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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미국의 홀리데이 쇼핑족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미국의 홀리데이 쇼핑족

    “크리스마스 선물은 일찍 사둬야 혼잡도 피하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죠.” 14일(현지시간) 저녁 6시. 평일 저녁이었지만 미국 버지니아주에 자리잡은 대형 쇼핑센터 ‘페어옥스 몰’은 조기 쇼핑객들로 붐볐다. 메이시 백화점 앞에서 만난 주부 카르멘은 남편과 아들, 딸, 부모, 형제에게 줄 선물을 가득 담은 큰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카르멘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쇼핑객이 늘기 때문에 미리 쇼핑을 했다.”면서 “선물을 줄 사람이 많아 충분한 쇼핑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르멘은 지난해에 비해 쇼핑에 지출한 돈이 늘었다면서 “선물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올해 미국의 연말 쇼핑 시즌은 여느해보다 일찍 시작됐다. 예년에는 추수감사절을 앞둔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때까지가 ‘대목’이었지만, 올해는 가을이 채 무르익기도 전인 핼러윈데이(10월말)부터 라디오와 TV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 전역의 쇼핑센터들은 대대적인 할인을 시작했으며, 미 정부도 지난달 추수감사절(24일)을 앞두고 “칠면조는 조류인플루엔자(AI)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발표하는 등 소비 진작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올해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이상으로 뛰어오른 데다 미 전역에 한파가 예고돼 난방비 증가가 선물 구입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됐던 것이다. 기업과 미디어, 정부가 함께 밀어붙여 11월 미국의 소매 매출은 간신히 지난해보다 0.3% 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예상 매출증가치는 0.4%였다. 따라서 미국인들이 생각만큼 지갑을 열지 않은 것이다. 12월로 들어서면서 크리스마스 쇼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쇼핑센터들은 대부분 영업 시간을 1∼2시간씩 연장하고 있다. 페어팩스에 사는 고등학생 앤드루 버노도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 소비를 늘리는데 작은 기여를 했다. 버노는 13살인 여동생을 위해 램프를,8살인 남동생을 위해서는 전자퀴즈기를 선물로 샀다. 올해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가족의 선물을 샀기 때문에 부모의 용돈으로 쇼핑했던 지난해보다 조금 마음 편하게 쇼핑을 했다고 버노는 말했다. 20대 여성인 마리아 파체코는 조카들을 위해 인형과 옷을 샀다. 파체코는 “연말에 가족들 선물을 살 수 있는 것이 큰 기쁨”이라면서 “그러나 선물에 지출하는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걱정”이라고 말했다. 쇼핑몰에서 일하는 폴라 프리토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준 것 같지는 않지만, 쇼핑객들이 선물을 고르는데 좀더 신중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프리토는 즐거운 연말 쇼핑을 위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 ▲남보다 일찍 시작하면 선택의 범위가 넓은데다, 할인 혜택도 다양하고 ▲그것이 어려우면 많은 사람과 길다란 줄에 대한 참을성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따금씩 마음에 드는 물건이 좋은 가격에 나와있는 것을 보고도 계산대에서 5분을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그냥 가는 손님도 있다고 프리토는 말했다. dawn@seoul.co.kr ■ 대세는 디지털… “지갑 열기 두렵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정보통신(IT)시대의 쇼핑은 디지털 백화점에서” 올해 백화점 등 쇼핑센터들이 매출을 올리는데 애를 먹는 것과 달리 IT 관련 상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체인점 베스트바이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경제 전문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베스트바이의 지난 3·4분기 매출은 지난해보다 10%나 올랐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저녁 9시10분. 늦은 시간이었지만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위치한 베스트바이 매장 앞 주차장은 빈 곳을 찾기 어려웠다. 매장에서 만난 앨런 테일러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사주러 나왔다고 했다. 아들은 노트북 컴퓨터와 디지털카메라 진열대를 돌며 신제품들을 만지작거렸지만, 테일러는 집에 있는 게임기에 맞는 새 게임 소프트웨어 두개를 집어들었다. 테일러는 “남자 아이들에게는 스포츠 용구, 여자 아이들에게는 인형을 사주면 최고였다는데, 요즘은 요구하는 선물이 달라진 것 같다.”며 “아이들이 원하는 디지털 제품을 다 사주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매장에서 쇼핑객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고화질 대형 TV와 컴퓨터게임 진열대.PDP,LCD,DLP 등 고화질 디지털TV가 있는 곳에는 중년 남성이, 게임을 파는 진열대에는 젊은층이 많았다. 또 비디오가 재생되는 애플의 아이포드 등 MP3플레이어 판매대에도 젊은 쇼핑객이 끊이지 않았다. 쇼핑객들이 알아서 오기 때문에 베스트바이에는 다른 쇼핑점들과 달리 할인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베스트바이측은 “매장에서는 특별히 세일을 하지 않으며, 인터넷 사이트에서만 잠깐씩 세일을 한다.”고 밝혔다. dawn@seoul.co.kr ■ “선물용 책 면면 보면 美 사회상이 한눈에”|워싱턴 이도운특파원|“홀리데이 시즌에 팔리는 책을 보면 미국 사회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자리한 ‘북 마켓’의 매니저 안드레 로버츠는 “해마다 선물용 책을 고르는 취향이 달라지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책은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선물 가운데 하나다. 로버츠는 올해의 두드러진 서적 구매 흐름은 ▲‘하우 투(How To·초보자 교육용)’ 서적들과 ▲어린이용 성경 ▲노인 웰빙 관련 책이 많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츠가 전하는 미국인들의 올해 책 구매 취향. ‘하우 투’ 서적들은 ‘바보가 ∼배우기’,‘오늘 시작하는 ∼’등의 제목으로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그 중 ‘이력서 쓰는 법’,‘이베이에서 창업하기’,‘내스카(미 자동차경주) 즐기는 법’,‘무술 입문’ 등이 잘 나간다. 직업 이동이 빨라지고 문화·스포츠와 관련한 욕구가 다양해진 사회 현상을 보여준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용 성경’은 선물용으로 인기가 매우 높다. 어린이용 성경은 창세기편의 ‘태초에… 천국(Heaven)과 땅(Earth)을 창조했다.”는 대목을 “하늘(Sky)과 땅”으로 바꾸는 등 어린이가 이해하기 쉬운 개념을 많이 쓰고 ‘Thy(너의)’ 등 고어를 ‘Your’등 현대어로 바꿨다. 웰빙 관련 서적은 지난해까지 인기가 좋았던 요가 대신 여행관련 책들이 잘 팔린다.2차대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은퇴후 지낼 최고의 도시’,‘은퇴후 최고의 여행지’ 등 돈 많고 건강한 그들을 겨냥한 책들이 많이 나간다. 어린이 건강에 대한 관심도 커져 ‘어린이 암 예방’이라는 책이 잘 팔린다.‘공포와 걱정, 스트레스와 싸우는 법’도 재고가 없을 정도다. 선물용 책은 성·연령별로 차이가 있다. 요리책은 남성(남편)이 여성(아내)에게 선물한다. 건강을 중시하는 시대를 반영하듯 ‘저칼로리 식단’이나 ‘상큼한 샐러드 만들기’ 등이 인기가 있다.‘와인 고르기’는 스테디셀러다. 10대 소녀에게는 동물 사진첩을, 소년에게는 사전을 많이 선물하며, 천문학 관련 서적을 고르는 부모도 있다. 3∼4세,5∼7세 어린이를 위해서는 ABC 배우기, 색깔 구별하기 등 교육 관련 서적이 주를 이룬다. 젊은 남성들은 스포츠 관련 화보집을 많이 사간다. 가장 잘 팔리는 화보집의 주인공은 내스카 스타 제프 고든이다. 젊은 여성들은 멋진 풍경이나 인물을 담은 사진집을 커피 테이블 장식용으로 곧잘 구입한다. 뜨개질과 바느질 관련 책을 찾는 여성도 꾸준하다. 설은 스릴러와 로맨스가 시대를 초월한 스테디셀러. 달력도 연말에 빠질 수 없는 인기 품목이다. dawn@seoul.co.kr
  • ‘황금사자’ 된 늙은사자

    로마 동물원이 사자에게 금알갱이를 투입해 관절염을 낫게 했다. 클라우스 군터 프리드리히라는 수의사는 지난 7일 관절염을 앓고있는 늙은 사자에게 50개의 금으로 만든 알갱이를 넣어 관절염을 말끔히 치료했다고 밝혔다. 프리드리히는 13살된 벨라미라는 이름의 아시아산 사자가 2주전부터 관절에 이상이 생겨 걷지 못했는데 지름 1㎜의 금으로 만든 알갱이 50개를 척추근과 관절부위에 집어넣은 결과 걸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금이 통증 부위 주변의 근 위축을 경감시켜 관절염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사자는 보통 16년 정도를 사는데 지난 2001년 영국에서 사들인 이 사자는 늙기는 했지만 잘 관리하면 더 살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프리드리히는 3시간 반 만에 수술이 끝나자 사자가 걷는 것으로 보아 수술은 잘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이 치료법은 주로 개나 고양이 호랑이 등에 사용돼 왔는데 사자에게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로마 AP 연합뉴스
  • [09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60분-부모(EBS 오전 10시) 학습지로 공부를 시키거나 학원을 보내는 대신 영어 동화책을 함께 읽어 주자! 고등학교 영어 교사 출신으로 최근 ‘3살 때 망친 영어 평생을 괴롭힌다.’라는 조기 영어교육 지침서를 펴낸 세 아이의 엄마 김은희씨가 말하는 그녀만의 특별한 영어 교육법, 그리고 가족간의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그 여자(SBS 오후 8시55분) 재래시장을 찾은 지수는 어떻게든 싸고 좋은 물건을 사려고 상인들과 흥정한다. 공항으로 간 재민은 세정이 입국하자 반갑게 맞이하고, 이어 세정이 선물이라며 내민 옷을 입고는 좋아한다. 지수네 집으로 정선과 석주부부가 초대되고, 세정과 같이 있다가 늦게 도착한 재민은 별 일 없는 듯이 행동을 한다.   ●글로벌 비전〈세계화의 그늘〉(YTN 오후 1시20분) 브라질의 제랄도는 미국 포드자동차의 해고 노동자다. 제랄도와 같은 노동자들은 브라질 경제보다 세계경제에 관심이 더 많다. 세계경제에 따라 자동차 판매량이 결정되고, 노동자의 해고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같은 포드사 노동자라도 나라에 따라 받는 돈이 차이가 난다.   ●레인보우 로망스(MBC 오후 6시50분) 메모지에 남긴 글 때문에 자신이 오렌지걸이라는 사실을 기범에게 들킬 상황이 되자, 은비는 친구인 현경을 방패막이로 내세운다. 은비는 자신이 내세우고도 혹시 현경이가 기범을 좋아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한편 민기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손 모델이 되고, 보라는 매니저가 되겠다고 나선다.   ●청춘 신고합니다(KBS1 오후 7시30분) 예비군과 현역이 화합 단결된 최정예 동원사단 육군 제65 보병사단 장병들과 함께한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개과천선한 병사, 어릴 적 단 한번의 만남이 전부인 아버지를 찾는 병사, 한 귀염둥이의 아버지로 ‘충성’을 외치는 병사의 러브스토리 등이 ‘소원수리 프로젝트 행복초소’에서 펼쳐진다.   ●윤도현의 러브레터(KBS2 밤 12시15분) ‘상상플러스’,‘스타골든벨’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나운서 노현정을 초대해 그녀의 이상형에 대해 들어보고 관객들과 함께 즉석에서 ‘암산대결’을 펼친다. 또 5집 앨범으로 컴백한 한류의 원조 안재욱은 쉬는 동안 여행을 즐기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연기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 2005 뜬별 & 진별

    2005 뜬별 & 진별

    2005년도 저물어간다. 언제나 그렇지만, 욱일승천의 기세로 올 한해를 자신의 해로 만든 부류는 누구인가. 반대로 급전직하의 참담함을 맛본 부류는 또 누구일까. 서울신문은 연말 특집으로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 극과 극의 행보를 보인 이른바 승자(Winner)와 패자(Loser)를 선정했다. ■ 존 매케인 vs 칼 로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올해 ‘세계의 정치 수도’인 워싱턴에서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와 같은 확실한 승리자와 패배자를 탄생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공화당 내에서는 존 매케인을 비롯한 중도적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상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의 권력 기반인 ‘텍사스 사단’은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매케인 의원은 이라크 전과 같은 안보 이슈에서는 철저하게 부시 대통령을 옹호하고 지원하며 보수성을 과시해왔다. 매케인 의원은 그러나 최근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억류된 포로에 대한 고문을 반대하는 입법을 주도하는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중도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민주당측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올 한해 매케인 의원이 직접 제출한 법안과 결의안만도 80건에 이른다. 또 미 상원 의원들은 법안을 제출할 때 정치적 영향력이 큰 매케인 의원이 함께 서명해주기를 원해 그의 서명이 들어간 법안 수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같은 노력이 인정을 받아선지 지난 10월말 퓨 리서치 센터가 공화·민주당원 및 무소속 유권자를 상대로 조사한 2008년 대선 후보 여론조사 결과, 매케인 의원은 공화당 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공화당에서 2위를 기록한 루돌프 줄리아니 역시 중도적 성향의 정치인이다. 반면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사단 가운데서도 중심 인물이었던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유출한 ‘리크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부시 대통령의 신임도 떨어졌다고 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로브의 힘이 빠지면서 한때 탄력을 받았던 ‘보수세력 장기집권론’도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역시 텍사스 출신으로 부시 대통령이 주지사 시절부터 법률 자문을 해온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도 2005년이 오욕으로 점철된 해였다. 마이어스는 부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지명됐지만, 부족한 경력과 불투명한 성향 때문에 논란이 빚어지자 스스로 물러났다. 마이어스의 상원 인준을 앞두고 ▲판사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 ▲앨 고어 등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기부했던 적이 있고 ▲낙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하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보수층으로부터 사실상 외면당했다. dawn@seoul.co.kr ■ 도요타 vs GM 도요타자동차는 내년 3월 결산에서 일본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액이 20조엔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순이익도 3년 연속 1조엔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세계 자동차업계 1위인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판매부진과 경영악화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급기야 릭 왜고너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내년부터 북미지역 공장 9곳을 폐쇄하고 2008년까지 종업원 3만명을 줄이겠다는 처방을 내놓았다.11월 주가는 한때 18년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부도설까지 나돌았다. 올 한해 도요타와 GM의 엇갈린 성적표다. 그래서 ‘빠르면 2006년 도요타가 GM을 넘어선다.’는 예상도 나온다.2008년이었던 도요타의 목표보다 2년 빠른 것이다. 도요타는 내년 예상 판매대수를 900만대로 잡고 있고 공장을 폐쇄해야 하는 GM은 이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일시적이기는 하나 도요타가 북미시장 점유율에서 GM을 추월하기도 했다. 도요타는 이제 ‘기업’ 이상의 위치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도요타 배우기’ 열풍이 분 지 오래다. 순이익 1조엔은 이른바 빅3라는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순이익을 전부 합친 것의 2배 가까운 규모다. 일본 언론은 “도요타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주고 있다.”며 ‘일본경제 부활의 구세주’로 묘사하고 있다. 도요타의 힘은 낭비요소를 없앤 생산방식에서 비롯된다. 세계적 부품업체들과의 유기적 협조,50년간 노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노사관계, 철저한 품질 및 인적관리 시스템도 승승장구의 비결이다. 조 후지오 도요타 부회장은 “글로벌시대에는 국가별로 현지 문화 및 고객 기호에 부합하는 고품질 저가격 제품 생산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성공 비결을 역설했다. 반면 GM의 추락은 미국 제조업의 쇠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이던 GM의 신용등급은 ‘정크 본드’ 수준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여기에다 아성으로 여겨졌던 북미시장마저 일본 경쟁업체들로부터 위협받자 왜고너 회장이 직접 북미시장을 챙기기에 나섰다.‘직원용 할인가격’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적용하는 ‘제살깎기식’ 무한경쟁에 나섰지만 추세를 돌려놓기엔 역부족이었다. GM 추락의 주요 원인으로 우선 낮은 소비자 만족도를 들 수 있다. 과다한 직원 복지후생 부담도 발목을 잡고 있다.GM은 차를 한대 만들 때마다 1500달러씩의 후생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이래서는 도저히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오프라 윈프리 vs 마이클 잭슨 “그녀가 출마한다면 미국 정치의 심장과 얼굴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지난주 미주리주에서 ‘오프라를 대통령으로’란 문구가 새겨진 물품만을 파는 가게를 낸 패트릭 크로의 말이다. 물론 윈프리는 출마를 거부했지만, 여성이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보고 싶다고 말했다. 통큰 선행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이미 전세계 여성들의 친구이자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다.21년 동안 전세계 121개국 이상의 여성들이 그녀의 토크쇼를 보며 울고, 웃고, 열광하고 있다. 윈프리는 가난한 사생아로 태어나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실은 17살때 미인 선발대회 왕관을 썼고 3살도 안돼 책을 읽었다. 지난해 토크쇼 방청객 전원에게 자동차를 나눠주는 깜짝쇼를 연출한 데 이어 올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재앙이 닥치자 연방 정부보다 재빨리 구호활동에 나섰다. 루이지애나주 슈퍼돔으로 달려가 이재민들을 안고 위로했으며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특히 3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나중에 토크쇼에 초청,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 등 210만달러 어치의 선물을 안겨줬다. 하지만 같은 흑인으로 팝의 제왕이었던 마이클 잭슨에게 올해는 최악의 한해였다. 아동 성추행 소송사건에 휘말리면서 전세계 매스컴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법정 출두를 미루다가 체포 영장을 발부하겠다는 판사의 경고에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타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제이 레노, 매컬리 컬킨 등 유명 인사들의 대량 증언과 고액 변호사를 앞세워 결국 소송에서는 승리했지만 자택인 네버랜드를 팔아야 할 정도로 경제적 곤궁에 처했다. 변호사 비용만 500만달러를 썼으며, 빚은 4억달러가 넘는다. 잭슨은 미성년 아동과 같은 침대에서 잔 사실은 인정했지만, 성적 접촉은 부인했다. 비록 재판관은 그가 무죄라고 선언했지만, 잭슨이 결백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잭슨은 아동 성추행 재판으로 팝의 제왕에서 언론의 웃음거리로 단숨에 추락했다. 팬들은 그가 음악활동을 재개할 것을 바라고 있지만, 대중은 이제 잦은 성형수술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그의 코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스포츠 포커스] 23살 K-리그 “이젠 바꿔라”

    [스포츠 포커스] 23살 K-리그 “이젠 바꿔라”

    프로축구 K-리그가 지난 4일 챔피언결정 2차전을 끝으로 올시즌 잔치를 모두 끝냈다. 출범 23년째인 올시즌에도 K-리그는 여러가지 운영상의 미숙함을 드러내며 선진 리그에 목마른 팬들의 기대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늘어지는 리그 일정 먼저 충분하지 못한 경기 수와 늘어지는 리그 일정의 문제.K-리그는 모두 13팀으로 이뤄져 있다. 정규리그에선 팀당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24경기를 치른다. 각각 20개 팀이 있는 프리미어리그(영국)와 프리메라리가(스페인), 세리에A(이탈리아)의 팀당 38경기는 둘째로 치더라도 18팀이 있는 J-리그(일본)의 34경기보다도 적다. 주말엔 정규리그 경기, 주중엔 컵대회 경기 등 짜임새 있게 운영하는 선진리그와 달리 시즌 초반 일찌감치 컵대회를 마친 뒤 이후 정규리그를 새로 치르다 보니 리그 일정에 숭숭 구멍이 뚫려 이번 시즌 길게는 3주 가까이 경기를 쉰 적도 있었다. 게다가 방송 중계 사정에 따라 자주 바뀌는 경기 시간도 축구팬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프로축구연맹 신명준 경기지원팀장은 “팀수도 적은 데다 겨울 시즌을 치르는 유럽과 달리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월드컵 예선 등이 겹치는 여름리그로 치르는 점이 경기 일정을 짜임새 있게 맞추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후기 1승도 못한 전기 우승팀 PO진출 플레이오프(PO) 제도도 문제다.K-리그는 지난해부터 전·후기로 나눠 1위팀을 가리고 통합 순위 1,2위팀 등 4강을 가려 PO를 치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전기 1위팀이 후기리그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맹점이 있다. 지난 시즌 전기 1위 포항과 올시즌 전기 1위 부산은 모두 후기리그를 꼴찌로 마쳐 리그의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이 됐다. 특히 부산은 후기리그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프로축구연맹 김진형 경기기획팀장은 “이전 단일리그때는 강팀들이 너무 빨리 독주 체제를 갖춘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문선 SBS 해설위원은 “현 PO방식을 유지하려면 전기리그 우승팀에도 후기리그나 통합순위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둬야 PO에 진출할 수 있는 핸디캡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합리적 득점왕 산정 방식 득점왕 산정 방식도 문제다. 올시즌 12득점으로 득점왕이 유력했던 박주영(20·FC서울)은 PO 3경기에서 3골을 추가하며 13득점을 올린 마차도(29·울산)에게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이 때문에 팀 성적이 개인간의 타이틀 경쟁에 영향을 끼치는 건 비합리적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리그와 토너먼트를 병행하는 월드컵에서도 팀 성적에 따라 득점왕이 갈린다.”면서 “축구의 PO는 야구와 달리 정규리그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儒林(487)-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9)

    儒林(487)-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9)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9) 퇴계의 편지를 보면 율곡은 23살 때의 봄에 치른 시험에서 낙과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율곡의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보낸 퇴계의 편지는 맹자의 ‘고자장 하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인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큰 인물을 그 사람에게 내리려 하실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를 괴롭히며 그 늑골(肋骨)을 수고롭게 하며, 그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하며, 그의 하는 것을 어그러트리고 어지럽히는 것이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 능하지 못한 부분을 증익시키려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므로 명종13년 봄. 강릉의 외갓집을 가기 위해서 성주의 처가를 나선 청년 율곡의 발길은 천근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이미 한성시에서 장원급제하여 문명은 떨쳤지만 초시에 불과하여 벼슬길에 오르지도 못한 백면서생이었다. 아내 노씨부인을 얻어 정혼하였다고는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였다.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지만 나라는 어지럽고 질풍노도의 난세였다. 암중모색의 10대를 보낸 열혈청년의 나이였으나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덩굴에 매어달린 조롱박과 같은 절망감이 율곡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의 율곡의 심정을 나타내는 시 한 수가 오늘날 남아 전하고 있다. ‘자성산 향임영(自星山 向臨瀛)’이란 제목의 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객지에서 봄도 꽤는 지났는데 우정에는 오늘 해도 지려 하네. 가는 당나귀 먹일 곳이 어디냐. 연기나는 저 밖에 있는 인가가 있겠네.(客路春將年 郵亭日欲斜 征驢何處 煙外有人家)” 당나귀를 타고 쓸쓸히 성주에서 바닷길을 따라 고향인 강릉을 찾아가는 율곡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명시 중의 하나이다. 우정(郵亭)은 말을 갈아타는 객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마도 율곡은 나귀를 타고 종자 하나를 앞세우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 낯선 객사에서 지친 몸을 누이면서 바닷길을 따라 북쪽으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듯 보인다. 청년 율곡으로서는 고행의 가시밭길이었다. 어머니 신사임당은 이미 7년 전에 돌아가셨으나 효성이 지극하였던 율곡에게 어머니는 여전히 ‘상심의 바다’였다. 특히 율곡으로서는 어머니에게 치명적인 불효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실이었다. 16세 때 여름. 율곡은 수운판관으로 조운(漕運)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관서지방으로 출장가는 아버지를 따라 맏형 선(璿)과 함께 집을 떠나게 되었다. 수운판관이란 직책은 7품관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급직위로 호조(戶曹)에 예속되었으며, 전함의 수리 및 감독을 맡아보는 전함사(典艦司)에 소속되어 있는 말단관리였다. 전함사는 본청이 서울의 중부에 있었고, 외사(外司)가 서강에 있었는데, 율곡은 아버지 이원수를 따라 서해바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변고를 당한다. 율곡의 회상에 의하면 율곡의 일행이 서강에 있는 외사에 도착하였을 무렵 아버지의 행장에 들어있던 유기그릇이 갑자기 모두 빨갛게 변색해 버린 것이다.
  • 儒林(48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4)

    儒林(48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4)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4) 율곡이 성주에서 강릉의 외갓집을 향해 집을 떠났을 때에는 아직 임꺽정의 난이 태동단계에 있었지만 온나라는 폭풍전야의 불길한 조짐으로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었던 질풍노도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율곡도 이 무렵의 자신을 스스로 미친 물결, 즉 광란(狂瀾)의 시대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미 율곡은 두 번이나 국가에서 시행하는 과거에 급제하고 있었다. 특히 13살의 어린나이로 소과시(小科試)의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어린나이에 생진과 초시에 합격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으므로 당시 승정원의 관리들은 율곡을 위시한 합격생들을 불러 미래의 동량이 될 만한 인물인지 살펴보았으나 뽐내는 다른 선비들과는 달리 어린 율곡은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3살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하였던 신동이었고,10살 이전에 논어 등 유교의 기본경전을 비롯하여 좌전, 사기 등의 역사서로부터 노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독서에 빠져있어 소년답지 않은 정신세계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종실록’은 율곡이 7세에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고 전하고 있고, 송시열은 율곡이 이미 10세 때 유교경전을 비롯하여 온갖 책을 독파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율곡이 본격적으로 글을 배웠던 것은 1541년 중종 36년 6살의 나이로 어머니를 따라서 강릉의 외가를 떠나 한양의 본가인 수진방으로 온 이후부터였다. 이때부터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으로부터 틈틈이 글을 배워서 벌써 문리가 통하였고, 사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율곡의 총명함은 4세 때에 이미 정평이 나 있어 고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 율곡은 스승으로부터 사략(史略)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스승이 ‘제위왕초불치제후개래벌(齊威王初不治諸侯皆來伐)’이란 문장을 풀이하면서 실수로 ‘제후’의 ‘후’자 아래에다 구두점을 찍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문장의 뜻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된다. “제나라에 위왕이 처음에 제후들을 잘 다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제나라의 위왕이 여러 제후들을 직접 다스리는 결과가 되어 사실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제후’ 다음에 나오는 ‘개(皆)’의 주체가 불분명하게 되어 그 문장의 뜻이 애매모호해지는 것이다. 이때 4살의 율곡은 말없이 한동안 그 문장에 눈길을 두고 있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개(皆)자가 제후의 밑에 있으니 문세(文勢)로 보면 마땅히 ‘불치’ 아래에서 구두점을 떼어야 합니다.” 율곡의 말대로 이 문장의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된다. “제나라의 위왕이 처음에 정치를 잘못하여 다른 제후들이 함께 와서 정벌하였다.” 율곡의 주장대로라면 사실로 보나 문장의 의미로 보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정답이 되어 버리는 것을 그제서야 확인한 스승은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다. “옳거니, 네 말이 맞다. 이제 보니 내가 너의 스승이 아니라 네가 나의 스승이로구나.”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6) ’정감록’ 도꾼 문양해의 정신세계

    조선후기 ‘정감록’ 사건은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되었고,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정감록’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道) 꾼들의 종교성이 드러난다.‘정감록’을 신봉했던 사람들은 특이한 종교단체에 속해 있었다. 이런 내 주장이 어쩜 생소하게 들릴는지도 모르겠다.18세기 후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불행한 젊은 도꾼 문양해(文洋海)의 경우를 한번 알아보자. ●도(道)꾼 문양해 사건이 일어났던 정조 9년(1785) 문양해는 30대의 독신 남성이었다. 그는 본래 충청도 공주의 한 평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체포 당시는 경상도 하동에 살고 있었다. 그의 “흉악한 계책과 역적 행위는 이미 다른 죄인들의 자백에서 명백히 드러났다.”고 했으니, 문양해는 조선왕조의 역적이었다. 그의 일생은 특이한 점이 많았다. 대개 아는 이야기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국엔 독신 남성이 거의 없었다. 문양해는 승려가 아니었으면서도 쌍계사가 위치한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에 조그만 집을 짓고 홀로 도를 닦았다. 문양해가 하동으로 옮긴 것은 계묘년(1783)이었다. 서울에 살던 그의 친척 양형이 어느 서울 양반에게서 건축자금을 넉넉히 얻어준 덕분에 문양해는 하동에 100칸이나 되는 큰 기와집을 차지하게 되었다. 충청감사와 경상감사를 역임한 홍낙순의 아들 홍복영이 바로 물주였다. 홍복영에게서 거금을 받아내기 위해 양형은 감언이설을 늘어놓은 게 틀림없다. 하동에 가면 기가 막히게 좋은 명당이 있다고 했다. 그 명당을 차지하면 “세 가지 재앙이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호랑이, 흉년, 그리고 전염병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하동의 명당에 집을 짓고 내려가 살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하동 집은 나중에 정감록 조직의 본거지가 됐다. 수천 냥(兩) 씩이나 되는 은자(銀子)를 하동에 보내자 홍복영의 서동생(庶同生)과 4촌은 바보짓이라며 만류했다. 홍복영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 양형의 집안에서도 아내가 이사를 극력 반대했다. 홍복영과 양형이 가족 내부의 반대에 부딪혀 이주에 애로를 겪은 것과는 달리 문양해 일가는 온 가족이 하동으로 옮겨 큰 집을 차지하고 넉넉하게 살았다. 위에 기록한 대로 문양해는 쌍계사 골짜기에서 유유자적하며 은거생활을 했고, 그의 아버지 문광겸은 하동의 지하본부를 총괄했다. 문양해의 3촌 문광덕도 하동으로 옮겨 약포(藥鋪)를 경영했다. 따지고 보면 하동의 본부 건설에 앞장선 이들도 문씨들이었다. 문씨 일가가 아직 충청도 공주에 살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청년 문양해는 길가에서 신인(神人)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들은 문양해에게 이사를 명령했다. 그래서 온 식구가 강원도 간성으로 옮겼다. 그런 지 얼마 안 되어 이 번에는 다시 경상도 하동으로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한다. 신인이 존재할 리 없지마는 하여튼 그랬다. 문씨들이 간성을 출발해 동남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하동으로 들어오는 동안 동행했던 배들은 모두 파손되었다. 그러나 문씨들의 배만은 무사했다. 이것을 두고 여러 말이 많았다. 사람들은 문양해와 친한 신인이 용왕에게 부탁한 덕분이라고 했다. ●문양해는 신인(神人)들의 제자?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조 9년 ‘정감록’ 사건의 관련자들 가운데 신인을 직접 만나본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문양해만은 신인을 만났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문양해는 신인들로부터 직접 글을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사건의 주모자 이율은 문양해가 향악(香嶽), 노사(老師) 및 징담(澄潭)이라고 불리는 세 명의 신인에게서 글을 배운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관련자들의 진술을 간추려보면 신인 향악선생은 본래 평안도에서 태어났으나 사건 당시엔 지리산 아래 살고 있었다. 향악의 속성은 김(金), 이름은 호(灝)라 했다. 나이는 63세, 머물고 있던 지리산 속의 집은 운재(雲齋)로 알려져 있었다. 어떤 이는 그 이름이 김정(金鼎)이라고도 했다. 신인 노사는 성이 이(李), 이름은 현성(玄晟)이라 했다. 나이는 250살로 인간으로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고령이었다. 별칭은 도처결(都處決)이었다. 그의 호칭은 여럿이어서 서악(西嶽)이라고도 했고, 성거사(成居士)라고도 했다. 나이는 80∼90살가량 되었는데 특히 풍수에 밝았다. 문양해의 할머니 산소도 노사가 정해 주었다는 풍문이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이야기는 노사가 땅의 임금(坤帝)이란 풍설이었다. 명지관이란 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만 그는 천제(天帝)의 배필로 간주되었다. 평소 노사는 학이란 종을 시켜 폐백(幣帛)을 짊어지고 다니게 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신인 중의 신인이 바로 노사였다. 그는 그야말로 모르는 것이 없었다. 가령 장차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를 물어보더라도 금방 대답해 주었다. 더욱이 노사는 굉장한 정의파라서 권세를 탐하는 무리를 미워했다. 자객을 보내 그들을 찔러 죽이기도 하고, 혹은 호랑이나 표범을 보내 물어 죽이기도 했다는 소문이 없지 않았다. 노사가 인간 세상에 보내온 편지를 읽어보면, 정조 9년 3월 문양해를 위해 7일간 초제(醮祭)를 지낼 예정이었다. 그만큼 문양해를 아꼈던 것이다.‘정감록’ 사건 가담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노사는 지하조직의 주요 간부들에게 거사에 필요한 정보를 여러 차례 제공했다. 노사와 향악 선생은 문양해와 마찬가지로 지리산 속 깊은 산중에 살았다. 그들 신인은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았다. 그러나 생식(生食)만 했던 것은 아니고 가끔은 불에 익힌 음식도 먹었다. 그밖에 지리산에는 신인 징담이 또 있었다. 그의 속명은 고경명(高輕明)이라 했는데, 그 능력이나 성격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또 다른 신인도 있었다. 문양해는 이렇게 말한다.“신인의 성은 모(茅), 별호는 일양자(一陽子)라고 하는데 그 이름을 문룡(文龍)이라고 들은 적도 있습니다.” 양형의 진술에 따르면, 이 신인은 본래 중국 사람으로 스스로를 ‘모선´(茅仙)이라 불렀으며, 나이는 40세 미만인데 틈만 나면 전국을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신인 일양자는 남달리 총명해 누구보다 암기력이 뛰어났다.‘학통(學統)’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책도 단숨에 술술 암송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지리산에 입산해 머리를 깎을 때 하늘에선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밖에 현도진인(玄都眞人)이라는 신인도 있었다. 진인은 그때 나이가 벌써 500살을 넘었다는데, 역시 지리산중에 살고 있었다. 그의 속세 이름은 백원신(白圓神)이라고 했다. 향악 선생을 비롯해 위에서 말한 여러 신인들은 지리산 선원(仙園)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현도진인을 제외한 네 명의 신인들만 지리산에 있다고 보았다. 신인들의 거주지는 지리산에 국한되지 않았다. 금강산이나 묘향산에도 신인들이 머물렀다. 신인이 명산에 상주한다는 믿음은 멀리 통일신라 때의 금강산 연기설에까지 소급된다. 고대 한국인들은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에 탄생하기 전에 이미 신라에 살았다고 보았다. 특히 금강산은 일만 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의 성산(聖山)으로 간주되었다. 고려 때 묘청 같은 승려는 이른바 8성당(聖堂)이란 개념을 도입해 명당에 불보살과 신선이 머문다고 주장했다. 문양해와 양형 등 ‘정감록’ 사건의 주모자들은 이러한 기존의 종교적 신념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정감록’ 사건의 주모자 양형은 이들 여러 신인과 사귐으로써 장래 운수를 점치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신인을 직접 접촉한 이는 문양해 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에겐 속기(俗氣)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양해는 독신으로 지내며 여러 해째 수도생활에 전념했기 때문에 속세와 신선세계를 왕복할 수 있었다. 지하조직의 구성원들이 보기에 그는 신인들의 착실한 애제자로 장차 신인이 될 만한 잠재력이 충분했다. 사회적 신분이나 나이로 보면 문양해는 지하조직의 말단에 속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직 내에서 초월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는 현세의 복잡함을 초탈한, 훌륭한 도꾼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몹시 과장되었거나 심지어 완전히 조작된 것일 수가 있다. 과장됐든 조작됐든 문양해가 넘나든 신비로운 세계는 많은 ‘정감록’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단초다. 한참 뒤 일이지만 20세기 전반에 등장한 어느 신종교에서도 종교성이 탁월한 어린 소년을 발탁해 일거에 조직의 핵심 간부로 임명한 사실이 있다. ●신인들의 대리자 문양해 중인 출신의 양형은 ‘정감록’ 지하조직의 서울지부 책임자였다. 가끔 그는 서울의 조직원들에게 향악 선생과 노사의 말을 전했다. 장차 나라가 어지럽게 된다는 예언이었다. 언젠가 홍복영은 그보다 구체적인 소식을 알려왔다. 장차 나라가 셋으로 쪼개질 거라는 위험한 소식이었다. 지리산에 있는 노사가 문양해에게 한 말을 자기에게 알려왔다고 했다. 조선이 삼국으로 분열될 징조는 산천(山川)과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에 나타나 있었단다. 나라를 셋으로 나눠 가질 영웅들은 강원도 통천의 유(劉)씨, 전라도 영암의 김(金)씨 그리고 정(鄭)씨라 했다. 당시 정씨는 남해의 어느 섬에 숨어 있었는데 때가 되면 전국을 통일할 거라고 했다. 해도 진인 정씨가 출현할 시기가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도 있었다. 임자년(1792) 2월, 정진인이 먼저 거사를 일으키면 뒤이어 유씨와 김씨도 난리를 일으킬 거라고 했다. 이 소식은 양형이 문양해를 통해 지리산의 신인들과 주고받은 것이었다. 대화의 골자는 양형을 통해 서울의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난리가 일어날 장소와 시기를 둘러싸고 약간 다르게 기억한 조직원도 있었다. 전국적으로 세 곳에서 난리가 일어나는데, 먼저 2년 뒤 전라도 영암에서 최초의 반란이 일어나고 충청도 어느 고을에서 또 사건이 터진다 했다. 그러다 무신년에는 신병(神兵·정진인의 군대)이 바다를 건너 쳐들어온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이때 신인 정씨는 이미 13살이 되었고, 영암에서 군사를 일으킬 장수는 김씨이며, 충청도에서 떨쳐 일어날 이는 유씨라 했다. 이렇게 자기의 기억을 털어놓은 조직원 역시 모든 예언의 근원지는 노사이며 자기는 그 말을 양형에게서 들었다고 진술했다. 삼국으로 갈라진다는 노사의 예언은 구전으로 전파되면서 약간 변형되거나 와전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어떤 이는 세 영웅을 유(劉)씨, 장(張)씨 및 김(金)씨로 인식했다. 그 또한 난국을 수습할 이는 정진인으로 보았는데, 이미 진인은 “제주의 700개 섬 가운데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진인에게는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기도 하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다고 했다. 정진인은 서씨와 정씨에게 명령해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잘잘못을 기록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 대목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최후의 심판’을 연상하게 한다. 마침 당시 한국사회에는 서학 즉, 천주교가 유행하고 있어 다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정감록’ 지하조직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곧 해도에서 나올 정진인과 자기네 조직이 무슨 관계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 점에 대하여 양형은 정진인이 이미 세 차례나 부하를 국내에 파견해 사정을 탐지하였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향악 선생이 영암의 김씨 및 서쪽 이웃(西隣)과 더불어 역모를 꾸민다고도 했다. 서쪽 이웃이란 지하조직의 서울지역 간부 이율을 가리켰다. 왜냐하면 이율의 집이 양형의 집 서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해, 이율과 양형 등 지하조직의 핵심세력들은 신인 향악 선생, 영암 김씨 등과 함께 거병할 예정이란 말이었다. 정조 9년(을사년) 3월이 거병시기로 예정돼 있다고 했다. 문양해는 “대사(大事)를 3월에 치르고자 한다는 말을 제가 직접 향약 선생에게서 들었습니다.” 라고 했다. 일을 함께 도모할 사람은 물론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조직원들이었다. 문양해는 신인들이 모여서 사람을 죽일 것을 의논하기도 했고, 국가의 안위를 따지기도 했다고 증언하였다. 사실 하동에 지하조직의 근거지를 마련하자고 촉구한 이도 지리산의 신인들이었다고 한다. 장차 “임자년에 변란이 있을 것이니, 미리 피난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말했기 때문에 홍복영과 이율이 하동으로 내려갈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의 돈 많은 홍복영이 건축비를 전담하다시피 하게 된 데는 그런 사정이 있었다. 신인들에게서 나온 예언은 모두 양형과 문양해를 통해서 조직적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양형이 옮긴 예언과 소문도 실은 문양해에게서 나왔다. 가령 1785년 봄, 영암 김씨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소식만 해도 그랬다.“이 예언은 본래 향악 선생이 문양해에게 들려준 것인데, 제가 문양해한테서 들었습니다.” 이것이 양형의 증언이다. 현실 세계에서 신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양해를 제외한 그 누구도 신인들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 신인들은 문양해가 창조해낸 가상의 존재였다. 그들이 써주었다는 편지며, 예언, 사주 등도 실은 문양해가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문양해는 종교적 감성이 탁월했던 만큼 자신이 직접 신인들을 만났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사기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학의 교주 최제우든, 예수 그리스도든, 또는 마호메트 같은 이들도 다 신비체험을 하지 않았는가. 문양해의 영적 체험 역시 그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상에서 신인들을 대리했고, 그가 지어낸 말이 ‘정감록’ 조직에선 진리로 수용되었다. 서울지부 총책 양형도 상당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었다. 자세히 알아보면 하동의 지하본부 건설자금을 댄 양반 홍복영은 양형에게 내적으로 완전히 예속되어 있었다. 양형에게 편지를 보낼 때 홍복영은 ‘소자(小子)´를 자칭했고,‘선생님´이라며 양형을 깍듯이 받들었다. 이렇게 된 데는 또 다른 숨은 사정이 있었다. 신인 향악, 아니 문양해가 홍복영에게 보낸 편지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 편지를 보면 양형과 홍복영은 전생(前生)에 지리산 하늘에 살며 함께 비단창고를 지키다가 귀신 하나를 찔러 죽였다 한다. 그 죄로 양형은 인간 세상에 귀양 왔고, 홍복영도 20년 동안 갇혀 지내다가 비로소 이 세상에 나왔다. 이런 인연으로 둘은 현세에서도 거취를 같이하게 되었다 한다. 이것은 물론 하나의 간단한 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문양해가 제공해준 종교적 설명에 따라 조직의 구성원들은 각기 숙세(宿世)의 인연이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로, 이 지하조직은 독특한 종교단체였다.‘정감록’ 도꾼 문양해는 이를테면 강력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청년 교주였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팔리지 않는 소금·사라져가는 염전 이중고에 한숨 영종도 염전 르포

    팔리지 않는 소금·사라져가는 염전 이중고에 한숨 영종도 염전 르포

    연간 소비량의 절반 가량이 김장철에 팔린다는 소금. 계절적으로 염부(鹽夫)들은 신명이 날만도 하련만 축 처진 어깨가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지난 2001년 소금시장 완전개방 이후 값싼 수입산 소금에 밀리더니 급기야 생산한 소금을 창고에 고스란히 쌓아둘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는 한때 ‘잘 나가는’ 소금 생산지였다. 지난 70∼80년대 이곳 염전은 300정보(1정보=3000평)에 달했다. 하지만 공항 활주로와 신도시, 골프장에 자리를 내주면서 지금은 절반을 밑도는 150정보도 되지 않는다. 소금이 팔리지 않는 데다, 사라져 가는 염전 때문에 ‘이중고(二重苦)’를 겪으며 시름에 젖어 있는 영종도 염부들을 만나봤다. ●8000가마 생산 6000가마 창고에 박병기(76) 금단염전 염부장(염전 관리자)은 “올 한해 동안 30㎏짜리 소금 8000가마를 생산했지만 6000가마가 창고에 쌓여 있다.”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11월 중순이면 창고가 텅 비었는데, 창고에 소금이 남아 있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영종도는 일제시대 당시 금광이 많아 이북을 비롯한 외지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광산이 폐광되자 정부는 지난 1954년 ‘피란민 정착사업’의 일환으로 영종도에 제방을 쌓아 염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종도 토박이인 박 염부장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51년째 염전으로 출퇴근하는 ‘영종도산 소금’의 산증인이다. 다른 염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50정보로 영종도 염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금홍염전의 경우 올해 생산한 소금 5만가마 중 3만가마가 창고에 남아 있다. 소금 가격도 예년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2003년까지 1가마당 1만 2000∼1만 3000원을 유지했으나 지난해에는 8000원대, 올해는 7000원대까지 떨어졌다. 강종진(59) 금홍염전 소장은 “12가구 가족들이 매달리다시피 해서 생산한 소금을 다 팔아봐야 떨어지는 돈은 가구당 3000만원 정도”라면서 “이마저도 소작료, 기름값, 마대값 등을 빼고 나면 절반밖에 남지 않는데 팔리지를 않으니 소작료조차 못 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주연(66) 금홍염전 염부장도 “서울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서 사가는 게 고작”이라면서 “쌀 추곡수매하듯이 정부가 비축염을 사들이기도 했는데 올해는 이런 것도 없어 도통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염부들에게는 팔리지 않는 소금 외에 더 큰 걱정이 있다. 염전이 폐쇄돼 일거리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벌써부터 내년에는 ‘어느어느 염전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박 염부장은 “땅도 논도 없고, 다른 곳에 가봤자 나이가 많다고 써주지도 않는다.”면서 “외국에서 수입하는 소금을 팔지 못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국산으로 속여 파는 행위만이라도 철저히 단속해 줬으면 좋겠다.”며 한숨지었다. ●“배운 도둑질이 이 것뿐인데…” 그나마 ‘옛날 얘기’가 염부들의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을 걷어냈다. 황해도 웅진이 고향인 김 염부장은 “1951년 ‘1·4 후퇴’ 때 이곳으로 건너왔어.”라면서 “1958년에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밀가루, 강냉이 먹어가며 염전을 만들었는데 벌써 48년이나 지났네.”라고 회상했다. 이곳 염부들은 70∼80년대만 해도 남부럽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소금을 만드는 순서는 바닷물을 저수지에 가둔 뒤 난치·늦태지역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염도를 높이고, 염판에서 결정이 만들어지면 창고에 저장한다. 당시만 해도 반장(염도 측정 및 감독)과 부반장(염판 관리),‘대빠또’라는 은어로 더 잘 불린다는 난치반장(바닷물을 염판까지 내려주는 역할), 경험에 따라 구분되는 상염부 및 하염부(고무래로 염판에 쌓인 퇴적물 제거) 등 5명이 한 조를 이뤄 이같은 작업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소작 형태로 바뀌었다. 부족한 일손은 소작 염부들의 가족이 메웠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1정보당 소금 생산량은 70∼80년대 연간 10t에서 3∼4t으로 줄었다. 강 소장은 “우리야 배운 도둑질이 이것밖에 없지만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없어.”라면서 “남아 있는 염부들은 50∼60대가 대부분이고, 영종도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염부도 43살이야.”라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 염전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박 염부장의 답변은 단호했다.“잠만 따로 자지 평생을 같이 한 게 이 사람들이야. 염전에 둘러앉아 소주 한 잔 걸치는 게 유일한 낙인데, 그걸 버리라고?” 헤어질 무렵, 점심 때를 놓친 터라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염부들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돌아섰다. 염전 일은 3월초에 시작돼 10월말이면 끝난다. 농부로 치면 지금은 농한기다.3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는 사이 꾸깃꾸깃해진 염부들의 담뱃갑이 자꾸 눈에 밟혔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국산천일염 ‘미네랄 덩어리’ 국내 소금산업이 외국산 저가 소금에 밀려 ‘고사’ 위기에 처했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산업자원부와 대한염업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금 소비량은 320만t으로 추정된다. 비누와 폴리염화비닐(PVC) 등을 생산하는 화학공업용이 260만t, 식용이 60만t 정도다. 그러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천일염과 기계염은 각각 35만t,15만t에 불과해 소비량의 85% 이상을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소금은 지난 60∼70년대까지만해도 자급자족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소금시장 완전개방으로 국산 소금의 30∼50% 수준인 외국산 소금이 국내 소금시장을 점령했다. 이 때문에 국내 염전도 80년대 1만 2000정보(1정보=3000평)에서 지금은 4000정보로 대폭 감소했다. 소금은 바닷물을 증발시킨 천일염, 바위처럼 딱딱한 암염, 바닷물을 전기분해한 기계염, 소금을 재처리·가공한 제재염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국산 천일염은 농도가 80% 안팎이며 미네랄이 풍부해 김치, 젓갈, 장류 등을 담그는 데 적합하다. 반면 수입산은 국산보다 농도가 10% 이상 높아 김치의 경우 쉽게 물러질 수 있다. 이처럼 국산 천일염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식품’이지만 지난 63년 제정된 염관리법에 따라 ‘광물’로 규정돼 있다. 바닷물 증발 과정에서 불순물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금을 다루는 정부 부처로 보건복지부가 아닌 산업자원부가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소금은 수입자유화 조치 이후 시장기능에 맡기고 있다.”면서 “현재는 염전 폐쇄와 종사자 전직 등만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는 지난 2003년 소금이 과잉생산돼 가격이 떨어질 경우 사들인 뒤 가격이 올랐을 때 되파는 ‘수매비축제도’를 폐지, 국내 소금업계를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마저 사라졌다. 염업조합이 이와 유사한 ‘자가비축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염업조합은 지난해 고품질 고가격의 ‘하얀금’ 브랜드 사업을 추진했으나 가격경쟁에 밀려 110억원어치,3만t의 소금이 그대로 쌓여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염부들의 ‘족집게’ 일기예측 좋은 소금을 만들기 위한 염부들의 노력은 날씨를 예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데는 꼬박 2∼3주가 걸리는데 도중에 비를 맞으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일기예보가 정확하지만, 과거에는 어떻게 족집게처럼 날씨를 알아낼 수 있었을까. 40∼50년 경력의 염부들은 우선 일몰 무렵, 구름의 위치와 모양을 살피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꼽는다. 해가 넘어갈 때 구름이 해 주변에 끼어 있으면 2∼3일 뒤 비가 온다는 것이다. 염부들은 이를 ‘해가 집 짓고 들어간다.’고 표현한다. 또 동남풍이나 남서풍이 불면 하루나 이틀 후 비가 내리기 때문에 염판에서 소금을 걷어냈다고 한다. 아울러 개미가 줄을 지어 이동하고, 굳은 땅에서 지렁이가 올라오고, 밀물의 양이 많아지는 ‘물이 산 날’에는 틀림없이 비가 내린다고 강조했다. 박병기(76) 영종도 금단염전 염부장은 “날이 궂으면 온몸에 신경통이 도진다는 사실은 기본”이라면서 “일기예보를 몰라도 70∼80% 정도는 날씨를 맞힐 수 있다.”며 웃음지었다. 흔한 게 소금이지만, 로마시대에는 군인들에게 급여를 소금으로 지급해 샐러리(salary)의 어원이 될 만큼 귀한 존재였다. 지금도 좋은 소금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좋은 소금은 맛부터 다르다고 한다. 좋은 소금은 부드럽고 단맛이 나며 뒷맛도 깨끗한 반면 나쁜 소금은 쓴맛이 난다. 또 국내산과 수입산 소금을 구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입자의 크기와 경도를 살펴 보는 것이다. 국내산 천일염은 입자가 고르고 뚜렷하나 외국산 소금은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마모도가 심하고 입자도 고르지 않다. 특히 국내산은 수분 함유량이 많아 손바닥에 잘 들어붙고 손으로 비비면 잘 부스러진다. 반면 외국산은 경도가 높아 손바닥에 잘 붙지 않고 비벼도 덩어리가 남게 된다. 김주연(66) 금홍염전 염부장은 “소금은 바닷물의 청정도, 일조량, 바람의 세기 등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라면서 “소금 하나만 잘 먹어도 웬만한 성인병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막걸리통 싣고 찌리링 15만리

    막걸리통 싣고 찌리링 15만리

    1969년 3월 30일. 서울·중부 지방은『최저 영상 3도, 최고 영상 12도, 북서풍, 차차 맑음』의 화사한 봄날을 맞아 상춘객들은 창경원으로 우이동으로 떼를 지어 몰려나갔다. 이 춘3월 좋은 날씨에 서울 비원(秘苑) 돈화문(敦化門) 앞에선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진기한 경기가 벌어졌으니 서울 탁주(濁酒) 도매업자 연합회가 주최한 제1회 실용자전거 경기대회가 바로 그것. 알기 쉽게 말하자면 막걸리통 배달꾼들의『누가누가 잘 달리나』대회다. 이 진기한 대회에서 우승의 영예를 차지한 사람이 바로 올해 25세의 김창옥(金昌玉)씨. 앓다가 참가한 경기인데 출발할 때부터 선두 달려 정각 하오 1시 5분 전 돈화문 앞을 출발, 반환점인 의정부까지 갔다가 되돌아와「골인」한 것이 정각 2시 16분. 그러니까 꼭 1시간 21분 만에 달린 셈이다. 출발 때부터 선두를 달리기 시작한 선수가 바로「백·넘버」2번의 김창옥씨. 김씨는 시종 물에 축인 수건을 입에 물고 허리를 잔뜩 굽힌 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페이스」로「페달」을 밟았다. 『대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제일 먼저 출전신청을 한다고 달려갔죠. 그런데 가보니까 먼저 와있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래 2번이 되었죠』하는 김씨는 경남 함양군 지북면 개평리 태생. 찢어지게 가난한 농군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난 김씨는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라났다. 가난한 속에서도 가까스로 국민학교를 졸업. 『공부를 특별히 잘 하진 못했어도 운동회 날만 되면 내 세상이었죠. 달리기, 씨름 등에서 꼭 1, 2등이었으니까요』 서울에 올라온 건 8년 전인 17살 때. 위로 두 형님이 있지만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형편. 김씨가 서울로 올라올 생각을 하게 된 건 당시 서울에서 술도가를 차리고 있던 사촌형의 권유에 따른 것.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안했습니꺼?』 8년 다린 거리 치면 부산~백두산 73번 서울 올라와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막걸리 한 말들이 통을 뒤에 싣고 동서남북으로 온 장안을 누비며 술을 배달했다. 배달 시작은 아침 7시부터 낮 12시께까지. 배달을 끝내고 나면 좀 한가해진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밤 9시 반쯤이면 다시 자전거를 타고 거래처를 한 바퀴 돌며 수금, 밤 11시가 지나야 하루 일과가 완전히 끝난다. 이런 일과를 꼬박 8년 동안 계속해왔다. 그러니까 하루 평균 20km를 달렸다 치고 8년 동안 김씨가 자전거를 타고 다닌 거리는 총연장 58,400km(14만 6천리). 부산서 백두산까지의 거리를 73번 달린 셈이다. 그러니까 한 해에 부산서 백두산까지 9번 자전거를 타고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건각(健脚)의 소유자. 김씨는 막걸리통을 나르는 틈틈이 성동체육관에 나가며 유도를 익혔다. 2년 만에 초단을 땄다니 어지간히 운동신경이 발달된 모양. 이번 대회에 출전신청을 해놓은 뒤 김씨는 시간이 나면 대회「코스」인 돈화문 앞~의정부 간을 현지답사했다. 술통 나르던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니 별로 힘은 안드는데 제일 난관은 미아리고개인 것을 알았다고. 『그래 힘을 아껴두었다가 미아리고개에서「라스트·피치」를 뽑아야겠다고 계산해 뒀죠』 그러나 김씨는 대회 나흘 앞두고 독감에 걸렸다. 목이 부어 오르고 열이 올랐다.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 대회가 열리는 30일 아침에야 겨우 열이 내리고 움직일만 했으나 이미 우승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대회에 나간다고 새 자전거 사준 주인아저씨 성의를 생각하니 해볼 때까지는 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밥 한끼 굶은 채 나갔죠. 한창 달리다 보니 옆에서「코로나」차가 한 대 따라오는데 우리 집사람과 사촌형, 주인아저씨들이 목이 터져라고 응원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 힘을 내서 달렸죠. 응원 덕택에 1등 한 거죠, 뭐』 반환점을 돌아 수유리 검문소 앞을 지날 때 선두로 달리던 김씨의 뒤를 쫓던 선수는 약 4백m 가량 처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회 진행차량이 김씨의 바로 앞에서 기계고장으로 급정거. 미처「핸들」을 돌리지 못한 김씨는 그대로「지프」를 들이받았다. 앞바퀴가 박살이 났다. 아내를 재산 1호라 하면 상탄 텔레비는 재산 2호 다행히도 김씨는 다친 데가 없이 그 자리에서 딴 자전거로 갈아타고 다시 경기에 나섰으나 그 동안 뒤를 쫓던 선수가 선두로 나서 김씨는 약 2백m 가량 처져 있었다. 『미아리고개만 믿었죠. 그래서 거리를 약 1백m 가량으로 좁혀놓고는 미아리고개서 떨구어버릴 생각이었죠』 그러나 상대도 만만치 않아 미아리고개를 넘을 때 여전히 50m 정도 김씨는 뒤떨어져 있었다. 김씨가 선두로 다시 나선 건 창경원 앞을 지날 때. 결승점을 선두로 들어서자 지친 김씨에게 제일 먼저 달려든 것은 김씨의 아내인 이영옥(李英玉)씨. 이씨는 수많은 구경꾼들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김씨의 품 안에 뛰어들었다. 곧이어 준비해 두었던 물통을 갖다 세수를 시켜주기도. 『우리 마누라, 그래 봬도 아주 착실한 살림꾼입니다』 하는 김씨가 이영옥씨를 만난 건 약 5개월 전 일. 김씨가 일하고 있는 묘동상회 앞 골목에서 밥장사를 하고 있던 이씨와「눈이 맞은」건 매일 점심을 이씨에게서 사먹었기 때문. 그러다 한 달 만에「냉수와 막걸리 떠놓고」결혼식을 올렸다. 일수로 갚기로 하고 가게 하나를 얻어 밤에는 거기서 자고 낮에는 아내 이씨가 계속 밥장사. 김씨는 자전거를 끌고 막걸리통을 나르고 있다. 이 맞벌이 부부의 한 달 수입은 1만 5천원 안팎. 살림 살고 일수 갚고 나면 겨우 계 하나 들 돈이 남는단다. 이런 빠듯한 생활 속에서 이번 대회 우승으로 싯가 6만원의 9「인치」짜리「텔레비」가 한 대 생겼다. 돈이 아쉬울텐데 팔아버리지 않겠느냐니까『이거 내 힘으로 얻은 건데 마누라한테 못해 준 결혼선물 대신 주어야죠. 어떻게 팝니까』란다. 마누라를 재산목록 1호로 친다면 재산목록 제2호로 단간방에 두고두고 보겠다는 것. 165cm의 키에 체중 68kg. 술은 많이 먹어야 막걸리 한 되. [ 선데이서울 69년 4/6 제2권 14호 통권 제28호 ]
  • [무슨 영화 볼까]

    이터널 선샤인 장르/등급 드라마/15세 감독/배우 미셸 공드리/짐 캐리·케이트 윈즐릿 줄거리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컴퓨터로 삭제하는 과정에서 찾는 참사랑의 의미 20자평 갖가지 에피소드 나열 없이도 보편적인 사랑의 의미를 관객이 충분히 공감. 유령신부 장르/등급 팬터지/전체 감독/배우 팀 버튼/조니 뎁·헬레나 본햄 카터 줄거리 현실세계의 신부와 지하세계의 ‘유령신부’사이에서 고민하는 소심한 신랑의 얘기. 20자평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형들의 미묘한 표정 연출, 역시 팀 버튼. 러브토크장르/등급 드라마/18세 감독/배우 이윤기/배종옥·박진희·박희순 줄거리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에 다가서길 주저하는 세 남녀의 치유와 방황. 20자평 일상의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여전. 월래스와 그로밋… 장르/등급 모험·코미디/전체 감독/배우 닉 파크/피터 샐리스·랄프 파인즈 줄거리 도시를 위협하는 거대 토끼의 저주에 맞서 벌이는 월래스와 그로밋의 수사극. 20자평 애니메이션도 음식처럼 ‘손맛’이 들어가야 감칠맛. 미스터 소크라테스장르/등급 액션/18세 감독/배우 최진원/김래원·강신일·이종혁 줄거리 한 청년이 조폭의 필요에 의해 강력계 형사로 경찰에 위장 잠입하며 벌이는 에피소드. 20자평 스토리 전개의 흡인력에서나 에피소드의 풍부함이 돋보여. 소년,천국에 가다 장르/등급 드라마/12세 감독/배우 윤태용/염정아·박해일 줄거리 사랑하기 위해 어른이 된 13살 소년과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이야기. 20자평 멈춰버린 낡은 시계 바늘처럼 누구나 꿈꿔봤을 아련한 추억을 회상케 하는 영화. 플라이트 플랜 장르/등급 스릴러/12세 감독/배우 로베르트 슈벤트케/조디 포스터 줄거리 비행기 안에서 딸아이를 잃어버리고 외롭게 싸워나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 20자평 스토리 얼개는 촘촘하지만, 반전은 밋밋.
  • [어떻게 지내세요] 12월 재결합 콘서트 준비하는 어니언스 임창제

    [어떻게 지내세요] 12월 재결합 콘서트 준비하는 어니언스 임창제

    “오는 12월 그동안 헤어져 지냈던 짝꿍 이수영과 함께 오랜만에 무대에서 팬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통기타 가수 임창제(55)씨. 지난 1970년대 이수영씨와 포크 듀오 ‘어니언스’를 결성, 당대를 풍미했다. 특히 ‘편지’‘작은새’‘저별과 달을’ 등의 히트곡으로 당시 사춘기 소녀들 사이에 우상처럼 인기몰이를 했다. 이들은 군 입대와 이씨의 솔로 선언 등으로 지난 81년 완전 결별했다. 이후 이씨는 중견 건설업을 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임씨는 통기타 전도사로 나서 ‘있는 듯 없는 듯’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왔다. 아울러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카페 ‘어니언스’를 운영하면서 지금은 아줌마가 된 당시 소녀팬들과 틈틈이 만나고 있다. 지난 주 이 카페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추억의 노래 ‘편지’가 잔잔히 흘러나온다.‘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젖은 편지/하얀 종이위에 곱게 써내려간/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잠시후 주방에서 부인을 도와주던 임씨와 마주 앉았다. 먼저 근황을 물었더니 “매주 월·화요일에는 부산에서, 수·목요일에는 대구에서 통기타 콘서트를 1년째 해오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매년 두세차례 서울과 지방 등에서 단독 디너쇼를 열어 팬들과 만난다고 했다. 짝꿍이었던 이씨의 소식을 묻자 “처음 공개하는 것인데…”하면서 “오는 12월 23·24일 이틀 동안 여의도 63빌딩에서 함께 디너쇼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비록 디너쇼 형식이긴 하지만 결별한 지 25년 만에 함께 무대에 선다는 의미에서 추억의 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편지’‘작은새’ 등 70년대에 히트한 열여섯 곡을 선사할 예정이란다. 함께 음반도 낼 예정이냐고 하자 “아직 그럴 계획은 없다. 그동안 서로가 각자의 길을 걸어왔기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이어 “가수는 공인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통기타 음악은 영원하다는 신념으로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약간 모자란 듯하게 활동해 오면서도 통기타에 대한 열정과 정성은 한번도 변함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임씨는 여전히 두주불사이다. 거의 매일밤 카페 문을 닫은 뒤 자택인 잠원동 인근의 포장마차에서 부인과 소주잔을 기울인다. 체력유지에 대해 “5년전 ‘강병철과 삼태기’의 멤버였던 최인호 등 동료가수와 음악 애호가가 주축이 돼 조기축구회를 결성했다.”면서 매주 일요이면 어김없이 축구시합을 한다고 했다. 요즘에는 원정경기까지 나갈 만큼 실력이 향상됐다. “최근 7080 음악이 부활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연주인들이 대우받을 때 음악은 더욱 발전하지요.” 임씨는 또 “어느새 동요가 우리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내년에는 ‘등대’‘오빠생각’‘따오기’ 등 10여곡을 편곡해 본격적인 대중화 작업에 나서겠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 조상들이 읊었던 주옥같은 한시를 노래로 보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한시 2000수를 모아 엄선 중이라고 귀띔했다.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으로 3살되던 6·25전쟁때 월남했으며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英서 흑인·아시아계 유혈충돌

    영국 잉글랜드 중부 버밍엄의 소도시가 자극적인 소문 하나로 인종폭동의 광란 속에 빠져들었다. 14살난 아프리카계 여학생이 파키스탄인 미용실 주인에게 성 폭행을 당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22일부터 인터넷과 해적 방송 등을 통해 소도시 로젤스에 퍼졌다. 사흘 동안 분노한 흑인 폭도들이 거리를 휩쓸었고 파키스탄계 술집·상점들이 약탈과 파괴의 대상이 됐다.23살난 흑인은 칼에 찔려,18살난 남자는 총탄에 맞아 숨졌다.80여건에 달하던 범죄를 말리던 경찰관도 총상을 입었으며,35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이번 폭동은 백인 대 유색인종이 아닌 흑인 대 아시아계 사이에서 발생, 주목을 받았다. 폭동 현장 로젤스는 카리브해 연안의 서아프리카계 흑인이 정착하던 곳이었다. 뒤이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의 줄지어 들어와 슈퍼마켓, 미용실, 식당 등의 상권을 장악하면서 소외된 흑인들의 불만이 커졌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3자녀이상 무주택자 임대주택 우선 공급

    앞으로 자녀가 셋 이상인 무주택 가정은 국민임대주택을 우선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저소득층 아동의 보육료 지원대상도 크게 늘어난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9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저출산 종합대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은 4세 이하 저소득층 아동의 보육료 지원 대상을 현행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60%에서 2009년 130%까지 늘리고 5세 이하 무상교육과 교육비 지원대상을 평균소득 80%에서 130%까지 늘리기로 했다. 자녀를 셋 이상 둔 무주택 가정은 국민임대주택 특별공급 대상에 포함되고, 국민주택기금 대출한도도 확대된다. 또 공무원은 육아휴직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자녀 나이 3살에서 5살까지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당정은 근로여성뿐 아니라 농민·자영업 등 비근로 여성에도 출산휴가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당정은 또 저출산 종합대책 실시에 따른 13조원 안팎의 재원확보를 위해 저출산 목적세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열린우리당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은 “저출산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목적세 신설을 공론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전시회 때마다 수익금 교민돕기 기부 재미화가 한정희씨

    전시회 때마다 수익금 교민돕기 기부 재미화가 한정희씨

    “남들은 ‘막 퍼준다.’고 하지만 적자만 안나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 아닌가요?” 지난달 28일부터 한국에서 다섯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재미화가 한정희(52)씨. 그는 나눔의 기쁨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스웨덴에서는 한국에서 온 입양아들을, 미국으로 이사가서는 마약에 빠진 청소년들을 돕고 있는 김씨. “이해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죽을 때 돈 가져가나요?도움은 돌고 돕니다. 저는 남을 돕는 기쁨을 느끼면서 도움 받고 있는 셈이죠.” 한씨는 1978년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뒤 스웨덴 유학길에 올랐다. 교민들이 70년대 초반에 만든 ‘스웨덴 토요한국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면서 입양아들과 인연을 맺었다. 아이들이 지나가면 늘 불러다 밥, 김치, 불고기를 만들어 먹였다. 생활이 어려운 애들을 위해 혼자서 김치를 무려 200㎏이나 만들어 팔기도 했다. 1983년부터는 입양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정체성 혼란을 크게 겪는다.”면서 “그래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스웨덴 부부와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한국인 장애아를 입양한 그 부부는 아이가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등 돌보기가 어려워지면서 사이가 나빠졌고 이혼 직전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씨는 아이를 대신 봐주면서 부부를 설득했다. 그 부부는 위기를 넘기고 현재 13살인 아이와 잘 살고 있다. 지난 99년에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면서 약물중독 교포 청소년을 돕는 목사들을 알게 됐다.24시간 내내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부를 결심했다. “처음엔 1000달러를 기부하고 내심 뿌듯했죠. 문제를 점점 더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섰어요.” 뉴욕에 거주하던 그는 50점의 그림을 LA로 가져와 전시회를 열었다.10만달러가 들어왔고 몽땅 기부했다. 그는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게 낫지 않냐고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마약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심지어 공부하기 위해 각성제 대신 마약을 하는 유학생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후 전시회 수익금은 자선이라는 타이틀 없이도 모두 기부하고 있다. 이런 생활은 한씨에게 익숙하다. 대학교 졸업 직후 강원도에서 아이들이 신발없이 다니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결혼자금으로 대학 4년동안 미대입시생을 대상으로 과외해 번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주고 돌아왔다. 혹시나 미련이 남을까봐 액수도 확인하지 않았다.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혼났죠. 지금도 저보고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남편이 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줘서 고맙죠. 죽을 때까지 남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셋째 낳으면 月94만원” 佛정부는 ‘출산드라’

    “셋째 낳으면 月94만원” 佛정부는 ‘출산드라’

    |파리 함혜리특파원|내년 하반기 이후 프랑스에서 셋째 아이를 낳는 여성이 육아휴직을 할 경우 1년간 매월 750유로(약 94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으로 출산율을 유럽 2위로 높이는 데 성공한 프랑스는 22일(현지시간)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 주재로 열린 연례 가족정책회의에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자녀를 3명 이상 갖도록 유도하는 출산장려정책을 더욱 강화, 다른 유럽국가 여성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육아와 사회생활의 조화 현재는 셋째 아이 출산후 최고 3년까지 무급휴가를 쓰며 매달 512유로를 받고 있으나 내년 7월부터는 1년동안 육아휴직을 하면서 월 750유로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이 추가된다. 프랑스에서는 직장 근무 경력이 1년 이상인 모든 여성은 산전·후에 6개월간 유급 육아휴직을 간다. 둘째 아이부터는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 무급휴가(1년씩 3회까지 연장 가능)를 받으면서 월 512.64유로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조치는 두 아이를 가진 가정에서 셋째 아이를 갖고 싶어도 경제적 부담이 크고, 지원을 받으려면 아예 직장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산모들은 짧은 기간에 기존의 제도보다 50% 이상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고, 신속히 직장으로 돌아가 경력 관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된다. 프랑스 정부는 새 조치 시행으로 10만가구가 셋째 아이를 갖게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따라서 연간 1억 4000만유로가 소요될 전망이다. 가족계획 운동단체와 기업, 노동계 대표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드 빌팽 총리는 “2006년 7월부터 시행될 새 정책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동시에 여성들은 가정과 사회생활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유아원 신설과 관련해 2008년까지 계획된 3만 1000곳 이외에 1만 5000곳을 더 짓는 한편 6세 미만 자녀 보육에 대한 세액공제를 배가하겠다고 밝혔다. 3자녀 이상을 키우는 가족에게는 쇼핑 및 공공교통 요금 할인혜택을 주는 ‘대가족 카드’도 지급키로 했다. ●출산율 2.07명 돌파가 목표 프랑스는 출산장려를 위해 상당한 금액의 자녀 보육 및 교육 수당 지급, 세금감면 정책으로 지난 1995년 1.71명까지 떨어졌던 출산율을 2004년 1.916명으로 끌어올렸다. 프랑스 정부의 새 출산장려 정책은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는 수준인 2.07명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간 르 파리지앵에 따르면 24세 미만의 자녀를 가진 프랑스 가정의 경우 1자녀를 가진 경우가 42%로 가장 많고,2자녀 37.8%,3자녀 14.7%,4자녀 3.6%순이다. 원하는 자녀수는 2명 47%,3명 38%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0%)거나 1명(3%)을 갖겠다는 부모보다 월등히 많다. lotus@seoul.co.kr
  • 13번째 아내 간택 위해 처녀 5만명과 축제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의 므스와티(37) 3세 국왕이 29일 갈대 춤 축제에서 13번째 아내를 선택한다. 3일 전 시작된 갈대 춤 축제는 5만명의 처녀들이 국왕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춤을 추는 스와질랜드의 전통 연례 행사다. 이미 12명의 아내를 거느린 므스와티 국왕은 올해 축제에서 13번째 아내를 선택하게 된다. 13살 이상으로 반드시 처녀인 여성만 갈대 춤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올해 축제는 남아프리카에서 온 2000여명의 처녀와 은데벨레족의 국왕도 참석해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므스와티 국왕은 국민의 3분의2가 극빈층임에도 불구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10대 소녀를 아내로 맞는 일부다처제의 나쁜 본보기로, 이미 성인의 40%가 감염된 스와질랜드의 에이즈 문제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므스와티 국왕은 올해의 축제에 앞서 5년간 실시했던 18세 이하 소녀들에 대한 섹스 금지령도 해제했다. 그러나 많은 스와질랜드 사람들은 젊은 국왕은 즐길 권리가 있으며, 갈대 춤 축제는 국가의 전통이라고 주장했다.한편 므스와티 국왕의 딸인 시칸이소(17) 공주는 28일 타임스 오브 스와질랜드 신문을 통해 갈대 춤 축제에 참석한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다가 궁전 관리로부터 채찍으로 얻어맞고, 꼬집힘을 당했다고 항의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과거史 잘몰라… 대규모 행사에 당혹”

    “과거史 잘몰라… 대규모 행사에 당혹”

    온통 태극기 물결을 이룬 15일에도 서울 광화문 거리에 일본인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행이나 관광을 하려고 한국을 찾아 온 일부 일본인들에게도 8·15의 의미는 우리만큼이나 진지하게 비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과거보다는 현재나 미래가 중요하지 않으냐며 큰 뜻을 두지 않으려 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일본 젊은이들은 사실 한·일 과거사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회사 동료 3명과 함께 한국에 처음 왔다는 야스요(22)는 “2박3일 동안 명동에서 쇼핑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이라고 했다. 20대 초반의 신세대인 이들에게 한국은 광복과 일제, 역사왜곡이라는 단어보다는 ‘한류’와 ‘욘사마(배용준)의 나라’가 먼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욘사마는 물론이고, 곤상(권상우)도 알고 보아·세븐도 좋아해요. 덕분에 많은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을 친근하다고 느껴요.” 함께 여행 온 유미(23)가 자신있게 말했다. 이들에게 광복절 행사에 대한 느낌을 묻자 ‘두려움’과 ‘생소함’이 앞선다고 대답했다. 친구 마유미(23)도 “한국에 광복절 행사가 있다는 것은 일본을 떠나기 전부터 알았지만 이렇게 대규모인지는 몰랐다.”면서 “반일 감정에 해를 당하지 않을까 솔직히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 만나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친절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자주 왔지만 일본의 식민통치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광복절 행사를 보고는 매우 놀랐다.” 한국을 6차례나 방문했다는 야마이치(52)는 서울시청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태극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고가와 오메(40)도 “일본은 한국처럼 큰 행사를 연 적이 없는데 평소 광복절에도 이런가.”라고 되물었다. 나름의 역사적 시각도 보여줬다. 다시키 다카히로(23)는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서 독립한 날이라서 그런지 매우 기쁜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진 뒤 패전을 선언한, 많은 사람이 고통받은 날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만난 일본인 여행객들은 대부분 한류를 통해 익힌 배우나 음식 등에 대해서는 해박했지만 어두운 과거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일본 식민통치와 전쟁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야마나시현에서 왔다는 20대 관광객은 “교과서에서 배우지는 못했지만 학창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일본이 역사적으로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과거 식민통치와 전쟁에 대해 일본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를 떠나서라도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늘은 슬픈 날”이라고 덧붙였다.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차 한국을 찾은 오가사와라(55)는 “나 역시 전후세대지만 세대 사이에서 한·일간 벽이 차츰 무너져가고 있는 것을 볼 때 미래는 희망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3살인 아들은 한국 음식에 푹 빠져 있고 어머니는 한국영화 마니아”라면서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상대를 알고 배워가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스포츠와 문화 등 일반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을 늘려갈 때 한·일간의 어두운 과거사 문제도 서서히 고리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영규 나길회기자 whoami@seoul.co.kr
  • [北어린이에 우유를…] 민간교류가 ‘하나됨’ 북돋운다

    [北어린이에 우유를…] 민간교류가 ‘하나됨’ 북돋운다

    “4년 전 나는 9살이었고 자주 가는 곳은 벼룩시장이었습니다. 여기서 풍선 날리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나는 풍선을 크게 불어서 날렸습니다. 어느날 집배원 아저씨가 엽서를 가져다 주셨습니다.‘안녕, 안야! 우리가 네 풍선을 발견했단다. 풍선은 국경을 넘어 700㎞나 떨어진 동독의 드레바까지 날아왔단다. 우리 가족은 정말 기뻤어. 네 편지를 기다리며….’굉장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편지쓰기 병에 걸린 사람처럼 열심히 편지를 썼습니다.” 독일 통일 이듬해인 1991년 안야 빈터베르크라는 13살 소녀는 글짓기 대회에 낸 이 체험수기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안야의 풍선’은 국경을 넘는 순간 일개 장난감에서 동포애의 기폭제로 진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어린이에게 전달되는 ‘통일 우유’도 휴전선을 통과하는 순간 단순한 영양식품의 차원을 넘어 통일의 씨앗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법하다. 주민끼리의 자연스러운 교감이 독일 통일의 토대로 작용했음을 안야의 풍선은 웅변한다. 물론 동독 당국이 처음부터 주민들을 풀어준 것은 아니다. 동독의 개방은 서독이 장기간에 걸쳐 집요하게 경제적 지원을 쏟아부은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예컨대 서독은 동독 주민이 방문할 경우 연 1회에 한해 1인당 100마르크(당시 미화 200달러 정도)의 돈을 ‘여행환영금’조로 주는 방식으로 교류를 유인했다. 덕택에 1962년 연간 2만 7000명에 불과했던 동독주민의 서독 방문은 1986년에는 200만 2000명으로 20여년만에 100배 가까이 늘었다. 서독 관광객이 동독을 여행할 때 일정 금액(1일 10마르크 정도)을 반드시 현지에서 환전토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동독 시장에 돈을 지원하는 서독의 정책도 민간교류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른바 ‘최소 의무 환전액’ 제도다. 동독 당국은 이 정책으로 인한 민간교류 확대 추세에 불안을 느껴 한때 환전 기준액을 25마르크까지 올렸으나, 서독의 물량공세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통일부 양창석 정보분석국 분석총괄과장은 “당시 먹는 문제만큼은 어려움이 없었던 동독의 사례와 지금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을 단순비교하긴 힘들지만, 어떤 식으로든 남북이 자주 접촉하고 교감하는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통일 우유 지원사업의 효과에 기대를 표시했다. 사실 독일의 경우뿐 아니라 거의 모든 정치적 통합은 경제·사회적 통합 이후에 이뤄졌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비근한 예가 유럽연합(EU)이다. 지금의 EU는 1951년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6개국이 창설한 유럽석탄철강공통체(ESCE)가 ‘배아’ 역할을 했다. 10년째 대북 민간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월드비전’의 이주성 북한팀장은 “통일 우유 지원사업은 남북이 상호 신뢰를 쌓는 데 긴요한 사업”이라며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 민간 지원사업이 숨통 역할을 해왔던 전례를 볼 때 이런 사업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관건은 정부의 지원이 얼마나 적극적인가에 달려 있다. 이 팀장은 “민간 교류사업에 가속도가 붙으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채수삼 서울신문사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 우유 지원사업의 취지에 100% 공감한다.”면서 적극 지원을 약속한 것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그녀, 작지만 빨랐다

    출발은 뒤에서 세번째였지만 결승선을 가장 먼저 끊은 건 미국의 ‘떠오르는 별’ 로린 윌리엄스(22)였다. 윌리엄스는 9일 새벽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05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00m 결선에서 10초93으로 결승선을 통과, 자메이카의 베로니카 켐벨(23·10초95)을 100분의2초 차로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윌리엄스는 지난해 아테네올림픽에서 출발이 늦어 무명의 율리야 네스테렌코(26·벨로루시)에게 0.03초 차로 금메달을 내준 한을 세계선수권에서 풀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러게니 출신의 ‘땅콩 스프린터(157㎝)’ 윌리엄스는 이날 레이스에서도 스타트 반응속도가 0.146초로 8명 가운데 6번째로 늦어 아테네의 악몽이 되살아나나 싶었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막판 폭발적인 쇼트피치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세계랭킹 3위 켐벨은 아테네올림픽에서 윌리엄스에 100분의1초 뒤져 동메달에 그친 데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간발의 불운에 울어야 했다. 하지만 둘은 남자 단거리의 23살 동갑내기 아사파 파월(자메이카)-저스틴 게이틀린(미국)처럼 앞으로 세계 여자 단거리계를 양분하며 17년 묵은 그리피스 조이너(46·미국)의 세계기록(10초49)에 도전장을 낼 예정이다. 한편 결선 진출의 기대를 모았던 남자 장대높이뛰기의 김유석(23·서울시청)은 큰 대회의 부담 탓인지 자신의 기록보다 무려 31㎝나 낮은 5m30넘기에 모두 실패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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