재해에 의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 감소방안에 관한 논의에 들어갔다. 유엔 후원하에 오는 27일까지 5일간 열리는 이번 회의에는 2천여명의 관리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자연재해 발생시 인명구조를 위한 예방조치와 경보체계 등을 논의하게 된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이날 위성중계를 통한 화상 개막연설을 통해 자연재난에 취약한 제3세계 국가의 재해예방 방안 개발에 국제사회가 박차를 가해줄 것을 촉구했다. 유엔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까지 특히 아시아지역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는 자연재해로 인해 금세기들어 4백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손실과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자연재해는 홍수이며 그 다음이 열대성 폭풍·가뭄·그리고 지진인 것으로 나타났다.
  • 「흑백동거」 과도연립체제 불가피/남아공 총선이후 정국전망

    ◎국민당 약진… 만델라 권력배분 나설듯/흑인 욕구·극우파 이해 충돌땐 “험로” 최초의 흑인대통령 탄생이라는 기대속에 진행되고 있는 남아공 전인종총선 중간개표에서 예상대로 넬슨 만델라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큰 표차로 선두를 고수하고 있어 3백42년만의 흑인정권시대 개막이 확실시되고 있다. 개표가 38%가량 진행된 2일 하오 현재 ANC는 5백24만여표를 얻어 60.4%의 득표율을 기록,2백20만여표로 25.2%의 득표율에 머무르고 있는 국민당을 3백만표 이상 앞지르고 있다. 이밖에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IFP)과 극우보수 백인세력인 자유전선(FF),전통적인 백인의 자유민주당,범아프리카회의등이 그 뒤를 쫓고 있으나 대부분 내각참여에 필요한 득표율 5%를 넘지못할 것으로 보여 ANC의 집권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따라 오는 6일의 공식 개표결과 발표를 남겨두고 있지만 ANC는 사실상 승리가 확정된 것으로 판단,기존 백인정부와 정권이양 협상에 들어가는등 5년간의 과도정권을 이끌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개표과정을 볼때 ANC의 집권에는 몇가지 변수가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번 총선에서 ANC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당초 전망과는 달리 백인인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현대통령의 국민당이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득표율을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ANC는 예상대로 9개주 가운데 7개주에서 52∼80%에 이르는 득표율을 보였으나 백인거주지역인 웨스트 케이프 지역에서는 국민당이 60%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ANC를 크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함께 줄루족의 거점인 콰줄주 나탈지역에서는 망고수투 부텔레지가 이끄는 IFP가 55% 가까운 지지를 얻어 ANC와 국민당을 크게 앞섬으로써 나름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지기반을 갖추게 됐다. 이에따라 ANC는 일정기간 국민당과 동거정부를 구성,권력공유를 통한 인종·계층간 화해와 국민 대단합을 적극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총선 기간중 데 클레르크 대통령이 『총선결과에 따라 부통령직을 맡을 준비가 돼있다』고 말한데서 이같은 가능성은 충분히 감지된바 있었다. 또한 새정부가 제3세력으로 등장한 IFP를 제도권정당으로 묶기위해 일정 지분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선거승리로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2명의 부통령중 1명을 야당에서 지명하게 돼있는 과도헌법의 규정에 따라 뜻밖의 권력연립이 이루어질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총선이후 전망과 관련,전문가들 사이에서는 ANC와 국민당의 균열이나 IFP가 폭력투쟁으로 돌아설 가능성에 대한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는 ANC의 집권이 사실상 국민당의 양해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에서 새정부가 백인 기득권층의 이해와 정치·경제적 노하우를 포용하지 않을수 없으며 이것이 뿌리깊은 흑인사회의 피해의식과 충돌할 경우 국정운영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할수 있다는 것이다. IFP문제에 있어서도 총선전 만델라와 데 클레르크,부텔레지등 3인이 합의한 ▲콰줄루 자치권 확대 ▲줄루족 부족왕의 상징적 지위 보장 ▲총선후 개헌논의등 3개항이 원만히 이행되지 못할 경우 IFP가 또다시 폭력투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탄생할 만델라 정권은 가난과 불평등을 일거에 해결해주기 바라는 흑인사회의 염원을 해결하기에 앞서 치열하게 전개될 정파간 줄다리기를 극복하고 남아공 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2년후의 최종헌법 제정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다.
  • 백제인의 도교사상(백제를 다시본다:6)

    ◎금동향로에 「불로장생의 신선관」 재현/풍요로운 경제생활… 느긋한 심성반영/궁남지섬을 신선 사는 방장산에 비유/“불종율령” 무령왕릉 지석은 웅진시대 도교신앙 입증하는 귀중자료 백제인의 성정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지형적,지리적 입지조건이다.백제는 고구려나 신라처럼 산악지대를 터전으로 하여 자라난 나라가 아니었다.삼국 중 백제는 가장 넓은 평야지대를 끼고 있었고 또한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안선은 중국을 향해 거의 무방비상태로 개방되어 있었다.백제가 농업생산력이나 대외교역면에서 선두를 차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이것은 백제 역사의 전개에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짐승과 화초 길러 백제인의 느긋한 심성은 결국 여유있는 경제생활의 산물이었던 것 같다.오늘날 남아 있는 백제시대 유적이나 미술품을 대하면서 우리들이 한결같이 감명을 받는 것은 그들이 진정 풍류와 멋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사비도성의 진산인 부소산성 동쪽 산봉우리에는 영일루가 있었는데 왕과 신하들이 멀리 계룡산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았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실로 이곳에서는 계룡산 연천봉과 남쪽으로 가림산성(성흥산성),구룡평야 등 훌륭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또한 백제 지배층은 부소산성 바로 밑을 흐르는 금강을 마치 하나의 내해,호수쯤으로 생각하여 이곳에서 북과 거문고를 타며 연유를 즐겼다. 백제인의 풍류와 멋을 잘 보여주는 것은 그 궁원문화이다.「삼국사기」를 보면 백제가 왕궁에 연못을 파서 즐긴 것은 한성시대인 진사왕7년(391년)의 일이었다.이때 궁실을 중수하고 못을 파서 인공산을 만들어 이상한 짐승과 화초를 길렀다고 한다.그뒤 웅진시대인 동성왕22년(500년)봄에도 궁성 동쪽에 높이가 다섯 발이나 되는 임류각을 세우고 못을 파서 진기한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현재 부여에 남아 있는 궁남지는 사비시대의 전성기였던 무왕35년(634년)3월에 물을 20여리나 끌어들여 만든 것이었다.기록에 의하면 못언덕에는 사방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속에 인공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에 비겼다고 한다.뒤에 못가에 망해루를 지어 궁중 연회장소로 이용했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백제에 도교사상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증언해 준다.고대 중국의 도가사상에서는 특히 불로장생설이 유행하여 동해(우리의 서해)의 삼신산에 신선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신선이 사는 세개의 산이 바로 방장산과 봉래산,그리고 영주산이다.그러니까 궁남지에 만든 인공섬을 방장선산으로 여겼다는 것은 도교사상의 영향임에 틀림없다.사실 도교사상은 비교적 일찍부터 백제에 들어온 듯하다. 한성시대의 근소고왕은 남쪽으로는 마한을 정복하고 북쪽으로는 황해도방면에서 고구려군대를 크게 무찌른 일세의 정복군주였다.근초고왕 24년(369년)장군 막고해는 승전의 여세를 몰아 북진을 계속,마침 수곡성(황해도 신계)북쪽에 이르렀을 때 태자 근구수에게 더 이상의 추격을 중지할 것을 건의했다.막고해는 태자에게 이르기를 「일찍이 도가의 말을 들으니,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그칠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했습니다.지금 얻은 것이 많은데 어찌 다시 구할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했다.이로 미루어 볼때 당시 백제의 지배층 사이에서는 노자의 「도덕경」이 읽혀졌던 것 같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지석은 웅진시대 백제의 도교사상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즉 무령왕비의 지석 끝에 음각된 매지문에는 「불종율령」(율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란 문구가 있는데 이는 도사들이 주문을 외울때 마지막 대목에 으레 따라붙은 「급급여율령」이란 구절을 백제식으로 고친 것으로 짐작된다.하긴 도교 용어가 보인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도교사상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일지도 모른다.학계 일각에서는 이 매지권의 사상적 근거를 유교사상에서 찾고 있다. ○도교제도를 제정 그렇지만 지석과 함께 출토된 두개의 구리거울,즉 의자손수대경과 방격규구신수경의 명문에 「상유선인 불지로」(위에 선인이 있어 늙음을 모른다는 뜻)라는 문구가 있는 점을 아울러 고려할때 역시 「불종율령」이란 문구는 6세기초 도교신앙의 실태를 엿볼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본래 도교는 중국의 민간신앙에서 나온 종교이다.거기에는 음양오행설이나 신선사상,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노장의 은둔사상등 갖가지 요소가 뒤섞여 있다.그것이 남북조시대인 5세기경에 불교의 자극을 받아 경전과 사원(도관)이 만들어지고 전문 사제직으로 도사제도가 제정되면서 정식 도교로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백제에 도교의 요소는 침투해 들어왔다고 생각된다.장군 막고해가 「도덕경」을 인용한 것은 그 단적인 증거이다.불로장생과 현세에서의 부귀와 향락을 추구하는 도교는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널리 유포되었다.당시는 삼국간의 항쟁이 격화된 때였으므로 도교는 불교와는 다른 측면에서 백성들에게 안심립명의 위안을 주는 심리적 효과가 컸을 터이다. 도교사상은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긴 백제인의 기질에 잘 들어맞는 점이 있었다.더욱이 지배층이나 일반국민은 가릴것 없이 장기간의 전란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던 만큼 장생불사하면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도교의 가르침은 그 자체 유토피아사상에 다름 아니었다.사비시대에 불교와 더불어 도교가 크게 융성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그리하여 그것은 의장이나 제작 기법으로 볼때 도교적 요소가 짙은 궁남지와 같은 정원문화를 창출하게 되고 또한 독자적인 조형미술을 꽃피우게 했다. ○조형미술 꽃피워 오래 전에 부여군 규암에서 발견된 이른바 산경무늬 벽돌만 해도 품자형의 세 봉우리가 중첩하고 산 밑에는 암석이 돌기,산 위에는 수목이 총립,한 가운데는 집 한채,오른쪽에는 도사로 짐작되는 한 사람이 새겨져 있다.이는 분명히 삼신산과 도관,도사를 표현한 것으로 그자체 유현한 도교적 세계관이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지난해 연말에 기적적으로 발견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는 사비시대 백제의 도교신앙을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이 향로의 몸체를 덮고 있는 뚜껑부분은 삼산형의 문양장식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다시 다섯개의 산을 들리고 산꼭때기에 앉아있거나 날아가는 새모양을 조각해 놓았다.바로 도교의 삼신산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 향로를 명명함에 있어서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을 부가한 것은 적절하다고 하겠다.실로 이 금동제향로는 사비시대 도교의 풍부한 상상력과 환상적 표현주의가 한껏 발휘된 최고의 명품이 아닐수 없다. ◎6세기 고구려에 처음 들어와/삼국유사에 기록… 한때 유교·불교보다 우위 도교의 본바탕은 신선사상이다.거기에 노장사상과 유교·불교와 함께 민속신앙의 여러 요소들을 수용하여 종교로 발전한다. 신선사상은 기원전 3세기쯤 중국에서 생겨났다.산악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신선사상은 결국 도가사상으로 태어난다.이 도가사상은 도교가 종교형태를 띠고 나타나기 이전에 존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그래서 도가사상은 도교가 흡수,조절한 주요 사상이기는 하나 본래부터 도교가 도가사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도교는 5세기 쯤에 불교의 체제와 조직을 모방,비로소 종교형태를 갖춘다.도교가 추구하는 궁국적인 목적은 불로장생이다.특히 그 원류가 신선사상에 연결되어 건강관리를 중시하게 되었다.결국은 질병치료에서 불로장생에 이르는 도교의학을 성립하는데,그 극치가 이른바 김단이다.특히 금단에서 이끌어낸 물리화학적 방술의 단학을 도법 수련의 한 방편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에 도교가 들어온 기록은 삼국유사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AD624년(영류왕7년)에 당나라 고조가 도사를 파견,천존상을 보내고 「도덕경」을 강론케 함으로써 영류왕이 나라사람들과 같이 들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그 뒤에 AD640년 실권자 연개소문의 건의로 당나라로부터 도사 8인과 「도덕경」을 다시 구해와 도교를 유교와 불교보다 우위의 종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 가운데 백제에 대한 도교유입기록은 거의 없다.백제의 경우 도교적 정황이 약간은 풍겨왔다.그런 가운데 충남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백제 도교의 실상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는 주요자료로 부상했다. 어떻든 도교는 삼국과 고려를 거쳐 조선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평정과 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종교로 이해되었다.
  • 세계화와 지방화/최혜성 통일원 상임연구위원(굄돌)

    소련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종언은 금세기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다.20여년 전 소련의 한 반체제인사가 「소련은 1984년까지 살아 남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이야기는 소설에나 나올 법한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지만,소련은 이미 해체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러시아 혁명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공산주의는 세계를 휩쓸어버릴 것 같았다.이 강력한 신념체계는 한때 유럽의 노동운동을 고무하였고,중국혁명에 불꽃을 댕겼으며,제3세계의 지식인들과 정치지도자들에게 새로운 사회발전 모델로 신봉되기도 했다.그런데 지금 그 강렬했던 공산주의는 파멸하고 말았다. 냉전시대의 초강대국 미국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만화 「슈퍼맨」을 출판해온 DC코믹사는 1992년에 「슈퍼맨」의 폐간을 결정하였다.공산주의권 몰락 이후 「슈퍼맨」의 소재가 떨어져 회사가 경영난에 처했기 때문이다.정의의 투사 슈퍼맨도 「악의 세력」이 사라지고 나니 죽음을 맞은 것이다.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다.「미국의 세기」라는 말은 「타임」과 「라이프」그리고 「포천」지를 소유했던 대언론재벌 헨리 루스가 2차대전중에 만들어 유포시킨 말이다.이 말은 20세기에서의 미국의 세계적 위상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그런데 소련에 맞서 서방진영의 「슈퍼맨」으로 군림해온 미국도 맞수 소련이 붕괴되자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것같다.「미국의 세기」는 이제 서서히 종언을 고하고 있다. 이처럼 팽팽하게 힘을 겨루던 세계의 두 중심부가 흔들리면서 국제질서는 냉전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탈냉전의 세계적 변화의 흐름은 탈중심화로 향해 가면서 다시 새로운 통합으로 이어지고 있다.통합과 탈중심화의 세계의 모습은 국제질서에서 뿐만 아니라 한 국가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중앙의 통제가 약화되는 가운데 그동안 소외되었던 지방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오늘날 근대적 국민국가는 안팎에서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이중의 도전앞에 놓여 있다.
  • 무한경쟁시대 대학의 전략(교육 개혁해야한다:19)

    ◎“세계화·개방화 파고”… 「고품질의 교육」이 푼다/외국어·세계지역사회 연구 대폭 강화/경쟁력 제고… 인류 평화­발전 기여토록/“대학은 국가·사회·민족의 요체”… 「종합평가」 실시로 자율·효율성 높여야 김영삼대통령은 지난달 초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새해의 국정목표를 국가경쟁력 강화에 두겠다』고 밝히면서 「세계화·국제화시책의 추구」를 6대 국정운영방안의 하나로 삼겠다고 천명한바 있다. 김숙희교육부장관도 지난달 말 대통령에게 업부보고를 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혁신을 이룩하는데 모든 교육역량을 집중시키겠다』고 교육정책의 대강을 피력했다. 지난 5일 대통령 직속기구로 공식출범한 교육개혁위원회 이석희위원장 역시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도덕률·과학기술·어문교육에 중점을 두고 교육개혁의 장단기 청사진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어느새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국제화·개방화의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물결에 휩쓸려 가고있는 것이다. 즉 세계화·국제화·개방화는 이제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따라서 미래지향의 사회에서 교육의 역할과 기능은 그만큼 커져 가고 있다. 교육분야의 세계화 과제를 집중조명해 본다. ○다원주의가 보편화 ▷세계화 교육◁ 교육을 통해 배출되는 인력들이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국제경쟁을 통해 이기고 한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한편 세계사람들과 공존공영의 길을 트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교통·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세계가 일일생활권화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무대와 배경이 이제까지의 국가단위에서 지역국제단위·세계단위로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는 여러가지의 문제들이 세계적인 성격을 띠게 되며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실례로 핵·환경오염·인권·군축·무역시장개방·평화·발전등이 바로 세계적인 문제들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화 사회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서 이처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가치와 이해관계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제화와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철학·사상·인종·언어·경제·문화·교육등 사회 각 부문에서 다원주의를 요구하고 있어 그동안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단일민족·단일언어·단일문화를 오랫동안 형성해온 우리에게는 상당한 당혹감을 안겨 주고 있다. 지난 92년 LA사태 당시 흑인들이 한국교포들에게 가했던 폭동은 한국이 국제화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또 경제의 대외의존성이 갈수록 높아감에 따라 우리기업의 해외현지법인 진출이 급증하고 있으나 중남미와 동남아등지에서 현지 문화에대한 이해부족과 외국어구사능력의 부족,관용의 부족,저개발국에 대한 편견등으로 갈등과 알력이 심각하게 일고 있는 것도 세계화과정의 심각한 진통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른 국내시장의 개방압력 역시 세계화 과정의 과도기적 현상이다. 해외여행자유화 바람을 탄 여행자들이 무분별하고 몰상식한 언행으로 빈축을 사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땅히 교육을 통해 풀어야 할 과제들이라 할 수 있다. ○3세계와 교류 증대 그러면 한국 교육의 세계화·국제화 과제는 과연 무엇인가. 종전에는 교육을 통해 배출되는 인력이 국내상황에 적응하고 국가사회의 발전에 공헌하기만하면 대충 되었다. 그러나 국제화시대의 교육을 통해 배출되는 인력은 국제사회에서 경쟁하여 국가적 이익을 관철할 수 있어야 하며 단지 국가에 대한 의무뿐만 아니라 지역국제사회와 세계사회의 발전과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서울대교수 차인석박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과제를 꼽고 있다.첫째로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인적·물적요소를 개선하고 영재교육과 고등교육의 질적 우수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특히 대학교육의 질향상 방안으로는 ▲대학기능의 분화와 특성화 ▲교육과 연구의 질을 대학 스스로 확보·신장 ▲정부·기업·학과간·다른 대학등과의 다각적인 연계체제 수립 ▲자율적인 관리체제의 수립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다양화등을 꼽을 수 있다.한국교육 전반에서는 낙후되어 있는 외국어교육의 개선과 지역국제사회 연구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둘째로 우리 문화전통에 대한 교육과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주체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급속히 진행되는 국제화 속에서는 일면 국가와 정부 및 민족의 개념이 약화되어 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지배적인 문화와 더 경쟁력 있는 경제가 하위문화나 경쟁력이 약한 경제를 편입시켜 나가는 갈등현상이 내면적으로는 강화되어 가고 있으므로 민족문화와 민족정체성·주체성에 대한 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3공·5공시절의 문화적 국수주의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문화 전통을 너무 빨리 상실하여 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으므로 교육을 통해 가닥을 바로잡아 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문화적 전통과 민족주체성을 갖추지 못한 국민이 전통과 주체성으로 단단히 무장된 국민들과 경쟁하여 이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로 국제사회에 대한 이해·협력과 평화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 언어와 종교·사고방식·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살아 가며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차박사는 『선진국·우방국 위주의 기존 국제이해 교육에서 벗어나 제3 세계권 또는 저개발국과의 보다 적극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그들에 대한 지역연구도 활성화되어야 한다』면서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증진에 기여한다는 뜻에서 세계문제의 해결에 동참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의 국제경쟁력 제고◁ 21세기는 정보·통신·기술·문화 및 가치등의 변화에 따라 자국중심체제에서 벗어나 세계화의 추세가 지배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대학 국제경쟁 치열 따라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21세기는 「국가대학」에서 「세계대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 이현청박사는 『대학은 국가·사회·민족의 요체이므로 대학이 세계화·국제화의 첨병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고 강조하면서 『세계는 공통의 문화와 공통의 교육이 일반적 현상으로 확산될 것이며 이러한 흐름에 따라대학도 국제화와 개방화·탈제도화·다양화의 특성을 지니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학의 고객은 바로 학생이라 할 수 있는데 21세기 대학의 특징은 「고객중심 대학」「고객중심 교육과정」「고객중심 체제」가 예측된다는 견해이다. 이에 따라 대학은 교육의 질과 전문성에 의한 국제경쟁 과정을 거치게 되고 상호경쟁체제 속에서 생존전략을 짜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것이다. 고객중심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기존의 사고방식과 교육프로그램 및 운영방식을 고수하는 경직된 체제 아래서는 대학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구변화 추이와 대학의 정원증원 규모를 살펴보면 21세기에 들어 곧 대학정원과 대학지원자수가 비슷해져 대학들간에 학생유치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서 교육의 질과 내용이 대학의 생존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임은 필연적이다. 또 국제경쟁에서 뒤지면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대학교육이 특정국가·특정문화에 예속되는 현상이 심화돼 자칫하면 「국적없는 교육」으로 「국적없는 인간」을 배출할 우려도 있다. ○내부개혁해야 생존 반면 대학의 국제경쟁화는 대학의 개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육내용을 다양화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외국대학의 분교가 확산되고 우수 대학들이 앞을 다투어 상호협력프로그램이나 공동학위과정·프로그램협약·특정분야 공동운영·학위 및 인적교류 등을 활발히 할때 일부 후발대학이나 지방소재 대학들은 존립 자체가 흔들려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므로 앞으로 대학의 운명은 국제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대학종합평가인정제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대학종합평가인정제는 ▲각 대학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선의의 경쟁을 부추기며 ▲획일주의와 중앙집권적 성향에서 탈피,자율성과 효율성을 신장시키는 장점이 있어 그 활성화 방안이 절실하다. 그러나 대학종합평가 인정은 정부주도가 아니라 대학간 협력기구인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외부통제 없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이를 시작해 2000년 이후에는 전국의 4년제 대학 전부를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인데 결국 대학종합평가인정제는 국제경쟁시대를 대비한 대학개혁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화·국제화 시대에서 대학의 우열성 여하는 민족과 국가,그리고 사회전반의 장래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따라서 21세기를 대비한 대학의 내부적 개혁과 국제적 대응이 시급한 과제이다.
  • “김일성 생존중 「권력이양」 없다”/북 김영주 밝혀

    【도쿄 연합】 지난해 18년만에 복권한 북한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 국가부주석(노동당 정치국원)은 최근 『김일성주석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이 전면적으로 이양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일본의 교도통신이 1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이날 북한 사정에 정통한 동구 소식통을 인용,이같이 전하고 김영주는 그러나 김정일 노동당비서가 김일성의 후계자라는 지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자신은 김정일후계 체제를 강력히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소식통은 김영주가 지난달 평양주재 제3세계 외교관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김일성이 생존해 있는 동안 김정일에게의 전면적인 권력이양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주가 외국인과 만나 회담을 가진 것은 복권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김영주는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최종단계를 맞이하고 있으며 오는 16일의 김정일생일에 국가 주석이나 국가 총비서 자리가 이양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도는 것과 관련,이같은 견해를밝히면서 『김정일은 김일성의 생존중 「황태자」로 머무르게 될 것이며 최종적인 권력 이양은 없을 것』 이라고 거듭 말했다. 김영주는 복권으로 김정일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나는 김정일 후계를 지지한다』고 말함으로써 항간의 소문을 일축했다.
  • 떠오른 별/격동의 93년… 지구촌 인물의 부심

    ◎「20세기 최대과제」 중동평화 새 장 열어/라빈/아라파트/7년 줄다리기 「UR」 매듭… 국제화 선도/서덜랜드 올해 국제질서의 특징은 국제화와 평화정착으로 요약된다.개별국가들은 이 질서위에서 각각 변화와 개혁의 시대에 불을 댕겼다. 국제화를 이끈 주역으로는 우루과이 라운드를 주물렀던 피터 서덜랜드 가트(GATT)사무총장,리언 브리튼 유럽공동체(EC)집행위원,미키 캔터 미무역대표가 손꼽힌다.세계평화를 선도한 쪽에서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의장,데 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총리와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검사는 국내개혁의 기수로 떠올랐다.개혁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러시아 자민당당수,베니지르 부토,모하메드 아이디드 소말리아 군벌지도자도 각각 국민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국제질서의 한 흐름을 형성했다. 브리튼 EC집행위원은 최대 무역파트너인 캔터 미협상대표와 함께 밤을 세워가며 이견을 조정,국가간 무역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21세기 「선진국 중심」신경제질서를 창출했다.이들 사이에서 서덜랜드 가트사무총장은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자유무역이론을 들어『협상이 실패하면 지구촌의 모두가 공멸할 것』이라며 협상을 독려했다. 협상과정에서 발라뒤르 프랑스총리는 자국의 음향·영상부문을 지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국내경제를 걱정하는 제3세계권에 「경제외교」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기도 했다.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PLO의 아라파트의장은 「20세기 최대과제」로 불리던 중동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반세기간 지속된 증오와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는데 청신호를 보냈다.이 파장은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등에 「평화도미노」현상을 일으키면서 이스라엘의 대아랍권 관계개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국경문제등 몇몇 「작은문제」를 놓고 계속 포격이 그치지 않는등 실질적 중동평화는 해를 넘기는 과제가 됐다. 국제평화와 관련,데 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과 만델라ANC의장도 뺄 수 없는 인물.3백여년간 지속돼 온 흑·백 인종차별의 벽을 깨뜨렸다는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새로 참정권을 얻은 흑인의 수가 6배나 많아 만델라의장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민당의 「정권독식」을 종식시킨 호소카와 일본총리는 일본의 오랜 정경유착의 사슬을 끊고 새정치에의 활로를 열어가며 신세대정치의 선봉장으로 떠올랐다.「칠인칠색」의 연립7당을 이끌면서도 38년의 긴 세월동안 자민당도 해내지 못한 정치개혁법안을 최근 중의원에서 통과시켰다. 정치지도자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의 피에트로검사 역시 지구촌의 개혁시대를 연 인물로 세계적인 시선을 모았다.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운동의 주창자 피에트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한 입지전적인 인물.지난해 2월 밀라노의 한 사회당간부가 건설업자로 부터 병원신축을 미끼로 7백만리라(3백5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포착,기소한것을 시발로 지금까지 각계인사 수십명의 비리를 캐내 응징했다.그의 초상화를 넣은 티셔츠와 크리스마스카드,자서전등이 전국적으로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을 정도로 국민적인 추앙을 받고 있다. 러시아 「12·12」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지리노프스키 자민당당수는 과거의 러시아제국,소비에트연방에 지대한 관심을 두며 국민을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다.이른바 러시아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그는 이번 총선에서 친옐친의 「러시아의 선택」에 이어 일약 제2당을 창출,옐친의 최대정적으로 떠올랐다. 벌써부터 유럽을 돌며 각국의 사회당과 관계를 강화하는 등 그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88년 회교권의 첫 여성총리에 올랐다 3년만에 축출된 부토가 지난 10월 총선을 통해 재집권한 것도 올해의 뉴스.당시 칸대통령과 나와즈 샤리프총리의 권력투쟁과정을 이용,결국 두사람 모두를 역사속으로 보낸 그녀는 아메드 레가리전외무장관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면서 권력기반을 강화했다. 그녀의 파키스탄인민당(PPP)이 과반수의 의석확보에 실패한데다 정부의 재정악화등으로 정정불안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더욱이 인도와 카슈미르주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계속되고 있고 핵무기개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질시 역시 그녀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소말리아의 군벌지도자 아이디드장군은 미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에 맞서 싸우다 결국 미군의 철수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국내적인「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지는 별/일 자민당 38년 독주 막내려 정계떠나/미야자와/러시아의 보·혁대결서 저항하다 수감/루츠코이 하스블라토프 영욕의 부침은 언제든 있게 마련.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각국의 집권자들이 개혁과 변화의 거센 바람에 내몰려 사라졌다.개인적 비리뿐 아니라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는 시대의 조류 때문이다. 이들이 화려했던 무대를 떠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정권교체에 따른 퇴진 ▲시대의 조류를 거부하고 끝까지 버티다 쫓겨난 경우 ▲부패와 관련된 권력형비리등으로 분류된다. 「변화」의 태풍과 함께 들이닥친 정권교체로 자리를 내준 대표적 인물은 미야자와 기이치 전일본총리(74).미야자와는 지난 6월 내각불신임안이 중의원에서 통과된데 이어 7월총선에서 자민당이 원내과반수 확보에 실패,38년간의 자민당 1당체제를 연립내각에 넘겨주고 담담히 정계를 떠난 비운의 정치가가 됐다. 이와 달리 지난 10월 보·혁대결에서 총부리로 맞서다 백기를 들고 항복을 선언한 러시아 보수파 「3인방」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전최고회의의장(50),알렉산드로 루츠코이 전부통령(46),발레리 조르킨 전헌법재판소장(50)은 권좌대신 감옥살이를 그 대가로 받은 케이스. 이들 가운데 루츠코이와 하스블라토프는 「집단소요 선동죄」로 모스크바 근교 레포르토보 교도소에 수감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조르킨은 재판소장자리에서 쫓겨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이들에 비해 이탈리아 전총리이자 종신상원의원인 줄리오 안드레오티(74)와 전사회당 당수인 베티노 크락시하원의원(59)은 이탈리아 사법당국의 부패척결을 위한 이른바 「미니 폴리테」에 걸려들어 늘그막에 수모를 당했다.안드레오티는 마피아와의 결탁으로 면책특권이 박탈됐는가 하면 크락시는 정치자금법위반혐의로 당수직을사임했다. 게다가 비외른 엥홀름 독일 사민당 전당수(53)는 지난 4월 6년전 주의회선거에서 흑색선전을 선거전략으로 악용한 사건이 밝혀져 은퇴,12년만의 재집권 꿈이 물거품이 됐고 프랑스출신의 자크 아탈리 전유럽부흥개발총재(49)도 공직생활의 비리로 철퇴를 맞고 쫓겨났다. 하지만 「사라진 올해의 인물」로 가장 주목을 끄는 집권자는 역시 캐나다의 첫 여성총리였던 킴 캠벨전총리(46).기라성같은 남성정치인들을 제치고 혜성처럼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던 캠벨은 전임자 브라이언 멀로니 전총리가 물려준 달갑잖은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수완을 발휘하지 못한채 지난 10월 총선에서 고배를 들고 4개월만에 도중 하차,최단명 총리가 됐다. 특히 대처 영국 전총리에 이어 대담한 여성으로 한껏 기대를 모았던 그의 퇴장은 세계여성지도자의 국제무대 활약에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밖에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등장,군개혁에 앞장섰던 레스 애스핀 전미국방장관(55)은 지난 15일 그 개혁의 도마위에 스스로 희생당한 불운의 인물이 됐다.하원 군사위원장 출신으로 군사전문가인 애스핀은 그동안 냉전종식에 따른 국방예산의 대대적인 삭감을 주장하다 군부의 반발로 물러남으로써 클린턴 행정부에서 이탈한 첫 각료라는 오명을 남겼다. 팝뮤직의 황제 마이클 잭슨(35)도 어린이 성추행 스캔들로 미사법당국으로부터 알몸수색을 당하는등 물의를 빚었다. ◎사라진 별/세계최대 마약왕… 경찰에 피살/에스코바르/아동자선 활동 편 은막의 여왕/오드리 햅번 올해도 지구상의 수많은 큰 별들이 사라졌다. 정치인으로는 일본 금권·파벌정치의 대명사였던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총리가 75세를 일기로 12월 세상을 떴다.도쿄대 출신이 판치는 일본정계에서 국교졸업 학력으로 풍운아처럼 일세를 풍미했으며 록히드 스캔들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당하기도 했다.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프랑스총리(67)는 지난 3월 사회당의 총선참패로 총리직에서 물러난뒤 한 기업인으로부터 1백만프랑을 무이자 대부받은 것이 언론에 보도되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5월 자살했다.라나싱헤 프레마다사 스리랑카대통령이 민족분규의 희생양으로 타밀반군에 의해 암살된 것도 같은 달이었다. 투루구트 오잘 터키대통령(66)과,보두앵1세 벨기에국왕(62)은 4월과 7월 각각 서거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대법관으로 24년간 재임한 민권운동의 거목 서굿 마샬과,닉슨전미대통령의 부인 패트리샤 라이언 닉슨여사도 올해 생을 마감했다. 콜롬비아 최대의 마약조직인 메데인 카르텔의 두목이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44)는 12월 정부군에 사살됐다.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현대판 「로빈 후드」로 알려진 파란만장의 일생을 끝내 비참하게 마감한 것이다. 문화계에선 「로마의 휴일」에서의 깜찍한 연기로 전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던 오드리 헵번(63)이 오랜 투병생활끝에 스위스 로잔에서 1월 유명을 달리했다.그는 말년엔 국제아동기금 순회대사로 소말리아등 지구촌 곳곳의 불우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20세기 영화계 거장으로 「길」등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페데리코 펠리니(73)감독과,홍콩의 스타였던 이소용의 아들이며 역시 액션스타였던 브랜든 리(28)도 촬영중 권총사고로 올해 타계했다. 러시아 태생의 금세기 최고 남자 발레 댄서인 루돌프 누레예프(54)는 1월 파리의 한 병원에서 에이즈로 숨졌다.61년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원으로 유럽순회공연도중 파리에서 망명했었다.「파리대왕」의 작가인 대문호 윌리엄 골딩과 미국이 낳은 불멸의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도 고인이 됐다.
  • 카드 수수료 고객에 물리면 처벌/국회 본회의 통과 28개법안/요지

    ◎발행주식 10%내 법인명의 소유 인정/예비군 편입대상 「제대후 8년까지」로/요양병원·한약사 신설… 「성폭력 피해자보호소」도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28개 법안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공장배치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이하 제정안)=기업이 일정 지역에서 공장을 설립할 수 있는지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토지관련법상의 각 용도지역별로 설립이 허용되는 공장의 업종·규모·범위 등을 공장설립 기준고시에 체계적으로 통합해 고시하도록 함. ▲성폭력범죄처벌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성폭력 피해자의 보호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함.사회복지법인과 기타 비영리법인도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아 보호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함. ▲국제협력요원에 관한 법=외무부장관은 선발된 국제협력요원에 대해 직무교육을 실시한 후 근무할 국가,지역 및 기관을 지정토록 함.국제협력요원은 병역법에 의한 복무기간 동안에 특정협력대상지역에서 외무부장관이 지정한 분야의 국제협력업무에 의무적으로 종사해야 함. ▲국유재산법(이하 개정안)=국유재산의 매각대금,사용료,대부금 및 변상금의 분할납부제도를 확대.잡종재산중 토지와 그 정착물은 20년 이내의 기간동안 신탁회사에 신탁할 수 있도록 함. ○잎담배 독점권 폐지 ▲담배사업법=담배의 수입판매업자 및 도매업자와 소매인이 휴업 또는 폐업을 신고하지 않으면 등록취소및 과태료에 처하고 한국담배인삼공사의 제조담배 수출과 잎담배 수·출입 독점권을 폐지함. ▲약사법=약사와 별도로 한약사를 신설하고 한약사 면허는 대학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한약관련 과목을 이수하고 졸업한 자로서 한약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부여. ▲신용카드업법=신용카드업자가 선불카드및 직불카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신용카드가맹점이 수수료를 전가하면 처벌되며 비가맹점은 매출전표를 양수,양도하지 못하도록 함. ▲상품권법=상품권발행자가 보관이 어려운 물품을 제외하고는 유효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함.소비자가 상품권 금액의 일정비율 이상을 사용한 뒤 잔액의 환불을 요구하면 환급토록 함. ○주식소유상한 없애 ▲증권거래법=한국증권대체결제회사를 증권예탁원으로 개편.상장법인이 발행주식 총수의 10% 범위 이내에서 자기 주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우리사주·공로주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함.상장법인의 무의결권 주식을 가진 주주에게도 주식매수 청구권을 인정.주식 매매거래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주식을 일정한도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던 제도를 폐지. ▲자본시장육성법=증권관리위원회가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실시해오던 증자권고제도를 폐지.해외증권과 연계된 주식을 발행하거나 국가기간 산업을 영위하는 법인 등이 공익을 위해 주식을 발행할 경우 발행주식 총수의 2분의 1까지 의결권 없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함. ▲증권투자신탁업법=증권투자신탁제도의 전업체제를 유지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 법에 의한 투자신탁외의 유사 투자신탁을 금지.해외투자신탁업무의 활성화와 투자신탁업의 대외개방에 대비,국내·외 투자신탁회사가 서로 상대방 국가에 진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 ○상근예비역제 신설 ▲병역법=상근예비역 제도를 신설,본인의 지원 또는 징집에 의하여 현역병으로 1년의 기간내 복무한뒤 예비역에 편입되어 향토방위와 관련된 분야에서 1년 6월이내의 기간을 복무하도록 함.또 공익근무요원 소집제도를 신설해 보충역에 편입된 사람에 대해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등의 공익목적수행에 필요한 경비·감시·보호·행정업무의 지원 또는 국제협력과 예술·체육의 육성을 위해 복무토록 함. ▲주식회사의 외부감사법=연결재무제표의 작성대상인 주식회사의 범위를 종속회사를 갖고 있는 모든 외부감사대상 주식회사로 확대.회사의 임직원이 허위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등의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함. ▲공인회계사법=외국인 공인회계사에 대해서도 내국인과 동일한 절차에 따라 자격을 취득하고 업무범위도 동일하게 함. ▲단기금융업법=단기금융회사가 취급할 수 있는 어음및 채권증서의 범위를 1년 이내에서 재무장관이 정하는 기간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확대.단기금융회사의 유가증권에 대한 투자한도를 자기 자본의 35%에서1백%로 확대,기관투자가로서 기능을 강화. ▲군인연금법=군인연금법상의 급여를 받을 권리를 급여의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5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토록 하던 것을 앞으로는 단기급여에 해당하는 사망조위금,재해부조금,,공무상치료비 등의 경우 소멸시효를 1년으로 명시함. ▲향토예비군설치법=일반 예비역의 병및 보충역의 하사관,병의 경우 종전에는 33세 이하의 자로 하던 예비군 편역대상을 앞으로는 군복무를 마친 날의 다음날부터 8년이 되는 해의 말일까지로 전환. ▲군인사법=장성·소령·위관급과 중사이하의 현행 정년수준을 유지하고 중령 과 대령은 현행 49세와 53세에서 각각 53세와 56세로 연장.이등상사는 현행 50세에서 53세로,일등상사와 준사관은 53세를 55세로 정년을 각각 연장.그러나 인력운영 및 진급수준을 고려해 경과조치기간을 설정,3년에 1년씩 단계적으로 연장함. ○이공계 석사과정 가능 ▲사관학교설치법=21세기 군 수요에 대비해 군사과학기술 전문가를 육성하고 국방과학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사관학교에 이공계 대학원의 석사과정을 둘 수 있도록 함. ▲특수교육진흥법=국가및 지방자치단체는 특수교육 종합계획의 수립,특수교육 대상자의 취업지도,특수학교 교원의 양성·연수,특수교육기관의 설치·운영등 특수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이에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안에서 우선 지원하도록 함. ▲의료법=의료기관의 종별에 「요양병원」을 신설,만성 질환자 등 장기치료환자에게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함.종합병원 규모를 현행 80병상 이상에서 1백병상 이상으로,병원·한방병원은 20병상에서 30병상 이상으로 자격을 상향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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