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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이언, 그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

    故 이언, 그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

    오토바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故 이언(27. 본명 박상민)의 애도물결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생전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긴 글귀가 알려지면서 슬픔을 더하고 있다. ’커피프린스1호점’ 종방 후 이언은 2008년 1월 남긴 글에서 “잔치도 끝났고, 여흥도 끝났다. 올해 나의 목표는 작년의 나를 넘어서는 것…인생에 라이벌 같은 건 없다. 비교불가. 나는 나다. 시선은 언제나 정면. 옆 따위는 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더 곧고 빠르고 안정되게 달릴 수 있을 지만 생각 하자…인생은 전쟁. 살아남자. 웃으면서 미친 듯이 즐기자. 세상은. 그리고 인생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고 연기자로서의 각오를 전했다. 또한 이언은 지난 7월 15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11년 동안 씨름을 했던 108kg의 체중을 가진 남자는, 두달 만에 30kg를 감량하고 모델이 됐다. 20살 때부터, 27살까지. 워킹과 포즈가 세상의 전부였던 남자는, 현장에서만큼은 연기자가 되려 한다.”는 삶에 대한 자전적 글을 남겼다. 같은 시기에 남긴 글에서는 “18살인 김연아는 몇 십톤의 얼음 위를 다스리고, 19살인 박태환은 몇만 리터의 물을 지배 한다. 21살인 류현진이 던진 공 하나에 몇 십만 명의 시선이 23살인 하승진의 덩크에 수천개의 셔터가 터진다…20살인 권지용이 만든 노래에 모두가 환호하고, 21살인 류덕환의 연기에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친다…자, 27살인 나는 무엇으로 누구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라며 앞날에 대한 뚜렷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부산 출신인 이언은 1997년 고등학교과 입학과 동시에 씨름 운동을 시작하며 2년 연속 교내외 씨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유망한 씨름 선수로 주목 받았다. 188cm의 훤칠한 키의 소유자인 이언은 1999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배우 차승원을 보고 패션 모델을 꿈꾸며 30kg을 감량하고 오디션을 통해 패션쇼에서 활약하게 됐다. 2006년 연예계에 진출한 이언은 과거 씨름 선수와 모델이었다는 독특한 경력을 기반 삼아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케이블 방소 Mnet의 ‘아이 엠 어 모델 멘’(I AM A MODEL MEN)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후 2007년 KBS 2TV 월화 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본격적인 연기자 길에 들어선 이언은 MBC 인기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 출연하면서 ‘민폐 민엽’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올해 출연작으로는 지난 5월 종영한 MBC 수목 드라마 ‘누구세요?’가 있으며 지난 6월 부터 이번 달 19일 까지 방영됐던 KBS 2TV 월화 드라마 ‘최강칠우’에서 자객단 일원인 자자역으로 열연했다. 사진=故 이언의 미니홈피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Beijing 2008] 4차례 수술대 악재… ‘바벨 금자탑’ 약재

    [Beijing 2008] 4차례 수술대 악재… ‘바벨 금자탑’ 약재

    13일 한국역도의 숙원인 금메달을 16년만에 들어올린 사재혁(23·강원도청)의 별명은 ‘걸어다니는 종합 병원’이다. 무릎, 어깨, 손목, 팔꿈치까지 성한 데가 없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술대에 오른 것만 무려 4번.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더 이상 선수생활은 힘들다.”고 했다.168㎝로 강원도 홍천에서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난 사재혁은 홍천중에 다니던 지난 1997년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바벨을 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62㎏급에서 라이벌이 없을 정도로 두각을 보였지만 대학 때는 그러지 못했다. 부상 때문이었다.2001년 훈련을 하다 오른쪽 무릎을 다쳐 처음으로 수술을 받았다. 완쾌돼 제 기량을 찾아갈 즈음 두 번째 부상이 생겼다. 이번에는 왼쪽어깨였다. 그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렇지만 13살 때부터 꿈꿔온 올림픽 무대에 대한 꿈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바벨을 들었다.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5년 세계주니어선수권부터였다. 부상을 딛고 69㎏급에 출전한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다시 부상의 악몽은 재연됐다. 오른 손목을 다치면서 또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는 이 시기를 ‘인생의 가장 큰 시련기’였다고 회고한다. 사재혁은 그때 바벨을 놓을 생각마저 했다. ●무릎·어깨·손목·팔꿈치등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하지만 그는 “올림픽에 나가 꼭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재활에 몰두했다. 결국 2년 전부터 서서히 몸 상태를 끌어올린 사재혁은 재기에 성공한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안효작(한체대 교수) 대한역도연맹 전무의 권유로 체급도 77㎏으로 조정했다. 무리한 감량으로 인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또 과학적인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마무리 동작때 불안했던 문제점도 보완했다. ●훈련에서 인상 163㎏ 용상 208㎏ 들기도 결과는 놀라웠다. 결국 지난해 코리아컵 왕중왕 대회에선 한국신기록을 네 차례 갈아치웠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용상 3위를 차지하면서 그해 한국의 남자 역도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지난 4월 경북 포항에서 열린 왕중왕 대회는 라이벌 김광훈(26·상무)을 따돌리고 세 차례나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동급 김광훈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기량이 동반상승하는 상승효과가 컸다. 사재혁은 베이징에 오기 전 태릉선수촌 훈련에서 인상 163㎏ 용상 208㎏을 들어올려 합계 371㎏을 기록한 적도 있다. 세계신기록에서 단 1㎏ 모자란 기록이다. 지독히 운없던 사재혁 선수는 그렇게 올림픽 기대주로 우뚝 섰고 마침내 대망의 꿈을 이루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20 & 30] 나만의 잊지 못할 올림픽 명장면

    [20 & 30] 나만의 잊지 못할 올림픽 명장면

    전 인류 축제의 장이 열렸다. 전 세계의 운동선수들이 4년간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올림픽에는 평생을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들이 속출한다. 금메달을 딴 선수들뿐 아니라 안타깝게 메달을 놓친 선수들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감동을 얻고 역경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지만, 참가만을 위해 베이징에 간 선수는 없다. 모든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2030이 말하는 나만의 올림픽 명장면을 모아봤다. ●반전 거듭했던 ‘우생순´ 평생 못 잊어 대학생 장모(23·여)씨는 올림픽 하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여자 핸드볼 결승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강적 덴마크를 만나 두 번에 걸친 연장 접전 끝에 승부 던지기에서 안타깝게 패한 그날의 경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동이 벅차오른다. 장씨는 올해 초 개봉해 전국 400만 관객이 관람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면서 그때의 감동을 새삼 느꼈다. 그는 “금메달보다 더 값진 은메달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멋진 경기를 펼친 선수들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날 이후 장씨는 여자 핸드볼 경기의 팬이 됐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사소한 경기도 꼭 챙겨 봤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여자 선수들은 장씨의 그런 바람을 저버리지 않고, 또 한번 감동 드라마를 연출했다. 지난 9일 베이징 올림픽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개최된 여자핸드볼 조별 예선 1차전에서 한국팀이 세계 최강 러시아를 맞아 29대29로 극적으로 비긴 것. 전반에는 패색이 짙었지만 후반 들어 투혼을 발휘해 무승부를 만들어냈다.“여자 핸드볼은 감동 그 자체예요. 하지만 올림픽 때만 잠깐 빛났다가 이내 시들해지고 마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파요.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자부심을 갖고 매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평소에도 많은 사랑을 보내줬으면 해요.” 회사원 이모(32)씨는 2004년 사격 여자 트랩에서 사상 첫 은·동메달을 목에 건 이보나 선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 불모지였던 트랩경기에서 이보나 선수는 메달을 목에 건 후 ‘감독님이 꼴찌만 면하라고 했는데 뜻밖에 메달을 땄다. 꿈만 같고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던 23살의 앳된 모습이었다.”면서 “자신의 재능보다 노력에 의한 값진 메달이라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 이보나 선수가 어려운 환경에서 학비를 면제해 준다는 이유로 사격을 시작했다는 데서 진한 감동을 받았다. 보통 메달은 4년의 고생이라고 말하는데 이 선수는 10여년의 노력을 보상받은 셈이라는 것이다.“금보다 값진 은·동메달이라는 말을 정말 피부로 느낀 경우였죠. 남들은 은메달이라고 울기도 하는데 방긋 웃는 이보나 선수의 미소가 제 삶의 활력소였습니다.” ●짝사랑하다 우승 순간 부둥켜안고 사랑 확인 회사원 윤모(39)씨는 ‘1992년 8월9일’을 잊지 못한다. 지금의 아내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던 날이기 때문이다. 윤씨는 지난 1992년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는 평소에도 마라톤에 푹 빠져서 생활했다. 뛰는 순간은 근심·걱정을 모두 잊고, 철저히 자신과 마주할 수 있어서였다. 윤씨는 동호회에 첫발을 디딘 순간 한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온몸에 전율이 솟구치며,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후 동호회 활동을 하며 그녀와 자주 마주쳤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 속마음을 내비치지 못했다. 그녀의 주변만 맴돌 뿐이었다. 그러다 역사적인 8월9일을 맞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 따던 날 윤씨는 동호회원들과 함께 동아리방에서 TV 중계를 통해 마라톤 전 과정을 지켜봤다. 황영조 선수가 두 손을 번쩍 쳐들고 결승선 테이프를 끊는 순간, 회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때 처음으로 그녀와 포옹(?)했고,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순간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 그녀도 윤씨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였다.“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당시 아내의 손을 잡은 제 손에 맺혔던 땀방울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황영조 선수의 금메달이 제 인생의 금메달이 되는 순간이었죠.” 회사원 김모(33)씨는 88서울올림픽 때의 탁구를 잊지 못한다. 특히 어린 현정화의 독한 눈매는 이후에도 ‘매의 눈’으로 회자됐고, 동네마다 탁구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탁구 라켓 하나씩은 갖게 됐다. 김씨가 살던 서울 대방동 근처에는 당구장 옆에 꼭 탁구장이 붙어 있었다. 김씨는 특히 당시 양영자, 현정화 조에 아깝게 분패한 중국 자오즈민, 천징 조의 자오즈민과 안재형 커플이 결혼하면서 탁구가 ‘사랑의 메신저’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회상했다. ●역도 장미란 선수 보고 인생의 새계획 세워 회사원 윤모(29·여)씨는 지난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역도의 장미란 선수를 처음으로 봤다. 윤씨는 여자의 몸으로 상상하기도 힘든 무게를 들어올린 장 선수를 보고 인생의 역경을 헤쳐가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외모가 아닌 실력과 자부심으로 우뚝 선 그를 보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을 다한 후 가질 수 있는 ‘힘’을 본 것이다. 윤씨는 당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잇단 취업실패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는 장미란 선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취업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후 1년간 ‘백수’라는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고 각종 광고공모전에 도전해 입상하고,6개월은 대출을 받아 미국에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윤씨는 백수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두려웠지만,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겠다고 결심했고, 현재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스포츠가 존재하는 이유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지금 보면 스포츠는 인생의 축소판이랄까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 장미란 선수의 존재는 특별하죠.” 공무원 최모(33)씨는 88서울올림픽의 육상 100m,200m,400m 계주 우승에 빛나는 ‘트랙의 패션모델’ 그리피스 조이너를 본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최씨는 ‘운동선수는 외모 따위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빠져있었다. 그런 그에게 긴 파마 머리와 알록달록 색칠한 긴 손톱의 여자 육상 선수의 등장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멋부리러 나왔나.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던 그는 단거리 육상경기에서 2위와의 간격을 크게 벌리며 당당히 1등으로 들어온 조이너의 실력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지난 1998년에 그녀는 비록 고인이 됐지만 그녀의 기록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죠. 조이너는 그 말을 역으로 증명한 영웅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운동선수를 운동만 해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훈남´ 문대성 돌려차기 한 방 너무너무 멋져 대학원생 장모(30·여)씨는 아직도 88서울올림픽의 다이빙 스타 그레그 루가니스를 기억한다. 루가니스는 당시 남자 다이빙 경기에서 뒤로 2회전 돌기를 하다가 스프링보드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는 사고를 당하고도 84LA올림픽에 이어 남자 다이빙 2종목을 석권해 큰 감동을 줬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장씨는 그의 투혼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때까지 다이빙의 묘미를 몰랐죠.”라면서 “당시 루가니스의 몸놀림을 보고서야 다이빙이 왜 아름다운 스포츠인지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회사원 권모(25·여)씨는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으로 2004아테네올림픽 태권도의 문대성 선수의 뒤돌려차기를 꼽는다. 문 선수는 전날 온몸을 던진 분전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에 패해 은메달에 그친 여자 핸드볼의 끈끈한 안타까움을 돌려차기 한 방에 날려보낸 것. 권씨가 그를 스타로 꼽는 것은 그가 단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은 아니다.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줬다는 이유도 아니다. 준결승의 다리 부상을 극복하고 투혼을 발휘한 정신력, 승부가 끝난 뒤 패자를 따뜻하게 배려하는 무도정신, 태극기를 펴놓고 무릎 꿇고 기도할 때 보인 뜨거운 애국심 등이 그를 권씨의 스타로 만들었다. 게다가 훤칠한 키에 근육질에 몸매, 서글서글해 보이면서도 강렬한 눈빛까지 문 선수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멀리서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그가 돌아오는 날 인천공항에 갔죠. 인산인해더군요.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어떤 훈남이 등장할지 기대돼요.” 황비웅 김정은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한양대 교수 신영조& 세계적 테너 김우경

    한양대 교수 신영조& 세계적 테너 김우경

    스승과 제자가 한 무대에 선다. 내년 2월 정년을 맞아 33년간의 교직생활을 매듭짓는 신영조(65) 한양대 교수의 정년 기념음악회 ‘신영조와 젊은 그들’에서다. 지난해 세계3대 오페라극장 중 두 곳에서 데뷔식을 치르며 세계적인 테너로 떠오른 제자 김우경(32)씨는 스승의 무대에 서기 위해 지난 3일 뮌헨에서 날아왔다. “솔직히 30년 이상 차이나고 매일 세계무대에 서는 제자들과 한 무대에 서려니 부담스럽죠. 그래도 신영조가 늙긴 했지만 원숙한 맛이 있구나 해주셨으면 합니다.”(신)“어제 제가 긴급입수한 소식인데 선생님께서 요즘 윗몸일으키기에 산까지 타시며 몸을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저희도 게을러서 못하는데 대단하시죠.”(김) 교단에 선 지 올해로 33년째인 신 교수. 그를 거쳐간 학생만도 400여명에 이른다.45년간의 음악인생에서 무대보다 교단에 더 오래 섰던 그는 독일 유학 중이던 1975년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 오디션에 합격했다.33살때의 일이다. 제자 김우경씨처럼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고 싶다는 미련은 없었을까.“당시 유학 온 이후로 5년간 한번도 한국에 가보지 못했는데 오페라 ‘파우스트’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가 왔어요. 공연을 하고 다시 돌아가려 하니, 고 김연준 한양대 이사장이 어딜 가냐며 교수 자리를 제안하셨죠. 그래서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됐어요. 몇년간은 성악의 본고향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갈등이 일었지만 제자들을 두니 여의치가 않더군요. 하지만 지금도 저는 ‘테너 신영조’가 더 좋습니다.”(신) 김우경씨는 지난해 1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입성했다. 소프라노 홍혜경씨와 ‘라 트라비아타’의 주역으로 선 것. 같은해 9월엔 런던의 로열 오페라극장에서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으로 데뷔해 세계 음악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스승은 제자의 철두철미한 자리관리 능력에서 싹을 발견했다고 했다.“4년간 한번도 레슨에 빠지지 않았어요. 물병 하나 가져와 50분간 레슨을 받는데 한번도 시간 안에 끝내지 않고 매일 더 봐달라고 해요. 그러니 유학간 지 7년 만에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런 그도 스승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몰래 성악대회에 나갔을 때다.“당시 음대에서는 선배들이 1,2학년은 초년생이라 해서 콩쿠르에 나가거나 대곡을 연습하는 걸 허용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처음 개최되는 대회가 있기에 욕심이 나서 나갔죠. 갔더니 학교 교수님이 심사위원으로 계셨어요. 이후 선생님께 전화가 20∼30통이 와 있더라고요.‘내 제자 아니다.’하셨죠. 이제 끝났다 싶어 선생님 자택인 삼성동 빌라, 그것도 보이지도 않는 차도 앞에 3시간도 넘게 무릎 꿇고 있었습니다.”(웃음) 이들은 지난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다시 조우했다. 제자가 스승을 손수 초대했다. 스승은 “눈물이 다 났다.”며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으로 꼽았다.“객석에서 우시는 걸 봤어요. 식사하러 가서도 눈가가 글썽글썽하시더라고요.2004년 10월에 극장과 계약을 맺고 처음 전화를 드렸더니 당신도 어안이 벙벙하셔서 반응이 없으세요. 저도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으니까요. 나중에 들으니 학교 교수님들 방마다 두들기고 들어가 자랑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제가 큰 무대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다 선생님 덕분이니 외려 제가 선생님이 자랑스럽죠.” 김우경씨는 로열 오페라극장과 2011년까지 계약을 맺었다. 올 10월 ‘라 보엠’에 이어 2010년에는 ‘장미의 기사’,2011년에는 ‘리골레토’를 공연한다. 올 11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독창회를, 내년 2월에는 도쿄에서 지휘자 정명훈씨와 함께 베르디의 ‘메퀴엠’을 선보일 예정이다. 신 교수는 정년 후에도 후배들에게 물려 주고 싶은 작업에 몰두할 생각이다. 내년에 개최 예정인 ‘한국 가곡 콩쿠르’다.“우리 가곡은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일본의 음악 수준이 가장 높지만 가곡은 우리보다 뒤떨어져 있죠. 외국 성악가들도 참가해 경합할 수 있는 콩쿠르를 만들 생각이에요.”(신)제자도 스승의 생각을 따라간 듯 올 10월에 음반 ‘한국 가곡’을 발매한다.‘얼굴’‘가고파’‘못 잊어’ 등 우리 가곡 13곡을 담았다.“음반제작사에서 처음엔 이태리의 칸초네 등을 제의했는데 제가 다 거절하고 한국 가곡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외국 레이블에서 동양 사람을 데려다가 한국 가곡을 낸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죠. 하지만 옛날부터 ‘그리운 금강산’ 같은 우리 가곡을 부르면 ‘야, 이거 베르디, 푸치니랑 똑같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가곡은 내가 제일 잘 불러야겠다는 생각에 꼭 내고 싶었습니다.”(김) 어느 새 한 마음이 된 스승과 제자의 무대는 2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신 교수의 제자인 소프라노 황신녕·현명희씨, 테너 허영훈씨도 함께 한다.(02)780-5054.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손가락 12개ㆍ발가락 14개’ 인도청년 화제

    세계에서 손가락과 발가락 갯수가 가장 많은 사람이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다. 인도 고아(Goa)주에 사는 하라므 아속 쿰더카(Haramb ashok kumthekar·22)는 각각 12개의 손가락과 14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태어났다. 다섯 개의 손가락 옆에는 5cm가 조금 넘는 크기의 작은 손가락이 하나 더 붙어있다. 그의 발에도 7개의 발가락이 차례로 나 있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세계에서 손가락·발가락 수가 가장 많은 사람’의 이름으로 기네스 기록에 오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협회 측에서 “양 손의 6번째 손가락뼈가 분리되어 있지만 한 개의 손가락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세계 기네스 기록에 오르지 못한 그는 매우 속상해 했지만 최근 인도판 기네스북인 ‘림카 북 오브 레코드’(Limca Book of Records)에 올라 서운함을 달랬다. 모두 합쳐 26개의 손·발가락을 가진 그는 일반인처럼 한 겨울에 장갑을 끼거나 양말을 신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기 때문에 매우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는 26개의 손·발가락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숨기려 하지 않는다. 쿰더카는 “‘다지증’(多指症)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친구들에게 ‘괴물 같다.’는 놀림을 받아왔다.”며 “하지만 난 나의 손과 발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공식적으로 세계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 12개·발가락 13개를 가진 인도의 13살 소년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권상우 “반지 주며 떨면서 프로포즈 했다”

    권상우 “반지 주며 떨면서 프로포즈 했다”

    권상우가 손태영과의 결혼설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권상우는 18일 오후 9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결혼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기사에 나온 손태영과의 결혼설은 사실이다. 손태영과 같이 나와야 하지만 갑작스럽게 기사가 나오고 손태영이 추측성 악성 댓글로 괴로워하고 있어 대신해서 입장을 밝힌다.”고 전했다. 이어 권상우는 “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프로포즈라 화려하진 않지만 반지를 선물로 줬다. 나도 모르게 떨려서 프로포즈를 하면서 울었는데 손태영씨가 절 따뜻하게 안아줬다.”고 말했다. 권상우와 손태영의 결혼설은 17일 한 언론사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며, 이후 결혼 날짜와 장소까지 공개되면서 이들의 결혼설에 힘을 실어왔다. 하지만 결혼설 보도 후 권상우와 손태영 측은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아, 더욱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올해 초 김성수의 소개로 첫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은 이미 양가에서도 둘의 만남을 정식으로 허락 받고 결혼식 날짜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상우와 손태영의 만남은 올 봄부터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졌으나, 손태영이 지난 10월 연인이었던 쿨케이와 결별하면서 “이제는 사랑 자체를 못 믿겠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 더욱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두 사람의 만남이 급진전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또한 권상우는 지난 달 자신의 팬 카페에 “33살이라는 지금 이순간이 행복하다.”며 손태영과의 열애를 내비치기도 했다. 권상우ㆍ손태영 커플은 오는 9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야외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더욱이 이곳은 손태영의 친언니인 손혜임이 이루마와 결혼을 올렸던 장소이기도 해 의미가 깊다.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 / 사진=한윤종,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권상우 “손태영은 내 마음의 안식처 같은 여자”

    권상우 “손태영은 내 마음의 안식처 같은 여자”

    톱스타 권상우가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손태영과의 결혼 보도가 사실임을 전했다. 권상우는 18일 오후 9시 서울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결혼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9월 28일 결혼은 사실이고 사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권상우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 하면서 “아버지를 빨리 잃어서 조금 불우한 생활을 했다.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며 “손태영은 내 마음의 안식처 같은 여자”라고 사랑을 내비쳤다. 권상우와 손태영의 결혼설은 17일 한 언론사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며, 이후 결혼 날짜와 장소까지 공개되면서 이들의 결혼설에 힘을 실어왔다. 하지만 결혼설 보도 후 권상우와 손태영 측은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아, 더욱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올해 초 김성수의 소개로 첫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은 이미 양가에서도 둘의 만남을 정식으로 허락 받고 결혼식 날짜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상우와 손태영의 만남은 올 봄부터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졌으나, 손태영이 지난 10월 연인이었던 쿨케이와 결별하면서 “이제는 사랑 자체를 못 믿겠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 더욱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두 사람의 만남이 급진전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또한 권상우는 지난 달 자신의 팬 카페에 “33살이라는 지금 이순간이 행복하다.”며 손태영과의 열애를 내비치기도 했다. 권상우ㆍ손태영 커플은 오는 9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야외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더욱이 이곳은 손태영의 친언니인 손혜임이 이루마와 결혼을 올렸던 장소이기도 더욱 의미가 깊다.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 / 사진=한윤종,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권상우 “손태영과 호주에서 사랑을 맹세했다”

    권상우 “손태영과 호주에서 사랑을 맹세했다”

    톱스타 권상우가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손태영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전했다. 권상우는 18일 오후 9시 서울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결혼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진을 만나 “손태영을 사랑하고 있고 그녀는 내 마음의 안식처 같은 사람”이라고 전했다. ‘손태영을 가족에게 소개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권상우는 “어른들은 모두 신중하신 성격이기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손태영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가족에게 소개했다.”고 피앙세 손태영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전했다. 이날 권상우는 “호주 여행에서 말없이 열기구를 타고 ‘사랑을 키워나가자’고 말하면서 사랑을 맹세했다.”고 말하며 “나는 아직 로맨틱한 사람인 것 같다.”고 부끄러운 고백을 말하기도 했다. 올해 초 김성수의 소개로 첫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은 이미 양가에서도 둘의 만남을 정식으로 허락 받고 결혼식 날짜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상우와 손태영의 만남은 올 봄부터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졌으나, 손태영이 지난 10월 연인이었던 쿨케이와 결별하면서 “이제는 사랑 자체를 못 믿겠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 더욱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두 사람의 만남이 급진전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또한 권상우는 지난 달 자신의 팬 카페에 “33살이라는 지금 이순간이 행복하다.”며 손태영과의 열애를 내비치기도 했다. 권상우ㆍ손태영 커플은 오는 9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야외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더욱이 이곳은 손태영의 친언니인 손혜임이 이루마와 결혼을 올렸던 장소이기도 더욱 의미가 깊다.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 / 사진=한윤종,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권상우, ‘손태영 임신설’에는 묵묵부답

    권상우, ‘손태영 임신설’에는 묵묵부답

    권상우가 피앙세 손태영의 임신설에 대해서는 공식 답변을 피했다. 권상우는 18일 오후 9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결혼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손태영과의 열애설은 모두 사실이다. 9월 28일 결혼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날 권상우는 약 15분 동안 준비해 온 입장을 밝힌 후 취재진과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서 최근 불거진 손태영의 임신설에 대해서는 끝내 답변하지 않은 채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권상우와 손태영의 만남은 올 봄부터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졌으나, 손태영이 지난 10월 연인이었던 쿨케이와 결별하면서 “이제는 사랑 자체를 못 믿겠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 더욱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두 사람의 만남이 급진전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또한 권상우는 지난 달 자신의 팬 카페에 “33살이라는 지금 이순간이 행복하다.”며 손태영과의 열애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17일 결혼설이 알려지자 ‘손태영 임신설’등 권상우와 손태영의 결혼 이유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을 답한 권상우가 손태영의 임신설에 대해서는 일체 답변을 남기지 않아 그 증폭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한편 권상우ㆍ손태영 커플은 오는 9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야외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더욱이 이곳은 손태영의 친언니인 손혜임이 이루마와 결혼을 올렸던 장소이기도 더욱 의미가 깊다.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 / 사진=한윤종,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권상우-손태영, 9월 28일 신라호텔에서 화촉

    권상우-손태영, 9월 28일 신라호텔에서 화촉

    또 한쌍의 ‘선남선녀 커플’인 한류스타 권상우(32)와 미스코리아출신 탤런트 손태영(28)이 오는 9월 28일 결혼한다. 결혼식 장소는 지난해 손태영의 친언니 미스코리아 손혜임과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결혼했던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야외식장으로 자매가 같은 곳에서 연이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경사를 맞게 됐다.  두 사람을 잘 아는 연예계 관계자는 17일 “권상우와 손태영이 올 초부터 조심스럽게 만남을 가져왔다”면서 “이미 양가에서도 둘의 만남을 정식으로 허락한 상태로 지난 달 결혼을 결심했다. 최근 상견례를 한 뒤 9월 28일로 결혼 날짜를 정했고, 손태영의 언니 손혜임씨가 결혼식을 올렸던 같은 장소에 예약을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으로 연예계는 또 한쌍의 연예계 톱스타 부부의 탄생을 축하하는 분위기다. 지난 6일 ‘국민MC’ 유재석과 MBC 아나운서 나경은의 결혼에 이은 연예계의 큰 경사다.  두 사람은 올해 초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한 저녁 자리에 우연히 합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었고,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둘다 결혼 적령기인데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결혼 결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권상우는 올초 개봉한 영화 ‘숙명’ 홍보차 가진 인터뷰에서 “나를 사랑하고 믿음을 주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 만나서 느낌이 강하게 오고 타이밍도 맞다면 결혼을 할 수도 있다”며 “서른다섯살 이전에 결혼을 하고 싶다. 빨리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사실 권상우와 손태영의 만남은 올 봄부터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돼왔다. 다만 두 사람의 나이가 아직 한창 활동할 시기고, 실제로 각자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었던 터라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두 사람의 만남이 급진전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고, 양가에서도 이미 두 사람의 만남을 허락해 온 터라 결혼 날짜를 신속하게 정했다.  권상우를 잘 아는 한 측근은 “두 사람 사이에 믿음이 강하다”면서 “권상우씨 어머니 역시 손태영의 어른을 공경하는 사려깊은 마음씨에 일찌감치 교제를 허락했을 정도로 둘의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상우는 특히 지난 달 자신의 팬 카페에 근황을 전하면서 “저는 행복합니다. 33살이라는 지금 이순간이… 행복합니다”라며 요즘의 행복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주위의 시선을 피해 주로 손태영의 집에서 데이트를 즐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손태영 역시 요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손태영의 한 측근 역시 “두 사람이 오랜 기간 연애를 해오지 않았지만, 올 초부터 만남을 가지면서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로 서로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갖고있다”면서 “권상우의 믿음직스럽고 자상함에 많은 의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 남혜연기자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종합) 권상우 “열기구 속에서 손태영에 사랑맹세”

    (종합) 권상우 “열기구 속에서 손태영에 사랑맹세”

    톱스타 권상우가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손태영과의 결혼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9월 28일 결혼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전했다. 권상우는 18일 오후 9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결혼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어려서부터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손태영은 내 마음의 안식처 같은 여자”라고 손태영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손태영과의 첫 만남에 대해 “사실 같이 작품을 한 적이 없어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한 오락프로그램에서 손태영이 우는 모습을 보고 참 순수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 권상우는 “그러다 김성수씨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다.”고 첫 만남을 회상했다. 권상우와 손태영의 데이트는 여느 일반인과 다르게 두 사람을 바쁜 스케줄 탓에 순탄치 못했다고 한다. 권상우는 “데이트는 항상 차안에서 했다.”며 “할 이야기 또한 편지로 주고 받을 정도”라고 말하며 웃음 짓기도 했다. 이어 권상우는 ‘손태영을 가족에게 소개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른들은 모두 신중하신 성격이기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손태영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가족에게 소개했다.”고 피앙세 손태영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손태영에 대한 프로포즈 과정을 “반지를 손에 끼워주면서 했다.”고 밝힌 권상우는 “호주 여행에서 말없이 열기구를 타고 ‘사랑을 키워나가자’고 말하면서 사랑을 맹세했다.”고 말하며 “나는 아직 로맨틱한 사람인 것 같다.”며 부끄럽게 웃음지었다. 약 15분여의 기자회견을 통해 손태영과의 결혼 사실과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알린 권상우는 “이제는 정말 성인이 된 기분”이라고 기자회견을 끝내는 소감을 대신했다. 하지만 결혼 전 불거졌던 손태영의 임신설에 대해서는 끝내 대답하지 않아 의혹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권상우와 손태영의 만남은 올 봄부터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졌으나, 손태영이 지난 10월 연인이었던 쿨케이와 결별하면서 “이제는 사랑 자체를 못 믿겠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 더욱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두 사람의 만남이 급진전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또한 권상우는 지난 달 자신의 팬 카페에 “33살이라는 지금 이순간이 행복하다.”며 손태영과의 열애를 내비치기도 했다. 권상우ㆍ손태영 커플은 오는 9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의 야외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더욱이 이곳은 손태영의 친언니인 손혜임이 이루마와 결혼을 올렸던 장소이기도 더욱 의미가 깊다.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 / 사진=한윤종,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5일 TV 하이라이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30분) 평소에는 마냥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3살배기지만 외출만 하려고 하면 180도로 돌변하는 아이. 집 밖을 나가지 않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방콕 공주’는 엄마가 외출복만 입어도 울고불고 난리법석을 떤다. 외출이 싫다고 필사 저항하는 독특한 3살배기를 엿보고 해결방법을 모색해 본다.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3년 전, 남편 정용씨와 나영, 재호를 가슴으로 품게 된 엠마씨. 다문화 재혼가정이기에 어색함을 이겨내기는 첫 만남에서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다문화 인형극을 통해 달라졌다. 남편의 배려와 함께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 아이들. 날마다 웃음꽃 피어가는 엠마 가족의 행복한 오늘을 들여다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단체생활과 협동심을 중요시 여기는 일본의 유치원. 일본의 어린이들이 유치원에서 배운 연극을 부모님과 선생님 앞에서 선보인다. 해마다 열리는 연극축제일이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은 연습에 한창이다. 축제는 크게 뮤지컬과 연극으로 나뉘는데 일본 민간설화가 가장 인기가 있다.   ●클래식 오디세이(KBS2 밤 12시45분) 현악 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멤버 전원이 국내외 다양한 입상 경력과 해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실력을 갖추고 있다. 각자는 또 솔리스트로도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실내악 활성화에 자극제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친다. 네 명이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노부스 콰르텟’의 음악이야기를 들어본다.   ●춘자네 경사났네(MBC 오후 8시20분) 태삼의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은 주혁은 결국 참석하지 못한다. 미안하다며 참석 못하게 된 이유를 나중에 밝히겠다는 주혁에게서 정연은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한편, 복심을 비롯한 식구들은 태삼의 생일잔치에 온 대팔에게 호의적으로 대한다. 태삼이 대팔에게 삼숙과 진지하게 교제해 볼 것을 권유하는데….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마다가스카르 서부의 조용한 해안가 마을 모론다바. 마을엔 바오밥 나무를 그리는 화가와 바오밥 나무로 표현하는 조각가가 있다. 주민들은 바오밥 열매로 음료와 기름을 만들고 줄기로는 밧줄을 만든다. 주민들에게 바오밥은 단지 기이한 모양의 일개 나무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주는 커다란 존재와 다름없다.
  • 뮤지컬 신작 3편 3색 관전포인트

    뮤지컬 신작 3편 3색 관전포인트

    올 여름 국내 뮤지컬 시장은 신진세력과 구세력의 춘추천국시대라고 할 만하다. ‘맨오브라만차’ ‘시카고’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입증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쏟아진다. 그런 한편 개성과 정통성을 갖춘 신작의 공세가 거세다. 쟁쟁한 재공연과 대결 구도를 이룰 신작 세 편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 본다. ●브로드웨이에서 뜨는 작곡가 라키우사의 초연작 ‘씨왓아이워너씨’ 1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는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8월24일까지)는 사면에 객석을 두고 시작한다. 무대에서 6m 위 고정틀에 드리워진 흰 천이 걷히면 무사와 그의 아내가 등장한다. 브로드웨이에서 최근 주목받는 작곡가,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2005년 초연작인 ‘씨왓아이워너씨’는 일본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세 편을 모은 작품이다.‘덤불 속에서’ ‘용’ ‘케사와 모리토’를 재료로 해 2000년대 뉴욕 센트럴파크로 배경을 옮겼다. 남편은 아내가 겁탈당하는 장면을 본 뒤 죽고, 여자는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한다. 강도는 자신이 살인범이라 주장한다.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과 그들이 말하는 ‘서로 다른 진실’이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어려운 주제를 던진다. 묵직하면서도 때로는 현란하고 날카롭게 신경을 그어대는 피아노와 관악기의 선율이 감정선을 세게 죄어온다. 무대 바닥과 사면에는 영상이 설치돼 시공간의 변화에 입체감을 더한다. ●버나드 쇼의 연극 ‘피그말리온´ 원작으로 하는 ‘마이페어레이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가 무대에서도 통할까.‘마이페어레이디’(8월22일~9월14일·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꽃 파는 처녀 일라이저가 사교계 공주로 떠오르는 신분상승을 그린 뮤지컬.1956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첫 선을 보인 뒤 1964년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동명영화로 더 인기를 얻었다. 버나드 쇼의 연극 ‘피그말리온’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히트곡이 많은 뮤지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뮤지컬평론가 조용신씨는 “격조 있는 세트와 화려한 의상으로 50년대 영국 상류사회를 간접체험하게 해주는 작품”이라면서 “다만 당시 영국사회의 신분 차이를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진행된 TV 공개 오디션에서 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주인공 일라이저 역에 뽑힌 신인의 역량도 관심거리다. ●영화와는 어떻게 다를까?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시골 학교에 막 부임한 23살 선생님과 열여섯 늦깎이 학생 홍연이의 수줍은 사랑을 담은 영화 ‘내 마음의 풍금’(22일∼9월11일·호암아트홀)이 뮤지컬로 다시 고개를 내민다. 창작 뮤지컬은 음악 문제가 항상 고질병으로 지적됐으나 이 작품에서는 음악에 대한 기대가 높다.‘명성황후’ ‘맘마미아’ 등 대작 뮤지컬의 음악감독을 도맡아온 김문정 감독이 직접 작곡한 7개의 곡을 선보이기 때문. 총각선생님을 연기할 오만석, 조정석의 각기 다른 연기 색깔을 비교해 보는 것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제작사인 쇼틱커뮤니케이션즈의 김종헌 대표는 “갓 부임한 총각선생의 풋풋한 느낌을 살려 내는 조정석의 상큼함과 어린 제자와의 로맨스를 그려내는 오만석의 능수능란함이 비교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털복숭이’ 일가족 4명 中서 화제

    최근 중국에 사는 ‘털보 일가족’이 매스컴에 소개돼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광둥(廣東)성 허위안(河源)에 사는 원(文)씨 가족은 일명 ‘털보가족’으로 유명하다. 온 얼굴과 몸이 일반인보다 더 많은 털로 뒤덮여 있기 때문. 이 가족은 ‘선천성 다모증’이라는 희귀 병을 앓고 있으며 대대로 유전된 탓에 지금까지 다모증을 가진 가족만 9명에 달한다. 현재 가족 중에는 최고령자인 원씨 할아버지를 비롯해 아들·딸·그리고 쌍둥이 손자 중 한명까지 총 4명이 다모증을 앓고 있으며 그 중 가장 심한 사람은 3살 난 쌍둥이 손자. 이 아이는 얼굴 뿐 아니라 팔과 다리에도 하루가 다르게 많은 털이 자라나고 있어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검은색 털로 뒤덮여 있었다. 현재 털 길이는 약 4cm정도 된다.”며 “아이가 털 때문에 사람들의 무시를 받거나 손가락질을 받을 때면 매우 속상하다.”고 말했다. 특이한 것은 쌍둥이 손자 두 명 중 한 명만 다모증에 걸린 채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원씨의 아들은 “공부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면서 “(다모증 때문에)일자리를 구할 때도 매번 거절당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편 이들을 진찰한 선전(深圳)시 병원의 한 의사는 “일가족 전체가 유전적인 다모증을 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면서 “특히 3살 된 어린아이는 상태가 심각하지만 아직 너무 어려 치료가 불가능하다 15세 이후부터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친조카의 칼맞은 정구파(精九派)스님

    친조카의 칼맞은 정구파(精九派)스님

    대처승이 조카 자식을 상대로 8년동안 「호모·섹스」를 강요하다 마침내 그 조카 칼에 맞아 피투성이가 됐다. 16살에 고아가 되어 삼촌인 그 대처승에게 맡겨져 밤마다 시달려 오던 끝에 칼을 휘둘렀다는 조카가 경찰에서 털어놓은 사연은-. “떠들면 쫓아내 버릴테다” 한밤중에 온 작은아버지 9월12일 하오 1시쯤 서울시내 영등포 봉천동 ○○사 법당에서 주지스님 하(河)준정씨(40·가명)가 피를 흘리며 뒹굴었다. 겨드랑이와 등허리, 손바닥등 모두 7군데에 칼을 맞고 중상을 입은 하스님은 곧 이웃 H의원으로 옮겨졌고 가해자로 조카 하모군(23)이 잡혀 노량진경찰서에 구속됐다. 『죽이려고 그랬읍니다. 그런 놈은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 하군은 취조관에게 거침없이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하군은 하스님의 친조카인데다 천애고아로 하스님이 부모나 다름없이 길러온 처지. 취조관앞에서 털어놓은 하군의 범행사연은- 하군의 고향은 충북(忠北) 괴산(槐山). 3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16살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졌다.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인 하군은 유산이라곤 땅 1마지기도 이어받지 못했다. 별수 없이 작은 아버지인 하스님이 그의 양육을 떠맡을 수밖에. 친척가운데 가장 가까운 일가이기도 했고, 주지스님이어서 비교적 살림이 윤택했던 때문. 당시 하스님은 충북 괴산에 있는 ○○사의 주지스님. 『절의 잔심부름을 해주고 얻어먹고 살게 됐어요. 절 밖에 있는 살림집에는 방이 2간이었어요. 저 혼자 사랑채에서 자곤 했지요』 며칠이 지난 어느날 깊이 잠든 하군은 야릇한 움직임에 눈을 떴다. 누군가 어둠속에서 그를 발가벗겨 놓고, 그의 「심벌」을 잔뜩 움켜 쥐고 있었다. 엉겁결에 놀라 일어나려 하자 우악스런 손이 입을 틀어 막았다. 『조용히 있어. 떠들면 쫓아버릴테야. 그러면 거지가 되고 마는 거야』-작은 아버지의 위협에 하군은 힘을 잃고 말았다. 그의 큰손이 이윽고 하군의 손을 잡아 당겨 자기의 사타구니로 끌고갔다. 하군은 미처 자위행위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손을 놀렸다. 『처음엔 멋모르고 시키는대로 했는데 갈수록 더욱 이상해 져요. 전신을 만지게 하고 정말 죽기보다 싫었어요』 차차 하군은 작은 아버지가 징그러운 짐승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밤이되면 사형장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으로 견딜 수 없었다. 『초저녁부터 다투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실랑이를 벌일때가 하루 건너 한번씩 있었어요. 밤새도록 저를 벗기려는 작은 아버지와 싫다고 피하는 저는 죽자하고 싸웠지요』 도망쳤다간 또 잡혀오고 7년동안을 생지옥 생활 결국 견디다 못한 그는 18살 되던 1962년 봄,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체하고 절을 뛰쳐나와 천안의 외가로 줄행랑. 그러나 그의 행방을 쫓던 스님에게 불과 두달만에 잡히고 말았다. 『그때 외할머니에게 저의 사정을 얘기했으면 될텐데. 저는 만약 제가 그런 소리를 하면 작은 아버지 체면도 있고 친척들이 소동을 일으킬까봐 말을 못하고 끌려 갔어요』 하스님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기가 공부시켜 주려했는데, 공부를 싫어해 집을 뛰쳐 나왔다고 둘러댔다는 것. 그러나 그해 겨울, 하군은 다시 절을 도망쳐 무작정 상경, 남대문 근처에서 구두닦이로 벌어 먹었다. 『63년 봄에 우연히 길가에서 사촌형을 만났지요. 사촌형도 제가 공부하기 싫어서 나온줄 알고 작은 아비지에게 연락을 했어요』 그때 하스님은 청주시 수동의 ○○사로 옮긴뒤였다. 연락을 받은 즉시 상경한 그는 『책임지고 공부시킨다』며 하군을 다시 데려갔다. 이번에는「호모·섹스」의 방식이 진일보, 더욱 하군을 못살게 굴었다. 그달도 채못가 견디다못한 하군은 ○○사를 탈출, 서울의 영등포구 구로동 외삼촌 집으로 도망쳤다. 『그때 처음으로 외삼촌에게 제가 당한 고역을 고백했읍니다. 외삼촌은 그럴 수 없다면서 모두 때려 부수겠다고 작은 아버지를 찾아가 싸웠죠』 그러나 작은 아버지는 『조카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다. 공부하기 싫으니 되레 뒤집어 씌운다』고 펄쩍뛰더라는 것. “고아된 몸 키워줬다지만 이젠 죽어도 더는 못참아” 『그러면 그렇지 그럴수가 있나』라고 생각한 외삼촌에게 실컷 꾸중만 들은 하군은 또다시 작은 아버지에게 맡겨졌다. 그후에도 공주 갑사로 도망치기도 했고, 부산으로 도망치기도 했으며, 청주의 매형에게도 가있었다. 그때마다 작은 아버지는 끈덕지게 수소문해서 하군의 거처를 알아내고 악착같이 그를 데려갔다. 이러는 동안 친척들이 모두 내용을 알게됐고 작은 어머니 마저도 사실을 알게됐다. 『충주 매형에게 있으면서 자동차학원에 들어가 운전기술을 배웠어요.화물차 조수로 취직해서 그런대로 생활을 했는데, 작년에 작은 아버지가 저의 숨어있는 곳을 알아내고 찾아 왔읍니다』 하스님은 매형에게 정중히 사과하며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맹세까지 했다. 스님의 정성스러운 태도에 넘어간 매형이 하군을 『작은 아버님이 마음을 잡았으니까 돌아가라』고 권했다. 결국 매형의 권유를 따라 서울에 올라왔다. 『여전했읍니다. 그러나 이젠 다 컸으니까 만만하게 응하지 않았지요. 1주일만에 뛰쳐 나와 다시 충주에서 취직했읍니다』 사건이 나기 1주일전, 매형집에 들렀다가 작은 아버지가 편지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선량한 매형까지 괴롭히려는 작은 아버지를 죽이려고 결심한 것은 이때였다고. 그래서 지난 6월12일 아침 충주를 떠나 서울에 와 칼을 사들고 봉천동 ○○사에 뛰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게 짐승이지 사람입니까? 16살때부터 그렇게 악착같이 저의 뒤를 쫓아다니며 추악한 짓을 해온 작은아버지가…』 삿대질까지 하며 지긋지긋한 악몽의 7년을 연상하는 듯 그는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이러한 경우 법은 그에게 과연 어떤 형벌을 내릴것인가? <식(植)> [선데이서울 71년 9월 26일호 제4권 38호 통권 제 155호]
  • “여자싫다는 남자봤수?”

    “여자싫다는 남자봤수?”

    한국에선「플레이·보이」자격 조건으로「능란한 춤솜씨」는 필수불가결 한데「스텝」한번 밟아본 일이 없는 국민학교 졸업의 34살짜리 법률상의 총각이 저 유명한「카사노바」경이 무색하게 닥치는대로 엽색 행각을 다니다 들통났다.「여자에 관한한 묻지말라」는 이「챔피언·플레이·보이」의 수법은 어떤 것일까. 13살때 “짝사랑” 여학생 꾀다가 정학당해 대전(大田)경찰서 조사계에서는 비교적 말쑥하게 차린 30대 청년이『남자로 태어나 여자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느냐』는 말을 서두로, 묻기전에 자진하여 자기의 과거를 전부 털어놓은 진풍경이 벌어졌다. 취조경찰관들은 일손을 멈추고 흥미진진한 그의「여성편력」에 시간가는줄 몰랐을정도. 이야기의 장본인은 전북 고창(全北 高敞)군 심원면에서 태어나 겨우 국민학교만을 졸업하고 전국을 무대로 엽색행각을 해오다 지난 7월 최종열(崔鍾烈)여인(32·대전시 석교동)으로부터 사기혐의로 피소, 대전경찰서에 구속돼 취조를 받고있는 현종무(玄鍾武·34·주거부정)라는 사나이. 현은 가난한 농촌의 집안에 태어나 11살에서야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7~8살의 어린이들과 책상을 맞대고 공부를 하던 당시 현은 어린 여학생을 어쩐지 좋아했고, 13살땐 같은 반 여학생을 변소로 끌고 다니다 정학까지 당했을만큼 성적으로 조숙했다는 것. 졸업때인 17살 당시는 술에 취하여 여학생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이 일과였었다고. 이렇게 일찌기 난봉꾼 소질을 보인 그는 농사 일에는 전혀 취미가 없어 빈둥거리다가 국민학교를 나온 2년후인 19살때 육군에 지원입대했다. 그러나 선천적인(?) 호색가로 태어났던지 현의 여성편력은 엄격한 병영 생활에서도 고쳐지지 않았던 모양. 직업군인으로 들어가 2년만에 중사계급장을 달게된 그는 부대근방의 처녀, 과부들에 손을 뻗치기 시작해 닥치는대로 정력을 발휘, 군대생활 12년동안「결혼빙자 간음 및 근무이탈」로 계급의 강등은 물론 5회에 걸쳐 군부대영창을 출입한 혁혁한 기록을 남기고 4년전 제대했다는 것. 고향에 돌아온 현은 농사일이 죽기보다 더 싫었다. 생각다못한 그는 군에 있을때 여인들을 꾀어본 화려한 과거를 밑천으로 새로운「여자낚기작전」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농사는 싫고 여자는 좋고 당한 여인도 “테크닉” 인정 군대생활에서 마련한 양복을 다려입고「트렁크」에 간단한 필수품을 챙긴채 서울로 무작정 올라갔다. 몇푼안되는 돈도 하숙비로 써버리고 거리로 나서야할 딱한 처지에 놓였던 67년5월 어느날, 우연히도 길거리에서 군에 있을때 사귀었던 이(李)모여인(31·서울종로구 권농동)을 만났다. 현에게는 먹기좋은 먹이를 만난셈. 능란한 화술로 이여인을 꾀고 달랜 현씨는 하숙을 옮겼고, 세관에 취직한다는 명목으로 여러차례에 걸쳐 무려 50여만원을 우려내는데 성공했다. 이 돈을 군자금으로 다방,「바」「카바레」등을 돌면서 여인사냥에 가장 분주할 무렵인 68년9월, 이같은 사실을 눈치챈 이여인이 혼인빙자간음 및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서울형사지법은 6개월징역실형을 선고했다.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 현은 무대를 지방으로 옮기기로 하고 부산(釜山), 대구(大邱)를 거쳐 70년10월 대전에 도착, 시내 석교동 최여인집 인근에 하숙방을 정했다. 대상을 찾던 작년12월 중순께 옆집에 살고있는 최여인이 인삼을 팔아 제법 돈도 많이 갖고 있으며 과부라는 것을 알게되자 접근하기 시작했다.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철학을 갖고있는 현의 달콤한 속삭임은 최여인의 마음을 돌리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대전역앞 S하숙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됐다. 5년동안 과부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지못한 최여인은 현의 뛰어난 성적 기교에 완전히 녹았다. 경찰의 참고인 진술에서 최여인은 『손끝 발끝까지 마디마디 짜릿한 쾌감으로 밤 가는줄 몰랐다』고 고백, 현의 뛰어난「섹스·테크닉」을 입증. 『결혼하자』는 꾐에 빠져 그녀는 하루가 멀다하고 현을 만나 대전시 중동 무허가하숙집등을 전전하면서 성의 향락을 만끽하고있던 어느날 밤이불속에서 묘한 말이 나왔다. 하룻밤에 2여인을 상대 “후회않는다”며 기고만장 현은 그녀를 포옹하면서『내가 잘못했소』하고 말문을 열기 시작, 고향에는 자기가 10년전에 결혼한 아내가 있다고 말하고 아내와는 결혼당시부터 정이 없어 서로가 이혼하기로 완전합의를 봤는데 자기처럼 불행한 사람이 없을거라고 그럴싸하게 과거를 설명해 내려갔다. 고향에 있는 아내와는 중매결혼이어서 부모들이 이혼을 결사반대, 결국 직장도 버리고 집을 나왔는데 이혼수속을 할 비용이 없으니 1만5천원만 주면 이혼을 하고 최여인과의 혼인신고를 올리겠다는 것이 그 내용. 최여인은 현의 그럴싸한 꾐에 선뜻 가방속에서 1만5천원을 내줬다. 돈을 받아든 현은 다음날부터 역앞 S다방 Y양과 P다방 K양등 두 아가씨를 사귀기 시작했고 서울 H여대 K양(20)도 알게 됐다. 숱한 여자들을 상대하다보니 얄팍한 연애자금이 달리게된 현은 최여인에게 이혼수속비로 2만원을 더 뜯어 냈다. 다시 이 돈으로 3여인을 섭렵, 어떤땐 하룻밤에 한꺼번에 2명의 여인을 상대하는 아슬아슬한 곡예을 계속하기도 했다. 또 며칠이 안가 빈호주머니가 된 현은 K양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돈을 우려내기 시작했고, 지난 5월10일 다시 최여인에게 놀고만 있을 수 없어 세무서에 취직을 하기로 했는데 술대접해야 되겠다고 2만원을 받아 갔다. 2만원으로 3일동안 흠뻑「섹스·파티」를 즐긴 현은 최여인에게 D세무서에 취직이 돼 3개월간 교육을 받아야하는데 교육을 받으려면 9만원은 있어야 되겠다고 요구했다. 인삼장사 밑천을 톡톡털어 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7월말께 대전역앞을 우연히 지나가던 최여인은 현이 어여쁜「미니」차림의 아가씨와 다정하게 걸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당장에 쓰러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현이 갈만한 곳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지 5일만에 대전시 원동 무허가 하숙집에서 Y모양(23)과 함께 잠을 자는 그를 찾아냈고,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잡아 대전경찰서로 끌고와 고소를 하게된 것. 그러나 현은 여인의 돈을 뜯어 여자를 사귀어온 자기의 과거를 하나도 숨김없이 털어 놓으며, 오히려「걸·헌팅」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려는듯 후회의 빛이없다. <대전=김앙섭(金昻燮)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9월 12일호 제4권 36호 통권 제 153호]
  • 유건 “임예진 선배님과 키스신 편하게 촬영”

    유건 “임예진 선배님과 키스신 편하게 촬영”

    배우 유건이 영화 ‘무림 여대생’을 통해 23살 연상인 임예진과 키스신에 도전했다. 유건은 16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용산 CGV에서 열린 영화 ‘무림 여대생’(감독 곽재용, 제작 영화사 파랑새)의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극 중 임예진과 애정신을 찍은 소감을 밝혔다. 극 중 아이스하키부 에이스이자 고독한 킹카 ‘준모’역을 맡은 유건은 연상녀 경찰 임예진과 애틋한 사랑 연기 뿐만 아니라 기습 키스까지 감행한다. 유건은 “사실 임예진 선배님이 어머니와 닮아서 심적으로 편했다. 촬영하면서 어려운 점보다는 워낙 편하게 해주셔서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유건은 이어 ”정말 연상녀를 좋아하려면 이 정도는 사랑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실제로 연상녀를 사랑하라면 조금은 힘들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2008년 현실과 공존하는 무림을 배경으로 여대생이 된 무림고수가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강호 최대의 위기에 뛰어드는 내용을 담은 로맨틱 액션 코미디 ‘무림 여대생’은 2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 / 사진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원더걸스와의 수다②] “불화설? 색안경 끼고 보지 마세요”

    [원더걸스와의 수다②] “불화설? 색안경 끼고 보지 마세요”

    “불화설? 색안경 끼고 보지 마세요!” -데뷔한지 벌써 1년 반이다. 작년과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유빈)가장 달라진게…내가 원더걸스가 된 것? (웃음) 너무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내가 하고 싶은 춤과 노래를 할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도 너무 감사하다. (예은)작년…그때는 스케줄도 많았고 그런 것에 쫓겨가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유가 생긴걸 느낀다. (선미)처음 데뷔했을 때 보다 나 자신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처음엔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다. 선예 언니에게 ‘나는 뭘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다. (선예)내가 그때 선미한테 ‘질풍노도’라는 말을 자주 했다. 청소년기의 특징…(웃음) (선미)어쨌든! 그렇게 내가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있는데 무대 위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나 자신이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까’하는 걸 알게 됐고 불 분명한 그런 것이 사라졌다. (소희)지금도 신인이고 나이도 어리지만 조금 성숙해 진 것 같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활동하고 휴식하고 하다 보니 멤버들 사이에서도 더 끈끈해 지고 그런 것 같다. (선예)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이렇게 나 자신이 변할 수 있구나 하는걸 요즘 느낀다. 연습생 시절부터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그냥 막연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멤버들 5명이 뭉쳐서 노력하면 안될 건 없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멤버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소희가 정말 왕따인가? (소희)아니다. 다만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친해지면 말도 많이 하고 그런다. (선예)다들 그런걸 많이 물으시는데 멤버들 마다 성격이 다른 거고 조용한 사람이 있고 활발한 사람이 있는 것뿐이다. 우리도 어린 나이지만 동생들(선미, 소희)과 3살 차이가 나기에 가끔 ‘어리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 두 살 차이 나는 멤버들이라면 서운하고 그런 일이 많을 텐데, 동생들이고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기에 요즘은 많이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 멤버간 불화설, 왕따설 모두 우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라 생각한다. (예은)정말 친하게 지낸다. 동생들은 언니라 말을 잘 듣고 우리는 동생들에게 먹고 싶은 것도 먹이고 챙겨주고 한다. 나쁜 색안경을 끼고 보면 콩도 팥으로 보이고 쌀밥도 보리밥으로 보일 텐데…정작 우린 멤버간에 불화, 왕따 이런 것 없다. (멤버 전원 박수) (유빈)동생. 동생 하니깐 생각나는데 나하고는 4살 차이네…세대 차이나 안 느꼈으면… (선예)지금도 느끼면서……(멤버 전원 웃음) 3편에 계속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 /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전헤진, TV소설 ‘큰언니’로 2년만에 복귀

    전헤진, TV소설 ‘큰언니’로 2년만에 복귀

    탤런트 전혜진이 2년 만에 KBS 1TV 아침드라마 TV소설 ‘큰언니’(극본 이세영, 연출 홍성덕)로 브라운관에 컴백한다. 전혜진은 이번 드라마에서 13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대신해 두 동생들을 돌보며 헌신하는 큰언니 송인옥 역을 맡았다. 5일 오후 1시 수원의 한 식당에서 취재진과 만난 전혜진은 “지난 2월 부친상으로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할 때 시놉이 들어왔다.”며 “당분간 작품 활동을 쉬고 싶었지만 이번 작품을 하면서 치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출연 소감을 전했다. 또한 전혜진은 “직접 동대문에 가서 소품을 준비했다.”며 “60년대 이야기를 그린 시대극인만큼 머리핀에서부터 신발, 가방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밝혔다. 한편 그동안 화려한 주인공 역할만 맡았던 전혜진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색다른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에 대해 프로그램 제작을 맡은 정해룡 CP는 “그동안 전혜진이 미녀 탤런트로 불리며 화려한 모습만 보여줬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친숙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TV소설 ‘큰언니’는 전혜진 이외에도 오승은, 정다영 등이 출연하며 오는 9일 오전 7시 50분 첫 방송된다. 사진 = KBS 서울신문 NTN 서미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지대현씨 영어 공부 비결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지대현씨 영어 공부 비결

    “중·고등학교 때도 수업시간 말고는 영어공부를 따로 안 했어요. 잘 해서가 아니고 영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이제는 한·영 통역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으니 좀 이상하죠.” 지대현(31)씨는 올해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했다. 누구나 짐작하듯 그는 최고 수준의 영어실력을 갖췄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지씨는 전형적인 ‘늦깎이’ 학생이다. 제대로 영어공부를 시작한 게 23살 때부터다. 학교 때 전공(연세대 사회·문헌정보학)도 영어와는 무관하다. “제대하고 프리 토킹을 들으려고 신촌의 한 영어학원에 갔어요. 전공, 가족관계 이런 거 몇 가지를 묻고 답하는 테스트였죠. 다 듣고 나더니 저는 프리토킹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거예요. 문법도 다 틀리고, 문장도 엉터리고, 한마디로 실력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충격이 컸어요.” 왕초보 수준의 영어실력은 2001년부터 1년간 영국에 갔다 온 뒤 부쩍 늘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의 중간쯤에 있는 시골마을에서 자원봉사로 장애인들을 도와줬다. “처음엔 아무 것도 안 들리고 말도 안 나오고 정말 바보가 된 것 같았아요. 다행히 백인밖에 없는 곳이라 사람들이 신기했는지 자꾸 말을 붙이더라고요.‘브로큰 잉글리시’지만 한두마디씩이라도 말문이 트이면서 의사소통이 되더군요.” 일단 자신감이 붙자 한국에 돌아와서는 미국인이 만드는 부정기 영어잡지사에서도 일했다. 영어기고문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주로 했다. 영어로 얘기할 기회가 많았던 게 특히 행운이었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구단에서도 잠시 영어통역을 맡았다. 장내 방송을 통해 영어로 ‘선수교체’ 등을 안내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대학졸업 때까지는 이렇게 아르바이트식으로 영어공부한 게 다였죠. 가끔 영자신문도 사 보고…. 토익은 영국 갔다 와서 처음 봤는데 시험치기 며칠 전에 책 한 권 사서 속독으로 읽고 갔는데,965점이 나오더군요.” 졸업반이 되어서는 평소 관심이 있던 항공사 입사를 준비했다.“그때는 영어는 잘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자신이 있었죠. 하지만 몇번 면접을 보고 곧 뜻을 접었어요. 다른 지원자들은 말 그대로 ‘여기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면접에 임하는데, 저 역시 그런지 확신이 안 섰기 때문이죠.” 취업을 포기하고는 1년 남짓 방황하다 2005년부터 통번역대학원 준비에 들어가 2년여만에 합격했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 고급영어는 따로 있다는 걸 절감했어요. 정치, 경제 등 시사문제를 잘 알고 전문용어를 많이 알아야 말하기도 쉬워지죠. 예를 들어 ‘신용경색’을 뜻하는 ‘credit crunch’라는 단어를 모른다면 이걸 설명하기 위해 또 장황하게 풀어줄 수 밖에 없어요.” 그는 평소 봐뒀던 유용한 표현은 꼭 노트에 스크랩해두라고 권한다. 영영사전을 봐도 예문을 꼭 따라서 읽어보고, 애매한 발음은 반드시 확인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번은 영화를 보는데 ‘Your reputation precedes you.(너 명성이 자자하더라.)´라는 표현이 귀에 그대로 꽂히는 거예요. 지킬 박사가 반 헬싱을 만났을 때 하는 대사죠. 전에 어디선가 보고 스크랩해뒀던 표현이라 그런지 단번에 알아듣겠더군요.”그는 이런 희열이 있기 때문에 끝이 없어보이는 언어공부에 빠지는 것 같다고 했다. “말하기는 특히 어렵고 빨리 늘지도 않아요. 어휘나 듣기와 관련한 내용 100이 머릿속에 있다면 스피킹으로 나오는 건 5정도나 될까요?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이 붙으면 테이프를 틀어놓고 한 단어 늦게 그림자처럼 따라가면서 말하는 ‘섀도잉’ 연습이 도움이 됩니다.” 그는 끝으로 “영어를 제대로 말하려면 토익, 토플 등의 점수에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면서 “듣기를 많이 해보고, 동화책도 반복해서 읽으면서 영어로 말을 많이 해보는 ‘기본’에 충실하는 길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글 김성수 사진 정연호기자 ss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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