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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평화와 기쁨주는 연주자 될래요”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고 싶은 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독일 뮌스터시에 거주하는 14세 소녀신동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양이 털어 놓는 음악가로서의 장래 포부다. 김양은 가난한 유학생 자녀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각종콩쿠르를 석권하며 유명 연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는 차세대한국 음악인.도서출판 한길사가 창립25주년 행사로 기획한첫 독주회(13일 오후7시30분 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에서연주하기 위해 9일 내한 ,10일 오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나이보다 성숙한 체구이면서도 표정만은 앳된 그는 좋아하는 작곡가를 묻는 질문에 “밝고 지루하지 않은 모차르트가 가장 좋다”고 웃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음악인 중엔 윤이상과 정경화를 좋아하고 특히“‘정경화 선생님’은 매력적이고 자기만의 색깔이 담긴 연주를 들려줘 좋아한다”고 야무진 대답을 하기도 했다. 김양은 중학3학년 학생이면서도 뮌스터 음대에서 정규적인음악교육을 받고 있는 ‘대학생’이다.이번 연주를 위해 그의 은사는 바이올린을 특별히 빌려다 주었다고.13일 있을 독주회에서는 그를 위한 후원회도 결성될 예정이다. 10년만에 온가족이 한국에 와 기쁘다는 그는 약 한달 동안머물다 돌아간다. 신연숙기자 yshin@
  • “제2장영주 김수연 돕자”

    정경화,장영주의 뒤를 이을 ‘젊은 거장’을 우리 손으로키우자.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도 당차고 꿋꿋하게 성장하고 있는열네 살 어린 대가를 위한 음악회가 마련돼 관심을 모으고있다. 12월 13일 오후 7시30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에서 열리는 ‘김수연 초청 바이올린 독주회’. 이 독주회는 도서출판 한길사(대표 김언호)가 창립 25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것으로 문화계 등 각계 인사와 음악팬들이 초청돼 고국데뷔 연주를 듣는 자리이다. 특히 그를 위한 후원회도 결성하게 된다. 유학생 자녀로서 독일 뮌스터에서 태어난 김수연은 이미독일 사회에서는 유명인사다.다섯 살에 처음 바이올린을잡았고 교육을 받은 지 불과 9개월만에 독일 청소년 음악콩쿠르 지역 예선에서 만점을 받아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아홉 살 때는 뮌스터 음악대학에 입학해 독일 최연소대학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이후 코펜하겐 고전음악콩쿠르 등 각종 콩쿠르를 일곱 차례나 우승하는 등 ‘신동’연주자의 길을 걸어 왔다. 하지만 수연의 음악생활은 위기에 놓여 있다.95년,신학박사 논문을 쓰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재활치료로 기적적으로 소생했으나 지난해 두번째 뇌출혈로 거동마저 못하게 돼 온 가족이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는 상태가 된것이다. 수연은 내년 2월 보쿰 심포니오케스트라의 ‘마를 데뷔 연주회’에 초청돼 있는데 이는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무터,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 등 세계적인 음악가가거쳐간 거장 예약 코스.수연이 ‘예약된 길’을 순탄히 걸어가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원하고 있다. 신연숙기자 yshin@
  • 한길사, ‘Art & Ideas’ 시리즈 6권 첫 출간

    한길사가 창립 25주년을 맞아 또 하나의 장정(長程)에 나섰다.영국의 미술전문 출판사 파이돈과 공동제작 형태로 140여권의 미술서 ‘아트 앤드 아이디어즈’(Art & Ideas)시리즈에 도전한 것. 1차로 ‘그리스미술’‘인도미술’‘인상주의’‘다다와초현실주의’‘고야’‘달리’ 등 6권을 출간했다.김언호대표는 책을 펴내며 “‘한길 그레이트 북스’가 인류의지적 유산을 집대성하려는 것이라면 이번 시리즈는 미적유산에 주목하려는 의도”라며 “이 시리즈는 미술출판 부문에서 거대한 기획으로 내용과 형식,구성 면에서 획기적이다”라고 밝혔다.이어 “최소 15년을 잡고 끝까지 밀어붙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길아트가 이번에 내놓은 책은 몇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세계미술이 한자리에=지금까지 미술사 책이 대부분 유럽 중심이거나 일정 권역의 한계를 지녔지만 이 시리즈는 전 지구촌을 아우른다.유럽은 물론 북아메리카 호주 동양을모두 담아 말 그대로 ‘세계 미술’을 펴낼 계획이다.파이돈사의 기획 단계부터 한국 편이 예정되었다는 점이한길사의 구미를 당겼다고 한다. 또 지역별 조망만이 아니라 서양미술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사조별,화가별로도 설명해 한마디로 입체적 정보를준다. ◆방대한 자료·특이한 접근=책마다 200컷이 넘는 도록을갖춰 볼거리가 풍성하다.예를 들어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국내 전공교수들도 처음보는 자료가 많다고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단순한 정보 나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역사적 배경까지 곁들여 독자를 배려했다.‘그리스 미술’편을 번역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양정무 교수는 “철학적배경을 함께 설명해 기존 접근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고말했다. ◆편집 형식=파이돈 출판사의 ‘그림은 그림으로 말한다’는 원칙에 따라 표지제목 글자를 아주 작게한 대신 그림을 도드라지게 했다.사진과 그림을 돋보이게 하려고 활자의검은 색조를 많이 누그러뜨렸다. ◆국제공동출판=10여개 나라 출판사가 함께 출판했다.파이돈출판사의 판형을 유지하면서 번역과 활자배치만 달리 했다.이 형태는 국내 몇몇 출판사가 시도했거나 하고 있는데 좋은 품질의 도판을 쉽게 공급할 수 있고,대량 생산과 도판저작료를 따로 물지 않아 제작비를 줄일 수 있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한길사 측은 “저작권을 주고 국내에서 만들 때에 비해 순수 제작비가 절반”이라고 밝혔다.지금까지 파이돈사에서 25권이 출간된 가운데 한길 아트는 이 가운데 6권을 내년에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각권 2만6,000∼2만9,000원. 이종수기자 vielee@
  • 무용 평론의 산실 월간 ‘춤’ 새달 25돌

    무용전문지 월간 ‘춤’이 새달 1일로 창간 25돌을 맞는다. 이달 통권 300호를 낸 데 이어 새달에는 창간 25주년 기념호를 발간한다.이번 호에는 ‘대학의 춤 교육은 춤 관련 영역전체를 포괄해야’라는 주제의 좌담기사 등이 실렸다. ‘춤’지는 지난 98년까지 국내 유일의 춤 전문지로 무용평론의 산실 역할을 했다.이순열 김태원 김영태 김채현 김경애 등이 이 잡지가 배출한 대표적인 평론가다.특히 창작무용평론에 초점을 맞춘 편집방침은 전문 무용평론가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다. ‘춤’지는 제한된 독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단 한번의 결간(缺刊)없이 4반세기를 이어왔다.출판계의 상업논리를 오로지 춤에 대한 열정으로 극복해온 것이다.창간 초기에는 발행인 조동화씨(79)가 도자기 등 자신의 소장품을 팔아 제작비를 대기도 했다. 그러나 ‘춤’지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는다.국어학자 일석 이희승이 써준 제호를 창간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한다거나 컬러 화보형의 요즘 무용지와 달리 흑백지면을 고수하는 것은 탓할 것이 못된다.하지만 80년대 후반 이애주의 ‘시국춤’ 사건이나 90년대 초반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들의 입시비리 관련 구속사건 등 사회적 이슈들을 전혀 다루지 않은 데 대해서는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춤’지의 발행부수는 1,500부(유가 700여부).문예진흥원에서 매년 2,000만원의 지원을 받는다.그런 만큼 보다 많은 독자들이 찾는 무용전문지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전문성을 유지하되 일반대중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열린 시각의 편집자세가 요구된다.‘춤’지의 조은경 편집장은 “앞으로도 무용계의 ‘사건’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순수평론 중심으로 꾸며갈 방침”이라고 한계를 그었다.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광장] 파리에서 본 한국 30년

    해마다 맞는 신년이건만 올해는 감회가 남다르다.파리에서 한국학을가르친 지 30년째라는 개인적 이유에다 프랑스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지난달 29일 프랑스·독일 합작방송 ‘아르테’는 불국사와 석굴암 불상,종묘 등 유네스코가 지정한 우리 세계문화유산을 심층 보도했다.임진왜란 때의 훼손 실태와 두 차례 복구 등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문화적 가치 평가를 덧붙였다. 이 프로를 보노라니 프랑스에서의 한국 이미지 변화와 그와 관련된개인적인 삶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1972년 파리국립동양어대학에서시작,지금 파리7대학교 한국학과에 몸담기까지 한국 역사,고전·현대문학,한문 등을 가르치고 논문을 지도하는 동안 30년이 지나갔다.프랑스 문물을 최대한 배워서 한국에서 후진양성에 힘쓰겠다는 계획으로 접어든 유학길이 뜻하지 않게 한국학 교수로 변신한 여정은 아이러니라기보다는 ‘운명’ 같다.힘든 때도 많았지만 한국을 프랑스의가슴에 심는 데 한몫했다는 점에선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몇가지 기억을 통해한국 이미지가 프랑스에서 어떻게 부각되어 왔는지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19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한·불관계는많이 변화해 왔다. 독재에서 민주화로 가는,프랑스에 비친 한국의 위상 변화에 수많은 우여곡절이 따른 것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내가 유학온 70년대 초만 해도 체류자는 대부분 유학생 및 외교관이었다.당시 프랑스에서 한국 이미지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개발도상국 혹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정도였다.1974년에대한항공이 항로를 열고 외환은행을 비롯한 여러 회사의 지점이 들어오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토대가 만들어졌다.그러나 ‘독재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좋은 일로 입에 오르내리지는 못했다.이런 시각은 80년 광주민주화 항쟁때 정점에 달했고 때론 낯부끄러운 질문도많이 받았다. 정치적 오명을 만회하는 유일한 수단이 문화였다.이 역시 간헐적이고 개별적인 공연에 그쳐 큰 반응을 얻기엔 미약했다.그러다 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문화행사와 88올림픽을 계기로 상황이 반전되었고 90년대 들어서눈에 띄게 나아졌다. 해마다 해외문학을 알리는 행사인 ‘벨 에트랑제’가 25주년을 맞은지난 1995년 프랑스는 한국문학에 애정을 쏟았다.시인 고은 황동규를 비롯,소설가 박완서 최인훈 이문열 조세희 윤흥길 등 한국 문인 13명을 초대했다.이 중에는 내가 번역하여 프랑스에서 절판이 될 정도로 호평받은 ‘바람의 넋’의 저자 오정희가 포함되어 개인적으로도뜻깊은 행사이기도 했다. 영화 쪽으로 기억을 돌리면 더 풍요롭다.1993년 퐁피두센터에서 ‘한국영화 70년제’가 열렸다.개관 프로그램의 하나인 ‘서편제’가반응이 좋아 파리시내 개봉관에서 재상영되었다.특히 판소리는 관심의 핵이었다.잔잔하게 퍼지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1999년 ‘파리가을축제’때 ‘한국영화 파노라마’로 이어졌다.‘문화국가’의 수도에서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널리 알리는 신호탄이었다.지난해 주불한국문화원 개원 2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파리 시네마테크’에서열린 ‘춘향뎐’시사회는 장사진을 이뤘고,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한이함께 입장하고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한국 관련 방송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토론프로도 자주 열리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3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1997년 경제위기때 유네스코 대표부를 축소해 한국 문화를 알릴 길이 좁아진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발전이다.이는 정치적 민주화에 힘입은 것도 사실이지만 문화외교의 구실도 무시못할 것이다. 그 속엔 한국의 외교관 및 문화단체 그리고 숨어서 일한 개인들의 노고가 깔려 있다. 문제는 앞으로이다.이곳에 거주하는 모든 한국인이 ‘문화외교관’자세로 ‘한국 열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도 세계화 혹은 미국화라는 경제 중심의 근시안적 정책개발에서 벗어나 문화를 통한 국력신장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이병주 파리7대학 교수·한국학
  • 金대통령 아시아위크 회견

    [홍콩 연합]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6일 홍콩 시사주간지 ‘아시아위크’ 창간 25주년 특집호 서면회견을 통해 “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사활이 걸린 과제”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아시아 각국 정부가 개혁 과정의 고통과 비용을 감당하도록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사활이 걸린 과제라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세계화와 관련,“세계화는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길”이라며 “경제적으로 전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돼 한편으로는 경쟁하고 한편으로는 협력하는 시대에 경제 세계화에 역행하는 나라는 좌절과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기고] 한국옷 베트남 특별전을 열고

    “유물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의 하노이에 전시회 준비를 위해 미리 가 있던 직원은 이렇게 다급한 목소리를 전화에 실어왔다.비행기의 수송 용량이 작아 파우치 편으로 보낸 유물이 방콕공항에 발이 묶였다는 것이다.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그동안 얼마나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는데 또 이런 예기치 않던 일이 생기다니.개막식까지는 불과 3일,그리고 주말.목이 타들어 가는 긴장감 속에서 또 어렵게 한 고비를 넘겼다. 종전 25주년,정도(定都) 990주년을 맞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국립민속박물관과 한국복식문화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한 ‘아름다운 한국 옷의 선과 미소’전은 계획 단계부터 이렇게 여러 사람의 애간장을 태웠다.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에 맞게 모든 전시내용을 사전 검열받아야 했다.한 걸음 나갈 때마다 어려움을 겪게 하는 현지 공무원들의 태도는 “나도 저런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의 시간도 갖게 했다. 그러나 하얗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샌 뒤 17일 열린 개막식장.전시장을 가득 메운 인파들,현지 언론들의 뜨거운 취재 열기,그리고 눈부시게 화사한 한복을 보며 찬사를 보내는 베트남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서 그동안의 조바심과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말이 쉬워‘문화교류전’이지 서로의 가슴을 열기가 얼마나 어려운일인가.전쟁으로 응어리진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아직 한번도‘한국’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베트남인들에게 우리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한복에 실어 보냈고,그들의 화답은 기대 이상으로 순수하고 뜨거웠다.월남 파병 이후 30여년 동안의 기나긴 악연의고리가 한순간에 끊어지는 것 같았다. 문화는 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조금씩 스며들어 흠뻑 취하는 정취가있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국제간 문화교류는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그러나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씨를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베트남 한복 전시회는 시작에 불과하다.이제는 우리에게 있어특별한 의미와 인연을 가진 나라들부터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는 작은 출발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사슴의 눈망울을 닮은 베트남 사람들과또 다른 의미 있는 만남을 기대한다. 宋 秀 根 민속박물관 섭외교육과장
  • MS “컴퓨터게임 시장 진출”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미국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창사 25주년을 맞아 ‘제2의 탄생’을 꾀하고 있다.1975년 9월4일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공동 설립,‘윈도 제국’을 건설한 MS는 미 연방법원으로부터반독점법 위반혐의로 회사분할 명령을 받았다.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몰리며 ‘기우는 제국’으로 불리기까지한 MS는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컴퓨터 게임,차세대 윈도시스템(NGWS) 등 신규시장 진출에 몰두하고 있다. 게이츠 회장은 5일 미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반독점위반 사건의 항소 및 상고에서 패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조차 않고 있다”고 승소에 자신감을 피력했다.MS가 눈독을 들이는시장은 소니 닌텐도 등 일본 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컴퓨터 게임. MS는 내년 10월 출시를 목표로 초강력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X박스’를 개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PC시장과 달리 게임기 시장은 소프트웨어 장치 고안자들에게 로열티를 줘야 하는데다 5년째 시장 자체가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MS의 고전을 점치고 있다. 그러나 MS는 “영역을 사무실에서 거실로 옮기는데 집중하고 있다”며 “새로운 모델로 차세대에 접근할 경우 소니의 선점은 불가침이아니다”라고 밝혔다.게이츠 회장은 지난해 말 반독점법 위반사건으로 MS 주가가 40% 이상 하락하는 가운데서도 ‘닷·넷’ 개발에 착수했다.인터넷 웹사이트와 소프트웨어가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회사의 흥망을 걸고 있다. 백문일기자 mip@
  • 민방위 포스터·표어 입상작 발표

    ‘민방위의 생활화는 새 천년의 안전보험’(민방위 표어부문 최우수작) 행정자치부는 오는 9월22일 민방위대 창설 25주년을 맞아 지난 5월부터 2개월간 실시한 민방위 포스터·표어 공모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이번 민방위 포스터·표어 공모에 응모한 작품은 포스터 2,548점,표어 6,043점.이 가운데 포스터·표어 각 3점이 최우수상 및 우수상에뽑혔다. 포스터부문 최우수상은 최낙준군(10·경북 서부초등학교4)에게,우수상은 김인구(40)·안길홍씨(25·대학생)에게 돌아갔다.표어부문 최우수작은 심주용씨(22·인천)가 차지했다.이재철씨(32)의 ‘생활속의민방위로 재난없는 우리가정’과 박행철씨(37)의 ‘가족안전 내손으로 지역안정 민방위로’가 각각 우수작으로 뽑혔다. 최여경기자 kid@
  • 다양한 시각의 베트남전 특집 마련

    올해는 월맹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된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영화나 소설은 베트남전을 다양하게 다뤘지만 TV는 고엽제 후유증에 관한 이야기가 고작이었다.베트남전을 보는 시각이 그만큼 협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올들어 TV도 베트남전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려 한다.어려서는한국전쟁을 겪고 나이 스물이 넘는 청년기에 머나먼 이국땅 전쟁터로 떠나야했던 월남 파병용사들.반백의 나이가 훌쩍 넘긴 파월장병의 인간적 고뇌를다룬 프로그램이 선을 보인다. MBC는 다큐멘터리 ‘베트남전쟁’(29일 밤10시55분)을 준비했다.1부인 ‘전쟁의 기억’과 2부인 ‘희생’으로 나눠 방송된다.‘전쟁의 기억’에서는 30년전 32만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을 살펴본다.맹호·백마·청룡부대의 부산항 파월 환송식,베트남 도착,당시의 낯설고도 이국적인 월남풍경을 소개한다.백마작전,안케패스 작전 등 큰 전투 속에서 숨진 전우들,그 죽음을 통해 확산되는 전쟁의 공포 등을 보여준다. 2부 ‘희생’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다룬다.하미마을,락빈부락,땅띠마을 등 베트남 현지 마을에 남아있는 증오비석과 당시목격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전달할 계획이다.제작을 맡은 민운기PD는 “공과(功過)는 짚어야겠지만 누가 잘못했다는 일방적 매도는 아니다.한 걸음 물러서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알아보자는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KBS는 특집 드라마 ‘유리구슬’(7월3,4일 밤9시50분)을 준비했다.줄거리는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베트남전에서본의 아니게 양민을 학살하게 된다는 내용.50년전의 피해자가 20년 뒤에는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을 설정했다.월남에서 살아 돌아온 주인공은 고엽제 후유증과 황폐해진 인생 속에서 전쟁의 참혹성을 깨닫고 반전 운동가로 변신한다.베트남 현지 촬영으로 극적 사실감을 높였다. 연출을 맡은 김형일PD는 “한 개인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는가를 담고자 했다”면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건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
  • 美 “21세기 軍事경쟁국은 中國”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 국방부는 전통적인 유럽 중시정책에서 서서히탈피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국 및 일본에서 ‘주둔군 지위협정’의 효력이 약해져 형사사건에 관련된 미군에 대한 사법권이 현지 정부에 넘겨질 것으로보고 있다.미국은 또 장차 군사적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아시아를 꼽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다음주 발표될 국방부의 ‘조인트 비전 2020’ 연구보고서를 인용,26일 이같이 보도했다.다음은 그 주요 내용. 미국은 중국을 미래의 잠재적 적국으로 직접 명시하지 않는 대신 중국이 ‘동등한 경쟁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새 방침은 ▲태평양 해역에 공격용 잠수함 증강 배치 ▲아시아 지역 군사훈련 확대 ▲아시아 중점 전략 연구 ▲역내 미군 주둔형태 변화를 위한 외교노력 강화 등 작지만 중요한 여러가지 변화에 반영되고 있다.이는 미국의 군사·외교정책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이 아시아에 새로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 도래 가능성과 ▲중국과의 적대적관계 상정 등 두가지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현재 워싱턴에서 논의되는 내용의 상당부분은 북한의 군사도발 가능성에 관한 것이지만 미국에 있어 진짜 중요한 문제는 남북한 화해가 달성된 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이같은 관점에서 한국은 이미 경제적·이데올로기적 싸움에서 북한에 승리를 거뒀으며 이제 남은 것은 평화의 조건을 협상하는 것이다.다음달 열리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은 이 문제에 관해 더욱 예리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새 관심은 두가지 장기적 군사·외교 노력에 반영되고 있다. 첫째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미군 주둔 문제에 관한 재협상 노력이다.이는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이 여전히 환영받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방부의 한국 및 일본 문제 전문가들은 ‘주둔군 지위협정’의 효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형사사건 관련 미군에 대한 사법권이 현지 정부측에 더 많이넘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들은 또 한국과 일본의 미군 기지들도 장차미군과 현지 군이 공동운영하고 지휘권도 현지 군장교에게 넘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번째 중요한 외교노력은 베트남전 종전 25주년과 필리핀 기지 철수 10년을 맞아 미군이 동남아지역에 재진입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점을 들수 있다. hay@
  • 在美교포 벤처기업가 2명 韓人 청소년교육 30만달러 기부

    [로스앤젤레스 연합] 재미한인 벤처기업가 2명이 청소년 교육과 인재양성을위해 써달라며 30만달러를 기부했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캐피털회사인 앰벡스 벤처그룹의 이종문(72) 회장은 4일로스앤젤레스 소재 한인청소년회관(KYCC) 개관 2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10만달러를 쾌척했다. 한국 종근당의 이종근 회장의 친동생이기도 한 이회장은 “KYCC가 미래의주역이될 1.5세와 2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을 가장 잘하고 있다고 판단해 기부하게 됐다”고 밝혔다.KYCC 25주년 기념위원회 명예회장직을 맡고있는 그는 특히 “LA에 살지도 않는 내가 LA 한인봉사단체에 도움을 준 것은LA지역의 성공한 많은 한인들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나서줬으면 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한편 실리콘 밸리의 한인 벤처기업가 마이클 양(38)씨는 지난주 샌프란시스코 재미한인학교협의회에 한인 2세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20만달러를 기부했다. 한인 벤처신화의 주인공인 양씨는 2년전 인터넷 쇼핑몰 가격비교 사이트인‘마이사이먼닷컴’(Mysimon.com)을 설립,발전시킨 뒤 지난 1월 미국내 5대인터넷 메이저사인 cNet에 7억달러에 매각,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양씨는 “앞으로 2세 교육이나 자선사업에 더욱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 베트남 공산혁명의 원로 팜 반 동 사망

    [하노이 연합]베트남의 주언라이(周恩來)로 불리던 공산혁명의 원로 팜 반동이 베트남전 승리 25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전쟁 기간인 50년대와 통일 시대인 70,80년대에 총리로 재직했던 동은 최근 고령으로 사실상 실명까지 겹쳐 공공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숨지기 전 수개월간 병원에서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들이 노동절 휴간 중이어서 동의 사망은 2일 공식 발표되며 오는 5일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베트남 공산혁명의 주역들 가운데 호 치 민이 이상을 대변하는 아버지와 같은 이미지를 가졌고 보 응옌 지압 장군이 전쟁 영웅이었다면 동은 베트남의외교와 정부의 틀을 짠 인물이었다. 전쟁 기간중에는 북베트남의 입장을 세계에 알리는 대변인 역할을 맡기도한 동은 1906년 3월1일 쾅 응아이성에서 태어났다.그의 아버지는 두이 탄 황제의 비서관이었다. 호치민과 보 응옌 지압이 수학했던 베트남 북부의 명문 코크 호크 대학에서 민족주의를 받아들인 동은 1925년 하노이의 학생 파업에 참가한 이후 중국과 베트남등을 무대로 호치민 등과 더불어 공산주의 활동을 벌였다.
  • 베트남 통일 25주년/ (하)미국의 상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어느 전쟁이나 그렇겠지만 미국에게 특히 베트남 전쟁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남긴 뼈아픈 전쟁이었다. 호치민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린든 B.존슨이 군사개입을 시작한 베트남 전쟁은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 동원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에게 잊지못할 상흔만 남겼다. 1955년 미군 고문단이 베트남 땅을 밟은 이래 65년 첫 전투병력이 들어가개전,75년 4월29일 미대사관철수 때까지 1,500억달러를 쏟아부었고 5만8,000명이 희생됐건만 결국 패전의 쓴맛을 봐야 했다. 남북전쟁이 미국의 완전한 통일체 국가형성에 기여하고 세계 1·2차 대전이미국에 부를 가져다 주었다면 베트남전은 정치권력의 부정적 속성과 지방정부의 중앙통제 반발,군산복합체의 상업주의,이에 따른 국내여론 분열과 충돌등 미국의 환부를 여지없이 드러낸 전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국이 받은 상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1,2차대전 승전국으로 미국 제일주의를 과시하던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이후 걸프전 승전때까지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것이라고 역사가 피터 쿠즈니크는 지적했다. 54년 베트남군은 디엔비엔푸 지역 침공으로 프랑스군 3,000명,베트남군 8,000명의 전사자를 내고 제네바조약을 끝으로 식민지배를 종식시켰다.하지만이때 맺은 조약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현실,즉 냉전 대결장으로인도하고 있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세계와 소련·중국이 중심이 된 공산주의와의 갈등은한반도의 38선 같은 ‘이념의 국경’ 북위 17도선을 그었고, 한국전에서 끝장을 보지 못한 냉전 강대국들은 베트남에서 재대결을 준비해야 했다. 혁명의 대상인 남쪽으로의 진출을 위해 캄보디아를 통한 루트를 만든 뒤 미군을 공격한 북베트남의 호치민을 단죄한다는 명분에 4명의 미국 대통령은울창한 열대우림 땅속으로 숨은 ‘보이지 않는 적’ 베트콩과 숨바꼭질하며베트남 전쟁이라는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를 주창했던 드와이트 아이젠아워,프론티어 주창으로 미국의 힘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존 F.케네디,그의피살로 대권을 인수받은 뒤 차기를 노린 린든 B.존슨,종전이란 국민들과의 약속을 어겨가며 확전에 열을 올렸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등 역대 4명의 대통령은 그들의 미국내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두 베트남전으로 비난받아야 했다. 미 대통령들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베트남전쟁에 M16 자동소총,신형제트전투기,각종 장갑차량,‘에이전트 오렌지’ 고엽제 등 물량공세로 대응했지만 결과는 전례없는 미군의 인명피해에 불과했다.미국은 베트남전장과 국내반전여론이라는 2중 전선에 시달리면서 전략부재를 드러내야 했다. 존슨은 매일 아침 신문과 TV화면을 통해 죽어나가는 미군 모습이 생생하게전달되는데도 불구하고 승전 홍보를 강조하다 여론에 부딪혀 “차기 대권도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해야 했다.닉슨은 비등한 반전 여론 와중에 폭로된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했다. 반전 여론은 70년 오하이오주 켄트대학의 반전론자 학생 4명이 경찰총에 숨진 사건으로 정점에 달했고 미국은 결국 75년 4월 베트남 철수와 함께 씁쓸하게 고향으로 돌아왔다. hay@. *한국에 남긴 교훈.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나 전쟁을 치렀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통일을 이뤘지만 한국은여전히 북한과 대치중이다.통일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겪고 있는 각종 후유증은 한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베트남은 인구 7,800만명중 전후 세대가 50%를 넘는다.이들은 돈에 대한 생각이나 의식구조가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달라 세대간 갈등이현안으로 떠오를 정도다.한국의 경우 전후세대가 인구의 80% 가량을 차지한다.올해로 종전 50년을 맞는 한국은 분단의 역사가 긴 만큼 세대간 인식의골도 깊다. 남북간 개발의 불균형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베트남은 뒤늦게 북부개발에 나섰지만 베트남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외국자본 유치도 난관에 부딪쳤다.남에서는 북부를 살리기 위해 남의 희생을 강요하고있다는 불만과 함께 남의 제한된 ‘번영’마저 잃을까 불안해한다. 호치민시(옛 사이공)를 중심으로 남부는 86년 경제개혁 정책을 표방하면서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특히 97년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경기가 악화되면서 이들은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추락했다.범죄와 마약,매춘 등 사회문제가 심각하다.교통망과 상하수도 시설등사회간접자본시설은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남북간 경제격차는 날로 심화돼지난해 상반기 남부의 수출은 22% 증가한 반면,북부는 15% 감소했다. 상호불신과 감정의 앙금도 여전하다.북부인들은 전쟁통에 가족과 재산을 잃은 책임을 남부인에 돌리며 원망섞인 눈초리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최근 중앙정부내 고위직에 남부인의 진출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남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공직과 공기업에서 득이 되질 못한다. 한국의 경우 통일에 따른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는 더욱 크다.베트남의교훈을 거울 삼아 남북의 균형개발과 이질감 해소 등 장기적인 민족화합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김균미기자 kmkim@. *베트남 근대사 주요 일지. ◆1859 프랑스군 사이공 점령◆1930 베트남 공산당 결성◆459.2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선언◆45 9. 미·프랑스 연합군 베트남 진주◆54 제네바협정서 17도선 남북 분단◆55 남부에 미국지원 응오 딘디엠 정부 출범◆60 베트콩 월남민족해방전선 수립◆65 2 미국의 북폭개시,베트남전 시작. ◆68 9 호치민 사망◆73 1 파리 휴전협정 조인.3월 미군 마지막 철수◆75 4. 29 미대사관 철수◆75 4.30 월남 패망.통일◆76 7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건설◆86 6차전당대회서 도이머이 경제정책 도입◆92 12.22 한국과 수교◆95 7.12 미국과 수교
  • “미래로”하노이·호치민 축제물결

    [호치민시티·워싱턴 외신종합] 베트남종전과 통일 25년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30일 옛 사이공인 호치민시티와 수도 하노이 등지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새벽 6시 30분 월남 시절 대통령궁이었던 독립궁에서 치러진 기념식으로막을 올린 기념행사는 각계각층의 퍼레이드와 각종 문화행사 등으로 이어졌다.기념식이 펼쳐진 독립궁에는 전면에 국가지도자인 전 호치민 대통령의 초상이 드리워져있고 양편에 베트남기와 공산당기가 걸렸다.기념식과 퍼레이드외에도 시내 각 가정과 거리마다 베트남기를 내걸고 각종 애드벌룬과 플래카드를 선보여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를 연출. ■수도 하노이에서 5년마다 치러오던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는 베트남정부의실용주의 노선이 반영된듯 이번에는 경비절감을 이유로 치러지지 않았다.대신 29일 앞당겨 레카피유 공산당서기장과 천득렁 대통령 등 정부요인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국회의사당에서 간단한 기념행사를 가졌다.혁명가 열창과 함께 치러진 기념식에서 판반 카이 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종전 25년만에 정치 외교경제등 모든 면에서 안정을 돠찾았다”고 선언하고 이제 미래를 향해 나가자고 촉구했다.카이 총리는 기조연설을 통해 ‘베트남전 책임론’을제기.카이총리는 “종전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베트남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는 참전국들의 책임이 크다”고 밝히고 “참전국들은 책임있는 태도로베트남을 도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전에서는 베트남군 300만명,미군 5만8,000명,한국군 5,000명,호주군500명이 죽은 것으로 돼 있고 미국의 고엽제 살포로 400만명의 피해자가 생긴 것으로 베트남은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 용사들이 베트남종전 25주년을 맞아 처음으로위령비를 세운다.대한월남참전복지전우회(이사장 김문구)는 5월 2일 베트남중부 쾅남성 디엔증사 하미마을에서 전쟁으로 희생된 베트남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 기공식을 갖기로 했다.하미마을은 베트남전 중 청룡부대 작전지역으로 전투가 가장 치열해 주민들의 피해 또 한 컸던 곳. ■미국 정부는 25년 전 베트남전에서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등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된 참전 용사들에 대한 보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공화당의 유력상원의원인 짐 제퍼즈가 28일 촉구.제퍼즈 의원은 이날 의회에서 기자회견을갖고 “지금이야말로 베트남 참전 용사들에게 군 복무시 생긴 건강상의 문제에 대한 보상 문제를 다룰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
  • 베트남통일 25돌 축하 호치민서 대규모 행사

    [호치민시티 연합] 베트남 통일 25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30일 옛 사이공의 새 이름인 호치민시티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75년 4월30일 미국이 이끌어온 남베트남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10년 만에 베트남전쟁이 막을 내리고 남과 북으로 갈려 있던 베트남이 하나가 된 것을 기념하는 이 행사는 특히 새 밀레니엄과 25주년이라는 의미까지 곁들여대규모로 치러졌다. 그러나 수도 하노이에서 5년마다 치러오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는 이번에는 치러지지 않았다. 대신 하노이는 종전 기념 전날인 29일 앞당겨 레카피유 공산당서기장과 천득렁 대통령 등 정부요인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국회의사당에서 간단한 기념행사를 가졌다. 혁명가 열창과 함께 시작된 기념식에서 판반 카이 총리가 기념사를 했으며축하 퍼레이드 등 자축행사가 이어졌다.이날 축하 퍼레이드는 시내 중심가를돌며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 베트남 통일 25주년/ (상)현황

    호치민시티(옛 사이공)의 중앙광장 한 편에 혁명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의대형초상화가 걸려 있다.이 초상화 밑에는 ‘공산주의의 위대한 승리는 1,000년을 지속할 것’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그의 초상화가 바라보는 광장 건너편에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패션모델 신디 크로포드의 입간판이 서있었다. 지금은 베트남 당국이 통일 25주년 기념을 위해 철거했지만 크로포드는 호치민과 나란히 서서 미국산 고급시계를 사라고 베트남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호치민의 초상화와 크로포드의 입간판은 베트남전(베트남인들은 미국전쟁이라고 부른다)이 끝나고 남북으로 갈라졌던 베트남이 통일된지 25주년을 맞는베트남의 오늘을 잘 보여준다.미국은 베트남의 적이었고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 베트남 지도자들에게는 지금도 마찬가지다.그러나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미국은 적이 아니라 모든 좋은 것의 상징이다. 현재 베트남의 인구 7,800만 가운데 절반 이상이 75년 통일 이후 태어났다.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서만 베트남전쟁을 아는 이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역사의일부분일 뿐이다.30일의 통일기념일도 그저 휴일일 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이들에겐 많은 돈을 벌어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전히 사회주의 노선을 고집하는 베트남 지도층과 이같은 젊은이들의 의식차이는 오늘날 베트남이 안고 있는 고민을 대변해준다.전쟁은 베트남에 통일을 안겨주었지만 대신 경제를 파탄에 빠뜨렸다.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380달러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국민의 80%가 시골에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깨끗한 식수와 전기조차도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통일 후 사회주의 경제를 도입하고 자본주의의 모든 폐해를 제거하기 위해안간힘을 썼던 베트남은 결국 86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도이모이’(혁신) 정책을 채택했다.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에 문을 연 것이다.95년에는 미국과의 외교관계도 재개했다. 도이모이 정책은 외국인 투자를 불러오는 등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타격을 받았다.95년 9.5%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지난해 4.8%로 뚝 떨어졌고 96년 최고 90억달러에 육박했던 외국인 투자도지난해에는 14억달러로 격감했다.올해는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는 것은 베트남의 개혁이 외국으로부터 신뢰를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베트남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마무리짓고도 최종 단계에서 조인을 연기했다.무역협정이 조인됐다면 수출도 크게 늘어나고 외국인 투자도 늘어날 수 있었다.그러나 공산당의 사회 장악이 약화되고 국가지배체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나머지 지도부가 방향을 바꾼 것이다.외국 투자가들로선 베트남의 개혁정책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베트남 정부는 사회주의와 자주독립노선을 유지하면서 경제 개방에 의한 경제개발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문제는 사회주의와 경제 개방이 양립하기 힘들다는데 있다.개혁을 택할 것이냐 보수를 택할 것이냐 베트남은 지금 생존을 위한 심각한 교차점에 서 있는 것이다. 전쟁은 실제로 25년전 끝났다.그러나 베트남에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베트남 지도자들은 경제를 통한 미국 등 서방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고생각하고 있다.이들은 기본적으로 과거지향적이다.그러나 전쟁 후 태어난 젊은이들은 이들과 다르다.베트남이 잘 살기 위해서는 세계경제로 진입해야 한다.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미국이라는 것이 젊은이들의 생각이다.젊은이들은미래지향적이다. 과거지향의 지도층과 미래지향의 젊은이들간에 경제를 중심으로 한 서방의 가치를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남쪽은 외국인 투자도 많고 그런대로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북쪽은 상대적으로 경제가 더 어려운 형편이다.베트남 정부는 북쪽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쪽에의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북부지역을 살리기 위해 남부지역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져나오고 있다.통일이 됐다고 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남과북은 대립은 계속되고 있고 실제적인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면한 국민성,높은 교육열 등 베트남의 가능성만은 무한하다는데많은 베트남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이들은 베트남만큼 잠재적 가능성과 현실과의 괴리가 큰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세진기자 yujin@. *100만명 아직도 고엽제 후유증. 베트남은 남북이 통일된 지 25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통일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남베트남인들의 희생은 철저히통일 베트남 역사에서 잊혀지고 있다.남북 베트남 출신간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골은 여전히 깊다.10년간 지속된 민족전쟁에 따른 빈곤문제,고엽제 문제와 실종자 및 난민(보트피플)문제,미군과 최근 불거진 한국군의 주민학살 문제 등 당면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300만명의 베트남 국민들이사망했다. 이중 200만명이 민간인이다.북베트남 군인중 30만명이 실종됐고남베트남 군인의 실종자수는 아예 잡혀 있지도 않다.100만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한편 미군은 5만8,000명이 전사했고 2,000여명이 실종됐다.한국군은 4,960명이 전사했다. □민족갈등 종전후 100만명 이상이 베트남을빠져나갔다.40만명 가량은 '재교육‘ 명목 아래 수용소에 보내졌고 140만명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베트남남부의 ‘신경제구역’에 강제이주당한 뒤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똑같은 전쟁 참전군인 유족이지만 남베트남 군인의 유족들은 얼마 안되는 연금마저 받지 못하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베트남의 한 언론인은 “1975년에 지리적으로 남북이 통일됐고 76년에 법적으로 통일국가를 세웠지만 정서적으로 완전히 통일이 되려면 수십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지적,그만큼 남북간 감정의골이 치유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아직도 당서기장,총리,대통령 등 3역을 뽑을 때 묵시적으로 지역 안배를 하고 있고 경제특구를 설정할 때도 마찬가지다.이같은 지역갈등은 베트남의 완전 개방을 가로막는 요인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고엽제 문제 미군이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정글 속에 설치된 근거지를 찾아내기 위해 62∼71년까지 정글에 쏟아부은 고엽제는 약 4,200만ℓ. 베트남 정부는 현재 7,800만 인구중 100만명이 고엽제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고엽제는 암,면역결핍증,기형아 출산 등의 주원인으로 알려져왔으며 특히 최근 미 공군이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고엽제는 당뇨병과 심장질환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미국이 지원을약속했고 1월부터 베트남 정부와 관련단체들이 매달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보상금 규모가 턱없이 미미해 이들은 적절한 치료는 차치하고끼니를 때우기에도 부족한 실정이다. □난민(보트피플)문제 7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찾아 무작정 배에 몸을 실어 망망대해로 떠났던 이들에게 세계는 동정적이었다.상당수가 홍콩,태국,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필리핀,한국 등지의 난민촌을 거쳐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호주 등에서 재정착했다.그러나 80∼90년대 경제난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세계의 시선도 냉정해졌다.이들은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대부분 본국으로 이송됐다.되돌아온 이들을 끌어안고 경제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가 최대의 과제다. □양민학살 문제 미군은 68년 3월16일 무방비 상태의 미라이 주민 수백명을학살했다.이 사건은 미군의 수치와 은폐의 동의어가 됐고 미국의 여론을 반전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최근 들어서는 한국군의 주민학살 논쟁까지 가세했다.베트남 정부는 과거의 문제로 접어두고 경제개발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하지만 언제든 보상문제는 당사국간에 현안으로떠오를 수 있다. □대미관계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3월 베트남을 방문,고엽제 피해자에대한 지원을 약속했다.실종자 문제는 양국이 합동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조사중이다.아직 양국간 전쟁과 관련 어떠한 보상협상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본협상이 이뤄질 경우 어떻게 결론날지 미지수다. 김균미기자 kmkim@
  • 존 매케인 美상원의원 하노이 방문

    [하노이 연합]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탈락한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이 25일 하노이에 도착했다. 이번으로 7번째 베트남을 방문하는 매케인 의원은 이날 오전 9시30분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한 뒤 11시 실종미군 유해 송환식에 참가했다. 미국 NBC의 종전 25주년기념 프로그램 제작의 일환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매케인 의원은 하노이에 26일까지 머문 뒤 호치민시티로 가 28일부터 NBC의 생방송에 참가할 계획이다. 베트남전 당시 직접 참전해 월맹군의 포로가 됐던 매케인은 지난 대통령후보 지명전 도중 월맹군에 의해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가 베트남 정부와관련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았었다.
  •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출간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윈회’ 결성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주최측으로부터 한권의 책을 받았다.21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지난 100년의 언론사를 정리한 ‘한국 언론바로보기 100년’(도서출판 다섯수레)가 바로 그것.최근 출간된 이 책은 한겨레신문 초대사장을 역임한 청암 송건호 선생과 최민지,박지동,윤덕한,손석춘,강명구씨 등 언론인 및 언론학자들이 공동필자로 참여,우리 언론의왜곡되고 미화된 모습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저자들은 한국 언론의 모순은 언론인들의 주체적 요인보다는 ‘권언유착’과 같은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따라서 그들 스스로 언론계에몸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속한 세계의 부끄러움을 서슴지 않고 고백한다. 책은 맺음말에서 폐쇄적인 권력밀착형의 언론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노동조합 운동을 통한 대항 뿐 아니라 수용자 주권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미경기자
  • [99 종교계 결산] 종교화합 성과없이 발걸음만 분주

    99년 종교계는 유난히 많은 갈등·분규와 사건들로 얼룩져 심한 몸살을 앓았다.기독교계는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된 신자들로 인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불교계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종권을 둘러싼 폭력사태와 소송 등으로수난을 겪어야만 했다.또 교계지도자들끼리 자주 만나 종교화합의 행보가 많았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가톨릭과 세계루터교연맹이 500년간 반목 대립해오다 화해하고 정교회와 가톨릭,이슬람과 가톨릭 등 종교간 대화 움직임이활발했던 세계적인 흐름과는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각 종단은 새 천년을 앞두고 자성과 연합에 대한목소리를 높여 종교간 화합과 사회개혁에 앞장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신교는 무엇보다 숙원인 교회일치에 대한 만족할만한 성과를 보지 못한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대한예수교장로회의 통합과 합동이 공동기도·교환예배 등을 벌였지만 결국 연합이 유보됐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화노력도 뚜렷한 결실을 보지 못했다. 각종 비리사건에 개신교 신자들이관련된 것은 큰 흠집으로 남았다.옷로비파문 당사자들은 모두 개신교 신자였으며 국회증언도 거짓으로 밝혀져 명예가 크게 손상됐다.대형교회와 개신교계의 문제점이 끊임없이 거론됐고 이에대한 개선방안을 놓고 논쟁과 자성이 이어졌다.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MBC 방송국 점거로 인한 방송중단 사태,신앙때문에수술을 거부한 신애양 논란,종말론 추종 신도들의 집단가출도 모두 사회의주목을 끈 사건들이었다.단군상 훼손에 따른 우상숭배 논쟁과 예장통합의 선거부정 시비도 개신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다.그나마 대한성서공회의 1,000만달러 수출탑 수상,대한성공회의 정신지체장애인 근로공동체 우리마을 준공은 훈훈한 뒷 이야기거리였다. 천주교는 지난 한해동안 4개 교구장·부교구장이 새로 부임,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청주 부산 인천 군종교구가 새 교구장을 맞았고 주교회의 의장도정진석 대주교에서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로 바뀌었다.지난달 한국사목연구소는 ‘한국천주교회사 대희년 심포지엄’을 통해 천주교회의 반민족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목받았다.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25주년과국가보안법 폐지투쟁,순교자 현양탑 건립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들이었다. 불교계는 장자 종단인 조계종이 지난해에 이어 폭력사태를 재연하며 홍역을 치렀다.고산 총무원장 체제는 각종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종단의 위상높이기를 시도했으나 지난해 분규이후 징계자 사면·복권 등 내부갈등을 해결하지못해 중도퇴진했다.서울민사지방법원이 고산 총무원장직 부존재 판결을 내린 뒤 정화개혁회의가 추천한 도견스님을 직무대행으로 지정하면서 싸움이 다시 시작돼 결국 총무원측과 정화개혁회의측은 도심에서 난투극까지 벌였다. 분규는 정대스님의 제30대 총무원장 선출로 사태를 수습해나가고 있는 분위기다.불교서적이 베스트셀러 상위를 휩쓰는 등 불교서적 붐이 일어난 것은종단분규와는 퍽이나 대조적인 현상. 북한과의 교류는 비교적 활발했던 편이다.진각종 성초 통리원장이 종단 대표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민족화합불교추진위원회 지선 상임추진위원장과 명진 집행위원장이 조선불교도연맹관계자와 지속적인 교류에 합의했다.허문도씨의 독주로 인한 불교텔레비전(btn) 파행운영,조계종 혜암 종정취임,광덕스님과 일타스님 입적,대행스님의 독일 초청법회,태고종 안덕암 종정 취임,천태종 삼광사 30주년 기념법회 등도 특기할만한 것으로 꼽힌다. 이밖에 원불교의 한국불교종단협의회 가입논의가 무산됐고 대순진리회가 여주 본부도장 점거사태로 인해 양분위기에 빠졌으며 유교계도 재단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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