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3·1운동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동아리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AI 인프라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사건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광주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02
  • 기독교 3·1운동 100주년委 출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개신교 단체들이 ‘한국기독교 3·1운동 100주년 위원회’를 출범시킨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한국YWCA연합회, 한국YMCA전국연맹 등과 함께 ‘한국기독교 3·1운동 100주년 위원회’를 구성하고 오는 13일 출범식을 연다고 9일 밝혔다. 위원회는 앞으로 3·1운동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이를 바탕으로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기독교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대한제국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중심 ‘서울광장’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대한제국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중심 ‘서울광장’

    소설가 구보씨가 탐사한 1930년대 옛 경성길을 따라 걷다 답사단이 만난 서울미래유산은 서울광장,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칸티나, 무교동 북어국집, 해창양복점, 한국은행 광장 등 모두 다섯 곳이다. 서울광장이나 라칸티나, 북어국집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고, 해창양복점과 한국은행 광장은 소설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구보씨의 동선에 포함된 장소다.서울광장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 경운궁(덕수궁)을 국가 통치의 중점으로 삼으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미국의 워싱턴DC를 벤치마킹해 방사형 6거리 형태로 조성했다. 1919년 3·1운동을 시작으로 1960년 4·19혁명,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2002년 월드컵 응원전이 이곳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었다. 라칸티나는 1967년 창업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부친 이재두씨에게서 가게를 물려받은 이태훈씨가 2013년부터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이 사장은 “욕심 안 부리고 100년, 200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식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직원과 손님 모두 만족하는 좋은 가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라칸티나는 이탈리아 말로 ‘와인 창고’다. 박태원 생가 바로 뒤에 있는 무교동 북어국집도 2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다. 1968년 창업주 진인범씨가 고향 선배와 함께 개업했고, 1974년 현 위치로 이전했다. 아들 진광상씨가 운영하고 있다. 메뉴는 북어국 한 가지이며, 강원도 고성 덕장의 북어와 황태를 사용한다. 한국은행 앞 광장은 구보가 전차에서 내린 조선은행 앞이다. 1930년대 경성에서 가장 근대적인 거리로 꼽혔던 남대문통은 식민지 자본주의의 심장부였다. 건너편에는 조선저축은행(SC은행 제일지점)과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지점(신세계백화점 본점)이 건재하다. 일제강점기 소공로는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을 대각선으로 잇는 짧은 도로였지만 모던보이들이 즐겨 찾던 신식 양복점이 즐비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 이병철·정주영 회장 등이 단골이던 해창양복점은 일본에서 양복 기술을 배운 창업주 이용수가 1929년 부산 중구 보수동에서 개업, 1932년에 서울 중구 산림동에 가정집을 얻어 해창양복점을 열었다가 194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맞춤 양복 전문점으로 복식사와 민속생활사 측면에서 지속적인 보존과 관리가 필요한 미래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팀
  • “유관순 열사 서훈 등급 올려야”

    “유관순 열사 서훈 등급 올려야”

    유관순(1902~1920) 열사의 서훈 등급 격상을 위한 서명운동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3·1운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적 인물인 유관순 열사의 3등급(독립장) 서훈에 대해 그동안 저평가됐다는 주장이 많았다.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와 충남 천안시는 28일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추모각에서 열리는 ‘순국 97주기 추모제’를 마친 뒤 서훈 상향 조정을 위한 상훈법 개정 촉구 서명운동에 돌입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유관순 열사의 표준 영정. 천안 연합뉴스
  • [자치단체장 25시] 현대사 스며든 강북…우이~신설 도시철도 타고 ‘힐링투어’

    [자치단체장 25시] 현대사 스며든 강북…우이~신설 도시철도 타고 ‘힐링투어’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평소에 ‘우직하다’는 평을 듣는다.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 평화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뒤 당적을 한 차례도 바꾸지 않았고, 1995년 서울 강북구 서울시의원으로 지방자치를 시작해 20여년 동안 꾸준히 구정을 챙겨왔다. 주민들은 어리석을 정도로 한길로 나아가는 박 구청장의 모습에 신뢰를 보냈다.박 구청장은 지난 22일 구청장실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이해관계에 따라 여야를 왔다 갔다 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런 모습이 구민들에게 신뢰를 준 것 같다”면서 “지난 7년간 주민들 성원에 보답하는 길은 공약의 성실한 이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북구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선거공약 이행실적 평가에서 2015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최우수 등급인 ‘SA’ 등급에 선정됐다.현재 강북구의 새로운 브랜드로 자리잡은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도 2010년 출마 당시 박 구청장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 중 하나다. 역사문화관광벨트는 북한산둘레길 2코스인 ‘순례길’을 따라 자연환경(북한산 국립공원, 북서울 꿈의숲 등)과 문화유산(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위 묘역, 국립4·19민주묘지, 3·1운동의 발상지인 봉황각과 분청사기 가마터)을 아울러 강북구만의 역사문화자원으로 특화시킨 것이다. 부지가 수유동과 우이동 일대 48만㎡에 이른다.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강북구였기에 가능한 프로젝트다.박 구청장은 역사문화관광 벨트 조성 사업의 시작을 이렇게 회상했다. “구청장으로서 ‘강북구의 미래 비전이 뭘까’ 생각해 보니 미래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지역의 60%가 숲이고, 나머지는 일반주거단지로 묶여 있어 개발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손병희, 이시영, 신익희 선생 등이 잠들어 있는 순국선열 16위 묘와 3·1운동의 발상지 봉황각, 광복군 합동묘소, 4·19민주묘지 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표지판조차 없던 곳을 벨트로 잇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땅속에 묻혀 있던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강북구에 스며들게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근현대사기념관 개관은 박 구청장에게 ‘일대 사건’이다. 기념관은 동학농민운동부터 항일의병전쟁, 3·1운동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전쟁,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최적지인 셈이다. 박 구청장은 “역사문화관광벨트의 핵심은 기념관이라고 봤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자마자 찾아가 기념관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는 ‘너랑나랑우리랑 스탬프 힐링투어’라는 이름으로 근현대사기념관과 국립4·19민주묘지, 순국선열묘역 일대를 묶어 만든 역사·문화·관광 스탬프 투어를 시작했다. 4곳에서 스탬프를 받아 제휴 업소에 제시하면 음식값 등을 5~15% 정도 할인받을 수 있다.강북구 우이동과 동대문구 신설동을 연결하는 우이~신설선(13개 역, 11.4㎞)의 도시철도 개통은 강북구의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에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 우이~신설선은 2009년 9월 착공한 이후 서울시와 민간사업자가 갈등을 빚으며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약 8년 만인 지난 9월 2일 개통했다. 우이동에서 신설동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출퇴근시간대 기준으로 종전 50분대에서 20분대로 30분가량 줄어들 것으로 구는 보고 있다. 박 구청장은 “도시철도가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를 지나기 때문에 역사문화관광벨트와 북한산의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벌써 우이동 상인들은 ‘사람들이 늘었다’며 반색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우이~신설선의 수익성 문제에 대해 “(수익이) 안정화되려면 2년 정도 걸린다. 이용객이 많다 적다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박 구청장은 도시철도와 관련된 일화도 꺼내놨다. “제가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소속으로 강북구를 위해 일할 때 강북구 발전 저해 요인 중 하나가 교통이었습니다. 사실상 대중교통체계가 지하철 4호선 하나였거든요. 삼양로 구간도 차가 너무 막히고, 교통정체 해소 방안이 절실했습니다. 당시 민선 1기 시절 조순 서울시장을 찾아가 면담을 통해 도시철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설득했던 게 기억납니다. 서울시의원 시절 기여했던 도시철도 사업을 구청장으로서 마무리 지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박겸수호(號)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온 4·19혁명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도 결실을 보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6월 세계기록유산의 등재신청대상으로 4·19혁명기록물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박 구청장의 민선 6기 공약사항으로 2015년부터 시비를 포함해 약 2억 5000만원을 투입했다. 내년 3월 문화재청이 등재신청서류를 유네스코에 제출하면 최종결과는 세계기록유산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를 거쳐 2019년 하반기쯤 발표된다. 박 구청장은 “실제 4·19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 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게 된다. 4·19혁명의 위상을 영국의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대혁명에 이은 세계 4대 혁명으로 격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박 구청장은 ‘청소년 유해업소 근절운동’에도 애착이 크다. 일반음식점 영업신고를 한 뒤 퇴폐주점처럼 영업하는 이른바 ‘빨간집’ 없애기에 주력해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70곳 중 118곳(69.4%)이 업종을 바꾸거나 문을 닫았다. 이들 업소는 세가 저렴한 학교 주변 일반 주택가 골목까지 침투해 구는 골머리를 앓아왔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로부터 반경 200m는 상대정화구역으로 교육상 위생, 유해업종은 들어설 수 없다. 당연히 학부모의 우려도 뒤따랐다. 박 구청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지역의 34개 초·중·고 학교 교장과 학부모들이 한데 모여 간담회를 하는데 ‘학교 앞에 유해업소를 없애달라’, ‘교육적으로 애들한테 좋지 않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바로 경찰서, 교육청과 힘을 합쳐 문제 해결에 나섰습니다.” 인터뷰를 끝마칠 때쯤 박 구청장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 박 구청장은 “제가 2011년 처음 직원들과 만나는 신년인사회에서 ‘사인여천을 실천하고 구민과 소통을 통해 구민이 주인 되는 행정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모든 공직자가 가야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민선 5기 때 매일 오후 2~4시 구청장실 문을 열어놓고 주민들을 만난 이유”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박 구청장은 내년 3선 도전에 대해 “내년 지방선거 출마 준비를 위해 열심히 주민들을 찾아가고 이야기를 듣는 중이다. 출마하라는 의견을 많이 주신다. 강북구 발전을 위해서, 제가 공약하고 기획한 역사 문화 관광도시를 확실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 출마는 필요하다”고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누구 19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를 주축으로 결성돼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서울시의원을 두 번 지냈고 2010년 59.31%라는 높은 득표율로 민선 5기 구청장에 당선됐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52.34%를 기록했다.
  • 우이선 개통에 북한산 관광벨트 사업 화색

    서울 강북구에는 문화적 유산이 풍부하다.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사업이 가능한 이유다. 북한산둘레길 2코스인 ‘순례길’을 따라 자연환경(북한산 국립공원, 북서울 꿈의숲 등)과 문화유산(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위 묘역, 국립 4·19 민주묘지, 3·1운동의 발상지인 봉황각과 분청사기 가마터)을 아울러 역사문화자원으로 특화시키는 사업이다. 부지가 수유동과 우이동 일대 48만㎡에 이른다. 강북구의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사업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일 서울시 1호 도시철도인 ‘우이신설선’이 개통식을 가졌고, 이 노선의 13개 역 중 8개 역이 강북구에 있기 때문이다. 구 관계자는 “신설동역에서부터 북한산우이역에 이르는 도시철도 개통으로 동북 지역의 교통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접근성도 높아져 방문객들의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4일 설명했다. 특히 ‘4·19민주묘지역’, ‘북한산우이역’ 등은 국립 4·19묘지, 북한산둘레길로 바로 이어진다. 방문객들이 역에 내려서 북한산둘레길을 따라 국립4·19민주묘지, 순국선열묘역, 봉황각 등을 손쉽게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강북구도 이에 맞춰 여러 근현대 역사·문화유산들을 엮어 1박 2일 스토리텔링 관광코스를 개발 중이다. 구는 현재까지 관광벨트 조성 세부사업인 근현대사기념관 건립, 우이동 만남의 광장 개장, ‘너랑나랑우리랑 힐링 스탬프 투어’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우이동 가족캠핑장, 예술인촌 조성, 우이동 먹거리마을 도로확장 공사 등은 현재 추진하고 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사업이 더욱더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근현대사의 역사적 인물 흔적들 곳곳에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근현대사의 역사적 인물 흔적들 곳곳에

    삼각산의 정기가 어린 땅, 수유리 일대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민족혼이 집결했다고 할 만큼 역사인물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미래투어팀은 이 중 국립4·19민주묘지, 4·19 시비, 4·19 기념관, 윤극영 가옥, 삼각산 재미난 마을, 근현대사기념관 등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6곳을 찾았다.국립4·19민주묘지에는 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 김주열 열사’의 가묘를 비롯, 모두 358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고, 유영봉안소에는 꽃다운 영정사진이 모셔져 있다. 애초 4·19 묘지로 불리다 1995년 4·19 35주년을 맞아 1만 7000평에서 4만 1000평으로 확장, 국립묘지로 승격됐다. 참가자들은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둘러싸인 인수봉로 84길 5에서 단출한 단층 주택을 만났다. 1924년에 완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 ‘반달’이 흘러나오는 이곳은 윤극영 선생이 1977년부터 세상을 떠난 1988년까지 살았던 집을 생전 모습 재현관과 유품 전시관, 시민 문화공간 등으로 꾸몄다. 윤극영 가옥은 서울시 미래유산 제1호이다. 삼각산 재미난 마을은 1998년 공동육아 협동조합에 아이를 보내던 부모들이 모임을 결성하면서 시작됐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가 되자 부모들은 새로운 대안학교를 만들기로 했고, 지역 단체와 교육활동가들이 결합하면서 2004년 3월 초등 대안학교가 탄생했다. 또 마을 사랑방 공간이 필요하게 되면서 ‘재미난 카페’, ‘재미난 밴드’, ‘마을극단 우이동’, ‘요술 항아리’ 등 각종 동아리가 이어졌다. 근현대사기념관은 동학혁명부터 3·1운동,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이끈 민중사를 집중 조명하는 국내 유일한 공공기념관이다. 독립운동과 민주화·통일운동이 숨 쉬는 수유동에는 손병희, 이준, 여운형, 김창숙, 양일동, 유림, 김도연, 조병옥 등 순국선열 16위 묘역과 국립4·19민주묘지는 물론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문익환 목사가 20년을 산 ‘통일의 집’이 있다. 비록 서울미래유산은 아니지만 ‘초대길’은 북한산 순례길 구간의 애국순국선열 묘역 중에서도 우리나라 초대(初代), 즉 최초라는 상징성을 가진 분들의 묘역에 대한 별칭이다. 초대 국회의장 신익희, 제1호 검사 이준,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초대 부통령 이시영, 우리나라 최초의 국군인 광복군 18위 합동묘역이 그 주인공이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팀
  • 동학 정신 헌법 전문에 포함돼야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북 정읍시 시민단체가 주축인 ‘동학농민혁명 정신 헌법 전문 포함 추진위원회’는 23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와 평등, 인권존중과 직접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5·18 정신과 함께 개헌 때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학농민혁명은 일본의 침략 야욕과 부패·무능한 조선왕조 봉건 지배층의 외세 의존 등에 막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으나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변화시키고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촛불 시민혁명의 모태가 된 근대 민족사의 대사건”이라고 헌법 전문 포함 당위성을 설명했다. 추진위는 이를 위해 범국민 서명운동과 함께 국회청원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전북도의회도 김종철·장학수 의원이 공동 발의한 ‘동학농민혁명 정신 헌법 전문 포함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서울역·숭례문 등 ‘역사 합창’… 예술적 상상 불러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서울역·숭례문 등 ‘역사 합창’… 예술적 상상 불러

    말복 다음날인 지난 12일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은 답사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며 참가자들을 강우규 동상 앞으로 불러 모았다. 60세의 나이에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일행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 의사의 위엄과 기개가 느껴졌다. 지금은 문화역서울284로 이름을 바꾼 옛 서울역과 광장에서는 오늘도 다양한 집회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공중정원으로 다시 탄생한 서울역 고가도로를 향해 이동했다. 한 청소년은 “도심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식물을 접하게 된 것이 놀랍다”며 신기해했다. 정순희 해설자가 들려주는 남대문교회와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공중정원을 서쪽으로 건너가 만리동 광장에서 설치미술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을 감상했다. 지하 4m의 공간과 스테인리스 루버를 통해 보는 서울의 풍경은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다. 만리재 길을 따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기념관과 동상이 있는 체육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월계수를 머리에 쓰고 부상으로 받은 그리스 청동투구를 양손으로 든 선생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선명했다. 얼굴에는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단 당시의 슬픔과 자괴감이 서려 있었다. 월계수 묘목은 커다란 나무로 자라 역사적 증표로 서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은 어둠 속에서도 고즈넉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발이 아파 올 무렵 마지막 목적지인 서울미래유산 염천교 구두거리에 도착했다. 50여년이 넘게 수제화를 만들었다는 성광제화 송종오 대표가 늦은 시간에도 문을 열어 놓고 투어단을 반겨주었다. 오늘 서울로7017 한가운데 서서 공간에 대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서울역, 서울역 광장, 숭례문, 남대문교회와 서울스퀘어, 옛 벽산빌딩이 함께 어우러져 합창을 하고 있었다. 인간을 억압하던 건물과 눈높이를 마주하고, 발아래 기차나 자동차와 상관없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었다. 이제야 서울의 중심에 내가 온전히 서 있음을 느낀다.
  • [광복절 경축사] 의사도 기자도 과학자도 나라 되찾으려고 뛰었다

    [광복절 경축사] 의사도 기자도 과학자도 나라 되찾으려고 뛰었다

    “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 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에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른 독립운동가 5인은 우리나라에서 각 분야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꼽힌다. ●몽골 전염병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이태준(1883~1921) 선생은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추천으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외곽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 위기에 처하자 몽골로 망명해 몽골인을 치료했다. ●日 만행 취재한 첫 순직기자 장덕준 장덕준(1892~1920) 선생은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했고, 1920년 만주에서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사건인 ‘경신참변’이 발생하자 현장으로 가 일본군의 만행을 취재하다 암살당했다. 선생은 한국 언론 사상 첫 순직 기자가 됐다. ●日 관리 암살무기 운반했던 남자현 남자현(1872~1933) 선생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대한통의부 등 항일 단체에 가담했다. 1933년 일본 고위 관리를 암살하려고 무기를 운반하다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순국했다. ●과학기술 대중화 앞장선 김용관 김용관(1897~1967) 선생은 경성공전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선 운동가였다. ●독립군 출신 영화 ‘아리랑’ 감독 나운규 나운규(1902~1937) 선생은 독립군 출신 영화감독으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간도 지역에서 일제 기관시설 파괴 임무를 띤 독립군으로 활약하다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여자 안중근, 어머니 유품인 책 보고 알아”

    “여자 안중근, 어머니 유품인 책 보고 알아”

    “199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제게 책 한 권을 건네주시며 증조할머니가 독립 투쟁을 했던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분이 남자현 선생이라는 사실을요.”독립유공자 남자현 선생의 증손녀 강분옥(59)씨는 광복절을 닷새 앞둔 지난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유품인 빛바랜 책 한 권을 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강씨의 증조할머니인 남 선생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이주해 무장투쟁 운동을 지원하고 여성 계몽에 힘쓴 인물이다. 1933년 주만주국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기 위해 무기와 폭탄을 운반하다 체포됐으며, 같은 해 단식투쟁 끝에 순국했다. 남 선생의 외아들인 김성삼 선생도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만주에서 독립 투쟁을 벌였다. 광복 후 김 선생의 가족은 한국으로 귀환했지만 그의 딸 김경복씨는 외따로 중국에 남게 됐다. 김씨가 바로 강씨의 어머니다. 강씨는 “어머니가 글을 배우지 못하고 법률도 잘 몰라 남 선생이 한국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는지, 그 후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서 “어머니는 한국 정부의 도움은 전혀 받지 못한 채 중국에서 당뇨로 고생하시다 쓸쓸히 돌아가셨다”며 눈물지었다. 강씨는 2009년 한국에 살던 남 선생 맏손자의 초청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됐다. 강씨는 “처음에는 5년 만기 비자가 만료되면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한국이 중국보다 여러모로 살기가 좋아 국적을 얻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2011년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특별귀화를 신청했고 이듬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강씨는 “증조할머니가 독립유공자라고 해서 후손인 저희가 정부에 손 내밀 생각은 없다”며 “올해 국적을 취득한 아들에게도 ‘이 좋은 나라에서 우리 힘으로 열심히 벌어서 잘 살아 보자’고 했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한국에 와서야 증조할머니가 대단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강씨는 “20여년 전 어머니께 책을 받았을 때도 증조할머니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몰랐다”면서 “2014년 한국에서 남자현 선생 관련 특강을 들었는데 증조할머니가 ‘여자 안중근’이라 불리며 남자도 못할 일들을 해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 선생을 모티브로 한 영화 ‘암살’에 대해 “증조할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게 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고 밝혔다. 이어 강씨는 “우리 증조할머니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독립 영웅이 많다”면서 “한국이 이들을 계속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후손들도 조상의 뜻을 이어 한국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구한말 의병, 3·1운동 민초… 유공자 128명 광복절 포상

    구한말 의병, 3·1운동 민초… 유공자 128명 광복절 포상

    국가보훈처는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새로 인정된 128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13일 밝혔다. 포상별로는 건국훈장 63명, 건국포장 16명, 대통령 표창 49명 등으로 포상은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유족이 받게 된다.새로 인정된 순국선열에는 구한말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옥중 순국한 이영삼(1875~1910) 선생이 포함됐다. 전북 임피(지금의 군산) 출신인 이 선생은 1909년 의병부대에 들어가 전북 지역에서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투옥된 지 약 5개월 만에 3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보훈처는 국가기록원에 있는 전주형무소 자료 등을 분석해 선생의 의병 활동과 순국 사실을 확인했다. 또 평양에서 3·1 독립만세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김태술 선생, 강화도에서 3·1 운동에 참가해 태형을 받은 계기봉 선생, 1930년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 최윤숙 선생 등도 포상을 받는다. 한편 1949년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올해 포상자를 포함해 건국훈장 1만 760명, 건국포장 1212명, 대통령 표창 2807명 등 모두 1만 4779명에 달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암살’ 모델 독립유공자 후손 한국인 된다

    ‘암살’ 모델 독립유공자 후손 한국인 된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씨가 연기한 안옥윤의 실제 모델인 남자현 지사 등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됐다.법무부는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광복절 72주년을 맞아 열리는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남 지사의 현손(손자의 손자) 김림위씨와 김규면 장군 현손 박콘스탄틴씨, 이승준 선생 현손 엘리자베스 주닐다씨 등 25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한다고 10일 밝혔다. ‘여자 안중근’, ‘독립군 어머니’로 불린 남 지사는 의병활동을 하다 남편이 전사한 뒤 홀로 아들을 키우다 3·1운동에 참여했으며 이후 만주로 건너가 여성 계몽과 해방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25년 서울에서 일제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다시 만주로 돌아가 양기탁 선생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남 지사는 이후 1933년 만주국 일본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처단하려다 체포된 후 그해 8월 22일 순국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1919년부터 ‘대한신민단’을 조직해 활발한 항일 무장 독립투쟁을 펼친 김 장군은 1924년 5월 상하이임시정부 교통차장과 교통총장 대리로 선임되기도 했다. 200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이 선생은 1924년부터 1934년까지 쿠바에서 활동하며 한인동포 국어교육운동을 펼쳤고, 1930년 광주학생운동 등 독립운동에 44원 58전의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1920년대에는 1원이면 쌀 네 가마니(320㎏)를 살 수 있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 평화, 번영은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적인 노력의 산물”이라며 “우리 국적을 취득한 후손들도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해 달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영화 ‘암살’ 모델 남자현 지사 후손 등 25명 한국인 된다

    영화 ‘암살’ 모델 남자현 지사 후손 등 25명 한국인 된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씨가 연기한 안옥윤의 실제 모델인 남자현 지사 등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됐다.법무부는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광복절 72주년을 맞아 열리는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남 지사의 현손(손자의 손자) 김림위씨와 김규면 장군 현손 박콘스탄틴씨, 이승준 선생 현손 엘비자베스 주닐다씨 등 25명에게 국적을 부여한다고 10일 밝혔다. 정부는 2006년부터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특별귀화를 허가해 올해 7월까지 1040명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여자 안중근’, ‘독립군 어머니’라 불린 남 지사는 의병활동을 하다 남편이 전사한 뒤 홀로 아들을 키우다 3·1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건너가 여성 계몽과 해방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25년 서울에서 일제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다시 만주로 돌아가 양기탁 선생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32년 만주사변 진상조사를 위한 국제연맹 조사단이 만주를 방문하자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써 전달하기도 했다. 남 지사는 이후 1933년 만주국 일본 전권대사 부토 노부요시를 처단하려다 체포된 후 그해 8월 22일 순국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1919년부터 ‘대한신민단’을 조직해 활발한 항일 무장 독립투쟁을 펼친 김규면 장군은 1924년 5월 상해 임시정부 교통차장과 교통총장 대리로 선임되기도 했다. 200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이승준 선생은 1924년부터 1934년까지 쿠바에서 활동하며 한인동포 국어교육운동을 펼치쳤고, 1930년 광주학생운동 등 독립운동에 44원 58전의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1920년대 1원이면 쌀 네 가마니(320㎏)를 살 수 있었다.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 평화, 번영은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적인 노력의 산물”이라며 “우리 국적을 취득한 후손들도 선조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해달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전두환 측 “영화 ‘택시운전사’ 날조 지나치면 법적 대응 가능”

    전두환 측 “영화 ‘택시운전사’ 날조 지나치면 법적 대응 가능”

    전두환씨 측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표적·겨냥 사격한 부분은 완전히 날조됐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두환씨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 미리 서둘러서 법적 대응 이런 얘기를 언급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이같은 입장을 말했다. 그는 “그런 (표적·겨냥 사격) 부분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왜곡) 정도가 지나치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민 전 비서관은 통화에서 “5·18 당시 벌어졌던 그 상황과 사건 자체는 폭동인 것이 분명하다”고 강변했다. 그는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성격 규정을 하고 평가를 하겠지만 그에 앞서서 폭동인 것은 분명하지 않냐”며 “아무런 법적 정당성이 없는 시민이 무장하고 무기고를 습격하고 간첩들이 수용돼 있는 교도소를 습격하고 군수 공장을 습격했다. 장갑차나 사병들을 빼앗아서 그걸로 무기고 습격하고 한 것을 폭동 아니고 뭐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걸 무슨 3·1운동 같은 운동이라고 하겠나. 그럴 수 없는 것”이라며 “두말할 것 없이 폭동이지만 5·18 단체나 그런 곳에서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본다. 민주화운동이라고 보지 않는 입장도 있다”고 강조했다. 민 전 비서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규정한 전두환씨 회고록에 대해 법원이 내린 판매·배포 금지 결정과 관련해 이번 주 안에 이의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서연 기자 wk@seoul.co.kr
  • 만해 한용운 선생 발자취 따라 걸어보자

    만해 한용운 선생 발자취 따라 걸어보자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애 마지막 쉼터였던 ‘심우장’이 있는 서울 성북구가 대학생, 주민들과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대장정에 나선다.성북구는 31일 광복 72주년을 맞아 만해 한용운 선사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2017 만해로드 대장정’을 개최하고, 참여 대학생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오는 12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대장정은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 지방정부협의회’(지방협의회)가 주최하고 동국대 만해연구소가 주관한다. 지방협의회는 만해 선생의 문학, 독립운동, 수행, 입적 등과 인연이 깊은 성북구와 서대문구, 충남 홍성군, 강원 인제군, 고성군, 속초시 6개 지자체가 협력해 구성됐다. 대장정은 12일 심우장에서 진행되는 출정식을 시작으로 2박 3일간 한용운 선사의 발자취를 따라 펼쳐진다. 심우장에서 출발해 1일차 고성군 건봉사, 속초시 신흥사를 간다. 2일차에는 강원 인제 만해마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홍성 만해 생가지와 만해문학체험관, 3일차에는 3·1운동의 성지인 서울 중구 탑골공원과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를 들른다. 특히 이번 대장정에는 6개 지자체 관계자, 주민 외에도 외국인 유학생을 포함한 전국 대학생 40여명이 참가한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청년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진 요즘 암흑 같던 일제 치하에서도 독립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던 만해 선사의 정신을 느끼면서 용기를 얻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특히 올해에는 외국인 유학생도 함께 참가해 만해 선생의 평화사상과 도전정신의 의미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 만해로드 대장정’은 현재 재학 중인 대학생, 외국인 유학생이라면 무료로 참가 가능하며 성북구 홈페이지(www.seongbuk.go.kr)에서 참가 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 후 이메일(manhae2013@dongguk.edu)로 선착순 신청하면 된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이준익 감독 “박열은 신념의 인물…우리 시대로 치면 박종철·이한열 열사”

    이준익 감독 “박열은 신념의 인물…우리 시대로 치면 박종철·이한열 열사”

    이준익(58) 감독은 지금까지 열두 편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일곱 편이 역사와 얽혀 있다. ‘왕의 남자’나 ‘황산벌’처럼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친 작품도 있지만 ‘사도’부터는 유독 시대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박열’ 또한 그러한 작품이다. 전작 ‘동주’에 이어 거푸 일제강점기를 조명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했던 시인 윤동주나 일본에서 대역죄인을 자처하며 사형을 쟁취하려 했던 아나키스트 박열 모두 “능동적 근대성을 남긴 인물”이라고 이 감독은 이야기한다.“역사 영화를 많이 찍다 보니 오히려 역사에 대한 기갈이 듭니다. 우리가 서양 교육을 받으며 자라서인지 역사도 서양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상한 관성 탓인 거 같아요. 식민지 근대화론에 뿌리를 둔 피동적인 근대성보다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근대성을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정치사와 전쟁사가 아닌 민중사로 읽으면 동학혁명에서 비롯된 민중의 함성이 오늘날의 ‘촛불’로 이어진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사이사이에 있던 능동적 근대성의 거점들을 찾아 짚어 주고 싶었어요. 그 선상에 윤동주도, 박열도 있는 거죠.”유관순과 같은 해에 태어난 박열(1902~1974)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항일운동가는 아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고, 문경으로 낙향해 제2만세운동을 이어 가려다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 청년들과 교류하며 무정부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을 펼쳤다. 그의 삶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변곡점을 맞는다. 당시 폭동을 우려한 한 일본 대신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가짜 뉴스를 흘려 불과 사흘 만에 조선인 6000여명이 학살당한다. 일본 내각은 국면 전환용으로 당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박열의 혐의를 부풀려 일 왕세자 폭탄 암살 음모의 주동자로 꾸민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기보다는 제국주의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라며 죄를 기꺼이 뒤집어쓴다. 영화는 그러나 박열을 영웅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이십대 초반, 질풍노도의 모습이 많다. “피 끓는 청년이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기성세대에 편입되지 않은 채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과정이 영화에 담겨 있어요. 박열은 우리 시대로 치면 박종철, 이한열 열사라고 봅니다.” 이 감독은 박열을 단순히 치기 어린 청춘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오류라며 경계하기도 했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제국주의에 항거했던 놀라운 신념의 인물입니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조선 청년의 기개와 신념을 현실로 만들어 낸 행동주의자죠. 그 지점에 박열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영화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를 다루지만 코믹 요소가 상당하다. 일본 내각의 모습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전작인 ‘동주’와는 또 다른 스타일. 그렇게 엄숙주의를 탈피했다는 점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과 궤를 같이한다. “‘암살’은 우리 영화의 큰 성과를 보여 준 사례에요.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정서적 다양성을 열어 줬죠.” 국가주의, 민족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아시아 역사 공동체 의식을 꿈꾸는 이 감독은 ‘박열’에서 식민지 시대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거나 반일 감정이나 분노를 유발하려 하지 않는다. 또 ‘동주’에서 윤동주 못지않게 송몽규가 부각됐던 것처럼 박열의 동지이자 동거인인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를 또 한 명의 주인공이자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전면에 내세운다. 박열은 가네코 후미코가 있어 완성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일본 역사학자 야마다 쇼지가 쓴 ‘가네코 후미코’ 평전에 기대고 있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 무척이나 불량스러워 보이는 이제훈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일본의 인기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배가본드’ 이미지가 연상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영화 속 박열의 외모는 오만 가지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던 그의 실제 기록을 토대로 한 겁니다. 사진을 보면 그 만화가 오히려 박열의 모습을 참조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죠. 허허허.”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관가 블로그] 文정부 요직 ‘광주일고 전성시대’

    [관가 블로그] 文정부 요직 ‘광주일고 전성시대’

    문재인 정부의 중요 정책을 심의하는 국무위원 19명 가운데 3명이 광주제일고(광주일고) 출신이라 ‘광주일고 전성시대’란 말이 나온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직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았지만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광주일고 출신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광주일고의 전신인 광주서중을 졸업했다.문재인 정부에서는 ‘강북에 경기고가 있다면 한강 이남 최대 명문은 경남고’란 자부심으로 유명한 경남고 출신이 대거 임용될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호남 출신을 우대하는 인사기류에 광주일고가 약진을 한 것이다. 부산에 있는 경남고는 대통령의 모교이기는 하지만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 탓에 야당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의 지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한 동문의 고백도 있었다. 광주일고 출신인 정남준 전 행정안전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은 19일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과 검찰총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내리는 소병철 전 대구고검장도 광주일고 졸업생”이라며 “시험을 치르고 광주일고에 입학했던 학생들은 대부분 나이가 예순 살이 넘어 지금 장관이 된 이들은 마지막으로 불사른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광주일고는 이미 삼부요인을 모두 배출한 바 있는 호남 최고의 명문이다. 김황식 총리와 이용훈 대법원장, 임채정 국회의장이 광주일고가 낳은 삼부요인이다. 1920년 개교한 광주일고는 3·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운동으로 불리는 광주학생운동의 발상지란 역사적 훈장을 지니고 있다. 1974년 고교 평준화 정책이 도입되기 전에는 호남의 인재를 쓸어담다시피 했다. 야구 명문으로도 유명해서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강정호 등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 4명이 광주일고 출신이다. 그동안 경기고는 장관 배출의 산실로 여겨졌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서울고 3학년 4반에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등 장관 3명이 한꺼번에 나오기도 했다. 정 전 차관은 “아직 문재인 대통령의 내각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보다 출신학교나 지역에 쏠림현상 없는 균형 잡힌 인사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유진모의 테마토크] ‘노무현입니다’와 ‘박열’에 주목할 이유

    [유진모의 테마토크] ‘노무현입니다’와 ‘박열’에 주목할 이유

    지난달 25일 개봉된 영화 ‘노무현입니다’(이창재 감독)는 사실 영화적 예술성이나 재미 등을 따지기엔 무리가 있다. 그런데 왜 관객을 끌어들일까.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은 제13대 총선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하지만 1992년 14대 총선에서 소포모어 징크스에 부닥친다. 3년 뒤 부산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다.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미끄러졌다 1998년 보궐선거 때 정치 1번지 종로에서 당당하게 재기한다. 그런데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을 지역구로 선택해 낙선한다. 그 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 국민참여경선에 뛰어든다. 지지율 2%에 불과했던 그가 강력한 후보 이인제를 극적으로 뛰어넘은 뒤 결국 대통령이 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영화는 훑고 지나간다. 열렬한 노무현 지지자가 아닐지라도 매우 슬프다. 통곡할 만하다. 누가 봐도 노무현을 추억하자는, 그리고 인간 노무현을 제대로 알아보자는 취지가 담긴 연출 의도가 곳곳에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책가방 끈이 짧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린 대통령이었고, 대통령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란 세뇌를 바로잡아 주고자 노력한 국민의 한 사람이었으며, 오로지 개혁과 통합(동서의 화합)만이 목적인 정치인이었다. 세상이 어수선해 잠시 잊고 지냈던 고인에 대한 그리움, 미처 몰랐던 그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새삼스레 입증된 그의 고매한 인격과 인간적 고뇌에 공감하는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 게 흥행 성공의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새삼 그를 재발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는 28일엔 ‘박열’(이준익 감독)이 개봉된다. 노무현이 대통령 최초의 탈권위적 이단아였다면 박열은 독립운동가 중 가장 점잖지 못한 이단아였다. 17살에 3·1운동에 참여했다가 탄압을 피해 도쿄로 간 그는 한국과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을 규합해 불령사를 조직, 독립운동을 펼친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1살 연하의 가네코 후미코와 사랑에 빠져 동거하다 간토대지진이 야기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계략에 의해 투옥된다. 영화가 집중하는 곳은 두 사람이 일본의 회유와 협박과 고문 속에서도 꿋꿋하게 사형을 요구하는 법정 다툼이다. 박열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조국의 국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자주독립의 의지를 활활 불사르기를 원한다. 후미코 역시 일본이 천황이란 가짜 신을 만들고 섬기는 게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유지하고 늘리기 위함이란 박열과 같은 생각을 갖고 천황과 황태자를 암살하려 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 어떤 부부보다 서로 사랑한 박열과 후미코는 가난해도 마음에 여유가 넘치는 아나키스트였고, 그래서 소신을 포기하면 육체는 편할 수 있었다. 대다수가 추구하는 일차원적 행복, 헤도니아는 그들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을 불러들이면서까지 일본의 제국주의에 항거한 이유는 에우다이모니아의 행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입니다’의 에필로그에서 거리를 누비며 시민들에게 “노무현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자신을 알리는 노무현의 삶에서도,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서도 세상에 들끓는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고 빼앗긴 인격과 자존감에 항거하는 에우다이모니아를 느낄 수 있다.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는 해탈의 에우다이모니아가 감지된다. 그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표정에선 상실의 시대에 고뇌하던 그의 침윤된 정의의 가치관이 읽힌다.
  • [자치광장] 강북에서 근현대 민주 역사를 만나다/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자치광장] 강북에서 근현대 민주 역사를 만나다/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대한민국을 지켜낸 선조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걷기여행길 10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서울 강북구의 북한산 둘레길 2구간인 ‘순례길’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곳을 걷다 보면 민주화의 성지인 국립4·19민주묘지를 비롯해 3·1운동의 발상지 봉황각, 광복군 합동묘소를 마주하게 된다. 모두 16위(명)의 애국순국선열들도 곳곳에 잠들어 있다. 3·1독립운동을 주도한 손병희, 이시영, 신익희, 김창숙, 여운형 선생 등이 대표적이다. ‘광복군 합동묘소’를 찾을 때면 더욱 숙연해진다. 중국 등지에서 일본군과의 교전 중 전사한 젊은이 17위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결혼도 못한 청춘들이라 후손조차 없다. 묘소도 주위의 다른 선열묘역과 비교해 초라하다. 헌법에 따르면 광복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군이다. 이들의 묘역은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예우해야 마땅하다. 다행히 올해 서울시의 지원으로 이곳을 현충시설로 재단장한다. 수유동에 잠든 4·19영령들의 희생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광화문 촛불에 이은 대통령 탄핵과 평화적 정권교체는 4·19혁명이 가져다준 민주화의 결실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년에도 ‘4·19혁명 국민문화제’를 발전시키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힘쓰겠다. 대통령이 내년 4·19혁명 기념식에 반드시 참석해 국민들의 희생에 대한 진심 어린 예우를 보여 주길 희망한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순례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근현대 역사 및 민주주의 교육이 될 것이다.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 가족, 연인, 친구들이 함께 모여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면 어떨까. 발걸음을 재촉하면 반나절 동안 다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길을 걸은 분들의 묘역을 이은 ‘초대(初代)길’을 추천한다. 애국순국선열들의 생애와 흔적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는 근현대사기념관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 구는 필수 코스에서 스탬프 인증을 받으면 음식점 할인 등의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강북구는 근현대 역사·문화 자산들을 하나의 테마로 엮어 역사교육 투어와 캠핑, 북한산 산행 등 1박 2일 관광 코스로 개발하려고 한다. ‘역사문화관광도시 강북구’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여러 코스를 걷다 보면 호국보훈의 마음이 자연스레 생겨날 것이다. 근현대 민주·호국의 역사가 오롯이 살아 있는 강북구에서 뵙길 바란다.
  • “미완의 6월 항쟁이 낳은 촛불… 진정한 성공위해 관심 지속을”

    1987년 6·10민주항쟁(6월 항쟁)과 촛불집회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6월 항쟁과 같이 2차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관심이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7일 행정자치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연 ‘6월 항쟁 3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6월 항쟁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1차적 목표는 이루는 데 성공했지만 군부 통치 종식과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2차 목표는 실패했다”며 “촛불 혁명도 1차적 목표(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는 달성했지만 진정한 성패는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6월 항쟁과 달리 민주정부 수립에는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6월 항쟁의 경우 학생과 넥타이부대, 노동자 등이 주요 세력이었다면 촛불집회는 여성, 노인, 중고생 등을 포함한 일반시민이 주체가 됐다고 비교했다. 그는 “지금의 촛불시민들이 집단지성으로 무장하고 훨씬 발전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군사독재에 저항해 시위에 참여하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용기는 1987년이 더 컸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6월 항쟁의 경우 6월 26일 하루만 3687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지속기간은 6월 항쟁이 20여일이었고 촛불집회는 5개월이었지만 집회일만 따지면 역시 20여일이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6월 항쟁의 참가 연인원은 500여만명(12%), 촛불집회는 1684만명(32%)이었다. 87년의 시민들은 공권력에 대항 폭력을 행사했고, 2017년에는 시민들이 비폭력을 고수하고 수호한 것도 큰 차이점으로 들었다.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6·10민주항쟁을 3·1운동, 4·19혁명과 비교 분석하며 “이들 사건은 약 30년 정도의 주기로 발생했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안착하지 못해 억압의 누적과 폭발이 세대가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튿날인 8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 과제’라는 주제로 연이어 학술대회를 연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