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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요칼럼] 고궁박물관, 국가대표급 박물관이 되려면/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고궁박물관, 국가대표급 박물관이 되려면/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충남 예산의 가야산에는 오페르트의 도굴사건으로 잘 알려진 남연군의 무덤이 있다. 흥선대원군이 경기 연천에 있던 아버지, 곧 훗날 고종의 할아버지가 되는 남연군의 무덤을 1844년(헌종 10년) 백제사찰 가야사 터로 옮긴 것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보덕사가 있다. 비구니 수도 도량답게 깔끔한 보덕사에서 인상적인 것은 극락전 앞 대방(大房)의 존재다. ‘원스톱 불공’이 가능하도록 수행 공간과 생활공간 등 다양한 쓰임새를 부여한 전각이 대방이다. 보덕사는 흥선대원군이 남연군 무덤의 수호사찰로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방을 두고 흔히 조선 후기 유행한 염불 수행을 위한 복합 법당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서울 돈암동 흥천사와 경기도의 고양 흥국사와 남양주 흥국사 등 왕실 원찰에 대방이 집중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염불수행은 염불수행이지만 한마디로 극락왕생과 현세발복을 비는 왕실 여인들의 기도공간이었다. 파주 보광사 만세루나 화성 용주사의 쌍둥이 전각 나유타료와 만수리실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다루어야 영역은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다 뜬금없이 보덕사와 대방의 존재를 떠올리게 됐다. 경복궁 내부에 자리잡은 고궁박물관은 최근 주목받는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열리는 ‘문예군주를 꿈꾼 효명’ 특별전은 2007년 개관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는 기획이 아닐까 싶다. 효명세자는 2016년 방영된 TV드라마에서 배우 박보검이 연기해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 특별전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 역시 조선왕실의 안태(安胎)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호평을 받았다. 지난 3·1절에는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이라는 작은 전시를 가졌다. 오는 10월에는 ‘18세기 화장문화’를 주제로 흥미로운 국제학술대회도 연다고 한다. 그럴수록 너무 권력의 한복판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도 하게 된다. 고종시대 왕실사무를 담당한 궁내부에는 일반적인 행정기관 말고도 음악을 다루는 장악원, 의약을 맡아보는 내의원, 음식을 담당하는 사옹원, 의복과 일용품 등 공급하는 상의원, 마필과 목장을 관리하는 태복시, 이전에는 내명부라고 불린 명부사, 내시와 관련된 일을 맡은 내시사, 전각을 관리하는 전각사 등이 있었다. 생활 및 의례를 담당하는 모든 기능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고궁박물관의 탐구 대상은 아직 왕과 왕비의 공간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 대방만 해도 불교적 해석만 있을 뿐이다. 불암산과 북한산, 관악산 자락 등에 남아 있는 궁녀들의 무덤인 마애부도 역시 다르지 않다. 서울 창동과 월계동에 걸쳐 있는 초안산의 내시 무덤군(群)도 조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있다. 왕실용 그릇을 굽던 경기도 광주의 사옹원 가마터 수백 곳 역시 왕실 문화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팔당호 수변 분원은 사옹원 분원이라는 기관 이름이 그대로 땅이름이 된 것 아닌가. 분원은 또 기관 운영을 위해 한강을 지나는 모든 뗏목에서 세금을 징수했으니, 도성 장작값 인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고궁박물관이 복원해야 할 삶의 모습은 왕과 왕비에 그치지 않고 상궁과 내시는 물론 도공과 마부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같은 경복궁 경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이전 계획으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고궁박물관도 언젠가 좁은 궁궐 내부에서 벗어나 넓은 바깥으로 나서야 한다. 그날을 위해서라도 고궁박물관이 작은 특수 박물관으로 역할을 가두지 말고 왕실 문화, 나아가 왕조 문화 전반을 다루는 국가대표급 박물관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 좋겠다. 그렇게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경쟁할 때 우리 박물관 문화도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충북 女독립운동가 11명 흉상 11월부터 전시

    충북도가 지역 출신 등 충북과 인연이 있는 여성독립운동가 11명의 흉상을 만들어 전시한다.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여성들의 가치와 정신을 알리기 위해서다. 도는 이 흉상들을 순국선열의날인 오는 11월 17일부터 청주시 상당구 목련로 미래여성플라자 1층에 상시 전시한다고 22일 밝혔다. 흉상으로 제작되는 신순호·오건해·이국영(청주)·윤희순·어윤희(충주)·박재복(영동)·임수명(진천)·연미당(증평) 선생은 충북 출신으로 중국과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하거나 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투사들이다. 박자혜·신정숙·이화숙 선생은 충북 출신 독립운동가인 신채호·장현근·정양필 선생의 부인들로 직접 항일운동에 참여하거나 남편의 광복운동을 적극 지원한 인물이다. 총사업비는 3억원이다. 도는 정부의 3·1절 100주년 기념사업에 이 사업을 신청해 국비 1억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흉상은 작가 7명이 만들고 있다. 김은영 여성정책팀장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이 그동안 주목받지 못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건국훈장 애족장 이상 받은 분들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 1만 5689명 가운데 2.8%인 444명이 여성이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4·3 수형인 53억 형사보상금 받는다

    사건 71년 만에 제주지법 지급 결정 4·3사건 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을 통해 명예를 되찾은 제주4·3 생존 수형인들이 71년 만에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을 받게 됐다. 4·3 수형인은 사건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서대문형무소와 대구·전주·인천 형무소 등 전국 각지로 끌려가 억울하게 수감된 이를 말한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정봉기)는 불법 군사재판 재심을 통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임창의(99·여)씨 등 제주4·3 생존 수형인 17명과 별세한 현창용씨에게 총 53억 40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결정을 내렸다고 21일 밝혔다. 구금 일수에 따라 1인당 최저 약 8000만원, 최고 약 14억 7000만원을 받는다. 임씨 등 18명은 1948∼1949년 내란죄 등 누명을 쓰고 군사재판에서 징역 1년에서 최대 20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지난 1월 17일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4·3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이 별다른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져 재판 자체가 ‘무효’임을 뜻하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재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임씨 등은 지난 2월 22일 제주지방법원에 형사보상청구서를 제출했다. 형사보상청구는 형사보상법에 따라 형사피고인으로 구금됐던 자가 불기소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받을 때 국가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재판부는 임씨 등 4·3 수형인의 형사 보상금을 법에서 정한 최고액인 구금일 1일당 33만 4000원으로 정했다. 형사보상금은 최저임금법상 일급 최저금액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최대 5배까지 줄 수 있다. 애초 지난 2월 22일 이들 18명이 청구한 형사보상금 규모는 총 53억 5748만 4000원으로 이번에 법원이 결정한 금액과 비슷하다. 재판부는 “4·3 사건의 역사적 의의와 형사보상법의 취지 등을 고려해 대부분 청구한 금액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다”고 밝혔다. 제주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2만여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같이 펀딩’ 유준상, 태극기함 목표 달성 “난 전생에 독립투사”

    ‘같이 펀딩’ 유준상, 태극기함 목표 달성 “난 전생에 독립투사”

    ‘같이 펀딩’이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첫 항해를 시작했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서 아주 특별한 태극기함을 준비한 유준상의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있던 태극기의 가치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숨은 영웅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진심이 통할 때 전해지는 기분 좋은 즐거움과 유익함,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18일 첫 방송된 MBC 새 예능 프로그램 ‘같이 펀딩’에는 배우 유준상이 준비한 3.1주년 100주년 기념 아주 특별한 국기함 프로젝트가 베일을 벗었다. MC 유희열을 비롯해 유준상, 유인나, 노홍철, 장도연이 한자리에 모여 유준상이 꺼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공감 수다를 펼쳤다. ‘같이 펀딩’은 혼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분야의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이 확인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같이’ 실현해보는 예능. 우선 첫 방송은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루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MC 유희열은 펀딩에 대해 잘 몰랐다고 밝히면서도 “시청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힘들이 하나둘 모여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며 ‘같이 펀딩’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가장 먼저 프로젝트를 공개한 유준상은 ‘진심’을 꺼냈다. 유준상은 “나는 전생에 독립투사였을 것”이라며 체격이 왜소했던 어린 시절 이 생각만 하면 든든했다고 밝히면서, 성인이 되어 3.1절에 태극기를 걸고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다녀온 이유도 들려줬다. 평소 나라를 향한 마음을 표현해 왔던 유준상은 “태극기를 다는 날 너무 기뻤다. 예전에는 태극기를 안 단 집이 드물었다. 자랑스럽게 달았었다. 태극기가 모두의 마음에 펄럭이길 바라면서 시청자들과 같이 만들어가고 싶다”고 태극기함 프로젝트를 준비한 이유를 밝혔다. ‘같이 펀딩’ 출연진은 학창 시절 태극기함을 만들었던 경험부터 태극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나눴다. 그러면서 “축제 때는 태극기가 있는데, 정작 달아야 할 그날에는 없다”, “이건 알아야 한다”면서 국기함 프로젝트에 공감했다. 유준상은 5월부터 제작진과 회의를 하고 이웃 주민들과 동료들을 찾아 국기 게양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살펴봤다. 또 아이템 제작에 앞서 태극기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역사 강사 설민석과 함께 진관사를 찾았다. 설민석은 역관 이응준이 고안했다는 최초의 태극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의 그 순간에도 휘날리던 태극기의 의미를 들려줬다. 독립운동 불교계 대표였던 초월스님의 이야기도 소개됐다. 지난 2009년 진관사 칠성각 보수 공사 중 보자기가 하나 발견됐는데, 이 보자기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초월스님의 이야기가 공개된 것. 일장기 위에 덧대고 그린 태극기 보따리 안에는 민족의 독립운동 기사가 실린 신문이 담겨 있었다. 진관사를 방문해 처음 초월스님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는 유준상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태극기에 의미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웅의 이야기는 일요일 저녁 안방극장에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태극기의 의미를 다시 마음의 새긴 유준상은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태극기를 달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시장 조사 및 아이템 회의에 돌입했다. 방송 말미에는 유준상이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디자이너 이석우와 함께 태극기함을 만드는 과정이 살짝 공개돼 향후 그려질 이야기에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진심이 전해지니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움직였다. 유준상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국기함 프로젝트는 언젠가부터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다는 것에 소홀해지고 진짜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고 있던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두드리며 그가 나누고자 한 생각을 같이 만들어보고 싶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같이 펀딩’ 첫 방송 중 시작된 유준상의 국기함 펀딩은 오픈된 지 약 10분 만에 1차 목표인 815만 원을 달성했고, 사이트 응답 지연 속에서 1차 준비 수량인 5000개의 펀딩이 방송 종료시점인 오후 8시 전에 조기 종료됐다. ‘같이 펀딩’ 측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발빠르게 응답하면서 추가 수량을 올렸고 총 1만 개가 오후 8시 30분 전에 마감됐다. 최종적으로 1차 펀딩 달성률은 4110%를 기록했다. ‘같이 펀딩’ 측은 펀딩 마감 이후에도 “국기함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고 싶다”라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접하고 2차 펀딩을 논의 중이다. 시청자가 지켜보는 것은 물론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새로운 도전을 바탕으로 한 ‘같이 펀딩’은 진정성이 담긴 생각 위에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같이’의 힘을 보여주며 새로운 힐링 예능의 탄생을 알렸다. 향후 유인나의 오디오북, 노홍철의 소모임 특별전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새로운 재미를 안길 예정이다. ‘같이 펀딩’은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30분에 방송되며, 네이버 해피빈 페이지를 통해 실제 펀딩에 참여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文, 비핵화 중재자에서 인내자로… “북미 협상재개 중대 고비”

    文, 비핵화 중재자에서 인내자로… “북미 협상재개 중대 고비”

    “북미 협상 조기 개최에 집중할 때” 한국 역할 강조하지 않고 대화 촉구 北 통미봉남 전략에 입장 선회한 듯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를 모색하는 현 시점을 ‘중대한 고비’라고 규정하면서도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자임하기보다는 북미 양측에 대화를 촉구하면서 절제된 수준으로 협상 재개에 관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북한이 최근 ‘통미봉남’ 전략을 취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돼 궤도에 오를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남북미 모두 북미 간의 실무협상 조기 개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지난 2월 28일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3·1절 기념사에서 2차 정상회담에 대해 “더 높은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우리 정부는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 낼 것”이라고 말한 것과 대비된다. 북한은 지난 2월 2차 정상회담 이후 회담 결렬의 책임이 남한의 ‘잘못된’ 중재에 있다고 판단,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과 직거래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남한 정부에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말했으며, 북한은 최근 들어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 잇따른 무력시위와 함께 비난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 정부가 북미 협상에 공개적으로 관여하며 북한의 반발을 불러들이기보다는 실무협상이 재개되기까지 대화 분위기를 조성·유지하며 간접적으로 재개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북한의 최근 무력시위로 비핵화 협상에 대한 국내외 회의론이 불거지는 데 대해 “우리는 보다 강력한 방위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예의 주시하며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에 만전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북한과 동요 없이 대화를 계속하고, 일본 역시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며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특별히 일본을 언급한 것은 지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인식하에 일본을 비핵화 협상의 우호적 파트너로 유도하고자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위안부·징용 거론 안한 文… 한일 미래지향적 관계에 무게

    위안부·징용 거론 안한 文… 한일 미래지향적 관계에 무게

    비판 자제 수위 조절하고 평화시대 강조 치킨게임 양상 막고 외교해법 모색 판단 GSOMIA 연장 결정 등 변곡점 아직 남아 文 “세계 고도 분업체계 통해 공동 번영” 日의 경제보복 이율배반적 조치 지적 속 한국경제 체질 개선강국 발돋움 의지도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수교 이후 가장 얼어붙은 가운데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광복절 메시지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란 표현에 담긴 극일 의지와 더불어 “지금이라도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는 대화의 손짓으로 축약된다. 과거사 문제는 국민적 공감대와 피해자 합의가 선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어가되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지향한다는 ‘투트랙 기조’의 연장선인 셈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고강도 비판을 자제하고, 양국 간 민감한 현안인 ‘위안부’나 ‘강제징용’을 직접 거론하지 않는 등 수위 조절을 했다는 점에서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 데 보다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오는 23일까지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몇 차례 터닝포인트가 남아 있지만, 향후 일본의 대응 기조에 따라 한일 갈등 국면이 전환점을 맞이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이날 대일 메시지의 전반적 기조는 앞서 문 대통령이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역사를 거울삼아 한국과 일본이 굳건히 손잡을 때 평화의 시대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했던 것과 맞닿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승자 없는 게임”이라고 규정하며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제보복의 부당함과는 별개로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을 닫아 놓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된 강제징용 문제를 한 번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신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했다”며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2015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전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우리의 자손, 그리고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안겨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데서 드러나듯 우익은 물론 일본 사회 내 팽배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도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또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이율배반적이란 점을 지적하고, 단호하게 ‘극일’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세계는 고도 분업체계를 통해 공동번영을 이뤄 왔고, 일본 경제도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분업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며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으며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위기를 오히려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기회로 삼고, 일본을 뛰어넘는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천명했다. 문 대통령의 인식은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이루지 못했다”거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책임 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는 대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한국 가서 사죄해야 한다”…日할머니의 ‘마지막 여행’

    “한국 가서 사죄해야 한다”…日할머니의 ‘마지막 여행’

    올 3·1절 100주년 서대문형무소 방문 “고통받고 죽어 간 곳” 휠체어서 내려 소녀상 만난 뒤 귀국 10일 만에 별세한국에 대한 ‘가해의 역사’ 앞에 일본은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한다고 늘 말해 온 일본 할머니가 올 3·1절 100주년을 맞아 ‘생애 마지막 여행’을 서울에서 한 뒤 조용히 눈을 감은 사실이 알려졌다. 최후의 여행에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과의 만남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화장한 뒤 어릴 적 살던 북한 압록강변에 산골(散骨)해 달라고 유언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거주해 온 에다 유타카 할머니. 1928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일본 군인의 딸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취학 직전 일본에 돌아갔던 에다 할머니는 올해 3·1절 한국을 방문해 자신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힘을 소진한 뒤 10일 만에 세상을 떴다. 14일 장남 에다 다쿠오(64)에 따르면 할머니는 올해 3·1절을 앞두고 아들에게 “죽기 전에 나를 한국에 꼭 좀 데려가 달라”고 생의 마지막 부탁을 했다. 연로해지면서 심장병, 폐렴에 한랭응집소증이란 희귀병까지 나타난 90대 어르신을 모시고 비행기를 타는 게 겁이 났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건강을 자신하지 못했던 할머니는 만일의 경우 불필요한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달라고 의료진에게 요청하는 ‘리빙윌’(종말기 의료에 관한 사전의향서)까지 준비했다. 할머니는 어릴 적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임종 때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순남이’라는 조선인 식모가 나를 정말 예뻐하고 잘해 주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순남이를 얼마나 구박하고 괴롭히셨는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게 마음에 걸려서 남북이 통일되면 꼭 순남이랑 살던 동네에 찾아가 용서를 빌려고 했지.” 할머니는 평소 1919년 3·1운동이 같은 해 중국 5·4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는 등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독립운동의 뿌리라는 생각을 확고히 갖고 있었다. 한반도에 대한 애착에 더해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결과였다. 졸업 후 할머니는 일본 민속학의 태두인 미야모토 쓰네이치의 밑에서 민중생활사를 연구했다. 위안부 피해를 다루는 단체 일본의전쟁책임자료센터 회원으로도 꾸준히 활동했다. 이 단체는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조사자료를 일본 정부에 제출하고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 등을 펴낸 곳이다. 그러면서 야간고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일본의 조선 침략을 알리고 전쟁의 참화를 일깨우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할머니는 지난해 3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뉜 것은 일본 때문”이라는 부채의식에서였다. 평소 할머니의 말. “1945년 2월 태평양전쟁에서 도저히 승산이 없게 되자 당시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은 연합군에 항복을 하려고 했지. 그런데 그때 국가 지도부가 결단을 못내리면서 전쟁이 길어졌고 그 결과 오키나와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등 막대한 추가 인명피해를 초래한 거야.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소련이 참전하게 되면서 남북이 나뉘고 말았지. 그러니 우리는 남북 분단에 막대한 책임이 있는 거야.” 지난 2월 28일 휠체어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할머니는 3월 1일 광화문 기념행사에서 온 힘으로 태극기를 흔들었고, 2일에는 임진각 망배단을 찾아 남북 통일을 기원했다. 경건한 마음가짐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3일 서대문형무소에 갔을 때 할머니는 갑자기 휠체어에서 내리게 해 달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간 이곳을 내가 앉아 갈 수는 없다”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국에서 마지막 날인 4일 할머니는 위안부 소녀상 앞에 데려다 달라고 청했고, 비슷한 또래였을 소녀의 손을 잡았다. 회한과 미소가 한데 섞인 표정으로 소녀의 손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그리고 귀국 비행기를 탔다. 마지막 바람을 다 이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할머니는 일본 도착 이틀 후인 6일부터 병상에 누웠고, 14일 운명했다. 장남은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최후의 말은 ‘반자이’(‘만세’의 일본 발음)였다”면서 “마지막으로 3·1운동의 외침을 머릿속에 간직하며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몰랐던 日식민지 상처… 이젠 가슴 벅찬 광복의 의미 느껴요”

    “몰랐던 日식민지 상처… 이젠 가슴 벅찬 광복의 의미 느껴요”

    “한국에 있는 일본 식민지배의 상처를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느껴보려고만 했을 뿐인데도 너무나 많은 한국 분들이 고마움을 표시해 주셨어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한국인들이 저희 일본인들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일본 대학생 미야자키 히나코(23)에게 올 8월 15일은 여느 해의 그날보다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일본에서 기념하는 ‘종전일’을 넘어서 한국인들에게 ‘광복절’로서 8·15가 갖는 의미를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와세다대 문화구상학부에서 문예·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는 미야자키는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와 있던 올 초 한국 내 식민역사 현장 탐방 모임인 ‘민카이’를 조직했다. 민카이라는 이름은 ‘모두 함께 가보자’라는 뜻의 일본어 문장 ‘민나데잇테미요’에서 따온 것이다. 민카이는 일본 식민지 역사의 상흔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는 곳들을 직접 찾아가 둘러본 뒤 그로 인해 얻은 생각이나 느낌을 공유하는 한일 젊은이들의 모임이다. 전체 회원은 27명으로 상당수는 미야자키가 자신의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뜻을 같이 하자고 부른 사람들이다. 절반인 14명이 일본인이다. 미야자키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도 모임 창립자로서 후배들과 함께 활동을 이끌고 있다. 민카이를 만든 계기는 올 3·1절 100주년이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의 언니들과 만나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흔들었는데, 저와 달리 옆에 있던 다른 일본인 친구는 ‘이런 분위기가 무섭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됐죠. 과거 식민지배의 역사를 모르니까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그렇다 보니 과거에 대해 알기를 더욱 꺼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야자키는 일본인 혼자서는 선뜻 직접 가볼 엄두를 내기 어려운 장소에 여럿이 함께 손잡고 가보기로 했다. 현장을 봐야 비로소 의미 있는 사고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쉽게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칫 민감해질 수 있는 토론의 형식은 배제했다. 현장 탐방은 그동안 서대문형무소를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역사 관련 물품을 소장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위안부 피해자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집,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가 안치돼 있는 경기 파주시의 서울시립묘지 등에서 차례로 이뤄졌다. 탐방이 진행되고 이를 사진 등으로 알리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연락을 해 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앞으로는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문제 수요집회 등에도 가볼 예정이다. 미야자키는 2015년 대학에 입학한 후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한국의 문화, 역사 등에 푹 빠져들게 됐다. “사실 고등학교 때 장근석이나 씨엔블루 같은 연예인들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대해 별로 좋은 인식은 없었어요. 그저 ‘일본을 싫어하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었죠.” 미야자키는 한국의 식민역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활동들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교수님 등 학자들의 발표 중심으로 이뤄지는 학술행사 같은 것은 너무 어려워서 쉽게 다가가기가 힘듭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자리가 흥미롭거나 즐거울 리가 전혀 없죠. 쉽고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역사 커뮤니티 같은 것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미야자키는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기였던 올 5월 18일에는 광주 망월동 민주묘지에도 참배를 하고 왔다. 그는 “한국에는 아픈 현대사를 후대에 증언해줄 분들이 많으셔서 다행”이라면서 “일본에는 과거 전쟁의 참화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실 어르신들이 자꾸 세상을 떠나고 계셔서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은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한국에 대한 반감이 거의 종교적인 수준인 사람들이 일본에 많지는 않아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가감 없이 사실을 담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려고 합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법무부 광복절 647명 가석방…특사 3년째 없어

    법무부 광복절 647명 가석방…특사 3년째 없어

    모범 수형자와 생계형 사범 등 심사해 선별음주운전·사기·성범죄·가정폭력 상습범 제외광복절 특별사면 2017년 이후 3년째 없어법무부가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수형자 647명을 가석방한다. 광복절 특별사면은 2017년 이후 3년 연속 없다. 법무부는 오는 14일 오전 10시 전국 53개 교정시설에서 수형자 647명을 가석방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최근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고 모범 수형자와 생계형 사범 등을 중심으로 가석방 대상자를 선별했다. 음주운전과 사기·성범죄·가정폭력 등 상습범은 관련 범죄 발생을 억제하고 경각심을 제고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가석방을 제한한다는 방침에 따라 대상에서 제외됐다. 법무부는 해마다 3·1절과 부처님오신날·광복절·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적격심사를 통과한 수형자를 가석방한다. 광복절 특별사면은 2017년부터 3년 연속 시행되지 않았다. 올해 3·1절에 맞춰 제주해군기지 반대집회 관련자를 포함한 4천378명의 사면이 이뤄진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 특사를 포함해 취임 이후 두 차례 사면권을 행사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文, 8·15 경축사 숙고… ‘극일·대화의지’ 투트랙 메시지 전망

    文, 8·15 경축사 숙고… ‘극일·대화의지’ 투트랙 메시지 전망

    靑, 두 달 가까이 연설 준비에 공들여오는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메시지가 한일 갈등의 변곡점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달 수출규제 조치 이후 최악으로 치닫던 한일 관계가 최근 ‘숨고르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어느 메시지보다도 정치적 무게를 지니는 8·15 경축사의 방향성과 수위에 따라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문 대통령은 11일 공개일정을 잡지 않은 채 나흘 앞으로 다가온 8·15 메시지와 관련,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우대 대상국) 배제 조치 이후 일본 정부의 움직임과 대응상황 등에 대한 보고를 받고 숙고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번 8·15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극일’과 ‘대화의지’를 투트랙으로 표명하되 무게중심은 한일 관계의 ‘미래’에 맞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경제보복 국면에서 드러났듯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누적 무역적자가 700조원에 이를 만큼 극심한 대일 경제의존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경제적 ‘광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한일이 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이 (8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결국 일본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승자 없는 게임’이라고 한 것은 우리가 먼저 확전을 하지 않을 것이며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현 국면을 대화로 풀어 보자는 행간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경제 실현을 극일 해법으로 제시했던 것을 구체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거사 해법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강조해 온 국민적 공감대, 피해 당사자의 동의 등 대원칙은 유지하되,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한일 갈등의 ‘확전’을 촉발할 메시지는 담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철학과 지향을 담아 내는 그릇이자 고도의 통치행위이기도 한 3·1절 경축사와 8·15 기념사는 이전 정부에서는 통상 석 달 정도 준비기간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메시지의 빈도 자체가 절대적으로 늘어나면서 3·1절과 8·15 연설 준비기간도 한 달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이번 8·15 연설은 두 달 가까이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영민 비서실장과 주요 수석·비서관들이 머리를 맞대 얼개를 완성했고, 완성된 초안을 놓고 참모진의 ‘독회’와 대통령의 검토를 되풀이하며 ‘퇴고’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광복절 특사, 청 “아직 논의된 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8월 15일 광복절 특별사면(특사)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2일 기자들과 만나 “광복절 특사는 (아직)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사면 대상자 선정 절차를 고려하면 최소한 약 3달 전부터 대상자 검토가 시작되고,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추천자 명단을 한두달 전에는 추려야 한다. 그러나 법무부와 검찰은 아직 실무작업을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절차와 정황을 감안할 때 이번 광복절에도 특사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히 정치인에 대한 사면권 행사는 국민적 동의와 정치권에서의 합의된 요청이 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광복절 특사를 단행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신년 특사 때 6444명을 특사 및 감형했고, 올해는 4378명에 대해 3·1절 100주년 특사를 실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뇌물, 알선수재·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자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사면권을 행사해왔다. 특히 올해 3·1절 특사 때에는 정치인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광복절 특사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다.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중심으로 사면 요구가 높아질 수는 있다. 그러나 특사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사면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기조에 따라 정치인은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씨줄날줄] 한중 우호 카라반/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중 우호 카라반/황성기 논설위원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3·1절이 지난 지금도 국내외에서 열리고 있다. 정부의 ‘100주년위원회’가 선정한 104개 사업 과제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독립의 횃불’ 같은 사업은 3·1운동이 일어난 전국의 22개 지역을 돌면서 당시의 운동을 재현하는 행사인데, 3월 1일 시작돼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1일 끝났다. 근린공원으로 용산구가 관할하던 효창공원은 보훈처 관할의 독립공원화를 위해 현재에도 시설물 조성 등이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 사업이다. ‘한중 우호 카라반’ 사업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진 104개 과제 중 미래 부문에 속해 있다. 젊은층으로 선발된 국민대표단 100명이 9일부터 17일까지 중국 내 임정 활동지인 충칭, 광저우, 창사, 항저우, 자싱, 상하이를 열차로 돌게 된다. 국민대표단은 공모를 거쳐 선발됐다. 인기가 좋아 20~30대 900명가량이 응모했다. 국가유공자 후손 21명을 포함해 성별, 지역별, 대학별, 다문화가정 등 다양하게 대표단을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열사들의 발자취를 찾아 임시정부의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와 희망의 미래를 향한 젊은 세대의 의지를 중국에서 발신하게 된다. 임정 활동지에 머무르면서 중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공공외교 대화, 역사문화 콘서트, 우의를 나누는 식수 행사도 가진다. 이 행사가 미래 부문에 속한 것은 이들이 순회하는 중국 6곳에서 과거를 되돌아 보면서도 한중 우호를 통한 미래지향적 평화협력 메시지를 현지인들과 공유하기 때문이다.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만세삼창, 애국가 제창을 하는가 하면 복원된 광복군 총사령부도 방문한다. 광저우에서는 황포군관학교, 열사묘역을 찾고 창사에서는 한중 양국에서 훈장을 수여한 독립운동가 유자명 선생 기념관에서 한중 우의를 다지는 나무를 심는다. 임시정부는 1919년 충칭에서 시작해 상하이, 항저우 등 중국 곳곳을 21년간 4000여㎞ 옮겨다니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명맥을 이어 왔다. 8박9일간의 대장정에는 역사 강사 최태성, 국악 가수 송소희, 작가 조승연, 가수 박기영씨 등도 동행한다. 대학생에서 회사원까지 있는 국민대표단이 과연 무엇을 보고 느끼고 돌아올지 흥미롭다. 국민대표단의 일원인 박연수(21·대학생)씨는 “얼마 전 대학생 근현대사 탐방단의 일원으로 러시아도 돌아봤는데,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의 집터에 표석이 없는 걸 보고 놀랐다”면서 “러시아보다는 사정이 낫다는 중국 쪽 항일 유적지를 돌면서 우리 조상의 발자취를 몸과 마음으로 느껴 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marry04@seoul.co.kr
  • [공피자들] 그 경찰들만 승승장구… 송전탑 할매들은 사과받지 못했다

    [공피자들] 그 경찰들만 승승장구… 송전탑 할매들은 사과받지 못했다

    “시위대는 할매(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노인네들이 왜 젊은 경찰 앞을 막아섰겠어요. 그저 삶의 터전을 지켜내고 싶었을 뿐이었죠.” 2014년 6월 11일. 이날은 경남 밀양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한국전력공사의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주민 반대가 극심하자 국가는 ‘행정대집행’이라는 명목으로 이들을 찍어 눌렀다. 대부분 노인이었던 시위대 160여명을 상대하려고 경찰은 13배에 달하는 20개 중대 2100여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최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송전탑 부지에 마련한 움막 농성장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웃옷을 벗은 할머니들이 남성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경찰은 채증, 불법사찰, 특별관리, 회유 등 정보활동을 벌였다. 진상조사위는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있었다고 판단,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및 경찰청장 사과를 권고했다. 밀양 단장면 주민대책위원회 대표인 구미현(69)·고준길(74) 부부도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부산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 퇴직한 이후 건강을 위해 조용한 시골 마을로 옮겨 왔다가 송전탑 사태를 겪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건강권과 재산권 등을 지켜 내기 위해 싸웠지만 국가 공권력을 끝내 이겨 내지 못했다. 이제 마을 뒷산에 거대한 송전탑이 들어선 지 2년 가까이 됐다. 이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경찰청장이 사과해야 한다는 권고가 나왔습니다. 구미현(이하 구)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진상조사위 발표는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아무 잘못 없다’며 내밀던 오리발이 쏙 들어갈 테니까요. 다만 경찰청장이 말로만 사과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당시 열심히 진압했다며 표창을 받은 경찰들, 특별승진한 경찰들, 그리고 승승장구한 밀양 경찰서장부터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할매들의 억울함이 풀리지 않을 겁니다.” -최근 3·1절 특사 대상에 밀양 송전탑 사건도 들어갔는데요. 고준길(이하 고) “아무 의미 없습니다. 저도 특수공무집행 방해로 기소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특사 대상 5명에 포함됐더라고요. 밀양지청에서 특사 증서를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는데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안 가져가면 돌려보내야 한다고 하길래 돌려보내라고 했죠. 이제 와서 복권 받아 봤자 뭐가 중요합니까.” -행정대집행 당시 두 분은 어디에 계셨나요. 구 “저는 마을 뒷산에 있는 송전탑 부지에 움막을 짓고, 그 안에 다른 할매들이랑 들어가서 앉아 있었어요. 끌어내지 못하게 쇠사슬을 목과 배에 두르고 다른 할매들이랑 움막을 연결했어요. 움막 밖에는 외부에서 와 준 연대시민들이 지켜주고 있었고요. 그럼에도 경찰을 막을 수 없더라고요. 움막을 칼로 북북 찢고 들어오고 1m에 달하는 커터기를 가지고 목에 두른 쇠사슬을 잘라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죠.” 고 “남자 주민들과 움막 지붕 위에 올라가 움막을 지키고 있었지만 경찰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우리보단 움막 안에 있던 할매들이 더 용감했죠. 어찌나 고통스러웠을지….”-물리력 행사뿐만 아니라 불법 사찰도 있었다고요. 구 “정보과 형사들이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면서 회유를 했어요. 저한테도 어느 젊은 경찰이 와선 ‘세상 다 똑같지 않느냐’고 말하길래 ‘뭐가 똑같으냐’고 쏘아붙이니 더는 오지 않더라고요. 자체적으로 밀양 주민들을 X, △, ○ 세 분류로 나누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 X 표시를 해놨을 테고, 어느 정도 넘어올 것 같다고 생각되면 △ 표시를 해놓고 공을 들였겠죠. 회유당한 주민은 ○ 표시를 했을 테고요.” 고 “주요 인물이 아닌 주민 대부분을 대상으로 사찰 및 회유 작업을 벌였습니다. 시위에 거의 참석도 하지 않은 동네 할머니가 정보경찰 명단에 올라와 있더라니까요.” -이번 조사 결과에 들어가지 못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고 “진상조사위엔 확실한 사례만 들어가야 하니까요. 어떤 할매 아들은 서울에서 보험회사에 다니는데 어느 날 사장이 불러선 ‘어머니가 시위 나가신다던데 다치면 어떡하냐. 하지 말라고 전해라’고 말했다대요. 아들이 ‘어머니가 80살이 넘었는데도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을 나서는 건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면서 ‘사장님이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시냐’고 대꾸하니 대답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정부가 주민들 가족 신상까지 파악해서 회사에 전한 것 아닌가 의심됐죠.” 구 “경찰 헬기가 마을에 피해를 주기도 했는데 그 내용도 빠졌습니다. 행정대집행 날 헬기가 마을을 세 차례 위협하듯 저공비행을 했습니다. 먼지가 날려서 온몸 구석구석에 들어가고 소음도 엄청났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양어장 은어들이 죄다 배가 터져서 죽었고요. 이러한 피해 사실을 말했는데 공식 기록상에 경찰 헬기가 뜬 적이 없다고 해서 끝내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경찰이 왜 이렇게까지 강경 대응해야만 했을까요. 구 “명목상으론 큰 정전 사태가 있어 송전탑 건설이 시급하다는 것이겠지만 정부가 승인한 국책 사업인데 감히 주민들이 반대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에서였겠죠.” -가장 큰 후유증이 무엇인지요. 구 “공동체가 붕괴됐다는 점입니다. 시골 마을이라 일가친척이 모여 사는 경우가 많은데 송전탑 사태로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 서로 제사에도 안 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전과 합의를 한 측과 합의하지 않은 측으로 갈려 다투는 거죠. 조카가 이모, 삼촌한테 욕설을 퍼붓고 반대로 욕하기도 하고. 저희 마을은 합의한 비율이 낮아서 상대적으로 괜찮지만…. 이미 대부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이후 변화가 있었나요. 구 “없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공무원은 그대로니까요. 산업통상자원부와 제도개선위원회 위원 구성을 놓고 협의를 했습니다. 저희는 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그룹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합의가 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업부 측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을 넣겠다고 하루아침에 말을 바꾸더라고요. 아직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무엇이 가장 시급한가요. 구 “진상조사위 권고에도 나와 있습니다. 기업은 자신의 사업 활동과 관련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 야 하는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유엔 국제기준을 국내에서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또 송전탑 인근 주민들의 재산적 피해와 정신적·신체적 건강 피해에 관한 실태를 조사하고 치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한전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산업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당시 경찰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구 “위에서 내려온 명령대로 했다고 말을 하겠죠. 그게 정말 궁금해요. 공무원이면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 히틀러의 부하들도 명령이니까 그대로 했을 거고, 전두환의 부하들도 명령이니까 그대로 했을 거고. 양심도, 사람에 대한 기본도 없나? 이런 질문들을 하고 싶습니다.” -송전탑 사태를 겪으면서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나요. 고 “친자연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밀양으로 이주해 왔는데 송전탑 사태를 겪으면서 내가 살아가는 삶과 내가 사는 이 터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구 “건강이 안 좋아져서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왔는데, 건강이 회복되면 여행도 다니고 노년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송전탑 사태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지요. 남들이 당했을 때 제3자로서 분노하는 것하고 실제로 내가 당해서 분노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앞으론 지금 하고 있는 탈핵 운동, 노동 운동과 같은 시민 활동을 계속할 것 같아요.” 글 사진 밀양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광주시.수영선수권대회기간 매주 민주의종 타종 체험 운영

    광주시는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 기간 5·18민주광장에 설치된 ‘민주의 종’의 타종 체험 행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30일 밝혔다. 이 행사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와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인 7월 6일부터 8월 17일까지 매주 토요일 진행된다. 타종은 일일 4회 운영되며 체험시간은 오후 4시 18분, 오후 5시 18분, 오후 6시 18분, 오후 7시 18분이다. 참가자는 8명 이내로 조를 구성, 민주의 종의 유래를 듣고 묵념 후 5회 타종한다. 신청은 시 자치행정과(062-613-2914)로 하면 된다. 예약은 선착순이며 접수가 취소되거나 미달하는 경우 현장에서도 신청할 수 있다. 민주의 종은 임진왜란, 한말의 의병 정신, 일제강점기 광주학생 독립 의거, 5·18민주화운동 등 광주 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2005년 10월 건립됐다.종 정면의 ‘민주의 종’ 글씨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썼다. 공식 타종은 ‘광주시 민주의 종 관리·운영’ 조례에 따라 3·1절, 5·18 기념일, 광복절, 제야 행사 총 4회 실시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상복 입고 국회 앞에선 제주 4·3 유족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상복 입고 국회 앞에선 제주 4·3 유족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상복 입고 국회 앞에 선 희생자 유족들“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특별법은 1년 6개월째 국회 표류 “늙은 유가족들은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제주 4·3 희생자 유족들이 서울로 상경해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이렇게 외쳤다.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이 1년 6개월째 국회에서 표류해서다.제주 4·3 희생자유족회 등 4·3사건 관련 단체 회원들은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 조속처리 촉구 결의대회에서 “고령의 4·3 생존 희생자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또한 유가족과 제주도민들은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서 “국회와 정부는 적극 앞장서서 4·3 특별법 개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상복을 입은 30여명의 유족을 포함한 200여명이 참여했다. 상복은 시신을 찾지 못해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후손들이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들은 제주 4·3의 한(恨)을 위로해온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한목소리로 부르며 결의대회를 시작했다. 유족들은 국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명예회복의 실질적 조치를 담은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지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당파 정쟁에만 몰두하는 국회의 작태를 바라보는 4·3 희생자 유족들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과거 국가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에 대해 묵과하고 방기하는 처사는 또 다른 인권유린”이라면서 “여·야 정치권은 언제까지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면서 4·3의 아픔을 간직한 8만여 유가족들의 절절하고 정당한 요구를 외면할 셈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이들은 “우리가 왜 국회까지 와야 하느냐”면서 “70년 전에 30만명도 살지 않았는데 3만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억울해했다. 이어 “참으로 무시를 당하고 있다. 우리가 이 억울함과 한을 가지고 잘 뭉쳐서 싸운다면 우리를 무시하는 바위를 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억울하다. 너무도 억울하다.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는 4·3 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적극 앞장설 것 ▲국회는 올해 안에 4·3 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심의하고 처리할 것 ▲정부와 국회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 등이 2017년 12월 대표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4·3 특별법 개정안은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통해 수형 생활을 한 4·3 수형인들에 대한 군사재판의 무효화, 4·3 트라우마센터 설치 등 4·3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글·사진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박정희 방탄차·일제시대 소방차까지… 50년간 올드카에 미쳤다

    박정희 방탄차·일제시대 소방차까지… 50년간 올드카에 미쳤다

    1955년 8월 시발 자동차 생산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60여년 만에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발전했다. 생산량에서 세계 5위에 이르며 품질 및 디자인 면에서도 강대국이 됐다. 이런 저력의 밑바닥에는 뚝심과 열정으로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온 자동차 장인들이 있었다. 그중 경기 여주시 대신면 옥촌리에 있는 ‘금호클래식카’ 백중길(71) 회장 같은 사람도 있다. 그는 1969년부터 반세기 동안 자동차 수집에 몰두해 왔다. 지난 50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수집해 온 자동차는 대통령이 타던 방탄차를 비롯해 1000여대에 이른다. 문화재로 등록된 국내 자동차 7대 중 3대를 백 회장이 갖고 있다. 그동안 모아 온 자동차는 영화, TV 드라마, CF 등 제작에 필수품이 됐다. 그의 자동차는 영화 ‘밀정’을 비롯해 TV 드라마 ‘모래시계’ 등 5000여편에 출연해 왔다. 대당 몇십만원에 불과한 대여료만으로는 20명에 가까운 직원들 인건비와 자동차 유지 관리비에 턱없이 부족하다. 모두 처분하고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미친 일을 하겠냐’ 싶어 손을 놓지 못한다고 한다. 자동차박물관 건립을 꿈꾸는 백 회장으로부터 지난 얘기를 들어봤다.-많은 비용이 드는 자동차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해방 이후 택시사업을, 6·25전쟁 후에는 운수업을 하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핸들을 돌리며 놀 만큼 자동차와 친했다. 1965년 홍천 수송학교에서 4주 교육받고 맹호부대 공병대에 배치되면서 기술을 배우게 됐다. 제대 후 1년 동안 베트남에 기술자로 가서 번 돈으로 서울 신당동에 자동차부품 수입판매회사를 차렸다. 1973년 오일쇼크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사업이 잘됐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트레일러 운전을 하면서 자동차 튜닝 등에 견문이 넓어졌다. 귀국해 보니 1962년 정부의 자동차진흥정책 발표 이후 새나라, 코로나 등 국산 자동차들이 하나둘 도로 위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누군가는 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1대, 2대 수집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다. 처음에는 100대만 사 모을 생각이었다.” -여주로 오게 된 과정은. “‘자동차를 사 모으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 각지에서 연락이 왔다. 50~70대로 금방 불어나 서울 장안동에 땅을 빌려서 주차해 놨는데 금세 차 고양 능곡에 500평을 매입해 보관해 왔다. 그런데 1990년 9월 한강둑이 터지면서 큰 피해를 봤다. 정비공 4명을 고용해 고쳤지만 귀한 차를 많이 잃었다. 2년 후 남양주 덕소로 이전했으나 그곳에서도 물난리를 겪으며 많은 차를 잃었다. 이후 안전하고 더 넓은 곳이 필요해 2014년 이곳으로 오게 됐다. 이렇게 힘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을 안 했을 것이다(웃음).”●대기업 회장·연예인 타던 수입차도 모아 -한눈에 봐도 귀한 차가 눈에 많이 띈다. 수집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국내에 문화재로 지정된 자동차가 7대 있다. 내가 일제강점기 때 소방차를 비롯해 3대를 갖고 있다. 1950년 러시아산 가즈트럭, 1955년 최무성과 그의 두 동생이 드럼통과 폐기된 지프 본체를 이용해 만든 시발택시, 1960년산 히노트럭, 1968년 신진자동차가 만든 코로나 등 지금은 구경이 쉽지 않은 차량이 많다. 막상 수집을 하다 보니, 국산차는 정비해도 쉽게 망가졌다. 그래서 대기업 회장이나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던 수입차도 모으기 시작했다. 세관에 압류된 차나, 외교관 또는 주한미군들이 타던 차들도 ‘판다’는 소문만 들으면 한걸음에 달려갔다. 판매자 변심으로 몇 년씩 걸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60년식 캐딜락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탔었던 1968년식 캐딜락은 참으로 어렵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영화사나 방송국 대여는 언제부터 하게 됐나. “1982년인가 홍콩영화 촬영이 서울에서 있었는데 차를 빌려 달라고 하소연해 대여해 준 적이 있었다. 이듬해 KBS에서 3·1절 특집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달리 빌릴 곳이 없다며 방송국 견학까지 시켜 주며 여러 번 부탁을 해 왔다. 어쩔 수 없이 또 빌려줬다. 이후 여기저기 소문나면서 임대업이 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방송된 TV 시대극이나 영화 대부분에 우리 차가 출연했다.” -모두 운행이 가능한 차인가. 유지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낡을 대로 낡아 운행하기도 힘든 차들도 많지만 대부분 정상 작동된다. 촬영현장에 빌려줄 때는 안전을 위해 밤새워 정비한다. 현장에 정비팀이 항상 대기도 한다. 사실 10만~50만원 받는 대여료만으로 유지 관리가 어렵다. 부품도 조달이 어려워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3년 전부터는 큰 건물 2개 동을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스튜디오로 빌려주면서 경제적 사정이 좀 나아졌다. 문제는 밖에서 비바람을 그대로 맞는 귀한 차들도 많다는 점이다. 자식들을 밖에서 재우는 듯한 아픔을 느끼지만, 축구장 3개 넓이인 지금의 부지도 비좁아 어쩔 수 없다. 이 차들을 제대로 보관할 수 있고, 교육용으로 보여줄 자동차박물관을 만드는 게 마지막 꿈이다.”-오래전부터 박물관 건립을 계획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관광 목적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정비하고 복원하는 데 수천만원이 드는 차들도 있다. 제대로 된 시설에 보관해야 한다. 한 대기업에서 많은 돈을 준다며 팔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방송국이나 영화사에 대여도 안 한다는데 어떻게 팔 수 있겠나. 그래서 제대로 복원해서 자동차박물관을 제대로 만들어 운영해 볼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규모가 규모인지라 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부천시, 강화군, 포천시 등등 여러 곳에서 유치 제의를 해 왔는데 임기제인 시장이 바뀌고 나면 모두 흐지부지됐다. 지금 이곳도 여주시에서 지역 명물로 자동차박물관 건립을 돕겠다고 해서 왔는데 얼마 뒤 시장이 바뀌니까 없었던 얘기가 됐다.” ●“튜닝 규제 완화… 올드카 산업 활성화돼야” -단종된 노후 자동차를 운행 가능한 상태로 보관하려면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닐 텐데. “우리나라 자동차 제작기술이 세계시장에서 손색이 없을 만큼 발전했지만 20년 이상 된 올드카 운행을 막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단종 후 몇 년 지나면 부품을 공급하지 않는다. 중고부품을 비싸게 사거나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미국, 쿠바, 유럽 등에서는 올드카 가치가 날로 상승한다. 올드카에 대한 정비와 튜닝 등 다양한 부대사업들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늘고 관광산업과 지역경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정부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드카 산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현실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 미국 등에서는 올드카에 대해서 생산 당시 기준을 적용하거나 아예 면제를 해 준다. 오래된 차를 정비하면서 내외부를 바꿔 보려고 해도 튜닝 규제가 엄격해 어렵다. ‘추억이 깃든 차량이 명차’다. 국민 누구나 ‘클래식카’를 부담 없이 소유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나경원 “文대통령, 국민에게 ‘누구 편이냐’ 다그치고 있어”

    나경원 “文대통령, 국민에게 ‘누구 편이냐’ 다그치고 있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한 것과 관련 “분열과 갈등의 정치로 정치권과 국민에게 ‘누구 편이냐’ 다그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우리 정치를 계속 싸움판으로 만들기 위해 보수 우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발언으로 야당의 분노와 비난을 유도한다는 느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자극적이고 위험한 발언을 이어오고 있다”며 “3·1절 경축사에서 빨갱이란 단어를 쓰며 적대적 역사 인식을 표출했고 5·18 기념사에선 독재자 후예란 표현을 썼으며 현충일에는 김원봉을 추켜세우는 발언을 했다”고 했다. 그는 “겉으로는 통합을 내걸지만 실제로는 균열을 바라고, 대화를 얘기하지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는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라치는 정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서 목숨 걸고 싸운 모친과 아내 등을 초청해 놓고 김정은과 손을 맞잡은 사진이 담긴 책자를 나눠줬다”며 “인간의 기본적 도리마저 저버린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손학규 “文대통령, 김원봉 언급으로 이념갈등 부추겨”

    손학규 “文대통령, 김원봉 언급으로 이념갈등 부추겨”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한 것과 관련 “김원봉 서훈 논쟁이 있어 왔고 당시 자리가 현충일의 국립현충원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언급이었는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은 자기 생각과 신념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고 사회통합과 국민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손 대표는 “김원봉 선생에 대한 개인적 존경이 있다고 해도 그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었고, 북한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또 김일성으로부터 6·25 공훈자 훈장까지 받은 사람”이라며 “그 뒤에 숙청당했다는 것이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6·25 전쟁에서 희생된 젊은 장병이 안장된 곳에서, 그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전 국민이 묵념하는 자리에서 이런 사람을 좌우 통합의 모범으로 인정했다”며 “대통령에게 국민통합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사회통합을 말하려다 오히려 이념 갈등을 부추긴 것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 대표는 “대통령의 연이은 분열 지향적인 발언에 국민은 불안해하고 있다”며 “3·1절 기념사에서의 빨갱이 발언, 5·18 기념사에서의 독재자의 후예 발언 등은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에 역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날 대통령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 고위직을 역임하고 훈장을 받은 분을 언급한 것은 호국영령에 대한 모독”이라며 “이념 갈등을 부추기지 말고 역사 인식을 바로 갖기를 당부한다”고 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김원봉 앞세운 文, 이념·정파 극복 취지… 보수야당 강력 반발

    김원봉 앞세운 文, 이념·정파 극복 취지… 보수야당 강력 반발

    야당 대표 때도 “치열하게 무장투쟁한 분” 김삼웅 “일제, 홍범도 다음으로 두려워 해” 金, 北서 고위직 지내 유공자 대상서 제외 보수 야당 “귀 의심케 하는 추념사” 비판 보훈처 “의견 수렴중”… 서훈 논란 재점화올 들어 독립운동가 서훈 논란이 불거졌던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6일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편입으로)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고 “(좌우가) 통합된 광복군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는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사회통합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보수 야당들은 ‘귀를 의심케 하는 추념사’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서훈 논란 또한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원봉 선생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요인 암살 등 무정부주의 투쟁을 전개했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도 지냈다.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의 저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은 첫째가 홍범도, 둘째가 김원봉, 셋째가 김구”라고 했다. 1948년 월북 이후 국가검열상과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지만 1958년 연안파 숙청으로 제거됐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7월 영화 ‘암살’을 관람한 뒤 “정말 치열하게 무장투쟁한 분인데, 해방 후에 북으로 갔다 얼마 있어 숙청됐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설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광복절에는 페이스북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김원봉 선생을 직접 거론했다. 북한에서 6·25전쟁 공훈을 인정받아 노력훈장을 받고 고위직을 지낸 탓에 그동안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선정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하지만 올 초 보훈처 자문기구가 3·1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것을 권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쟁이 불거졌다. 지난 3월 피우진 보훈처장은 국회에 출석해 ‘김원봉을 국가보훈 대상자로 서훈할 것이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되지 않는다”면서도 “의견을 수렴 중이며 (서훈 수여)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6·25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 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도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난데없이 북한의 6·25전쟁 공훈자를 소환했다”며 “말로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고 하면서 사실은 보수·진보의 편을 갈라 놓을 일방적 주장을 그때그때 무늬를 바꿔 가며 이어 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이념·정파 갈등을 뛰어넘자는 취지”라면서 “김원봉 선생이 언급된 맥락도 좌우가 통합된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는 의미이지 조선의용대가 곧 국군의 뿌리라고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사회적 연대로 버틴 10년… 쌍용차 해고자의 싸움은 행복했다

    사회적 연대로 버틴 10년… 쌍용차 해고자의 싸움은 행복했다

    오는 6월 말 쌍용차 해고 노동자 48명이 복직한다. 마지막 남은 이들이다. 해고가 부당하다고 아우성쳤지만 오히려 불온 세력으로 몰려 공장 밖으로 쫓겨난 이들이 10년 만에 당당히 사원증을 발급받게 된다. 하지만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국가는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처벌과 탄압의 대상으로 여겼다. 해고 노동자들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했던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불법으로 규정됐다. 쌍용차 해고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 또한 이들의 가슴을 깊게 후벼 팠다. 마치 병을 옮기는 전염병 환자를 보는 듯 경계 어린 시선에 배우자와 아이들까지 고통을 받았다. 거리로 나온 쌍용차 해고 노동자에게는 ‘전문 시위꾼’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덕분에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간다. 10년의 싸움 끝에 얻어낸 복직. 이제는 국가를 상대로 싸운다. 김득중(49)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장은 지난달 30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남은 과업도 하나씩 풀어낼 것”이라면서 “사회적 연대의 힘 때문에 버틸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싸움을 했다”고 말했다. -2009년 사태 이후 서른 명이 죽었다. 행복한 싸움이 맞나. “다른 사업장보다 어려웠고 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의 도움의 손길을 잊을 수 없다. 2011년 봄부터 복직 투쟁에 나선 32명에게 매달 99만원씩 생활비를 줬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체불한 적이 없다. 1년이면 4억원에 달한다. 투쟁기금도 그때그때마다 채워졌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데 수년 동안 어떻게 가능했을까. 도움을 준 단체를 세어 보니 150개가 넘더라. 연대의 힘이라는 게 놀라운 거다.” -조합원들도 같은 마음인가. “지금껏 우리를 버티게 한 게 사회적 힘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제는 우리가 되돌려줘야 한다. 복직한 분들에게도 기금을 걷고 있다. 전체 기금 중 20%는 사회연대기금으로 정해 올해 초부터 도움을 줬던 단체에서 하는 행사에 기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합의 이후에는 외부 기금을 일절 안 받고 있다. (기금을) 전달하겠다는 문의가 오면 더 필요한 사업장으로 안내한다.” -이달 복직하나. “합의서에 이달 말까지 나머지 40%(48명) 채용한다고 나와 있다. 확실한 건 오는 30일 복직명령서가 나온다는 거다. 복직은 되는데 부서 배치가 안 되면 당장 일을 못하고 연말까지 기다려야 될 수도 있다.” -71명이 먼저 복직했다. 복직 기준은 뭔가. “조합 총회에서 복직 순서를 ‘기여도’로 하자고 정했다. 지난 10년 동안 얼마만큼 복직을 위해 참여했느냐. 단계적으로 복직될 경우를 상정해 열심히 한 사람부터 순번을 작성해 놓은 게 있다.” -복직한 노동자들은 적응 잘 하고 있나. “적응은 본인 몫인데, 10년 동안 손에서 놨던 일이라 힘들어 한다. 숙련이 안 돼 쉬는 시간 없이 계속 매달려 일하는 중이다. 그래도 복직 전과 후의 표정이 달라졌다. 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 아이들 등하교도 도와주고, 가족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려고 하는 것 같더라.” -노조가 회사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시선도 있다. “2009년 파업하기 전부터 노조는 노동계에서 상당한 질타를 받을 정도로 양보안을 내놓았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일자리 나누고 임금, 복지도 축소하기로 했다. 주변에서 해고 이후 삶을 직접 봤기 때문에 그것만은 피하고자 함께 살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지난해 노조가 발견한 당시 사측 문건을 보면 회사가 파업을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가 설마 전기까지 끊을 줄은 몰랐다. 전기를 끊으면 도장반 페인트가 굳어 다 들어내야 한다.”-당시 경찰은 뭐했나. “회사가 동원한 구사대는 사방팔방에서 새총을 쏘아댔다. 주먹 크기 만한 볼트, 너트가 날아오는데 방패막이로 삼은 합판이 뚫려 나갔다. 경찰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해 7월 중순부터 보름 정도는 두려움 속에서 지냈다. 경찰은 본격적으로 공장을 봉쇄하고 압박해 들어왔다. 밤에도 잠을 안 재웠다. 오전 3~4시에 전투경찰(전경)들이 마치 공격해 들어오는 것처럼 철판을 두들겨 심리적 불안감을 일으켰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현장에서 우발적 사고가 발생할까 걱정했다.” -경찰의 강제 진압이 공권력 과잉 행사로 조사됐다. “지난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발표한 것처럼 그해 8월 4~5일 양일간 경찰 진압은 끔찍했다. 당시 공장 옥상에서 폭력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기억을 안 하려고 한다. 진압 당한 이후 컨테이너에 끌려가서도 엄청 두들겨 맞았다고 들었다. 아들뻘 되는 전경들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으면서 느꼈을 모멸감, 자멸감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비참했겠나.” -그때 연행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년 3일간 구치소에 있었다. 1심에서 징역 3년형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3년)로 풀려났다. 제 공소장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저들은 북한 불온 서적을 탐독하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 조직된 사람들이다’라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게 살려고 한 노동자들한테 국가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올해 3·1절 특별사면 대상에 쌍용차 사건도 포함됐던데. “정부가 쌍용차 파업 사건 관련자 7명에 대해 사면·복권을 했다. 경찰관 1명도 포함됐는데 경찰은 형 선고 실효 및 복권 대상이고, 나머지 6명은 복권만 됐다. 6명도 당시 금속노조 임원들이고, 직접 당사자인 쌍용차 조합원들은 포함 안 됐다.”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는 있었나. “없었다. 당시 과잉 진압한 책임자들,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국가가 진정으로 사과를 했으면 한다. 경찰청장이 (쌍용차 본사가 위치한) 평택에 와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심리치유센터 ‘와락’도 방문하고, 당사자들과 진심으로 대화를 해서 풀어야 한다.” -손해배상 소송 취하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자까지 포함해 21억원이 넘는다. 노조는 종교계를 포함한 시민사회의 조정을 통해 철회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경찰청에 냈다. 경찰관 치료비·위자료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지급하려고 한다. 하지만 경찰청은 진상조사위의 손배 취하 권고가 나온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게다가 지난 1월 복직 노동자 임금 일부를 가압류하면서 분노를 증폭시켰다. 가압류를 해제할 때도 선별적으로 했다.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작은 단위의 투쟁부터 하려고 한다. 7월 1일부터 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거다. 만 10년이 되는 8월 6일 전에는 해결이 돼야 하지 않겠나.” -최근 현대중공업 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을 것 같다. “현중 사태를 보면 혼란스럽다. 이분들도 2009년 저희처럼 살기 위한 투쟁이고 발버둥이다. 그동안 장기적 갈등이 있던 노사 문제에 정부가 참여해 해결한 것처럼 정부가 이번 사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언론이 왜곡 보도하면 노사 대화를 단절시키는 요인이 된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쌍용차 사태란 2009년 쌍용차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하며 공장 점거 농성을 벌인 노조의 파업은 3개월여 만에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종결됐다. 해고 노동자 180여명이 복직 투쟁에 나섰고, 사측과 2015년 1차 합의(45명), 지난해 9월 2차 합의(119명)를 통해 복직 투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10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사한 해고 노동자와 가족은 확인된 것만 3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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