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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전사 치고 주저앉은 아가씨 강도(强盜)

    운전사 치고 주저앉은 아가씨 강도(强盜)

    벽돌로 운전사의 뒤통수를 치고는 팔다리가 떨리고 머리가 멍해져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는 「택시」강도. 지난 2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양재동에서 일어난 여자「택시」강도 제 1호의 전말기. 소녀티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 서글서글한 눈매, 이따금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도무지 「택시」강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수강도미수」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으로 서울 노량진 경찰서에 구속된 이 아가씨의 이름은 이경숙(李京淑)양(19·가명). 범행동기를 묻는 취조형사에게 그녀가 말한 첫마디는 『그이한테만은 제발 연락하지 마세요. 너무나 착한 그이는 이 소식을 들으면 까무러칠 거예요』라는 것이었다고. 아니나 다를까, 기자에게도 「그이」걱정을 앞세우는 李양이었다. 그녀가 걱정하는 「그이」는 지난해 가을부터 동거해온 사이라는 남상태(南相泰)씨(27·가명·성북구 불암동). 막벌이로 연로한 조모를 모시고 근근히 살아가는 남씨를 돕고 싶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이양이 남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 친구들과 함께 서울 성북구에 있는 불암산에 놀러갔다가 불암사에서 잔심부름을 해주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이 할머니가 남씨의 조모. 이양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할머니가 『아가씨가 우리 손자며느리 되어 주었음 좋겠소』하고 말을 꺼낸 것이 동기가 되어 맞선을 보게 됐고, 두 남녀들 첫눈에 서로 좋아해 버렸다는 것.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남씨는 고등학교까지 다닌 이양을 지극히 사랑해 주었다. 그리고 이양은 이미 「과거가 있던 몸」인지라 남씨의 순진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더욱 더 사랑을 쏟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공무원인 아버지 밑에 4남2녀중 막내로 태어난 이양은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국민학교와 여중을 졸업했다. 그러나 이양이 S여고에 입학하던 16살 때 아버지는 간암으로, 곧이어 어머니마저 홧병으로 숨을 거두어 이양은 이때부터 오빠와 시집간 언니집 등을 전전하는 고아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학교를 야간으로 옮기고 낮에는 모부대 인사처에서 사환일을 했다. 이때 (여고1) 박모라는 청년을 알게 되었다. 환경의 탓인지 나이에 비해 조숙한 이양은 2학년이 되자 학교를 그만 두고 박씨와 서울 창신동에 「아파트」방 하나를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 한 6개월을 살다가 박씨와 헤어지고 다시 오빠집에 얹혀 살았다. 이미 임신 6개월의 무거운 몸이었다. 얼마 후 사내아기를 낳은 이양은 박씨와 타협, 다시 면목동에 살림을 차렸으나 곧 박씨는 아들과 함께 자취를 감춰버렸다. 오갈데 없는 이양은 또 언니집과 오빠집에서 신세를 지며 불량소녀들과 어울려 다녔다. 불암사에 놀러 간 것은 이때의 일. 『그분들(南씨와 할머니)은 정말이지 법이 필요없는 사람들이에요. 하루 품일을 못 가는 일이 있어도 남을 도우려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생활은 말이 아닐 정도로 가난한 것이 이들 남씨네의 집안형편이라는 것. 할머니는 너무 연로해서 이젠 절에서 잔일도 거들 수 없을 정도이며 남씨가 하루하루 막벌이를 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양은 다만 얼마의 돈이라도 마련해서 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집에 가서 돈 만원쯤 얻어 오겠다』며 남씨집을 나선 것이 지난 1월 29일. 그러나 오빠집에서도 언니집에서도 돈을 얻지 못했다. 범행을 저지른 2일 아침 10시쯤 영등포구 양재동에 사는 언니집을 빈 손으로 나선 이양은 마포구 도화동으로 언니 친구 김(金)모양(23)을 찾아갔다. 그러나 김양은 얼마 전에 시집을 가버리고 집에 없었다. 『그 언니만 시집가지 않았어도 1~2만원쯤은 얻어 올 수 있었어요. 2만원 정도 빌려 친언니한테 1만원정도 주고 1만원 정도 갖고 가려했는데…』 김양집을 나선 것이 하오5시반쯤. 이젠 더 가볼데도 없어 철길을 따라 정처없이 걸어가다 벽돌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그것을 집어든 이양은 마침 철길 옆을 지나는 「코로나·택시」를 세워 탔다. 싸지도 않고 그대로인 벽돌 한 장을 손에 든채. 『양재동으로 갑시다』언니집 3백m앞까지 「택시」가 왔으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고만 있었다. 「미터」기를 보니 요금이 8백여원이나 나와 있었다. 호주머니에는 단돈 2백원 밖에 없었다. 『길을 잘못 들었으니 돌아나가자』고 한뒤 운전사 바로 뒷자리로 옮겨앉아 눈을 딱감고 운전사 머리를 벽돌로 내리쳤다. 운전사가 까무러치자 이양도 정신이 없었다. 팔다리가 떨리고 머리가 멍해졌다. 그 자리에 앉아 엉엉 울어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이양도 운전사도 몰랐다. 어쨌든 한참만에 깨어난 운전사는 이양을 쉽게 잡아 경찰에 넘겼다. 이양은『내가 벽돌을 쥐고 타는걸 운전사가 보기만 했더라도 이런 어리석은 일은 안저질렀을텐데…』 하며 정말로 어리석은 후회를 했다. 『교도소에 가서 소설을 쓰겠읍니다. 모두에게 사죄하고 특히 그이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에서 글을 쓰겠습니다』 학교 때 몇 번인가 소설을 써서 상을 타보기도 했다는 문학소녀 이양은 눈물을 닦으며 체념한 듯 이렇게 말 끝을 맺었다. [선데이서울 72년 2월 13일호 제5권 7호 통권 제 175호]
  • 감기약값 아끼다 집한채 홀랑태워

    3일 하오 3시쯤 대구시 교동 68 최(崔)모여인(43·잡화상)의 딸 박(朴)모양(24)은 감기약 사먹을 돈 2백원을 주지 않는다고 어머니와 말다툼 끝에 3백원을 훔쳐내어 휘발유 1병을 사갖고 집에 돌아와 연탄난로에 던져 집을 몽땅 태우고 이웃집까지 피해를 입혔다고. -그돈으로 감기약이나 사먹지. 대구(大邱) [선데이서울 72년 1월 16일호 제5권 3호 통권 제 171호]
  • 해외언론 “박주영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해외언론 “박주영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박주영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세계적인 축구전문 사이트 골닷컴에서 박주영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골닷컴의 아시아 담당 에디터 존 듀어든은 “박주영에게 무엇이 있는가?”(What is it about Park Chu-Young?)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주영이 최근 부진한 성적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도 프랑스 명문구단 AS 모나코에 입단한 이유에 대해 분석했다. 골닷컴은 먼저 박주영을 “2005년 이래로 제대로 뛰지 못한 스트라이커이자 이번 시즌 17경기에서 2골 밖에 뽑지 못한 선수”라며 “박주영이 7번이나 우승한 AS 모나코에 3백만달라를 받고 입단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2005년 당시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였던 핌 베어벡은 나(기자)에게 막상 그(박주영)를 보니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존 듀어든 기자는 또 “박주영은 2004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의 득점왕이자 MVP였고 2005년 카타르 8개국 청소년 대회에서 11골 중 9골을 터뜨린 전적이 있다.”며 “그의 통찰력은 아직도 인상적이고 IQ150에 걸맞게 충분히 똑똑한 플레이를 펼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주영이 너무 노력한 나머지 그의 직관을 볼 수 없었다.”며 “한국 언론, 팬들, 그리고 모두가 박주영이 실제로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기대를 전했다. 한편 이 기사를 본 덴마크 네티즌 ‘lasse’는 “위닝 일레븐 게임에서 항상 최고 선수로 판매되고 있다.”며 “실제로 존재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맨체스터에 사는 ’steve’ 역시 “나도 게임에서 박 선수를 보았다.”며 “게임처럼 실제로도 잘한다면 모나코는 선수를 잘 영입한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사진= 골닷컴 캡쳐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탤런트와 미모의 아내 사기행각

    탤런트와 미모의 아내 사기행각

    자가용을 몰고다니던 TV「탤런트」가 음식을 주문하기에『띵호』-철석같이 믿고 부지런하게 배달을 해주던 동네 중국집 장궤가『우리 사람 망했어 해』울상이 되었다.「탤런트」는 철창에 갇히고 그 부인은 줄행랑을 친 것. 알고보니 중국집 외상값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빌어 탄 자가용 팔아먹고 동네 안에서만 3백만원 요즘 성북(城北)구 장위(長位)동에 있는 중국집 S반점 장궤아저씨는 홧병에 걸려있다. 이웃에 살던 M방송국「탤런트」정용재(鄭用在)씨(29·성북구 장위동 225의 9)가 외상값 몇만원을 잘라먹고 줄행랑을 쳤기때문이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호기를 부리는 기세에 그만 깜박 속아서 배달해달라는 대로 자장면·우동·울면을 외상주었더니 얼마전 갑자기 행방을 감추고 만것이다. 가족까지 몽땅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살림살이까지 모조리 빼돌린 다음이고 피해자들만 모여있을 뿐이었다. 식품점, 구멍가게, 연탄가게, 그리고 이웃 아낙네들…. 이들 피해자들이 모여 털어놓고보니 동네주변 피해액이 무려 3백만원. 가게 외상값 정도는 새발의 피고, 이웃 주부들에게 빚을 얻어 쓴 돈이 엄청난 액수에 이르렀던 것. 거품을 물고 혹시 부지깽이라도 집어오려고 달려갔던 장궤아저씨는 말도 못붙일 형편이었다. 정은 그동안 주로 동네 주부들의 곗돈을 부인을 통해 교묘히 빚을 얻어내서 가로채곤했는데 그것이 들통나게 되자 줄행랑을 놓고만 것이다. 정씨가 돈을 얻어 쓴 것은 비단 동네에서 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가 속해있는 M방송국관계자들을 비롯해서 친지, 대학선배들에 까지 피해를 입혔다. 그는 언제나 이자만은 또박또박 지불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의심하지 않고 돈을 주곤 했다. M방송국「탤런트」이(李)모(90만원), 김(金)모(30만원), 정모(2백만원), 최(崔)모(50만원), 손모(30만원)등과 작가 김모씨도 2백여만원이 걸려있다고. 피해자들이 공개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를 알수는 없지만 대강 짐작한 방송국주변 피해액이 1천5백~2천만원 정도. 정씨가 경찰에 구속된 것은 10월18일. 그에게 30만원을 빌어주었던 김모씨의 고소에 의해서였다. 김씨는 정씨의 학교선배로 혜화동에서 음악학원을 경영하는 사람. 지난 9월초에 정씨가 찾아와서『인천에 냉동기가 들어와 있는데 그것을 빼돌릴 교제비를 돌려달라』는 말에 속아 빌려주었다고. 방송국 주변서 2천만원 피해자들이 공개를 꺼려 감쪽같이 속고만 있었을뿐아니라 정씨를 철석같이 믿고만 있던 피해자들이『당했구나』하고 깨닫게된 것은 김씨의 30만원 고소사건 계기가 됐다. 그가 김씨의 고소로 경찰에 구속됨으로써 지금까지 벌여온 사기행각 전모가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고 피해자들은 어안이 벙벙…. 구속된 북부서에는 매일 피해자들로 와글와글. 주로 동네 주변의피해자들이고 방송국 주변 피해자들은 창피해서 그런지 나타나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했던 김학렬경사는『그 같은 사기는 난생 처음 보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정씨가 장위동에 이사온 것은 지난해 9월. 이모씨네 2층에 60만원에 전세를 들었다. 부인은「스튜어디스」출신으로 늘씬한 몸매에 능란한 화술을 가진 미인. 사람들로 하여금 당장 호감을 갖게하는 재주를 가졌고 뛰어난 말솜씨로 몇번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믿게 하는 천부의 소질을 가졌다. 그래서 꾸어준 돈을 이자는 커녕 원금까지 몽땅 잘린 형편이면서도 동네 사람들은『설마…』하고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다. 정씨는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자가용을 2대씩이나 타고 다니면서 호기를 부렸다. 혹시 동네 사람중에 차가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서슴없이 빌려주곤 했다. 그렇게 해서 인심을 얻은 다음에는 부인을 동원, 빚을 얻어쓰곤했다. 20만원을 사기당한 모대학 교수 P씨도 그중의 한 사람. 그 동네에 살고 있는 P교수가 어느날 귀가하는 길인데 느닷없이 정씨가 쫓아오더니 공손하게 인사하더라는 것. 그렇게 인사를 한다음에는 자주 집에 드나들며 한가족(?)처럼 친하다는 인상을 주고는 빚을 얻어내곤 했다. 빚을 얻을 때에는 주로 약속어음을 주고 한달이 되는 날이면 어김 없이 이자를 지불하곤 했다. 그러니까 이자를 준돈 역시 다른 사람에게서 빚을 얻어 주곤 했던 것. “몸으로 때우겠다”고 버텨 일부선 재산 도피설까지 정씨가 구속됨과 동시에 그의 부인은 어디론가 행방을 감추었다. 그래서 정씨의 늙은 어머니가 매일 면회를 와서 며느리 욕을 늘어놓곤 했다는데, 철창안에 갇힌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도망간 부인을 야속해하더라는 김경사의 말이었다. 김경사가 취조한 바에 의하면 정씨가 자백한 사기액수는 1천5백만원.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입힌 피해가 대부분이더라고. 그가 호기를 부리면서 타고 다니던 자가용도 사실은 남의 차를 잠시 빌어 탄 것으로 소문에 의하면 그 차까지도 팔아 먹었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모두가 창피한 마음에서 공개를 꺼리기때문에 정씨로부터 입은 피해가 얼마인지는 알수가 없지만 아뭏든 1년남짓동안 꼬박 남의 돈, 남의 차, 남의 음식만 먹으면서 호강스럽게 지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게 많은 돈을 사기했으면서도 현재가진 재산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 조금이라도 받아보려고 경찰서에 왔던 사람들은 공연히 소송비용만 들뿐 받을 길이 없을 것같아서 모두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과연 그의 말처럼 돈을 다쓰고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 빼돌렸는지는 모를 일. 그리고 도망갔다는 그의 부인이 정말 도망간 것인지 아니면 재산을 도피시킨 곳에 가서 정씨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 이러한 의심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가 한사코『몸으로 다 때우겠다』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 그는 10월24일 30만원 사기혐의로만 검찰에 구속송치 되었다. 정씨는 KBS-TV「탤런트」1기생으로 M방송국으로 옮긴지는 얼마 안된다. 오랜 연기자 경력에 비추어 조역이나 단역 밖에는 출연하지 못했고 따라서 시청자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다. 사기혐의로 구속되기 전까지『수사반장』이란「드라머」에 나갔었다. <영(英)>[선데이서울 71년 11월 14일호 제4권 45호 통권 제 162호]
  • 일가(一家) 권총자살(自殺)로 끝난 명사수(名射手)의 전부

    일가(一家) 권총자살(自殺)로 끝난 명사수(名射手)의 전부

    돈많고, 매력있고, 세상을 멋지게 살줄 안다고 평판이 자자했던 왕년의 사격선수 예비재벌이 처자를 쏴 죽이고 자신도 자결했다. 부부간 금슬이 나빠 서로 죽어버린건 그렇다 치고 애매한 자식까지 죽음의 동반자로 목숨을 잃게한 이 비극 - . 지난 10월19일 아침 8시쯤 춘천시 조양동 18 허름한 4간짜리 양철집에서는 부부싸움으로 왁자지껄하더니 세발의 권총소리가 났다. 그리고 고요해졌다. 30대 젊은나이에 예비재벌「그룹」에 끼였고 사격·수상「스키」·승마등 호화로운 취미와 재주로 강원도를 휩쓸던 김기환(金璂煥)씨(32)가 권총으로 일가자살을 한 것이다. 1주일 이상이나 개점을 앞둔 상점에서 매달려 살던 김씨가 이날 아침 집에 들어가 옷장으로 쓰고있던 「캐비니트」1개를 점포로 내오려하자 아내 공정임(孔貞任)여인(30)이 『딴살림을 차릴 속셈』이라고 대들었다는 것. 성격이 직선적이고 한번 화를 내면 물불못가릴 정도로 급하다는 김씨는 홧김에 결혼기념사진 10여장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앞마당에서 천진난만하게 자전거를 타고 놀던 아들 K군(4)을 끌어 들였다. 처자를 방구석에 몰아넣고 연습용으로 가지고 있던 22구경의 권총으로 아들과 처의 이마를 차례로 쏴 죽인 뒤 그대로 선채 자기의 왼쪽 귀밑을 쏴 자살해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살륙극이었다. 사냥땐 으례 아가씨 동반 부부싸움 잦더니 기어이… 김씨의 재산은 알려진 것만도 현재 춘성군 신동면 삼천리 경춘(京春)국도변에 싯가 1천여만원짜리 땅 1만여평과 동산면 조양리 국도변에도 1만2천평에 향나무를 심은 것이 2~3백만원정도. 그리고 지난 20일 개업키로 했던 금은방에 들여놓은 물건이 2~3백만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그가 죽기 하루전까지 빌어쓴 은행돈과 사채가 자그마치 1천여만원선에 이르고 있었다는 것. 춘천 토박이로 6남매중 4째인 김씨는 C농고와 K대학을 거의 고학으로 졸업, 졸업하던 66년 춘천 S양복점 점원으로 취직했다. 그곳에서 채1년도 못있다가 맞은편에 점포를 빌어 시대사란 양품점을 냈다. 자기사업을 벌이면서 사업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은행거래를 튼 김씨는 부동산 투기 「붐」을 타고 적당한 땅을 물색, 그 땅을 은행에 저당잡히고 대부를 받아 땅값을 치른후 이득을 남겨 파는 방식으로 눈덩어리 굴리듯 돈을 늘렸다. 함께죽은 공여인은 그가 가장 고생이 심했던 지난 66년 춘천 S다방의 얼굴「마담」으로 있었다. 서로 눈이 맞아 쉽게 동거를 시작했으나 김씨는 돈을 벌면서 사회적인 지위가 나아지자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부동산「붐」도 소양「댐」수몰 보상금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매기가 둔화됐고 또 건축업이 활기를 잃었던 것. 그러나 김씨가 사냥떠날때는 그전과는 달리 사냥개와 함께 아가씨가 따르기 시작했다. 사격에 능숙한 김씨는 지난 69년에 있었던 2차 한일수렵대회에서는 1등을 했고 2회 「아시아」선수권 선발대회때도 우수선수로 활약해왔으나 올해는 사격도 「슬럼프」에 빠졌다. 사격협회이사겸 지도위원, 승마협회 이사, 「로터리클럽」회원으로 사회활동을 해온 김씨의 죽음에는 생존시 선망의 화제만큼이나 구설수가 뒤따르고 있다. <춘천(春川)=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10월 30일호 제4권 43호 통권 제 160호]
  • 노래커녕 울어버린 교환양 접대부

    노래커녕 울어버린 교환양 접대부

    『여보세요, 네 네』- 낮엔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이어주던 아가씨 2명이 밤엔 술집접대부로 일한 것이 밝혀져 파면을 당했다. 노래소리 한번 꾀꼬리같았을거라고 짐작하는건 주착없는 술꾼들의 추측이겠지만 알고보니 19살 아가씨들에겐 애절한 사연도 있었던 것-. 두 교환양아가씨의 접대부 13일에 무엇이 일어났나. 「아르바이트」로 13일 나가곤 실망이 더 커 서울 모 전화국은 12일 교환양 2명을『교환원의 신분으로서 교환원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파면시켰다. 더구나 1천3백여명의 교환양들이 모인 이날 아침의 조회석상에서 다른 교환양들은 이런일이 없도록 하라고 훈시하며 톡톡이 망신까지 시켜놓고. 파면당한 2명의 교환양은 임시교환원 강(姜)모(19) 김(金)모(19)양. 이 두 아가씨가『교환원의 명예를 손상시킨 것』은 8월7일부터 19일까지 전화국 근무를 마친뒤 시내 중구 다동 E술집에 나가 접대부 노릇을 했기때문. 이미 두달이나 지나버린, 더군다나 13일동안밖에 안되는「아르바이트」사실이 들통난 것은 지난 11일. E술집 여주인 이(李)모여인이 이들 두 아가씨가 밀린 외상술값을 받아 가로챘다고 종로경찰서에 고발한 데서였다. 전화국선 망신주고 파면 12일 강모·이모양을 연행해온 경찰관들은 취조결과 이들 10대의 두아가씨가 교환양이란 사실을 알아내고는 깜짝 놀랐다. 여대생이나 백화점 점원들이「아르바이트」로 술집에 나가는 경우는 있었어도 교환양 접대부는 처음 있는 일. 경찰은 강모·이모양을 이여인과 대면시켜 원만한 타협이 이루어지자 두 아가씨를 훈방조처했다. 『앞으로 이 문제를 민·형사상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세사람의 서약서를 받아놓고. 그러나 여기서 사건이 완전히 매듭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경찰의 통보로 이 사실을 알게된 전화국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법석을 떨게 됐고 그 결과 두 교환양의 파면을 결정한 것이다. 문제가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번진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두 아가씨들은13일 여느때와 같이 출근했다가 창피를 당했다. 이미 조회 석상에서 이 사실이 온 직원들에게 알려진 뒤여서 모든 동료직원들의 조소와 손가락질을 받는듯 뒷통수에 간지러움을 느끼며 쫓겨 나와야 했다. 『하루도 결근 안하고 열심히 일하는 등 모범교환양인 줄 알았던 너희들이 이럴수가 있느냐』는 담당과장과 총무의 꾸중을 한바탕 듣고. 강모·이모양이 모전화국 임시교환원으로 들어간 것은 1년전인 70년 9월. 강양은 강원 인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그곳 경찰서에서 1년 남짓 교환원으로 일하다가 하나 둘 서울로 취직되어 빠져나가는 동료들을 따라 70년 5월 상경했다. 친척 집에서 묵으면서 직장을 찾던 중 9월 모전화국 임시 교환원으로 시험없이 채용되었다. 이때 이양도 함께 채용됐던 것. 그러나 서울에서의 교환양생활은 일이 더 고되기만 할뿐 월급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용돈이라도 마련해야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술집 접대부로 나가게 된 동기가 됐다는 것. 강·이양의 출근시간은 상오 8시30분. 하오 6시 혹은 8시까지 일했다. 월급은 1만1천원. 그러나 이것은 한달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을 경우이고 하루만 쉬어도 일당 3백50원씩을 꼬박꼬박 떼냈다. 근무시간외 특근을 해도 수당은 한푼도 없었다. 당직을 하고나서 하루를 쉬어도 일당은 어김없이 빼어버렸다는 두아가씨의 주장. 두 아가씨가 받는 월급은 7천원에서 9천원안팎. 9천원 안팎의 월급으로 용돈이라도 벌려던 것이 1천2백여명의 교환양 중 3백50명 가량의 임시교환원들은 누구나 마찬가지 사정이었다는 것. 그러나 정식 교환원 자격증이 없는 이들로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아가씨들이 다니던 전화국의 국장도『정식교환원의 경우는 월급이 2만3천원 정도인데 임시는 7, 8천원 안팎이다. 평소 나자신도 임시교환원에 대해서는 깊이 동정하고 있다. 시간외 근무 수당은 따로 마련이 없다』고 말하고 있어 임시교환원들의 처지가 동정을 받을만 하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아뭏든 저녁 퇴근시간에「아르바이트」를 나가기로 결심한 이들은 지난 8월초 직업소개소를 찾았다. 남자들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용돈을 마련하자는 욕심때문에 술집 접대부로 일할 용기를 감히 내었다는 것. 그러나 10대 소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접대부 생활이 화려하거나 돈이 잘 벌리는 직업도 아니었다. 외상값 받아쓰고 횡령혐의로 고발당해 가뜩이나 요정가에 불경기가 닥쳐 손님이 적은데다가「팁」이라야 보잘 것 없는것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일당 얼마씩을 주기로 한 주인이 약속을 어겨 일당마저 받지 못했다. 결국 실망끝에 두아가씨는 13일만에 접대부「아르바이트」를 집어 치웠다. 다시 교환양으로서만 일하면서 지난 13일동안의 접대부 생활을 생각해보니 울화가 치밀었던 모양. 두아가씨는 그동안에 사귄 단골손님들에게 전화를 걸어 외상술값을 받아내어 써 버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술집 주인은 노발대발. 끝내는 두 아가씨를 횡령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말았던 것. 직장에서 쫓겨난 두 아가씨는 창피도 창피지만 우선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연하다며 울먹. 이양은 직장동료들과 함께 모으고있는 10만원짜리 곗돈 5천원씩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태산같은 걱정이었다. 떼었던 외상술값을 변상받고 화해한 술집주인은 주인 대로 또 고민. 당장 괘씸한 생각으로 경찰에 고발은 했지만 문제가 커져 직장까지 잃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 『22살이라기에 그런줄만 알았더니 19살밖에 안되었다니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 어린 아가씨의 장래를 망그러 뜨린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한숨을 짓기도했다. 교환양들에 대한 전화국 당국의이번 조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우선 강·이양이 잘못을 저지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 더구나 외상술값을 가로챘다는 점도 변명할수 없는 잘못. 그러나 아직 이들이 10대 소녀라는 점에서 모든 잘못을 두 아가씨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교환양이라고 접대부로「아르바이트」못할 이유가 무엇이냐? 접대부를 그처럼 백안시하는 그 자체가 너무하다』극단론도 없지않다. 교환양으로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해결 안되는 현실, 월급은 아예 없고 손님이 주는「팁」만을 수입으로 삼아야하는 접대부의 생활등 사회의 실정을 모르고 철없이 뛰어든 10대의 두 아가씨만 희생당한 셈이라는 제법 현학적인 주장도 나오고. <수(秀)> [선데이서울 71년 10월 24일호 제4권 42호 통권 제 159호]
  • 벼락부자 노익장 생과부에 “맴맴”

    벼락부자 노익장 생과부에 “맴맴”

    노익장(老益壯)이라던가.토지개발「붐」을 타고 하룻밤사이에 억대의 갑부가 된 70노인이 40대의 생과부와 불장난을 하다 결국 돈잃고 망신하고 답답해서 「맴맴」-. 술내기 섰다판서 첫 대면 “어쩐지 좋아” 「호텔」로 직행 망신살이 뻗은 노인은 박택상(朴澤相·70·가명·서울 영등포구 상도동). 조상으로 부터 물려 받은 상도동의 야산이 주택지로 각광을 받아 벼락부자가 된 그는 슬하에 아들, 며느리, 손자등을 줄줄이 거느린 다복한 할아버지. 애인역은 임영숙(任英淑)여인(43·가명·서울 영등포구 봉천동). 남편있는 몸이나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이 첩살림을 차려 오랫동안 별거한 생과부. 남·녀가 처음 만난것은 지난해 봄, 상도동의 어느 술집에서였다. 시내 여러기관에 구내이발소를 별여놓긴했지만 아들들에게 맡겨두고 동네늙은이들과 어울려 술내기 섰다판을 벌이며 소일하는게 박노인의 유일한 일과였을때 이 섰다판에서 임여인을 만났다. 독수공방이 서러워 친구집을 찾아 다니며 외로움을 달래던 임여인이 친구의 술집에 들렀다가 노인네들의 섰다판에 끼여 든 것. 이렇게 무료를 주체할 길없던 두 남·녀는 판이 끝나 다른 노인네들이 돌아가자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다방으로 갔다. 제법 아기자기한 이런 저런 이야기끝에 『내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날은 그대로 헤어졌다. 다음날 다시만난 둘은 다방에서 영화관, 식당을 거쳐 끝내는 여관으로 갔다. 동네에서는 지독한 구두쇠 영감으로 소문난 박노인이지만 임여인에게는 아낌없이 돈을 썼다. 그래서 둘이 든곳도 도봉유원지의 S「호텔」의 화려한 특실. 이렇게하여 40대 생과부의 달아 오른 뜨거운 몸을 안아버린 박노인은 다음날 부터 정력에 좋다면 무엇이든지 먹어대며 늘그막의 사랑을 즐겼다. 생과부 뜨꺼운 몸 안뒤엔 매일같이 보신탕집 찾아 냄새를 맡기조차 싫어하던 보신탕집을 찾아 다니는가 하면 염소탕집을 찾아 몇십리 길을 멀다않고 청계천까지 가는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둘은 그럭저럭 1년동안의 밀회를 끌어 왔다. 그러나 달구어진 쇠는 식기 마련. 올봄 둘의 사이가 흐지부지하게 끝나 버렸다. 박노인으로 볼때는 나이70이라 정력에 한계를 느끼게 되자 그동안 임여인에게 준 돈이랑 비용에 쓴 돈등 50여만원이 아까운 생각까지 들었으며, 임여인은 임여인대로 『영감쟁이가 너무 늙어 만족도 못주는 주제에 갈수록 돈에 인색해져 싫어졌다』는 것. 그러다가 지난8월 어느날, 헤어진지 반년도 지났는데 박노인은 임여인의 전화를 받았다. 『뵙고 싶으니 하오7시까지 E다방으로 나와달라』는 것이었다. 둘이 다시 만난지 1시간쯤 뒤, 채 어둠이 깔리기도 전에 X여관 맨구석방에서 박노인과 임여인이 벗다시피하고 한창 「무드」를 돋구어가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방문을 박차고 한 여인이 뛰어 들었다. 엉겁결에 당한 둘은 몸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꼭 껴안은채 눈을 감고 있었다. 『흥』하는 코웃음 소리와 문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임여인의 시누이인 김경례(金慶禮)여인(가명·40)이 정사의 현장을 덮친 것이다. 남편이 전직경찰관이라서 인지 『눈치와 계산 빠르기로 알아주는 아낙네』라는 임여인의 귀뜸이고 보니 그렇지 않아도 눈앞이 캄캄해 진 박노인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누라 보다 다 큰 자식과 며느리 볼 낯이 없었다. 가족이 알까 “쉬쉬”하며 혼자 애태웠는데… 궁리끝에 박노인은 사업관계로 알게된 『눈치 빠르고 수단 좋은』황택민(黃澤珉)씨(48·가명)에게 사실을 털어 놓고 『말썽나지 않게 가운데서 수고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고의 댓가로 땅 40평을 주기로 하고. 황씨와 김여인의 담판이 사작됐다. 김여인은 『3백만원만 받아 주면 10%의 「커미션」을 주겠다』고 황씨에게 제안했다. 물론 『오빠(임여인의 남편)와도 타협이 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황씨는 수단이 좋기로 이름난 사람, 흥정끝에 결국 합의된 금액은 2백만원으로 낙착됐다. 그 공으로 황씨는 40평의 땅을 얻었다. 또 김여인측에게 전해 주라는 2백만원도 받았으나 이중 40만원을 자기 몫으로 빼놓고 1백60만원만 넘겨줬다. 1백60만원을 받은 김여인은 『약속대로 10%만 「커미션」으로 떼고 나머지 20만원을 더 내 놓으라』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황씨는 『그까짓것 남의 사랑에 끼어 들어 생긴 공돈 좀 떼어 먹기로서니 무슨죄가 되느냐』며 배짱을 부렸다. 이렇게하여 김여인이 황씨를 상대로 문제의 20만원을 받게 해달라 경찰에 고소. 엉뚱한 곳에서 말썽이 생겨 참고인으로 14일 경찰에 불려온 박노인은 『당초 유부녀를 욕심낸게 잘못이긴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든게 그들이 짜고 한짓에 걸려든것 같다』면서 『여관에 든지 10분도 안돼 시누이가 나타난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라고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었는데 또 그녀에게도 돈을 줘야합니까?』어디가서 탁 터놓고 얘기할 수도 없는 처지인 박노인의 심정은 고추를 먹은것보다 더 쓰리고 따가운 처지. <유창하(柳昌夏)기자> [선데이서울 71년 10월 24일호 제4권 42호 통권 제 159호]
  • 36억원 당첨된 복권을 1년간 안찾은 加청년

    3백 60만 달러(한화 36억원)의 복권에 당첨되고도 1년을 안 찾고 버틸 수 있을까? 캐나다 서부 광역 밴쿠버 메이플 릿지에 사는 피터 더숍(24세)은 지난 해 8월 15일 구입한 ‘6/49 잭팟’ 로또 복권이 거금 3백60만 달러(한화 36억원)에 당첨되고도 거의 1년 동안 찾지 않고 심사숙고하다 지난 28일에야 당첨금을 찾았다. 그간 더숍의 복권 당첨 사실을 안 사람도 어머니 한 사람뿐이었고 그의 여자 친구도 당첨금을 찾기로 결정한 다음에야 이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거의 1년 뒤에 복권 당첨금을 찾은 것에 대해 “거액의 돈으로 인해 올지 모를 나 자신과 주위사람들에게 미칠 변화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위해서였다.”고 대답했다.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거액의 당첨 사실을 안 후에도 변함없이 일을 했으며 새 차도 집도 없이 렌트한 집에서 살아왔다. 그가 복권 당첨금을 찾은 시간도 복권 당첨금 무효 시한을 불과 3주 앞선 때였다. 더숍은 “심사숙고 한 결과 나의 전문 분야이기도 한 부동산 분야에 투자해 더욱 돈을 불려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돈을 바로 찾아 1년간 은행에 예치해 두었다면 10만 달러의 이자가 발생하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에는 “심사숙고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이자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starlee07@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괴테의 독일에 압록강이 흐르게 한 이미륵/최창일 현대시인협회 이사·시인

    [열린세상] 괴테의 독일에 압록강이 흐르게 한 이미륵/최창일 현대시인협회 이사·시인

    밤비행기를 타고 우린 낯선 도시 뮌헨으로 갔다. 한국문인협회(이사장 김년균)가 주관하는 해외 심포지엄과 2008년 해외 문학상을 시상하기 위해서다. 해외문학상은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모국어인 한국어로 작품을 쓴 이에게 준다. 창작활동을 해온 우수한 동포 문인을 발굴, 상을 드림으로써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함이다. 제 17회째인 해외문학상 수상자는 ‘배우수업’의 강유일 소설가다. 강유일은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독일문학연구소 문학창작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그는 2005년 ‘피아노소나타 1987’과 ‘배우수업소설’이 독일에서 번역되어 출간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상을 주러 간 협회 일행은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뮌헨에서 두어 시간 남짓한 거리에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 박사가 묻힌 묘를 안내하겠다는 가이드를 만난 것이다. 1946년 전후 독일 문단을 놀라게 하였던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는 남부 독일 언론의 이슈가 되어 100여개의 신문이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이미륵은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작가로 한국의 문학과 세계간의 다리를 놓은 온유한 중재자로 평가받고 있다.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작품이 꾸준히 호평 받으며 사랑받고 있다. 그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추억이다. 역사이며 살아 가는 생활이다. 우아하고 따뜻한 인간애가, 순수함과 고결함으로 숨 쉬고 있다. 이런 李義景(이미륵의 본명)의 묘소를 안내받게 된다. 1899년에 황해도에 출생하여 1951년에 독일에서 영면한 작가 이미륵. 청년 이미륵은 일제하의 조국의 독립운동에 나선다. 일경에 쫓겨 안중근 의사의 조카 봉준씨의 소개로 마르세유를 거쳐 1920년 독일에 망명하게 된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을 전공한다.1928년 뮌헨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뮌헨 대학 동양학부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 사진 촬영에도 일가견이 있던 그는 독일의 여러 신문에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가 담긴 사진을 기고한다. 낯선 동양의 문화를 전파 하는데도 힘을 쏟는다.1951년 3월20일에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친다. 그가 묘지에 묻히던 날, 독일 친구들은 이미륵 박사가 평소 들려준 한국말로 애국가를 불러 주었다. 타국에서의 죽음이었지만 3백여명의 조문객이 모여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준다. 그가 처음 묻힌 장소는 눈이 녹지 않는 공원묘지 외곽 음산한 곳이다. 그의 묘소를 관리하고 있는 교포인 송준근 옹에 의하면 한국 정부와 교포가 뜻을 모아 공원의 정원이 널찍이 보이는 양지바른 곳으로 1995년 이장을 했다. 독일인이 묻히는 평수보다 세 배의 넓이로 묘소를 만들었다. 사연 많게 자식들도 모두 고인이 되었다. 위암으로 죽음을 앞둔 이미륵 박사를 돌본 이는 독일인 여자 친구 에파 크라프트란다. 그의 현재 나이는 94세. 그는 한국인의 방문이 있으면 매우 정중하게 대해 준다. 마치 이미륵 박사를 대하듯 말이다. 그가 얼마나 인격자로 살았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다. 전후 독일 경제 사정은 매우 어려워 시민들은 배급을 받아서 생활하였다. 그가 받은 보급표에 한 장이 더 딸려 들어 온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반환한다. 이런 이 박사를 두고 당시 신문은 미담으로 소개하였다. 가짜 보급표까지 나돌던 궁핍한 시기에 조선의 선비정신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이 박사는 망명과 나치 출현의 2차대전이 일어난 충격 속에서 삶에 대한 봉사를 놓지 않고 살아갔다. 독일인들은 그를 두고 ‘자랑스러운 한국의 위대한 아들’로 부르고 있다. 이 박사가 기거한 옛 집터의 독일인 집주인은 기념조형물과 동판을 통해 한국의 옛 문인을 기념하고 있다. 괴테의 독일, 한국인 이미륵 박사의 빛의 문학이 지금도 숨 쉬고 있다. 최창일 현대시인협회 이사·시인
  • 다이어반지와 교장과 돈

    다이어반지와 교장과 돈

    K고교장 김예환(金禮桓)씨(47)와 Y여중 교장 백신숙(白信淑)씨(40) 부부가 8만$짜리(한화로 3천2백만원) 밀수「다이어」를 사들였다가 들통이 났다. 부부 모두 일류를 자랑하는 명문대학의 출신에다가 교육자요 저명한 종교인의 자손들.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이 터지자 벌집을 쑤신듯 화제가 비등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김씨의 학교에서 일했던 전 K중고교 일부 직원들은『올것이 왔다』는 주장들. 김씨 부부가 돈을 번 이야기, 학교운영에 얽힌 이야기등 한창 시끄럽다. 왜 그럴까? 귀따가운 그「내막」의 소리를 들어본다. 젊어 너무 고생한 때문에 돈에 대한「콤플렉스」탓도 『그분이 워낙 젊어서 고생했기때문에 사실은 돈에 대한 어떤「콤플렉스」가 있었는지도 모르죠』 8월27일 정오께 K고교 서무과장 민우성씨의 말이다. 『교장선생부인이 오래전 15만원짜리「다이어」반지를 산일이 있는데 그걸 몇달만에 50만원을 받고 판 일이 있었답니다. 어느 사람치고 이런 엄청난 장사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요? 그게 조금씩 단계를 올리다보니 이번과 같은 결과가 됐답니다. 저도 전연 몰랐는데 어제(8월26일)구치소에 가서 교장선생님께 듣고 알게 됐어요』하며 혀를 차고 개탄한다. 김씨의 본적은 서울서대문(西大問)구 만리(萬里)동2가 231의 7호. 현주소는 같은 동네인 만리동2가 239의 7호로 되어있다. 소위 KS「마크」라는 K고교와 S법대를 졸업한 수재. K고교 설립자인 그의 아버지를 따라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교직원으로 근무했다. K고교는 1974년6월24일 재단법인으로 인가났는데 그전까지는 감리교의 성경학교에 불과한 미인가 학원. 설립자 K씨가 성경학교를 인수하면서 각계의 찬조금을 기금으로 재단법인 인가를 얻어 냈다는 것이다. 이때만해도 김씨네 가족은 생활이 궁핍하여 남의집 셋방살이로 전전했다는 것. 더구나 6·25동란으로 석조 건물인 8개 교실이 완파되면서 수복후 이들 김씨 부자가 겪은 고생은 참담했다는 얘기다. 1959년 중학교 30학급 고등학교 18학급등으로 학급증설 인가를 받게 되면서 규모가 잡히고 3천명을 수용할수있다는 대강당까지 준공을 보았다. 60년 1월13일 중학교 주간 24학급, 야간 15학급, 고등학교 주간 15학급, 야간 12학급등 총 66학급 3천4백여명이라는「매머드」학교로 인가를 보면서 비대화했고, 이해 10월1일 설립자가 정년퇴직하자 아들인 김예환씨가 교장으로 취임했다. 『교장선생님은 가령 결재올리는 종이도 빈칸이 없게 아껴쓰게 하고, 빈칸이 있으면 절반으로 줄여 쓰게 했어요. 심지어 가정에서 사모님에게 절대로 월급을 송두리째 주시는 법이 없읍니다. 한꺼번에 주면 다 써버린다고 주급으로 2만원씩 쓰게할 정도로 근검·절약했어요』 민(閔)씨의 자랑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씨의 근검·절약은 그의 생활규모에 비해 도무지 납득할수 없는 의문을 자아내주기도 한다. 변소에도 전화·TV 놓고 교원 퇴직금 제대로 안줘 K학교 남쪽에 붙어있는 울창한 숲속의 저택이 교장사택. 대지가 줄잡아 3백평이상.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2층이지만 건물안에 들어가면 사정이 다르다. 『검사생활중에 그런 집은 처음 봤어요. 김씨를 잡고, 보석을 판 홍(洪)여인을 잡기위해 3일동안이나 그 집에서 잠복했죠. 방마다 아래윗층할것없이 TV와「에어콘」이 있어요. 전화도 물론 각방마다 있고 심지어 변소에도 TV와 전화가 있어요. 덕분에 시원한 휴가(?)를 즐긴셈이지만 그 호사스러움에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묘한게 아래윗층 방마다 집밖으로 통하는 문이 달려 있어요. 어느 방에 있거나 즉시 집밖으로 나올수 있는 이상한 집이었읍니다』 서울지검 25호 김유후(金有厚)검사의 수사후일담이다. 저택의 그 호화스러움에 값하는 것이 또 있다. 김예환씨는 1개월이 멀다하고 자가용 승용차를 갈아치우는 별난 성격이라는 얘기. 지금은 최신형「비크」를 비롯, 3대의 자가용을 갖고 있다는 것. 이밖에도 그에게는 부산(釜山)근처의 별장과 제주(濟州)도의 별장을 비롯, 서울시 중(中)구명(明)동2가47의 청보(靑保)「빌딩」과 서대문 모처에도「빌딩」이 있고 경기(京畿)도 여주군 능서(陵西)면 매유리336 일대의 광대한 대지가 그의 소유로 알려졌다. K중고교의 총건평 3천4백20평에 1백5개 교실, 이에 맞먹는 Y여중·상고와 W국민학교등 9개학교가 있으니까 그의 재산과 재단의 자산은 수억대를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돈과 재산에 대한 그의 집념은 거의 광적인 것입니다. 가령 교원에 대한 퇴직금이 그 예이지요. 그는 교원을 취직시킬때 묘한 각서를 받는데 그 내용은「학기도중에 사직하게되면 퇴직금을 절반만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년이상 근무하는 교원도 그만 두게될때는 공교롭게도 학기 도중을 택하게 합니다. 퇴직금을 반밖에 받을 수 없게 하고 그나마 아직까지 그걸 제대로 받아본 교원이 없는걸로 압니다.』 퇴직교사인 N씨의 말. N씨는 다시 잇는다. 『2년전 설립자가 죽자 동상을 교정에 세우게 됐죠. 이 동상기금으로 1학급당 5만원씩, 교사1인당 1만원씩 거두었읍니다. K학교「그룹」전체가 총1백30 학급이니까 5만원씩 거두었으면 6백50만원 됩니다. 그리고 1백30학급에 담임선생만 교직원수로 치면 1백30명에 1만원씩 거두어 1백30만원, 총합계 7백80만원이란 막대한 돈이 되죠. 요즘 동상 제작비가 그럴싸한 것은 3~4백만원쯤 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습니까? 당장에 4~5백만원을 벌었겠죠. 이게 말썽이 나서 시교육위로부터 되돌려 주라는 행정지시를 받았어요. 그러나 하지도 않은「보충수업」을 했다고 하고선 그걸 선생들에게 지급한양 꾸미고 돈의 행방은 감감무소식이 됐죠. 이런 식으로 돈을 벌었어요. 워낙 법이론에 밝아 갖은 구실로 빠져 나갔죠』 법이론 밝아 구실 잘붙여 밀수품 아니란 각서 받고 전직 K고교 교사였던 U씨는 말했다. 『이런말은 우스운 얘기지만 그 학교를 그만두는 선생들이 교장의 갖은 비행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서 돈을 받아낸 일이 있지요. 김모선생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분은 생물담당으로 있었죠. 어느날 교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가 차마 못볼 장면을 목격했어요. 이렇게 자기가 저지른 비행을 무마하고자 상당한 금품을 자진해서 협상조로 지불하면 그 선생들은 퇴직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게 됩니다』 교장의 비행에 분개한 전직 M모교사는 교장의 비행을 낱낱이 적은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려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 『제가 만든 유인물의 모든 사실을 교장은 낱낱이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읍니다. 2년전 종로2가 어느 다방에서였죠. 나는 그가 준엄한 양심의 심판을 받고 돌아서서 참다운 교육자가 되기를 바랐읍니다. 이번에 만약 무혐의로 풀려 나온다든가하면 저는 다시 칼을 뽑아 이땅의 썩어빠진 교육계를 각성시키도록 하겠읍니다』 M씨의 강경한 발언이다. 『교장실 금고에서 밀수「다이어」가 쏟아진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러나 교장님은 그걸 산 일은 없고 사모님이 피서갈때 보석을 저택에 두면 위험하다고 해서 금고에 보관 했던 것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김씨를 변호하던 서무과장 민씨는 끝으로 김씨가『죄없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앞뒤가 맞지않는 말을 하기도했다. 『교장선생님이 밀수범 홍여인으로부터「다이어」를 살때「다이어반지는 절대로 밀수품이 아니며 문제가 생기면 책임진다」는 각석를 받아 놨답니다. 그 각서도 검찰에 압수당했는데요, 변호사들은 밀수품이 아니라는 각서를 받아놓았으니까 무죄로 풀려날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안심이 좀 되긴 합니다만…』 [선데이서울 71년 9월 5일호 제4권 35호 통권 제 152호]
  • 형부·처제의 위험한 관계

    형부·처제의 위험한 관계

    H= 더위도 이제 한풀 꺾인듯하군. A= 더위야 갔지만 사건은 지난주에도 그칠줄 모르고 연발했지. 후덥지근한 저녁이니 화제를 우선 시원한 뚝섬유원지로 옮겨볼까. 성동경찰서 김(金)모형사는 지난 12일 밤 11시께 성수동2가 뚝섬유원지부근 「택시」강도 우범지역에 야근근무 배치를 받았는데, 3백m쯤 떨어진 유원지 숲속에 「택시」1대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지. 신경이 곤두선 김형사, 차안에 불까지 꺼져있으니 운전사가 금품을 털린채 피살…이런식으로 긴장. 그래 숲에 은신해 조심조심 접근, 한손엔 권총, 다른 손엔 「플래시」를 들고 차속에 들이댔는데 이건 김형사의 큰 실례(?). 남자가 거사(?)를 치르기 위해 여자를 막 덮치는 순간이 아니겠어. 김형사는 주춤하다 내킨김에 신분이나 알아볼 셈으로 검문을 했지. 그런데 김형사, 또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남자는 33세로 운전사고 여자는 15세로 여중 3년생. 그래 이들을 경찰서로 연행 사실을 캐기 시작. 두사람을 분리 신문하던 김형사, 세 번째로 깜짝. 두사람 사이는 처제 형부간이었단 말이야. 이날 여학생은 언니가 만삭으로 분만을 하기위해 병원에 입원해 간호 하러갔었고, 또 운전사는 부인이 병원에 있으니 틈을 내어 잠깐 들렀지. 거기서 만난 형부·처제는 밤 10시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같이 밖으로 나왔다는 거야. 운전사인 형부, 처제를 집으로 태워다 주겠다며 옆자리에 앉히고「드라이브」겸해 강변로로 나갔지. 사건의 발단은 여기서부터. 부인이 임신중이라 오랫동안 관계를 못했던 운전사, 이성이 흔들이기 시작, 그래「핸들」을 뚝섬 숲속으로 꺾었지. 인적이 없는 곳에다 차를 세워놓고 「룸·라이트」까지 꺼버린다음 순진한 중학생을 숨길이 급하게 만들어 버렸지. B= 능지처참을 해야겠군-. (모두 격분) A=조서를받던 김형사, 이야기를 듣고보니 괴씸한 생각에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기 위해 형사입건할 방침으로 신문을 하기 시작. 그러나 운전사를 잡자니 처제의 신세가 곤란해질 것은 뻔한일. 외부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처녀의 장래를 아주 망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지. 고민끝에 김형사, 어른이 저지른 죄는 밉지만 학생을 구해야겠기에 운전사를 「시멘트」바닥에 꿇어앉혀 2시간동안 기합을 주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훈방-. [선데이서울 71년 8월 29일호 제4권 34호 통권 제 151호]
  •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나왔다

    비디오 게임기를 위해 고안했던 칩이 엄청난 슈퍼컴퓨터를 탄생시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가 등장했다.”며 “이는 게임기에 쓰이는 셀 프로세서를 바탕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9일 보도했다. 페타플롭스급(1초당 1000조번 연산처리)의 성능을 발휘하는 이 IBM 슈퍼컴퓨터의 이름은 로드러너(Roadrunner)로 현재까지 가장 빨랐던 블루진/L(Blue Gene/L)의 두 배 이상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 로드러너의 가격은 무려 1억 3천 3백만 달러 (약 1400억원). 여기에 쓰인 셀 프로세서는 IBM·소니·도시바가 게임콘솔에 사용하기 위해 공동 개발한 것으로 현재 플레이 스테이션 3에 공급되고 있다. 국립핵보장기구(National Nuclear Security Administration)의 토마스 다고스티도는 “로드러너가 하루에 할 수 있는 계산을 인간이 하려면 60억 인구 전체가 계산기를 이용해 24시간 쉬지 않고 46년 동안 해야 한다.”며 엄청난 계산처리 능력을 과시했다. 향후 로드러너는 핵 시설 관련 군사기밀을 처리할 계획이며 기후변화 문제도 탐구해 과학자들은 더 정확한 세계기후 모델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 뉴욕타임즈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판문점 인기품목 콘돔

    판문점 인기품목 콘돔

    7월 27일-휴전이 조인된지 18년. 그동안 때로는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긴장속에, 때로는 북괴측의 생떼속에 진행된 판문점 회담에는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비화도 많다. 각 일간신문사 판문점 출입기자들의 방담을 통해서 알려진 비화중의 하나는 북괴기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물품이「콘돔」이라는데-. 참석자 각사(各社) 판문점 출입기자 박승탁(朴升鐸)(한국일보 사회부장대리) 최규장(崔圭莊)(중앙일보 사회부) 조홍래(趙弘來)(동화통신 사회부) 노창식(盧昌植)(현대경제일보 사회부) 강형석(姜亨錫)(서울신문 외신부) 잦은 숙청…「콘돔」써「섹스」해결하는 북괴 상납을 위한 낚시바늘도 크게 인기를 끌고 비화(秘話)중의 비화 A=판문점에서 휴전이 조인된지 올해로 18년. 냉전의 전초지인 이 판문점은 때로는 자유진영과 공산권의 대화의 광장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정치선전장으로, 욕설장으로도 쓰여왔는데 판문점 취재에서 이제까지 신문에 기사화되지 않은 재미있는 비화들을 중심으로 얘기해 봅시다. B=북괴기자들은「콘돔」을 좋아한다, 이런 비화는 어떻습니까.(웃음) C=비화중의 비화군-. B=판문점에 오래 출입하다보면 북괴 기자들과 낯을 익히게 되고 때론 평화「무드」(?)속에 1대1로 접촉할 때도 있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인기품목의 하나가「콘돔」. E=그게 뭐 가족계획에 쓰자는게 아니지.(웃음) A=남녀가 허락없이 좋아하다 임신이라도 하면 큰일 나는 것이 북괴형편. 몰래 중절수술을 할 수 없는데다가 임신이 알려지면 숙청은 뻔한 일이니까 오입이야말로 큰 고민거리라는 거지. 그래서 그쪽에선 구할 수 없는「콘돔」이 판문점 옥외회담(?)중 가장 인기있는 품목. B=그밖에도 인기품목이 많은데 이를테면 낚시바늘- 이건 아마 상납용인 모양이야. C=「라이터」, 화장품도 인기품목이고, 시계도 탐내는 물건이긴 하지만 이건 눈에 띄게 마련이니까 감히 용기를 내는자가 적고…. 회의중 자리 못뜨는 관례로 금기도 많아 “오줌통 커야한다” “물을 마시지말라” 얘기도 물 안마시기 싸움 A=판문점회의는 치열한 입씨름을 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침묵속에 버티기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 최장시간 버티기 기록을「마크」한 것은 장장 11시간 35분, 69년 4월 10일 2백89차 본회의가 열렸을 때. 판문점회의는 관례상 회의도중에는 자리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소변을 누러갈 수도 없는 형편. E=이때문에 회의 대표들은 지구전에 대비, 회의가 시작될 3일전부터 물은 물론 물기많은 음식도 일절 먹지않는다더군. D=언젠가 한번은 안건없이 눈총싸움만 하던 북괴대표가 4시간을 끌던중 소변이 마려워 움츠리고 오만살을 하며 버티다 결국 벌떡 일어난 일도 있지.(웃음) E=그래서 기자들은「누가 오줌통이 더 크나 하는 싸움」이라는 말도 하고.(웃음) 세뇌받은 비둘기들 C=오래전이지만 북괴측이 느닷없이 비둘기장을 마련하고 30여마리의 비둘기를 갖다 놓았는데, 그놈들이 북괴측의 녹색건물에만 앉아 이상하다 했더니 우연히 그 수수께끼가 풀린 일도 있지. D=그런데「유엔」측 건물 지붕색깔이 벗겨져 하늘색 칠을 다시했는데 하늘색이 약간 달라지니까 비둘기들이「유엔」측 사무실 지붕으로도 마구 날아오게 된거야. 이를 본 북괴감시병들, 당황한 나머지 모조리 잡아다 후송해 버렸지. 그후 몇 달이 지나자 다시 훈련시킨 비둘기들을 갖다 놓았는데 역시 하늘색지붕은 외면. 결국 북괴들이 비둘기에까지도 철저한 세뇌공작을 실시한다는 걸 실증한 셈이지. 북괴대표(北傀代表)날린 필름작전(作戰) B=약간 색다른 이야기지만 판문점을 정치선전장으로 만들어놓은 북괴가 상습적인 선전을 펴다 꼬리를 밟혀 완전히「스타일」을 구긴일이 있지. 제「3백차」본회의땐데 북괴대표 이춘선(李春善)은「3백차」를 기념하기 위해 회의를 요청했고 미리 준비했던 장황한 선전을 벌이기 시작, 한강다리밑에는 판잣집이 늘어서있고 실업자가 7백만명이나 되고있다는 등 상투적인 말을 되풀이 했는데「유엔」측은 미리 북괴가 틀림없이 상투적인 선전을 할 것을 미리 예측했던 것. 그래서 한국의 발전상을 기록한 천연색「필름」한편을 준비해두었지. 예상은 적중. 거품을 뿜던 이춘선의 선전이 끝나자,『이것이 네가 말한 서울의 부패상(?)이다』고 응수하면서 재빨리 기록영화를 돌렸지. D=그때「유엔」측의 사전준비는 빈틈이 없더군. 이춘선의 연설이 끝나자 밖에 흩어져있던 미군 경비병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회의장 창문크기와 똑같은「베니어」판을 일제히 들고나와 회의장문을 가려 방안을 어둡게 해주더군. 이어「패티」김의 서울의 찬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층「빌딩」으로 들어찬 서울시가 지·고속도로·울산공업단지 등 발전상을 샅샅이 비춰주었지. A=이 때 이춘선을 보니 얼마나 당황했던지 담배를 거꾸로 물기까지 하더군.(웃음) 파랗게 질린채 뒤에 서있던 한주경이 퇴장해버리자고 제의하는 듯 이춘선에게 귀엣말을 건네자 핏대가 나 체념이라도 한듯이 이춘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또 북괴대표들중 뒤에 앉아있던 사람은 잘보이지 앉자 고개를 빼다못해 슬그머니 일어나서 열심히 보기도 하더군. C=이 때문에 이춘선은 북괴 판문점대표중 단명기록이 돼버렸지.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평양으로 돌아간 다음 회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표를 바꾸고 이춘선은 숙청되었다는 것. E=말하자면 한권의「필름」이 북괴대표의 모가지를 날린셈.(웃음) 높이기 경쟁 B=판문점 회담이 열리는 건물은 휴전협정 규정에 따라 공동경비구역 직경 8백m의 타원형 벌판 한가운데 서있지. 목조 직사각형 건물이 군사분계선상에 서있고 책상도 이 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 두줄로 놓여있고. A=냉전은 맞붙어있는 책상에서부터 시작되지. 휴전회담 초창기「유엔」측대표「조이」제독이 회의장에 2「피트」높이의「유엔」기를 세워두었는데 휴회를 한 뒤 다시 입장해보니 북괴쪽이 약간 더 높은 기를 갖다 놓았다는 것. 의자도 당시 북괴대표 남일(南日)이「유엔」대표것 보다 더 높은 것을 썼지. B=결국 양측이 깃대높이기·의자높이기 경쟁을 벌인 셈인데, 회담장소내의 기물 등을 책임진 「유엔」측이 똑같은 높이를 통일하여 부착-. 바캉스는 먹는거냐? A=지난 5월 소위 북괴기자들 20여명이 무더기로 판문점에 나타났는데 모두「샌들」을 신고 나오지 않았겠나. B=저네들 사회에선 그래도 최고로 멋(?)을 부리고 나온거로군.(웃음) A=그래 슬며시 접근,『너희들 오늘 멋냈구먼…』하고 꼬아주었더니『우리가 만든 제품이다』고 제법 으스대기까지 하지않나. E=내가 옆에 섰다가 그말을 듣고『배급탔니』하고 묻자 화를 버럭 내더군. 그들은 배급이란말 질색이지. 그래『이 사람들 멋도 멋이지만 여름도 되기전에「샌들」신는 사람이 어디있어』하고 쏘아주었지. A=요즈음 북괴기자들은 판문점에 오기 하루전에 개성에 집결, 남한에서 방송하는 TV를 열심히 보고 사전에 공작임무를 지령받아가지고 나오는 모양이더군. 그런데 북괴기자 한명이『요즈음 너네들 TV보니「바카스」라는게 있던데 그게 뭐냐』고 묻길래 피로회복제라고 일러주었더니『그럼「바캉스」라는 것도 먹는거냐?』(웃음). 하긴 요즈음「바캉스」라는 말도 TV에 자꾸 나오니까. <기록=학(學)> [선데이서울 71년 8월 1일호 제4권 30호 통권 제 147호]
  • 박정희 대통령 취임하던 날

    박정희 대통령 취임하던 날

    제7대 박정희대통령 취임식이 1일 하오2시 중앙청 앞뜰식장에서 엄숙히 거행되었다. 전례없이 간소한 식전이기는 했으나 이를 치르기에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다. 다음은 뒤에서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와 취임식을 전후한 「에피소드」이모저모. 1주일 1천명 동원…통금때에만 잠깐씩 세종로 네거리에 등장한 반영구용 철제 무지개형 대형 「아치」의 규모를 살펴보면-. 대석(臺石)사이의 길이 50m 높이 20.8m 폭 1.8m 「크로스·바」42m 대통령 초상화 6 x 8m 이며, 소요자재는 철강이 39t 대석밑에 박은 12m 「파일」이 6개 「시멘트」가 5백여 부대이며 「아치」를 덮고있는 5W 3색 전구가 1천6백개다. 이 「아치」는 한전에서 세운 것인데 양영철(梁永喆)씨(28·영선계직원)가 기본설계를 하고 화신산업 (대표 이종국(李鍾國))이 1천 1백90만원(초상화제외)에 공사를 맡은것. 제작에 동원된 연인원은 1천명이 넘었다. 조립 공사는 통금시간인 밤 12시부터 새벽 3~4시 까지 평균 하루 3시간의 올빼미 작업으로 일주일이 걸렸다. 「캔버스」만들기 2일…초상화는 두번 그려 세종로 「아치」한복판에 걸려있는 박대통령 초상화 또한 「매머드」급(6x8m)이다. 이는 신미산업(대표 이정근)이 주문을 맡아 김만영씨와 하승만씨가 그린것. 먼저 「캔버스」를 만드는 데도 만 이틀이 걸렸는데 틀을 짜서 광목과 천막천으로 덮고 그위에 아교와 「페인트」칠을 했다. 작업 시작은 6월 17일, 총무처로부터 받은 박대통령의 명함판 사진을 보며 그리기 시작했다. 23일에 일단 완성했으나 총무처는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해서 옆으로 빗겨앉은 모습에서 정면 모습으로 다시 그리기로 결정. 25일부터 양면 2장을 그리는데 3일이 걸려 완성, 28일 붙이게 된 것이다. 약품 처리도 해보고…꽃엔 무진 애 썼다고 식장(式場)장식에서 빼놓을수 없는 것이 꽃. 취임식장 안팎과 경회루 「가든·파티」꽃장식을 맡은 곳은 꽃집 「만화원」(종로2가). 총무처의 주문을 받아 꽃장식을 한것인데, 작은 화분 50개와 꽃다발 50다발만 구입하고 나머지는 모두 창경원 식물원에서 세를 낸것들.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가장 화려한 식장분위기를 꾸미는 것이 담당자들의 책임이었다. 「카네이션」을 비롯해서 갖가지 꽃을 전문가들이 두뇌를 짜내서 꽃다발 하나 만드는데도 「앙상블」을 이루도록 세심한 신경을 썼다. 수많은 외교사절들이『원더풀!』을 연발하도록 최대의 실력을 발휘한 것.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취임식날에 맞추어서 꽃송이를 피워내는 일. 그래서 꽃집에서는 시내 여러 꽃집의 지원을 받아 가면서 약품 처리로 때맞춰 꽃이 피도록 필사의 노력을 했다고. 20여명이 들어 나른 4백50㎏의 「케이크」 전날밤 청와대서는 근로자초청 「파티」가 열렸다. 육(陸) 여사는 이날 「뉴욕」제과점으로부터 초대형 「케이크」를 기증받은 근로자합숙소에 묵고있는 어려운 5백 80명의 근로자들을 초청, 자신이 「호스테스」가 되어 직접 「케이크」를 잘라 나누어 주었던 것. 이번 「케이크」는 높이만 1.5m에 가로 92㎝, 무게 4백50㎏의 초대형. 가로 23㎝, 세로 36㎝, 무게 3㎏의 「카스텔라」가 1백 30장, 「버터」가 45㎏, 계란 3백개가 들어갔다고. 보통 「파티」에서 6백명이 먹을수 있는 분량. 이날 「케이크」운반에는 20여명의 장정이 동원됐다. 1주일동안 준비를 하고 이틀동안 밤을 꼬박 새워 만들었다고. 성장한 근혜(槿惠)양 보고 「벤플리트」장군 감탄 박(朴)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1일밤 경회루(慶會樓)의 경축연회는 대성황. 3부요인을 비롯, 국내외 저명인사와 각국의 경축사절들이 참석한 「매머드」연회. 6시40분 육군 고적대의 「팡파레」와 함께 박대통령은 부인 육여사와 장녀 근혜양과 함께 입장했다. 박대통령은 내외귀빈들로 꽉 들어찬 연회장을 한바퀴 돌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벤플리트」장군을 만난 박대통령은 반갑게 포옹을 나눴는데 「벤」장군은 육여사로부터 근혜양을 소개받고 『벌써 이렇게 성장했느냐』고 놀라움을 표시. 정성담긴 만찬 음식 포도주로 건배하고 저녁 8시부터 2시간동안 중앙청 대회의실에서 베풀어진 박대통령 초청 만찬회의 음식은 반도 「호텔」주방에서 마련했다. 주방장 이경환씨를 필두로 「쿠크」25명이 동원되어 정성껏 마련한 이 음식은 순전히 양식. 맑은 소고기국에 생선연어찜을 먼저 내고 다음의 주식 순서에는 쇠고기 등심구이, 감자 완자튀김, 꽃양배추볶음과 채두, 「아스파라거스」, 「샐러드」, 그리고 빵과「버터」. 후식에는 「아이스크림」, 「코피」, 홍차가 나왔고 백포도주와 홍포도주를 곁들였다. 1천발의 불꽃 쏘아 밤하늘도 휘황찬란 경축일의 마지막 「무드」를 장식한 것은 밤하늘에 오색무늬로 수놓는 불꽃놀이. 이날밤 9시부터 10시까지 남산 팔각정에서 쏘아올린 불꽃은 모두 1천발. 서울의 밤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한 불꽃하나의 값은 1천3백원. 1천발을 쏘아 올렸으니까 1백30만원이 밤하늘을 수놓은 셈. 불꽃놀이에 동원된 인원은 한국화약에서 발사원 37명. 만일에 대비, 소방차 2대와 경찰관 40여명이 동원 됐었다. 지난해까지는 심지에 손으로 불을 당겨야 했는데 이번엔 전기 발파와「세트」발파에 성공했다고. 쏘아올린 불꽃의 종류는 무궁화 모양에서부터 버들형 분포 방향전환에 이르기까지 12가지. 불이번쩍 취재경쟁…1㎞씩의 뜀박질도 이번 경축식 취재는 불꽃튀는 기재의 전쟁. 경축식장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없기 때문에 제한된 장소에서의 사진 취재를 위해서는 좋은 성능의 「카메라」가 압도하기 마련. 최고성능을 자랑하는 서울신문과 동앙일보의 1천2백㎜ 초망원 「렌즈」를 비롯, 35만원 시가의 「하셀브라드」까지 동원되는가하면 각사의 1천㎜ 망원 「렌즈」도 총동원되어 서로가 기재 「콘테스트」를 벌인 듯 했다. 애초 문화공보부로부터 각사에 할당된 출입완장은 2장씩. 외신 기자들에게도 2장씩 배당됐다. 취재전망대는 취임식 단상을 바라보는 광화문옆 2곳에 설치됐는데 오른쪽이 외신기자, 왼쪽이 국내기자. 사진기자단에서는 기지를 발휘하여 2장 배당된 완장을 외신기자와 교환, 사실상 2곳에서 취재하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국내 사진기자단에서는 취재전망대에서 서로 앞자리 다툼하다 사고가 날 것에 대비, 자리차지하기 제비뽑기를 하여 미리 위치를 결정했다. 대통령 취임식사가 끝나자 각사 기자들은 중앙청에서부터 때아닌 육상경주. 차량 통행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들은 무거운 기재들을덜거덕 거리며 1㎞ 이상씩 대로를 질주하는 진경을 보였다. 전세계에 퍼진 전파…외국 기자들도 법석 취임식 광경과 경축행사 소식은 조선「호텔」에 임시 설치된 「인터내셔널·프레스·센터」를 통해 재빨리 전세계 곳곳에 알려졌다. 해외경축 사절단과 함께 입국한 수많은 해외기자들은 「프레스·센터」와 현장을 바삐 왕래하면서 불꽃튀는 취재경쟁을 벌였다. 체신부는 조선「호텔」「그랜드·볼·룸」에 국제전신전화국 임시 출장소를 설치, 6월 29일 하오부터 국제전신전화국의 「베테랑」직원 10~20명씩을 고정 배치시키고 「텔렉스」6대를 임시로 가설해서 취재보도에 최대의 「서비스」를 했다. 그나라 격식 이라오…맨발의 외무장관님 이번 외국 경축사절들 가운데 의상에서나 차림새로 특이한 것은 「아프리카」의 「스와질란드」왕국 외무장관 「아모스·종게·쿠발로」씨. 「아프리카」주 최남단 「레소트」국과 인접한 「스와질란드」에서는 온몸을 칭칭 감은 의상에다 맨발로 다니는게 풍속인데 「쿠발로」장관도 고유의상에 맨발이라 시선을 끌었다. 길잃었던 귀빈부인 핫·팬츠엔 일침놓고 6월 29일 김포(金浦) 공항에 내리자 마자 동행한 부인을 잃어 한때 소란을 피웠던 「아프리카」의 「어퍼·볼타」특사 「프랑소와·롱포」장관(공공사업·운수 및 도시계획장관). 알고보니 안내원의 실수로 부인이 일반여객과 함께 보세구역으로 나가 있는 것을 간신히 찾아 귀빈실로 모셔 왔다는 「에피소드」의 주인공. 숙소인 조선「호텔」에서 본지기자와 만난 「롱포」여사는 『한국 여성들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더욱 몸매가 곧고 아름다워요. 특히「미니·스커트」와 「핫·팬츠」 차림은 발랄해서 좋지만 「어퍼·볼타」사람으로선 현기증이 날정도』라고. [선데이서울 71년 7월 11일호 제4권 27호 통권 제 144호]
  • 호텔서 밤새는 여고생

    호텔서 밤새는 여고생

    「호텔」「나이트·클럽」에서 새벽까지 춤추고 나오는 젊은이들을 수상히 여겨 경찰이 덮쳤다 잡고보니 의젓한 차림을 한 숙녀의 정체는 가발을 쓴 10대 여고생. 그 상대는 요즘 한창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고있는「그룹·사운드」의「멤버」-. 그들은「팝스」음악을 즐기는「팬·클럽」의 같은 회원이었다는데…. 「그룹·사운드·멤버」가 상대…「프리·섹스」어쩌구 풍문도 5월 28일 새벽 1시30분 남대문서는 가발을 쓰고 모「호텔」의「나이트·클럽」에서 밤을 새면서 춤추고 나오던 여고3년생 김(金)모양(18) 등을 적발. 김양 등이 새벽까지 어울려「고고」를 함께춘 T「그룹·사운드」의 신모씨(26)도 함께 연행되었다. 이들은「그룹·사운드」를 중심한「팝스·팬·클럽」○○회의 회원들. 한창 공부할 나이의 여학생이「나이트·클럽」에 드나들기 위해 가발까지 쓰고서 화장을 하고 밤새 춤추도록 내버려둔 가정(김양의 경우는 상류급)에도 책임은 있지만 10대의 여고생들이「그룹·사운드」의「사운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멤버」에 반해버려 거의 미치다시피된다는 사실이 우려되는 것. 따라서 그들과 어울려 최신음악을 서로 즐기고 배운다는 구실로 ○○회 등「팬·클럽」을 만들어 10명 또는 20명씩 몰려다니며 심지어는「섹스·파티」같은 문란한 정경도 빚고 있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 물론「그룹·사운드」나 그들을 둘러싼「팬·클럽」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일부 이러한 몰지각한「그룹·사운드」의「멤버」나 젊은 학생들이 있고보면 사회적인 문제로 다시 한번 관심을 모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방송의 인기「팝스·프로」나「그룹·사운드」등「팝스」계열엔「팬 ·클럽」이 갈수록 성행-. 회원은 2~3백명에서 최고 1만여명이 넘고있다. 회원은 거의가「팝스」를 즐기는 고교생들. 따라서「팝스」계열의「그룹」이나「싱어」는 10대에겐 거의 우상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팬·클럽」회원이 그런건 아니지만 회원가운데는「팬·클럽」본래의 한계를 넘어 여고생이 가발까지 쓰고 숙녀복 차림으로「고고·하우스」를 드나들며「프리·섹스」행위설까지 있고보면 자녀를 거느린 학부모들에게 적지않은 근심거리. 밤마다 어울려「고고」즐겨… 학업중단 여고생도 있고 방송이나「보컬」및「솔로·싱어」등이「팬·클럽」을 갖고있는 것은 지금의 새삼스런 현상은 아니다. 방송의 경우는 시청자 확보를 위해서,「싱어」들의 경우는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모임. 「팝·뮤직」을 즐기는「팬」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프로」나「그룹·사운드」를 택해 「팬·클럽」회원이 되어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는데 그치면 더 바랄나위없는 일인데-. 방송의「팝스」「프로」도 그렇지만 특히「그룹·사운드」의 인기는 10대「팬」에 어필하고 있다. 「스타」급의「그룹·사운드」는 거의 자신들의「팬·클럽」을 갖고있다. 회원은 몇백명 정도. 이중「극성파」는「그룹·사운드」의 주변을 위성처럼 맴돌며 이들과「파트너」가 되어 요즘 유행하는「고고」에 열광한다. 「고고」에 거의 미친 어떤 여고생은 학업까지 포기하는 예도 있는 듯. 끝내는 완전「프로」급으로 전향,「고고·룸」에서 지내며 불미스런 잡음을 퍼뜨릴 뿐 아니라 문란한 성문제에까지 발전하고 있다는 풍문도 있다. 「고고」에 미쳐 여고 2학년에 학업을 중단한 C모양의 경우도 집안은 부유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저녁이면 나타나「고고」를 즐긴다. 그래서 이들을 아는 사람들 사이엔「고고·걸」로 통할 정도. 짙은 화장에 나이 감추고… 날로 늘어만 가는「고고」족 가발을 했는지 진짜머리인지 겉으로 보면 성인같으나 알고보면 여고2, 3년 정도밖에 안되는 이들「고고」파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원색무늬가 어지럽게 이어진 이른바「사이키」「디자인」의 옷까지 걸치고 다닐 때가 많다. 「살롱」가의 한 연예인이 전해주는 말인즉- 언젠가 어떤 젊은 여성이「고고」를 추자고 제의해와 밤새껏「고고」를 즐겼다는 얘기. 그런데 이튿날 그 아가씨의 정체를 알고보니 여고2년을 다니다 춤에 미쳐 중퇴한 아가씨라는 것. 그런 얘기를 듣고는 자기집 애들 생각이 나서 소름마저 오싹 끼치더라는 것이다. C양의 이런 생활을 집안에서도 알고있으나 아예 내놓은 자식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고고」가 좋은데 어찌하란 말이냐』는게 본인의 말. 현재 본격적으로 가장 많은 회원을 가진「팬·클럽」은 MBC「라디오」의 심야「프로」인『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 수 있는데 이「프로」의 담당 DJ 이종환(李鍾煥)씨도 깊은 우려를 표명. 시청률 확보와 시청자의「서비스」를 위해 신곡가사를 회원들에게 배부해주고 간혹 희망자를 모집, 야유회도 갖는 것이 이 모임에서 하는 일. 『회원이 많다보면 잡음도 있겠죠, 그러나 내가「팬·클럽」을 만든 것은 음악의 세계를 통해 건전하게 청소년을 선도하자는데 있었던 것인만큼 탈선행위란 말도 안됩니다. 만약 그런 사례가 있다면「팬·클럽」을 접어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근절시켜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이씨는 말한다. 모「그룹·사운드」의 한「멤버」는『몇몇「그룹·멤버」의 불미스런 행동으로 건전한「그룹·사운드」의 「멤버」까지 피해를 입어서야 되겠어요. 설령 유혹의 손길이 뻗쳐와도 철저한 자중이 필요하다고 느껴요』라고 자못 비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걸(杰) [선데이서울 71년 6월 6일호 제4권 22호 통권 제 139호]
  • 「미스·마산시청」황회경양-5분데이트(134)

    「미스·마산시청」황회경양-5분데이트(134)

    「미스·마산(馬山)시청」을 뽑아「선데이서울」표지에 싣는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기뻐한 아가씨가 바로 부속실근무의 황회경(黃會京·22·마산시 동선동194)양이다. 미인많은 마산이 이제야 소개되니 뒤늦은 느낌은 있지만 마땅히 기뻐할 일이라는 것. 그러나 정작 황양이「미스·마산시청」으로 뽑히자『어데예?』하며 극구 사양했다. 어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6남매중 막내딸. 마산 제일여고를 졸업한 뒤 마산시청에 들어와 벌써 시장이 두번이나 바뀌었단다. 마산시청엔 3백여 직원중 여직원은 20여명. 1백58cm의 키에 46kg 의 호리호리한 몸매 하루 평균 1백여명의 손님이 드나드는 시장부속실근무라 손님접대가 지긋지긋할 정도인데도 전혀 낯을 찡그리는 일이 없다. 황양과 가장 사이가 좋고도 나쁜 단골손님(?)이 바로 마산시청 출입기자들. 따로 기자실이 없어 부속실이 기자실을 겸하게 되는데 아침 10시께면 으례 출입기자들이 서울, 부산으로 장거리 전화를 거느라고 부속실은 그대로 돗대기시장이 된다. 그래도 표정하나 찡그리는 일없이 황양은 이 단골(?)들에게「코피」를「서비스」한다. 『애인예? 있어도 있다카겠읍니꺼?』하며 방실웃는다. 이미 혼수용적금 10만원을 확보해놓고 있다. 35-23-36. [선데이서울 71년 5월 30일호 제4권 21호 통권 제 138호]
  • 「말썽난 총각」… 대학생의 「프리·섹스」다뤄

    「말썽난 총각」… 대학생의 「프리·섹스」다뤄

    대학생의 「섹스」문제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다. 조문진(趙汶眞)각본·감독 『말썽난 총각』이란 작품. 자칭 「프리·섹스」를 소재로 했다는 영화는 몇편 나왔지만 직접적으로 대학생의 성경험에 촛점을 둔 국산영화는 이것이 처음이다. 「모티브」자체가 작년도 부산대학에서 실시한 『대학생과 섹스』에 관한 「앙케트」(70년 6월 26일자 서울신문 기사)에서 비롯됐다. 부산대학조사의 이 설문에서는 4백명의 대학생(남3백·여1백명)중 67%가 성경험을 갖고 있다는 대답. 김창숙(金昌淑)이 그들의 「보이·프렌드」가 이 67% 속에 포함되느냐는데서 의심을 품고 그 시비를 따지기 시작하다가 동정을 지키고 있는 남학생 노주현(盧宙鉉)과 그 애인 문희(文姬)의 얘기로 끌고 나간다. 결혼전의 순결이 어느정도 소중하냐, 애인사이에는 어디까지 허락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는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이런 호기심을 슬쩍 자극시키면서 가벼운 「코미디·터치」로 끌고 나간다. [선데이서울 71년 5월 30일호 제4권 20호 통권 제 138호]
  • “성기 잘린 누드상 시(市)에서 보상” 판결

    전시된 남성 누드 조각의 성기 부분이 훼손된 것을 시가 복구 비용을 부담하라는 판결이 캐나다에서 나왔다. 조각가인 마이클 허메쉬는 펜틴톤 시와 사우스 오카나간 아트 갤러리를 상대로 자신이 제작해 전시한 조각상이 훼손됐다며 복구 비용을 청구했다. 그러나 시와 아트 갤러리 측이 비용 부담을 거절하자 법원 소송을 통해 이같은 판결을 이끌어 낸 것. 법원은 작품복구 비용으로 1만 4천 3백 86달러(한화 약 1360만원)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논란이 된 누드상은 허메쉬가 제작한 ‘짐꾼’이라는 조각상으로 중년 남성이 성기가 노출된 채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경찰은 사건을 조사중에 있으며 일명 ‘예술자 파괴자’라고 부르는 악취미를 가진 사람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이 조각상은 성기가 잘려진채 전시되고 있으며 언론보도 이후 더욱 관심을 끌고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myungwlee@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쓰레기통서 4억 주웠는데…

    쓰레기통서 4억 주웠는데…

    쓰레기통속에서 장미꽃 아닌 거금 3억9천만원이 튀어 나왔다. 한 경리사원이 들고가던 이 거금이 백주대로상에서 날치기당한 뒤, 날치기배의 무식 덕택으로 다시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것. 이 거금이 다시 쓰레기통에서 튀어나오자 말썽이 생겼다. 「치기배가 훔쳤으니 장물이다」 「쓰레기통에서 주웠으니 습득물이며 당연히 보상금을 받아야한다」로 시비가 붙은것. 과연 쓰레기통속의 3억9천만원은 장물일까? 습득물일까? 누런봉투 날치기한 일당 “현금(現金)없다” 투덜대며 버려 지난 5월3일 낮 2시15분께. 서울장안에서도 가장 번화한 종로 네거리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던 박(朴)모(28·조선(朝鮮)맥주 경리과 근무)씨는 들고 가던 대봉투를 들치기당했다. 이 봉투속엔 2억8천만여원 어치의 적금증서와 1억여원 어치의 약속어음, 보수, 당좌수표, 그리고 현금 8천2백원이 들어있었다. 이 봉투를 훔쳐간 날치기배들은 소위 「윤(尹)상사파」라고 불리는 종로네거리 근처를 본거지로 삼는 일당들. 이 날치기배들이 조금만 유식했어도 쓰레기통속에 4억원가까운 돈이 버려지지는 않았을 것. 그러나 봉투를 훔쳐간 치기배들은 현금만을 찾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은 보이지 않고(맨 밑바닥에 깔려있었기 때문) 그들의 눈으론 무엇인지 알수도 없는 서류뭉치뿐. 치기배들은 『공쳤다』고 투덜대며 이 봉투를 서울농협 서울지소옆(옛 자유당사)에 있는 쓰레기통속에 던져버렸다. 잡화상 주인이 주워보니 속에서 보수(保手)뭉치 와르르 그로부터 1시간뒤. 서울종로구 서린동71에 있는 「삼덕상회」주인 유판수(柳判秀)씨(47)는 헌노끈을 버리려고 우연히 가게앞 쓰레기통에 가까이 갔다가 노란 봉투를 발견했다. 처음 유씨는 이 봉투가 자기 가게장부를 넣어두는 것인줄 알고 끄집어 냈다. 『심부름하는 아이들이 잘못알고 버린게지』여겼던 유씨는 그 봉투속에서 4억원이란 거금이 나올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부인듯 싶은 대학「노트」 한권을 꺼내자 그속에서 와르르 보수증표, 당좌수표, 약속어음등이 쏟아져 나왔다. H은행의 사무용 봉투속에서 나온 3억9천만원의 내역을 보면-. ▲현금=8천2백원 ▲자기앞수표=2백만원짜리 1장포함 총 2백28만원(22장) ▲당좌수표=1천8백81만5천1백80원(18장) ▲약속어음=8천3백43만2천80원 ▲적금증서=2억8천5백만원(4장) ▲총계=3억8천9백53만원 하루 매상 5천여원짜리 잡화상회 주인인 유씨로서는 생전 보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액수가 너무도 큰데 놀란 유씨가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라 친구인 최(崔)모씨에게 전화로 상의했다. 최씨는 자기가 잘아는 변호사가 있으니 그 변호사에게 뒤처리를 부탁하자고 하여 유씨는 최씨의 말대로 임(林)보영 변호사(서울 중구 다동 16)를 찾아가 이 봉투를 맡겼다. 뒤처리를 맡은 임변호사는 이날 하오 6시께 조선맥주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부재중이라 전화불통. 다음날인 5월4일 아침 7시 조선맥주 사장댁에 전화를 걸어 유실물 습득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이날 낮 조선맥주쪽에선 이(李)총무부장과 경리부 차장이 임변호사사무실을 찾아와 문제의 봉투를 확인하고 찾아갔다. 이때 임변호사가 『유실물을 주운것이니 응분의 보상금이 있길 바란다』는 뜻이 전해졌다. 이때 이미 도난신고가 종로서에 계출되어 있어 회사쪽이 서에 이 사실을 알리자 종로서쪽은 이를 범행의 증거물로 영치해두었다. 한편 종로서 형사대는 5월5일 하오 5시 시내 후암동 모다방에서 이 봉투를 훔쳤던 날치기단 「윤상사패」일당 7명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조선맥주쪽은 6일 법원에 가환부신청을 내어 이 봉투를 찾아감으로써 일단 3억9천만원의 거금은 주인손으로 되돌아갔다. “보상금 내라”에 “장물이니 사례”로 맞서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이 봉투를 주워 변호사를 통해 신고한 유씨쪽은 적금증서 2억8천5백만원을 제외한 현금, 보수, 당좌수표, 어음등에 대한 보상금 지불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실물법 제4조를 보면 『물건의 반환을 받는자는 물건가액의 1백분의 5내지 1백분의 20의 범위내에서 보상금을 습득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고 되어있으며 동6조엔 『보상금 청구는 반환후 1개월이내』에 하도록 되어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유씨는 조선맥주로부터 1억4백53만여원에 대한 5%인 5백만원에서 부터 20%인 2천만원까지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조선맥주쪽에서 이 봉투가 유실물이 된 것은 날치기배에 의한 절도행위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이 봉투는 장물이며, 장물습득에 보상금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다만 유씨의 선의에 찬 신고가 고마와 『이에 대한 응분의 사례』를 고려중(경리부 차장의 말)이다. 또 유씨가 만약 유실물임을 주장, 법에 규정된 보상금을 요구해 올 경우 보상금지급대상은 유씨 주장대로 1억4천여만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약속어음 8천3백43만여원을 제외한 2천1백여만원에 대해서만 지급한다는 주장이다. 이럴경우 유씨가 받을수 있는 보상금 금액은 1백만원에서 4백만원사이가 된다. 유씨쪽 주장과 조선맥주쪽 주장에는 보상금에 약 5배의 차이가 생긴다. ▲임보영변호사의 말=유씨의 입장에선 틀림없는 유실물 습득이다. 당연히 법에 규정된 보상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조선맥주 경리부 차장의 말=경찰도 이를 유실물 아닌 장물로 보고 있다. 단지 유씨의 성의가 고마와 가능한한의 사례를 고려중이다 ▲권순영(權純永)변호사의 말=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형사사건의 증거물인 장물이며, 유씨 입장에서 보면 쓰레기통에서 주운 유실물이다. 당연히 법에 규정된 보상금이 지급되어야한다. <창(昌)> [선데이서울 71년 5월 16일호 제4권 19호 통권 제 136호]
  • 소피아 로렌과의 짧은 만남, 파바로티와의 긴 이별

    소피아 로렌과의 짧은 만남, 파바로티와의 긴 이별

    2007년은 세기의 테너 파바로티가 71세를 일기로 타계함으로써 우리와 이제 긴 이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소피아 로렌이 72세의 미모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피렐리 달력(www.pirellical.com)에 기네스북이 인정하는 최고령 미인 모델로 등장하여 우리 눈을 즐겁게 하였다. 이 뉴스를 들으며 떠오른 추억과 상념이다. 얘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폴란드 바르샤바 행 비행기 탑승객 대합실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 같은 비행기로 날면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슈퍼스타 소피아 로렌이다. 그녀는 당시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인데도 놀랍게도 늘씬한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소피아 로렌이시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내가 말을 건네자, 그녀는 엷은 미소로 답례를 하였다. “나는 현재 폴란드에 주재하면서 현지법인 사장을 하는 한국의 비즈니스맨입니다.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당신의 영화를 보았어요. 그리고 언젠가 한번은 직접 당신을 만날 날이 있으면 하고 살아 왔어요.” 옆에 집사람이 같이 있어 그 이상 오버할 수는 없었다. 내가 열렬 팬임을 강조하자 그녀는 “저도 폴란드에 행사가 있어 갑니다만 무슨 영화를 봤습니까?”하고 되물어 왔었다. 내가 하녀(La donna del Fiume), 엘시드(El Cid), 해바라기(Girasoli), 흑란(The Black Orchid), 두 여인(La Ciociara) 등을 읊어대자 그제야 그녀의 표정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1959년의 <흑란>으로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여우상을, 1961년의 <두 여인>으로 아카데미상과 칸느영화제 여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90여 편의 영화에 주연을 맡았다. 그녀는 미혼모, 위안부, 생활력이 강한 가정부인, 러시아 백작부인, 아랍계 여인, 레지스탕스 스파이, 로마황제의 공주, 스페인 귀부인, 미국인 미망인, 술집 여인, 그리스 해변의 해녀, 성폭력피해자 등등 다양한 역을 해내었다. 나의 청춘 소피아 로렌, 그녀의 맘보로 포 강은 푸르다 돌이켜 보면 소피아 로렌에 흠뻑 빠진 것은 내 나이 15세의 사춘기에 마주친 그녀의 출세작 <하녀>(河女, Woman of the River)의 스틸 한 장이었다. 하녀는 <강의 여인>으로 풀어서 말할 수 있는데 그 당시 그녀는 1미터 74센티의 키에 38-24-38의 몸매에 21세의 싱싱한 나이로 일약 세계적 관능 미인으로 뜨게 되었다. 이 영화를 접하고서 그녀는 나의 연상의 연인화되었다. 나는 바로 줄리안 듀비비에 감독의 명작 <나의 청춘 마리안느>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몸부림치며 환상의 여인 마리안느에 빠져드는 사춘기 청년 뱅상(Vincent Loringer)이 된 것이다. 맘보 리듬을 타고 폭발한 야성적인 에로티시즘 영화에서 소피아 로렌은 그의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였다. 이 영화의 무대인 강은 바로 이탈리아의 포 강이다. 처음에는 포 강 하구의 델타 지역에 있는 뱀장어 통조림 공장의 여직공인 자유분방한 젊은 여성으로, 그리고 후반부에는 바람둥이 어부로서 밀수꾼인 남주인공에 버림받고 사탕수수밭의 일군으로 벗어부친 미혼모로서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마을 댄스파티에서 ‘맘보 바캉’이라는 주제가의 선율 속에 치맛자락을 바람결에 들어 올리며 늘씬한 다리를 뽐내는 육감적인 신은 뭇 사나이들을 뇌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실 그녀는 이 주제가 맘보 바캉을 직접 부른 음반을 내기도 하였다. ‘라라라 라라라라 맘보 맘보, 맘보 바캉.’ 그리하여 이 경쾌한 노래로 우리에게 긍정적인 삶을 일깨워줬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포 강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강으로서 전장 652km로 낙동강 길이보다 30%가량 길고 그 유역 면적은 71,000km²로서 북부 이탈리아의 생활과 문화를 지배하는 중요한 강이다. 코티안 알프스의 몬비소에서 발원하여 베니스 근처의 아드리아 해로 유입되는 강이다. 5개의 하구 델타 유역에는 수백 개의 지류와 운하가 거미줄 같이 얽혀 있다. 이 강은 예사로운 강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포 강 유역을 무대로 로케한 이탈리아 대표적 명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 말 지주계급과 농부들의 갈등 속에서 시들어 가는 근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린 라투아다 감독의 <포 강의 물방앗간> (The Mill on the Po), 쫓기는 범인이 숨어든 농장에서 쌀 농사꾼인 풍만한 여인(실바나 망가노 분)과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데산티스 감독의 <쓴 쌀>(苦米:Bitter Rice), 명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단편영화 <포 강의 사람들>(Gente Del Po)이 그 것이다. 파바로티의 노래와 함께 포 강은 오늘도 흐른다. 그런데 이 강은 최근에 반갑지 않은 문제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강물의 수질 분석 결과 하루에 2만7천명의 젊은이가 투약할 정도의 코카인 마약 성분이 계속 추출되었으며 그 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체의 대소변을 통하여 흘러나왔을 것이니 이탈리아 젊은이의 타락상을 보는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금년(2007년) 5월에 강줄기의 여기저기에서 바닥이 들어나도록 물이 부족해 졌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200년만의 겨울 난동을 겪었고 알프스에 눈이 제대로 오지 않은 결과이다. 인간이 저지른 탄산가스 분출에 따른 업보이다. 이 강의 광활한 유역에는 산업과 문화면에서 유명한 도시들이 포진해 있다. 토리노, 밀라노, 베로나, 모데나 등이 그것이다. 특히 모데나는 바로 20세기 말 최고의 테너였던 파바로티의 고향이며 2007년 9월 6일 그가 숨을 거둔 자택이 있는 곳이다. 그는 1935년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의 가족은 가난했다. 아버지 페르난도는 빵을 굽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담배 공장에서 일했는데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출세 후 파바로티는 2005년 9월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 총보는 거의 읽을 수 없으나 피아노 파트의 반주용 악보라면 읽을 수 있다고 고백하였다. 학위 위조사건으로 떠들썩한 한국과 달리 그는 이렇다 할 정규대학교육을 받지 않고도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는 보험 외판사원도 했다. 1961년 고향의 극장에서 라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오페라에 뒤 늦게 데뷔했다. 그런데 출세 후에 더욱 빛을 발한 것은 혼자서 돈을 세면서 호의호식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자선공연을 통하여 뜨거운 인류애를 보여줌으로써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에 보답해야 하는지를 보여 줬다는 점이다. 그는 고향 모데나에서 각각 보스니아와 이라크 고아와 아프간 난민, 그리고 코소보 난민 등을 위하여 해마다 자선공연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적어도 1천 3백만 달러의 모금을 해서 유엔에 협조하였다. 아프간을 돕는다고 몰려가서 돕기는커녕 탈레반 테러범에게 인질이 되어 외신에 의하면 수백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로 추정되는 거액의 몸값을 인질범에게 넘겨주고도 귀중한 인명 피해를 보면서 국제사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눈총만 키우고 돌아온 우리네 현실에 비해 파바로티에게 배울 점이 많다. 뒤에서 순교운운하면서 이를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데는 더욱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값진 순교를 하려면 뒤에서 남을 시키지 말고 본인들이 가서 몸소 순교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2001년 서울에서 파바로티의 공연을 보면서 소피아 로렌이 생각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바람둥이에게 버림받은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나폴리 빈민가에서 자라나 고등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어려운 여건을 딛고 일어서서 15살 때부터 영화계에 몸을 던져 드디어 슈퍼스타가 되고 오늘날에는 여러 사회활동을 하는 소피아 로렌과는 인생역정에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할 것이다. 포 강의 젖 줄기가 있었기에 이탈리아가 낳은 예술문화계의 남녀 톱스타 즉 소피아 로렌과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있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 더 있다. 포강의 상류에 있는 토리노는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피아트본사가 있고 2006년 동계올림픽이 치러진 곳이다. 소피아 로렌은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기를 봉송하는 영광스런 역을 해내었다. 이 개막식에서 파바로티는 생애 마지막 공연이 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러 오랜 기립 박수를 받았다. 결국 이 두 슈퍼스타의 출세는 포 강에서 시작되고 포 강가에서 완성된 느낌이다. 포 강의 쿠르즈 십 ‘리버 클라우드’ 호를 타면 9일 동안 이들 도시의 상당 부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삶과 꿈, 마이 웨이 지금도 나는 비디오로 떠서 소장한 그녀의 영화 <하녀>에서 그녀의 맘보 바캉을 때때로 감상하며 젊은 날의 아린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고 있노라면 소피아 로렌 그녀가 남긴 다음과 같은 어록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그저 어떤 것을 원한다고 하지요. 그러면서도 그걸 이뤄낼 힘인 절제로 단련하는 데는 게을리 하지요. 사람들이 약한 겁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정말 지독히 원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Many people think they want things, but they don’t really have the strength, the discipline. They are weak. I believe that you get what you want if you want it badly enough.)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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