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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척 유관순 얘기 듣고 자라… 외교관 꿈 품었어요”

    “친척 유관순 얘기 듣고 자라… 외교관 꿈 품었어요”

    ‘외교관 후보자 환영식’에 참석하기 위해 17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를 찾은 유미진(26·여)씨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교관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외교관 후보자 과정은 대학원 2년 수업을 1년에 압축해 놓았다고 할 정도로 빡빡한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있다. 유씨가 외교관을 선택한 것은 집안의 영향이 컸다. 유씨의 할아버지는 유관순 열사의 사촌동생이었다.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을 펼쳤던 충남 천안 병천면 아우내 장터 근처에는 아직도 유씨의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다. 유씨는 “어릴 적엔 신기해서 친구들에게 ‘나 유관순 열사 친척이다’라고 자랑했지만 철이 들면서는 ‘그럴수록 내가 조심히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면서 “친척 어르신들로부터 유관순 열사 이야기를 많이 들어 어려서부터 나라와 국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던 것도 외교관의 꿈을 품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이날부터 외교관 후보자가 아닌 ‘유미진 외무사무관’으로 양자경제진흥과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평소 관심이 있었던 중국과 동남아 분야에서 외교관으로서의 역량을 쏟고자 한다. 유씨는 “외무고시가 폐지되고 처음으로 생긴 외교관 후보자 1기에 대해 우려와 걱정의 시선도 많지만 지켜보는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외교관으로 임용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1년 동안 휴가 2주를 제외한 나머지 날은 무조건 오전 7시에 일어나 밤 11~12시까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국립외교원에서 과제와 수업에 몰두해야 했다. 성적에 따라 43명의 동기 중 10%가량인 4명이 외교관 임용에 탈락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유씨는 “10여개의 정규과목과 영어·제2외국어 시험이 연달아 이어져 1년 내내 시험기간 체제로 살아야만 했다”면서 “특히 교수님들께서 ‘진짜 외교관이 되면 이것보다 힘들다’고 겁을 주셔서 과연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동기들 덕분이었다. 동기들은 서로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자료를 수시로 공유하거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함께 시험준비에 몰두했다. 동기들과 끈끈하게 지냈던 유씨는 지난달 있었던 수료식에서 동기들이 뽑은 ‘베스트 동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씨는 “힘든 시기에 있는 동기들의 마음을 잘 공감해 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경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경쟁 안에 격려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반발하던 친일 후손, 뒤론 로비… 해외 사례 더해 2019년 개정판”

    “반발하던 친일 후손, 뒤론 로비… 해외 사례 더해 2019년 개정판”

    “남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정기를 세우기 위해 역사를 연구할 뿐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인사 4300여명을 망라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지 5년을 맞았다. 총 3권, 3000여쪽으로 이뤄진 친일인명사전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수많은 외압에 시달렸다. 일부 후손들은 ‘친일 행적이 아니다’라며 공식 이의 신청을 하는 한편 뒤로는 ‘제발 빼줄 수 없겠냐’며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처럼 게재 금지·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 등의 법적 대응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주역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73) 소장은 23일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한국 사회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고 말했다. 2009년 11월 출간된 사전에는 일제 식민 통치와 태평양전쟁에 협력한 4389명의 주요 친일 행각과 광복 이후의 행적이 담겨 있다. 출간에 앞서 연구소 측은 유족들로부터 이의 신청을 받았고, 이의를 제기한 127명 중 112명의 신청이 기각됐다.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장면 전 국무총리, 음악가 홍난파, 소설가 이광수 등의 유력 인사는 물론이고 독립유공자로 지정됐던 20명도 포함됐다. 임 소장은 “누군가는 자꾸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데 정치와는 무관하다”며 “광복 이후 축적된 각 부문 근현대사 연구의 집대성”이라고 친일인명사전의 성격을 규정했다. 이어 “상당한 고가(권당 10만원)임에도 불구하고 7000부 가까이 팔려 출판계에서도 놀랐다”며 “친일의 의미,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행위의 의미를 국민이 확실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임 소장은 개정판 출간 계획을 발표했다. 주로 지역, 해외에서 이뤄진 친일 행각을 추가로 연구하고 있다. 임 소장은 “사전 발간 이후 ‘왜 이 사람은 빠졌느냐’는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며 “만주, 일본, 러시아에 있던 친일단체들과 그곳에 속했던 사람들에 대한 자료는 거의 모은 상태지만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판은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 발간할 예정이다. 임 소장은 “과거 청산과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 역사를 연구할 뿐이며 우리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며 “이 사전을 기초 자료로 지역별, 분야별 후속 연구가 잇따르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글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사진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열린세상] 안중근 ‘하얼빈 전투’ 105주년을 보내며/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안중근 ‘하얼빈 전투’ 105주년을 보내며/김정현 소설가

    다시 10월이 지나갔다. 우리 민족에게 남겨진 10월의 의미는 다른 열하나의 달(月)과 자못 다른 부분이 있다. 특히 10월 26일에 있었던 여러 역사 전환적 사건 중에서도 1909년 하얼빈역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독립특파대장 안중근 의사가 적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전투가 그러하다. 한반도 근대 암흑기, 그 무능과 좌절의 도정에서 안중근의 의거는 희망과 도전의 기치로 쏘아 올린 가장 밝은 빛이었고,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청산리 전투, 윤봉길 의사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등으로 이어져 한민족의 기개를 만방에 드높이고 마침내 국가 재건으로 이어 간 도화선이었다. 또한 안중근은 불과 30살의 나이로 ‘동양평화’의 위대한 포부를 품어 죽음의 목전까지 ‘동양평화론’ 집필에 전념했으나 일제의 훼방으로 끝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서’(序)와 ‘전감’(前鑑)만으로도 그 큰 뜻을 짐작할 수 있으니 그는 가장 위대한 장군이자 선구적 사상가로 마땅히 우리의 표상이다. “오늘 내 유해를 거두거든 하얼빈공원에 임시로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조국에 반장(返葬)해 다오.” 안중근이 그의 동생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그러나 그의 유해는 실정법마저 무시한 일제의 만행으로 뤼순(旅順)감옥 뒤편 수인 묘지에 암장됐고, 우리는 오늘날까지 그의 마지막 유언마저 받들지 못하는 불의와 수치스러움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를 비롯한 많은 개인, 사적 단체들이 안중근 유해 발굴과 송환을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부정확한 사료에 의지한 일부 지역에 한정된 발굴에 그치니 성과는 없었고, 이제는 뤼순시 개발계획에 의해 훼손된 수인 묘지 일부 구역을 바라보며 낙담만 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한정된 노력과 낙담 속에 세월만 보내다가는 머지않아 완전히 사라져 버린 수인 묘지 구역을 바라보며 영원히 씻지 못할 죄스러움에 고개 숙이게 될 것이다. 다행히 오늘 한국과 중국은 역대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고,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習近平) 주석 역시 안중근 의사에게 깊은 존경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더불어 뤼순감옥 수인 묘지에 묻힌 이들은 대부분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한 항일 열사들이니 그들 또한 각 무덤의 신원 확인에 대한 목마름이 간절하지 않겠는가. 현대의 과학기술은 유해의 유전자와 후손의 유전자를 분석 대조하면 정확한 신원을 확인할 수 있고, 그 방면에서 우리의 실력은 탁월하다. 안중근 의사에게는 그의 후손이 미국에 생존해 있고, 중국 항일 열사들 역시 많은 후손들이 생존해 있을 것이다. 혹여 이미 개발로 사라진 구역에 안중근의 무덤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남아 있는 구역이 더 넓고, 설령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다해 봐야 아쉽더라도 후손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제 그 마지막 노력으로 중국 정부에 ‘뤼순감옥 수인 묘지 전체 공동 발굴’을 제안해 보자. 정부가 세금이라는 부담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면 ‘하얼빈 전투’ 당시 민족정론지로 안중근 의거를 가장 당당하게 보도한 ‘대한매일신문’을 뒤이은 ‘서울신문’이 기치를 세우는 것은 어떨까. 적지 않은 수의 무덤이니 경비 또한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에 청원해 단독 발굴의 승인을 얻거나 공동 발굴로 뜻을 모은다면 근래 들어 가장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니 한·중 양국의 뜻있는 이들의 성금만으로도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 뜻이 닿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을 수 있다면 당연히 효창공원에 마련돼 있는 안중근 의사 가묘에 모시거나, 남산 안중근기념관 앞마당에 안장해 그이의 의기와 ‘동양평화’의 원대한 뜻을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애국’의 숭고함이 그저 귓전을 스치는 구호로도 무상한 세태에 애국을 뛰어넘은 동양평화의 원대한 이상은 소아(小我)와 이기(利己)를 깨뜨리는 죽비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고 나면 비로소 ‘통일’도 ‘민족’도 실재하는 비원(悲願)이 될 것이니 광복의 완성을 볼 수 있으리라.
  • [현장 행정] 윤극영 선생 생가 27일 개장식

    [현장 행정] 윤극영 선생 생가 27일 개장식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지난 17일 찾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 윤극영(1903~1988) 선생 생가에는 그의 대표작 ‘반달’이 걸려 있었다. 강북구 추천으로 서울시의 ‘미래유산 보존사업’ 대상에 포함된 집이다. 지난달 리모델링을 끝냈다. 개장식은 오는 27일 열린다. 대지 205㎡(약 62평), 건축면적 99.8㎡(약 30평)에 예산 8억 7500만원을 썼다. 선생이 1977년부터 작고 때까지 살던 곳이다. 서재에 걸린 달력은 작고 다음날인 1988년 11월 16일에 멈췄다. 거실엔 친필 원고가 전시돼 있다. ‘가을의 情(정)’이 눈에 확 띄었다. ‘너와 같이 걷던 길/ 단풍잎 나부끼며 떨어지던 길/ 소리 눅여 한없이 속삭이던 길/ 다가오는 사랑에 하마 나는 두근거린다/…/ 정이길래 그랬다/ 정이길래 그랬다’ 안방으로 쓰던 큰방은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이용되고 있다. 올해 말까지 매주 수요일 초등생 대상 ‘윤극영 문학 속으로’ 강연을 마련한다. 매주 화요일엔 자유롭게 들러 영화를 보고 차를 나눌 수 있다. 시낭송, 동화구연 교실도 꾸린다. 윤 선생은 일본 유학 중 만난 방정환(1899~1931), 마해송(1905~1966), 이헌구(1905~1982) 등과 ‘색동회’에서 활동했다. 설날, 따오기, 고기잡이, 고드름, 엄마야 누나야 등 동요 100여곡을 작곡하는 등 어린이 문화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반달문화원 안효경 간사는 “동네 어르신들에 따르면 윤 선생은 아이들을 좋아해 늘 집으로 불러들여 친필로 글을 써 주곤 하셨다”고 말했다. 구는 선생의 생가 복원에 맞춰 올해부터 서울지역 어린이 동요대회를 개최한다. 지난 15일까지 192개팀이 신청했다. 30개팀이 다음달 4일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본선을 치른다. 박겸수 구청장은 “생가 복원으로 끝까지 친일을 하지 않고 어린이에게 미래를 노래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줬던 윤극영 선생의 행적이 재조명되길 바란다”면서 “또 그의 생가는 근현대사기념관, 4·19민주묘지, 3·1운동 발상지인 봉황각, 고려 청자가마터 등과 함께 지역 역사·문화 벨트 조성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씨줄날줄] 훈맹정음/서동철 논설위원

    송암 박두성(1888~1963) 선생은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린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했듯, 박 선생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15세기 위대한 업적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훈맹정음이 나오기 전까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1994년 한글점자연구위원회가 확정해 현재 쓰고 있는 한글 점자 통일안은 1926년 박 선생이 내놓은 훈맹정음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개정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1913년 국립맹학교의 전신인 제생원 맹아부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점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닫히고 세상도 닫혀 버린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점자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일본에서 점자인쇄기를 들여와 한국 최초로 점자 교과서를 출판했지만 일본어 점자라는 한계는 여전했다. 한글 점자가 아니더라도 선생의 우리말 사랑은 지극했던 것 같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뒤 조선총독부가 제생원 맹아부의 조선어 과목을 없애려고 하자 그는 “눈이 없다고 사람을 통째로 버리면 되겠느냐.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모국어를 안 가르치면 이중의 불구가 되어 생활을 못하는 것”이라고 항의해 조선어 과목을 유지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21년 한글 점자 개발에 들어간 선생은 1923년 제자들과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라는 비밀조직을 결성해 연구를 본격화했고 마침내 3년 뒤 최초의 한글 점자를 발표할 수 있었다. 선생은 캄캄한 밤에 촛불도 켜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더듬어 가며 한글 점자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후 ‘배우지 않으면 마음조차 암흑이 된다’며 훈맹정음을 시각장애인에게 보급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점자 콘텐츠 확보를 위한 점역(點譯)에도 힘을 쏟았다. 한글날인 9일 국립한글박물관이 문을 연다. 한글박물관은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동쪽에 자리 잡았다. 중앙박물관이 유형문화유산의 보고라면, 한글박물관은 가장 중요한 무형문화유산의 새로운 보금자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글박물관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대표하는 자료 1만점을 수집했다고 한다. 기증받은 훈맹정음도 전시될 것이라는 소식이 반가웠다. 인천시가 박두성 선생의 고향인 강화군 교동도에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만들어 그의 한글 사랑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헌신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뉴스도 있다. 강화도와 이어지는 다리 공사가 한창인 교동도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공기업 특집] 한국산업인력공단, “일하면서 쉽게 배우게” 디지털 교재 무상 제공

    [공기업 특집] 한국산업인력공단, “일하면서 쉽게 배우게” 디지털 교재 무상 제공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국민의 일자리 문제 해결을 지원하는 정부 출연기관으로, 3·1운동에서 모티브를 따온 ‘국민행복! CS 3·1운동’(신속·정확·친절+고객감독)이라는 구호 아래 고객서비스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사 등 주요 전문자격 시험의 응시자격이 복잡해 시험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수험생의 불편을 해결하고자 지난 5월부터 ‘시험응시 자가진단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또 10월부터 제빵기능사 등 상시시험 12종목의 필기시험을 컴퓨터를 이용해 시험문제를 읽고 컴퓨터상에 답안을 적는 CBT(Computer Based Test) 방식으로 전환한다. 공단이 운영하는 자격증 정보제공 사이트 ‘큐넷’(www.q-net.or.kr)을 통해 자가진단서비스를 이용하면 본인의 응시자격 여부 및 준비서류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 또 구직자들이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공단에서 편찬하는 직업훈련교재 디지털본 309종을 모두 ‘기업일학습’(http://www.bizhrd.net) 사이트에 연말까지 무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기업일학습’ 사이트는 일·학습병행제 참여 기업과 학생구직자를 보다 즉각적으로 지원하고자 공단이 구축한 일·학습병행제 전용 사이트다. 공단의 CS 3·1운동 고객서비스 개선은 올해 초 CS 경영위원회 출범에서 시작됐다. 공단은 이를 통해 자격증 발급 시 가상계좌 결제 수단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본인인증 수단을 추가하는 등 다양한 요구를 개선하고 있다. 박영범 이사장은 “국민이 체감하는 살아 있는 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북한과 공동행사 무산돼도 남북 교류는 계속 추진”

    “동학농민혁명은 과거 역사의 한 단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운동입니다. 봉건사회와 계급사회를 타파해 시민이 주인이 되자고 일어선 최초의 전국적인 혁명이었지만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1일 동학농민혁명 제120주년 기념대회 출범식 직후 기자들과 만난 박남수 천도교 교령은 “동학농민혁명은 엄연히 3·1운동과 헌법정신으로 이어진 중차대한 사건인데 과거 역사 속으로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거듭 밝혔다. “120년 전 시대를 바꾸려 했던 당시의 민족정신을 지금 시대에 맞게 다시 살려내는 해로 삼았습니다. 후손들이 제 역할을 못한 탓에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박 교령은 최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국사회에 큰 변화가 왔듯이 120주년을 맞는 올해, 지금 시대에 맞게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다시 활활 사르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기념대회는 천도교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기념재단), 전국동학농민혁명유족회(유족회)가 처음으로 뜻을 모아 함께 치른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함께 배석한 김석태 유족회 회장은 “동학농민혁명의 핵심은 자주·평등·상생”이라며 성대한 기념행사보다 그 좋은 정신을 올곧게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관련단체 간 입장 차로 공동행사를 하지 못하다가 이번 120주년을 계기로 조금씩 양보해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김대곤 기념재단 이사장은 “흔히 갑오경장이 근대적 사상·제도를 도입한 첫 사건으로 인식하지만 갑오경장 이전에 분명히 동학농민혁명운동이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도 이처럼 전 국민이 참여한 민중봉기는 찾아보기 힘들지요”라고 강조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희생자만 10만~30만명에 달한다는 게 천도교 측의 추산이다. 김 이사장은 “2004년 특별법 제정 이후에야 동학 난에서 동학농민혁명으로 명칭이 바뀐 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달 11일 서울시청에서 있을 기념식에는 동학농민혁명을 진압한 일본군 후손 4명이 참석한다. 박남수 교령은 “120주년을 맞는 해에 가해자인 일본과, 북측 천도교인들이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해 동북아 평화를 한 걸음이라도 앞당기려 한다”고 귀띔했다. 박 교령은 특히 북한 천도교의 120주년 남북공동행사 참여가 무산될 상황에 처한 것과 관련, “북한은 천도교의 위상이 높은 편”이라며 “이번 공동행사가 무산되더라도 동질성 회복 차원에서 남북 교류사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시론] 이순신, 김영옥, 그리고 리더십/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소수민족학 교수

    [시론] 이순신, 김영옥, 그리고 리더십/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소수민족학 교수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의 모든 기록들을 경신하는 최고의 히트작이 됐다. 영웅이 없고 강한 리더십을 갈구하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명량에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순신의 리더십은 최전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지휘하는 희생정신과 힘없고 가난한 백성을 보살피는 인간애다. 한국 사회의 현주소는 우울하고 침체된 분위기에서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으며 양극화가 심해진 분열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순신의 리더십은 한국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 영화 속 이순신의 리더십을 보면서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인 김영옥 장군을 떠올리게 됐다. 재미 한국계 2세인 김영옥은 일제의 조선 침탈 시기에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전념했고 김영옥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일제강점기 김영옥은 미군에 입대해 일본계 미국인 병사들로 구성된 100대대의 지휘관으로서 유럽 전선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쟁 영웅으로 퇴역한다. 퇴역 후 김영옥은 적지 않은 연금과 사업가로 성공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미군에 자원 입대했다. 미국에서 편히 살 수 있었음에도 조국을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해 싸우다가 그는 장애인이 됐다. 이런 그의 헌신과 애국심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헌신과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2011년 미국의 유명 포털 사이트인 msn.com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영웅 16명을 선정했을 때 조지 워싱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등과 함께 김영옥이 포함됐을 만큼 그의 리더십은 미국에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의 리더십은 일본계 미국인들마저 추앙하고 칭송할 정도다. 김영옥은 자유, 평등,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서 자신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물론, 다른 인종을 위해 피를 흘렸다. 그는 퇴역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신을 바쳤다. 결국 이순신과 김영옥은 탁월한 지략과 용기 그리고 부하들을 아끼며 솔선수범함으로써 불패의 신화를 남겼으며 기본적으로 인간애가 충만한 리더들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현재 한국의 정치인과 지도층이 보여주고 있는 리더십의 현주소는 암담하다.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에서는 부동산 투기, 병역면제, 전관예우, 논문표절 등의 의혹이 단골로 제기되면서 지도층의 도덕성 부재와 부패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당시의 관행”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리더로서의 올바른 모습을 전혀 보여주고 못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미국 정치의 유명 가문인 케네디가(家)는 네 명의 아들이 모두 미군에 입대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이다. 특히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형인 조 케네디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영국의 윌리엄과 해리 왕자도 공군에 자원입대했으며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최전방에 자원해 파병되기도 했다. 현시대 한국 지도층이 보여주는 암울한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이순신과 김영옥 등 불세출의 영웅들이 보여주고 있는 헌신적 리더십은 침체되고 분열된 한국 사회에 희망과 용기를 던져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기주의와 책임회피 그리고 병역회피가 만연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한국 사회에 이순신과 김영옥 같은 리더들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본래 DNA가 결코 이기적이지 않고 희망적이다는 사례일 수 있다. 이 같은 긍정적 DNA를 본받고 양성해서 앞으로 더 많은 이순신, 더 많은 김영옥을 배출하는 게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의무라 하겠다.
  • [글로벌 시대]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열풍을 보면서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떠올랐다.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종교 지도자 두 분의 한국 방문이 서로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추진된 바가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티베트를 지배하고 있는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감안해 무산시켰었다. 그런데 지난 7월 조계종 중앙회가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 선포식’을 거행하고 2016년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추진하고 있어 향후 성사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 북서쪽 드넓은 초원에 양떼와 야크들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땅 티베트. ‘서쪽의 성결(聖潔)한 땅’이라는 뜻을 가진 ‘시짱’(西藏)에는 우리의 일제 강점기와 닮은 티베트인들의 아프고 시린 역사가 있다.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하고,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티베트를 강제 점령했다. 결국 1959년 3월 10일 중국의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달라이 라마는 1960년 인도에 망명 정부를 수립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1966년 중국 문화 대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중국은 티베트 불교사원을 다수 파괴하고 티베트어의 사용을 금하는 한편, 대규모 한족을 티베트에 강제 이주시켜 티베트의 중국화를 가속화했다. 1989년 3월 티베트는 독립운동 30주년을 맞아 대규모 독립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중국의 유혈진압으로 갈등의 최고조를 맞이하게 된다. 결국 1999년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독립 대신, 티베트의 문화 전통 유지를 전제로 하는 진정한 자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 역사는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 1919년 전국적인 대규모 독립만세 운동, 3·1운동 이후의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일제의 강제 탄압, 한글 사용 금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와 너무도 똑같은 수순을 밟아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티베트는 독립에 이르지 못했으며, 현재 자치권의 확보도 녹록지 않은 상태다. 베이징을 출발해 티베트 라싸(薩)까지 48시간 달리는 칭짱(靑藏)철도가 2006년 개통되고, 올 8월 라싸에서 티베트 제2도시 르카쩌(日喀則)까지 추가 구간이 연결되면서, 티베트의 중국화는 가속화하고 있고 유사시 중국군의 투입이 가능해졌으며, 티베트의 전통 문화도 급속히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출신 베이징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티베트 젊은 세대 다수는 이미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 버렸고, 티베트 분리나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중국화·현대화에 몸을 싣고 있었다. 식민지배의 역사적 아픔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우리는 티베트의 현실과 미래를 진정성 있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2011년 티베트의 정치적 실권을 롭상 상가이 총리에게 넘겨주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종교 지도자로만 남아 세계 각국을 방문하여 법회를 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노골적인 반대에도 강연회를 수락했고, 일본도 34차례나 방문을 허락했다. 우리도 더 이상 중국의 눈치를 보며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랬듯, 달라이 라마가 우리 국민들의 환대 속에 한국땅을 밟고 그가 책에서 말했던 ‘용서해라. 그래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진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보인다’와 같은 용서와 치유,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해주길 기대한다.
  • 백남준 선생 등 독립유공자 192명 포상

    백남준 선생 등 독립유공자 192명 포상

    국가보훈처는 제69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유공자 192명을 포상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 중에는 지난해 6월 주일 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발견된 ‘3·1운동 피살자 명부’에 등재된 30명이 함께 포함됐다. 백남준 선생 등 3명이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고 87명이 애국장, 71명이 애족장을 각각 받는다. 포상자 가운데 생존자는 없으며 여성은 4명이다. 백 선생은 일제의 한국 강점 직후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중국 관내와 만주를 누비며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해 독립장이 추서된다. 함께 독립장을 받는 송중직 선생은 황해도와 인천의 섬들을 무대로 대대적인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19년의 형을 받고 순국했다. 정원명 선생은 미국 하와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동포사회의 통합에 힘을 쓴 공로로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번 포상자 중 보훈처가 일제의 행형기록((行刑記錄)과 정보문서, 신문기사 등 각종 문헌자료를 분석하고 현지 조사를 하는 등 자체 발굴해 포상하게 된 독립유공자는 182명이다. 아울러 보훈처는 전수하지 못하는 독립유공자의 훈장을 그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해 후손 찾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7월 말 기준으로 총포상자 1만 3509명 중 34%인 4586명이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이 전수되지 못하고 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독립유공자 후손 16명 국적증서 수여

    독립유공자 후손 16명 국적증서 수여

    1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황교안(앞줄 가운데) 법무부 장관이 특별 귀화한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앞줄 왼줄에서 두 번째) 등과 함께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린튼은 1912년 국내에서 선교사를 활동하며 3·1운동을 해외에 알린 윌리엄 린튼 선생의 증손자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法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친일재산 국고 귀속 특별법 합헌 결정

    판례의 재구성 11회에서는 2011년 3월 친일파 후손 64명이 “친일재산이라도 당시 재산법제에 의해 취득한 재산을 다시 국가에 귀속하도록 한 특별법은 소급입법에 해당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2008헌바141)을 소개한다. 헌재 결정의 의미와 해설을 헌법 분야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부터 듣는다. ‘친일재산 몰수 규정 합헌’ 결정은 헌재가 지난해 9월 창립 25주년을 맞아 ‘헌재 주요 결정 10선’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1554표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친일재산 국고 귀속 논란은 친일재산 환수 작업에 반발한 친일파 후손들이 헌법소원과 민사소송을 잇따라 내면서 촉발됐다. 1992~1997년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씨가 “국가에 몰수된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친일파 후손들의 반환 소송이 이어졌고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친일재산을 국가가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2006년 7월 출범한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2010년 7월까지 활동하면서 친일행위자 168명의 재산 1000억여원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한일병합에 기여해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민영휘의 후손 등 친일파 후손들이 2008~2010년 헌법소원을 내면서 헌재는 특별법에 대한 위헌성을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헌재는 2011년 3월 친일파 후손 64명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합헌)대 2(일부한정위헌)대 2(일부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해당 조항은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의 재산 가운데 후손 스스로 경제적 활동을 통해 취득한 재산, 친일재산 이외의 상속재산 등을 단지 선조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몰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좌제 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특별법이 소급입법의 형식을 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제헌헌법 부칙은 ‘국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등 역사상 과거사 청산에 관한 다수 입법들에서 소급입법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용인돼 왔다”고 판시했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에서도 전쟁이 끝나고 나치의 괴뢰정권 정부를 위해 복무한 자들을 소급적으로 처벌했다”며 “이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반성의 산물이고,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결의와 성찰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친일재산과 관련, ‘러일전쟁 개시 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파가 취득한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어떤 재산이 친일재산인지 국가가 일일이 입증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재산 취득자나 그 후손들은 경위와 내역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개연성이 높아 이들에게 이를 입증하도록 한 것은 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부한정위헌 의견을 낸 이동흡·목영준 재판관은 “친일파 후손은 1904년 이전에 친일재산이 아니라 다른 경위로 토지를 취득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당시 사실관계를 입증할 서증이나 증인이 현재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며 “입증 책임을 다하지 못해 친일재산과 무관한 재산까지도 박탈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이강국 소장과 조대현 재판관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단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에 합치되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해당 조항은 소급입법에 해당해 헌법에 위반된다”며 일부위헌 의견을 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박근혜 대통령 반응은?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박근혜 대통령 반응은?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문창극 삭주’ ‘문창극 박근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후보직을 자진사퇴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 오전 정부 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총리지명 14일 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검증을 해 국민의 판단을 받기위해서인데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는 부디 청문회에서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서는 소명의 기회를 줘 개인과 가족이 불명예와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민 대변인이 전했다. 다음은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주신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신 총리실 공무원 여러분들, 그리고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신 지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밤을 새우며 취재를 하신 기자 여러분을 보면서 제 젊은 시절이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십 년의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이 없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에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는 조그마한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의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하는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천부적인 권리입니다.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동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됩니다. 이 여론이라는 것이 실체가 무엇입니까.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할 곳은 국회입니다. 이번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입니다. 진실보도입니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보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입니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희망이 없습니다. 신앙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입니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마지막 드릴 말씀은 제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에 대해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갖게 됐습니다. 저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의 가족은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셨다고 문기석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우리 당시 민족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돌아가셨다 했기 때문에 저도 사실 당당한 조상을 모신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증팀이 보훈처에 자료를 가지고 알아봤습니다. 뜻밖에 저희 할아버지가 2010년에 애국장이 추서된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자녀도 검색해봤습니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이렇게 검색 해보십시오.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7년 상해 발행 독립신문 찾아보시라. 이거 언론재단에 다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밖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어제 말했습니다. 이런 정치싸움에 나라에 목숨 바친 할아버지가 다른 자손들에게 누가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나라 독립위해 목숨 바친 분 손자로서 다른 분과 똑같이 처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드릴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십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오늘 총리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창극 자진사퇴 기자회견, 비난 언론 향해 ‘지적’…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

    문창극 자진사퇴 기자회견, 비난 언론 향해 ‘지적’…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

    문창극 자진사퇴 기자회견, 비난 언론에 ‘지적’…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 ‘망언’ 논란에 휘말렸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총리지명 14일만에 결국 사퇴했다. 문창극 후보자는 24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사퇴를 선언했다. 문창극 후보자는 하지만 문 후보자는 자신이 독립운동가인 문남규 선생의 손자가 맞다면서 독립유공자 논란에 대해서는 강하게 항변했다. 문창극 후보자는 “제 가족은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셨다고 아버님(문기석)으로부터 듣고 자랐다”고 밝혔다. 이어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이야기를 했고, 검증팀이 보훈처에 자료를 가지고 알아봤다. 저의 자녀도 검색해봤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이렇게 검색해달라”고 전했다.  문창극 후보자는 “제 가족은 이 사실을 밖으로는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절차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다고 어제 말씀드렸다. 이런 정치 싸움 때문에 나라에 목숨 바치신 할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이 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의 손자로서 보훈처가 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 절차에 따라 다른 분의 경우와 똑같이 처리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고(故) 문남규 선생은 지난 1921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하다 전사한 대한독립단 소속 독립투사로 지난 23일 국가보훈처는 문 후보자의 조부가 독립유공자인 문남규 선생이라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문창극 조부의 독립유공자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을 발간한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는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과 문창극 후보의 조부가 동일인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유은호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현재 발굴된 사료로는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를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독립단 주 모씨 휘하 소대 대원으로 1920년(민국2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했고 이 같은 내용이 1921년 4월9일자 독립신문에 실려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문창극 후보자는 자신을 향해 각종 의혹을 쏟아낸 언론에 대해서도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라고 강조한 뒤 “다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 보도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KBS가 자신의 교회 특별강연 중 일부를 발췌해 보도하면서 친일사관 논란이 인 것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창극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검색창에 쳐보세요” 왜?

    문창극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검색창에 쳐보세요” 왜?

    ‘문창극 기자회견 후보자 사퇴, 문남규 삭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후보자 사퇴 의사를 밝혔다. 문창극 후보자는 24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 사퇴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창극 후보자는 교회 강연 논란과 친일파 논란 등에 대해 해명하며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총리 지명 14일 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하 문창극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 전문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주신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신 총리실 공무원 여러분들, 그리고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신 지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밤을 새우며 취재를 하신 기자 여러분을 보면서 제 젊은 시절이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십 년의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이 없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에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는 조그마한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의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하는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천부적인 권리입니다.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동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됩니다. 이 여론이라는 것이 실체가 무엇입니까.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할 곳은 국회입니다. 이번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입니다. 진실보도입니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보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입니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희망이 없습니다. 신앙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입니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마지막 드릴 말씀은 제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에 대해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갖게 됐습니다. 저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의 가족은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셨다고 문기석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우리 당시 민족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돌아가셨다 했기 때문에 저도 사실 당당한 조상을 모신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증팀이 보훈처에 자료를 가지고 알아봤습니다. 뜻밖에 저희 할아버지가 2010년에 애국장이 추서된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자녀도 검색해봤습니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이렇게 검색 해보십시오.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7년 상해 발행 독립신문 찾아보시라. 이거 언론재단에 다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밖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어제 말했습니다. 이런 정치싸움에 나라에 목숨 바친 할아버지가 다른 자손들에게 누가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나라 독립위해 목숨 바친 분 손자로서 다른 분과 똑같이 처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드릴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십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오늘 총리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감사합니다. 네티즌들은 “문창극 후보자 기자회견, 결국 사퇴 하는구나”, “문창극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고 해서 빵 터졌다”, “문창극 후조자 사퇴 기자회견, 문남규 삭주 조부 맞나”, “문창극 후보자 사퇴 기자회견, 문남규 삭주 검색어 만들고 가시네”, “문장극 후보자 기자회견 사퇴, 다음 후보자는 누구일까”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문창극 후보자 기자회견 사퇴, 문남규 삭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국회, 청문회 개최할 의무 있어”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국회, 청문회 개최할 의무 있어”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4일 오전 10시쯤 서울정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저는 오늘 총리후보를 자진사퇴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주신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신 총리실 공무원 여러분들, 그리고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신 지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밤을 새우며 취재를 하신 기자 여러분을 보면서 제 젊은 시절이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십 년의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이 없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에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는 조그마한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의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하는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천부적인 권리입니다.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동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됩니다. 이 여론이라는 것이 실체가 무엇입니까.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할 곳은 국회입니다. 이번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입니다. 진실보도입니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보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입니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희망이 없습니다. 신앙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입니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마지막 드릴 말씀은 제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에 대해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갖게 됐습니다. 저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의 가족은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셨다고 문기석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우리 당시 민족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돌아가셨다 했기 때문에 저도 사실 당당한 조상을 모신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증팀이 보훈처에 자료를 가지고 알아봤습니다. 뜻밖에 저희 할아버지가 2010년에 애국장이 추서된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자녀도 검색해봤습니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이렇게 검색 해보십시오.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7년 상해 발행 독립신문 찾아보시라. 이거 언론재단에 다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밖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어제 말했습니다. 이런 정치싸움에 나라에 목숨 바친 할아버지가 다른 자손들에게 누가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나라 독립위해 목숨 바친 분 손자로서 다른 분과 똑같이 처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드릴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십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오늘 총리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창극 자진사퇴,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를 검색하세요”…문남규 평북 삭주 전사 외 다른 자료는?

    문창극 자진사퇴,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를 검색하세요”…문남규 평북 삭주 전사 외 다른 자료는?

    문창극 자진사퇴,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를 검색하세요”…문남규 평북 삭주 전사 외 다른 자료는? ‘망언’ 논란에 휘말렸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총리지명 14일만에 결국 사퇴했다. 문창극 후보자는 24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사퇴를 선언했다. 문창극 후보자는 하지만 문 후보자는 자신이 독립운동가인 문남규 선생의 손자가 맞다면서 독립유공자 논란에 대해서는 강하게 항변했다. 문창극 후보자는 “제 가족은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셨다고 아버님(문기석)으로부터 듣고 자랐다”고 밝혔다. 이어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이야기를 했고, 검증팀이 보훈처에 자료를 가지고 알아봤다. 저의 자녀도 검색해봤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이렇게 검색해달라”고 전했다. 고(故) 문남규 선생은 지난 1921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하다 전사한 대한독립단 소속 독립투사로 지난 23일 국가보훈처는 문 후보자의 조부가 독립유공자인 문남규 선생이라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문창극 조부의 독립유공자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을 발간한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는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과 문창극 후보의 조부가 동일인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유은호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현재 발굴된 사료로는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를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독립단 주 모씨 휘하 소대 대원으로 1920년(민국2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했고 이 같은 내용이 1921년 4월9일자 독립신문에 실려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언론, 진실보도 의무”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검색해보라…언론, 진실보도 의무”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문남규 삭주’ ‘문창극 삭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후보직을 자진사퇴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 오전 정부 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총리지명 14일 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문 후보자는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시고 저를 거두어 들일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시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 드리고 싶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또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며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에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하는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문창극 기자회견 전문.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주신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신 총리실 공무원 여러분들, 그리고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신 지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밤을 새우며 취재를 하신 기자 여러분을 보면서 제 젊은 시절이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십 년의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이 없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에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는 조그마한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의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하는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천부적인 권리입니다.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동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됩니다. 이 여론이라는 것이 실체가 무엇입니까.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할 곳은 국회입니다. 이번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입니다. 진실보도입니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보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입니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희망이 없습니다. 신앙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입니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마지막 드릴 말씀은 제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에 대해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갖게 됐습니다. 저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의 가족은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셨다고 문기석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우리 당시 민족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돌아가셨다 했기 때문에 저도 사실 당당한 조상을 모신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증팀이 보훈처에 자료를 가지고 알아봤습니다. 뜻밖에 저희 할아버지가 2010년에 애국장이 추서된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자녀도 검색해봤습니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이렇게 검색 해보십시오.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7년 상해 발행 독립신문 찾아보시라. 이거 언론재단에 다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밖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어제 말했습니다. 이런 정치싸움에 나라에 목숨 바친 할아버지가 다른 자손들에게 누가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나라 독립위해 목숨 바친 분 손자로서 다른 분과 똑같이 처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드릴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십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오늘 총리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창극 사퇴, 교회 강연-친일파 논란 해명

    문창극 사퇴, 교회 강연-친일파 논란 해명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4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 사퇴했다. 이날 문창극 후보자는 교회 강연 논란과 친일파 논란 등에 대해 해명하며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총리 지명 14일 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하 전문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주신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신 총리실 공무원 여러분들, 그리고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신 지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밤을 새우며 취재를 하신 기자 여러분을 보면서 제 젊은 시절이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십 년의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이 없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에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는 조그마한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의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하는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천부적인 권리입니다.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동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됩니다. 이 여론이라는 것이 실체가 무엇입니까.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할 곳은 국회입니다. 이번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입니다. 진실보도입니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보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입니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희망이 없습니다. 신앙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입니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마지막 드릴 말씀은 제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에 대해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갖게 됐습니다. 저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의 가족은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셨다고 문기석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우리 당시 민족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돌아가셨다 했기 때문에 저도 사실 당당한 조상을 모신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증팀이 보훈처에 자료를 가지고 알아봤습니다. 뜻밖에 저희 할아버지가 2010년에 애국장이 추서된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자녀도 검색해봤습니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이렇게 검색 해보십시오.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7년 상해 발행 독립신문 찾아보시라. 이거 언론재단에 다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밖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어제 말했습니다. 이런 정치싸움에 나라에 목숨 바친 할아버지가 다른 자손들에게 누가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나라 독립위해 목숨 바친 분 손자로서 다른 분과 똑같이 처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드릴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십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오늘 총리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창극 “총리 후보에서 사퇴하겠다”

    문창극 “총리 후보에서 사퇴하겠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4일 오전 정부 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 사퇴했다. 이날 문창극 후보자는 교회 강연 논란과 친일파 논란 등에 대해 해명하며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총리 지명 14일 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하 전문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그동안 많은 관심을 쏟아주신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신 총리실 공무원 여러분들, 그리고 밖에서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신 지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밤을 새우며 취재를 하신 기자 여러분을 보면서 제 젊은 시절이 다시 한 번 더듬어 볼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십 년의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이 없었는가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저는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나라에 근본을 개혁하시겠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또 분열된 이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저는 조그마한 힘이지만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께서 앞으로 국정 운영을 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 이 나라의 통합과 화합의 조금이라도 기여코자 하는 저의 뜻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 그리고 천부적인 권리입니다.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의사와 법치라는 두 개의 기동으로 떠받쳐 지탱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됩니다. 이 여론이라는 것이 실체가 무엇입니까.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할 곳은 국회입니다. 이번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저에게 사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입니다. 진실보도입니다.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보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킨다면 그것은 진실보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입니다. 우리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희망이 없습니다. 신앙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입니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마지막 드릴 말씀은 제가 총리 지명을 받은 후 벌어진 사태에 대해 우리 가족은 역설적으로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갖게 됐습니다. 저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대해 저와 제 가족은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의 가족은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셨다고 문기석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우리 당시 민족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돌아가셨다 했기 때문에 저도 사실 당당한 조상을 모신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증팀이 보훈처에 자료를 가지고 알아봤습니다. 뜻밖에 저희 할아버지가 2010년에 애국장이 추서된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자녀도 검색해봤습니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이렇게 검색 해보십시오.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7년 상해 발행 독립신문 찾아보시라. 이거 언론재단에 다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밖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어제 말했습니다. 이런 정치싸움에 나라에 목숨 바친 할아버지가 다른 자손들에게 누가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나라 독립위해 목숨 바친 분 손자로서 다른 분과 똑같이 처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분도 그 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드릴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십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오늘 총리후보를 자진사퇴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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