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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ijing 2008] ‘신뢰’가 만든 값진 銅

    지난 16일 한국과 중국의 탁구 남자단체 준결승전. 중국은 당연히 유승민(26·삼성생명)을 첫 단식 주자로 예상하고, 유승민에 강한 세계 2위 마린을 내보냈다. 반면 유남규 남자대표팀 코치는 역으로 오상은(31·KT&G)을 투입하는 변칙오더를 내놓았다. 작전은 맞아떨어졌다. 오상은이 마린에게 1세트를 내준 뒤 거푸 2,3세트를 따내며 승기를 잡은 것. 녹색테이블의 반란이 기대된 순간. 하지만 4세트 10-10으로 맞선 승부의 고비에서 유 코치가 오상은을 벤치로 불러들였을 때 오상은은 힐끗 보더니 외면했다. 탁구계의 내분으로 올림픽 한 달 전에야 유남규 체제가 출범한 탓에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지 못했던 탓. 복귀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유 코치의 ‘판단’보단 오상은이 자신의 ‘감’을 믿었던 것. 유 코치는 “만약 선수들이랑 꾸준히 훈련을 해왔더라면 윽박질러서라도 작전 타임을 썼을 텐데 훈련 기간이 4주밖에 되지 않아 나도 자신이 없었고, 상은이도 나를 믿지 못한 듯했다.”고 설명했다. 결과론이지만 이후 오상은은 급격하게 무너졌고 한국은 중국에 0-3으로 패했다. 그날 밤 오상은은 “감독님(유 코치가 전 감독이기 때문)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했고, 유 코치는 “니가 그때 왔어야 했는데 서운했다.”고 말하면서도 앙금을 털어버렸다. 이틀 뒤인 18일 베이징대 체육관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경기 전 유 코치는 오상은을 불러넣고 “나를 믿어라. 나는 너를 믿겠다.”면서 또 한번 팀워크를 다졌다. 또 선수 오더를 짜면서도 오상은에게 “승민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복식에 나가면 잡힌다. 니가 한 번 더 해줘야 한다.”고 말했고, 오상민도 이를 전적으로 수긍했다. 불과 이틀 사이였지만, 유 코치와 오상은 사이에 끈끈한 ‘믿음’이 형성된 것. 유 코치는 이날 과감한 작전타임으로 적절히 상대의 상승세를 끊었고, 오상은은 1단식과 3복식을 잡아내면서 단체전이 도입된 첫 올림픽에서 한국이 동메달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믹스트존에 들어선 유 코치는 “중국전이 끝난 뒤 (벤치 미스에 대해) 나 자신에게 나가 죽으라고 소리치며 자책했다.”며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이어 “이제 나도, 선수들도 체면 유지는 했으니(웃음) 개인전에선 훨씬 좋은 경기를 보일 것”이라면서 활짝 웃었다. 베이징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건국 60주년] 北核··4강 틀 탈피 다변화 외교 체제로

    [건국 60주년] 北核··4강 틀 탈피 다변화 외교 체제로

    남북 경합외교에서 다변화 외교로. 지난 60년간 대한민국 외교는 냉전 시대의 남북 대결외교와 탈냉전 시대의 외교 다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1948년 남북이 각각 정부를 수립한 뒤 양측은 각자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서로 먼저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 열을 올렸다. 남북 대결외교는 1991년 9월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동시 가입이 확정될 때까지 냉전 시대 상징으로 여겨졌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북이 경쟁하느라 적극적으로 수교하다 보니 당시 경제적 능력에 비해 외교 분야는 많이 치고 나간 셈이 됐다.”며 “오히려 1973년 남북 동시수교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북한이 비동맹외교를 통해 더 많은 국가와 수교하는 등 외교적으로 우세했다.”고 말했다. ●60년만에 188개 수교국으로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외교 여건은 1970년대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한 통상외교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고,80년대 들어 남북 및 4강(强)외교에서 벗어나 제3세계 국가들과도 접촉을 넓혔다. 이어 노태우 대통령 때 이른바 ‘북방정책’에 따른 동구권·공산권 수교를 통해 탈냉전 시대의 ‘보통국가’ 위상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 1948년 2개에 불과하던 수교국이 올해 188개국으로 늘었다. 북한은 1948년 8개국에서 현재 160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다. 한국은 1948년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을 시작으로 재외공관을 설치, 현재 153개를 두고 있다.50개 재외공관을 둔 북한보다 월등한 수치다. 유엔 가입 이후 한국 외교는 1989년 아테경제협력체(APEC) 가입을 시작으로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가입,97년 ASEAN(동남아국가연합)+3회담 참여 등을 통한 외교 다변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덕분에 한국은 60년만에 103개 국제기구에 가입했으며, 북한은 34개 가입에 그치고 있다. 한국의 국제기구 진출 인력도 지난해 1월 유엔 수장에 오른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41개 기구에 307명이 활동 중이다. 또 국민의 정부 때 ‘햇볕정책’과 참여정부의 ‘남북 평화번영정책’,2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2003년 8월 시작한 북핵 6자회담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다자협력의 틀 속에서 구축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외교강국 되는 길, 멀고도 험난 그러나 탈냉전 시대의 한국외교는 많은 도전 과제를 안고 있다.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동북아, 특히 한반도에 지나치게 고정돼 온 외교적 시야를 국제적인 위상에 맞게 넓히는 것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북핵 문제 및 4강외교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외교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탈냉전기에 필요한 외교 직제를 정리하고 북핵 문제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위상에 맞는 외교적 상응체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 변수를 비롯한 동아시아, 미국·호주·뉴질랜드 등 태평양을 포함한 아·태 지역의 협력 구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를 가져야 할지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넘는 문제와, 심각한 에너지·자원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동·중앙아시아 등과의 협력 강화 등 외교적 시야 확대를 시스템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인 교수는 “선진외교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교인력 등에 대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외교관의 자율성은 정치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공적개발원조·PKO 참여 늘려야 한국의 기여외교 어떻게 “한국도 국제적 위상에 맞게 ODA와 PKO 참여를 늘려야 합니다.” 지난 3∼7일 취임 후 처음으로 방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여개에 이르는 공식 일정 때마다 이렇게 언급했다. 특히 반 총장은 한 자리에서 “한국이 국제사회 기여에 머뭇거려 부끄럽고 화가 난다.”고 털어놨다. 반 총장이 한국의 참여를 거듭 강조한 공적개발원조(ODA)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은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ODA는 후진국 및 개발도상국의 빈곤 극복 및 지속가능한 경제 개발을 위한 원조를 의미하며,PKO는 유엔 요청에 따라 전쟁 등으로 인해 정전 감시 및 치안 유지 등이 필요한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는 활동이다. 이명박 정부는 올해 외교목표 중 하나로 ‘세계에 기여하고 신뢰받는 외교’를 설정, 그 수단으로 ODA와 PKO, 문화외교 강화 등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재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인 우리나라의 GNI(국민순소득) 대비 ODA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0.07%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게다가 새 정부는 2015년까지 ODA 비율을 0.25%로 높이겠다는 참여정부의 계획에서 오히려 후퇴,2012년까지 0.15%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유엔이 2015년까지 우리측에 기대하는 0.7% 수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만큼 목표가 상향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의 PKO 활동은 지난해 7월 360여명 규모의 동명부대를 유엔 레바논평화유지군(UNIFIL)에 파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지난해 말 기준 8개 지역에 401명을 파견, 세계 37위 규모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이달 말로 끝나는 레바논평화유지군 파병 기한 연장을 위한 국회 동의안이 개원 지연으로 처리되지 않아 PKO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ODA와 PKO를 통한 국제사회 기여는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외교관계의 지평을 넓히고 선진 공여국으로서의 국가 브랜드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위해 현재 계류 중인 ‘대외원조기본법’ 및 ‘유엔 PKO 참여에 관한 법률안’ 등이 조속히 통과되는 등 법적 뒷받침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ODA기본법안’ 및 ‘유엔 PKO 상비부대설치법안’을 대표발의한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이들 법안이 우리나라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남북중심 벗어나 넓은 국익 위주로” 미래기획위 윤덕민 교수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외교안보 분야 민간위원인 윤덕민(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10일 “한국 외교는 냉전시기 한반도 평화 번영과 경제발전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남북관계 중심의 좁은 외교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에서 국익의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60년의 한국 외교를 평가한다면. -냉전 시기에 남북간의 경쟁도 있었지만 북방외교라는 활로를 열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도 성취했다.70년대 오일쇼크 때는 중동지역에 진출하는 등 경제발전에 공헌해 왔다. ▶8월15일 미래기획위원회에서 밝힐 한국의 외교 비전엔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되나. -한반도 통일문제와 이익의 지평을 한반도의 틀이 아니라 보다 넓은 틀에서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은 남북한 문제를 기반으로 대미·대일 외교를 보는 프리즘적 성향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통일을 비용 측면에서 비관적으로 바라봤고, 현상유지적인 정책을 펴면서 통일 담론이 실종되어 있었다. 이번 미래 비전에는 통일문제도 담길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과거에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1년간은 남북관계의 진전이 없었다.8개월∼1년은 북한이 남한의 정책 패턴을 보면서 길들이고 눈높이에 맞게 하는 기간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한국은 북한에 있어 중요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단기적으로 길들일 수 있는 상황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통미봉남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비핵·개방 3000’에 대해 엄격한 상호주의, 네오콘이라는 오해가 많은데,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비핵·개방은 과정일 뿐이다. ▶4강 외교의 방향은.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하는데 이들과의 관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와 동맹관계를 강화시켜야 한다.4강과의 관계는 각각 업그레이드가 되어야지 ‘제로섬’이 되어선 안 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절망과 희망… 유럽 60년史

    절망과 희망… 유럽 60년史

    유럽은 하나의 텍스트다. 인류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뜯어보고 분석하고 곱씹어야 할 정밀한 문장들이 텍스트 곳곳에 숨어 있다. 유럽은 가장 작은 대륙이라는 ‘외부’를 가지면서도 가장 복잡다기한 ‘내부’를 가졌다.46개의 국가가 드러내는 차이와 대조는 여타 대륙들과 달리 유럽을 특히 도드라지게 만든다. 침략자와 피침략자가 공존하고, 국경과 민족이 불일치하며, 동일한 언어 사용이 연대의식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佛영화감독 장 르누아르 “절망의 대륙” 1989년 12월이었다. 유럽 전문가인 토니 주트(미국 뉴욕대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의 한 기차역에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지 한 달 만이었다. 리투아니아 공산당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직후였고, 루마니아에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독재에 반대하는 봉기가 발생한 날이었다. 주트는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유럽이 탄생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동서 대립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대립이 허물어진 이후 유럽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영광스런 제국의 대도시에서 중립 소국의 빈곤한 수도로 전락한 빈에서 주트가 ‘포스트 워 1945∼2005’(조행복 옮김, 플래닛 펴냄)의 집필을 구상케한 질문이었다. 독일인들이 ‘스툰데 눌(stunde nul)’, 현대사의 ‘0시’라고 부르는 1945년을 기점으로 작업은 시작됐다. 파시즘에 절망한 이들이 도망쳤던 유럽, 독일 문예비평가 월터 베냐민과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자살하며 등졌던 유럽, 프랑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가 ‘거대한 환상’(1937년작)이라고 비꼬았던 유럽은 절망의 대륙이었다. 인류 최악의 학살이 자행된 전쟁터였다. 그러나 60여년이 지난 지금 유럽은 ‘미국식 모델’과 대비되는 역할 모델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저자는 유럽 34개국의 지난 역사를 추적해 파괴와 분열의 대륙이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하나의 대륙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조망한다. 책은 몇 가지 흐름을 중심으로 유럽을 독해한다. 첫째, 전후 유럽은 지리적으로나 영향력으로나 축소되고 위축됐다. 식민모국조차도 더 이상 제국의 지위를 열망할 수 없었고, 파시즘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조차 없었다. 둘째, 이론의 산실이었던 유럽에서 이론의 쇠퇴가 목도됐다. 서유럽에선 정치적 열정이 쇠퇴했고, 동유럽에선 정치적 신념이 사라졌다. 특히 89년 이후 유럽에서 좌파든 우파든 이데올로기적 거시전망을 제출하는 데 실패했다. 셋째가 가장 큰 관심사다. 유럽식 모델의 등장이다.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은 독일 군국주의와 실업, 전쟁이란 치떨리는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고민인 동시에, 계급갈등에 의한 불만과 혁명적 열기를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기획이었다. ●미국과 다른 독특한 사회모델 형성 유럽 모델은 ‘성장’은 추구할 만한 것이었지만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은 아니란 공감대에 뿌리내린 사회체제다. 경제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유럽연합은 미국의 막강한 맞수로 떠오르며 평화체제의 모델로까지 세계 전역에서 차용되고 있다. 관건은 유럽 모델의 지속 가능성 여부다.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1500만의 이슬람교도와 쏟아져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 유럽은 유럽의 타자들로 불안해하고 있다. 유럽 내에 존재하는 비유럽의 실상, 제1세계 유럽과 제3세계 유럽 간의 불협화음은 유럽이 세계의 미래이기 이전에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한 현재임을 보여 준다. 전후 과거청산, 공기업 민영화, 고령화와 연금문제, 이주노동자 정책, 시장과 복지의 선순환 문제를 둘러싼 유럽의 논쟁은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쉽게 풀리지 않는 현재진행형 난제들이다. 유럽의 절망과 희망에서 한국은 어떤 해법을 찾아낼 것인가. 전 2권. 각권 3만 2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장애아 2010년 유치원~고교 의무교육

    2010학년도부터 장애 아동의 의무교육 연한이 유치원과 고등학교 과정까지 확대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26일부터 시행된다고 25일 밝혔다. 특수교육 대상자 의무교육은 2010학년도부터 만 5세 이상 유치원 과정과 고등학교,2011학년도부터 만 4세 이상 유치원 과정,2012학년도부터 만 3세 이상 유치원 과정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현재 장애 아동의 경우 초ㆍ중학교는 의무교육, 유치원과 고등학교는 무상교육 체제로 돼 있다. 유치원은 아니지만 영·유아보육법에 따른 평가인증을 받고 특수학교 유치원 교사 자격증 소지 교사가 있는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이도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만 3세 미만 영아라도 특수교육 전문가를 통해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만3세 미만의 영아의 경우 현행법(영유아보육법ㆍ유아교육법)상 교육 대상이 아니었고 자녀의 장애를 조기에 발견, 진단을 받도록 하는 것은 보호자의 몫이었다. 학급수 기준이었던 특수학교 교원은 ‘교사 1명당 4명’ 기준으로 바뀌고 존폐 논란을 낳았던 치료교사제는 폐지된다. 이에 따라 기존의 치료교사들이 담당했던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은 국가면허 또는 국가공인 민간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치료사가 담당하게 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데스크시각] 중국식 지도자 검증이 부러운 이유/이석우 국제부장

    [데스크시각] 중국식 지도자 검증이 부러운 이유/이석우 국제부장

    중국내 티베트(시짱·西藏) 독립 요구 시위가 유혈 사태로 번지던 지난 16일 베이징에선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2기가 공식적으로 돛을 올렸다.‘중화인민공화국 주식회사’의 회장격인 국가주석에 후진타오가,‘총괄 사장’인 총리에 원자바오(溫家寶)가 재신임되면서 다시 5년동안 ‘중국 호(號)’의 조타수가 됐음을 확인했다. 시진핑(習近平)과 리커창(李克强), 차세대 양대 축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놓쳐선 안될 ‘사건’이었다. 쉰다섯의 시진핑은 국가 부주석에 선출돼 차기 국가주석 영순위 후보가 됐고 쉰셋으로 상무 부총리에 뽑힌 리커창은 차기 총리를 준비하게 됐다. 앞서 중국공산당은 지난해 10월말 기업의 등기이사 격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4명을 물갈이, 최고정책기구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이로써 후-원 체제가 막을 내릴 2012년 이후 차기 집권 구도의 포석을 공식화한 셈이다. 후진타오나 그에 앞선 3세대 집단지도체제 핵심 장쩌민(江澤民) 등은 모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낙점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장이나 후로 상징되는 3·4세대 지도자들은 덩의 낙점만으로 정상에 오르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 경쟁과 검증을 거치며, 실적과 성취로 존재를 입증해 온 그런 사람들이다. 장쩌민이 비누공장 등을 거치며 일찍부터 수완을 과시하며 두각을 나타낸 것이나 후진타오가 편벽한 깐수(甘肅)성 현장에서 실적을 이뤄낸 것도 마찬가지 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독단과 후계구도 불안정의 악영향을 몸소 겪고 느꼈던 덩 등 2세대 지도자들은 후계구도의 안정성에 대해 정책적 우선 순위를 두고 접근했다. 그 고민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검증과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일 때만 인사구도의 안정성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일당 독재의 한계속에서도 그런 모습을 그려내려는 안간힘으로 이어져 왔다. 덩샤오핑은 1980년대 중·후반 과감하게 20·30대들을 간부로 기용했다.90년대 중반엔 검증과 실적 싸움에서 살아남은 일부가 중앙의 중견 간부나 중·소도시 시장, 당서기들로 자리잡으며 중국 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뤄내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과정에서 나이, 계파, 당에 대한 충성도 및 대중 지도력 등이 고려됐지만 실적을 중시하는 ‘실사구시’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졌다.‘사원 주주’ 공산당원 사이에서지만 공감과 수긍은 확산됐고 엘리트의 건강한 충원과 자칫 깨지기 쉬운 집단지도체제의 유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는 평도 얻었다. 엊그제 입후보 등록이 마감되면서 18대 국회의원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지만 공천을 둘러싼 정당성 시비는 잦아들기는커녕 확산일로에 있다. 공천 시비로 인한 분란으로 선거 판세가 달라지고 선거후 분당 등 거센 후폭풍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일당(一黨)의 국가’ 중국의 지도자 충원 방식을 감히 민주국가 한국의 선거와 비교하는 일은 불경스럽고 불손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요사이 선거판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중국의 검증과 합의 수준에 부러움과 유혹을 느낄 정도다. 앞선 ‘실용정부´ 초대 각료 인사 검증도 한숨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몇 사람의 지도자가 바뀌면 당이 생겼다 없어지는 한국적인 ‘하루살이 정당체제’에서 요즘 같은 공천 파동과 시비가 잦아들 것 같지도 않다. 인물과 정책 검증이 시원찮은 상황에선 한바탕의 흥행을 위한 바람몰이만이 성공의 지름길인 까닭에서일까. 원칙과 대화가 소통되지 못하는 곳에선 상황논리와 임기응변만이 활개칠 따름이다. 신진대사가 이뤄지듯 변신해 나가는 중국 지도부의 진화에 유혹마저 느끼는 ‘황당한 상황’속에서 피를 흘리며 쌓아올린 우리 민주화의 성취가 선거를 거칠 때마다 무색해질까 두렵다. 이석우 국제부장 swlee@seoul.co.kr
  • [기고] 한·미 통상관계의 탈정치화와 FTA/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

    [기고] 한·미 통상관계의 탈정치화와 FTA/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아직도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50여년 전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가 그토록 갈망하던 국제무역기구(ITO) 설립 헌장이 미국 의회의 비준동의 거부로 무산되었던 사실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당시 인류는 두차례 세계대전의 참화와 대공황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각국의 일방적인 무역보호 조치가 초래한 비극을 절감하게 되었고, 공통 교역원칙과 국가간 통상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창설하는 것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필수요건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ITO헌장을 채택하여 일방적 통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주권적 권리 중 일부를 포기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타국으로부터의 일방적 조치에 직면하지 않을 권리를 상호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최대 채권국이었던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스스로가 ITO 헌장을 비준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1948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지배하에 들어간 미국 의회가 민주당 정부가 달성한 이상주의적 정책들을 견제하였고 ITO헌장은 그 첫번째 희생의 제물이었다. 이에 트루먼 정부는 1950년 말을 기점으로 ITO의 의회 승인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주도국인 미국 스스로에 의해 ITO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한번 사라진 ‘모멘텀’을 다시 일으켜 1995년 WTO를 설립하기까지는 실로 반세기 동안의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인류는 동서냉전, 수차례의 석유파동, 서구진영과 제3세계와의 대립, 통상분쟁과 일방적 보복조치의 만연이라는 악순환을 겪고서야 비로소 WTO 설립협정을 발효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한·미 FTA 비준의 역사적 의미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별 동반자관계에 있는 한·미 양국이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WTO 규범 체제에 안주하지 말고 두 경제의 선진환경에 걸맞은 업그레이드된 교역원칙과 통상분쟁 해결체제를 갖추어나가자는 것이다. 한·미 통상관계의 역사는 실로 ‘제도화’와 ‘탈정치화’(depoliticization)를 위한 과정이라 볼 수 있다.1983년 한국산 컬러TV와 앨범이 미국 내에서 반덤핑 제소되면서 시작된 양국 간의 통상마찰은 미국의 무역적자 확대와 더불어 자동차, 쇠고기, 의약품, 지재권, 영화, 농산물, 통신 분야로 급격히 확대되었다. 급기야 미국의 슈퍼 301조 발동이라는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수단을 둘러싼 마찰로 비화되었다. 뒤이어 출범한 WTO체제는 양국간의 많은 통상분쟁을 WTO협정 위반여부와 결부되어 제기되게끔 하였다. 한·미 양국 모두 제도화와 탈정치화의 혜택을 본 셈이다. 이제 WTO 규범이 규율하지 못하는 많은 분야들을 양국간에 제도화시켜야 한다. 통관 협력, 투자, 전자상거래, 경쟁정책, 노동, 환경, 지재권 등의 WTO 이외의 분야에서 그동안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행사해오던 일방적 통상압력을 FTA 규범의 틀 속으로 흡수해야 한다. 이들 부문을 포괄하고 있는 한·미 FTA의 비준은 한·미 통상관계의 대부분을 법제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익집단을 등에 업고 상대국에 권력정치를 행사하는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소위 ‘4대 선결조건’ 수용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우리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주도한 한·미 FTA 협상의 결과물이 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해 우리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그동안 한·미 FTA의 모멘텀은 점점 사라져 갈 것이다. 이를 다시 불러일으켜 새로운 한·미 경제공동체 협상의 타결과 그 비준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긴 통상마찰과 소모적 논쟁의 역사를 겪어야 하겠는가? 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
  • 두산그룹 오너 4세 대거 승진

    두산가(家)의 ‘원(原)’자 돌림 4세들이 무더기 승진했다.‘용(用)’자 돌림 3세들과 더불어 그룹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된다. 오너 책임경영 체제 강화 속에 ‘힘의 균형’을 의식한 절묘한 견제가 엿보인다. 두산그룹은 16일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과 차남인 박진원(40) 두산인프라코어 상무와 박석원(37) 두산중공업 부장이 각각 전무와 상무로 승진했다.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박용성 회장의 동생)의 장남과 차남인 박태원(39) 두산건설 상무와 박형원(38) 두산인프라코어 부장도 역시 각각 전무와 상무로 나란히 승진했다. 이들의 승진은 지난 연말 사장단 인사때 박용곤 명예회장(박용성 회장의 형)의 장남(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과 차남(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이 승진 또는 중책을 겸직함에 따라 예견됐던 일이다. 이로써 그룹에 몸담고 있는 오너 4세 8명 가운데 6명이 승진했다.‘용’자 형제들의 또래 아들들을 골고루 승진시킨 것이다. 그러나 ‘균형’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쏠림’은 감지된다.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전무가 요직인 산업차량 부문장(BG장)에 임명됐다. 실세 삼촌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보좌하면서 그룹의 실무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세계체제 대응력에 달렸다

    세계체제 대응력에 달렸다

    세계적인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미국 예일대 교수)이 한국에서 대학교육과 인문학의 현실을 해부한다. 성균관대 부설 대동문화연구원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17,18일 개최하는 ‘인문학의 혁신방향과 대학의 역할’ 학술대회에서다. 월러스틴은 18일 ‘21세기 세계체제의 전환과 학문설계’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월러스틴의 인문학 진단은 물론 자신의 핵심 이론인 ‘세계체제론’의 시각을 빌렸다. 월러스틴은 세계체제론으로 근대 자본주의 분석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체제론은 기존의 선·후진국 개념에서 벗어나 세계 자본주의를 주변부와 반주변부 및 중심부로 나눠 설명하는 한편, 제3세계 국가의 국제적 계층 이동가능성까지 시사한다.9·11사태, 이라크 전쟁 등을 혹독하게 비판해온 그는 최근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 종말을 예견하는 글을 많이 발표하고 있다. 세계체제론을 통해 북핵 및 동아시아 문제를 분석하는 한국 학자들이 늘어나는 등 국내에서도 그의 학문적 영향력은 상당하다. ●대학의 팽창은 냉전·기술발달과 보조맞춰 인문학의 위기 또한 월러스틴의 오랜 관심사 중 하나다.▲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단절 ▲분과학문간 소통부재 ▲사회과학의 양쪽 중개 가능성 등으로 요약되는 그의 ‘인문학론’은 이번 학술대회 발제문에서도 논지의 주요 뼈대를 이루고 있다. 월러스틴은 인문학과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을 세계체제 전환기라는 현 시대사적 상황에 맞물려 분석한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근대 세계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기관’인 대학은 자본주의 시스템과 동반 발전했다. 교회의 권위로부터 이탈하면서 분리되기 시작한 인문학과 과학간 인식의 간극은 어느덧 영영 만날 수 없는 ‘두 문화’로 결별했고, 과학은 자본주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술력을 제공하며 인문학을 누르고 승리를 차지했다. 이런 현상이 대학 구조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것이다. 월러스틴은 특히 1945년 이후 시기에 주목한다.1945년 직후,1945∼1970년,1970년 이후를 각각 ‘대학의 폭발적 증가’,‘대학 규모의 광범위한 발전’,‘대학의 구조 위기’ 시기로 구분하는 월러스틴의 시각은 그가 자본주의 이행경로 분석에 사용하는 시기구분과도 일치한다.“한국 대학도 대부분 45년 이후 설립됐다.”는 그의 지적은 한국 자본주의와 대학 역시 세계체제의 한 부분이란 함의를 담고 있다. 월러스틴은 “대학의 팽창은 냉전 및 (냉전이 필요로 하는) 기술발달과 보조를 맞춰 왔다.”면서 “정부와 기업이 지원하는 돈은 대학의 과학 분야로 집중됐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대학은 서로를 밀고 당기며 근대 세계체제를 강고하게 구축해 냈다는 게 월러스틴의 분석이다. ●대학이 자발적 상업화로 ‘고등학교화´ ‘잘 나가던’ 대학의 위기는 상호 ‘공모관계’에 있던 세계체제가 지구적 신자유주의로의 전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1970년 이후 세계화의 습격에 대학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월러스틴은 장기간 경기침체는 대학에 지원하던 예산을 삭감하게 만들었고, 대학은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자발적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더 많은 돈을 원하는 교수들은 기업과 민간 싱크 탱크로 옮겨가고, 공백이 된 업무를 비정규직 교수들이 메우면서 대학의 ‘고등학교화’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인문학에 가해지는 압박 또한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지점에서 월러스틴은 묻는다. 그의 질문은 하나의 화살이 돼 오늘의 대학들에 날아가 꽂힌다.‘대학은 현 시기 세계체제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단언한다.“대응에 성공하면 대안창출의 중심센터가 돼 쪼개진 인문학과 과학의 재통합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나, 실패하면 취직에 필요한 자격증 취득 기관으로 영영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주요그룹 연말연초 임원인사 살펴보니

    주요그룹 연말연초 임원인사 살펴보니

    삼성, 포스코, 한화그룹을 제외한 주요 그룹들이 임원인사를 마쳤다. 세대 교체가 두드러진다. 부회장 직함이 늘면서 책임경영이 강화된 것과 오너 3·4세들의 전진 배치가 계속된 점도 특징이다. ●40∼50대 젊은 사령탑 부상 14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의 간판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통신·전자업계의 쌍두마차였던 조정남(67) SK텔레콤 부회장과 김쌍수(63) LG전자 부회장이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고문으로 물러난다. 현대차그룹의 윤명중(67·글로비스), 이전갑(61·현대파워텍), 한규환(58·현대모비스) 세 명의 부회장도 퇴진했다.6년간 현대상선을 이끌어온 노정익(55) 사장도 지난 주말 전격 사임했다. 대신 젊은 사령탑이 부상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이정대(53·현대차 재경본부장), 서병기(61·현대차 품질 및 생산개발총괄본부장), 박승하(57·현대제철), 김창희(55·엠코) 사장이 각각 부회장 반열에 새로 올랐다. ●책임경영 강화…부회장 전성시대 ‘실세 부회장’이 늘어난 것도 큰 특징이다. 신헌철(62) SK에너지 사장, 김반석(59) LG화학 사장, 경청호(55) 현대백화점 사장이 연말연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권한도 주면서 책임도 묻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와 맞물려 포착되는 흐름 중의 하나가 사업부제 강화이다.SK그룹은 아예 ‘회사내 회사’(CIC) 개념을 도입하고 각 부문별로 사장을 뒀다.SK에너지만 하더라도 김명곤(58), 김준호(50), 유정준(45) 등 40∼50대를 CIC 사장으로 배치했다. 올 들어 ‘빠른 변화’를 화두로 내세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노정익 사장의 사임으로 전인백(현대U&I), 김지완(현대증권) 등 현 회장 취임 전의 주요 CEO들이 모두 물러났다. 현대상선 새 CEO에는 김성만(61) 전 한국유리공업 부회장이 영입됐다. 큰 폭의 세대 교체가 예견됐던 삼성그룹은 예기치 못한 사태로 다음달 말 정기주총 직전에 ‘최소한의 인사’만 할 예정이다. ●오너 3·4세 승진잔치는 예년보다 덜해 오너일가의 전진배치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두산가(家)이다.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잇따라 성사시켜 ‘힘의 무게이동’을 예고해온 박용만(53·박용곤 명예회장의 동생)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박 명예회장의 장·차남이자 4세인 박정원(46) 두산건설 부회장과 박지원(43)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각각 ㈜두산 부회장(겸직)과 사장으로 발령났다.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3세인 정지선(36) 부회장은 회장으로 승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딸 현아(33·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본부장)씨와 아들 원태(31·〃 자재부 총괄팀장)씨도 나란히 한 직급(상무A·상무B)씩 승진했다. 관심이 쏠렸던 이재용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삼성전자 전무, 정의선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기아차 사장, 정지이 (현정은 회장의 맏딸)현대U&I 전무 등은 현재로서는 변동이 없다. 예년에 비하면 오너 3·4세들의 승진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지난해 워낙 많이 이뤄진 데 따른 속도 조절도 중요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두산 3·4세 전진배치

    두산 3·4세 전진배치

    두산그룹이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은 ㈜두산 부회장을 겸임하게 됐다. 박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두산그룹은 30일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회장·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최승철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사장은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이재경 ㈜두산 사장은 부회장으로, 이남두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은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서동수 EPC사업총괄 부사장은 발전BG장으로 선임됐다. 이날 두산그룹의 인사 핵심은 오너가(家) 3·4세의 전진배치로 볼 수 있다. 박용만 회장은 올해 장비업체인 밥캣 등 49억달러 규모의 잉거솔랜드 3개 사업부문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국내 기업의 해외 M&A사상 최대규모였다. 앞으로 두산의 지주회사 전환과 ‘중공업 전문기업’으로의 변신에서 박 회장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회장의 승진에 따라 두산 주요계열사를 총괄하는 박용성(3남) 두산중공업 회장-용현(4남) 두산걸설 회장-용만(5남)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등 3세 형제들의 경영구도가 더욱 확고해졌다. 3세들이 아직도 활발히 경영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오너 4세들도 경영권 승계에 한발 더 다가선 것으로 풀이된다. 장손인 박정원 부회장이 앞으로 지주회사 역할을 할 ㈜두산의 부회장을 겸임하게 된 것은 후계구도와 관련, 주목되는 대목이다. 현재 두산그룹 내에는 오너 4세중 8명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 두산측은 “이번 인사는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조화를 통해 책임·내실경영 체제를 구축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이명박 시대-진보·신당 어디로] 鄭 당분간 ‘2선 후퇴’ 택할듯

    [이명박 시대-진보·신당 어디로] 鄭 당분간 ‘2선 후퇴’ 택할듯

    17대 대선에서 참패를 당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거취와 당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은 당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내부 체제를 재정비하고 사분오열된 세력을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 후보, 내일 순창·전주 등 고향 방문 정 후보는 20일 오전 당산동 당사에서 의원, 당직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당 및 시·도 선대위 해단식을 가졌다. 해단식은 전날 대선 참패의 충격파가 채 가시지 않은 듯 침통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정 후보는 “국민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며 “선거과정에서 단합했듯이 더 단단하고 진실해지고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가 국민으로부터 더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후보는 22일 고향인 순창과 전주 등 전북지역을 찾는다.23일에는 광주로 내려가 가톨릭단체가 운영하는 정신지체장애인시설인 ‘사랑의 집’에서 사나흘 머물며 ‘피정’의 시간을 갖는 등 ‘장고’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은 ‘2선 후퇴’의 길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열릴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권을 거머쥘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벌써부터 전대에 나설 인물로 손학규·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 정세균 전 열린우리당 의장, 김한길 의원, 추미애 전 의원,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19일부터 계파별 모임을 갖는 등 사실상 전대 준비체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적전분열은 공멸” 공감대 그러나 통합신당이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김근태, 민주당 탈당파, 시민사회 등 6개 계파로 이뤄진 만큼 전대를 통해 계파별 지분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각 계파가 대선에서 정 후보가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득표 차로 패배한 것은 정 후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었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 불과 111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적전분열은 ‘공멸’이라는 위기감도 느끼고 있다. 실제로 오충일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의를 표명했으나 최고위원들의 만류로 무산됐다. 최재천 의원은 “당이 총선까지 비대위 체제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지금까지도 당헌·당규대로 움직이지 않고 거의 비대위 체제로 당이 가동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선병렬 의원은 “당이 친노와 비노, 제3세력으로 갈라지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되며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집단지도체제로 잘 정비해서 전대를 합의에 의해 치르고 공천을 잘해서 최대한 리스크를 줄여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도 “모두의 공동책임인데 누구에게 책임을 묻겠느냐.”며 당이 총선까지 집단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쇄신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이 계파간 이해관계로 인해 현재의 위기를 적당히 봉합하기보다는 전대를 통해 새로운 지도력을 보여줘야 총선에서 선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국민에게 당이 쇄신하는 확실한 각오를 보여줘야 떠난 민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락 박창규기자 jrlee@seoul.co.kr
  • [프로배구] ‘대전 남매’ 잘나가네

    프로배구 대전 남매팀 삼성화재와 KT&G가 겨울리그 초반 파죽의 연승 행진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삼성화재는 11일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07∼2008 V-리그 남자부 경기에서 안젤코 추크(15점)와 석진욱(10점)의 활약을 앞세워 아마추어 초청팀 한국전력을 3-0으로 완파했다. 이로써 삼성화재는 1일 현대캐피탈과의 개막전 승리를 시작으로 쾌조의 4연승을 달리며 대한항공과 LIG손해보험(이상 2승1패)을 승점 2점 차로 따돌리고 선두를 굳게 지켰다. 삼성화재는 이날 경기에서도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과 안정된 수비로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완승을 거뒀지만 한전의 강력한 추격에 매 세트 진땀을 흘렸다. 삼성은 첫 세트에서 안젤코와 손재홍의 잇단 공격 범실과 한전 양성만·정평호 쌍포의 강타로 24-24 듀스까지 허용했지만 조승목과 안젤코의 연속 득점으로 세트를 마무리했다.2세트에선 한전의 맹렬한 추격에 24-23까지 쫓겼지만 고희진의 속공과 석진욱의 시간차 공격으로 고비를 넘겼다.3세트에서도 초반엔 기선을 내주고 끌려가다 10-10 동점을 만든 뒤 안젤코·손재홍의 강타를 앞세워 24-17로 리드한 뒤 석진욱의 마무리 공격으로 경기를 마감했다. 앞서 열린 여자부 경기에서는 프로 원년 챔피언인 KT&G가 좌우 쌍포 페르난다 베티 알비스(21점)와 홍미선(10점)의 활약을 앞세워 현대건설을 3-0으로 완파했다. 지난 시즌 꼴찌였던 KT&G는 지난 1일 흥국생명과의 개막전 승리 이후 3연승으로 초반 독주체제를 구축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반면 지난 시즌 준우승팀인 현대건설은 올해 GS칼텍스로 이적한 센터 정대영과 세터 이숙자의 공백을 절감하며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는 15일 흥국생명과의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도 패할 경우,1라운드 4전 전패의 치욕을 맛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0) 통청운동( 通淸運動 ) 앞장선 율관 장지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0) 통청운동( 通淸運動 ) 앞장선 율관 장지완

    중인 가운데 법률을 담당한 관원을 율관이라 했는데, 율관의 판단에 따라 형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직무였다.1406년에 유학(儒學), 무학(武學), 이학(吏學), 역학, 음양풍수학, 의학, 자학(字學), 율학(律學), 산학(算學), 악학(樂學) 등 10학의 일부로 율학을 설치하고,1433년 형조 안에 있던 율학청에 별도 건물을 마련해 독립하게 하였다. 율과 합격자 명부가 율과방목인데, 현존하는 16세기 자료를 보면 1507년에 9명,1513년 7명,1525년 8명 등으로 3년에 한번 뽑았다. 율과 정원은 9명이었지만, 일정한 성적에 이르지 못하면 뽑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율과 합격자만으로 전국의 재판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485년에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율관제도가 성문화되었는데, 율학교수(종6품) 1명, 별제(종6품) 2명, 명률(明律 종7품) 1명, 심률(審律 종8품) 2명, 율학훈도(정9품) 1명이 서울에 있고, 검률(종9품)을 서울에 2명, 각도 및 제주에 1명씩 파견해 모두 18명이었다. 검률(檢律)은 각 지방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조사하고 법률에 비춰 형량을 정하는 임무를 맡겼으니, 오늘날의 검사라고 할 수 있다. 형조에 판서(정2품), 참판(종2품), 참의(정3품), 정랑(정5품), 좌랑(정6품) 등의 문관이 있고, 그 아래 중인 출신의 기술직 전문 관리들이 18명 있었던 셈이다. 이 가운데 교수, 별좌, 훈도의 임기가 차면 고을수령으로 승진시켜 내보냈다. 율과 합격자가 열심히 근무하도록 격려하는 제도이다. ●전국 율학생도 정원 2388명 형조에는 정원 40명의 율학생도가 있었고, 부(府) 16명, 목(牧) 14명, 도호부 12명, 군 10명, 현 8명씩 있었는데, 이성무 교수가 전국의 율학생도를 모두 합해보니 2388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전국의 군현에서 날마다 소송이 일어나고 재판이 벌어지기 때문에, 막중한 재판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수많은 법률종사자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인구가 10배나 늘어난 지금도 로스쿨의 정원을 2000명으로 묶어 두는 것과 비교가 된다. 생도에게는 잡역을 면제해 공부에만 전념케 했으며, 군역도 연기 혜택을 주었다. 율학 장려를 위해 생도를 그 지역의 토관(土官)으로 임명했으니, 지역 할당제에 해당된다. 율학교수와 훈도가 교육을 담당해, 율문(律文)을 강습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에서는 양반들에게도 기술학을 장려해 습독관(習讀官) 제도를 설치했지만, 율학에는 습독관이 없었다. 중인들이 독점한 셈이다. 김재문 교수는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제(33)’라는 글에서 “이들의 처우가 일반직보다 낮으며 승진이 제한되어 있어, 율과 합격자는 법원장이나 검찰청장은 될 수 없는 기능직, 기술직 공무원”이라고 표현했다.“일종의 법무부 공무원이나 지방의 법원서기, 사법행정직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문과 출신이 지방의 수령, 또는 형조판서나 의금부 도사가 되어 판사나 검사의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조선 전기의 율과 시험방법은 두 가지였다.‘대명률(大明律)’은 책을 덮어 놓고 뒤로 돌아 앉아서 질문에 대해 법조문을 외우며 강론하였다.‘당률소의’,‘무원록’,‘율학해이’,‘경국대전’ 등은 책을 펴놓고 지적하는 부분을 해설하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였다. 이 가운데 헌법인 ‘경국대전’과 ‘대명률’, 법의학서인 ‘무원록’은 500년 가까이 필수과목으로 지속되었다. 율학은 중인들이 다루는 잡학이어서, 사대부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방 수령들의 판결에 잘못이 많이 생겼다. 문과에도 ‘경국대전’이 필수과목이었지만, 일종의 헌법이어서 실제 재판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약용이 이러한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지은 책이 바로 ‘흠흠신서’이다. 형사재판의 실태에 관한 비평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책이니, 지방 수령을 위해 만든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실례를 소개했는데, 제4부 상형추의(祥刑追議)에서 정조가 왕세손으로 섭정한 1775년부터 재위기간인 1799년까지 25년 동안 심리했던 사건 가운데 142건을 22개 유형으로 분류하여 요약하고, 주석과 비평을 덧붙였다. 제5부 전발무사(剪跋蕪詞)에서는 자신이 목민관이나 형조참의 자격으로 직접 다룬 사건과 유배지에서 들은 살인사건 16건을 논변하였다. 관리들은 살인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고, 검시(檢屍)도 직접 하지 않았다. 사건 현장이 참혹한 데다, 시체에 대해 거부감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령과 의생(醫生)이 출동해 검시하지 않고, 시체를 만지던 오작인이나 아전에게 검시를 위임해서 문제가 많았으며, 고문을 가해 자백을 받는 방법을 주로 썼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엄밀한 심문과정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지 않았던 것이다. 시체 검사방법을 자세히 소개한 ‘무원록(無寃錄)´이 율과의 필수과목이었지만, 중국에서 수입된 책이라 문장이 어려웠다. 세종은 이 책에 주석을 붙여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간행하게 했으며,‘검시장식(檢屍狀式)’이라는 공문서 서식을 인쇄하여 배포했다. 김호 선생은 ‘신주무원록과 조선전기의 검시’라는 논문에서 “‘신주무원록’이 일종의 검시 지침서라면 ‘검시장식’은 실제 검시 현장에 가지고 나가서 시체의 손상부위 등을 기록하는 공문서”라고 설명했다. ●율학 집안에 태어난 시인 장지완 장지완(張之琓·1806∼1867 이후)은 할아버지 장택과 아버지 장덕주를 거쳐 자신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율과에 합격한 집안에 태어났다. 넉넉한 집안이 아니어서 가정교사를 두지 못하고 장덕주가 직접 아들들을 가르쳤다. 장남 지련은 33세에 율과에 합격해 교수가 되었고, 차남 지완은 20세에 합격해 훈도겸 교수가 되었으며,3남 지환은 17세에 합격해 교수가 되었다.3형제가 모두 교수가 되었으니, 율관으로선 가장 출세한 편이다. 인왕산 언저리에 살았던 장지완은 율과 공부를 아버지에게 했지만, 시는 이름난 시인 장혼을 찾아가 배웠다. 글방 친구 유기의 시집 머리말에 “나는 총각 때부터 마을에서 친구들을 구했는데, 학덕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한 자가 일곱 명 있었다. 이 일곱 명은 다른 일에 유혹받지 않고, 오로지 글을 배우는 데만 뜻을 두었다. 시를 지어서 넣어 두는 주머니와 비단 시축(詩軸)을 가지고, 날마다 숲과 골짜기에서 노닐었다. 밤에는 등불을 밝히고 머리를 맞대면서, 마치 서로 떨어지기를 싫어하는 것 같이 지냈다.”고 회상하였다. 이 가운데 장혼의 손자 장효무는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장(五衛將)이 되었지만, 고진원은 글방 선생으로 늙었으며, 유기는 필경(筆耕) 품삯으로 한 달에 500전을 받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게 살았다. 가난한 가운데도 시 짓기를 좋아했던 이들의 문학모임을 장지완의 호를 따서 비연시사(斐然詩社)라고 하는데, 장지완 말고는 거의 30대에 세상을 떠나 문단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중인 1670명 거사자금 234냥 마련 장지완은 “시가 성정(性情)에서 나온다.”고 했다.“성정이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이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 기질이 맑고 흐린 구분이 있다.” 그가 말한 성령(性靈)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개성이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지니고 태어난 개성을 시의 존재근거로 삼은 까닭은 위항문학이 사대부문학에 대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신분적 차이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이다. 그는 자신들의 신분을 자각하고 존재의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자기 당대에 살았던 여러 중인들의 전기나 묘지명을 지었다.50세가 넘어 문단의 원로가 되자, 위항인들의 시선집인 ‘풍요삼선(風謠三選)’에 발문을 써주어 후배들의 활동을 격려하였다. 양반이면서도 차별받던 서얼들은 조선 중기부터 여러 차례 상소하여 ‘신분에 제한없이 실력에 따라 벼슬하게 해달라’고 청했다.1772년에 삼천 명이 집단적으로 상소할 정도로 세력이 커지자, 정조가 1777년에 정유절목(丁酉節目)을 정하여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리수를 검서(檢書 5품)로 임명했다. 서얼들이 만족하지 않고 1823년에 9996명이 연명하여 상소하자, 결국 1851년에 서얼도 벼슬에 등용한다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자극받은 기술직 중인들이 4월 25일 통례원에 모여 통문(通文)을 만들고,5월 2일에는 통례원, 관상감, 사역원, 전의감, 혜민서, 율학, 주학(籌學), 도화서에서 4명씩, 내의원, 사자청(寫字廳), 검루청(檢漏廳)에서 2명씩의 대표자가 도화서에 모였다. 장지완은 ‘중인도 사대부 같이 벼슬하게 해달라.’고 상소문을 지을 제술유사로도 뽑혔다.1670명의 기술직 중인들이 거사자금 234냥을 갹출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5월 어느날 통청운동(通淸運動)의 핵심인물인 장지완의 집으로 투서가 날아들었다. 방법이 너무 온건하니, 좀더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몰아붙이라는 과격파의 선동이었다. 이들은 윤8월 18일에 철종이 경릉에 행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행차길에서 상소문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래서 1872명의 이름으로 상소를 올렸지만,‘철종실록’에는 왕이 경릉에 행차하여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만 남아 있고 상소문은 실려 있지 않다. 고관 대작의 자제들이 중심이었던 서얼들의 통청운동은 성공했지만, 힘 없는 기술직 중인들의 통청운동은 공식적인 기록에도 남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올렸던 상소문 초안만 역과 합격자 명부인 ‘상원과방’에 실려 전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석유 지정학이 파혜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미국의 엑손, 모빌, 셰브런, 텍사코, 걸프와 영국계 브리티시석유, 로열더치셸은 이른바 ‘세븐 시스터스’로 불리는 7대 석유 메이저 기업이다. 이들은 1928년 스코틀랜드의 아크너리에서 제3세계 석유자원을 나누어 갖는 이른바 ‘현상유지 협정’을 맺는다. 이후 7개 석유 메이저는 전 세계 석유의 채굴과 정유, 판매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행사한다. 두 나라의 석유 재벌이 세계 석유 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른 것인데, 배후에 두 나라 정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은밀한 카르텔은 지배력을 깨뜨리려는 위협에는 가차없이 응징을 가하는데 이르렀다. ●석유자주화 앞선 伊 마테이 의문의 죽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석유 메이저들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느라 달러 보유고가 고갈되어 가는 것이 고민이었다.1945년 국영 석유회사의 책임자로 임명된 엔리코 마테이는 자생적 에너지 자원을 만드는데 착수했다. 마테이는 적극적으로 탐사에 나서 석유 매장지와 가스전을 잇따라 찾아냈다. 천연가스를 산업도시인 밀라노와 토리노의 산업도시로 운반하고자 4000㎞에 이르는 가스관을 건설하는 한편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어 낮은 가격에 석유를 공급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석유 메이저들에 마테이가 본격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은 1957년이다. 마테이가 석유 메이저들이 아직 ‘배분’하지 않은 이란 지역의 2만 3000㎢를 시추하고 개발할 수 있는 25년 동안의 독점권을 갖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 정부도 석유 메이저들과 같은 생각이었는데, 그냥 놔둔다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석유 질서’를 완전히 뒤엎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마테이는 1958년에는 소련과 원유를 구매하는 협정을 맺는다. 대금은 현금이 아니라 송유관을 인도하는 형식의 현물로 지불하기로 했다. 소련은 볼가-우랄산맥에서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로 이어지는 거대한 송유관망을 건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막대한 물량의 소련 석유가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으로 공급되는 것을 의미한다. 1962년 9월 마테이가 건설한 제철소가 소련의 송유관 공사에 투입할 대구경 파이프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불과 한달이 지난 10월27일, 마테이의 전용비행기는 시칠리아를 이륙하여 밀라노로 가던 도중 공중에서 폭발하고 만다. 한창 정력적으로 일하던 56세의 마테이를 포함한 세 사람의 탑승자가 모두 사망한 것이다. 당시 로마에 주재하던 미 중앙정보국(CIA) 책임자 토머스 카라메신스는 그 직후 조용히 로마를 떠났다. 미국 정부는 ‘마테이 암살’과 관련한 카라메신스의 보고서를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국가 안보에 관한 사안’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20세기 전쟁들 석유에서 비롯됐다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윌리엄 엥달 지음, 서미석 옮김, 길 펴냄)은 20세기 역사를 ‘석유의 눈’으로 본다.‘영국과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와 그 메커니즘’이라는 부제가 일러 주듯 미국과 영국이 지난 100년 동안 ‘석유 패권’를 통하여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지 설명한다. 지은이는 30년 동안 석유 지정학을 집요하게 연구한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비주류 경제학자. 그는 20세기에 빚어진 숱한 전쟁들, 예를 들어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최근의 이라크전쟁은 물론 코소보 사태, 아프리카 내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이 모두 석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한다. 지은이는 석유 메이저들이 장악한 유전들이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이자, 워싱턴과 석유 메이저들은 자신들의 요구에 따른다고는 해도 산유국 정권들에 한가롭게 의존만 할 수는 없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들의 계획은 세계 석유 자산을 직접 통제하는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중동지역 민주주의의 촉진’이라고 부르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은이가 바라 보는 이라크 전쟁의 실체이다.1만 8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4개국 사례로 본 이중국적

    4개국 사례로 본 이중국적

    법무부가 병역의무를 마친 한국인과 전문지식을 갖춘 외국인 전문가에게 복수(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국인 관련 정책을 크게 완화하려는 움직임도 줄을 잇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등의 복수국적 정책에 대한 점검을 통해 우리나라 복수국적 문제의 바람직한 해법을 모색해 보았다. ■中, 특수분야 우수인력 등에 제한적 허용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인은 ‘중국 공민(公民)’ ‘화인(華人)’ ‘화교(華僑)’로 3분류된다. 화교나 화인은 법적으로 모두 외국인이다. 원칙적으로 중국은 속인주의를 채택한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화교는 ‘외국 국적을 갖고 있는 중국인’으로, 엄밀히 말하면 ‘이중국적자’이다. 캐나다나 미국처럼 이중국적을 인정하는 나라에 이민간 중국인들은 굳이 중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화인은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만 보유한 중국사람이다. 두 부류는 중국인의 후예로 화교로 통칭된다. 이 가운데 화교는 중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중국 국내법의 권한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교와 화인에 대한 법적인 대우도 다르다. 하지만 중국은 그 법적 지위차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하고, 가변적인 중국의 국적 제도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1국가 2체제로 한 나라 사람이면서 다른 여권을 사용하는 중국인과 홍콩인의 관계는 복잡성의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화교들은 국적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권’을 선택한다. 사업가들이 특히 그렇다. 개혁·개방과 함께 자본과 인재가 필요했던 중국은 국적제도에 많은 탄력성을 부여한다. 기업과 연구소, 학교가 이들을 필요로 했다. 공무원의 임용은 까다롭지만, 상황에 따라 공무담임권, 계약직, 자문직 등의 유연성을 발휘한다. 국가 대형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도 외국인인 화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대해 왔다. 한 한국인 전문가는 “과거 핵 물리학 등 특수 분야의 인재에 대해서는 특별한 계약서를 작성하곤 했다.”면서 “한국도 이중국적 문제에 유연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jj@seoul.co.kr ■속지·속인주의 모두 적용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영국 출신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팀에서 활약 중인 세계적인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부인 빅토리아는 8월 할리우드 연예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에 네번째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이중 국적’이라는 행운을 안고 태어날 것이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국적법은 속지주의와 속인주의를 모두 적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미국 국적을 갖는다. 외국에서 태어나더라도 부모가 미국인이면 미국 국적을 갖는다. 따라서 베컴 부부의 자녀가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미국인 베컴’이 된다. 또 미국인인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스 부부의 자녀가 한국 등 외국에서 태어나더라도 당연히 미국 국적을 갖게 된다. 미국은 이중국적을 법으로 규정하지는 않고 있다. 미 국적법과 다른 나라의 법에 따라 발생하는 이중국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미 정부는 이중국적을 가진 미국인이 몇명인가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발표하지 않는다. 멕시코 이민자를 포함해 최소한 수백만명에 이른다고 추산만 하고 있다. 국무부는 “미 정부는 이중국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도 이중국적을 정책으로 장려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중국적 장려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국적법이 미국의 국적법과 충돌할 수 있고, 이중국적을 갖고 외국에서 생활하는 미국인을 미 정부가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중국적자들이 입국하거나 출국할 때 미국 여권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중국적자들이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여권을 사용하는 건 개의치 않는다. 이중국적자들은 미국 내의 경찰 등 공공기관과 접촉하게 될 때 미국인의 신분으로 나서야 한다. 미 국무부 영사국은 “이중국적은 선택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미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외국 국적을 잃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외국국적을 부여받은 미국인도 미국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dawn@seoul.co.kr ■이중국적 허용… 명문화 안해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의 전설적 로커 조니 할리데이가 아버지가 태어난 벨기에 국적으로 바꾸려고 시도해 논란이 됐다. 할리데이의 의사번복으로 해프닝으로 끝난 이 사건의 본질은 프랑스의 과다한 세금문제였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의 이중국적 제도라는 복잡한 단면도 보여주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1854년 이래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이중국적을 법률로 명문화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민법 23조에 “본인이 국적 상실을 신고하지 않는 한 이중국적을 보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적법은 속인주의가 기본이다. 프랑스인과 외국인이 결혼해 태어나면 프랑스 국적은 물론 외국인 배우자의 국적법에 따라 그 나라 국적을 얻으면 이중 국적을 허용한다. 프랑스에 입양됐거나 태어난 외국인의 경우도 원래 갖고 있던 국적을 허용한다. 아울러 외국인 부부 사이에 태어난 경우에도 일정한 조건이 되면 국적을 부여한다.13세에는 부모가 자식을 대신해 프랑스 국적을 신청할 수 있다. 또 16세가 되면 본인이 신청해도 된다. 그러나 이중국적 허용의 예외 조항이 있다.1963년 5월 체결한 스트라스부르 협정에 따른 것이다. 당시 “복수 국적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협정을 비준한 9개국(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에 한해 한 국가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원래 국적을 자동으로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 협정도 생물처럼 변해서 이중국적제도가 더 복잡해졌다. 원래 9개국 가운데 포함된 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는 93년 추가 의정서를 통해 3개국에 한해 복수국적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또 원래 협정 가입국이 아니던 독일이 합류해 이중국적이 불가능하다. vielee@seoul.co.kr ■만 22세 이후 한 국적만 허용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의 간판투수인 이란계 다르빗슈 유(21)가 지난달 30일 이란과 일본의 이중국적 가운데 일본을 선택했다. 이란계 아버지를 둔 다르빗슈는 내년에 열릴 베이징 올림픽에 일본대표로 출전할 계획이다. 올림픽의 규정상 이중국적에 대한 제한은 없지만 다르빗슈는 올림픽 기간에 일본 국적법상 이중국적을 해소해야 하는 만 22세가 되기 때문에 미리 국적 취득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일본은 법적으로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적법 14조에 따르면 만 20세 이전까지 이중국적인 사람은 만 22세가 되기 전, 즉 21세의 마지막 날까지 국적을 결정해야 한다. 20세가 넘어 이중국적인 사람은 2년 안에 하나의 국적만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국적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선택을 종용하는 통보를 한 뒤 1개월이 지나도 결정하지 않으면 일본 국적은 자동적으로 상실된다. 일본은 또 1984년 5월 국적법을 부계혈통주의에서 양계혈통주의로 개정했다. 아버지가 일본 국적일 때만 국적을 부여하다 어머니가 일본 국적일 경우에도 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바꿨다. 이중국적은 주로 국제결혼이나 미국처럼 속지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 출생하거나 시민권을 땄을 때 발생한다. 법무성은 “이중국적의 통계는 밝힐 수 없지만 많지는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에서 검토하는 부분적인 이중국적의 허용과 같은 사안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면서 “우수한 외국 인력의 유치는 외국인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 및 여건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중국적 대신 귀화정책을 펴고 있다. 재일 민단의 배철은 선전국장은 “민단에 등록된 교포들은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서도 일본인들과의 결혼이 많아지면서 이중국적이 된 2세들은 거의 모두 일본 국적을 택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84년 양계혈통주의로 바뀌면서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 민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hkpark@seoul.co.kr
  • [사설] 국제표준 채택 개가 올린 한국 와이브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와이브로(휴대인터넷) 기술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산하 전파총회에서 3세대(G) 이동통신의 6번째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통신산업 30년 역사에 새 장을 열게 된 것이다. 와이브로가 3G 국제표준의 하나로 채택됨에 따라 글로벌 로밍이 가능한 IMT-2000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등 기존의 이동통신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됐다. 특히 4세대 이동통신의 핵심기술도 이미 채택하고 있어 차세대 이행과정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우리는 지난해 6월 민관협동의 결실로 와이브로 상용화에 성공했을 때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에 이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기술이 될 것임에 주목한 바 있다. 와이브로는 기존의 이동통신 서비스보다 망 구축이 경제적이어서 유선통신 인프라가 취약한 개도국에서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독일 등 경쟁국들이 와이브로의 국제표준 채택에 마지막까지 딴죽을 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와이브로 기술의 개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체 산업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 대비 60∼70%, 기술 격차는 평균 5.8년에 이른다고 한다. 지식기반 산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삼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제2의 와이브로 개발을 위해 민관협력 체제의 고삐를 더욱 다잡기를 당부한다. 기초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 예산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 [내 책을 말한다] 인도, 그 독특한 생존방식

    ‘인도 현대사’는 2007년 독립 60주년을 맞은 인도가 영국 식민통치하의 적대적 환경에 적응하고 저항하며 생존한 지난 3세기의 여정을 담았다. 식민체제로부터 자율적으로 작동한 인도 사회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조명하고, 긴 투쟁과 타협의 과정을 통해 국가의 해방을 이룬 인도인을 인도사의 주변인에서 주인공으로 이동시켰다. ‘정의하고 정의되는 것’이 인간세계의 법칙이라는 경구처럼, 그동안 힘을 가진 영국이 정의한 인도 근현대사는 ‘수억 야만인’에게 문명을 전해준 영국 식민주의에 대한 변명과 찬양의 기록이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인도사도 영국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내용이 주류였다. 그 논리에 따르면, 인도는 유럽에서 온 왕자님의 ‘키스’를 기다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 등 미국의 제국주의적 오만과 편견이 여실히 드러나는 오늘날, 지난 세기 인도에서 작동한 영국의 제국주의를 낭만화할 순 없다. 식민통치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의 영토와 삶을 빼앗고 강제로 바꾸는 것이므로 미화되어선 안 된다. 강자가 행사한 힘의 역사를 당연시하면 개인과 사회를 억압하는 현실이 반복될 것이므로…. 이 책은 인도인에게 영국 통치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를 물었다. 이별할 때까지 사랑의 깊이를 잴 수 없듯이 독립할 때까지 인도가 받은 영국 식민통치의 폐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1600년 영국이 인도에 올 무렵 세계 GDP의 22.5%를 차지하던 인도는 영국의 통치를 마감한 1952년 세계 GDP의 겨우 3.8%를 점유하는 빈곤국으로 전락하였다. 제국사가의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영국 통치는 ‘빵을 빼앗은’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인도인에게 은혜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영국이 얼마나 악독하게 인도를 이용했는가를 주목하진 않았다. 어떻게 인도인이 영국에 영웅적으로 저항했는가에 중점을 두거나 인도 민족주의를 ‘선’으로 파악하지도 않았다. 나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이분법보다 그 둘이 빚은 변증법적 화음과 불협화음, 지배자를 자기 안에 받아들인 비영웅적 인도의 힘,‘영국으로부터 배운 언어로 영국을 저주’한 인도의 방식을 추적하였다. 인도처럼 타자에 의해 불행한 근대를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변방사로 폄하되는 인도 역사를 소개하여 미래를 향한 우리의 길목에 이정표를 더하려는 이 책은 최근 인도의 강대국 부상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영국이 오기 전에 누린 위상을 되찾는 과정이자 인도가 소지한 독특한 생존방식의 결과라는 사실을 보다 넓은 견지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옥순 연세대 연구교수
  • [문화마당] ‘바리데기’와 한국 사회의 미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황석영의 장편소설 ‘바리데기’는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 있는 작가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여기서 작가는 한국의 전통적인 구비 서사인 바리데기 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삶의 문제와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매우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 소설로 거듭나게 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의 청진이 고향인, 어느 당 간부 집의 일곱 번째 딸 ‘바리’다. 전통적인 바리데기 이야기에서처럼 이 소녀는 나면서부터 버림을 받지만 구해져서 새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황석영은 이 소녀의 성장기 속에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세계사의 흐름을 응축시켜 보고자 했다. 덕분에 어린 소녀 ‘바리’는 북한의 청진에서 무산으로, 중국의 만주를 거쳐 다롄으로, 여기서 다시 영국의 런던에까지 건너가게 된다.‘바리’ 소녀가 북한 대기근의 와중에 어머니, 아버지와 헤어지고 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홀로 런던에까지 흘러가 파키스탄 청년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어느 면에서 작위적이지만 그 메시지는 아주 복합적이다. 한반도의 울타리를 넘어서 중국과 유럽으로 확산되는 이야기의 무대는 우리들의 삶이 이미 세계사의 일부임을 상기시킨다. 특히 이 소설을 위해서 작가가 직접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탐사했다고 하는 런던에 대한 묘사는 음미해 볼 만하다. 런던은 주지하듯 제1세계의 중심국가 중 하나인 영국의 수도. 그러나 이 소설에 나타난 런던은 앵글로색슨 족속들만의 도시가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밀려든 온갖 국적의 제3세계 시민들의 ‘집산지’다. 이런 ‘혼혈, 혼합의 도시 형상은 우리들의 세계가 바야흐로 탈국경, 탈민족적인 차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기에 족하다. 어떤 견해들에 따르면 이러한 탈국경, 탈민족화는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시대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제1세계뿐만 아니라 제3세계 사람들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적 차원에서의 이주, 대규모의 노동 이동 현상이 범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세계화 시대라 불리는 이 21세기에 소설은 과연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가져야 하고 또 가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직면한 한국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 한국으로 밀려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흐름은 한국이 ‘다행스럽게도’ 제1세계 국가들의 모델을 따라가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모델은 우리들이 첨단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논리에 따라 불가피하게 민족적 ‘단일성’을 대체해 나가는 혼합적, 혼혈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예기하게 한다. 필자는 이것을 중대한 딜레마라고 주장하고 싶다. 경제 논리를 따라가는 한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행복한 본질 안에 안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혼합, 혼혈의 위험 때문에 경제 논리를 포기하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임박한 미래, 아니 이미 우리 앞에 하나의 현실로 박두해 있는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삶의 규칙과 가치관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과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단일성’의 논리라는 것이, 근대의 산물이고 그만큼 허구적, 상상적이라 해서 쉽게 파기해야 하는 것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마다 그 사회가 믿고 싶어 하는 신화가 있고 여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슬기로울 수 있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런던으로까지 떠밀려간 북한 소녀 ‘바리’와 같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넓게 포용하는 방향을 취해야 할 것이다. 황석영의 ‘바리데기’에 나오는 영국과 런던은 기실 우리들이 직면해 있는 현실과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 혁신의 시각으로 ‘박정희 보기’

    혁신의 시각으로 ‘박정희 보기’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간 화해 무드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양자간 갈등을 서로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대립으로 볼 것이 아니라, 포스트 민주화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사회발전모델 창출을 둘러싼 경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간의 화해를 강조하는 움직임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 왔다. 지난달 11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장준하 선생 부인을 찾아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대표적 진보지식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정희를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 표현했고, 이병천(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참여사회연구소장은 한국이 제3세계 독재국가들 중 유일하게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박정희 체제 때문이라 평가한 바 있다. 조 교수는 최근 출간한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역사비평)에서 “산업화의 장점과 민주화의 장점을 선택해서 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문제는 ‘박정희 정권의 붕괴’와 ‘민주 정부의 위기’를 함께 교훈으로 삼으면서, 신보수적 모델과 반박정희 모델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 설명했다. 조 교수는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스스로를 극복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보수 내부에 박정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어야 한다.”면서 “지금 박정희는 오로지 개발주의·반공주의·국가주의 이미지만 가진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를 향한 주문은 더 매섭다. 그는 “과거에는 독재권력이 지닌 정책의 문제점을 사후적으로 비판하는 ‘편한’ 위치에 있었지만, 이제는 정책의 현실성을 비판당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면서 “박정희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중을 먹고 살게 하는 모델을 창출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 계승측과 반대측이 화해가 아닌 상호 경쟁을 통해 새로운 대안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시점임을 강조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 (상) 화장실올림픽 4개월 앞으로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세계화장실협회(WTAA) 창립총회가 본 궤도에 올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촌에 26억명가량이 화장실을 갖추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연간 200만명 이상이 전염성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화장실협회를 유엔 산하 전문기구로 등록시키는 것을 목표로 창립총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창립총회 조직위 활동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도하 (카타르) 장세훈특파원|‘화장실 올림픽’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총회(WTAA) 조직위원회는 참가국을 당초 목표로 했던 70여개국에서 최대 100여개국까지 늘리기 위해 해외 유치활동을 벌이는 등 막바지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 4월 WTAA, 행정자치부, 유한킴벌리 등과 ‘아름다운 화장실 문화 가꾸기’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창립총회도 공동 주관한다. ●남아공 등 34개국 추가 교섭 23일 WTAA에 따르면 오는 11월21∼25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창립총회에 미국·일본·중국·독일·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 등 전세계 59개국이 참가한다. 또 영국·싱가포르·파라과이·남아프리카공화국 등 34개국을 대상으로 추가 교섭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16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이집트·케냐·카타르·오만 등 아프리카·중동 4개국을 직접 방문,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걸프 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서도 유치활동을 소개할 만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승호 WTAA 집행위원장은 “이집트는 이번 방문에서 환경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보내기로 합의했다.”면서 “이집트는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이 클 뿐만 아니라, 제3세계 국가 역시 화장실 문제가 심각한 현안인 만큼 관심과 참여가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WTAA는 또 다음달 스웨덴에서 열리는 ‘국제 물 주간 회의’에 유치단을 파견, 개별 국가를 상대로 막바지 유치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와는 별도로 빌 게이츠 미국 마이크로소트사 회장과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거물급 인사’를 초청하기 위한 물밑 작업도 하고 있다.200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아프리카에서 ‘나무의 어머니’로 불리는 왕가리 마타이 케냐 국회의원도 초청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저개발국 지원 등 공조 논의 이어 오는 9월에는 한국·중국·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워킹 그룹’을 구성해 세계화장실협회 운영 방안은 물론 유엔 자문기구로 등록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앞서 올 초에는 우리나라의 지원·도움을 받아 터키·몽골·브라질 등에서 화장실협회가 신설됐다. 다음달에는 캄보디아·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화장실협회가 창립될 예정이다. 최 위원장은 “화장실 문화 운동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보다 아프리카·아시아 등지의 저개발국에서 오히려 관심이 뜨겁다.”면서 “세계화장실협회를 통해 저개발국에 공중화장실 등 위생시설을 지원하고, 전염병 확산을 방지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공조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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