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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도 상공에서 다이빙’

    ’대한민국의 아침은 독도에서 시작된다’ 70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도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 국가대표들이 ‘독도는 우리땅’임을 알리는 강하 시범을 보인다. 스카이다이빙 국가대표인 이대호(36)씨는 오는 11일 오전 9시 독도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한다고 7일 밝혔다. 이씨는 이날 동료와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독도 3000m(9000피트) 상공으로 이동해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뒤 ‘대한민국의 아침은 독도에서 시작된다’는 가로 2m, 세로 3m의 현수막을 펴보일 계획이다. 이씨는 낙하산을 펼친 뒤 저공 비행을 하면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적힌 가로 20㎝, 세로 1m 크기의 전단 300장도 뿌리게 된다. 이씨는 지난해 3·1절 독도 상공에서 이 같은 스카이다이빙을 하려다가 기상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0년간 특수부대 장교로 있으며 1300여회의 고공낙하 경험을 자랑하는 이씨는 현재 스카이다이빙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고,부산이 고향인 이씨는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의 역사왜곡에 항의하고 독도에 대한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이끌어내려고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韓·日은 美·中 사이 캐스팅 보트 쥐고 있어…해법 모색해야 할 때”

    [새로운 50년을 열자]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韓·日은 美·中 사이 캐스팅 보트 쥐고 있어…해법 모색해야 할 때”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한·일 관계는 타협은 있었지만 완전한 화해에는 이르지 못했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한반도 및 동북아 문제 연구의 태두인 오코노기 명예교수를 한·일 수교 50주년을 앞둔 21일 도쿄 게이오대 미타캠퍼스에서 만났다. 그에게서 한·일 관계 개선의 해법과 전망, 중국의 부상 등 국제 환경 변화에 따른 두 나라의 역할과 미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수교 50주년을 맞는 두 나라 관계는 그동안 어떻게 변했나. -양국 관계는 지난 50년 동안 국제 환경의 변화, 국제 시스템의 변동에 영향을 받았다. 크게 세 번의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수교 이후 냉전 붕괴까지다. 양측의 상반된 입장을 그대로 둔 채 식민지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 없이 이뤄진 게 1965년 한·일 기본관계조약이다. 냉전이라는 질서 속에서 이뤄진 타협의 산물이었다. 1910년 한국병합조약이 불법이고 부당했다는 한국 주장에 대해 일본 측은 합법적이며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냉전이라는 국제 환경 속에서 안전 보장과 경제 발전이라는 확실한 공동 이익과 목표가 있었다. 수교 결과는 좋았다. 한국은 그 사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했다. →화해를 위한 노력에 어떤 진전이 있었나. -1989년 냉전 붕괴를 거치면서 동구권이 열리고 국제 협력의 영역이 확대되는 새로운 국제 환경을 맞았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협력 확대가 필요한 시대였다. 1993년 11월 호소카와 모리히로 당시 총리는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군 위안부, 강제 징용 등을 거론하며 “가해자로서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의 본격적인 첫 반성인 셈이다. 이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사과 발언으로 이어졌다. 당시 오부치 총리의 사과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였고, 양측은 파트너십 공동성명을 내며 미래지향적인 데까지 손을 내밀었다. 두 나라가 화해에 가장 근접했던 때였다. →이 같은 노력은 왜 화해의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나. -90년대는 과거사 반성과 사과가 활발하게 이어지면서 화해를 모색한 때였다. 아쉬운 점은 이 같은 화해의 노력이 구조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럽과 비교하면 모자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평양 방문 및 남북 정상회담, 그보다 일찍 가네마루 신 전 부총리의 방북 등 북·일 정상화 시도 등이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1990년 이후 20년은 절반밖에 성공하지 못한 시기였다. 당시 독일의 과거사 반성과 독일 및 프랑스, 폴란드와의 화해 등이 이어졌고 이를 기초로 유럽공동체가 급진전했다. 한편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새 시대의 특징은 중국의 강대국화와 영역이 확대된 무역자유화 등이다. 2010년 중국은 국민총생산(GNP)에서 일본을 넘어섰다. 중국 부상 등의 국제적인 구조 변화가 한국 외교에 영향을 줬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중 관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임기를 시작했고, 한국의 중국 중시 외교가 본격화됐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중국을 앞에 놓았다. 일본은 그 뒷전으로 밀렸다. 일본에서는 반감이 컸다. 대중, 대미 외교의 성공을 통해 일본에 역사 문제 등을 압박하려는 것으로도 여겼다. →세 번째 시기의 한·일 관계는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일주일이 흐른 3·1절 연설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1000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취임 일주일 만에 일본에 역사를 바로잡으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미국 방문에 나섰다. 앞서 아소 다로 부총리가 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가 “역사 해석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을 꺼냈다. 양측의 신경전과 대립이 두드러졌다. 중국 중시 외교에, 아베 신조 총리와의 리더십 충돌까지 겹쳤다. 아베 총리도 잘하지 못했다. “침략의 정의는 확정된 게 없다”는 발언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까지 참배하면서 지도력 충돌은 두드러졌다. 한·일 두 리더십의 충돌은 역사 인식의 충돌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국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외교 전략의 부딪침도 있었다. 정체성 충돌, 민족 감정 및 전통문화의 대립도 얽혔다. 한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의 관계에 더 힘을 기울였고, 아베 총리도 미·일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한국 관계는 나중에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앞으로 한·일 관계는 어떤 상황을 맞겠나. -세 번째 시대를 맞았지만 한·일 관계는 아직 이렇다 할 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시대 흐름에 맞는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때다. 시스템 변동에 따라 한국도, 일본도 하고 싶은 대로 외교를 하고 있다. 그래서 충돌이 생겼고 관계도 나빠졌다. 시대에 맞는 한·일 관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국 부상과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이 확산되면서 보다 광범위한 경제 통합 시대에 맞게 양국 관계의 틀과 규범을 만들어 나갈 때다. 긍정적인 것은 두 나라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미들 파워’(중급 파워) 국가라는 점도 그렇다. 둘 다 국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유사한 산업구조로 경쟁도 치열했지만 생산 과정의 공유 및 분업의 심화로 두 나라 협조 관계는 더 커지는 추세다. 제3세계의 인프라 건설 참여 등에서 보듯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자금력, 정보력의 장점을 서로 나누며 함께 참여하는 예가 늘고 있다. 앞으로도 경제 협력이 두 나라 관계를 선도할 것이다. 서로 더 의존적이고 더 얽히는 상호 의존 관계가 진행될 것이다. 양측의 장점을 합치면 시너지가 배가된다. →두 나라 관계가 진전될 것이라고 낙관하나. -두 나라는 비슷한 현안에 직면해 있다. 대립하는 미·중 사이를 어떻게 중재하고 갈등을 완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같다. 미·중 간 가교 역할과 시장·경제 통합에서 한·일은 손을 잡고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 미·중 입장은 대립 속에 고정돼 있다. 중간에 있는 한·일이 어떻게 생각하고 유도해 나가느냐에 따라 방향과 내용이 결정된다.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한·일 어느 한 나라만으로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아세안과 힘을 합쳐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 ‘중간국’들이 동북아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한·일이 서로의 대미, 대중 정책을 상의할 수 있을 때 두 나라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의 문제다. 급진전하는 대중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과 미국에 밀착한 일본, 두 나라의 장점과 이점을 잘 조화하고 활용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역사 마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과 힘을 잃어 버리면서 ‘불임의 외교’만을 거듭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새로운 관계를 이끌어 내려면 박 대통령이 중점을 두는 위안부 문제에서 진전을 거둬야 한다. 새 시대에 맞는 해법을 모색해서, 국제적인 룰에 근거해, ‘전쟁시대의 국제 문제’라는 점에 기반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일 간 문제로 국한해 풀려고 해서는 입장 차이 때문에 해법을 내기 어렵다. 전쟁 상황에서의 성폭력 조사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유사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며 해결하기 위한 기금 설립 등도 생각해 봄 직하다.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해법의 틀 속에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보자. 일본 정부의 사과를 포함해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되면 된다. 양국 관계 진전의 모델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한·일 관계 진전의 출발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점은 한국 비정부기구(NGO)들의 역할이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의지를 갖고 이 문제를 매듭짓겠다. 국내 이해 당사자를 설득하고 중지를 모아 여기서 종결시키겠다” 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일본 측이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안을 내놓아도 한국 정부는 NGO 등 주변 불만이 크다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일본 정부도 무엇을 선뜻 내놓기가 어렵다. 한국 측도 이번에는 매듭짓고 받아들이겠다는 준비와 결의가 필요하다. →아베 총리가 8월에 종전 70주년 담화를 발표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걱정 어린 시각이 많다. -한국인을 만족시킬 만한 아베 담화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미국 의회에서 아베 총리가 말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종전 70주년 담화라는 게 왜 필요한가. 동양권에서 50주년 등은 중시되지만 70주년이 주목받는 것은 아베 총리 스스로가 담화를 하겠다고 해서였다. 그것은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등에 대해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70주년 담화가 나오고 난 뒤에 한·일 관계는 정상화를 향한 새로운 모색을 하는 출발점에 서게 될 것이다.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의 틀이나 다자회담의 틀을 빌려 한·일 정상이 만나고 그 장을 빌려 한·일 정상회담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외교부 사이트에서 한국과 관련해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말까지 빼 버렸다. -불만이 있어도 그러면 안 되는데…. 내년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겠나. 이는 오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한국이 진짜 민주주의를 하나” “법의 지배를 받나” 하는 의문이 일본에서 생겼다. 산케이신문 기자에 대한 기소나 법원의 대일 관련 판결, 중국에 대한 한국의 자세 등이 얽혀 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한·일 관계의 토대다. 한국인은 앞으로 나올 70주년 담화에 실망하고 불만이 크겠지만 그 뒤에 어떻게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새 시대에 맞는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 과거사는 한·일 관계의 일부, 한 조각일 뿐이다. 양측이 다투면서 서로 얼마나 많은 것들, 소중한 기회들을 잃어 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서로 공감대가 형성돼야 화해가 가능하다. 한·일은 1965년 큰 타협을 이뤄냈지만 서로 이해하는 공감대는 모자랐다. 완전한 화해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자. 실현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꾸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옳은 길이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오코노기 교수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다. 1945년생으로 그가 재직하는 게이오대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오코노기 학파’가 퍼져 있다. 그만큼 많은 한반도 전문가를 배출했다.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위원장으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청사진 마련을 주도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자문기관인 ‘대외 태스크포스’ 위원,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의 자문기구인 ‘외교정책연구회’ 위원 등을 지내며 일본의 한반도 정책 결정에 관여했다. 1972년부터 2년여 동안 연세대에 유학하면서 ‘7·4남북공동선언’ ‘10월 유신’ ‘김대중 납치사건’ ‘민청학련사건’ 등을 지켜봤다. ‘한국 오코노기 연구회’가 있을 정도로 국내에 지인과 친구들이 많다. ‘조선전쟁’(중앙공론사), ‘일본과 북조선’(PHP연구소) 등의 저서가 있다.
  • [총리공백 한달] 총리 없어도 굴러간다?… 국정 시스템 무너져 개혁 실종

    [총리공백 한달] 총리 없어도 굴러간다?… 국정 시스템 무너져 개혁 실종

    새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이 늦어질수록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에서도 총리 직무대행 상황에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적합한 새 총리를 찾는 데 고심한 전례가 있었다. 특히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정운찬 총리의 사퇴 이후가 눈에 띈다. 19일 총리 비서실 등에 따르면 서울대 총장을 지냈던 충남 공주 출신의 정 전 총리는 앞서 부여 출신의 김종필 전 총리, 청양의 이해찬 전 총리 등에 이은 충청권 총리이자 취임과 동시에 차기 대선 주자 물망에 오른 인물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 전입, 자식의 국적·병역 문제 등이 불거졌지만 가까스로 야당의 동의를 얻어 총리에 올랐다. 그러나 전임 노무현 정부의 세종시 개발에 맞선 정부 수정안을 대변하면서 정치권과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이는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는 빌미가 됐다. 정 전 총리는 취임 10개월 만에 “모든 책임과 허물을 짊어진다”며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궁지에 몰린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전면적 개각설을 공식화했으나 당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직무대행 체제는 무려 51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역대 총리 공백 기간 가운데 최장 기록이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을 총리로 지명했고 김 전 총리는 이후 2년 2개월 동안 비교적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총리로 남게 된다. 전남 장성 출신의 김 전 총리는 최초의 전남 출신 총리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전 총리를 박근혜 정부의 세 번째 총리 후보로도 거론하고 있다. 총리 부재로 단 하루라도 국정 공백이 발생한 과거 사례는 모두 6차례다. 김대중 정부는 박태준 전 총리와 장상 전 총리서리의 퇴진으로 총리 부재 사태를 두 차례 겪었다. 이때 각각 이헌재, 전윤철 전 경제부총리의 직무대행 체제가 그나마 국정 공백을 최소화했고 후임 이한동 전 총리와 김석수 전 총리도 무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는 총리 수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5월부터 2007년 4월까지 3년 가까이 고건,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가 3대에 걸쳐 연이어 직무대행 체제를 겪었다. 고 전 총리는 행정을 잘 알고 별다른 잡음도 없었으나 앞서 국회로부터 탄핵당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신한 권한대행 임무가 종료돼 2004년 박수를 받으며 스스로 물러난 케이스다. 36일간의 국정 혼란을 메우기 위한 당시 노 대통령의 선택은 5선 국회의원 출신의 실세인 이 전 총리였다. 이 전 총리는 재임 1년 8개월 동안 ‘책임 총리’로서의 권한을 십분 활용했다. 다만 야당 의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던 처지에서 2006년 ‘3·1절 골프 파문’이 빌미가 돼 물러났다. 뒤이은 선택은 최초의 여성 총리였다. 그러나 한 전 총리는 2007년 정치자금 수뢰 등 여러 구설에 휘말려 퇴진했다. 이 전 총리나 한 전 총리는 모두 국정 공백기에 나온 뜻밖의 ‘한 수’였다. 그러나 그들마저 논란 속에 퇴진하자 혼란을 가라앉힐 인물로 두 시기에 모두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가 지목됐다. 경제, 산업, 외교통상 등의 공직과 여러 기관장을 두루 섭렵했고 무난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는 당시 국론 안정화에 기여했고 그 덕분에 현 정국에서도 다시 총리감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달에 걸친 총리 부재로 이미 일부에서는 국정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연계 문제로 난관에 봉착한 현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부 측을 대변하며 갈등 해결을 모색해야 할 총리가 갑자기 빠지면서 수습이 원활치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돌강이 흐른다…세월을 빚는다

    돌강이 흐른다…세월을 빚는다

    비슬산(琵瑟山, 1084m)은 흔히 ‘대구의 어머니 산’이라 불린다. 대구를 상징하는 팔공산에 빗댄 표현이지 싶다. 산정에는 옹골찬 바위들이 시립해 있고, 비탈을 따라서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암석들이 널려 있다. 말잔등 같은 능선 위엔 참꽃(진달래) 군락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부드럽게 팔을 뻗은 지맥들은 대구의 들녘과 굽이치는 낙동강을 깊게 껴안는다. 그 위로 석탑 한 기가 다소 힘겨운 듯한 자태로 서 있다. 대견사지 삼층석탑이다. 어렵사리 세월의 강을 건너오느라 외모는 다소 남루해졌지만, 꼿꼿한 기상만은 잃지 않은 듯하다. 비슬산은 4월이 되면 늘 산꾼들의 머릿속을 맴돈다. ‘참꽃’ 때문이다. 해마다 봄이면 정상 아래 너른 고위평탄면에 참꽃이 만든 연분홍 세계가 펼쳐진다. 이 모습 보려고 산꾼들이 그야말로 장사진을 친다. 하지만 비슬산이 산꾼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이뿐 아니다. 세월의 흔적 켜켜이 쌓인 암석들이 펼쳐 낸 ‘장사진’도 꽃 못지 않게 볼 만하다. 비슬산을 ‘암석 전시장’이라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산비탈 바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듯… 비슬산은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에 걸쳐 있다. 비슬산 휴양림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암괴류(岩塊流, 천연기념물 제435호)가, 왼쪽으로는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암괴류는 둥글거나 각진 바위덩어리들이 산비탈이나 골짜기를 따라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일컫는다. 바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모습을 하고 있어 ‘돌강’ 또는 ‘바위강’이라 부른다. 비슬산 암괴류는 해발 약 1000m의 산정에 터를 잡은 대견사 인근부터 시작된다. 여러 개의 암괴류가 각기 다른 산비탈을 따라 내려오다가 해발 750m 지점에서 합류해 450m 지점까지 이어지는데 길이 약 2㎞, 최대 폭 80여m에 달한다. 세계 최대 규모다. 기이한 형태의 암석들을 병풍처럼 두른 대견사는 개창 연대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연스님이 고려 고종 4년(1227) 22세 때 승과 선불장에 장원급제한 뒤 초임 주지로 22년간 주석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사찰이기도 하다. 대견사는 일제강점기 때 폐사됐었다. 경내 일곱 건축물의 가람배치(칠당가람, 七堂伽藍)가 일본의 대마도를 바라보는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산정에 높이 앉은 대견사가 째려보는 탓에 일본인의 기가 꺾인다는 것이다. 이후 흔적으로만 남았던 ‘대견사지’ 위에 현재의 대견사가 중창된 건 지난해 3월 1일이었다. 일제에 항거해 만세운동을 벌였던 3·1절에 산문을 열어 강제 폐사의 수모를 씻겠다는 뜻이 담겼다. ●100여년 만에 복원된 신라시대 대견사 절집 앞은 절벽이다. 이 깎아지른 암봉 위로 석탑 한 기가 서 있다. 신라시대 세워진 대견사지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42호)이다. 수차례의 전란과 강제 폐사에 이어 지난 2009년 낙뢰를 맞아 탑 일부가 훼손되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옛 모습를 잃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탑 주변은 그야말로 암석 전시장이다. 앞으로는 암괴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특이한 형상을 한 ‘토르(tor)’도 곧잘 눈에 띈다. 토르는 부분 침식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자잘한 물질은 제거되고 특이한 형태의 모습만 남게 된 대형 화강암이다. 석탑 주변의 거북바위, 부처바위, 형제바위, 스님바위 등이 토르다. 특히 톱(칼)바위는 토르이면서도 비슬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덜의 형성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대견사 위에서부터 비슬산 정상 아래까지는 고위평탄면이 펼쳐져 있다. 봄이면 참꽃이 무리 지어 피어 방문객을 경탄케 하는 곳이다. 해마다 4월 하순께 절정을 이루는데, 올해는 18일부터 참꽃 축제가 열린다. ●문익점 후손들이 절터에 일군 인흥마을 비슬산의 지맥이 안온하게 감싼 땅 화원읍에 남평 문씨 세거지지인 인흥마을이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후손들이 인흥사 절터 자리에 일군 마을이다. 인흥사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전해지는 절집이다. 마을에 들면 날아갈 듯한 처마의 한옥들과 세월의 흔적이 더께로 쌓여 있는 돌담길, 그리고 오래된 나무들이 단박에 이방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 주는 살림집과 재사, 문고 등이 돌담을 경계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대부분의 집들은 문이 잠겼다.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흙을 이겨 만든 돌담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관광객을 위해 문을 연 집은 종가인 죽헌종택과 수백당이다. 특히 노송과 어우러진 수백당의 정취는 정말 일품이다. 주로 손님을 맞거나 일족의 모임 장소로 이용됐던 곳으로, ‘우물 정’(井)자 형태의 우물과 대나무로 경계를 이룬 뒷간 등이 옛 건물과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 터를 잡은 광거당(廣居堂)에도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 등 볼거리가 많지만 아쉽게도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다. ●천리마 한 쌍의 전설 깃든 마비정 벽화마을 인흥마을에서 산자락을 거슬러 오르면 마비정(馬飛亭) 벽화마을이다. ‘비무’와 ‘백희’ 등 천리마 암수 한 쌍의 애달픈 전설이 깃든 마을이다. 대도시 대구에 속해 있지만, 대중교통이라곤 하루 8번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고작일 정도로 도심 속 오지로 꼽히기도 한다. 마을에 들면 토담을 따라 그려진 벽화들이 외지인을 맞는다. 쟁기질하는 황소, 난로 위에 도시락을 빼곡하게 올려놓은 옛 교실 풍경 등 향수를 자극하는 벽화들이다. 200년 된 초가집과 동네 할머니들이 음료수와 과자 등을 파는 이른바 ‘점방’도 시선을 끈다. 화원읍 낙동강 변의 사문진나루터는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를 들여온 장소다. 마비정 벽화마을에서 15분 남짓한 거리다. 안내판은 1900년 3월 대구에 온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탐 부부가 미국에서 가져온 피아노를 배편으로 사문진나루터까지 싣고 온 뒤 대구 시내 사택으로 옮겼다고 적고 있다. 당시 피아노 소리를 처음 들은 지역 주민들은 빈 나무통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귀신통’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귀신통 납시오’란 조형물과 피아노 장승 등도 세웠다. 사문진나루터는 1932년 나운규 주연의 ‘임자 없는 나룻배’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명화’로 꼽히는 ‘임자 없는 나룻배’는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정신과 리얼리즘이 결합된 우리 영화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기념하는 조각상이 나루터 초입에 세워져 있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3) →가는 길 : 비슬산 대견사는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나들목으로 나가 현풍·비슬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이정표대로 따라가면 된다. 인흥마을, 마비정 마을 등을 먼저 보겠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인 화원·옥포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낫다. 직선거리로는 남대구나들목이 가깝지만 대구 시내를 관통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비슬산 휴양림에서 대견사까지는 ‘반딧불이 전기차’를 타고 오른다. 휴양림 주차장에서 대견사 입구까지 5.8㎞를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편도 30분으로 길다. 급경사와 급커브가 반복되는 산길이라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요금은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이상 편도)이다. 비슬산 자연휴양림 614-5481. 휴양림에서 걸어서 대견사까지 오르는 건 편도 1시간 30분 이상 소요된다. 대견사 뒤편의 능선에 진달래가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는 이달 말부터는 교통 체증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맛집 : 달성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현풍면의 곰탕이다. 현풍면 성하리 인근에 원조 현풍할매집곰탕(614-2031) 등 곰탕집들이 몰려 있다. 화원읍 천내리의 교동면옥(634-9222)은 진주식 냉면을 내는 맛집이다. 대구 시내 쪽에선 안지랑 곱창골목이 유명하다. 푸짐한 돼지곱창구이를 내는 집들이 길 양쪽으로 40여곳이나 늘어서 있다. 이곳의 가게들은 재료를 공동으로 구매한다. 구입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 덕에 매콤한 양념의 돼지곱창 한 바가지를 불과 1만원 안팎에 맛볼 수 있다. 북성로 철물 공구 골목은 밤이면 포장마차촌으로 변한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연탄에 구워 먹는 불고기집들이 많다. →잘 곳 : 달성 쪽에선 비슬산자연휴양림을 추천할 만하다.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진달래 핀 산자락 속에 조성돼 있다. 가창면 삼산리, 성서공단 등에 모텔들이 있지만 낡거나 유흥가와 인접해 만족도는 떨어질 수 있다. 가족단위 여행객이라면 대구 시내에서 숙소를 찾는 게 낫다. 호텔인터불고 대구, 노보텔앰배서더 대구 등 특급호텔을 비롯해 엘디스리젠트호텔, 호텔대구, 대구그랜드호텔, 프린스 호텔 등 수준급 숙소가 있다.
  • [길섶에서] 공직자의 수준/최광숙 논설위원

    얼마 전 택시를 탔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핸들을 잡으셨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을 지나치는데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3·1절 전에 청사 벽면에 대형 태극기가 걸렸는데 태극기의 오른쪽 위 귀퉁이가 말려 보기가 흉했단다. 그래서 행정자치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태극기 모양을 바로잡으라고 부탁했다. 돌아온 답변은 “담당 공무원이 자릴 비웠다. 태극기를 걸어 놓은 업체에 전화하도록 전하겠다”였다. 며칠 뒤 정부청사의 태극기는 여전히 일그러진 모습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다시 청와대 민원실로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틀 뒤 청와대 민원실에서 할아버지 휴대전화로 문자가 왔다. “청사의 태극기 업무는 행정자치부에서 합니다.” 아마도 청와대 직원은 할아버지에게 ‘친절하게’ 문자를 보낸 것으로 제 업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대통령이 나서서 공직기강 운운하면 뭘하나. 제 소임을 다하지 않는 것도 한심하지만 달랑 문자 한 줄 보내는데 이틀 걸린 것도 기가 막힌다. 이게 우리 공직사회의 민낯이다. 할아버지가 일갈하신다. “태극기도 제대로 못 거는 것 보면 우리나라 꼴이 그런 것 아닌가 싶네요”.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청와대 회동 앞둔 여·야 대표 셈법은] ‘코디’ 金

    17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 회동이 예정된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어떤 역할을 담당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사이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회동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박 대통령과 문 대표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치열한 승부를 벌였던 만큼 이번 회동에서도 기 싸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문 대표가 ‘선명한 야당’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그가 회담에서 박 대통령과 정책 현안을 놓고 어떤 식으로든 각을 세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러한 역학 관계 탓에 김 대표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 문 대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두 사람의 의견이 대립할 경우 중재자 역할까지 맡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지난 3·1절 행사장에서 박 대통령에게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또 박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내놓기보다는 여권의 실리를 챙기는 데 비중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김 대표는 지난 12일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의제를 사전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거나 여권 내부 분열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은 가급적 피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해석된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朴대통령·김무성·문재인 17일 회동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청와대에서 5부 요인을 초청, 최근의 중동 4개국 순방 성과를 설명한다. 오는 17일에는 새누리당 김무성·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같은 성격의 회동을 갖는다. 박 대통령이 순방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5부 요인을 만나는 것은 처음으로, 초청 대상은 정의화 국회의장과 양승태 대법원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이완구 국무총리 등이다. 여야 대표와의 회동은 박 대통령이 출국 전 3·1절 기념식 행사에 앞서 여야 대표와의 환담을 통해 예고했다. 박 대통령과 두 대표가 정식으로 회동하는 것도 처음이며, 지난 대선에서 경쟁 관계였던 박 대통령과 문 대표가 한자리에 앉는 것은 대선 이후 2년여 만이다. 회동에서는 민생·경제와 외교·안보 현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의제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는 이번 회동으로 소통 이미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집권 3년 차 국정 동력을 얻으려 하고 있다. 김 대표로서는 당·청 간 불협화음을 차단하고, 문 대표는 이념 정당에서 벗어나 대안 정당의 이미지를 굳히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회동 결과는 이후 정국의 방향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문재인 ‘충·효 마케팅’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11일 대전을 찾아 ‘충청권 공략’에 적극 나섰다. 문 대표가 충청권을 찾은 것은 당 대표 취임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1일 3·1절을 맞아 충남 천안의 유관순 열사 추모각을 찾은 데 이어 5일에는 세종시와 충북 오송을 찾았고, 이날은 대전근현대전시관(옛 충남도청)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특히 이날은 대전 중구의 ‘효문화 마을’을 방문, 노인층과의 거리 좁히기에 주력했다. 당 지도부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저마다 충청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표는 회의에서 “대전은 지방분권의 거점 중 한 곳으로 우리 당에 특별한 곳”이라고 의미를 부각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대전을 대한민국의 허리라고 강조하며 “국토균형 발전이 수도권 규제 완화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충청 민심에 구애했다. 문 대표가 충청권을 이달 들어 세 차례나 방문한 것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호남총리론’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중원·보수층 공략을 통해 중도로의 외연 확대를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표는 특히 안보와 보수 공략이라는 키워드 행보에 주력했다. 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베트남전 참전 용사나 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전 등으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유해가 안치된 대전현충원을 참배했다. 오후에는 노인층 공략을 위해 효문화 마을을 방문해 효문화센터, 족보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노인들과 환담했다. 취임 후 세 번째로 노인층을 찾은 문 대표는 “우리 당이 어르신을 제대로 모시는 효도정당이 되고, 저도 효도하는 정치인이란 소리를 듣게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표는 효문화마을 방문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와의 회동을 제안했다. 그는 “다음주 수요일(18일) 현장 최고위가 열리는 경남을 방문하는 길에 홍 지사와 만나 가능하다면 경남도와 도교육청 사이를 중재해서라도 무상급식을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문재인 지지율, 朴대통령과 회동 후 변화있을까

    문재인 지지율, 朴대통령과 회동 후 변화있을까

    문재인 지지율, 朴대통령과 회동 후 변화있을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오는 17일 청와대에서 회동을 갖기로 했다.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비서실장은 12일 국회 브리핑에서 “다음 주 화요일인 17일 오후 3시에 박 대통령과 김무성·문재인 대표의 3자 회동이 결정됐다.”면서 “회담 의제는 박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 결과와 문 대표가 말한 민생경제 현안을 다루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 행사 직전 여야 대표와 만나 환담하며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청와대에서 방문 결과를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과 두 대표가 정식으로 회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을 벌였던 박 대통령과 문 대표가 자리를 함께 하기는 2012년 대선 이후 2년여만에 처음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문 대표가 지난달 8일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직후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어 회동 결과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지지율이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나타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월 말부터 조사한 ‘국가과제 분야별 대선주자 적합도’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전월 대비 7.5% 포인트 상승한 32.3%로 나타났다. 오는 17일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민생입법을 비롯해 공무원 연금 개혁 등 당면 현안에 대해 여야를 떠난 초당적 협력을 요청할 전망이다. 김 대표도 민생살리기 필요성에 보조를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표는 경제정책 기조전환과 소통 강화 필요성을 주문할 것으로 보여 박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문재인 지지율의 추이에도 관심이 모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날짜 서로 조정해 여야 대표 만날 것” 朴대통령 재확인

    중동 4개국 순방을 마치고 9일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은 앞서 귀국길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여야 대표 회동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날짜를 서로 조정해 만나려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식 때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함께 만난 자리에서 순방 이후 여야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순방 결과를 설명해 달라는 제안을 수락했었다. ●“제2 중동 붐… 현실화되고 있어” 박 대통령은 중동 순방의 성과에 대해 “먼저 중동에 진출한 선배들이 신뢰를 잘 쌓아 한국에 맡기면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다는 인정을 받았다”며 “그랬기에 이번에 만난 국왕, 정상들께서도 한국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내 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제2의 중동 붐’을 통해 ‘제2 한강의 기적’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순방에 그것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특히 한국 기업의 2022년 카타르월드컵 인프라 건설 참여와 관련, “(카타르 국왕이) 한국 기업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유리하게 해 주도록 지시를 다 내렸다는 말씀도 했고, 우리가 울산이나 광양에 구축하고 있는 ‘동북아 오일허브’에 카타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가 많이 됐다”고 전했다. 또한 “우리가 월드컵을 이미 해 봤기 때문에 ‘인프라뿐 아니라 치안도 중요하다. 그런 것도 다 협력해서 최고의 월드컵을 만들어 보자’ 이렇게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청년들 해외 일자리 찾게 뒷받침할 것” 박 대통령은 한국 고급 청년인력의 중동 진출과 관련, “중동에 와서 보니 법률 전문가라든가 의료진, 문화 쪽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데가 많이 있다. 해외로라도 청년들이 갈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특히 서비스산업기본법 등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것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하니, 이제는 (길을) 해외에서 찾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현장 행정] 주민들과 ‘생생 대화’… 동작의 미래를 듣다

    [현장 행정] 주민들과 ‘생생 대화’… 동작의 미래를 듣다

    “‘구(區)’가 아니라 ‘동(洞)’을 중심으로 하늘지도, 땅지도, 복지지도를 바꾸려 합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지난 6일 사당3동 ‘주민 어울림 한마당 업무보고회’에 참석해 동 주민들이 직접 마련한 특성화 사업에 대해 동장으로부터 들었다. 2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김종섭 사당3동장은 “삼일공원에 10월까지 상설공연장을 만들고 가을음악회 등 문화콘텐츠를 마련하는 한편 어린이 사생대회 등 3·1절 기념행사도 열려고 한다”면서 “유관순 열사 동상과 민족대표 33인의 동판도 만들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내년 사당종합체육관 건립에 맞춰 200m 꽃길을 만들고 작은 결혼식을 추진해 검소한 웨딩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구청장은 “현재 3%에도 못 미치는 상업지 비율을 2018년까지 5%가량으로 늘려 하늘지도(스카이라인)를 바꾸고, 노량진에 있는 구청, 경찰서, 우체국 등을 장승배기에 행정타운을 마련해 옮김으로써 노량진 개발을 촉진하겠다”며 “한강을 끼고 있는 13개 자치구 중 수변공원이 없는 유일한 구라는 점 등을 감안해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늘려 땅의 지도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내년부터 동주민센터를 마을복지센터로 개편해 복지지도도 바꾸겠다”면서 “지금처럼 구청, 보건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복지상담사와 간호사가 집을 방문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9일까지 15개 동에서 주민과 동주민센터가 만든 사업을 듣고 있다. 지난 1월 주민들이 제시한 105개 사업을 선정했고, 구는 앞으로 예산과 인력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공무원 학원이 밀집된 노량진1동은 취업준비생을 고려한 정보제공센터 조성을, 숭실대가 자리한 상도1동은 청년 창업공간 조성 등을 제시했다. 어린이가 많은 상도4동은 안전 골목놀이터를, 노인이 많은 흑석동은 노인 복합문화센터를 계획했다. 이 구청장은 “취임 후 지난 8개월간 주민들이 제시한 사업을 실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구청 공무원들이 달라졌다”며 “이미 2016년 사업계획을 구상하고 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시 관계자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 주민은 “가로수가 너무 울창하다는 민원을 넣자마자 정리해 주는 달라진 모습에 놀랐고, 삼일공원 야외무대 설치 사업의 경우 디자인부터 주민 의견을 물어 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오늘의 눈] 南도 애쓰고 있으니 北도 성의 보여라/이제훈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南도 애쓰고 있으니 北도 성의 보여라/이제훈 정치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3·1절 기념사를 통해 통일준비위원회 등을 구성한 것이 결코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서 함께 대화의 길로 나갈 것을 호소했다. 또 남북 대화를 더이상 외면해서도 안 되며 진정성 있는 대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모든 협력의 길이 열려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는 확실히 지난 2년간 북한 핵과 인권 문제를 강조한 것에서 벗어나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나름 애쓴 흔적이 보이는 언급이었다. 문제는 이달을 포함해 다음달까지 남북 관계가 ‘잔인한 달’이 될 수 있는 악재가 즐비하다는 점이다. 당장 2일부터 한·미 키리졸브 연습과 한·미 독수리훈련이 시작됐다. 키리졸브 연습은 오는 13일까지, 독수리훈련은 다음달 24일까지 실시된다.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남북 관계에 영향을 줄 만한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북한 인권 현장사무소도 이달 또는 다음달에 서울에 개설된다. 이미 이곳에서 일할 직원을 뽑았고 이들의 지위에 대한 논의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남북한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인권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보수단체는 대북 전단 살포 재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의 최저 임금을 월 73.04달러에서 74달러로 일방적으로 인상해 이달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개성공단 입주기업 사이에서는 이런 식으로 북한이 계속 임금을 인상한다면 더이상 개성공단이 갖는 저임금의 매력은 사라진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류길재 장관 후임으로 임명된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통일 정책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홍 후보자가 헤쳐 나가기에는 버거운 상황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부는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어 나가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다. 무용론까지 나오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진정성 있는 조치’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과거보다 회담 재개의 기준이 낮아졌다고 느낄 수 있는 당근을 북한에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어떤가. 박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노동신문은 1일 사설에서 “남조선 당국은 기만적인 대화 타령을 걷어치우고 실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일에는 보란 듯이 미사일을 발사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북남 사이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해 끊어진 민족적 유대와 혈맥을 잇고 북남 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강국 건설을 강조했다. 이런 북한의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파트너는 누구인가? 경제난을 해결할 파트너가 누구인지 고려한다면 북한은 더이상 이런저런 조건을 달지 말고 하루빨리 당국 간 대화에 임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parti98@seoul.co.kr
  •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새내기들 3.1절 태극기 흔들다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새내기들 3.1절 태극기 흔들다

    성균관대학교(총장 정규상) 사회과학대학 새내기 500여명은 1일 오전 10시 인천 강화도에서 제96주년 3·1절을 맞아 ‘태극기 흔들기’ 행사를 가졌다. 학생들은 이날 2박 3일 일정으로 ‘새내기 배움터’에 참여했던 터다.  사회과학대 학생회는 신입생 MT 문화를 보다 건전하고 발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뜻있는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신입생 손한결군은 “예전부터 주변에서 새내기배움터하면 동기, 선배들과 술 마시고 오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3·1절을 맞아 동기들과 태극기를 함께 흔드니 가슴 속에 뭉클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울리는 ‘그날의 함성’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울리는 ‘그날의 함성’

    96주년 3·1절을 맞은 1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립공원에서 열린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3·1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朴 “北, 더이상 대화 외면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1일 “북한은 더 이상 남북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산가족 생사확인과 상봉의 정례화, 서신교환 등 이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협의를 조속히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3·1절 96주년 기념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 준비는 결코 북한을 고립시키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와 공동 번영과 평화의 길로 가도록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사전준비의 일환으로 우선 남북철도의 남측 구간을 하나씩 복구하고 연결하는 사업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관계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한·일 관계에 대해 “이제는 보다 성숙한 미래 50년의 동반자가 돼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야 할 때”라면서 “일본이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역사적 과제”라고 규정하면서 “올해 들어서도 벌써 두 분의 피해 할머니들이 평생 가슴에 맺힌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그분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사설] 일본이 역사사실 인정해야 ‘동북아 화해’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취임 후 세 번째인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역사 직시와 솔직한 반성을 전제로, 올해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한·일 두 나라의 미래 동반자관계의 질적 변화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또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와 역사 왜곡 교과서 수정 등의 필요성을 열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역사란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며, 역사에 대한 인정은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이라는 더든 교수의 말을 직접 인용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오는 5월로 예정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 의회 연설과 8월 15일 종전 70주년 기념 담화를 앞두고 일본이 침략의 과거사라는 역사적 진실을 적당하게 얼버무리려 해선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아베 총리 집권 이후 일본 정부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군 위안부 문제조차도 부인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 인식에 따른 결과이고 이것이 한·일 관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보다 더 성숙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우리 국민들의 인식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최근 한·중·일의 역사 갈등이 3국 모두의 책임이라고 지적해 논란을 빚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위안부는 끔찍한 인권침해”라고 밝힌 뒤 일본의 진정한 반성을 요구해 온 미국 정부가 양비론으로 기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 수위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 지난달 22일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행사에 3년째 연속 중앙 정부의 차관급 인사를 파견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우경화 행보를 숨기지 않았다. 현재로선 역사와 영토에 대한 일본의 도발은 중학교 검정 결과 발표와 안보법 개정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오는 3월 말~4월 초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시 우경화된 교과서 출판이 쏟아지고 일본 정부는 5월 초엔 자위대의 적극적 국제 분쟁 개입을 인정하는 안보법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한·일 관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온 아베 정부의 말은 국제사회를 호도하는 외교적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짙어진 것이다. 동북아 화해 협력을 가로막는 다른 걸림돌은 북한이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문화적 민간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남북 간 소통의 통로 마련을 제의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3·1절을 맞아 노동신문 1면 사설을 통해 남북 대화를 위한 우리 측의 노력을 “기만적 대화 타령”으로 일방적으로 무시한 것은 관계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교류를 첫 단추로 진정성 있는 다양한 교류 협력의 길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동북아의 복잡한 외교·안보 지형은 단칼에 해결할 수 없는 고차원 함수와도 같다. 우리로선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문제를 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본은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한다.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는 민족에 미래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 [기고] 3·1정신은 통일 이끄는 민족 유산/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기고] 3·1정신은 통일 이끄는 민족 유산/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올해는 광복 70주년으로 분단 70년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미래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 원년이기에 3·1절의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 온 민족이 남녀노소, 신분과 나이, 종교와 지역을 넘어 하나가 돼 외쳤던 3·1 만세운동은 조국의 독립뿐 아니라 인류의 자유와 평등, 평화와 공존, 조화와 통합 이념을 구현한 위대한 민족유산이다. 특히 70년 동안 분단된 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의 현실 그리고 중국·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의 역사, 영토 문제가 부각됨에 따라 3·1정신의 소중한 시대적 가치를 느끼게 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국권 강탈과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했던 조선총독부의 무력통치 및 민족문화 말살 정책은 민족의식과 항일독립 투쟁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에 모인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함에 따라 시작된 3·1 만세운동은 수개월 만에 전국 각 지방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운동은 일본·만주·연해주·미주 지역 등 국외에서도 1년여 동안 지속됐다.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 만세운동 당시 현장에서 순국하거나 부상과 옥고를 치른 분이 7만여명에 이른다. 3월 1일부터 3개월간 국내외에서 1542회의 만세 시위가 전개됐고 참가 인원은 200만명이 넘은 것으로 기록돼 있어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역사 혁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은 중국 길림의 대한독립선언과 일본 도쿄의 2·8 독립선언에 이어 일어난 최고의 독립운동으로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렸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고 독립운동의 구심체가 된 광복군 창설로 이어졌다. 또한 3·1운동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국제 정세와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한 선열들의 숭고한 저항이 반영된 혁명이다. 미국 월슨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중에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와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는 국제 정세를 관망하고 있던 독립운동단체에 일제 침략의 불법성과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한청년당에서는 당시 김규식을 한국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했고 국내와 일본, 만주와 연해주로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보내 독립 시위를 크게 전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중국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됐고, 필리핀·이집트 등 세계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3·1정신은 우리 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오늘날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요,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이념인 것이다. 96년 전 독립만세를 외쳤던 애국 선열들의 희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과 튼튼한 국가와 번영된 통일 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은 국민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오늘날 국가 앞에 놓인 많은 시련과 도전을 극복하고 지난 70년의 이념 대립과 분단 갈등의 고리를 끊고 국민 통합을 이뤄 미래와 통일의 문을 열어 가는 소중한 민족유산으로 간직하자.
  • “北, 진정성 있는 대화땐 협력”… “日, 위안부문제 꼭 풀고 가야”

    “北, 진정성 있는 대화땐 협력”… “日, 위안부문제 꼭 풀고 가야”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집권 후 세 번째 맞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대화 재개를 강조했다. 이 때문인지 핵이나 인권 문제 등에 대한 강도 높은 발언은 자제했다. 박 대통령은 또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수정움직임을 비판하면서 일본의 태도변화를 거듭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분단 70주년인 올해 남북 간 대화 재개를 국정 핵심과제로 삼은 만큼 비교적 온화한 대북 메시지를 보냈다. 당장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추진과 통일준비위원회를 통한 통일준비 등을 언급하며 “결코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공동 번영과 평화의 길로 가는 데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박 대통령은 또 북한은 더 이상 남북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진정성 있는 대화와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모든 협력의 길이 열려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해 말 정부가 당국 간 대화를 제의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핵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벗어나 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평화와 체제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개방과 변화의 길로 나오라”며 짧게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오히려 이산가족 상봉 및 교류와 철도복원사업 등 민간교류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민족 동질성 회복에 기여하는 순수 민간교류를 적극 장려할 것”이라며 “우선 남북철도의 남측 구간을 하나씩 복구하고 연결하는 사업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제의에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면 사설에서 “통일대박론이나 통일헌법 조작 놀음으로는 북남관계와 조국통일과 관련한 어떤 문제도 민족 공동의 이익에 맞게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대결만을 심화시킬 뿐”이라면서 “남조선 당국은 기만적인 대화타령을 걷어치우고 동족끼리 손잡고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실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계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한·일 관계에 대해 박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우선 군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퇴행적 역사왜곡 움직임에 결코 양보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라면서 “역사란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며 역사에 대한 인정은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그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시도를 비판하며 미국 내 역사학자의 공동성명을 주도한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양국이 미래로 함께 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역사적 과제”로 규정했다. 위안부 할머니의 평균 연령이 90세에 이를 만큼 고령인 상황에서 이 문제를 일본이 성의 있게 하루속히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올 5월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과 8월 종전 70주년 기념담화를 앞두고 역사적 진실을 얼버무리려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朴대통령·김무성·문재인 대표 이달 중순 靑 3자회동

    朴대통령·김무성·문재인 대표 이달 중순 靑 3자회동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이르면 이달 중순 청와대에서 3자 회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1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 행사 직전 여야 대표와 환담하면서 중동 순방을 마친 뒤 결과를 설명해 달라는 두 대표의 제안을 수락했다고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이 전했다. 박 대통령과 김·문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특히 2012년 대선에서 경쟁을 벌였던 박 대통령과 문 대표가 만난 것은 대선 이후 처음이다. 권 대변인에 따르면 환담 자리에서 김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중동 순방 이후 여야 대표들을 불러서 순방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시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문 대표도 김 대표의 제안에 적극 호응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전에도 야당을 여러 번 초청했는데,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그런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 갔다 와서 뵙겠다”고 답했다. 권 대변인은 3자 회동 성사 가능성에 대해 “(박 대통령이) 오케이하신 것이다. 정리하면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오는 9일 이후 청와대 3자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표도 최근 경제와 안보를 의제로 한 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3자 회동은 2013년 9월 당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대표 때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대한민국독립만세! 3.1절 그날의 함성”

    “대한민국독립만세! 3.1절 그날의 함성”

    3·1절인 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박윤슬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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