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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 / “제주 4·3사건 인명피해 3만명”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4·3 진상조사 보고서’는 이 사건을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규정했다.보고서는 사건으로 2만 5000∼3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됐기 때문에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추모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집단 인명피해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고,미 군정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관심을 모았다.다음은 보고서 내용 요약.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촉발 4·3사건은 광복 이후 급격한 인구 증가와 실직,생필품 부족,콜레라 발생,흉년 등의 악재 속에 47년 3·1절 발포사건이 도화선이었다.3·1절 발포 사건은 경찰이 시위군중에게 발포해 6명 사망,8명 중상의 피해를 입혔고,희생자 대부분이 구경하던 일반 주민이었다. 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 반경(反警) 활동과 ‘3·10총파업’을 벌였다.총파업은 관공서·민간기업 등 제주도내 전 직장 95% 이상이 참여한 한국 최초의 민·관 합동 총파업이었다.4·3사건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구금됐고,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결국 1948년 4월3일 오전 2시 350명의 무장대가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됐다. ●인명피해 2만 5000∼3만명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수는 1만 4028명이지만 미신고·미확인 희생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돼 정확한 규모파악은 어렵다.위원회는 당시의 인구 변동 통계 등을 감안,인명피해를 2만 5000명∼3만명으로 추정했다. 위원회는 “1950년 4월 김용하 제주지사가 밝힌 피해자 2만 7719명 등을 감안한 숫자지만 향후 더욱 정밀한 검증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 사건으로 전사한 군인은 180명,경찰은 140명 안팎으로 추정됐다. ●대량 희생의 최종 책임은 ‘이승만’ 48년 10월부터 49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전체 희생자의 80%가량의 희생자가 나왔다.이 기간에 작전을 지휘한 9연대장과 2연대장에게 1차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1949년 1월 국무회의에서 “미국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사건 등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해야 미국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라며 “지방 토색 및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해 법의 존엄성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강경작전을 지시했다. ●미 군정 개입도 밝혀져 사건은 미 군정 아래에서 시작됐으며,미군 대령이 제주지구 사령관 자격으로 직접 진압작전을 지휘했다.미군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한·미간의 군사협정에 의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계속 보유했고,제주 진압작전에 무기와 정찰기 등을 지원했다. 중산간마을을 초토화한 9연대의 작전을 ‘성공한 작전’으로 높이 평가했다.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이 송요찬 연대장의 활동상을 널리 알리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한 기록도 있다. ●미완의 진상규명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전체 모습이 드러났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위원회의 평가다.경찰 등 주요기관의 관련문서 폐기와 군 지휘관의 증언거부,미국 비밀문서 입수 실패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게 위원회의 지적이다.보고서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그 유족을 위로하고 적절한 명예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대한포럼] 4·19날 ‘진달래’를 부르자

    한태근(75)은 4월의 작곡가다.봄이면 산과 들을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진달래’의 곡을 쓴 이다.“눈이 부시네 저기/난만히 멧등마다/그날 스러져간/젊음 같은 꽃사태가/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1절) 이 노래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대학생 등 운동권을 중심으로 불려온,아침이슬 등과 더불어 이른바 ‘운동권 가요’의 고전으로 꼽힌다.유신의 칼날이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던 당시 대학가와 공장,교회 등지에서 젊은이들은 몰래몰래 이 노래를 부르며 1960년 4월19일 스러진 젊은 넋을 기리고,민주와 자유를 갈망했다. ‘진달래’란 원곡명보다 ‘4·19의 노래’로 더 잘 알려진 이 곡의 작사자는 유명한 여류문인인 고 이영도 시인.청마 유치환과 주고 받은 편지를 묶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펴낸 이다.이씨는 1968년 펴낸 시조집 ‘석류’에 ‘다시 4·19날에’라는 부제와 함께 이 시조를 담았다.한씨는 1973년 강원룡 목사가 이끌던 크리스천아카데미의 문인모임 ‘시곡동우회’에서 이 노랫말을 건네받아 곡을 썼다.한씨는누나의 친구인 이씨의 시조를 보는 순간 4·19혁명 당시 음악교사로 있던 균명고(현재 환일고)의 제자들이 독재타도를 외치며 학교 밖으로 내닫던 광경이 또렷이 떠오르는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그렇듯 너희는 지고/욕처럼 남은 목숨/지친 가슴위엔/하늘이 무거운데/연련히 꿈도 설워라/물이 드는 이 산하”(2절) 한태근은 이렇듯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는 알지만,지은이는 잘 모르는 작곡가다.가령 그는 누구나 아는 동요 ‘꼬부랑 할머니’의 노랫말과 곡을 지은 이다.한씨의 대학 때 전공은 신학.하지만 한씨는 연세대에 진학하기 전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에게 음악을 배웠다.경남 밀양의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한씨는 광복이 되자 아버지와 함께 중국 옌볜에서 돌아와 밀양농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부산진초등학교 교사가 됐다.당시 예능교사가 태부족하던 부산교육위원회는 ‘중등음악교원양성소’를 개설했는데 한씨는 여기서 윤이상을 만나 “어설픈 서양 흉내 집어던지고 한국적인 리듬으로 작곡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교 음악교사,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장,음악목사 등을 지낸 한씨는 찬송가를 비롯해 동요·가곡 등 200여곡을 작곡했다.1989년에는 연세대의 요청으로 윤동주의 ‘서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꼬부랑 할머니나 진달래나 모두 밑으로부터 번져 나갔습니다.교과서에 실린 일도 없고,단 한 차례 방송을 탄 일도 없지만,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노랫말과 리듬을 전하며,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얼마전 만난 한옹은 군사독재 시절 수유리 4·19묘역에서 오전의 공식행사와 별도로 오후 재야인사와 대학생 등이 주축이 돼 열리던 비공식 행사에서 ‘묵념’구령에 이어 “눈이 부시네 저기…”하는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군중들이 고개를 숙인 채 부르던 합창에서 받은 진한 감동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재와 불의에 항거했던 4·19 정신이 갈수록 퇴색해 이제는 기념관의 ‘박제품’이 돼 버린 지 오래다.군사독재 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와 자유의 시대가 열렸지만 오히려 4·19혁명 주체들은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나 있고,그들을 추모한 노래는 잊혀져 가고 있다.지난해3·1절 공식 기념식에서 운동권 가요인 상록수가 ‘삼일절의 노래’ 뒤에 가수 양희은에 의해 불렸다.또 ‘터’와 ‘꿈을 먹는 젊은이’가 지난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식전행사에서 불렸다.오는 19일 4·19혁명 43주년 기념식은 ‘진달래’가 당당하게 울려 퍼지며 자유와 민주,정의의 4·19정신이 박제에서 해방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 인 철 논설위원 ickim@
  • 노사모 지고 ‘국민의 힘’ 뜨나

    문성근·명계남이라는 두 명망가의 노사모 ‘동반 탈퇴’를 계기로 안팎의 시선은 두 사람이 창립을 추진 중인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국민의 힘)이란 조직으로 집중되고 있다. ‘국민의 힘’은 노사모 핵심 인물들이 본격적인 정치개혁과 언론개혁 운동을 표방하는 온라인 시민운동 단체로 오는 19일 창립한다.두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의 이름을 단 조직의 틀을 유지한 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개혁운동을 펼치기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노사모 해체를 주장해 왔다. 2000명이 넘는 회원의 상당수는 과거 노사모에 적을 두었거나 현재 노사모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명씨는 지난 2월 말 ‘국민의 힘’ 창립추진 기자간담회에서 “노사모가 ‘각성한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임에 비해 ‘국민의 힘’은 언론·정치개혁을 위한 전사들의 모임”이라고 밝혔다. 실제 회원들은 지난 3·1절에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조선일보 윤전기를 전시물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때문에 일부 노사모 회원은 두 사람의 탈퇴를 ‘국민의 힘’ 출범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고 있다.일부는 “국민의 힘이 노사모를 분열·약화시키고 있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명씨는 이날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늘근도둑이야기’에 출연하기 직전 기자와 만나 “오늘 문씨를 만나 거취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면서 “국민의 힘 회원으로 시민운동을 열심히 하고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 활동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명씨는 “노사모 탈퇴에 따른 파장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렇게 큰 논란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면서 “노사모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며,한 회원의 탈퇴를 두고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문씨는 이날 인터뷰를 요청하자 “3일 종로의 개봉관에서 열리는 영화시사회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겠다.”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기자에게 보내왔다.노사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두 사람의 탈퇴선언으로 촉발된 논쟁이 이틀째 계속됐다.두 사람과 뜻을 같이해 노사모를탈퇴하는 회원도 잇따랐다. 여의도 노사모 사무실에는 이날 하루만 노사모의 진로를 묻는 전화가 1000여통이나 걸려왔다. 노사모측은 두 사람의 탈퇴 파문과 관련,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구혜영 이세영기자 koohy@
  • 4·3사건, 55년만에 성격 규정“남로당 봉기 진압과정 제주주민 무고한 희생”

    ‘제주 4·3사건은 무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주 주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라는 4·3사건에 대한 정부차원의 성격 규정이 사건발생 55년 만에 이뤄졌다. 정부는 29일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채택했다.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제주 4·3사건은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연계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있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하게 주민들이 희생되었다.”고 규정했다.하지만 김점곤 경희대 교수는 위원직 사퇴의사를 밝힌 뒤 회의에 불참했다.또 한광덕 전 국방대학원장과 이황우 동국대 교수는 “군경의 과잉진압이 너무 부각되고 있다.”며 서명을 거부,이번 보고서는 만장일치의 합의를 이끄는 데 실패했다.이에 위원회는 6개월 뒤인 9월28일까지 신빙성 있는 자료·증언이 추가로 나올 경우 심의를 거쳐 보고서를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은 총 577쪽에 이르는 보고서의 요지이다. ●제주 4·3사건의 성격 미군정 아래 발생한4·3사건은 한국현대사에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47년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제주사회에 긴장상황이 조성되고,남로당 제주도당이 이런 긴장상황을 5·10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무장봉기의 시발이다.48년 11월부터 9연대에 의해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강경진압작전은 가장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했다.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대표적인 주민집단 총살사건인 ‘북촌사건’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 마을 주민 400명가량이 2연대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했다. ●피해자의 규모 신고된 희생자 수는 1만 4028명이다.그러나 이 숫자를 4·3사건 전체 희생자 수로 판단할 수 없다.여러 자료 등을 감안해 잠정적으로 인명피해를 2만 5000∼3만명으로 추정했다.연좌제에 의한 피해도 극심했다. ●대정부 건의 위원회 산하 4·3진상보고서 기획단은 별도로 ▲제주도민,4·3피해자들에게 사과 ▲4·3추모 기념일 제정 ▲추모공원조성 ▲유가족들에게 실질적인 생계비지원 등 7개항의 ‘대정부 건의안’을 작성,제출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열린세상] 우리 사회의 좌 우

    한해에 한번,이맘때면 신문에 반드시 소개되는 ‘눈요기 기사’하나가 있다.아슬아슬하게 벗어붙인 무희들의 뇌쇄적 몸짓을 담은 전송 사진들이다.이 사진은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그 유명한 ‘삼바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북반구에서 발행되는 신문들로서는 어쩌면 이 뉴스가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이다. 축제는,그리스도교 신자인 국민들이 고행과 극기의 계절인 사순(四旬)시기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 놓고 한판 크게 즐기는 그리스도교 나라들만의 전통적인 풍습이다.올해는 사순시기 시작이 3월9일이다. 올 삼바 축제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만성적인 정치-경제 불안에 시달려온 브라질 국민들에게 좀더 특별하게 다가왔을 듯싶다.브라질 헌정사상 최초로 ‘좌파’ 대통령이 등장해서 국민들,특히 가난에 허덕이는 계층을 상대로 희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빈민 출신으로 노동운동가였던 전형적인 비주류 정치인의 이름이다.올 1월1일 거행된 취임식에서 그는 1000만 개의 일자리와 함께 “내가 임기를끝낼 때 모든 브라질 국민이 세끼 밥을 제대로 먹게 하겠다.”는 인상적인 공약을 했다. 삼바 축제의 야한 사진을 관례대로 지면에 담아낸 우리 신문들은,같은 날 지면에 서울에서 벌어진 ‘찢어진 3·1절’ 사진도 보도했다. 삼바 춤과 서울의 3·1절은 상관관계가 없다.같은 날 신문에 보도되었다는 우연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이런 관점 한 가지는 가능하다.좌파인 룰라 대통령이 집권한 브라질,그곳에서 벌어진 삼바 축제의 사진에선 좌도 우도,그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다.그저 선정적이다.반면 비주류 출신이라는 점에서 룰라와 닮은꼴이지만 좌파로부터는 ‘우파’로,우파로부터는 ‘좌파’로 비판받기도 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한 서울,그곳에서 벌어진 3·1절 행사에는 좌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각각의 외침은 각박하고 첨예하다.다시 찢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프다. 84주년 3·1절인 1일 서울에서는 4개의 서로 다른 집회가 열렸다.우선 시청 앞의 ‘반핵 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와 여의도 공원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금식기도회’.합해서 10만 군중을 모았다는 이 두 집회는 우리 사회 보수우파 세력의 결집이라는 점이 주목거리다. 광화문에서는 ‘3·1 민족자주 반전평화 실현 촛불대행진’이,워커힐 호텔에서는 ‘남북종교인 3·1 민족대회’가 각각 개최됐다. 동시 모임만으로는 이념적으로 양극을 드러낸 모양이 됐다.지역으로 찢고 세대로 나누고 계층으로 쪼개던 사회가 드디어 이념의 분열상마저 보이기 시작했다는 우려와 탄식이 나올 법하다.동시집회는 해방공간의 치열했던 좌우 대결 이래의 사변인 듯이 보이고,반공궐기는 70년대의 그것들을 돌이키게 한다.역사의 퇴영(退)이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좌표를 묻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좌냐,우냐,색깔이 뭐냐.마치 사회 전체의 이념축이 한 쪽으로 크게 기운 듯이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군중대회를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진행하고 애국가와 미국국가를 차례로 부르며 ‘반미반대’로 구국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는,낡은 책갈피 속에서 보았음직한 장면들도 그런 현상의 하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좌파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잠재해 있던 다양한 생각들이 마구 표출되는 ‘이념의 커밍 아웃’ 사태를 맞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진단은 옳다.이념,또는 왼쪽 콤플렉스는 근거 없다.‘좌’인 것이 문제가 아니다. 북한과 화해협력을 추구하고 동시에 미국과 대등한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적 당위,우리의 소명이다.지혜가 필요하다. 정 달 영 assisi61@hanmail.net
  • [화제의 사이트] 독립신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을 두고 ‘극우’라고 부른다면 우린 ‘극우의 똘마니’란 비난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인터넷 ‘독립신문’(www.independent.co.kr)은 사이버 세계의 ‘섬’같은 공간이다. 지난해 7월 창간 이후 ‘오마이뉴스’,‘프레시안’ 등 진보 성향의 매체들이 주도하는 인터넷 언론의 주류 질서에 대항해 ‘보수적 애국주의’라는 메시지를 ‘고독하게’ 전파해왔다.창간 당시 수백명에 불과하던 방문자 수는 지난해 대선과 최근 북핵위기를 거치며 7만∼8만명으로 급증했다. ‘독립신문’의 이념은 기사선택과 편집에서 잘 드러난다.5일자 신문은 ‘외신이 본 김대중의 5가지 실패’란 제목으로 김 전 대통령을 비판한 인도 신문의 기사전문을 번역해 실었다. 또 ‘이제는 청년들이 나설 때’란 기사를 통해 보수단체가 주도한 3·1절 집회 뒷얘기를 상세히 소개했다. 대표 신혜식(사진·35)씨는 “급진적인 주장이 판을 치는 인터넷 공간에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 애국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고 밝혔다. 웹디자이너 출신인 신씨는 지난 99년부터 최근까지 ‘안티DJ’ 사이트를 운영했고 ‘민주참여네티즌연대’란 단체를 만들어 주한미군 지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인근 한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쓰고 있는 ‘독립신문’에는 신씨를 포함,5명의 기자가 활동하고 있다.운영비는 대부분 신씨의 홈페이지 디자인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다. 신씨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은 다양성”이라면서 “비난과 경제적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상식과 합리성에 입각한 보수의 목소리를 담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씨줄날줄] 아첨배

    한 전직 검찰총장은 재임 시절 사석에서 자신에게 ‘형님’이라고 호칭했던 후배들은 한결같이 각종 구설수가 끊이질 않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그러면서 당시 좀더 단호하지 못했던 자신을 뒤늦게 책망했다. 6공화국 정권인수위원이었던 L씨는 유일하게 중용되지 못하고 차관에서 도중하차했다.L씨는 훗날 자신의 탈락 배경을 확인한 결과,‘괘씸죄’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그는 인수위원 시절처럼 서슴없이 대통령을 대했다가 ‘이상한 친구’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다.그는 권력의 속성을 너무도 몰랐다고 때늦은 후회를 쏟아냈다. 외환위기 이전에 시중은행장이었던 L씨.그가 전한 당시 임원 회의의 분위기다.L씨가 “요즘 K기업이 문제…”라고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원들은 일제히 “정말 K기업이 문제입니다.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합창했다.이에 L씨가 “문제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닌 모양이야….”라고 하자 임원들은 다시 “맞습니다.K기업은 정말 억울한 것 같아요.”라며 잽싸게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그는 “내가애국가 1절을 채 부르기도 전에 임원들이 4절까지 불러버렸거든.”이라며 씁쓰레해 했다. 한때 ‘황태자’로 군림했던 P씨는 정보기관에서 ‘생산’한 보고서의 내용을 철석같이 믿었다.하지만 훗날 P씨에게 전달된 보고서는 그의 구미에 맞게 재가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우리의 지난날은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면서 “참여정부에서는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더이상 설 땅이 없고 성실하게 일하며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선언했다.이어 정권을 위해 봉사해온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문했다.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이 있자 ‘권력기관’으로 분류됐던 ‘빅4’ 또는 ‘빅 5’ 조직원들은 앞다퉈 손사래치면서 상대편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간행된 편역서 ‘간신론’은 ‘간신의 목에는 베어링이 박혀있고,허리에는 스프링이,등에는 풍향계가 꽂혀있다.’고 기술했다.또 간신 퇴치법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노 대통령이 5년 동안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득정논설위원 djwootk@
  • [사설] 권력기관 거듭나는 시발점 돼야

    어제 발표된 차관급 인사에서도 개혁적 색채는 두드러졌다.연공서열이나 나이 등 기존의 잣대는 거의 고려대상에서 제외됐다.대신 내부 여론과 경영마인드 등 새로운 평가요소들이 첨가됐다.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 타성과 비능률을 없애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이른바 ‘빅4’인 경찰총장과 국세청장 인사에도 이같은 의지는 반영됐다고 본다.51세의 경찰청장은 수사권 독립 등 현안에 대해 소신을 갖고 대처해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국세청장은 12년만에 외부에서 발탁됐다.국세청 혁신의 필요성 때문이라는 설명이고 보면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빅4’의 핵심인 검찰은 40대 여성장관의 취임 이후 심하게 동요하고 있고 국정원은 후임 원장이 임명되는 대로 개편의 회오리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4대 권력기관 모두가 환골탈태의 시험대 위에 놓여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권력기관들이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보인다.노 대통령은 3·1절 연설에서 “몇몇권력기관은 그동안 정권을 위해 봉사해 왔던 것이 사실이고,그래서 내부 질서가 무너지고 국민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따라서 참여정부는 더이상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빅4’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립하겠다는 다짐으로 크게 환영할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우선 청와대와 정치권이 이들 권력기관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정권 교체 때마다 권력기관을 독립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구두선에 그친 것은 권력기관을 통해 보다 수월하게 통치하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외부에 줄을 대려는 기관 내부의 인물들을 가려내 퇴출시키는 일도 중요하다.노 대통령이 지적한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로 그야말로 더 이상 설 땅이 없도록 해야 한다.해당기관 소속원들의 쇄신의지와 분발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盧대통령 “아첨배 설 땅 없을것”3·1절 기념식서 강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일 3·1절 경축사에서 “참여정부에서는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설 땅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특정계층이나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84주년 3·1절 기념식 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을 겪었다.”면서 “참여정부에서는 성실하게 일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특정세력 지칭 아니다” 이와 관련,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일 “3·1절 행사에 맞는 말을 한 것”이라며 “현재의 특정계층이나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3·1절의 역사적 의미를 감안해 그동안 왜곡됐던 우리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하지는 취지였다는 것이다.일제시대에는 일제에 아부한 세력이,광복 후에는 독재에 아첨한 세력이 권세를 누리는 등 문제가 있었던 것을 두고 말한 것일 뿐,현재 누구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들자.”고 호소했었다. 한편 노 대통령은 3·1절 경축사에서 “몇몇 권력기관은 그동안 정권을 위해 봉사해왔던 것이 사실이며 그래서 내부의 질서가 무너지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이들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참여정부는 더 이상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국가정보원과 검찰,국세청의 과거 행태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곽태헌기자 tiger@
  • [길섶에서] 아름다운 권력

    인간의 마음은 야누스적이다.정의보다는 자기에게 유리한 쪽에 영합하는 경향이 강하다.‘사람들은 백석꾼에게는 시기하고 천석꾼에게는 질투한다.그러나 만석꾼에게는 아부한다.’는 말은 야누스적 양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인간의 양면성을 잘 간파한 사람 중의 하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다.그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군주론에서 이렇게 말했다.‘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짓밟아 버려야 한다.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하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내기 때문이다.’군주론은 당시 군주에게 바치기 위한 마키아벨리의 ‘선물’이었다.그는 군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군주론을 썼다.마키아벨리처럼 많은 사람들은 권력에 아부한다.그것은 권력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막강한 권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위임됐다.그의 권력이 3·1절 기념사에서 말한 대로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의 설 땅이 없도록 하는 ‘아름다운 권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창순 논설위원
  • 갈라선 보·혁,3·1절 ‘반핵’ ‘반전’ 별도 집회

    북핵문제로 북·미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위기의 해법을 둘러싼 진보·보수 진영간 입장 차이가 이념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말인 1일 서울 도심에서 ‘자주·반전’과 ‘친미·구국’을 외치는 두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자 일부에서는 2001년 8·15평양 민족통일대축전 직후와 같은 남남갈등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7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과 ‘여중생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는 1일 탑골공원과 광화문 교보빌딩 옆에서 시민·학생 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한국 정부의 어떠한 지원에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는 15일 전 세계 NGO들의 반전집회에 맞춰 서울과 부산 등 전국 대도시에서 대규모 반미반전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우익단체와 보수 종교단체는 이날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과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10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시국·종교집회를 열고 북한핵개발과 주한미군 감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들은 진보단체의 반전 촛불집회를 겨냥,“모두가 똘똘 뭉쳐 반미세력 척결과 북한 핵개발 반대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사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미군철수에 반대하고 대북한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추가로 가질 예정이다.집회가 끝난 뒤 여중생범대위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게시판에는 상대방의 주장을 공박하고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이세영기자 sylee@
  • “장관엔 전세대출 얼마 해줍니까”김두관 行自장관 설렁탕집 인터뷰

    오래된 관행을 깨고 파격을 선택했다.지금까지 언론사의 장관 인터뷰는 의례적인 질문과 정제된 답변으로 이뤄져 왔다.사전에 질문서를 받은 뒤 관련부서에서 모범 답안을 미리 만들어준 탓이다.그러나 ‘이장과 군수’ 출신으로 참여정부의 대표적 개혁인사인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은 이런 인터뷰의 낡은 틀을 깨자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장관 이전에 ‘인간 김두관’의 면모를 보여달라는 주문에도 적극적이었다.3·1절 기념식 행사를 마친 김 장관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설렁탕집에서 만나 2시간여동안 여러 얘기를 나눴다. ●시골 군수의 장점은 열린 귀 김장관은 당초 지난 주말을 이용해 실·국별 업무보고를 받으려고 했다.그러나 지난 주 주5일제 근무가 실시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보고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대신 업무보고 서류를 챙겨 집으로 가져갔다.이를 두고 행자부 공무원들이 “젊은 장관이다보니 열린 사고를 가진 것 같다.”며 한껏 고무됐다고 전하자 활짝 웃었다. 김 장관은 “꼭 출근해 일한다고 해서 능률이 오르는 것은아니다.”면서 “연휴에 가족들과 쉬면서 업무 구상을 하는 것도 활기찬 한 주를 맞이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며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데 만족감을 표시했다.그는 행자부내 젊은 직원들 사이에 활발한 토론문화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자 “시골 군수출신 장관의 장점이 뭐겠느냐.”고 반문한 뒤 “저는 다행히 다른 분들의 생각을 성심성의껏 들어주는 열린 귀를 갖고 있다.”며 취임식에서 밝힌 대로 직원들과의 ‘복도 토론’을 활성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이장 경력이 결정적 김 장관은 화제를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 이장시절로 돌리자 목소리 톤이 갑자기 올라갔다.먼저 ‘언론이 이장 경력을 거론하는 것이 싫지 않느냐.’는 질문에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간 뒤 밑바닥부터 배우자는 생각으로 이장을 맡았다.”면서 “내가 오늘의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이장 경험이 결정적이었다.”며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www.leader2002.co.kr)에 지난 88년 고현면장으로부터 받은 이장 임명장을떳떳하게 올려 놓고 있다.그는 그때 당시를 회고하듯 동네주민 100여명이 참석한 이장 선거에서 60여표를 얻어 당선됐다는 사실부터 고집불통인 주민들을 설득해 마을 진입도로를 확장한 얘기,전국의 이장 판공비를 8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등 자신의 ‘업적’을 소상히 열거했다. ●서울 집값 너무 비싸 김 장관은 그러나 거처문제를 거론하자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남해에 집이 있는 김 장관은 현재 곡성군수 비서를 지내다 청와대 행정관으로 들어간 후배가 살고 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 27평 월세아파트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서울로 올라와서 한달 남짓 후배와 잠만 같이 자고 하루 세끼는 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다.주말에 부인 채정자(42)씨가 상경해 반찬을 만들어 주고 내려가지만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 장관은 “남해에 올해 82세가 되신 노모가 계시는데 절대로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셔서 고민”이라면서도 “얼마동안이나 장관으로 재직할지는 몰라도 아내와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딸과 중 2년생인 아들은 서울에 올라오고 싶어 하는데 집을 마련할 돈이 없어 난감하다.”며 곤혹스러워 했다.그는 “사업을 하는 몇몇 친구들이 전세집 구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제의를 해오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그러나 친구들에게 신세를 질 경우 민원과 청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아 거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국무위원 신분으로 은행에서 얼마를 대출받을 수 있느냐.’고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강골의 스포츠 광 178㎝ 85㎏인 김 장관은 남해제일종고 재학 때에는 씨름 선수로 활약했다.군 씨름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지금도 남해 집 마당에 샌드백을 걸어 놓고 생활할 정도로 ‘스포츠 광’이다.한때 쟁쟁한 권투선수였던 유제두·홍수환·김현치의 세계 타이틀매치 상대 외국선수의 이름을 지금도 줄줄이 외고 있다.홍수환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4전5기'를 일궈낸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할 정도로 그만큼 스포츠에 정통하다.사회운동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지금은 TV 스포츠해설가로 활약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여 김 장관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 시기를 지난 해 6·13 지방선거로 꼽았다.노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할 당시 그는 ‘남해농민회’를 이끌며 노 대통령을 강사로 초빙하기도 했다.이후에도 운동권 출신 지방행정가들의 모임인 ‘머슴골 모임’ 등에서 조우하고,2000년 노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군수 신분으로 찾아가 1시간여 동안 면담을 가졌지만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 것으로 회고한다. 그런데도 그가 행자부 장관으로 발탁돼 참여정부의 핵심 인물로 부상한 데는 6·13 지방선거에서 노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 깊이 각인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라고 한다. 이처럼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직선제 개헌투쟁에 참여해 옥살이를 하고,군수로 재직할 때에는 기자실 폐쇄를 결행할 정도로 옳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강단을 발휘했다.그러나 김 장관은 “부드러운 게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경구를 좌우명으로 삼고있다고 소개했다.취임식에서 직원들에게 90도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한 그는 “직원들을 대할 때는 부드럽고 격의없이 대하겠지만 업무는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겠다.”며 종전 방식대로 밀고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권력은 쪼개면 쪼갤수록 좋다. 행자부 공무원들이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중앙인사위원회와 인사국의 통합,소방청·재난관리청 분리·독립 가능성 등이 거론되면서 동요하고 있다는 지적에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손톱을 깎아도 아픈데 내가 속한 부처 조직을 깎아내는데 얼마나 아프겠느냐.”고 반문한 뒤 “그러나 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우리만큼 막강한 중앙권력을 유지하는 곳이 없다.”며 변함없는 소신을 거듭 밝혔다. 이어 김 장관은 구체적으로 일본의 ‘홋카이도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예로 들며 “무작정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한다고 해서 열악한 지방재정이 모두 개선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지역간 빈부격차를 키울 수도 있다.”며 앞으로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면밀한 검토를 벌인 뒤 지역별로 차등지원을 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할 뜻임을 내비쳤다. ●공무원은 개혁 대상이 아니라 주체 20∼30년간 재직한 일부 공무원들이 40대 중반의 장관이 부임한 것에대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 자리는 국민들을 위한 업무를 일정기간 위임받는 계약직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서 “나이보다는 행정철학과 소신이 중요한 것이며,시대변화 추이를 행자부 공무원들이 이해하고 변화에 부응하려는 마음가짐이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의 자세일 것”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김 장관은 새 정부들어 공무원들이 개혁 대상으로만 거론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무원들이 개혁주체로 나서길 바라고 있지,개혁대상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무사안일을 과감히 버리는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지방분권 성공만이 미래 보장 내년 4월 총선 출마 가능성을 묻자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앞만 보고 가겠다.”고 되받았다.그러면서 “대통령께서 대부분 각료들의 장기간 재임을 시사하고 계시고 책임총리제가 도입되는 등 참여정부에 선임된 장관들은 단명으로 끝난 이전의 장관들과는 다르지 않겠느냐.”고 전제,“행자부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지방분권과 행정개혁을 충실히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경남지역에서는 벌써부터 김 장관이 김혁규(金爀珪) 경남지사의 3차례 연임기간이 끝나는 오는 2006년에 도지사 선거를 겨냥하고 있다는 소문이 커지고 있다.반드시 ‘성공한 장관’이 되겠다는 김 장관의 굳은 결의는 이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이종락기자 jrlee@
  • 3·1절 행사 남북 첫 공동개최,남북 노동절 공동행사 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에 참석한 남북한 단체 대표들은 2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부문별 모임을 갖고 향후 교류 일정과 연대방안을 논의했다. 남북 노동 단체들은 이날 모임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관계자 15명이 오는 10일부터 6일 동안 평양을 방문해 5·1노동절 공동행사를 치르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남측 문예분과 참가자들은 북측에 남북문화예술인 대회를 개최하자고 제의한 뒤 자주와 창작,사람,평화,민족 등 5개항의 문화교류 원칙을 북측에 제시했다. 이에 앞서 남북한 종교인 대표는 1일 오후 워커힐호텔에서 민족자주,반전평화 등을 주창하는 4개항의 3·1 민족선언을 발표했다.공동선언문은 “오늘의 난국을 걱정하는 민족 성원 모두가 애국의 단심으로 거족적인 반전 평화운동에 떨쳐나서야 할 것”이라며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교류를 확대,민족공조의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이 함께 개최한 3·1절 행사에는 김철 천도교 교령,유병택 유교회 상임고문,백도웅 한국기독교회협의회 회장 등남측 각 종단 및 민간단체 관계자 700여명과 장재언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겸 조선가톨릭교협회 중앙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 105명이 참석했다. 장재언 북측단장은 연설을 통해 “(최근) 한반도에 핵전쟁의 검은 구름을 몰아오는 것도 외세”라면서 “민족 자주로 전쟁을 막고,평화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측 대표단에는 이문환 천도교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황명준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 부위원장,강지영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 부위원장,오경우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 서기장,유영선 조선종교인협의회 상무위원 등이 포함됐다. 북측 대표단은 3일 오후 행사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한다. 이도운기자 dawn@
  • 개나리·진달래 5일 빨리 핀다

    올해 봄꽃은 예년보다 4∼5일 일찍 찾아온다. 기상청은 28일 개나리·진달래 등 봄꽃의 올해 개화 예상시기를 발표,“개화 시기를 결정짓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2월 전국 평균기온이 올해는 평년에 비해 1.3도 상승,개나리와 진달래의 개화 예상시기는 평년보다 5일 정도 빠를 것”이라고 예보했다. 그러나 예년에 비해 개화 시기가 열흘 이상 빨랐던 지난해보다는 4∼5일 늦을 것으로 전망했다.이에 따라 서울에서는 3월31일부터 만개한 봄꽃을 만끽할 수 있다. 지역별로는 진달래의 경우 제주도 서귀포에 3월13일쯤 상륙한 뒤 ▲남부 3월14∼24일 ▲중부·동해안 3월25∼31일 ▲중부 산간 4월1일 이후 순으로,개나리는 ▲서귀포 3월12일 ▲남부 3월14∼20일 ▲중부·동해안 3월19∼25일 ▲중부 산간 3월31일 이후 순서로 꽃망울을 터뜨릴 것으로 기대된다.한편 3월 첫 주말의 시작이자 3·1절인 1일은 전국적으로 비나 눈이 온 뒤 낮부터 갤 전망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
  • [취재24시]조국서 버림받은 항일운동가들

    젊은 세대들에게 3·1절은 점점 잊혀져가는 존재가 됐지만 기억의 편린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이역 땅의 한국인들이 많이 있음을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이경태·한종석·곽동의·신귀성·김창오.이름도 생소한 이들은 항일·반독재운동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이다.이 선생은 지난 99년 사망했고,다른 네 사람은 아직도 활동 중인 요즘 사람이다. 조선인 1세로 일제 말 최초의 일본 문부성 인정 조선학교인 ‘건국학교’를 설립한 이경태 선생.학교폐쇄령으로 일본이 민족학교들의 문을 닫도록 압박할 때도 항일운동의 근본은 교육이라며 끝까지 학교를 지켰던 민족교육자였다.한종석 선생은 지난 80년 일본 최초로 외국인등록증 지문날인을 거부해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다.서슬퍼런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도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당당히 맞서 결국 일본이 외국인 지문날인제도를 없애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곽·신·김 선생은 해외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회의’(한통련)를 이끌고 있다.유신독재의 실상을 전세계에 알리며 국내 정치범 석방과 독재정권 퇴진운동에 앞장섰던 주역들이다. 이들이 이역만리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도록 이끌었던 것은 바로 ‘3·1정신’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기억 속에서 지워졌거나 이데올로기와 냉전논리에 고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다행히 이들의 존재를 되새겨보기 위한 움직임이 민변 등 단체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일고 있다고 한다. 이경태 선생의 업적을 그린 ‘분단과 대립을 넘어’라는 책이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한종석 선생은 국내 시민단체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한통련 3인은 민변 등 단체에서 입국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여의치 못하다.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하려 했지만 당국은 허락하지 않았다. 3·1절 또는 3·1정신 하면 84년 전 그날의 함성만 떠올리게 된다.후대에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서 숨은 곳에서 활동해온 이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마땅한 대접을 받게 해주는 것이 3·1정신의 진정한 계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혜영기자 koohy@
  • 반평생 태극기 사랑 “전시관 짓는게 소원”28년째 13만개 무료 보급한 조형식씨

    “70∼80년대 안보를 상징했던 태극기가 작년 월드컵을 계기로 국민통합과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28년째 태극기를 무료 보급하고 있는 조형식(52·사업·전북 전주시 평화동)씨는 “태극기의 존엄과 애국심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걱정한다. 추석이나 설보다 3·1절을 앞두고 더욱 분주한 조씨가 태극기 무료보급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75년.태극깃발 아래 한데 뭉쳐 일제에 항거했던 3·1운동의 민족정신을 다시 일깨우는 방법을 찾다 혼자 ‘나라사랑 국기사랑 선양회’를 만들었다. 해마다 3·1절이 돌아오면 사비를 털어 1만개 안팎의 태극기를 구입,무료로 나눠주고 있다.버스와 택시기사,노점상은 물론 태극기를 살 형편이 안되는 영세민들까지 찾아다니며 나눠준 태극기가 13만여개에 이른다.소화기와 방독면 등 재난장비업체를 운영하는 그가 태극기 사는 데 들인 돈만 3억원이 넘는다. 그는 앞으로 전국 각지의 역사성 있는 태극기를 한데 모을 계획이다.신사유람단이 일본에 가져갔던 태극기와 백범 김구선생의 피가 묻은 태극기 등 독립기념관이나 박물관,개인 소장품 등 각지에 분산된 태극기를 찾아 카메라와 비디오에 담았다.90년대 들어 촬영하기 시작한 희소가치가 큰 60여점의 태극기를 사진과 비디오 테이프로 제작해 조만간 전시·상영할 예정이다.조씨의 소원은 전주에 태극기 전시관을 짓는 것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기고] 참여정부시대의 3·1정신

    “어떠한 나라든지 제가 스스로 망하는 것이지 남의 나라가 남의 나라를 망할 수 없는 것이요.(중략)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압박만 받지 아니하고자 할 뿐 아니라 행복의 증진도 받지 않고자 하느니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라.4000년이란 장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언제까지든지 남의 노예가 될 것은 아니다.” 3·1운동의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한용운(韓龍雲·1879∼1944) 선생이 법정에서 한 말씀의 일부이다. 숱한 외침을 극복하고 5000년 민족사를 이어 온 힘은 바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한용운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존의식이야말로 수많은 국난을 이겨내고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정신적 에너지였으며,국가발전의 동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곧 여든 네번째 3·1절을 맞는다. 우리는 지난해 월드컵대회 때 서울의 광화문과 시청앞,그리고 지방 곳곳의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됨을 느꼈다. 1919년 3월에도 이 땅은 민족자존을 위한 함성으로 뜨겁게 달구어졌었다.만세운동의 함성에는 지역·계층·종교·세대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오직 자주독립이라는 민족적 열망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은 민족에 대한 애착이요,자긍심이다. 돌이켜 보면 3·1운동은 선열들께서 민족자결주의의 시대적 흐름을 간파하여 이를 활용한 거사였다.이 때 표방된 민족통합과 국제평화,민주이념 등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소중히 간직해야 할 가치이다. 3·1정신은 첫째,민족 모두가 하나되어 조국독립을 외쳤던 대동단결의 정신에서 그 교훈을 찾을 수 있다. 3·1운동에서 드러난 민족통합의 정신이야말로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적 가치가 아닌가 싶다. 둘째,세계평화와 인도주의 정신을 들 수 있다. ‘독립선언서’에서는 “우리의 꿈은 결코 구원과 일시적인 감정으로써 타를 질축 배척함이 아니라 동양평화,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에 이바지한 데 있다.”라고 천명하였다.이러한 정의·인도·평화의 정신은 대립과 긴장,분열을 극복하고 인류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워주고 있다. 셋째,3·1운동의 결과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민주공화국의 기치를 내걸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민족사에 새겨놓음으로써 민주인권국가의 토대를 마련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집단적 갈등과 이기주의,가치관 혼란현상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또한 국제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날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북한 핵문제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당면한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국가건설에 주춧돌을 놓아 나갔으면 한다. 특히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대통합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국가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낼 수 있는 국민통합의 바탕 위에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지식문화강국 실현 등의 국정과제를 해결해갈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처음 맞는 3·1절에 즈음하여 선열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되살려 민족자존을 지키고 나라의 부강도 기대할 수 있음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김 종 성
  • [사설]3·1절 이념 충돌을 우려한다

    3·1절을 맞아 몇몇 민간 단체들이 두 쪽으로 나뉘어 그날의 민족 정신을 되새기는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언필칭 보수 진영의 단체는 ‘반핵 반김 3·1절 국민대회’를 열기로 했다.김정일 정권과 한국 내 북한 추종 세력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대회라고 한다.반면 진보 진영의 단체는 북측의 대표단까지 초청해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절 민족대회’를 갖거나 혹은 ‘민족자주 반전평화 실현대회’를 계획했다고 한다.어떤 대회는 순국 선열들이 만세 운동을 시작했던 비슷한 시각에 맞춰 대회를 시작하는가 하면 다른 단체는 바로 3·1운동 현장에서 집회를 시작하기로 했다. 대회들은 명칭부터 날카로운 이념적 대립을 내보이고 있다.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민족통일 방안을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온 사람들이 이제 모두 길거리를 택했다.차분한 분석과 냉철한 판단을 접어 버리고 힘으로 겨뤄보겠다는 것이다.참으로 개탄스럽다.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손을 맞잡아도 시원찮은 판에 둘로 나뉘어 날을 세워가고 있다.뻔뻔스럽게도 3·1정신을 들먹인다.민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민족의 총칼에 맨주먹으로 맞섰던 바로 그 정신을 잇는 것이라고 우긴다. 보다 못해 국가의 어른격인 원로 188명이 나섰다.북핵 문제 등을 둘러싸고 국민 의견이 양분되고 3·1절에도 서로 상반되는 대중 집회가 계획돼 있어 한반도 위기가 더 격화할 수 있다며 양쪽 입장이 모두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나무랐다.이념적 대립을 조장해 사회 분란을 촉발시키는 몇몇 민간 단체의 집회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자주 독립과 민족 번영의 3.1정신을 훼손시켜선 안 될 것이다.끝내 집회를 고집하겠다면 3·1절이라도 피해라.선열들의 순국을 결코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 3·1절 韓·日 인디록밴드 합동공연

    삼일절을 맞아 한국과 일본의 인디 록 밴드가 합동무대를 꾸민다.새달 1,2일 대학로 ‘Club S.H’에서 이박사 등 한국 뮤지션과 질풍노도(아래사진) 등 일본 인디 록 밴드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번 연주회는 지난해말 도쿄와 서울에서 각각 열렸던 ‘Reflexion Select’의 3번째 행사. 삼일절 공연을 계기로 매달 첫번째 주말에 정기적으로 연다는 계획이다. 한국밴드로는 영화 ‘마들렌’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주제가를 각각 부른 슈가도넛과 피비스,그리고 코코어,이박사가 출연한다. 일본밴드로는 질풍노도가 사물놀이패와 잼 세션을 벌이고,삼일절 행사에 초대받은 힙합 듀오 KP도 참가한다. 공연을 주최하는 JPCA 관계자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뜻 깊은 날에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02)1588-7890. 채수범기자
  • 종교단신

    ***조계종 서울 불교전문강당 개설 3·1절기념 구국 금식기도회 불교 전통강원에서만 실시되는 승가교육이 서울 도심에서 스님들뿐 아니라 불교소양을 갖춘 일반인들에게 처음으로 실시된다. 조계종 교육원은 종단사상 처음으로 ‘서울 불교전문강당’을 개설,승가 기본교육기관인 강원의 전통 교과목을 원전으로 하여 강원과 똑같은 교수법으로 진행한다. 새달 3일 서울 사간동 법련사에서 첫 강의를 시작하는 불교전문강당은 2년제 4학기 8개과정으로 무비 교육원장을 비롯해 해인사 강주 지오스님 등 전통 강사진이 직접 교육한다.모집대상은 구족계를 수지한 스님 40명과 5계를 수지한 재가불자 25명 등 65명이며 교과목은 초발심자경문 등 기초과정부터 금강경,화엄경 등 대교과정까지.접수는 28일 마감. ***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기지협)는 3월1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 야외음악당 앞에서 ‘3·1절 84주년 기념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 금식기도회’를 연다. ‘하나님이여 이 민족을 구원하소서’라는 주제로 열리는 금식기도회에는 20만명이 참가해 3·1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것을 한국교회에 호소하게 된다. 한기총 관계자는 “이번 기도회는 지난 1월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가졌던 1,2차 평화기도회와는 차별화된 ‘구국금식기도회’로,기도회 당일인 3월1일 점심을 금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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