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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올해의 선수’에 美 스테이시 루이스

    2014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가 23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에서 끝난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시즌을 마무리한 올해 LPGA 투어에서는 단연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7)와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의 활약이 돋보였다. 루이스는 비록 100만 달러 보너스는 리디아 고에게 넘겼지만 상금과 평균 타수, 올해의 선수 등 주요 부문을 휩쓸며 건재를 과시했다. 2012년에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으나 당시에는 상금과 평균 타수 부문 1위를 박인비(26·KB금융그룹)에게 내줬던 루이스는 올해 3관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미국 선수가 이 세 부문을 독차지한 것은 1993년 벳시 킹 이후 21년 만이다. 미국 선수들은 루이스 외에도 제시카 코르다, 렉시 톰프슨 등이 올해 강세를 보여 LPGA 투어의 미국 내 인기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였다는 평을 들었다. 올해 LPGA 투어 32개 대회 가운데 미국 선수들이 13승을 합작, 1999년 이후 최다승을 기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개혁 비웃는 공공기관 일탈 이대로 둘 텐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이사장을 비롯한 전직 간부들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게 그제다. 이사장을 지냈다는 사람은 납품 단가를 부풀려 차액을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2년 반 동안 2억 9000만원을 빼돌려 흥청망청 썼다. 이런 짓을 하고도 소환되자 공금 횡령은 관행이었다고 주장했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이사장이 비리를 저지르는 동안 홍보실장과 상생경영팀장 자리에 있던 인물들도 공금을 횡령하고 인사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 경륜·경정·스포츠토토를 독점 운영해 기금을 마련하는 일을 하는 공공기관이다. 어느 기관보다 깨끗해야 하지만 실상은 꼭대기부터 썩었다. 이튿날엔 이 기관의 차장급 인사가 저지른 비리가 공개됐다. 교육훈련을 지시한 상사를 음해하고, 민원인을 무고해 가정을 파탄 나게 했으며, 고객으로부터 금품을 챙겼으니 글자 그대로 ‘비리 3관왕’이다. 위에서 흙탕물이 쏟아져 내리는데 아랫물만 깨끗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면 할 말은 없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정말 해도 너무한다. 체육진흥공단의 차장급 인사를 비롯해 어제 서울신문에 실린 공공기관 직원들의 행태는 단순히 근무 기강 해이라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안전보건공단 직원은 일면식도 없는 기업 대표로부터 1500만원을 빌렸다고 한다. 공단 사업의 하나로 기업 보조금 2000만원이 지급된 이후의 일이다. 이자도 내지 않았으니 뜯어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민원이 제기되자 감사실은 당사자를 경징계했을 뿐이다. 직원들의 불륜 의혹으로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기관도 있다고 한다. 지금 공공기관에서 벌어지는 비리를 종합해 보면 구약성경에 나온다는 죄악의 소굴 ‘소돔과 고모라’가 연상될 지경이다. 적지 않은 공공기관이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철저하게 윤리의식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걸러낼 제도적 그물이 겹겹이 펼쳐져 있다지만, 실제로는 고래도 유유히 빠져나갈 만큼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체육진흥공단의 사례에서 보듯 최소한의 청렴성조차 갖추지 못한 인물이 정치적 이유로 수장에 임명됐을 때 문제는 심각하다. 아무리 깨끗한 전통을 갖고 있던 공공기관이라도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공공기관의 감사 자리가 대부분 정치권 주변 인사로 채워진 상황에서 자체 정화 기능의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기획재정부와 각 부처가 공공기관을 관리·감독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 업무 범위가 넓은 감사원의 손길이 개별 공공기관에 미치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손발이다. 각 부처가 세운 정책을 구체적으로 추진한다. 그러니 공공기관이 흔들리면 각 부처가 흔들리고 결국 국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공공기관 임직원의 정신 자세는 민간 기업 임직원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민간 기업에서는 비리에 연루되면 퇴출을 비롯한 중징계를 감수해야 하지만 공공기관에서는 엄청난 비리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나면 고개를 들고 다닌다. 영(令)을 세워야 한다. 공공기관 개혁 없는 정부 개혁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공공기관 임직원에게 높은 차원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부는 공공기관 임직원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과감하게 메스를 들어야 한다.
  • “몰아보기 마케팅, 시청률에서 자유”

    “몰아보기 마케팅, 시청률에서 자유”

    “사람들이 보고 싶은 드라마를 빨리 보고 끝낼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죠.” 지난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기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이 드라마의 제작을 총괄했던 조 힙스 미디어라이트캐피탈 부사장은 성공 비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정치 스릴러물인 ‘하우스 오브 카드’는 TV 방송이 아니라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먼저 드라마를 공개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감독(데이비드 핀처)과 배우(케빈 스페이시)를 캐스팅하는 등 제작과 유통의 역발상으로 성공을 거뒀고 제65회 에미상에서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18일 강남 코엑스에서 개최된 ‘국제콘텐츠콘퍼런스’(DICON)의 강연차 한국을 찾은 힙스 부사장은 “초기 단계부터는 아니지만 고객층과 취향을 분석하는 데 빅데이터를 활용했고 동시에 배우와 감독의 전작도 철저하게 분석했다”면서 “하지만 빅데이터가 작품에 영감을 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전 제작된 이 드라마는 시즌 1편과 2편이 국내외에서 ‘몰아보기’ 유행을 일으켰지만 결말의 유출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도 있다. “예전에 사람들이 영화를 DVD로 하루에 몰아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 같은 성향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바꾼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일단 시청률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고객에 맞춘 장기적인 마케팅도 가능하죠. 지난 2년간 지켜본 결과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반전이나 결말 등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함구하는 문화가 잘 형성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내에도 웹드라마 열풍이 부는 등 드라마의 유통 구조에 대한 변화는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다. 그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지만 개발 단계이고 시장의 경쟁도 치열해 변화의 속도는 느린 편”이라면서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흥미로운 타이밍인 것은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프로야구] 신고선수, MVP 신고

    [프로야구] 신고선수, MVP 신고

    “힘겨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포기하지 않고 달려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2007년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서 호리호리한 체격의 광주일고 3학년 내야수는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이 선수는 이듬해 LG에 연습생으로 불리는 ‘신고선수’(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해 계약금 없이 프로팀에 입단한 선수)로 입단했으나 1년 만에 방출의 아픔을 겪었다. 경찰 야구단에 지원했으나 탈락해 육군 현역으로 병역을 마친 뒤 넥센에 다시 한 번 신고선수로 입단해 기회를 잡았고 신인왕에 이어 프로야구 선수 최고 영예인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다. 신고선수 출신인 서건창(25·넥센)이 1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4시즌 프로야구 MVP, 최우수 신인선수 및 각 부문별 시상식’에서 기자단 투표 99표 중 77표(77.8%)를 얻어 MVP(부상 K7 승용차)로 선정됐다. 2012년 혜성같이 등장해 신인왕을 수상한 지 2년 만에 ‘최고’가 됐다. 장종훈(1991,1992년) 한화 코치와 박경완(2000년) SK 육성총괄에 이은 세 번째로 신고선수 출신 MVP가 됐다. 2012년과 지난해 수상자 박병호는 13표(13.1%)에 그쳐 이승엽에 이어 역대 두 번째 3년 연속 수상이 무산됐다. 유격수 사상 첫 40홈런을 달성한 강정호도 7표(이상 넥센·7.1%)에 머물러 다음으로 기회를 넘겼다. 평균자책점왕과 탈삼진왕을 거머쥔 밴덴헐크(삼성)는 2표를 얻었고 7년 만에 20승 투수의 주인공이 된 밴헤켄(넥센)은 득표에 실패했다. 투표는 포스트시즌 활약을 배제하기 위해 지난달 19일 마산구장에서 NC와 LG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리기 직전 진행됐으며 이날 개표됐다. 타율(.370)·득점(135점)·최다안타(201개) 3관왕도 달성한 서건창은 수상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다 내년 시즌 구상에 더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의 마음으로 더욱 발전하겠다. 지금의 내게 딱 맞는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쳐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또 “사상 첫 200안타 돌파 기록에 가장 애착이 가지만 득점왕에도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내 역할은 출루하고 도루한 뒤 적시타 때 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수십 명의 넥센 팬이 찾아와 서건창의 소감 발표 때 응원가를 부르는 등 축하를 보냈다. 한편 3년 연속 MVP를 배출한 넥센은 서건창(타격·득점·안타), 박병호(홈런·타점), 강정호(장타율), 밴헤켄(다승), 헨리 소사(승률), 손승락(세이브), 한현희(홀드) 등이 부문별 1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 평균자책점과 탈삼진은 밴덴헐크(삼성), 도루는 김상수(삼성), 출루율은 김태균(한화)이 각각 차지했다. 신인왕은 박민우(NC)가 받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男 쇼트 날 갈았네…소치 노메달서 월드컵 金 3개 부활

    男 쇼트 날 갈았네…소치 노메달서 월드컵 金 3개 부활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노메달 수모를 당한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올 시즌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신다운(21·서울시청)은 17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펼쳐진 2014~15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 남자 1000m 결승에서 1분24초610의 기록으로 세묜 엘리스트라토프(러시아·1분24초785)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위로 달리던 신다운은 마지막 바퀴에서 아웃코너로 치고 나오며 극적인 역전승을 일궜다. 신다운은 또 박세영(21·단국대), 곽윤기(25·고양시청), 서이라(23·한국체대)와 팀을 이뤄 5000m 계주 결승에서 6분36초179의 기록으로 헝가리(6분36초444)를 밀어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전날 1500m에서 박세영이 금빛 레이스를 펼친 남자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을 수확하며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남자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3개 이상의 금메달을 딴 것은 2012~13시즌인 지난해 3월 헝가리 데브레첸 세계선수권 이후 1년 8개월 만이다. 지난 시즌 남자 대표팀은 월드컵 2차와 4차 대회에서 노골드에 그치는 등 부진을 거듭하다 결국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빅토르 안·3관왕)의 선전이 겹치면서 과거 파벌 싸움에 대한 거센 질타를 받았다. 위기의식을 느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올 시즌을 앞두고 개혁 작업을 진행하는 등 절치부심했다. 1990년대 중후반 김동성, 채지훈과 함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선태 전 일본 대표팀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고, 논란이 많았던 국가대표 선발 방식도 변경했다. 두 차례만 치러졌던 선발전을 세 차례로 늘렸으며 최종 선발전은 시즌 개막 직전인 9월에 치러 최상의 컨디션인 선수를 뽑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코리안 디저트 카페 설빙, 새콤달콤 생딸기설빙 20일 재출시!!!

    코리안 디저트 카페 설빙, 새콤달콤 생딸기설빙 20일 재출시!!!

    인절미설빙과 고구마케익설빙 등 색다른 계절 메뉴 디저트를 선보인 설빙이 올봄 메가 히트 제품이었던 생딸기설빙을 다시 한 번 출시할 예정이라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얻고 있다. 생딸기설빙은 딸기의 새콤달콤한 맛과 쫄깃한 찹쌀떡의 조합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나이 제한 없이 겨울철 달콤하게 즐길 수 있는 디저트 메뉴이다. 이번 생딸기설빙은 기존 메뉴에서 지난 시즌보다 더욱 부드러운 찹쌀떡으로 업그레이드되었으며, 생딸기설빙에 새롭게 치즈 케이크와 설빙만의 특별 생크림이 곁들어진 프리미엄생딸기설빙도 함께 선보인다. 또 생딸기백설케익과 생딸기찹살떡도 사이드메뉴로 출시예정이어서 디저트를 사랑하는 모든 고객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설빙 관계자는 “생딸기설빙을 많이 사랑해주신 만큼 그에 보답하는 더욱 맛있는 설빙을 제공하고자 딸기 농가와 재배 계약을 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하며. “생딸기설빙의 재출시를 기념하여 산청특산물 경품증정 등 다양한 이벤트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즌별로 달콤하고 특별한 디저트를 제공하는 설빙은 코리안 디저트 카페로 현재 한국 소비자 포럼 선정 ‘2014 올해의 브랜드 대상’에서 3관왕을 차지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쇼트 여왕’ 심석희

    소치동계올림픽의 영웅들은 건재했다. 심석희(17·세화여고)는 9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 여자 1500m 결승에서 2분23초014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지난 2월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금·은·동메달 한 개씩을 수확하며 간판 스타 입지를 굳힌 심석희는 2012~13시즌부터 11대회 연속 월드컵 금메달 행진을 이어 갔다. 함께 출전한 김아랑(19·한국체대)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부에서는 소치 3관왕의 주인공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1000m에서 1분29초652의 기록으로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안현수는 최근 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후보’에 포함되는 등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박세영(21·단국대)이 안현수와 한판 승부를 펼쳤으나 은메달에 머물렀다. 소치에서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신다운(21·서울시청)은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17초63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MLB 선수 선정 올해의 선수에 커쇼 한 시즌 첫 3관왕

    현역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클레이턴 커쇼(26·LA 다저스)가 4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투표로 뽑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커쇼는 내셔널리그 올해의 투수, 마빈 밀러상도 수상하면서 1992년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선수상’ 제정 이후 최초로 단일 시즌에 3개 부문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올해 정규시즌에서 21승 3패 평균자책점 1.77을 기록하며 다승과 평균자책점 부문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오른 커쇼는 동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커쇼는 2013년과 2011년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투수로 선정되기는 했지만 투수와 야수 모두가 경쟁하는 최고 선수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커쇼는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선수들이 주는 상이니 더 큰 기쁨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세계新 김우진 전국체전 MVP

    세계新 김우진 전국체전 MVP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에서 끊겼던 세계 신기록의 맥을 4년 만에 이은 김우진(22·충북·청주시청)이 대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양궁에서 2개의 세계 신기록과 1개의 타이기록을 세운 그는 3일 제주에서 끝난 제95회 전국체전에서 대회 MVP 5연패를 노리던 수영 4관왕 박태환(25·인천·인천시청)을 제치고 가장 빛난 선수로 뽑혔다. 그는 지난달 29일 전국체전 양궁 남자 일반부 리커브 70m에서 36발 합계 352점을 쏴, 김종호(20·인천·인천계양구청)가 지난해 7월 19일 세운 세계 기록 350점을 뛰어넘었다. 하루 뒤인 30일에는 30m, 50m, 70m, 90m 등 4거리 합계 1391점을 기록하며 또 한 번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30m에서는 360점 만점으로 세계 타이기록을 작성했다. 그는 30m, 50m, 70m에서 금메달을 따 3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대회 종합우승은 경기도가 13회 연속 차지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박태환·김우진 “전국체전 MVP 바로 나”

    박태환·김우진 “전국체전 MVP 바로 나”

    ‘세계신기록 제조기’ 양궁 김우진(오른쪽·22·청주시청)과 ‘한국 수영의 슈퍼스타’ 박태환(왼쪽·25·인천시청)이 제주 전국체육대회 최우수선수(MVP)를 두고 막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우진은 올림픽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한 전국체전 남자 일반부 양궁에서 30m, 50m, 70m 1위를 차지해 3관왕을 차지했다. 특히 김우진은 70m에서 352점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4개 사거리 합계 144발 총합 기록에서도 1391점을 쏘아 세계 최초로 1390점대 고지를 밟았다. 30m에서는 360 만점을 쏘아 세계기록과 타이를 이뤘으며, 50m에서는 체전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고교 시절이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년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개인,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은 국가대표 선발전의 바늘구멍을 뚫지 못했다. 박태환은 주종목인 자유형 200m, 400m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했다. 동료와 함께하는 계영 800m, 400m에서도 독보적 스피드를 앞세워 짜릿한 역전 우승의 묘미를 선사했다. 이미 4관왕을 달성한 박태환은 3일 마지막 출전 종목인 혼계영 400m에서 5관왕 등극에 도전한다. 박태환은 전국체전에 나올 때마다 최소 4관왕 이상을 달성하며, 지난해까지 4번 출전한 체전에서 모두 MVP에 선정됐다. 박태환은 경기고 시절이던 2005년 자유형 400m 한국신기록에 4관왕, 2007년 자유형 100m 한국신기록에 5관왕, 2008년 단국대 시절에는 자유형 100m 한국신기록에 5관왕, 인천시청 유니폼을 입은 2013년에는 5관왕을 달성했다. MVP는 체전 기자단의 투표로 결정되고 한국체육기자연맹 회장이 시상한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설빙, 겨울맞이 사이드 메뉴 전격 출시!

    설빙, 겨울맞이 사이드 메뉴 전격 출시!

    코리안 디저트 카페 설빙은 다가오는 겨울 시즌을 맞이하여 새로운 사이드 메뉴를 출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 출시된 사이드 메뉴는 겨울 간식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품목에 설빙만의 퓨전 노하우가 가득 담긴 것으로 벌써 많은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고있다. 부산의 명물로 손꼽히는 씨앗호떡을 설빙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바삭씨앗호떡은 겉이 바삭한 페스츄리의 식감에 먹는 순간 씨앗이 가득한 꿀이 터져 나와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가운데 올려진 생크림을 곁들이면 더욱 일품이다. 바삭씨앗호떡은 특히 커피와 함께 즐기면 더욱 잘 어울려 겨울철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모짜렐라 고구마는 전통 음식인 고구마 사이에 체다 치즈와 모짜렐라 치즈를 가득 넣어 누구나 감칠맛 나게 즐길 수 있으며 특히 찰떡궁합으로 알려진 고구마와 치즈의 조합이기에 더욱 기대된다. 가래떡을 퓨전화하여 출시한 쌍쌍치즈가래떡은 여성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가래떡 속에는 모짜렐라 치즈, 겉에는 체다 치즈와 치즈가루가 들어가 감칠맛을 느끼는 동시에 오븐에 구워낸 떡은 먹을수록 쫄깃하고 고소하다. 연이은 신메뉴 출시로 디저트 카페 시장에서 입지를 굳게 다지고 있는 설빙은 ‘2014 올해의 브랜드 대상’ 3관왕을 수상한 대한민국 대표 코리안 디저트 카페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박태환 금빛 레이스 시작

    박태환(25·인천시청)의 불꽃 레이스가 다시 시작됐다. 박태환은 30일 제주수영장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일반부 계영 800m 결선에서 김수민, 황민규, 김민규와 함께 인천 선발로 나서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첫 영자 김수민과 두 번째 황민규가 첫 200m와 200~400m를 나란히 5위로 통과했다. 세 번째 김민규가 400~600m에서 3위까지 올려놓자 마지막 앵커로 나선 박태환이 혼신의 역영을 펼쳐 전북 선발을 따돌린 데 이어 마지막 50m 구간에서 경기 선발마저 따돌리며 7분24초89에 맨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지난해 인천 대회에서의 대역전 드라마를 완벽하게 재방송한 박태환은 첫 금메달을 목에 걸며 최다관왕 도전에 시동을 걸었다. 박태환은 체전에 나설 때마다 적어도 4관왕을 차지했다. 고교 시절이던 2005년 4관왕, 2007년 5관왕, 대학 때인 2008년 5관왕에 올랐다. 일반부 첫 대회인 지난해에는 4관왕에 오른 뒤 최우수선수(MVP)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31일부터는 자유형 200m·400m, 계영 400m, 혼계영 400m 등에 나선다. 양궁에서도 3관왕이 배출됐다. 김우진(청주시청)은 전날 남자 일반부 70m에 이어 4개 사거리 합계인 144발 라운드에서도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30m, 50m, 70m, 90m 합계 1391점을 쏘아 자신이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세운 세계기록(1387점)을 또 뛰어넘었다. 3관왕에 오른 김우진은 31일부터 열리는 개인, 단체전 토너먼트에서 5관왕에 도전한다. 한편 이날 오후 7시까지 사격, 사이클, 양궁, 역도, 체조, 핀수영 등에서 다관왕이 47명이나 배출됐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김효주 ‘올해의 상금퀸’

    김효주 ‘올해의 상금퀸’

    ‘에비앙 챔피언’ 김효주(롯데)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4개 메이저 대회 가운데 3개를 휩쓸며 올 시즌 상금왕을 확정했다. 김효주는 26일 경기 광주 남촌골프장 동서코스(파72·6715야드)에서 끝난 KB금융 스타챔피언십(총상금 7억원) 4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를 묶어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를 적어낸 김효주는 2위 박인비(KB금융그룹)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 상금 1억 40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올 시즌 4개 메이저대회 가운데 6월 한국여자오픈과 지난 12일 끝난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효주는 올해 메이저에서만 3승을 수확했다. KLPGA 투어 한 해 메이저 3승은 2008년 신지애 이후 6년 만이다. 시즌 5개의 우승컵을 수집한 김효주는 2009년 서희경에 이어 5년 만에 한 시즌 5승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또 시즌 상금 11억 4000만원을 쌓은 김효주는 남은 3개 대회 결과에 관계없이 올 시즌 상금왕을 확정했다. 3라운드까지 단독 1위 허윤경(SBI저축은행)에게 2타 뒤진 공동 2위였던 김효주는 박인비, 백규정(CJ오쇼핑) 등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였다. 13번 홀(파4)까지 10언더파로 박인비, 백규정과 공동 선두를 달렸던 김효주는 14번 홀(파3)과 15번 홀(파5)에서 연속 버디로 승기를 잡았다. 바로 앞 조에서 경기를 한 박인비가 17번 홀(파4) 버디로 추격했지만 김효주는 1타 차 리드를 끝까지 잘 지켰다. 김효주는 “우승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다”면서 “특히 인비 언니가 17번 홀에서 분명히 버디를 할 것 같아서 나도 잘 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이날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여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준우승, 이번에도 국내 대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김효주와 챔피언 조에서 다승 경쟁을 펼쳤던 동갑내기 백규정은 2타 뒤진 10언더파 278타로 3위에 그쳤고 이날 2타를 잃은 허윤경은 9언더파 279타로 4위로 밀렸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한국 금 72개… 12년 만에 종합 2위

    한국 금 72개… 12년 만에 종합 2위

    대한민국 장애인스포츠가 12년 만에 아시안게임 종합 2위에 복귀했다. 한국은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마지막 날인 24일 금메달 5개를 보태 총 금메달 72개, 은 62개, 동 77개로 종합 2위에 올랐다. 2002년 부산대회(금 62개, 은 68개, 동 20개)로 첫 종합 2위에 오른 뒤 두 번째다. 최고 효자 종목은 볼링이었다. 손대호, 김정훈, 배진형, 이민수 등 무려 4명의 3관왕을 배출해 금메달 11개를 휩쓸었다. 수영이 금메달 10개로 뒤를 이었다. 2관왕인 강정은을 포함해 8명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격은 3관왕 박진호를 비롯해 총 8차례 금빛 총성을 울렸다. 사이클에선 이도연, 김용기, 김종규 등 2관왕 세 명의 선전에 힘입어 금메달 7개를 수확했고, 론볼 역시 금메달 7개로 한국의 메달 레이스에 힘을 보탰다. 데뷔전을 가진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금메달 6개 가운데 5개를 쓸어담아 첫 출전부터 아시아 최강의 입지를 굳혔다. 마지막 경기였던 휠체어농구 결승에서 일본을 61-50으로 꺾고 대미를 장식했다. 중국이 금메달 174개, 은 95개, 동 48개로 종합 1위를 지킨 가운데 이날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폐회식을 가진 대회는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대회기를 넘겼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제주 관광객 1200만명 시대

    세월호 참사라는 악재 속에서도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2일 제주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제주를 찾은 관광객수는 전년 동기 887만 9829명보다 12.3% 증가한 997만 2739명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제주도가 올해 목표로 잡은 1150만명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넘어 내국인 900만명, 외국인 320만명 등 관광객 1200만명 시대도 열릴 전망이다. 도는 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생물권보전지역 등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 획득,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따른 국내외 인지도 상승 등으로 관광객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에 비해 내국인 관광객이 약세지만 올레꾼과 휴양객 등에 힘입어 성장세를 유지했다”며 “앞으로 외국인 개별관광객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제주 관광객은 공식 집계를 시작한 1962년만 해도 1만 4707명(내국인 1만 4340명, 외국인 367명)에 불과했으나 1966년 10만명을 넘어선 데 이어 1977년 50만명, 1983년 100만명, 1988년 200만명, 1991년 300만명, 2005년 500만명을 돌파했다. 이어 2010년 757만 8000명, 2011년 874만명, 2012년 969만 1000명, 지난해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돌파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프로야구] 넥센 MVP 집안싸움 남은 5경기서 갈린다

    2014 프로야구 정규시즌 막판 화두는 4위 싸움이지만 MVP(최우수선수) 경쟁도 뜨겁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10일 포스트시즌 일정을 확정한 가운데 준플레이오프는 오는 19일부터, 플레이오프는 27일 시작된다. 11월 4일부터는 한국시리즈가 열린다. 정규리그 MVP를 둘러싸고 ‘넥센가’의 싸움으로 펼쳐지고 있는 경쟁은 남은 5경기에 좌우될 전망이다. 당초 시즌 50홈런을 눈앞에 둔 거포 박병호(28)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주춤거리는 틈을 타 ‘한솥밥’ 서건창(25)이 폭풍 질주를 무서운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박병호는 시즌 초반 이후 5월 14개, 6월 9개 등을 포함, 현재 48개 홈런을 기록 중이다. 2개만 보태면 2003년 이승엽(삼성·56개), 심정수(53개) 이후 11년 만에 한 시즌 50홈런 시대를 다시 열게 된다. 하지만 최근 방망이가 무겁다. 10월 5경기에서 홈런없이 21타수 2안타, 1할도 안 되는 타율(.095)에 허덕였다. 하지만 지난달 4일 NC전에서 하루 4홈런을 폭발시키는 등 몰아치기에도 능해 가능성은 충분하다. ‘호타준족’ 서건창은 막판 맹폭중이다. 5경기에서 22타수 12안타, 타율 .545의 폭풍타를 휘둘렀다. 타율(.371), 최다 안타(193개), 득점(127개) 부문 각 1위로 타격 3관왕을 질주 중이다. 4안타를 더 치면 1994년 이종범(해태·196개)의 시즌 최다 안타를 경신하고 7안타를 더하면 사상 첫 한 시즌 200안타의 새 역사를 쓴다. 한편 NC는 사직에서 홈런 3방을 터뜨려 롯데에 12-0으로 완승했고, 두산은 대전에서 한화를 으로7-3으로 무너뜨렸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정구 단체전 금메달 싹쓸이 쾌거…12년 만에 일본 꺾고 전 종목 석권

    정구 단체전 금메달 싹쓸이 쾌거…12년 만에 일본 꺾고 전 종목 석권

    한국 정구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12년 만에 일본을 꺾고 전 종목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한국 여자 정구대표팀은 4일 인천 부평구 열우물테니스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정구 단체전(1단2복식) 결승에서 일본을 2-1로 꺾었다. 이로써 한국 정구는 이번 대회 정구 7개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이 전 종목 금메달을 수확한 것은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여자 정구 대표팀은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8년 만에 단체전 금메달을 따며 아시아 최강 지위를 회복했다. 1994년 정구가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로 여자단체전에서 한국이 우승을 놓친 것은 2010년 광저우 때가 유일하다. 김애경(NH농협은행)은 3관왕을 차지했다. 김애경은 앞서 혼합복식, 여자복식에서도 금메달을 딴 바 있다. 여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보미(안성시청)와 여자복식 금메달리스트 주옥(NH농협은행)은 2관왕이 됐다. 한국 남자 정구 대표팀도 금메달을 땄다. 한국은 4일 인천 부평구 열우물테니스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정구 남자단체전 결승에서 일본을 2-0으로 꺾었다. 1998년 방콕 대회, 2002년 부산 대회 때 금메달을 딴 한국은 아시안게임 정구 남자 단체전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정구 단체전 금메달 소식에 네티즌들은 “정구 단체전 금메달, 대단하다”, “정구 단체전 금메달, 멋지다”, “정구 단체전 금메달, 장난 아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자축구 ‘1분의 기적’

    남자축구 ‘1분의 기적’

    한국 축구가 피를 말리는 ‘한반도 더비’에서 북한을 제치고 아시안게임 정상에 올랐다.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2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의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임창우(대전)의 극적인 결승골을 앞세워 1-0으로 이겼다. 이로써 한국은 1986년 서울대회 이후 2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으면서 아시아 맹주로 다시 섰다. 또 북한과의 역대 아시안게임 전적도 2승1무1패로 앞서갔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20·연세대)는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승에서 손연재는 후프(18.216점), 볼(17.300점), 곤봉(18.100점), 리본(18.083점) 합계 71.699점으로 덩썬웨(중국·70.332점)를 제치고 시상대 맨 위에 섰다. 16세 때인 광저우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손연재는 이로써 4년 만에 ‘아시아의 여왕’으로 우뚝 섰다. 손연재는 ‘꿈의 점수’로 불리는 18점대를 잇따라 돌파하며 초반부터 덩썬웨에 여유 있게 앞섰다. 마지막으로 연기한 볼에서는 수구를 놓치는 실수를 범했지만 벌어놓은 점수가 많아 가볍게 덩썬웨를 눌렀다. 이나영(28·대전시청)은 안양 호계체육관에서 열린 볼링 여자 마스터스 챔피언결정전에서 두 게임 합계 477점을 기록, 왕야팅(타이완·437점)을 제치고 네 번째 금메달을 따냈다. 남자대표팀의 막내 박종우(23·광양시청)도 2게임 합계 407점을 기록, 우슈훙(홍콩·401점)을 제압하고 정상에 올라 3관왕이 됐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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