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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車興奉 보건복지부장관

    지난 18일 밤 9시가 넘어서야 국정감사가 끝났다.국감을 끝내고 간부직원들과 함께 국회 앞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다.한간부가 “장관님,올해는 저희 부부가 은혼식을 맞는 해인데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법에서 보장된 휴가지만 제대로 갈 수 없는 공무원들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일에 쫓기어 휴가를 반납하거나 차일피일 마루다가 아예 못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나는 그가 나에게 특별히 청원을 한 이유를 안다. 바쁜 줄 알면서 휴가 가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나는 그 간부에게 일 걱정말고 휴가를 다녀오라고 했다.기왕이면 추억에 남을 수 있도록 부부동반으로유럽여행을 가는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은혼식은 결혼 25주년을,금혼식은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니까 부부의해로를 상징하는 뜻있는 행사임에 틀림없다. 나는 몇년 전 은혼식을 맞아 집사람과 단체관광 팀에 끼여 유럽여행을 다녀왔다.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도 가 보았다.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나란히 그린 화가는 그림에다가 ‘은혼식 기념’이라는 글씨를 정성스럽게 적어 주었다.지금도 그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 있다.육로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와 스위스의 루체른을 거쳐 이탈리아 밀라노로 가는 길에 알프스 산을 넘었다.여행 가이드가 버스 안에 설치된 TV로 대학시절에 보았던 영화 ‘사운드 오브뮤직’을 틀어주었다.영화 속에서는 줄리 앤드루스가 아이들과 함께 알프스고개를 넘으며 그 유명한 주제가를 부르고 있었다.나와 집사람은 버스로 영화 속의 바로 그 고개를 넘고 있었다.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는데,집사람과 먼 이국에서 나누는 정취는각별한 것이었다.영화 속의 ‘에델바이스’를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감흥에젖어 보았다.혼자였으면 과연 이런 감흥을 느낄 수 있었을까.그야 말로 휴가의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공무원도 인간이다.한 집안의 가장이다.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선다.공무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만,휴가도 값지고 알차게 보내야 한다.그래야인생이 풍부해지고 활력도 생겨난다. 특히 장년기의 공무원들은 모름지기 휴가를 배우자와 해로의 정을 나누는시간으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하다.부부가 행복하게 해로하는 모습은 참으로아름답지 않은가. 차흥봉 보건복지부장관
  • [뉴스피플 10월8일자] 재테크전략 집중 분석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최신호(388호,10월14일자,5일 발매)는 ‘혼돈기의 재테크 전략’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금융,전시,부동산 등 분야별로 시장상황과 재테크 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15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에서 ‘누가누가 잘하나’를 흥미있게 들여다봤으며,여권핵심부가 준비중인 16대 총선전략도 정치기사로 관심을 끈다. 사회기사로는 최근 늘고 있는 친자확인 사례와 그 다양한 확인 방법 등,그리고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야 한다는 ‘쇼핑중독자’들의 새풍속도 등을 관심있게 다뤘다.또한 이 땅의 ‘횃불’ 역할을 하며 25주년을 맞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했으며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인터폴총회와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실었다. 이밖에 한국전쟁 후 자행된 ‘양민학살’등 우리나라 음지의 현대사의 진상규명 움직임도 밀착취재했다.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25돌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문규현신부)이 오는 26일 창립 25주년을맞아 다음달 4∼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번 행사는 민주화운동이 치열했던 지난 70∼80년대,사제단과 사회운동의역사와 성과를 되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짚어보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관련 행사로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정리한 책인 ‘암흑속의 횃불’ 봉정식과심포지엄·문화공연·기념미사 등이 마련된다. 또 4일 오후2시 개막식이 끝난뒤 곧바로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와 김선태신부(전주신학원 부원장)가 ‘민족사 안에서의 사제단 25년’’십자가는 우리의 길’이란 주제로 각각 강연한다. ‘암흑속의 횃불’은 지난 94년 사제단 창립 20주년을 맞아 출범된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 가톨릭계에서 70∼80년대 펼친 민주화운동의 내용과일지, 성명성·발표문 등 자료를 연도별로 모은 책.현재 74∼85년까지를 6권으로 정리했는데 이번에 봉정된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 주최하는 심포지엄에선 ‘민족과 사회정의’를 주제로 함세웅신부(인간과 정의) 이이화교수(민족사안에서의 정의의 흐름) 김광식교수(오늘의 사회적 삶속에서의 정의)가 발제에 나선다. 문화공연은 ‘기억 결심 실천’이란 주제 아래 70∼80년대의 사제단관련 사건을 엮은 것.노래패의 공연과 영상·나레이션으로 구성된 1시간짜리 공연이다. 마지막 행사는 통일염원 기념미사.김인국 백남해 최종수 신부의 주례로 진행되며 이 시대 사제들이 지켜야 할 소명과 다짐을 천명한 사제헌장이 낭독된다. 김성호기자
  • 도쿄납치 생환 26주년 기념미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3일 오후 청와대 관저에서 도쿄납치 생환 26주년기념미사를 가졌다.미사에는 직계가족과 미사를 집전한 안병철신부만이 참석했다.지난해 생환 25주년 행사 때 청와대 인근 성당에서 많은 지인(知人)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미사를 갖고 동교동 기자회견 등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전 등이 개최됐던 것에 비하면 무척 조촐했다. 김대통령은 자신과 관계된 많은 날 가운데 이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있다.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돌아왔다는 ‘기적’의 측면도 있지만,40대 이후 점철된 반독재 투쟁의 신호이자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올해 도쿄납치 당시 집권자였던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과 화해했다.그의 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을 지원할 뜻도 밝혔다.용서와화해의 정신으로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려는 김대통령의 구상도 이날 생환행사를 가족과 함께 조촐하게 가진 이유중 하나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서울지하철 15일로 개통 25돌

    우리나라 지하철이 오는 15일로 개통 25주년을 맞는다. 지난 74년 8월 15일 1호선 서울역∼청량리역간 7.8㎞구간이 처음으로 개통된 뒤 지하철은 현재 서울에서만 7개 구간 총연장 223.9㎞로 확대돼 운영중이다. 또 부산과 대구 등지에도 지하철이 운영중이고 인천 등 다른 대도시로 점차확대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당초 9개에 불과했던 역사수는 201개로 22배,전동차는 60량에서 2,868량으로 49배,운행횟수는 하루 296회에서 3,774회로 13배가 늘었다. 개통 당시 기본운임은 30원이었으나 지금은 1구역 500원으로 17배 정도 인상됐으며 출·퇴근 시간대 운행시격도 개통 당시 5분에서 2분30초로 단축됐다. 연간 수송인원은 16억명으로 모스크바 도쿄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올들어 서울 지하철의 하루평균 수송인원은 440만명으로 서울시 수송분담률이 34%에 달해 버스(29%)보다 많다. 그러나 서울의 지하철은 이러한 규모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적자경영에 허덕이고 있으며 ‘지옥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출·퇴근 시간대의 심한혼잡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실제로 1,2기 지하철의 경우 지난해 9월말까지 누적적자가 4조8,458억원에달했다.또 지하철공사의 ㎞당 운영인력은 85명으로 런던 지하철(46명)이나도쿄 지하철(66명)보다 훨씬 많아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한편 서울시는 현재 6,7호선 2기 2단계 건설공사를 진행중이며 김포공항에서 여의도,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거쳐 송파구 방이동을 잇는 9호선 3기 건설공사를 오는 2001년 상반기중 착공할 계획이다. 김재순기자 fidelis@
  • [발언대] ‘논개 희화화’ 잘못된 역사의식 심어

    “임진왜란때 진주 남강에서 빠져 죽은 기생 이름은?”,“황개”,“틀렸습니다”,“황진이”,“틀렸습니다.논개입니다”.얼마전,모 방송사가 방영한퀴즈프로에서 말장난하듯 진행하는 사회자와 학생들 사이에 벌어진 질의답변 내용이다. 나는 이 프로를 지켜보며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사회자의 진지하지 못한 질문도 그러했거니와 학생들의 배움수준은 아예 접어두더라도 상식이하의 답변에 황당하다 못해 불쾌하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하면 우리는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빠져 죽은 ‘논개’를 생각하기 보다는 이순신장군을 먼저 떠올린다. 임금과 신하들이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이순신장군은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인의 신분으로 그 책임과 본분을 충실히 이행해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했다는 점에서일 것이다.그렇다면 일개 기녀(妓女)의 몸으로 왜장 한 명이라도 더 죽여야 한다는 애국일념에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장 에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之助)를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 들어 죽은논개의 희생과 애국정신은 과연 오락프로의 문제로 비하,희유되어야만 했던가? 차라리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장을 끌어안고 죽은 의기(義妓)의 이름은?” 하고 물었더라면 듣기에 조금은 덜 불쾌했을 것이다. 만약 ‘논개가 태어난 고향은?’ 하고 물었다면 논개의 고향이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라는 사실을 아는 학생이 얼마나 되었을 지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애국지사들의 발자취와 애국정신만은 보도에 정확성을 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분명 역사를 바로 알 필요와 권리와 함께 이를 후세들에게 바로 계승시켜 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그렇게 해야만 역사와 교육과 정신이 바로서게 된다.오는 8월17일(음력7월7일)은 논개님이 떠나가신지 425주년이 되는 날이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친일의 군상(31)문명기

    ◆경북 영덕 최고부자 文明琦 잊을만 하면 한번씩 기자를 찾아와 친일파·현대사 인물 등에 관한 자료(정보)를 제공해주는 분이 한 분 계신다.겨우 이름 정도를 알고 있을 뿐 그 분의 신상에 대해선 자세히 알 길이 없다.다만 그 분이 건넨 자료 가운데는 대단히 우수한 것들이 많음에 번번이 놀랄 뿐이다.자료와 함께 동봉한 메모를통해 그 분의 방대한 독서량과 해박한 지식에 대해서도 혀를 내두를 뿐이다. 특히 누구는 누구의 부친이고,누구는 누구와 사돈간이고… 등등의 ‘사람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이런 이야기는 공간(公刊)된 자료나 문헌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으로 때로는 문헌자료 이상의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지난 겨울에 찾아와 건넨 그 분의메모 속에는 일제때 상하이(上海)에서 일본군에 군납(軍納)을 하면서 떼돈을 번 손창식(孫昌植)을 비롯해 여러 명의 친일파가 등장한다.그런데 그중 한명은 한 때 자신이 그의 ‘괴짜인생’을 교훈으로 삼을 뻔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70년대 초반 어느 신문에서 그 사람의 출세비화를 다룬 적이 있는데그때는 그의 친일행적을 전연 몰랐다는 것이다.이야기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일제때 경북 영덕 읍내 영덕경찰서장집 마당에 아침마다 팔뚝만한 삼치 한마리가 떨어져 있곤 했다.이를 이상히 여긴 그 집 식모가 어느날 아침 이를서장에게 고하자 서장은 주인공을 찾아보라고 하였다.며칠 만에 식모가 삼치를 떨어뜨리는 주인공을 잡고 보니 그는 지게에 생선을 지고 다니며 파는 생선장수였다.마침내 서장이 나와 무슨 연유로 매일 아침 마당에 생선을 놓고가느냐고 묻자 그 생선장수는 “서장님께서 치안을 잘 유지시켜 주시니 덕택에 저 같은 사람도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달리 보답할 길은 없고 해서제가 파는 생선이나마 드려서 아침 밥상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에 탄복한 서장이 “내가 뭐 도울 것은 없소?”하고 묻자 그는 “특별한 부탁은 없습니다만…밑천이 달려 물건을 많이 받아올 수가 없어서 겨우 지게꾼 행상을 하는 것이…”하고는 말끝을 흐렸다.그러자 서장이 “그럼내가 생선도매점에 소개장을 하나 써주겠소” 하고 약속을 하였다. 당시만 해도 거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던 경찰서장의 소개장 덕에 그는 이 일대에서 생선장사로 큰 돈을 벌게 되었다.생선을 미끼로 출세길을 튼 이사람은 일제 당시 경북 영덕 일대 최대의 부자 문명기(文明琦·창씨명 文明琦一郞)였다.일제로부터는 ‘애국옹(愛國翁)’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민족사에서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보자. 문명기는 1878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문승환(文承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씨 부자가 언제,어떤 경로로 경북 영덕에 뿌리를 내리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조선총독부가 시정 25주년 기념으로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朝鮮功勞者銘鑑)’(1935년 간행)에 따르면 그는 29세 때인 명치 40년(1907년)쯤 제지업을 시작한 것으로 나와있다. 생선장사로 돈을 모은 그가 제지업에 눈을 돌린 것은 이 일대가 종이원료가 풍부한 것이 계기가 된 듯하다.그는 자기 공장에서 종이를 생산하면서 다른 공장의 종이를 사서 이를 만주로 내다팔기도 하였다.사업이 번창해지자 그는 제지업계의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광제회(廣濟會)라는 재단법인을만들어 종이 생산·판매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아울러 그는 이같은 이권단체를 통해 일제 관헌과 조직적으로 유착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산업과 제지업에서 자본을 축적한 그는 당시 유행하던 금광사업에투자하였다.일제 당시 대부분의 기간산업은 일본인들이 독차지하고 있어서조선인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운(運)을 담보로 한 금광사업 정도였다. 따라서 이 분야는 조선인 사업가들이 일제로부터 별 간섭 없이 진출할 수 있던 분야이자 조선인 토착자본의 집중 투기대상이기도 했다.1932년 영덕군 지품면 도계에 있던 금은광산을 인수,자신의 이름을 따 ‘문명광산’으로 명명하였는데 그는 이 광산에서 ‘노다지’를 캐 향후 사업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경북지방의 모퉁이인 영덕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그가 중앙무대에 얼굴을 내민 것은 1935년 그가 육·해군기 각 1대씩 비용으로 10만원을 헌납하면서부터다.그는 자신이 경영하고 있던 금광을 일제 당국의 주선으로 일본유수의 미쓰코시(三越)측에 12만원을 받고 매각하고는 그 대금 가운데 10만원을 비행기 헌납금으로 내놓은 것이다.어림잡아도 현재의 10억원 규모의 거액을 비행기 헌납금으로 내놓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일제는 그를 ‘애국옹(愛國翁)’이라고 치켜세우며 대대적으로 선전에 활용하면서 그가 헌납한 돈으로 구입한 비행기를 ‘문명기호(文明琦號)’로 명명하였다.경성비행장에서 열린 명명식에는 일본의 해군대신 대리가 참석하였고 행사 후 해군기 6대가 축하비행을 하는 등 요란을 떨었다(매일신보 1935.4. 7). 이후 그는 곧바로 영덕 국방의회 회장에 취임하였고 다시 재향군인회 특별회원,일본적십자사 특별회원 등에 선임되었다.일약 이 지역의 명사로 등장한 그는 뒤 이어 경북도회 의원,중추원 참의에 피선돼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명성과 함께 그의 친일 행위는 더욱 노골화되어 갔다. 그는 조선 전역에서 ‘1군(郡) 1대(臺) 헌납운동’을 펴자고 주창하고는 조선국방비행헌납회를 만들어 여기에 1만원을 기부하면서 대대적인 헌납운동을전개했다.이후 전국에서 군 단위나 단체별로 헌납 주체의 이름을 딴 ‘애국기헌납운동’이 꼬리를 물고 뒤따랐다.밀양 지역의 ‘밀양호 (密陽號)헌납운동’의 경우 총모금액은 10만원,모금대상은 전 밀양주민인 것으로 나와 있다. 한편 당시 ‘헌납병 환자’ 또는 그의 이름을 빗댄 ‘야만기(野蠻琦)’ 등으로 불린 그는 두 차례의 헌납에 이어 다시 육군과 해군에 각각 2만원,4만원을 헌납하였다.또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에는 비행기로는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이번에는 ‘헌함(獻艦)운동’을 제창하고는 솔선하여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동광(銅鑛) 3개를 기부하였다(매일신보 1943.1.24).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일제의 강요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수동적·소극적 친일을 한 반면 그의 친일은 다분히 의도적·적극적이라는 데 분명한 차이가있다.중일전쟁이 발발(1939.7.7)하자 그는 황군(皇軍·일본군) 위문차 북지(北支·북중국)로 가는 도중 평양에서 강연회를 개최,전쟁 미화를 골자로 한친일연설을 하였으며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경부선 주변 각도시를 순회하며위문결과 보고대회를 가졌다. 이듬해에는 의남(義男)단원을 강제로 모집,수많은 조선청년을 북지의 전쟁터로 내몰았으며 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일어판 친일지 ‘조선신문’사장,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면서 일제의 침략전쟁협조에 광분하였다. 그의 대표적 친일행각 중 하나는 그가 전시하 황도(皇道)선양을 목적으로조선 내 각 가정에 ‘가미다나(神棚)비치운동’을 전개한 사실이다.‘가미다나’란 일본의 개국신(開國神)인 아마데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영부(靈符)를 안치한 것으로,이를 집안 높은 곳에 비치해 조상신으로 모시고는 아침저녁으로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전국으로 보급하기 위해 광제회라는 보급단체를 조직,자신이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경성부윤(현 서울시장)을 명예회장에 추대,남산 조선신궁에서 가미다나 분포식을 거행하고는 1차로 서울시내 각 정회 총대(町會 總代,동장) 130여명에게 가미다나를 나눠주었다.이후로 조선 내 각 가정에서는 신사참배와 함께 일본황실의 조상을 강제로 받들어야만 했다. 평소 일본 신도(神道)의 철저한 맹신자였던 그는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한것으로도 유명하다.집안 치장이나 의복·언어는 물론 생활방식까지도 전부일본식으로 개조하여 철저한 일본인이 되고자 하였다.1943년 7월 그는 황도선양회를 만들어 자신이 회장에 취임하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1949.1.29)돼 심판대에 올랐던 그는,호적에 따르면 이후 행방불명돼 생사확인이 곤란하다.
  • 일본의 대륙 경제침략 낱낱이 폭로

    아시아 지역의 경제사정 악화로 일본의 재등장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20세기초 일본의 아시아 대륙 금융침략 실상을 파헤친 책 ‘돈의 전쟁’(상·하2권)이 번역 출간됐다.저자는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일본 부동산은행을거쳐 현재 일본 채권신용은행 총합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다다이 요시오(多田井喜生)씨.다다이씨는 87년에 출간된 ‘조선은행사’ 집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이 책의 원제는 ‘대륙으로 건너간 엔(円)의 흥망’.번역자는재무부 관리와 주택은행 지점장을 역임한 辛永吉씨(현 한국장서가협회 회장).두 사람 모두 전·현직 금융인이다. 이 책은 부제 ‘조선은행권과 엔을 앞세워 대륙을 먹어 들어간 진상’이함축하고 있듯이 청일전쟁·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이 조선·대만·만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엔화의 유통권역을 대륙으로 전개해 나간 과정을 담고 있다.저자는 당시 활동했던 인사들의 증언과 일본정부의 비밀 공문서를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번역자 신씨는 이 책을 “일본의 대륙 침략사를 경제면에서 본 다큐멘터리”라고 평가하고 있다.일본으로서는 치부랄 수 있는 부분을 일본인 저자가 파헤친 점도 이채롭다. 이 책의 내용중에서 한국의 독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대목중의 하나는 제2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한국은행’편.1909년 10월 安重根 의사가하얼삔역에서 처단한 이토는 흔히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일컬어지고 있다.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토는 ‘일본은 한국을 합병할 필요는 없다’며한국의 자치 육성을 지향했던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런 이토가 ‘한국병합론’에 찬성하게 된 계기는 한국의 중앙은행,즉 한국은행의 설립을 놓고 당시 가쓰라 다로(桂太郞) 총리와의 타협 때문이라는 것.한국통감 취임후이토는 일본 제일은행 경성(京城)지점에서 한국의 중앙은행 업무를 빼앗아새로 중앙은행을 설립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그런데 가쓰라가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한국의 금융권을 장악하려 하자 이토는 가쓰라의 ‘한국병합론’을 수용하는 대신 가쓰라는 이토가 추진하던 한국중앙은행 설립을 받아들였다는 것.한국은행(조선은행의 전신·1904년 4월 설립) 설립을 놓고 이토와 가쓰라간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저자가 이 책에서 처음으로 밝혀낸 사실이다. 지난 95년 러시아정부와 일본정부간에 러시아혁명 당시 사라진 로마노프 왕조 소유의 금화(金貨)·금괴의 행방을 두고 논쟁이 인 적이 있다.당시 러시아의 한 일간지는 “일본이여,‘감춰둔 금’을 돌려달라”고 보도했었다.이는 일본정부에 혐의를 둔 것이었다.그러나 심증만 갈 뿐 물증이 없어 이 논쟁은 이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로마노프 왕조의 금화 가운데 150t의 금이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동송(東送)되었는데 그중 일부가 만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밝히고 있다.저자는 당시 러시아주재 재무관과 일본 대장상 사이에 오간 극비 암호전문을 인용,이를 처음으로 폭로하였다. 이밖에도 이 책은 관동군이 만주국 경영을 위해 아편 밀매를 장려한 사실이나 상호예치라는 미명하에 지폐를 남발한 사례 등 대륙침략기 일제의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한국산업정책연구소(이사장 金尙榮)가 연구소 창립 25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획,출간했다.지선당 발행,상·하 각 권 1만2,500원.鄭雲鉉 jwh59@
  • 도쿄 납치사건과 DJ 심중(청와대 취재수첩)

    일본을 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은 이른바 ‘DJ 도쿄 납치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8일 국회연설과 정상회담 이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의 간단한 언급이 전부다. 그것도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오전 기자회견에서는 원론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고,오후 국회연설에서도 ‘25년 전 도쿄 납치사건을 비롯해 생명을 잃을 뻔하였던 내가…’라며 핵심을 비켜 지나갔을 뿐이다. 지난 8월 서울에서 치러진 생환 25주년 기념미사와 사진전의 열기에 비하면 의외다. 金대통령이 언급을 피하는 이유는 뭘까. 청와대 관계자들은 특별히 새로 말할 게 없다고 설명한다. 지난 80년 서울의 봄,오랜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그 때의 입장에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한 핵심 관계자도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로 따르고 있다”고 털어놨다. 金대통령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는 해명이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태도는 한·일관계를 ‘사과와 망언’으로 반복·요약되는 구태의 양자차원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다시말해 희망과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21세기를 앞두고 이제 두나라 관계를 아시아,나아가 범세계적인 차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林東源 외교안보수석도 “이 문제는 한·일 양국 외교관계의 껄끄러움 같은 것”이라며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양국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사실 ‘DJ 납치사건’은 어느 정도 진상이 드러나 있다. 더구나 우리측에서 보면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다. 金대통령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역사적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 시효중이어서 ‘공’은 일본측에 넘어가 있는 형국이다. 굳이 우리가 먼저 들춰낼 사안이 아닌 것이다.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金대통령의 ‘실리’와 ‘미래 외교’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음악극 ‘천명’ 국립극장 25돌 기념공연

    ◎우리가락에 실은 녹두장군 생애/동학혁명 전개과정 전봉준 인간적 모습에 초점/무거운 주제 음악으로 이해도와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띄고 있다.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단계에서 철학과 종교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국립중앙극장이 장충동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특별공연으로 마련중인 음악극 ‘천명(天命)’은 역사적 무게가 느껴지는,후자에 속하는 공연이다.동학혁명을 주도한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애를 토속적인 우리 가락에 실어 소개할 이번 작품은 요즘 유행하는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시간때우기용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의미있는 무대다. 김용옥 원작에,박범훈 작곡,손진책 연출로 동학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위해 지난 94년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작품을 이번에 다시 손질해 무대에 올린다.작품의 소재는 물론이고 판소리 등 우리 음악적 요소가 진하게 배어있는 무대로 출연인물만도 국립극단과 창극단,무용단,합창단,국악관현악단 등 국립극장 전속단체가 총출연하는 대규모 공연으로 300여명에 이른다. 반봉건,반외세의 기치아래 구질서를 타파하고 밀려드는 외세에 맞서 근대 사회를 이룩하려는 사회변혁운동으로,우리 현대사의 원류가 되는 동학혁명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이를 주도한 녹두장군의 삶이란 다소 버겁고 무거운 주제를 음악에 실어 좀더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꾸몄다. 전봉준을 주제로 하되 동혁,복례란 평범한 농민부부를 내세워 당시 서민들에게 전봉준과 동학사상이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설득력있게 그려낸다.전봉준은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왕기석이,해월 최시형은 김종엽,동혁부부는 주호종·안숙선이 나서고 원로 연극배우 장민호 백성희도 고종과 촌로로 무대에 오른다. 연출가 손진책은 “그동안 전봉준을 다룬 공연물은 많았지만 일부분을 부각시키는데 그쳤다”면서 이번 작품은 동학혁명의 전개과정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면서도 전봉준 개인의 영웅담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또 역사적인 사실 전달과 함께 음악적 완성도로 더 큰 감동을 안겨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봉준의 압송장면으로 시작되는 ‘천명’은 농민군의 봉기와 청·일군의 가세,농민군의 제2차 봉기로 이어져 일본군의 우세한 신무기에 밀려 궤멸당하고 마는 공주성 우금치 전투장면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룬다.그리고 전봉준의 처형장면으로 막을 내린다.1895년 그의 나이 42세였다. 100여년전 전봉준과 농민군이 보여준 역사적 의미는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고 경제적 위기를 맞아 허둥거리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생생한 교훈으로 다가설 것이다.10월10∼13일 국립극장 대극장.평일 오후7시30분,토·일 오후 4시.(02)274­1151
  • 조촐한 ‘생환 25돌’(청와대 취재수첩)

    金大中 대통령은 다섯번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는 말을 자주한다. 6·25때 북한군에 끌려가 잡혀 있다가 탈옥한 것에서부터 71년 대선뒤 트럭사고,두차례 죽음을 면한 73년 도쿄 납치사건,80년 사형선고 등이다. 金대통령은 이를 차례대로 설명하면서 “남들은 살기가 어렵다는데,김대중은 죽기가 어려운 사람”이라고 유머를 곁들였지만,목소리에는 언제나 비감함이 묻어있다. 이 가운데 73년 납치사건이 金대통령에게 가장 힘들었던 고난의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해마다 8월13일이 되면 생환기념 미사와 오·만찬 행사를 거르지 않았다. 金대통령은 그 이유로 “물에 던져지기 직전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그의 저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서도 한 장을 할애,그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올 기념행사는 유난히 소박하다.金대통령 스스로도 밝혔듯이 ‘4반세기가 되는’ 25주년인데도,야당총재때보다 오히려 조촐하다.세종로성당 기념미사에 부인 李姬鎬 여사와 함께 참석한 것을 빼면 아무런 행사가 없다.다른날과 마찬가지로 조지프 프뤼어 미 태평양사령관 접견 등 6개의 공식일정을 가졌다.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金大中 선생 납치사건 기록 사진전’에는 李姬鎬 여사만이 참석했을 뿐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수해 등으로 나라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데 이제는 새로운 쓰임을 위해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는 반문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이날 세종로성당 미사에서 安秉鐵 주임신부 소개로 제대(祭臺)에 오른 金대통령은 “나라가 가장 어려운 때 대통령이 됐다”고 예의 ‘고생하라는 팔자탓’을 했다.그러면서도 “죽을 고비를 넘기며 대통령을 만들어준 것은 국민을 위해,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일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환의 의미를 되새겼다. 金대통령 내외(李姬鎬 여사는 개신교도)는 미사가 끝나자 참석자들에게 볼펜을 선물하고,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손들을 잡으며 “누가 눈도장 찍으러 왔는지,확인을 해야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자 제단 앞에 앉은 安신부는 물론 참석자 모두가 소리내어 웃었다.
  • 오늘 金 대통령 생환 25돌/“진상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金 대통령 기념미사·李姬鎬 여사 사진전 관람/정부 기록보존소 ‘DJ납치 기밀문서’ 첫 공개 13일은 金大中 대통령이 일본 도쿄에서 납치되었다가 생환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다.청와대측은 그러나 야당 총재 시절과 달리 조촐하게 생환을 기념하기로 했다.金대통령은 기념미사에 참석하고 부인 李姬鎬 여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金大中 선생 납치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의 모임(공동위원장 尹順女 韓勝憲)’이 주최한 ‘납치사건 기록 사진전’을 관람한다. 특히 李여사는 사진전 개막식에서 연설을 통해 “납치사건의 피해당사자인 대통령께서는 화합과 발전의 차원에서 범인들을 용서한다고 이미 밝혔다”고 전한 뒤 “그러나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도 진상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청와대측도 인간의 존엄과 정의의 차원에서 다시는 그러한 반인도적인 만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기록보존소가 12일 ‘김대중 납치관련 기밀문서’를 공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이 문서는 납치사건(73년8월8일) 직후인 그해 8월11일부터 75년 1월10일까지 주한미대사관과 미 국무부가 주고받은 비밀전문을 요약, 외무부가 79년 朴正熙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문서에 따르면 73년 8월11일 당시 하비브 주한미대사는 미 국무부장관 앞으로 ‘자체 정보수집활동 결과 한국 중앙정보부의 음모라는 증거를 수집하였음’이라고 보고했다.그해 8월21일에는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개입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보도는 본질적으로 정확한 것임’이라고 전하고 있다.
  • 金 대통령 생환 25돌 조용하고 조촐하게

    ◎친지·측근들 생환 미사/민간단체 기념사진전 “朴正熙씨는 金大中 선생을 제거하지 않고는 군사독재의 영구화가 어렵다고 판단한 나머지 잔인무도한 납치살해를 기도했습니다. 金선생은 유신의 서슬에 눌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일본에서 朴정권의 반민주적 헌정파괴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韓勝憲 감사원장이 ‘김대중 도쿄납치사건’과 관련해 최근 펴낸 ‘불행한 조국의 임상노트’의 한 대목이다. 73년 8월13일. 金大中 대통령은 일본에서 피랍됐다 ‘죽음의 저편’에서 생환한 지 25주년을 맞는다. 대통령이 돼 처음맞는 ‘두번째 생일’이다. 金대통령은 한국의 공안당국 요원들에게 족쇄가 채워져 수장될 뻔 했던 그날 이후를 ‘두번째 생일’로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뜻깊은’ 날이 올해도 조용히 넘어갈 전망이다. 청와대나 당도 “특별히 관련행사가 준비된 것은 없다”고 한다. 金대통령도 8·15를 기해 발표할 ‘제2의 건국’구상과 수해대책에 파묻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친지와 측근들이 모여 매년조촐하게 가져온 ‘생환미사’는 열린다. 올해는 서교동성당이 아니라 거처를 옮긴 뒤부터 다니는 세종로성당에서 열린다. 주최측은 “金대통령의 참석여부와 그 범위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조촐히 가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민간단체에서는 사진전시회가 열린다.‘김대중 선생 납치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의 모임’(공동위원장 韓勝憲 윤순녀)은 오는 13일부터 1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소전시실에서 관련사진 120점을 공개한다. 청와대는 당장은 정치권보다는 민간차원에서 ‘납치사건’규명운동이 일어 나길 기대하는 눈치다. 정직한 역사를 되찾아야 하지만 지금은 ‘경제회생’에 총매진할 때라는 것이다. 진상규명 만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종전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金대통령은 진상이 밝혀지더라도 당사자에 대한 처벌은 원치 않는다고 한다. 일찍이 용서와 화해와 비폭력을 주창했던 연장 선상에서 이 문제를 해결 하려는 것이다.
  • 발레리나 金純晶(이세기의 인물탐구:170)

    ◎‘동양적 발레’ 자신만의 이미지/타고난 연습벌레… 고난도 테크닉 모두 소화/안무하고 춤춘 ‘신화의 끝’ 발레팬 사로잡아 지난 해는 발레리나 金純晶에게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해였다. 87년 국립발레단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올렸던 ‘노틀담의 꼽추’를 10년만에 다시 춤춘 것과 그가 몸담고 있는 동덕여대에 무용과가 정식 출범한 것.거기다 제자들과 ‘공기의 정(精)’을 공연했고 그가 안무하고 춤춘 창작발레 ‘머물며’가 민속춤제전에서 안무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노틀담의 꼽추’는 표현영역의 확장과 무용수로서의 도약(跳躍)을 보여준 결정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이 무대에서 그는 에스메랄다의 야성과 순결한 여심을 생기발랄과 스며드는 슬픔으로 표현하여 관객을 감동시켰다. 그의 요염함은 이미 86년 ‘튜닉 팬터지’에서 발휘되기 시작하여 그가 춤추었던 우아한 ‘백조의 호수’와는 달리 클래식의 베일을 활짝 벗고 ‘깨끗하고 담백한 느낌과 탄탄한 춤집’을 각인시켰다. ○‘머물며’로 안무상 수상 또한 쌍꺼풀이없는 고전적인 눈매와 긴 팔다리는 ‘동양적 발레’라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무리가 없었다.이후 ‘돈키호테’를 마지막으로 프리마의 지위와 호칭,주어진 공간에서는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철학과 사색을 쏟아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87년 발레단을 떠나 그는 자신만의 창작발레에 몰두하게 되었다.만약 그가 지금까지 대극장무대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의 변화된 김순정의 창작발레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타를 만들지 않는 국립발레단에서 명실공히 5년간의 프리마시대를 마감하고 이번엔 부군인 朴丙煥씨(외교통상부 근무)를 따라 발레의 본고장인 영국에 유학,런던 라반센터와 로열발레 아카데미에서 마치 춤추지못해 한이라도 된 듯이 밤낮없이 연습에 매달렸고 몸을 회전시키는 필루에트와 푸에테,아티튀드와 바느질 스텝인 부레에 이르기까지 난이도가 높은 갖가지 테크닉들을 몸의 일부처럼 익혀나갔다. ○발레 본고장 런던 유학 그리고 2년만에 영국에서 돌아와서 선보인첫작품 ‘빛깔’은 ‘그의 모든 것이 그속에 다 들어있다’는평을 받을 수있었다.그때도 여전히 무용수로서 특출했던 프리마의 매력을 상실하지 않았고 격조와 힘과 꿈틀대는 생의 갈망이 춤속에 건재하고 있었다.백색 의상에 꽃을 들고 유년기의 환상을 다스리는 그의 빛깔은 거의 발레작품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었으며 국립발레단의 클래식발레를 사랑하던 팬들은 더이상 김순정만의 순백의 감수성과 정결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안무하고 춤춘 작품중에서 ‘신화(神話)의 끝’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간주곡과 비제의 ‘카르멘’ 전주곡에 의존한 이 작품은 ‘강렬한 음악으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 드라마틱한 분위기’로 젊은 발레팬들의 눈길을 일시에 사로잡았다. 맨발과 토슈의 대비,발끝에서 튕기는 힘의 배분은 ‘감정처리의 성숙함’과 ‘신성(神性)에서 벗어나려는 인간다운 갈망’을 보여주었고 결국은 신과의 대결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으로 겸허하게 마무리짓는 것이 특징이다.평론가 김경애는 ‘몸선의 지시언어(指示言語)’는 시종 아름다움을 동반하면서도 필요이상으로 덧칠하지 않고 사유와 성찰,자신의 기질탐구를 세세히 제시하기를 잊지않았다’고 평한다. ○신선한 현대적 무대 창출 과연 정열적이고도 순발력있는 싱그러움으로 그는 젊은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끊기듯 이어지는 감정의 전이는 불협화음적인 파괴미(破壞美)마저 창조하는 가하면 억압속에서 자유롭고 싶은 의지를 스타의 카리스마로 온몸에 담아낸다.이 역시 뛰어난 기교없이는 불가능한 표현이며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일상적인 모습은 어느때보다 신선한 현대적 무대를 창출해낸다.이른바 성격을 연출하는 춤에서 고난도의 기교를 무기로 하는 고전발레에 이르기까지 전천후로 춤추는 김순정의 기량은 나이에 비해 이미 모든 것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한 차원이라고 할수 있다. 그가 무용을 하게된 것은 어머니 김남숙씨가 딸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여 10살되던 해 남산어린이회관에 있던 부설 무용반에 데려가면서 부터다. 그곳에서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배울수 있었고 고3때 이화여대가 주최하는 전국무용콩쿠르에서 최우수상,서울대 사대 체육과에 진학하면서 이대와 경희대로 이어지는 무용계의 인맥에서 다소 소외되는 감이었으나 피나는 연습으로 외로움을 달래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것을 굳게 다짐했다’고 말한다.대학 3학년때 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신인무용콩쿠르에서 글라즈노프 작곡의 ‘사계’로 문공부장관상,다음해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하면서 교사자격증을 반납한채 지체하지않고 그는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별로 커보이지 않는 체구에 작고 야무진 얼굴,억척스럽다고나 할만큼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그는 화려한 세트나 기괴한 몇개의 동작만으로 창작성을 부르짖는 주변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신에서 땀이 배어나는 춤’으로 삶의 절규를 간절하게 춤추어 낸다.‘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정의가 죽어버린 부당함으로부터,위선과 가증스러움이 포장된 이중인격이 판을 치는 속에서’ 오로지 탈출하기 위해 그의 온몸은 솟구쳐 오르는 열기로 무대에서 언제나 활활 타오르고 있다. ○자신의 단점 보완 극복 그런 중에도 끊임없이 자기를 지키고 남의 장점을 존중하며 자신의 단점을 보완,극복하기를 잊지 않는다.가족은 그의 예술을 이해하여 역사와 철학 등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부군과의 사이에 아들(재영·10) 하나.부친은 서울대 경영대 김원수 교수다. 긴 명상속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기획하는 그는 디베르시티망과 트릭까지도 철저히 연구하는 학구파로서 내면에 깔린 심성을 건드려 김순정의 춤을 이룩하려는 야심에 차있다.그의 꿈은 러시아의 마야 풀리체스카야나 스승이던 이시다 다네오,불멸의 폰테인 마곳처럼 70세가 넘어서도,아니면 그 이상 무대에서 춤추는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연보 ▲1960년 서울출생 ▲1978년 이대주최 전국학생무용콩쿠르 최우수특기상 ▲1979년 서울예고졸업 ▲1982년 신인무용콩쿠르 발레부문 특상 및 문공부장관상 ▲1983년 서울대사대 체육과졸업(임성남 박혜련 진수인 사사),동아무용콩쿠르 대상,국립발레단초청 ‘백조의 호수’및 ‘세헤라자데’출연 ▲1983­87년 국립발레단에서 ‘처용’‘배비장’‘춘향의사랑’‘고려 애가’외 ‘호두까기인형’‘카르멘 조곡’‘노틀담의 꼽추’등 주역 ▲1985­92년 충남대 한성대 숭의여전등 출강 ▲1987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 ▲1987­89년 영국 라반센터 및 R·A·D(로열 무용아카데미)연수 ▲1990­91년 국립발레단 주역 ▲1991­95년 청주대 동덕여대강사 1993­현재 한국발레연구회이사, 바탕 춤전 ‘빛깔’안무 출연 ▲1994년 개인발표회, 한일댄스 페스티벌 ‘일상의 꿈’안무·출연 ▲1995­현재 동덕여대무용과 교수 ▲1997년 국립발레단 ‘노틀담의 꼽추’,민족춤제전 ‘머물며’안무출연 올해의 안무가상(97년) ‘몽유(夢遊)’‘공주무덤’‘길위에서’‘풀피리의 춤’외 다수
  • 백건우씨 라벨 전곡 국내 첫 연주

    ◎14일 파리 이어 20일 대전·25일 서울서/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음반도 나와 피아노 위의 유랑자 백건우씨가 양손에 선물보따리 하나씩 들고 파리에서 돌아왔다.선물의 화두는 ‘라벨’과 ‘라흐마니노프’.연주회장에서 포장을 풀 라벨은 피아노 전곡 무대,음반 곽속에서 뚜껑 열리길 기다리는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전곡이다.고통끝에 화두 하나를 깨뜨리면 금새 다른 화두로 옮아가 매달리는 선승처럼 백씨는 작곡가를 하나씩 골라 뿌리뽑힐 때까지 파헤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그래서 그의 연주에는 ‘전곡’ 꼬리표가 따라붙기 일쑤다.무소르그스키 피아노 전곡,프로코피에프 피아노협주곡 전곡,라흐마니노프 소나타 전곡….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이 좋으면 그의 소나타까지 기웃거리지요.한곡만 파고들면 작곡가의 폭넓은 세계를 우물안에 가둬버리기 쉽거든요.” 라벨 피아노 전곡은 백씨에게 음악적 고향같은 곡.지난 72년 청년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뉴욕 앨리스 툴리 홀에서 라벨을 완주,서유럽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라벨을 육신과 음악의 고향인 우리나라와 파리에도 들려줘야겠다고 새겨왔단다.배우 윤정희씨와의 결혼 22주년 기념일인 지난 14일 파리 연주에 이어 20일 대전 우송문화예술회관,25일 서울 예술의전당(문의 598­8277)에서도 다짐대로 연주회를 갖게 됐다.두시간 넘는 연주를 끌어갈때 “곡의 개성이 제각각 살면서도 모두 유기적 전체를 이루도록” 전달하는데 주력하려 한다. 한편 라흐마니노프 탄생 125주년에 때맞춰 최근 BMG레이블에서 나온 백씨의 피아노협주곡 전집은 어떤 풍문보다 그 피아니즘의 진수를 속속들이 보여준다.페도세예프 지휘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1,2번을 담은 한 장이 가장 먼저 국내에서 나왔고 ‘파가니니 주제 광시곡’ 보너스 CD가 딸린 3,4번은 9월에 마저 나온다. 2번 첫 악장.피아노가 혼자 온음표를 잇달아 내리치는 도입부.템포는 느린데 음표와 음표사이가 허공으로 느껴지지 않는건 왜일까.여백에 더욱 깊은 여운을 담는 당당한 울림 덕인듯.담백하면서도 사려깊은 타건,나뭇잎틈으로 왁자하게 빛나는 햇살처럼 쏘며 반짝이는 속주,오케스트라와 힘을 겨루는 2번 마지막 악장은 강인한 근육질이다. 탄탄하면서도 세심하고 강인하면서도 내면으로 흡입하는 백씨의 연주 순례는 올해도 멎지 않는다.6월1일 명동성당 100주년 기념 자선음악회에서 브람스·브루크너 등 독일 작곡가들을 연주한뒤 8월엔 프랑스로 옮긴다.음악감독으로 부르타뉴지방의 한 음악제를 꾸리고 피아노 페스티벌에 초대받아 라흐마니노프 1,3번을 협연한다.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집의 유럽발매는 6월로 잡혀있고 미국 시장에도 연내 상륙할 예정이다.
  • 친숙한 노래로 대중 곁에…/국립합창단 신춘음악회

    ‘국민의 합창단’(?). 국립합창단이 창단 25주년을 맞아 올해 첫 무대를 올리며 일반인들 곁에 가까이 다가설 것을 다짐한다.13일 하오 7시30분 14일 하오 4시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여는 ‘신춘음악회’.마침 미국 아리조나 주립대학 합창지휘 박사 염진섭씨를 새 지휘자로 영입한 터라 새출발의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는 비결은 다들 좋아하는 부담없는 레퍼토리를 고르는 것.그래서 대중적 작품을 여러곡 섞었다.핵심 레퍼토리는 헨델의 ‘테팅겐 테 데움’.알토 김순미·테너 장신권·바리톤 이정희·오르가니스트 백금옥씨 등이 객원으로 출연한다.또 여성합창으로 이영조 작곡 ‘엄마야 누나야’,팝송 ‘렛잇비’,남성합창으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온 ‘드링킹송’,포스터의 ‘벤조를 울려라’ 등을 준비했다.피날레를 장식할 미국곡 ‘우리는 정상에 서 있네’ 등 여러 곡을 염씨가 번안해 우리말로 노래한다.반주는 코리안 심포니.271­1744.
  • 21세기를 향한 중국의 외교정책/하도생(지구촌 칼럼)

    지난 한두달은 중국 정상의 외교 활동이 돋보인 기간이었다.강택민 국가주석의 미국방문에 이어 이붕 총리의 일본 방문,북경을 방문한 옐친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중국 지도자와의 북경 정상회담 등…. 강택민 주석은 또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에 참가,각국 지도자와 비공식 회의를 갖고 캐나다와 멕시코를 공식 방문할 예정이다.이같은 최고 지도자들의 만남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중국입장에선 이같은 만남이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각국간 신뢰와 우호관계를 두텁게 하여 장기적인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이것은 중국의 필요며 동시에 세계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다. ○치우침 없는 균형외교 미국과 일본등 강대국간 관계는 두나라 뿐 아니라 국제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시돼 왔다.강택민과 클린턴의 중·미 정상회담,이붕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와의 만남,강택민과 옐친의 북경회담 등은 강대국간의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높여 안정적이고 우호적인상호 관계 및 국제환경조성을 지향하고 있다.중국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전방위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강대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 개발도상국들과의 관계도 중국의 외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강택민과 클린턴은 지난달말 워싱턴에서 ‘21세기의 건설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정립을 위해 노력한다’는데 합의했다.두 정상은 미래 발전 목표에 합의하는 등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냈다.그러나 중·미 관계에 순풍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두나라는다른 사회·정치제도를 갖고 있고 의식과 가치관이 다르다.이같은 견해차는계속 존재할 것이다.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러한 견해차에 대응해 나가느냐하는 것이다.중국은 이견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보류하고 양측이 동의·합의할 수 있는 것들부터 협력해 나가자는 원칙을 주장해왔다. 수교이래 중·미관계가 최악이던 지난 89년12월 등소평은 미국의 대통령 특사를 불러 중국 입장과 의견을 미국정부에 전달한 일이 있었다.이것이 중·미 관계를 처리해온 중국의 태도다.대화와 접촉을 통해 합의가능한 문제부터 풀어 나가자는 것이다.지난 몇년동안 미국에선 중국을 적대시하려는 주장과 정책이 끊이지 않았다.갖가지 구실의 이같은 주장과 정책들은 냉전종식후 중·미간의 공동 이익이 사라졌으며 정상적인 중·미 관계가 미국에서 의미를 상실했다는 가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또 중국에 압력을 행사,중국의 사회정치 제도를 바꾸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그러나 그것은 넌센스가 아닐수 없다.지날달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방향처럼 중·미 관계가 바람직한 관계설정을 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군사동맹 강화 불필요 이붕 총리의 일본방문도 두나라 수교 25주년을 맞아 중요한 의미와 상징성을 갖는다.중·일 관계의 발전 역시 두나라뿐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번영에 불가결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중국은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 미래의 지표가 된다’는 자세로 중·일간의 불행한 과거 역사를 대하고 있다.역시 일본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주목되는 것은 최근 미국과 일본사이에 체결된 군사동맹 강화 문제다.냉전이 끝나고 이제 아시아에 ‘미·일 군사집단’을 겨냥하는 존재가 없어진 상황에서 무슨 이유로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일까.몇몇 일본 고관들은 대만지역이 미·일 군사활동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댄다.중국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 ○다양성과 신축성 보장 냉전은 끝났으며 이에 합당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새로운 사고와 관점이 절실하다.안전과 평화는 군비 확장과 군사동맹 강화를 통해 얻을수 없다.상호 믿음의 증진과 공동이익에 기초한 발전관계의 보장이 필요한 것이다.협력과 믿음의 증진을 위해선 상대방을 의심하고 겨냥하는 행동을 해선 안될 것이다.이것이 냉전후 진전되고 있는 국제관계의 추세다.중국과 러시아가 맺은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도 동맹을 맺지 않고 어떤 제3국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는데 특징이 있다.옐친의 방문동안 체결된 국경협정이나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 5개국이 지난해 체결한 서아시아 국경지대에서의 병력 등 군사역량 감축조약은 새로운 국제관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한·중 관계발전 모범적 APEC에서도 중국은 가입국들과 새로운 국제관계를 모색해 나갈 것이다.다양성과 신축성이 보장돼 있는 APEC의 운영방식은 참여국가들의 환영을 받고 있으며 중국은 이같은 방법과 원칙아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기술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다.APEC 회원국인 한국과의 수교기간은 길진 않지만 중국외교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두나라의 각 분야에 걸친 교류와 관계발전의 속도는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우리는 중국과 한국간의 우호 및 관계발전이 주변 형세의 장기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전진해 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커플 반지 유행

    ‘탄생보석으로 나만의 독특한 커플(Couple)반지를’.영원한 아름다움과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보석이 서서히 대중속으로 파고들면서 보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보석장신구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보석 장신구 디자인회사 쥬얼버튼(대표 홍성민)은 최근 이같은 고객의 욕구를 반영,부부나 연인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탄생석 커플반지를 특별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대중보석문화의 욕구충족’이라는 테마로 지난 9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이 행사는 백화점이나 소매상에서 볼 수 있는 틀에 박힌 커플반지가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방식과 스타일을 고려해 독특한 디자인의 반지를 제작하는 것.특히 고객이 가지고 있는 보석을 이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모든 공정은 디자이너의 수공예 작업으로 이뤄지며 비용은 커플반지 한쌍에 70만원에서 1백만원선.물론 보석을 가져오면 이보다 훨씬 저렴하다.오는 11월 말까지 예비신랑·신부 및 연인 100쌍과 이미 결혼한 부부 100쌍을 대상으로 한다.특히 결혼 10주년과 25주년 은혼식,50주년 금혼식을 맞는 부부에게는 은으로 제작한 수공예 티스푼을 증정한다.문의 733­9394∼5.
  • 중­일 내일 수교 25주년

    ◎중국이 보는 일본/중 “최대 교역국은 일”/투자유치 25억불 넘어 “경협 탄탄”/미·일 신방위합력·과거사 걸림돌 중국과 일본은 29일 수교 25주년을 맞는다.양국은 최근 한단계 격상된 두나라 관계 발전을 선언했다.이달초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일본 총리의 중국방문때 두나라 정상은 양국간 정상회담의 연례 개최와 경제협력 확대에 합의했다.중국국가 원수로선 처음으로 강택민국가주석의 내년 일본방문도 합의됐다.중국의 환경보호 및 내륙지역 개발을 위한 일본의 17억달러 저리차관 제공도 서명됐다. 일본의 기술과 자본은 지난72년9월 국교 정상화 이후 중국 개혁·개방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일본은 중국의 제1의 교역국이며 최대 투자자다.대중 직접투자만도 25억6천만달러가 넘는다(94년말).중국을 찾는 가장 많은 외국방문자도 일본인이며 유학생숫자도 1위다.경제와 일상생활속에 두나라는 떨레야 뗄 수 없는 이웃이 됐다. 그러나 정치·안보면에선 중·일은 여전히 경계와 불신의 대상이다.옛소련이란 ‘공동의 적’소멸 이후 불협화음은두드러진다.과거사에 대한 인식문제와 영토분쟁에 이어 미국과 일본의 새로운 방위협력체제 수립에 따른 대만해협을 포함하는 일본의 활동범위 확대는 중·일 관계의 새로운 마찰거리다.‘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미·일의 재확인으로 사태악화는 피했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중국외교부 외교백서(97년도판)도 이례적으로 지난해 중·일 관계를 정리하며 “역사문제와 조어도문제는 두나라 관계발전에 심각한 방해가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으로선 미·일의 중국견제가 본격화됐다고 경계하는 입장이고,일본은 이웃나라 중국이 점증하는 경제력과 동남아 화교세력을 중심으로 일본을 포위·압박해 들어오고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동남아지역에 엔블럭이 생기기는 커녕 ‘위안(원·중국화폐)블럭’과 ‘북경 입김’이 지배하게 될지 모른다고 때이른 경계를 시작하고 있다.소련 몰락과 미국의 아시아지역에서의 퇴조라는 시대조류속에 전통적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의 주도권 장악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개혁·개방을 지향하는 중국과 ‘세계 중심국가’를 추구하는 일본이 당분간 직접 부딪치지는 않겠지만,경제적 관계심화 속에서도 외교분쟁과 마찰이 끊이지 않으면서 주도권 쟁탈이 치열해져 갈 것이란 점을 읽을수 있다. ◎일본이 보는 중국/일 “중은 여전히 적국”/“안보와 경제적 협력은 별개” 인식/강택민 방일 계기 반목해소 기대 수교후 양국관계는 인적 왕래,경제교류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72년 양국을 오고간 사람이 9천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백78만명으로 늘었다. 무역은 양국 발표 수치에 오차가 있으나 지난해 무역 총규모가 72년에 비해 대략 60배 성장,6백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일본은 또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도 적극적인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는 긴장과 견제,협력과 대화의 사이를 오가고 있다.긴장은 주로 중국을 미래의 위협으로 간주하는가 여부 등 정치·안보 요인에 기인한다. 양국 관계는 냉전이 끝난뒤 긴장이 고조됐다.냉전시대 미국과 일본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파트너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소련이 붕괴되자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최대 세력으로 간주됐다.일본은 대체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주도에 따랐다. 긴장이 최대로 고조된 것은 대만 해협에서 중국이 군사훈련을 실시한 때였다.그 뒤 곧 미일 양국은 방위협력지침 개정에 나섰다.미국과 일본이 개정된 지침에서 ‘주변지역’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대상범위를 흐리고 있지만 중국은 대만을 포함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거듭 ‘유사사태의 성질’에 따른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은 지난 24일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일본외상과의 뉴욕 회담에서 대만을 포함시키지 말라고 다시 경고했다. 중국을 미래의 위협으로 보는 한편 협조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21세기 중반 거대세력으로 등장할 중국과 반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하시모토정권 출범후 일본은 미국과의 안보협력에 외교의 힘을 쏟아 부었지만 미국은 오히려 대중관계 정립에 비중을 두어왔다. 일본도 이제는 중국과의 대화에 힘을 기울여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등장하고 있다.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의 9월초 방중과 11월 이붕총리,98년 강택민 주석의 방일은 이러한 양국관계의 흐름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 긴박한 주변정세와 안보 현주소/조정원 경희대 총장(시론)

    최근 한 국제세미나에서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케네스월츠는 21세기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극체제가 재현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탈냉전 이후 안정을 보이고 있는 유럽과는 달리 동북아시아의 세력구조는 급속히 재편되고 있으며,미국과 일본은 무서운 잠재력과 빠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역내 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을 겨냥하여 작년 4월에 신 미·일 안보선언을 발표하였으며 이달 말에는 21세기 군사협력관계를 규정하는 방위지침(방위지침)을 제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일의 새 방위지침에서 유사시 미·일군사협력의 지리적 범위가 어디까지 설정될 것인가를 놓고 중국은 물론 관계국의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중에 가지야마 세이로구 일본관광장관은 “미·일 신안보선언의 대상에 대만해협도 포함된다”는 발언으로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최근 중·일 국교정상화 25주년에 맞춘 양국의 정상회담에서 강택민주석은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이 대만해협에서 유사시 일본이 미국을 도와 개입하는 방향으로 연결된다면 중국정부와 인민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미·일 방위지침 ‘남의 집 불’ 그러면 신 미·일 군사협력의 범위와 직접 연관을 갖고있는 실질적 당사자로서의 한국은 이 문제에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한국은 북한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현실속에서 한·미·일 삼각협력체제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미국과 일본의 합동군사훈련을 무조건 수용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주권에 관한 사항인 만큼 반드시 사전에 논의하고 동의를 받을 것을 분명히 요구해야만 한다.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거물급 인사 두명이 방한했다. 국방차관보를 지내고 지난 94년에 발표된 21세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보고서(EASR)작성을 주도한 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은 아·태지역에 대한 미국의 기본전략으로서 미군의 전진배치,각국과의 쌍무협정체결,다자간 안보협력 그리고 중국문제에 대한 건설적 개입(Engagement)등을 통해 이 지역에서의 안보와 경제에 기여할 것을 역설한 사람이다. 그는 동아시아 안보와관련하여 특히 중국의 부상을 주목하면서 중국이 21세기초에는 세계 제2 경제대국이 될 것이며,한반도 문제를 비롯 아시아 여러 지역 분쟁의 사태해결에 있어 중국과의 협조는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소위 중국위협론에 대한 중국포용과 협력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자국 실익 챙기는 주변4국 한편 남북한과 미국·중국간의 4자회담이란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 앤터니 레이크 전 미국대통령 안보담당보좌관은 내한 강연에서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면서도 북한 붕괴시의 막대한 통일비용 문제를 언급하면서 ‘악몽’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북한을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넘보면서 경제력에 걸맞는 국제적 영향력 행사를 기도하고 있고,러시아는 미·일 동맹강화에 따른 중국과의 전략적 협조관계를 모색하여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으로서의 영향력 행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강대국들이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현상유지를 선호하면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유리한 세력재편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한 관계는 아직도 답보상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진흙탕 대선다툼 지양을 지난 9월18일은 북한의 강릉 잠수함 침투 1년이 된 날이다.과연 그 당시에 비해 한국의 안보불감증은 어느 정도 나아졌는지 자문자답해 볼 일이다.목하 우리는 ‘대선정국’이라는 정치적 대변혁기를 맞고 있다.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상대방의 흠집찾기에 골몰하고 어설픈 TV정치시대의 개막에 따라 갑자기 탤런트가 되어 연출하는 장면들이 너무나 어색하기만 하다.이제 대선후보자들은 진흙탕의 혼탁한 싸움을 지양하고 한반도를 향해 요동치는 주변강대국들의 위협이라는 거센 파고를 헤치고 21세기의 통일한국,경제대국,문화강국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놓고 진정한 지혜의 경쟁을 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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