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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방동 미군기지, 여성·가족 성지된다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 미군기지 ‘캠프 그레이’가 있던 자리에 여성가족복합시설인 ‘스페이스 살림’이 조성된다. 서울시는 21일 스페이스 살림 착공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스페이스 살림은 2020년 5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방동은 6·25전쟁 격전지로 이후 미군캠프, 전쟁미망인 정착지를 비롯해 시립부녀보호소 등이 조성돼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다. 이곳을 여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이 다양한 실험과 상상, 창업을 통해 꿈을 펼치고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여성가족복합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스페이스 살림은 동작구 대방동 340-3 외 3필지(대방역 2, 3번 출구 인근) 8874.8㎡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건립된다. 주요 시설은 가족살림학교, 가족놀이터, 가족서재, 야외공연장, 다목적홀 등 ‘가족·문화공간’, 작업실, 배움공간, 50개의 가게가 위치한 ‘창조적 제작 및 창업공간’, 공유부엌, 모임공간, 열린카페, 연수시설(46개실) 등이 포함된 ‘열린공유공간’이다. 이와 관련해 시는 지난달 실시설계를 완료한 후 각종 행정절차와 입찰 과정을 거쳐 호반건설을 시공업체로 선정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한국판 쉰들러’ 현봉학 박사 기념사업회 오늘 창립식

    ‘한국판 쉰들러’ 현봉학 박사 기념사업회 오늘 창립식

    6·25전쟁 당시 대규모 피란민 구출에 기여해 ‘한국의 쉰들러’로 불리는 고 현봉학 박사 기념사업회가 19일 창설된다.연세대 의대 전신인 세브란스의전을 나온 현 박사는 6·25전쟁 당시 해병대 문관으로 활동했다. 1950년 12월 미군이 ‘장진호 전투’ 등을 통해 시간을 벌며 함경남도 흥남에서 대규모 병력을 철수할 때 현 박사는 피란민 10만여명도 함께 철수시켜 달라고 간청했고 미군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마지막 미군 함정인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12월 23일 배에 실려 있던 군수품 25만t을 바다에 버리고 피란민 1만 4000여명을 태워 경남 거제로 향한 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도 “부모님이 흥남철수작전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탄 피란민이었다”며 여러 차례 인연을 강조했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 동북아 최고 의료관광 명소 꿈꾼다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 동북아 최고 의료관광 명소 꿈꾼다

    ‘지붕 없는 박물관.’ 한반도 5000년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수많은 유적지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인천 강화군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현존하는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등사를 비롯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살아 있는 마니산 등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적 관광지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등 역사 속 시간들이 강화나들길을 따라 펼쳐져 있다. 접근성도 뛰어나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가량 가면 푸른 바다와 멋진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점, 남도 못지않게 다양한 향토 음식, 문화재를 끼고 도는 도로망 등도 강화를 수도권 최대의 문화관광지로 인식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강화에 오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곳이 갑곶돈대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설치된 소규모 관측·방어시설로 강화에 53개나 있다. 갑곶돈대는 1679년(숙종 5년)에 완성됐는데 1977년 보수·복원작업이 이뤄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돈대 안에 있는 대포는 조선시대 말에 설치된 것으로 외세의 침략에 맞선 선조들의 얼이 깃들여 있다. 월곶돈대에는 경관이 매우 뛰어나 강화 8경의 하나로 꼽히는 연미정이 자리잡고 있다. 민통선 지역이어서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으나 2008년 완전히 개방됐다.●강화문학관, 이규보·정인보 작품 소장 강화산성은 강화읍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석성으로 조선 숙종 37년에 축조됐다. 북산에서 시작해 서쪽의 진고개를 지나 남쪽의 남산을 감싸 안으며 동쪽의 견자산으로 연결되는 총길이 7.12㎞의 산성이다. 강화산성 북문에는 오읍약수터가 자리잡고 있다. 고려시대 몽고 침입 당시 나라를 잃은 슬픔에 하늘, 땅, 임금, 백성, 신이 함께 울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돼 오읍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 약수는 조금 과장됐지만 불로장생의 물로 알려져 물을 담아 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강화에는 고려와 조선의 문화유산이 많지만 청동기 시대의 흔적도 남아 있다. 고려산 봉우리 능선에 있는 고인돌군(群)이 그것이다. 이곳 고인돌(지석묘)은 받침돌 위에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이다. 현재는 많이 내려앉았지만 유구한 세월을 버텨온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강화나들길을 여행한다면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강화문학관에 잠시 멈춰 문학의 향기를 느껴보자. 고려시대 이규보 문인부터 일제강점기 정인보 선생에 이르기까지 강화를 대표하는 문인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2층 수필문학관에는 수필가 조경희의 기증품 8287점과 김기창 화가 등의 미술작품 158점, 도자기 74점 등이 전시돼 있다. 마니산은 백두산이나 묘향산 등과 함께 단군왕검의 전설이 있는 강화도의 명산으로 화도면 문산리에 소재한다. 해발 468m로 북으로 백두산과 남으로 한라산의 정중앙에 위치한 산 정상에는 단군이 우리 민족의 번영을 기원하던 제단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참성단(사적 136호)이 있다. 마니산은 특히 기(氣)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센 산으로 알려져 등산을 겸해 기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고려산(해발 436m)은 매년 봄 열리는 진달래축제로 유명한데 산 정상 주변에 형성된 진달래 군락이 30만㎡에 달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에 있는 진달래 군락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강화갯벌·초지리습지엔 희귀종 서식 강화는 해양성 기후로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해 품질 좋은 농작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강화갯벌은 독일·네덜란드 연안 갯벌 등과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평가된다.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등 세계적인 희귀 조류의 서식지다. 인천시 연구자료에 따르면 강화갯벌은 1㏊당 경제적 가치가 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지리 매화마름 군락지는 국내에서 가장 작은 람사르습지로 3000㎡ 규모다. 경지 정리로 멸종 위기에 처한 매화마름을 보호하려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민을 설득하고 성금을 거둬 확보했다. 꽃은 물매화를 닮고 잎은 붕어마름을 닮아 매화마름이란 이름이 붙어졌으며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한 수생식물이다.●풍물시장엔 인삼·순무 등 특산품 풍부 강화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인 풍물시장은 강화 특유의 건강한 먹거리가 즐비하다. 예전에는 읍내의 5일장이었으나 외곽의 최신식 건물로 옮겨와 편리하게 특산품을 구매할 수 있다. 보랏빛 동그란 순무를 듬성듬성 썰어 양념에 버무리는 모습은 이곳만의 특별한 풍경이다. 또 강화도 인근 해역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과 밴댕이젓, 새우젓, 게장 등은 풍물시장 최고의 먹거리다. 강화 특산품인 화문석과 인삼 등은 풍물시장과 인근 인삼센터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강화도 인근 섬들도 잇따른 연륙교 개통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는 지난 6월 개통돼 여객선을 통해서만 찾아야 했던 고질적인 교통 불편을 해소했다. 석모도는 바다와 산림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자연휴양림이 백미다. 강화군이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은 2011년 4월 개장 이래 2013년 7월 수목원 개장, 2015년 7월 2차 휴양림까지 단계별로 조성돼 거대한 종합 휴양림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곳은 산림휴양관과 숲속수련장을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데다 휴양림에는 양질의 수목이 빼곡히 들어서 최적의 힐링 장소로 꼽히고 있다. 128만㎡에 달하는 산림에 퍼져 있는 참나무·소나무·소사나무·밤나무 등 50여종에 달하는 수목은 피톤치드의 향연을 만들어 낸다. 석모도에는 또 우리나라 3대 기도성지로 꼽히는 전통 사찰 보문사, 바다를 보면서 등산을 즐길 수 있는 해명산, 미네랄온천 등이 자리잡고 있다.2014년 7월 연륙교가 개통된 교동도는 민간인 통제구역이어서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이 보존돼 있다. 군부대 검문을 거쳐야 하고, 통행시간이 제한되는 불편이 있지만 청정지역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화개산 정상에 오르면 북한 모습이 코앞에 펼쳐진다. 이곳 대룡시장은 1960∼1970년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장이 서게 됐다고 한다. TV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에 소개돼 유명해졌다. ●교동도 화개산에선 북녘이 손에 잡힐 듯 강화도 남단에는 대규모 의료관광단지를 개발하는 사업이 추진된다. 인천시는 지난달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부동산 개발전문업체인 파나핀토 프로퍼티즈와 ‘강화휴먼메디시티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사업은 강화도 남단 동막해변 일대 900만㎡에 의료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외국인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강화도를 잇는 해상교량을 건설하는 내용이다. 파나핀토 측은 우선 이 사업에 3000만 달러(약 330억원)를 투자하고, 인천시는 휴먼메디시티 사업 예정지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도록 정부에 건의하는 등 행정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인천시는 해상교량이 들어설 경우 강화도가 영종도에서 차량으로 20분 만에 연결되고,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춰 의료관광단지로서의 최적의 여건을 갖췄다고 보고 있다. 이상복 강화군수는 “강화도가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등지에서도 찾는 동북아 최고의 의료관광단지가 될 것”이라며 “의료 수준 향상과 관광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업계소식] 한성기업,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 음악회

    [업계소식] 한성기업,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 음악회

    제11회 ‘유엔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가 지난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이날 행사에는 한·터키 수교 60주년을 맞아 방한한 터키 전몰장병 유가족과 전후 복구 지원국인 독일 의료지원단 및 가족, 유엔참전용사·가족, 주한 외교사절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국가보훈처와 호국문화진흥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음악회는 6·25전쟁 당시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행사로 올해 10회째를 맞았다. 이날 행사에서 임우근 호국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한성기업 회장)은 “지금의 우리는 호국선열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감사의 마음으로 지금과 같은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유사시 한반도 투입’ 中인민해방군 랴오닝서 훈련

    ‘유사시 한반도 투입’ 中인민해방군 랴오닝서 훈련

    중국 인민해방군이 지난 26일 랴오닝성 선양 북부 커얼신 초원 일대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이번 훈련은 엄동기 항공술을 연습하기 위해 기획됐다. 훈련을 맡은 78집단군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부대로, 유사시 한반도에 투입되는 군이다. 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 “아픈 사람에게 함부로 않겠다”…이국종 교수의 어린 시절

    “아픈 사람에게 함부로 않겠다”…이국종 교수의 어린 시절

    “내가 크면 아픈 사람에게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 탈북 북한 병사를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는 2012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털어놓았다.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지뢰를 밟아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 국가유공자였다. 하루는 그의 어머니가 동사무소에서 상이군인에게 지급하는 밀가루를 머리에 이고 오다 쏟고 말았는데 사람 눈을 피해 밤에 다니다 발을 헛디디고 만 것이다. 이 교수는 어머니와 밀가루를 주워 담으면서 순간 가슴이 울컥했고 아픈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이국종 교수는 귀순병에게 소녀시대의 ‘GEE’의 오리지널 버전과 록 버전을 들려줬다고 했다. 독학으로 공부한 기타 실력으로 2004년부턴 의과대학 밴드 동아리인 ‘식스 라인스(Six Lines)’의 지도교수를 맡기도 했다. 수술 직후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수술실에 록 음악을 틀어놓는다는 그는 “손끝에서 결판나는 기타 연주가 외과 수술과 비슷해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그의 수술실에는 록 음악이 흐른다. 수술 직후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2011년 11월 20일 열린 한국 의사가요대전에 아주대병원 그룹사운드 ‘어레스트(arrest)’의 지도교수이자 베이시스트로 참가해 우승상금 1000만원 중 절반은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는 이 교수가 연주하는 모습이 담긴 지난 2013년 2월17일 올라온 ‘대한외과학회 외과밴드-나는나비’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그는 외상 의사로 일하며 15년간 36시간 연속으로 일하는 삶을 반복했고 1년에 200번 닥터헬리로 환자를 이송했다. 2014년 세월호 사고 현장에 갔다가 오른쪽 어깨가 부러졌고, 왼쪽 무릎은 헬기에서 뛰어내리다 꺾여서 다쳤다. 2년 전 직원 건강검진에서는 왼쪽 눈이 실명된 사실을 알았다. 망막혈관 폐쇄와 파열로 80대 당뇨병 환자가 걸리는 병이다. 오른쪽 눈도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다.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국종 교수를 비롯한 중증 외상 외과의 처우 개선 국민 청원이 쇄도하고 있다. 열흘 만에 23만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권역외상센터는 교통사고나 추락 등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중증외상 전문 치료센터다. 현재 운영 중인 9곳 가운데 전담 전문의 20명을 충족하는 권역외상센터는 한 곳도 없다. 외상센터 간호사도 올 6월 현재 829명이지만 장시간 근무가 빈번해 인력 이탈이나 교체가 심각하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4일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개선방안 마련을 지시했고 보건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 인력 운영비 추가 지원, 의료시술 과정에서 진료비가 삭감되는 수가체계 개선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이국종 교수는 자신이 잘 웃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외상의학과를 전공한 의사들의 숙명 같은 건데 굉장히 아픈 기억들이 많다. 몇달씩 사투를 벌이다 결국은 떠나보낸 경우가 많고 그런 분들이 다 기억에 남는다. 그런 분들이 100여명이 넘는다. 그러니까 세상에 빚이 있다고요 저는. 별로 웃을 일이 없어요 저는” 이라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그 시절 공직 한 컷] 지금은 안 낳아 문제인데… “아이 적당히 낳으세요” 이동진료차 출동

    [그 시절 공직 한 컷] 지금은 안 낳아 문제인데… “아이 적당히 낳으세요” 이동진료차 출동

    지금은 생경한 가족계획용 이동진료차를 기증받는 행사장 모습이다. 1965년 미국 대외원조처(USOM)가 기증했다. 군용트럭을 개조했다.6·25전쟁 이후 본격적인 베이비붐 속에 한 가정에 자녀는 5∼6명이 보통이었다. 1960년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2500만명으로 매년 약 70만명씩 늘어나고 있었다. 정부는 인구증가 억제 없이는 경제성장이 어렵다고 판단,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가족계획사업을 시작해 1996년까지 실시했다. 가족계획사업 10개년 계획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년)이 끝날 때까지 인구증가율을 2.5%, 제2차 5개년계획(1967∼1971년)이 끝날 때 2.0%로 줄이겠다는 목표였다. 정부 노력으로 1960년대 초 3.3%이던 인구증가율은 1970년대 초 2.0%, 1980년대는 1.57%로 낮아졌고, 1990년대 인구 증가율은 1% 미만이었다. 지금은 출산율이 지나치게 낮아져서 문제다.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는 5157만명으로 정부는 2020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출산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수준인 1.6명으로 올린다는 목표로 저출산 대책을 추진 중이다. 국가기록원 제공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김시습이 눌러앉고 싶다던 청평사… 맑은 기운에 근심 사라지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김시습이 눌러앉고 싶다던 청평사… 맑은 기운에 근심 사라지네

    춘천 시내에서 청평사(淸平寺)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시내를 남서쪽에서 동북쪽으로 휘돌아 나가는 46번 국도를 타고 소양6교를 건너고 배후령터널을 지난 다음 간척사거리에서 우회전해 배치를 넘는 자동찻길이 있다. 배후령에는 터널에 생겼다지만, 배치는 옛날 한계령보다 더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것 같다. 이 오봉산길의 막다른 골목이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청평리다.춘천 시내에서 멀지 않은 소양강댐 배터에서 유람선을 타는 방법도 있다. 청평사가 없었다면 소양호 유람선은 무척 심심한 뱃길이었을 것이다. 댐 건설 이전의 46번 국도는 수몰된 소양강길을 따라 양구로 이어졌었다고 한다. 46번 국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 인천역(驛)에서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을 잇는다. 수수부꾸미와 산채비빔밥, 그리고 소양호 빙어튀김이 유혹하는 사하촌(寺下村)에서 청평사까지는 2㎞ 남짓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관광객이라면 부담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산길에 접어들면 청정한 기운에 몸과 마음이 모두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옛사람들은 이 계곡을 하나의 커다란 정원으로 인식했던 듯하다. 자연의 조화에 군데군데 인공(人工)를 더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조경사(造景史)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청평사에 애착을 갖는 이유다. 평탄한 오리(五里) 산길을 기분 좋게 걷다 보면,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 아래 여러 단의 석축을 쌓아 조성한 청평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상당히 복원이 이루어져 제법 규모 있는 절집처럼 보인다. 한때는 221칸에 이르렀다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회전문(廻轉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이념이 낳은 상처 때문이었다.청평사의 초기 역사는 1130년(인종 8년)과 1320년(충숙왕 14) 각각 세워진 청평산 문수원기(文殊院記) 비석과 청평산 문수사 장경비(文殊寺 藏經碑)의 비문이 탑본으로 전해지고 있어 알 수 있다. 문수원기에 따르면 청평사는 영현선사가 973년(광종 24) 백암선원(白巖禪院)으로 창건하고, 이의가 1069년(문종 23) 보현원(普賢院)으로 중창한 데 이어 아들 이자현이 1078년(문종 32) 문수원(文殊院)으로 삼창했다. 이의의 아버지, 곧 이자현의 할아버지 이자연은 세 딸을 문종비로 만든 당대 권신(權臣)이었다. 승려가 아닌 이의와 이자현이 중창을 주도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불교국가 고려에서 세도가(勢道家)가 사찰을 세우거나 중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의의 보현원 중창을 집안의 원찰(願刹)은 물론 별서(別墅)를 확보하는 차원이었을 것으로 본다. 이자현의 문수원 삼창 역시 원찰과 별서의 위상을 높이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장경비의 존재는 이전 어느 시기 절 이름이 문수사로 바뀌었음을 알려 준다. 장경비는 원나라 왕후가 보내 준 불서(佛書)를 절에 보관한 내력을 담았다. 청평산이라는 이름은 이자현이 은거하자 도적과 호랑이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청평이란 곡절이 없어 근심이 없는 경지를 가리킨다.이후 청평사로 이름을 고친 것은 조선 명종시대 불교 부흥에 힘쓴 보우(普雨)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청평사지’(淸平寺誌)에도 ‘보우가 1557년 ‘경운산만수성청평선사’(慶雲山萬壽聖淸平禪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회전문에는 이렇게 쓴 현판이 걸려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진도 남아 있다. 하지만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오래전에 ‘청평사’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띠풀 베어 초가 짓고 높은 곳에 살고지고, 이제부터 다시는 이곳 떠나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그는 청평산 아래 세향원(細香院)을 짓고 한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시대가 더 앞서는 여말선초의 문인 원천석(1330~?)의 ‘운곡시사’(耘谷詩史)에도 ‘청평사’라는 시가 실려 있다. 운곡이 춘천 일대를 여행한 때는 1368년이다. 청평사가 이고 있는 산은 오늘날 오봉산(五峰山)이라 부른다. 기기묘묘하게 솟은 봉우리가 다섯 개로 보인다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경운산이라는 옛 이름은 지금 오봉산의 옆 봉우리가 차지하고 있다. 반면 청평산이라는 이름은 간 데가 없다. 이 산은 산림청의 ‘한국의 1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청평사의 대표 문화유산은 아무래도 회전문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름이 주는 호기심도 한몫을 한다. 회전문은 금강문이나 천왕문처럼 불법(佛法) 수호자를 봉안하는 전각이라고 한다. 윤장대(輪藏臺)의 존재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학계는 본다. 계곡 장유(1587~1638)의 시에는 ‘진락선옹(眞禪翁) 한번 떠나 돌아올 줄 모르고/ 암자 앞엔 전경대(轉經臺)만 외로이 남았구나’ 하는 대목이 있다. 청평사에 전경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락공(眞公)은 이자현의 시호다. 전경대, 곧 윤장대는 돌릴 수 있게 만든 팔각형 불구(佛具)다. 불경을 넣어 돌릴 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겼다는 상징성을 부여한다. 예천 용문사에는 회전문과 짝을 이룬 윤장대를 볼 수 있다. 용문사 회전문은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윤장대는 대장전(大藏殿) 내부에 있다.회전문 앞마당에 좌우로 놓여 있는 비석의 받침돌도 눈여겨봐야 한다. 바로 문수원기비와 장경비의 흔적이다. 문수원기비는 김부의와 혜소국사가 앞뒷면 글을 짓고 탄연이 글씨를 썼다. 김부의는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의 아우이고, 혜소는 대각국사의 제자다. 탄연은 서거정이 ‘김생 다음간다’고 했던 명필이다. 장경비는 앞뒷면 글은 이제현과 성징이 짓고 이암이 썼다. 이제현은 ‘익제난고’와 ‘역옹패설’로 널리 알려진 고려 후기 문인이다. 성징은 원나라 승려라고 한다. 이암 역시 ‘동국의 조맹부’라는 평가를 받은 명필이다. 문수원기와 장경비는 탄연과 이암의 글씨로 유일하게 남아 있다. 문수원기비는 일제강점기에도 손상되기는 했어도 상당 부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14년 대웅전에 옮긴 비석은 6·25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완전히 조각나고 말았다. 이후 1968년과 1985년 발굴조사에서 비편의 상당 부분이 수습됐다. 청음 김상헌은 청평사를 찾은 1635년 ‘동쪽에 장경비가 있고, 서쪽에 문수원기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약헌 서종화(1700~1748)는 ‘청평산기’(淸平山記)에서 ‘문수원기’를 언급하면서 ‘서쪽 뜨락에 파손되어 읽을 수 없는 비석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장경비’는 이제 받침돌만 남아 있을 뿐이다. 문수원기비는 2008년 복원되어 옛 비석 받침돌 바로 곁에 세워졌다. 장경비도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문수원기비 내용은 문헌에도 보이고 남아 있는 탑본이 적지 않음에도 읽지 못하는 글자도 있어 복원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장경비는 앞면의 경우 그런대로 자료가 남아 있지만, 뒷면은 문장을 재구성하기조차 어려운 상태로 알려진다. 그러니 소박하지만 옛 비석의 받침돌이 오히려 역사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청평사의 유산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6·25 전투 지원’ 민간인, 66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 전투 지원’ 민간인, 66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전쟁 당시 전장에서 전투 지원 임무를 수행한 민간인 노무자 유해의 신원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3일 “6·25전쟁 당시 민간인 노무자 유해의 신원이 김아귀씨로 확인됐다”며 “최초로 비군인 참전 노무자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6·25 전사자 신원 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후 126번째이며, 올해만 여덟 번째 성과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날 경북 상주에 있는 김씨의 아들 김학모(78)씨 자택에서 전사자 신원 확인 통지서와 국방부 장관 위로패, 유품 등을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가졌다. 그는 6·25전쟁 당시인 1951년 10월 노무단 제5009부대(103사단 109연대) 소속으로 강원 양구군 일대 ‘피의 능선’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에 참가해 전사했다. 김씨는 1951년 5월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구 노무단 양성소를 거쳐 노무단 제5009부대에 배치됐다.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유엔군은 긴급히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인 운반단을 포함한 ‘한국노무단’(KSC)을 창설했다. 노무단은 전선부대에 탄약, 연료, 식량 등 보급품을 운반하고 부상자 후송, 진지 공사, 도로·교량 보수 등 전투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김씨의 유해는 양구군 동면 월운리 수리봉 일대에서 2010년 10월과 2012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플라스틱 숟가락 등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평창과 함께 가볼 만한 곳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평창과 함께 가볼 만한 곳

    평창동계올림픽이 석 달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입장권 판매가 부진하단다. 특히 국내에서 표가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9월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제4차 ‘평창동계올림픽 국민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6.6%가 대회의 성공을 전망했지만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관람하겠다는 응답은 7.1%에 불과하다. 대회가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직접 현장으로 가지는 않으려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어떤 행사가 열릴 때 그 행사만으로는 흥행에 성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때 연계 프로그램을 활용할 필요가 있는데 문화관광이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회의, 컨벤션, 이벤트 및 전시를 포상관광과 결합한 마이스(MICE) 산업이 탄생한 것도 행사와 관광의 상생효과 때문일 것이다. 특히 행사의 성격과 관련 있는 장소를 관광하는 것은 행사의 흥행에 큰 도움이 되고 그것의 의미를 더해 준다. 때늦긴 했지만 지난 9월 한국관광공사는 ‘평창동계올림픽 관광지도’를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평창과 인근의 다양한 관광지들을 소개하고 각각 대여섯 개 지점을 묶어 10개의 관광 경로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관광지도에 고성 왕곡마을이 빠졌다. 왕곡마을은 평창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다. 왕곡마을보다 1시간 가까이 더 걸리는 남이섬도 소개돼 있는데, 의아한 생각이 든다. 속초에서 북쪽으로 7번 국도를 따라가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서 내려다보면 곳곳에 높이 솟은 굴뚝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토담 쌓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디자인의 굴뚝들이 평소에는 탑이나 봉수대처럼 보이겠지만 올림픽 기간에는 성화대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물론 평창과 함께 가볼 만한 곳으로 왕곡마을을 추천하는 것은 그 굴뚝들 때문만은 아니다. 남북한의 말투가 다르듯 남북한의 집들도 서로 다르다. 그것이 문화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왕곡마을에서는 북한의 강원도와 함경도 지방에 있는 집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왕곡의 집들은 모두 방이 앞뒤로 두 줄로 배열된 겹집이다. 이렇게 왕곡마을은 남북한이 본래 하나였음을 말해 준다. 14세기 말부터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가 주류를 이루어 살아온 왕곡마을은 양성마을, 곧 두 성씨의 마을이다. 양성마을에서는 문중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또한 38도선 북쪽에 있는 왕곡마을은 광복 이후 6·25전쟁의 휴전협정이 맺어진 1953년까지 이북 정권 아래에 있었다. 따라서 이념적인 갈등의 소지도 컸다. 실제로 광복 직후 두 성씨는 각각 우익과 좌익의 성향을 띠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 모든 사회적·정치적 갈등을 잘 관리하며 오늘날까지 평화롭게 하나의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가축까지도 한 집 안에서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겹집 형태의 빵빵한 집 앞으로 돌출된 부분이 바로 소가 생활한 마구다. 마구와 부엌 사이에는 칸막이가 없어 소는 사람과 똑같이 부뚜막의 온기를 나누었다. 몇몇 집에서는 마구에 한옥의 여러 지붕 형식 중 가장 위계가 높은 팔작지붕을 이을 정도로 가축의 공간은 사람이 사는 부분과 다름없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다. 왕곡마을에서 비슷비슷하게 생긴 집들 사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집집마다 특색이 있는 마구 지붕의 디자인 덕이다. 말하자면 우리 민족이 육백 년 넘게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어 살며 가축 복지를 실천한 현장이 바로 왕곡마을이다. 올림픽 헌장에 명시됐듯이 올림피즘(Olympism)이라 불리는 올림픽 경기의 철학은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과 평화로운 사회의 추구다. 평창동계올림픽은 평화라는 이념을 가슴에 안고 뛰는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고 경기의 앞뒤 빈 시간에 오랜 평화의 실천 현장인 왕곡마을을 관광하며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그려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기회다. 왕곡마을을 구경하고 평창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좀 나면 강릉 해변의 커피 거리에 들러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하자. 그때 바라본 겨울 바다는 이미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 ‘마지막 주월 공사’ 이대용 예비역 준장 별세

    ‘마지막 주월 공사’ 이대용 예비역 준장 별세

    ‘마지막 주월(駐越) 공사’로 불리는 이대용 예비역 육군 준장이 지난 14일 밤 별세했다. 92세.이 전 공사는 1975년 4월 30일 월남(남베트남)이 패망할 당시 주월대사관 경제공사로 근무했다. 철수본부장을 맡았던 이 전 공사는 서병호·안희완 영사와 함께 한 명의 교민이라도 더 구출하기 위해 끝까지 사이공(현 호찌민)에 남았다가 월맹군에 체포됐다. 이후 악명 높은 사이공의 치화 형무소에 수감돼 5년간 모진 고초를 겪었다. 독방에서 10개월 동안 햇볕 한번 못 보고 지냈는가 하면 체중은 42㎏으로 줄었다. 베트남 당국자들과 북한 공작 요원이 귀순 및 월북 등을 회유했지만 ‘죽으면 죽었지 항복할 수 없다’는 의지로 끝까지 거부했다. 정부는 이 전 공사 석방을 위해 북한 및 베트남과 협상에 나서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이 전 공사는 1980년 4월 12일 석방돼 귀국했다. 황해도 금천 출신인 이 전 공사는 8·15 광복 후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반동으로 물려 월남했다. 육사 7기로 임관한 그는 6·25전쟁에 참전해 1950년 10월 26일 6사단 7연대 1중대장으로 국군 가운데 가장 먼저 압록강에 도착했다. 수통에 압록강 물을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일화로 유명하다. 6·25전쟁 초기에는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북한군을 사흘 동안 저지한 춘천 전투에 참가했다. 베트남과는 1963년 주월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되면서 인연을 맺었다. 예편한 뒤에는 화재보험협회 이사장, 생명보험협회 회장, 한·베트남 친선협회 회장, 육사 총동창회장 등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이고, 발인은 17일 오전 8시 30분이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02)2258-5940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6·25 장진호 전투 영웅 허드너 前미군 중위 별세

    6·25 장진호 전투 영웅 허드너 前미군 중위 별세

    6·25전쟁 당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구조 작업을 벌인 ‘전쟁 영웅’ 토머스 허드너 전 미국 해군 중위가 별세했다고 AP통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93세. 미 매사추세츠주 보훈부는 허드너 전 중위가 전날 매사추세츠 콩코드에 있는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허드너 전 중위는 미 해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이자 동료인 제시 브라운 소위와의 우정을 그린 책 ‘헌신’으로 널리 알려졌다. 뉴잉글랜드의 부유한 백인 집안 출신인 허드너 전 중위는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미 해군에서 복무했다. 그는 1950년 12월 4일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서 브라운 소위가 탑승한 전투기가 적진에 추락하자 자신의 전투기를 불시착시켜 가며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구출에 실패했다. 브라운 소위는 숨을 거두기 전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허드너 전 중위는 목숨을 건 구조 노력을 인정받아 이듬해 해리 트루먼 당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코레일 축구팀이 最古

    코레일 축구팀이 最古

    코레일 축구단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팀으로 인증받았다. 15일 코레일에 따르면 코레일 축구단은 ‘시민공감 2017 대전 기네스 어워드’에서 최고(最古) 축구단으로 선정됐다. 1943년 조선철도축구단으로 창단해 한국 축구 발전의 산파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현재도 실업축구계 강자로 활약하고 있다. 코레일은 등록 문화재인 증기기관차 미카 3-129호가 ‘최초’ 부문에서, 6·25전쟁 당시 미군 장성 구출작전에 참여했다 순직한 고(故) 김재현 기관사가 ‘유일’ 부문에 선정됐다. 쌍둥이 철도 빌딩은 ‘독특’ 부문을 수상했다.대전 기네스 어워드는 대전의 특별한 매력을 담은 사건·인물·물건 등을 시민들이 직접 선정해 인증패를 수여한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허기회 서울시의원, 정읍 6.25 참전 무명용사 묘역서 합동위령제 봉행

    허기회 서울시의원, 정읍 6.25 참전 무명용사 묘역서 합동위령제 봉행

    서울시의회 허기회 의원(더불어민주당, 관악3)은 13일 전북 정읍에서 6·25 참전 무명용사 묘역에 방문해 48번째 합동위령제를 봉행했다. 이 합동위령제는 6·25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에 잔류한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해 토벌작전에 참전한 학도병 150여명이 전북 정읍 하매마을 앞산에서 격렬한 전투 끝에 화력부족으로 전원이 장렬하게 산화한 호국용사를 위무하는 행사이다. 허 의원은 선친의 뜻에 따라 6·25 전쟁당시 신원불명의 참전용사 희생을 기리는 무명용사 위령제를 가족행사로 지속하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현재까지 묘역을 정비하고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40여년 넘게 지내고 있다. 이날 위령제에는 김생기 정읍시장, 유진섭 정읍시의장, 보훈단체회원 및 군인, 지역시민과 학생, 관악구 6.25 참전용사 및 관악주민 등 약 500여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됐다. 허 의원의 선친은 당시 150여명의 시신 중 신원을 알 수 없는 46위를 마을주민과 함께 안장, 개인위령제를 지내다가 묘역정비의 필요성을 건의하여 1987년 10월 정읍군에서 묘역주변정비 및 추모비를 건립했고, 1992년 11월 본인소유 토지 193㎡를 기증했으며 자손들이 관리해 오고 있다. 한편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지역 최연소로 구의회에 진출했고, 현재 제9대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허기회 의원은 “선친의 깊은 뜻으로 호국용사를 기리는 가풍을 이어 받게 되어 자랑스럽다”며 “앞으로의 후손들에게도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잊지 말고 나라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내달 ‘6·25전쟁 납북자기념관’ 임진각서 개관

    내달 ‘6·25전쟁 납북자기념관’ 임진각서 개관

    납북의 참상을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6·25 전쟁 납북자기념관’이 다음 달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문을 연다.통일부는 지난해 10월 착공한 6·25전쟁 납북자기념관을 다음 달 초 준공한다고 12일 밝혔다. 납북자기념관은 국무총리실 ‘6·25 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국비 등 198억원을 들여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내 경기평화센터 옆 1만 1155㎡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전체면적 4521㎡ 규모로 건립했다. 기념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영상실, 추모공원 등으로 구성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기념관은 납북 진상규명과 납북자들의 명예회복을 통해 인권 회복과 국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뜻깊은 추모 공간”이라며 “납북자 가족과 실향민이 슬픔을 달래고 위로받는 공간으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기념관이 공식 개관하면 살아있는 역사 교육공간은 물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우리의 의지를 다지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문중 지킨 종갓집 며느리처럼… 종로, 그렇게 흘러왔구나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문중 지킨 종갓집 며느리처럼… 종로, 그렇게 흘러왔구나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2차 ‘서울의 문학2-근대문학거리 여행’ 편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다동과 종로구 인사동, 운니동 일대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답사단은 박태원의 ‘천변풍경’,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 염상섭의 ‘삼대’, 심훈의 ‘그날이 오면’,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박완서의 ‘나목’ 속 서울을 걸었다. 청계천변을 지나 우미관과 한국기원이 자리했던 관철동을 거닐었고, 옛 조선극장과 승동교회, 통문관, 귀천에서 인사동을 느꼈다.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의 무대 운니동 운현궁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너나없이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새겨진 빨간색 스카프로 멋을 낸 답사단원들은 문학의 향기를 따라 거리를 누볐다. 황미선, 김은선 두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지난 9월 서울숲에 이어 또 한번 콤비를 이뤘다. 김은선 지도사는 무교동에서 관철동까지, 황미선 지도사는 관철동에서 운니동까지 해설을 나눠 맡았다.우리나라 문학과 예술작품 중 서울의 영향을 받고 창작된 것이 많다. 그만큼 문화예술계의 서울 의존도는 깊고 넓다. 서울은 600년 이상 한국인들의 의사 이상향이었다. 토크빌이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라고 말했듯이 ‘서울이 곧 한국’이었다. 문화예술이 서울을 재창조했다. 작가와 작품이 서울의 결을 기름지게 하고 향기를 풍기게 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염상섭의 ‘삼대’에는 황토마루 네거리, 황토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오늘의 광화문 네거리가 바로 황토마루 네거리다. 조선 500년 내내 네거리가 아니라 삼거리였다. 일제가 1912년 태평로를 뚫기 전까지 광화문과 숭례문을 잇는 남북도로는 없었다. 인왕산 지맥인 야트막한 고개가 정동과 청계광장을 거쳐 무교동 변에 자리했다. 진작 사라진 황토마루라는 지명을 30~40년대 소설가들이 애타게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박태원의 ‘천년풍경’에는 아낙들의 빨래하는 모습과 개천을 복개한다는 뜬소문이 묘사되고 있다. ‘간간이 부는 천변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청계천을 덮어버린단 말이 있지 않어?…그거 다 괜한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로 덮는단 말이유?’ 등 거리에 떠돈 소문은 사실이 됐고, 일제가 조금씩 덮기 시작한 청계천을 결국 우리 손으로 지하에 가뒀다. 소설은 역사가 된다. 구보 박태원은 6·25전쟁 때 아내와 3남2녀를 서울에 남겨 둔 채 월북했고, 1988년 해금 때까지 잊힌 작가였다. 천재 시인 이상, 구보와의 관계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문학 동지이자 ‘짝패’ 그 이상의 관계였다. 구보의 북녘 부인 권영희는 이상의 애인 권순옥이었다. 월북 소설가 정인택은 권순옥을 흠모해 음독자살을 기도한 끝에 결혼했고, 이상은 이 결혼식의 사회자로 나서 ‘조선팔도의 허리가 휠 희곡’이라는 대사를 남겼다. 구보가 남녘에 남긴 외손자가 영화 ‘괴물’의 감독 봉준호다. 건축가이자 화가였으며, 시인이자 소설가로 27살에 요절한 이상은 이상한 작품을 남긴 이상한 남자가 아니다. 그가 없었다면 서울은 심심하고,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는 청진동에 ‘제비’, 인사동에 ‘쓰루’, 광교에 ‘69’, 종로1가에 ‘무기’란 카페를 운영했다. 부인 김향안은 또 다른 절친 화가 구본웅의 이모이며, 화가 김환기의 부인 변동림이 된다. 이 시기 이상, 박태원과 엮이지 않은 문인 예술가는 거의 없었다.골동품과 고서화의 고향을 현대와 연결하는 인사동 쌈지길은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연상시킨다.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으로 시작된 한 편의 시는 계단 없이 경사로를 사각으로 이어 붙인 특이한 건물, 형태는 사각형인데 길 따라 돌다 보면 원이고, 옥상 정원에 닿는 묘한 구조의 건물로 현대에 구현됐다.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는 1950~60년대 서울을 소설의 주요 무대로 삼은 전후 문학 작품이다. 원산 출신 실향 피란민 이호철은 종로 북촌을 지배하고 있던 서울 토박이, 해방촌에 무리 지어 사는 이북 피란민,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상경민 등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삶의 용광로’ 서울에 터 잡고 사는 세상을 그렸다. 식모살이를 하다가 몸을 파는 통영 출신 길녀는 상경민이다. 소설 속에서 종로는 서울 토박이 동네, 삼청동과 가회동은 부촌, 금호동은 해방촌, 회현동은 여관촌으로 각각 그려졌다. 박완서의 ‘나목’에서도 주인공 이경은 강점기 미스코시백화점이었다가 미군정기 미군PX가 있던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초상화부 점원으로 일한다. 이경의 퇴근길은 남대문 백화점에서 중앙우체국, 을지로입구, 화신백화점이 있던 종각을 지나 계동집까지의 행로다. 미군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박수근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자전소설이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에서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중략)…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라고 노래했다. 나라를 찾기만 한다면 보신각 종을 치다 죽겠다는 격정을 표현했다. 임화도 ‘네거리의 순이’에서 ‘자 좋다, 바로 종로 네거리가 아니냐!’라면서 식민지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종로에서 단말마를 토했다. 인사동과 관철동, 운니동을 품은 근대문학의 길 종로는 500년간 유일한 도심이었다가 지금은 여러 도심의 하나로 내려왔다. ‘마치 문중을 지키며 늙어 가는 종갓집 며느리 같다’는 어느 도시학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놀거리 (대중문화 1번지, 홍대) ■일시: 11일(토) 오전 10시 홍대입구역 5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통일 염원 담긴 베를린 광장, 3대째 가업 잇는 서점 통문관, 모더니즘 건축 노인복지센터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통일 염원 담긴 베를린 광장, 3대째 가업 잇는 서점 통문관, 모더니즘 건축 노인복지센터

    ‘서울의 문학-근대문학거리 여행’의 행선지에서 만난 서울미래문화유산은 모두 9개다. 용금옥과 부민옥, 베를린광장, 송림수제화, KDB산업은행, 수도약국, 통문관, 귀천, 노인복지센터가 그곳이다. 문학작품 속 등장 공간과 미래유산을 적절하게 섞어서 답사 동선을 짜는 일이 쉽지 않았다. 베를린광장, 통문관, 노인복지센터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다.중구 삼일대로 363 베를린광장은 독일이 통일되면서 1989년에 철거된 베를린 장벽(높이 3.5m, 폭 1.2m, 두께 0.4m)과 독일을 상징하는 곰상, 100여년 전부터 베를린시 마르찬 휴양공원에 설치돼 있던 조명등과 의자를 기증받아 2005년 설치됐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 조성했다. 장벽은 1961년 동독에 설치됐던 것이다. 서독 쪽 벽면은 사람들의 접근이 가능해 이산가족 상봉과 통일을 염원하는 글들이 낙서돼 있다. 옮겨 올 때 독일 전통의 보도 포장과 의자를 함께 배치했다. 곰상의 몸통 왼편엔 남대문이, 오른편엔 브란덴부르크문이 그려져 있고 베를린과 서울 시민의 모습이 화합하는 형태다. 종로구 인사동길 55-1 통문관은 1934년 개업해 3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관훈동 일대의 시대 모습을 보여 주는 장소이며 고서적 전문점으로 고서 연구에 공헌했다. 창업주 이겸노, 2대 이동호씨에 이어 3대 이종운씨가 대를 잇고 있다. 6·25전쟁 중에는 ‘월인천강지곡’을 찾아냈고, ‘청구영언’, ‘두시언해’, ‘월인천강지곡’ 영인본을 출간했다. 종로구 삼일대로 467에 위치한 서울노인복지센터는 1961년에 준공된 옛 통계청 건물이다. 건축가 이희태의 모더니즘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격자형 패턴의 디자인이 차양창과 함께 모던한 감각을 드러낸다. 탑골공원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자리해 실버세대들의 만남과 교류의 복지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축가 이희태는 혜화동성당(1958)·메트로호텔(1960)·복자기념성당(1967)·국립공주박물관(1971)·국립극장(1973)·국립경주박물관(1974)·부산시립박물관(1978)·성라자로마을(1981)을 설계했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팀
  • 아버지 부시 “남북관계 개선 지원”… 클린턴, 한반도 비핵화 실천 강조

    아이젠하워·존슨 “냉전 대응 협력” 레이건 여객기 피격 등 강력 비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1993년 7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국회 연단에 오른 뒤 24년 만에 이뤄지는 일이다. 방한 중 국회에서 연설한 미국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린든 존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대통령 등 모두 5명으로 이 중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두 차례 국회에서 연설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를 찾은 미국 대통령의 공통된 연설 주제는 단연 ‘북한’이었다. 첫 연설자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6·25전쟁이 끝나고 7년 뒤인 1960년 6월 한국을 찾았다. 6년 뒤인 1966년 11월에는 존슨 전 대통령이 방한해 국회에서 연설했다. 이들은 당시 냉전체제에서 한·미 양국의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또 공산주의 확산을 경계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우위에 있음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다음 연설자는 1983년 11월에 방한한 레이건 전 대통령이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당시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던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사건과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 등을 언급하며 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의 호전성을 강하게 비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1988년 2월과 1992년 1월 각각 국회를 찾아 연설했다. 당시 남북관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7·7선언으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부시 전 대통령도 이에 맞춰 “노 대통령의 평화적인 제안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993년 미국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국회 연설을 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을 강하게 비판하며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실천 등을 강조했다. 또 ‘신태평양 공동체 구상’과 같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8일 국회 연설문에 북한 문제를 상당 부분 할애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미·일 공조체계의 중요성과 중국 견제 등 대(對)아시아 정책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힐지도 주목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美대통령 25년 만의 국빈 방문] 옥수수죽·文고향 거제 가자미·독도 새우

    [美대통령 25년 만의 국빈 방문] 옥수수죽·文고향 거제 가자미·독도 새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함께한 국빈 만찬에는 옥수수죽과 구황작물 소반이 올랐다. 고구마와 호박범벅, 우엉 조림, 연근 튀김 등 6·25전쟁 때 같은 어려운 시절 한국인의 밥상을 지켜준 구황작물을 백자 그릇에 담고 상추순 무침에 국화잎을 올렸다. 청와대는 “시대가 변해 지금은 귀한 건강식이 된 구황작물처럼 한·미 동맹의 가치도 더욱 값있어졌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국빈 만찬에는 이렇듯 한·미 동맹과 우리 문화, 미국 정상에 대한 예우의 의미를 담은 음식이 올랐다. ‘동국장 맑은 국을 곁들인 거제도 가자미구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요리다. 국빈 만찬에 오른 가자미는 문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도산이다. 거제도산 가자미는 다른 나라 가자미보다 식감이 좀더 쫄깃하다. ●트럼프 좋아하는 가자미 올려 가자미에 곁들인 맑은 국은 우리나라 최초 된장으로 알려진 한안자 명인의 동국장에 여러 갑각류를 넣어 시원하고 구수하게 끓였다. ‘360년 된 씨간장으로 만든 소스의 한우 갈비구이와 독도새우 잡채를 올린 송이돌솥밥 반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호와 한국 색깔을 조화시킨 요리다. 360년 넘은 기순도 간장 명인의 씨간장으로 만든 소스에 전북 고창 한우를 재워 구웠다. 밥은 토종 쌀 4종에 송이버섯을 올려 돌솥에 지어냈다. 독도 심해에서 건져 올린 독도새우와 잡채를 복주머니에 넣어 반상을 차렸다.●토종 쌀 4종으로 송이버섯 솥밥 ‘산딸기 바닐라 소스를 곁들인 트리플 초콜릿 케이크와 감을 올린 수정과 그라니타’는 한국의 맛과 미국의 맛을 대표하는 수정과와 초콜릿이 조화를 이룬 디저트다. 케이크는 국내 중소기업 ‘한스케익’에 특별 주문해 만들었다. 건배 제의용 만찬주로는 국내 중소기업 ‘풍정사계’가 제조한 청주 ‘풍정사계(楓井四季) 춘(春)’이 올랐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 별세…향년 92세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 별세…향년 92세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이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2세.제17대 합참의장(1981.5∼1982.5)과 제23대 국방부 장관(1982.5∼1986.1)을 지낸 윤성민 예비역 육군대장은 1926년 전남 무안군에서 출생했다. 1950년 1월 육군 소위로 임관(육사 9기)해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으며, 5사단장·3군단장·제1야전군사령관 등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사단 25연대 소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전장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는 등 조국수호를 위해 헌신했다. 베트남전쟁 중이던 1968년에는 주월 한국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을지·화랑무공훈장,보국훈장 통일장,미국 은성훈장,월남국가 3등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수훈했다. 합동참모본부는 “합참의장 재직 중에는 야전군 전력보강과 수도권 방위전력을 크게 발전시키는 등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면서 “후배들에 대한 배려와 부하 사랑을 실천하면서 우리 군과 국방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전했다. 12·12 때는 육군참모차장으로 있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우정해씨와 두 딸이 있다. 합참은 영결식을 9일 오전 9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합참장으로 거행할 예정이다. 빈소 서울삼성의료원 장례식장 9호실 02-3410-3151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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