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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관순 열사 올케’ 조화벽 지사를 아시나요

    ‘유관순 열사 올케’ 조화벽 지사를 아시나요

    독립선언서 숨겨 운반한 가죽가방, 은수저 기념품 등 유품 82점 기증받아 3·1운동을 주도한 여성독립운동가 중 한 명인 조화벽(1895~1975) 지사의 유품이 처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여성가족부는 조 지사의 며느리 김정애씨가 유품 82점을 경기 고양시에 있는 국립여성사전시관에 기증했다고 5일 밝혔다. 조 지사는 1919년 개성 호수돈여학교 재학 당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강원도 양양으로 가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선후배들과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세운 뒤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뿌리고 헌병대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배화여고 교사로 재직하면서 독립운동을 직·간접으로 지원했다. 교직생활을 하던 1925년 4월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1899~1968) 지사와 결혼하고 이후 유 지사의 가족을 은신시키기도 했다. 조 지사의 남편인 유 지사는 충남 천안군의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원산청년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번에 기증된 유품 중에는 조 지사가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숨겨 운반했던 가죽가방, 배화여고 재직 당시 받은 은수저 기념품, 유 지사가 독립운동 당시 들고 다녔던 가죽가방 등이 포함됐다. 며느리 김씨는 “개인적으로 유품을 보관해 오다가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새롭게 조명받는 것을 보고 전시관에 기증키로 했다”고 전했다. 이기순 여가부 여성정책국장은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올해 안에 관련 유품·유물 전시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현장행정] 흩어졌던 만해의 유산, 700㎞로 잇는다

    [현장행정] 흩어졌던 만해의 유산, 700㎞로 잇는다

    시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을 기리고자 5개 도시가 손을 맞잡았다. 서울 성북구와 서대문구, 강원 속초시와 인제군, 충남 홍성군의 수장들이 지난 22일 만해의 생가가 있는 홍성군에 모였다. 이들 5개 도시는 출생(홍성)부터 출가(인제), 수행(속초), 수감(서대문), 입적(성북)까지 만해 인생의 큰 변곡점에 있던 곳이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5개 도시가 700㎞ 만해 순례길을 만들었다”며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3·1 독립선언식에서 인사말을 한 뒤 경찰에 체포됐던 만해 선생을 기리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에 다시 뜻과 마음을 모으자”고 밝혔다. 지난해 5개 도시는 서울에서 출발해 홍성 생가를 지나 백담사와 만해마을, 신흥사를 거쳐 서대문형무소와 심우장에서 끝나는 만해 순례길을 만들었다. 김 구청장의 제안으로 5개 도시는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 지방정부행정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날 열린 출범식에서 만해축전과 순례길 운영, 한용운 기념관 건립과 웹툰 제작 등의 사업을 5개 도시가 같이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순선 인제군수는 “거리도 떨어져 있고 공통점도 거의 없는 5개 지방자치단체가 민족의 큰 유산인 만해의 얼을 계승하고자 모였다”고 말했다. 이병선 속초시장도 “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지자체가 협의회를 구성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만해를 기리는 사업은 그동안 5개 도시에서 각각 이뤄졌다. 특히 학생들의 방학이 있는 여름에 만해축전, 만해대상 시상식, 백일장 등의 행사가 집중됐다. 이날 모인 자치단체장들은 만해 정신을 기리는 일이 1년 내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만해는 동국대의 전신인 명진학원의 1회 졸업생으로 동국대 초대 동창회장이기도 하다. 고재석 동국대 만해연구소장은 “만해는 비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막혀 돌아와야 했지만 세계 일주를 꿈꾸었던 세계인이었다”며 “만해 순례길을 국내 700㎞에서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성북구는 만해가 해방을 1년 앞두고 생을 마감한 고택 심우장에서 그의 말년을 담은 뮤지컬 ‘심우’를 상설 공연할 예정이다. 만해의 일대기는 배우 김갑수씨가 열연했던 연극·뮤지컬 ‘님의 침묵’으로 1980~90년대 조명받은 바 있다. 영화 ‘동주’처럼 소규모 저예산으로 한용운에 대한 영화를 만들자는 의견도 쏟아졌다. 5개 도시의 지도자들은 2019년 3월 1일을 목표로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사업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대구 중구는 대구를 대표하는 자치단체였다. 중구 동성로는 늘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빌딩과 상가는 불야성을 이뤘던 대구 최대 번화가였다. 하지만 수성구, 달서구 등 외곽지가 개발되면서 점차 사양길에 들어섰다. 실제로 1980년 구의 인구는 21만 8964명이었으나 매년 줄어들면서 2012년 7만 6142명까지 내려갔다. 별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던 중구에 스토리텔링이란 아이디어가 도입됐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2007년 골목에 스토리를 입히는 근대골목사업을 추진했다. 처음 구청장에 당선된 뒤 1년 남짓 지났을 때였다. 윤 구청장은 “구청장이 되자 대부분의 사람이 지역 발전을 위한 방법으로 재개발과 재건축 등 일반적인 도심정책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중구는 재개발, 재건축 대상지가 아니라 100년 역사가 살아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따라서 윤 구청장은 기존 정책 대신 도심 재생이란 방향으로 구정을 선택했다. “도심 재생 첫 작품이 근대골목사업이었다”고 했다. 마침 중구에는 3·1운동길, 뽕나무골목, 성밖골목, 이상화·이상돈 고택 등 근대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콘텐츠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에 스토리를 입히고 근대 이미지를 재현했다. 생태 잔디블록, 자연토 생태 흙 포장, 뽕나무 식재 등 친환경 디자인 작업도 병행했다. 막힌 골목을 연결하고 3·1만세운동 쌈지공원도 만들었다. 1년여에 걸친 이 같은 작업을 거쳐 2008년부터 근대골목투어라는 상품을 내놨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업 첫해에 287명이던 관광객 수가 지난해 30만 3263명까지 증가했다. 201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됐고 같은 해 ‘대한민국 대표 관광명소 99곳’에 지정됐다. 또 2014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 10곳 걷기 좋은 길’에 이름을 올리는 등 전국적인 관광지로서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윤 구청장의 스토리텔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조성이란 ‘신의 한 수’를 내놨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우범지대로 전락한 방천시장 옆 골목에 ‘가수 김광석’이란 스토리를 입힌 것이다. 110m에 이르는 골목에 벽화를 그리고 쌈지공원을 조성하고 김광석 조형물을 설치했다. 골목방송국과 야외공연장을 만들었다. 김광석 거리는 근대골목에 이어 또 히트작이 됐다.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주중에는 하루 1200여명, 주말에는 6000여명이 찾고 있다. 대부분 김광석을 그리는 젊은 층이고 상당수는 관광객들이다. 지난달 25일 윤 구청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전 8시 숙소에서 나와 걸어서 출근했다. “초선일 때는 오전 6~7시 집에서 나왔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도 구청장의 움직임에 맞춰 일찍 출근했다. 모든 공직 시스템에 혼란이 오는 것을 느꼈다”며 출근 시간을 늦춘 배경을 설명했다. 출근길에도 주요 간선 도로를 순찰해 거리 청소 상황, 보도블록 파손 실태, 불법 현수막 게재 등 지역 상황을 하나하나 챙겼다. “방문객들이 많아서 다른 지역보다 오전에는 거리 상태가 불량할 수 있다. 그래서 꼼꼼히 청결 상태 등을 챙긴다”고 말했다. 오전 9시부터 1시간 동안 보고를 받고 결재를 했다. 10여건의 보고와 결재가 의외로 쉽게 마무리됐다. 그는 “업무 보고와 결재 전에 해당 사안에 대해 충분한 토론과 협의를 한다. 따라서 보고와 결재는 사전에 결론을 내린 것으로 일종의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3선 구청장을 하면서 업무의 효율을 위해 선택한 노하우 중 하나다. 오전 10시가 되자 3·1절 기념행사 추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근대골목투어 코스 중 하나인 청라언덕으로 출발했다. 윤 구청장은 “대부분 3·1절 행사가 실내에서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현장감 있는 새로운 기념식을 위해 생각해 낸 게 3·1만세운동 재현이었다”고 말했다. 청라언덕과 3·1만세운동길 등지에서 열린 행사는 연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공연됐고 만세삼창과 만세운동 재현 행진 등으로 진행됐다. 윤 구청장은 이어 구교남 YMCA 회관 보수공사와 김광석 거리 내 방천스토리하우스 공사 현장을 점검했다. YMCA 회관은 건물 내·외부를 모두 교체하고 있으며 오는 9월 15일 YMCA 창립총회 기념일에 재개관된다. 점심은 약령시에 있는 식당에서 골목해설사 52명과 했다. 중구 소속 골목해설사는 현재 70명이 있으며 외국어 해설사는 29명이나 된다. 윤 구청장은 이들의 노고를 위로하면서 앞으로도 근대골목을 찾는 사람들에게 우리 근대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역사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점심 후 야시장 개설을 추진 중인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윤 구청장은 동행한 실무자들에게 기존 상인과 야시장 운영 상인 간의 소통을 통해 갈등이 없도록 할 것을 주문했다. 구청으로 돌아온 뒤 오후 결재와 보고를 마친 뒤 곧바로 소회의실에서 열린 노천카페 검토 회의를 주재했다. 지역 관광호텔에 대해 노천카페를 허용하는 사안으로 윤 구청장은 민원 발생을 최소화하고 위생 관리와 이용객들이 편리한 방향으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오후 6시 30분에는 시장·구청장·군수 정책협의회에 참석했다. 대구시와 각 구·군 간 상생발전과 협력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개최되는 이 모임에서 그는 경부고속철도변 동인동 구간 녹지 조성과 김광석 거리 공용화장실 신축 등에 시의 지원과 협조를 요청했다. 협의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윤 구청장은 “그동안 구정 업무를 수행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의 섬세함으로 현장을 찾아다니며 주민 한 분 한 분의 말에 귀 기울인 결과”라며 “관광 불모지인 중구가 대한민국 명품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고난 속 한국 사랑하고 도운 외국인들] ‘딜쿠샤’ 주인 유품 74년 만에 귀환

    [고난 속 한국 사랑하고 도운 외국인들] ‘딜쿠샤’ 주인 유품 74년 만에 귀환

    “3·1 독립운동을 처음 세계에 알렸던 할아버지의 집 ‘딜쿠샤’를 일반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뜻깊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미국 AP통신의 한국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테일러가 지난 2일 한국을 찾아 할아버지의 유품 및 딜쿠샤 관련 유물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번에 기증한 자료들은 앨버트 테일러가 사용한 담배 파이프, 3·1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편지, ‘호박 목걸이’의 저자 메리 테일러의 호박 목걸이, 딜쿠샤 내부 사진 및 관련 문서 등이다. 기증 자료 가운데 딜쿠샤 사진들은 일제강점기에 딜쿠샤 내부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당시 서양식 저택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딜쿠샤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다시 3·1절을 돌아보자면/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세종로의 아침] 다시 3·1절을 돌아보자면/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지난 3·1절은 유난히 조용했던 것 같다. 요란하던 ‘태극기 달기’ 캠페인도 투미했고 3·1절 기념식장 분위기도 지난해의 강한 일본 성토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지금의 한·일 관계를 보자면 태극기 물결과 반일의 목소리며 몸짓들이 훨씬 더 크고 강해야 했을 텐데…. 그 한켠에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그린 영화 ‘귀향’의 누적 관객이 100만명을 넘어섰고 지난 연말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발한 대학생들은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62일간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막겠다며 노숙 농성을 이어 갔다. 그런가 하면 위안부 재단 설립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제안한 10억엔 기부를 거부하고 3월 중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손잡는 정의 기억재단’ 설립을 위한 시민 모금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다. ‘3·1절을 잊지 말자’는 민초들의 조용한 항거와 결집이 도드라진다. 3·1절을 앞두고 서울시가 3·1운동을 처음 나라 바깥에 알린 AP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와 가족이 살던 종로구 행촌동의 집 ‘딜쿠샤’를 복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제 압제와 이 땅 민초들의 항거를 취재, 보도하다가 추방된 그의 뜻과 힘겨운 노력을 뒤늦게 되살린다니 백번 높이 사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데 그 복원의 반가움 한켠에 서대문형무소 맞은편 오래된 주택가에 있는 ‘옥바라지 골목’이 사라지게 됐다는 비보가 얹혀 기분이 언짢다. ‘옥바라지 골목’이라면 1911년 ‘105인 사건’에 얽혀 서대문형무소에 대거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의 옥바라지를 하려 가족들이 몰려들면서 생긴 여관촌이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도 여관 청소를 도우며 옥바라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데 곧 철거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형편이라니 우리가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를 아찔하게 보여 준다. 일제의 폭압과 희생, 항거가 서린 흔적들이 잊혀지고 사라지는 게 어디 한둘일까. 3·1절 당일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서울 인사동 태화관 자리의 빌딩이 도시 재개발로 헐릴 운명이고, 3·1운동 직전 민족 대표들이 모였던 의암 손병희 선생 집터는 오간 데 없이 비석만 덩그마니 남았다. 3·1운동 때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물던 곳이자 학생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는 공간엔 게스트하우스가 서 있다. 그 와중에 초등학교 6학년 국정 사회 교과서엔 위안부 표현이 삭제되고,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알리기 위해 만들겠다고 발표했던 백서 사업은 답보 상태에 빠졌다는 관측이 많다. 모두 무관심과 망각의 안이가 부른 안타까운 사례들이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천도교를 주축으로 한 종교계가 3·1운동 정신 되살리기에 나섰다. 화해와 상생, 평화의 정신을 이 시대에 실천하자며 3·1운동 학술조사와 재평가 작업을 비롯해 종교평화센터 건립을 추진하려는 결집이다. 그런데 그 운동의 복판에 선 박남수 천도교 교령의 귀띔이 예사롭지 않다. 뭉치고 힘을 합쳐도 모자랄 지경인데 뜻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해득실을 따진 입장 차와 파장의 앞선 저울질 탓으로 보인다. 정말 ‘국민이 나서야 할 때’인가 보다. kimus@seoul.co.kr
  • 3·1운동 보도 특파원 손녀 ‘딜쿠샤’ 관련 물품 기증

    3·1운동 보도 특파원 손녀 ‘딜쿠샤’ 관련 물품 기증

    “3·1 독립운동을 처음 세계에 알렸던 할아버지의 집 ‘딜쿠샤’를 일반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뜻 깊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미국 AP통신의 한국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테일러가 지난 2일 한국을 찾아 할아버지의 유품 및 딜쿠샤 관련 유물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번에 기증한 자료들은 앨버트 테일러가 사용한 담배 파이프, 3·1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편지, ‘호박 목걸이’의 저자 메리 테일러의 호박 목걸이, 딜쿠샤 내부사진 및 관련 문서 등이다. 기증 자료 가운데 딜쿠샤 사진들은 일제 강점기에 딜쿠샤 내부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서 당시 서양식 저택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딜쿠샤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이번에 기증받은 자료들로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미국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가 일제 강점기 서울에서 활동한 내용과 딜쿠샤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딜쿠샤는 붉은 벽돌로 만든 서양식 가옥으로 힌두어로 희망의 궁전이란 뜻이다. 1923년 준공됐으며 앨버트 테일러는 1942년까지 딜쿠샤에서 살았다. 서울시는 최근 딜쿠샤를 복원해 2019년 시민에게 개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유관순 요판화·기념 메달 한정 판매

    유관순 요판화·기념 메달 한정 판매

    한국조폐공사는 2일부터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유관순 열사 ‘요판화·기념메달’ 세트를 500개 한정 판매한다. 요판화에는 3·1운동에 사용한 태극기 목판과 유관순 열사 어록 등이 새겨져 있다. 기념 메달 앞면에는 유관순 열사 존영, 뒷면에는 3·1정신상을 넣었다. 판매 가격은 7만원이며 조폐공사 쇼핑몰 등에서 살 수 있다.
  • 멕시코로 간 독립의 꿈… 안창호 선생 동선 첫 확인

    멕시코로 간 독립의 꿈… 안창호 선생 동선 첫 확인

    3·1운동 직전 멕시코 한인사회를 방문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체류했던 숙소가 발견됐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난해 멕시코·쿠바 지역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심층 조사한 결과 안창호 선생이 묵었던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프란세스 호텔(왼쪽)을 찾았다고 1일 밝혔다. 1905년 4월 4일 첫 이주 이래 멕시코 한인들은 낯선 나라에서 억척스럽게 생활 기반을 닦으며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지부를 만들어 멀리서나마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당시 미국에 있었던 안창호 선생은 멕시코 한인의 초청으로 1917년 10월부터 1918년 8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멕시코 전역을 순행했다. 순방을 마친 안창호 선생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자 1918년 6월 12일 멕시코시티에 있는 미국총영사관을 방문했지만 일본 영사가 발행한 여행권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안창호 선생은 제2의 도시인 과달라하라로 이동했고 이때 머무른 곳이 바로 프란세스 호텔이다. 그동안 안창호 선생이 미국과 멕시코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은 전해져 왔지만 구체적인 행적은 거의 밝혀진 바가 없었다. 연구소 국외사적지팀이 현지에서 발로 뛰어 찾은 프란세스 호텔은 당시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재(오른쪽)도 호텔로 사용 중이나 중간에 리모델링을 해 안창호 선생이 묵었던 20호실은 찾을 수 없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북한산에 휘날리는 32년 태극기 사랑

    북한산에 휘날리는 32년 태극기 사랑

    29일, 바람이 거세게 부는 북한산 최정상. ‘백운대, 해발 836m’라고 쓰인 거대한 화강암석 옆 4m 높이 깃대에서 태극기 한 장이 마지막 겨울바람에 힘차게 펄럭였다. 북한산 등산객들에게 ‘백운대 전속 사진사’로 잘 알려진 박현우(70·현 명동성당 미화원)씨가 30여 년 전인 1985년 처음 깃대를 세우고 15년여 동안 교체 관리해 온 태극기다. 2000년쯤부터는 정왕원(66·개인택시 기사)씨도 함께하고 있다. 태극기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화강암석 위에는 기미년(1919년)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정재용(1886~1976)의 ‘3·1운동 암각문’(고양시 향토유적 제32호)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박씨는 원래 1968년부터 백운대 등산객을 상대로 사진사로 일했다. 그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백운대에 태극기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 뒤로 17년쯤 지난 1985년 전후로 박씨는 나무 막대로 깃대를 세워 태극기를 처음 달았다. 백운대의 모양새가 훨씬 좋아졌고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줄을 섰다. 백운대로 부는 바람이 워낙 거세 나무로 만든 깃대는 수시로 부러졌고 태극기도 가장자리가 쉽게 해졌다. 한 장당 1만 2000원씩 하는 태극기를 한 달에 3~4차례는 바꿔 달았다. 박씨의 외로운 ‘태극기 지킴이’ 활동은 우연히 백운대를 찾은 전관(72·예비역 소장) 백마부대장의 눈에 띄었다. 전 소장은 며칠 뒤 부대원들을 백운대로 보내 쇠로 된 깃대를 세워 주고 부대로 초청해 식사도 같이했다. 특별한 예우였다. 당시 서울의 한 구청장은 “좋은 일을 한다”며 1년여간 태극기를 지원했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가 등장하자 ‘백운대 사진사’인 박씨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무렵 택시 운전을 하는 정씨를 만났다. 정씨는 박씨에게서 사진사로는 생계 유지가 안 돼 더는 산을 오를 수 없게 됐다는 말을 듣고 흔쾌히 ‘태극기 교체 관리’라는 짐을 대신 지기로 약속했다. 이후 15년 가까이 정씨의 태극기 사랑은 조용히 이어져 왔다. 정씨는 사흘에 한 번씩 백운대에 올라 태극기 상태를 살핀다. 15년 동안 1350여회 백운대를 오르내렸다. 연간 태극기 30~40장이 필요한데 모두 자비로 부담한다. 최근 수년 동안은 태극기 공장에서 직접 구입해 부담을 절반으로 줄였다. 박씨와 정씨는 “누가 알아 주기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다”면서 “세상에 알려지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며 사진 찍기를 극구 사양했다. 이창우(75) 전 파주부시장은 “6·25전쟁 때 장단에서 피란 온 탓에 태극기의 소중함을 잘 안다. 백운대 태극기를 볼 때마다 두 분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묻혔던 女독립운동가 97년 만에 빛 본다

    묻혔던 女독립운동가 97년 만에 빛 본다

    역사 속에 묻혔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97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3·1운동 97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담은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3·1운동편)’를 발간했다고 28일 밝혔다. 자료집에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한 여성 54명에 대한 판결문 34건과 3·1운동 참여를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여성 33명(6명은 판결문과 중복)의 수형기록카드에 대한 분석이 담겼다. 당시로서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곽진근(당시 57세·강원도 철원)은 1919년 주민 300∼400명을 이끌고 친일파 박의병의 집으로 몰려가 “너희 집에 머무르는 이완용 부부를 내놓으라”며 친일세력에 항거했다. 당시 13세 소녀였던 한이순은 같은 해 충남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시장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법원에서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자료집에서는 기생들의 구체적인 활약상도 소개됐다. 통영 기생 이소선과 정막래는 1919년 4월 ‘기생단’을 조직하고, 금반지를 팔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여성독립운동가 54명 중에서 학생(26명), 교사(9명)가 가장 많았으며, 연령대는 10대(27명), 20대(18명), 30대(6명), 50대(2명) 순이었다.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3·1운동편)는 29일부터 국가기록원 누리집(www.archives.go.kr)에 공개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지하서 잠자던 도산 안창호 옛 묘비 빛 본다

    지하서 잠자던 도산 안창호 옛 묘비 빛 본다

    ‘배우는 일 마다 않고… 조국 광복 도모’ 이광수가 비문 지어… 새달 1일 제막식 도산 안창호 선생의 옛 묘비가 43년 만에 원래 있던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으로 돌아왔다. 26일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서울시설공단 등에 따르면 강남구 도산공원 도산안창호기념관 지하에 있던 이 묘비가 지난 24일 망우리공원 ‘도산 묘터’로 옮겨졌다. 1973년 안 선생의 묘가 도산공원으로 이전하며 옛 묘비도 그곳으로 옮겨갔다. 이후 2005년 새 묘비가 설치되면서 옛 묘비는 도산기념관 지하에 보관돼 왔다. 1955년 세워진 이 묘비의 비문은 안 선생의 지인인 소설가 춘원 이광수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씨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 원곡 김기승이 썼다. 묘비의 앞면에는 한자로 ‘배우는 일을 마다 않고 앎을 지극히 하며 조국의 광복을 도모하다.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덕을 실천하며 훌륭한 글을 남겨 백성을 편안케 하다. 생각이 곧아 거짓이 없으며 사랑으로 사람을 사귀어 춘풍같은 온화한 기운이 퍼지다. 공을 앞세워 사욕이 없으며 진정으로 일을 추진해 추상같은 위엄을 갖추다’라고 쓰여 있다. 뒷면에는 안 선생의 이력이 적혀 있다. 안 선생의 옛 묘비 이전은 망우리공원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서울시 용역으로 2014년부터 망우리공원에서 역사·문화를 교육하는 ‘인문학 길’을 조성하는 사업을 해 왔다. 망우리공원 묘지는 1938년 세상을 뜬 안 선생이 유언으로 정한 곳이다. 안 선생은 2년 먼저 눈을 감은 애제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유상규 선생의 묘가 있는 망우리공원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유 선생은 도산이 3·1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할 때 비서를 지낸 인물이다. 안 선생의 옛 묘터는 유 선생의 묘와 가까이에 있다. 서울시설공단은 3·1절인 다음달 1일 망우리공원에서 묘비 제막식을 한다. 이날 행사에는 안 선생의 조카사위 김봉성씨의 아들인 김선영씨, 서상목 도산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윤배 흥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한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독립정신 깃든 ‘희망의 궁전’ 복원”

    “독립정신 깃든 ‘희망의 궁전’ 복원”

    1919년 3·1 독립운동과 일본의 무단통치 실상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의 서울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 지은 ‘딜쿠샤’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돼 70년 만에 원형 복원에 들어간다. 이 가옥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26일 기획재정부·문화재청·종로구와 이런 내용의 ‘딜쿠샤의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딜쿠샤는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가옥으로 테일러 부부가 1942년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강제 추방될 때까지 20년간 살던 곳이다. 딜쿠샤는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의 힌두어다. 한때 이 건물은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 사옥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근처였기 때문이다. 베델의 집터는 종로구 홍파동 일대 6062㎡(1837평)에 걸쳐 넓게 분포했는데, 그곳에서 불과 30m 떨어진 곳에 딜쿠샤가 있으니 그런 추정이 나왔다. 이 추정 덕분에 한때 이 건물을 ‘언론박물관’으로 조성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2006년 테일러 부부의 외아들이자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난 브루스 테일러가 방한해 부모가 살던 집임을 밝혀 ‘DILKUSHA 1923’이라는 명문의 의미가 밝혀졌다. 대한매일신보 사옥 터는 종로구 수송동으로 확인돼 2007년 표석을 세워 놓았다. 국유 재산인 딜쿠샤에는 12가구 23명이 거주하고 있다. 퇴거 조치를 강행하기 어려운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며 건물의 내·외부 훼손이 문제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재부 등과 논의해 이들이 임대주택 등으로 이주하도록 유도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한편 테일러 부부의 손녀인 싱어송라이터 제니퍼 테일러는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이날 서울을 찾았다. 28일 딜쿠샤와 할아버지가 안치된 마포구 합정동의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방문한다. 제니퍼는 다음달 2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테일러 부부가 서울에서 수집한 349점의 생활용품을 기증할 예정이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천도교, 3·1운동 화해정신 되살린다

    천도교, 3·1운동 화해정신 되살린다

    민족종교 천도교가 3·1운동 정신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나섰다. 천도교 박남수(73) 교령은 최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통해 당시 화해와 상생, 평화의 정신을 오늘날에 실천하고자 한다”며 이를 위해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박 교령에 따르면 추진위원회는 천도교,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7대 종단 수장들이 고문으로 참여해 종단을 초월한 성격을 갖는다. 26일 1차 보고대회를 연 뒤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추진위 공동대표 33인 중 15명은 7대 종단 수장이 추천하는 인물로 구성되며 독립운동 유관단체와 시민단체 추천 인물, 재외 동포들이 공동대표를 맡을 예정이다. 박 교령은 “3·1운동 당시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가 된 화해의 정신이 오늘날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천도교가 3·1운동 기념사업을 통해 화해의 허브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천도교는 3·1운동에 대한 학술조사와 재평가 작업을 비롯해 민족대표 33인 인물사전 발간, 종교평화센터 설립, 문화콘텐츠 제작 지원, 남북교류 등 기념사업을 순차적으로 이어갈 전망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3·1운동 기념관’ 설립도 추진키로 했다. 기념관 설립과 관련해 천도교는 지난해 11월 남북 종교인 수장단 모임을 통해 북측으로부터 긍정적인 입장을 확인한 바 있다. 박 교령은 이와 관련해 “3·1운동 당시 천도교는 신자가 300만명에 이를 만큼 민족종교로 식민지 민중들에게 정신적 역할을 했다”면서 “북측에서도 천도교에 대한 공감대가 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천도교는 조선시대 형장으로 쓰였던 중구 서소문공원을 가톨릭 주도 아래 보수해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박 교령은 “서소문공원 터는 동학 지도자 등 가톨릭과 무관한 인물들도 많이 희생된 곳”이라며 “이곳을 가톨릭 성지화하는 방향의 사업을 중단하고 민족의 역사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 서소문공원에서는 서소문역사공원 기념공간 건립 공사 기공식이 열렸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지하서 잠자던 안창호 선생 옛 묘비 빛 보다

    지하서 잠자던 안창호 선생 옛 묘비 빛 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옛 묘비가 43년 만에 원래 있던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으로 돌아왔다. 26일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서울시설공단 등에 따르면 강남구 도산공원 도산안창호기념관 지하에 있던 이 묘비가 지난 24일 망우리공원 ‘도산 묘터’로 옮겨졌다. 1973년 안 선생의 묘가 도산공원으로 이전하며 옛 묘비도 그곳으로 옮겨갔다. 이후 2005년 새 묘비가 설치되면서 옛 묘비는 도산기념관 지하에 보관돼 왔다. 1955년 세워진 이 묘비의 비문은 안 선생의 지인인 소설가 춘원 이광수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씨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 원곡 김기승이 썼다. 묘비의 앞면에는 한자로 ‘배우는 일을 마다 않고 앎을 지극히 하며 조국의 광복을 도모하다.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덕을 실천하며 훌륭한 글을 남겨 백성을 편안케 하다. 생각이 곧아 거짓이 없으며 사랑으로 사람을 사귀어 춘풍같은 온화한 기운이 퍼지다. 공을 앞세워 사욕이 없으며 진정으로 일을 추진해 추상같은 위엄을 갖추다’라고 쓰여 있다. 뒷면에는 안 선생의 이력이 적혀 있다. 안 선생의 옛 묘비 이전은 망우리공원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서울시 용역으로 2014년부터 망우리공원에서 역사·문화를 교육하는 ‘인문학 길’을 조성하는 사업을 해 왔다. 망우리공원 묘지는 1938년 세상을 뜬 안 선생이 유언으로 정한 곳이다. 안 선생은 2년 먼저 눈을 감은 애제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유상규 선생의 묘가 있는 망우리공원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유 선생은 도산이 3·1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할 때 비서를 지낸 인물이다. 안 선생의 옛 묘터는 유 선생의 묘와 가까이에 있다. 서울시설공단은 3·1절인 다음달 1일 망우리공원에서 묘비 제막식을 한다. 이날 행사에는 안 선생의 조카사위 김봉성씨의 아들인 김선영씨, 서상목 도산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윤배 흥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한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3·1운동 알린 테일러 가옥 ‘딜쿠샤’ 70년 만에 원형 복원

    3·1운동 알린 테일러 가옥 ‘딜쿠샤’ 70년 만에 원형 복원

    1919년 3·1 독립운동과 일본의 무단통치 실상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의 서울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 지은 ‘딜쿠샤’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돼 70년 만에 원형 복원에 들어간다. 이 가옥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26일 기획재정부·문화재청·종로구와 이런 내용의 ‘딜쿠샤의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딜쿠샤는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가옥으로 테일러 부부가 1942년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강제 추방될 때까지 20년간 살던 곳이다. 딜쿠샤는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의 힌두어다. 한때 이 건물은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 사옥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베델의 집터는 종로구 홍파동 일대 6062㎡(1837평)에 걸쳐 넓게 분포했는데, 그곳에서 불과 30m 떨어진 곳에 딜쿠샤가 있어 그런 추정이 나왔다. 이 추정 덕분에 한때 이 건물을 ‘언론박물관’으로 조성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2006년 테일러 부부의 외아들이자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난 브루스 테일러가 방한해 부모가 살던 집임을 밝혀 ‘DILKUSHA 1923’이라는 명문의 의미가 밝혀졌다. 대한매일신보 사옥 터는 종로구 수송동으로 확인돼 2007년 표석을 세워 놓았다. 국유 재산인 딜쿠샤에는 12가구 23명이 거주하고 있다. 퇴거 조치를 강행하기 어려운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며 건물의 내외부 훼손이 문제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재부 등과 논의해 이들이 임대주택 등으로 이주하도록 유도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한편 테일러 부부의 손녀인 싱어송라이터 제니퍼 테일러는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이날 서울을 찾았다. 28일 딜쿠샤와 할아버지가 안치된 마포구 합정동의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방문한다. 제니퍼는 다음달 2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테일러 부부가 서울에서 수집한 349점의 생활용품을 기증할 예정이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송파구 3·1절 재현 만세 삼창

    송파구 3·1절 재현 만세 삼창

    박춘희(가운데 줄 오른쪽 여섯 번째) 송파구청장과 학생들이 24일 구 청사에서 열린 ‘1919년 그날의 함성’ 행사에서 만세 삼창을 하며 3·1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진관사 태극기 은평에 휘날린다

    진관사 태극기 은평에 휘날린다

    3·1절을 앞둔 22일 은평구 청사에 색다른 태극기가 걸렸다. 세월의 때가 탄 듯 색상은 옅은 흙빛으로 바랬고 왼쪽 윗부분엔 불에 탄 자국이 있다. 7년 전 진관사 칠성각 보수공사 중에 발견한 ‘진관사 태극기’(등록문화재 458호)다. 구는 3·1절을 맞아 진관사 태극기를 널리 알리고 진관사를 거점으로 항일투쟁을 한 백초월 스님(1878~1944)을 기리기 위해 대형 진관사 태극기 걸개를 걸었다. 오는 26일부터 3·1절까지 지역 내 주요 거리에 태극기와 진관사 태극기를 함께 게양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통일로에만 걸었던 것을 올해는 은평로와 수색로, 연서로, 서오릉로 등 5개 도로로 확대했다. 진관사 태극기는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진관사를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사용한 뒤 숨긴 것으로 추정된다. 1891년 지리산 영원사로 출가한 백초월 스님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다음달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시작했다. 비밀조직인 일심회를 결성하면서 일제에 대항했다. 스님의 이 같은 활동은 진관사 칠성각 해체 중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독립신문 등 독립운동 자료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김우영 구청장은 “3·1절의 깊은 뜻을 되새기고 은평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돋우기 위해 게양 구간을 확대했다”며 “애국정신으로 나라를 지켜 낸 순국선열들께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오기’ 보성사판 3·1독립선언서 서울시 등록문화재 추진… 첫 사례

    1910년대 최남선의 ‘신문관’과 천도교 ‘보성사’는 대한제국의 지성을 이끈 출판·인쇄계 양대 기관이다. 한국 출판문화를 꽃피운 전당인 이곳은 1919년 3·1운동을 앞두고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했다는 점에서 한국사에 또 다른 의미를 남긴다. 1919년 2월 27일 밤 두 곳에서 찍은 독립선언서는 2만 1000여장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는 거의 볼 수 없어 가치가 더 높다. 서울시는 3·1독립선언서 중 개인이 소장한 보성사판에 대해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 신청을 했다고 17일 밝혔다. 등록문화재 등록이 확정되면 독립선언서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첫 사례가 된다. 보성사판이 신문관판과 다른 부분은 판형, 활자체와 첫 줄에 ‘我鮮朝’(아조선)이라고 된 표기 오류다. 보성사판 중 공개된 것은 독립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 독립운동가 오세창과 박종화 가문의 소장본 등 5점이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보성사판 ‘3·1독립선언서’ 문화재 등록 추진

    보성사판 ‘3·1독립선언서’ 문화재 등록 추진

    1910년대 최남선의 ‘신문관’과 천도교 ‘보성사’는 대한제국의 지성을 이끈 출판·인쇄계 양대 기관이다. 한국 출판문화를 꽃피운 전당이란 의미를 갖는 이곳이 한국사에 남긴 큰 의미는 1919년 3·1운동을 앞두고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했다는 점이다. 1919년 2월 27일 밤 두 곳에서 찍은 독립선언서는 2만 1000여장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는 거의 볼 수 없어 가치가 더 높다. 서울시는 3·1독립선언서 중 개인이 소장한 보성사판에 대해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 신청을 했다고 17일 밝혔다. 등록문화재는 1876년 개항 후 한국전쟁까지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활용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뜻한다. 전문가 조사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등록문화재 등록이 확정되면 독립선언서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첫 사례가 된다. 보성사판이 신문관판과 다른 부분은 판형, 활자체와 첫 줄에 ‘我鮮朝(아조선)’이라고 된 표기 오류다. 보성사판 중 공개된 것은 독립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 독립운동가 오세창과 박종화 가문의 소장본 등 5점이다. 아울러 시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백용성 스님의 ‘조선글화엄경’과 ‘조선어늠엄경’, 성북구 흥천사가 소장한 ‘감로도’ 등도 함께 등록문화재 등록을 신청했다. 백용성 스님은 한문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해 불교를 대중화하고 민족의 독립 역량을 결집하고자 했다. 두 자료에선 당시 한글의 변화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한국 불교의 맏형’ 조계종,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한국 불교의 맏형’ 조계종,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간화선 중심의 수행 종단’, ‘분규로 얼룩진 승가’, ‘자비와 보시의 자리이타행’…. 우리 국민들은 한국불교의 맏형 격인 조계종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불교 조계종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종단 이미지 조사를 전격 실시한다고 밝혀 주목된다.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안 스님)가 11일 올해 역점 추진사업을 발표하면서 공개한 ‘조계종 브랜드 이미지 연구‘는 말 그대로 불교 신자와 국민의 조계종에 대한 인식 조사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고 종단·승가를 재설계하는 큰 사업이다. 항목별 평가를 통해 국민들이 종단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긍정·중립·부정 등으로 정확히 평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다는 것이다. 불교사회연구소는 11월쯤 조사 보고서 발간을 목표로 오는 5월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조계종은 기존에 추진해 온 종책, 사회, 호국불교 등 3개 분야의 연구 사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한국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부의 불평등한 분배와 헬조선’, ‘해고문제, 비정규직, 청년실업’, ‘민주주의 후퇴와 선진국 진입의 과제’ 등이 눈에 띈다. 불자 성소수자, 원폭피해자, 기후변화 연구, 윤리·역사·사회교과서 집필진 참고 매뉴얼 발간도 추진한다. 3년 뒤로 다가온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 사업도 올해 처음 실시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성소수자와 윤리·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한 접근은 그간의 사회 문제에 대한 대응과는 사뭇 달라 눈길을 끈다. 불교 시각에서 바라본 성소수자 연구보고서를 만들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불교의 역할을 정리할 예정이며 윤리·역사·사회 교과서 집필진을 위한 조계종 가이드라인을 매뉴얼로 발간해 4월 중 배포한다. 법안 스님은 “종단이 밖에서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것”이라며 “브랜드 이미지 조사를 통해 앞으로 50년,100년을 바라봤을 때 불교가 가진 브랜드 가치를 깊이 있게 살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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