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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의 서울시 문화재 만해선생 ‘심우장’ 선정

    서울시는 광복절이 있는 8월을 맞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을 보낸 서울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을 8월의 서울시 문화재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한용운은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것 외에도 1910년 불교의 변혁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했고 1926년엔 ‘님의 침묵’을 펴 냈다.1927년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 결성에 참여했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3·1운동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성북동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 한 지인의 도움을 받아 1933년 땅을 매입하고 지은 집으로 심우장이란 이름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가운데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심우장의 가장 큰 특징은 북향인 점. 한용운은 조선총독부가 있는 남쪽과 마주치기 싫어 북쪽을 향해 집을 지었다. 하지만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8월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4시 심우장에서는 해설가의 도움으로 심우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파고다공원 농악울리니 “신부입장”

    파고다공원 농악울리니 “신부입장”

    11월 15일 하오 3시 서울 「파고다」공원(公園) 안에는 10인조 농악대의 징과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인 박봉우(朴鳳宇)(36) 씨가 부인 이영미(李英美)씨와 6년동안 미루어 온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하늘 아래 처음 있는 이색적인 결혼식 광경이었다. 청첩장부터가 기발했다. (박봉두(朴鳳斗)씨 동생) 이영미(李英美)양 (이운학(李雲鶴)씨 큰딸) 딸 「하나」를 낳고 아들 「나라」를 얻은 우리의 시인(詩人) 박봉우(朴鳳宇)가 그 동안 미루었던 혼례(婚禮)를 뜻있는 「파고다」공원(公園)에서 갖게 되었읍니다. 오셔서 이 자리를 보람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곳 「파고다」공원(公園) (서울 종로(鐘路)) 때 1969년 11월 15일 토(土)요일 <오후 3시> 이미 「하나」 라는 한글이름의 딸(5)과 「나라」(1)라는 이름의 아들을 가진 가난한 시인부부가 뒤늦게나마 백년해로의 서약을 한다는 것이다. 더 풀이하면 「하나」·「나라」라는 자녀를 가진 시인이 3·1운동의 「파고다」공원(公園)에서 하나로 되는 의식을 갖춘다는 뜻이다. 이상은 이 날의 주인공 박봉우(朴鳳宇) 시인 스스로가 길다랗게 늘어놓은 사연이다. 하객은 약 2백명. 대부분이 문단인인데 공원(公園)의 입장료 10원을 내고 들어 왔다. 주례와 신랑·신부가 설 장소로는 팔각정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그 앞에는 D일보(日報) 사장 김연준(金連俊)씨가 보낸 큰 화환이 외롭게 서 있었다. 정각. 시단의 원로이자 이날의 주례인 김현승(金顯承)씨가 먼저 팔각정에 올라 갔다. 이어 사회를 맡은 동료시인 강태열(姜泰烈)씨가 신랑입장이라고 목청을 돋우었다. 신랑이 공원(公園)입구의 수위실에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하객의 사이를 누비며 걸어 나왔다. 박수소리가 났다. 사회가 신부입장이라고 소리쳤을 때다. 「웨딩·마치」가 없어서 신부입장이 거북하겠다는 하객들의 궁금증은 사무실쪽에 숨어 있던 농악대의 요란스러운 출현으로 풀렸다. 농악대원이 5명씩 줄지어선 가운데를 흰 한복의 신부가 사뿐 사뿐히 걸어서 등단했다. 또 박수. 그가 뒤늦은 결혼식을 「파고다」공원(公園)에서 올린데는 그 만한 이유가 또 있겠다. 그는 식장비를 빌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시인이다. 시인이라고 다 가난하라는 법은 없겠지만 박봉우(朴鳳宇)씨는 그랬다. 서울시의 수색(水色) 밖인 성암동에 있는 초가에 보증금 1만원, 월세 2천원의 방을 빌어 4식구가 살고 있다. 부인의 발에 의하면 월 생활비는 약 1만원. 그것은 시인이 원고료로 마련해 온다. 이들이 함께 살게 된 것은 6년전. 박봉우(朴鳳宇)씨가 30세, 부인이 26세 때였다. 선을 보고, 함께 살았다. 그 이후로도 박봉우(朴鳳宇)씨는 일정한 직장을 가지지 않고 시와 술 속에 파묻힌 생활을 계속해왔다. 시인 박봉우(朴鳳宇)씨는 시단에서 「휴전선(休戰線)의 시인」 「발광(發狂)의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21세 때 조선일보(朝鮮日報) 신춘문예에 『휴전선(休戰線)』이라는 제목의 시가 당선, 「데뷔」했다. 그 뒤로 술에 만취하면 이 자작시를 읊는다. -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風景). 아름다운 풍토(風土)는 이미 고구려(高句麗)같은 정신도 신라(新羅)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의미(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시를 읊으며 그는 발광한다. 말 그대로 미쳐 버린다. 「발광(發狂)의 시인」이다. 發狂하면 파출소의 보호를 받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發狂이라고 하면 그는 진짜로 정신병원의 신세를 몇 번 지고있다. 맨 먼저는 4·19 직후. 전남(全南)일보기자로 있을 때였다. 목포(木浦)시에 취재차 갔다가 깡패에게 얻어 맞아 「넋」을 잃었다. 전남(全南)대학 의대부속병원 정신병과에 약 1개월간 입원. 이 때 병원에서 쓴 시들을 묶어 『4월(四月의) 화요일(火曜日)』이하는 시집을 냈다. 그 뒤로는 1년에 한번 약1개월씩 서울 청량(淸凉)리 뇌병원(腦病原) 최거해(崔巨海)박사의 신세를 져왔다. 최거해(崔巨海)박사는 『박봉우(朴鳳宇), 너 술만 안마시면 좋은데…』라면서 한다. 물론 「파고다」공원(公園) 결혼식은 시인이 예의 발광(發狂)증세의 발작 속에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아니다. 식장을 빌 돈이 없는 탓이었다. 느닷없이 식을 올린 것은 부인과 아들 「나라」군과 딸 「하나」양을 위해서 사람살이의 형식을 갖추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날 부인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식장에서 그에게 몇 마디 질문을 해보았다. - 결혼식 후에도 술을 마시고 발광할 작정입니까? 『술 없으면 세상이 심심해서 어떻게 삽니까?』(발광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 결혼식이 가지는 뜻은? 『이 날 이후 나는 유치원생이 된 기분으로 다시 공부를 하렵니다. 취직도 하렵니다』 그는 지금 8·15 이후의 민족수난을 주제로 한 장편서사시(3만행, 2백자 원고지 3천장)를 써 놓았다고 한다. 이것을 세상에 내고 나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한다. 그 출판비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취직을 하겠다고 한다. 결혼식이 끝나자 하객들은 술을 좋아하는 시인이 준비한 소주를 오징어와 함께 그 자리에서 들었다. 소주 「가든·파티」. 옆에서는 농악대의 징 소리가 신나게 울렸다. 시인부부의 장녀 「하나」양이 「구부(舊婦」인 어머니의 치마에 영문도 모르고 매달려있는 모습은 하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선데이서울 69년 11/23 제2권 47호 통권 제 61호]
  • 안성 남사당놀이 상설 공연장

    안성 남사당놀이 상설 공연장

    “어흠 어흠, 아따 밤중 가운데 사람이 많이 모였구나.” “아닌 밤중 사람이야 많건 적건 웬 영감이 남의 놀음처에 난가히 떠드시오.”영화 ‘왕의 남자’의 인기몰이 이후 관심이 커진 ‘광대놀이’ 공연이 경기도 안성에서 열리고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0분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남사당 전수관 앞에서 ‘안성 남사당놀이 상설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에는 안성시립 바우덕이풍물단 상임단원 30명과 학생 명예단원 10명, 객원단원 10명 등 50여명이 참여한다. 고사굿으로 시작해 굿으로 끝내는 공연은 살판(땅 재주 놀이), 덜미(인형극),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버나놀이, 풍물놀이, 무동놀이 등 6마당으로 꾸며진다. 재담과 해학을 한층 강화해 완성도를 높였다.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판이다.’라는 말에서 따온 ‘살판’은 풍물에 맞춰 멍석위에서 어릿광대와 재주꾼들이 반주에 맞추어 땅재주 놀이를 펼친다. ‘어름위를 걷듯이 조심스럽다.’는 뜻에서 유래한 어름은 3m높이의 줄위에서 묘기와 재담을 주고 받으며 공연을 선보인다. 어름마당에서는 장생 역의 감우성 대신 줄타기 묘기를 연기했던 권원태씨의 공연도 볼 수 있다. ●풍물놀이 강습도 인기 가죽으로 둥글고 넓적하게 만든 가죽접시를 버나라고 하는데 재담을 주고 받으면서 담뱃대나 길다란 나무를 가지고 버나를 돌리는 ‘버나놀이’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원이 함께 출연하며 다채로운 공연을 펼치는 풍물놀이는 보는 이들의 어깨를 저절로 들썩이게 만든다. 양주별산대, 통영오광대, 안동 하회 별신굿 등 중요 무형문화재의 연합 공연도 열린다. 공연 시간은 2시간. 마지막에는 관객들이 공연자들과 함께 더덩실 춤을 추며 흠뻑 취해보는 뒤풀이가 마련된다. 남사당 풍물놀이는 일반인들도 배울 수 있다. 남사당 전수관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매주 금요일 2회(오후 2시,7시) 꽹과리, 북, 장구 등 풍물놀이 강습을 실시하고 있다. 당초 60명 정원에 1개반을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안성시립바우덕이 풍물단이 출연한 영화가 흥행하면서 수강생이 쇄도해 강습반을 2개로 늘렸다. 수강생 중에는 60대 장년층뿐 아니라 국악은 따분한 것이라고 여기던 10대 신세대들도 적지 않다. 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인 감우성과 이준기가 이곳에서 어름(줄타기 놀이)을 배웠다. ●아트센터엔 구경거리 즐비 상설무대가 열리고 있는 남사당 정수관 옆에는 이색적인 건물이 들어서 있어 눈길을 끈다. 아트센터 ‘마노’로 , 거꾸로 된 집 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 2층 전시관에 영화 ‘왕의 남자 궁궐세트장’이 설치됐다.100여평 규모의 세트장은 영화속 연산군 옥좌와 장녹수 처소, 연산군 처소 등을 옮겨 놓은 궁궐코너와 영화 등장인물을 배경으로한 사진코너 등으로 구성됐다. 1층에서는 유리공예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시티투어 버스요금 1000원 남사당 전수관은 안성문화기행 시티투어를 이용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시는 “영화 ‘왕의 남자’ 흥행 성공으로 안성남사당 풍물단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남사당 토요공연 관람을 위해 찾는 외지 방문객이 늘어남에 따라 시티투어 버스를 운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화기행은 유기로 유명한 안성맞춤 박물관 관람을 시작으로, 안성 3·1운동 기념관, 미리내 성지, 태평무 공연관람, 남사당 풍물공연 등을 연계한 1일 코스로 운영되며 이용 요금은 1000원으로 중식은 제공하지 않는다. 문화기행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한다. 관람객들이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시에서 배치시켰다. 시티투어 버스는 안성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약국 앞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10시에 출발하며, 오후 3시30분,5시20분에 태평무 공연과, 남사당 공연 관람객을 위해 10분간 정차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안성나들목을 나와 안성쪽으로 우회전한뒤 계속 직진한다. 대덕터널에 이어 비봉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우회전해 보개면사무소쪽으로 들어가면 남사당 전수관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홈페이지(www.baudeogi.com)참조, 문의 031)6767-815. 안성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부동산명의신탁 논란 재연

    한 지방법원의 판사가 명의신탁 후 재산복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대법원의 판례와 배치되는 판결을 내리면서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서부지법 이종광 판사는 지난 9일 부동산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외삼촌 정모씨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넘긴 박모씨가 “명의신탁된 부동산을 되돌려 달라.”며 정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에서 “불법적 목적의 소유권 이전에 대해 명의 회복을 요구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명의신탁 물려줄 유산 못돼 이번 판결은 타인 명의의 부동산 거래를 일종의 관습으로 인정해 온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것으로 법원 안팎에서도 파문이 예상된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대법원은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부동산 명의를 신탁하는 경우는 불법원인급여가 아니고, 양도소득세 회피 방법으로 명의신탁한 것이라도 무효라고 할 수 없다는 견해를 적용하고 있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정부가 명의신탁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도입한 부동산실명제가 시행 10년이 넘어가지만 대법원은 명의신탁의 유효성에만 집착해 신탁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오히려 부동산실명제의 정착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면이 없는지 살펴볼 시점”이라고 화두를 던졌다. 이 판사는 “법원은 이름을 빌린 사람과 빌려 준 사람 사이에 누가 보호받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부동산 소유권을 대내ㆍ대외적으로 나누는 세계에 유례 없는 이론이 나왔지만 명의신탁 제도는 후세에 물려줄 자랑스러운 유산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판결문 말미에서는 “수천억원의 형사추징금을 받았던 전직 대통령이 재산이 29만원밖에 없어 추징금을 납부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 자식들은 수억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우리의 사법 현실”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타인의 이름을 빌려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정당한 세금을 타인의 명의를 빌려 포탈하고 그 돈으로 투기를 하다가 빚을 지면 재산을 타인의 명의로 해둠으로써 채권자가 아무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은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의신탁 판례 변경될까 1995년 부동산 실명제가 도입되면서 무효가 된 명의신탁에 대한 논의는 계속돼 왔다.2003년 11월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부장 조희대)는 “명의신탁 약정은 온갖 탈법·위법 행위의 수단으로 악용돼 왔고 부동산실명법에 반하기 때문에 무효이며 사회질서에 반하는 불법원인에 의해 신탁한 소유권은 되돌려 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도박 등 불법행위에 사용될 줄 알면서 빌려 준 돈은 받을 수 없다는 논리와 같다. 하지만 같은 시기 대법원 1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또 다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명의신탁 그 자체로 선량한 사회질서에 위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명의신탁자에 대해 행정적 제재나 형벌을 부과하고 있으므로 타인 명의로 등기가 완료됐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명의신탁한 부동산은 부당이득에 해당하므로 되돌려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하급심의 판결은 상고가 되지 않아 대법원에서 논의되지 않았고 이런 취지의 대법원의 판례가 유지돼 왔다. 따라서 이번 판결과 같이 대법원의 판례와 달리하는 하급심의 판결들이 상고가 돼 대법원에서 다시 심리할 경우 전원합의체를 통해 판례가 변경될지 주목된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이종광 판사는 이종광(38) 판사는 지난해 11월 수원지법에서 재직할 당시 친일파의 후손이 제기한 토지반환청구 소송을 기각, 친일파 후손들의 토지 환수에 제동을 걸어 주목을 받았다. 이 판사는 “친일재산은 3·1운동의 정신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었다. 이 판결을 위해 그는 1년간 역사 공부를 하고 석달간 판결문을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시 36회로 연세대 법대 87학번인 이 판사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중시해 형사재판부에 있을 때 다른 판사들보다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의 문화재] (11) 장충단 비

    [서울의 문화재] (11) 장충단 비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 그때 일본인과 맞서 마지막까지 명성황후를 지키다 순국한 군인들이 있다. 고종 황제는 그들을 위해 장충단이란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장충단 공원에 있는 ‘장충단비’를 찾았다. 이 비석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1호로 이달 호국의 달을 맞아 이달의 문화재로 선정됐다. 사당인 장충단의 건물은 모두 한국전쟁 때 파손되고 유일하게 비석만 남았다. 비석은 공원 입구에 있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크기가 좀더 크면 잘 보일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 비석을 찾은 이날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는 게이트볼장과 인근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학생들이 연습하는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공원을 한 바퀴 돈 뒤 비석을 만날 수 있었다. 비석 주변에 눈길을 끄는 안내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때는 폐사… 일본인들이 공원으로 만들어 회색인 비석은 높이와 폭이 각각 2m,50㎝ 정도 된다. 앞면에 ‘奬忠壇’(장충단), 뒷면엔 ‘을미사변 때 늠름했던 이들을 표창한다.’는 내용이 한문으로 적혀 있다. 글씨는 각각 앞면은 순종이, 뒷면은 을사조약 체결 뒤 자결한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환이 썼다고 한다. 이날 어렸을 때 이 공원을 자주 왔다는 노현학(81)씨를 만났다. 타지로 이사가 70년 만에 들렀다는 그는 “당시엔 비석은 없었고 상하이사변에서 일본결사대로 전사한 육탄삼용사의 동상과 이토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도 공원에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순사들은 이들에 대한 추모를 강요했다.”고 기억했다. 원래 장충단은 1900년에 세워졌다. 그뒤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제사를 지냈고 제사 때 군악이 연주되고 조총을 쏘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1910년 경술국치 뒤 폐사됐고,1920년대 후반 일본은 이들의 의기를 누르기 위해 공원으로 만들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심었다. 이어 비석을 뽑고 육탄삼용사 동상과 박문사를 세웠다. 사실 사직공원과 삼청공원도 같은 이유로 공원이 됐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현재는 장충단의 비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공원에 있어 그 뜻을 알리는 데 더 효과적인 면도 있다. 시사편찬위원회 나갑순 연구원은 “장충단 비는 공원에 있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볼 수 있고 파손 여부도 감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충단의 비 앞 작은 대리석엔 ‘장충단의 터’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나 연구원은 “장충단은 원래 현재 비석이 있는 곳에서 우측 사명대사 동상이 있는 방향으로 10m쯤 되는 언덕에 있었던 걸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또 일제 때 뽑힌 비석은 광복 후 찾은 뒤 현재 사명대사 동상이 있는 곳에 원래 있던 박문사를 철거하고 비석을 세웠는데 1969년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현 위치로 왔다고 전했다. 육탄삼용사 동상도 박문사와 같이 철거됐다. ●사명대사·이준열사 동상도 이웃에 장충단 공원엔 장충단의 비 외에도 역사를 생각할 수 있는 조형물들이 많아 좋은 역사 교육 현장이 될 수 있다. 먼저 비석 옆 계단을 올라가면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사명대사 동상이 있고 공원 안쪽으로 유림들이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요청하는 글을 보낸 장서운동을 기리는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헤이그 세계평화회의장에서 을사조약 무효를 주장한 뒤 자결한 이준 열사의 동상과 추모비 등이 있다. 휴일을 이용, 이곳에서 휴식을 하고 역사 공부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을미사변 때 순국한 군인들의 추모비의 비문과 이준 열사의 추모비에 적힌 유서를 읽어 봤다. ‘갑오·을미사변이 일어나 무신으로 난국에 뛰어들어 죽음으로 몸바친 사람이 많았다. 아!그 의열은 서리와 눈발보다 늠름하고 명절은 해와 별처럼 빛나니, 길이 제향을 누리고 기록으로 남겨야 마땅하다.’ ‘슬프다 나라는 주권이 없어지고 사람은 평등을 잃어 모든 외교에 치욕이 망극하니 진실로 핏기를 가진 이면 어찌 참을 수 있으리. 슬프다 종묘사직이 폐허가 될 것이오. 민족이 장차 노예가 될 것이라. 구차이 살자하면 욕됨만 더하리니 눈감아 몰라버리는 것이 나으리로다. 이렇게 결단하고 나니 더 할 말이 없노라.’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경기도 화성 100배 즐기기

    경기도 화성 100배 즐기기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의 따사로운 햇살에 우리의 마음은 벌써 산과 바다를 향해 내달린다. 연인과 함께 파란 바다를 달리는 드라이브를, 가족과 함께 질펀한 갯벌에서 뒹구는 즐거운 시간을 꿈꾸는 ‘행복’이 시작되었다.‘시간과 돈’을 핑계로 행복한 꿈을 접지마라. 여행은 꼭 멀리 떠나야만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하루를 즐길 만한 곳이 너무 많다. 그중에서 경기도 화성(華城)은 야트막한 산과 광활한 갯벌이 펼쳐지는 바다, 맛있는 먹을거리가 풍부해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지임에도 수도권에서 너무 가까운 탓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따사로운 햇살과 넘실대는 파도, 까만 갯벌, 푸른 나뭇잎이 지천인 화성으로 떠나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경기도 화성은 수도권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으로 우리가 잊고 있는 여행지다. 하지만 다양한 레포츠와 고찰 등 볼거리, 철마다 서해에서 나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가지고 있는 여행의 최적지이다. 화성의 가장 큰 자랑은 ‘제부도’다. 해안선의 길이가 12㎞인 작은 섬으로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면 섬을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이 매일 일어나는 곳이다. # 환상적인 드라이브를 꿈꾸며 제부도는 언제나 갈 수 있는 그런 섬이 아니다. 물때를 잘 맞추어 가지 않는다면 굳게 닫혀진 철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 한다. 홍해를 앞에 두고 막막했던 모세의 울부짖음이 나의 마음에 와닿을 때쯤 바닷물에 잠겨 있던 길이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자연의 오묘함이 너무 신기하다. 물때에 따라 매일 시간이 조금씩 변하지만 썰물 때 하루에 두번,6시간 정도만 통행이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제부도가 좀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육지와 섬을 잇는 유일한 통로인 2.4㎞의 바닷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인의 아름다운 곡선처럼 휘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 창문을 활짝 열고 감미로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달려보자. 싱그러운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갯내음, 차창에 부서지는 따사로운 햇살, 어머니의 품처럼 펼쳐진 갯벌에 온몸에 가득했던 도심의 먼지가 부서져 날아간다. # 우리 한번 망가져 볼까 제부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매바위. 섬 남쪽 끝에 있는 세 개의 바위로, 언뜻 보면 매의 형상과도 닮아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보인다. 이 매바위 바로 앞에는 갯벌체험장과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오래간만에 아이들과, 연인과 함께 갯벌에서 망가져 보자. 하루쯤은 ‘깔끔, 우아’를 벗어 던지고 푹신한 개펄속에서 뒹굴자. 갯벌도 뛰어다니고 진흙을 집어던지고 한바탕 놀다보면 일상의 스트레스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이다. 또 다양한 바다 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콩알만한 게는 어떻게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는지 다가서기도 전에 재빨리 작은 구멍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야, 아빠가 잡아 줄게. 기다려.”라고 말은 했지만 참 쉽지않다. 아예 바위를 들추어보는 편이 낫다. 그 속에 작은 게뿐 아니라 어른 주먹만한 게가 숨어 있는 행운이 기다리기도한다. 민챙이, 동죽, 고둥, 갯지렁이 등은 그 자체로 아이들의 생태학습장이다. 갯벌체험은 물이 가장 많이 빠졌을 때 앞뒤로 3시간 동안이 제일 좋다. 이곳 갯벌은 100% 개펄밭이 아니다. 해수욕장쪽으로 들어가면 모래와 개펄이 뒤섞여 있고 남서쪽 매바위 부근은 모래와 자갈로 돼 있다. 그래서 바닥이 그렇게 무르지 않아 운동화를 신고도 얼마든지 체험이 가능하다. 물론 신발과 옷이 더러워질 각오는 해야 한다. 슬리퍼나 여분의 신발이 없다면 인근 상점에서 장화를 빌려 신어도 된다. 곳곳에 조개. 굴 껍데기가 있어 맨발은 위험하다. 이렇게 온몸에 잔뜩 묻은 진흙을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매바위 주차장 앞에 무료 샤워장과 간단하게 발을 씻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물론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서인지 그렇게 깨끗하지 않지만 씻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성시의 배려가 느껴진다. 이렇게 신나게 개펄에서 놀았다면 배가 출출할 것이다. 어디를 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지천이 식당이다. 서해바다에서 나는 조개를 이용한 해물칼국수, 생선회, 조개구이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기다린다. 어느 집이나 맛, 가격이 비슷하다. 또한 4륜오토바이인 ATV를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해변가에 있다. 가격도 5000원으로 부담 없이 아이들을 태우고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제부도는 꼭 통행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031)369-1673. # 조용하게 즐기고 싶다면 제부도 바닷길로 향하는 긴 차량 행렬이 짜증나는 운전자라면 곧바로 운전대를 돌려 그곳에서 약 10분 거리인 궁평항과 궁평유원지로 가보자. 포구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환상적인 멋진 바다가 기다린다. ‘끼룩끼룩’ 무엇을 찾는지 분주하게 날고 있는 하얀 괭이 갈매기, 아늑한 공간에 적당히 흩어져 멋스러운 자태로 정박해 있는 어선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궁평항의 갯벌에서 갈매기들과 함께 조개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이 자연을 너무 파괴한 탓일까. 몇년 전 발밑에 마구 밟혔던 조개는 이제는 여기저기 호미로 파보아도 그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뭐, 우리가 어부도 아니고 꼭 조개를 한 가득 잡아야 ‘맛’일까. 그냥 개펄을 파고 노는 재미도 쏠쏠해 아이들이 시간 가는줄 모른다. 물이 완전히 빠져나간 썰물 때가 되면 3∼4㎞에 이르는 드넓은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궁평항의 갯벌은 진흙 머드팩으로도 유명하다.“자, 진하게 머드팩 한번 해볼까요.” 온 가족이 몸에 잔뜩 진흙을 바르고 누워 서로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라. 웃음이 절로 나온다. 궁평항 건너편에 있는 궁평유원지로 가보자. 횟집이 즐비한 곳을 지나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 어느덧 운동장을 갖추고 있는 음식점이 밀집한 곳이 나온다. 바로 여기가 궁평유원지. 유흥시설이라곤 가운데 노래방 한 개, 간이식당 몇 개와 족구장이 유원지 시설의 전부. 이렇게 황당할 수가. 하지만 바다쪽으로 모래사장을 끼고 2㎞가 넘는 긴 소나무 숲이 있어 여름엔 솔바람 부는 해송 해수욕장으로 변신해 인기다. 짙푸른 해송 사이로 간간이 의자도 눈에 띄고 돗자리를 깔고 하루를 즐기는 노부부의 모습도 보인다. 궁평항에서 맞이하는 일몰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화성 8경 중의 하나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장관이다. 특히 불타는 일몰을 배경으로 한편의 영화 같은 추억을 남기고픈 연인들에게 궁평항은 ‘딱’이다. # 숨겨놓은 보물을 찾으러 경기도 화성에 공룡알 화석이 있단다.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공룡알 화석지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을 하고 찾아가는데 아주 좁고 이상한 길로 들어서고, 여간 해서 찾기가 쉽지않다. 아마 네비게이션이 없었다면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시화호 간척지 중간의 조그만 돌섬에서 발견된 것이라 주소도 정확하지 않고 표지판도 별로 없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시화호 간척지에 감탄사를 자아낼 때쯤 어렵고 힘들게 공룡알 화석지에 도착했다. 정말 바다를 막아 이 땅을 만들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척박한 소금의 땅 위에 갈대와 비슷한 ‘띠’가 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공룡알 화석지 입구에는 자연문화해설사가 근무하는 조그만 사무실이 있다. 여기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15분을 걸어가야 공룡알 화석에 만날 수 있다.1999년에 발견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아직까지 변변한 시설 하나 갖추지 못한 곳이다. 이런 광활한 대지에서 새소리를 듣고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색적이다. 탐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031)369-2061. # 이런 곳도 있대요 생선회를 먹고 싶다면 조용한 포구인 전곡항이 좋다. 전곡종합수산시장은 싱싱한 회와 조개 등이 정말 싸다.1층에서 해산물을 사서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가면 야채와 각종 양념류를 1인당 2000원에 준다. 아담한 전곡항을 바라보며 먹는 맛은 일품이다. 광어, 우럭 등이 보통 1만∼2만원. 키조개, 맛조개 등은 한 바구니 가득 2만원. 당성은 백제,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점령했던 전략적 요충지로 신라 때 당항성이라 불리며 중국과 교역의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이다. 약 2.5m의 높이에 1.2㎞에 이르는 커다란 성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복원 중인 곳으로 울창한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면 좋다. 서신면 궁평리에는 조선시대 아담한 가옥의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정용채가옥이 있다. 고종 24년에 지어진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밖에 태안읍 안녕리에 있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인 융건릉, 신라 문성왕 때 창건 된 사찰인 용주사,1919년 3·1운동을 기념하는 제암리 3·1운동 기념관 등이 있다. # 여행정보 먹을거리는 지천이다. 가는 곳마다 해물칼국수와 각종 해산물들을 파는 곳이 많다. 맛도 가격도 비슷하다. 그중에서 궁평항에 있는 서해일미마을(031-357-9255)은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해 맛이 담백하고 푸짐하다. 칼국수 5000원, 모듬회는 1㎏에 4만원. 또 화성은 포도로 유명하지만 제철을 맞은 참외를 길가에서 싸게 판다. 올해는 참외농사가 흉년이라 가격이 좀 비싸지만 농가에 직접 따온 것이라 싱싱하고 맛이 그만이다. 가는 길은 서해안고속도로 비봉나들목에서 빠져 306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 [인천이 원조] (8) 공원

    [인천이 원조] (8) 공원

    지난해 맥아더동상 철거를 둘러싸고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충돌해 유명세(?)를 치른 인천시 중구 북성동 자유공원. 인천을 대표하는 이 공원이 바로 1888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1897년 생긴 서울의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보다 9년이나 앞섰다. 응봉산 또는 응암산으로 불리는 자그마한 동산 위에 조성된 자유공원은 처음에는 ‘각국공원’으로 불렸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인천으로 몰려든 서양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던 각국조계(各國租界) 안에 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다.14만평이나 되는 넓은 면적의 각국조계에는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살았다.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이 모여 살던 일본조계와 청국조계를 제외한 응봉산 일대 대부분을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일본조계는 관동·중앙동 일대 7000평, 청국조계는 북성동 일대 5000평에 불과했다. 각국조계가 이처럼 광대하자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눠 구획정리사업을 펴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러시아 측량기사 사바틴의 설계로 각국공원을 만든 것이다. 당시 조계지 내의 외국인 지주들은 명목상 우리 정부에 지세를 냈다. 그러나 영구임대를 보장받은 외국인들은 조계지를 자국의 영토로 간주해 심지어는 조선인 순검(巡檢·경찰)조차 드나들 수 없게 했다. 말하자면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는 ‘나라 속의 나라’였던 셈이다. 따라서 조계지에 인접한 각국공원은 외세에 의해 조성된, 외국인들을 위한 휴게공간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원은 내국인들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로 등장해 서울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공원에서 바다를 보고 지금의 중구청 뒷길을 거쳐 인천항을 구경하는 것이 일종의 관광코스였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후 조계는 일본의 압력으로 폐쇄된다.1913년 4월 각국조계에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청국조계도 사라졌다. 그 뒤 일제는 지금의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자리에 신사(神社)를 세워 동(東)공원을 만든 뒤 각국공원은 ‘서(西)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임시정부 수립과 관련해 주목되는 중요한 회의가 열렸다.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각계의 대표들은 4월2일 이 공원에서 ‘13도 대표자회의’를 열어 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할 것을 결정했다. 탑골공원이 3·1운동의 발화점이 됐고, 이 공원이 3·1운동의 산물인 임시정부 수립의 기폭제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일제의 핍박을 피해 일종의 ‘의회’ 역할을 하는 회의를 열 수 있는 장소는 공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서공원은 ‘만국공원’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러다 한국전쟁을 겪고 난 1957년 개천절에 인천상륙작전으로 우리나라를 회생시킨 맥아더 장군을 기리는 맥아더동상을 세운 뒤 공원의 명칭을 ‘자유공원’으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토사학자 조우성(58)씨는 “자유공원은 외세에 의해 휘둘려 시민들의 정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격동의 한국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곳”이라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해사 60돌

    해군사관학교가 올해로 개교 60주년을 맞았다. 1월17일이 개교기념일이지만 올해에는 해사 출신 원로 등 모든 해사 가족들이 함께 하기 위해 겨울철을 피해 2∼3일 기념행사를 갖는다.기념행사가 열리는 이틀동안 진해 해군사관학교 교정에서는 해사 1기에서부터 64기(1학년 생도)에 이르기까지 동문 및 가족들이 참여한 가운데 ‘해사인의 밤’, 전사자 추모비 참배, 국군방송 위문열차 특집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며 3000발의 축포가 진해 앞바다를 수놓게 된다. 동문들은 졸업 후 수십년 만에 생도 기숙사인 ‘세병관’에 하룻밤을 머물면서 생도시절의 추억을 되새긴다.개교 이래 지금까지 7000여명의 정예 장교들을 배출한 해사는 3군 사관학교 중 가장 먼저 창설됐다.1946년 1월17일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손정도 목사의 장남이자 해군 창설의 주역인 고(故) 손원일 제독이 부친의 독립군 정신을 이어받아 진해에 해군병학교를 창설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9년 57기생부터 여자생도를 선발, 현재까지 4개 기수에서 70여명의 장교를 배출, 항해·항공·정훈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특히 올해 임관한 강경(60기) 소위는 해사 역사상 처음으로 입학과 졸업 수석의 영예를 독차지했고 2004년 이후 3년 연속으로 여생도가 수석졸업하는 등 ‘여풍’(女風)이 거세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서울의 문화재] (8) 봉황각

    [서울의 문화재] (8) 봉황각

    유관순, 서대문형무소, 제암리 학살사건.3·1운동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과 사건들이다. 하지만 3·1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봉황각은 그 중요성에 비해 덜 알려진 것 같다. 봉황각은 의암 손병희 선생이 3·1운동 지도자들을 키워낸 곳이다. 지난달 28일 강북구 우이동 산 자락에 있는 봉황각을 찾았다. 봉황각은 삼각산 도선사로 올라가는 언덕에 있다. 이곳은 현재 도로가 나 있지만 과거엔 인적이 뜸한 산 속이었다고 한다. 의암 선생은 이 비밀 장소에서 3·1운동을 계획했다. 처음 본 봉황각에서는 의연함이 느껴졌다. 큰 처마와 단단해 보이는 문살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봉황각은 ‘乙’모양으로 동학에서 하늘과 땅을 뜻하는 ‘弓乙’(궁을)의 ‘乙’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문을 열자 의암 선생이 눈을 크게 뜨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영정 사진이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살아 있다. 요즘도 천도교 교인들이 여기서 수련을 한다고 한다. 과거에 손병희 선생이 교회 간부들과 했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손병희선생이 1912년 세워 의암은 먼저 경술국치일에 교인들 앞에서 “10년 뒤 주권을 되찾겠다.”면서 “계획이 있으니 나를 따라달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토목공 21명을 모아 1912년 봉황각을 세운다. 여기서 보국안민(報國安民)을 내세우고 거사를 위해 천도교 지도자들을 교육시킨다. 일본의 삼엄한 감시가 있었지만 봉황각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은 천도교가 종교단체이기 때문이다. 의암은 독립운동은 종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슬람의 자살 폭탄 테러와 베트남 전쟁 때 지도층에 항거하며 스스로 화형을 감행한 승려들이 떠올랐다. 실제로 3·1운동 당시 봉황각에서 교육받은 천도교 지도자들은 가장 용기있는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평북 정주 천도교 지도자였던 최제일은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자 일본 군경은 그의 오른팔을 잘랐고, 그가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자 또 왼팔을 자르고, 다시 입에 태극기를 물자 목을 쳤다고 한다. 교회에 갇힌 채 총격을 당하고 불에 타 죽은 제암리 희생자의 상당수도 천도교인이었다고 한다.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도 전달 의암 선생도 3·1운동으로 일본 군경한테 갖은 고초를 당했다.1920년 병 보석으로 나왔을 때 폐인으로 쓰러진 채 들것에 실려나왔다고 한다.1922년 5월 건강을 회복하지 못 하고 세상을 뜨기 전까지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을 전달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현재 봉황각 바로 옆 언덕에 묻혀 있다. 처음에는 일본의 감시로 형편없는 묘소였는데 광복 후 생전에 학교를 설립하는 데 의암 선생한테 큰 도움을 받은 고 조동식 박사가 은혜를 잊지 못 하고 현재와 같은 큰 묘로 개장하고 탑골공원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또 백범 김구 선생도 광복 후 귀국하자마자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백범은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이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버텼겠느냐.”면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강북구청은 봉황각의 의미를 뒤늦게나마 깨닫고 2004년부터 봉황각 3·1독립운동 재현 행사 때 관내 인사와 학생들과 함께 ‘3·1절 만세 운동 재현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거리 주변 음식점 주인들에게 봉황각이 꽤 알려졌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인근 사람들은 도선사는 알아도 봉황각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동안 봉황각이 역사적 의미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 했다는 걸 생각하게 했다. 다행히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 봉황각 자리와 의암 손병희의 묘소는 명당이라고 한다. 주변이 삼각산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그 분들의 힘찬 기운이 흘러나와 나라에 도움이 되길 기원해 본다.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서울시 며예시민은 누가 어떤 혜택 받나

    서울시 명예시민에는 누가 위촉되고, 어떤 혜택을 받을까. 미국 슈퍼볼의 영웅인 한국계 미국인 하인스 워드가 ‘서울 명예시민’에 위촉되면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3일 서울시에 따르면 워드는 1958년 첫 명예 시민증이 수여된 이래 538번째 명예시민으로 위촉돼 이명박 서울시장으로부터 4일 명예시민증을 받는다. 명예시민증은 시 발전에 기여한 서울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명예시민증심사위원회’에서 심의해 위촉하거나, 시장이 서울을 방문한 외국 귀빈에게 수여한다. ●워드는 538번째 명예시민 명예시민은 대부분 정치·경제계 인사들이 주류를 이룬다. 스포츠계 인사가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것은 드물어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2002년)과 88서울올림픽때 한국 국가대표로 참가한 재일교포 박주리(1995년)씨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주요 인사는 홍콩의 액션스타 성룡(1999년)과 영화 007의 주연배우로 유명한 로저 무어(2001년)를 비롯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요셉 롯블라트(2001년), 리눅스 프로그램 개발자인 리누스 토발즈(2002년),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2004년), 트라이안 바셰스쿠 루마니아 대통령(2005년) 등이 있다. 올해는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1919년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1948년 작고)의 아들로 일제 강점기때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미국인 브루스 테일러(87),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등 3명이 받았다. ●65세이상은 지하철 무료 명예시민에게는 명예시민증과 메달이 수여되며 ‘명예시민증 수여 조례’에 따라 서울시민에 준하는 행정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시립미술관과 역사박물관,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에 무료 입장을 할 수 있으며,65세 이상은 지하철 무료 승차가 가능하다. 하이서울 페스티벌 등 주요 행사에도 VIP로 초청을 받는다. 시 관계자는 “명예시민증은 지난 1958년 6월 서울에 거주했던 미국인 마커스 W 슈바켄에게 ‘공로시민증’을 수여하면서 시작됐다.”면서 “그 뒤 1972년 ‘명예시민증’으로 명칭이 바뀐 이래 시 발전에 공로가 큰 서울거주 외국인과 서울을 방문한 외국 귀빈에게 수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서울의 문화재] (1) 한용운의 심우장

    [서울의 문화재] (1) 한용운의 심우장

    서울에 살면서 서울의 진면목을 제대로 아는 시민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 곁에 수백여곳의 조상 혼이 담긴 훌륭한 유적과 유물이 존재하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바쁜 일상탓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일부는 외국에 비해 볼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612년 동안 대한민국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해온 서울에는 국보의 38.9%, 보물의 25.5%가 산재해 있다.<16면 서울통계 서울의 문화재 참고> 이번 호부터 서울의 진면목을 바로 알고 느낄 수 있는 숨겨진 유적과 유물을 소개한다. 과거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과거는 현재를 보는 거울이다. 한번쯤 가족들과 우리 선조들의 혼과 삶을 느낄 수 있는 그곳에 들러보면 어떨까. # 심우장을 찾아서 지난 3일 만해 한용운(1879∼1944)선생이 1933년부터 만년을 보낸 서울 성북동 ‘심우장’(서울시 기념물 제 7호)을 찾았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그의 삶과 혼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일제 총독부와 마주보기 싫어 북향으로 지은 집’인 심우장에 얽힌 이야기는 여러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찾는 것은 처음이다.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관련 정보도 많지 않다. 가는 길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와 성북초등학교 방향으로 1.5㎞ 걸어 가거나,6번 출구로 나와 초록색 버스 1111번,2112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명수학교에서 내리면 된다. 종점에서 10m쯤 거슬러 내려와 오른쪽 언덕길로 50m쯤 올라가면 심우장이 나온다. 역에서 걸어서는 15∼20분, 버스는 5분이면 도착한다. 입장료는 없다. # ‘님의 침묵’을 만나다 성북구에서 지정한 ‘우리동네 명소’라는 간판을 따라 올라가자 ‘尋牛莊(심우장길 16호)’이라는 글이 쓰인 검은색 간판을 만났다. 인근의 개인집과 섞여 있어 쉽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심우장에서는 알수 없는 기(氣)가 느껴졌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령 90년이 넘어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와 함께 정면 4칸에 측면 2칸짜리 역 ‘ㄴ’자형 한옥 기와집 한 채가 나타났다. 이곳은 원래 성밖 마을 북장골로 불리던 한적한 동네였던 탓에 관람객들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집안 곳곳에서는 한용운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먼저 한용운이 서재로 썼던 온돌방 문을 열자 정면으로 ‘님의 침묵’을 이 반겼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그의 서재에 걸린 님의 침묵은 새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그 옆으로 한용운과 손병희 선생 등 민족대표 33인이 참석한 가운데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는 기록화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 선생이 기초한 ‘공약삼장’이 들어 있는 ‘3·1 독립선언서’가 눈에 들어온다. 또 한용운 선생의 초상화와 석정 안종원의 글씨 등 족자가 걸려 있다. # 깨달음을 얻는 곳 심우장은 북향으로 지어졌다. 한용운이 이 집을 지을 때 ‘남향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보기 싫다.’하여 고의로 등지고 지었기 때문이다. 서재 앞에 걸린 심우장이라는 현판은 위창 오세창 선생이 쓴 글씨다. 심우장은 ‘소를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한용운의 아호 중 ‘목부’(牧夫·소를 키우는 사람)에 따온 것이라 전해진다. 또 불교용어로는 성불이 되기 위한 ‘무상대도’(無常大道)를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 아는 만큼 보인다 한용운 선생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심우장에 가기에 앞서 그의 삶을 되집어보면 관람이 더 유익하다. 충남 홍성에서 출생한 한용운의 자는 정옥(貞玉), 아호는 만해(萬海)이며, 용운(龍雲)은 법명이다. 한용운은 독립운동가로 28세에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의병학교를 설치해 독립군을 양성했다.3·1운동으로 체포돼 옥살이를 한 뒤 1926년에 시집 ‘님의 침묵’을 펴낸 뒤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에 가담했다. 이 집에서는 역사소설 ‘흑풍’과 ‘심우장 만필’ 등을 집필했다.1944년 선생이 중풍으로 입적한 뒤 이 집은 그의 친딸인 한영숙 여사가 소유하고 있다가 1972년 만해사상연구회에 기증했다. 현재는 심우장 앞 마당에 있는 별채에 성북구청 소속 직원이 거주하며 관리하고 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與 5·31전략 ‘인물론’ 급선회 조짐

    2일 단행된 개각으로 5·31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여권 후보자들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개각 완료로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 슬로건이 ‘지방권력 부패 심판론’에서 인물 중심의 ‘지역일꾼 선출론’으로 급선회할 전망이다. 이날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물러난 대상자는 오거돈(부산시장) 해양수산부 장관과 오영교(충남지사) 행정자치부장관, 진대제(경기지사) 정보통신부 장관이다. 특히 우리당은 진 전 장관의 출사표가 ‘수도권 빅매치’에 힘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그에 이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서울시장에,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장관이 인천시장에 나선다면 한나라당에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수도권 광역단체장이 5·31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늠하는 요인이라고 볼 때 맹형규·홍준표·박진(서울시장) 의원과 김문수·이규택·전재희·김영선(경기지사), 안상수(인천시장) 의원 등 정치인 중심의 한나라당 카드에 맞서 참신한 인물군으로 차별화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비친다.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인물론 구도의 핵심은 참신성이다. 지난해 10·26 재·보궐 선거 당시 이강철 전 수석처럼 정당 대 정당 구도보다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고도의 전략이 구사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개각 효과’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우리당은 강 전 장관에게 시간을 충분히 준다는 입장이다. 정동영 의장은 전날 제암리 3·1운동 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강 전 장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일각의 ‘강금실 거품론’에 대해 정 의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무런 근거없이 인기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장관 재직시 보여준 높은 개혁정신과 강단, 인생의 역정을 봐도 철학과 원칙이 뚜렷한 분이고 내공이 있다.”고 강조했다.강 전 장관은 최근 지인들을 통해 서울시장과 연관된 정책을 자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출마가 임박한 인상이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서울중앙고 3·1운동 재현 행사

    올해로 개교 98년째를 맞은 서울 중앙고가 3ㆍ1절을 맞아 역사체험 행사를 연다. 중앙고와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중앙회는 3월1일 일제시대 독립운동과 관련된 교내 유적지와 인근 사적을 직접 돌며 선열의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3ㆍ1 독립운동 재현 행사’를 주최한다고 28일 밝혔다. 행사에는 학생 및 교사, 학부모 등 모두 1500여명이 참여한다.연합뉴스
  • 3·1절… 33인 그리고 캐나다인

    이맘때면 독립을 염원하며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이 아닌 3·1운동의 숨은 주역들, 특히 당시 현장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한 캐나다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EBS가 마련한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민족대표 34인 석호필’은 1919년 3·1운동을 기록하고 세계에 알린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의 활약을 집중 조명한다.제작진에 따르면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 겸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았다. 민족대표의 한 사람인 이갑성의 주선으로 3·1운동의 외교부장을 맡아 역사적인 현장을 사진과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만세시위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사진을 찍고, 영자신문에 현장을 기록한 글을 기고하면서 일본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항일운동을 하던 마을주민 23명이 무참히 희생당한 ‘제암리 학살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목숨을 걸고 마을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부상한 주민들을 병원으로 옮긴 스코필드 박사 덕분이었다. 일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이듬해인 1920년 캐나다로 돌아갔지만 3·1운동의 기록을 토대로 일제 식민통치의 진실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에 영구귀국해 후학을 양성하고 고아를 돌보다 1970년 81세의 나이로 삶을 마쳤다. 그는 자신을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과 함께 눈을 감았고,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묘지에 묻혔다. 제작진은 또 3·1운동을 도운 뜻밖의 인물을 소개한다.‘일본경찰의 사냥개’라고 불릴 정도로 친일에 앞장섰던 신철은 3·1운동을 앞두고 인쇄소 보성사를 급습했다가 인쇄 중인 독립선언서를 발견했다. 모른 체해 달라는 손병익 선생의 부탁에 민족적 양심이 움직인 것일까. 그는 불순한 움직임이 있다며 만주로 떠났고 3·1운동 이후 그 일을 숨긴 것이 발각돼 체포되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김동관 PD는 “역사 이면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담아 새로운 역사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은 3월1일 저녁 11시.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3·1절 발굴] 고려혁명군 2인자 최호림 연해주 항일투쟁기 ‘햇빛’

    [3·1절 발굴] 고려혁명군 2인자 최호림 연해주 항일투쟁기 ‘햇빛’

    3·1운동 87주년을 맞아 러시아 연해주 등 해외 항일무장투쟁을 기록한 독립운동가의 자필문서가 공개됐다. 이를 기록한 사람은 1920년대 독립군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최호림(崔虎林·1893∼1960) 선생으로, 그동안 사회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에 묻혀 있던 그의 활동상도 확인됐다. 독립운동을 하며 언론인·극작가·소설가로도 활약한 최 선생의 기록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군 및 비밀결사단체의 활동과 조직구성이 상세히 소개돼 해외 독립투쟁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27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 반병률 교수로부터 최 선생의 ‘원동변강 고려인 생활역사 초록’(遠東邊疆 高麗人 生活歷史 抄錄) 제1권을 단독 입수했다. 46배판 97쪽 분량으로 된 초록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자필로 쓴 것으로 선생이 39세 때인 1932년 9월15일 탈고됐다. 반 교수는 지난해 8월 하바로프스크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이 자료를 입수, 현재 우즈베키스탄 아쿠르간에 살고 있는 선생의 둘째 동생 최주옥(93) 옹을 통해 진본임을 확인했다. 초록은 1919년 3·1운동 직후 불길처럼 번진 연해주 한인들의 항일무장투쟁을 다루고 있다.1893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선생은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뒤 1919년 5월 연해주 라즈돌리노예에서 허제명·박명천 등과 함께 빨치산 독립의용군을 창설했다. 선생은 당시 자신의 활동상과 함께 혈성단 강국모 군대, 우리 동무군 등 인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의 병력규모, 장비, 조직도 등을 초록에 기록했다. 이밖에 북한 김일성이 ‘항일 신화창조’의 모델로 삼았다는 의혹이 있는 김경천 장군의 군대를 비롯해 조맹선의 독립단 군대, 이범윤의 의군부 군대, 안훈의 자유시독립군, 한창길 군대, 황하일 군대, 최 니콜라이 군대, 김병극 군대 등 당대 연해주와 만주를 주름잡았던 독립군들의 활동상도 망라했다. 이 부대들의 일부는 1922년 8월 1542명 규모의 고려혁명군으로 통합됐으며 최 선생은 이곳의 2인자격인 군정위원장을 맡아 사상교육을 담당했다. 이청천 장군이 사관학교장, 이범석 장군이 기병대장을 맡았다. 최 선생이 직접 그린 편제안을 보면 고려혁명군은 사령부 휘하에 ▲정치부(서무과, 통계과, 통신계, 선전선동과) ▲경리부(재무국, 피복국, 재봉국) ▲치중대(전투) ▲기병대(〃) ▲특립대(〃) 등 틀을 갖추고 있었다. 선생이 이끈 ‘최호림 부대’는 처음에 부대원 35명, 장총 35정, 탄약 3000여발로 시작해 석달 만에 부대원 120명, 장총 124정, 탄약 3만여발 규모의 대규모 의용군으로 성장했으며 시베리아에 출정한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번 초록을 통해 연해주와 만주에서 독립운동 비밀결사단체로 활약했던 광복단(1911년 결성)과 철혈단(1914년)의 주요 구성원 명단도 최초로 공개됐다. 광복단은 이동휘·오주혁·장기영·백규삼·황병길·김동한·이종호·계봉우·김하석·김하구·오영선·구춘선·김립 등 13명을 발기단으로 출범, 이명순·오병묵 등이 핵심역할을 했다. 철혈단의 중요인물로는 김철훈·김진·최의수·최이준·한강일·정순철 등을 꼽았다. 선생은 1920년대 후반부터는 무장투쟁을 일단락하고 사상과 문학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활동에 투신했다.1928년부터 3년간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역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한글신문 ‘선봉’의 책임주필로 활약했다.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로 명성을 날렸다. 이때 가극 ‘녀자대표’와 장편소설 ‘시비리 철도행’, 우화소설 ‘숙기거는 토끼’ 등을 창작하며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소련 스탈린정부의 한인 탄압이 본격화하면서 1936년부터 3년,1941년부터 4년,1948년부터 6년 등 3차례에 걸쳐 13년간 옥고를 치렀다. 최 선생은 1960년 가족들이 강제이주된 우즈베키스탄 아쿠르간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조상의 뜻 기리며 축제도 즐긴다

    조상의 뜻 기리며 축제도 즐긴다

    3·1절을 맞아 독립운동 재현행사가 종로·강북·중랑구에서 다채롭게 진행된다. 종로구(구청장 김충용)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태화관과 탑골공원 중간에 자리한 인사동거리에서 축제를 벌인다. 오전 10시30분 남인사마당에 설치한 특설무대에서 독립투사 33인 역할을 맡은 김 구청장과 나재암 구의장 등이 독립선언서를 낭독,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 검은색 치마와 하얀 저고리를 입은 청소년 500여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남인사마당을 출발,YMCA를 거쳐 타종식이 거행되는 보신각까지 행진한다. 인사동 특설무대에선 ‘삼일절 아리랑’이란 항일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퍼포먼스와 ‘나라꽃 무궁화’란 창작민요 공연이 펼쳐진다. 초등학생 50여명으로 구성된 ‘3·1절 기념음악회’가 유관순 노래 등 20곡을 선사한다. 가수 김도향이 추억의 팝콘서트를 펼쳐 분위기를 돋운다. 인사동거리 곳곳에선 가훈 써주기, 시민 얼굴 그리기, 태극기 그리기, 널뛰기, 윷놀이, 제기차기 등 전통민속놀이 체험행사가 열린다. 이날 인사동길에는 차량이 들어오지 못한다. 강북구(구청장 김현풍)는 의암 손병희 선생이 3·1독립운동을 준비한 우이동 천도교 봉황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호)에서 재현행사를 개최한다. 오전 10시, 솔밭공원에서 봉황각 입구까지 2㎞구간에 길놀이 및 태극기 거리행진을 펼쳐진다. 봉황각 앞에서 열리는 개회식은 고천사, 독립선언서 낭독,3·1절 노래 합창, 만세 삼창 등 순서로 진행된다. 손 선생 묘소로 자리를 옮겨 독립군가와 전래동요 공연, 춤패공원, 태극기 패션쇼, 검무시범공원, 역사재현극 등이 이어진다. 검무시범공연은 검무의 역동적인 동작으로 일제를 진압하는 모습을, 역사재현극은 봉황각을 중심으로 3·1독립운동의 전개과정을 표현했다. 야외무대에선 독립선언서 인쇄, 독립선언문 서명, 태극기 페이스페인팅,3·1절 평화기원 태극기 풍선 날리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강북구는 “봉황각은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인 손 선생이 3·1운동을 준비한 역사적 장소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쳤던 조상의 뜻을 기리고자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봉황각은 1918년 말부터 1919년 2월까지 3·1독립운동을 준비하던 비밀화합 장소. 중랑구(구청장 문병권)는 독립운동가 15명의 연보기록비가 조성된 ‘망우리공원 알리기’에 나섰다.50만 평 규모의 공원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만해 한용운, 민족사학자 호암 문일평, 독립운동가 오재명, 독립운동가 서병호,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 언론인 오세창, 독립운동가 장덕수, 정치가 조봉암, 의학교육자 지석영 선생 등 묘와 연보비가 놓여 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연보비는 “한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서, 이 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중랑구는 “자연에 둘러싸인 공원을 산책하며 독립운동가의 삶과 민족 사학자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라고 추천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3·1절 순국선열·애국지사 58명 포상

    정부는 제87주년 3·1절을 기념해 항일운동을 펼친 곽영준·김홍규 선생 등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58명을 포상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애국장 1명, 애족장 9명과 건국포장 10명, 대통령표창 38명 등인데, 이 가운데 생존자는 대통령표창을 받는 정귀택 선생 1명이다. 정 선생은 인천상업학교 학생들과 학병반대운동을 펼치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훈·포장은 3·1절 당일 중앙기념식 행사가 열리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수여된다.◇건국훈장 애국장 곽영준(郭英俊·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 김홍규(金弘圭·국내항일), 박수명(朴洙命·국내항일), 오우홍(吳宇鴻·국내항일)오종옥(吳種玉·국내항일), 유중식(兪中植·3·1운동), 이호영(李瑚寧·3·1운동) 조훈석(趙薰錫·국내항일), 최월상(崔月上·학생운동), 홍사묵(洪思默·국내항일)◇건국포장 김기현(金基鉉·3·1운동), 김정환(金正桓·국내항일), 박홍섭(朴洪燮·3·1운동)박후도(朴後度·3·1운동), 백춘갑(白春甲·학생운동), 우희원(禹熙元·3·1운동)장연송(張連松·국내항일), 장화진(張和鎭·국내항일), 최대희(崔大熙·국내항일)허원용(許元用·3·1운동)◇대통령표창 권혁수(權赫壽·학생운동), 박제돈(朴濟敦·이하 국내항일), 유쾌동(柳快東), 윤창석(尹昌錫), 김구진(金龜鎭·이하 3·1운동), 김길호(金吉浩), 김명기(金明基), 김병권(金秉權), 김병길(金炳吉)김복식(金福植), 김봉근(金奉根), 김재돈(金在敦)김칠봉(金七峯), 민영식(閔榮植), 박정렬(朴貞烈), 박천근(朴千根), 방기용(方起容), 방화용(方花容), 손문원(孫文遠), 신석범(申錫範)신태복(申泰福), 심종완(沈鍾心+元), 양운칠(梁云七)유남식(劉南植), 유화진(兪華鎭), 윤자벽(尹滋壁)이갑손(李甲孫), 이근복(李根復), 이오정(李吾丁), 이항순(李亢淳), 전우진(田禹鎭), 정귀택(鄭龜澤), 정학조(鄭學朝), 정해득(鄭亥得), 정홍조(鄭弘朝·), 최성심(崔聖心), 최학용(崔學用), 최홍기(崔弘基)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봄방학때 가볼까…체험활동

    봄방학때 가볼까…체험활동

    봄방학에 뭘 할까. 새 학기 시작을 열흘쯤 앞두고 학생들은 새 교과서와 새 친구들을 만난다는 마음에 설렌다. 학부모들은 부족한 공부를 어떻게 하면 더 시켜볼까 고민이다. 겨울방학에 이어 선행학습을 시켜보려는 것이다. 봄방학은 길어야 보름. 계획을 짜서 공부하기도 마땅치 않다. 참고서 대신 직접 체험해보는 선행학습은 어떨까. 봄방학을 이용한 초등학생들의 체험식 선행학습 요령을 살펴봤다. ●초등학교 1·2학년 1∼2학년 때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부모 의견에 따르는 경향이 많다. 때문에 부모가 교과 내용과 관련된 견학 장소를 먼저 고른 다음 뭘 볼지 계획표를 짜면서 아이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좋다.1∼2학년은 너무 오래 걷거나 보는 것만으로는 흥미를 잃기 쉽다. 직접 만져보거나 활동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 우선 추천할 곳은 식물원이나 동물원 등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다.1∼2학년 ‘국어’와 ‘슬기로운 생활’에는 자연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1학년 때는 꽃밭에 기르기 좋은 식물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고,2학년 때는 동물과 식물을 사는 곳에 따라 나눠보는 시간도 있다. 수목원에 간다면 교과서에 나오는 애기똥풀, 강아지풀, 씀바귀 등을 자세히 살펴보자. 생태공원은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사는 식물과 동물, 곤충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학습장이다. 저학년 ‘슬기로운 생활’이나 중·고학년 ‘과학’에 생태계 속의 작은 생물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과학관에 간다면 구체적으로 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흥미를 갖고 있는 부분이나 교과 내용과 관련 있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둘러보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 특히 1학년 때는 우리 몸의 생김새와 감각 기관을 공부하므로 인체를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좋다.2학년이라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 물과 공기의 성질에 대한 체험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물관은 초등학교 교과서와 직간접으로 많이 연관돼 있어 미리 견학하면 수업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우정박물관과 김치박물관은 저학년 수업 시간에 많이 다룬다. 김치의 종류와 역사를 알아보고 영양가를 조사한다면 새 학기에 더욱 흥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 저학년 때는 우리나라 명절의 풍습과 놀이를 배울 기회가 많다. 한국민속촌이나 한옥마을 등을 둘러보자.1학년 ‘국어’시간에는 민속놀이를 하는 방법을 배우며,2학년 때는 여러가지 집의 모습에 대해 배운다. ●초등학교 3·4학년 3∼4학년이 되면 1∼2학년 때와는 달리 교과목이 나뉘어 공부할 내용이 많아진다. 때문에 자칫 학습 의욕을 잃기 쉽고, 사회나 과학 교과에 대한 흥미도 이 때 결정된다. 따라서 다양한 체험과 견학을 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3∼4학년 ‘사회’는 지역화 교과로, 우리 고장과 시·도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인터넷만 찾아보지 말고 실제 박물관이나 지역 공연, 시장 등을 직접 찾아가보자. 3학년이 되면 자연에 대해 더 깊이 배운다.3학년 ‘과학’은 날씨에 대해 다루므로 기상청이 하는 일 등을 알아보면 좋다.4학년 ‘국어’ 시간에는 소금에 대해 배우고,‘과학’시간에는 소금물에서 소금을 분리하는 실험을 다룬다. 가족여행을 갈 기회가 있다면 서해안 염전이나 인천에 있는 수도권 해양생태공원을 다녀오면 도움이 된다. 동물원에 간다면 암수의 구별 방법과 함께 동물 분류에 초점을 맞춰 둘러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부모들이 3학년 자녀에게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는 부분이 과학이다. 질문이 어려워지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이 때는 과학관을 이용해 보자.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있는 과학연구원의 탐구학습관이나 체험학습장은 무료이거나 싸고, 내용도 알차다. 3학년 때부터는 다양한 박물관을 많이 견학해보는 것이 좋다.4학년 ‘사회’시간에는 박물관의 종류와 업무를 배우고, 박물관 견학과 모의 박물관 꾸미기 등의 활동을 한다.3∼4학년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박물관으로는 경기도 의왕의 철도박물관(4학년 ‘국어’ 중 ‘증기기관차 미카’), 경기도 용인의 삼성교통박물관(3학년 ‘사회’ 중 ‘교통수단의 발달’), 전북 고창의 판소리박물관, 강원도 강릉의 참소리축음기 에디슨박물관, 민속박물관, 경기도 수원 국토지리정보원 내 지도박물관 등이 있다. 3학년 ‘사회’에서는 역사 공부가 시작된다. 서울 남산이나 무악산 등 전국의 봉수대를 비롯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다녀오는 것도 좋다.4학년 ‘국어’시간에는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전기를 배우므로 미리 충남 천안에 있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정약용은 ‘국어’‘사회’‘과학’등의 교과에서 자주 나오는 인물이다. 수원의 화성과 경기도 남양주의 정약용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면 좋다. ●초등학교 5·6학년 고학년은 견학의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견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국립서울과학관부터 가보자.5학년이라면 1층 기초과학전시실과 4층 우주관은 필수 코스다.6학년은 3층에 있는 심장혈관의 집을 놓쳐서는 안된다. 서울특별시 과학전시관의 낙성대 본원과 남산 분원도 활용하기에 좋다. 특히 남산 분원에서는 5학년 때 배우는 물체의 속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 밖에 서울 LG사이언스홀이나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등도 가볼 만하다. 5학년 ‘사회’시간에는 우리 조상의 의식주와 문화·종교·과학 등의 생활상을,6학년 때는 고조선에서 근대까지 전반적인 역사 흐름을 배운다. 때문에 저학년 때 가봤다고 하더라도 민속박물관을 다시 둘러보면 새삼 보람을 느낄 수 있다.6학년이라면 세계로 눈을 돌려 서울의 지구촌 민속박물관이나 경기도 고양의 중남미 문화원 등을 다녀오면 도움이 된다. 아이가 역사에 관심을 보인다면 국립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 외에 다양한 곳을 활용할 수 있다. 서울 절두산 순교 성지나 경기도 파주의 선사유적지, 강화역사박물관, 천안의 독립기념관,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전쟁기념관 등도 좋은 공부가 될 만한 곳이다. 민주주의를 배우기에 좋은 장소도 추천할 만하다. 국회나 대법원, 지방법원 등을 견학하면서 삼권 분립과 준법 정신 등을 배울 수 있다. 국회는 꿈나무 의회교실(youth.assembly.go.kr), 대법원은 어린이 마당(www.scourt.go.kr/kids)에 접속해 견학할 수 있다. ■ 도움말 서울 화랑초등학교 이현진·김언지·장은미 교사 ■ 즐기면서 배워보세요! 봄 방학 때 가볼 만한 행사장을 소개한다. ●서울숲 곤충식물원(parks.seoul.go.kr/seoulforest) 세계 딱정벌레 표본 전시회와 살아 있는 우리나라 딱정벌레 상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 딱정벌레를 포함해 293종 1305개체를 매일 50종씩 교체 전시한다. 무료.(02)460-2905. ●IQ뮤지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다음달 1일까지 열린다. 고전 퍼즐을 비롯해 희귀 퍼즐, 불가능 퍼즐, 세계의 퍼즐 등을 직접 풀어볼 수 있는 체험학습 행사다. 어른 7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5000원.(02)2000-9774. ●스포츠 과학놀이 체험전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파미에 파크 2층 씽크타운(www.thinktown.co.kr)에서 8월30일까지 열린다. 스포츠와 장비에 숨겨 있는 과학 원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과학 이벤트쇼와 마술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과학체험교실 등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1만 2000원.(02)6282-5777. ●여섯번째 대멸종 이화여대 자연사 박물관에서 4월30일까지 열린다. 과거 지구의 멸종을 뒤돌아보고 자연파괴로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동물들의 자취를 표본과 모형, 영상물을 통해 더듬어볼 수 있다. 무료.(02)3277-3155. ●‘우리의 오랜 친구, 개’특별전 국립민속박물관(www.nfm.go.kr)에서 병술년 개띠 해를 맞아 개의 상징과 의미를 살펴보도록 마련했다. 개가 등장하는 생활용품 등 각종 유물을 볼 수 있다. 이야기가 있는 개 사진 공모전과 개 모양 토우 만들기 작품전도 둘러볼 수 있다. 이달 27일까지. 일반 3000원, 학생 1500원. ●신비한 미생물 탐험전(www.microbes.co.kr)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다음달 5일까지 열린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어른 1만 2000원, 청소년 8000원.(02)785-8320. ●재미난 박물관(www.funkr.com) 인천 서구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이달 말까지 열린다. 빛, 소리, 움직임 등 과학적 원리로 반응하는 제품과 놀이기구, 생활과 날씨, 해양 등과 관련한 신기한 제품, 놀이기구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유아 4000원, 청소년 5000원. 어른 6000원. ●집에서는 따라하지 마세요. 다음달 1일까지 서울 반포 센트럴시티 씽크아트홀에서 열린다. 음향과 3차원 입체영상, 조명, 특수효과를 동원해 상상력과 표현을 발휘시키는 과학교육극이다. 오전 11시, 오후 2시,4시 공연. 균일가 1만 5000원.(02)6737-6718. ●세계 밀랍인형 박물관(www.worldwaxmuse um.net) 서울 코엑스에서 다음달까지 열린다. 세계 유명 인사의 밀랍인형 150점을 볼 수 있다. 마돈나, 샤론 스톤, 찰리 채플린 등 해외 인기 배우에서부터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정치인, 박주영·홍명보·박지성 등 스포츠 스타, 설경구, 비, 안성기 등 국내 인기 연예인 작품도 전시한다. 방학을 맞아 입장료는 이달까지 어른 1만 2000원, 중·고생 1만원, 어린이 8000원으로 할인한다.(02)562-8153.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아버지 3·1운동 세계알리고 딸은 서울영화 찍고

    4대째 ‘서울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외국인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난 브루스 테일러(87) 일가. 테일러는 지난달 말 아내·딸과 함께 고향집을 66년 만에 찾았다. 테일러는 1919년 2월28일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가족들은 한국을 떠나기를 거부한 대가로 6개월의 수용생활 끝에 1942년 5월 일본 경찰이 추방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이들 일가가 처음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은 할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 때문. 그는 평북 운산의 금광에서 기사로 일하다 1908년 사망해 마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아버지 앨버트 테일러는 3·1운동 당시 UPI통신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일본 경찰의 수색을 피해 독립선언서 일부를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태어난 침대 밑에 숨겼다가 3·1운동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후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 일제에 의해 추방돼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48년 세상을 떠났다.‘내가 사랑하는 땅 한국, 아버지의 묘소 옆에 나를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 연극배우였던 어머니 메리 테일러는 당시 서울생활을 기록한 자서전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를 펴냈다. 자서전에는 일본에서 연극 공연을 하다가 아버지 테일러를 만나게 된 사연부터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하면서 듣게 된 한국의 독립운동 기록 등이 담겨 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매트릭스 제작 등에 참여한 딸 제니퍼 테일러는 할머니의 자서전 ‘호박 목걸이’의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다. 테일러는 6일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고, 부친에게 물려받은 1920년대 서울시청, 원구단, 서울시 전경 파노라마, 고종황제 장례식 등 희귀사진 17점을 기증할 예정이다. 특히 고종황제 장례식은 기존 사진과 달리 매우 가까이에서 촬영된 것으로 용머리 장식의 상여, 상여꾼 복장, 외교사절 조문행렬 등을 살필 수 있는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다음달 테일러 일가의 보금자리였던 종로구 행촌동 1의88,89의 ‘딜쿠샤’를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다. 근대 주택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는 이유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행복한 마음을 뜻하며 테일러 일가가 인도 여행에서 본 궁전 이름에서 따왔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정감록’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주제를 40개 정도로 나눠 일년 가까이 연재를 해왔지만 손길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예언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들이다. 그 중엔 그냥 버려두기 아까운 것이 꽤 많아 몇 가지를 간추려 보았다. 특히 암울했던 일제시대엔 독립을 향한 민중의 염원이 간절해서인지 각종 예언과 관련된 일화가 많았다. 또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동학과 관련된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예언에서 찾은 조선독립의 희망 1920년대에는 천도교가 예언과 관련해 많은 일화를 남겼다. 천도교는 동학의 후신이라 이상세계의 실현에 대한 믿음이 유달리 강했다. 당시 교단 지도부는 재정에 충실을 기하려고 성미(誠米) 적립운동을 펼쳤는데, 성미운동에서도 예언이 등장했다. 대강 이런 식이었다. 천도교 신도는 성심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끼니 때마다 가족 수만큼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교단에 바쳐야 된다고 했다. 하늘은 성미가 많고 적음에 따라 신도들의 성심을 상중하로 판단해 장부에 기재하므로, 성심이 깊으면 복을 많이 받지만 적거나 없으면 벌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교단에 따르면, 교조 최제우는 동학이 창건된 지 61주년째 되는 1920년 한국에 갱생한다 했다. 세상에 다시 내려온 최제우는 오만 년 무극대도(無極大道)를 펼쳐 전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연맹을 대신해 세계정부를 세운다 했다. 이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예언이었다. 기독교의 재림예수이야기를 방불케 한다. 천도교 신도들은 교단의 가르침을 성심껏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했다. 그들 각자가 바치는 정성은 하늘을 감복시켜, 성미를 많이 바친 이는 새 세상에서 고위관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본인은 물론, 자손들까지도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르침은 통했다.1920년경 천도교 측이 거둔 성미 수입은 당시 화폐로 수십만 원이나 되었다. 참고로, 일제말기 초등학교 교원의 초임은 45원에 불과했다. 천도교의 성미운동을 식민지 당국은 사기적인 약탈행위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성미는 물론 천도교단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상당부분은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에 투입되었다.1919년의 3·1운동 때도 천도교 측은 운동자금의 대부분을 부담했다. 그 뒤에도 천도교 측은 ‘개벽’과 같이 선진적인 계몽잡지를 발간했고 농촌운동을 일으켰다. 기꺼이 성미를 적립했던 신도들도 마음속으로 조선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심지어 천도교의 곁가지인 무극대도교나 상제교 측도 그러했다. 무극대도교는 일제의 보안법을 자주 위반한 것으로 유명했다. 상제교도 교주 김연국이 상제로부터 홍서(紅書)를 받았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또 다른 일파인 수운교도 교조 최제우를 부처의 후신으로 보았다. 이들 교단은 여러 예언을 동원해 곧 지상천국이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지상천국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독립을 기본전제로 했다. 일제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런 신종교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감언이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실상 그것은 단순한 감언이설이 아니었다.“이 교단”은 혁명 즉, 정권창출에 성공할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배출하게 되며,“이 교”에 입교해 신앙 활동을 잘 하면 생활이 안정되고 새로운 정치지배세력의 일원이 된다는 확신이 뚜렷했다. 이미 언급한 천도교 등 여러 신종교들을 비롯해 보천교, 금강도 및 청림교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역시 기존 예언서인 ‘정감록’을 중시했고, 거기에 자기네 나름으로 새 예언을 덧붙였다. 심지어 전혀 이름조차 없는 소규모 단체들도 ‘정감록’에 기대어 독립을 점쳤다.1931년 3월31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경찰서 고등계는 경북 상주와 문경 등지에 사는 평범한 남녀 주민 4명을 보안법 위반자로 검거했다. 당시 40∼50대 나이로 장년층에 속했던 이들은 조선독립을 목표로 비밀결사를 조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들은 ‘정감록’의 한 구절,“땅값이 똥값이 되며 천 마리 말이 소가죽을 입는다.(土價如糞 馬千牛服)”라는 대목을 장차 반드시 일어날 미래의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해석은 특이했다. 장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0년간 지속된다고 보았고, 결과적으로 일본은 멸망하고 조선독립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된다 했다. 우연한 일이지만 이 예언은 거의 들어맞았다.1939년 제2차대전이 터졌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일본은 연합국 측에 패전해 무조건 항복했으며, 마침내 한국은 해방되었다. 그런 주장을 펼치던 사람들은 ‘정감록’ 예언을 따라 십승지를 찾아갔다. 그들은 경북 상주군 화북면 중대리에 있는 우복동에 주목했다. 거기 피난처를 정한 다음, 그들은 조선독립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1928년 5월, 우복동에서 결사를 맺고 사찰을 지어 승려로 가장했다. 이웃한 지역사회에서는 그들의 취지에 공감해 사찰건립기금을 낸 사람이 20명가량이나 되었다. 우복동의 ‘선민’들은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진인 정씨의 출현을 기다리며, 그 때 긴요하게 쓰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종교 교육활동에 몰두했다 한다. 사실 19세기 이후 한국에는 수많은 예언이 난무했다. 그 중엔 ‘정감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 예언도 많았다.1933년 8월21일, 충청북도 영동 출신의 박모라는 사람은 그동안 누구도 풀이하지 못한 예언시를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그 일부가 우연히도 사실로 입증되었다. 문제의 예언시는 첫 구절이 이러했다.“봄날 나무에서 원숭이가 우니 귀신도 알지 못한다.”(猿啼春樹鬼不知)는 것이다. 박 도사는 여기 나오는 원숭이(猿)를 임신년 즉 1932년으로 간주했고, 그 해 3월 만주국이 창건될 것을 예견한 시라고 주장했다. 시의 둘째 구절은 “비바람이 치는 날 닭이 울 때”(一天風雨鷄鳴時)라 했다. 박 씨는 닭이 울 때(鷄鳴時)를 계유년(1933)으로 상정했다. 그 해에 만주국의 주권을 둘러싸고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예견했다. 회의에서 일본이 만주를 불법 점령한 사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내다보았다. 엄밀한 의미로, 이것은 틀린 해석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만주국의 성립은 장차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리란 예고편이었다. 그 전쟁이 확대되어 마침내 1939년, 세계 제2차대전으로 번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박씨의 예언 풀이는 제법 타당한 점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예언시의 마지막 부분은 “만국이 진을 이루고 개가 울 때” (萬國成陳犬吠時)란 구절이었다. 박씨는 이 구절에 대해,“개가 울 때”(犬吠時)는 갑술년(1934)이며 만주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세계전쟁이 유발되고 악성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뜻이라 했다. 그러나 그 말대로 1934년에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는 일본의 패망을 예언한 대본교(大本敎) 같은 신종교도 있었다. 그 교주 왕인은 1945년에 “국체변혁”(國體變革), 즉 일본이 망한다는 예언을 내놓았다. 그의 위험한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식민지 당국은 대본교의 교당을 헐어버렸다. 왕인 등 교단 지도부도 몽땅 체포했다. 본래 왕인이란 사람은 농부였다. 그런데 예언능력이 탁월해 신종교의 교주가 된 것이다. 그는 교당의 터를 잡을 때 여기를 파면 반석같이 큰 바위가 나오리라 예언했다. 과연 그 말 대로였다. 세상 사람들은 왕인이 땅속까지 꿰뚫어보고 일제의 패망을 예견할 만큼 형안을 가졌으면서도, 자기 교당이 허물어질 줄은 미처 내다보지 못했다며 비웃었다. 중요한 사실은 평범한 개인이든, 크고 작은 신종교 단체든 일제시기 내내 많은 한국인들이 늘 조선독립을 점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언은 대부분 ‘정감록’을 토대로 했다.‘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동학과 정감록-최제우, 동학정신에 정감록 ‘弓弓乙乙’ 담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정감록’에 대해 미묘한 태도를 보였다. 동학경전을 읽어보면 그는 정감록을 믿는 것 같으면서 부정하고,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믿는 것 같다. 그가 “기이한 동국 참서”, 즉 ‘정감록’을 손에 쥐고 들려준 가르침을 좀 풀어보면 이렇다. 과거 임진왜란 때는 이재송송(利在松松 이여송 형제가 도움이 됐다)이라 하였고, 가산 정주 서적(西賊 홍경래 난)때는 이재가가(利在家家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라고 ‘정감록’ 등에 기록돼 있지. 다 맞는 말이었네. 그런 선례를 본받아 우리의 미래도 한번 설계해 보세. 앞으로 세상을 제대로 살려면 ‘정감록’에 나오는 구절이네만 이재궁궁(利在弓弓 궁궁이 유리하다)을 알아내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봐야 하네. 매관매직을 일삼는 세도가들도 그 마음은 오직 궁궁에 있는 듯하고, 돈 많은 부자들도 궁궁만 찾고 있네. 거지들도 궁궁, 풍수에 미친 사람들도 궁궁촌을 찾아 더러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다네. 더러는 서학(西學 천주교)에 입교해 그것이 궁궁인 줄로 믿고들 있지. 세상 사람들이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는 것이 몽땅 궁궁에 관한 것뿐이네. 그러나 제 몸을 닦고, 집안일을 바로 다스리지 않은 사람이 강산을 찾아가면 뭐하나. 경박한 세상 사람들 같으니! 다들 이익이 송송(松松)이니 가가(家家)에 있다고 한 말뜻은 겨우 알아낸 듯하지만 정작 궁궁이 무엇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군. 최제우는 자신이 발견해낸 종교적 진리가 바로 궁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무극대도”라 불렀고, 앞으로 5만년간의 태평시절이 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감록’에 적힌 궁궁을을(弓弓乙乙)이란 구절에 모든 진리가 압축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 구절에 입각해 그는 궁을부(弓乙符)를 만들었다. 이 부적을 몸에 붙이면 상처가 생기지 않고, 이것을 불살라 먹으면 만병이 사라진다고 최제우는 가르쳤다. 그러다 고종1년(1864)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동학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그가 죽은 지 30년이 되던 갑오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군들의 깃발에는 ‘오만년수운대의´(五萬年水雲大義)란 글귀가 높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수운, 즉 최제우가 설파한 5만년 이상세계의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요컨대 궁을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겠단 것이었다. 고종30년(1894)에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을 전후해 민간에 여러가지 노래가 유행했다. 단순한 노랫가락이 아니라 요참(謠讖), 즉 노래형태를 빈 예언이었다. 더러는 일제시대까지도 남아 인구에 회자되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甲午歲 甲午歲 乙未 乙未 丙申되면 못 간다)” 기왕 일을 벌이려거든 갑오년(1894)에 서울까지 밀고 올라가서 일을 마무리지어야지,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다 을미년이나 병신년까지 지연되면 실패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 예언 노래는 갑오 동학농민운동 당시 김개남 등 급진파 측에서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운동이 실패로 끝난 다음, 뒤늦은 후회를 예언의 형태로 담아냈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동학농민군이 서둘러 서울로 진격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원 방면을 공략하다 뜻밖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사실과 관련이 있다. 운봉 아전 박봉양이 이끈 반항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저항은 요참에도 담겨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아랫녘 새야, 윗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하루박(하눌타리), 후-여!” 전라도 고부 출신 녹두장군 전봉준은 ‘하루박´으로 표현되는 박봉양에게 밀린다는 말이다. 참시에서 저항세력을 하눌타리 또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박씨라고 일컬은 점은 재미있다. 이런 비유로 볼 때 노래를 만든 이나 부른 이는 농민군 편이었다. 노랫말에 보이는 “후-여”는 새 쫓을 때 내는 소리다. 녹두새 전봉준에게 미리 경고해 농민군이 남원쪽으로 움직이지 말게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느껴진다. 알다시피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했다. 이로써 운동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전봉준과 김개남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수많은 농민군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도 물론이다. 이런 동학농민군들의 비원을 담은 노래는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란 노래였다. 전봉준을 녹두꽃에 비유해 그의 죽음이 곧 민중의 비극이란 것이다. 그밖에 “솔잎과 댓잎이 파르라니 봄인 줄 알고 찾아 왔는데, 흰눈이 펄펄 흩날리니 송죽이 나를 속였었구나.”란 노래도 널리 유행했다. 솔잎과 댓잎만 보고 겨울을 봄으로 착각했다는 가사는, 농학농민군이 시세판단을 잘못해 너무 일찍 군대를 일으켰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농민군의 준비부족을 한탄한 것이다. 이들 가요는 내용을 가지고 보면 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그 편에서 만들어 부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노래를 채집한 이은상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제시대 민중은 이 노래들을 후일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노래가 운동이 발생하기 전에 유행한 예언이었다고 믿었다. 민중은 동학농민운동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에게 특별한 예지력이 있다고도 생각했다.1894년 음력 4월경 전라감사 김문현은 농민군을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전봉준을 암살하려고 했다. 그는 자객 2명을 밀파했다. 자객들은 담배장사로 변장해 전봉준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신분이 탄로되어 붙들리고 말았다. 전봉준은 점술에 밝았기 때문이다. 점괘를 던져본 그는 자객이 온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고 한다. 믿고 따를 지도자라면 당연히 예언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민중은 생각했다. 요즘도 연말이 되면 국가기관이나 공신력을 자랑하는 주요연구소에선 다음해의 경제성장을 전망하곤 한다. 이런 예언, 예시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필수조건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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