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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명도·조명철씨가 밝힌 「후계자의 사생활」

    ◎“김정일성격은 급하고 저돌적”/「곁가지」 제거에 신경… 도마다 「기쁨조」 운영/세여인 사이 3남3녀… 23살 장남도 방탕 김정일의 성격은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인 편이며 건강도 아주 좋다고 귀순자들은 밝히고 있다. 북한 정무원 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씨(36)는 27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의 성격과 관련,『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할 정도며,시시때때로 성질이 왔다갔다해 북한에서는 김정일을 「패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김정숙)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 우는등 눈물도 많다고 했다. 전건설부장 조철준의 차남이자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인 조명철씨는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 졸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를 않는다고 강씨는 밝혔다. 83년 강씨의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는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밝혔다. 또 허답의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김정일은 졸업뒤 선전선동부에 근무했으며 전문가 이상으로 피아노를 잘치는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밝혔다. 한편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그녀의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한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또 권력서열 2위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고 밝혔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 출신의 고영희(40)이며 고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정일 후계 승계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를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다는 강씨는 당시 김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특히 전쟁시 사용하기위해 홍콩의 마카오를 비롯,스위스·오스트리아·일본은행등에 외화를 넣어두고 있다고밝혔다. 강씨는 김정일 체제의 수명과 관련,『20년전부터 정치를 시작,85년부터는 사실상 정권을 총지휘해 온데다 당정의 조직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면서 『사실상 김정일은 총비서와 주석직을 다 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씨는 그러나 경제의 70%가 파탄에 이르러 경제및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주민들의 불만고조로 어려운 지경에 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일성의 이종… 북 대표적 개방파/「사위 귀순」 강성산은 누구 귀순자 강명도씨(36)의 장인인 강성산정무원총리는 현재 북한 권력서열 3위에 올라있는 실세인데다 두번째 총리를 역임하고있는,김정일의 핵심측근.지난 8일 사망한 김일성의 모친인 강반석의 큰 언니 아들이어서 김일성과는 이종사촌관계. 올해 63세인 그는 북한 경제 테크노크라트의 대표주자이며 김달현등과 함께 북한내 몇 안되는 개방파 인물. 함경북도 청진시 출생으로 만경대 혁명학원과 김일성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뒤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체코의 프라하공대에 유학하는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67년 자강도 당책임비서로 임명된데 이어 70년 39세에 평양시당 책임비서로 발탁돼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김일성부자의 각별한 신임으로 77년 정무원 부총리에 전격 임명된 이후 84년 최고인민회의 7기 3차회의에서 제1부총리자격으로 「남남협력과 대외경제활동을 강화하고 무역활동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대하여」라는 주요보고를 한뒤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이해 9월 합영법과 외국인소득세법등 개방정책관련법들을 마련하는등 광범위하고 파격적인 개방준비에 박차를 가했다.그러나 경제개혁이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86년12월 총리직에서 해임돼 당비서로 자리를 옮긴뒤 88년3월 전직총리로서는 이례적으로 함북도당 책임비서로 일했다. 그는 여기서도 두만강개발계획을 창안하는등 개방을 계속 추진해왔으며 그의 이같은 경제개혁추진능력은 김일성으로부터 공개적인 칭찬을 받았고 92년 12월 총리로 재기용됐다. 사위의 귀순이 그의 정치적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 돛대에 불붙이는 여자/이석영 지음(화제의 책)

    한때는 서울 압구정동·이태원등지에서 카페·디스코테크를 경영하며 「압구정족」으로서 화려한 생활을 했던,그러나 지금은 이혼녀에 전과자라는 허울만 남은 34살 여자의 고백수기. S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한 지은이는 별 생각없이 응모한 조일광고상 카피부문에서 조선일보사장 상을 받을 정도로 디자인 부문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인.23살 때 첫사랑과 결혼,명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남편은 도박에 깊숙이 빠져갔고 그 뒤치다꺼리를 위해 압구정동에 카페를 열면서 그녀의 삶은 점차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사는 여인의 모습과 함께 그가 경험한 「압구정족」의 세계가 세밀히 그려졌다. 서울기획 5천원.
  • “구한말∼일제 농촌 변화과정 생생”

    ◎구례 지주 유씨가의 일기 농촌경제연서 분석/할아버지와 손자가 85년간 쓴 농업일기/당시 작목구조·농사방식 연구에 큰 도움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에 이르는 기간 우리 농촌경제의 변동과정이 할아버지와 손자에 걸쳐 쓰여진 85년 동안의 일기를 통해 연구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두순 부연구위원과 박석두 책임연구원은 「한말·일제하 양반 소지주가의 농업경영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의 지주인 유씨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일기와 각종 문서를 이용해 당시의 경제적 상황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연구에 이용된 일기는 유제양(1846∼1922년)이 1851년부터 1922년까지 모두 72년 동안 쓴 「시언」과 그의 손자인 유형업(1886∼1944년)이 할아버지의 권유로 13살 때부터 1936년까지 쓴 「기어」.또 금전출납부인 「당용록」과 연도별 소작료 수취부인 「추수책」,노동력 사역부인 「전가일기」 및 「농가일기」,식량소비를 기재한 「양미책」 등 농가경영요소가 망라된 가전문서들이 분석됐다. 연구에 따르면 유씨가는 17 93년쯤 논·밭을 합쳐 8백83두락(22만3천4백여평)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1백년뒤에는 분할상속과 매각 등으로 1백62두락(2만5천평) 정도로 줄어들었다.이후 19 00년에는 1백두 미만으로 축소됐는데 직접적인 원인은 친족의 방탕이나 횡령 질병등으로 인한 매각 때문이었다. 당시는 조선이 일제의 강제농정에 휩쓸린 시기였다.일제는 조선을 일본이 필요로 하는 식량 및 원료농산물의 생산기지로 만들려 농업 방식을 일본식으로 바꿀 것을 강요했다.이에따라 유씨가의 작목구조와 농사방식도 크게 바뀌었다.「군청에서 양뽕나무 150그루를 보내 1백10그루를 뒷 채소밭에 심었다」(1911년 3월25일)는 일기에서 보듯 일본산 뽕나무로 종자를 개량했고 이어 재래면의 재배를 금지함에 따라 면화재배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조선총독부는 일본 쌀시장에서 인기높은 품종을 강압적으로 보급했다.미곡증산사업의 목표가 일본으로 가져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신품종이라는 미모의 종자가 여러 군데에서 얼어 죽었다」(1931년)는 기록처럼 일본품종은병해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재래종보다 휠씬 심했다. 농사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씨가가 화학비료를 처음 구입한 것은 1930년이다.일본 괭이와 왜낫을 산 것은 1912년이었으며 1916년에는 탈곡기구를 샀다.또 1937년부터 벼를 도정할 때는 물레방아 대신 동력 정미기를 썼다. 유씨가는 한해 2백∼4백50명의 노동력을 외부에서 조달했다.노동력 조달 방법은 호역와 매고·머슴의 세가지로 크게 구분됐다.호역은 농토를 빌려주고 지대로 춘추 각 4일의 노동을 제공받는 것이며 매고는 호역으로 충당되지 못한 노동력을 현금 또는 현물을 주고 쓰는 것이다.유씨가는 1900년대 초에는 호역으로 대부분의 농사일을 하고 부족노동력을 매고로 보충했으나 1920년쯤에는 소작으로 전환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 연구에 쓰여진 유씨가의 문서를 이용해 앞으로 「류씨가의 수입지출구조 및 생활실태」「토지소유 및 지세의 변화에 관한 연구」「오미동의 사회구조와 사회조직」 등을 연차적으로 연구해 갈 계획이다.
  • “한반도 전운 걷겠다”/남북정상회담 YS의 구상

    ◎북 불안감 해소시켜 핵포기 설득/평양측 결심따라 「획기적 경원」 선물 김영삼대통령은 북한주석 김일성을 만나기만 하면 북한핵문제를 포함해 한반도의 「전운」을 걷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북한은 22일 보기 드물게 「담백하고 정중한」 문체로 실무접촉을 수락했다.정상회담의 성사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짐으로써 김대통령의 회담구상과 자신감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는 북한의 핵개발이 기본적으로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한다.한국과의 엄청난 국력차,한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흡수통일시도에 대한 의구심이 핵개발로 치닫게 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분석이다.이를테면 김주석을 만나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북한의 불안감을 없애준다면 핵문제는 예상외로 쉽게 풀릴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우리측이 남북대화로 핵문제를 풀자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핵개발을 체질이 허약한 사람의 「비수」에 비유하고 있다.자신감이 있고 체력이 좋은 사람은 굳이 흉기를 소지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북한이 흉기에 해당하는 핵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허약성에 대한 불안감,외부세계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고 있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북한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전략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평소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을 십분 활용,김주석에게 결코 한국이 북한을 해칠의사가 없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불안감을 없애주는 과정에서 김대통령은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획기적인 경제협력」을 해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이는 남북한이 공존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실증시키는 주요한 카드이면서 우리의 선의를 알리는 선물이 될 수 있다.김주석의 느닷없는 정상회담제의가 나왔을 때 청와대일각에서는 정상회담을 통해 김주석이 남북한의 공존을 확약받고,허약할 수밖에 없는 김정일후계체제를 보장받기 위한 시도일 가능성을 주목한 바 있다.공존공영을 약속한다면 김정일체제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약속도 될 것이다. 김주석은 50년동안 북한을 통치했다.그는 합리적이진 않더라도 대단히 노련하다.모든 북한체제가 그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이에 대한 김대통령의 무기는 무엇인가. 청와대측은 김주석의 노련미는 김대통령의 정통성으로 상쇄가 가능하다고 본다.아무런 하자 없이 선거에 의해 선출되고,한때 지지율이 90%에 이른 김대통령의 정통성은 북한의 처지에서는 불가항력의 산으로 느껴질 수 있다.비록 선전매체를 통해 현재의 한국정부를 여전히 타도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것은 외부로의 선전일 뿐인 것이다. 김주석은 올해 83살.김대통령쪽에서 보면 마산의 부친 김홍조옹과 동갑이거나 한살정도 차이가 나는 정도다.그래서 회담이 열리면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겠느냐 하는 지적도 있다.정상들의 회담이 열리면 체력은 회담의 성패를 가름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김대통령과 김주석의 이같은 나이차,생물학적인 나이와 대비가 어려운 김대통령의 뛰어난 체력은 김주석을 설득하는 데 좋은 조건이 될 것이다.남북한정상이 만나면 밤을 지새면서라도 김주석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카드 가운데서도 김대통령의 주무기는 역시 그의 돌파력과 회담에 임하는 선의,자신감으로 요약된다.옐친 러시아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그 돌파력은 북한에 대한 무기공급중단이란 어려운 결정을 이끌어냈다.선의는 만남 자체로서 전달될 수 있다.김대통령은 지난번 스승의 날 행사에서 『일생동안 어느 누구와도 싸워서 져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김대통령이 모든 일에 갖는 자신감의 요체로 보인다.김대통령은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도 김주석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 김명희/함혜영/김은수/뉴욕필서 「한국인 재능」 뽐낸다

    ◎3인의 바이올리니스트/16·17일 지휘자 마주르와 함께 고국팬에 인사/명희씨 77년 입단,당시 유일한 동양인/혜영·은수씨,경쟁자 수백명 제친 실력파 뉴욕 필하모닉은 내한연주회를 갖는다는 것 만해도 그 움직임 자체가 상당한 뉴스거리가 되는 세계적인 교향악단이다.지난 1978년 이래 5번째가 되는 이번 내한은 그동안 여러 차례 뉴스의 초점이 되어 온 대지휘자 쿠르트 마주르가 이끈다는 점에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뉴욕 필의 이번 내한이 특히 우리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 세계적인 교향악단에 김명희와 함해영 김은수라는 세사람의 한국인이 단원으로 참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필의 단원은 어느 교향악단이나 그렇듯 1백명 안팎.이 가운데 홍콩이나 대만 출신은 한 사람도 없으며 일본인도 지난 1979년 입단한 바이올린주자 타나베 요코 한사람 뿐 이다.뉴욕필의 이번 「아시아 투어」는 한국에 이어 일본과 대만 홍콩도 찾아간다.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뉴욕필에 속한 이들 세 한국인의 존재가 부럽기만 할 것이다. 세 사람은 모두바이올린 주자.한국이 바이올린 강국이라는 점이 여기서도 입증된다. 김명희는 서울에서 태어난 뒤 국민학교 4학년 때인 1960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음대에서 명교수 갈라미언에게 배웠다.1977년 뉴욕필에 입단하던 당시 그녀는 유일한 동양인 단원이었다.그녀는 뉴욕필에 입단하기 이전 3년동안은 워싱턴 내셔널심포니의 단원이었으며 1983년에는 뉴욕필의 솔로이스트로 미국 순회연주를 하기도 한 실력파이다. 함해영은 15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역시 줄리어드에서 배웠다.뉴저지심포니와 베르겐필하모닉 등과의 협연 경력을 쌓은뒤 1986년 뉴욕필에 들어갔다.그녀는 이에 앞서 1980년 주빈 메타가 진행하는 뉴욕필의 청소년 콘서트에 출연했으며 1991년에는 에리히 라인스도르프가 지휘하는 이 악단과 협연하기도 했다. 김은수는 아직도 앳된 용모를 지닌 23살짜리 바이올리니스트이다.이번 연주 여행에는 일종의 수습단원으로 참여하며 오는 9월부터 정식으로 연주활동을 한다.그녀는 바이올린 주자 한사람만을 뽑는 뉴욕필의 최근 오디션에서 미국 전역에서 응시한 1백명 이상의 쟁쟁한 실력자들을 물리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뉴욕필의 단원모집은 음악전문월간지와 교향악단 노동조합기관지에 공고를 내는 것으로 시작된다.첫번째 오디션은 연주자와 심시위원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진행해 보통 10명 안팎을 추린다.이들을 대상으로 최종 심사를 하는데 이 때는 칸막이를 치운다.오디션은 음악감독과 「단원선발위원회」가 함께 하지만 최종 권한은 음악감독에게 있다고 한다. 김명희와 함해영은 주빈 메타가,김은수는 쿠르트 마주르가 최종 선발한 셈이다.메타는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천재성을 발굴한 지휘자이기도 하다.한국인의 재능을 제대로 판단해 주었다는 점에서 메타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원로지휘자 임원식씨/데뷔 50년 기념 연주회 연다

    ◎1946년 국내 첫 교향악단 창설한 “영원한 현역”/베토벤교향곡 전곡 6회 공연으로 완주 서울아카데미심포니로부터 얼마전 전단 한장이 날아들었다.원로지휘자 임원식씨가 지휘자로 데뷔한지 5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을 올 한해 6번의 공연을 통해 모두 연주한다는 것이었다.전단은 교향곡 4번과 7번을 연주할 두번째 연주회가 4일 하오 7시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서울아카데미심포니는 이에앞서 지난 4월 13일에 베토벤의 교향곡 1번과 5번「운명」을 연주했다.그러나 당시 연주회가 임씨의 지휘자데뷔 50년을 기념하는 베토벤 교향곡 전국 연주회의 서막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무슨 무슨 전곡 연주회라도 할라치면 연습에 앞서 보도자료부터 만드는 세태에서 이같은 모습은 물론 오케스트라의 홍보담당자를 탓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이번처럼 떠들썩하게 소문을 낼 수도 있는 일을 조용하게 해치우는 것은 바로 임원식씨 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실을 찾았을 때 더욱 놀란 것은 50년 동안 지휘를 한 그의 이야기를 모은 스크랩이 13살짜리 꼬마 바이올리니스트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그는 음악계에 대한 공헌과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너무도 스포트라이트를 스스로 비켜 서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임씨는 1919년 생으로 75세다.중년층 사이에 그가 화제에 오르면 『언제적 임원식인데 아직도 지휘를 하느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그도 그럴 것이 임씨는 1946년 국내 최초의 교향악단인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했고 1956년에는 현재 KBS교향악단의 전신인 국립교향악단을 만들어 초대상임지휘자로 15년 동안 활약했다.명실공히 우리나라 교향악 운동의 산 역사이다. 또 1953년에는 서울예고를 만들어 1975년까지 교장으로 있었다.이후 이화여대와 서울대 경희대에 교수로 재직했다.음악교육의 역사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에게 그를 물으면 『임선생님이 그렇게 오래 지휘를 했어요』하고 되묻는다.그들에게 임씨는 「원로」가 아닌 한사람의 「현역」지휘자일 뿐이다.그는 현재 서울아카데미심포니의 명예상임지휘자로 예우받고 있으나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인천시향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최근에는 레닌그라드필과 모스크바 알마타 등지의 러시아국립교향악단을 지휘하는등 활동범위가 오히려 더욱 넓어졌다. 통상 50주년이라면 만 50년이 되는 해를 가리킨다.임씨는 1945년 중국 하얼빈교향악단을 통해 지휘자로 데뷔했으므로 50주년은 1995년이 된다.그럼에도 이번 연주회를 「데뷔 50주년 기념」이라고 이름 붙였다.이를 확인하기 위해 교향악단 사무실에 전화를 거니 직원으로부터 『아 그거요.임선생님은 내년이 아니라 올해가 50주년이 되는 해라고 생각하시거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이처럼 음악 외적인 면에는 엉성하기 그지없지만 음악에는 누구보다 철저한 지휘자 임원식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는 12월 26일 송년음악회를 겸해 9번「합창」으로 끝을 맺는다.
  • 대원군 유품 1백38점 공개/5세손 이청씨 서울시에 기능

    ◎회갑기념으로 그린 영정·의복 등 포함/도총관으로 임명될 때의 교지 2점도 흥선대원군 영정(초상화)과 병풍·의복등 그의 유품 1백38점이 한꺼번에 공개됐다. 서울시는 23일 대원군의 5대손인 이청씨(58)가 대원군 영정 1점,교지 2점등 유품 다수를 기증했다고 밝히고 이날 이들 유품들을 공개했다.시는 영정과 병풍,의복등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국보나 보물등으로 지정해주도록 관계부처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들 유품중 대원군의 영정은 1881년에 회갑기념으로 당시의 왕실화가인 이한철이 그린 것으로 대원군의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8방향으로 진주알이 박힌 의관을 쓴 당당한 모습의 영정은 고감도채색을 사용해 1백1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대원군이 25살때인 헌종 11년(1845년)수능관으로 제수돼 노비 6명과 전50결(16만3천7백50평)을 하사받고 헌종 13년에는 요즘의 수방사령관격인 오위도총부의 책임자인 도총관으로 임명될 때의 내용을 담은 교지(왕의 사령장)2점도 처음 공개돼 학계의 연구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 대원군의 손자며느리이자 순종 비인 순정효황후 윤비가 1906년 13살때 황태자비로 책봉될때 입은 가례복도 선보였다.짙은 청색바탕에 9줄의 공작무늬가 수놓인 가례복은 황태자비로 책봉될 때의 예복이다. 한편 서울시는 대원군의 유품이 한꺼번에 공개되기도 처음인데다 대부분이 귀중한 문화재로 여겨져 정도 6백년기념사업으로 복원하고 있는 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에 이를 전시,오는 95년말부터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 “아파트 공사 분진피해 배상하라”/환경분쟁위 재정결정

    ◎문못여는 등 정신적 고통 인정/“「일조권」은 환경오염 피해 아니다” 결정 아파트 건설공사의 분진으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해서도 배상해야한다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위원장 전영길)의 첫 재정결정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진동과 소음에 대해서만 환경피해를 인정했으나 처음으로 분진에 의한 피해도 진동·소음과 함께 구제키로한 것이다. 중앙환경분쟁위는 13일 서울 양천구 목1동 405의206 이상목씨가 인근에 시공중인 아파트 건설공사로 피해를 입었다며 현대산업개발(대표 심현영)을 상대로 2천4백86만5천원의 피해배상을 요구한데 대해 4백1만여원을 배상하라는 재정결정을 내렸다. 중앙환경분쟁위는 재정결정문에서 『시공회사는 공사장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 저공해 소각로에서 자체 소각하는등 쓰레기및 먼지 발생을 최대한 억제했다고 하나 이씨 가족이 더운 여름철에도 분진으로 문을 열지 못하고 이로 인해 3살된 손자가 경기를 일으켜 아들부부가 이사를 가는등 정신적·정서적 고통을 받은 점이 인정돼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밝혔다. 중앙환경분쟁위는 또 시공회사는 소음·진동이 없는 공법으로 토목공사를 했지만 소음·진동이 최대치인 것으로 추정되는 92년 11월 23일의 소음·진동치를 측정한 결과 이씨집 실내소음은 78.4㏈로 도로변 주거지역의 주간 소음환경기준인 65㏈및 주거지역 낮시간대 공사장 생활소음 규제기준 70㏈를 모두 초과했다고 밝혔다. 진동도 0.245키네로 5∼15년 미만의 주택에 대한 연속진동허용치인 0.175키네(독일공업규격)를 크게 넘어서 지하실 파손·마당 균열등의 피해도 인정했다. 중앙환경분쟁위는 그러나 이씨가 고층아파트가 집앞을 가려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를 받았다고 함께 재정신청한 부분에 대해서는 환경적 오염피해가 아니기때문에 검토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집에서 15m 떨어진 18층짜리 주택조합아파트공사로 인해 집에 금이 가고 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등 피해를 입자 시공회사인 현대산업개발을 상대로 2천4백86만5천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재정신청을 냈었다.
  • “북한 작년 8월부터 배급 끊겼다”/귀순 여만철씨가족 일문일답

    ◎불명예제대후 자녀장래위해 탈출/식량난 여파… 김부자 충성심도 저하 북한을 탈출한 여만철씨가족 5명은 2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조선족 김씨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돼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다』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여씨가족들은 『앞으로 굶주리고 헐벗은 북한동포들을 위해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탈출동기와 경로는. ▲안전부 대위로 근무하다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대당한뒤 딸과 아들의 장래가 제약을 받아 탈출을 결심했다.식량을 배급받지 못해 식구들이 영양실조에 걸렸다.작년 12월 탈출을 결심하고 처와 자식들의 동의를 받아 지난 3월19일 혜산으로 기차를 타고가 밤중에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거기서 심양에 사는 조선족을 만나 옷가지를 얻어 입고 제3국을 통해 남한으로 오게 됐다. ­식량난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작년 8월부터 배급이 끊겨 강냉이를 불려 삶아 죽을 끓여먹고 연명했다.그것마저 떨어 지면 양말을 사다가 농촌에 가서식량과 바꿔 먹었다.이웃에 사는 3살난 아이를 둔 아주머니는 3일을 굶은 끝에 소나무 껍질을 잘못 삶아 먹고 죽기도 했다.어떤 집에서는 김치만을 식사로 먹기도 한다. ­북한주민의 김일성부자에 대한 충성심은 여전한가. ▲두 부자의 학습과 강연을 의도적으로 피할 정도로 충성심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다.김일성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20%밖에 안된다. ­큰아들의 키가 또래보다 작은 것같은데. ▲(장남 금룡군)내키는 크지도 않지만 작은 축에 들지도 않는다.한반에서 1백68㎝이면 가장 큰 편에 속한다.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등교해도 책상에 엎드려 있는 학생들이 많고 선생들도 제대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여씨는 이밖에 『북한에는 식량난때문에 중국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나 대부분은 중국 공안원과 매수당한 조선족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여씨가족은 이날 기자회견을 가진 직후 월남한 한 독지가로부터 2천만원의 격려금을 받았다.
  • 월남전 참전군인 2세들에 고엽제 후유질환 증상

    【청주=김동진기자】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월남전 참전군인들의 자녀한테서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이에 대한 정부차원의 철저한 조사와 대책이 요망되고 있다. 29일 대한해외참전전우회 청주·청원연합회(회장 정인휘)에 따르면 최근 회원들을 대상으로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회원자녀들을 조사한 결과 사망자 1명 외에 현재 7명이 두통이나 수족마비·정신이상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90년 고엽제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사망한 신모씨(청주시 강서동)의 딸(23·회사원)은 지난해부터 온몸에 검붉은 반점이 생겨 통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역시 지난 90년말 사망한 최모씨(청주시 모충동)의 아들(21·무직)도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온몸에 검은 점과 함께 피부병이 생겨 학교를 그만둔 채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또 오모씨(50·청주시)의 경우 지난 76년 3살난 큰아들이 두통과 수족마비등의 증세를 보이며 시름시름 앓다가 지난 87년 숨진 데 이어 둘째 아들(14)도 지난 89년부터 같은 증세를보여 청주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정확한 병명이나 치료법을 몰라 부모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 절망을 거부한 전신마비 시인/장애인의 날 인간만세…포항의 이상열씨

    ◎입에 막대 물고 집필… 밝은삶 노래/“나는 곤궁한 순례자 건네주는 빈배”/작업장서 추락… 종교귀의후 새인생/인세모아 장애자시설 세우는게 꿈” 「깊고 투명한 절망의 늪에서/힘차게 비상할 때/우리는 모두/찬란한 진리의 빛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시 「절망」중에서) 해마다 장애인의 날(20일)이면 삼백예순네날동안 가슴에 묻어놨던 설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장애인들에게 장애자 시인 이상열씨(49·경북 포항시 환여동 혜림아파트)는 『진리 가운데에서 모두가 「하나」』라고 강조했다. 전신마비로 가느다란 막대기를 입에 물고 워드프로세스의 가·나·다를 짚어가며 시 한수를 써내려가려면 꼬박 밤을 새워야 하는 최악의 몸으로 주옥같은 시집을 펴내 91년10월 제1회 솟대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한 이씨.그는 차라리 『곤궁한 순례자를 싣고 삶의 강을 건네주는 빈배』이기를 자청했다.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목부분밖에 없다는 이씨는 『비록 몸은 「어둠」속을 헤매지만 정신만은 청정하다』며 요즘은 「그대 가슴에 빛을 쏘리라」라는 3백쪽짜리 수필집을 쓰느라 밤을 잊고 산다고 했다. 주옥같은 문학작품의 밀알을 체험토록 강요받은 것은 그의 나이 36살때인 지난 82년.3살배기 딸애의 「빠이빠이」 손짓전송을 받으면서 삼풍공업이라는 포항의 중소기업에 출근하던 어느날 포항철강공단내 포철협력업체의 4m 높이의 작업장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고 2년여의 투병끝에 목숨은 건졌으나 전신마비라는 비운을 당했다.자살할 수조차 없는 삶을 원망하며 보낸 6년여의 세월을 「암흑」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씨에게 포항 성모병원의 베난시오수녀(53)는 「진리 가운데 하나됨」을 일깨워주었다.88년 이씨에게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목을 활용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워드프로세스를 소개해주고 사준 이도 바로 베난시오수녀였다. 「살기가 고달프다고/질긴 목숨 끊을 수 없고/ ……억장 무너져도 아픈 웃음 지을 수밖에」(「그러니 어쩌겠나」중에서).맨처음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밤새워 써내려간 시에서 이씨는 체념을 노래했다. 동국대 국문과를 중퇴하고 교사자격시험을 거쳐 한때 교직에도 몸담은 이씨가 시작활동을 통해 어느정도 평화를 얻어갈 무렵 또 한번의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장애를 입은 후 7년여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던 아내가 사랑하는 두딸 슬기(15)·송이(12)를 데리고 떠난 것이다. 「이다음에 정말 이다음에/문득 아빠 생각 나거들랑/네 아이 손 잡고/꽃한송이 소주 한병 들고/나 묻힌 곳에 찾아 주렴」(「1990년3월27일」중에서).그는 지금도 『아파서 정신이 멀어져갈 때 두손 꼭 잡고 「아빠 죽지마…」하고 눈물 글썽이던 두아이가 보고 싶은 것이 가장 참기 힘든 일』이라 토로한다. 그러나 진한 그리움이,삶에 대한 지극한 애착이 자신의 작품의 영양소가 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숨기지 않는다.91년에 출간한 시집이 1만5천여부나 팔려 얼마만큼의 목돈을 마련했다는 이씨는 7월에 출판될 수필집의 수익금까지 보태 장애인을 위한 작은 공동체를 만들 계획이라고 털어놨다.
  • 해금 인간문화재 김천흥옹 손녀 바이올리니스트 신경씨

    ◎할아버지 예술혼 대이어 빛낸다/22일 예술의 전당 초청독주회 통해 국내무대 데뷔/독 유학,베를린심포니와 3차례 협연/김옹 “최선 다하는 예술가 되어라” 당부 할아버지의 해금과 손녀의 바이올린,동·서양을 대표하는 이 두 찰현악기의 명인기가 대를 뛰어넘어 전수되고 있다.해금의 인간문화재 심소 김천흥옹(86)과 22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유망신예초청연주회」를 통해 국내 음악계에 데뷔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신경씨(27).이들이 바로 「음악의 동서화합」을 이룬 화제의 주인공이다. 김옹은 독일로 유학을 떠난뒤 10년만에 만난 손녀가 그동안 올곧게 예술가의 길을 갔는지를 지켜보겠다며 연주회 날을 벼르고 있다.신경씨는 신경씨대로 『가진 것 만큼은 남김없이 보여주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서양음악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선대에서 풍류가락깨나 잡아보았던 경우는 크게 드물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들 조손이 유독 화제를 모으는 것은 김옹이 전통예술계에 우뚝한 거봉인데다 신경씨 또한 국제음악계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은뒤 국내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옹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에서 일무와 해금으로,제39호 「처용무」에서 춤으로 각각 지정된 유일한 2종목 보유자.김옹이 해금을 처음 접한 것이 13살때 이왕직아락부에 들어가면서 부터라고 하니 70년 이상을 말총활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김옹의 3남3녀 가운데 예술로 대를 잇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신경씨의 아버지인 둘째아들 정완씨(60) 또한 사업가로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따라서 신경씨의 이번 연주회는 2대에서 사그라질뻔 했던 김옹의 예술혼이 3대에서 다시 환한 빛을 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의미도 있다. 신경씨는 『할아버지는 음악을 통해 도가 트이신 분』이라고 말한다.그런 그도 어릴때는 할아버지의 공연을 보러가서는 졸기가 일쑤였다고 한다.「예술가로서 할아버지의 존재」는 독일에 유학해 연주자로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인식되기 시작했다.할아버지처럼 평생토록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할아버지의 「피」와 함께 「정신」까지 이어받은 신경씨는 그뒤 베를린음대대학원을 졸업하던 지난해 봄부터 3차례나 베를린심포니와 협연하고 올가을에도 초청을 받아놓고 있는등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김옹은 『유행가는 몇번 들으면 염증이 오지만 베토벤같은 클래식음악은 들을수록 좋아진다』고 토로한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의 경지가 높아지면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곡이라도 음악적인 우열을 판단할수 있다는 것이다.이때문에 신경씨는 요즘 「국악인」 할아버지가 자신의 연주에 내릴 평가가 두렵다. 신경씨는 얼마전 그런 할아버지로 부터 아주 큰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할아버지는 설겆이를 하던 그에게 『예술가는 그런거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는 것.설겆이를 면케 해주어서가 물론 아니다.예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엄격한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자신을 「예술가」로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의 손녀이어선지 신경씨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서 음악을 하는가」를 평생 고민하는 연주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13살 바둑신동 이봉일,일 아마대회 파견예정(북한 이모저모)

    ◎조각­기념물 수출·현지제작… 외화획득 열올려 ○중국유학중 단연 두각 ○…북한 바둑계에 새로운 유망주가 나타났다고. 재일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에 의하면 북한은 바둑인재 양성을 위해 지난해 5월21일부터 11월30일까지 6개월동안 문영삼(남)·최은아(여)등 8명의 나이 어린 소년·소녀 기사들을 중국에 유학보냈는데 이들중 열세살난 이봉일이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 아마 5단수준인 이봉일은 유학기간중 중국 프로2단의 실력을 인정받은 현 북한바둑계 최강자 문영삼과의 2차례 대국에서 잇따라 불계승을 거두는등 8명의 유학생중 최고의 성적을 올림으로써 올해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 북한대표로 참가하게 될 예정이라고. 북한 바둑계에서는 지난해 같은 대회에서 문영삼이 6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들어 이봉일이 올해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만경대 체육대회 시작 ○…김일성 생일행사의 하나로 매년 열리는 만경대상 체육대회가 부주석 박성철과 당비서 김중린을 비롯한 당간부들과 주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4일 김일성경기장에서 개막됐다고 중앙방송이 이날 보도. 지난 69년부터 시작된 만경대상 체육대회는 지난해의 경우 4월1일 개막돼 평양과 지방에서 분산 진행됐으며 김정일의 생일체육행사인 「백두산상체육대회」와 함께 북한의 주요 체육행사다. ○만수대 창작사서 전담 ○…북한은 최근 조각작품이나 기념물을 해외에 수출하거나 현지에서 직접 제작함으로써 외화획득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에서 발행되는 영문잡지 「포린 트레이드」 최근호에 따르면 이러한 조각품 수출 및 해외제작은 만수대 창작사에서 전담하고 있는데 에티오피아·부르키나파소·자이르등 아프리카 친북국가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 ○열흘간 예술축전 개최 ○…북한이 김일성 생일 행사의 일환으로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제12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오는 9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진행된다고 중앙방송이 3일 보도. 각국의 예술단체들과 예술인,해외교포 예술인 등 수백명이 참가하는 이번 행사에는 중국과 태국의 문화대표단을 비롯해 모두 5개 대표단이 참석한다고.
  • 오동나무심기 25년/독림가 김병연씨의 식목인생(식목일 화제)

    ◎“50만그루가 내 아들”/“속성수 착안” 69년부터 숲가꾸기 시작/한때 실패 거듭… 우량묘목 개발로 극복 전남 담양군 고서면 보촌리 김병연씨(62)는 해마다 식목일이면 예외없이 70㏊ 야산에 50만그루의 참오동나무숲을 찾아 거닐곤 한다.「오동나무 박사」로 더 잘 알려진 김씨가 「나무인생」을 살게 된 것은 식목일이 매개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꽤 큰규모의 미곡상을 하며 넉넉하게 살던 김씨는 33살때인 65년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했다.생과 사를 몇번이고 넘나들었던 4년간의 병원생활을 청산한 69년 김씨는 때마침 국민식수기간으로 식목활동이 한창이던 그해 4월 우연히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를 찾게 됐다. 김씨는 물기가 촉촉히 오른 땅에 뿌리를 내리는 묘목들을 보고 나무와 함께 나머지 인생을 살기로 하고 그곳 곡성에 5㏊,고향인 함평에 60㏊의 야산을 구입해 오동나무를 심으며 독림가의 꿈을 키웠다.오동나무가 속성수라는 장점외에도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늘어나는 목재수용에 비해 생산량이 절대 부족한데다 당시 대부분의 벌거숭이산을 쉽게 울창한 숲으로 바꿀수 있다는 계산도 김씨의 구미를 당겼다. 그러나 함평군 해보면 산내리 야산에 심은 4만여그루의 오동나무가 가지를 자르면서 침투한 근두연병등 각종 병충해로 속절없이 말라 죽어갔다.실패를 거듭한 김씨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무재배는 우량묘목을 생산하는게 첫걸음이라고 깨닫고 그해 곡성농장에 3백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종묘장을 설치했다.밤낮으로 오동나무에 붙어 생태변화등 관찰을 거듭했다. 육묘장에서 3개월 동안 최저기온 15℃ 최고 31℃를 유지하면서 묘목을30여㎝가량 키운다음 이를 비닐하우스내로 옮겨 뿌리활착력을 강화시키는 이른바 「치상양묘법」을 개발해 냈다. 김씨는 「나무인생」 10년만에 개발해낸 「우량오동나무」묘목으로 자신의 70㏊의 야산을 푸르게 가꾸기 시작한 것은 물론 전국에 우량오동나무 묘목의 보급에도 앞장서 왔다. 『오동나무는 환경림뿐만아니라 고급목재로서 상품가치가 매우 높다』는 김씨는 『어느 곳이든 심어놓기만하면 큰 돈이 될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 1백년 올림픽사상 최연소 「금」/13세소녀로 기네스북에 올라

    ◎철옷입고 4만㎞ 강훈끝 “영광” 【릴레함메르=정태화·서병기특파원】릴 레함메르 하늘에 자랑스런 태극기를 휘날리고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한 한국쇼트트랙 낭자군의 막내 김윤미(정신여중 1년)가 올림픽 1백년사상 최연소 여자 금메달리스트로 기네스북에 오른다. 23일 새벽 릴레함메르의 하마르원형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3천m계주에서 한국여자팀이 금메달을 따내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김윤미는 1980년 12월1일생으로 정확하게 13살 84일의 나이다. 김윤미는 지금까지 최연소 기록인 36년 베를린올림픽 스프링보드 다이빙 금메달리스트 미국의 메저리 게스트링(당시 13살 2백68일)보다 1백84일이 어려 금메달과 함께 기네스북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됐다. 이날 결승에 나선 김윤미는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강호 캐나다와 중국선수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기량을 선보이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모두 27바퀴를 도는 이 경기에서 13바퀴를 남기고 캐나다와 중국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사이 한국팀은 3위로 처졌다. 16바퀴째에서 캐나다선수가 갑자기 넘어졌고 중국의 독주에는 가속이 붙었다. 힘겹게 뒤를 쫓던 한국팀의 배턴이 원혜경에서 김윤미로 넘겨졌고 이를 악물고 뒤따라 가던 김윤미는 4바퀴를 남기고 중국선수의 안쪽을 당차게 파고 들어 처음으로 선두를 잡았다. 그것으로 한국의 금메달이 결정됐다. 김윤미로부터 터치를 받은 전리경과 마지막 주자 김소희(정화여고2)는 여유있게 골인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김윤미를 비롯한 10대 여자대표선수들은 그동안 전명규코치가 고안해낸 「철조끼훈련」과 혹독한 웨이트트레이닝을 견뎌왔다. 체력이 월등한 서구선수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린 선수들에게 가혹하긴 하지만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게 전코치의 설명이다. 언니들이 7.5㎏의 무거운 철조끼를 걸친 대신 3㎏의 비교적 가벼운 철옷을 입은 햇병아리 김윤미는 이번 대회를 대비해 모두 4만㎞이상의 얼음판을 묵묵히 달리고 또 달렸다. 또 코치조차 안쓰러울정도의 무거운 기구를 들어올려야하는 역기훈련때는 남모르게 많은 눈물도 흘렸다. 서울 신천국 1학년때부터 쇼트트랙을 시작,6년만에 한국빙상계의 기린아로 떠오른 김윤미는 1m55㎝ 42㎏의 가녀린 몸매지만 순발력과 지구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임씨­배후조직 연결고리역” 추정/조종삼목사 어느정도 개입했을까

    ◎범인과 성장과정 등 비슷 “호형호제”/“법행 사전협의 가능성” 의혹의 눈길 대성교회 조종삼목사는 과연 탁명환씨 살해사건에 어느정도 개입했을까. 22일 이번 사건과 관련,용의자로 수사를 받아오던 대성교회 운전사 임홍천씨(26)와 함께 이 교회 조종삼목사(32)가 증거인멸 혐의로 전격구속되면서 조목사와 임씨의 관계는 물론 교회측의 조직적인 배후개입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임씨에 의한 우발적 단독범행이 아니라 사전준비에 따른 조직적 계획범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경찰은 임씨 검거의 결정적 단서였던 달력의 나머지를 불태우도록 지시한 조목사를 임씨와 대성교회간의 연결고리로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일단 조목사를 임씨가 범행에 사용한 쇠파이프에서 발견된 교회달력을 모두 소각,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구속했으나 실질적인 범행개입 여부에 수사의 초점을 모으고 있다. 조목사는 범행 이튿날인 19일 상오 도피중인 임씨로부터 『현장에서 교회달력종이가 발견됐으니 사무실에 걸려있는 달력을 없애달라』는 전화를 받고 소각장관리인 송명섭씨(26)형제에게 시켜 이를 불태웠고 이어 기사숙소 관리인 이용우씨등을 불러 임씨의 알리바이를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 교회 소속 30여명의 목사 가운데 서열이 가장 낮아 기사등을 관리하는 총무역할을 맡은 조목사의 지휘아래 임씨와 송씨형제,이씨등이 범행 초기단계부터 일사불란하게 실행한 조직범행이란 심증을 갖고 이에대한 물증등을 확보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사건현장에서 임씨외에 2명의 공범을 더 보았다는 목격자들이 속속 등장,이같은 확신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용의자 임씨와 조목사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C신학교 선후배 관계로서 친형제간 이상의 우애를 다져온 것으로 알려져 사전모의에 대한 심증을 굳혀 주고 있다. 조목사가 대성교회에서 기사로 시작해 신학교를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았듯이 임씨 또한 이와 똑같은 코스를 밟고 있었음을 봐도 임씨가 조목사와 상의없이 탁씨 살해와 같은 큰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두사람 다 교회측의 후원을 바탕으로 밑바닥부터 커나가고 있던 점을 감안,조목사와 임씨간의 공모사실이 드러나면 박윤식목사를 포함한 대성교회 간부들도 경찰의 수사권에서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전남 함평이 고향인 조목사가 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83년 군복무를 하다가 신병으로 의가사제대를 하고난 이후.조목사는 인천의 모공고를 졸업한뒤 한때 의료기기 수출업체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대성교회에서는 업무용 승용차를 몰거나 교회행사를 비디오로 촬영하는등 남들이 꺼리는 힘든 일을 도맡아 해왔다. 대성교회 간부들에게 성실성을 인정받은 조목사는 「주경야독」을 하며 서대문구 홍은동 C신학교를 마치고 지난해 11월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이후 교회내 총무직을 맡아왔다. 조목사는 신학교에 다니던 4년전 부인 이모씨(29)와 결혼,3살된 딸과 함께 대성교회에서 살고 있다.
  • 이 여인을 보라/쇼지로 엮음·조형균 옮김(화제의 책)

    ◎「통나무인간」 일 하사코 일대기 어려서 팔다리를 모두 잃어「통나무 인간」으로 평생을 지내면서도 정상인이상으로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일본인 나카무라 히사코(1897∼1968년)의 일대기이다. 히사코는 2살때 왼발에 동상이 걸렸으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돌발성 탈저병으로 진행한다.결국 3살 때 양팔은 팔꿈치에서,두다리는 무릎에서 절단한다. 이후 아버지의 급사,어머니의 재혼등 시련이 계속되지만 히사코는 14살에 입으로 바느질해 옷 한벌을 짓는 것을 시작으로 돈벌이에 나선다.71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그는 외부의 도움을 단한푼 받는 일 없이 스스로 벌어 남못지 않게 자식도 키운다. 「인간승리」드라마 가운데서도 유별난 감동을 안겨주는 내용이다. 조형균 옮김 백재문화사 5천원.
  • 기술연수 위해 한국 온 베트남청년(은방울)

    ◎파월기술자 아버지 22년만에 만나 ○…한국계 베트남인 2세인 쩐 타잉 녀(25·한국명 박원삼)군이 4일 상오 10시30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아버지 박태욱씨(65·경남 창원시 명곡동)를 22년만에 만났다(사진). 타잉군은 3살때인 72년 월남에서 전기기술자로 일하던 아버지 박씨가 말못할 사정으로 귀국하면서 연락이 끊겨 그동안 생사도 모르며 지내왔다. 지난해 4월 기술연수초청으로 한국에 와 서울 상계직업훈련원에서 기술연수를 받고 있는 타잉군은 다음달부터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아버지를 찾기위해 빛바랜 5장의 사진을 들고 수소문을 해왔다. 주한베트남대사관을 통해 타잉군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송파경찰서는 2개월여동안 경찰의 각종 정보문서를 샅샅이 뒤져 이날 부자상봉을 주선한 것.
  • 목공일로 번 14억 장학금으로/7순 노부부 서울대에 희사

    ◎“돈없어 못배운 설움 없게” 집한채만 남겨 희수의 노부부가 평생 목수일등 허드렛일로 한푼두푼 절약해 모은 전재산을 대학 장학기금으로 내놓아 연초부터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30일 서울대학교에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14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증한 윤전수 할아버지(77·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와 이삼락 할머니(73).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윤할아버지는 소학교를 중퇴한 후 23살때 서울 충정로에 목공소를 차린뒤 65살 되던 82년초까지 오로지 한길로 목공소 일을 하며 돈을 모았고 부인 이할머니 역시 솜틀집을 하면서 「먹을 것 먹지않고 입을 것 입지않고」 알뜰하게 가계를 꾸려왔다.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됐다』는 노부부는 슬하에 2남2녀를 두었으나 젊은 시절 어려운 생활형편으로 장남만 고등학교를 보냈을뿐,나머지 자녀들은 중학교 문턱만 겨우 넘게하는 한을 또다시 되풀이했다고. 윤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고 자식·손주들에게 올바른 인생의 모범을 보이고 싶어 전재산을 장학금으로 내놓게 됐다』며 『이제 못배운 한을 푼것같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기증된 부동산은 경기도 부천시 자유시장 안의 지하1층 지상3층의 상가건물.김종운 서울대총장은 『평생 어렵게 모은 재산을 흔쾌히 기탁한데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당분간 입주 상점들에서 거두어지는 임대료를 장학금으로 활용하다 일정기간 경과후 팔아서 장학기금에 편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대학측은 이와함께 30여평짜리 연립주택 한채만 남게된 윤씨부부를 위해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급할 계획도 마련하고 있다.
  • “올해는 꼭 내힘으로 걷겠어요”/아시아나기사고 김성희씨의 재기다짐

    ◎좌절 딛고 눈물겨운 홀로서기 연습 『새해에는 꼭 혼자 일어나 걸을 자신이 있어요』 지난해 7월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사고때 군헬기에 극적으로 구출되는 모습이 TV와 신문에 보도되면서 온 국민의 가슴을 조리게 했던 김성희씨(29·서울 강동구 암사동). 김씨는 7·8·9번 척추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에 의지하며 재기의 의지를 태우고 있다.그녀는 5개월여동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재활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피나는 노력끝에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곧 걷을 수 있는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병원측에서는 현재 기립과 균형훈련을 받고 있는 김씨의 의욕이 남다른 만큼 2월쯤이면 몇 걸음정도는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꽝」하는 순간 무릎에 앉은 아들을 껴안고 정신을 잃었죠.깨어보니 전남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더군요』 김씨는 아직도 감각이 없는 다리를 내려다보며 5개월전의 참혹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걷지 못하게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믿어지지가 않았지요.밤에 잠자리에 들면서영영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고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런 벌을 받아야하는지 몰라 수천번을 울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함께 비행기에 탔던 3살짜리 아들 승호군이 머리끝 하나 다치지않고 무사한데서 삶의 용기를 얻었다.어떻게 해서라도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나 『엄마 사랑해요』라며 목을 껴안고 재롱을 피우는 아들을 위해 살아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지난해 8월26일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전기자극에 의한 하반신 치료를 받았다.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 밤10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홀로서기」위해 보여준 김씨의 의지는 놀라웠다. 아침 8시30분부터 10시까지 상체운동을 위한 작업치료를 시작으로 11시10분부터 초음파 치료 그리고 점심식사후 3시부터 20분동안의 물리치료,4시30분부터 5시까지의 전기자극에 의한 치료로 이어지는 힘든 과정을 참고 견디었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단순한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했다.너무나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러나 김씨는 『물리치료에는환자 자신이 일어서고 걷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사들의 충고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운동을 하지않을 때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드디어 지난해 12월13일 김씨는 휠체어에서 일어서는데 성공했다.치료효과가 그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담당의사들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반신의 부자유보다 마음과 정신의 마비가 저를 더 괴롭혔지요. 그러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재기하는 것만이 저를 구해준 마천마을 사람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랬지요』 그녀는 『하루빨리 몸이 완쾌되어 어머니·아내·며느리로서 되돌아가고 싶다』면서 병실 창문틀에 놓여있는 아들의 사진첩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집념과 투지로 절망을 물리치고 있는 병실에는 새해 아침의 햇살이 축복처럼 밝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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