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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快擧 박세리의 정상정복(사설)

    ‘슈퍼 루키’ 박세리가 세계여자골프계에서 ‘최고중의 최고’를 가리는 미국 여자프로골프(98’LPGA)타이틀을 거머쥐는 불멸의 위업을 달성했다. 박세리 우승은 국제통화기금(IMF)지원체제에서 전반적으로 위축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값지다. 더구나 미국 4대 메이저대회중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의 우승이라서 더욱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세계골프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자 한국골프의 새 역사의 시작인 셈이다.지난해 10월 프로테스트 1위로 통과한지 7개월만에 얻은 최단기간의 정상정복에다 대회사상 최저타수 기록이란점도 묵과할 수 없다.이는 한국골프의 자존심을 세워준 쾌거이기 때문이다. 세계정상급의 선수들이 전부 초청되어 ‘신인은 절대로 LPGA선수권 타이틀을 쥐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박세리는 타이거 우즈의 최연소 기록을 깨고 보다 어린 나이의 최연소 우승자가 되어 지난해 타이거 우즈의 급부상이 부럽던 우리에게 가슴 벅찬 낭보를 안겨주었다.여간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노릇이 아니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한국민의 이미지를 쇄신했을뿐 아니라 멀고도 곧은 장타와 쇼트게임,그린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승부근성은 남은 대회의 연승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박세리의 우승은 그동안 미국과 유럽선수들이 분점해왔던 여자프로골프계도 제3세계의 몫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우승상금은 세계여자골프사상 최다액수인 19만5천달러,전세계 골프관련업체의 관심을 모아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때마침 칸영화제 견본시에 나간 국산 SF영화 ‘용가리’가 4일만에 2백79만달러의 사전판매계약을 맺는 등 해외시장에 진출한 한국인들의 뛰어난 재능이 경제회생의 전령이 되리라는 기대마저 안겨준다. 정치를 보나 경제를 보나 모두가 답답한 일들 뿐인데 특히 스포츠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잘 뛰어줘 후줄근한 상황에 단비가 되는 것 같다.정상을 정복하기는 어렵다.그러나 정상을 지키기란 더욱 어렵다.엄격한 자기통제와 부단한 노력으로 연소자의기록을 지키면서 계속적인 발전과 건투가 있기를 기원한다.사치스포츠로 질시받던 골프가 이런 경사를 불러들이다니 골프에 대한국민의 인식도 달라져야겠다.
  • 5·18재단 광주민주화운동 재조명 심포지엄 기조 연설

    5·18민중항쟁 18돌을 앞두고 5·18기념재단(이사장 李基洪)은 한국사회학회(회장 文石南)와 공동으로 14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세계화시대의 인권과 사회운동­광주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심포지엄에서는 요한 갈퉁 노르웨이대 교수와 알랭 투렌 프랑스 사회과학원 교수가 각각 ‘인권,보편적인 것인가,아닌가’,‘세계화와 사회운동’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기조연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인권 보편적인 것인다/개인·집단권리 동시 인정해야/요한 갈퉁 노르웨이 교수 세가지 초점,즉 제3세계,인권,사회주의의 붕괴를 가지고 오늘날의 세계를 조망하고자 한다.1948년에 유엔이 창립되면서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했지만 제3세계 국가들에서 인권의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또 89년에 옛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이 국가들은 또다른 제3세계 국가군이 되었다. 인권은 개인의 권리다.그러나 인권은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까닭에 오늘날 지구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세계화와 사유화(私有化)가 국가의 자율적 영역을 축소시키면서 인권에 일면으로는 긍정적,다른 면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인권이라는 개념은 서구 근대사회의 산물이다.인권과 민주주의는 제3세계 국가들에 있어서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높여준다.그러나 오늘날의 세계화는 경제에 있어서 공공부분의 비중을 낮춤으로써 개인의 인권과 복지를 개선할 수 있는 개별 국민국가의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하나는 인권을 한 국가에 한정된 현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적인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이다.오늘날 세계에는 유엔과 같은 공식적인 기구뿐만 아니라 비정부기구(NGO)와 국제사면기구와 같은 비공식적이고 민간이 주도하는 세계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이 기구들은 인권을 국가 매개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새로운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개인 중심의 인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집단에 대한 집단적 인권을 주장하고 있다. 두번째는개인이 한 국가에 소속되어 그 국가를 통해 인권과 복지를 보장받고 의무를 수행하는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유럽연합(EU)처럼 세계시민 의식을 갖는 것이다.세계시민은 세계사회의 목표와 구성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하고 결집하며 세계적 차원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하며 이를 지킬 의무를 지닌다.언젠가는 NGO가 다국적 기업에 대해 소비자 파업을 주도하고 세계시장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국가를 대체할른지도 모른다. 세계의 문화를 서구의 개인중심 문화와 비서구의 집단중심 문화로 구분한다면 개인중심 문화와 집단중심 문화의 갈등은 인간 존재의 불가피한 측면이다.개인들은 자기의 자유와 집단의 소속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인류에게는 개인 중심의 문화가 제공하는 자유도 필요하며 집단에의 소속감도 필요하다.해결책은 두가지 문화를 평화롭게 공존시키는 것이며 두 문화의 관용성을 늘리는 것이다.민주주의는 앞으로 토론과 투표뿐만 아니라 대화와 조화의 문화를 함께 추구해야 할 것이다. 또 인권은 개인의 권리뿐 아니라 집단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이렇게 하는 것이 다양한 문화와 집단의 관점에서 인권이 정의되고 보존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세계화와 사회운동/세계 금융위기로 사회갈등 심화/알랭 투렌 佛 사회과학원 교수 현재 세계는 20세기초 힐퍼딩이 묘사한 금융자본의 시대와 유사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회운동의 역할을 살펴봄으로써 세계화의 개념적 및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는게 필요하다. 오늘날 정보화로 제3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다.그러나 정보기술이 사회조직을 바꾸지는 않으며 세계적으로 통일된 문화를 낳는 것도 아니다.오늘날 무역보다 더 빨리 성장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세계 금융시장이다.최근 멕시코·아르헨티나·태국·인도네시아·한국의 금융위기는 이러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가 부재함을 반영하고 있다.금융자본의 막강한 위력은 정보산업의 발전과는 별로 무관한 현상이며 통제력이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은 신흥공업국(NICs)과 함께 선진국에도있다. 세계화의 급속한 확산은 냉전체제의 종식과 사회주의 국가 붕괴의 결과다.미국은 이제 정치·경제·군사뿐 아니라 문화 차원에서도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국민국가는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단위로 남아있다.첫째로 실업,사회보장과 같은 국내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전히 국민국가일 수 밖에 없고,둘째는 세계적 금융자본의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정부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현상이고 사실이라기보다는 과장된 이데올로기다.세계적 차원에서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문화적 변동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로 일관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그러나 무역은 여전히 국민경제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서유럽의 경우 국가가 국민총생산의 절반을 세금과 복지제도를 통해 여전히 통제하고 있다. 시장경제에 반대하는 집단행동과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집단행동은 구분돼야 한다.환경운동이나 여성운동은 세계적 차원에서 조직되고 있으나 정치적 운동이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은 여전히 국민국가의 수준에서 조직된다.기존의 정당은 좌파건,우파건간에 다같이 중도로 수렴할 것이 예상되므로 극좌 및 극우집단은 기존의 정당체제 밖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앞으로의 사회운동이 개량적일까,혁명적일까는 정부가 경제발전에 국가정책의 중점을 둘 것인가,아니면 국내적 문제의 해결에 중점을 둘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세계화는 결국 세계경제 문제의 국내로의 전이를 가져와 국내에서의 사회갈등을 증폭시킨다.그 결과 집단간 갈등이 심화될 것이며 갈등의 해소가 중요한 정책적 이슈가 될 것이다.결론적으로 시장경제가 주도하는 세계화가 세계의 사회변화에 있어 주된 요인은 아니다.세계화는 많은 혜택과 함께 사회문제도 야기한다.문제의 관건은 국민국가내에서 그 사회가 내적인 갈등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는가이다.
  • 존 F.케네디(美國의 대통령 문화:19)

    ◎뉴 프런티어정책 편 美 상징적 지도자/평화봉사단 창설… 후진국 교육·영농지도/蘇의 쿠바 미사일 배치 기도 ‘힘’으로 봉쇄 【보스톤(美 메사추세츠주)=羅潤道 특파원】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를 묻지 마십시요.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요.” 1961년 1월20일,43세의 나이로 미역사상 최연소의 기록을 세우며35대 대통령에 취임한 존 F.케네디 대통령(1917­1963)의 취임사는 냉전체제에 대한 염증 때문에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미국민들에게 신선한충격으로 다가왔다. 63년 11월21일 댈러스에서의 총성으로 최고의 전성기에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서게 된 케네디는 불과 2년10개월(1천37일)의 짧은 집권기간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포토맥강 건너 알링턴 국립묘지 한복판,워싱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중앙 언덕에 ‘불멸의 불꽃’(eternal flame)으로 살아 미국민들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다. 첫 20세기 출생 대통령인 그는 많은 업적을남겼다.‘뉴 프런티어’라고 불린 그의 정책은 루즈벨트의 ‘뉴 딜’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평화봉사단’을 창설,미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계 구석구석 후진국을 찾아가 교육과 영농을 지도케하는 인류애적 차원의 일에 적극 나섰다.흑인인권 보호를 위해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안도 만들었다.소련보다 한발늦기는 했지만 선구자적인 의지로 우주개발계획을 추진,미국이 최초의 달정복 국가가 되도록 했다. ○흑백차별금지법 제정 대외적으로도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대한 강력한 대처,쿠바내 소련의 미사일 배치를 저지키 위한 쿠바 봉쇄 등 ‘힘’으로 소련을 굴복시킨 그의 강력한 대외정책은 미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국제적인 관심또한 불러 일으켰다.비록 쿠바침공 실패로 국제적 망신을 하기도 했지만 60년대 들어 대중문화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미국적 이상을 실현할 젊고 용기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던 미국민들에게 케네디는 ‘미국의 상징’으로까지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는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고 강력한 의지력을 갖춘 인물도 아니었다.더우기 정계 입문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적 성장과정이 백만장자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금권을 앞세운 적극적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강력하고 진보적인 정책을 펼수 있었던 것은 겸손하고 노력하는 자세 때문이다.그는 사려깊고 여러 사회문제들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민주주의 원칙의 수호자로 이미지를 심었다. 1917년 보스턴 교외의 브루클린에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백만장자가 된 조지프와 로즈 케네디 사이의 9남매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케네디는 병약하고 그다지 학교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사람을 사귀기 좋아했고 스포츠를 좋아했다.부친이 루즈벨트 행정부때 영국대사를 지내 런던대학에도 잠깐 재학한 일이 있는 그는 하버드에 입학,광범위한 여행을 즐겼다. 그러나 상급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점차 학업에 흥미를 보였다.영국의 나치 독일에 대한 대응 실패를 다룬 그의 졸업논문은 ‘왜 영국은 잠을 잤는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이어 1942년 진주만 폭격 직전 미해군에 입대해 PT(어뢰정)지휘관으로 활약,일본군과 싸운 공로로 은성훈장을 받기도 했다.45년 디스크 수술로 전역한 그는 부친의 권고로 46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하원에 출마,당선됐다. ○57년 퓰리처상 수상 52년 3선의원인 케네디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이듬해 그는 조지워싱턴대를 나오고 워싱턴타임스­헤럴드의 런던특파원 이던 24세의 재클린 부비어와 결혼했다.지성과 미모를 갖춘 재클린과 미남 총각 상원의원과의 결혼은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케네디의 바람기로 원만치 못했다. 57년 미의회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의원들의 이야기를 엮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저술,퓰리쳐상을 받은 케네디는 바른 이상을 가진 정치인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TV토론이 처음 실시된 60년 대통령선거에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릴수 있었다. 백악관에 들어간후 재클린은 훌륭한 참모이자 동반자 역할을 했으며 특히 63년 8월 2살바기 아들 패트릭이 죽은 후에는 두사람의 금슬이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이 좋은 금슬도 케네디의 피격으로 3달밖에 지속되지 못했다.케네디 가문은 대통령과 3형제 상원의원을 내는 등 미역사상 가장 번성한 집안의 대명사가 됐지만 두아들이 총에 맞아죽고 아들과 딸들이 사고로 죽는 비운의 가문으로도 남아 있다. 서거 35주년이 되는 오늘날까지도 그는 미국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남아있으며 보스턴항 남부의 컬럼비아 포인트에는 케네디도서관이 우뚝 서 케네디 대통령 당시 각종 자료 및 유물을 집대성하고 있다.또 브루클린에는 그의 생가,히아니스항 인근에는 하계별장 등이 잘 보존돼 있다.
  • 제임스 먼로(美國의 대통령 문화:18)

    ◎‘먼로 독트린’ 천명… 미 외교정책 기틀 확립/재임전 국무­전쟁장관 자격 영과 전쟁서 승리/성실과 결단력으로 재선… 평화­번영시대 열어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817­1825)는 1823년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 배제를 천명한 ‘먼로 독트린’을 통해 신생 미합중국의 독자적 외교정책 기틀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독립초기 신생국의 체제정비에 심혈을 쏟았던 버지니아왕조의 막내이자 건국세대(Founding Fathers)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두차례 임기 내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특히 그는 신생국가로써의 국내외적 불안정을 씻고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호감의 시대’(Eraof Good Feelings)를 전개시켜 미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학중퇴 독립전쟁 참전 영국으로부터 독립의 기운이 무르익던 1758년 버지니아주 웨스트모어랜드의 개척농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총명했으며 16세 되던 해에윌리엄스버그에 있던 당시 버지니아 식민지의 최고 명문이던 윌리엄&메리 대학에서 수학했다.그러나 2년후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대륙군 소위로 참전,뉴욕전투,저먼타운전투 등에서 용맹을 떨침으로써 특진을 거듭,1778년 전쟁이 끝날때는 계급이 중령까지 올랐다. 특히 먼로는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에 의해 남부 미군의 현황파악을 위한 연락관으로 임명받아 활약했으며 이후 줄곧 제퍼슨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전쟁이 끝난후에는 제퍼슨의 지도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프레데릭스버그에서 개업했다.제퍼슨과 먼로의 우정은 16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계속됐다. 이어 먼로는 1782년,24세의 약관에 버지니아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으며 이듬해에는 대륙회의 의원으로 선출돼 3년간 활약한뒤 잠시 정계를 떠나 변호사일에 주력했다.그러나 1790년 연방 상원의원에 진출,제퍼슨,매디슨(4대 대통령)과 함께 민주공화당을 결성,알렉산더 해밀턴의 연방주의당에 맞섰다. 그는 프랑스와 영국주재 대사를 맡는등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나 이렇다할 결실은 거두지 못했다.1794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대사로 임명돼 프랑스와의 관계강화에 노력했으나 프랑스혁명 신봉자인 그의 노골적인 친프랑스 언동은 워싱턴의 분노를 사게돼 2년만에 소환되고 말았다.그는 다시 1803년 제퍼슨 대통령에 의해 영국대사로 임명됐으나 역시 본국정부 의도와 다른 무역협상을 벌임에 따라 다시 소환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후에 먼로는 제퍼슨에 의해 루이지애나 식민지 구매협상 대표단장으로 프랑스에 파견됐다.1천500만달러에 당시 미국영토 2배에 달하는 영토를 구매토록하는 협상을 나폴레옹과의 담판에서 성사시킴으로서 협상력을 과시했다.또 매디슨에 의해 국무장관에 임명된 그는 1812년 영국에 선전포고,전쟁에 돌입했다.그러나 워싱턴이 함락되는등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을 전쟁장관에 임명해줄 것을 요청,국무와 전쟁 겸임장관이 된 그는 탁월한 지휘역량을 발휘,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후 매디슨 행정부 말기는 전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됐고 그 주역인 먼로의 인기는 치솟았다.대사로 프랑스·영국을 오가는 사이사이에 두차례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경력도 갖춘 그는 자연스레 민주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1816년 선거에서 당선,매디슨의 뒤를 잇게 됐다. 59세에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어느 대통령보다도 다양한 공직경험을 갖추고 있었으며 거기서 생성된 그의 정치감각은 탁월한 각료 임명으로 나타났다.국무장관 존 퀸시 애덤스(6대 대통령),전쟁장관 존 칼훈,재무장관 윌리엄크로포드,법무장관 윌리엄 워드 등은 지성적이고 뛰어난 능력과 함께 단합이 잘돼 환상의 진용으로 평가됐다.더우기 먼로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굳센 결단력은 모든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했다. 먼로는 남부와 서부 등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그의 인기는 더욱 치솟아 1820년 실시된 두번째 선거에서는 232표중 231표를 얻어 만장일치로 당선된 조지 워싱턴에 이어 최다 득표로 재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먼로는 퇴임후 리스버그의 오크힐에서 거주했으나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5년후 부인 엘리자베스가 죽자 뉴욕의 딸 집으로 옮겨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1831년 7월4일,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퇴임후 곤궁… 사저 매각 먼로의 유적으로는 현재 프레데릭스버그의 박물관,사저이던 샬롯빌의 애쉬론,리스버그의 오크힐 등이 보존돼 있다.변호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 들어선 박물관은 먼로독트린을 초안하던 책상 등 다양한 유품들이 진열되고 있다.또한 애쉬론 사저는 퇴임후 경제난으로 팔았던 것을 1931년 박애주의자 제이 존스가 구입,일반에 공개했다.1974년 존스 가족은 그의 모교인 윌리엄&메리 대학에 이를 기증,이 대학이 박물관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먼로는 제퍼슨,매디슨과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특히 제퍼슨은 자신의 사저인 샬롯빌의 몽티첼로 인근에 ‘지적공동체’(intellectual community)마을의 설립을 위해 이들을 모여살도록 권고,애쉬론을 먼로에게 소개했으며 매디슨의 사저 몽펠리에도 이 부근에 있다. ◎먼로 지명/도시·학교·산·교회 등 238개/워싱턴·링컨과 함께 도시지명 ‘빅3’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도시들은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지명들이 많다.신대륙으로의 이주자들이 정착,새 도시를 건설할때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통령이나 위인들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먼로 지명은 워싱턴,링컨과 함께 미대통령 가운데 도시명으로 가장 많이 쓰인 ‘빅3’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지명이 49곳으로 가장 많고,링컨은 45,먼로는 44,제퍼슨은 41 순으로 나타나 있다.이 숫자는 미자동차협회(AAA)가 최근 발행한 ‘로드 아틀라스’에 나타난 지명을 기준으로 한것이기 때문에 산·강·호수 등 자연의 이름과 학교·역 등 공공기관의 이름까지 합하면 실제로 대통령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경우는 훨씬 많다. 먼로박물관이 펴낸 먼로 지명 연구 책자인 ‘먼로,USA’에 따르면 미국내 ‘먼로’가 들어가는 지명은 모두 238개에 달한다.그리고 미국 해방흑인들이 세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수도 ‘먼로비아’와 남극해의 먼로섬 등 미국 밖에도 존재한다. 미국내 50개주중 36개주에 흩어져 있는먼로 지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도시이름으로 26곳이 있다.인구 40명인 노스 다코타주의 소읍에서부터 인구 5만5천인 루이지애나주의 먼로시까지 다양하다.우리의 군에 해당하는 카운티 이름은 모두 18곳으로 인구 9천명의 미주리주 먼로카운티에서 인구 71만명의 뉴욕주 먼로카운티까지 그 규모가 제각각 이다. 먼로 지명이 가장 많은 주는 오하이오로 35곳이 있고,다음은 인디애나 23,일리노이 19,미주리 17,아이오와·펜실베이니아 13,버지니아 11 순을 기록하고 있다.자연지명으로는 강·호수명 10곳,산 6,숲 2,협곡 2,다리·전망대 1곳 등이 있고 교회 7곳,학교 3곳 등도 있다.
  • 극우정당 FN­중도우파연합 제휴/佛 이념 논쟁 비화 조짐

    ◎“민주가치 포기 행위” 대규모 비난 시위/우파연합 지지 하락… 내홍 겹쳐 최대 위기 【파리=金柄憲 특파원】 프랑스의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FN)을 비난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중도우파연합의 일부 인사들과 국민전선과의 제휴문제가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이념 논쟁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우파정당인 프랑스 민주동맹(UDF)의 후보 5명이 국민전선의 지지를 얻어 지방의회 의장에 당선된 이후 일부 당내 인사들마저 이에 동조하고 있는 가운데 28일에는 제휴를 비난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지면서 확산일로의 국면이다. 이날 시위에는 프랑스내 주요 인권단체와 노조,집권 사회당 등 좌파 정당,그리고 작가와 영화인 등 수만여명이 참가했으며 종교계 인사들마저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등 가세하고 나섰다. 물론 좌파가 정치공세 차원에서 시위를 주도했지만 단지 정책간의 이견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게 아니라 민주주의 이념차원에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이들은 국민전선과의 제휴를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포기하는 처사일뿐 아니라 파시즘의 묵인으로까지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이념 논쟁의 발발 가능성을 더욱 높혀 주는 대목은 국민전선과의 제휴가 단순히 개인적 정치적 동기보다는 현 우파 체제의 정치적 노선과 이에따른 장래 전망에 근본적인 의문과 회의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실제 이에 동조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국민전선만해도 최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15%의 지지를 얻어 좌·우정파에 이어 프랑스정계의 제3세력으로 부상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지지자가 늘고 있다.반면 우파연합은 지지율이 총선이후 계속 내리막이어서 국민전선과의 제휴를 무조건 매도하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다.전후 프랑스 우파가 맞은 최대 위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파연합 지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당사자인 UDF 내부사정에서도 그러한 어려움이 잘 드러난다.비록 5명중 2명이 중앙당의 압력과 여론에 밀려 의장직을 사퇴했지만 이들에 대한 징계여부를 둘러싸고 대립이 심화되면서 사실상 분당상태에 있다.
  • 강­주­호 중국 신 3두시대/호금도 부주석 선출 의미

    ◎최연소 발탁… 부주석 위상 강화/당·정 양날개로 후계자 본격 부상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단상 중앙에는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주룽지(주용기) 국무원 총리내정자,왼쪽에 새롭게 국가부주석에 선출된 후진타오(호금도) 공산당정치국 상무위원이 나란히 앉았다.불과 열흘 전 전인대 개막시 차오스(교석) 전 전인대상무위원장이 앉았던 왼쪽 자리를 후진타오가 차지한 것이다. 이날 자리배치는 중국의 권력핵심축이 장(강)­주­후(호) 체제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비록 리펑(이붕)전인대상무위원장이 남아 있지만 장주석이 이미 당·정·군의 실권을 장악한 채 주와 후를 두수레바퀴로 삼아 ‘새로운 행마’에 들어간 것이다.사실상 ‘신 3두마차 시대’가 시작된 셈이다. 이날 후의 국가부주석 선출은 특히 21세기 중국의 후계구도 가시화라는 점에서 각별하다.현재 72세인 장이 56세의 후를 부주석에 발탁함으로써 공산당혁명 후 제3세대가 제4세대에게 후계자 수업을 시키는 의미가 강한 까닭이다.장주석은 앞으로 2∼3년 내에 국가주석직과 당총서기직을 차세대지도자에게 물려주고 정치2선으로 은퇴할 복안이라고 한다.그래서 후를 국가부주석에 기용,대내외 활동영역을 넓히고 국제적 지명도를 높인다는 것이다.그동안 공산당 일만 해왔던 후에게 정치를 맡겨 당·정 양쪽의 날개를 모두 달아주고 후계자수업을 시키는 셈이다. 국가부주석 자리는 원래 명예직이었으나 중국의 대표적인 ‘50대 기수’인후가 선출됨으로써 위상이 높아졌다.50대 국가부주석의 탄생은 신중국 성립 이후 처음으로 국가지도부가 점차 세대교체의 길로 접어들 전망이다. 그동안 한국문제에 관심을 많이 표시했던 후의 국가부주석 취임은 한중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호금도 부주석은 누구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현재 당서열 5위인 후진타오(호금도) 중국공산당정치국 상무위원은 장쩌민(강택민)주석과 함께 당을 이끄는 양두마차의 한 축.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화해와 조정의 명수’로 제2의 초우언라이(주은래)로 불린다. 중국의 문호 후스(호적)의 일가친척인 그는 42년12월 샹하이 출생으로 명문 칭화(청화)대학 수리공학과를 졸업했다.정부나 국회보다도 당우위인 중국에서 줄곧 당직만을 맡아온 성골로 유일한 50대의 최연소 상무위원.현재 당서기처서기와 당중앙학교교장을 겸하고 있다.
  • ‘문민 실정’ 해부에 무게둘듯/감사원 감사방향

    ◎‘외환위기 규명·PCS사업’ 특감 본격화/100대정책 점검·공직기강 확립에 온힘 한승헌 감사원장서리 체제를 맞은 감사원의 감사방향에 공직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사정의 칼날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더욱 날카로왔고 이회창 전 감사원장 시절이 그랬다. 한원장서리 체제의 감사는 우선 문민정부의 실정 파헤치기에 모아질것 같다. 현재 진행중인 외환위기 원인규명 및 PCS(개인휴대통신)사업자선정 특감은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사령탑없는 원장대행채제의 감사원은 그동안 구심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제기돼 왔다.행정감사 차원의 실무적인 감사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고려와 판단도 작용될 것이다.외환위기 원인자에 대한 선을 긋는 일도 분명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외환위기와 PCS특감은 문민특감의 시작에 불과하다.한원장서리가 “옛 정권아래서 저질러진 비리척결을 통해 청정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힌 것은 대대적인 ‘문민특감’을 예고하고 있다.전자주민카드 특감이 3∼4월중에 예정돼 있고 군무기 특감은5∼6월 중에 실시된다. 한원장서리의 감사 철학은 국가기강 확립과 사회질서의 확립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6월 지방선거에서 지방공무원의 선거개입과 기강해이 등에 감사의 칼날이 세워질 것같다.공무원의 중립훼손,선거철의 금품수수,인·허가 비리 등이 단속대상이다. 상반기까지의 감사가 문민특감과 지방선거에 모아진다면 새정부의 100대 과제에 대한 점검과 IMF시대의 공직사회 기강확립은 임기동안의 감사방향이다.한원장서리가 “개인비리를 캐내기보다는 정책결정 과정과 회계감사에 주력,국가예산의 적절한 집행여부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힌데서도 감사방향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원장서리의 재임기간이 짧다는 지적도 있다.63세인 한원장서리가 감사원장 정년인 65세를 앞둔 기간은 1년 6개월.이에대해 한원장서리는 재임의 길고 짧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재야 인권변호사로 활약해온 한원장서리의 경력때문에 감사과정에서 인권이 침해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감사원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 재벌은 소유·세습욕 버려라(경제평론)

    ○IMF파군 책임 느껴야 한국 재벌총수는 소유와 부의 세습화에 과도한 욕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총수들은 산하에 회장실 또는 기조실을 두고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과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해서 해마다 계열사를 늘리는 한국특유의 선단경영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늘린 부를 변칙적인 방법으로 2세나 3세에게 증여,세습화하고 있다.빚으로 부의 성을 쌓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금융기관에서 빌린 빚을 갚는 일은 소홀히 했다.이로 인해 97초부터 대기업이 도산하기 시작,지난해 11월 한국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라는 국가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경제위기는 대기업의 선단경영과 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한 정부의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나고 있다.그동안 정부는 고도성장에 도취되어 재벌이익이 곧 국민이익인 양 착각한 것이다.재벌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독과점시장구조 아래서는 기업의 기술개발과 효율극대화를 통한 국제경쟁력 향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재벌들이 지금까지 경제의 국제화나세계화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바로독과점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국제무역기구(WTO)가 95년 출범하고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96년 가입하면서부터 정부가 국내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제거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재벌은 국내시장 점유율확대와 선단경영을 지속한 것이 오늘의 파국을 초래한 것이다. 재벌 총수는 뒤늦기는 했지만 경제위기를 초래한 데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그런데도 재벌들은 정부와 IMF가 기업구조조정을 재촉한다고해서 마지못해 기업구조조정안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국내외적인 경제환경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아직도 제조업은 물론 건설·백화점·병원·골프장·호텔·증권·보험·은행 등 거의 모든 업종을 소유하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개혁 뒷전 변칙증여 늘듯 재벌이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자 정부는 금융기관이 재벌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는 것을 의무화하여 재벌의 무분별한 차입경영을 억제하는 동시에 결합재무제표작성과 상호지급보증제 조기폐지 등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재벌이 더 이상 선단경영을 할 수 없도록 개혁을 서둘고있는 것이다.이제 재벌총수는 기업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그룹을 살리고 국가경제을 살리는 진정한 의미의 자구노력임을 인식하고 스스로개혁에 나서기 바란다. 한편 정부가 재벌의 업종전문화와 총수의 경영에 대한 책임강화 등개혁에 박차를 가하면 일부 재벌총수들은 부의 세습화를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최근 주식가격이 크게 내리면서 대기업 지배주주가 주식을 이용한 변칙증여를 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가격이 내렸을 때 증여를 하는 변칙 상속과 증여는 조세정의의 구현과 재벌의 소유분산을 위해 철저히 차단해야하나 그동안 제도미흡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앞으로 소액주주의 권리행사가 강화된다해도 변칙증여를 통한부의 세습화를 근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국세청은 주식값이 내릴 때 증여를 했다가가 오르면 취소하고 다시 내리면 재증여를 하는 방식을 반복하는 지능적인 변칙 증여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국세청이 매년 법인세 확정신고때 변칙적인 상속이나 증여여부를 조사하고 있지만 변칙증여는 현행 상속세법으로는 막기어려우므로 법개정 조치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현행법은 증여를 했더라도 6개월이내에 이를 취소할 수 있고 주식증여의 경우 증여가 이루어질 때 주식가격으로 증여세가 계산되어 변칙증여의 길을 터주고 있는 셈이다.경제위기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한보그룹 정태수전회장은 이런 허점을 이용,2세들에세 주식을 증여하면서 무려 77억원을 절세한 바 있다.정전회장은 증여·취소·재증여·재취소·재재증여를 하는 방식까지 동원했다. ○상속세법 강화로 봉쇄를 관계당국은 이같은 합법을 가장한 변칙증여을 막기 위해 상속세법을 개정,증여세 납부기한을 현행 3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변칙증여가 분명한데도 절세형식이 되는 현행제도는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상속세와 증여세의 부과는 공정한 분배를 실현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재벌의 부의 세습화를 막고 소유분산을 위한상속세법 강화는 재벌개혁의 핵심적인 사항이 되어야 한다.재벌들은 비단 주식의 변칙증여 뿐아니라 자산재평가를 통한 무상주 분배와 기업합병 및 공개를 이용,변칙적인 증여를 하고 있다. 정부는 소유구조개혁차원에서 상속세법상 4단계로 되어있는 누진구조를 다단계화하고 최고세율 40%를 상향조정하기 바란다.대만은 18단계에 최고세율이 60%에 달하고 있다.재벌총수 스스로가 경제위기를 초래한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소유집중과 부의 세습화 욕구를 버릴 것을 거듭 촉구한다.
  • 세습 경영의 그림자/김영만 경제부장(데스크 시각)

    ○어느 창업주의 경계론 유력한 어느 재벌그룹의 창업주는 우리경제의 위기원인중 상당부분이 2세 경영인들에 있다고 믿고 있다.여러가지 여건이 좋지 않았다는 점과 정부의 정책 잘못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2세들이 기업경영을 취향대로 재단하는 바람에 오늘의 위기가 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창업주와 2세 경영인의 차이를 쉽게 설명한다.“창업주는 적자가 나는 사업체에 들러보면 적자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바로 안다.때문에 문제 해결이 빠르고,실패할 확률이 낮다.그러나 현장을 모르는 2세들은 아랫사람의 눈을 거쳐야만 문제를 파악할 수 있고,그들의 머리를 거쳐야만 해결방안도 찾을 수 있다.능력없는 2세들이 전문가들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게 되면 망하는 일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는 이 창업주의 해석이 100% 맞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의 많은 구체사례들의 뒤안에는 뜻밖에도 2세 경영인들의 독단적인 결정들이 근원적인 단초를 제공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지난해 줄줄이 무너진 재벌들의 대부분이 2세 경영인들의 능력을 넘어선 사업확장에서 비롯된 점을 감안하면 2세 경영인 책임론은 좀더 설득력을 갖는다. 술 한가지로 재벌의 성을 쌓았던 A사는 전문경영인들의 만류를 물리치고,유통업 등에 뛰어들었다가 성을 허물어버린 대표적인 경우다.A사의 2세 경영인이 당시 신규업종 진출에 반대하던 임원들에 대한 홀대는 재계에 화제가됐을 정도로 유명했다. B사의 2세 경영인은 자신의 전문영역과는 상관이 없는 정보관련 업종진출을 놓고 전문경영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그러나 2세 경영인은 그보다 더 강력한 카리스마로 이 업종에의 진출에 성공했다.많은 사람들이 2세 경영인의 정보업종 진출이 오직 허세를 부리기 위한 것으로들 생각했다.새 업종에의 진출은 이 그룹을 현재 해체상태로 몰아 넣고 있다. ○독단이 부른 피해 네 유형 자동차에 관한 C사의 진출 역시 전문막료들의 반대속에서 행해졌고,그로 인해 그룹의 자금줄이 경색되고 있다는 점에서 A.B사의경우와 다르지 않다.이 그룹이 자동차업에 진출할 때는 이미 국내 최대업체인 현대자동차의 공장가동율이 낮아지던 때였다.항간에는 재고누적때문에 근로자들의 파업을 경영주가 즐긴다는 이야기까지 하던 참이었다.신규진입을 반대하던 관계장관까지 물러나게 만든 끝에 진출한 자동차사업은 이 그룹의 부담이 되고 있다. D그룹은 2세가 승계한 이후 스키장과 자동차사업에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투입했다.이 두개사업은 결국 그룹과 관련은행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말았다.지금은 바뀌었지만 이그룹의 2세는 스키와 자동차모형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2세 경영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E그룹의 3세 경영인은 아버지 밑에서 부회장으로 있을 당시 자동차 산업진출과 언론사 소유를 강력하게 주장한바 있다.그는 얼마 뒤 그룹총수로 취임했지만 전문경영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부분 진출의지를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누구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쨌던 이그룹은 재벌중에서 현재 상태가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재벌들은 몇개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2세 체제로 들어가 있고,3세 4세로 이어질 것이다.더 불행하게도 2세들은 중요한 결정을 전문가들의 머리를 거치기보다는 자신의 머리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다. 총수자신의 취미가 거름장치 없이 경영의 형태로 전환된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형상이다. 우리의 재벌구조가 세계의 관심속에 수술대에 올라 있다.상호지급보증으로 대표되는 재벌들의 ‘차입경영’이 수술의 주대상으로 부각되는 참이다. 그런가하면 재벌의 장점도 적지 않게 거론된다. 오너의 경력한 리더십,계열사간 상호보완을 통한 복합적 위기관리능력 등은 재벌을 순기능이다. 빚의 많고 적음도 경영능력의 한계안이냐 아니냐로 판단할 일이다. 좋은 기능은 살리고 나쁜 기능은 죽여야겠지만 능력이 확인되지 않은 2세들의 무제한적인 경영세습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우선적으로 만들어야 한다.창업주보다 뛰어난 2세가 없을 리 없다.그러나 2세들의 실패확률은 현장에서 커 온 창업주나 전문경영인보다 몇배 높을 수 밖에 없다.최소한 이들의독단을막을 수 있는 제도라도 마련해야 한다.
  • 데이비드 홀리 LA타임스 논설위원 논평 요지(해외논단)

    ◎김 당선자 지도력 조기 가시화 ○악조건속 취임준비 박차 LA타임스의 데이비드 홀리 논설위원은 최근 한국의 현상황을 진단하는 ‘한국 새 지도자의 영향력 조기 가시화’라는 논평에서 김대중 당선자가 현재국가의 경제적 위기를 활용,2월25일 대통령 취임에 앞서 변화들을 통한 개혁을 가시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1일자 LA타임스에 게재된 그의 논평을 요약 소개한다. 한국의 요즈음 상황은 얼핏 보면 정치마비 상태에 대한 처방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국가는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고 김영삼 대통령은 레임 덕에 직면해 있다.그의 승계자인 김대중 당선자는 2월25일까지는 정식 임무에들어가지 않는다.그러나 그가 반체제인사 출신이기 때문에 변화와 정치적 보복에 날카롭게 신경을 세우고 있는 일부 관료들을 두렵게 하고 있다. 지난달 대통령선거에서는 투표자의 거의 60%가 다른 후보들을 선호했었다.보도에 따르면 공공문서들이 한국 역사상 최초의 야당 당선자에게의 권력 이양을 앞두고 상당부분 파기되고 있다.제반 상황들이 그의 취임에 앞서 여전히 더욱 악화되고 있다.이같은 모든 도전들에도 불구하고 김당선자는 취임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최근 6백억달러의 구제금융을 IMF에 요청하면서 비롯된 국가위기의 분위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김대중 당선자의 힘을 강화시키고 있다.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계속하고 있다.그러나 이번주 국회가 IMF 구제금융의 조건에 맞춘 중요한 금융개혁 패키지법안을 통과시킬 때 지배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김당선자였다. 김당선자의 국민회의당은 국회에서 단지 소수 만을 점하고 있다.그러나 그는 새로운 금융감독기관을 재경원보다는 총리실 산하로 하도록 하는 핵심 법안의 개정을 요구했고,승리했다.이와 관련,한 신문은 “김당선자가 국회에서의 다수 야당에 대한 첫 테스트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금융개혁법안 통과 주도 현재 한국에서 경제정책 결정의 중심은 비상경제정책팀이라 불리는 12인 위원회이다.위원회 멤버들은 김대통령과 김당선자에 의해 반반씩 임명됐으며 그들은 IMF의 조건들을 만족시키고 구제금융의 흐름을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함께 일하고 있다.이 위원회의 작업은 또한 오랜 극심한 경쟁관계에도 불구하고 가는 대통령과 오는 대통령 사이에 마련된 정기 회동에 의해 보완된다. 이 위원회에서 IMF와의 협상창구를 맡는 핵심인물은 김당선자에 의해 지명된 유종근 전북지사이다.53세의 그는 미국에서 24년을 살았고,시민권자이며 뉴저지 럿거스대학에서 경제학교수를 역임했다.그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같은 것들을 포기하고 1995년 도지사에 당선됐다. 유지사는 외국투자 유치를 강조하는 개혁행정을 펴왔고 김당선자 캠프내에서 시장개방 옹호론자로 알려져 있다.그의 그같은 신념은 한국의 병든 경제를 위해 IMF가 내놓은 처방전과 꼭 맞아 떨어지고 있다.그는 또한 김당선자의 ‘귀’역할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김당선자의 캠프내에 과거 40년동안 한국의 경제기적을 가져온 보다 폐쇄되고 엄격히 통제하는 경제체제를 보다 신봉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인 것을 알고 있다.그러나 유지사는 개혁에 대한 그같은 반대는 앞으로 들어설 행정부가 시장개방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는데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야 반대땐 국민 직접 설득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첫째로 김당선자가 그같은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정부가 IMF와 서명한 패키지를 수용하지 않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또한 김당선자가 의회내 의석부족도 잘 극복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힐 경우 레이건 미대통령이 했던 방법대로 국민에게 직접 설득할 것을 권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김당선자 역시 매우 설득력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당선자에게는 경제팀 외에 광범위한 정치 및 행정 업무의 인수를 위한 정권인수위워회가 선거대책본부장 이었던 이종찬 부총재에 의해 지휘되고 있다.24명의 이들 팀은 떠나는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심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이들의 주요 업무중 하나가 국가의 경제적 위기를 초래한 정책적 실수나 가능한 부정을 밝혀내는데 있기 때문이다.
  • 초국가 질서와 한국의 대응/안병준 국제부장(데스크 시각)

    ○지구촌화 첨병 다국적 기업 한 해가 간다.지구촌에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세찼던 1997년이 가고 있다.이 바람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아니,더욱 거세질 것이 틀림없다.그런 가운데 올 한 해의 마감을 한국이 떠맡은 것은 불행인가,행운인가.세계 190여 국가중에서 유독 한국이 선택된 것은 필연인가,우연인가. 인류는 예수탄생 이후 최근의 지난 10년간 엄청난 기술의 전이로 인해,그리고 걸프전의 여파로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급속하게 맞이했다.통신 교통의 혁명적 발달이 세계를 바짝 가깝게 만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이러한 상호의존성을 이용해 세계를 거대한 단일경제권으로 만든 세력도 등장했다. ‘지구촌화’를 부추기는 첨병으로 첫손 꼽히는 것은 다국적 기업(TNC)이다.지구촌화 세계에서는 TNC간의 경쟁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이들간의 경쟁은 일정한 규칙 아래서만 움직인다.이들은 상품·금융·기술특허권 등을 통한 상호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주권 국가경제개념에서 모든 생산·분배·교역·소비 심지어는 민족고유 문화형태 까지도 단일 초국가체제로 전환시키려 기도한다. 즉 초국가 세계질서(Transnational World Order:TWO)를 형성하는 것이다.이같은 새체제 아래서 국가주권은 TNC의 자본에 의해 희생되고,특히 후진국들(SOUTH)은 새로운 식민체제의 벼랑으로 몰린다.이에따라 와국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자국민들이 댓가를 치루도록 하는 상황을 맞게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강대국은 개별국들과 자유롭고 유리하게 교역을 할 수 있지만,여타국들은 자신들간에는 그 아무것도 자유로이 할 수 없는 ‘바퀴축­바퀴살’형국을 맞게되는 것이다.이는 과거 제국주의 방식으로 그대로 회귀함을 뜻한다. ○개발국 내핍 요구 증가 새로운 지구헌장이랄 수 있는 ‘AGENDA 21’만 보아도 그렇다.여기의 일부 조항은 국제법 및 국가주권에도 위배된다.심지어 향후 일부 반항적인­예컨데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총리같은­제3세계국에 대한 합법적 응징방편으로 악용될 소지도 보인다.그럼에도 이들 조항 어디에도 선진국들(NORTH)국민의 기존 생활방식 전환의 필요성,이들이 누리는 물질적 혜택의문제점을 지적하는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단지 SOUTH국의 내핍과 개발억제만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한 해 세계의 10대 뉴스랄 수 있는 아시아 금융위기·엘리뇨와 인도네시아 산불 등 기상재앙·콩고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앙골라 스리랑카 등 후진국들의 내전 확산 등과,패스파인더의 화성탐사·유럽의 정권교체·복제양 돌리의 탄생·EU의 형성 등만 보아도 TWO체제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건들이라 하겠다. 이런 와중에 맞이한 아시아 여러나라의 금융위기는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그 첫째는 국제사회의 급류가 어디로 흐르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고,둘째는 권력과 대기업들은 물론 국민들까지도 오만방자했다는 점,셋째는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을 계속 우매하게 여겨 속여왔다는 점이다.모두에게 철학이 부족했다는 뜻이다.철학은 어려운게 아니다.철학은 상식이요,보편타당한 진리인 것이다.그 쉬운 것을 모르고,두가지­샴페인과 핸드폰을 일찍 터뜨릴줄만 알았던 것이다. ○아주 금융위기의 공통점 그러면 ‘한국에 대해 OECD 회원국 대우를 하지말자’는 굴욕적인 말도 나오고 있는 판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해답은 자명하다.샴페인과 핸드폰을 닫아버리고 위의 단 세가지 점만 해결하면 된다. 오늘처럼 거센 바람을 맞이하기는 6·25 이후 처음일런지 모른다.우리는 고통과 고난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왔다.그리고 착각 속에 살아왔다. 지금 우리는 다시금 변화의 길목에 섰다.새로운 정권의 탄생과 함께 맞이한 회오리 바람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지금처럼 국민적 공감대가 단단하게 이루어진 적도 역사상 드물다.이것은 희망과 기회이다.이 공감대는 위에 지적한 3가지 잘못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우리는 결코 ‘바퀴살’이 될 수 없는 나라이다.
  • “한국 은행·정부·기업 유착 깨야”/캉드쉬 총재 문답

    ◎참을성 있게 IMF프로그램 실천땐 성공 미셸 캉두쉬 IMF 총재는 12일 미국 PBS­TV방송의 짐 레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 프로그램에 추연,한국 금융위기에 관해 회견했다.다음은 회견내용 ­IMF 구제금융협상에도 불구하고 한국 원화가치가 연속 폭락하고 있는데. ▲놀랄 일이 아니다.신뢰를 회복하고 경제를 재건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다.그전 멕시코 때를 상기해 봐라.한국도 참을성 있게 프로그램을 실천하면 성공할 것이다. ­투자자들이 그래도 회의적인데. ▲한국의 위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것이었다.대선까지 겹쳐 있어 아무도 한국이 지금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한국정부는 약속했던 것을 실천하고 있다.투자자들은 본래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한국민들 사이에 구제금융의 부대조건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데. ▲이해할만한 현상이다.한국인들은 자존심이 강한데 그간 그들이 성취한 것을 생각하면 온당하다 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한국을 오랜동안 살펴온 사람들이 꼭 해야만 할 것으로 생각해온 것들이다.한국은 아주 특별한 체제로 은행,정부,기업 사이에 거의 ‘근친상간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다.이제 시장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기본이 괜찮은데도 제3세계 국가에게나 하는 초긴축정책을 요구한다는 비판이 있다. ▲자본이 빠져나가려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자율을 높여야 한다.재정에 관해선 균행을 맞추라는 것 이상도,이하도 아니다. ­한국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한 사람들을 구제해 준다는 비판도 있다. ▲IMF 구제금융은 국가각 침몰하는 것을 막는데 그치지 않고 고쳐주는 것까지 포함된다.그리고 폐쇄되고 재편되는 기관의 주주들은 누구든간에 분명 돈을 잃도록 되어 있다. ­최악을 상황인가. ▲한국국민과 한국정부가 경제의 어려운 실상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데서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그러나 IMF 패키지의 당사자인 한국과 우방국들이 이행조건을 참고 견딘다면 최악의 상황은 넘긴 것이다.이제 문제해결 프로그램을 실천해야 한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은구제금융을 주는 축이지 결코 구제를 받는 편이 아니다.아시아경제는 성숙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다.위기는 언제나 위험과 기회가 함께 있다.
  • 안세영 통산산업부 미주과장(폴리시 메이커)

    ◎“미 대형 유통체인 공략 수출 확대”/하이테크분야 첨단기술 국내이전 촉진 대미 무역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90년 24억1천8백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던 대미 교역은 지난해 1백16억3천5백만달러의 적자로 돌아섰다.올들어 8월까지 적자도 이미 71억달러를 넘어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세계무역기구(WTO) 체제아래서 정부주도의 수출진흥책을 쓸 수도 없다.국내 자동차 시장개방을 위해 미측이 집요한 공세마저 벌이고 있어 정부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시장이자 경쟁이 가장 활발한 시장입니다.경쟁력을 확보해야 만 세계 1위가 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제 3세계 등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미국 시장을 포기하고서는 한국경제가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대미통상정책을 최일선에서 다루고 있는 통상산업부 안세영 미주과장은 미국시장을 경쟁력의 시험대로 진단한다.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대미 자동차 수출이 중단된뒤 이들 자동차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는 것이 곧 미국은 상품 경쟁력의 척도라는 생생한 증거라고 안과장은 얘기한다. 안과장은 우리상품의 미국시장 진출확대를 위해 크게 두가지로 접근하고 있다.하나는 유통시장이고,다른 하나는 산업기술협력 증진.그는 “미국은 90년 이후 유통형태를 백화점 위주에서 K마트,프라이스 클럽 등 대형 유통체인으로 전환했다”면서 “대미 수출품의 대형 유통체인 접근은 전체 수출상품의 7%에 불과해 10월중 미국의 유명 마케팅 에이전트 20여명을 국내로 초빙,상담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미국내 중간유통상인 마케팅 에이전트들은 상품을 발굴,미 유통체인에 공급한다. 하이테크 분야의 산업기술협력을 위해서는 10월 1일 한미기업협력위원회(CBC)를 발족시켜 미국측에 ‘한미 비즈니스 넷 시스템’구축을 제안할 방침이다.한국의 중소기업진흥공단,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의 정보망을 미 상무성의 전자시스템과 연계해 미국 첨단기술의 국내 이전을 촉진하겠다는 생각이다.제품의 공동개발과 상품화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미 정부조달시장 진출과 벤처분야 협력방안도 제안할 계획. 안과장은 특히 “자동차 수출확대를 위해 최근 실무협상에서 상용차에 대한 높은 관세(25%)의 인하를 요구했다”면서 “우리와 입장이 같은 유럽연합(EU) 및 일본과 공동으로 요구를 관철하는 방안은 장기적인 숙제로 남아있다”고 했다. 서울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75년 행정고시 17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상공부 법무담당관,청와대 경제수석실을 거쳐 국제기업과 워싱턴 유엔산업개발기구 등에서 통상기술을 연마한 국제통이다.
  • 강 체제 안정 염두 둔 친정구축/중 정치국 인사 배경

    ◎정원 30% 신진 기술각료 중용… 개혁에 무게/계파안배 차원 교석계 위건행 상무위 진입 중국 제3세대 지도자인 강택민 공산당 총서기는 이번 중국공산당 정치국 인사를 통해 세대교체와 기술관료들의 중용을 단행하며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고 21세기 준비를 위한 체제정비를 완결했다고 할 수 있다. 강은 정원의 3분의1에 해당하는 7명의 정치국원과 2명의 후보위원을 실무와 행정경험이 풍부한 새롭고 젊은 인물로 교체했다.정치국의 핵인 7명의 상무위원 가운데 강택민,이붕,주용기,이서환,호금도 등 5명은 14대에 이어 연임됐고 위건항 기율검사위와 이람청 부총리는 새로 정치국에 진입했다. 중국의 경제개혁을 주도해온 주용기 부총리가 당서열 5위에서 3위로 올라섰으며 그는 이붕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로 취임할 예정이다.연임제한 규정에 따라 내년3월 퇴임하는 이붕 총리는 교석의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이람청 부총리는 대외무역담당 부총리에서 국유기업개혁 등 경제전반을 책임지게 될 전망이다. 교석 계열의 좌장격인 위건행의 정치국 진입은 교석 실각의 파문을 줄이기위한 계파간 안배로 해석된다.확고한 일인자 지위를 확립한 강택민의 당내 단합과 안정을 염두에 둔 무리없는 인사 안배가 이번 정치국 인사의 특징이다.위건항은 당대회 직전 북경시 서기에선 밀려났지만 사정·감찰업무를 지휘하는 당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직이란 칼자루는 빼앗기지 않았다. 강택민의 군부내 대리인인 장만연 전 총참모장을 중앙위원에서 바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격상시키지 않고 낮은 단계인 정치국원자리에 머무르게 한 것이나 군부내 중도파인 지호전 국방부장을 장과 함께 정치국에 진입시킨 것도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이붕의 직계인 라간국무원 비서장(부총리급)과 조자양 총서기시절 차세대 선두주자였던 온가보의 정치국원 선출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국 상무위의 군부 몫이 없어진 것은 의외지만 이는 군부장악에 대한 강택민의 자신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선거에서 군부의 인사·명령권을 장악한 주석직엔 강택민이 재선돼,군 최고 통수권자임을과시했다.부주석직은 15대 대회를 통해 퇴임한 류화청과 장진 등 두 노장군의 자리를 메우지 않아 군부내 라이벌인 장만연과 지호전만이 남게 됐다.군사위원직엔 총참모장 부전유,총정치부 주임 우영파,총후근부 주임 왕극과 왕서림상장 등 강택민의 직계 또는 친강계열로 채워졌다.산동성 출신의 왕서림 상장은 등소평 생존당시 ‘등소평 판공실’ 주임으로 등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면서 군부내에 강택민의 입지를 심는데 일등공신역할을 해왔다.
  • 중 경제건설에 정책최우선/15전대서 밝힌 향후 5년 중의 정책

    ◎국유경제 경쟁원리 도입… 구조조정 불가피/종업원지주제 인정… 대외분야 등 정책 유지 강택민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12일 15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회를 대표,발표한 보고는 2002년까지 5년간의 공산당과 정부의 진로·목표 등 중국의 기본정책을 담고 있다.강택민의 표현대로 보고 요지는 경제건설에 최고 정책우선권을 두고 기존의 개혁·개방정책을 더욱 확대·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등소평이론을 마르크스주의·모택동사상과 함께 당의 기본지도이론으로 확립해 나가겠다는 것도 이같은 정책목표를 뒷받침한다. 보고는 시장경제 진입 심화에 따라 걸림돌이 되고 있는 국유경제분야의 경쟁원리 도입도 포함됐다.이는 주식제 도입등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 입각,집체기업과 주식 합작제(종업원 지주제) 등 다양한 소유형태를 인정하고 현대 기업제도를 확립해 생산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이와함게 앞으로 3년내에 50만명의 군인을 감축하겠다는 발표는 경제발전을 위해 국유기업뿐아니라 국방분야의 부담도 줄여나가겠다는 생산성 및효율성에 입각한 경제개발 제일주의의 획기적인 표현으로 해석된다.이같은 결정은 사실상 군부에 대한 강택민의 장악이 확고해졌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강택민은 경제체제 개혁이 공유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은 다양한 소유형태를 지닌 공산주의로 가는 사회주의국가라고 강조했다.국유경제분야의 개혁이 진행되더라도 주요 국유기업에 대한 국가의 지배적 지위는 변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다만 앞으로 국유경제분야의 경쟁 원리에 따른 대대적인 산업구조 조정 및 기업 파산·정리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실업자 증가 등 단기적인 부작용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강 총서기는 설명했다.경제분야에서 상해포동개발촉진이 언급된 것은 양자강지역 개발등 지역개발정책과 관련,주목된다. 내부정치와 관련,경제발전에 따른 정치체제의 개혁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음도 강조됐다.직접민주선거 등 참여확대,법률제도 완비,감독기구 강화등이 그 내용이다.그러나 중국은 서구 민주제도를 따르지 않고 중국 실정에 맞는 민주화의 길을 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강 총서기는 또 심각한 당 간부들의 부패현상도 경고했는데 이는 반부패 투쟁을 강력히 전개할 것임을 알리는 것이다.지난9일 진희동 전 정치국원겸 북경시 서기가 부패혐의로 당에서 제명당하고 형사조사를 받게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태자당’을 비롯한 제2의 부패와의 투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평화공존 5원칙 등 등소평의 외교정책의 유지를 밝혔으나 군사 동맹 및 다자 군사안보체제강화를 비판하고 제3세계와의 협력강화를 밝힌 것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 및 미·일 안보조약 강화와 관련,주목된다.
  • 중,국유기업 사영화 허용 ‘대수술’

    ◎오늘 15전대… 국유경제체제 개혁 방향은/주식제 대폭 확대·소유형태 다양화 추진/재벌형 사기업 육성… 제2 시장경제 전환/부실기업 단계정리… 대량 실업 해결 과제 12일 개막되는 15대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의 주요 주제중 하나인 국유기업 등 국유경제체제의 개혁은 21세기를 앞두고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는 중국이 사회주의 계획경제시대의 잔재를 제거,보다 적극적으로 시장경제로 적응해 나가기 위한 처방과 구상을 담고 있다. 이같은 구상은 국유경제체제의 포기라기보다는 중·소 국유기업을 포함한 방만한 국유기업체제를 정리,국유기업 가운데 주력분야는 살려 정예화하고 나머지는 주식제 도입,사영화(사영화) 등의 방법으로 정리해 국유경제체제의 부담과 비용을 줄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결정될 국유경제체제의 개혁방향은 ▲국유기업 등에 대한 주식제도 확대 및 주식합작제 ▲다양한 소유형태에 대한 양성화 및 허용 등으로 요약된다.핵심적이고 전략적인 기간산업분야를 제외한 국유기업은 민간자본 및 외국자본의 주식 참여를 대대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다.또 주요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국유기업은 국유 형태에서 집체 및 법인기업 형태 또는 사기업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중국정부는 100개 기업군을 지정,이들을 재벌형 거대기업으로 키워나가되 나머지 중·소국유기업은 진로와 사활을 시장메카니즘에 맡겨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를 사유제도의 전면도입 및 시행으로 보기는 어렵다.국가가 직접 기업을 거느리고 운영하던 경직된 국유경제체제에서 다른 소유형태로 전환하더라도 가능한 지방자치단체 및 종업원(사실상 종업원 지주제) 등 공동체가 운영의 주체가 되는 집체기업 형태를 도입하고 공유제와 사영경제간의 균형을 맞춰 나가겠다는게 중국공산당의 구상이며 희망이다.사영기업과 사경제의 비중 증가에도 불구,공유제를 근간으로 하는 국민경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중국 공산당은 ‘다양한 소유형태의 도입’이 곧 공유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98년부터 이같은 정책이 본격화되면 국유경제분야에 속한 적잖은 중·소 국유기업 가운데 부실 또는 적자기업들은 점진적이며 단계적인 방법으로 파산,합병,매각 등의 방법을 통해 정리될 전망이다.이 과정에서 생기는 대량 실업사태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가 강택민을 핵심으로 하는 ‘제3세대 지도집단’이 풀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이같은 과정을 통해 보다 시장경제에 접근되고 체질이 강화된,그리고 보다 해외의존도가 높아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있을수 없다.
  • 21세기 국가과제 주요 내용

    ◎토지개발권 지자체 위임… 지방중심 발전 전략/대학설립 자유하 효율적 인력개발체계 구축/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근로자 파견제 내년 도입 ■정부의 역할과 기능 재정립=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간섭을 최소화한다.정책목표가 중복되거나 유사한 부처는 통폐합한다.우체국과 철도 등 집행기능은 민영화 또는 민간에 위탁하고 폐쇄적인 인사제도를 개선,민간부문의 인력을 충원한다.능력과 노력에 따른 성과급제롤 도입한다. ■재정지출 구조의 개혁=경직성 경비를 축소하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농어촌 등에 대한 세출을 효율적으로 조정한다.세입에 바탕을 둔 투입예산제도에서 세출을 위주로 한 성과예산주의로 개편하고 각 부서의 장에게 재량권을 주는 ‘총괄경상비’ 제도를 확대한다.각종 기금을 정비,통폐합한다. ■세제개혁과 세정의 합리화=환경부담금 등 각종 부담금을 조세에 편입시켜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한다.각종 비과세 공제 감면 등 조세지원을 줄이고 세제를 단순화해 소득 계층간 공평과세를 실현한다. ■지방중심의 경제발전 전략=토지개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한다.조성원가보다 낮게 임대용 공장부지를 제공하는 지자체에 대해 국고지원을 확대한다.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에 재정 및 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기업의 준조세 부담을 낮춘다.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제도 개선과 기능 정비=한국은행을 한국중앙은행으로 개편,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보장하고 물가관리에 대한 책임을 부여한다.현행 금융감독체계를 금융감독위원회와 신설될 금융감독원으로 일원화하고 재정경제원은 정책부서로 남는다.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효율적 인력개발체계 확립=대학의 설립을 자유화하고 교육시장의 대외개방을 확대해 전문대와 4년제 대학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전면 허용한다.기여 입학제를 허용하고 대학정원을 자율화한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및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지배대주주와 회장실 및 기조실의 임원을 ‘사실상 이사’로 간주,계열사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한다.지배 대주주의 남용행위에 대해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수주주 요건을 완화하거나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한다. ■경쟁적 시장구조로의 전환=산업정책적 목적에 따른 모든 진입규제를 폐지·축소하고 국내 M&A(인수·합병) 시장에서 외국자본 참여를 확대한다. ■금융산업의 자율적 경쟁체제 구축=비효율적 경영으로 부실화된 금융기관이 경쟁원리에 따라 도태되도록 퇴출 및 파산절차를 정비한다.금융지주회사 설립과 종합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니버설 뱅킹제도를 도입한다.현행 4%인 은행주식 소유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벤처·중소기업 중심의 발전여건 조성=벤처기업이 투자재원을 충분히 조달하고 고급기술 및 연구인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입지관련 부담을 대폭 완화해 창업을 돕고 직접금융시장의 활성화를 추진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근로자파견제를 내년에 도입하고 계약제 및 시간제 근로를 활성화한다.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성과급제로 개편하고 법정 퇴직금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를 활성화한다.여성의 고용을 확충하고 공공부문에서 계약직 임용과 연봉제를 도입한다. ■사회복지체제의 효율화와 고령화시대 대비=근로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최저생활수준을 보장하되 일할 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에게는 일할 여건을 제공한다.근로자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2∼3세 높이고 산업재해보험 등 사회보험에 민간부문의 참여를 허용한다.국민연금 보험료를 현실화하고 연금을 받는 연령을 65세로 높인다. ■환경친화적 발전전략의 추진=생산 및 소비 주체가 스스로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도록 유도한다.오염배출 총량을 기업별로 할당,오염 배출량이 적은 기업이 여유 배출량을 다른 기업에 파는 제도를 도입한다.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구조로의 전환 및 기후변화협약에의 대응=에너지 가격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하고 경자동차에 대한 세제지원을 늘린다.환경친화적 에너지 기술개발을 추진한다.합리적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감축 목표를 설정,기후변화협약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대외개방의 진전에 대비한 농업구조 개선=농업용수 확충 및 경지정리 등을 통해 농업 인프라를 확충하고 전문경영체제를 육성한다.재정 투·융자 사업의 운영방식을 개선,농업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 지향적인 농업시스템을 구축한다.해외농업개발 수입선다변화 등 안정적인 식량수급 방안을 마련한다. ■규제완화 등을 통한 토지공급의 원활화=토지 이용을 중복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개별법상의 각종 지역·지구를 단순화한다.도시지역 주변의 준농림지역을 합리적으로 이용하고 다양한 유형의 주택 및 산업단지 개발을 촉진한다.토지보유를 억제하고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재산세 등 보유세를 높이고 취득세 등 거래세를 낮춘다. ■물류 및 대도시 교통체계 개선=화물운송사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화물자동차 고속도로 심야운행 요금을 할인하는 등 도로운송 체계를 영업용 차량 중심으로 전환한다.항만운영에 민간 경쟁체제를 도입한다. ■물가구조 개편과 유통구조 개선=파스 드링큐 등 단순의약품의 일반 상점 판매를 허용한다.가격파괴형 할인판매점 확충을 위해 도심외곽 지역의 입지규제를 완화한다.순수임대 목적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통신 전력 가스산업의 민영화를 추진한다. ■동북아 물류중심 기지화를 위한 전략 추진=부산항과 광양항의 역할을 분담 부산항은 환동해권 화물을,광양항은 북중국 화물을 처리하는 항만으로 키운다.항만의 기능을 제고하기 위해 국제물류센터를 건립하고 항만의 민영화를 계속 추진한다. ■정보인프라 구축 및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당초 2015년에서 2010년으로 앞당긴다.통신요금을 자율화하고 통신사업자간 인수·합병을 단계적으로 허용한다.소프트웨어 및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기술지원을 강화하고 병역특례제도 등을 통해 전문인력을 대거 양성한다. ■과학 및 산업기술 혁신 촉진=산학 협력체계를 강화,수요자 중심의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정부의 지원을 강화한다.정부출연 연구기관을 공공목적 추구형 산업계 지원형 미래 선도형 등으로 전문화한다.
  • 정책목표 유사부처 통폐합/21세기 국가과제 보고

    ◎정부 집행기능 민간경영방식 도입/김 대통령 “당정합심 실천 차질없게” 정부는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현행 60세인 근로자 정년을 62∼63세로 높이고 기업의 퇴출을 원활히 하기 위해 파산법원을 설립할 방침이다.정책목표가 유사한 부처를 통·폐합하고 우체국 등 일부 집행기능은 민영화하는 한편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근로자 파견제 및 계약제 근무 등 다양한 고용형태를 도입하기로 했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4일 상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건설현장 회의센터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이같은 내용의 ‘열린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21개 국가과제’를 보고했다. 강부총리는 이날 보고에서 “21세기를 앞두고 엄청난 세계적 변화의 물결과 치열한 국가간 경쟁은 우리의 혁신적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며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시장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한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시장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정책입안 기능을 수요자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해 집행기능의 경우 민간경영방식을 도입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권한과 재원의 배분관계를 재정립하기로 했다. 시장을 경쟁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기업의 진입·퇴출이 원활하도록 진입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기업간 인수·합병(M&A) 촉진을 위한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기업의 정리절차를 전담하는 파산법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건설근로자 등과 오찬 김영삼 대통령은 4일 상오 인천국제공항 건설현장에서 ‘21세기 국가과제’ 추진 보고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가과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당과 정부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며 “경제부총리는 당과 긴밀히 협조하고 당도 우리의 미래를 건설하는 일에 정부와 합심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보고회의 참석에 이어 김대통령은 여객터미널 건설현장을 돌아보고 신공항건설공단구내식당에서 회의 참석자와 공항 건설근로자 등 140명과 오찬을 함께 했다.
  • 한국 정치외교의 과제/조정원 경희대 총장(시론)

    정치학의 올림픽 혹은 유엔총회라 일컬어지는 세계정치학회가 ‘갈등과 질서’라는 주제로 8월17일부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다.정치학을 정치현상의 이론과 실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때 한국정치의 과거와 현재는 정치현상의 탐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실로 수많은 연구과제를 제시하는 학문적 보고가 되고 있다.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처럼 한국은 식민지를 경험한 아픔을 갖고 있으며 독립 이후 한국의 대일관계는 반일,극일의 과정을 걷고 있으나 아직도 성숙된 미래지향적 관계 정립은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경제교류는 비교적 활발했으나 정상적인 문화교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정치·외교·군사적 측면에서도 한국은 물론 중국,동남아 제국도 대일 경계심과 위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유럽의 경우,독일은 전범국가로서 진정한 사죄를 하였으며 그러한 토대위에서 견원지간이었던 독·불 관계는 친선협력관계로 성숙되었고,구주공동체와 유럽연합(EU)을 탄생시키는 주역국가가 된 사실에 비추어볼때 비교되는 점이 많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우에는 전후 처리과정에서 일본이 진정한 반성을 하지않고 여타 아시아 제국을 상품시장화하려는 경제적 관계에 치중하였기에,유럽에 비해 동북아 협력공동체의 건설은 아직도 요원하게 보여진다.아시아에서는 근래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한국도 적극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으나 아·태지역을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지역적 공간확대의 문제,문화적 차이,미·일·중·러 강대국간의 입장차이로 인해 보다 발전된 경제안보협력공동체로의 진전이 지연되고 있다. 한·일 관계는 최근 일본의 직선기선을 적용한 무리한 영해의 설정과 한국어선의 나포로 독도문제의 재론과 함께 더욱 악화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과거사 문제와 갈등이 잠복된 상태에서 미래의 동반자로서의 한·일 협력관계의 추구는 한국정치외교의 해묵은 과제이자 언제나 새로운 과제이기도 하다.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며 보수 우익이 강화되는 일본의 정치·사회적 경향속에서 1996년의 신 미·일 안보선언 이후 신방위협력지침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은 이미 평화유지군(PKF)을 통한 해외진출을 시도하였고,이제는 일본 내해의 전수방위뿐만 아니라 전 아시아국가로의 군사적 진출을 시도할 수 있는 명분과 법적 장치를 모색하고 있다.동시에 국제무대에서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하다. 한편,한·일 경제관계에서도 한국산업의 구조적 특성이 일본기술에 의존되는 측면이 많기에 단기간 내에 무역역조를 시정하기도 어려울 전망이다.경제적 측면에서의 한국의 대일 의존현상은 군사적 차원의 위구심 못지않게 각별한 경계를 요하며 극일을 통한 국력결집과 선진한국으로의 도약이 해결의 열쇠일 뿐이다. 이제 한국은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외교,경제,군사 등 제분야에서의 진정한 협력관계를 마냥 수동적 자세에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하여금 한·일관계는 물론 동북아 협력체제를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끌어내고 가르쳐야 한다. 한국은 미·일·중국의 동북아삼각관계를 맺는 접점으로서 지정학적인 면이나 세력균형적 차원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핵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영토분쟁과 세력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북아 안보상황에서 중화사상과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의 팽창에 대비하여 한·일 양국의 협력은 긴요하며 일본의 팽창기도에도 한국은 인근 아시아 제국과 더불어 견제 역할을 해야 한다.한국정치의 향후 과제는 분단조국의 통일과 선진 복지국가로서의 경제력을 확보하는 것과 더불어 동북아 세력 재편과정에서 한국의 위상을 재정립하여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도모하도록 일본을 계도하고 동북아 협력공동체가 제도화될 수 있도록 정치외교력을 발휘하는 것이다.한국정치의 과제는 작금의 지엽말단적,소모적 정쟁을 지양하고 여야간 정책대결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제2의 광복절을 맞이하는데 두어야 할 것이다.
  • 제17차 세계정치학회 서울대회 주요 논문

    제17차 세계정치학회 서울대회 첫날인 18일 서울 롯데·프라자·프레지던트호텔 등 3곳에서는 ‘한국의 세계화:비교학적 고찰’등을 주제로 각각의 패널이 열렸다.다음은 한국관련 논문들의 요지다. ◎비교학적 관점에서 본 김영삼정권­스테판 해가드 캘리포니아대 교수/보수세력의 영향력 개혁정치 저해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정치는 현 정권초부터 정치계 및 재계 등의 보수세력의 영향에 의해 제약을 받아왔다.초기의 민주화 열풍이 임기말에 이르면서 점차 약화된 것도 그러한 보수세력들의 영향력이 개혁의 날을 무디게 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나타난 독특한 특징은 과거 군사독재정부가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해놓았다는 점에 있다.이는 경제적 침체가 독재정권을 약화시킨 주원인이 되었던 필리핀,라틴아메리카의 경우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한국의 경우 전두환 노태우 정권부터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보수주의세력이 한국의 정치현실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은 그의 민주화실현에 있어 충분한 뒷받침역할을 해주지 못했다.지난 90년 민정계와의 대연합구도 결성 당시 이미 자동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세력을 그 스스로가 수용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김대통령의 개혁내용은 당초 의도했던 것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됐지만 그의 개혁은 부패된 현실과 과거청산에 있어 모두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이는 그 이면에 보수적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직접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과거 독재정권과 연계성을 지닌 보수세력이 미친 영향력은 민주화로의 이행에 있어 제약요인이 되었다. 김대통령의 정치개혁 영역 가운데 중요한 것들이 정치사범과 운동권에 대한 사면조치,안기부의 권한 약화,정부 관료들의 부패척결 등이었다.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은 완전한 민주화를 달성하지 못했다.그 이면에는 과거유신정권과 전·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독재정권하에서 달성한 경제성장이라는 성과로 인해 문민정부 집권후에도 보수적인 세력들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정책결정과정 속에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세계화와 제3세계에의 함의­데이비스 봅로우 피츠버그대 교수/‘세계화’통해 국제지위 괄목할 성과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세계화정책의 문제점으로 먼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세계무역기구(WTO) 등에 가입함에따라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겠지만 개방의 압력에 취약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제 한국은 미국의 개방압력에 덧붙여 OECD의 다자간 투자협정,WTO의 경쟁,환경,노동기준 등을 고려해야 한다.한국이 극복해야할 또하나의 문제점은 중소기업이 발달하지 못했으며 대기업은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것이다.또 북한의 위협도 장애요인으로 꼽을수 있다.단기적인 안보의 유지를 위해 한국은 미국 일본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북한의 경제수준을 한국의 현 수준으로 끌어올려놓을 자본과 사회기반설비가 필요하다. 세계화의 성과로는 국제적 지위의 면에서 괄목한만한 성과를 올리고 정치분야에서 부패척결의 성과를 가져왔다.그러나 경제성장의 측면에서는 세계화정책시행이후 경상수지,무역수지의 적자를 기록해 단기적인 성과를 거두는데는실패했다.국제무역관계의 다변화 추진과 관련해서는 수출의 경우 과거 미국과 일본에 집중되었던 것에 비해 동남아시아,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국가로의 다변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세계화라기 보다는 지역화의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수입의 경우에는 다변화정책의 성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세계화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로 변모할 것을 약속했다.이 세계화정책은 국제금융시장에의 활발한 참여와 해외로부터 기술이전을 통해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경제발전을 가져올수 있다.이러한 세계화의 정책은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될때 정책의 신뢰도를 높일수 있으며 이 정책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모든 변화를 포함한 정책으로 풀이되고 있다. ◎민주화 세계화 시대의 한국의 외교안보정책­토마스 헨릭센 스탠포드대 교수/워싱턴·북경일변도 정책 지양해야 민주화,세계화 이 양대세력은 정치적 대격변을 초래했으며 이같은 정치적 변화는 자유시장의 확산,치열한 국가간 경쟁,그리고 통신시장의 부상과 같은 새로운 경제질서를 확립했다.이 두세력은 소련해체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북한의 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는 또 중국을 아시아의 지배적 국가로 부상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냉전이후 미국의 안보체제를 재정립시키고 있다.이에 대처해 한국의 외교와 안보는 워싱턴과 북경일변도를 지양해야만 할 것이다. 국제화 민주화 시대에 대응하는 한국의 외교안보정책 전망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북한이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면 한국은 국제정치상의 현상유지를 할 것이다.미국은 대북한외교를 공식화할 것이며 이는 궁극적인 한반도통일에 도움이 된다.미국은 군사적으로 남한에 개입하고 남한은 미국일변도 외교를 유지할 것이다. 둘째,북한내부의 변화로 미국이 남한에서 철수할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면 한국 및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지도 모른다.주한미군 철수는 남한의 외교안보정책상의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한국은 더이상 미국일변도 외교를 고수하지 않고 중국의 대미관계 변화가한국의 지역전략을 결정지을 것이다.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전략은 ▲소련연방의 안전지대내에 존재하면서 나토와 미군사력의 보호를 받았던 핀란드나 ▲공식적으로 나토에 가입하면서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았던 노르웨이,▲중립적 위치를 표방하면서 이를 위해 강한 군사력 확보와 비동맹 국제지위를 유지했던 스웨덴,또는 ▲나토나 유럽연합에 가입해 서독의 안보 및 경제적 지위보다 두 독일의 통일을 택했던 독일형 모델 등을 따를수 있다. 아무리 폐쇄적 공산국가라고 할지라도 외부세계의 변화물결은 피할수 없을 것이다.한국은 덜 폐쇄된 북한을 염두에 두고 한반도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며 민주화 국제화 시대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을 이런 시각에서 재평가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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