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3백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723
  • 「진실남」구했더니 「사기남」에 걸려

    「진실남」구했더니 「사기남」에 걸려

    공군중령, FBI(미연방수사국)의 한국주재원, 미국인 2세, 청와대 「헬리콥터」 조종사, 기억상실, 성불구, 본처 자살 등을 자작자연(自作自演)-미끼로 삼아 한 여인을 울리고 300여만원을 사기해 먹은 놈팡이가 경찰에 잡혔다. 잡고보니 전과 4범의 「맹렬사기꾼」인데다가 10여개의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나이. 광고 보고 전화로 불러내 처음엔 공군 중령 이라고 서울 종로 경찰서는 12월8일 낮 사기전과 4범(전과는 더 있다고 보고 수사 중임) 이재우(李在雨·40·주거부정)을 사기 및 혼인 빙자에 의한 간음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 사기한의 색(色)과 욕(慾)의 사기행각을 피해자의 입을 통해 듣고 그 빈틈없는 술수에 혀를 내저었다. 조서에 나타난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그 사기극을 다시 한번 꾸며보자. ▲공군중령 진병용=지난 6월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S다방에서 「코피」를 마시는 중년신사가 있었다. 큰 키(1백75㎝)에 아랫배가 적당히 나오고 이마가 벗겨진 사장 「타이프」. 그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레지」가 갖다주는 신문을 읽어 가다가 「펜·팰」 광고란에 눈길을 멈췄다. 『진실한 남성과 친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광고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사장 「타이프」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선 저쪽편에는 20대 여인의 달콤한 목소리. 이편은 바로 이재우(李在雨). 고독한 여인을 노려 사기극의 제1막을 올린 순간이다. 李의 혀끝에 말려든 광고주 박순자(朴順子·28·가명·서울 마포구 서교동)여인은 얼마 뒤에 총총 걸음으로 다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朴여인으로 서는 상대방의 「진실성」을 캐는 탐색전 쯤으로 그 뒤부터 李를 만나기로 약속했으리라. 그러나 朴여인은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보지 못하게 됐다. 李는 「진병용 공군중령」이라고 자기 소개. 4년 전 일본에서 비행기 사고로 24시간동안 의식을 잃어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혼이 났다느니 이것을 보고 아내가 자살을 해버렸다느니 상대방이 혹할만한 소리를 늘어 놓았다. 대통령 모시고 있다더니 실은 FBI 요원 이라고 ▲청와대 「헬리콥터」 조종사=李는 朴여인을 극장으로 다방으로 끌고 다녔다. 며칠 뒤 『사실은 공개하기를 금재돼 있지만』이라고 큰 비밀하나 털어 놓듯 자기의 현직을 밝혔다. 대통령이 고속도로의 건설현황 등을 시찰할 때 타는 그 청와대 「헬리콥터」의 조종사라고 했다. ▲성불구=李는 朴여인을 정복까지 위해 고차원적인 농간을 부렸다. 6월20일께(사귄지 13일만에) 李는 朴여인을 서울 중구 후암동 서강여관의 2층 특실로 유인하는데 별로 힘들이지 않았다. 朴여인은 李의 말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李는 전에 말한 비행기 사고로 성불구가 되었다고 말한 일이 있는 것이다. 그는 전후 두차례나 여관에 朴여인을 유인했어도 손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당신은 나의 구세주=그러나 세번째로 여관에 갔을 때는 달랐다. 李의 성불구는 기적적으로 나았다. 李는 朴여인을 붙들고 당신은 나의 구세주라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아내가 자살한 것도 자기의 성불구 때문이었다는 양념까지 곁들였다. 죽은 아내가 불쌍하다고 또 울먹였다. ▲FBI 한국 주재원=李는 朴여인의 형부 李병호(가명·36)씨를 알게 됐다. 李씨는 자기의 이름과 직함을 다시 바꿔댔다. 李씨가 李에게 이름이 왜 여러가지냐고 묻자 사실은 자기가 미국연방수사국 한국주재원이고 이 사실은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비밀로 되어 있다고 둘러댔다. 집과 땅 넘겨 주겠다고 3백여만원 뜯어 ▲미국인 2세=李는 자기가 또 미국인 2세라고 까지 속였다. 그래서 자기 소유인 서울 중구 충현동 84의9등 네곳에 있는 대지 8천여평과 가옥 4동을 朴여인 앞으로 이전해야겠다고 말했다. 李씨는 미국인 2세의 순정에 탄복했다. 부자 동서를 맞게된 기쁨에 그만 마음에 틈새가 생겼다. 처제의 행복을 비는 형부의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李씨는 이전등기에 필요하다는 비용 1백51만원을 7차에 걸쳐 두말 없이 내주었다. 李는 다시 朴여인을 통해서 알게된 김모(44·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여인에게 김여인의 아들 신모(21)씨를 파월시켜 준다고 속여 30여만원을 우려 내었다. 또 지난 9월24일 朴여인의 큰 형부 朴일성(44·가명·부산시 중구 충무로)씨가 서울에 왔을때 부산 항만사령부의 부지매몰공사를 청부맡아 주겠다고 속여 항만국장과 건설부의 朴비서에게 줘야한다고 돈 60여만원을 뜯어 내었다. 더욱이 李씨는 서울자 2-866호 「시보레」를 한 달 5만원으로 전세내어 주로 현직 공군 영관급을 사칭했고 朴여인을 자가용의 사모님으로 「출세」(?)를 시켜주었다. 사취한 돈 유흥에 물쓰듯 정체 알았을땐 이미 늦어 李의 숙소는 지금까지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의 D여관 1호실. 李는 사취한 돈으로 朴여인을 데리고 해운대 「워커힐」등 고급유흥지를 돌아 다니며 물쓰듯 뿌렸다. 수사결과 李에게는 지난 66년 4월16일에 결혼한 본처 김효자(金孝子·30·가명)여인이 있고 지난 59년 3월 대구에서 공군상사(군번98245)로 제대,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66년 2월20일에 직장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사기행각은 62년 공문서위조 및 동행사혐의로, 또 64년 사기혐의로 징역 각각 1년씩을 살았고, 68년 8월 다시 사기죄로 1년 복역중 6개월만인 69년 2월에 가석방된 몸. 朴여인을 등친 것은 가석방 중의 일이다. 朴여인의 형부 李씨는 경찰에서 끝내는 그가 사기꾼임을 알아차렸지만 처제의 장래를 위해 만서를 덮어 두려다가 다른 희생자가 더 나오지 않기를 비는 마음에서 경찰에 고소했다고 말했다. <張錫英 기자>[선데이서울 69년 12/14 제2권 50호 통권 제 64호]
  • 미스·아이·실버 이옥재(李玉載)양 - 5분 데이트(59)

    미스·아이·실버 이옥재(李玉載)양 - 5분 데이트(59)

    『친구들이 하도 권해서 반강제로 응모했던 것인데 막상 되고 보니까 기분이 나쁜 편은 아니군요』 「미스·아이·실버」이옥재(李玉載)양은 잘닦여진 은(銀)방울처럼 깨끗한 눈을 반짝거린다. 11월1일 「미스·아이·콘테스트」에서 3백37명의 미안(美眼) 응모자중에서 뽑힌 여러 명의 미안(美眼)아가씨중 「실버」로 지명이 된 아가씨. 교육사업(敎育事業)을 하는 이우현(李遇賢)씨의 외딸. 오빠 하나 남동생 둘이 있다. 『시집 가서 잘 살고 싶어요. 우리집은 지금 연세대 대학원다니는 오빠 장가 보낼 일밖에 걱정이라곤 없어요. 부모님들이 그렇게 다정하실 수가 없거든요. 이젠 이만큼 크니까 남의 가정에 불화(不和)가 더러 있는 걸 보면 괴상해 보여요. 난 꼭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의 주부가 될래요』 돈이 많다거나 지위가 높다거나 하는 따위는 행복의 조건에 들지 않는단다. 그 인생관이 말뿐만은 아닌 것 같다. TV에서 본 요리는 뭐든 「제맛 나게」 만들줄 안다는 솜씨 자랑만 보더라도. 『취미는 「쇼핑」이죠』 이것만 해도 여간 여성적이 아니다. 1949년생 서울산. 서울여고(女高)를 졸업하고 경희대 정경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 『지금 휴학중이에요. 2학년만하고는 외국유학 갈 계획을 했었기 때문이죠. 기자생활이 무척 멋있을 것 같아서 택한 전공이었어요』 사정이 생겨서 외국유학계획은 좌절되고 70년 학기는 복교할 예정. 『영화도 좀 봐요. 요즘 「사운드·오브·뮤직」을 정말 감명깊게 보았어요』 [선데이서울 69년 11/30 제2권 48호 통권 제 62호]
  • 3·1절에 완공될 3·1路의 31층

    3·1절에 완공될 3·1路의 31층

    서울 한복판 3·1로 고가도로 입구에 31층의 새 건물이 들어선다. 건물이름조차 3·1로「빌딩」. 올해 3월1일에 착공되어 내년 3월1일 완공예정인 이 3·1로「빌딩」은 그 높이가 현재까진 우리나라에서 제일높은「빌딩」이자, 철골조(鐵骨組)건물론 동양제3위. 이래저래「3」자「1」자에 얽힌 사연도 많다. 한국에서 제일높은 빌딩 철골건물로는 동양(東洋)3위 3·1로 고가도로 입구「로터리」에 서있는 이 건물은 대지면적에 비해 높이가 너무 높아「빌딩」이라기보다 탑이라는게 옳을듯 하다. 현재로선 한국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이 건물은 지하 2층에 지상 31층. 높이는 92m로 현재 서 있는 한진(韓進)「빌딩」보다 10m가 높고 정부종합청사 보다는 9m50cm가 높다. 철골「콘크리트」의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한진빌딩,「로열·호텔」에 이어 세번째이며,「도꾜」의 무역「센터」(40층),「가스미가세끼·빌딩」(36층)에 이어 동양에서 3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그러나 공기(工期)로는 동양최단이다. 워낙 철골「콘크리트」건물은 공기가 짧은 것이 큰 장점이라지만 30층 이상의 건물로 최단공기의 기록은 앞에 든「가스미가세끼·빌딩」의 1년6개월. 그러나 이번3·1로「빌딩」은 올해 3·1절에 착공, 내년 3·1절에 끝낼 예정이니까 공기1년으로 일본의 기록을 앞지르는 것이 된다. 시공을 맡고있는 삼환(三煥)기업측으로서도 최고의 기록이 되는 셈인데 이렇게 서두르는덴 건축주인 김두식(金斗植·45·삼미사대표)씨의 고집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곧장 대일목재(大一木材)에 뛰어든 김씨는 자수성가로 현재 공칭자본금 9억원을 훗가하는 대기업체의 대표가 된 사람. 그의 산하엔 모기업체인 대일목재를 비롯, 대한철광, 삼창해운, 삼미사가 있다. 외국것 보고 화나서 착공 설계·시공도 우리 기술로 『사업관계로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너무 한국이 초라한 느낌이 들어군요. 그래서 이왕이면 한국에도 무슨 기록 하나쯤은 세워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하자면 화가 나서 이 집 짓기를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이 김씨의「화」때문에 하필이면 31층이 되었다는 얘기이고, 비싼 값 치러가며 3·1로에 땅을 사들여 3·1절에 착공, 3·1절에 완공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 김씨는 평소에도 3·1정신을 무척 찾는 편이어서 사원조례땐 꼭 3·1정신을 예로 든다는 직원들의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3·1정신 때문에 31층은 아니다. 김씨 산하기업중 두 기둥인 삼미사와 대일목재에서 각각 한자씩 따 내어도 3·1이 된다. 『무언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술로 36층을 1년반에 지은 것을 앞지르기 위해 공기를 1년으로 단축, 설계에서 시공까지 모두 우리 기술진에 맡겼다. 본설계는 건축가 김중업(金重業)씨가 맡았다. 대지는 불과 5백30평이지만 연건평은 1만5백평. 층당평수는 3백13평이며 한층의 높이는 2.9m이다. 설계상 재미있는 것은 주(主)건물과 부건물이 따로 따로 올락나다는 것. 「콘크리트」로 쌓아올리는 부건물에는「엘리베이터」층계, 화장실등 부속시설이 들어가게 된다. 萬5백평의 17억짜리「집」자재 80%를 국산으로써 또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건물엔 여닫는 창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점. 위낙 도심지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소음, 먼지등을 피하기위해 여닫는 창을 만들지 않고 온·냉방과 돌풍장치는「센트럴·히팅·엔드·쿨링·시스템」을 쓰고 있다. 또 각층은 기둥만 있을뿐 툭 틔여져 있어 빌어드는 측이 마음대로 공간을 쪼개쓸 수 있게 되어있다. 총공사비 11억원이니까 평당 약 11만원의 돈이 먹힌 셈이고 여기에 땅값 약6억원(평당 1백10만원)을 합치면 모두 17억원의 돈이 들었다. 대부분의 고층건물들이 관광「호텔」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외국산자재들을 면세 도입한데 비해 그런 특혜 조차를 하나도 받지 않았다는 것도 3·1로「빌딩」측의 자라의 하나. 그 대신 자재의 대부분을 국산품으로 사용, 꼭 필요한 20%의 자재만 외국산을 쓰고 그 나머지는 국내생산품이 없을 경우 신제품 생산의뢰를 해서라도 꼭 국산품 썼단다. 지하 2층은 기계실과 주차장으로 사용, 가장 전세놓기 좋은 1층을 1백%「로비」로 사용함으로써 약 7천5백만원의 전세수입을 포기한 셈인데 3·1「빌딩」만은 영리를 떠나고 싶다는 김씨의 뜻이다. 역학적 구조계산 설계에 전문가 20여명 동원하고 현재 총공정의 약 70%가량이 진행된 이 건물은 이미 주택(住宅)은행등에 40%가량 예약되어 있으며, 건축주인 김씨산하 기업체는 4층 한층만 사용할 예정이다. 공사중 가장 애를 먹은 것은 청계천 복개공사가 된 곳이라 지하수가 많이 나왔던 것. 이를 막기위해 기초공사에 소요된 기일이 약 3개월. 그래서 완공 예정일인 내년 3·1절에 1백%완공은 힘들 것이란 현장실무자측의 얘기다. 또 하나 신경써야 했던건 좁은 면적에 높은 건물을 개우기 위해 설계중 풍력(風力)·횡력(橫力)등 역학적인 구조계산에 무척 신경을 써야 했던 것. 이 구조계산에만 전문가 20여명이 동원되었다고. 이렇게 해서 내년 3월 이건물이 완공되면 서울은 바야흐로 20층시대에서 30층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이밖에도 지금 한양(漢陽)「빌딩」(시청앞 옛 대한일보(大韓日報)자리)에 36층 건물을 계획중이며, 악희(樂喜)「빌딩」(저동(苧洞) 쌍룡「빌딩」맞은편 공지)이 43층을 올릴 계획으로 있어 서울의 고층화(高層化)는 무척이나 바쁘게 진행되고 있다. 『고층건물을 많이 지어서 이젠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사는 세상이 와야지요』하는게 3·1로에 31층건물을 짓는 김씨의 70년대식 3·1정신이기도 하다. 『남산이나 북악산이 서울의「스카이·라인」이던 그런 세상이 빨리 사라져야지요. 마천루들의 뾰족한 끝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새「스카이·라인」이 이루어져야해요』 [선데이서울 69년 11/16 제2권 46호 통권 제 60호]
  • 인도 뭄바이 열차 폭탄테러 4백여명 사상

    인도에서 열차 폭탄 테러가 연쇄적으로 발생해 최소 135명이 사망하고 26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11일 밤(현지시간) 인도의 금융중심지인 뭄바이의 기차역 플랫폼과 통근 열차에서 7건의 연쇄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최초 열차 폭발은 이날 오후 6시24분쯤 몸바이시 부근의 카르 열차역과 마힘역 사이를 운행중이던 열차의 1등칸에서 발생했다. 뭄바이 경찰은 이 연쇄 폭탄 테러로 현재 최소 135명이 사망하고 26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말했다고 미 CNN 방송이 사고 현장을 연결해 보도했다. AP 통신은 현재 131명이 사망하고 3백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현재 현장에서는 사고 수습 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부상자중에서 위급한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이 방송은 전했다. 테러 현장에는 현재 폭우가 내리고 있어 부상자 구조작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몸바이 경찰은 열차가 몸바이 역으로 들어오던 도중 갑자기 폭탄이 터지면서 폭발했다면서 분명히 테러라고 규정지었다. 로이 뭄바이 경찰청장도 연쇄 열차 폭발을 ‘사전에 잘 준비된’ 테러 공격이라고 말했다. 인도 정부는 폭발 이후 뭄바이와 수도 뉴델리에 테러비상 경계령을 발령했으며 테러 용의자 검거에 들어갔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테러 폭발 이후 곧바로 내각회의를 소집했으며 이번 공격의 배후에는 테러리스트들이 있다고 말했다. 뭄바이에서는 지난 1993년에도 이슬람 세력에 의한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해 250여명이 사망하고 천여명이 부상한 바 있다. 어떤 단체가 열차 연쇄 테러를 일으켰는지 확실치않으나 카슈미르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 등의 소행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뭄바이 통근열차는 하루에 6백만명의 출.퇴근자를 실어나르고 있다.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 알몸 하나로 돈벌은 夫婦

    알몸 하나로 돈벌은 夫婦

    일류「호텔」의 최고급 방에서 신문기자와 TV의「카메라·렌즈」가 지켜 보는 가운데서「베드·인」하는가 하면 노래도 되지 않는 기성(奇聲)을 노래랍시고 지르고 있으면 돈이 굴러 들어 온다.「비틀즈」의「존·레논」과 일본여성「오노·요꼬」의「해프닝」적 실험생활은 남의 의표를 찔러 그들을 돈방석에 앉게 하고 또 뭇「해프닝」신자들에게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20세기가 낳은 맹령 변종인생이다. 「미친짓」하면 쏟아지는 돈 10억(億)원이 넘는 재산모아 「런던」의 가을은 벌써 깊다. 그러한 가을의 어느 날 밤,「웨스트엔드」의 현대예술관에 약 5백명의 관객이 모였다.「존과 요꼬의 밤」-이것이 그 날의「프로」였다. 영화가 시작했다. 제목은『스마일즈』(미소).「스크린」에 나온 것은「존·레논」의 웃는 얼굴 뿐, 그것이 상영시간 52분동안 계속됐다. 여흥이 있었다. 여흥이라기 보다 이것이 진짜「프로」였다. 관객에게는「레논」과「요코」의 서명이 든 나무숟가락이 배부되었다. 관객들은 그것으로 신나게 박자를 쳤다. 그에 따라 반나체인 소녀 네명이 미친듯이 장내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주인공인「레논」과「요꼬」는 어디에 있었던가 하면「스크린」 바로 옆 자리에 놓인 흰부대에 목까지 쑥 들어 가서 누운 채로 우는듯한 단조로운 노래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다. 새 소리도 아니고 자동차의 소음도 아닌-. 그러나 노래임에는 틀림이 없는 그러한 소리다. 부대의 아래쪽이 터져 있어 두 사람의 발이 네개 나와 있다.「샌들」바람의 맨발. 영화가 끝나자 두 사람은 대기하고 있는「롤스·로이스」차로 사라졌다. 관객들은 황홀감을 맛본듯한 표정으로 영화관을 나갔다. 입장료는 25「실링」(약 1천원). 영국 만으로는 활동무대가 너무 좁았는지 세계 각국의 수도에 원정,「베드인·신」을 간판으로 흥겨운「주유세계」다. 공개리에「베드」속에서만 내리 1~2주일을 보내면서 한다는 소리가『세계의 모든 사람이「베드·인」에 참가하면 세계에서 전쟁은 없어진다』나.「비틀즈」는 세계를 정복하고 대영제국의 국위를 선앵했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았다. 돈도 엄청나게 벌었는데 그「비틀즈」의 일원인「레논」의 재산목록을 보자. 「레논·맥아더·송즈」「노던·송즈」등「비틀즈」관계회사의 주식을 1백25만「파운드」(약10억), 자가용차「롤스·로이스」밖에 약 1만2천「파운드」(약1천만원)짜리「멜세레스·벤츠」가 또 한 대 있다. 집은 경마가 이름난「아스코트」근방의「사닝힐」에 있다. 집이라기 보다 바로 성이다. 대지 면적은 24만㎡, 방이 18개 달린 궁궐같은 집인데 화랑「테니스·코트」목욕탕(4개)「풀」「크리케트」장이 달려 있다. 하인의 집이 따로 두채. 매일 정원사 3명이 뜰을 손질하고 있다. 집 값이 15만「파운드」(약1억원). 이 궁궐에서「레논」과「요꼬」는 속인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우아한 부부생활을 즐기는가 하면 이따금 여기서 출격해서 공개적인「베드·인」을 벌인다. 그래서 돈을 번다. 『우리들은 지금 함께「헤프닝」을 하려고 한다. 결혼도 그 하나에 불과하다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베드·인」의 모양은 온 세계에 공개되었다. 「카메라맨」모아 놓고 1주일을「베드·인」 신문기자와「카메라맨」을 침실로(이들에게는 무대겠지만) 불러들여서 PR에 열중했다. 여기 저기서「플래시」가 터지고 TV「카메라」의「라이트」가 뜨거운 방안에서, 아니「베드·인」의 소도구인 흰 부대 속에 벌거숭이로 기어들어가서 아슬아슬한 몇고비 장면을 맹렬히 전개하며 기성(奇聲)을 지른다. 이「베드·인」의「헤프닝」작전은「비틀즈」의「레논」에서「레논과 요꼬」의 부부를 세계적 인물로 만들었다. 두사람은 최근에「캐나다」의「몬트리올」에서도 1주일동안「베드·인」을 해치웠는데「호텔」이름은「퀸·엘리자베드」. 방값은 하루 40「파운드」(약3만원)의 최고급이었다.「베드·인」도중 무슨 엉뚱한 구상이 떠올랐음인지「토루도」수상에게『함께「베드」에 올라 앉아서 평화문제를 토의하자』는 초대장을 보냈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이어「토론토」에서 열린 두사람의「팝송·페스티벌」은 청중이 2만명이나 들이닥쳐 대성황을 이루었다. 두 사람이 부른 노래는「레논」의 작사·작곡으로 된『존과 요꼬의 발라드』. 이「레코드」도 날개가 돋쳤다.「레코드」의「재키트」가 또 기발했다. 한쪽 면에는 발가벗은 두사람의 앞 쪽 부분 사진이, 그리고 또 한면에는 등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이것이 인기를 더 부채질했다. 점잖은 도학자들의 빈축을 사든 말든 이 맹렬부부의「해프닝」대행진은 계속 된다.「존·레논」은 출신교인「리버풀」의 중학교에서는 문제학생이었다. 성격은 물론 나빴다. 그런데「레논」은 그 중학교의 선생들을 평해서 말한다. 요새는 환각제 사용하며「지리한 해프닝」을 실험중 『한 두 사람을 빼고는 모조리 병신들이었다.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교원양성소를 갓나온 조발성치매증(早發性癡呆症)환자 같은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었다』「요꼬」는「뉴요크」에서「해프닝」예술에 열중한 끝에 남녀 3백65명의 엉덩이만을 찍은 영화를 만들어 들고「런던」에 출연했다. 그 상영허가를 주지 않는다고 혼자서 유명한「트라팔가」광장에서 항의「데모」를 한 바람에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져 버렸고「레논」을 알게 되었다. 『20세기 후반기의 현대에서는 곧이곧대로 살아가다간 미쳐버리기가 쉽다. 미치치 않기 위해서 시를 쓰고 음악을 한다. 그 시나 음악은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어디서든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 행위의 법칙이 바로「헤프닝」』이란다. 지금 두 사람은 지극히 거룩한「해프닝」을 실험하고 있다. 두 사람은 환각제 LSD나「마리화나」를 상용하고 있는데 LSD중독자가 벌이는 맹렬한「베드·인」-그 결과 나오는 아기는 어떻게 될까. 이것이 의학계의 화제다. 아니「요꼬」임신의「뉴스」를 기다리고 있는「헤프닝」의 신도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자손만대에 길이 빛날 불가사리「헤프닝」인생이다. [선데이서울 69년 11/2 제2권 44호 통권 제 58호]
  • 브라질, 히딩크의 호주에 2-0 승…16강 확정

    브라질, 히딩크의 호주에 2-0 승…16강 확정

    세계 최강 브라질이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를 2골차로 따돌리고 2연승을 질주했다. 브라질은 19일 새벽 뮌헨에서 열린 2006독일월드컵 축구대회 F조 2차전에서 호주를 맞아 힘겨운 경기를 펼친 끝에 2-0 승리를 거뒀다.2골차 승리이긴 했지만 브라질은 이날 호주의 밀집수비와 끈질긴 추격에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브라질은 2연승으로 승점 6을 챙겨 F조 단독선두를 질주하며 16강 진출을 일찌감치 확정했다. 팀 승리에도 불구하고 축구 대통령으로 호칭되던 호나우두는 이번에도 4년전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채 득점기록 없이 후반 26분 호비뉴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나왔다. 몸이 무거워진 호나우두는 크로아티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이 끝난 직후에도 자국 언론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은 바 있다. 호나우두는 전반 36분 무렵 호주 진영 페널티에리어 오른쪽에서 결정적 골찬스를 맞았으나 오른발 논스톱 슛을 헛발질로 끝냈고,전반 31분 쯤엔 주심의 오프사이드 휘슬이 울린 것을 알고도 슛을 시도해 경고를 받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나마 후반 4분 아드리아누의 골을 도와 이번 대회 첫번째 공격 포인트를 올린 것으로 가까스로 체면을 세웠다. 아드리아누는 호나우두가 아크 왼쪽에서 보낸 횡패스를 받은 뒤 아크안 오른쪽 지역에서 왼발 강슛을 날려 골문 오른쪽 하단을 흔들었다. 한편 호주는 후반 초반까지 브라질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도 아드리아누의 선제골에 기세가 꺾이는 바람에 아쉽게 1승1패에 머물렀다. 이로써 각각 2경기씩을 마친 F조 순위는 브라질(승점 6)이 1위,호주(승점 3) 2위,크로아티아 3위,일본(이상 승점 1) 4위로 정리됐다.일본은 크로아티아와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에서 밀려 최하위에 머물렀다. 호주는 전반전에 3백을 바탕으로 수비망을 촘촘히 구성해 삼바축구의 막강 화력에 맞섰다.그러면서도 호주는 제이슨 컬리나,빈스 그렐라,마르코 브레시아노를 앞세워 기회 있을 때마다 중거리 슛을 쏘아댐으로써 브라질 수비진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호주는 선제골을 허용한 뒤엔 보다 공격적으로 게임에 나서 브라질 문전을 휘저었다. 그러나 호주는 공격 비중을 높이느라 수비망이 엷어지는 바람에 더 많은 위기를 맞았다. 브라질은 후반 31분 호나우두와 교체돼 들어간 호비뉴가 카푸의 크로스를 받은 뒤 문전에서 결정적인 오른발 슛을 쏘았으나 볼이 골문을 살짝 비켜가는 바람에 추가골에 대한 아쉬움을 키웠다. 호주 역시 후반 34분 브레시아노가 골 마우스 바로앞 오른쪽에서 번개같은 오른발 발리슛을 쏘았으나 골키퍼 선방에 막혀 득점에 실패했다. 호주는 이후에도 미드필드 왼쪽에서 브레시아노가 쏜 프리킥 슛이 브라질 골대를 스치듯 지나갔고,마크 비두카의 골문앞 오른발 포물선 슛이 골문 상단 그물에 얹히는 등 골운이 따르지 않아 골을 얻지 못했다. 호주는 오히려 경기 종료 직전 브라질의 프레드에게 추가골을 내줘 2골차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프레드는 골대 맞고 나온 볼을 문전에서 왼발로 쓸어넣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온라인뉴스부
  • 미스 뉴코리어 컨트리 클럽 최정옥(崔貞玉)양 - 5분 데이트(52)

    미스 뉴코리어 컨트리 클럽 최정옥(崔貞玉)양 - 5분 데이트(52)

    『여기가 근무한지 꼭 3년째 되는데요. 아직도 여기가 직장이라는 생각이 안들어요. 꼭 놀러나온 것만 같거든요』 하긴 그럴것이 최정옥양이 근무하고 있는「뉴 코리어 컨트리 클럽」은 파란잔디로 온통 뒤덮인 곳. 교외에 사는 사람들이 시내로 출근할 때 최양은 공기좋은 교외직장으로 빠져나간다. 매일「하이킹」을 다니는 기분이다. 46년생이니까 올해 23세. 순 서울아가씨다. 홀어머님과 위로 오빠 두분, 밑에 남동생 하나. 그래서 외동딸로 오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채 자라났다. 숭의(崇義)여고 졸업. 최양이 이「컨트리 클럽」에서 말고 있는 직책은 좀 이채롭다. 이름하여「캐디·마스터」. 그러니까「캐디」장(長)인 셈이다. 그래서「뉴·코리어」「골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3백50여명의「캐디」아가씨들에게 「파트너」를 정해주는 일과외에 틈이 나는대로 대인(對人)「에티케트」등 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손에 익힌「골프」가「핸디」28 정도. 새벽 일찌기 출근해서 조용할때 몇차례「스윙」을 하고나면 미용체조를 하고 난 것보다 더 몸매가 날씬해 지는 기분이다. 9시부터 근무개시. 7시 30분께 퇴근해 돌아오면 시내서 친구들과 차 한잔 나누는 것이 일과. 「보이·프렌드」는『곧 가져야죠』다. 『이젠 사회가 어떻다는 것, 어느정도 눈뜬 셈이니까요. 알맞은 사람 나타나면 즉각 결혼하죠』그러면서 그「알맞은」의 조건은 적당히 생각해 두시란다. [선데이서울 69년 10/5 제2권 40호 통권 제 54호]
  • 약안팔기 운동하는 약사

    약안팔기 운동하는 약사

    약국의 존재이유는 약의 연간 소비량을 되도록 줄이는데 있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약국집 주인.『저희 집에서는 XX제는 팔지 않습니다』는 식의「방」을 써 붙여 아예 약 안먹기, 약 안팔기「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괴상한 약장수. 오연(傲然)하기까지 한 이 약국 주인은 약사러 온 손님을 곧잘 설득시켜 집으로 그냥 쫓아 보내는, 장사 못하기 명수(名手)(?)다. 오는 10월 10일은 제13회「약의 날」. 어물전의 생선과는 달라 약은 손님이 골라선 안돼 『진정한 의미의 약국이라면 서울에서 그 집 하나밖에 없습니다. 약이 무엇이고 약국이 어떤 곳인가를 아는 유일한 약사죠. 어찌나 약국이 깨끗한지 처음오는 손님들은「도어」에서부터 곧잘 신을 벗고 들어오곤 한답니다』-입에 침을 튀기는 서울시 약사 감시원 C씨의 얘기가 하도 수상쩍어(?) 찾아 간 곳이「녹십자 약국」. 서울 영등포 구청 건너편의 큰 길가다. 이 이상한 약국의 이상한 주인이 약사 김성준(金成俊·45)씨. 잘 정리가 된 얼굴이다. 주인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그「질서」가 그대로 약국안에도 투영되어 그렇게 잘 정돈되어 있을 수가 없다. 『저희 약국에선「드링크」제는 원칙적으로 권해 드리질 않습니다』-이런 유의 글귀가 여기 저기 눈이 띈다. 조금도 지저분하질 않다. 『「약의 날」의 참 뜻은 약의 남용(濫用)·오용(誤用)을 막자는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약의 선택권을 전문가인 약사에게 주자는 거죠. 어물시장 같은데서 생선을 고르는 식으로 약을 소비자가 골라서야 국민보건이고 뭐고 없습니다』 드링크제(劑) 하루 10병이면 카페인 3백mg 마시는셈 외고집이라 싶을 정도로 논리가 단호하다. 약을 사러 가면 식모가 화장실에서 나오며『무슨 약 드려유』하기가 십상인「약사부재(不在)」「약국부재(不在)」의 이 풍토에선 어쨌든 보기 힘든 청렴. 49년 서울대 약대 졸업. 20년 동안 약국을 하고 있다. 약국이 제약회사의 자동판매기처럼 되어버린 오늘날 까지 약사의 자부심, 약국의 권위 같은 건 한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고 김(金)약사는 말한다. 『제약회사에선 눈살을 찌푸리겠지만「드링크」제 같은게 그렇습니다. 하루 한 두 병 정도는 또 모르겠어요. 요전에 어느 운전사가 와서 얘기하는데 하루에「드링크」제 10병을 마신답니다. 한 병에「카페인」이 30mg입니다. 3백mg의「카페인」을 그 운전사는 매일 마신다는 무서운 얘기가 됩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이 그렇게 제격일 수가 없다.「라디오」, TV의 제약회사 CM을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허리가 아파 오고 골이 쑤셔옴을 느낀다. 식모를 시켜 방금 들은 그약을 사오도록 한다. 이 때 약국의 약사가 그 약을 그대로 집어 주는게『얼마나 큰 죄악이겠는가』하는게 김성준씨의 신(新)약국 경영론. 약사는 고객을 설득시켜 되도록이면 약을 안사먹게 하는게 그 사명이다. 장의사라고 해서 어떻게 빨리 죽을 수 있나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논리 전개. 무슨 잔소리가 많으냐고 불평하는 손님도 있지만 68년 한 햇 동안의 우리나라 의약품 생산고는 모두 2백 33억원에 달한다. 「아스피린」하나 합성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약이 소비되었다는 것은 한 마디로 안먹어도 좋은 약이 얼마나 많이 생산되고 있나를 말하는 것. 「약사 선생」에서「어이, 아저씨」로 평가절하된 오늘날의 약사 신세도 그에 비례해서 떨어졌다고 김약사는 자탄(自嘆)한다. 『흔히 손님이 와서「감기약 ○○을 주십시오」합니다. 환자가 진단, 처방을 다 해내는 것이죠. 도무지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보건은 바로 풍전등화, 그것입니다』 「감기약을 달라」고 하면 증세를 들어 적당한 약을 준다. 그러나「감기약 ○○을 달라」고 하면 절대로 약을 안주고 되돌려 보내는게「녹십자 약국」의 헌법. 식모가 아이가 와서「드링크」제를 달라고 하면 할 수 없이 내 준다. 안 주면 결국 다른 약국에서라도 사 가기 때문. 그러나 직접 그것을 먹을 본인이 오면 안 팔고 되돌려 보낸다. 『피로하면「사이다」를 차라리 한 병 잡수십시오. 그리고 1시간만 편히 잠을 주무십시오』-이들을 쫓아 보낼 때 쓰는 상투적인 얘기. 돈을 못 번다. 손님도 얼마 없다. 『약을 달라면 줄 것이지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는게 고객들의 일반적인 불평. 잘못쓰면 아무 효과없어 항생제 1회분은 안팔아 그러나「녹십자 약국」엔 이집 주인의 양식과 진심을 믿는 많은 소중한 단골들이 있다. 주로 조제를 해 가는 손님들이다. 그들은 거의 절대적으로 주인 약사의 지시를 따른다. 멀리 인천과 수원, 대전에서도 오고 월남에 있는 장병에게서도 조제 의뢰가 온다. 『하루는 어떤 부인이 생후 10개월된 아기를 데려왔습니다. 오른쪽 아랫배에 조그마한 혹이 나 있었어요. 이 정도면「테트라사이클린」제 몇알을 주어 돌려 보내는게 상식입니다. 하지만 저는 약을 주지 않고 병원으로 가 볼 것을 권했어요. S병원엘 가서 진찰한 결과 그 아기는 백혈병 환자로 밝혀졌습니다』 웬만한 항생제로 1회분은 절대로 팔지 않는다. 그것은 적당한 혈중농도의 유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1회분 투여는 약의 내성만을 키울 뿐 백해무익인 때문이라는 것. 「피가 되고 살이 되는…」하는 상식적인 CM이 있지만 진실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은 밥밖에 없다. 영양제, 강장제를 즐겨 찾는 고객들에게 들려주는 김성준씨의 피와 살에 관한 「각론(各論)」. 『문제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겁니다. 약을 하나 둘 판다는 건 거기에 비하면 지엽적인 것이에요. 돈벌이 하려면 뭐 할게 없어 약국을 합니까?』 다혈질에다가 정의파라는 그는 원래 신문기자가 하고 싶었다. 불의와 싸우고 자신의 배짱을 구김없이 키울 수 있는 온상은 신문기자사회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고. 서울시 약사회장을 한때 지냈고 지금은 약사회 기관지인 주간「약사공론(藥師公論)」의 주필. 부인 임경자(林慶子)여사와의 사이에 3남 2녀가 있다. 조제실엔 수도 장치를 해놓고 약조제도 꼭 소독「스폰지」위에서 하는 특급 약사. [선데이서울 69년 10/5 제2권 40호 통권 제 54호]
  • 인도 사바나 요가 배워요

    인도 사바나 요가 배워요

    「요가」바람이 불어 그 신효(神效)에 탄복한 어떤 사람들이 중·고교의 정규과정에「요가」를 넣자는 소리까지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멀리 인도에서 진짜「요가」를 가르치겠노라고 두 남녀「요가」길잡이가 날아와 이 땅의「요가」신도들에게 감격과 경탄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예수보다 수천년 더 앞선 인간 구제의 철학이라고 먼저 거룩한 본토박이「요가」의 공개실연광경-. 장소는 서울종로3가 H「요가」연구원 도장. 때는 지난9월4일 하오6시. 출연자는 인도인 남녀 2명에 이들을 초청한 H연구원측의 통역 1명. 관중은 신문광고를 보고 직수입「요가」에 군침을 삼키는 남녀노소 3백여명. 마침 보슬비가 내리는데도 꽤 많은 사람이 몰렸다. 정각-인도인 남자가 인도 옷차림으로 회장입구에 통역과 함께 나타났다. 합장을 하고 관중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뒤따르는 통역이 큰 소리로 외친다. 『여러분, 박수로 환영의 뜻을 표합시다』관중석에서 이윽고 요란한 손뼉소리. 안도인은 만족의 미소. 인도인 남자는 나무의자에 책상 다리를 하고 앉는다. 다시 합장. 눈을 감는다. 입을 움직인다. 『아-흠, 사바나다리, 다라나』『아~흠 사바나다라, 다라나』…관중석이 조용해진다. 인도인 남자는 이 주문 같은「아-흠」소리를 처음에는 작게 차차 높게 길게 되풀이 한다. 이어 일어선 그는「요가」의 설법을 시작했다. 「요가」에는 4가지가 있다면서 손짓하며 입을 크게 놀린다. 『「요가」는「예수·그리스도」의 탄생보다 수천년 더 앞서 인도의 성인이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이룩한 인간구제의 철학이요…불교도「요가」의「요가」의 1파에 불과하나니…』 “무한대로 체력 키워요” 실기 보이며 효능 역설 「히말라야」의 산 속에서 고행수도자(苦行修道者)들이 만들어낸 철학이라는 것이다. 그 4가지「요가」중의 하나가「하타·요가」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올림픽」의 체조 같은「요가」. 그 실기를 인도인 여자가 보여 주었다. 물구나무를 서서 두 다리를 좌우로 쩍 벌리는가 하면 앞뒤로 턱턱 젖히기도 하고… 그것은 마치「서커스」를 보는 기분. 관중석에는 감탄의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분위기를 놓칠세라 통역은 이 동작이 무엇에 좋고 어디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열을 올렸다. 이들은 인도산「요가」의 이론과 실기를 가르치는 남녀「콤비」였다. 남자는「아발라·파르타자나니」(42)씨. 국제적인「요가」창도자란다. 동남아 일대를 두루 다니면서「요가」를 펴고있고 물질문명에 병든 미국에도 갈「스케줄」로 되어 있다고 크게 선전했다. 주최자의 소개에 의하면 그는 인도의「마드라스」대학에서 배웠는데 문학사·이학사·법학사의 학위를 가졌고「런던」대학에서 국제법률학 석사학위를 땄다고 했다. 이마에 빨간 물감으로 수직선을 그려 넣은 괴기스런 모습이 신비감을 더한다. 그 줄을 타고 하늘의 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라고 아리송한 소리를 태연한 태도로 했다. “완전한 성생활…신(神)과의 대화도 가능” 여자는「프레니·모티발라」(38)여사로「봄베이」대학에서 철학을 배운 3남매의 어머니란다. 15년 전에 척추를 다쳐 누웠다가「요가」를 배워 완쾌했다고. 「콤비」는 인도의「요가」본부로 부터 한국에 파견되었는데 왕복여비와 체재비만 받는 조건으로 왔단다. 「헌신의 요가」,「행동의 요가」,「신비의 요가」가 있다. 이 중「신비의 요가」가 몸을 이러저리 비틀고 비비 꼬는 신체단련의「요가」고 나머지 3가지는 이론이라고 한다. 세상사람이「요가」의 심오한 이론을 모르고 다만 미용체조 같은「신비의 요가」에만 쏠리니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라고 본바탕의 설법자는 이쪽의 무식을 나무랐다. 두 손을 하늘 높이 번쩍 들고 외쳤다. 『삶은 경험의 흐름이요, 경험은 사람이 외부세계와 접촉할 때 이루어 지니라. 그런데 사람은 경험에서 고통과 슬픔과 좌절과 환멸을 느끼게 마련이니 그것은 외부세계의 발전과 풍요에 비해 사람마음과 몸의 개발이 뒤떨어진 상태에 있는 까닭이니라. 사람의 욕심에는 한이 없느니라. 다리 없는 사람은 다리 있는 사람을 부러워 하고 자전거를 가진 사람은 자동차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자동차를 가진 사람은 비행기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 한다 하니…』 이렇게 해서 사람은 사람은 끝없는 괴로움의 바다를 헤맨다는 것이다.「요가」철학을 배우면 마음이 개발되어 신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스스로 안정을 찾게 되리라고 뭇 청중에게 영험을 풀이했다.「요가」를 실천하면 정력이 강해진다는 속설에 대해 이들은 함께 다음과 같이 대답하기도 했다. 『사람의 체력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무한정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요가」를 실천하면 성생활을 완성시킬 수는 있다』 청중은 이들의 설교와 실기에 일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청을 했다. 청중 중에는 불교의 승려도 있었다. 가정주부 차림의 여자도 있었다. 중년의 양복장이 신사, 군인, 순경, 여대생, 남학생도 있었다. 실기공개가 끝나자 청중들은 황홀경을 헤맨 표정을 짓고 뿔뿔이 헤어졌다. 그 중에는 퍽 비싼 강습료를 내고 다음 날부터 곧 배우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 만큼 본 토박이「요가」의 효험은 있은 셈이다. 남자인「아발라·파르타자나니」씨는 9월7일 일본으로「요가」를 직수출하기위해 서울을 떠났고「프레니·모티발라」여인은 2~3주일 머무르면서 한국의「요가」신도들에게 실기를 가르칠 계획이란다. [ 선데이서울 69년 9/14 제2권 37호 통권 제51호 ]
  • 검찰과 맞선 5천명 백의천사(白衣天使)

    서울을 비롯한 5천여 전국 시·도 주요병원간호원들은 앞서 과실치사등 혐의로 구속된 김영자(金玲子)(21·부산시 양정동72)간호원 사건에 충격을 받아 9월1일부터 한때 주사 행위를 거부하는 태업에 들어갔다. 이 백의천사들의「사보타지」는 건국이래 처음 있는 일종의 의료행위 거부로 각급병원의 환자진료에 큰 혼란을 불러 일으켰었다. 불씨는 부산(釜山)서 환자죽어 간호원 김양 구속한데서 김영자양은 지난 5월23일 환자 김정혜(부산시 전포동1가 695)양에게「스트렙토·마이신」을 주사, 환자가 이틀이 지난 25일 절명하자 검찰에 의해 의료법위반 및 과실치사혐의로 입건 구속되었었다. 김간호원이 구속되자 간호협회 부산지부(지부장 박원숙(朴元淑))는 긴급 이사회를 열고『의사처방에 따라 간호원이 주사를 놓고 있는게 현 실정임』을 강조, 김양 구속의 부당성을 들고 나왔다. 동 협회지부는 또한 부산의 각 의료기관장 앞으로 보낸 공한에서 ①간호원은 앞으로 정맥주사는 놓지않고 ②근육·피하주사라 하더라도 의사의 입회 감독아래서만 주사를 놓겠다는 등의 결의사항을 통고했던 것. 이번의 김양 사건은 지금까지 통례로 되어 왔던 간호원의 주사 업무를 검찰측이「명백한 의료법 위반」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불씨를 튕겼다. 보사부 의무당국과 간호협회측은 간호원이 의사의 처방에 의해 주사를 놓았고 주사행위 자체가「간호원의 기술」에 속하는 문제인만큼 간호원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데 반해 검찰은 주사도 의료 행위임을 강조, 간호원의 의료행위는 용납할수없다고 맞섬으로써 사건은 묘하게 얽혀들어 갔다. 대한간호협회(회장 홍신영(洪信永))는 김영자양의 구속해제가 이루어지지 않자 지난 8월27일 긴급상임이사회를 개최,『9월1일부터 전국의 간호원은 의사 입회 없는 일체의 주사행위를 거부한다』는 협회의 결의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서울의대 부속병원,「세브란스」병원등 서울시내 병원 근무 간호원 1천여명은 9월1일부터 일체 주사놓기를 거부하고 나서 환자진료에 큰 혼란을 빚어 냈던 것이다. 의사 처방따라 놓은주사 의료냐 보조냐 해석얽혀 간호원의 주사 행위는 그 자체가 불법일까? 의사처방에 따라 주사한 결과 사고가 생겼을 경우 그 책임 소재는 어느 쪽으로 돌아갈까? 현행 의료법 제7조에 의하면 간호원은『상병자(傷病者) 또는 해산부의 요양상의 간호 또는 진료의 보조에 종사한다』고 되어있다. 또한 동법 25조는『의사가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수 없다』고도 못박고 있다. 주사행위가 의료행위의 하나라면 간호원은 결코 주사를 놓아서는 안되나 의사의 처방에 따른 행위가「간호 또는 진료의 보조」인이상 간호원의 주사행위는 합법일수도 있다는 모순이 생기게 되는 것. 더구나 이번에 죽은 김정혜양의 사인이 ①호흡중추 마비 ②뇌막염 ③폐결핵 등으로 밝혀진 이상 김영자 간호원에게 주사「쇼크」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간호협회측은 주장하고 있다. “쇼크 때문에 죽었다해도 처방대로라면 책임없다” 그들은 설사 직접적인 사망원인이 주사「쇼크」라 해도 의사 처방에 따른 주사라면 그 책임이 결코 간호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주장, 더욱 큰 반발을 나타내고 있는 것. 이번에 사고를 낸 김간호원은 원래 부산진구 보건소 근무 가족계획 간호원이었다. 사고가 나던 날 김간호원은 밀어 닥치는 결핵환자로 일손이 모자라 쩔쩔매는 동료 결핵관리간호원을 도우려고 주사를 놓았다가 이런 변을 당했다고. 더구나 주사한 0.5g「스트렙토·마이신」은 의사입회 없이도 놓을 수 있는 장기 처방이라 김간호원의「무죄」심증은 더욱 굳어지는 것이라고 간호협회 윤수복(尹守福)총무는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간호원 총수는 6천3백여명. 이중 1천7백여명이 서독, 미국,「캐나다」등 해외에 취업하고 있다. 국내에서 취업하고 있는 간호원의 절대수가 워낙 부족한 데다가 대우불량으로 인한 퇴직자의 격증으로 최근의 각 종합병원은 현저한「간호원 기근」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실정. “이런식으로 다스린다면 앞으로 주사놓을수없다” 이밖에 일반 개인 병원에서 채용하고 있는 무자격 간호원은 지금 전국적으로 약1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간호협회측은 이들과 정규 간호원을 구별 못하는 사회의 무지가 김영자 간호원사건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흥분하고 있는 것. 이번 간호원 태업사건에 대한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차윤근(車潤根)보사부 의정국장=김간호원의 구속사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우선 알아봐야겠다. 우리나라는 지금 의사 수가 부족하여 간호원이 일일이 의사의 입회하에 주사를 놓는다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사부로서는 의사의 처방대로 간호원이 주사를 놨을 경우, 그것을 어디까지나「간호원의 기술」에 속하는 문제로 간주하겠다. ◇홍신영(洪信永)간호협회장=환자의 사인을 봐도 그렇지만 설사 약물 중독자라 해도 의사의 처방에 따라 주사한 간호원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주사하는 행위 자체가 보조업무이며 기술상의 문제이므로 의료법 위반이 될 수도 없다. 이런식으로 법을 다스린다면 간호원들은 앞으로 도저히 주사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김양욱(金凉郁)씨(의박(醫博)·서강의원장)=간호원들의 주사 행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그것이 의사의 처방과 지시에 따른 것인 이상 주사행위의 결과는 간호원의 책임이 될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 서울의대와 연세의대에서는 『일체의 주사는 의사가 놓는다』는 미국 병원의 예에 따라 간호원은 근육주사만을 놓도록 업무한계를 그어 놓고 있으나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간호원이 정맥과 근육 주사등 모든 주사를 다 놓고 있는 실정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9/7 제2권 36호 통권 제50호 ]
  • 儒林(57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2)

    儒林(57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2)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2) 임금이 친림하였으므로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없는 형편상 고시시간도 짧아서 촉각시(燭刻試)란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촉각시란 고시시간이 짧아 마치 ‘초 한 자루가 다 탈 때까지 답안지를 작성해서 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별명인데, 그런 탓으로 시험문제도 간단하게 채점할 수 있는 주로 세시(歲時)에 관한 상식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알성시에서는 실력보다는 운이 작용한다 하여 응시생들이 점점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영조15년에 거행한 알성시에 응시한 거자가 2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한양의 성안 인구가 20만에서 30만 정도였던 것으로 생각해 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유생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서 성균관으로 모여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생들이 선접꾼을 고용하여 현제판에서 가까운 좋은 자리를 확보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또한 남보다 빨리 답안지를 제출함으로써 채점관의 눈도장을 찍어야 할 긴박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즉일방방(卽日放榜). 문자 그대로 ‘시험 당일날에 결과를 공포한다.’는 즉일방방은 하루 만에 모든 시험지를 검토하고 합격자를 발표하는 판이니 속전속결. 따라서 채점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고 대충 답안지의 앞머리만 훑어보고 채점하는 기현상이 발생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정조 실록’에 의하면 일찍 제출한 답안지 중에 합격자가 나오는 확률이 높아서 정조21년 가을 감시(監試)의 이소(二所)에서 행한 과거시험의 합격자는 먼저 낸 3백장 안에서 거의 대부분 나왔던 것이다. 이는 채점을 하는 시관이 일찍 낸 답안지 약간만 보고 채점을 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답안지는 채점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산증거인 것이다. 이렇게 일찍 제출한 답안지에서 합격자가 나오자 거자들은 답안지의 서두만 대충 써서 일찍 제출하는 임기응변이 속출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답안지를 빨리 내는 소위 ‘조정의 폐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해 겨울 율곡이 본 별시문과는 알성시와는 달랐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유생들은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교육을 받았다. 명륜당(明倫堂)은 공자를 비롯한 옛 성인들의 정신을 본받아 새로운 역사창조의 바탕을 마련하려는 곳이며, 백성들의 도의정신을 함양하고, 사회정의정신을 뿌리내리려는 유생들의 강학장소였는데, 이번에는 유생들만 따로 응시하게 하는 특별전형이었던 것이다. 원래는 성균관의 유생들과 3품 이하의 조사(朝士)에게만 응시자격을 주었으나 이번에는 지방의 유생들에게도 응시자격을 주었으므로 먼 변방의 강릉에 살고 있던 율곡도 별시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어악(御樂)이 일어났다. 과거시험이 시작된 것이었다. 과거시험 문제를 낸 시관이 문제판을 들고 현제판에 임한 후 홍마삭(紅麻索) 끈을 매어 일시에 올림으로써 만장(滿場)에 시험 문제를 공표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 王서방요리 金서방이 판다

    王서방요리 金서방이 판다

    자장면집 「王서방」들은 요즘 입맛이 쓰다. 한국인 경영의 중국 음식점이 자꾸 늘어나 이제는 그들의 경제권 마저 위협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이 이거 장사 안돼. 정말 안돼 이거-』. 장안 「자장면 재벌」의 판도가 「王서방」에서 「金서방」으로 국적이 바뀔 판국이라는데…. 한국인 경영의 본격적 중화 요리점 제1호는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삼풍상가에 문을 연 「W」. 어찌된 셈인지 문을 열자 마자 손님이 몰려 들기 시작, 개점 반년만에 화교가 경영하는 명문 「A원(園)」과 어깨를 겨루는 대요식업소로 성장했다. 「W」은 특히 가족 동반, 외국인 동반 손님이 많아 재미를 보고 있으며,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한번 꼭 들러 음식을 시식(試食)할 정도로 어느새 서울시내 관광「코스」의 하나로꼽힐만큼 되었다. 「W」의 「클린·히트」에 고무되었음인지 이번엔 스타일」의 새 한국인 경영 중국 음식점이 종로 번화가에 선을 보였다. YMCA근처 8층 「빌딩」안에 자리잡은 「H」-지난 7월 23일 문을 열었다. 8층 「빌딩」의 1층부터 5층 까지를 몽땅 도려 냈으니 규모는 「W」나「A園」보다 오히려 더 큰셈. 가위 「매머드」급이다. 기성 「자장면 재벌」의 판도를 바꿔놓을만한 두개 한국인 경영 중화 음식점의 면모를 먼저 살펴 보자. 「W」는 개점하자 마자 손님이 쇄도, 이틀뒤 문을 닫고 주방을 넓히는등 시설을 개조하여 그달 25일 재개점했다. 주인은 군출신의 김응한(金應漢)씨. 「W」은 「홍콩」의 「얌차」(飮茶)식 식당에서 「힌트」를 얻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중국 음식점이다. 전통적으로 「코리아나이즈」된 재래식 중국음식을 지양, 사천(泗川), 광동(廣東), 북경(北京)식 요리를 도입하여 선을 보이면서 내부적으로는 식당 경영을 기업화 하는등, 「머리를 쓴」흔적이 보이는 음식점, 『청결·친절·음식맛 이세가지를 「모토」로 삼고있읍니다. 유흥장으로 보다는 가족동반 친지동반으로 조용한 한때를 보낼 수 있는 식당으로 가꾸려고 애를 많이 썼읍니다. 외국인들과 아이들이 많이 드나들더니 술 취해 떠드는 사람들이 없어지더군요. 분위기가 아늑하고 순수하게 지켜지는 편입니다』 김영한(金寧漢)상무는 무엇보다 「W」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고심했음을 실토한다. 중국집에서 흔히 불 수 있는 떠들썩한 분위기와 음식이 나올 때까지의 오랜 기다림, 한국인의 생리에 잘 맞지 않는 「서비스·매너」등 많은 「터부」의 요소들을 「W」는 대담하게 청소해 버렸다고 자랑이다. 4백여평의 넓은 「홀」에 「테이블」은 70여개. 10여개의 「카트」(손수레)가 이리저리 돌아 다니며 음식을 판다. 철두철미한 「빌」제, 복잡한 중국 요리의 한국식 표기등도 고객에 「어필」된 큰 요소인 듯 하다. 지난 7월 23일 개점한 「H」는 우선 손님수용력이 「W」보다 월등하다. 2층과 3층은 고대 중국의 호족 내실을 연상시키는 휘황한 「데코레이션」의 넓은「홀」이다. 2층의 「테이블」은 42개, 3층이 32개. 4층엔 11개의 방이 있고 5층에 4백명 수용의 대 연회실이 있다. 전관(全館)의 치장은 홍대(弘大) K모 교수 솜씨. 『3개월동안 시장조사를 했읍니다. 거기서 W「스타일」은 안되겠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그래서 연회석 위주로 음식도 보통 재래식 중화요리로 내 놓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사장 홍형표(洪瀅杓)씨의 말. 「H」의 음식은 90원짜리 특제, 자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비싼건 한 상 1만 몇천원짜리까지. 중국인 「쿠크」11명을 세종 「호텔」등에서 「스카우트」했다. 붉은 「꾸냥」복의 아가씨들도 특수 훈련된 반 중국인 처녀들. 한국인 경영이기 때문에 분위기는 보다 「중국적」이어야 한다고 洪사장은 알 듯 모를듯한 경영론을 편다. 『외국서도 보면 큰 중국 요리점을 중국인 경영 아닌게 많습니다. 중국 음식의 맛을 분명히 살리면서 그네들 식당의 단점을 개선해 나간다면 실패 할 염려는 없으리라 믿습니다』 홍형표(洪瀅杓)사장의 자신에 찬 경영론. 한국인 경영의 중국음식점은 서울 변두리에만 50여개소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물론 호떡이나 자장면류를 만들어 파는 영세업자들. 분명히 중국음식점쪽에 위협이 되기 시작한건 W와 H의 출현이다. 이들 두 업소는 하루 매상 1백만원대를 올리고 있다. 지난 7월 말 현재 서울시의 집계에 의하면 서울시민이 유흥업소에 뿌리는 돈은 하루 평균 9천4백41만원꼴이다. 이중 3종 음식점의 경우만을 보면 한식이 하루 1천7백58만원, 중국음식 9백2만원, 양식 4백32만원, 일본식 3백9만원의 순서. 중국 음식의 경우는 값이 1백원 이상인 것만을 대상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루 1천~1천5백만원의 매상을 올릴 것으로 추상하고 있다. 이렇게 볼때 W·H등 한국인 경영 중국음식점이 기존 중국음식점 사회에서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크로스·업」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은 일.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되도록 중국인들이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전통적인 「韓中친선」도 그렇지만 잘못하다가는 음식 재료 공급 중단등의 압력(?)을 중국사람들로부터 받을 것을 두려워 한 때문. 몇 년전 진해(鎭海)에서는 시민들이 중국음식 불매동맹(不買同盟)을 벌여 큰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이 소동의 발단이 한국인 경영 중국음식점에 재료 공급을 중단한 때문이라니 딴은 신경을 안쓸 수도 없는 일. 새로운 요리, 청결, 친절한 「서비스」, 거기다 「플러스·알파」로 국가의식 같은 것까지 호소하는 한국인 경영 중국 음식점의 상혼은 제법 인기를 모으고 있는 셈. [ 선데이서울 69년 8/10 제2권 32호 통권 제46호 ]
  • 인기가수들은 뭘먹고 사나

    인기가수들은 뭘먹고 사나

    한국연예협회는 최근 가수들의 방송출연료를 1백% 인상해달라는 내용의 요청서를 각 방송국에 내놓았다. 현재까지 가수들이 방송국에서 받는 「개런티」는 A급이 한번 출연에 1천2백원(라디오)에서 1천8백원(TV). 신인 가수라면 출연료가 문제될 것도 없지만 결코 후한 대접은 못된다. 여기서 현역 대중가요 가수들의 수입원들을 들춰보면-. 대중가요 가수를 그들의 활동분야별로 나눠보면 「라디오」·TV 「레코드」취입 극장공연·「나이트·클럽」출연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환갑잔치나 야유회등 사석(私席)까지 포함하면 그런대로 꽤 다채로운 셈이랄까? 그러나 한국연예협회에 등록돼있는 가수 8백40여명중 「레코드」계나 방송계에서 활동을 유지하고있는 가수는 불과 30여명 안팎이다. 「레코드」판매율이나 방송출연회수가 가수의 인기척도라면 손꼽을 수 있는 인기가수는 열손가락으로 헤아릴정도. 현재까지 방송국이 이들 출연가수에 지불하는 「개런티」는 그 인기도에 따라 A·B·C 3등급으로 구분했다. 「라디오」의 경우 노래한곡 녹음에 A급이 1천2백원, B급이 1천원, C급이 7백원선. 公開방송은 조금 더해서 A급이 1천8백원이고 B급 1천5백원, C급 1천3백원선. 가수의 인기가 유동적인한 방송국책정의 등급이 반드시 고정적인건 아니다. 그러나 연예협회측은 이 금액이 67년 6월에 책정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최소 1백50%는 인상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가수가 방송출연료를 가지고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한국실정으로는 아직 요원한 얘기다. MBC-TV가 새로 창설되면서 벌어진 TV「탤런트」쟁탈전은 TV「탤런트」의 줏가를 부쩍 높여놨다. 그러나 비슷한 쟁탈전이 가수쪽에도 벌어지고 덩달아 가수의 줏가도 오를 것이란 기대를 거의 찾을 수 없다. 가수중에는 「개런티」는 안받더라도 출연만 시켜주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방송에 실려야 노래가 「히트」할 수 있다는 상관관계 때문에 돈보다는 우선 출연 그 자체에 열을 올린다. 심한 경우는 작곡가·가수가 「레코드」를 안고 방송국으로 뛰어 다니며 출연경쟁을 벌이고. 가수의 「개런티」는 극장출연에서 비교적 오붓하다. 「쇼」흥행단체의 집합체인 한국연예단장협회는 아예 가수 하나하나에 단가를 붙여놨다. 하루 극장 출연료가 최고 2만5천원에서 최하 1천원.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5백원 일당의 무명신인도 있고 아예 「개런티」를 받지 않고 나가는 무명도 있다. 제일 비싼 가수는 이제까지 최희준(催喜準), 이미자(李美子)(각 2만5천원) 두사람이었다. 패티 金이 하루 10만원을 홋가했고 尹福姬(윤복희)도 그랬지만 그 가격으로는 아무도 쓰지 않아 흥정이 성립 안됐다. 가수 남진(南珍)은 영화에 출연한 이후 가수보다 배우로쳐서 하루 5만원정. 배우의 무대출연료는 가수와 비교할 수 없게 비싸서 A급인 김지미(金芝美), 신성일(申星一), 문희(文姬), 남정임(南貞妊)등은 하루 10만원씩 받았다. 또 한가지 최근의 동향으로는 인기상승의 조영남(趙英男)과 「펄·시스터즈」의 파격적인 「개런티」를 들 수 있다. 신인이란 「레테르」를 아직 그대로 지닌 이들은 최희준(催喜準), 이미자(李美子)보다 많은 3~4만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들보다 더 잘 팔리고 있다. 이미자(李美子), 최희준(催喜準) 다음의 A급 2만원짜리는 이금희(李錦姬), 김상희(金相姬), 현미(玄美), 배호(裵湖). B급으로쳐서 1만5천원짜리에는 위키李, 유주용(劉冑鏞), 박재란(朴載蘭) 한명숙(韓明淑), 金세레나 등이 있다. 그다음 가수들의 중요한 수입원은 밤일, 즉 「나이트·클럽」등 술집에 나가서 노래하는데 있다. 보통 하룻저녁에 2~3개소의 「클럽」을 왕래하면서 노래 2곡씩을 부르고는 겹치기 수입을 올린다. 출연료는 극장보다 싸서 최고가 하룻저녁에 2만원. 이 2만원짜리는 영업체가 자체선전을 할때 간판구실로 내세울 뿐이고 장기계약은 물론 그 이하, 많아서 1만5천원이다. 「나이트·클럽」을 부지런히 뛰는 가수로는 배호(裵湖), 이상열(李相烈), 「펄·시스터즈」, 金세레나, 문주란(文珠蘭), 정훈희(鄭薰姬), 리타金, 김하정(金夏廷), 황인자(黃仁子), 조영남(趙英男), 하남궁(河南宮), 이석(李錫)등을 꼽을 수 있다. 서울의 「클럽」중 음향시설이 좋다는 K「클럽」과 V「클럽」이 가수들로는 제일 나가기 좋아하는곳. A급 가수는 거의 이 두「클럽」에 한두번이상 출연경력을 갖고있다. 「펄·시스터즈」의 K「나이트·클럽」의 출연료가 하룻저녁 1만5천원이니까, 밤 출연료로는 최고액인셈. 하룻저녁에 두서너군데씩 자리를 바꾸는 문주란(文珠蘭), 배호(裵湖), 정훈희(鄭薰姬)는 각 1만원이 못되지만 겹치기 수입으로 그 2,3배로 늘릴 수 있게 마련이다. 그 다음 「디스크」취입에 의한 수입. 「디스크」가 가수의 상품이고 그 발매부수가 곧 인기의 척도라면 가수의 수입은 이 분야에서 확실히 보장되어야 할 것 같다. 사실 몇몇 인기가수를 둘러싼 「레코드」제작자간의 전속 쟁탈전은 차차 심각해지는 상태이기도 하다. 1년간 전속료로 최고 1백만원이 홋가되고 1급이라면 50만원쯤은 받는다는 게 상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가수의「디스크」취입료는 아직 대단한게 못된다. 전속의 경우 계약금 외에 2~5만원의 월급을 받고 「프리」의 경우는 최고가 곡당 2만원정도의 취입료. 조영남(趙英男)이 곡당 2만원을 받고 김상희(金相姬)가 곡당 1만5천원을 받고 있다. 「디스크」계의 인기 주라면 이미자(李美子)를 필두로 패티김, 남진(南珍), 「펄·시스터즈」, 최정자(崔貞子), 배호(裵湖), 은방울자매, 김상희(金相姬), 金세레나, 문주란(文珠蘭), 정훈희(鄭薰姬) 정도. 이밖에 고관이나 재벌의 경사에 초청되어 의외의 수입을 올리는 가수도 없지않다. 환갑집의 단골 가수로는 金세레나가 꼽히는데 거기서 받는 사례는 보통 5~10만원정. 엉뚱하게 큰 목돈을 벌기도 하지만 누구나 바람직한 수입원은 결코 못된다. [ 선데이서울 69년 8/3 제2권 31호 통권 제45호 ]
  • 돈벌이 나선 한국의 멋장이 삼총사

    돈벌이 나선 한국의 멋장이 삼총사

    저마다 다른 길을 걸어온 세 중년신사가 모여 꿈 같은 대사업을 시작했다. 관광사업을 더 세련시켜 한국의「이미지·메이킹」에 새 단장을 하겠다는 것. 세상은 이 세 신사의 결합을「로맨티스트」이자「아이디어·맨」3총사의 악수라고 부른다. 민병도(閔丙燾), 설국환(薛國煥), 오재경(吳在璟) 3씨가「코리아나 관광진흥주식회사(觀光振興株式會社)」(서울 중구 무교(武橋)동·체육회관(體育會館) 3층)라는 기업체를 만든 것을 가리켜 그렇게 말한다. 그들의 말 마따나 50평생을 돈벌이와는 인연없이 지낸 선비들이 돈벌이도 되는 회사를 만든 것도 색다르지만 이 3인조의 출현 그 자체가 하나의「뉴스」다. 우선 그 경력과 배경을 보면 어울릴법하지 않은 사람들이「팀」을 짰기때문이다. 민병도씨 – 52세 서울출신. 일본경응(日本慶應)대학 법학부 졸. 1938년에 당시의 조선은행 (한은(韓銀)전신)에 들어가서 62년에 총재를 지낸 뒤 퇴직하고 실업계에 투신, 현재는 경춘(京春)관광주식회사 사장으로 있다. 금융계출신이다. 설국환씨 – 51세. 함남(咸南)출신. 동경(東京)대학농학부졸. 해방전 한때 조선농축(朝鮮農畜)주식회사의 사장을 지내다가 해방후로는 언론계에 들어가서 합동(合同)통신 편집국차장, 총무국장, 세계일보(世界日報) 전무취체역, 한국일보 주미(駐美)특파원, 한국일보논설위원을 지낸 신문기자. 저서로『일본기행(日本紀行)』을 냈다. 오재경씨 – 50세. 황해도(黃海道)출신 일본 입교(日本 立敎)대학 경제학과 졸. 공보부장관, 국제관광공사 총재를 역임한 관운(官運)좋은 관료파. 금융인, 언론인 그리고 관료의 3이질(異質)이 얼려 하나로 응결한 것이 바로「코리아나관광(觀光)」. 새로운 한국의「이미지·메이킹」을 하겠다는「로맨틱」한 꿈이 세 사람을 얽는 밧줄이 되었다. 관광사업을 하되 보통 평범한 관광사업이 아닌 광범한 뜻에서 한국의「이미지」를 더 세련되게 만드는 선도역할을 하겠다는 이상이 그 동기다. 다만 꿈만 가지고는 먹고 살 수가 없다. 수지가 맞고 자기들의 꿈을 만족시켜 주고 국가에도 도움이 되고 – 이렇게 3박자가 갖추어지는 관광사업을 물색한 끝에「코리아나」의 첫 사업으로 착수한 것이 남산(南山)기슭에 외인전용의「매머드·아파트」를 세우는 사업이다. 「코리아나」의 회장에는 오재경씨, 사장에는 설국환씨, 이사에는 민병도씨가 취임했다. 실무를 맡은 설국환씨로부터 기획이 움텄을 때부터 장차의 계획까지를 들어보면- 『우리 세 사람은 잘 어울려「골프」도 치고 어디에 좋은「살롱」이 생겼다고 소문이 나면 분위기를 구경하기 위해 가 보기도 하는 중년의 친구들이거든요. 그런 기회에 우리가 주고 받는 화제 중의 하나가 관광사업인데 한국이 남의 나라를 손쉽게 앞지르려면 관광뿐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죠』 우연히 미국인회사 중에 한국에 본격적「아파트」를 짓는다면 투자를 해보겠다는 회사 몇 개를 알아내어 계획이 싹텄다. 처음에는「호텔」을 짓자는 계획이 합작회사의 의향을 좇아「아파트」로 바뀌었다. 68년 10월에 정부로부터 합작사업에 대한 허가를 받았고 오는 10월에 착공, 70년 12월에 완공시킬 계획으로 있다. 모든 면에서 국제급으로 제1류의 시설을 해서 한국 선비의「로맨티시즘」을 나타내보겠다는 것. 「아파트」는 서울 용상구 한남동 726의 74. 남산기슭의「타워·호텔」뒤편 약5천평 대지에 세워진다. 철근「콘크리트」건물 16층이다. 총공사비는 16억원. 미국의 4개회사가 70%,「코리아나」가 30%를 출자한다. 「아파트」의「모델」이 되리라는 장담이다. 운영계획을 보면 1층에 식당, 이발소, 「수퍼·마키트」, 미용원등「아파트」입주자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한다. 2~4층은 장기체류자를 위한「호텔」로 한다. 5~16층을「아파트」로 분양한다. 분양「아파트」는 모두 1백50가구분. 분양가격은 침실 4개, 거실 1개, 목욕탕 3개, 「발코니」1개, 부엌1개짜리 특등실(41평)을 10가구분. 한 세대의 분양값이 1천3백만원(4만9천4백달러)이다. 이 특등실의 평당가격은 약 3백25만원. 방값 치고는 한국 최고의 가격이다. 다음이 침실3개짜리가 60가구분으로 분양값이 1천1백50만원(4만2천1백달러), 침실 2개짜리가 45가구분으로 분양값이 9백만원(3만4천달러). 규모가 제일 작은 침실1개짜리가 35가구분으로 분양값은 6백30만원(2만3천9백달러). 부대시설로 1가구당 1개소씩 주차장을 마련하고 입주자를 위한 전용「풀」, 식모들의 합숙소를 두고 각 세대 마다 각종 가구는 물론 전화, 「라디오」, TV, 냉·난방,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심지어 찌꺼기처리까지 설비한다. 입주자는 돈을 내고 세면 도구와 잠옷만 가지고 가면 그날부터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설계는 미국에서 1류로 손꼽히는 교포 K·D·朴(하와이 재류)씨가 근대감각과 최신의 기술을 도입한 참신한 도면을 그렸다. 그 일례로 이 16층짜리 건물에는 기둥이 없고 벽이 모두 기둥이 된다는 것이다. 「코리아나」의 세「아이디어·맨」은 외국인 전용「아파트」하나로 만족하려 하지 않는다. 이 건물을 중심해서 다시「호텔」과「풀」, 어린이 놀이터, 「볼링·센터」등을 만들어 남산일대에 이 자체만으로도 외국인을 안내하는 관광「코스」가 되게해서 세련된 한국의「이미지」를 외국관광객에게 심어주겠다는 원대한 꿈에 부풀어 있다. 『「올드·로맨티스트」의 꿈이죠』 오재경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껄껄 웃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학교도 일본에서 마쳤고 다소 문화적인 냄새를 풍긴다는 생활을 해 왔고 돈벌이에 인연이 없었고 꿈을 꾸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점이 공통점이 겠죠.「코리아나」도 중년의 꿈의 소산입니다』 [ 선데이서울 69년 8/3 제2권 31호 통권 제45호 ]
  • 카바레안에 온돌방 있읍니다

    카바레안에 온돌방 있읍니다

    춤을 추는 「카바레」에 난데없이 보료와 사방침이 등장했다. 그것도 보통「카바레」가 아닌 세칭 「아르바이트·홀」이란 곳에. 춤추는 「플로어」와 술마실 「테이블」이야 으레 있어야 하는 것. 그러나 「카바레」한 구석에 온돌방을 꾸며 미닫이 하나만 닫으면 바로 그들만의 세계가 전개되는 안방이 등장하는 시대다. 「아르바이트·홀」의 근대화랄까 다음은 「아르바이트·홀」목하(目下) 성업기(盛業記). 「커트」된 영화 「필름」까지 그 외설 여부가 말썽이되는 한국에서 유독 「커트」되지 않은 「신」의 자유가 있는 곳이 바로 「아르바이트·홀」-. 그처럼 숱한 유부녀들을 울려 놓고도 오히려 독버섯처럼 번식해 가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에 만도 로 알려진 곳은 30여개소. 모두 「카바레」허가를 얻어 합법적인 영업행위를 하고 있으나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카바레」와는 그 업태(業態)가 다르다. 정상적인 「카바레」라면 남자 손님을 접대하는 「호스테스」(댄서)가 있거나 아니면 동반남녀만을 받게 되어있다. 「카바레」에 여자들만이 들어간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 그러나 「아르바이트·홀」의 경우, 어떤 여성이든 1백50원~2백원의 입장료(법망(法網)을 벗어나기 위해 차권(茶券) 식권(食券) 등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지만) 만 내면 「프리·패스」. 일단 입장한뒤 춤을 청해오는 신사들의 손길만 기다리면 된다. 「파트너」바꾸는 것은 여자들의 의사에 달린 것. 이래서 「아르바이트·홀」은 여성천국. 그 여성천국을 관광하기 위해 서울시내에서 최신 「카바레」를 들어가 보자. 우선 입구에서 男 2백50원. 女 1백50원의 입장료를 물고 종이쪽지 하나를 받고 「패스」. 이 종이쪽지로는 싸구려 「콜라」한잔을 마실 수 있다. 1천평이 넘는 「매머드·홀」은 한가운데 약 50%정도가 「플로어」를 둘러싸고 주위엔 두줄로 약3백여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다.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이 「테이블」에 앉아 현찰로 술을 사 마실 수도 있다. 더욱 이채로운 것은 「테이블」옆 벽쪽에 마련되어 있는 한식(韓式)방들. 한방에 7·8명이 들어앉아 마실 수 있는 이 「카바레」속의 이색지대 온돌방에는 큰 상과 보료. 사방침까지 마련되어 있다. 서로 눈이 맞아 「플로어」서 한바탕 「댄스」를 즐기던 선남선녀들이 이 방안에서 술을 마시며 즐길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나 과연 술뿐일까? 미닫이를 닫으면 「홀」과는 절연- 그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르바이트·홀」에서 눈을 맞추어 여관이나 「호텔」로 장소이동을 하던 번거로움을 없애자는 것일까? 「인스턴트」시대에 발맞추는 「아르바이트·홀」의 근대화일까? 춤을 추어보자. 「테이블」에 앉거나 「플로어」주변에 서있는 여성들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손을 내밀면 OK. 거절하면 딴 여성에게 손길을 옮기는 수 밖에 없다. 이래서 여성이 응하면 「플로어」에 나서서 춤을 출 수 있다. 재수좋게 만나면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계속 출수 있고…. 「카바레」에서 호흡이 맞아 간단히 유부녀를 농락한 제비족 공갈단의 존재는 얼마전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단 일. 「라스트·블루스」까지 함께 추었다면 40% 성공. 끝난뒤 『차나 한잔』 권유에 못이기는 체하고 따라나서면 90% 성공이라는 말도 있다. 나머지 10%는 남자의 실력여하에 달린 것. 여자측의 의사 표시는 이미 끝난 것이라고 한다. 이 「프리·섹스」왕국(王國)의 여성고객중 약 60%가량이 30代 이상의 여인들이란데 문제가 있다. 춤바람난 유부녀나 과부를 노린 세칭 「제비족」이 꽃에 나비가 모여들 듯 「아르바이트·홀」을 찾아들기 때문이다. 이들 30代여인들과 제비족의 관계는 하룻밤 정사로 끝나지 않는다. 제비족들이 노리는 것은 여체(女體)자체가 아니라 그녀들로부터 나오는 금품(金品)이기 때문. 이래서 아차 하룻밤 정사는 끝없는 불륜(不倫)과 파멸을 초래한다. 「프리·섹스」가 「프리·섹스」로만 끝나지 않는 곳. 그래서 「아르바이트·홀」이 도심보다 변두리 지역에 많은 것은 바로 이런 때문. 천호동. 청량리, 마포, 한강로, 용산, 왕십리, 정릉, 신촌들이 「아르바이트·홀」의 현주소다. 「아르바이트·홀」은 춤바람난 유부녀나 제비족의 전용 「데이트」장은 아니다. 고객을 끌기위해 출장나온 「콜·걸」도, 춤을 갓배운 념녀 대학생도, 주부도, 하룻밤을 즐기기 위해 찾아드는 「샐러리맨」·「오피스·걸」도, 철없는 연인들도 마음대로 찾아들 수 있는 곳이다. 이래서 「피크」를 이루는 토요일밤의 「아르바이트·홀」은 축소판 서울의 밤을 이룬다. 억제되어 있던 성적 충동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는 때문일까? 서울의 「아르바이트·홀」은 날로 그 수가 늘어나고 대형화해간다. 「아르바이트·홀」에서의 춤은 「레크리에이션」이나 사교의 한계를 넘게 마련. 「라스트·블루스」의 유장한 「리듬」속에 오늘 밤도 한국의 「프리·섹스」지대, 「아르바이트·홀」은 목하(目下) 성업중이다. ■ 제비족 감별법 10章 ①「지리박」잘 추는 사내를 조심하라 = 춤 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지리박」. 그래서 제비족들은 「트로트」도 「지리박·스텝」으로 밟는다. ② 예의바른 청년신사를 경계하라 = 제비족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자기 정체가 드러나는 일. 그래서 유부녀들이 제비족임을 눈치못채게 영국신사 뺨칠 정도로 예의가 바르다. ③ 가장자리로 「리드」해 가는 사내는 제비족 = 그래야 많은 사람 앞에서 춤실력을 과시할 수 있으니까. 「아마추어」들은 정반대로 「플로어」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마련. ④ 제비는 젊은 여자를 싫어한다. = 대체로 젊은 여자들에겐 돈이 없다. 제비가 노리는건 나이많고 얼굴이 예쁘지 않은 중년 부인들. 안팔리는 여자만을 고른다. ⑤ 저고리 윗 「포키트」의「포케치프」는 적신호(赤信號) =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도 제비족은 정장(正裝). 기름에 튀긴 것처럼 매끈하고 항상 저고리 윗 「포키트」엔 「포케치프」가 꽂혀있게 마련. ⑥ 선제(先制)공격이 없는 사내는 위험 = 사내란 거의가 능동적. 그러나 제비족은 상대편서 어떤 반응을 보이기 전엔 절대로 허리를 잡은 「리드」를 죄거나 뺨을 갖다대지 않는다. ⑦「카바레」아닌 딴곳에서의 「데이트」약속을 요구하는 사내 = 「아마추어」는 대부분 (즉결)卽決주의. 그러나 제비족은 지구전이다. 「아마추어」들은 밖에서의 「데이트」를 꺼리기 때문에 다음 만날 약속을 잘하지 않는다. ⑧ 춤을 추며 인사를 자주하는 사내 = 그때그때 적당한 핑계를 대지만 「아마추어」의 경우, 아는 사람을 만나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정석(定石). ⑨「리드」가 부드럽고 능란한 사내 = 춤은 제비족의 필수조건. 황홀한 「리드」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⑩ 춤추는 곳을 잘 옮기는 사내 = 「아마추어」들은 A「카바레」에서 한 여자를 사귀게 되면 춤은 꼭 A「카바레」만을 이용. 매일 후조처럼 장소를 바꾸는 사내는 99% 제비족이다. [선데이서울 69년 7/27 제2권 30호 통권 제44호]
  • 달여행서약 제일 먼저했더니

    달여행서약 제일 먼저했더니

    『이 아이들이 또 엉뚱한 짓을 한다고 처음엔 꾸지람을 받았어요. 하지만 달엔 정말 가보고 싶었거든요. 열심히 식구들을 설득했죠.』 달나라 관광 예약 제1호는 곱게 자란 양가댁 규수였다. 유상숙(柳祥淑·22·서울 한남동)양. 「아폴로」11호의 성공적 달 착륙으로 일기 시작한 달여행 예약 「붐」을 「리드」한 장본인이다. 『그 사람이 아마 「콜린즈」죠.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을 때 혼자 모선(母船)에서 달 궤도를 돈 사람. 너무 너무 불쌍했어요』 언제쯤 갈수 있을는지는 접수처서도 자세히 몰라 『친구들이 미국엘 많이 가요. 그 애들 한테 「그까짓 미국, 난 달나라엘 간다」고 자랑할 생각을 하니까 너무 너무 신나요』 달나라 여행이라는, 정말 신나는 「붐」은 벌써부터 일기 시작했다. 「얘들아 오너라 달 따러 가자」던 동요가 이젠 달 나라가는 행진곡으로 뒤바뀔 판. 지난 22일까지 「판·아메리카」 서울지사엔 모두 8가구 22명의 달여행 예약이 접수되었다. 「판·아메리카」 본사엔 이날 현재 2만명이 넘는 예약 신청이 들어 왔다는 외신보도. 달 여행은 한국에서도 정말 가능한 것일까. 갈 수 있다면 언제쯤이나 실현될까. 「판·아메리카」본사는 「아폴로」 11호 계획이 확정된 후 각국 지사에 「문·플라이트」(달여행)예약을 접수하도록 시달했다. 한국 지사엔 지난 4월18일, 4월29일 두번에 걸쳐 공문이 왔는데 그 내용은 『달여행 희망자의 예약을 접수하여 69년 12월31일까지 본사에 통고할 것』- 간단하다. 우주기지 건설 84년부터 90년께나 여행 가능할 듯 여비나 출발 일자, 비행 방법등 구체적인 것은 어느 하나도 아는게 없다고 「판·암」서울지사측은 밝히고 있는 실정. 미 항공우주국의 「스케줄」에 따르자면 인간의 달 관광 여행은 달에 우주 기지가 설치된 다음에야 가능하다. 본격적인 기지 건설 연도를 1984년으로 잡고 있으니까 여행은 85년~90년에나 가능하다는 결론. 이 점은 연세대 천문기상학과 조경철(趙慶哲)박사도 시인하고 있다. 조박사의 개인적 견해로는 달 기지와 우주 「스테이션」이 설치되는 90년 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것. 「달여행 예약」이라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진 뒤 지난 7월 23일 아침까지 상숙양 집에는 모두 60여통의 「팬·레터」(?)가 배달되었다. 그중 몇 통만 우선 읽어 보자. 달여행 예약이 알려지자 돈꿔달라, 보험들라 편지 -영광스러운 달 여행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저의 고향은 너무나도 달 경치가 좋은 고장이에요.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달을 좋아하는 시골녀석이랍니다…하략(下略). 정○○ 드림. -달 여행은 관광보다는 우주 연구에 그 참 뜻이 있는줄로 압니다. 더구나 막대한 「달러」를 써 가며 이런식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하략. 金○○ -보험회사 외무사원입니다. 첫 달여행 예약 기념으로 보험엘 가입하시지 않겠습니까? 보험 안내장 2매와 저의 명함을 동봉합니다…하략. <柳양 아버지한테 온 것> -미지의 사업에 투자하시는 셈 치고 한번 저를 도와 주십시오. 3년후에는 완전히 성장하겠습니다. 일금 45만원만 빌려주시면 만1년6개월만에 틀림없이 은행 이자를 가산하여 원금과 같이 돌려드리겠습니다…하략. 崔○. 이밖의 것들도 대개 비슷한 내용의 구원 편지. 더러는 차마 공개조차 할 수 없는 저급(低級)의 욕설로 된 편지도 있었다고 상숙양은 얼굴을 붉힌다. 『도무지 왜 욕들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린 지금까지 너무 시야를 안으로만 좁혀 왔지 않아요? 나가 보자는 겁니다. 좀 움직여 보자는 거예요』 상숙양 일가(一家)의 울화통을 정말로 터뜨린 건 편지가 아니라 어느 지방지의 「컬럼」. 『한국「매스콤」의 수준을 알만 해 슬펐다』는 그 「컬럼」은 대개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전략(前略)…더구나 그 일가족 중에서도 달 여행을 발안한 사람이 22세의 여대3년생과 19세의 남자대학 1년생이라니 더욱 싹수가 있어서 좋다. 그네들이 달 여행을 해서 뭘 하자는 겔까. 있는 돈 남 주기는 아깝고 호기있게 써 보기나 하자 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한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서글픈 현상이라 아니할수 없다. 주린 배도 더욱 조여매어 모든 내자(內資)를 건설에 쏟아 넣어도 모자를 판에 부잣사람들이 이 모양이니 신문 지상에 찍혀 나온 그들의 활짝 웃는 얼굴들이 더욱 뻔뻔스럽기만하다. 돈쓸데 없어서가 아닌데 근시안적 구설 너무많아 달 여행이라는, 어떻게 보면 「파이오니어십」이 두둔까지 돼야할 「장거」가 이렇게 철두철미 부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달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빨라야 15년 뒤에나 갈 수 있는 얘기다. 10만원을 은행 신탁하면 15년후에 찾을 수 있는 돈이 3백50만원. 매달 6천30원씩만 은행 적립을 해도 10년후엔 3백만원을 탈 수 있다는 유양의 계산. 『돈 쓸데가 없어 가자는 건 아니었어요. 오직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정복욕으로 달 여행을 발상(發想)한 겁니다. 여비는 지금부터 푼푼이 모아야죠』 옆에 있던 동생 승열(昇烈·19)군이 거든다. 「발설罪」로 참고 견딘 구설수가 너무 모질다고 승열군은 쓴 웃음. 이들이 달 여행을 착상한 것은 처음부터 부친의 재력(財力)을 믿고 한 것은 아니었다. 돈 많은 사람들의 쓸데 없는 장난 정도로 받아 들이는 사회와 주위의 근시안적 사고가 원망스럽다고. 『우리나라에선 외국엘 한번 다녀 와도 지독히 죄인취급을 당하는데 있을 수 없는 얘기예요. 시야를 넓혀야 하지 않겠어요? 달 여행도 실용화되면 부지런히 가야 돼요. 다른나라 사람보다 한 사람이라도 더-』 한쪽에선 달여행 예약을 하러 항공사로 몰려 드는데 한쪽에선 「돈있고 할일 없는 사람들의 장난」을 흘긴 눈으로 못마땅해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 한국적인 좋은 「콘트라스트」. 창세기 이래의 인간 승리라는 「문·플라이트」는 어쨌든 달로 떠나기 10몇 년 전부터 지상에다 평지풍파부터 일으켜 놓은 셈. [ 선데이서울 69년 7/27 제2권 30호 통권 제44호 ]
  • 춤과 노래로 밤새는 백사장

    춤과 노래로 밤새는 백사장

    <방콕=申禹植(신우식) 특파원> 태국엔 이름난 피서지가 많다.「방콕」에서 2백13km 거리에 있는「후아·힌」-비행기면 한시간, 급행열차면 5시간에 갈 수 있는 태국최고의 피서지로 손꼽히는 景勝地(경승지). 해수욕,「스포츠」의 설비, 시설이 그만이다. 하지만 여느 사람들은 엄두도 못내는 곳.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방콕」에서 별로 멀지 않은 여름의 고장이 있기 때문에「후아·힌」을 굳이 생각지 않는다.「방콕」시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피서지가 바로「방생」. 낮12시까지 잠자고 밤에 生氣(생기)를 되찾아 「방콕」에서 70「마일」, 자동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방생」이다. 여름의「피크」를 이루는 4월엔 3시간, 4시간이 걸릴만큼 人波(인파)가 몰려든다지만 이 常夏(상하)의 나라에선 언제나 피서지를 찾게 마련이다. 요즈음도 주말에는 10만, 20만의 人波가 밀려든다. 소시민들은 당일치기로 놀다 오는 경우도 없지않지만 웬만하면 금요일 저녁에 가서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스케줄」을 짜게 마련. 낮엔 잠자고 밤엔 生氣(생기)있게 움직이는「방콕」의 생리가 이「방생」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금요일 하오2시나 3시쯤「방콕」을 떠나서「방생」에 닿으면 바로 물속에 뛰어든다. 밤을 새워 수영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리고「캠프·파이어」. 「방생」은 백사장도 좋지만 물이 따뜻한게 특징이다. 야자수의 행렬이 길을 이루고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그 다음엔 수영하기에 딱 알맞은 온도의 바닷물. 이런「방생」에서 낮과 밤을 바꾸며 남녀 노소 가리지않고 찌들린 한주일의 더위를 씻어버린다. 밤새 수영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놀다간 새벽에 모두들「방갈로」로 기어들어간다. 「방생」에는「방갈로」도시라고 할 만큼 1백채가 넘는「방갈로」가 바둑판처럼 널려있다. 南國특유의 이「방갈로」들은 바닷바람을 마음껏 마시게 지어져있지만 방하나 하나에「에어콘」이 또한 장치되어있다. 하루 비는 값은 2백「바트」(美貨(미화) 10달러·3천원)안팎. 별장식 개인「방갈로」를 지닌 사람들도 숱하게 많다. 그런가하면 서민층을 위하여 돗자리도 빌려준다. 하룻저녁 10「바트」(50센트·1백50원)면 한가족이 넉넉히 지낼 수있다. 이런데서 새벽녘에 눈을 감으면 낮 12까지 잠잔다. 토요일이다. 다시 물속에 뛰어들고 춤추고 노래하며 다음날 새벽까지. 다시 낮 12시까지 잠자고 두어시간쯤 決算(결산)된 마지막 놀이를 즐기다가 하오 4, 5시면「방콕」으로 향한다. 이름에 어울리게 주말을 즐기는 셈이다. 태국의 피서지 가운데 가장 대중성이 있는 이「방생」에 가는데도 가지가지 방법이 있다. 자가용족은 말할나위도 없고 자동차 전세 내는데는 하루 3백「바트」(15달러·4천5백원). 대형「버스」는 片道(편도) 10「바트」(50센트·1백50원),「에어콘」이 된「마이크로·버스」는 30「바트」(1달러50센트·4백50원)로 갈 수있다. 「방생」에선 비단 수영뿐만 아니라「보트」놀이,「워터·스키」,「골프」등 주말을 즐기기에 어울리는 여러가지 시설이 갖추어져있다. 「방생」은 서민들의 피서지 부유층 즐겨 찾는「파타야」 이와같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있는 피서지가「방콕」가까이에 있기 때문에「방생」을 찾는 것을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내키면 후딱 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방생」이다. 「방생」에서 자동차를 타고 약 30분쯤 더 가면「파타야」란 또하나의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방생」에 비해 물이 파랗고 맑다. 「방생」을 뚝섬에 비유한다면「파타야」는 광나루쯤될까? 10년전「프랑스」인들에 의해 개발된 이「파타야·비치」는 駐泰(주태)미군들이 휴가때면 즐겨찾는 곳. 태국인, 화교들도 즐겨 찾아오지만 비교적 부유층에 한하고 중류, 서민층은 역시「방생」쪽을 택한다. 『「카지노」 손님은「몬테칼로」로, 「플레이·보이」들은「카프리」섬으로, 「서핑」을 즐기실 분은「와이키키」로. 그러나 수영과 휴식이라면 단연「파타야」』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거짓이 아닐 정도로 해수욕에 알맞은 휴식처다. 「코파카바나·비치」의 타원형해변이 무색할 반원형해변과, 반짝이는 은빛 모래사장, 모래사장을 벗어나면 곧바로 종려나무 그늘로 들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곳이라 오락·휴양시설은「방생」「후아·힌」등지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대신 시설들이 그야말로 「딜럭스」급. 현재「스위스」人 소유의「매머드·호텔」이 신축되고 있으며「워터·스키어」들을 위한 「보텔(보트+호텔)」도 신축중. 「방콕」중심가서 1백47km밖에 있는「파타야」는 자동차로 2시간반~3시간이면 닿는 곳. 현재 닦고 있는「수퍼·하이웨이」가 완공되면 1시간20분 동안 高速(고속)「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단다. 「니파·로지」社의「미니·버스」가 매일 아침 9시, 하오 3시 두차례 운행되고 있다(편도 50「바트」=7백50원, 왕복 80「바트」=1천2백원). 이밖에 정기운행의 값싼「버스」편이 있으며, 「방글라뭉」街(가)에 서 있으면 약삭빠른 합승「택시」운전사들을 만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약 20km거리에 있는「스리라차」란 자그마한 갯마을은 태국 제일의 생선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더없이 좋은「보너스」가 된다. 67년까지만 해도「파타야」에는「니파·로지」「파타야·비치」「아보르」등 3개의「호텔」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해안이(몇「마일」에 걸쳐) 오락 휴양 시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에어콘」과 욕실이 있는「아보르·호텔」의 경우 1泊에 2백「바트」(10달러·3천원). 사람 많은「호텔」을 피해 종려수 그늘에 마련된「로크·코티지」(바윗집)나「방갈로」라면 1泊에 3백「바트」(15달러·4천5백원)가 든다. 이곳에선 태국 요리외에「프랑스」「멕시코」中國의 별미를 아무데서나 맛볼 수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7/20 제2권 29호 통권 제43호 ]
  • 금(金)싸라기 땅은 어디어디

    금(金)싸라기 땅은 어디어디

    서울시청 앞 소공(小公)동93의 12에 있는 땅 11평이 3천7백40만원(평당 3백40만원)에 팔려 화제다. 사는 쪽이 꼭 필요로 한데서 이렇게 엄청난 값으로 거래가 됐다고는 하지만「빌딩」이 밀집한 시내 중심가에는 이처럼 엉뚱하게 비싼 횡재수의 땅이 여러군데 있다. 그곳은 또 서로 사지도 팔지도 못하고 무언의 냉전을 벌이는 땅값 긴장지대이기도 하다. 그 몇 군데를 둘러보면- 「평당 3백40만원정」의 땅값에 대해 일반서민은 그 엄청난 값에 놀라겠지만 정작 이 땅을 사들인 경한(京韓)산업측은『비싸게 산 것이 아니고 그만한 가치를 보고 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긴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문제의 11평은 경한산업이「매머드·빌딩」을 세우기 위해 사들인 대지 7백평의 바로 정면인 시청광장 쪽에 떡 버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땅을 사지 않으면 제아무리 높은 건물을 올려 세워도 그 건물이 죽고 만다. 11평짜리 땅의 주인 정(鄭)모여인이 심술을 부려 자기 터에 도시계획에 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술한 건물을 세운다면 경한산업의「빌딩」은 앞이 꽉 막혀 빛을 잃는다. 팔지 않으면 사야할 쪽이 몸이 달아 금값을 내야하는 땅, 사주지 않으면 파는 쪽이 못견뎌서 헐값이 되는 땅-. 그러한 땅값의 마술같은 장면이 시내 한 복판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 하나가 반도「호텔」과「뉴코리어·호텔」사이에 낀 D일보의 새 사옥 신축공사장이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1가 192번지. 시청광장을 향해서 서울의 중심 중의 중심에 위치한 땅이다. D일보는 이 곳의 땅 4백50평을 확보해서 금년3월에 착공, 28층짜리「빌딩」공사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D일보의 땅 매수작전에 한사코 응하지 않는 둘레의 소지주 4명이 있다. 두 지주는 장차 D일보사옥의 정면이될 자리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나머지 두 지주는 옆과 후면에 자리하고있다. 정면에 있는 땅은「뉴욕식품주식회사」(사장 윤(尹)모씨)소유의 50평과「연합철강주식회사」소유의 20여평. 「뉴욕식품」은 D일보의 기초공사로「불도저」가 땅을 깊숙이 파낸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판자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면서 엄연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D일보측에서 보면 경한산업과 정모여인의 관계와 같다. D일보에서는 여러 차례 이땅을 사들이려고 교섭을 벌였지만「뉴욕식품」측의 말대로『우리는 팔생각이없어요. 우리가 오히려 D일보의 땅을 사고 싶은걸요』하는 식의 역습을 당했다. 이로 말미암아 둘레의 땅전체를 사들여서 28층짜리초근대식「빌딩」을 세우겠다던 D일보의 건축계획이 어떻게 변경될지는 두고 보아야하게 됐다. 정면에 자리한 소지주들은 D일보와 합자해서「빌딩」을 세워 함께쓴다고 하고있지만 한편 D일보측에서는 그러한 설계변경에 대해 함구무언. 그런가하면 그 옆 쪽, 을지로 1가90에는 과자산매상을 하는 오(吳)모씨의 땅8평이 있다. 오씨 역시 팔지를 않고 있을뿐 아니라 건축자금을 내겠으니 장차 서는「빌딩」속에 자기의 피해와 알맞을 만한 공간을 보상조로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그 뒤쪽 을지로1가91에는 변호사 윤명룡(尹明龍·66)씨가 10평을 가지고 버틴다. 윤(尹)변호사는『안팔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지주가 꼭필요로하는 땅이라면 높은 건물을 세우는 마당에 자축(自祝)의 뜻도 포함시켜 싯가 보다 값나가게 사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있다. 이 일대의 땅값은 평당1백만원 이상. 꼭 사야할 사람이라면 그 값이 얼마가 될지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한편 28층짜리「매머드·빌딩」이 서버릴 경우 인접한 손바닥만한 땅에 어느 정도의 이용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하면 헐값이 될수도 있다고 근처 복덕방은 말하고 있다. 이 곳은 바로 대표적인 땅값긴장지대의 하나. D일보의 경우와는 다소 다르지만 두 땅이 서로 톱니바퀴 처럼 물고 들어가서 어느 편이든 상대방에게 팔아야만 이용가치가 나오는 숙명 같은 장소가 있다. 중구 무교동13번지. 체육회관옆에 공지4백50평(한국철강(韓國鐵鋼)주식회사 사장 신영술(申永述)씨 소유)이 그것이다. 금싸라기 같은 땅을 주차장과 둘레에 세운 1,2층짜리 목조가건물의 임대에 이용하고 있다. 「빌딩」을 세울 수가 없다. 체육회쪽이 되는 무교동18에 이해범(李海範·66·사업)씨의 자택1백31평이 자리잡고 있는데 신씨의 땅의 일부속에 불쑥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선조대대로 무교동18번지에서 살아 왔다는 것이다. 두 지주 사이에 흥정이 두서너번 오간듯은 하지만 거래는 성립이 되지 않았다. 이곳의 땅값은 대체로 평당 70~80만원.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산다면 얼마가 될지는 두고 볼 일. 땅값흥정으로 말한다면 민간인들 사이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계획에 걸린 시민이 시에 대해 보상금을 더 내놓으라고 버티는 예가 있다. 반도「호텔」과 을지로입구 사이 도로확장공사 때 최(崔)모변호사가 자택의 철거에 반대해서 버틴 것은 유명한 이야기지만 최근3·1고가도로 입구(삼각동)에 버티는 집 한 채가 있다. 고가도로 입구의 도로확장공사로 조흥은행 뒤편인 그 일대의 철거공사가 일차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고가도로 입구에 제일 가까운 집(주인 명운학(明雲鶴)씨, 약 60평)이 동그마니 남았다. 명씨는 평당24만5천원을 거부하고 법원에 건물철거금지가처분신청을 내고 싯가대로 평당80만원의 일시불을 요구하면서 보상금흥정에 들어 갔다. [ 선데이서울 69년 7/13 제2권 28호 통권 제42호 ]
  • 물탄맥주 마시고『시원해』

    물탄맥주 마시고『시원해』

    시중 맥주의 3분의1이 맹물과 주정을 섞은 가짜 맥주였음이 드러났다. 지난 5월 24일 서울地檢 金有厚 검사는 이들 가짜맥주를 상습적으로 만들어 팔아오던 가짜맥주공장 6개소를 급습, 2천3백여병의 가짜 맥주와 제조기계 「레테르」, 王冠 (병 마개)등을 압수하고 이를 만들어 오던 업자 3명을 구속, 10여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시원한 맛으로 여름의 애주가들을 즐겁게 해주던 맥주 3병중 1병이 가짜였다니 씁쓰레하다. 그 씁쓰레한 맛을 되새겨 보면-. 가짜 맥주가 시중에 나돌기 시작한건 약 4년전부터. 그러나 그 제조과정이나 판매과정이 간첩식 점조직으로 되어 있고 또 그 수가 엄청나 발본 색원이 어려웠다. 金검사는 날씨가 더워지자 성수기를 만나 가짜 맥주가 본격적으로 고개 들기 시작 했다는 제보를 받자, 우선 빈병을 사들이는 고물장수부터 족치기 시작했다. 마시고 버린 빈 병은 엿장수에게 넘어가 10원으로 도매상(?)에 전매, 이 병은 다시 몇 단계를 거쳐 밀조공장에 이르게 된다. 한편 병 마개와 「레테르」는 대부분이 맥주를 전문으로 파는 「비어·홀」에서 모아지게 마련. 이들은 에 아예 동전을 용접해 붙여 써오기도. 이렇게 해서 모여진 병마개, 「레테르」등은 1백개에 50원씩으로 팔려 나간다. 다음 이들이 밀조공장에 전달되기까지 여러 단계 (심한경우 11번이나)를 거치는데 한 단계를 거칠때 마다 1원씩 값이 올라 가는데 이건 물론 중간업자의 수입이 되고. 다음은 맥주의 차례. 현재 시판되고 있는 맥주의 값은 1백 62원. 이중 81원이 세금이고 21원이 병값이고 보면 맥주를 마시는게 아니라 세금을 마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런데 세금이 아닌 진짜 맥주만 마시는 맥주가 있다. 군납맥주가 바로 그것. 면세가 되기 때문에 맥주 값은 시중의 반값이다. 그래서 4홉들이 24병 한상자에 3「달러」94「센트」. 우리 돈으로 1천1백원 정도다. 이 면세된 군납맥주가 미군 PX에서 유출, 양공주들에게 나오면 1천7백~8백원에 시중에 나돌기 시작한다. 4홉들이 24”?한 상자에 대리점 가격 4천2백70원이니 그대로 이 군납 맥주를 넘겨 팔아도 2천5백원 벌이는 거뜬. 그런데 가짜 맥주 밀조단은 더욱 얌체다. 이들은 이 군납 맥주를 사서 물과 주정을 섞어 늘린다. 다음에 준비된 빈병에 넣고 「레테르」를 붙이고 병마개를 닫으면 훌륭한 재생맥주가 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번 적발된 밀조공장은- ①全光德(서울 만리동1가 108) ②유분례·최암순(서울 수표동44) ③신도현·유순자(서울 인현동 1가 118) ④이순우(서울 貞洞16) ⑤김준수(서울 신당동·번지 미상) ⑥이봉식·곽백순(서울 을지로5가 154) 등 모두 여섯 곳. 그러나 담당 金검삼의 의견으로는 氷山의 一角정도라고. 가장 대규모르 가짜 맥주를 만들어 오던 영천의 黃모는 검찰수사가 시작된 기미를 알자 종적을 감추어버려 현재 수배중. 이들은 밀조 맥주를 지정된 판매망을 통해 팔아왔는데 ①②의 경우 공주상회 (서울 仁寺동) ③은 연천상회 ④는 안상회, 아세아상회, 공평상회, 구리개「바」, 왕관「바」, 현대「바」, 등에 ⑤는 남대상회, 단성상회 ⑥은 동대문 시장일대를 본거지로 삼아 왔음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이 이들 밀조 공장을 급습했을 때 어느 곳에선 40상자(9백60병)를 배달직전에 현품압수, 한 곳서 70상자에서 1백상자를 생산해 낸 다고 보고 최소 20여곳의 밀조 공장이 있다고 치면 하루 생산 능력 2천상자라는 계산이다. 5 월 26일 현재 OB서 하루 3천상자, 「크라운」서 2천5백상자를 생산해 낸다니 우리가 마시는 맥주중 3병에 하나는 가짜인 셈. 이들 가짜 맥주는 판매업소에 넘어 갈 때 시중가격보다 (4홉X24병)에 넘어간다. 판매업소에선 싼 맛에 사들이고. 「싼것이 비지떡」이라지만 가짜먹고 배 아프고 골치 아픈건 손님사정. 약삭빠르고 염치 없는 상흔은 이윤이 더 남는 가짜 맥주 사들이기를 주저치 않는다. 가짜 맥주를 마시면 우선 골치가 아프다. 설사가 나고 배가 아프다. 선량한 주객들은 「술이 과한 탓이겠거니…」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고 소독 안된 물을 섞으니 맥주속의 단백질이 쉽게 부패, 식중독 같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 제조 과정이 위생이란 개념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니 대장균등 잡균이 우글우글. 그럼 어떻게 하면 가짜를 먹지 않을가? 그 식별법 몇가지를 소개하면-. 우선 병마개-진짜 맥주는 마개의 끝부분이 날카로운데 가짜의 경우 한번 땄다가 다시 붙이니 끝이 둔화되어 있다. 약간의 흠이 으례 남아있게 마련. 또 거꾸로 들어보면 조금씩 맥주가 새기도 한다. 다음이 「레테르」-OB나 「크라운」의 경우 「레테르」양쪽에만 풀을 붙이고 가운데는 풀이 붙어 있지 않아 찢으면 손쉽게 찢어진다. 그러나 가짜인 경우엔 온통 풀칠. 또 요즈음 병들은 전과 달리 모두 투명하다. 그래서 「레테르」뒤쪽에서 보면 풀을 붙인 부분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니 육안 감식이 가능하다. 또 진짜 맥주는 기계로 일관작업을 하는 것이니 「레테르」를 붙인 높이가 일정하나 가짜의 경우는 들락날락. [ 선데이서울 69년 6/1 제2권 22호 통권 제36호 ]
  • 윤정희 “통닭 자시소예”

    윤정희 “통닭 자시소예”

    「스타」윤정희(尹靜姬)가 통닭구이집을 개업했다. 서울 퇴계로4가 대한극장 건너편에 새로 단장한 통닭집 「姬의 집」이 그것. 영화속의 얘기가 아니고 실제로 통닭집 여사장이 된 윤정희. 어려서부터 닭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마침내 그의 이름자를 딴 통닭집 간판을 내걸었다. 정부의 축산정책장려에도 호응하는 뜻으로 『 맛 좋고 영양 많은 통닭 사자시소 예 』 백만원내고 전셋집 얻어 30평홀 테이블 12개놓고 「姬의 집」간판을 올린 게 바로 5월15일. 여사장 윤정희는 자신이 벌인 최초의 사업에 느긋한 희열을 맛본 것 같다. 30평 남짓한 「홀」에 둥그런 「테이블」이 12개.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그만큼 아늑한 분위기다. 「테이블」은 한「세트」에 1만5천원짜리 고급품이고 실내장식도 제법 호화판. 단층 고옥의 외형은 조금도 사치스럽지 않다. 전 업종이 철공소라니까 그럴 수 밖에. 이 집을 1백만원에 전세 낸게 지난 4월말. 1백만원에 전세에 월세가 3만원이다. 그래도 이집을 여는데 3백만원이 들었다. 바깥은 볼품 없지만 적어도 실내만은 화려하다. 「스타」사장 윤정희의 「이미지」를 손상치 않게 하려고 가욋돈 30만원은 더 발랐다는게 윤양의 어머니이자 실질적인 경영주 박여사의 말. 박여사는 당초 이 집을 윤정희의 것이라고 밝히지 않으려 했단다. 아무리 닭고기를 좋아 하지만 왜 하필 통닭장수냐고. 그리고 이왕 사업을 벌일양이면 좀 더 큼직한 기업체를 갖는 게 체면상 옳다고. 그런데 주인공 윤정희가 반대였다. 『이왕 하는거뭐가 부끄러워 숨기느냐, 내돈 들여 내가 하는데 떳떳하지 못할 게 뭐냐』그래서 간판까지 『姬의 집』으로 내걸고 사장은 윤정희로 낙착됐다. 「스타」가 부업을 갖는 예는 최근에 하나의 유행처럼 성행한다. 얼마전엔 고은아가 충무로 2가 합동영화사 자리에 2층으로 「로스」구이 집을 낸다고 했다. 은퇴후의 생활대책으로 스타의 부업은 유행처럼 낡은 2층집을 헐어버리고 새로 지을 예정인데 아직 착공도 안했으니까 언제쯤 「빌딩」이 완성되고 「로스」구이집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부업을 가질 생각은 있는 것 같다. 이빈화(李嬪華)가 남산동에 고급요정을 경영하고 김진규(金振奎)가 도염동에 음식점을 갖고 있다는 건 옛 얘기. 최근엔 문희(文姬), 남정임(南貞妊)도 마땅한 사업을 물색중이다. 「스타」가 되어 돈을 벌면 우선 집을 사고 자가용을 굴리고 그 다음은 은퇴후를 대비한 사업체를 잡는 게 공식. 이것은 과거의 「스타」들이 막 벌어 막 쓰다가 비참한 사양을 맞는 예와 좋은 대조가 된다. 그만큼 「스타」도 생활인화 했다고 할까. 66년도 「청춘극장」으로 「스타돔」에 오른 윤정희는 정상극복의 「스피드」에 있어 첫손을 꼽아도 무방하다. 그는 「데뷔」1년이 채 못되는 사이에 그 보다 선배인 고은아, 문희, 남정임의 3파전에 끼어 들었고 2년째는 3파전의 「스크린」판도를 남정임, 문희, 윤정희의 것으로 바꿔놓았다. 현재 출연작품이 『저 눈밭에 사슴이』외 21편. 금년예상이 50편 이상이니까 월수입 1백만원은(세금포함) 너끈하다. 사실 그는 「데뷔」당시 서울 가회(嘉會)동의 전셋집에서 현재 1천만원짜리 석조양옥의 주인이 됐고 2대의 자가용(코로나 와 오스틴)을 굴리고 있다. 그러나 윤정희의 치부가「스타」재벌에 낄만큼 풍성한 건 아니다. 윤양의 어머니 박여사의 말을 빌면 『벌어서 제몸 치닥거리 하고 세금내면 남는 게 없는 상태』. 그래서 조그맣게나마 부업을 벌이게됐다는 것이다. 금년 상반기 윤양이 납부한 세금은 95만원. 겹치기 출연에 시달리는 우리「스타」들의 가장 큰 걱정은 역시 「건강관리」다. 그런데 윤정희는 다른 여배우와 달리 건강을 자랑한다. 사흘쯤 꼬박 철야촬영을 하고도 끄떡않는 건강체. 지나치게 자신했다가 입원한 일도 있긴 하지만. 동생넷의 학비(學費)를 대주며 기틀잡히면 사업도 확대 그 건강의 비결은 『잘 먹는 것』에 있다고 한다. 우선 윤양의 닭고기 정량은 중간치 2마리. 3백만원 투자의 통닭집을 연 이유가 단순히 「좋아서」가 아닌 건 물론이다. 윤양은 이것을 기반으로 차차 사업을 확대할 계산이다. 배우중 성격이 꼼꼼하고 검소하기로 정평인 윤양이 사업면에서 어떤 솜씨를 발휘할지 주목된다. 배우 되기 이전에 국제관광공사등 직장생활도 했고 비교적 규모있는 생활을 영위한 가정. 6남매의 맏이로 그자신 우석대학(右石大學)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동생 둘이 숙대, 서울문리대에 다니고 고교 1, 중학 1명등 학생만도 5명이다. 윤양이 부업을 생각한 건 차라리 이런 소비적인 가정형편을 뒷받침하려는 억척의 소산같다. 15일, 몇몇 측근을 초대한 조촐한 개업 「파티」에서 「스타」사장 윤정희는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물론 그가 이 「姬의 집」에 붙어있을 시간이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점심은 꼭 이 곳에 와서 닭고기를 먹고 한가한 시간은 이 곳에서 보내겠어요」라고. [ 선데이서울 69년 5/25 제2권 21호 통권 제35호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