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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주제 멍에’ 남성들의 하소연/호주제 폐지 여성만의 문제라고?

    여성들만이 호주제 폐지를 원하는가. 아니다.남성들도 호주제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다.최근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8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51.6%가 호주제 폐지에 찬성했고,남성들은 39.1% 찬성했다.여성과 남성간 인식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남성 10명 가운데 4명이 찬성한 의견을 소수의견이라고 깎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더욱이 남성들의 찬성은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고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60∼70%의 남성들이 찬성할 만큼 젊은 층은 긍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왜 남성들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호주제 폐지를 원하는가.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사회단체 상담창구에서 만난 남성들의 사례에서 그 의문을 풀어본다. ●영원한 이방인 김정호(35·가명)씨는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명절이 두렵다.”고 말했다.“내가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몇 년 후 어머니는 재혼하셨다.새 아버지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지만 나는 아버지와 동생들과도 다른 내 성 때문에 늘 힘들었다.주위와 선생님들의 편견은 날 주눅들게 했다.지금 나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두 아이의 아빠가 됐지만 여전히 호주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면 집안의 남자들 중 나와 내 아이들만 성이 다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명절이 다가오면 학교다닐 때의 꿈을 꾸기도 한다.” 30년이 넘게 가족으로 살았지만 영원히 새아버지와는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김씨는 자신을 ‘이방인’이라 말했다.동생들도 어머니가 낳았고 함께 자랐지만 벽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재혼가정의 재이혼은 초혼가정보다 훨씬 더 높아 60∼70%나 된다고 이혼상담소 자체통계는 밝히고 있다.또한 아이가 있는 20∼30대에서는 아이의 성 문제 때문에 동거중이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게 위험을 줄이는 결혼방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왜 아버지와 성이 다르냐?’는 질문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대를 잇기 위한’ 존재일 뿐 정호진(28·가명)씨는 4대 독자다.3대 독자로 딸만 내리 다섯을 낳은 그의 아버지는 ‘대를 잇지 못한 불효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50대 후반,외도로 그를 낳았다.그가 세 살 나던해 아버지는 돌아가셨고,그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이미 오래 전부터 누나들과 나는 가족이 아니다.아버지는 대를 이었으니 할 일을 다한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자라면서 내 존재에 대해 경멸감을 느꼈다.대를 잇는다는 절대적인 책임감은 호주제가 폐지된다면 없어질 것이다.나도 호주제의 피해자다.나도 호주제 폐지를 여성들만큼 바란다.” ●장남은 괴로워 윤경진(54·서울 마포구 서교동)씨는 어릴 때부터 6남매의 장남으로 동생들 뒤치다꺼리를 맡아왔다.“가난했던 시절이었고 장남이라면 누구나 힘든 부모님을 돕는 것이 당연했다.신혼시절 단칸방에서도 남동생을 데리고 있었고 자연히 아내와의 갈등도 많았다.그후로도 부부간의 문제는 대부분 장남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생긴 것들이었다.3살 아래 남동생은 참 자유롭고 재미있게 사는 것 같은데….나도 장남만 아니었으면 아내와의 사이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 같다.” 윤씨는 너무 미안해서 오히려 아내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선뜻 할 수 없었고,“가난한 집안,장남한테 시집올 때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윽박지르며 살아왔다고 했다.“장남으로서의 책임,그것이 내 인생의 족쇄였다.사표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남성들도 자신을 호주제의 ‘피해자’라고 말하길 주저치 않았다.호주제가 결코 ‘기득권’이 아닌 ‘덫’이라 했다. ●버리고 싶은 姓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싫다는 김국호(25·가명·대학원생)씨는 “나를 정말 사랑하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성을 따르지 못하고 이날 이때까지 고통만 준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하는 현실이 증오스럽다.더 이상 내 자신의 성을 경멸하지 않고 살고 싶다.호주제가 폐지되면 나는 이름도 새롭게 지어서 새 인생을 살고 싶다.그로 인해 겪는 불편은 감수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서성우(26·가명·회사원)씨는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그동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었는데 여권발급을 받으면서,또한 이력서를 쓰면서 ‘호주’란에 아버지 이름을 써야 하는 사실의 불합리한 면을 깨달은 후 호주제 폐지를 찬성하게 됐다.“호적에 의하면 제 어머니는 낯선 여성이고 제게 동생이 둘이나 더 있더군요.저를 키워주신 어머니는 맨 뒤에 ‘이혼’이라고 나와 있고요.가족이란 같이 사는 사람인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가족이고,내 어머니와는 같이 살고 있어도 남이라니….흔히 성을 뿌리라고 하는데 썩은 뿌리가 무슨 제구실을 할까.나는 뿌리를 모른다.연락 한 번 없고,연락할 길도 없는 뿌리가 무슨 뿌리인가.차라리 완벽하게 잘라내고 싶을 뿐입니다.” 서씨는 호주제 폐지로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호주제로 인해 자신의 가족이 해체된 현실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호주제의 피해자는 이혼이나 재혼 등 개인사를 숨기고 싶은 여성일 뿐이란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상담창구에서 호소하는 남성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드문 예가 아니다.”고 말했다. 허남주기자 hhj@
  • “재원이 도와줘요”양성에 발육지진으로 고통 수술 못해준 부모 ‘한숨만’

    “재원이에게 ‘남성’을 찾아 주세요.” 양성을 갖고 태어난 발육지진아 서재원(10·경남 양산시 웅상읍)군이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94년 3월 태어난 재원이는 올해 나이 10살로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발육상태는 2∼3살 정도다.태어날 때 몸무게 2.5㎏으로 한달간 인큐베이터에서 자랐을 정도로 발육이 부진해 양쪽 다리가 ‘O자형’으로 심하게 휘어 3년 전부터 겨우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며,아직 말도 못한다.겨우 한다는 말이 ‘엄마’와 ‘안돼’ 두 마디 뿐이다.염색체 검사결과 남자로 판명돼 지난 4월 1차 요도성형수술을 받았지만 1000만원이 넘는 2차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부모들이 애태우고 있다. 재원이의 아버지 서동석(39)씨는 17살 때 TV케이스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다 사출기에 왼쪽 손이 잘린 3급 지체장애자로 노동조차 할 수 없는 형편.새벽에는 신문배달을 하고,낮에는 세탁물 수거로 겨우 생계를 꾸리고 있다. 어머니 박희영(37)씨도 재원이를 뒷바라지하느라 아무 일도 못한다.집에서 6㎞쯤 떨어진학교까지 매일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하고,간혹 학교까지 가서 기저귀도 갈아주어야 한다. 서씨는 한때 ‘사람구실 못하는’ 자식을 그대로 바라봐야 하는 처지를 비관,재원이와 함께 인생을 포기하려고 했던 때도 있었다.눈물로 애원하는 부인의 만류로 생각을 바꿨지만 마을회관 2층에서 10만원짜리 사글세방에서 생활하는 처지로는 엄청난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한숨이다.재원이를 도와줄 독지가는 농협계좌 856-02-133560으로 성금을 보내거나,(055)386-1501로 문의하면 된다. 양산 이정규기자 jeong@
  • [열린세상]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지금 가을은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세간의 어려움 때문에 가을의 낭만보다는 싸늘한 인간적 아픔이 살을 파고 든다.올해의 이 길목에서 유난히도 많았던 자살사건 특히 가족단위 집단 자살사건은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보여 주었다.심화되어 가는 빈부격차와 극단적인 이기주의,어느 한 곳에도 따뜻하게 발 붙일 수 없는 사회에서 인간이 선택해서는 안 되는 최후의 절망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야만성과 문명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란 원시인이자 야수 야만인이자 우상숭배자이고 동시에 이성과 사랑 정의를 누릴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정의한 적이 있지만 요즘 같아선 오직 야수성만이 지배하는 사회로 비친다.절제되지 않는 일차적인 욕망과 감정이 넘실거리는 사회.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괴로운 사회이지만 한편 먹고 살 만한 사람은 그들대로 욕망의 배출구를 찾지 못해 안달을 하는 사회이다. 한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영화 ‘바람난 가족’이나 TV 일일극‘앞집 여자’는 어지러운 이 땅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남편 말고 애인이 필요해.” “아내 말고 여자가 필요해.”라는 말은 얼크러진 우리 사회의 내밀하게 가려진 부분을 잘 들추어주고 있다.아니 어쩌면 남성중심적 가족이라는 억압질서의 허위의식을 강력하게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앞으로 전개되는 21세기는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전통적인 결혼제도나 가족제도까지도 소멸할 것이라는 관련 연구자들의 보고도 있다.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정상적인 것보다는 비정상인 것이,원칙보다는 변칙이 지배하는 요즘의 사회문화 추세이다.무엇이 올바른 가치의 기준인지조차 헷갈리는 세상이다.이 속에서 참되고 올바른 진정성을 갖는 사랑보다는 비정상적이고 약삭빠른 사랑이 범람한다.혼란과 모순으로 가득찬 삶속에서도 밤하늘의 샛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잊혀지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지난해 5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때 전남 영광에서 올라갔던 75세의 정귀업 할머니.그녀는 23살 때 헤어진 북쪽의 남편을 52년만에 만난 것이다.당시 수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TV에서의 상봉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가시밭길도 그런 가시밭길이 없어라우.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길을 50년 넘게 혼자서 훠이훠이 걸어 왔어라우.눈물을 밥 삼아 살아왔지요.‘눈이 높아 못오나 길을 몰라 못오나’라는 노랫말이 내 삶의 노래가 됐지요.” 상봉하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구절구절 슬픔이 담겨있는 그 자체로서 고도로 집약된 하나의 시 구절이었다.52년간의 세월이 농축된 한편의 연가였다. 정귀업 할머니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시골에 남았다.남편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지만 6·25전쟁으로 행방불명된 것이다.남편 사이에 아이 하나가 있었지만 4살 때 병으로 숨졌다고 한다.그녀는 지금껏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혼자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고 돌아온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남편이 살아있다는 그런 믿음의 그늘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그녀라고 해서 젊은 날의 욕망이 없었겠는가.사랑은 믿음 속에서 오래 참고 기다린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우리는 기존의 가치와 도덕,진리마저도 새롭게 해석되고 도전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요즘의 세태 속에서 정귀업 할머니와 같은 사랑의 진정성도 새롭게 도전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쓸쓸한 가을에 다시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정귀업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이다. 신 일 섭 호남대교수 동양사
  • 집중기획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상)김춘옥 할머니의 고달픈 삶

    “죽기 전에 하루 밤만이라도 따뜻한 방에 자봤으면….없는 사람에겐 추위보다 더위가 낫지요.” 창고같은 허름한 건물에 딸린 어두컴컴한 방 2칸을 월 6만원씩에 얻어 정신이상자인 큰 아들(49)과 작은 아들의 딸(15·중2)·아들(14·중1) 등 세 식구를 데리고 살고 있는 김춘옥(75·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할머니는 눈앞에 닥친 겨울이 걱정이다.말이 방이지 일년내내 불 한 번 땔 수 없는 냉방에서 겨울을 지낼 생각을 하면 아픈 무릎이 더 쑤시고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온기가 있어야 얼어 죽지 않는다.”며 지난해 겨울 이웃주민이 갖다 준 중고 전기장판은 아직 쓸 때가 멀었다.전기료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한 겨울 밤,잠시 켜는둥 마는둥 한다. 김 할머니는 3살과 2살 되던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손녀·손자를 데려와 지금까지 키우고 있다.아이들 아버지는 혼자 이리저리 떠돌이 생활을 하다 지난해 교통사고를 내 교도소에 가 있다. 김 할머니 가정의 고정 수입은 지난 1999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돼 국가로부터 다달이 생계비로 지원받는 40여만원이 전부다.매달 방세와 수도료·전기료로 20여만원,쌀값 15만원,가스비와 아이들 준비물 비용으로 1만원씩이 고정적으로 나가기 때문에 네 식구가 입에 풀칠을 하기에도 늘 벅차다. 손녀·손자는 가방만 겨우 들려 학교에 보낸다. 속옷은 입혀본 적이 없고 겉옷은 거의 남들이 준 것이다.학원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책 한 권 제대로 사줄 수 없는데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학교에 가는 손녀·손자가 기특할 뿐이다.학교에서도 딱한 사정을 알고 급식비를 해결해주는 등 신경을 써 주는게 고맙다. 둘째 손자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할 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새 교복 한 벌이 얼마나 좋았던지 할머니 앞에 몇번이나 치켜들어 보이며 자랑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감기나 웬만큼 아픈 것은 참고 견디다 보니 오히려 건강하다.할머니는 애들이 한창 먹을 나이에 뭐든지 잘 먹는데 제대로 먹이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에는 쌀이 바닥나 집앞 빈터에 심어 놓았던 호박 하나를 따 죽을 끓여 주었더니 둘이서 눈깜짝 할 새에 다먹어 치우고는 ‘더 달라.’고 졸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6개월째 못내고 밀려 있는 방세가 할머니의 당장 고민거리다.날씨가 추워지자 할머니는 그동안 틈틈이 주워 모아놓았던 종이상자를 방 장판 아래 두툼하게 깔았다. 찬 방바닥 냉기를 최대한 막아야 조금이라도 덜 춥게 겨울을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햇볕이라도 쬘 수 있어 괜찮은데 냉방에서 추운 겨울 밤을 새는 일은 여간 힘든게 아니지요.겨울은 왜 그렇게 긴지….” 김 할머니는 지난 겨울 아이들이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길래 “너희들이 따뜻한 방에 지낼 복이 되느냐.”고 말해놓고는 한동안 목이 메었다고 한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내 한몸도 간수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할머니는 “애들이 이제 어디가서 심부름을 해도 밥은 굶지 않겠지만 불쌍하게 큰 놈들이라 꿋꿋하게 제 앞가림을 하는 것을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량면 복지담당 간규태씨는 “관내에 이처럼 할머니와 사는 손자가정이2∼3가구 된다.”면서 “다른 농촌지역에도 이혼하거나 어머니가 가출하는 바람에 손자손녀를 데려다 키우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정해체 원인·문제점 결손가정 어린이의 증가는 최근 급증하는 가정해체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이어진 경제불황과,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풍조 등으로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단란했던 가정이 하나 둘씩 산산조각나고 있다. IMF 당시에는 대량 해고에 의한 경제난이 가정해체의 주 원인이었다.지금은 달라졌다.각종 언론매체의 확대보급으로 사회가 급속히 서구화되면서 자녀를 볼모로 한 ‘불행한 결혼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부부들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정해체의 주범은 이혼 결혼 5년 만에 이혼한 H씨(36·여)는 “주변의 이목 때문에 참고 살았지만 내 인생을 당당하게 찾는 게 낫겠다 싶어 이혼을 결심했다.”면서 “아이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이혼건수는 14만 5324건으로하루 398쌍이 갈라섰다.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은 3.0으로 10년전인 92년(1.2)에 비해 2.5배이상 늘었다.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소장 최중열·39)가 조사한 ‘경남도내 가정위탁 세대 현황’도 부모의 이혼이나 재혼이 가정해체를 가져왔음을 보여주고 있다.최 소장이 최근 도내 가정위탁 소년·소녀 691명을 면접,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아버지가 가출하자 엄마도 가출했거나 이혼한 사례가 174명이나 된다.아버지가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하자 엄마가 재혼했거나 가출한 사례는 239명으로 집계됐다. 더 큰 문제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해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인터넷 채팅에 빠진 중년,장기실업자와 노숙자 같은 사회적 무기력층,30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 등으로 언제,누가 또 가정을 버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허술한 사회안전망 사회·경제적 능력이 약하거나,늙고 병든 조부모 손에 맡겨진 아이들은 ‘고아 아닌 고아’로 자란다.대부분 학습능력이 부진하고,소외감과 열등의식으로 교우관계도 원만치 않다. 대구대정신건강상담센터 최웅용(심리학박사) 소장은 “조부모 등 친인척의 손에서 어렵게 자라는 아이들은 경제적·심리적 결핍으로 성장과정에서 반사회적 심리를 갖게 되거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사회안전망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지난 96년부터 할머니(77)와 함께 살고 있는 경북 군위군 G초등교 김영일(가명·13·6학년)·영민(가명·11·4학년)군 형제는 정부가 주는 월 30여만원의 생계비와 양육비 13만원(1인당 6만 5000원)으로 생활한다.김장철이면 김장비 12만원이 따로 나오지만 정부와 자치단체의 정신적인 지원은 없다.이 때문에 가정위탁사업은 겉돌고 있는 것이다. 현도사회복지대 이태수 교수는 “우리나라의 사회보장비 지출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며,선진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1만달러 시대와 비교해도 절반 정도”라며 “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각종 수당제도 등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반
  • 한국서 새생명 얻은 아프간 어린이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두 어린이가 우리나라 비정부기구(NGO)와 의사의 도움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됐다. 3살배기 동갑내기인 모다시르(남)와 디다(여)가 한국에서 수술을 받게 된 것은 기독교계 NGO인 동서문화개발교류회(ECC) 소속 의료봉사팀의 노력 덕분. 아프간 농촌 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료봉사팀은 지난 7월 이들의 병을 확인하고 심장병 전문의를 현지로 파견,이들의 질환을 1차 검진했다. 이후 이 단체의 활동 소식을 알게 된 순천향대학 부천병원 흉부외과 원용순 교수가 무료로 수술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0일 수술을 위해 가족과 함께 입국한 모다시르는 25일 선천적으로 좁은 상태였던 폐동맥 판막 확장 수술을 받고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다.또 생후 일주일 만에 자연스럽게 막히는 대동맥과 폐동맥 혈관이 연결된 ‘동맥관 계존증’을 앓고 있는 디다는 오는 30일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원 교수는 “지난해에도 심장병을 앓던 캄보디아 어린이들을 한국에 초청,치료하면서 뿌듯함을 느꼈다.”면서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인데도 치료비가 없어 신음하고 있는 제3세계 어린이를 돕는 것은 의사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밝혔다. 모다시르의 아버지 아사둘라는 “병마에 시달리는 아들 때문에 온 가족이 고통을 받아 왔는데,한국인 덕분에 아들이 새 생명을 얻게 돼 고맙고 기쁘다.”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 계룡시 두마면 시의원후보 32명/ “한표 주세요” 독특한 선거구호

    “30일은 선거일,30번을 찍어주자.” 처음 시의원을 뽑는 충남 계룡시 두마면에 32명이 출마,난립상태를 보이자 ‘톡톡’ 튀는 선거 아이디어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선거운동 백태 기호 4번은 4등까지만 당선되는 점을 이용,‘이번에는 4등까지’란 구호를 내걸고 유권자를 파고 들고 있다. 기호 19번은 ‘우리는 식구,19번’이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24번은 ‘하루는 24시간,투표는 24번’이라는 구호로 자신을 알리고 있다. ‘빵집’을 운영하는 기호 25번 후보는 모회사 요구르트 광고를 모방,‘빵굽는 시의원 후보,이오(25) 콕 찍어주세요.’라고 어필하고 마지막 번호를 부여받은 32번은 ‘끝번호는 32번’이란 구호로 유권자를 유혹하고 있다.기호 8번은 ‘팔팔하게 일할 사람,8번’,28번 후보는 ‘이팔청춘 28번입니다.’,20번은 ‘20번 찍어줘 계룡시 발전 20년 앞당기자.’며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왜 난립했나 도 산하 출장소에서 시로 승격돼 지난달 19일 출범한 계룡시는 오는 30일 시장과 7명의 시의원을 선출한다.지방자치법이 시의회의 구성요건을 최소 7명으로 규정,1동·2면밖에 안되는 계룡시에선 두마면에 4명이 배정됐다.인구 2만 1138명인 두마면의 유권자 수는 1만 4430명.마을이 38개인 점을 감안하면 마을마다 1명씩 나온 셈이다.그러다 보니 자신의 마을 표를 모두 쓸어담고 다른 동네에서 조금만 표를 얻어도 당선될 수 있다는 게 후보들의 난립을 부추겼다.유권자를 후보 수로 나누면 평균 득표 수는 451명이다.하지만 추수철인 데다 대전 등에 직장이 있는 유권자가 많아 투표율은 겨우 50%를 넘나들 것으로 보인다. 상인과 농민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빵집 사장을 비롯,부동산중개업자,변호사 사무장,미술학원 원장,정수기회사 영업부장 등 후보 직업도 다양하다.최연소 후보는 33살,최연장은 59살로 연령 또한 천차만별이다. ●유권자도 고민,선거관리도 고민 동네도 좁은 데다 보통 3∼4명의 후보들과 연줄이 걸려 있어 ‘누구를 찍어주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김모(43)씨는 “친구 2명을 포함해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이 모두 8명이나 출마했다.”면서 “4명을 뽑아도 투표는한 사람밖에 못하는데 큰일났다.”고 걱정했다. 투표용지는 길이가 57.5㎝에 이르러 국내 선거사상 가장 길다.1인당 폭이 1.5㎝여서 후보칸이 48㎝,선관위의 인증란 등 기본 공간 9.5㎝를 합한 것이다. 장당 밑폭이 38㎝인 선거벽보도 시장후보 6명까지 함께 게시,14.5m에 달하고 있어 두마면 아파트 벽이란 벽은 모두 벽보로 도배돼 있다. 계룡시 선관위 관계자는 “후보당 30분내로 규정한 연설시간도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16시간에 달해 8분으로 줄였다.”고 말했다.또 4명을 뽑는 것을 4명까지 기표해도 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어 선거홍보물 등을 통해 “반드시 한 사람만 찍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편집자에게/ “호주제 폐지 빠를수록 좋다”

    -‘두 딸의 성 바꾼 엄마의 눈물’기사(대한매일 10월21일자 9면)를 읽고 두 딸의 성을 바꾼 어머니의 사연을 읽으며 남의 일 같지 않아 나는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내게는 여동생이 있다.누구보다 귀엽고 총명해 나는 여동생을 무척 좋아하지만,그 아이와 나는 성(姓)이 다르다.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렵게 우리 형제를 키우셨던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재혼하셨고,어머니와 여동생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 행복한 가정이 됐다.집안은 행복했으나 문밖으로만 나오면 우리는 괴로웠다. ‘동거인’인 여동생은 초·중·고교를 거치면서 울기도 많이 했다.그래서 아버지께서는 혼외출생자로 신고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셨지만 불법임을 뻔히 아는 터라 망설이기만 하셨다. 편견의 벽을 넘기란 참으로 어려웠으나 세월은 고맙게도 흘러줘 우리는 20대의 성인이 됐다.입사시험을 보면서 나는 결혼했다는 오해를 받아야만 했다.성씨가 다른 3살 아래의 여자를 누가 동생이라고 믿겠는가.설명해야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그나마 나는 남자였고,동생만큼 상처가 깊지는 않았기에 이겨냈다.그러나 여동생은 머잖아 결혼도 해야 할 텐데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호주제 존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우리들의 사연에 귀 기울여야 한다.가정해체를 염려하면서 정작 가족이 하나되는 것을 호주제는 망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정수 회사원
  • 두딸 姓 바꾼 ‘엄마의 눈물’

    “어린 두 딸이 당할 고통을 면해주고 싶었어요.” 사별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두 딸을 성과 이름을 바꿔 재혼한 남편에게 입적시킨 30대 여성 공무원이 호적법 등 위반 혐의로 형사처벌과 함께 징계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발단은 호주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사는 A(37·여·7급 공무원)씨는 지난 1995년 1월 3살 연하 동료 공무원 B씨와 결혼,96년과 97년 연지·연희(가명) 두 딸을 연년생으로 낳아 호적신고를 했다. A씨는 98년 1월 남편 B씨가 심장마비로 급사한 뒤 2년 가까이 두 딸을 돌보며 지내다 현재의 남편 C(36·회사원)씨와 2000년 12월 재혼했다. A씨는 2001년 6월,서울 성북구청에 두 딸을 새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것처럼 출생신고를 했다.출생증명서 대신 시어머니가 인우보증을 섰다.나이를 각각 각각 두 살씩 줄여 98년과 99년생으로 했고,이름도 바꿨다.출생신고 법적기한을 지키지 못한 데 따른 과태료도 물었다. A씨의 두 딸은 새 주민등록번호도 부여받았다.이중 호적과 이중 주민등록을 갖게 됐다.지난 2월 큰딸이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A씨는 자신이 근무하는 동사무소에서 나이를 본래대로 고친 뒤 행신동으로 다시 전입했다.그러나 두 딸의 주민등록상 나이가 수정된 사실이 전산자료에 의해 확인됐고,고양시 감사부서는 이를 경찰에 고발했다. ●왜 이런 일이 민법은 자녀는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또한 성을 바꿀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어머니와 함께 친부를 떠나 새 아버지와 가정을 이뤄도 아이의 성은 고칠 수가 없다.아버지가 아이를 유기한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 그러므로 많은 재혼가정에서는 아이를 사망신고하거나,잃어버렸다고 신고를 한 뒤 입양하는 형식을 빌려 새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편법을 쓰고 있다.입양시에는 성을 바꿀 수 있도록 입양특례법에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법을 개정,양자를 들였을 때 입양한 부모의 성을 따르도록 친양자제를 도입했다. ●당국도 고민 일산경찰서는 지난 14일 A씨를 호적법과 공정증서 부실기재 및 동행사 혐의로 입건,검찰에 송치했다.담당 김정국 형사는 ‘본인이 혐의를 모두시인하고,공무원 신분이며 딱한 정황임을 참작’해 불구속 의견을 냈다.사건을 송치받은 검찰도 실정법과 동정론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A씨는 “아이들이 아빠와 성이 다르다고 학교에서 놀림 안 받게 하려 했다.”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A씨는 “공무원 신분으로 불법으로 호적과 주민등록을 바꾸고 마음 고생이 심했었다.”며 “아이들을 전 남편 호적에 재입적시키기 위해 법원에 호적정정 신청을 냈으나 막상 호적이 정정되면 또다시 성과 이름이 바뀔 큰딸이 지금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겠느냐.”며 울먹였다. 이경숙 여성단체연합상임대표는 “A씨는 전형적인 호주제 피해자”라면서 “정부는 호주제 폐지를 서두르고,검찰도 호주제가 폐지된 다음 이 사건을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아~빠/첫인공포육 개미핥기 親父찾기 유전자감식

    과천 서울대공원이 세계적 희귀종인 큰개미핥기 인공포육에 성공했다. 서울대공원은 큰개미핥기 암컷 ‘밍밍이’가 지난달 3일 출산한 새끼(사진)를 인공포육하는 데 성공해 오는 11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고 9일 밝혔다. 큰개미핥기는 남아메리카와 아르헨티나 북부의 밀림이나 초원지대 등지에 살며 가늘고 긴 주둥이와 혀로 개미나 유충을 핥아 먹는 세계적 희귀종이다.대공원에는 ‘밍밍이’(4살)와 수컷 ‘몽몽이’(20살)’,‘당당이(3살)’ 3마리가 있다. ‘밍밍이’가 출산한 새끼는 보통 새끼(1.5∼1.7㎏)보다 작은 1.14㎏의 저체중으로 태어난 데다 어미가 외면해 인큐베이터에서 응급조치한 뒤 인공포육장에서 돌봐왔다. 서울대공원은 “큰개미핥기의 2세 탄생은 우리나라 동물원 사상 처음이며,세계 각국의 동물원에 확인한 결과 인공포육에 대한 성공사례로도 세계 최초”라고 밝혔다. 대공원은 큰개미핥기 2세를 만들기 위해 2001년 밍밍이를 들여왔지만 자연수명(10년)을 넘긴 노쇠한 몽몽이와 밍밍이의 짝짓기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결국 지난해 12월 건강한 신랑감 당당이를 들여온 뒤 ‘질투심’에 눈을 뜬 몽몽이가 애정공세 끝에 짝짓기에 성공,꿈에 그리던 새끼를 얻게 된 것이다. 대공원은 일단 새끼의 아빠가 몽몽이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동안 당당이도 합방을 해왔기 때문에 유전자 감식을 통해 ‘친아빠’를 확인키로 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나의 건강보감] ‘한국승마 산 역사’ 이항진 박사

    우리 나라에 그보다 오랜 세월을 말과 벗하며 지낸 사람은 없다.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한국 승마의 역사’라고 부른다.그렇다고 그가 ‘명예’자를 앞에 단 마사회의 전직 직원은 아니다.말은 그에게 사실상 평생을 함께 해온 친구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승마장 찾아 희수(喜壽)를 넘긴 의학박사 이항진(78·이항진내과의원 원장).일제때 서울대의대의 전신인 경성제대 의예과를 나온 장로급 현역 의사지만 지금도 새벽 여섯시면 어김없이 말등에 몸을 싣는 승마인이다.“하루라도 애마를 못만나면 그날은 하루가 길어요.나 뿐 아니라 그 녀석도 그날은 괜히 심통부리고 까탈을 떨어요.사람과 말이 그렇게 교감하는거죠.” 그가 처음 승마를 접한 건 해방 직전인 1943년 경기중학(지금의 경기고) 시절.특별활동 시간에 승마부를 택한 것이 계기가 됐다.“태평양전쟁때라 학생들도 검도,사격 등 군사훈련을 많이 받았어요.전 그게 싫어 승마를 택했는데,당시 전국을 망라해 승마부가 있었던 곳은 우리 학교와 휘문중,이북의 함남중이 전부였지요.”이렇게 시작된 말과의 인연은 해방 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조선은행(한국은행 전신)에서 일한 이재간씨나 명성황후의 혈족인 민병선씨 등이 승마 애호가였는데,저도 그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일본인들이 군마를 많이 들여놔 말도 그다지 귀하지 않았구요.”민씨는 일제때 올림픽선수로 발탁되기도 했으며,해방후 헬싱키올림픽에도 출전한 우리나라의 승마 개척자이다. ‘말타면 경마잡히고 싶다.’는 옛말처럼 말을 좋아한 그도 ‘내 말’을 갖고 싶었다.그가 처음 ‘내 말’을 가진 것은 48년.비월용(飛越用)으로 ‘송악’이라는 말을 구입해 당시 신설동 경마장에 맡겨뒀다가 그만 6·25전쟁통에 잃어버렸다. ●고교시절 승마 접해… 벌써 60년 군의관으로 전쟁을 마친 그는 종전후 인촌 김성수씨 배려로 지금의 고려대 이공대 자리에 어렵사리 마련한 한국승마구락부에서 다시 승마를 시작했다.“일제때 지금의 동대문운동장 인근에 경성승마구락부가 있었는데,일본 사람들 전용이었거든.그게 얼마나 부럽던지 몰라.그러던 차에 이 구락부가 생겨 우리나라 승마의전통을 이어갈 수가 있었지.그랬다가 74년 한국마사회가 뚝섬에 승마장을 만들었고,이어 과천에 경마장이 건립돼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른거지.나도 74년부터 뚝섬에서 타다가 86년부터는 과천,이후 99년부터 다시 뚝섬에서 말을 타고 있는데,여긴 실내마장이 없어 날궂으면 못타.” 첫 말 ‘송악’을 잃어버린 그는 한동안 사정이 어려워 말을 갖지 못하다 75년에야 마사회가 불하한 경마용 퇴물 ‘슈퍼스타’를 구입했으나 얼마 타지도 못하고 굽에 종양이 생기는 제암(蹄癌)으로 잃고 말았다.지금 가진 말은 영국산 사라브렛종인 ‘위태천’.3살짜리를 구입해 3년간 정을 들이고 있다.말 나이 여섯살은 사람 나이 스물다섯 정도의 한창때로 힘이 넘쳐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흐뭇하다. ●길들이지 않은 말 타다 중상입기도 회갑(回甲)의 세월 60년을 말과 함께 살면서 그가 터득한 깨우침은 말도 정성을 들이면 사람과 생각까지도 나눌 수 있다는 것.“말이 사람을 먼저 알아요.낯선 사람이 타면 복종하지 않고 날뛰어 떨어뜨리거나 짖궂은 장난을 치곤해요.”지금이야 ‘말도사’로 통하지만 말등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회수는 기억조차 할 수 없다.한번은 길들이지 않은 말을 타다가 떨어져 골반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장애물을 넘던 말이 넘어질 때 자칫 고삐를 당겼다가는 300㎏이 넘는 말에 깔려 목숨을 잃기도 한다.수년 전 미국 상무장관이 로데오경기를 하다 숨진 것도 비슷한 경우다.그러나 초보자라도 조교의 가르침만 제대로 따르면 이런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전국승마대회 장애물경기 우승 경력에 12년간 한국학생승마연맹 회장을 연임했는가 하면 40년 역사의 승마클럽 승우회 회장을 20년간이나 맡는 등 말과 관련된 그의 이력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다.말의 얼굴과 굽만 보고도 질(質)과 격(格)을 가려내는 안목을 지닌데다 하루라도 말을 타지 않으면 허벅지에 살이라도 오른 듯 비육지탄(肉之嘆)의 조바심이 일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는 말에 관해 겸손하다.“승마의 첫걸음은 기본에 충실한 것입니다.무작정 타고 호기를 부리기보다 굽을 씻고,털을 빗기면서 정부터들여야지요.그렇게 교감해야 제대로 된 승마가 가능합니다.” 그의 승마예찬도 귀담아 들을 대목.“승마는 남녀 구별이 없고,동물과 더불어 하는 유일한 올림픽 종목이며,경기중에 반드시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한다는 점이 그겁니다.한마디로 신사의 스포츠입니다.그런 만큼 승마인은 예절을 먼저 익혀야 하며,건강은 그 뒤에 얻는 것입니다.말등에서 자질구레한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것은 물론 심폐기능,소화기능을 향상시킵니다.또 전신운동이면서 평형감각을 높이지요.” ●‘죽 반공기, 메밀국수, 물만두 5개' 소식 지켜 175㎝의 키에 73㎏의 이상적 체격도 승마로 얻은 건강의 증표다.매일 아침 마장을 찾는 규칙성 말고도 아침에 죽 반공기,점심은 메밀국수 한 공기,저녁은 물만두 5개로 해결하는 철저한 소식주의자다.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소식을 시작했지만,말과 함께 하면서 얻은 것은 결코 소량이 아니라면서 웃는 그의 건강이 참 부럽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사진 김명국기자 daunso@ ■이항진 박사의 승마 예찬 승마는 몸의 균형을 잡는 운동이다.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마장마술이 안되기 때문에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 기수의 기본이다.이런 점에 착안,독일에서는 소아마비 어린이들에게 승마를 가르쳐 평형감각을 길러 주기도 한다.우리나라에서도 몇몇 병원에서 이 치료법을 사용했으나 부대비용이 만만찮았던지 슬그머니 사라지고 없다.대신 일본에서는 승마가 몸매를 가꾸는데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들어 승마클럽에 주부를 비롯한 여성 회원이 크게 느는 추세다. 이 박사가 말하는 승마의 운동효과는 많다.“제가 어려서부터 소화불량이 잦았는데 승마를 시작한 뒤로 그게 나았어요.소화기도 튼튼해지고 심폐기능도 향상됩니다.말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 욕심이나 독단이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보기와 달리 관절 등 전신운동 효과도 큰 편입니다.” 그러나 운동효과만 생각해 막 덤벼 들었다가는 큰코 다치기 쉽다.이 박사도 60년동안 말을 타면서 세번이나 앰뷸런스에 실려갔다.모두가 낙마로 빚어진 사고다.“낙마를 하는 경우는 대개 조교의 가르침을 소홀히 한 경우고,정상적인 과정을 밟으면 승마처럼 안전한 운동도 드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론 말이 결코 값싼 동물은 아니다.소나 돼지처럼 단순하게 살코기의 무게로 값을 따지지 않고 격(格)을 따지기 때문에 값이 천차만별이다.승마용은 보통 경마장에서 퇴출된 열살을 넘긴 말을 시용하는데,싸게는 1400만∼2400만원에서 3000만∼4000만원씩 하는 것도 있다.얼마전 외국에서는 말 한필이 3000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는데 이는 승마 혹은 경주용이 아니라 새끼를 얻기 위한 종마다. 뚝섬승마클럽 김문식 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가져야 승마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데,가까운 승마클럽엘 가면 정회원의 경우 월 60만원,비회원은 1회에 2만원 정도로 승마를 즐길 수 있다.”며 “승마가 생각처럼 소수계층이 향유하는 특별한 운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 “스포츠 분야 통해 또다른 세상에 도전”/스포츠 기고가 변신 ‘오체불만족’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

    |도쿄 황성기특파원|통유리의 탁 트인 창밖으로 차가운 가을비가 추적추적 뿌리는 24일 오후 도쿄 시부야의 호텔 5층 카페는 빈자리 하나없이 사람들로 붐볐다.하필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을까.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주차장이 카페와 이어지는 같은 층에 있었다.차에서 내리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곧바로 올 수 있는 편리함이 시끄러운 이 곳을 그가 인터뷰 장소로 지정한 이유일 터이다.이런 곳을 찾아내기까지 얼마나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약속보다 5분쯤 늦게 나타났다.예의 전동휠체어를 타고.대단히 죄송하다는 표정이다.인사를 나누자 “30분 정도 다른 일을 먼저 봐도 괜찮느냐.”고 이쪽이 황송할 정도로 미안한 얼굴로 동의를 구한다. 새롭게 원고를 쓰게 될 회사 관계자와의 협의가 있다고 했다.얼핏 보니 몇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서류를 놓고 (그의 표현에 의하면)10㎝ 밖에 되지 않는 양 손을 흔들어가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얼굴을 알아본 중년부인들이 힐끗힐끗 그를 쳐다보기 바쁘다. 1시45분부터 45분간으로 예정된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해서 30분 가량 늦어진 2시15분쯤 시작됐다. “하루를 보내는 패턴은 세가지 있는데,첫째가 오늘같은 일 협의나,인터뷰 같은 것이고 둘째가 취재하러 가는 날,셋째가 전혀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원고를 쓰는 날입니다.” 기자를 기다리게 한 원고협의,기자와의 인터뷰를 포함해 아침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5건의 일이 있다고 했다.행동이 불편한 그로서는 가급적 이동을 줄이고 한 곳에서 몇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지 모른다. ●작년 운전면허 따 한달에 두번쯤 운전 그는 작년 여름 운전면허를 땄다.그 면허로 차를 몰고 왔을까. “한달에 2번쯤 운전하는 정도입니다.휴일이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매니저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다닙니다.오늘도 매니저 신세를 졌구요.”그는 손수 운전하면서 과거에는 몰랐던 운전의 위험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했다.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2000년 오토다케는 스포츠 전문잡지 ‘넘버’에 선수 인터뷰 연재를 시작하면서 스포츠 라이터의 길을 걷는다.작년 한·일 월드컵 때에는 두 나라를 오가며 TV 리포터로도 꽤 얼굴을 비쳤으나 올들어 TV 활동은 뜸하다. “쓰는 일을 제대로 몸에 익히려고 TV쪽은 삼가고 있습니다.잡지 기고에 힘을 쏟고 있어 상대적으로 TV 출연은 많이 줄었습니다.” 500만부를 넘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주인공의 자유 기고가로의 변신,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3학년(1998년) 가을 ‘오체불만족’을 낸 뒤 놀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어요.책의 저자라는 이유로 여러 매스컴에서 저를 다루어 주었구요.의외였습니다.나쁘게 말하면 주위에서 추어올려 준거죠.굉장히 무서웠습니다.그때도 이미 언론이라는 것이 금방 달아오르고 금방 식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요.영화화하자,입사해라,CD를 만들자는 얘기들이 많았어요.그 물결을 탔으면 재미는 있었겠지만,그냥 그렇게 흘러가 버리면 언제가는 질리는 날이 반드시 올거라고 생각했어요.그런 날이 됐을 때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몸에 익혀두지 않으면 나만 혼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몇가지 책을 낸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라이터였습니다.” ●한·일 월드컵때 TV리포터로도 활동 스포츠를 택했던 것은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이미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는 뜻밖의 대답. “장애자 운동의 기수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실은 그런 운동에는 별 흥미가 없었습니다.그냥 전동의자를 타고 22년을 살아왔을 뿐이었거든요.그러면 장애자 운동의 정반대에는 무엇이 있는지,했더니 스포츠였습니다.어릴 때 부터 좋아해서 관심도 지식도 있어서 스포츠 분야에서 승부를 내볼까 생각했습니다.” 축구와 야구가 메인이지만 특정종목을 전문으로 취재한다기보다 특정 선수에 흥미가 생기면 그 선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해당종목을 공부하는 그런 패턴으로 지금은 유도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준다. 화제를 돌려본다.2001년 3월 대학후배인 히토미(당시 22세)와 결혼했다는 보도가 나왔다.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는 짤막한 보도였다. “집 사람은 기본적으로 집안 일을 합니다.경리라든가 그런 부분에서는 제 일을 도와주고 있지만 바깥 일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전업주부인 셈이다. “와세다 대학의 어떤 서클이 개최한 세미나에 제가 강사로 불려갔는데 그때 만났습니다.21살 때였으니까,1997년 알게 돼 4년 만에 결혼한거죠.” 결혼한 지 2년 반.아직도 신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결혼생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결혼을 정했을 때 결혼한 선배들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결혼 그거 그렇게 좋은 게 아닌데’라고 충고는 해줬어요.그렇지만 나는 결혼생활을 꽤 좋아합니다.야구선수들이 결혼 문제로 상담을 해 올 때마다 꽤 권유합니다.”(그는 이 대목에서 ‘꽤’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했다) 결혼이 글쓰기에 변화를 주었냐고 묻자 그는 “그런 건 없지만 인생의 시점이 하나 늘어난 것은 분명 메리트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 전 TV에 출연했을 때의 에피소드.그에게 사회자가 ‘거리에서 느끼는 불편'을 물었다.그는 “러브호텔의 엘리베이터는 (좁아서)전동 휠체어로는 타기 힘들다.”고 대답했다.짓궂은 사회자가 “러브호텔에도 가느냐.”고 재차 질문하자,그는 “가지요,23살의 남자인데요.”라고 응수해 좌중을 웃기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얘기를 꺼내자 오토다케는 깔깔거린다.당시 그의 대답이 진실이라면 러브호텔에 같이 간 상대가 부인이라는 심증이 짙었으나 그는 교묘하게 피해나간다. “장애자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 생각 때문에 (실제로 장애인들도 많이 찾는)게임센터,노래방 같은 곳에 의외로 장애자를 위한 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는 말로 대신한다. ●결혼한지 2년반 “꽤 즐거워요” 한국 선수로는 축구의 홍명보,이동국,박지성,안정환을 취재했다는 오토다케.“홍명보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는 그는 “무거움이라고 할까,인간으로서의 깊이가 느껴졌다.”고 덧붙인다. ‘넘버’(576호)에 실린 안정환 인터뷰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상대와의 거리감을 잘 재면서 깊이 들어오는 것을 절묘한 타이밍으로 피해간다.그것이 후천적으로 익힌 재능이라면 분명 슬프다.”인터뷰 내내 마음을 열지 않는 축구스타 안정환의 심리분석이 독특하다. “스타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면서 마음에 벽을 쌓는다면,원래 천진하고 순수한 청년이던 안정환은 좀 아깝고,불쌍한 것 아닌가요.자기만의 자유대로 살아가면 보다 매력적이지 않은가 생각했어요.”분야는 다르지만 ‘오체불만족’으로 유명인이 됐던 자신은 벽을 쌓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 27살의 청년,오토다케는 만 3년이 된 스포츠 라이터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채점하고 있을까. “글쎄요.처음 30점이던 것이 70점이 됐다고 할까요.지금부터 (점수를 올리는데 시간이)오래 걸리겠지요.” 모자라는 30점이라면.“기자로서의 착안력,취재력,문장력 3가지 능력이 있다고 할 때 취재력은 다른 사람보다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첫째와 셋째,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셋째(문장력)”라고 말한다. ●“글쓰기가 재미있어 정치 관심 없어요” 2년간의 산고 끝에 따낸 운전면허와 같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생각은 아직 없다고 한다.“기본적으로 기자로서 미숙하니까,더 힘을 쏟고 싶습니다.혹시 여유가 생기면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기자로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싹튼 것은 사실입니다.”예를 든다면 기타노 다케시(한국에 ‘하나비’로 알려진 영화감독)에 수개월간 밀착해 어떤 발상으로 영화를 만드는지 그 과정을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어떤 주간지가 11월로 예상되는 일본 총선거에 오토다케가 공명당(연립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을 보도했었다.‘정치가 오토다케’ 과연 사실인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글쎄요,그런 기사가 왜 나왔을까요.”거세게 부인한다.“어쨌건 지금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오토다케.어엿한 가장으로 성장한 그에게서 글쓰기에 온몸을 던져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열정과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marry01@ ●오토다케는 1976년생.팔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절단’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일반 초·중·고교를 거쳐 와세대 대학을 졸업했다.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감동적인 삶을 다룬 ‘오체불만족’이 한국,중국,미국 등에도 번역돼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오토다케 리포트’,‘월드컵 전사×오토다케 히로타다’ 외에 그림책 ‘선물’ 등의 저서가 있다.
  • “한인 최초 美각료 되는게 꿈”백악관 장애인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

    국내 첫 장애인 유학생,첫번째 장애인 교육학 박사,100년 미국 이민역사상 최고위 공직자.지난달 29일 모교인 연세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강영우(59) 박사에게는 항상 ‘첫번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후천적 시각장애인인 그에게 장애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강 박사는 2001년 9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뒤 까다롭기로 소문난 연방수사국의 검증과 상원 인준절차를 거쳐 지난해 7월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올랐다.미국 장애인 5400만명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개발해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보고·추천하는 직책이다. 그는 450만 미국 공직자 중에서도 상원이 인준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500여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인디애나 주정부 특수교육부장,일리노이대 교수,국제연합(UN)장애위원회 위원,루스벨트재단 고문,백악관 전국 장애자문협회 의장.강 박사가 동시에 갖고 있는 이 직함들은 그의 활동의 폭을 보여준다. 그는 미국 장애인 정책의 특징을 ‘합리적 조력’(reasonable accommodation)이란 법조항에서 찾는다.“‘합리적 조력’이란 예컨대 식당에 맹인이 들어오면 종업원이 친절하게 메뉴를 읽어주는 것입니다.이런 것은 점자 메뉴판을 갖추지 않은 곳이라도 가능합니다.” 모든 공공도서관이 점자책을 갖추기란 어렵다.하지만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맹인은 큰 불편함없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박사에 따르면 최근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는 미국에서도 대도시의 주요 시설물이 아니면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고 있다.예산 문제때문이다.하지만 장애인 민권법상 ‘합리적 조력’이란 강제조항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 생활하는 데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강박사의 설명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통치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봉사하는 리더십입니다.” 강 박사는 2일 서울 내자동 서울경찰청 강당에서 경찰관 1000여명에게 ‘사랑과 봉사로 기르는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컴패션(compassion)은 흔히 ‘동정’으로 번역되지만 남의 고통을 배우는마음이자 21세기 리더십의 근간”이라고 덧붙였다.강 박사는 “나는 약자이기 때문에 컴패션을 지닌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면서 “컴패션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지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고,나도 컴패션이라는 리더십을 만났기 때문에 가장 낮은 위치에서 미국 행정부내 최고 위치에 올랐다.”고 말했다. 강 박사가 세상의 ‘빛’과 단절한 것은 중학생 시절이다.축구를 하다 망막을 다쳐 시력을 잃은 뒤 5년 남짓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착하게 사는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느냐.’며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하지만 지난 1964년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인생의 역할 모델로 성서 속 인물 사도 바울을 만난 것이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 역시 병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그의 질병은 지은 죄때문이 아니었습니다.신께 고쳐달라고 기도했지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그는 신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그로부터 원망하고 탄식할 상황에서도 감사할 조건을 찾는 법을 배웠습니다.” 실명을 걸림돌이 아닌 또 하나의 기회로 받아들이게되자 그의 인생도 달라졌다.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76년 피츠버그대에서 특수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79년부터 일리노이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해오던 그에게 90년 부시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또 한번의 전환점이 됐다.“당시 아들이 다니던 필립스 아카데미로부터 ‘부모님의 날’에 초청을 받았습니다.교장에게 자서전 ‘빛은 내 가슴에’를 선물했더니 동문인 부시 당시 대통령이 보면 좋아할 거라며 백악관으로 책을 꼭 보내라고 하더군요.책을 보냈더니 얼마 뒤 ‘당신의 인생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는 내용의 답신이 왔습니다.” 이 인연을 계기로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94년 국내 방송사가 강 박사의 인생을 소재로 만든 ‘눈먼 새의 노래’라는 프로그램의 말미에 직접 출연할 만큼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당시 부시 대통령은 강 박사의 삶을 지탱해 온 원동력으로 신앙과 불굴의 의지,사람에 대한 사랑,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끈기 등을 꼽았다.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도 같은 해 아버지 부시의 소개로 만났다.이 날의 인연은 2001년 강 박사의 백악관 진출로 이어졌다. 3살 때 ‘의사가 돼 아버지 눈을 고쳐주겠다.’고 약속했던 큰 아들 진석(30)씨는 하버드대 의대를 졸업하고 안과 전공의로 일하고 있다.둘째 아들 진영(27)씨는 듀크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 연방 상원 법사위에서 최연소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서울 맹학교 시절 대학생 봉사자로 강 박사와 인연을 맺은 아내 석은옥(60)씨도 특수교육 전문가로 ‘미국교육계명사 인명사전’과 ‘미국여성명사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릴 만큼 저명한 특수교육 전문가다. 그는 이같은 집안의 성공을 끊임없는 노력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에서 찾는다.“아무리 타고난 능력과 재능이 뛰어나도 노력을 하지 않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성취도는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환갑을 눈앞에 둔 강 박사의 마지막 꿈은 한인 최초의 연방정부 각료가 되는 것이다. 강 박사는 “지난 2년 동안의 활동을 통해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두텁게 얻었다.”면서 “만약 차기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장차관 자리에도 도전해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세영기자 sylee@
  • 말 안듣는 아이 매 약인가 독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때때로 매를 든다.아이들을 학대하는 몹쓸 부모가 아니라도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폭력은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부모들은 알고 있다.‘사랑의 매’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사실은 순간적으로 감정이 끓어올랐을 뿐,아이의 버릇이나 미래를 생각한 ‘교육적 처신이 아니었음을.그리고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는 자책에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아이에게 매를 들어야하나,말아야하나.이것은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 중 하나다. ●잘못된 버릇 어떻게 해야 하나 독자 김영선(39·서울 양천구 목동)씨가 메일로 취재를 요청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가장 큰 고민은 잘못된 버릇을 어떻게 고쳐나가느냐는 문제입니다.처음에는 좋은 말로 시작하지만 때때로 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기도 합니다.오늘도 수학문제를 가르치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말았습니다.제가 성격이 유난한 편도 아닌데 아이에게만은 이런 식의 ‘저급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속상합니다.‘사랑의 매’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솔직히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니까요.매를 들지않고 아이를 키울 수는 없을까요?그리고 남들도 저처럼 아이를 때리면서 키우는지 알고 싶습니다.” 독자 김씨의 고민은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가정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자유스러워지면서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졌다.”는 말에 대부분의 기성 세대는 공감한다.그러나 이전 세대와 달리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배운 부모들로서는 지난 세대의 엄격한 가정교육과 다른 새로운 자녀교육을 원한다.과도기적인 어려움은 가정교육에도 고스란히 투영돼 이 시대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이전 세대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12,10살난 두 아이의 어머니 성혜란(37·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매를 드는 이유를 “이대로 뒀다가는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지 않을 것같다는 조바심 때문에 화를 내게되고,때리기도 하는 것같다.”고 ‘부모의 욕심’이라고 때리는 이유를 분석했다.“솔직히,아이들은 맞으면 당장 조용해지고,말도 잘 듣기 때문에 매를 든다.남편은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접하라고 하지만,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도리어 화가 난다.” 회사원 정석준(42·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회초리를 걸어두고 키웠다.“실제로 아이를 때릴 기회는 많지 않았다.하지만 아이가 떼를 쓰거나,버릇없이 굴 때는 회초리는 상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고 믿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고,가끔 형제들이 싸우면 벌을 서기도 했다.매를 들지는 않더라도 부모가 통제할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고 ‘가정교육 부재의 시대’를 염려하면서,그럴수록 ‘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매,필요악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매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봐도 매를 맞고난 후,‘정신을 차려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잖았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에 난색을 표한다. 동덕여대 우남희교수는 “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자녀를 부모의 예속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또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때려서라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부모가 이성적인 준비 혹은 훈련이 되지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버릇은 무서운 것이라 한다.‘사랑의 매’든 ‘교육적인 매’든 결국 매를 맞고,버릇을 가르쳤다면 다음 버릇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때려야한다는 것이다.어린 아이에게 매는 단기적으로 ‘착한 아이’를 만들 수 있으나 그런 식의 통제만능 가정교육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를 결국 어긋나게하는 단초가 된다.즉 부모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통제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철저하게 통제하게 되고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부터 공부하는 시간 체크까지 감시의 눈길을 번득이며 통제하게 마련이다.그러나 통제는 결국 부모가 바라는 바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고,부모와 자녀간의 갈등만 커지게 된다. 때때로 아이들은 힘든 일과 매,두 개의 선택 중 “맞고 말지.”라는 식으로 부모가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직장인 유현진(35·경기 성남시 분당구효자동)씨는 요즘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잃었다.초등학교 2학년 딸이 어렵더라도 혼자 일기를 써보라는 할머니의 충고에 “엄마는 잠깐 화내고 나면,금방 내 뜻대로 해준다.”며 “한 대 맞으면 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직장일로 바빠 늘 시간이 없으니 아이가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걱정이 많지요.그래서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기보다는 ‘본론’위주로 이야기하게 되고,가끔 때리기도 했어요.물론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었지만,야단을 치고 아이의 자존심을 짓밟았어요.후딱 제가 숙제를 해주는데 아이는 제 속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니…” 또한 아이는 너무 아프거나,무서우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할 겨를도 없이 매를 맞아서 아프고,기분이 나쁘며 부모가 무섭다는 기억밖에 하지 않게 된다. 아이들에게 절대로 매를 들지않는다는 김성락(44·서울 강서구 가양동)씨.“실제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타당한 이유없이 그냥 맞았던 기억,부모님이든 선생님에게서든 맞았던 기억은 섭섭함과 불쾌함,상처로 남아있어요.아직도 억울해요.” 그는 매의 ‘무용론’을 강조했다. ●폭력은 학습된다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아동학대라 불리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보통가정에서 가끔 일어나는 ‘매’도 폭력의 범주에 넣어야하고,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폭력이 폭력을 부른다는 ‘폭력의 순환(cycle of violence)’은 이미 증명된 명제임을 부모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는 “3살 전에 버릇을 들이지않으면 아이 키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만연해있고,최근에는 조기교육까지 극성이라 서너살 때부터 강압적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그러나 일찍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자율성이 없어지고,자아상이 나빠져서 결국 자신감도 잃게된다는 것이다.부모가 자꾸 아이를 야단치면서 했던 말로 인해 아이들은 ‘나는 나쁜 애니까 어차피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초등학교 4학년 양성호(가명)군은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았다.착하던 아이가 갑자기 화가 나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가 하면 도벽까지 생겼기 때문이다.풍족한 가정환경이지만 성호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사내가 약하다.”며 아이를 때려서 키웠고 화가 나면 아이를 던지기까지 했다.심리검사에서 어떤 그림을 봐도 성호는 모든 사물을 무섭게 받아들였고,적개심에 가득차 있었다.성호의 어머니는 “사내아이가 약하다고 남편은 아이가 파랗게 질리도록 야단치고 때리기도 했다.얼마전 일기에 ‘언젠가는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는 말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맞고 자란 아이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위험이 크다고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말한다.가정에서의 매가 결국 사회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김성훈(가명·13)군은 동생 성호(가명·12)군을 때려서 결국 크게 다치게 했다.문제는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폭력에 노출됐던 아이는 폭력에 대한 도덕성을 갖지 못했고,또한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르는 아이로 자랐다.“얌전한 아이인데,왜 동생에게만은 그렇게 폭력적인지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말하지만 폭력의 순환고리는 이렇게 때로는 가해자로,때로는 피해자로 이중의 고통을 안겨줄 만큼 치명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형제가 싸우고,서로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 문제는 형제가 아닌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에서 풀어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부모들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매 맞는 아이와 학교폭력,사회적인 폭력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들이 모두 폭력을 옹호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한학자 노재욱씨는 ‘이제는 아버지가 회초리를 맞을 때다’라는 자녀교육서에서 “예의범절이나 버릇을 가르치려고 아이에게 매를 때리는 것은 선현들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선현들이 자녀를 때리라고 가르치지는 않았다.오히려 자녀는 부모를 보고 배우는만큼 부모의 행동가짐을 올바르게 할 것을 강조했다.자신들은 예의는 물론 질서와 도덕을 무시하면서 아이에게만 잔소리하고,매를 든다면 결코 진정한 예의를 가르칠수 없을 것”이라며 이 시대 부모들의 이중적인 가정교육을 우려했다. ●매는 절대로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매는 절대로 안된다.”고말하지는 않는다.‘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남희 교수는 “부모들이 이를 잘못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아이의 성격에 따라서 결정하라.”고 말했다.논리적으로 따지고 드는 아이에게 매는 금물,반면 감정적이고 행동이 부잡스러운 아이들에게는 “신체적인 가해가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정 아이를 위한,감정적인 분노표출이 아닌 ‘교육적’인 매는 어떤 것일까. 우선 △부모가 화를 가라앉히고 난 뒤에도 때릴 이유가 분명히 있다면 그렇게 하라.△“다음에 또 이렇게 행동하면 3대 때린다.”는 식으로 미리 경고하고,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에는 벌할 수 있다.단 가급적 같은 장소에서 체벌을 하나 정해두고 벌한다면 계획성없이 손으로 때리는 그런 폭력의 문제점은 해결할 수 있다.△아이를 때리고 나서는 반드시 달래줘야 한다.또 아이에게 맞고나서의 느낌이나 생각을 묻고,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그래야 아이가 매에 대해 이해하고,상처로 남지않기 때문이다. 결국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대화하는 부모의 자세가 매보다는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허남주기자 hhj@
  • [임영숙 칼럼] 그들을 알고 있습니까?

    마더 테레사가 만난 한 가난한 어머니의 이야기다.마더 테레사는 세계 최악의 빈민가로 꼽히는 인도 콜카타의 슬럼가에 들어가 반세기동안 나환자,무의탁 노인,고아 등 버림 받은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아 생전에 이미 ‘살아 있는 성녀’로 일컬어졌던 가톨릭 수녀다. (어느날 저녁,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여덟 자녀를 둔 한 힌두교 가정에서 며칠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고 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그들에겐 먹을 게 전혀 없었습니다.나는 한끼 식사로 충분한 쌀을 가지고 그 집으로 갔습니다.그들은 몹시 허기져 보였고 아이들의 눈은 툭 불거져 나와 있더군요.말할 수 없이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내가 쌀을 건네자 아이들의 어머니는 그것을 반으로 나누어 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잠시 후에 그녀가 돌아오자 나는 어디에 갔었느냐고 물었습니다.그러자 그녀는 짤막하게 대답했습니다.‘그들 역시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이란 식구수가 같은 옆집의 이슬람교인들이었습니다.그 어머니는 굶주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그리고자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얼마 되지 않지만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 살려줘.죽기 싫어.죽기 싫어.”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계속 귓가를 맴도는 가운데 떠오른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다.똑같이 가난한 두 어머니의 행동이 왜 이토록 다른 것인지 당혹스럽다.인도의 가난한 어머니는 눈이 툭 불거지도록 굶은 자신의 아이들이 먹을 쌀을,역시 굶주리고 있는 옆집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먹였다.그러나 한국의 가난한 어머니는 아파트 14층 계단에서 7살,3살짜리 두 딸을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5살짜리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자신도 뛰어 내려 자살했다.무엇이 한 어머니에게는 굶주림 속에서도 이웃을 생각하는 여유를 갖게 하고 다른 어머니에게는 자식들을 죽이고 자살할 수밖에 없는 절망의 낭떠러지로 내몬 것일까. 우리 사회는 분명 콜카타의 빈민가보다 풍요롭다.그러나 그 풍요의 그늘속에서 상대적 빈곤층의 상실감은 증폭되고 자살에 이르도록 절망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늘어나고 있다.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건수가 총 1만 3055건으로 2001년에 비해 6.3% 늘었다 한다.하루 평균 36명,1시간에 1.5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실직이나 사업실패에 따른 자살,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해야 할 30대의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한다.자살한 사람의 가족이나 주위 친구들은 매우 정상적인 사람으로 죽은이를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자살한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혀 모른 것이다. 마더 테레사는 묻는다.가난한 이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여러분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까?바로 우리 자신들의 가정과 단체에,자기가 외톨이고 사랑받지 못하며,무엇인가를 빼앗겼다고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부끄럽다.아이들을 죽이고 자살한 인천의 30대 주부가 일으킨 어떤 사회적 반향과 분석도 이 질문 없이는 공허한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빈곤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아무리 촘촘하게 잘 짜여진다 해도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나눔의 정신이 없다면 콜카타의 빈민가보다 못할 것이다. 국가가,또는 한 개인이 우리 사회 빈곤층의 문제를 모두 풀어 줄 수는 없다.그러나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그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마더 테레사와 콜카타의 어머니는 바로 그 마음으로 가난속에서 풍요로운 사랑을 펼쳐 보였다.평범한 우리들도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주필ysi@
  • 한국 의료비 본인부담률 41% / OECD국가중 2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민간이 지출하는 의료비와 약제비의 비율이 가장 높은 수준이고 급성질환으로 인한 입원 기간도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9일 ‘OECD 보건의료 데이터 2003’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총의료비 가운데 민간지출 비율이 55.6%로 미국(55.8%) 다음으로 높았다고 밝혔다.본인 부담률도 41.3%로 멕시코(51.5%)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전체 의료비 가운데 약제비 비율도 우리나라는 25.8%로 헝가리 30.7%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반면 덴마크,네덜란드,미국,스웨덴 등은 8.9∼13.5% 수준으로 약을 적게 쓰는 나라로 꼽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환자들이 약을 많이 쓰고 입원을 길게 하는 것은 병원·약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 때문”이라고 풀이됐다. 한편 이같이 취약한 보건의료시스템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73살)은 OECD 국가 중 선진국 평균인 78살은 물론 홍콩(80살),싱가포르(78살) 등 아시아 주요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김성수기자 sskim@
  • 저출산시대 /키우기 힘들고 능력도 달리고… “아이 안낳을래요”

    아이 키우는 어머니들 가운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을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아이를 제대로 키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이 시대 젊은 부부들이 이 말에 동의한 것일까,최근 국내 출산율이 세계 최하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여성 1인이 평생 낳은 자녀의 숫자를 말하는 합계출산율이 1.17로 현재의 인구수준을 유지하는 대치출산율 2.1을 훨씬 밑돌고 있다. 이는 인구문제로 고민해온 유럽의 평균 1.45보다 낮다.더욱이 저출산국가의 인구전환은 약 100∼150년간에 걸쳐 완만하게 이뤄졌으나 우리는 30년만의 급격한 변화이기 때문에 앞으로 가속이 더 붙을 것임을 경고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아이 키우기가 날로 더 힘들어지는 현실이 우리 사회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인구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20∼30대는 왜 아기 낳는 일을 주저하는가.저출산의 원인을 알아봤다. ●아이는 귀여워,하지만… “아빠 사랑해?” 사무실에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전화로 3살 난 아들에게 사랑을 확인하는 한영규(36)씨는 요즘 아이가 주는 행복에 푹 빠졌다.그래서 둘째 계획을 물어봤더니 깜짝 놀라듯 말했다.“하나로 충분합니다.너무 예쁘지만 아이 키우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에요.아파트에서 자라는 탓인지 감기가 잦고,또 열은 얼마나 자주 오르는지….우리 부부에게는 아비와 어미의 역할만 있을 뿐 사랑으로 맺어진 두 남녀의 관계는 이제 완전히 없어진 것 같아요.” 퇴근 후 지친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다는 자상한 남편 한씨의 이야기는 핵가족시대 보편적인 육아의 어려움을 담고있다.그러나 어쩌면 이는 약과일지 모른다.주부가 직장을 갖는 경우,그 어려움은 몇 배가 되기 때문이다. 5살과 4살 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을 다니는 염혜숙(32)씨는 서슴지 않고 자신을 만성우울증환자라고 했다.“아무 의욕이 없어요.예상치 않은 야근이라도 걸리면 아이 맡아주시는 아주머니댁에 들러 곤히 자고있는 아이들을 깨워서 데려와야 합니다.겨울에도 땀이 흐를 정도로 힘들어서 그런 밤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요.왜 하필 남편은 꼭 그런 날에는 더 늦는지.몸이 힘들어서 짜증이 나고 부부싸움이 벌어지지요.왜 사는가 싶을 때가 많아요.결혼을 좀 늦게 할 걸 그랬다고 후회할 때도 있어요.친구들은 아직 미혼도 많은데….” ‘아이는 예쁘지만 너무 힘겹다.’는 젊은 부모들의 말은 지난 세대에게는 ‘엄살’로 비난받기 딱 좋다.“겨우 한둘 키우면서….”그러나 대가족에서 아이 키우던 때와 지금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대책없이 낳을 순 없잖아요 젊은 부부들은 단지 ‘육아노동’을 피하기 위해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돌 전부터 시작되는 ‘교육’이라 불리는 ‘경쟁’은 부모들에게 보통 월수입의 30∼40%를 쏟아붓게 한다.또 큰 돈이 들어가는 해외연수와 조기유학 등 돈을 필요로 하는 교육환경으로 인해 부모들은 ‘능력이 돼야 아이를 낳겠다.’는 인식을 자연스레 갖게 됐다. 결혼 4년째 김석호(32)씨는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쳤다.“정말 결혼하면 당연히,아무 생각없이 아이를 낳아야 하나요? 집장만도 해야 하고,아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친가나 처가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결국 남의 손에 맡겨서 목돈들여 키워야 하는데 대책없이 아이만 낳을 수 없지요.조금 더 있다 안정되면 낳을 겁니다.” 산부인과 전문의 김창규박사는 “결혼 후 출산계획을 미루는 사례가 날로 늘고 있다.3∼5년이 지나서 아이를 갖는 부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아예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다.‘Double Income,No Kids’의 약어로 딩크(DINK)족이라 불리는 젊은 부부들은 아이없이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과 아내 단 둘이 생활하는 가족형태를 유지하고 있다.이는 통계로도 잡혀,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부부만으로 이뤄진 가족이 85년 7.8%에서 점차 증가해 2000년에는 14.8%나 되고 있다. ‘딩크카페’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김재억(33)씨는 결혼 5년째.물론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출산계획은 잡혀있지 않다.“한창 자신의 인생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에 아이를 낳아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현재의 생활에 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도 “아기를 싫어하거나 이기적으로 즐기기위해 그런 것은 아니다.”며 “선진 외국처럼 육아를 개인적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고 국가와 사회가 힘을 덜어준다면 나도 아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약속한 뒤 결혼해 4년째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고연희(32)씨는 “주위 사람들이 아기 키우는 행복감을 이야기할 때면 ‘더 늦기 전에 낳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교육비 부담 등 경제적인 문제와 함께 사건,사고가 너무 많아 아이키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엄두를 못 내겠다.”고 말했다. 전업주부 김경숙(38·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아이를 하나만 낳은 것을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초등학교 4학년 딸애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100만원에 육박한다.우리는 그리 많이 하는 편도 아니고,해외연수나 조기유학 등 남들처럼 뒷받침도 제대로 못하면서 둘째까지 있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교육비 시장규모가 무려 7조원을 넘어섰다.대부분의 부모들은 소득의 30∼40%를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현실을 거스를 자신은 없다.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에서 뒤처지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말도 나온다. ●결혼,꼭 해야 할까? 미혼여성들은 “언제 결혼하냐?”는 주위의 성화가 괴롭다고들 한다.그러나 실제로 그 성화가 괴로워서 결혼을 서두른다는 미혼여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적령기’란 개념은 이미 미혼여성들 사이에선 없어졌고 결혼연령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초혼연령이 1990년 남자 27.9세,여자 24.9세였던데 비해 2000년에는 29.3세, 26.5세로 남녀 모두 높아졌다. 결혼이란 사회제도에 대해 ‘필수’아닌 ‘선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64세 이하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결혼의 필요성에 대한 태도연구’에 따르면 ‘결혼,안해도 된다.’는 부정적인 응답이 43.8%나 됐으며,특히 30,40대 중반여성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또한 한국여성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여학생들 거의 대부분이 취업을 희망하고 있으며 대부분(83.0%)이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평생 일하겠다.”고 답했다. 29세의 직장인 최선정씨는 “3∼4년 후 결혼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또 아이문제는 “요즘엔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아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서두를 이유가 없다.내 주변의 친구들도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이다.”고 말했다. 출산율 저하의 직접적 요인은 결혼연령 상승과 미혼율 증대,기혼여성의 소자녀관 정착뿐 아니라 산업화와 도시화,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자녀양육부담의 증대 등이라는 사실은 곳곳에서 확인됐다.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는 아직도 출산정책에 명백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허남주기자 hhj@
  • 또 에스컬레이터 사고 / 백화점서 어린이 발가락 잃어

    3살난 어린이가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 끼여 발가락이 잘렸다. 26일 오후 2시20분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주엽2동 K백화점 지하 2층 식품매장에서 지하 1층 잡화점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김모(3·고양시 덕양구 토당동)양의 오른쪽 4·5번째 발가락이 에스컬레이터에 끼여 절단됐다. 김양은 이날 어머니(30)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까지 거의 올라온 지점에서 신고있던 샌들이 에스컬레이터와 벨트의 벌어진 틈에 끼면서 이같은 변을 당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제3폭탄 터뜨릴까 / 정대표 “국민뜻 전한것” 측근들 “잠시 숨고르기”

    24일 밤 서울 신당동 N 아파트에서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귀가하기를 기다리던 몇몇 기자들은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밤 12시쯤 취기 오른 얼굴로 집에 도착한 정 대표는 장대비 속에 서 있는 기자들이 안쓰러운 듯 “여기서 뭐해.들어가서 맥주나 한잔씩 하지.”라고 했다.정 대표는 지금까지 집을 공개하지 않았었다.처음 들어가본 42평 전세 아파트 내부는 고풍스러운 물건 몇 개가 눈에 띌 뿐 생각보다 평범했다. 부인은 늦은 밤임에도 싫은 기색 없이 캔맥주와 마른안주 등을 내왔다.정 대표는 거실 바닥에 둘러앉은 기자들에게 일일이 담배를 건네며 불을 붙여줬다. 기자들이 오전 ‘청와대 문책 인사’ 발언에 대해 물으려 하자,정 대표는 “에이,가만 있어봐.좀 천천히 하자.”라며 거실 탁자에 놓인 수석(水石)으로 한동안 화제를 돌렸다.“작고하신 모 의원이 43년 전 선물로 주신 건데 나한테는 보물 1호야.이걸 보고 있으면 시름이 사라져.”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기자들이 이런저런 ‘취재’를 거듭하자,정 대표는 “좀 잘해달라는 국민의 생각을전한 거지,누굴 찍어서 나가라고 한 것은 아니야.”라고 수위를 낮췄다.그러면서도 “나를 장사꾼이 돈받은 것처럼 취급하는데,그런 사람 아냐.”라고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마침 귀가한 둘째아들이 인사하자,정 대표는 “너 이리 와.”라며 옆에 앉혔다.“이놈이 24살인데,대학을 세 번이나 떨어졌어.큰놈은 33살이고 삼성에 다니는데 아직 장가를 못갔고…”라며 ‘평범한’ 가족사를 공개하기도 했다.딸은 결혼한 뒤 유학을 갔다고 설명했다.거실 한편에는 부모인 고 정일형·이태형 박사 사진과 가족 사진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기자들이 “아드님한테도 정치를 시킬 겁니까.”라고 묻자,정 대표는 “에이,얘는 안돼.”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25일 새벽 1시쯤 기자들을 배웅하면서 정 대표는 거실 벽에 ‘시인거(是人居)’라고 씌어진 서예 액자를 가리켰다.“이거 독립선언 33인 중 한 분인 오세창 선생이 쓴 건데,여기에 사람이…,아니 사람다운 사람이 산다는 뜻이지.”라며 껄껄 웃었다. 정 대표는 이날 당에 출근해서도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청와대에 대한 추가적 강공은 자제했다.그러나 측근들은 “며칠 숨고르기를 하는 것일 뿐,개전(改悛)의 정이 안 보이면 결별밖에 없다.”고 말해 청와대에 대한 3차,4차 공격이 예비돼 있음을 강조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부고 / 러시아 국가두마 정홍식의원

    |모스크바 연합|러시아 내 한국계 동포 2세로,국가두마(하원) 의원인 정홍식(러시아명 유리 텐) 의원이 21일 새벽 지병인 위암으로 타계했다.51세. 영결식은 23일 오전 11시30분 모스크바 시내 중앙병원 특별 장례식장에서 국가두마 주재로 열린다.유족으론 아내 류드밀라 정(47)과 아들(28),19살과 13살 딸이 2명 있다.
  • 미녀들 매만지는 남자 메이크업쇼 800회 참가 / 메이크업 아티스트 남성 1호 왕석구씨

    “앞서가려면 생각의 틀을 깨야 합니다.” 남성 최초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미녀들을 매만지는 남자,히트상품 제조기 등 수많은 별칭을 가진 태평양 미용연구소 부장이자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 왕석구(王錫九·47)씨의 삶의 철학이다. 우리나라 메이크업 아티스트 1세대이고 남성 1호라고 해서 왠지 화려하고,뭔가 색다른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왕부장을 처음 보는 순간 전혀 그게 아니었다.어찌보면 평범한 둥글둥글한 외모였다.실망한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말을 건넸다. “그냥 보통 회사원 같죠? 외국 메이크업 쇼에서도 그래요.바로 옆에 서있는 데도 저를 찾습디다.그 사람들도 여러가지 모습으로 포장된 ‘어딘가 예사롭지 않은 모습의 왕석구’를 기대한 거였겠죠.하지만 그런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앞서가는 길 아닐까요.” 틀에서 벗어난 생각,그는 언제부터 가지게 됐을까. 단국대 응용미술학과에 다닌 4년 내내 그는 연극부 분장사로 활동했다.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단지 미술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역할이 맡겨졌다.재미는 느꼈지만 생업으로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솔직히 분장사라는 직업이 ‘돈벌이’로는 ‘아니올시다’였기 때문이었다.그래서 학창시절에 국내 광고제에서 최우수상을 탄 경력을 살려 광고 디자이너로 태평양에 입사했다. 그러던 1983년 어느날,선배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당시 최고 모델이던 금보라씨 얼굴에 화장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왜 꼭 갈매기형 눈썹에 빨간 입술,진한 볼터치를 해야 하는거지?” 그는 광고 비주얼을 만들기 위한 패널에 자연스러운 색조 화장을 시도했고,신인모델 황신혜씨 얼굴을 통해 ‘메이크업을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선배의 노하우와 저의 개성을 살려 지금 유행하고 있는 누드 메이크업의 시초인 ‘내추럴 메이크업’을 선보였습니다.처음에는 다른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충돌을 빚기도 했죠.광고 디자이너 주제에 그들의 전문 영역에 도전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눈썹 그리는 법,볼터치를 사용하는 법 등 고정된 메이크업에 식상한 많은 여성들은 그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메이크업을 선호하기 시작했다.그는 보다 전문적으로 메이크업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슈에무라 메이크업 대학을 졸업하고,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메이크업 아티스트 남성 1호로 태어났다. 그는 ‘걸어다니는 기록 경신자’이기도 하다.백화점,대형 쇼핑몰,호텔 등 국내에서 열리는 쇼부터 미국,중국,타이완 등 해외 행사까지 지금까지 참가한 메이크업쇼가 800여회에 이른다.회사 내에서는 가장 출장을 많이 간 직원이기도 하고,업계에서는 최초로 국악과 메이크업쇼를 접목시킨 ‘아이디어맨’이기도 하다.황신혜,이영애,이나영 등 그의 손을 거쳐간 톱모델은 수도 없이 많다. 93년에는 젊은 여성들이 하나쯤을 갖고 있는 립스틱 ‘밍크 브라운’을 만들어내 색조화장품의 브랜드화를 이뤄냈다.다른 립스틱이 2만∼3만개 팔릴 때 밍크 브라운은 무려 80만개가 팔렸고,이듬해 봄 ‘트로픽 오렌지’는 200만개 판매를 기록했다. 지금까지의 그의 삶이 이런 기쁨과 성공만 있었을까.고정된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의 몸부림 속에 아픔이 없었을 리 없다. “70년대 중반 모 은행의 일본지사장을지낸 부친은 경영학이 아닌 미술을 선택한 것에 크게 반대하셨습니다.제가 부친처럼 경제계에 몸담길 원하셨던 거죠.2살 위 형은 부친의 뜻에 따라 외국대학 교수로,3살 아래 동생은 유엔본부에서 활동하는데 저만 엇나갔다고 생각하시면서 실망을 감추질 못하셨죠.” 그의 앞서가는 감각을 받아주질 못하는 사회에서 그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창조 작업인 메이크업에 손을 대면서 많은 도전을 했지만 결과는 ‘비웃음’이었다. 지난 84년 시도했던 보디페인팅이 대표적인 예.요즘은 ‘예술’로 인정받지만 당시에는 ‘이게 뭔 짓이냐.’ ‘별짓을 다한다.’라는 비아냥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굴하지 않고 틀을 깨는 도전을 한시도 포기하지 않은 것이 그를 업계 최고로 우뚝 서게 했다.프리랜서로 나섰다면 지금 연봉의 3∼4배는 더 받을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역사가 있고,이야기가 있고,또 문화가 스며든 화장을 개발하고 이를 세계의 기준이 되도록 하는 것,이것이 앞으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여경기자 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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