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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전 마흔돌에 「전쟁」은 아직도(사설)

    전반적인 군축과 긴장완화의 세계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반도에는 남북한을 합쳐 각기 자체 방위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병력과 무기가 존재한다.6·25전쟁 당시의 8배가 넘는 파괴력을 가진 전력이 휴전선 비무장지대(DMZ)를 완충대로 하여 남북으로 산개해 있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1주일 이내에 2백40만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한달이상 계속되면 5백만이 희생된다.모든 시설의 80%가 파괴된다.이상은 전혀 하구의 숫자도,가상의 수치도 아니다.남북한 전력대비는 세계적으로 그 권위가 인정되는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의해서도 분석 입증되고 있다.그것을 토대로 우리 국방당국이 시도한 「워게임」결과가 바로 이런 가공할 수치를 보여준 것이다.오늘날 한반도의 냉엄하고 불가해한 냉전적 안보현실이 바로 이와같다.이 현실위에서 오늘 우리는 6·25동족전쟁 휴전 40주년을 맞고있다. 형식논리로는 한반도에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할수있다.19 50년 6월25일 새벽에 전쟁은 일어났고 53년 7월27일 자정에 휴전은실행됐다.그리고 40주년이 된 현재에도 「휴전상태」는 발생되고 있는것이다.그 3년여 열전기간동안 한반도 전체인구 가운데 여섯명중 한명꼴로 희생됐고 막대한 재산과 수려한 자연이 파괴되었다. 만 40년전 교전중의 남북한은 전문 4조63조항의 휴전협정에 조인(남한은 유엔측)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총성은 멎었다.그러나 휴전협정은 무력에 의한 집단적 투쟁을 정지 또는 종료시키기 위한 교전국 쌍방간의 합의로써 전쟁이전의 상태로의 환원을 의미할 뿐이었다.민족분단,체제와 이념대립의 비극은 계속되고있고 그때와 마찬가지로,아니 그 이상으로 북한의 도발적자세는 지속되고있다. 북한은 92년말 현재 모두 42만3천5백여건의 휴전협정을 위반했다.그리고 오늘까지 시종해서 휴전협정 체결일을 「조국해방 승리의 날」(전승일)로 불러왔다.특히 올해는 10년단위로 꺾어지는 해라는 40주년을 맞아 새삼스레 이를 「민족적 명절」로 격상시키고 상징탑건설등 대규모 집단행사를 벌이며 주민들에게 전쟁심을 고취시키고있다.아직도 핵장난을 계속한다. 그러니 이제 이 불완전한 휴전협정체제는 평화협정이나 불가침협정등 항구적인 평화공존체제로 전환돼야 한다.핵고집이나 전쟁놀음 그만하고 남북 군축회담 핵통제공동위원회에 북한은 나와야 하는 것이다. 전쟁은 일체의 인류죄악의 총괄이라고 했다.『전쟁은 동물에게나 적합한데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전쟁을 하지는 않는다』고 토머스 모어경은 말했다.휴전 마흔돌되는 아침에 북한당국자들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싶다.
  • “왜곡된 기독교원로 공과 재평가돼야”

    ◎「…한국기독교사」 펴낸 이선교목사 주장/“친일·어용행각 청산못해 기독교 부패”/「순교자」 「배신자」 이분법 분류는 위험 순교의 영광만 강조돼왔고 상대적으로 어용의 부끄러움은 축소되어온 1백년 한국기독교역사는 이제 새로 씌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진실된 기독교역사의 바탕위에서 왜곡된 기독교원로들의 공과가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대한성결교 이선교목사(51·서울 백운교회)가 최근 펴낸 저서 「다시 써야 할 한국기독교사」에서 제기됐다.이목사의 친일·반민족적 기독교인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최근 일부 친일독립유공자에 대한 공적 재심논란과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목사는 일제시대의 혹독한 고문과 공산치하의 학정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운 훌륭한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순교하였으나 신사참배를 하며 황국신민이 된 것을 감사해 하던 친일파 목사들은 대부분 살아남아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회개는커녕 교권싸움만 일삼아 교계의 분열을 가져오고 6·25등 민족을 숱한 고난의 길로 빠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기독교가 부패하고 사회가 타락한 원인은 친일·어용 자체보다도 그후 어용들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어용과 이기주의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으며 기독교를 부패케 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일본의 한국침략과 기독교박해,해방이후 분단상황에서의 기독교대립과 6·25전쟁,5·16이후 군부독재의 출현등 우리 현대사에 있어 기독교인들의 역할을 분석했다.그리고 그 시대마다의 주요기독교인들을 「순교자」·「배신자」라는 다소 위험한 이분법적 구분으로 분류했다. 일제때 인물들은 주로 신사참배강요등 기독교박해에 어떻게 대응했느냐를 기준으로 나누었는데 순교자로 분류된 사람은 박봉진·이기풍·신석구·주기철·최봉석·허성도·박관준·한상동목사,정태희·조만식장로,유관순,안이숙등이다. ○한경식 양주삼 백낙준씨/신사참배 등 배신자 분류 반면에 배신자로 분류된 이는 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징병제와 태평양전쟁을 찬양한 사람들로 백낙준·전필순·정춘수·정인과·김인영·한원석·양주삼·윤일선·심명섭·최태용목사,윤치영장로등이 속해 있다.이밖에 이승만장로의 부패와 허세,한경직목사의 신사참배 사실도 지적했다. 그러나 백락준목사의 경우는 해방후 문교부장관과 연세대총장까지 지낸 인물로 이같은 구분은 지나치게 흑백논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목사는 『오늘날 기독교가 부패한 것은 어용들이 기독교의 사회참여가 비성서적이라며 침묵·망각·무관심을 강요했기 때문』이라며 『회개와 반성없이 우리의 참존재가 인식될 수 없으며 헌신과 용기,정직함 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중국 교과서 6·25 왜곡/9월부터 시정/황 주중대사 밝혀

    【북경=최두삼특파원】 중국정부는 현재 사용중인 초·중·고 역사교과서 내용가운데 6·25전쟁 등 한·중관계사 기술에 일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올 9월 신학기 역사교과서부터 이들 문제된 내용을 바로잡을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가 최근 외교경로를 통해 중국측에 강력한 항의를 제기한 바있는 6·25전쟁등에 관한 역사교과서 왜곡기술이 상당부분 사실에 근접된 방향으로 개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관련,황병태 주중한국대사는 20일 하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중국의 초·중·고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해 중국정부와 접촉한 결과 교과서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모두 바로잡을 것이며 작년 8월 한·중 수교이후 양국간 선린 우호관계가 증진되고 있는 마당에 상호 적대적인 표현은 지양하자는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 “6·25실종 삼촌 연금 딴사람이 받아”(조약돌)

    ◎군번도용 20여년간 수혜… 시정호소 ○…6·25전쟁중이던 51년8월에 명예제대후 실종된 삼촌 이상환씨(당시 20세)의 생사를 확인하기위해 삼촌 전우들을 애타게 찾았던 이태희씨(37·서울 관악구 신림동·서울신문 92년 8월7일자 보도)는 18일 『40여년전 실종된 삼촌의 사망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이 삼촌군번으로 국가유공자 연금혜택을 받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시정을 호소. 이씨는 삼촌군번(5101528)으로 중사출신의 이상환씨(62·목포시 죽동 222)가 연금을 받고있으며 별도로 확인해 본 결과 이씨는 원래 이름이 상웅이었으나 69년 상환으로 개명해 이모씨등의 인우보증인을 내세워 보훈대상자로 등록,현재까지 수혜대상자로 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는 것. 그러나 이씨등 가족들은 『엉뚱한 사람이 국가보훈처에 등록되어 연금을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한 사실규명을 여러차례 보훈처등에 요구했으나 당시 자료미비등을 이유로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며 『49년 당시는 자원입대시절로 한부대(19연대)내에서 전시도 아닌데 어떻게동일군번이 나오느냐』고 주장. 이씨는 『사망사실을 확인하지못해 삼촌이 호적상 생존자로 되어 있어 제사도 드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사실규명이 되어 삼촌의 이름석자 국립묘지에 올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소연.
  • 김정일,2개월여 공석 안나타나/평양에 위암 입원설·교통사고설 무성

    【도쿄 연합】 북한의 김정일비서는 지난 4월말 예술 관계자들과의 좌담회에 출석한 후 2개월 반이나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춰 평양의 서방측 외교소식통들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버지 김일성과의 불화설·교통 사고설 등 여러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일본의 교도(공동)통신이 16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교도 통신은 이에 따라 평양에서는 오는 27일 대대적으로 개최할 이른바 「대미전쟁(6·25전쟁)승리 40주년 기념식」에 김이 출석할 것인지 여부가 최대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고 밝히고 김이 여기에도 나타나지 않을 경우 김일성의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커다란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외교 소식통들은 『김의 장기적인 소재 불명이 평양 시민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유에 관해 여러가지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면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음주광에다 흡연광인 김이 위암에 걸려 입원해 있다는 설 ▲김이 독단적으로 핵 확산 금지조약 (NPT)의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김일성의 노여움을 샀다는 부자 불화설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런 전쟁(외언내언)

    「6·25」에 대한 역사적 정의라든가 전쟁사적 규정은 우리에게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다.그래서 동란이니 사변이니 하기도 하고 한국전쟁·조선전쟁 또는 그냥 「6·25전쟁」이라고도 쓴다. 「6·25」는 이를 체험한 세대에겐 민족적 비극이며 악몽이다.휴전선철책과 판문점,국립묘지와 녹슨 훈장,빛바랜 사진 한장이 그 비극의 실체다. 19 49년 4월13일 당시 38선을 시찰한 미 전권대사 필립 C 제섭은 『실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에 서니 전율을 금할 수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50년 6월초에 주한미대사 존 무초는 『북한군이 38선에 집결되고 있다.남한군은 형편없이 약하다』는 내용의 전문을 본국정부에 보냈다.그는 그 직전 워싱턴에서 『한국군이 전차와 장비로 증강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서울로 귀임한 터였다.국무차관 딘 러스크는 무초의 전문을 읽고는 같은 소리거니 판단하고 서랍속에 처박았다. 50년 6월19일의 정보보고에 따르면 38선 부근으로 소제 전차와 중포가 대량으로 이동완료됐으나 병사들의 동태는 「쥐죽은 듯이」고요했다는 게 당시 미국방장관 존슨의 훗날 증언이다.바로 엿새후 일요일 새벽에 북한 인민군은 38선 전역에 걸쳐 총공격을 감행했다. 남침공격에 앞서 김일성이 공격계획을 마무리할 무렵 소련의 스탈린은 계획승인과 동시에 인민군의 사단·연대에 배치됐던 소련측 군사고문단을 모두 본국으로 소환했다.그 당시 소련공산당 초급간부였던 흐루시초프가 의아해서 까닭을 물었다.『고문단을 그대로 거기에 두는 것은 너무 위험해.잘못하면 포로로 잡힌단 말야.우리가 끼어들었다는 증거를 보여선 안되지.그건(전쟁)모두 김일성의 일이지 우리일은 아니니까』흐루시초프회고록에 나오는 스탈린의 대답이다.또다시 「6·25」를 맞는다.아니 벌써 43년전의 일이다.
  • 부전전투 영웅 이병형씨(예비역 육군중장 전쟁기념사업회장)는 말한다

    ◎“6·25 끝난줄 아는 착각 안타깝다”/안이한 안보관으론 나라지탱 못해/우방지도층 자제의 한국전 희생 본받아야 전선에서 산화한 전우와 두고온 산하를 못잊는 노병 이병형씨(67·예비역 육군중장·전쟁기념사업회장)에게는 아직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사에 길이 남을 전과를 세운 전쟁영웅이기도 한 이씨는 『지금 모든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76년 2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한 이씨는 30년 가까이 군에 있으면서 참군인의 면모를 과시,칭송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다.그의 군인 됨됨이를 높이 산 노태우전대통령도 88년 취임초 그에게 전쟁기념사업회 일을 맡겼으며 장태완전수경사령관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군인의 한 사람으로 그를 꼽았을 정도. ­다른 사람들 하고는 달리 6·25를 맞는 소감이 각별하다고 봅니다만.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합니다.6·25 발발소식을 듣고는 마치 댐밑에 서 있다 댐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에는 뚜렷한 승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승패없는 전쟁에서는 전쟁을 치른 대가를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6·25전쟁의 승패가 나지 않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전혀 결정이 안났다고 봅니다.이질적인 집단간의 투쟁에서 아직 가부간의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김일성이 엄연히 존재하지 않습니까. ­6·25는 어디서 맞았으며 그때 얘기를 좀 들려주시죠. ▲당시 수도사단 18연대 인사참모로 대위였습니다.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원산탈환후 북진할 때는 18연대 1대대장으로 참가 했습니다.전쟁얘기를 다 할수는 없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몇 개 있지요.50년 12월초로 기억되는데 두만강을 90리 정도 앞둔 함북 부령까지 북진해 갔을때 갑자기 연대에서 대대장회의를 소집하더니 철수한다고 하더라고요.중공군 때문이었지만 그날 새벽 이미 2대대 6중대는 선발대로 두만강 쪽으로 출동한 상황이었지요 6중대에는 통신이 안닿아 할 수 없이 남아있는 병력만 철수했습니다.6중대를 먼저 보낸 것은 적의 급속한 진격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작전이었지요.당시 6중대장인 이원개소령은 그 사실을 몰랐고…. 고향이 부령인 이소령은 얼마전에 소령으로 진급했음에도 부령전투에 참가하겠다고 고집,중대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나중에 들은 소문에 따르면 6중대 1백60명은 고립돼 유격전을 펼쳤다고 합니다만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고귀한 희생들로 인해 이 나라를 이만큼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함남 북청출신으로 실향민인 이씨는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작전시 동부전선에서 안강→청송→평창을 거쳐 서림(양양군)지역의 38도선을 돌파한 후 북진의 선봉대열에 서서 간성→양구→화천→신고산을 경유,원산까지 진격한다.원산탈환후 18연대 1대대장이 된 이씨는 대대를 이끌고 함흥을 공격,점령하고 50년10월 하순에는 함흥 북방 신흥지역의 백암산에서 부전호를 따라 남하하는 중공군 5명을 최초로 생포한다.곧이어 1개 중대의 중공군을 기습,매복으로 전멸시켰다. ­최근 탈냉전분위기등 주변상황변화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많이 해이해진 것 같습니다.국민들이 안보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6·25는 종전된 것이 아닙니다.휴전상태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모두들 전쟁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남북이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협상등이 있고 보니 그렇게들 보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안보관을 개혁하지 못하고서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특히 권력층·지도층·부유층에 문제가 있습니다.나서야 할 사람들은 항상 뒤로 빠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방패로 썼기 때문에 망국의 설움과 6·25를 겪었던 것입니다.군대가는 문제만 해도 지금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권력층·지식층·부유층자제들이 나라를 지키는 데 소극적입니다.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외국의 지도급 자제들이 6·25에 참전,많이 전사했다는 점을 거울삼아야 합니다.우리의 안보의식을 혁신해야 할 것 입니다. ­6·25때 생명을 내던져 쌓은 군의 신뢰가 최근 많이 실추된 듯 합니다. 군원로로서의 견해는. ▲군은 특별한 조직이 아닙니다.군도 국민의 일부입니다.국민이 합쳐서 군을 이루는 것입니다.국민들 이익에 반대되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겁니다.군과 민이 별도라는 개념은 바람직하지 않아요.최근 군내에 「하나회」등 사조직이 문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군내에선 사조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물론 일부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국민들도 전체 군과 관련지어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는 요즘 전쟁기념관건립에 몰두해 있다.6·25를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을 똑바로 알려주고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헌신함으로써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노병의 한을 달래고 있다.
  • 갖가지 「영웅」 양산… 체제선전 도구화(오늘의 북한)

    ◎「6·25」 앞두고 「전쟁…」「노력…」「통일…」 등 부각/위기때마다 새인물 대거발탁… 여론조작/최근 이인모포함 10여명에 무더기 칭호/필요따라 「인민 배우」「공훈 보일러공」 등도 남발 북한이 최근들어 「6·25」와 그들이 전승기념일로 정하고있는 휴전조인일(7월17일)을 앞두고 「영웅」들을 양산,선전에 대대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북한정권이 전세계를 상대로 핵문제를 가지고 위태로운 곡예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적으로는 새로운 「영웅」들을 내세워 체제선전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우리측이 인도적 차원에서 조건없이 보낸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노인에게 영웅칭호를 부여한 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인모 따라배우기운동」을 벌이는등 체제선전에 악용하고 있는게 대표적 사례다. 물론 북한에서 이런식의 선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지난 50년대초 6·25전쟁 중에는 무력 적화통일을 위해 「전쟁영웅」들을,60년대에는 이른바 천리마운동등 경제건설에 앞장선 「노력영웅」들을, 우상화 작업을 통해 김일성 1인 지배체제가 확고히구축된 70년대 이후에는 「항일빨치산 영웅」들을 많이 양산해 선전에 활용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이들 각종 「영웅」들을 한꺼번에 등장시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이는 최근 북한이 당면한 대내외적 어려움 속에서 김정일 후계구도를 원활히 구축하기 위한 방편일 것으로 보인다.즉 김일성과 북한체제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던 「빨치산 영웅」 및 「전쟁영웅」들을 내세워 부자세습을 합리화하고 현재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궁핍을 극복해 김정일후계체제를 확고히 다지기 위한 것으로 볼 수있다. 최근들어 북한이 새로 발굴,현재 각종 선전매체들을 통해 주민들에게 집중 선전하고 있는 영웅들은 김혁·차광수·리수복·오중흡·정춘실·이인모등 1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 10여명을 성향별로 보면 김혁·차광수·오중흡등 「항일빨치산 영웅」이 3명,리수복·박은진·리경조·박장섭등 「6·25전쟁영웅」이 4명,이인모등 「통일영웅」이 3명이다. 이들 이외에 지난 91년에 「노력영웅」으로 집중 부각시켰던 정춘실을 재부각시키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정은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 소장으로 북한당국이 최근 새삼스럽게 그녀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극심한 식량·생필품 부족 등 경제난 타개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것도 모자라 북한은 최근 실존 인물이 아닌 가공의 인물에게까지 영웅칭호를 부여해 실소를 자아내게하고 있다.북한의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당의 참된 딸」의 주인공인 강연옥이 문제의 얼굴없는「영웅」이다.강은 극중에서 6·25때 낙동강 전투에서 부상당한 중환자를 목숨바쳐 후송하는 임무를 맡은 가상의 인민군 간호장교인데 『혁명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 투쟁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혁명가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고 영웅 「발탁」배경을 강변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은 체제유지 발전에 꼭 필요한 인사에게 영웅 칭호를 부여하고 사회 각부문에서 특별한 공로나 업적을 세운 「일꾼」에게는 영웅 다음가는 영예칭호인 「인민」 및 「공훈」칭호를 수여한다. 물론 영웅칭호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는 「공화국 영웅」칭호는 지난 50년 제정된 이래 김일성·김정일·오진우·임춘추등 극소수에게만 부여됐다.이에 반해 그밖의 영웅칭호나 「인민체육인」「인민배우」「공훈기자」「공훈보일러공」등 「인민」「공훈」칭호는 필요에 따라 대량으로 남발하고 있다.
  • 문민시대의 현충일(사설)

    현충일을 맞는다.호국의 영령들이 잠든 국립묘지에 진혼의 나팔소리가 구슬프게 울려퍼지고 상오10시 전국적으로 사이렌이 울리면 국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옷깃을 여미며 경건하게 호국의 영령앞에 묵념을 올린다. 동작동 국립묘지에서는 삼부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추념식이 거행되고 호국의 영령들을 추모하는 유족과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마다 6월이면 맞이하는 현충일이지만 올해는 그 어느때보다 감회가 새롭고 각별하다.그것은 우리 국민들이 실로 32년만에 가져본 문민정부시대에 처음 맞는 현충일이기 때문이다.새정부는 출범한지 이제 겨우 1백일을 넘겼지만 수십년동안 고질화되었던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부패와 부조리를 척결하면서 개혁과 변화를 강력하게 추구하고 있다.이러한 개혁과 변화의 의지는 도덕불감증에 빠져있던 우리 사회에 청신한 바람을 일으켜 사회 구석구석을 놀라운 속도로 변모시키고 있다.새 문민정부는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법통 계승을 다지는 각종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그 시책의 일환으로 상해임정 요인중 5분의 유해가 봉환돼 오는 광복절 이전에 국립묘지에 안장된다.순국선열의 얼을 기리고 그 뜻을 계승하는 일이야말로 현충일의 참목적의 하나일 것이다.민주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요 후손들에게 민족사의 참된 지표를 제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순국선열들은 일제치하에서 국권을 회복하고 광복을 되찾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쳤고 6·25전쟁에서는 공산주의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귀한 피를 흘렸다. 조국이 자기를 필요로 할때 목숨을 바쳐 순국하는 것보다 더 고귀한 희생이 어디 있겠는가.호국영령들의 이러한 고귀한 희생정신을 초석으로 하여 조국은 발전하고 민족은 번영하는 것이다.역사는 영광과 고란을 굽이쳐 돌며 연면히 이어지는 법,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어제의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대통령과 정부가 호국영령의 정신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에 대한 보답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여기서도 국가기강과 근본이 바로서기 시작했음을 느낄수 있어 흐뭇하기까지한 금년의 현충일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의 영령앞에 진정으로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그들이 목숨까지 바치며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의 번영을 위해 온국민이 합심하여 매진하는 일이요,선진국의 대열에 조국을 밀어올려 놓는 일이다.또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앞당겨 실현하는 일이다.우리는 지금 그 과제들을 풀어나갈 중요한 길목에 서있다.
  • 구한말 「내부병원」이 모태/「서울대병원사」 발간

    우리나라 최초 국립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울대병원사」가 발간됐다. 4.6배판 호화양장에 화보 1백96쪽을 포함해 모두 8백78쪽의 분량으로 된 병원사는 1899년의 내부병원을 서울대병원의 모태로 내세워 1990년까지를 기술하고 있다.제1부에서는 광혜원과 제중원을 중심으로 구한말 서양의학의 도입부문을 언급하고 있으며,내부병원 출범을 국내의학 태동기로 규정했다(제2부).또 일제시대를 의학의 「수난기」(제3부),해방이후를 「독립기」(제4부),6·25전쟁을 「혼란기」(제5부)로 기술하고 있다.그리고 서울대병원이 특수법인으로 출발한 1978년부터 현재까지를 「발전기」(제6부)로 언급했다. 한편 서울대병원이 이번 병원사에서 내부병원을 국립의료기관의 효시로 명시함으로써 지난 10년동안 연세의료원측과 벌여왔던 「광혜원 뿌리찾기 논쟁」은 일단락됐다.
  • 「늘푸른…」/「먼동」/장편 역사소설 서점가서 “불티”

    ◎일제시대 배경… 항일정신 담은 교양물/분단작가 대표작가 김원일·홍성원씨 나란히 출간 김원일·홍성원 두 중견작가가 필력을 기울인 장편역사소설 「늘푸른 소나무」와 「먼동」이 최근 나란히 단행본으로 완간됐다. 이들 두 작품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김원일의 「늘 푸른 소나무」는 9권,홍성원의 「먼동」은 6권짜리 분량의 대작이다.두 작품 모두 신문연재소설의 개작판이며,같은 출판사(문학과 지성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완간됐다.제목이 주는 상징성 또한 두 작품 공히 순우리말 조어를 통한 강한 시사성을 풍긴다.홍씨는 1937년생 경남 합천출신이며 김씨 역시 1942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5년 터울의 동년배이기도 하다. 특히 「겨울골짜기」「노을」「불의 제전」「마당깊은 집」(김원일),「남과 북」「기관차와 송아지」「디데이의 병촌」「흔들리는 땅」(홍성원)등 6·25전쟁을 소설의 주요 테마로 천착해온 우리 분단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가가 마치 손을 맞춘듯이 시선을 해방이전 일제식민지시대로옮겨 쓴 교양역사소설이란 점도 각별하다.이들 작가의 작품은 현재 서점가에서도 경쟁적으로 팔리고 있다. 「늘 푸른 소나무」는 1910∼20년대 중반까지의 일제강점기전반부를,「먼동」의 경우 구한말에서 한일합방을 거쳐 3·1운동이후에 이르는 역사적 격동기를 각각 시대배경으로 다루고 있다.「소설적 꺼리」가 산재한 중복되는 시기를 두 작가가 나란히 배경으로 선택한 셈이다. 줄거리면에서도 두 작품 모두 비극적인 우리 근대사의 새벽에 피어난 항일정신에 창작의 뿌리를 두고 있다.「먼동」이 동트기 직전에 더 어두운 새벽을 헤치고 살아가는 양반·중인·하층민등 3일가가 출신배경에 따라 운명의 반전을 거듭하는 가족사를,「늘푸른 소나무」의 경우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피나는 고행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뒤 어둠앞에서 초연히 자기 희생으로 삶을 마감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숨겨진 개인사와 의식을 찾아 내는데 역점을 둔 점도 비슷하다.「먼동」이 의병전쟁에 참가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과그들의 3세들이 한결같이 3·1만세운동에 연루되는 민중의 삶을 모델로 제시했다면 「늘푸른 소나무」는 1910년대 대한광복회의 활동등 역사적 사실과 맞물리는 국권회복운동을 내세워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김원일씨는 『시대적 변혁기에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을 다룬 교양소설쓰기를 소설가가 되기 이전인 스물살무렵부터 꿈꾸어 왔다』면서 이 소설이 그동안 꾸어온 문학적 지향점의 실현이라고 말했다.홍성원씨 역시 『지난77년 「남과 북」창작을 끝낸이후 역사소설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작가가 해야 할 일은 역사가들이 써놓은 역사를 상상력을 동원해서 문학적으로 읽는 법을 제시하는 것뿐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 「거창학살」 명예회복·배상/민자,특조법 추진

    민자당은 28일 6·25전쟁당시 발생한「거창양민학살사건」의 희생자및 유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위로하기 위해「거창사건관련자의 명예회복및 배상에 관한 특별조치법」(가칭)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민자당은 이를 위해 30일 하오 경제기획원·내무·법무·국방·보훈처등 관련부처와 배상금지급 대상 범위와 배상액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민자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 특별법은 사망및 부상자에 대해 5억여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위령탑과 공동묘역을 조성하는 것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 금복주회장 김홍식씨(“어둠속 햇살” 미담 2제)

    ◎5만6천평 땅 시에 헌납/대구 화원유원지… 수영장도 갖춰 김홍식 대구시의회의장(65·금복주 회장)은 24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4백억원 상당의 경북 달성군 화원읍 구라·성산리일대 5만6천여평의 화원유원지를 대구시에 헌납한다고 밝혔다. 화원유원지는 지난 72년 김의장이 시로부터 3만8천9백77평의 시유지를 불하받아 개발에 착수,지난해까지 인근지역 1만7천98평을 추가로 매입해 모두 5만6천75평의 규모에 수영장·동물원·주차장 등 각종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김의장은 『당초 시와 화원유원지를 국내 굴지의 유원지로 개발키로 약속했으나 개인의 힘으로는 이제 땅매입 및 시설개발에 한계를 느껴 행정당국에서 직접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김의장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내달 대구시의회 승인 등 시재산으로의 소유권확인절차를 밟아 화원유원지를 시차원에서 본격 개발할 예정이다. ◎삯바느질할머니 이순옥씨/평생모은 30억 “장학금으로”/“무학설움­숨진 교사딸 한 풀었다”부정척결을 위한 사정태풍이 사회전반에 몰아치는 가운데 80세의 삯바느질 할머니가 평생 모은 30억원의 재산을 장학금으로 희사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국민학교도 다녀보지 못한 이순옥할머니(서울 종로구 삼청동 11)가 바로 그 주인공이 이다. 이씨는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안에 있는 자신소유의 시가 30억원짜리 상가건물(대지 1백평,건평 1백20평)을 외손녀의 출신고교학교법인인 대원학원에 기증했다. 『학교설립이 죽기전 소원이었는데 그것을 이루기에는 너무 늙었고 그동안 모은 재산이나마 교육발전과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데 쓰고 싶었습니다』 이씨는 스스로 배우지 못한 설움과 여고교사로 있다 숨진 외동딸의 한을 달래기 위해 그 딸의 「분신」처럼 여겨온 외손녀 출신고교에 기증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이씨는 6·25전쟁중 남편이 인민군에 의해 학살당한 뒤 38세때 홀몸이 되어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삯바느질. 남대문시장에 1평짜리 쪽방가게를 얻어 삯바느질로 딸을 이화여대에 진학시켰고 어렵게 모아현재의 상가건물도 구입했다.
  • 김정일,「비밀친위대」운영/91년말「215부대」창설… 신경변호 전담

    ◎전쟁고아 등 2천여명 특수훈련 시켜 북한 김정일이 자신의 신변경호만을 전담하는 「비밀친위대」를 신설,비밀리에 운영해 오고 있음이 최근 드러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비밀친위대는 일면 「216부대」로 불리우고 있는데 이는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에서 따온 것이다. 최근 입수된 북한관계 자료에 의하면 비밀친위대는 구소련및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된 직후인 91년 말경 김정일의 비미리지시로 신설됐는데 요원은 약 2천명으로 이들 중 김정일에게 밀착하다시피하며 경호하는 인원은 약 2백명이다.이중 20명은 중국 소림사에서 중국고유 무술인 「쿵후」를 연마한 고단자이며,1백80명은 이란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일은 당시 루마니아의 챠우세스쿠가 고아들을 양성하여 친위대를 조직,자신의 신변을 보호토록한데 착안하여 이 「비밀친위대(216부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김정일의 비밀친위대는 그 출신성분이 6·25전쟁 고아와 혁명유가족 자녀 중 만경대혁명학원및 강반석혁명학원(구남포혁명학원)출신자들로 대부분 구성돼 있다.출신성분이 말해주듯 이들은 6·25전쟁중 직계가족을 잃은 자들로서 대남적개심과 미국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으며,김정일은 이들을 가리켜 『공산주의 혈통의 순수성을 지닌 당의 아들』이라며 절대적인 신임을 주고 있다. 김정일이 자신의 신변경호를 위해 이같은 비밀친위대를 별도로 조직,운영하게 된것은 북한의 선전과는 달리 당과 군부내에서 김정일에 대한 불평불만이 점증하고 있는데다,경제난으로 일부 지방에서 간헐적으로 식량폭동이 발생,그 어느때 보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기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문예총/「유일체제」떠받들기 47년(오늘의 북한)

    ◎그산하 단체와 활동내용을 알아보면/작가·예술인 사상교육… 당노선 홍보에 활용/작가동맹/창작주제까지 할당… 혁명정통물만 30%/미술가동맹/조각작품의 80%가 김 부자의 입상·흉상/음악가동맹/최근 우상화일변도 탈피,관객동원 신경 북한의 대표적인 문학예술단체인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하 문예총)이 지난 25일로 결성 47주년을 맞았다. 문예총은 북한의 모든 직업예술인을 조직·통제하고 문학·예술을 총괄하는 단체로 해방 이듬해인 지난 46년 3월 조직된 「북조선문학예술가동맹」을 모체로 발족됐다.문예총은 북한의 여타 문화단체가 그러하듯이 공산주의적 대중선전·선동의 필요성을 느낀 김일성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북조선문학예술동맹」은 46년 10월 각 부문별 동맹을 두기 위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 개칭됐으며 이후 당적인 문학예술 창조의 길에 들어서면서 토지개혁을 비롯한 북한공산정권 초기의 정책선전활동에 적극 이용됐다.6·25전쟁 중에는 전후방에서 주민들을 전장에 동원하는 역할과 함께 북한군의「영웅적 전투」를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은 그러나 휴전을 전후한 시기에 불어닥친 숙청 바람을 타 53년 9월 해산됐다.그후 북한은 작가동맹,작곡가동맹,미술가동맹 등 몇몇 부문별 조직만 필요에 의해 두고 있다가 60년대 들어 김일성 유일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통일적 조직인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을 다시 결성,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대위원장은 한설야가 맡았었으며 그뒤 이기영을 거쳐 현재는 백인준(제9기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맡고 있다. 문예총의 주요임무는 ▲당의 노선과 정책의 관철을 위한 문학예술토의 ▲작가예술인들에 대한 사상교양 ▲문학예술의 대중적 발전 등이다.문예총은 이를 위해 작가·예술인에게 당의 문예정책을 홍보,이의 관철을 위한 지도·통제사업을 하고 작가·예술인들의 창작사업을 지도하는 한편 문예계의 등용과 축출 등을 결정한다.주요연맹의 조직 및 활동내용은 다음과 같다. ▲작가동맹=소설·시·희곡·아동문학·평론·고전문학·외국문학 등의 분과위원회가 있으며 산하기관지발행기구로서 「문학신문사」와 「조선문학」「청년문학」「아동문학」「현대문학」「시문학」「국문학」「외국문학」「고전문학」 등의 각 잡지 편집부가 있다.북한문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설문학은 창작내용에 있어 당이 할당해준 주제에 입각하도록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창작주제 할당은 혁명전통물 30%,조국통일물 20∼30%,사회주의 건설물 10∼20%이다.신문학·아동문학·고전문학 등도 소설문학과 같은 상황이다. ▲미술가동맹=회화·동양화·무대미술·조각공예·평론 등의 분과위원회가 있다.동양화는 산수 등을 그리는 고대의 동양화가 아닌 노동자·농민의 작업환경을 테마로 한 인물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조각작품의 80%가 김일성 및 김정일의 입상과 흉상이며 나머지 20%는 천리마 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무용가동맹=민족무용·현대무용·평론 등의 분과위원회로 나누어져 있다.우리 고전무용의 형식에 구소련 무용의 동작을 혼합한 형태의 동작이 주류를 이룬다. ▲영화인동맹=연기분과위원회·연출분과위원회·장치분과위원회·효과(녹음)분과위원회·평론분과위원회가 있고 다른 동맹과는 달리 지방조직이 있다.조선예술촬영소·조선기록영화촬영소·2·8영화촬영소 등과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가동맹=보도사진·예술사진·평론 등의 분과위가 있으며 영화인동맹과 같이 지방조직은 없으나 사진의 선전효과 때문에 북한의 이 부문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다른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순수사진 예술작품의 창작은 허용되지 않는다.이 분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사진 제작이다. ▲음악가동맹=민족음악분과위원회·현대음악분과위원회·작곡분과위원회·민족음악연구소가 있다.최근 들어 김일성우상화선전 등 정치색 일변도에서 탈피,음악·무용·곡예·단막극 등 공연종목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등 관객동원에 신경을 쓰고 있는 점이 눈에 띄고 있다.
  • 사할린 영주귀국 70대/44년만에 처자와 상봉(조약돌)

    ○…지난 22일 사할린에서 일행 42명과 함께 영구귀국해 강원도 춘천군 서면 안보리「사랑의 집」에 입주한 노현덕씨(75)가 24일 부인과 아들을 44년만에 상봉했다. 노씨는 지난 49년 당시 북한땅이던 고향 강원도 양양군 서면 북평리에서 소련으로 돈벌러 나간 뒤 6·25전쟁이 터져 이 지역이 남한땅이 되면서 사할린에서 귀국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왔다. 노씨는 그동안 가족과의 재회를 기다려오다 이날 강원도 강릉에 사는 부인 강수옥씨(71),아들 승원씨(46·타일공·강릉시 노암동 639)를 춘천 제일병원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 남편사별 두 아들마저 병사/7순할머니 비관 분신자살(조약돌)

    ○…20일 낮12시5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2동 116 이재상씨(64·여)집 마당에서 이집에 세들어 사는 허막례할머니(70)가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자살했다. 이집에 함께 세든 장은주씨(45·주부)는 『외출하려고 방을 나서다 불에 타는 냄새가 나 달려가 보니 허씨가 땅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운채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허씨가 숨진자리 옆에 휘발유병 4개가 있었고 6·25전쟁때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온 허씨가 지난 86년과 91년 두 아들마저 병사하자 『남편도 자식도 모두 잃었으니 사는 보람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이웃주민들의 말에 따라 허씨가 이를 비관,분신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 「미완의 삶」이 주는 안타까움 가득/시인·평론가 유고집 “화제”

    ◎김현·김성칠일기,학자 고뇌·방황 표출/박남훈·이연주,시집속에 죽음의 냄새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글쓰기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만드는 시인·평론가·역사가들의 유고집들이 독서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최근 나온 시인 박남훈의 「불면의 늪」과 이연주의 「속죄양,유다」등 두권의 유고시집과 6·25전쟁당시 타계한 전 서울대 사학과교수 김성칠씨의 유고일기 「역사앞에서」가 그것이다.그리고 지난해 출간된 문학평론가 김현(전 서울대교수)의 「행복한 책읽기」도 이 범주에 속한다. 시인 박남훈은 자신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불면의 늪」을 준비하다 지병이 도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중 시집출간도 보지 못하고 지난 1월5일 숨졌다.지난해 출간됐던 시집 「동해바다」에 수록되지 못한 작품과 투병중에도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고 완성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고통과 절망의 삶을 살아오면서도 고향바다를 그리며 일어서려했던 시인의 혼과 병상에 누워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삶을 차분히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시집 곳곳에서배어나온다. 지난해 가을 시집 한권분량의 시들을 정리해 놓고 스스로 세상을 버린 이연주 시인의 「속죄양,유다」 역시 출간되기 전부터 문단의 관심을 끌었던 시집.현대인이 처한 외면적인 삶과 내면적인 자의식의 파탄이라는 절망감과 겉늙어버린 삶속에서 새로운 기대를 걸었던 소망이 끝내 죽음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던 처절한 고민이 시집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이들 유고시집들이 개인적인 사유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면 김성칠·김현 두 사람의 유고일기집에서는 의식 깊숙이 자리한 학자·문학평론가로서 책임감 내지는 사명감이 관조된다.「조선역사」의 저자인 김성칠교수의 「역사앞에서」는 좌·우익에 대한 중도적 입장의 한 역사가의 눈에 비친 6·25전쟁이야기다.그래서 역사적 기록이 충실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됐다.피란길이 막힌 서울 정릉집에서 보통의 전쟁일기가 아닌 현대사의 일지를 적는 마음으로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일정한 신념이나 주관없이 전세에 따라 변신하는 지식인과 정치가들의 행태와 사회·문화·경제등 다방면에 걸쳐 질서가 붕괴하는 와중에서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해 기술한 이 일기에는 양심적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도 진솔하게 표출된다.그 시대는 해방직후 좌우대립이 심했던 45년 12월부터 46년 4월,50년 1월,50년 6월부터 51년 4월8일까지.부인 이남덕씨(73·전이화여대교수)에 의해 40여년만에 출간됐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는 일기이면서도 보통일기의 형식을 밟지 않고 있다.자신의 새로운 글쓰기 형태를 시도한 이 유작에는 「짧은 몇마디 말속에 큰 핵심을 실어나르는 단장」의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제자인 이인성씨의 발문에서 볼수 있듯이 김현은 이 유고가 출판되었을 때의 공적인 의미를 고려,그동안 꼼꼼히 기록해왔던 사생활의 흔적을 거의 지워버렸다.일기의 원본마저도 컴퓨터로 새로 정리해 놓는등 마지막 순간까지 학자의 모범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 유고집은 「채 완성되지 못한 삶이 던져주는 안타까움과 죽은 자에 대한 추억과 애도,삶의 유한성에 대한 새삼스런 인식등이 어울려 경건하면서도 처연한 감정을 빚어내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 전쟁놀이(외언내언)

    세계적인 군축과 긴장완화라는 평화추세와 상관없이 지금 한반도에는 남북한을 합쳐 각기 자체방위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병력과 무기가 존재하고있다.6·25전쟁 당시의 8배가 넘는 파괴력을 지닌 전력이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완충대로 하여 남북 양측으로 산개돼 있다. 이 상태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1주일 이내에 2백40만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한달이상 계속되면 5백만명의 희생자가 나온다.모든 시설의 80%가 파괴된다.이것은 전혀 하구의 숫자가 아니다.최신의 국방백서가 시도해본 「워게임」(도상연습)결과다. 한 나라의 군사력(전투잠재력)을 평가할때 「전력지수」가 원용된다.군사전문가와 과학기술자들이 공동으로 피아의 모든 부대의 특성과 능력,무기체계와 성능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판단한 비교 기준을 말한다. 여기에는 물론 병력의 자질,사기등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무형적인 요소는 제외된다. 이같이 전문적인 방법으로 전력지수를 산출한 후에 실제로 컴퓨터에 걸거나 모형을 만들어 실전과 똑같은 실험을 거쳐 비로소 쌍방의 전력비교기준으로 확정되는 것이다.그것이 바로 앞에 나온 「워게임」결과 예측이다.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터진다면 결과는 완전한 파괴와 공멸뿐임을 이 「워게임」결과는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파괴적이며 경악스러운 전쟁놀이를 벌이고 있다.세계를 상대로 핵불장난을 계속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협박인가 「공갈」인가 아니면 정말로 뭔가를 획책하고 있는가. 전쟁은 일체의 인류죄악의 총괄이라고 했다.전쟁은 인간의식을 말살하고 인성을 황폐화 시킨다.그래서 그들에게 이런 경구를 전하고자 한다.『전쟁은 동물에게나 적합한데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전쟁을 하지는 않는다』(토머스 모어경).
  • 해방이후 대표적연극 다시 본다

    ◎「…이중생」/「산불」/「국물…」/「초분」/「새들도…」/연우무대,「한국현대연극의 재발견시리즈2」 공연/연극·학계 중진,시대별로 1편씩 선정/윤광진·김철리·기국서씨 등이 연출 극단 연우무대가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한국 현대 연극의 재발견2­해방이후의 문제작 시리즈」가 4월부터 8월까지 넉달동안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올해로 두번째인 「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무대에는 연극계와 학계의 중진들의 추천을 받아 최종 선정된 각 시대를 대표할만한 작품 5편이 공연된다.이들은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각하」(1940년대·4월15∼5월9일),차범석의 「산불」(1950년대·5월13일∼6월6일),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1960년대·6월10일∼7월4일),오태석의 「초분」(1970년대·7월8일∼8월1일),황지우시·주인석 희곡「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0년대·8월5일∼29일)등이다. 지난 91년의 첫번째 무대는 1912년부터 45년사이 작품들 가운데 소개되지 않았던 조일제의 「병자삼인」,유진오의 「박첨지」,함세덕의 「동승」,송영의 「황혼」등 단막극 4편을 모아 마련한바 있다.이 공연에서는 그동안 우리 희곡사에 묻혀있던 함세덕의 「동승」이라는 보고를 발견 소개함으로써 크게 주목받았다.따라서 이번 두번째 무대에도 연극계 안팎의 관심이 쏠려있는 것이다. 1949년 발표된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는 전통적인 희극적 정서로 현실을 비판한 사회극.차범석의 초기 대표작인 「산불」은 6·25전쟁을 시대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리얼리즘 희곡의 모범으로 꼽힌다.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는 너무 평범해 취직도 결혼도 못한 청년의 출세행로를 통해 가치관이 전도된 사회의 비리와 문명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태석의 「초분」은 70년대 발표당시 실험성으로 연극계에 충격을 던진 작품으로 전통적 「굿」형식을 현대적 무대에 접목시킨 오태석연극의 원형이다.「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황지우의 동명시집에 실린 시들을 주인석이 희곡화한 것으로 80년대의 암흑기가 잉태한 연극적 산물이다. 이번 무대는 연우출신 연출가들만이 참여했던 첫해때와는 달리 연우와 직접적인 관계여부를 떠나 윤광진 김철리 박원근 기국서 김광림등 참신한 감각과 활동력이 있는 40세 전후의 연출가 5명을 참여시키고 있다.이로써 「한국현대연극의 재발견」은 더 이상 단순한 연우무대의 행사가 아니라 범연극계의 행사로 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또 작품당 공연기간을 배이상 늘리고 출연자들도 공개오디션을 통해 뽑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이번무대가 우리연극사를 재조명하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도록 내실을 기하고 있다. 연우무대는 한국 피자헛주식회사(사장 성신제)가 문예진흥원을 통해 후원금 5천만원을 지정 기탁해옴에 따라 예산상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덜게 됐다.더군다나 한국 피자헛측이 예산지원을 올해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계속해나간다는 뜻을 분명히 해옴에 따라 연우무대는 보다 유리한 여건속에서 이 시리즈를 지속해나갈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4월15일부터 시작되는 첫 작품 「살아있는 이중생각하」공연에 앞서 연우무대측은 7일쯤 「2천년대를 향한 한국연극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심포지엄」도 개최할 계획이어서 이론적인 고찰도 겸하게 된다. 지난해 정한룡 극단대표와 김광림 예술감독 중심으로 새진영을 갖추고 연우무대의 거듭나기를 모색해온 이래 첫행사인 「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2」는 「연우무대의 재도약」선언의 가능성을 가름해보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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