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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崔章集교수 ‘사상 논쟁’ 종결

    崔章集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고려대 교수)과 조선일보사의 ‘사상검정논쟁’이 마무리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이에 따라 월간조선이 98년 11월호에 ‘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崔章集 교수의 충격적 6·25전쟁관연구’라는 기사가 실리면서 촉발된 이념논쟁은 4개월만에 일단락되는 셈이다. 崔위원장은 19일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낸 소(訴)를 취하해 이번 사건을 사실상 끝내기로 했다.崔위원장측은 소를 취하하면서 이번 사건과 소를 취하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힐 방침이다.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18일자에 崔위원장의 반론문을 특별기고 형식으로 실었다.월간조선 2월호에는 崔위원장이 96년 펴낸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에 실린 논문을 일부 수정한 ‘통일의 조건과 전망’이 200자 100매 분량으로 실렸다. 崔위원장과 조선일보사측이 불필요한 소모전을 끝내기로 한 것은 시간을 끌어봐야 양측에 실익이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법원은 지난 해 11월 崔위원장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까지 했지만 崔위원장이 이번 사건을 조기에 끝내기로 한 것은 법으로 해결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을 빨리 끝내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뜻도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3개월만에 해결됐지만 그동안 사회단체와 언론매체,국내외 학자까지 가담한 사회적 논쟁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의 균열을 제대로 봉합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탈(脫)냉전시대를 맞아 냉전적인 사고를 버리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건설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이번 사건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다.郭太憲
  • 올해의 인물-’색깔논쟁’ 회오리 崔章集교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고려대 崔章集교수에 대한 사상논쟁이 ‘색 깔논쟁’으로 비화하면서 조선일보와 개혁성향의 시민사회단체,진보성향 학 계의 대리전으로까지 확산됐다. 이번 논쟁으로 崔교수는 물론 학계는 법원으로부터 학문의 폭넓은 자유를 확인하는 소득을 얻었다.또 언론의 공인검증은 사실성과 공정성에 근거를 두 어야 한다는 ‘법적인’ 기준도 마련됐다. 논쟁은 ‘崔章集교수의 충격적 6·25전쟁연구관-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월간조선 11월호의 기사에서 비롯됐다.이후에도 조선일보와 월 간조선은 崔교수의 사상을 좌파로 몰며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논리를 폈 다. 사상논쟁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金泳三정부 초창기에 있었던 韓完相 전 통일부총리와 金正男 전 교육문화수석에 대한 ‘색깔논쟁’처럼 새정부에 대한 ‘통과의례’ 정도로 인식됐다.그러나 보수진영에서 崔교수의 사상성 향과 국민정부의 중장기 정책을 연계시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파장 은 증폭됐다. 당사자인 崔교수는 “사상검증이라는 표현은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라면서 “보수주의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좌파다’ ‘불온하다’는 딱지를 붙이거 나 이지메로 한 사람이나 집단을 격리시키는 현상이 벌어지면 그 결과는 메 카시 광풍,획일주의의 강화”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획일주의가 강화되면 사회발전에 필요한 다원성·역동성·개발성· 창의성이 위협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崔교수는 보도 직후인 지난 10월23일 자신의 논문을 왜곡보도했다며 조선 일보사를 상대로 월간조선 발행 및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5억원 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崔교수의 법적인 대응과는 별도로 학계와 시민단체들의 비판 및 옹호 성명 전은 계속됐다.세대간·이념간·정치세력간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불러일으키 는 양상으로까지 확전됐다. 그러다 법원이 지난 달 11일 崔교수측의 가처분신청을 전격적으로 받아들 여 월간조선이 판매·배포금지되는 사태가 초래됐다.중앙일간지가 발행하는 월간지에 대한 첫 판금조치였다. 崔교수에 대한 ‘색깔논쟁’은 언론의 ‘횡포’에 대한 법적 심판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학문 영역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검⒂鬪? chungsik@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새해 새설계”” 여기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할 때가 됐다.내년은 토끼의 해인 기묘년. 지난 해가 유난히 어려웠던 한 해였기에 기묘년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정 초에 갖는 마음가짐은 1년을 좌우한다고 한다.그래서 누구나 새 해 초가 되 면 설레이기 마련이다.묵은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신정휴일.이 신 정휴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새해를 맞아 알차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볼만한 곳들을 소개한다. [고궁개방] 새해 원단에 고궁을 찾아 옛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 일 것이다.문화재관리국은 1월1일 하루 서울 경기소재 5대 고궁과 14개 능· 원을 일반인들에게 평상시처럼 공개하기로 했다.이날 한복을 입은 관람객들 은 무료입장을 할 수 있어 한복차림으로 가족 나들이를 해볼만한 곳들이다. 덕수궁과 창경궁에서는 널뛰기,팽이치기,윷놀이,투호 등의 민속놀이마당도 마련된다. ?개樗隔貶? 에버랜드는 99년 토끼해를 맞아 1월1­3일 산토끼 99마리가 자유롭게 뛰노 는 토끼광장을 만든다.‘토생전’을 응용한 레크리에이션과토끼방 토끼쿠키 도 만들어 선보인다.유러피안광장에서는 대학생 동아리 ‘천기누설’이 한해 운수를 점쳐 주는 사주풀이마당을 연다.또 옛사람들이 새해 첫날 무병장수 를 빌며 드나들었다는 대형 ‘불로문 통과’행사도 열린다.제기차기,윷놀이, 투호,굴렁쇠 굴리기 등 민속놀이 광장과 어우동 방자 향단이 출연하는 고전 해학마당극에도 참여할 수 있다. 롯데월드는 오후 7시·7시30분 두차례 신년 민속 퍼레이드를 연다.60인조 마칭밴드를 따라 태평성대 어가행렬,대동놀이 ,춘향전 등 전통축제 행렬이 지나면서 신년 축하 메시지를 전한다.가든스테 이지에서는 1일과 3일 인기 가수들의 공연이 있고 매일 오후 9시30분 ‘라이 브 뮤직밴드 쇼’가 열린다.오후 11시까지 연장 개장한다. 서울랜드는 삼천 리동산에서 1일부터 3일까지 우리 전통 점치기와 컴퓨터 점을 비교하는 행사 를 가져 찾는 이들의 사주 궁합 관상을 보아준다.1일 오후 2시 통나무 무대 에서는 뽀빠이 이상용이 폭소덕담을 섞은 공연을 연다.1일부터 2일까지 흥겨 운 농악대 공연과 함께 무료가훈 써주기,윷놀이,투호,제기차기,줄넘기,고무 줄놀이 등 가족단위의 민속놀이 한마당도 계속된다. [해돋이 구경] 동해 추암은 ‘일출 1번지’로 불리는 동해시의 해돋이 명소.명물인 촛대 바위와 기암괴석 뒤로 펼쳐진 망망대해 끝에서 솟는 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을 옆 언덕배기에 들어서면 촛대바위가 나타나는데 옆쪽에 각양각색의 암 석전시장이 펼쳐져 문어 불상 해골 폭포바위 등 모두가 신기하기만 하다.암 석지대 바로 옆에는 고려때 세운 해암정이 남아 있는데 정면 3칸,옆면 2칸의 해암정에 서면 파도의 숨소리가 들린다. 강릉 정동진은 한때 탄광촌이었던 곳.드라마 모래시계 방송후 더욱 인기를 더해 가고 있는 어촌이다.넓은 모래사장과 담수가 빠져 나가는 낡은 철다리 는 손을 맞잡고 지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만점이다.밤기차를 타고 달려와 맞 는 해돋이의 멋이 더욱 정겹다.해안에 인접해 있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바 다와 마주하게 되는데 맑은 물과 탁트인 시야가 사색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영덕 강구항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의 어촌.MBC TV의 ‘ 그대 그리고 나’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해뜨는 장소가 일정치 않아 항구에 선 자칫 일출을 놓칠수도 있기 때문에 삼사 해상공원 쪽을 택하는게 일출을 보기에 안전하다. 충남 당진 왜목마을은 서해안이면서도 지형 때문에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장엄한 동해 일출에 비해 소박하지만 정겨운 분위기 가 일품이다.날씨에 별로 구애받지 않고 일출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수 향일암은 지명 그대로 해를 향해 열려있는 암자.한려수도를 바라보고 들어 앉아 있는 대웅전과 관음전,산신각 등 모두 6동짜리 작지 않은 사찰이 다.전남 여수시 돌산대교를 건너 30분쯤 달리면 향일암으로 향하는 입구가 나타난다.돌산섬의 끝인 임포에선 10분거리다.이른 새벽 바위봉우리에 올라 서면 향일암의 본체가 드러난다.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동백숲과 바위병풍이 에워싸고 있는 암자의 모습이 퍽이나 아름답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 일출은 동해의 많은 해돋이 가운데서도 가장 장관을 이룬다.일출기간은 짧지만 주변건물,풍경들과 어우러지는 색채의 조화가 볼 만하다.의상·원효대사의 흔적이 살아있는 홍련암과 보타전,낙산사 경내의 범종과 7층석탑 등 지정문화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낙산해수욕장의 모래밭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대장관은 멋진 겨울바다 여행코스가 아닐 수 없 다. 경주 토함산과 석굴암의 일출 장면은 우리의 자랑거리다.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를 끼고 있는 토함산은 동해의 햇살이 가장 먼저 와 닿는 땅이다.바다 가 끓어 오르듯 붉은 구름을 피워 올리다가 순식간에 솟구치는 해돋이는 정 초에 한 번쯤 가져 볼 만한 경험일 것이다.토함산 너머에 자리잡고 있는 감 포도 들러 볼 만한 곳.감포 앞바다로 향하는 길목에 늘어선 기림사와 감은사 지,이견대,대왕암은 신라의 체취를 물씬 풍긴다. 거제도 해금강과 외도해상공원도 원단 해돋이의 감상지로는 탁월한 곳.외 도는 동백숲과 선인장,용설란 등 아열대식품이 많아 이국적인 풍치를 느끼게 한다.일본의 침략을 막기위해 조선시대에 쌓았다는 5개 성과 6·25전쟁 당 시 포로가 거주했던 포로수용소 등 역사문화유적도 기다리고 있다. [볼만한 전시] 63빌딩은 1층 특별전시장에서 이집트 유적을 매일 밤 10시까지 전시한다. 관람객들이 직접 탐사대로 나서 이집트 진품유물 150점을 발굴해보는 체험의 장소다.전망대에선 운석(별똥)과 희귀광석 등 600여점을 모은 별똥·희귀광 석전이 전망대에서 열린다. 한국종합전시장(KOEX) 태평양관에서는 ‘살아있는 희귀 해양생물박람회’가 열린다.해수어,열대어,세계 희귀해양생물,한국 연안어류,희귀파충류 등 어 류 350종,파출류 70여종 등 모두 420종 3,000점이 선보인다. 또 원주 치악산드림랜드에서는 눈썰매장 개장과 함께 국내외에서 찍은 UFO( 미확인비행물체) 사진 60점이 공개되는데 연휴기간 동안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서울 올림픽공원의 조각작품 관람도 의미있는 것이다.65개국 205명의 작품 213점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어 확 트인 주변 환경과 함께 조형물을 감상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12점을 새로 전시했다. [기타] 한국민속촌은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장을 마련한다.기묘년맞이 운수대통 굿 판에선 입장객들에게 점을 봐 주고 재수부적을 나눠준다.중요무형문화재인 북청사자놀음,송파산대놀이,세시풍속인 풍물,줄타기,지신밟기 등을 선보인다 .디딜방아,괴나리봇짐 져보기, 지게지기 등 전통생활 체험장도 마련한다.전 통 얼음썰매와 연날리기 투호놀이 등에도 참가할 수 있다. 서울타워에서는 세모의 서울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31일밤과 1일 새벽4시 까지 전망대를 개방한다.주간에는 세계각국 유물 3,000점을 전시하는 지구촌 민속박물관,로봇 동물인형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세계뮤지컬동물랜드 등도 마련한다. 또 대전엑스포과학공원은 대학 수학수능시험을 마친 고3 수험생들 에게 공원을 완전 무료 개방한다.학생증과 수험표를 지참하면 무료 입장할수 있다. ?겉那∩? kimus@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음반(문화산업을 키우자:3)

    ◎아시아 3위 세계 18위 ‘눈뜨는 황금알산업’/3,200억시장 3분의 1 잠식 ‘해적음반’ 최대 독버섯/다단계 유통·무자료 거래 주먹구구 기획·제작 초래/日 대중가요 개방 초읽기/외국 메이저들 진출 눈독/관련분야 전문인 양성 등 하루빨리 경쟁력 강화해야 한국의 음반산업은 90년대 들어 비로소 산업으로서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을 필두로 음반분야의 밀리언 셀러 시대가 열리면서 기업들이 유망산업으로 사업성을 평가하게 됐다.한국 음반시장 규모는 IFPI(국제음반산업연맹)에 따르면 3,200억원(97년 기준)으로 추정된다.이는 세계 18위권으로,아시아에서는 일본,대만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음반산업은 크게 국내가요시장과 외국음반시장으로 나눠볼 수 있다.국내가요시장의 경우는 음반기획사가 음반을 기획한 뒤 음반제작사와 계약,음반제작이 이뤄진다,외국음반은 해외에서 제작된 음반이 국내 라이센스 음반사에 의해 제작·발매되거나 직배사를 통해 직수입되는 형태로 유통된다. 우리나라 음반산업의 유통구조는 제작사,도매상,중간도매상,소매상 등을 거치는 다단계구조를 특징으로 한다.국내 음반도매상은 모두 40여개.이 가운데 국내 최대의 음반도매상인 신나라레코드가 전체 유통물량의 40%이상을 차지하며,웅진뮤직과 탑뮤직이 합해서 25%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중간도매상은 우리 음반유통구조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존재로 도도매상 또는 나카마(仲間)라고도 불린다.중간도매상에 의한 거래는 전체 유통물량의 20%선.이같은 복잡하고 전근대적인 유통과정은 우리 음반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복잡한 음반유통 구조로 인한 무자료거래 관행은 음반산업 발전에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음반판매량이 정확히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음반 기획과 제작,마케팅 전략이 주먹구구식이 될 수밖에 없다.이와관련,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김휴종 수석연구원은 “무자료거래관행 근절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행 과세특례자에 대한 기준을 재검토,부가가치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외국 음반유통체인의 한국진출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외국 대형 음반유통업체의 진출은 95년 이후 본격화됐다.미국 최대의 음반유통체인인 타워레코드가 이미 진출했으며 영국의 버진 메가스토어나 미국의 레인보우 등 대형 음반유통업체도 한국진출을 준비중이다.이러한 외국의 전문 유통회사가 본격적으로 진출함에 따라 국내 음반유통시장은 앞으로 더 많은 부분이 잠식당할 것으로 보인다.국내 음반산업의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통주체의 구조조정 △음반유통 전산망 확충 △음반유통단지 조성 등의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음반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 중의 하나가 불법복제 음반이다.불법음반을 단속하는 한국영상음반협회에 따르면 국내 불법음반시장은 1,000억원 규모(98년 상반기 기준)로,이는 국내 음반시장의 30%에 이르는 수치다.‘리어카 음악’‘길보드’ 등으로 불리는 불법음반,그 중에서도 특히 음반시장 유통구조를 위협하는 것은 정품과 구별하기 힘든 ‘정비품’이다.이 ‘정비품’은 노점상뿐만 아니라정식 음반소매점에서도 버젓이 팔리고 있어 심각성을 더해준다.한편 최근에는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음반을 컴퓨터 파일에 압축시킨 뒤 이를 다시 CD롬에 수록해 판매하는 신종 불법음반이 등장,이에 대한 보다 강력한 단속과 규제가 요구된다. 한국영상음반협회 서희덕 이사(뮤직디자인 대표)는 “현재 50여개의 조직이 불법음반을 제작,시중에 유통시키고 있다”며 “이러한 문화적 해적행위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 교포사회에서도 심각한 실정”이라고 말했다.서씨는 “미국내 불법음반이 근절될 경우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음반 수출액은 현재 월 120만 달러에서 260만 달러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한국영상음반협회에서는 최근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에 불법음반단속 협조를 요청했으며,지난 10월에는 미주 불법음반단속반도 발족시켰다. 현재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음반제작사는 CD제작업체를 포함,140개에 이른다.그러나 단순복제작업 수준의 제작업체가 대부분이며 음반 기획능력까지 갖춘 실질적인 음반제작사는 20여개사에 불과하다.이처럼 취약한 상황에서 외국의 메이저 음반사들은 국내시장을 겨냥,국내 가요음반 제작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현재 국내에는 지난 88년 계몽사와 합자사를 설립한 영국 국적의 EMI를 비롯해 워너뮤직,소니뮤직,폴리그램,BMG 등 외국의 음반직배사들이 진출해있다.이와함께 초읽기에 들어간 일본 대중가요 개방도 또하나의 변수로, 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음반업계의 판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우리 음반사들이 대외경쟁력을 갖추지 못할 경우 ‘우리 가요는 있으나 우리 음반제작자는 없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내 음반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음반기획·제작과 관련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이다.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녹음의 음악적 완성도를 책임지는 톤 마이스터가 부족해 국내 제작음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또한 클래식 전용 레코딩 스튜디오가 크게 부족하고 스튜디오 사용료와 오케스트라 대여료가 너무 비싼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음반산업 발전 단계/일제태동기→50년대 도입기→60∼70년대 정착·발전기→80년대 이후 본격 성장기로 우리 음반산업은 어떤 역사적 단계를 거쳐 발전해왔을까.그것은 대략 4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태동기(1895∼1945).일본의 침략기에 일본을 통해 음반을 취입하고 제작에 관한 부분적인 기술을 습득한 시기다. 두번째 단계는 순수 한국음반산업 도입기(1945∼1963)로,해방후 SP에서 LP시대로 이행되던 때다.특히 6.25전쟁후 쇄도하는 팝음악과 우리 가요 그리고 전통음악을 담은 음반 발매를 통해 서서히 산업으로서의 형태가 갖춰지던 시기이기도 하다. 세번째 단계는 정착기(1964∼1970년대 말).지구·오아시스 음반사에 의한 국내 대중가요의 생산과 성음·지구·오아시스레코드에 의한 외국음반 라이센스 생산이라는 양대 구도로 음반산업이 발전한 시기다. 끝으로 성장기(1980년대 이후)는 외국 메이저 음반사의 직배와 외국 음반유통사의 상륙,국내 대기업의 음반산업 진출에 의한 구조적 변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인터뷰/이태규 신나라레코드 상무/“우리 고유이미지 살린 기획으로 승부” “‘음반산업의 주변국’으로서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음반을 판매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우리 음반의 해외진출,즉 완제품 수출이나 라이센스 계약 등은 아주 저조한 실정입니다” 국내 최대 음반유통사인 신나라레코드의 이태규 상무(43)는 “세계시장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독특한 음반상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음반유통과 관련,이씨는 “신나라레코드는 일본의 ‘NRC’‘JARED’‘JDS’등 3대 음반배송전문회사를 모델로 삼아 대형 음반물류기지 건립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일본은 70년대 말부터 도매상과 지방 소매상을 이어주는 중간도매상들이 없어진 상태.대신 ‘레코드 렌탈점’이라 불리는 도매상 위에 거대한 음반배송전문사들이 생겼다.이같은 일본의 음반유통구조는 외국의 대형 음반유통사들의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는 우리의 경우 참고할 만한 점이 많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씨는 또 “우리 음반의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국제음반박람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산업적 시야를 넓히는 것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신나라측은 내년 1월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음반박람회인 ‘미뎀(MIDEM)’에 참가,우리 음반을 소개하는 독립 부스를 설치할 계획이다.“기획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자기만의 색깔과 고유 이미지를 살린 전문 레이블이 보다 활성화돼야 해요.우리 국악과 서양음악을 한데 섞은 크로스오버 음반으로 세계시장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 북한은 끼어들지 말라(사설)

    崔章集 교수 논문을 둘러싼 논란에 북한이 끼어들었다.조선기자동맹중앙위가 12일 최교수를 ‘6·25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보는 진보적인 학자’로 규정하고,조선일보가 崔교수의 논문에 대해 사상시비를 거는 것은 ‘낡은 냉전시기 사고방식의 발상’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나온 것이다.이에 대해 崔교수는 즉각 반박성명을 냈다.북한의 성명은 “나의 논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고 변조한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하고,“나는 그간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에 일관된 비판을 견지해왔고 한국전쟁이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에서 비롯된 남침이었다고 누차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북한이 崔교수를 옹호하고 조선일보를 공격하며 끼어든 사실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북한은 그동안 다원화된 남한사회 여론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국론을 분열시키는 성명전술을 써왔기 때문이다.이번 성명도 그렇다.崔교수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은 법원의 가처분 수용판결로 불길이 잡혀가고 있었다.그러던 판에 북한은 사그라지던 불씨에 의도적으로 기름을 끼얹고 나온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우리 사회의 민주·통일운동은 북한이 옹호하고 나오는 바람에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북한이 거들고 나오기가 무섭게 독재권력은 “그것 봐라”며 민주·통일운동을 탄압했다.남북 당국은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척척 손발이 맞았다.그러나 남한의 민주·통일세력이 친북세력이 아닌 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한의 민주·통일세력을 지원하는 듯한 몸짓을 의도적으로 한다.말할 것도 없이 남한의 국론을 최대한 분열시키기 위해서다.남한사회의 국론이 분열되면 될수록 적화통일의 기회가 커진다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북한은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가 입을 열면 여든 야든 좋을 게 없다”는 성명을 냈다.여당을 물고 들어간 것은 남북문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崔교수의 반박 성명에도 불구하고,북한은 이 문제에 끼어든 목적을 이미 충분히 달성했다.남한 극우 보수세력과 민주세력간의 갈등을 극대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북한 지배층의 카운터파트인 극우세력에게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남북 기득권 세력간의 적대적 의존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성명전술을 버려야 한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다.북한의 그런 얄팍한 이간질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이번 논란은 우리 내부에서 헌법정신에 따라 이성적으로 소화해 낼 일이다.
  • 국론분열 충동질 중단 촉구/崔章集 정책자문위원장

    ◎‘민족해방전쟁 주장’ 북 성명서는 논지 왜곡 崔章集 대통령자문 정책자문기획위원장은 13일 북한 조선기자동맹의 12일자 성명서와 관련,“본인이 6·25전쟁을 남침이 아닌 민족해방전쟁으로 보았다고 주장한 문제의 성명서는 나의 논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 변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崔위원장은 “월간조선의 왜곡사건에 이어 발표된 북측의 성명서는 남북한의 냉전기득세력이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崔위원장은 “북한의 성명서는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거부하고 냉전적 긴장을 유지하려는 북한 강경세력의 음모로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북측은 우리 사회의 국론을 분열시키는 이같은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날 기자동맹중앙위(위원장 서동범) 명의의 성명을 발표,“崔章集 교수의 논문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기초하여 지성과 양심을 가진 학자로서의 견해와 입장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라면서 “한 교수의 논문을 건 사상시비는 정의와 진리,남조선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도전이며 낡은 냉전 시기 사고방식으로 군사파쇼 시기를 재연시키려는 극우보수세력의 발악”이라고 비난했다고 중앙방송이 13일 보도했다. 성명은 “이번 사건은 악랄한 반북 대결 입장에 바탕을 둔 것으로 조선일보가 민족대단결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라는 것을 만천하에 여지없이 고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마녀사냥’에 쐐기(張潤煥 칼럼)

    ‘월간 조선’ 11월호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고려대 정외과)의 해방 전후 인식과 6·25전쟁관을 문제 삼고 나와 벌어진 사회적 논란이 가닥을 잡을 것 같다. 서울지법 민사합의5부(재판장 申暎澈 부장판사)에서 11일 崔교수가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월간 조선’ 11월호에 대한 발행·판매·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법원이 주요 중앙일간지가 발행하는 잡지에 대한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조선일보쪽이 이 결정에 불복하고 이의신청을 내겠다고 하니 상급심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알 수 없으나,이번 결정은 언론자유와 공인에 대한 검증,그리고 공정보도와 명예훼손의 경계(境界)등에 관한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언론의 검증기능은 인정 재판부는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가 자유민주주의인만큼 국가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공인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언론자유에 속한다고 판시(判示)했다. 공직 임명자에 대한 사전 청문회 등이 완비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허위내용의 보도,대상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주장,비방 중상이나 과도한 인신공격,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부 내용의 부각을 통한 왜곡,특정 부분의 의도적 발췌등은 명예훼손적 보도이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논평은 자유로되,사실은 신성하다”는 언론의 일반원칙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재판부는 반국가단체 찬양·고무를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어떤 사람이 좌경사상을 신봉한다는 사실적 주장은 물론,단지 그에 동조하거나 좌파적 또는 친북한적이라는 정도의 표현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언론은 공직자를 검증할 자유는 있지만,그 방법은 사실에 바탕을 둔 공정한 논평이어야 하며,검증 대상도 특정인의 ‘사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지 여부에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조선일보 등에 의한 진보적 인사들에 대한 ‘사상검증’이라는이름의 ‘마녀사냥’은 쐐기가 박히게 됐다. 굳이 재판부의 판시가 아니더라도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는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체제는 다양성을 강점으로 하는 체제다. 그 다양성에는 사상의 다양성도 물론 포함된다. 사상의 다양성이란 열린 정신과 관용성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보수든 진보든 각자가 갖는 입장은 자유이고,또 그런 차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주장을 공격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에 배치된다. 더구나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다른 사람을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것은 바로 테러행위나 진배없다. ○개혁 흔들기 경계해야 더구나 조선일보가 사상시비를 걸고 나온 崔교수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崔교수를 표적 삼아 공격함으로써 金大中 정부의 정체성에 ‘색깔’을 덧씌우려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물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을 좌절시키는 데 있을 것이다. 金대통령은 반개혁세력의공세에 결코 밀려서는 안된다. 개혁이 좌절되면 우리 나라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 보훈정신/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는 4일 매우 중요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국난극복정신과 국가보훈정책’을 주제로 한 세미나였다. ‘보훈문화 확산을 통한 공동체의식 제고방안’과 ‘역사상의 보훈제도와 보훈정신교육 강화방안’이라는 구체적인 두가지 주제로 나눠 서울신문사·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 및 뜻있는 시민들의 참여로 자리가 더욱 알차게 메워졌다. 무엇보다 ‘보훈정신’이라든가 ‘보훈문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오늘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토론이 진행돼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참석자들의 이해를 돕고 공감을 샀다. 조국광복과 국토수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들과 그 유족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영예롭게 살아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그동안 너무 인색했다. 이들을 돕는 일은 마치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푸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원호(援護)’ 또는 일반 사회복지 차원에서만 논의됐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지금 이 업무를담당하고 있는 정부부처는 국가보훈처지만 건국 당시에는 불행하게도 없었다. 친일(親日)인사들이 대거 정부조직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이 일어난 다음 전쟁에서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군사원호법에 따라 사회국의 원호계를 신설한 것이 처음이다. 그 뒤 원호과와 원호국으로 승격했다가 국방부와 내무부의 일개부서로 머물렀다. 그러다 1961년 독립부서인 군사원호청으로 재편됐으며 그이듬해에 원호처로 명칭을 바꾼 다음 1984년 오늘의 국가보훈처로 개칭됐다. 정부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에 대해 베푸는 차원을 뛰어넘어 마땅히 그렇게 해야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조치라 하겠다. 보훈(報勳)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보훈제도는 발달해 있다. 국가유공자들에 대해 ‘국가의 무한책임과 의무로서의 보훈’을 실현하고 있는 미국이나 ‘동료애’가 보훈정신의 바탕인 호주,국민연대의 주춧돌로 삼고 있는 프랑스와 ‘국가의 혼’으로 여기며 그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데국가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는 일본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안에는 애국·애족정신과 희생정신,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이 모두 담겨 있다.국난극복의 가장 확실한 방안은 바로 보훈정신의 계발과 확산임을 확인한다.
  • 또 색깔론 인가(사설)

    최근 발간된 ‘월간 조선’ 11월호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의 해방전후 인식과 6·25전쟁관을 문제삼고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월간 조선은 ‘崔章集 위원장의 충격적 한국전쟁관’이라는 기사에서,崔교수가 ‘좌파는 혁명적,우파는 반혁명적’ ‘6·25 최대희생자는 북한민중’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며 그의 사상에 의혹을 제기했다.崔교수는 이에 대해 “논문의 어휘와 문장을 의도적으로 문맥과 분리하여 인용함으로써 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모해(謀害)하고 있다”고 반박했다.월간 조선측이 ‘제2의 건국’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으면서도 정작 질문은 崔교수 저작물의 논점을 집요하게 문제삼았다는 것이다. ‘논평은 자유로되,사실은 신성하다’는 게 언론의 대원칙이다.그래서 우리는 월간 조선의 보도태도에서 언론활동을 넘어선 정치공세의 느낌을 받는다.어떤 목적을 갖고 몇개의 단어를 추려내어 ‘끼워 맞추기식’으로 왜곡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사실 입각’이라는 언론의 규범에 어긋나기 때문이다.월간 조선의주장들이 사실이라면 崔교수는 국가보안법에 걸려 감옥에 가도 몇번은 갔을 것이다.따라서 문제를 삼은 일부 표현도 객관적이고 학문적으로 해석을 해야지 극우 냉전적 시각에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한나라당도 즉각 崔교수를 공격하고 나섰다.安商守 대변인은 “崔교수의 6·25관은 우리의 이념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면서 위원장직의 해임을 요구했다.한나라당은 또 崔교수 저서의 요지가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를 부인하고 있어 ‘제2건국’을 위한 정지작업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당 부설 연구소에서 崔교수의 각종 저술을 정밀검토하도록 했다.정부가 崔교수의 사상과 이데올로기에 이끌려 간다면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崔章集 교수는 이론과 실천면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학자다.그럼에도 그에게 집중되는 색깔론 공세를 보며 우리는 金泳三정부 초기 극우 보수세력이 韓完相 당시 통일부총리와 金正男 교문수석을 공격했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보수세력의 일제공격에 밀려 두 사람이 퇴진한뒤부터 金泳三정부의 개혁정책이 좌초하기 시작했으며,특히 대북정책에서 갈팡질팡하는 계기가 됐다.이번에도 극우 보수 반개혁세력은 崔교수를 표적삼아 공격함으로써 金大中정부의 정체성에 ‘색깔’을 덧씌우려 하고 있다.그러므로 정부는 반개혁세력의 공세에 밀리지 말고 소신있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개혁에 실패하면 우리나라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 “6·25전쟁관 등 의도적 왜곡”/崔章集 교수 월간조선 반박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 등 전체문맥과 분리 인용/사상 문제 있는것으로 모해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고려대 정외과)가 21일 자신의 6·25전쟁관 등에 대한 시각을 문제삼은 월간조선 기사에 대한 반박문을 발표했다.崔교수는 이날 13쪽에 이르는 장문의 관련 보도자료를 냈다. 崔교수는 “이 월간지가 나의 저작인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에서 발췌한 ‘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표현 등을 문제삼고 있다”면서 논문 내용이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崔교수는 특히 “논문의 어휘와 문장을 의도적으로 문맥과 분리 인용해 필자의 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모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월간조선은 11월호의 ‘崔章集 위원장의 충격적 한국전쟁관’이란 기사에서 해방전후사 및 6·25전쟁에 대한 그의 해석을 쟁점화시킨 바 있다. 崔교수는 이날 문제의 기사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의 진의를 해명했다. 우선 ‘한국전쟁의 최대 희생자는 북한의 민중이라는 해석’을 걸고넘어진 데 대해 남한 민중의 희생이 더 작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金日成이 최대 수혜자였음을 대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또 ‘(崔교수가)중공군의 개입을 변호했다’고 비판한 데 대해서는 “중국측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공산혁명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학술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묘사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대목의 ‘역사적’이라는 표현도 “긍정적 의미로 사용한 게 아니라 전쟁결정이 한국사회에 지속적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崔교수의 이날 반박문은 일차적으로 특정기사에 대한 반론권 행사의 일환이다.나아가 그의 저작물로 인한 기사가 정치권의 사상논쟁 소재로 비화하고 있는 데 따른 정면대응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 일각에서는 기사 보도 이후 줄곧 崔교수를 집중 성토하고 있다.한나라당은 특히 21일 “崔교수의 책 요지를 보면 대한민국 건국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정책기획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하는 등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 통일외교통상위(국감 뭘 파헤치나:2)

    ◎‘대북 포용정책’ 최대 쟁점/여 유용성·속도조절 부각,야는 미사일대응 등 추궁/금강산관광·국군포로·어협·일 문화개방도 이슈화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여야 의원들은 ‘대북 포용정책’등 종합적인 대북정책의 문제점,금강산 관광사업,국군포로 및 납북억류자 귀환대책,대북 경수로 지원 재원부담,통상조직의 효율성,한·일어업협정 문제에 큰 관심을 갖는다. 이 가운데 ‘포용정책’이 단연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李健介 朴哲彦 의원 등 자민련 의원들은 ‘포용정책’의 유용성과 남북교류의 속도조절 문제를 집중 부각시킨다는 방침이다.한나라당 의원들은 북한이 쏘아올린 물체를 미사일이라고 했다가 인공위성이라고 얼버무린 점 등 정부의 ‘허술한’ 대북정책을 따질 태세다.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민간교류 확대문제도 ‘포용정책’ 추궁의 연장선에서 이슈화될 전망이다.물론 국민회의 의원들은 ‘포용정책’의 방어에 적극 나설 태세다. 통일외교위는 국군포로 및 납북억류자 귀환대책도 철저히 따져나갈 참이다.6·25전쟁때 미송환된 국군포로가 1만9,000여명에 이르고 있는 것을 감안,인도적 차원에서 이들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새로 타결된 한·일어업협정상의 문제점,일본문화 단계적 개방원칙도 지적될 예정이다.국민회의측은 21세기를 앞두고 ‘金大中 대통령의 미래지향적인 결단’이었음을 강조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어민의 피해예측을 집중 파헤친다는 구상이다. 경수로지원사업은 중유지원 등 이미 약속한 ‘대북지원’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비싼 이자를 들여서라도 사업을 성사시키려는 당국의 정책이 옳은지에 포커스가 맞춰질 전망이다. 이밖에 국민회의 李榮一 의원은 탈북자에 대한 관심,외교부 산하 통상기관의 효율성,매너리즘에 빠진 전체 외교부 직원들에 대한 ‘사고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할 방침이다.한나라당 李信範 의원은 역사에 파묻혀가는 일제징용자 현황을 추적중이며,국민회의 金翔宇 의원은 남북협력기금 사용의 부당성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여야 의원들은 또 IMF시대 재외공관의 한국기업수출지원상황,투자유치 실적에대해서도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는 결의다. ◎柳興洙 위원장 辯/“黨利 떠나 국익 중심으로 논의” 柳興洙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한나라당)은 15일 국감운영 방안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당리당략을 떠나 국익을 중심으로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상임위현안이 어느 하나 국익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는 “야당 위원장이 아니냐”고 지적하자 “야당이지만 정부정책을 무조건 비판하지도,무조건 두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인상이다. 이번 국감에는 대북 포용정책,금강산 관광사업,대북 경수로지원사업,한·일어업협정,대미 통상문제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통일부와 외교부를 상대로 한 ‘포용정책’을 가장 치열한 공방대상으로 꼽았다.柳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직접 질의기회를 갖지 못하면서도 ‘일본의 세계정책’에 대한 정책질의를 별도로 할 참이다.일본이 ‘아·태정책’을 ‘유라시아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다. 여야간 행여 있을지 모를 마찰에 대해서도 그는 “경륜이 높은 중진,원로의원들이 많이 계셔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서 “여야간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도 심도있는 토론을 통해 정부정책을 올바르게 바로잡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국군 포로 빨리 송환돼야(사설)

    6·25전쟁때 북한에 끌려갔던 국군포로 張茂煥씨의 귀환은 아직도 북한에 억류돼 있는 국군포로의 송환문제가 시급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45년동안 탄광 등지에서 고생하다 탈출,귀환한 張씨가 함께 지냈던 국군포로 70여명의 명단을 밝히며 이중 40여명은 이미 사망했다고 증언한 것은 포로송환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말해준다. 張씨에 앞서 귀환했던 趙昌浩·양현용씨도 북한에 다수의 국군포로들이 생존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6·25당시 실종된 국군 가운데 3만여명이 포로로 끌려갔고 이중 2,000여명이 생존해 있을 것으로 관계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거나 포로가 된 사람을 기리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 의무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휴전된지 45년이 지나도록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이나 송환을 위한 이렇다할 노력이나 성의를 보이지 않았었다. 94년 趙昌浩 소위의 귀환으로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귀환자의 증언에 따른 명단확인 수준일 뿐 아직도 별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북한에 억류돼있는 국군포로의 송환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송환은 이루어져야 한다. 한 두 사람의 생사를 건 탈출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국가가 할 일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인도적으로도 안될 일이다. 더구나 긴 세월을 포로라는 이유로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지옥같은 억류생활을 하고 있는 생존포로들의 실상이 알려진 이상 이들의 송환은 한시라도 늦출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은 지금도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6·25때 북한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까지 찾아오고 있지 않은가. 張씨의 경우 이미 72세의 노인이 됐다. 張씨와 같이 생존포로들이 모두 고된 억류생활이 아니라 하더라도 여생이 얼마되지 않을 만큼 연로(年老)하다. 송환노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의 하나이다. 정부는 귀환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생존자가 확인되는 대로 북한에 이들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관광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북한과의 직접 접촉과함께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협조를 요청하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조성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억류포로들을 하루빨리 송환해야 한다. 국군포로는 없다고 더 이상 잡아뗄 일이 아니다.
  • 동반자관계 방향 제시/日 국회 연설에 담긴뜻

    ◎불행한 역사보다 1500년 교류역사 강조/아시아의 대일 의구심에 반성­결단 요구 【도쿄=黃性淇 특파원】 8일 金大中 대통령의 일본 국회연설은 한국과의 21세기 동반자 관계 구축에 일본 국민들이 한층 노력해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를 위해 金대통령은 일본은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400년 전 일본의 7년간 한국 침략과 20세기 초 식민지배 35년 등 50년도채 안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이 넘는 교류의 역사를 무의미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대목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이 일본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일본 스스로 과거를 바르게 인식하고 겸허하게 반성하는 결단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일본과 동반자 관계를 쌓아가는데 있어서 한국의 위상에 대한 자신감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金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과 6·25전쟁,전화를 딛고 세계 11번째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점,한국국민 자력으로 민주정부를 실현시킨 점 등을 일일이 강조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세계 경제와 아시아 경제에서 일본이 제 역할을 다해줄 것을 촉구했다.외환위기 직후 일본이 단기외채 연장에 어느 나라보다 많은 노력을 해준 점에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도 일본 투자가들이 한국정부의 노력을 믿고 한국에 적극 투자해줄 것도 함께 당부했다. 아시아 경제를 이끌어갈 두 나라의 보다 대등하고 성숙한 관계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대목이다.실질적인 동반자 관계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 사이비 종교/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사이비(似而非)종교가 인류사회에 끼친 폐해는 막심하다. 그런 가운데 첨단과학을 선도하고 있는 북미지역에서 광신적 교주의 반이성적 신비체험을 앞세운 사이비 신앙이 세계에서 가장 극성을 부리고 있는 사실은 매우 아이로 니컬하다. 또 문제는 이들 그릇된 신앙의 끝은 결국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고 나아가 집단자살과 같은 참극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지난해 3월26일 미국 샌디에이고 근처 랜초 샌타페의 한 호화 주택에서 있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천국의 문’ 신도 39명의 집단자살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들은 모두 ‘하이어 소스’라는 인터넷 웹 제작회사의 컴퓨터 전문가들인데다 “이제 지구에서의 학습기간은 끝났다”며 기쁜 표정으로 진정제와 사과주스를 섞어 마시며 차례로 자살을 결행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며칠 후인 4월 1일 지구에 최접근했던 헤일­보브 혜성을 ‘영생’의 열쇠로 믿었던 것이다. 이는 지난 78년 인민사원 교도 914명이 남미 가이아나 존스타운 정글에서 교주 짐 존스의 주도로 벌인 집단자살극과 지난 93년 텍사스주 웨이코에서 교주 데이비드 코레시가 경찰과 50여일간의 대치끝에 화재를 일으켜 80여명의 신도들을 사망케 한사건,94년 3월 캐나다의 퀘벡과 10월의 몬트리올 및 스위스 남·서부의 두농가에서 벌인 ‘태양의 신’신도들의 집단자살사건과 궤를 같이 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하겠다. 북미지역 다음으로 사이비 종교가 많은 곳이 아시아지역,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와 일본이다. 지난 87년의 ‘오대양 사건’과 92년 ‘영생교도 17명 실종사건’,96년 ‘아가동산 신도살해사건’,95년 일본 ‘옴진리교’신도들의 ‘도쿄지하철 독가스 살포사건’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가윗날 아침 강원도 양양에서 있었던 봉고승합차 화재사건도 광신도들의 집단자살사건으로 밝혀짐에 따라 사이비 종교의 말로가 얼마나 처참한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종말론(終末論)’을 신봉한다. 아울러 절대자(絶對者),즉 유일신(唯一神)을 인정하지 않고 교주 자신이 바로 재림신이라고 주장하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집단이다. 국내에 이런 사이비 종파가 200여개나 되며 ‘인간 하느님’,또는 ‘인간 예수’가 50여명이나 된다는 한 조사결과는 우리의 퇴영적인 종교현실을 잘 말해준다. 사이비 종교의 창궐은 사회가 어수선하고 살기 어려우며 기성 종교가 제역할을 하지 못할 때일수록 심하다. 6·25전쟁 직후와 80년대,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지금이 그런 시절인 것 같다. 올바른 종교의 가르침은 언제나 이성적이며 상식선을 넘지 않는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항상 열심히,착하게 살며 대비하라는 가르침이 있을뿐이다.
  • 金 대통령 국군의 날 연설문

    ◎“과학軍 육성 미래위협 대처”/정예군으로 거듭 나려는 국방개혁 노력 높이 평가 온 국민의 축복 속에 맞이한 ‘건군 50주년’을 경축하며,국군장병 여러분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치신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군은 1948년 창군 당시 소총 하나 만들지 못했던 여건 속에서도 조국수호의 의지 하나만으로 6·25전쟁의 국가위기를 극복하는데 이바지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차와 전투기,그리고 함정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무기들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도처에서 세계평화유지군(PKO) 활동에까지 참여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세계적 강군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군이 이룩한 이러한 공헌을 나는 매우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정부수립 50년과 창군 반세기를 맞은 올해,‘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게 된 것은 우리 군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군이 흘린 피와 땀을 바탕으로 새로운 21세기를 준비하는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오늘날 상호협력과 공동의 이익추구라는 국제사회의 새로운 조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보환경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북한은 계속되는 침투사건에서 보듯이 무력적화통일이라는 대남전략을 변함없이 고수하면서,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외면한채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대립과 긴장을 계속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줄 강력한 안보능력의 확립은 절대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자주적 국방태세를 강화하고,다른 한편으로는 동맹국가와의 안보협력에 주력하여 북한의 침략기도를 좌절시켜야 하겠습니다. 당면한 경제적 국난을 극복하는 일도 안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경제는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될 때만이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국가방위를 책임진 군의 최고통수권자로서 우리 군의 국가방위능력을 더 한층 강화하여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며,불행히 침략이 있을 때에도 초전에 이를 분쇄하는 만반의 자세를 갖출 것입니다. 나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데 우리 군과 함께 신명을 다바쳐 나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점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의 만전의 안보태세를 위한 몇가지 방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튼튼한 안보를 위해서 민과 군이 하나가 되어 총력안보태세를 갖추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과 군이 하나가 되어 조국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그런 자랑스러운 사례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대전은 전후방이 따로 없는 총력전으로서 국가안보에 관한 한,민과 군이 다를 수 없는 시대입니다. 조국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군의 단결과 협력을 더 한층 견고히 해야 합니다. 둘째는 명실상부한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군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으로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하고,모든 연고를 떠난 공정한 인사를 통해 화합과 단결을 이룩해야 합니다. 엄격한 신상필벌로 군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하며,장병의 복지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는 군의 중립과 공정한 인사,신상필벌과 복지향상을 통하여 우리 국군을 세계 최정예의 강군으로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를 피력하는 바입니다. 셋째는 우리 국군은 첨단과학기술의 시대에 걸맞은,앞서가는 군으로서 정보·과학군이 되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의 전쟁은 바로 정보전쟁,과학전쟁,기술전쟁이 될 것입니다. 미래의 안보위협에 적극 대처하고,국방운영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여가기 위해서는 과학화되고 정보화된 국방력을 구축해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넷째는 확고한 ‘한·미연합방위체제’를 바탕으로 주변국들과의 안보협력을 더한층 강화해나가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동북아지역,나아가 세계의 평화와도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한·미연합방위체제를 강화하고 일본과의 협조도 추진하면서,중국·러시아와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간의진정한 관계개선도 확고한 안보태세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안보태세를 바탕으로 지금 ‘국민의 정부’는 지난 50년간 지속되어온 남북한 대결의 시대로부터,굳건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의 평화와 화해,그리고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북한의 무력도발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동시에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배제하고,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겠다’는 대북정책의 3대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대북정책은 지금 전세계가 이를 지지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에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3대 원칙이 명시한 ‘정경분리의 원칙’에 따라 우선 남북간의 경제교류와 협력,그리고 문화 등 가능한 모든 교류를 꾸준히 추진해 나가고자 합니다. 얼마전 북한에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이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함께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북 당국자간의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성실히 이행되기를 희망합니다.우리는 지금 당면한 국난을 극복하고 민족의 재도약을 이룩하기 위한 ‘제2의 건국’을 목표로 삼아,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민의 저력으로 국운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제2의 건국’운동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국정철학을 기초로 21세기 세계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국가혁신작업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방분야의 개혁 또한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군도 21세기의 안보환경에 부응하여 더 한층 강력한 군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제2의 창군’ 정신으로 과감한 자기 개혁을 달성해야 합니다. 나는 국방개혁 추진을 통해 선진 정예강군으로,정보·과학군으로,그리고 경제군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우리 군의 노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오늘 나는 늠름한 국군장병 여러분의 사기충천한 모습을 통해 끝없이 뻗어나갈 조국의 미래를 바라보면서,나의 한없는 믿음과 사랑을 다시한번 여러분에게 보내는 바입니다.
  • 건군 50돌… ‘국민의 군대’ 되기까지

    ◎세계속의 ‘자주强軍’ 급성장/48년 경비대로 출발… 정치개입 오점/평시작전권 환수­장비첨단화에 박차/PKO활동 등 국제평화 수호 큰 기여 1일로 건군 50주년을 맞은 우리 군의 발자취에는 반세기의 나이테 만큼이나 두터운 영욕의 역사가 담겨 있다. 군은 한국전쟁과 월남파병 등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성장,병력 수로만 따지면 중국 러시아 미국 인도 북한에 이어 세계 6위인 69만명의 거대조직을 자랑하고 있다. 군은 그러나 5·16군사혁명과 12·12,5·18사태를 통해 30여년간 이 나라를 통치해온 ‘독재군부’의 온상이라는 오점도 남겼다. ▷국군 50년 역사◁ 우리 군은 48년 9월5일 조선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가 각각 육군과 해군으로 개칭되고 49년 10월1일 공군이 창설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육·해·공군 3군체제를 갖추며 출발했다. 창군 당시 육군은 국방경비대 660명,해군은 100t급 증기선 1척,공군은 수류탄과 폭탄을 손으로 투하했던 경비행기 20대 등 초라한 규모였다. 1945∼1950년까지 건군기를 거친 군은 창군 2년만인 50년 6·25전쟁에서북한의 기습남침에 맞서 백척간두에서 국가의 존망을 걸고 사투를 벌여야 하는 시련기를 맞았다. 유엔군의 6·25 참전으로 작전지휘권을 넘기는 수모도 감내해야 했다. 국군은 53년 휴전과 함께 52년 발효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군사력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4·19와 5·16의 정치적 격변기를 겪으면서 꾸준히 체계를 정비해 65년 이후 월남전에 참전하는 등 용맹성을 내외에 떨쳤다. 70년대들어 朴正熙 전 대통령은 ‘자주국방’정책을 주창하면서 미국 의존도의 군사력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북 억제력 및 자위전력 증강계획에 따라 율곡사업이 착수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93년 소말리아에 공병대를 파병한 이후 앙골라와 서부사하라,인도·파키스탄,그루지야 등에서 유엔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했고 94년에는 한미연합사로부터 평시작전권을 환수받아 ‘세계속의 국군’으로 성장하게 됐다. ▷향후 위상 및 과제◁ 건군 50주년을 맞는 군은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과 통일 한국군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육군은 기존 재래전력 외에 북한의 미사일공격에 대비한 ‘미사일 요격용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는가 하면 전술 지대지미사일(ATACMS)과 227㎜ 대구경다연장 무기체계(MLRS)를 도입중에 있다. 해군은 KDX­Ⅰ(구축함사업)에 이어 KDX­Ⅱ사업과 잠수함 건조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공군은 KF­16전투기를 비롯해 공대공·공대지 미사일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 재일 학도의용군/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30일 상오 인천시 남구에 있는 수봉공원에서는 조촐하지만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앞에서 金義在 보훈처장과 辛容祥 재일대한민국 민단본부장,생존한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있은 ‘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48주년 기념식’이었다. 산책로와 각종 체육시설,어린이 놀이터도 있어 평소에는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공원이지만 이날은 때마침 내린 비로 이들 참석 인사 외에는 관심을 갖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뜻을 기리는 행사장 분위기는 반세기 전,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던 조국을 구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채 현해탄을 건너온 재일 학도의용군들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병역의무가 없었으나 죽음을 각오하고 자진 참전한 교포 청년·학생들이었다. 중동전에 참전했던 이스라엘 유학생들보다 17년이나 앞선 근세 최초의 자진참전이다. 이스라엘이 그들 유학생들의 참전정신을 민족이념으로 정해 생활의 좌표로 삼고 있듯이 이들보다 훨씬 빨리 달려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재일 학도의용군의 정신은 훨씬 값진 것으로 재평가돼 계승되어야 마땅하다. 이들의 참전정신은 바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조국을 구하기 위한 애국정신이요 멸사봉공(滅私奉公)정신이며 민족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바친 살신성인(殺身成仁)정신이다. ‘6·25전쟁 이후 최대 위기’로 표현되는 지금,‘제2의 건국’을 선언한 우리로서는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지탱할 수 있는 기둥 정신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해외에서 전화(戰火)에 휩싸인 조국으로 달려오는 순간,유학 등 갖은 명목으로 조국을 떠났던 사람들이 있었듯이 오늘도 병역기피,뇌물수수,사치스런 생활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무리들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청소년들은 나약할대로 나약해져 전쟁이 일어나면 해외로 달아나겠다고 하고,걸핏하면 가출이요 자살이다. 이들에게 재일 학도의용군들의 호국·애족정신은 분명 귀감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미우호협회가 주는 ‘제 3회 한미 우호상’을 수상하기 위해 내한한 레이먼드 데이비스 미국 예비역 해병대장은 6·25전쟁에 참전해 큰 공을 세운 역전의 용사다. 그는 “한국전과 2차 세계대전,월남전 등 모든 전쟁은 준비하지 않아 당했으나 철저히 준비한 걸프전에서는 큰 피해가 없었다”면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강조했다. 대비하지 않아 처참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았던 우리로선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리고 재일 학도의용군의 정신을 되새기며 위기의 오늘,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겠다.
  • 국군포로 또 생환/장무환씨 45년만에 脫北

    국가안전기획부는 30일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북한에 억류됐던 장무환씨(72)가 최근 북한을 탈출,제3국을 거쳐 인천항을 통해 귀환해옴에 따라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안기부에 따르면 장씨는 휴전을 앞둔 지난 53년 4월 국군에 입대한 뒤 7월 보병 22연대 하사로 강원도 김화지구 전투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됐다. 그후 북한으로 옮겨져 국군 포로들이 집단 수용된 함북 아오지수용소와 탄광 등지에서 생활하다 지난 8월 북한을 탈출,45년만에 조국의 품에 안겼다. 북한 억류 국군포로의 귀환은 94년 10월 趙昌浩씨,97년 12월 梁珣容씨에 이어 세번째다. 張씨의 가족으로는 고향인 경북 울진군 매화리에 부인 朴順南씨(68)와 포항에 사는 아들 영욱씨(45·포철 크레인기사)가 있다. 張씨는 지난달 탈북 후 중국에서 부인 및 아들과 감격의 재회를 했다.
  • 대중음악(한국문화 50년:11·끝)

    ◎60년대 금지곡 양산… 최대위기/최근 랩·댄스 주류로… 日 가요 상률 초읽기 우리 대중가요의 빈약한 하드웨어를 채운건 해방의 감격과 정부수립 의욕이었다. 레코딩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귀국선’‘고향만리’등 대중가요로 시름을 달랬다. 6·25전쟁은 소프트웨어를 바꾸어 ‘전우여 잘자라’‘전선야곡’‘단장의 미아리고개’ 등 전선주제 노래들이 폐허의 서러움에서 피어났다. 60년대에는 미8군무대 출신 가수들의 팝음악은 트로트 일변도의 풍속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노란샤쓰의 사나이’의 한명숙,현미,최희준,패티김,신중현 등이 활약했다. 하지만 대세는 트로트였다. 50년대 후반 ‘열아홉 순정’으로 명성을 얻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안개낀 장충단공원’의 배호,‘빨간 구두 아가씨’의 남일해가 뒤를 이었다. 이 흐름은 70년대 나훈아·남진 라이벌시대를 거쳐,80년대 주현미 송대관 태진아 등으로 맥을 이었다. 5·16군부정권은 62년 방송윤리위원회에 칼을 댔다. ‘동백아가씨’를 비롯, 수많은 곡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돼 가요계의 위기를 맞는다. 누르면 튀는게 청년문화. 70년대의 암울함을 청바지와 통기타·장발로 상징되는 포크음악은 억압을 참을 수 없었다. 한대수를 비롯해 서유석,김민기,양희은,송창식 등이 포크선풍으로 자유의 몸짓과 대항문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들이 공안당국의 괘씸죄에 걸리고 설상가상으로 70년 중반 ‘천재적 아티스트’ 신중현 등이 대마초사건에 휘말리면서 대중가요는 침체일로를 걷는다. 80년대는 조용필의 시대.70년대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스타는 대마초 은둔의 세월을 보상하려는듯 ‘창밖의 여자’로 한을 푼 뒤 80년대 중반까지 가요계를 휩쓴다. 변진섭·신승훈 등의 발라드로 문을 연 90년대는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풍으로 새 국면을 맞는다.‘난 알아요’로 시작된 노도 앞에서 가요사는 새로 씌어진다. 랩·댄스뮤직이 주류로 떠오르고 10대가 소비시장의 주고객으로 등장한 것이다. H.O.T,젝스키스,영턱스 클럽,지누션 등의 댄스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왜색·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대중가요는 여전히 백척간두의 앞날을 맞고 있다. 일본 대중가요의 공식적인 ‘한국상륙’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개방을 앞둔 대중음악의 제일 큰 과제다.
  • 간신 가득한 궁궐(秘錄 南柯夢:22)

    ◎대신들 아첨만… 큰 인물 없어 끌탕/러 함대 일에 패하자 관리들 월담도주/전 비서승 추천으로 거창유생 천거/대신들 “공연한 짓 벌인다” 정에 십자포화/난국타개 기대 걸었으나 일반론만 아뢰 1894년 일제는 우리나라에 동학란이 일어난 것을 기화로 청일전쟁을 도발하였는데 그때 일거에 한국을 집어삼키려 했으나 실패했다.그뒤 일제는 호시탐탐 침략 야욕을 불태워 오더니 청에 이은 제2의 가상적인 러시아와 담판을 벌였다. 담판에서 일제는 먼저 한반도 분단안을 제시하였다.일제가 제시한 분단안은 38도선 안이었고 러시아가 제시한 안은 39도선안이었으니 남의 나라 국토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제국주의국가들끼리 주인 몰래 어떻게 토막낼까 흥정을 했던 셈이다. 1902년 마침내 일제는 영국과 동맹을 맺어 영국의 지원을 받아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대한제국 황실(덕수궁)에서는 그런 음모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전쟁발발에 대비도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거기에다 궁안에는 나라 생각은 티끌만치도 하지 않는 간신배들로 가득차있었다.1904년 2월6일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궁안에 있던 대신들은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어떤 대신은 덕수궁의 수채구멍을 통해 도망쳤다. 갑진년(1904년)에 일본과 러시아가 인천항에서 포격전을 벌여 대포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탄환이 비오듯 하니 러시아함대가 패하고 말았다.이때 궁안은 물론 장안의 사람이 모두 도망치고 구중궁궐이 텅빈 집이 되었다.의정대신 모씨는 몰래 궁중의 수채구멍으로 빠져 나갔고 그밖의 대소 입직관리(立直官吏)들은 궁성의 담을 넘어 도망쳐 나갔다. 얼마나 한심한 이야기인가.돌이켜 보면 1806년 병인양요 때 그러했고 1876년 강화도사건 때 그러했으니 1904년이라 해서 고위 관료들이 용감해졌을리 없다.심지어 1950년 6·25전쟁때도 고위관리들이 대통령을 모시고 서울시민을 버려둔채 남으로 도망쳤는데 지금이라고 해서 나라를 살리는데 앞장설 관리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렇다면 1904년 대한제국의 권부였던 덕수궁에는 어떠한 관리들이 고종을 보필하고 있었을까.생각해보면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 임금을 속이고 자리를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때를 당해 나(정환덕)는 엎드려 아뢰기를 “궁내참서(宮內參書) 이인순(李仁淳)은 평소 말하기를 우선일휘(羽扇一揮:부채를 한번 흔드는 모양)면 바다위에 뜬 군함도 산산조각 낸다고 했아옵고 영선사장(營繕司長) 최병주(崔炳柱)도 겨드랑에 몇 사람을 끼고 광화문을 뛰어 넘는다고 호언장담했아온즉 이같이 위급한 때에 한번 불러보시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였다.이에 폐하께서 두 사람을 부르셨는데 가서 보니 벌써 도망가고 없었다. 러일전쟁은 을사조약의 치욕을 가져오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문자 그대로 백척간두에 서있던 때다.이러한 때야말로 큰 인물이 필요했다.그러나 어디 큰 인물이 그리 흔했던가.모두가 사기꾼 뿐이었으니 임금님께 ‘이 사람이면 됩니다’ 하고 자신있게 천거할 인물이 없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전 일이었다.하루는 영남의 유학자 면우(傘宇) 곽종석(郭鍾錫 1849∼1919)을 추천하는 사람이 찾아 왔다. 전 비서원 비서승(秘書院 秘書丞)강봉조가 찾아와 말하기를 “지금 나라일이 날로 어려워져 가는데 내각대신이란 것들은 임금님께 아첨만 하고 간사스럽기가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그들의 뱃속에 경륜이 있다면 오로지 재물을 탐해 자기를 살찌게 하는 것 뿐이라 한 사람도 임금님께 충성하고 나라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없습니다.이래서야 어찌 나라가 보존될 수 있겠습니까.영감도 수수방관,황상의 눈치만 살피지 마시고 어진 인재를 추천해 은총에 보답하기 바랍니다. 원래 ‘교목세록의 신하’(喬木世綠之臣:대대로 卿宰相을 지낸 집안)와 ‘고량진미의 자손’(膏粱眞味之子孫:돈많은 사람의 자손)은 오로지 영화누리기에 급급하고 시국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재물을 탐하고 나라를 해치려 드는 탐재해국(貪財害國)하는 놈들이라서 세상을 구제할 인물이 날 수없습니다.그러니 천상 바위틈에 숨어지내는 재야인사들을 발탁해서 난국을 타개할 수 밖에 없는데 경상도 거창땅에 사는 곽종성(郭鍾錫)이란 자가 그런 사람입니다” 정환덕은 대답하기를 “오늘같은 난세에는 경천위지의 재(經天緯地之才:천지를 꾸려가는 인재)라 하더라도 역부족이라 하겠는데 시골에서 문학만 공부하는 일개 서생이 난국을 감당할수 있겠습니까.이 노인(곽재우)이 지난날 갑오경장(1894년)때 쓴 포고문을 읽어 보았는데 한낫 문구(文句:즉 글귀)일 뿐 나라에 유익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강봉조가 굳이 천거하기를 요구하는지라 정환덕이 이를 못이겨 고종에게 곽종석을 천거했다. 황상께서 “누구인가” 물으시니 “곽종석입니다”고 하였다.그러자 “일본을 반대하는 사람인데 부르면 나와 일해 주겠는가” 하고 다시 물으시니 “대한의 신민으로 어찌 폐하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고 아뢰었다. 이렇게 해서 곽종석이 영남에서 올라오게 됐는데 이때 고종이 영호남 인재를 고루 등용한다는 원칙을 새워 호남의 두 인물 기우만(奇宇萬)과 전우(田愚)를 천거하게 했다. “곽종석 한사람을 불러 등용할 것이 아니라 삼망(三望:세사람을 천거하여 하나를 고르는 것)이 옳다 하겠으니 호남에서 인망이 두터운 전우와 기우만을 적어 올려라” 하시었다. 그러나 조정대신들은 입을 모아 “어느 놈이 또 이러한 인물을 끌어내었는가” 하며 다들 욕하였다.심지어 황태자 순종은 정환덕에게 “너는 다시 곽종석에 대해 말하지 말라.조정의 대신들이 모두 너를 원망하고 있으니 모름지기 조심하고 조심하라”고 하셨다.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진 뒤라서 곽종석은 어명을 받들어 상경하게 되었다. 곽종석이 황공하여 서둘러 상경하였다.곽종석은 덕수궁 함녕전 동반침(東半寢)에 입대했는데 예가 끝난 뒤 황상께서 물으시기를 “경은 임진란때 의병장이었던 곽재우(郭再祐)의 몇대 손이 되는가”고 하시니 “11대 방조(傍祖)입니다”라고 대답했다.이에 황상께서 “오랫동안 경의 이름을 듣고 있으나 이제야 비로소 만나게 되니 다행이다” 하시면서 “지금 이 나라의 형세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하여 승평의 날이 오겠는가”고 물으셨다. 이에 곽종석이 다시 아뢰기를 “폐하께서는 신의 허명(虛名)을 잘못 들으시고 이와같이 운하(雲霞:궁궐)에 오게 하셨으니 황공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신이 오랫동안 초야에 묻혀온 몸이라 아는 것이 없사오니 어찌 나라일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까.그러나 감히 말씀드린다면 지금 나라 운명을 바야흐로 치세에서 난세로 들어서고 있사오니 폐하께서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시고 간신은 멀리 하시며(親賢遠奸) 마음을 밝게 가지시고 욕심을 삼가하시며(淸心寡慾) 위를 덜고 아랫것들에게는 이익을 더해 주시고(損上益下) 애민절용(愛民節用)하시면 나라의 근본이 튼튼해질 것입니다.엎드려 바라옵건데 지방에서는 간사하고 교활한 아전들의 횡포를 막으시고 착한 수령방백(守令方伯)을 임명하시고 중앙에서는 내각대신으로 하여금 각기의 소임을 다하게 하시고 폐하께서는 독서를 게을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반론으로는 난국을 타개하기가 어려웠다.그러니 곽종석 기우만 전우는 물론 이밖의 어떤 거유(巨儒)가 나온다해도 이미 때가 늦어 나라를 구하기 어려웠다 할 것이다.도국병민,나라가 좀 먹히고 국민들이 병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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