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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지역 5년 이상 근무 6급 154명/건교부 전원 전보인사

    건설교통부가 동일근무지에 5년 이상 근무중인 6급 공무원 154명 전원을 지난 10일자로 전격 전보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보발령 인사 154명 중 지방청 근무자는 122명으로 79.2%를 차지했으며 본부도 32명으로 부처통합시 동일부서에 근무중이던 공무원들이다. 특히 지방청 6급(계장급)을 50% 가량 한꺼번에 전보 시킨 것은 옛 건설부 및 교통부 발족 이래 처음이다. 건교부 權度燁 총무과장은 “李廷武 장관 부임 이래 국민·기업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지방청 조직을 활력있고 깨끗한 서비스 조직으로 쇄신하기 위해 지난 3개월간의 정지작업을 거쳐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權과장은 “전보로 인한 거주지 이동,자녀교육문제 등 생활상 애로를 호소하는 공무원도 있었지만 대부분 본부의 인사의도를 이해해 줘 별 무리없이 인사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건교부는 이번 인사가 일부에서 지적하듯 비리척결 차원의 인사는 아니었으며 지역 및 국토개발을 담당하는 건설교통공무원으로서 타지역 및 전국적인 개발상황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 DJ 수감 감방 복원/역사교육장으로 활용

    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81년 1월부터 23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던 0.96평 크기의 청주교도소 특별감방이 복원된다. 청주교도소는 17일 “대통령이 정치적 이유로 핍박받았던 현장을 보존,역사교육장으로 활용키 위해 2주일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했다”면서 “한달에 1∼2회 일반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교도소측은 감방의 구조를 당시의 모습대로 바꾸고 그때 쓴 것과 같은 옷을 비롯해 침구 치약 칫솔 식기 세면기 양변기 등을 갖추는 한편,金대통령이 수감중 반입해 읽었던 책 목록을 구해 그중 100여권을 새로 구입해 비치할 계획이다.
  • 親日의 군상:6/‘친일파 1호’ 金麟昇(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 침략선 타고와 모국 침탈 앞장/1875년 ‘운양호사건’ 전후 日에 침략정보 제공/日 통역으로 강화도조약 체결에 결정적 역할/日本식 두발·복장에 ‘皇國 절대 충성” 다짐/한때는 선비정신 소유자/日 속셈 모르고 매국 행위/背族 대가는 日의 멸시뿐 1876년 2월4일 강화도 초지진(草芝鎭) 앞바다에 일본 군함 한 척이 출현했다.1월6일 일본 시나가와만(品川灣)을 출발,부산을 거쳐 온 이 배에는 일본 정부의 특명전권변리공사(特命全權辨理公使)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일행이 타고 있었다.구로다 일행은 6개월 전에 발생한 ‘운양호(雲揚號)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강제로 수교조약을 맺으러 오는 길이었다. 구로다를 포함해 무려 800여 명에 달하는 일행 가운데 일본인 복장을 한 조선인 한 명이 끼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金麟昇(생몰연대 미상). 그는‘운양호사건’ 이전부터 일본측과 내통하면서 일본을 도와오다가 이제 그 마무리 작업인 조약(강화도조약)체결을 돕기 위해 동행한 통역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일본에 협력한 ‘친일파’는 있었지만근대적 의미에서 金麟昇보다 앞서는 친일파는 없다.친일파 연구가 고(故) 林鍾國씨 역시 그를 ‘친일파 1호’로 꼽았다.조선조 말기 양반계층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친일의 길을 걷게되는 과정은 이후에 등장하는 친일파들의 행태와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그의 친일행적 연구는 일제하 친일파 연구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그는 해외에서 일제의 외국인 고문(顧問)으로 고용돼 비밀리에 활동한 까닭에 국내에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林鍾國씨 조차도 그의 글에서 ‘김인승’이라는 이름 석자만을 기록했을 뿐이다.몇몇 역사학자 역시 논문에서 그를 언급한 바는 있으나 친일활동의 전모를 밝히지는 못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은 지난 96년 2월 성신여대 具良根 교수(당시 도쿄대 외국인 연구원)가 발표한 한 논문을 통해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具교수는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서 입수한 3건의 자료를 토대로 ‘일본외무성 7등출사(七等出仕·일본의 구식 관직명) 세와키 히사토(瀨脇壽人)와 외국인고문(顧問)金麟昇’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친일파의 ‘선구자’격인 金麟昇의 친일행적을 추적해 보자. 金麟昇은 함경북도 경흥(慶興)태생으로 본관은 김해(金海).7대조 때 경흥으로 이사한 뒤로 그의 집안은 토반(土班,지방의 양반)으로 전락하였다.그는 16세 때부터 경흥부(慶興府)에 근무하면서 상당한 직책을 맡기도 했다.그러나 이 지역에 대홍수와 기근이 몰아치던 1869년 그는 모종의 일로 이 지역 수령과의 의견충돌 끝에 관직을 그만두고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땅 니콜리스크(당시 한국명 吹風,블라디보스토크 북방 50리)로 탈주하였다. 이곳에는 그 뒤 식량을 찾아 월경(越境)한 조선인 유랑민이 대거 몰려들었는데 한학실력이 출중했던 그는 여기서 학교를 열고 생도들을 가르쳤다.그러던중 여기서 다케후지 헤이가쿠(武藤平學)라는 한 일본인과 사귀게 된다.다케후지는 원래 양학(洋學,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하려고 집을 나왔다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흘러오게 된 사람이었다.바로 이 다케후지가 나중에 그를 친일의 길로 이끈 첫 안내자가 된다.한편 이무렵 러시아가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진(南進)정책을 강행하자 1875년(明治 8년) 4월 일본정부는 외무성 7등출사 세와키 히사토(1822∼78)를 블라디보스토크와 포셋 지방에 파견,러시아와 교섭을 갖게 하였다. 세와키는 공식적으로는 일본 외무성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키 위해 파견한 외교관이었지만 사실상 정탐꾼이었다. 일본 외무성이 그에게 준 ‘출장명령서’(1875년 4월4일)의 임무 부분은 ‘탐색’,‘정탐’인데 이 중의 절반은 의외로 조선에 대한 것이었다.명령서에는 구체적으로 ‘조선인을 고용하여 조선땅으로 들어가서 토지·풍속 등을 탐색하고 올 것’ 등이 명기돼 있다.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세와키는 조선에 들어가지 못했다.대안을 모색하고 있던 세와키는 여기서 일본인 다케후지를 만나 문제의 金麟昇을 소개받는다.金麟昇의 학식과 경험을 높이 산 세와키는 귀국길에 그를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 이무렵 일제는 다수의 외국인 고문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1874∼75년에는 그수가 약 2,000명에 달했다.운양호사건(1875년 9월20일),강화도조약(1876년)이 체결되기 바로 직전의 일이다.당시 일제는 조선에 ‘황국(皇國)의 군현(郡縣)’을 설치하여 이를 근거로 대륙을 침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외국인 고문 채용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그리고 그 첫 군사행동이 바로 ‘운양호사건’이었다. 1875년 7월 세와키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金麟昇은 운양호사건 발생직전 1차로 3개월간(8월1일∼10월30일) 일본정부와 외국인 고문 고용계약(日給 1원)을 맺었다.당시 일본 외무성이 그를 고용한 목적은 ▲만주지방 지도작성 ▲북방사정 탐색 ▲조선 침략용 지도작성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자문 등.이중에서 金麟昇이 일본측에 크게 도움을 준 부분은 조선에 관한 사항이었다. 1875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조선 침략용으로 작성한 ‘조선전도(朝鮮全圖)’는 金麟昇의 자문을 받아 작성된 것이다.지도 하단부에 적힌 ‘조선 함경도인 모(某)씨에게 친히 그 지리를 자문받고…’의 모씨는 바로 金麟昇을 지칭한 것이다.지도 외에도 당시 조선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계림사략(鷄林事略)’ 역시 그의 자문을 받아 출간됐다. 한편 1차 계약기간중인 10월부터 金麟昇의 급료가 월급제로 바뀌면서 금액수 두 배로 늘어났다.당시 일본 외무경(현 외상) 데라시마(寺島宗則)는 태정 대신(太政大臣,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어는 물론 한학,시문(詩文)이 능통하여 아주 유용한 인물로…한지(韓地,조선)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라고 그를 평가하였다.일제는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그를 적절히 활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실지로 그는 강화도조약 체결(1876년 2월27일) 이후까지 거의 1년동안 도쿄에 머물면서 조선침략을 위한 갖가지 정보와 조언을 일본측에 제공했는데 결정적인 공헌은 역시 강화도조약 체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876년초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일본정부의 대표 구로다 특명전권공사가 그에게 동행을 요구하자 그는 ‘이번 수행에서도 만약 머리를 깎지않고 의복을 바꾸지 않으면 이는 제가 조선인을 자처하는 일이며 일본인의 입장에 처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황국(皇國,일본)의 신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황송해 했다.심지어 ‘끓는 물,타는 불 속이라도 어찌 고사하겠는가’라며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였다. 1876년 2월4일 강화도에 도착한 구로다 일행은 1주일만인 2월10일 강화부(江華府)에 상륙하여 다음날 11일부터 담판에 들어갔다.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보름 이상이 걸렸다.이 기간동안 그는 강화도 앞바다에 정박한 일본군함에 머무르면서 공문의 한문번역과 수정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조약체결 과정에서 수시로 일본측에 조언을 해주었는데 구로다에게는 조선관리설득방책 18개항을 서면으로 제출하기도 했다.여기에는 전신기(電信機)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에서부터 ‘여러 말 할 필요없다.청국(淸國,청나라)은 그처럼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데도 먼저 일본에 강화조약을 청하여 맺었다.두루살펴 깊이 생각하라’(18항)는 등 공갈·협박성 문귀도 들어 있다. ‘직량(直亮)’한 성격에 동포애도 강한,조선의 전통적 선비정신의 소유자였던 金麟昇.당시 그는 일본의 속셈을 헤아리지 못한 채 ‘일본과 조선은상맹상통(相盟相通)의 나라’로 보고 일본의 강화도조약 체결 추진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조약 체결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얼마후 러시아로 되돌아갔는데 도쿄에서 남긴 한 편지에서 ‘거리에서 듣기 불편한 말들이 들리고 길을 걸으면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적었다.‘친일파 1호’가 배족(背族)의 대가로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보상은 멸시와 증오였다.그 이후 대개의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강화도 조약/日,운양호사건 고의 유발뒤 강제 체결/총 12조… 韓日간 맺어진 첫 불평등조약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은 병자년에 체결됐다고 해서 일명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으로도 불리는데 정식명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조선과의 국교를 줄기차게 추진해온 일본은 조선정부의 쇄국정책으로 교섭이 난항에 빠지자 1875년 9월 20일 해안측량을 빙자하여 ‘운양호사건’을 고의로 유발했다.이를 빌미로 일본은 군함과 함께 구로다를 전권대사로 파견,1876년 2월 27일 조선측 대표 판중추부사 申櫶을 상대로 수교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총 12조로 구성된 이 조약은 ▲부산 이외에 원산·인천 추가 개항 ▲조선연해 측량권 허용 ▲개항장 내 조계(租界)설정·일본인의 치외법권 인정 등 일본측에 유리한 내용들 뿐이다.이 조약은 국제법적 토대 위에서 양국간에 이뤄진 최초의 외교행위이자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기도 하다.
  • 이근삼 연극정신 기리기/정기연극제 탄생

    ◎민중·뿌리·민예 3개 민간극단 참여/종로 명보아트홀서 3개월간 계속/‘유랑극단’·‘국물 있사옵니다’ 등 대표적 희극 공연 통렬한 풍자와 해학으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날카롭게 지적해온 극작가 이근삼.우리 연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의 하나인 그의 연극정신을 기리는 상설연극제가 마련된다. 극단 민중과 뿌리,민예 등 3개 극단은 ‘제1회 이근삼희극제’를 10일부터 약 3개월동안 서울 종로구 명보아트홀에서 펼친다.그동안 오태석,이강백연극제 등 단발성 행사와는 달리 특정 극작가 상설연극제가 창설된 것은 국내 처음.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민간 극단에서 이같은 연극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올해 고희를 맞는 극작가 이씨가 그동안 선보인 작품은 장단막 희곡 40여편.서양 신극의 유입으로 심각하고 진지한 연극만이 성행하던 60년대에,그만이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작품들을 내놨다.때문에 연극계에선 그를 ‘한국의 버나드 쇼’로 부른다. 뿐만아니라 우리 연극사에서 기억될만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60년초연된 단막극 ‘원고지’는 우리 현대극의 출발을,66년 ‘국물있사옵니다’는 서사극양식을 자리잡게 했다.영문학자로 동국대,중앙대를 거쳐 서강대에서 정년 퇴임한뒤 지금도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씨는 “외국작품을 자주 공연하면서 오히려 우리것은 등한시하는 경향”이라고 아쉬워하면서 유난히 힘겨운 여름을 보낸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웃음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가을에 열릴 연극제에서는 이씨의 기존 작품은 물론이고 그의 작품과 맥을 같이 하는 신인작가나 버나드 쇼 등 외국 희극작품도 일부 포함해 꾸며갈 예정이다.경제난을 감안,밝고 건강한 웃음을 안겨줄 작품을 골라 뮤지컬 코미디로 각색할 공연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유랑극단(극단 뿌리)=10∼27일.김도훈 연출,이선정 작곡 △꿈먹고 물마시고(극단 민예)=10월1∼18일.강영걸 연출,조동호작곡 △국물 있사옵니다(민중극단)=10월22일∼11월8일.정진수 연출,정대경 작곡 등이다. ‘유랑극단’은 가면극을 원용한 마당놀이형식이다.유랑극단의 삶을 그린 71년 작으로 극단 뿌리가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으로 이번에 올린다.‘꿈먹고 물먹고’는 처음부터 뮤지컬로 씌여진 작품으로 극단 민예의 고정레퍼토리. 그동안 400여회 무대에 오른 이 뮤지컬은 물질만능주의와 위선적인 사회풍자를 풍자하고 고발하면서도 따스한 인간애를 보여준다. ‘국물 있사옵니다’는 얄팎한 술수로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게 되지만 결국 환멸을 느끼게 되는 한 청년의 삶의 방식을 그린 작품.이번에 처음으로 뮤지컬로 선보인다.매주 목∼토 낮 12시30분 인근 직장인과 주부,학생들을 대상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짧은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무료공연도 실시한다.공연작품은 이씨의 단막극 ‘데모스테스의 재판’과 ‘낚시터 전쟁’.734­2010
  • 억대 과외도 3∼4명 있다/입건 교사 진술

    ◎2∼3개월간 강사 배정 등 특별 배려/수배 한신학원 金達淑 실장 자진 출두 강남일대 불법 고액과외 사건에 연루된 학부모 가운데 일부는 1억원이 넘는 거액의 과외비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과 관련 입건된 金모교사는 1일 “한신학원 金榮殷 원장(57)에게 지난해 4월이후 2∼3개월동안의 자녀 수강료로 1억원 이상을 낸 학부모들이 3∼4명 정도 된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사과정에서는 전 국세청 6급 L씨가 낸 8,000만원이 최고 과외액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金교사는 과외 수강생 모집을 의논하기 위해 교회 등에서 金원장과 20여차례 이상 만나는 등 ‘사업상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金원장에게 수천만원을 빌려주고 한약까지 지어주는 등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金원장은 이들 억대 수강생을 위해 강사배정 등에서 특별배려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金교사는 金원장이 ‘억대 고객’을 포함,모든 수강료를 학원으로 사용한 다운독서실 4층에서 직접 현금 또는 수표로 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이날 새벽 1시 30분쯤 수배 중이던 한신학원 학원실장 金達淑씨(49·여)가 자진출두함에 따라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불법 행위가 추가로 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했다. 金씨는 金원장이 지난해 3월까지 고액과외 장소를 제공해준 전 신한학원 원장 權載德씨(48·수배 중)에게 과외비의 일부를 건넸다고 진술,權씨가 이번 사기과외에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내비쳤다. 金씨는 다운독서실 4층을 지난 해 5월 金원장에게 임대하면서 학원실장을 맡아 학부모 상담과 교사 및 과외비 등을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金실장을 상대로 金원장의 소재와 불법 고액과외를 했던 강사 및 학생 규모,현직 교사들의 교습행위 등을 캐물었다. 경찰은 공모 사실이 드러나면 金씨를 학원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등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은 이날 학부모 6명을 방문조사했으며 138명의 관련 교사 가운데 조사하지 않은 나머지 50여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 TV서 본다/아리랑 TV 30일 특집

    ◎일·중·러 돌며 자료수집/황장엽씨,북 행적 증언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를 안방극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외국어 전문채널 아리랑TV는 오는 30일 하오 8시 ‘The Dancer,Choi Seunghee(무용가 최승희)’를 방영한다. 최승희가 일본인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제자로 입문해서 30∼40년대 세계적 무용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과정을 당시 역사와 함께 담았다. 그동안 드라마나 언론에서 최승희를 다룬 적은 많았다.그러나 접근이 단편적이었기에 정작 최승희는 신비의 베일 속에 있었다.이번 프로는 그녀를 둘러싼 베일을 벗겨낸 최초의 다큐라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제작진은 최승희의 발길이 닿은 곳을 따라다녔다.3개월간의 제작기간 동안 일본 중국 소련등을 다니면서 관련자료를 모았다.그리고 관련인물에 대한 생생한 인터뷰를 가득히 담아 최승희를 생생하게 복원시키고 있다. 이밖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박갑동 전 문화선전성 부장이 나와 북한에서 최승희의 행적 및 비참한 말로를 들려준다.특히 김일성의 배려로 화려한 인생을 살다가 마침내 남편 안막(카프에서 활동하던 문예운동가)과 함께 숙청되는 과정에 대한 증언과 숙청을 지시한 김일성의 교시록 등은 자료로서도 값지다. “최승희는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되풀이 강조한 원종선 PD는 “30년대 세계적 무용가가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남과북 모두에서 잊혀진 것이 안타깝게 생각돼 그녀의 자리를 되찾고 싶었다”라면서 “사상적인 측면보다도 그녀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다루는데 초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 두 빈소(朴康文 코너)

    항일투사 海平 李在賢 선생이 세상을 떴다는 기별을 받고 빈소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병원의 장례시설에 모셨다고 했다. 안양에 있는 작은 집에서 검박하게 살던 그에게 사후에 누리는 이런 호사란 좀 뜻밖이었다. 유족이 퍽 애쓴 것 같았다. 장례식장 건물 앞에는 연신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와닿고 차림새가 말쑥한 사람들이 내렸다. 해평 선생을 조상하러 온 손님들이거니 하고 인파에 묻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빈소 문전은 분향 재배 순서를 기다리고 서 있는 사람들로 이미 꽉 차 있었다. 고인의 고매한 인품이 이렇듯 사람을 모으는가 생각하며 둘러보는데 생소한 이들 뿐인 것이 이상했다.해평 선생의 빈소가 아니었다. ○광복군 장교와 친일고관 거기서는 높은 관직에 있던 어떤 분이 조객을 맞고 있었다.그 가족이 별세한 것이었다.그 전직 고관은 일제때 유능하고 충성심 있는 관리로서 신임을 받았다.대한민국에서도 오랫동안 여러 요직을 맡았다.관직에서 물러났건만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은 거기 모인 조객의 숫자로 알 만했다.정작,해평 선생 빈소의 분위기는 고인의 성품처럼 고즈넉했다. 아니,쓸쓸했다고 해야 옳다. 평소 선생을 존경하던 이들이 상 두어개를 둘러싸고 앉아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는 몇 시간 내내 새로 온 조객은 거의 없었으니까. 해평 선생은 광복군 장교로서 미국 전략정보처(OSS)와 합작해 8월 말로 예정한 국내 진입을 준비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광복군 안에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 총지휘부가 구성되고 이범석 장군이 총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해평 선생은 본부요원이 되었다.안춘생 선생은 평안·황해·경기지역을 맡은 제1지구 대장,장준하 선생은 제1 지구의 경기도반장이었다. 국내 정진군은 국내에 들어와 적의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무장세력을 조직하여 미군이 상륙할 때 내응하는 것이 임무였다. 미군 훈련관이 실시한 3개월간의 특수훈련이 거의 끌나는 8월초 국내정진군은 편성되었다. 곧 미국 잠수함으로 국내에 침투하여 임무를 수행할 참이었다. 일본 항복이 조금만 늦었더라면,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승리를 거두고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있을 터였다.모든 광복군과 임시정부 인사들은 통한의 눈물을 뿌려야 했다. 해평 선생은 광복후 귀국해 수십년이 되도록 국가 보훈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이역 땅에서 갖은 신고를 겪으며 싸우다 광복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 투사들께 죄스러워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았다. ○수십년간 공적 숨겨 그는 에스페란토­한국어사전 편찬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다.그 작업이 마침내 끝났을 때,출판비용을 조달할 방도가 달리 없자 유공자로서 훈장과 함께 받게 된 돈을 여기에 썼다.그래서 국내에서는 이 분야 최초인 사전이 해평 덕분에 나오게 되었다. 이번 광복절을 하루 앞둔 오늘,서울 남산에서 3·1 독립운동기념탑 건립기공식이 있다. 그 건립위원회 구성원 명단에,앞서 말한 전직 고관의 이름이 끼인 것을 보았다. 해평 선생을 영결한 것은 지난해 일이었지만,그 때 대조적이던 두 빈소의 풍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 부실 보험사 特檢/내주부터 임직원 위법여부 조사

    ◎정부 4개 生保社 퇴출 발표 정부는 지급여력이 부족한 모든 부실 보험사에는 특별검사를 실시,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는 경영진을 문책하거나 교체할 방침이다.이에 따라 보험감독원은 다음 주중으로 우선 4개 퇴출 생보사에 대한 특검에 착수,임·직원들의 부당·위법행위 여부를 집중 조사하기로 했다. 4개 생보사 이외의 추가적인 강제퇴출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급여력이 부족한 생보사는 증자 등 경영개선 조치를 해야 한다. 금융감독위원회는 11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급여력이 부족한 22개 생·손보사의 경영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국제 BYC 태양 고려 등 4개 생보사를 회생불가능한 부실 금융기관으로 확정,퇴출시킨다고 발표했다. 퇴출 생보사는 3개월간 영업이 정지되며 빠르면 이번 주,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삼성(국제) 교보(BYC) 흥국(태양) 제일(고려) 등 우량 생보사에 계약이전 방식으로 인수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퇴출 생보사의 책임준비금 부족분 등 총 1조원을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지원하기로 했다.4개 퇴출 생보사의 지급여력 부족비율은 모두 -30% 미만이다.기존 보험계약은 모두 보호받으며 인수 생보사가 확정될 때까지만 보험금과 해약환급금 지급이 일시 중단된다. 금감위는 지급여력 부족비율이 -20% 이상,-10% 미만으로 경영정상화 여부가 불투명한 조선 국민 태평양 한덕 한국 두원 동아 등 7개 생보사는 9월10일까지 증자,인력감축 등을 담은 이행계획서를 내도록 했다.조건부 승인이며 퇴출시키지는 않되 증자나 영업정지,경영진 교체 등의 경영개선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 실직자 10만명 해외취업 알선

    ◎정부,5년에 걸쳐… 하반기 大卒 인턴사원 1만명 채용/해외취업­美·加·유럽 등지서 고급인력 대량 요청.컴퓨터·지식산업 등 최고 연봉 6만弗까지/인턴사원­30대 그룹·공기업서 각각 5,000명씩 채용.1인당 20만∼30만원 정부서 매달 수당지급/실업급여­정부 알선한 3D 업종 거부땐 지급 않기로.자기부담 직업훈련자 매달 15만원 수당지원 정부는 오는 11월부터 실직자 10만명 이상을 5년에 걸쳐 미국 등 해외에 취업시킬 계획이다.또 실직자들이 정부가 알선하는 3D업종에 취업하지 않으면 실업급여 지급을 유예하고 실업급여 지급 기간에 실직자들이 직업훈련을 받으면 한달에 10만∼15만원의 훈련수당을 별도 지급하기로 했다. 30대 그룹과 한국전력 등 공기업이 올 하반기 중 각각 5,000명씩 1만명의 인턴사원을 채용할 예정이다.. 李起浩 노동부 장관은 9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회견에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들에게 해외 취업의 기회를 주도록 이달 말 산업인력개발공단에 해외 취업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李장관은“미국에서만 한국 근로자 10만명의 취업을 요청했고 캐나다 1,000명을 포함해 유럽 각국에서도 상당수의 인력공급을 요청해 왔다”며 “대상 인력은 컴퓨터 정보화 등 지식산업 분야의 고급인력으로 연봉은 3만5,000달러 수준이며 어학능력이 우수할 경우 4만∼6만달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금융기관과 공기업 실직자들을 상대로 해외취업센터에서 3개월간 어학훈련을 무료로 시킨 뒤 11월부터 해외에 취업시키기로 했다.미국은 매년 2만명씩 보낼 예정이다. 李장관은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업급여를 줄 수 없다”며 “정부가 알선하는 3D 업종에 취업하지 않는 실직자에게는 실업급여를 주지 않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자기 부담으로 컴퓨터 등 고급 직업훈련을 받으려는 실직자에게는 기초훈련비 이외에 매달 10만∼15만원의 훈련수당을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30대 그룹과 한전 한국통신 도로공사 한국중공업 과기처 산하 연구기관 등 공기업에서 하반기중 총 1만명의 대졸 취업자를 인턴사원으로 뽑을 것이며 정부는 이들에게 1인당 월 20만∼30만원씩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 민주열사 열전:1­2/張俊河 선생(정직한 역사 되찾기)

    ◎유신체제 맞서 ‘불굴의 투쟁’/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 항일운동/해방후 ‘사상계’ 창간 반독재투쟁 선도/朴正熙정권 끝내 부정… 의문의 추락사 “오늘의 헌법(유신헌법)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이에 우리 국민은 우리들의 천부의 권리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인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다…” 1973년 12월23일 상오 10시 서울 YMCA회관 회의실.통일당 張俊河 최고위원이 준비된 성명서를 읽어내려가는 순간 수십명의 보도진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咸錫憲·白樂濬·金壽煥·白基玩·桂勳梯·兪鎭午씨 등 각계 지도급 인사 3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순간이었던 것이다.이 일로 張俊河 선생은 白基玩씨와 더불어 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됐다. 일제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으로 항일투쟁에 나섰던 張俊河 선생.그는 정부수립 이후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골짜기에서 불귀의 객이 될때까지 반독재 투쟁의 선두에 있었다.5·16쿠데타 때까지는 월간잡지 ‘사상계’를 무기로,그 이후에는 직접 몸을 던져 독재와 싸웠다.金俊燁 사회과학원 이사장(78)은 張俊河 선생을 ‘애국자·혁명가·인격자이며 권모술수와 배금주의를 배척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하고 그의 죽음을 서러워했다. ‘사상계’를 빼놓고는 그의 반독재투쟁사를 말하기 어렵다.그의 손아래 동서로 사상계에서 편집부장을 지낸 劉庚煥씨(61·전 문화일보 논설실장)는 “張俊河 선생은 자신이 발행하던 사상계에 신앙에 가까운 애착을 보였다”고 했다.사상계는 자유당 독재가 강화되자 오히려 반독재 정론지로써의 위력을 십분 발휘했다.59년 2월호에는 ‘무엇을 말하랴,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란 제목으로 언론사상 초유의 ‘백지 권두언’을 냈다.58년 12월 자유당 정권이 야당의원들을 끌어내고 국가보안법을 개악시켜 통과시킨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쿠데타 이후에도 張俊河 선생은 61년 7월호에 실린 咸錫憲 선생의 ‘5·16을 어떻게 볼까’란 제목의 글로 중앙정보부장 앞에 불려가 문책을 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빨리 민정이양할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또 각종 집회연설을 통해 朴正熙 대통령에게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밀수왕초’,‘매혈자’등으로 몰아부치고 국가원수모독죄 등으로 구속된다.이러한 투쟁은 69년 3선개헌 반대투쟁과 반유신 개헌 백만인 청원운동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의 반독재투쟁에 대해 白基玩 통일문제연구소장(65)은 “단순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분단체제로 몰아가려는 반통일세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석했다.劉庚煥씨는 “그는 철저한 민족주의자면서 반공주의자였다.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에 총부리를 들이댔던 朴正熙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또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쿠데타는 후세에 좋지 않다는 신념으로 朴정권에 강력하게 저항했다”고 회고했다. 張俊河 선생의 일생을 지배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그가 광복군 대위 시절 쓴 다음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내 영혼 저 노을처럼 번지리/겨레의 가슴마다 피빛으로/내 영혼 영원히 헤엄치리/조국의 역사 속에 피빛으로.◎張俊河와 朴正熙/광복군대위­일본군중위 출신부터 달라/남로당관련 등 박정희 약점 과감히 들춰 5·16 쿠데타 이후 張俊河 선생이 숨질 때까지 ‘張俊河는 朴正熙의 천적’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그만큼 앞뒤 안가리고 朴대통령에게 모멸감을 주는 극언을 서슴지 않고,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1966년 삼성계열의 한국비료가 대량의 사카린을 밀수한 사건이 발생하자 재벌밀수규탄대회에 초청된 그는 朴대통령에게 ‘밀수왕초’란 이름을 선물했고,3개월간 옥고를 겪는다.67년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그해 4월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朴대통령에게 ‘매혈자’란 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베트남전 참전을 두고 한 말이었다.이로 인해 국가원수모독죄로 3개월간 옥살이를 하게 되나 오히려 6월 총선에서 옥중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또 “朴正熙는 과거 남로당 조직책으로 조직원 동료를 팔아 목숨을 부지한 사람”,“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장교로 광복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인물” 등 朴대통령의 최대 약점들을 과감하게 들추어냈다. 張俊河 선생의 이런 행태에 대해 평전 ‘재야의 빛 장준하’를 썼던 朴敬洙씨(68)는 “張俊河 선생의 朴正熙관은 애초부터 멸시와 경멸이었던 것 같다. 상대가 일본군 중위일때 그는 우국충정의 광복군 대위였다는 자부심을 항상 갖고 있었고,朴正熙의 갖은 폭력을 겪으면서도 분노에 앞서 그 인격 자체를 대단치 않게 본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헌을 위한 백만인 청원운동으로 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됐던 張俊河 선생은 출감하자 75년 1월 朴대통령에게 ‘박정희씨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전격적으로 공표하고 민주헌정의 회복을 촉구한다. ◎유족들의 생활/결벽중에 가까운 청빈으로 가족들 큰 고통/문상객도 자기먹을 쌀 가져올 정도로 궁핍 “월급 봉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17살때 시집왔다는 張俊河 선생의 미망인 金熙淑 여사(71)의 말이다.사상계 사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張俊河 선생이 생을 마감했을 때 남은 것은 20만원짜리 월세방과 쌀 한 됫박뿐이었다고 전해진다.한 문상객이 미망인의 손을 붙들고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거냐”며울자 망연자실해 있던 金여사는 “언제 저 양반이 생활비 가져온 적 있나요”라고 남의 얘기 하듯 했다고 한다. 白基玩씨는 “문상올 사람들에게 자기 먹을 쌀을 가져오라고 연락을 했었다”며 “당시 부의금에 약간의 돈을 보태 전셋집을 구해주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이렇게 지나칠 만큼의 청빈에 대한 그의 결벽증은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일 수 밖에 없었다.사상계에 대한 탄압으로 항상 빚에 쪼들렸던 것도 이유가 됐다. 3남2녀중 장·차남인 호권·호성씨는 대학 문턱도 못 밟아봤으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세 아들중 호준씨는 아버지의 모교인 한신대를 나와 목사로 있다.딸들은 이대를 졸업했으며 미국과 제주도에 각각 살고 있다. ◎비극의 수수께끼/추락사한 유해 겨드랑이 피멍자국/17m 벼랑에서 떨어진 안경은 말짱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민족의 자주·평화·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張俊河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비록 말 못하는 돌부리·풀·나무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라.” 張俊河 선생이 숨져 누워있던약사봉 골짜기의 이 표석문의 ‘멋 훗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당시 검찰의 ‘추락사’발표는 실로 의혹투성이였다.그때 徐燉洋 의정부지청 당직검사는,張俊河 선생은 벼랑에서 떨어져 귀밑 부분이 함몰돼 뇌진탕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그는 등산 도중 일행과 떨어져 金龍煥씨(중학강사)와 같이 하산하는 도중 경사가 급해 소나무를 잡고 발을 딛는 순간 나무가 휘어지면서 미끄러져 떨어졌다는 것이다. 徐검사는 사고 다음날 새벽 1시경 현장에 도착,캄캄한 상태에서 현장조사를 마쳤다.그리고 그날 낮 金龍煥씨를 검찰로 불러 조사기록을 작성했을 뿐이었다.이때문에 당시 ‘재야대통령’이라고 불리던 張선생의 사인을 서둘러 추락사로 발표한 의혹을 샀다. “집에 도착한 고인의 유해를 보니 겨드랑이 밑 양쪽 팔에 피멍이 있었어요. 엉덩이와 팔 두군데 주사기로 찔린 듯한 자국도 있었고요. 벼랑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사체가 너무 깨끗했습니다.순간 양쪽 팔을 붙들린 채 끌려갔다고 직감했지요” 서울 상봉동 셋집에서 장례 대소사를 떠맡았던 劉庚煥씨의 증언이다.또 金龍煥씨가 말한 하산코스가 등산장비 없이는 도저히 내려오기 어려운 벼랑이어서 정신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 코스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張俊河 선생이 갖고 있던 커피보온병과 끼고 있던 안경이 17m 높이의 벼랑에서 돌밭으로 떨어져 말짱했다는 불가사의한 의혹 등도 나왔다. 劉庚煥씨는 또“소나무가 휘어진 자국이라며 金龍煥이 말한 부분에 동그랗게 껍질이 벗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칼로 벗겨낸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張俊河 선생 연보 ▲1918 평북 의주에서 아버지 張錫仁 목사와 어머니 金京文 여사의 4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남 ▲1932년 평양 숭실중 입학 ▲1940년 일본신학교 입학 ▲1944년 1월 金熙淑 여사와 결혼,20일 후 학도병으로 입대 ▲1944년 7월 일본군 탈출,중국군 가담 ▲1945년 1월 중국 중경의 광복군에 편입 ▲1945년 11월 金九 선생과 함께 입국,비서로 활동 ▲1948년 한신대 졸업 ▲1953년 월간 ‘사상계’ 발행 ▲1962년 막사이사이 언론문학부문 상 수상 ▲1971년 일본군 탈출과 광복군 시절을 담은 저서 ‘돌베개’ 출간 ▲1972년 7·4 공동성명 지지 ▲1973년 민주통일당 최고위원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수많은 의혹을 남긴채 숨짐
  • 고액 퇴직금 실직자 구직 급여 석달 유예/閣議 17개 안건 의결

    정부는 4일 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어‘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안’을 비롯,17개 안건을 의결했다. 자산유동화법은 금융기관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금융기관과 성업공사 등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토지 등의 자산을 근거로 주택저당채권을 포함한 각종 유동화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자산유동화 업무는 유동화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외 법인 및 신탁회사 등이 취급할 수 있으며 금융감독위원회에 등록해야 한다. 국무회의는 또‘증권투자신탁업법’을 개정,투자신탁회사가 신탁 재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의결권행사 제한과 투자신탁회사 주주의 주식소유한도를 폐지해 투신사 등의 기관투자가들이 기업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국무회의는 고용보험법도 고쳐 고용보험 적용 사업장을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1개월 이상 고용된 근로자도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퇴직금 등으로 고액을 받은 사람에게는 직업안정기관에 실업을 신고한 날부터 3개월간 구직급여의 지급을 유예토록 했다.
  • 잘못된 실업대책 바로 잡는다/국민회의 백서발표에 담긴뜻

    ◎상황변화 신속대응 겨냥한 중장기 포석/사회안전망 재구축… 혜택은 고루 분배 국민회의가 31일 발표한 실업대책은 ‘사회안전망 구축’과 ‘성장 잠재력 확충’을 겨냥한 중·장기 포석이다.정부가 지난 3월26일 종합 실업대책을 발표한 이후 변화된 상황에 맞춰 신속하게 사회 통합적인 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3개월간 7개 국책연구기관과 함께 중·장기적인 경제 전망에 따라 사회통합적 실업대책과 사회안전망 개혁방향을 1차적으로 정립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사회안전망 확대 재구축 1차로 올 10월부터 전 사업장에 상용직,임시·시간제 근로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내년부터는 일용근로자에게 확대시킨다.실업자의 55%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셈이다. 2차로 생활보호법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으로 개정,기초생활보장을 국민의 청구권적 기본권으로 강화시킬 방침이다.생활보호대상자 중 47.5%(14만8,000가구)인 근로 무(無)능력자에 대해서도 최우선적으로 생계비를 지원한다. 3차 구제책으로 긴급 보호제도를 도입한다.저소득 실업가구의 10%인 24만6,000명에 대해 식품권과 의료권 명목으로 내년부터 각각 3만원과 1만원씩 매달 1년간 지급한다.상환능력 위주로 운영되는 융자·대부사업을 공공근로 및 취업 등과 연계해 대부하도록 할 방침이다. □고용창출·고용안정 정책 소기업과 자영업을 통한 고용창출에 치중한다.즉 대기업­중소기업의 2원구도에서 대기업­중견기업­소기업­자영업으로 이어지는 ‘4원 경제구도’로 전환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창업지원단 통합구성 ▲벤처사업 활성화 ▲창업보육센터의 운영개선 ▲창업정보 제공 강화 등의 중·장기 계획을 마련했다.여성근로자 가운데 77.9%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실업 관련 서비스 전달체계 개선 노동·보건·복지·환경부 등의 대민(對民)서비스 업무를 ‘원스톱 체계’로 바꾸고 읍·면·동사무소를 종합사회센터로 재편한다.사회보험료 부과 소득기준을 일원화해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사회보장심의위’ 산하에 ‘사회보험 통합관리추진위’를 설치,4대 보험의 통합을 추진한다. □실업재원 확보방안 실업과 구조조정 소요 재원으로 13조7,000억원을 마련할 방침이다.유류세 인상 등 세금부문에서 5조7,000억원을,국공채 발행과 공기업 매각 등으로 8조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담배세(8,000억원) ▲석유류세(3조7,000억원)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인 용역(서비스)에 부가가치세 과세(2,000억원) ▲국·공채 발행(2조6,000억원) ▲해외차관도입(2조원) ▲공기업 매각(2조4,000억원) ▲예산지출 조정(1조원) 등이다. 누진세를 강화한다.종합소득세제를 개편하고 유보중인 4,000만원 이상의 금융소득자에 대한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내년부터 부활시키는 방안을 적극 추진한다.
  • 강원산업 4社 워크아웃대상/조흥銀 구조조정 협약 적용

    강원산업의 4개 계열사가 기업구조조정 협약이 적용되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대상으로 확정됐다.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은 28일 하오 채권금융기관회의를 열어 강원산업 삼표상사 삼표산업 삼표강원중공업 등 4개사에 대해 오는 10월17일까지 구조조정 협약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들 4개사는 앞으로 3개월간 교환에 회부되는 융통어음을 결제하지 않더라도 부도를 유예받게 된다. 이로써 6∼64대 계열그룹 중 구조조정협약의 적용이 확정된 그룹은 강원산업을 포함해 거평 세풍 고합 진도 우방 갑을 신호 신원그룹 등 9개로 늘어났고 통일그룹은 29일 하오 열리는 채권금융기관회의에서 적용여부가 결정된다.
  • 국무회의/JP “金 대통령 휴가중 국정운영 빈틈없게”

    28일 열린 31차 국무회의는 휴가중인 金大中 대통령 대신 金鍾泌 국무총리서 리가 주재했다. 회의에는 휴가중인 朴泰榮 산업자원부장관과 마닐라 출장중인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내부 행사에 참석한 高建 서울시장을 제외한 전 국무위원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외국환거래법안 등 11개 법안이 상정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외한 10개 법안이 처리됐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관계부처간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다음주에 다시 부의하기로 했다. 나머지 법안은 특별한 토의없이 모두 의결됐다. ○…토론이 이뤄진 안건은 노동부가 즉석 안건으로 제출한 고용보험법 개정안. ▲임시직과 시간제 근무자 등 1개월 단위로 계약한 단기 근무자도 고용보험 대상에 포함시키고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가입 기간도 현재 6개월에서 일부 사업장은 3개월로 단축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 陳稔 기획예산위원장은 “단기 고용기간을 1개월까지 줄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李海瓚 교육부장관도 “1개월을 고용으로 보면 실업의 범위가 모호해지고 악용사례가 발생할수 있다”면서 “현재 3조원의 고용보험기금도 모자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鄭海瓚 국무조정실장은 “1개월을 고용으로 인정해도 계약을 연장해 근무하면서 6개월 이상 보험금을 내면 되므로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시 朴相千 법무부장관이 “6개월간 보험금을 낸 사람과 3개월간 보험금을 낸 사람이 모두 보험금을 타면 법 체계상 형평의 문제가 있다”고 나섰다. 이에따라 이 법안은 다음주 국무회의에서 다시 상정키로 했다. ○…金총리서리는 회의 말미에 “金대통령이 휴가로 안계신 동안 국정운영에 공백이나 차질이 없도록 장·차관들이 철저하게 근무해달라”고 당부했다. 金총리서리는 또 “국회가 정상화돼 대정부 질문이 시작되면 정부의 시정을 심도있게 홍보할 수 있도록 유념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처리 안건은 다음과 같다. □법률안 ▲예금자보호법개정안 ▲외국환거래법안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 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 ▲소방공무원법 개정안 ▲행정사법중개정안 □대통령령안 ▲조세감면규제법 시행령 개정안 ▲관세법 시행령 개정안 ▲해외이주법 시행령 개정안 □일반안건 ▲공공차관 도입 계획안 ▲98년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정책기획위원회 연구개발사업 관련 경비)
  • 전사원 스톡옵션제 추진/동아건설

    동아건설이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전사원을 대상으로 스톡옵션제(주식매입 선택권제)를 추진하고 있다. 동아건설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사원의 동기부여를 위해 상여금의 일정액을 스톡옵션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노동조합과 협의중이라고 27일 밝혔다. 동아건설 관계자는 “스톡옵션에 의한 주식가격은 특별 주주총회의 결의에 따라 확정되기 전 3개월간의 평균 종가로 계산하며 3년 뒤 주식시장의 상황에 따라 보유자들이 주식매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SOC 투자에 ‘달러 끌어들이기’/민자유치 대책 뭘 담았나

    ◎앞으로 5년간 재원 30조∼50조 부족예상/국내외 금융기관 참여 인프라기금 설립/사업계획서 제출∼착공 6개월 이상 단축 정부가 마련한 민자유치 종합대책은 한마디로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에 외국자본을 대거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5년간 SOC에 대한 소요재원 중 부족분 30조∼50조원의 비용을 국내외 민간업체에게 맡기는 게 불가피한 실정이다. 95년부터 정부가 추진해온 45개 민자유치 대상사업(37조8,000억원 규모)은 현재 10건만 사업자가 지정되고 그나마 5건만 착공될 정도로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정부가 민자유치에 발벗고 나선데는 공공부문의 SOC 건설 및 운영에 관한 비효율성을 감안,다양하고 질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뜻도 담겨 있다. 국가경쟁력의 척도인 SOC투자를 더이상 미룰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교통분야 SOC 경쟁력은 94년 기준 OECD 48개 국가 가운데 30위,올해는 46개국 가운데 37위로 나타났다. 물류비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5%로 미국 일본의 1.5∼2배나 높다. 종합대책 내용을 간추린다. ■제도의 국제화,투명화=대상사업 선정시 타당성 분석을 위해 공신력 있는 국제기관에 경제·재무적 분석을 의무화 한다. 민간이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경우 제출사실을 3개월간 공고하고 제안자에게 5%의 가산점을 준다. 현재 31종인 민자유치 대상시설 모두에 민간투자를 허용한다. 관리방식도 기존 SOC시설의 관리운영권과 신규사업을 묶거나 둘 이상의 사업을 묶어 고시하는 방식(Wrap Addition)을 허용한다. 민간 전담기구를 설립해 대상사업의 타당성 분석,사업계획서 평가,인허가 처리,홍보 등 민자사업의 원스톱서비스 기능을 맡긴다.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관계부처간에 사업계획서 제출에서 사업자 지정까지 6개월내에 협의가 안끝나면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는 ‘협의제척기간’을 둔다. 사업계획서 제출에서 착공까지 현행 2년이상 걸리는 것을 18개월로 단축한다. ■투자 수익보장과 위험분담=현재 투자수익률은 연 10%,리스크 프리미엄 0.5∼0.6%이나 앞으로는 투자수익률을 실세금리 수준인 연 13∼14%까지 보장하고 점차 18%로 높인다. 운영수입은80%를 보장하고 있으나 요건과 방법 규정이 모호해 보이지 않는 ‘코리언 리스크’가 상존한다. 앞으론 재정지원의 내용과 방법을 사업공고시 명시한다. IMF이후 환리스크로 외국인이 투자를 기피함에 따라 환율변동폭이 10%이내이면 사업자가 부담하고 10∼20% 사이면 사용료를 인상해 준다. 현재 사후정산하던 공사비도 사전확정 한다. ■금융여건 개선=현재 민자참여시에는 자본금 100%를 선투자하도록 돼있다. 이중 75%는 차입금이며 투자금 회수에는 15∼20년이 걸린다. 그만큼 민간의 자본부담이 크다. 앞으로 자본금 선투자를 폐지한다. 현재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올 때 대출금의 위험가중치는 신용대출과 마찬가지로 100%에 달한다. 이를 주택담보 대출금의 위험가중치인 50%나 20%로 낮출 방침이다. 부채비율적용시 민자사업 계열사는 계열기업군에서 제외하거나 10년간 부채비율 산정을 유보한다.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참여하는 15억달러 수준의 인프라기금을 설립한다.
  • 미성년 고용 유흥업소 즉시 폐쇄

    ◎영업자 명의 바뀌어도 행정처분 승계/검찰 독자 단속반 편성… 불법영업 근절 앞으로 미성년자를 고용해 불법영업을 하다 적발되는 유흥업소는 즉시 폐쇄된다. 적발된 업소는 영업자 명의가 바뀌더라도 행정처분이 승계된다. 대검찰청 강력부(任彙潤 검사장)는 17일 단란주점 등에서 미성년자를 고용해 불법영업을 하다 적발된 업소에 대해 단속과 동시에 해당 행정관서에 통보,3개월간 폐쇄 조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같은 방침은 미성년자를 고용했다가 적발된 유흥업소의 업주들이 행정처분이 내려지기 전에 영업자 명의를 바꿔 처분을 피하는 등 법 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또 폐쇄 조치를 받고도 처분장이나 봉인을 떼어내고 영업을 계속하는 업주에게는 공무상 표시무효죄를 적용,구속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불법영업 업소에 대한 단속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단속에 실효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독자적으로 단속반을 구성해 단속에 나서는 한편 업주와 경찰,구청 등 유관기관과의 유착관계에 대한 정보수집을 강화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미성년자에게 윤락행위를 시킨 업소에 대한 폐쇄조치는 있었으나 이를 일반유흥업소로 확대하기는 처음”이라면서 “행정처분에 시간이 걸리는 점을 악용,불법영업을 계속해 온 악덕업자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지검은 이에 앞서 지난 15일 미성년자를 고용,나체춤을 추게 했다가 적발된 서울 한남동 G단란주점 등 3개 업소의 단속 결과를 관할 구청에 통보, 이 날자로 폐쇄 조치했다.
  • 전경련 大卒者들 3개월 연수 프로 마련

    ◎실무 미리 익혀 미래 준비/기업 채용때 별도 연수없이 현업에 투입 고실업 시대,기업실무로 미래를 준비하자. 전경련이 직장을 갖지 못한 대학졸업자들을 위해 ‘취업대비 기업실무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다.기업에 채용됐을 때 별도 연수없이 바로 현업에 투입될 수 있게 기업실무에서부터 직장예절,비지니스 영어에 이르기까지 교과과정이 짜임새있게 짜여졌다.실물경제 전문가와 대기업의 사내강사,무역협회 대우경제연구소 등 연구원이 기업실무 강사로,외국인 교수 2명이 비지니스 영어강사로 참여한다. 오는 9월 2일부터 11월 20일까지 3개월간 운영되며 교육 외에 산업시찰,합숙 등 친목 프로그램,기업체 인사담당자와의 만남의 시간도 갖는다.수강료는 1인당 80만원. 전경련 국제경영원 관계자는 “교재비와 강사료,산업시찰 등의 비용을 감안하면 저렴한 편”이라며 “수료생 전원에게는 리쿠르트 구직회원 자동가입 등 특전이 부여된다”고 말했다.교육안내 및 문의전화는 3771­0392
  • 국회 50돌 진기록들

    ◎박준규 고문 9선으로 현역 최다선/이효상씨 7년3개월간 의장역임/이범이 위원 62년부터 국회서 근무/이광규씨 신상우 의원 보좌 17년/성천영씨 63년부터 속기사 외길/김순천씨 31년간 의사당 방호 영욕의 ‘헌정 50년사’는 각종 기록들을 배출했다. 최다선 의장·의원부터 최장수 속기사까지 다양한 ‘국회인생’과 진기록들이 50년 역사와 함께 숨쉬고 있다. 현역 최다선 의원은 자민련 朴浚圭 고문(73). 4·19 직후인 5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 정치계에 입문,무려 9선을 달리고 있다. 93년 YS정권에서 강제로 의장직(14대)을 사퇴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자민련 金鍾泌 총재와 손잡고 15대 총선에서 복귀했다. 최장수 국회의장은 6·7대 7년3개월간 국회 의사봉을 잡았던 李孝詳 전 의원(공화당·작고). 자유당 정권의 2인자였던 李起鵬 전 부통령(작고)이 5년 10개월(3∼4대)로 2위를 기록했다. 현역 국회 직원으로 최장수 근무자는 李範伊 전문위원(60·1급상당). 5·16 다음해인 62년 최고회의 총무처 9급 직원으로 출발,농수산 위원회 법제관을 거쳐 여성특별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최장수 속기사는 成千永씨(56).63년 의사국 속기사로 국회와 인연을 맺은 이후 외길을 달려왔다. 대한 속기협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국회 ‘방위’를 책임진 방호원(防護員) 가운데 최장수 직원은 金淳天씨(58). 67년 7대 국회 때 화부로 국회에 발을 디딘 후 난방수와 수위를 거쳐 현재 국회 외각 경호팀을 이끌고 있다. 반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보좌진 가운데 최장수는 한나라당 辛相佑 의원 보좌관인 李光奎씨(56세). 지난 81년부터 17년간 한결같이 ‘주군’과 운명을 같이했다. 최장 임기의 국회는 유신으로 6년의 수명(?)을 누린 9대 국회(73년 3월∼79년 3월). 반면 최단 국회는 4·19 직후에 출범한 5대다. 5·16쿠데타로 9개월 18일간의 수명에 그쳤다.
  • 5개 퇴출銀 직원 재고용/최장 3개월 계약하기로

    정부는 인수은행으로 하여금 5개 퇴출은행의 직원들을 임시직 형태로 최장 3개월간 재고용하도록 했다.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기간은 ‘무노농 무임금’ 원칙을 적용,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9월29일까지 복귀하지 않는 직원들은 전원 재고용하지 않기로 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13일 은행감독원 관계자와 5개 인수은행 인사담당 전무가 참석한 가운데 ‘금융 구조조정 애로대책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퇴출은행 근로자 대책을 마련했다. 금감위는 지난 7일 이전에 복귀한 직원들은 6월29일로 소급해 9월29일까지 3개월간 재계약을 맺되 7일 이후 복귀한 직원들은 복귀일부터 9월20일까지 재계약을 맺도록 했다. 따라서 9월29일 이전에 복귀하는 퇴출은행 직원들은 일단 재고용이 보장되며 근무 일수만큼 임금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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