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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일 만에 공개활동 김정은, 美 대선엔 침묵

    25일 만에 공개활동 김정은, 美 대선엔 침묵

    미국 대선결과에 대한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코로나19 방역체계 강화 등을 논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이 보도된 것은 지난달 22일 중국의 6·25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평남 회창군 중국인민지원군열사능원을 참배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25일 만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 15일 주재한 회의에서는 국가비상방역체계를 더욱 보강하기 위한 문제가 심도 있게 토의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초긴장상태를 계속 견지하며 완벽한 봉쇄장벽을 구축하고 비상방역전을 보다 강도 높게 벌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기관과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비사회주의적 행위들이 통보되고 이를 뿌리뽑기 위한 문제도 논의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범죄 행위를 한 평양의대 당위원회와 감시와 통제를 하지 않은 당 중앙위 해당 부서 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평양의대 당위원회의 구체적 범죄 행위는 설명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잠행을 깨고 공식 석상에 등장했지만, 미 대선 관련 언급이나 미국을 겨냥한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8일(한국시간) 사실상 당선을 확정 지은 지 8일째다. 2016년 이틀 만에 노동신문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대미 메시지를 내놓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북측이 미 대선과 관련, 일주일 넘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어 한 달 넘게 승자가 확정되지 않았던 2000년 대선 때였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을 제기하며 불복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남다른 ‘케미’를 보인 것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에 대해서는 “미친개”(지난해 11월 조선중앙통신 논평)라고 비난하는 등 호의적인 관계가 아니다. 회의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과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후보위원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모습도 포착됐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영덕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16일 정식 개관

    영덕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16일 정식 개관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도운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인 경북 영덕 장사상륙작전을 기념하는 전승기념관이 정식 운영에 들어갔다. 영덕군은 16일 남정면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에서 준공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나섰다. 준공식에는 장사상륙작전유격동지회원을 비롯해 기관단체장, 군 관계자, 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영덕군은 애초 9월 14일 장사상륙작전 70주년 전승기념식 때 준공식을 열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연기했다.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은 길이 90m, 폭 30m로 지상 5층 연면적 4881㎡로 준공됐다. 군은 2012년부터 올해까지 324억원을 들여 남정면 장사리 해안에 장사상륙작전에 사용했다가 좌초한 LST문산호를 재현한 시설을 만들었다. 1∼2층에 자리 잡은 전시관은 작전 배경, 부대 결성, 출동, 작전 전개 순으로 전시물이 설치됐다. 3∼5층 갑판과 상부는 체험·휴게공간으로 70년 전 호국용사들의 희생으로 지킨 현재 장사리 해안 주변을 볼 수 있다.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1950년 9월 14일 북한군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편 군사작전이다. 투입된 병력은 대부분 대구와 경남 밀양에서 입대한 학도병이다. 6일간 벌인 전투에서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다쳤다. 39명은 구조선에 타지 못해 대부분 포로가 됐다.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채 장비와 보급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9월 19일 구조선인 조치원호를 타고 철수할 때까지 북한군 2군단 주 보급로를 교란하고 2개 연대와 전차 4대를 영덕으로 유인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이들의 활약상은 1997년 참전 학도병들이 참전유격동지회를 결성하고, 좌초된 문산호로 추정되는 선체가 확인되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이희진 군수는 “정식 개관에 앞서 지난 6월부터 운영을 시작해 지금까지 7만명 정도가 다녀갔다”면서 “전승기념관 방문객들에게 참전용사들 희생과 공헌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성역화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영덕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김정은 25일 만에 공개활동, 反사회주의 책동 성토, 바이든 당선엔 침묵

    김정은 25일 만에 공개활동, 反사회주의 책동 성토, 바이든 당선엔 침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만에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평양의대에서 반사회주의적 행동이 있었다고 개탄해 주목된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0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11월 15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소집됐다”며 “김정은 동지께서 회의를 사회(주재)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중국인민지원군의 6·25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평안남도 회창군 소재 중국인민지원군열사능원을 참배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보도일 기준으로 26일째 되는 이날 다시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확대회의에서는 평양의대 당 위원회의 범죄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반(反)사회주의적 행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통신은 “회의에서는 엄중한 형태의 범죄행위를 감행한 평양의학대학 당위원회와 이에 대한 당적 지도와 신소처리, 법적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지 않아 범죄를 비호·묵인·조장시킨 당 중앙위원회 해당 부서들, 사법검찰, 안전보위기관들의 무책임성과 극심한 직무태만 행위에 대하여 신랄히 비판됐다”고 전했다. 이어 “각급 당조직을 다시 한 번 각성시켜 반당적, 반인민적, 반사회주의적 행위들을 뿌리빼기 위한 전당적인 투쟁을 강도 높게 벌여야 한다”며 “법 기관에서 법적 투쟁의 도수를 높여 사회·정치·경제·도덕·생활 전반에서 사회주의적 미풍이 철저히 고수되도록 할 데 대한 문제가 강조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평양의대 당위원회의 구체적인 범죄행위 내용은 명시하지 않았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비리 내용과 관련 “범죄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 보도가 되지 않고 있어 저희도 구체적으로 드릴 말씀이 아직 없다”면서 “이와 유사한 사례로 올해 2월 당 간부 교육기관에서도 비리가 있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2월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부정부패를 한 당간부 양성기지의 당위원회를 해산하고 관련 간부들도 해임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당시 ‘당 간부 양성기지’는 김일성고급당학교로 추정됐다. 이날 회의에서도 미국 대선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사실상 당선을 확정 지은 지난 7일(현지시간) 이후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여 대변인은 이에 대해 “정부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지켜보면서 분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방역 강화 방안도 논의됐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회의에서 최근 세계적인 악성 바이러스 전파 상황의 심각성과 국가방역 실태에 대하여 상세히 분석·평가했다”며 “초긴장 상태를 계속 견지하며 완벽한 봉쇄장벽을 구축하고 비상방역전을 보다 강도 높이 벌여나갈 데 대해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과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후보위원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당 중앙위원회 해당 부서 간부들과 도당위원장, 사회안전상(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 중앙검찰소장, 국가비상방역 관계자들이 화상회의로 방청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포토] 26일만에 공개 모습 드러낸 김정은

    [포토] 26일만에 공개 모습 드러낸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만에 공개행보에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0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11월 15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소집됐다”며 “김정은 동지께서 회의를 사회(주재)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중국인민지원군의 6·25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평안남도 회창군 소재 중국인민지원군열사능원을 참배한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6일째 되는 이날 다시 공개석상에 나섰다. 확대회의에서는 평양의대 당 위원회의 범죄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반(反)사회주의적 행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과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후보위원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참석한 모습이 포착됐다. 연합뉴스
  • [글로벌 In&Out] 미 대선으로 재평가될 한국 외교/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미 대선으로 재평가될 한국 외교/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최근 한 달 동안 전 세계적으로 최대 관심거리는 미국 대선이었다. 지난 4년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전 세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는 미국이 지구상 최대 강대국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미국 대선 승자가 조 바이든이냐, 도널드 트럼프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만큼 어쩔 수 없다. 일단은 중국부터 이야기하자면 ‘트럼프 행정부 스타일’ 때문에 최근 4년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였고 큰 피해를 입었다. 트럼프의 강한 외교전 때문에 아주 예민해진 중국이 안 그래도 그동안 물컹물컹하는 온화한 이미지를 잃게 됐다. 이란 역시 이번 대선에 아주 큰 관심을 보였다. 국내 언론에서 미국 대선 결과를 실시간으로 특보했다. 이란의 지방도시도 이란 시민들이 미국 대선 덕분에 접전이 벌어진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같은 경합주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학습하게 됐다고 한다. 반면에 친미 성향이 강한 나라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겪고 있는 독일은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을 선호하는 모습을 취했다. 반면 민주주의 후퇴 문제에 큰 목소리를 내지 않은 트럼프 스타일의 행정을 좋아하는 터키는 바이든의 당선을 원하지 않았다. 영국이나 캐나다는 바이든과 트럼프 양쪽에 같은 거리를 두었다. 한국은 미국 대선에 매우 관심이 큰 나라였다. 1948년 한국 정부 수립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이었다. 미국 내에서 때로는 사회주의적인 발언을 하던 트루먼은 그 당시에 우파에서 비난받을 복지 정책을 내기도 한, 대외적으로 아주 강력한 보수파였고, 냉전체제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한반도 분단의 여러 원인 중 하나도 트루먼 대통령의 강력한 반공 정책에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애치슨 라인’ 설정 등으로 6·25전쟁이 터지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후보는 6·25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 당시 대선이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아이젠하워가 당선되면서 한국전쟁도 휴전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관심거리였던 또 다른 선거는 1968년 선거다. 그 선거 역시 2020년 선거 때처럼 미국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중의 하나였다. 인종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매일 시위가 있었고, 미국이 아주 난장판이었다. 한국은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의 당선 여부가 관심이었다. 닉슨 후보는 한때 열렬한 반공 정치인이었다. 린든 존슨 대통령 때 한미 관계가 어떻게 보면 제일 좋았던 시기인데, 이 분위기가 계속될 것인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닉슨 정부는 중국을 방문하면서 데탕트 시기를 연 탓에 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권 친미 반공 국가들에서 긴장이 강화됐다.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된 1981년 대선도 관심이 컸다. 지미 카터 정부에서 한미 동맹이 약화됐고 한국에서 신군부의 쿠데타가 있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겐 카터보다 레이건의 당선이 훨씬 좋았다. 카터 시절에 파손된 한미 관계는 개선됐다. 오늘날엔 트럼프냐 바이든이냐에 따라 각 나라의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한국은 옛날처럼 한 후보에게 올인하기보다 양 후보를 따로따로 보고 있었다. 한국은 영국과 캐나다의 거리두기와 비슷했다. 한국의 이러한 떳떳한 모습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한국이 예전의 약한 국가가 아니고, 한 국가에 의존하는 피동적인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핵심적인 것인데, 한국의 외교다. 외교라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잘 푸는 것만큼이나 미래에 발생할 문제들을 미리 파악하고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누가 당선돼도 자국에 유리한 외교적 라인을 이미 구축한 상황이다. 한국은 이런 외교력 덕분에 미국 대선에서 다른 나라들이 취했던 피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이런 외교적 역량이 지속되면 좋겠다.
  • “우리 정확히 알려면 타 종교 제대로 알아야”

    “우리 정확히 알려면 타 종교 제대로 알아야”

    통일 위한 외교에 해외 조직력 보탤 것신학·불교학·퇴계학 공부 초종교적 활동경계 초월 ‘신통일 세계’ 기반 조성 목표“한국의 통일은 세계 평화의 초석이 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가정연합 구성원이 한국을 ‘신앙 조국’으로 여기지요. 통일 한국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운동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최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정연합) 조직 개편에 따라 통합된 한국본부와 세계본부의 총괄 책임자가 된 윤영호(43) 세계본부 본부장은 지난 9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가정연합 세계본부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열린 마음으로 세계 평화를 선도하는 가정연합을 잘 지켜봐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는 “문선명 총재의 꿈은 단순한 통일 한국에 머물지 않고 평화로운 한국의 정착과 그 안정을 통한 세계 평화에 있었다”면서 “가정연합은 2022년까지 기독교와 불교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희망의 ‘신통일 세계’ 기반을 만들겠다”고 했다. 신통일세계 안착을 위해 건강한 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윤 본부장은 ‘참가정운동’을 꾸준히 벌여 나갈 것을 다짐했다. 윤 본부장은 가정연합에서 초(超)종교적 활동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선문대에서 신학·철학을 공부한 그는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에선 퇴계학으로 박사 과정을 거쳤다. 동국대 불교학과, 선문대 문화콘텐츠학·신학과 겸임교수를 지내면서 이웃 종교와도 원활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를 정확히 보려면 타 종교를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윤 본부장은 “초종교란 다른 종교에 대한 우월함의 주장이 아니라 종교의 근본이 같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전 초종교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문 총재의 유지를 이어 국내 다른 종교들과의 교류에도 더 힘쓸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지난달 가정연합의 조직 개편은 통일 한국을 위해 한학자 총재가 과감하게 단행한 조치다. 통일엔 외교가 필요한 만큼 해외의 조직력과 힘을 국내에 더욱 보태겠다는 의지에 따라 국내 5개 지부를 공동회장 체제로 재구성해 윤 본부장에게 총책을 맡겼다. 이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한 총재의 확고한 뜻도 담겼다. 오는 22일 열릴 제3회 ‘신통일세계 안착을 위한 100만 온라인 희망전진대회’는 그 디지털 플랫폼 구축 차원에서 특별한 관심을 모으는 행사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온라인으로 전 세계 100만여명이 참석하는 ‘세계평화 결의대회’라 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와 남수단, 케냐, 필리핀, 스리랑카, 호주 등 6개국 전·현직 정상을 비롯한 6·25 참전국 정상들이 연설하며 194개국에서 참전 용사, 정·재계 인사, 종교지도자들이 쌍방향 온라인 생중계로 동참한다. 당일 전진대회에서 사회를 맡는 윤 본부장은 “내년은 김일성 주석과 문 총재의 회담 30주년이 되는 해”라며 “북한 평양에서 신통일한국 안착을 위한 전진대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포토] 하늘에 새겨진 11.11.11

    [포토] 하늘에 새겨진 11.11.11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가 10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 상공에 11월 11일 11시를 그리고 있다. 11월 11일 11시라는 묵념 시간은 지난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가 6·25전쟁 참전 전사자들이 안장된 유엔묘지가 있는 부산을 향해 묵념하자고 처음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11일 이곳에서는 턴 투워드 부산,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식이 열린다. 연합뉴스
  • [포토] 미국 타임스퀘어에 나오는 6·25 참전 유엔군 추모영상

    [포토] 미국 타임스퀘어에 나오는 6·25 참전 유엔군 추모영상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와 국가보훈처가 올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오는 11일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일’을 맞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통해 6·25 전쟁 참전 유엔군 용사 추모 영상을 공개했다. 국가보훈처 제공
  • 내일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와 국가보훈처는 11일 유엔군 참전용사 추모의 날을 맞아 오전 10시 55분부터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가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턴 터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을 진행한다고 9일 밝혔다. 행사에는 참전용사와 장병, 참전국 대표 등 150여명이 참석한다. 오전 11시에 부산 전역과 서울·대전·세종정부청사에서 동시에 추모 사이렌이 울리고 1분간 묵념이 실시된다. 이어 유엔군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한 조포 19발이 발사된다. ‘11월 11일 11시’ 묵념은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가 6·25전쟁 참전 전사자들이 안장된 부산을 향해 묵념을 하자고 처음 제안한 뒤 매년 실시되고 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미국 간 강경화… 바이든 참모들과 물밑 접촉 행보

    미국 간 강경화… 바이든 참모들과 물밑 접촉 행보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과 다방면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미국을 방문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바이든 측 인사와의 접촉을 계획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미국 방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장관은 나흘간의 방미 일정 중 첫날인 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6·25전쟁 참전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기자들에게 바이든 측 인사와의 접촉과 관련, “대사관에서 많이 준비한 것 같다”면서도 “만나더라도 그쪽에서도 조심스러운 점이 있어 공개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장관은 9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방미 기간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 참모들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도 이날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불가피하게 정책 검토에 수개월이 소요된다”며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 조야와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역사적으로 미국 정부는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을 늘 경청해 왔다”며 “미국의 대북 관여 방식 또한 우리 정부의 남북 관계 기조에 일정 정도 영향을 받아 온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이 장관의 방미 계획과 관련, “어떠한 일이나 목표, 도달 가능한 성과 등이 더 분명해야 하고 만남이 의미가 있어야 하기에 조금 더 검토 중인 상황이다. 확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서울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방미 강경화 “바이든 행정부, 대북 ‘전략적 인내’로 회귀 안 할 것”

    방미 강경화 “바이든 행정부, 대북 ‘전략적 인내’로 회귀 안 할 것”

    강 “지난 3년간 성과 토대로 만들어가야”폼페이오 초청… “여러 현안 다룰 것”미국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와 같은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회귀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강 장관은 “(미국이) 지난 3년간 여러 경과나 성과를 바탕으로 (대북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나흘 일정으로 이날 미국을 방문한 강 장관은 워싱턴DC에 있는 6·25전쟁 참전 기념공원을 찾아 헌화 행사를 한 뒤 취재진을 만나 이렇게 밝혔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당선인이 정부를 이끌면 대북정책이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바이든 쪽 여러 인사가 공개적으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때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닐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정부 때 이뤄진 대북 정책 성과를 기반으로 향후 전략을 추진해가야 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진전을 보인 북미 관계의 연속성이 어느 정도 이뤄지리라는 관측으로,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강 장관은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예측하기는 아직 상황이 이른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앞으론 더 적극적으로 할 상황” 바이든 캠프 외교·안보 참모진 만날 예정 이어 강 장관은 바이든 당선인 측과의 협력 여부와 관련, “우리 정부로서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당선을) 축하해주신 상황이고, 지금까지 조심스레 했던 부분에서도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지만 사실상 당선인으로 확정된 만큼 바이든 측 인사들과의 접촉면을 늘려가겠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강 장관은 방미 기회에 바이든 측 인사 접촉 여부에 대해 “온 기회에 미국의 정국이 그런 방향이어서 대사관에서도 많이 준비한 것 같다”며 “아마 만난다 해도 그쪽에서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 공개적으로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특히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 참모들을 만나 차기 미 행정부와의 협력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9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하는 그는 “굉장히 민감한 시기에 왔지만, 폼페이오 장관과는 늘 소통해왔고 (바이든 행정부 출범일인) 내년 1월 20일까지는 저의 상대역이어서 왔다”며 “여러 현안에 대해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 초청으로 방미한 강 장관은 한미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현안에 대해 심도 있게 협의한다. 미 의회와 학계 인사들과도 접촉해 미 조야의 지속적인 협력을 당부할 방침이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뱃속 딸 얼굴 한번 못 보고 전사…故 문장춘 일병 69년 만에 귀환

    뱃속 딸 얼굴 한번 못 보고 전사…故 문장춘 일병 69년 만에 귀환

    6·25전쟁에서 산화한 국군전사자 문장춘 일병이 69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8일 “2013년 9월 25일 강원 양구 월운리 수리봉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이 문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1922년 부산에서 태어난 문 일병은 1950년 8월 아내와 뱃속에 자녀를 남겨두고 군에 입대했다. 그는 미2사단 카투사 부대로 배속돼 6·25전쟁에 참전했다. 문 일병은 수리봉 일대에서 발발한 ‘피의 능선 전투’에서 치열한 고지전을 벌이다 전사했다. 피의 능선 전투는 1951년 8~9월 미2사단과 국군 5사단이 북한군이 점령했던 양구 방산면 일대의 고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투다. 그의 유해는 62년이 지나서야 발굴됐다. 당시 팔·다리 및 갈비뼈 유해와 함께 그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M1 소총 탄두와 탄피 등이 함께 발견됐다. 이번 신원확인은 딸 문경숙(70)씨가 2011년 6월 유전자(DNA) 시료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씨는 “유복녀로 태어나 평생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살아왔었는데 아버지 유해를 찾았다고 하니 감격스럽고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유해는 오는 12일 경남 김해에서 귀환행사를 진행한 이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장군의 아들’ 김두한, 교수형 받고 미7사단 구금소 갇힌 사연은?

    ‘장군의 아들’ 김두한, 교수형 받고 미7사단 구금소 갇힌 사연은?

     1947년 4월 20일, ‘장군의 아들’로 불리는 김두한 일당이 과거 같은 종로패에 소속돼 있던 정진룡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두한은 해방 후 정진룡과 함께 좌익청년단체인 조선청년전위대를 결성했다. 이후 아버지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 총에 죽었다는 걸 알게 된 후 전향해 우익단체인 대한민주청년동맹(대한민청)을 조직했다. 이날 대한민청 회원들은 조선청년전위대의 정진룡 등 35명을 납치했다. 폭행 끝에 정진룡 등 2명이 결국 사망했고, 미군정청은 김두한을 체포하고 대한민청을 해산시켰다.  김두한이 서울 용산에 있던 미7사단 구금소 수감 사실을 확증하는 문건이 최초로 발굴됐다. 서울 용산구는 1948년 3월 15일자로 작성된 ‘미군정재판 군사위원회 명령 2번(Military Commission Order #2)’과 같은 해 3월 26일자로 작성된 ‘명령 3번’, 5월 17일자로 작성된 ‘명령 5번’ 등을 발굴했다고 3일 밝혔다. 명령 2번에 따르면 김두한 등 일당 16명이 각각 교수형(김두한), 종신형(김영태·신영균·홍만길·조희창), 30년형(박기영·양동수·임일택·김두윤·이영근·이창성·송창환·고경주·김관철), 20년형(문화태·송기현)을 언도 받았다. 문건에는 ‘한국 서울 제7사단 구금소가 구금 장소로서 지정됐다.(The 7th Infantry Division Stockade, Seoul, Korea, is designated as the place of confinement)’, 미군정청장이었던 ‘하지 장군의 명령(COMMAND OF LIEUTELANT GENERAL HODGE)’이라고 쓰여 있다.  명령 3번에는 김두한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 관계자들이 미7사단구금소에서 각각 마포형무소, 대구형무소, 광주형무소, 부산형무소로 이감될 것라고 기록돼 있다. 명령 5번에는 김두한의 형 집행에 대해 ‘미극동사령관 확인 전까지 보류될 것(the execution thereof will be withheld pending confirming action by the Commander-in-chief, Far East)’이라고 적혀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두한은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이후 미군정청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서울 용산에 있던 미7사단 구금소를 거쳐 대전형무소로 이감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했다. 이후 제 3대 민의원, 제6대 국회의원에 연달아 당선됐고 1972년 55세 나이로 사망했다.  김두한이 구금된 미7사단 구금소는 용산 미군기지 내에 위치한 군사 시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제20사단이 만든 용산위수감옥이 전신이다. 군형법을 어긴 일본군인 등을 가두기 위해 1909년 준공했다. 11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용산 미군기지에 감옥 담장을 비롯한 일부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김두한 외에도 일제강점기 의병장으로 활동한 강기동(1884-1911), 백범 김구를 암살했던 안두희(1917-1996), 철학적이고 현실비판적인 시를 썼던 시인 김수영(1921-1968) 등도 이곳을 거쳐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7사단 구금소 수감 사실을 확인하는 문건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찾아냈다. 김 실장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해당 자료를 찾았다. 김 실장은 “신문기사를 통해서만 알려졌던 김두한 수감 관련 사실을 주한미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용산구는 해방 후 미7사단의 용산기지 주둔, 김두한 수감 기록 등을 담은 용산기지 역사책 ‘6.25전쟁과 용산기지’를 다음달 발간한다.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2014)’,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2017)’에 이은 용산기지 역사 3부작의 마지막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온전한 용산공원 조성을 위해 근현대시기 저 땅에서 과연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살피는 것도 우리의 과제”라며 “용산기지 관련 새로운 사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시민들에게 하나하나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포스코·보훈처 국가유공자 지원 상호협력

    포스코·보훈처 국가유공자 지원 상호협력

    최정우(왼쪽) 포스코 회장과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최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국가유공자 지원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포스코가 1일 밝혔다. 포스코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와 함께 국가유공자에게 로봇 의수·의족 등 첨단보조기구를 지원한다. 사업은 올해부터 3년간 포스코그룹 임직원들의 급여 1% 기부로 운영되는 포스코1%나눔재단 기금으로 진행한다. 포스코 제공
  • 북한선전매체 “6·25전쟁은 북침”… 중국 ‘항미원조’에 힘싣기

    북한선전매체 “6·25전쟁은 북침”… 중국 ‘항미원조’에 힘싣기

    한미와 중국이 6·25전쟁의 침략 주체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북한선전매체가 ‘한미에 의한 북침’을 주장하며 중국에 힘을 실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30일 ‘역사의 진실을 전도하는 파렴치한 망동’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조선전쟁(6·25전쟁)이 미제와 이승만 도배들이 도발한 침략 전쟁이라는 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의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조선에서 튀어나오는 ‘남침’ 나발은 역사에 대한 무지무도한 왜곡이고 우리에 대한 공공연한 도발”이라며 “침략자·도발자들이 부정한다고 하여 결코 역사가 달라지거나 전범자들의 죄악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쟁이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이 명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해서는 “애초에 미국의 거수기로 전락돼 공정성과 정의를 줴버린(내팽개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침을 ‘남침’으로 오도하여 채택한 부당한 결의”라고 폄훼했다. 매체는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망발을 불어대도 미제와 그 주구들의 무력 침공으로부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영예롭게 수호한 조국해방전쟁을 결코 훼손할 수 없다”며 “위대한 전승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자국의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 연설에서 6·25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으로 규정하자 한미 양국은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며 반박한 바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아버지, 못 오실 줄 알았어요” 69년 만에 가족 찾은 명 일병

    6·25전쟁에서 산화한 국군전사자 명한협 일병이 69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6일 “2017년 5월 2일 강원 춘천 오항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가 명 일병으로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1925년 8월 28일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명 일병은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던 중 1951년 2월 아내와 아들을 남겨놓고 입대했다. 그는 국군 제6사단 소속으로 같은 해 5월 중공군 진격을 방어했던 가평·화천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명 일병의 유해가 발견될 당시 대퇴부와 위팔 부분의 유해만 발굴됐을 뿐 유품은 발견되지 않아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아들 명갑원(72)씨가 2010년에 제공한 유전자(DNA) 시료 대조를 통해 신원이 최종 확인됐다. 명씨는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하고 살았는데 찾게 돼 정말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아 덤덤한 마음”이라며 “빨리 아버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 이분악씨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1993년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는 유가족과 협의해 향후 귀환행사와 안장식을 치르고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봉제 주름잡던 동네… 개발과 보존 사이 ‘박제된 시간’

    봉제 주름잡던 동네… 개발과 보존 사이 ‘박제된 시간’

    북서울꿈의숲과 동남쪽으로 맞닿아 있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은 서울의 과거가 박제된 듯이 남아 있는 곳이다. 1960년대에 지어진 국민주택단지와 성북동이나 한남동에 비견되던 고급 주택단지는 옛 모습을 다소 잃었지만, 변함없이 공존하고 있다. 더딘 개발의 역설적 효과로 장위동은 수십년 전 서울의 아슴푸레한 기억을 바로 눈앞에 소환해 준다. 그렇지만 서울의 다른 동네와 마찬가지로 변두리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개발 욕구가 보존 정책과 부딪치며 오랫동안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2회 김중업의 장위동 이야기 편은 지난 24일 오전 10시 서울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에서 출발했다. 역에서 이어진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좌우로 작은 봉제 업체들이 눈에 들어온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장위동은 2000여개의 작은 봉제공장들이 밀집한 서울 패션산업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띄엄띄엄 소규모 업체들이 산재해 있어 그 시절의 명성은 잃었다. 미싱 소리가 가득했을 거리는 휴일이라 한산하다. 군데군데 ‘미싱사 구함’, ‘미싱 수리’ 등의 간판만 드문드문 보일 뿐 적막감이 감돈다.장위동에 봉제공장이 들어온 것은 1980년대라고 한다. 1970년대에 준공된 6개 동의 건어물 상가에 봉제업체와 자수업체가 들어오고부터다. 장위동은 이후 동대문 패션산업의 배후 단지로 성장했다. ‘내외’(NAEWAY)라는 상표로 와이셔츠, 점퍼 등을 만들어 판 신사복 전문업체 ‘내외패션’ 본사도 장위2동 새마을금고 앞에 있었다. 지금도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가 돌곶이역 근처에 있어 이곳이 한때 봉제 중심지였음을 알려준다. 셔츠 전문 공장들이 많았던 장위동의 봉제산업은 2002년 월드컵 때 ‘Be the Reds’라고 적힌 붉은색 티셔츠를 만들어 내면서 ‘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물밀듯이 들어온 외국 의류의 범람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서울미래유산의 후원으로 ‘봉제양명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발걸음을 재촉해 다다른 곳은 장위 전통시장. 토요일인데도 상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가게를 열어 손님을 맞고 있다. 일을 마치고 장을 보러 온 봉제공들로 붐볐을 시장은 이곳저곳에 세월의 더께가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시장은 400여m의 길이에 170여개의 가게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지금은 재개발사업으로 두 동강이 나 5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60여개 규모로 줄어들었다. 시장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아무나 가져갈 수 있는 식재료를 넣어 두었다는 냉장고가 있다. 쌀쌀한 날씨에 온기가 전해져 온다.전통시장과 접한 곳에 장위동 후생·국민주택단지가 있다. 6·25 한국전쟁의 전후(戰後) 주택난을 해결하고자 1950~1960년대 다양한 이름의 주택단지가 주요 도시에 지어졌다. 재건주택, 후생주택, 부흥주택, 국민주택 등인데 부족한 자재로 공병대를 동원해 짓다 보니 부실 공사를 피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는 청량리, 수유동, 갈현동, 불광동, 수유동, 남가좌동 등에서 지금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958년에 들어선 장위동 후생주택을 자세히 살펴보니 벽체가 축대처럼 돌을 쌓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주먹돌이 들어간 흙벽돌을 썼다고 하는데 중간에 수리한 집들도 많다. 60년의 세월을 건너왔지만, 아직 단단해 보인다. ‘돌집’이라는 이름이 달갑지 않겠지만 겨울에 따뜻해서 좋다는 주민도 있다고 한다. 1층은 온돌이고 난방이 되지 않는 2층은 일본식 다다미로 만들었다. 장위동 국민주택은 1964년에 입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총면적이 5만 9000여㎡에 이른다는 조사가 있다. 장위초등학교에서 성북동 동아에코빌아파트에 이르는 장월로의 좌우 양쪽에 걸쳐 있다. 상당수 주택이 연립주택으로 재건축하는 등 단지가 변형되었지만 원래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각기 다른 시기에 형성된 후생주택과 국민주택의 원형을 확인하고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국민주택단지는 장위뉴타운 15구역 안에 있어 개발과 보존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다. 서울시와 성북구는 2018년 이곳을 정비구역에서 주민투표를 거쳐 직권해제했다. 주민들은 소송을 내 서울시와 다투고 있다. ‘서울고법 판결에서 이겼다’는 조합 측의 알림 글이 눈에 띄었다. 재개발로 시가 10억원이 넘는 새 아파트들이 이미 들어선 구역도 있으니 해제된 구역 주민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해제 구역의 일부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13구역이 그런 곳이다. 골목길을 한참 걸어 도착한 곳이 ‘연주황골목’이다. 서울시 가꿈주택 골목길사업 1호로 24가구가 참여했다. 장위동에 감나무가 많아서 연주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은 지 수십년이 더 되어 보이는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골목길이 아늑하고 아름답다. 담장을 낮추고 벤치와 화단을 만드니 이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 정도라면 개발 유혹을 견디고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법도 하다.장위동은 조선 순조의 셋째 딸이며 조선시대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와 연관이 있다. 윤의선에게 하가(下嫁)한 덕온공주는 1844년(헌종 10년) 헌종의 계비를 간택하는 행사에 참석했다가 급체로 사망했다. 덕온공주는 장위동에 안장됐는데 묘소는 개발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부마 남녕위 윤의선은 1865년 장위동 묘소 근처에 공주를 위한 재사(齋舍)를 짓고 살았다. 이런 인연으로 2012년부터 장위동에서는 덕온공주와 윤의선의 혼례를 재현하는 ‘장위부마축제’가 열리고 있다. 윤의선은 덕온공주와의 사이에 후사가 없어 윤회선의 아들 윤용구를 양자로 삼았다. 윤용구는 고종 8년에 문과에 급제, 벼슬이 예조·이조판서에 이르렀다. 그는 경술국치 후 일제가 남작 작위를 주었지만, 거부하고 ‘장위산인’(獐位山人)이라 자칭하며 장위동 재사에서 은거했다고 한다. 재사는 돌곶이역에서 북서울꿈의숲으로 이어진 도로 오른쪽 중간쯤에 있다. 서울시 민속자료 25호다. 이 집을 김진흥이라는 사람이 사들였다가 1998년 불교교단에 기증했다. 그래서 이름은 ‘김진흥 가옥’이지만 ‘진흥선원’이라는 절로 사용되고 있다. 답사단은 장위동 속의 부촌이었던 ‘동방단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급주택들이 들어서 있던 곳으로 북서울꿈의숲과 접한 장위1동 언덕배기다. 1949년 서울로 편입될 당시 인구가 수천명에 지나지 않았던 장위동은 1950년대까지 대부분 논밭으로 이뤄져 있었다. 지금의 장위1동의 구릉지와 농토는 대부분이 윤용구의 후손들 소유였다. 6·25전쟁 이후 후손들은 옛 단위로 10만평에 이르던 넓은 땅을 팔았는데 그 땅을 사들인 것은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이었다. 주택이 부족하던 시절에 자금력이 풍부한 보험회사에게 토지를 매입해 주택단지를 건설하도록 유도한 것은 정부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이름이 동방주택단지로 붙여진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지금도 동방고개, 동방어린이공원과 같이 동방 자가 붙은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동방주택단지는 정릉동에도 있었는데 장위동 단지가 4.6배나 더 컸다고 한다. 1968년 발행된 ‘동방생명 10년사’에 따르면 장위동 동방주택단지의 면적은 10만평보다 훨씬 큰 16만여평이었다. 그런데 이곳 주택들은 면적이 겨우 10평 안팎인 국민주택단지와는 대조를 이룬다. 대지가 100평이 넘는, 당시로서는 최고급 주택이었다. 서민주택 보급이라는 정부의 의도는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동방생명은 토지와 주택 분양으로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동방단지는 군 장성들과 유명 연예인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다. 황영시, 노재현 같은 이름을 알 만한 장군들도 이곳에 살았는데 동방단지에 사는 ‘별’이 모두 32개였다는 말이 있다. 연예인으로는 문희와 이상해가 한때 거주했다고 한다. 대부분이 빌라 같은 공동주택으로 바뀌었지만 커다란 단독주택들이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 준다. 그중에 장위동 230의 49의 집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980년대 한국의 중산층 주택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1970년에 건축되었다가 1986년 건축가 김중업과 김수근이 리모델링한 집이다. 성북구가 이 집을 사들여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으로 명명했다. 1층에는 장위마을 홍보실 등이 있고 위층에는 김중업 전시실 등이 있다. 답사단이 차례로 집 내부를 구경했다. 리모델링한 지도 30여년이 지났지만 실내외의 호화로움은 여전하다. 동방단지에서 길을 내려오면 도로를 건너 북서울꿈의숲에 이른다. 답사단은 창녕위궁재사에 모여 이번 답사를 마무리한다. 국가등록문화재 제40호인 이곳은 조선 순조의 둘째 딸이자 덕온공주의 언니인 복온공주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의 재사다. 한일병합 후 김병주의 손자 김석진이 울분을 참지 못하여 자결한 곳이기도 하다. 숲속에 합장됐던 복온공주와 부마의 묘소는 경기 용인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조선 말기 두 공주와 부마들, 그 후손들의 굴곡진 삶이 장위동 역사의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장위동에서는 개발을 둘러싼 갈등과 알력이 10여년째 이어지고 있다. 장위동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울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는 둘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답사의 수확이었다. 편리함만 추구하다 과거를 의식 없이 지우다 보면 역사와 기억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손성진 서울신문 논설고문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해설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 ■다음 일정 제23회 노량진 산책 ●출발 일시 10월 31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강경화 “북의 남침, 부인할 수 없는 사실…중국에 분명히 전달”

    강경화 “북의 남침, 부인할 수 없는 사실…중국에 분명히 전달”

    “시진핑 올해 방한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25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북한의 남침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중국의 역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 지적에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강 장관은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고 과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도 명시됐다.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 주석 방한에 대해서는 “코로나19가 안정되는대로 조속한 시일에 추진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올해 안에 꼭 가능하다고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서는 “의장국으로서 올해 안으로 개최되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중국, 일본과 소통하고 있지만 아직 좀 날짜가 잡혀가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워낙 입장차가 크지만 (일본의) 새 내각 출범으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한다는 의지는 좀 더 강화된 것 같다. 예단할 수 없겠지만 결국 대화를 통해서 서로 수용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나가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한국서 돈·명예 얻고 역사왜곡”…中아이돌 ‘활동 제재’ 청원[이슈픽]

    “한국서 돈·명예 얻고 역사왜곡”…中아이돌 ‘활동 제재’ 청원[이슈픽]

    빅토리아·레이·주결경 등 중국 출신 아이돌중국 소셜미디어에 ‘항미원조’ 기념 논란네티즌 비난 쏟아져…국민청원까지 등장“한국서 데뷔해 인지도 쌓고 선동물 올려” 중국 출신 아이돌 가수들이 중국의 6·25전쟁 참전을 의미하는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를 기념하는 글을 잇따라 올려 논란인 가운데 이들의 한국 활동 제재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중국의 한국전쟁 역사 왜곡에 동조하는 중국인 연예인들의 한국 활동 제재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현재 중국은 ‘항미원조 70주년’이라며 다양한 선전물을 만들고, 영화를 제작하고, 황금시간대에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다”면서 “여기서 중국은 본인들이 한국을 공격했던 이유가 ‘미국 제국주의에서 구하기 위해’라고 뻔뻔하게 우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의 6·25 한국전쟁 역사 왜곡에 한국에서 데뷔해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쌓은 중국인 연예인들의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에 관련 선동물을 업로드하며 같은 중국인들, 한국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선동에 힘을 싣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원인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돈과 명예를 얻은 그들이 파렴치한 중국의 역사 왜곡에 동조한 뒤 뻔뻔하게 한국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퇴출이 힘들다면 한국 활동에 강력한 제재를 걸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6일 오전 현재 이 글은 “사전동의 100명 이상이 되어 관리자가 검토 중인 청원”이라고 안내된다.엑소의 레이, 에프엑스 출신 빅토리아, 프리스틴 출신 주결경, 우주소녀 성소·미기·선의 등은 지난 23일 중국 웨이보에 항미원조 작전 70주년을 기념한다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게시했다. 이들은 모두 K팝 그룹에서 중국인 멤버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를 기억하고, 영웅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등의 글을 적거나 중국 관영 CCTV의 관련 웨이보 게시물을 함께 올리기도 했다. K팝 그룹으로 데뷔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은 이들이 이런 게시물을 올렸다는 것에 국내 제티즌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시각에서 6·25를 항미원조 전쟁으로 부른다. 특히 최근 미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항미원조 70주년 기념일인 25일을 앞두고 애국주의 고취에 열을 올렸다. 중국 출신 아이돌 가수들은 이전에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 개정 반대 시위 등 중국 관련 민감한 사안에서 공개적으로 중국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와 논란이 됐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BTS 비난’ 이어 시진핑 “미제 침략전쟁”…정부 “남침 역사 불변”

    ‘BTS 비난’ 이어 시진핑 “미제 침략전쟁”…정부 “남침 역사 불변”

    中 시진핑, 6·25를 ‘美 제국주의 침략“ 규정한국, 미국과 거리두도록 압박하는 듯 외교부 ”남침, 논쟁 끝난 문제로 역사적 사실“정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25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으로 규정한 데 대해 “북한의 남침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바뀔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지난 24일 외교부는 최근 시 주석의 6·25전쟁 관련 발언에 대해 “한국전쟁 발발 등 관련 사안은 이미 국제적으로 논쟁이 끝난 문제로 이러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바뀔 수는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정부는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관심 사안에 대해서 중국 측과 필요한 소통과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시 주석은 지난 23일 항미원조 참전 7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6·25를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으로 규정했다. 중국은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점에서 6·25를 ‘항미원조 전쟁’으로 부른다.시 주석은 “미국 정부는 국제 전략과 냉전 사고에서 출발해 한국 내전에 무력간섭을 하기로 결정했다”며 전쟁의 책임이 미국에 있음을 강조했다. 중국 정부의 이런 시각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지만, 중국 최고지도자가 6·25전쟁 참전 기념행사에서 직접 연설한 것은 2000년 장쩌민 국가주석 이후 20년 만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런 발언은 중국이 한국에게 미국과 거리를 두도록 압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도 ‘중국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전날 시 주석의 발언을 비판하는 입장을 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BTS)이 수상 소감 도중 6·25전쟁을 ‘양국(한미)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고 언급한 데 대해 중국 관영언론과 네티즌이 비난 여론을 고조시키는 등 이와 관련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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