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미관계‘속보’·한국엔‘소걸음’/김학준 인천대총장(특별기고)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마침내 공식화됐다.북한 관영 중앙방송은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와 군사중앙위원회 공동명의의 특별보도를 통해 김정일이 당총비서로 추대됐음을 선포한다고 알린 것이다.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이미 예상됐던 것으로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김일성이 죽은 때로부터 3년3개월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던 북한 권력구조의 정점인 당총비서 자리가 마침내 채워짐으로써 북한의 ‘비정상 상태’는 해소되고 글자 그대로 이름과 실질이 같은 ‘김정일 시대’가 열린 셈이다.
김정일의 총비서 공식승계는 자연히 그가 앞으로 걷게 될 길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 관영통신은 이미 김정일은 김일성의 평소의 뜻 그대로 북한을 이끌어갈 것임을 강조하면서 김정일이 김일성 노선에서 벗어날 여지는 조금만큼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설명이다.북한에서 누가 김일성의 노선에서 한발짝이라도 벗어날수 있겠는가.김정일도 그러한 재량은 전혀 없다.
○‘김일성 뜻’ 파악이 중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김정일이 앞으로 걸어갈 길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문제의 초점은 ‘김일성의 평소의 뜻’이 무엇이었으며 ‘김일성 노선’이 무엇이었느냐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지난날 소련에서도 중국에서도 노선의 변경 또는 정책의 변경은 해석을 통해 이뤄졌다.소련의 경우를 예로 들면,레닌의 평소의 뜻을 조금도 변경하지 않고 떠받든다고 하면서도 레닌의 평소의 뜻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노선의 변경 또는 정책의 변경을 시도했던 것이다.
북한도 같은 방식을 취할 것이다.김일성의 평소의 뜻에 대해,심지어는 주체사상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단계적으로 시도함으로써 김정일의 운신의 폭을 새롭게 설정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김일성이 죽기 직전에 만들어 놓은 대내외 정책의 기본틀이다.우리의 기억에 아직도 새롭듯,김일성은 죽기 직전에 북한과 미국과의 대결관계를 ‘화해’관계로 전환시키려고 시도했다.그래서 카터 전 미국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대미화해를 향한 방황전환을 모색했다.
○부분적 국내개혁 시사
김일성은 또 북한의 개혁·개방의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지침을 내렸다.이미 바깥 세계로 알려진 권위있는 자료에 따르면,김일성은 죽기 직전에 북한 권력의 핵심층과 가진 회의에서 북한이 단계적으로 대외개방을 추구해야 하고 부분적이나마 국내개혁을 시도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김일성이 죽은뒤 지난 3년3개월동안 김정일이 걸어온 길을 되돌이켜 보면,김정일은 김일성이 설정한 그 틀 안에서 움직여 왔음을 인정하게 된다.지난 1994년 제네바에서 미국과 맺은 합의들이 그 대표적 보기이며,나진·선봉경제특구의 확대운영이 또 하나의 보기이다.
이렇게볼 때,김정일은 김일성의 마지막 지침을 앞세워 앞으로도 정책전환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하게 된다.확실히 북한의 미국과의 관계개선 속도는 비교적 빨라질 것이고 그것에 뒤따라 일본과의 수교협상도 진전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향한 발걸음은 상당 기간동안 유보할 것이다.우선 한국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어떤 성격의 정부가 출범할 것인지기다려볼 것이다.그러한만큼 우리로서도 조급하게 북한의 문을 두드릴 필요는 없다.
내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이며 9월9일은 북한 정권수립 50주년이다.이 역사적 계기를 남과 북은 서로 만나는 기회로 삼을수 있을 것이며,남북정상회담이 새롭게 거론될 수 있겠다.
○여유 갖고 인내로 대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호전되는 방향으로만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하지는 않겠다.김정일은 서방세계와의 관계는 개선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긴장관계를 지속시키고자 할 수 있다.남북관계의 긴장은 자신의 세력기반인 군부를 만족시킬수 있고 또 주민통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이러한 시각에서 안보태세에 소루함이 없도록 늘 노력해야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말해,남북관계는 민족의 장래에 대한 굳은 신념과 잘 훈련된 인내에 의해 풀릴수 있다.기술로써 풀릴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북한에 대해 거의 모든 방면에서 우위를 확보한 우리로서 아량과 여유를 갖고 인내로써 대처해 나간다면 남북관계는 반드시 우리 주도 아래 새로운 발전적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