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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전 해외용사 194만명·물적원조 4조5900억

    6·25 전쟁 때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얼마나 지원을 받았나. 정부는 194만여명의 해외 참전용사와 현재가치로 4조 5900억원에 해당하는 물적원조가 6·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국방부는 지난달 10일 6·25전쟁 당시 지원국이 모두 63개국이라고 공식 확정했다. 직접 참전한 16개국 외에도 노르웨이 등 의료진을 파견한 5개국, 물자를 지원한 39개국 등이 포함된다. 군 관계자는 “당시 세계 독립국 93개국 중 64.5%가 대한민국을 지원한 셈”이라고 말했다. 병력을 지원한 16개국은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룩셈부르크다. 참전인원은 194만여명에 달하고 이들 중 4만 4783명이 전사 또는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178만 9000명이라는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낸 미국은 3만 6940명이 전사하고 3737명이 실종됐다. 에티오피아는 3518명이 참전해 121명이 전사했다. 국방부는 전 세계 6·25 참전용사 중 53만여명이 현재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참전국들이 유엔의 깃발 아래 편성됨에 따라 구호와 재건지원도 유엔군의 이름으로 이뤄지게 됐다. 정부는 전쟁기간 구호원조 총액이 1953년 기준으로 4억 7190만 달러에 달한다고 평가한다. 이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9억 8856만 달러(약 4조 5900억원)에 해당한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국방부 ‘유가족 찾기팀’ 신규 편성

    국방부는 6·25 전쟁 62주년을 맞아 유해발굴감식단에 ‘유가족 찾기팀’을 신규 편성하고 다음 달부터 조직을 본격 가동할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군 관계자는 “6·25 전쟁 전사자는 13만 7899명으로 공식 발표했지만 당시 전사자 중 2만여명은 병적자료가 부실했다.”면서 “이들은 최근까지 유가족을 찾지 못함에 따라 전사통지를 못하고 60여년간 보훈조치를 유보해 왔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에서 유해발굴과 더불어 유가족 찾기를 2대 중점 사업으로 선정하고 추진했으나 130여명을 찾는 데 그쳤다. 이후 2009년에는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단이 창설되면서 이를 재개해 유가족 1921명에게 전사통지서를 전달했다. 군은 이후 육·해·공군에 16명의 전담요원을 두고 유가족 찾기에 나섰지만 이들이 3개월 단위로 근무하면서 업무의 영속성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 업무를 전담할 계약직 군무원 10명으로 새 팀을 편성한 것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KBS1, 6·25 특집 풍성

    KBS 1TV가 6·25전쟁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오는 28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6·25 기획특집 ‘역사스페셜’에서는 ‘또 하나의 전쟁-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기록’을 내보낸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장례를 치러주고 징계를 받았던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진중수기를 통해 후방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참상을 조명한다. ‘KBS스페셜’은 24일 오후 8시 6·25기획 ‘허시 형제 이야기-캐나다판 태극기 휘날리며’를 방송한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투 중 사망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형 조지프 허시의 무덤에 묻히고 싶어서 유골로 한국을 찾은 아치 허시의 이야기 등 이역만리에서 피어났던 형제애를 소개한다. KBS 1TV는 25일 오전 10시 전쟁기념관에서 진행되는 제62주년 6·25전쟁 기념식을 중계한다.
  • [21일 TV 하이라이트]

    ●6·25 역사스페셜(KBS1 밤 10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개전 이틀 후인 6월 27일, 한 미국인 여성 종군기자가 전쟁의 심장부인 서울로 잠입한다. 그의 이름은 마거리트 히긴스이다. 미국 일간지인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극동지국장인 그는 6·25전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자였는데…. ●맨발의 꿈(KBS2 밤 1시 25분) 원광(박희순)은 한때 촉망받는 축구선수였지만, 지금은 사기꾼 소리를 듣는 전직 스타다. 이제 원광이 인생역전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곳은 내전의 상처로 물든 동티모르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커피장사로 대박을 꿈꾸던 그는 다시 사기를 당하고, 대사관 직원 인기(고창석)는 전직 스타에게 귀국을 권한다. ●주얼리 하우스(MBC 밤 11시 15분) 야구선수 이종범이 금가루를 뒤집어쓰고 탈의한 채 사진을 찍었던 일명 ‘금종범 사건’의 전말을 공개한다. 그리고 과거 가수 양수경, 선동열과 함께 앨범을 발매한 경험이 있는 그의 노래실력을 들어 본다. 또한 그의 극성 스타야구팬 김창렬과 야구사를 뒤흔들었던 김성한 감독이 깜짝 등장해 그동안 못다한 야구 이야기를 펼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SBS 밤 8시 50분) 채식주의 붐은 더 이상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채식주의 스타들마저 굴복시킨 별난 채식주의자가 살고 있다는 서울의 한 아파트. 입구부터 짖어대는 강아지들 때문에 좀처럼 들어설 수가 없다. 채소에 죽고 채소에 산다.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하는 채식주의 견(犬) 뽀송이와 보들이를 소개한다. ●달라졌어요(EBS 밤 7시 35분) 35년의 결혼생활, 황혼의 여유를 만끽하며 살아야 할 부부에게서 냉기가 흐른다. 두 딸을 출가시킨 뒤, 막내아들과 함께 지내는 부부. 15년 동안 백수였던 남편과 30대에 들어선 백수 아들. 바뀌지 않는 현실 때문에 이제껏 가족을 지탱해 오던 아내의 분노는 폭발하고 마는데…. 과연 이 가족에게 행복한 미래는 있는 것일까. ●건강버라이어티-올리브(OBS 밤 11시 5분) 주식으로 방송까지 꿰찬 개그맨 김수용. 과거 다시마에서 대체연료가 개발된다는 지석진과 김용만의 말에 넘어가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이어 한 번에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란 허황된 꿈은 버리고, 1년에 20%의 수익만 나도 성공한 투자라며 10여년간 익힌 투자 노하우를 공개한다.
  • 전문가 450명 미군유해 8만여구 추적

    세계 도처에서 수시로 전쟁을 하는 미국은 유해발굴의 의지와 예산, 기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군 유해발굴을 총괄하는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는 2003년 하와이의 히컴 공군기지 안에 창설됐다. 이 부대의 임무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 등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 8만 8000여명의 유해를 찾아 유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실종 경위와 위치를 파악하면, 고고학자와 군 전문요원들이 발굴작업에 착수하고, 발굴한 유해나 유품을 하와이의 사령부로 보내 인류학자가 중심이 돼 신원 확인을 하는 식이다. JPAC는 육·해·공군, 해병대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 등 450여명으로 이뤄졌으며 18개 발굴팀이 있다. 팀당 인원은 10~14명이며, 대위급 팀장에 폭발물 해체 전문가, 시신 담당 전문가, 발굴 기록 담당관, 의사, 통역관, 무전담당 등 다양한 역할의 팀원으로 구성된다. 발굴한 유해는 하와이 JPAC 부대 안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중앙유해신원확인소’(CIL)에서 신원 확인에 들어간다. JPAC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미군 유해를 찾아내기 위해 태국, 베트남, 라오스, 유럽, 파푸아뉴기니에 분소를 두고 있다. JPAC는 ‘당신이 조국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는다’,‘한 사람의 병사도 적진에 남겨두지 않는다’ 등의 모토 아래 단 한 구의 유해라도 찾기 위해 오늘도 베트남의 정글, 중동의 사막 등지를 누비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학도병 30명 발굴했을 때 가슴 아파”

    “학도병 30명 발굴했을 때 가슴 아파”

    “우리 부대원들은 0.1%의 확률을 100%로 만들기 위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20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내 청사에서 만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박신한(55)대령은 자신의 임무를 이렇게 소개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설립은 어떻게 이뤄졌나. -지난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시작했다. 애초에 국무총리령으로 3년만 진행하는 한시적 사업이었고 전군 장병 중 인류학이나 고고학 전공자들을 모아 시작했다. 이후 이 사업의 의의가 크다고 판단해 2004년 육군본부에 전사자 유해발굴과가 생겼고 2007년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승격됐다. →오랫동안 사업을 맡으면서 잊지 못할 발굴 현장은 무엇인가. -지난 2007년 4월 경남 하동 화개장터 지역에서 6·25전쟁 때 집단 매장당한 학도병 30명을 발굴했는데 교복을 입은 유해가 나왔다. 만년필, 학교 모표 같은 유물들이 나왔는데 전사자들이 베로 만든 탄띠를 두르고 있었다. 탄띠에는 미처 쓰지 못한 M1소총 탄 클립이 9개씩 들어있었는데 이들은 총 한번 못 쏴 보고 전사한 것이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리비아에 유해발굴과 감식 노하우를 전수한다는데 의의는. -리비아 국민이 650만명인데 내전과 카다피의 철권통치로 인한 실종자가 5만명이 넘는다. 과도정부가 전사자 유해발굴 시스템을 구축한 한국의 경험과 기술을 높이 평가해 정식으로 요청하고 8월부터 본대를 파견한다. 이는 우리 유해발굴감식단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20-50 클럽 대한민국, 이제 보훈을 말한다] (중) 13만 호국영령의 恨

    [20-50 클럽 대한민국, 이제 보훈을 말한다] (중) 13만 호국영령의 恨

    지난달 25일 북한지역에서 발견된 이갑수·김용수 일병의 유해가 62년 만에 귀환한 드라마 같은 사건은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이후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목숨 바쳐 싸운 호국영령들에 대한 또 다른 보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6월 들어 DNA 시료 채취에 참여하는 유가족 수가 이전보다 3배가량 늘었다.”며 “매일 60여명의 유가족이 채혈을 문의해 업무에 전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13만구로 추정되는 참전용사들의 유해는 지금껏 어두운 전투현장에 잠든 채 한을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발굴이 시작된 뒤로 지금까지 찾은 국군 전사자 유해는 6월 현재 6598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79구가 신원이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올해 목표치를 1300구 이상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부족한 자료와 인력으로 인해 발굴과 감식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유해 발굴 대상 지역은 현지 주민이나 참전 군인의 증언, 전투기록을 토대로 결정한다. 국토의 70%가 산악지형인데다 전투가 주로 산에서 벌어진 탓에 발굴작업은 주로 높은 산에서 이뤄진다. 이를 위해 발굴 현장까지 매일 최소 2~3시간씩 걸어 올라가야 한다. 주경배 발굴과장(중령)은 “보통 100~150곳을 파야 1곳에서 유해가 발견될까 말까 한다.”며 “지난해 대원들과 올라간 높이를 합하면 9만 1000m로 에베레스트산을 11번 등반한 셈”이라고 말했다. 일단 유골을 발견하면 한 구를 수습하는 데는 보통 4~5시간 걸린다. 땅 속에 묻혀 있던 유골이 비에 젖거나 위치를 표시하는 석회가루가 묻으면 DNA 샘플이 오염돼 신원 확인이 어렵다. 강한 햇빛을 받으면 유골에 있는 칼슘 성분이 하얗게 되면서 푸석푸석해져 가급적 유골을 서둘러 수습해야 한다. 주 과장은 “국군과 북한군, 중공군은 유골 모양만 봐서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꺼번에 넓적다리뼈나 정강뼈가 여러 개 발견돼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함께 발견된 유품을 100% 신뢰할 수도 없다. 실제로 국군이 사용하던 탄약을 북한군이 사용한 경우도 많아 유품을 100% 신뢰할 수도 없다. 유해발굴감식단이 유가족의 혈액 채혈과 DNA샘플 검사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DNA비교검사로 전사자의 8촌 이내 가족이면 유골의 신원을 밝힐 수 있다. 국방부는 2003년부터 2만여명의 DNA 자료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김종성 감식과장(중령)은 “의료기록 등이 없어 전사하신 분들의 정보가 빈약한 것이 문제”라며 “6·25전쟁 초기에는 병사들의 인식표 보급도 잘 이뤄지지 않은 만큼 유가족들의 더 많은 참여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부족한 인력도 문제다. 유해발굴감식단은 189명의 인력으로 구성돼 있지만 실제로 발굴에 참여하는 인원은 8명으로 구성된 8개팀 64명이다. 감식을 담당하는 감식요원은 10명이다. 1300구의 유해 발굴을 목표로 한다면 감식요원 1인당 연간 130여구의 유해를 감식해야 한다. 군 관계자는 “현재 감식단의 인력은 연간 600여구를 발견할 것이라고 추정해 맞춘 수치”라고 말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의 예산은 연간 72억원에 불과하고 감식비용이 절반을 차지한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미국에 있던 우리나라 미술품 친정나들이

    미국에 있던 우리나라 미술품 친정나들이

    중국 것으로 알려졌다가 고려 불화로 밝혀진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의 ‘아미타불과 지장보살도’를 비롯해 ‘청자 꽃 새 무늬 매병’, ‘청자 앵무 무늬 정병’, ‘달항아리’ 등 미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전통 미술품들이 친정 나들이를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열고 있는 ‘미국, 한국미술을 만나다’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9개 기관의 86점 전통미술품을 소개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미술품을 본격적으로 수집한 것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면서부터다. 미국인들은 고려청자에 관심이 많았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미군정과 주한 미군 관계자들이 한국 미술품을 폭넓게 수집했다. 특히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수집이 쉬웠다고 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선 이름 있는 수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1892년 보스턴미술관이 일본 미술품 수집가인 에드워드 모스(1838~1925)로부터 구입한 청자 꽃 새 무늬 매병, 선교사 언더우드 가문이 브루클린박물관에 기증한 청자 연꽃무늬 주자(조선왕실이 언더우드 가문에 기증한 것으로 추정), 세브란스 병원 설립을 후원했던 루이스 세브란스(1838~1913)의 아들인 존 세브란스(1863~1936)가 기증한 클리블랜드미술관의 청자 앵무 무늬 정병 등이 전시된다.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 백자 복숭아 모양 연적과 하버드미술관 핸더슨 컬렉션의 바퀴 달린 잔은 6·25전쟁을 전후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소장품이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 미술 수집의 활성화를 가져온 에이버리 브런디지(1887~1975)의 기증품이다. 2부는 미국 주요 박물관의 한국 미술품을 한국실 설치연도에 따라 박물관별로 전시했다. 미국의 박물관들은 19세기 후반부터 한국 미술품을 소장했으나, 한국 미술품이 독립된 공간에 전시되기 시작한 것은 1927년 호놀룰루미술관이 처음이다. 대표 유물로는 청자 연꽃 넝쿨무늬 주전자, 목조동자상, 석가설법도가 있다. 브루클린박물관의 유물로는 스튜어트 큘린이 1913년 수집한 인궤(印?)를 비롯해 1980년대 소장된 ‘한익모 초상’과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등이 있다. 이 밖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이 2000년과 2005년에 각각 구입한 계산목우도(溪山牧牛圖),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소장품 가운데는 통일신라 절정기 양식의 금동불 입상과 청자 주전자가 전시된다. 19세기 말부터 한국 미술품을 수집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전시품으로는 청자 구름 학 무늬 매병과 소상팔경도의 연사모종(煙寺暮鍾), 동정추월(洞庭秋月)로 알려진 ‘산수도’ 등이 있다. 8월 5일까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20-50클럽 대한민국-이제 보훈을 말하다] (상)갈 길 먼 보훈행정

    [20-50클럽 대한민국-이제 보훈을 말하다] (상)갈 길 먼 보훈행정

    제2연평해전 전사자인 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준(55)씨는 국가로부터 일시금으로 3150만원을 받았다. 이와 함께 유족연금 등의 명목으로 매월 103만원씩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군 유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국은 전사 후 24시간 이내 10만 달러의 조의금을 유족에 지급한다. 또 현역 군인은 자동적으로 생명보험에 가입돼 보험금 40만 달러를 추가로 받는다. 일시금으로만 50만 달러(약 5억 7000만원)를 받는 것이다. 군인 연금은 이와 별도다. 배우자에게 매월 1150달러가 지급되고 18세 미만의 자녀가 있을 경우 1인당 286달러가 추가된다. 이와 같은 차이는 한·미 보훈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우리 보훈 행정은 지난 1961년 군사원호청, 지금의 국가보훈처가 창설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6·25전쟁 발발 62년, 보훈처 창설 51년이 지난 지금도 참전용사 등 많은 보훈대상자가 사회적 무관심과 소외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지난해에는 보훈처가 6·25전쟁에서 가족의 전사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유족들에게 5000원씩 지급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에 비해 갈 길 먼 보훈의식은 정부와 국회의 소극적 태도와 보훈 당국의 낮은 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상이용사가 아닌 6·25전쟁 참전자들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2001년에야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참전자의 명예 선양 차원에서 18만 6000여명에게 월 12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한국보훈학회 명예회장인 유영옥 경기대 교수는 “중국도 참전용사에게는 노동자 평균 월급보다 많은 월 15만원 이상을 지급한다.”며 “참전용사 대부분이 세상을 뜬 이후라 뒤늦은 감이 있고 실질 혜택도 적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이어 “정부가 전쟁 직후 참전자와 상이용사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국민이 무관심해진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유공자 보상금 인상 수준이 물가인상률보다 낮아 실질적 혜택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이 4.4%인 데 비해 보훈급여금의 인상률은 4%에 불과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현재 부족한 보상금 수준을 전국 가계소비지출액과 맞추기 위해서는 매년 물가상승률 이상의 인상이 필요하나 문제는 재원”이라고 지적했다. 부족한 재원 문제는 우리 보훈 당국의 낮은 위상에 기인한다. 국가보훈처의 올해 예산은 3조 9000억원으로 정부 예산의 1.7%에 해당한다. 보훈대상자 88만명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미국의 보훈 담당인 ‘제대군인부’의 경우 정부 예산의 3.7%인 1250억 달러(약 145조원)에 28만여명의 직원들이 있다. 조직 규모로만 따지면 연방 정부 부처 중 국방부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인구 규모가 우리의 절반인 호주의 제대군인부도 약 14조원(정부 예산의 3.3%)을 운용한다. 국가보훈처의 위상은 정권교체 때마다 달라졌다. 보훈처는 지난 1962년부터 장관급 기관이었으나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차관급으로 격하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다시 장관급으로 승격되었으나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차관급으로 내려 왔다. 유 교수는 “국무회의에서 발언권이 없는 차관급에 보훈처장을 맡긴 것 자체가 역대 정부의 보훈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미국이나 호주, 이스라엘의 보훈부는 모두 장관급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한·미 통합화력훈련 22일 역대 최대 규모

    우리 군과 미군이 6·25전쟁 62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의 통합화력전투 훈련을 실시한다. 국방부는 22일 경기도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주관으로 우리 군의 확고한 군사대비태세와 전투의지를 확인하는 한·미 연합 통합화력훈련을 실시한다고 18일 밝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단색화 대가의 일탈, 色의 향연

    단색화 대가의 일탈, 色의 향연

    한평생 단색화에 힘써온 작가다. 그런데 빨간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빨간이 아니라 ‘빠~알간’ 정도 된다. 예사롭지 않다 싶더니 최근작이 ‘이후접합’ 시리즈라며 선보이는데 색깔이 화려하다. 가로 4m 88㎝에 이르는 작품도 있다. 솔직히 화려해서 좋다기보다는 77세의 나이로 저 넓은 데다 저 많은 색들을 다 칠하려면 엄청나게 고생했겠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데 표정은 아주 신났다. 그림을 두고서는 “만선의 기쁨을 표현했다.”한다. 그렇게 신나고 좋은데, 그간 저 많은 색 부리고 싶어 어떻게 참았을까. “아니 뭐, 평생 도 닦은 거죠. 크하하하.” 작품이 만선의 기쁨이라더니, 웃음은 만선 어부의 그것이다. 8월 12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하종현 작가. “내 작품에 한국 현대사가 녹아 있다.”는 말도 괜한 뻥은 아니다. 초기엔 앵포르멜 화풍을 따랐다. 6·25전쟁 이후 피폐한 상황에서 어둡고 기괴한 느낌의 그림을 그렸다. 너무 답답했던 나머지 이런 흐름을 깨고자 1967년 화려한 색의 기하추상화를 처음 시도했다. 실컷 첫 테이프를 끊어놓고 남들이 기하추상을 그리기 시작하자 정작 작가는 다시 단색화로 돌아왔다. 1970년대 유신정권 때문이다. 마포를 구해다가 그 뒤에서 물감을 밀어넣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캔버스 위에 그린다’는 미술 상식을 깨버린 것. 이게 접합 시리즈다. 평론은 물질이 어쩌고 그러는데, 밑바닥 사람들의 피눈물 같은 느낌이 든다. 가끔 작품에다 철조망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1973년 작품은 아예 캔버스를 뒤돌려 세운 뒤 철조망으로 감싼 형태로 만들었다.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울분이요 저항이다. 그 뒤 접합시리즈를 변용, 발전시키다 2008년 딱 접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작업 4점을 골라 뒤집은 뒤 철조망으로 감싼 작품을 내놓은 게 그 선언이었다. 이제 이런 거 말고 다른 거 해 보겠다는 선언이었다. “내가 못 해 본 게 뭐 있나 봤더니 색이었어요. 이제 한번 마음대로 써보자, 10년 잡고 있습니다. 뭔가 새로운 걸 내놓을게요.” 작가의 여정을 쭉 확인해볼 수 있다. 2000원. (02)2188-60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기고] ‘6·25 남침전쟁’으로 재명명해야/김희철 육군 소장·육군본부 정책실장

    [기고] ‘6·25 남침전쟁’으로 재명명해야/김희철 육군 소장·육군본부 정책실장

    북한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왜곡한다. 종북세력들은 그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여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며, 이를 방해한 미국은 민족의 원수라고 규정한다. 누굴 위한 조국해방전쟁이었으며, 누굴 해방했단 말인가? 1950년 6월 25일 남침한 북한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 달 만에 남한의 92%를 적화했다.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북한군과 남한 내 좌익세력은 친미·친일·우익세력 등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당시 남한에는 세 부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12만 2000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무자비하게 학살됐다. 이는 난징 대학살, 바르샤바 게토(Warsaw Ghetto)의 유대인 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정도다. 혁명의 주력군이라며 치켜세웠던 하층민도 마찬가지였다. 머슴은 악덕 지주의 앞잡이로, 노동자는 자본가의 하수인으로, 하급노동자는 지식계급의 주구(走狗)이자 무산 대중 착취에 앞장선 반동이라는 이유로 죽였다. 공산주의 원로인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으로, 서울시 인민위원장이자 김일성의 수족이었던 이승엽도 실정과 간첩 혐의로 숙청했다. 조국해방전쟁의 은총을 입은 자는 김일성을 민족의 영도자로, 어버이 수령으로 죽을 때까지 받들어 충성하는 자, 소위 ‘김일성 민족’뿐이었다. 적 치하에 놓인 수도 서울은 필설로 형언키 어려운 고초를 겪었다. 농지 분배의 대가로 시민들의 재산을 몰수했고, 젊은이는 의용군으로 끌고 갔다. 노인과 아녀자들은 전쟁지원사업으로, 저명인사는 체제선전용으로 북으로 끌고 갔다. 이때 피랍자가 12만명이라니 이산가족의 상처는 여기에서부터 비롯됐다. 대한민국 국민이 경상도의 좁은 모퉁이에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 김일성은 “고양이 낯짝만 한 땅에 버티는 남조선 괴뢰도당을 하루빨리 남해에 쓸어 넣으라.”며 동족의 수장(水葬)을 다그쳤다. 당시 나이 어린 소년들까지 의용군으로 징집해 국군과 맞싸우게 했다. 형제가 마주 서서 총을 겨누게 한 것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잔인함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인민을 해방하겠다며 저지른 조국해방전쟁의 실체다. 전쟁을 겪은 우리 국민 중에는 북한군을 해방군이나 같은 민족으로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공산당 이념을 맹종해 자유대한민국을 침략한 적구(赤狗)이며, 같은 하늘에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북한군을 규정했다. 전쟁 발발 63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참화를 딛고 일어나 사상 유례 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세계 10위권의 수출, 정보기술(IT)산업과 철강, 조선, 자동차는 세계 최고수준이며, 의학과 생명공학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러나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해야 할 식민지라고 호도하고, 종북주의자들은 앵무새처럼 이에 동조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전쟁을 ‘6·25 남침전쟁’으로 명명하고,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좌익세력들이 해방이란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상을 똑똑히 알리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 “이등병 편지 후 62년, 제발 유골이라도…”

    “이등병 편지 후 62년, 제발 유골이라도…”

    오빠는 27일이면 휴가를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스물한 살의 이등병은 1950년 6월 훈련소에서 편지를 보냈다. 휴가 예정일 이틀 전인 6·25전쟁이 터졌다. 그 후 오빠를 만나지 못했다. 전사통지서도 받지 못한 채 오빠는 62년째 ‘행방불명’ 상태로 남아 있다. 동생 김정혜(76·가명)씨는 지금까지 오빠의 ‘휴가’를 기다리고 있다. 외아들을 잃은 가족의 삶은 뿌리째 흔들렸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어머니는 몸져 누웠다. 생계가 막막했던 김씨는 서울 이태원의 한 술집에 팔려갔다. 너무 지우고 싶었던 일이라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곧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혹독한 가난은 평생을 쫓아왔다. 오빠를 앗아갔다는 생각 때문에 북한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황해도 사람을 만나 20여년을 함께 살았다. “오빠의 유골만 찾으면 한이 없겠다.”는 김씨는 6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에 유전자를 제공했다. 몇 년 전에도 유전자를 채취했지만 “새것을 내면 아무래도 더 낫겠지.”라는 생각에 한 번 더 유전자를 건넸다. 국유단에는 이날 현충원을 찾은 김에 유전자를 제공하려는 유족들이 줄을 이었다. ‘6·25 무명 전사자’라는 이름으로 가족과 형제를 잃은 이들이다. 아버지의 유골을 찾고 있다는 강종석(69)씨는 “제발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형을 찾기 위해 유전자를 제공한 오귀선(74)씨는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면서 “죽기 전에 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방문했다.”고 밝혔다. 하루 동안 국유단에 유전자를 제공한 유족은 652여명에 달했다. 2000년 육군본부의 ‘유해발굴과’로 시작한 국유단은 지난달까지 미수습 전사자 13만여명 중 6500여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79명에 불과하다. 신원 확인에 필요한 유족의 유전자 시료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10개월가량 걸린다. 국유단 측은 유족들의 유전자 채취가 늘면 신원 확인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달까지 유족 1만 9500여명의 유전자를 확보했다. 국유단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전사자들의 매장 위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존해야 하지만 이미 고령인 생존자들로부터 얻는 정보라 정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경북 칠곡 다부동전투 현장처럼 고속도로와 터널 등으로 훼손된 곳도 많다. 국유단 직원 180여명은 발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직원 가운데 발굴과 감식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원은 60여명이다. 임나혁(37·여) 감식관은 “앙상한 뼈만 남아 있지만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자식”이라면서 “전쟁 1세대들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 한 구의 유해라도 더 확인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한덕수 무역협회장 ‘밴플리트상’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이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에서 한·미 양국의 경제 협력과 우호 증진에 힘쓴 공로로 ‘밴플리트상’을 받았다. 밴플리트상은 6·25전쟁에서 활약했고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기 위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1992년 제정한 상으로 매년 한·미 관계 발전에 공로가 큰 인물이나 기관에 수여된다. 한 회장은 “지난 3월 15일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기반으로 한국과 미국의 교역과 투자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달려가 뽀뽀하고 싶은 충동… 다음부턴 좀더 송금하려 한다오”

    “달려가 뽀뽀하고 싶은 충동… 다음부턴 좀더 송금하려 한다오”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달려가 뽀뽀하고 싶은 충동이 나를 엄습하는군요.(…)모두 송금을 시키는 것이 좋겠지만 송금에는 한정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다음부터는 좀더 보내려 한다오.(3만원 정도)’ ‘상관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부하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 한국의 장교가 되려고 노력하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맹호부대 소속 정영환 대위는 죽음과 죽임의 공간에서는 한 명의 용감한 군인이었지만, 실상 그는 고국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는 젊은 지아비였고, 아내의 뱃속에 생겼을지 모를 아이를 그리워하는 예비아빠였고, 빚에 쪼들리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타국의 전쟁에 뛰어든 생활인이기도 했다. ●전장에서도 살림걱정… 꾼 돈 조목조목 적어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호국·보훈 관련 민간기록물 가운데 정영환(72·강원도 홍천군)씨가 전선에서 아내에게 보낸 애틋함이 뚝뚝 묻어나는 편지 세 통을 공개했다. 호칭의 변화가 먼저 눈에 띈다. ‘순영 아가씨’라는, 아마도 연애시절 부르던 호칭을 쓰던 첫 편지와 달리 두 번째 편지는 ‘사랑하는 아내’로 시작했다. 그리고 세 번째 편지에서는 ‘은경 모’로 바뀌었다. 아이가 생겼음을 말해준다. ‘순영 아가씨 보우.’라는 살가운 호칭으로 시작한 첫 편지는 자신의 방을 먼저 소개하면서 ‘모두가 미군물자니까 일유(일류) 고급호텔 부럽지 않다오.(…)환경이 이렇게 좋고 보니 고국에서 고생하는 당신 생각이 더 나는군요.’라고 남편을 전선으로 떠나보낸 뒤 걱정하고 있을 아내를 안심시킨다. 두 번째 편지에서는 ‘방앗간집과 경희네, 석규네’ 등에서 꾼 돈을 조목조목 적고 베트남 현지에서 보낼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적은 뒤 ‘더 빚지지 않게끔 차근차근히 갚도록 해봅시다.’라고 적었다. 편지 말미에는 ‘애기가 배에 없는지 궁금. 있었으면 바라는 마음’이라고 조그맣게 썼다. 그 다음 편지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다. 1972년 마지막날 부친 편지는 ‘은경 모’로 시작한다. 아이를 낳아 ‘은경이’라는 이름을 지었음을 알게 한다. ●6·25전쟁때 장인·장모에게 보낸 편지도 국가기록원은 정영환 대위의 편지 외에도 ‘유학성’이라는 군인이 6·25전쟁 당시 장인, 장모에게 보낸 편지도 함께 공개했다. 편지에는 빙부·빙모를 방언인 병부·병모로 표현했다. 유학성은 눈이 내리는 동지(冬至)에 전선에서 장인·장모를 비롯한 처가 식구의 안부를 물으며 “병모님의 염려 덕택으로 잘 지내고 있으며 맡은 바 군 복무에 노력하고 있으니 저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라.”고 당부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48만명 vs 5만 2000기

    48만명 vs 5만 2000기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는 생존 국가 유공자가 48만명에 달하지만 앞으로 전국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는 인원은 5만 2000여기에 불과해 향후 5년 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립묘지 내 안장 공간을 대폭 넓히거나 국립묘지법을 개정해 현재 규정이 없는 수목장 등 자연장을 국립묘지에서도 가능하게 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국립묘지 안장 자격 요건을 갖춘 국가유공자 등은 올해 1월 기준으로 48만 7613명에 달한다. 이 중 75세 이상의 고령자가 23만 8181명이고 6·25전쟁 참전자의 연령은 평균 81세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보훈처는 오는 2030년까지 이들을 포함한 안장 수요가 36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대전현충원과 서울현충원을 비롯한 전국의 국립묘지 8곳에는 호국영령 17만 8000여명이 안장돼 있다. 보훈처가 공개한 국립묘지별 잔여 기수는 올해 5월 기준으로 대전현충원 7367기, 영천호국원 2만 4662기, 임실호국원 8236기, 이천호국원 1만 2626기다. 서울 동작동에 있는 서울현충원은 지난 1985년부터 일반 묘역의 안장 여력이 없으며 납골 시설만 신청을 받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부터 기존 국립묘지의 공간을 활용해 안장시설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현충원 3만기를 포함해 2019년까지 모두 8만 3628기의 묘역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턱없이 높아지는 매장 수요를 예상하면 2017년으로 예상된 포화 시기를 6~7년 늦추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충북 보은과 제주 등지에 호국원을 추가로 조성해 오는 2015년 개원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국립묘지가 혐오 시설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주민 설득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수목장 형태의 묘역도 고려하고 있으나 이는 18대 국회에서 폐기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면서 “매장을 선호하는 우리 국민의 납골당이나 자연장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호국보훈의 달 2제] “남북화해 협력 위해 헌신” “북한 학생들 가르치겠소”

    [호국보훈의 달 2제] “남북화해 협력 위해 헌신” “북한 학생들 가르치겠소”

    ‘죽기 전에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마포구는 지난 2일 구청 광장에서 나라 사랑 실천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I♥코리아’ 행사를 개최했다고 4일 밝혔다.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 자원봉사자 등 주민 1000여명은 행사장에 마련된 ‘나랑사랑 버킷리스트’ 대형 칠판에 죽기 전에 나라를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써 내려갔다. 버킷리스트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죽기 전에 꼭 할 일을 뽑은 목록을 뜻한다. 이번 행사는 개인이 아닌 나라를 위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국가의 의미를 새겨 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여기에 참석한 박홍섭 구청장은 “우리나라를 위해 죽기 전에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리스트에 남겼다. 박수용 서강대 정보통신대학원장은 “북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이 외에도 행사장에서는 무궁화와 태극기 만들기 체험, 6·25전쟁 동맹국이 그려진 대형 세계지도 전시 프로그램 등이 진행됐다. 상덕규 자치행정과장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소통형 봉사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나라 사랑 의식이 생활 속에 자리 잡게 하고자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대선주자 인터뷰] (4) 새누리당 정몽준·김영명 부부

    [대선주자 인터뷰] (4) 새누리당 정몽준·김영명 부부

    ‘다 가진 분들이 왜 대통령까지 하려 하시나.’ 일부러 부인에게 물은 것인데, “많은 분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반응에 우선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정몽준 의원의 부인 김영명씨는 요즘 남편의 언행을 탐문하는 일에 열심이라고 한다. 기자들에게 남편이 고쳐야 할 점 등을 캐묻는 식이다. 본격적인 ‘정치 내조’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늘 그렇듯, 정몽준 의원과의 인터뷰는 진행이 쉽지 않았다. 학문적이고, 근원적인 답변을 할 때가 많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이뤄졌다. →(부인에게) 예전과는 달리 요즘 부쩍 정치에 신경을 쓴다던데. -(김영명) 관심 있는 게 참 많은데 정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이 대선에 출마했으니 열심히 해야지. 그러니까 여성지 표지모델까지 나오지 않았겠나(웃음). →2002년에는 안 그랬나. -(정몽준) 그때는 월드컵을 이용한 출마는 하지 않겠다고 여러번 얘기했었다. 그런데 월드컵이 끝나고 9월 하순쯤 여론조사에서 1등이 나왔다. 현역 4선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이 출마하라고 하는데 내가 준비가 안 됐다고 해서 안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출마했다. 나도 준비가 없었지만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됐다. →이번에는 준비가 됐나. -(김) 항상 이런 일은 준비를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때보다는 좀 많이 생각했으니까. →말리지 않았나. -(김) 말릴 수도 없었고, 말릴 수 있는 단계도 지났다(웃음). 말릴 수 있었으면 초선 때부터 말렸어야지, 정치 입문 안 하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나. -(정) 지난 총선 때 공천에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지면서 한때 불출마도 생각했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그건 정공법이 아니라고 말려서 자제했었다. 요즘에는 메모지를 10장씩 써서 준다(웃음). →남편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 다방면에 축적된 경험이 많다. 7선 의원으로 24년 동안 정치를 했다. 큰 기업을 경영했고, 축구로 국제 무대도 누볐다. 무엇보다 정직하다.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 이런 장점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다 가진 사람들이 왜 대통령까지 하려 하나. -(김) 많은 분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그건 정몽준이라는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동작을 지역구에 처음 왔을 때에는 부자 국회의원이 왔다고만 생각했다. 만나고 대화하면서 주민들이 정몽준을 새로 알게 됐다. 대단히 서민적이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근면을 배웠고, 어머니로부터 검소함을 배웠다. 그게 몸에 밴 사람이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매스컴에서 접한 정몽준과는 달랐다. 지역구에서 지어준 별명이 ‘정을 몽땅 준 남자’다(웃음). →차기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뭔가. -(정) ‘통합 능력’이라 생각한다. 국민이 지역적으로, 세대별로 갈라져 있는데 정치가 갈라진 국민을 더 갈라놓는 것 같다. 정치가 순기능을 하지 못하고 완전히 역기능을 한다. 경제 발전도 통일 준비에도 국민 화합 없으면 의미가 없다. 집안 가족들이 매일 싸우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 국민소득 4만 달러 넘는 나라에서도 경제나 복지가 선거 때마다 이슈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과제라 생각한다. →통합에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정) 희생이다. 권력, 부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일하지 말고 사회통합을 위해 일하면 된다. →먼저 세(勢)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정) 2002년에 여론조사 1등할 때에 세력이 있었던 건 아니고 지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그렇지 않나. 물론 세 없이 그런 현상이 지속되진 않는다. 다만 계파가 없기 때문에 정치적인 빚이 없다. 지역주민들에게만 책임감과 빚이 있을 뿐이다. 이번에 측근이 다 낙선했다고도 하는데, 측근은 없어도 동지는 많이 있다. →어느 대선 예비주자의 부인이 남편의 ‘대통령병’을 걱정했다. 어떤가. -(김) 남편은 대통령병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목적에 모든 것들이 종속됐다는 얘기인데, 그렇지 않다. -(정)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할까 생각해 본다. 하기 싫다는 사람이 하면 제일 잘할 수도 있을 거다. 사실 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나라에 부담 주고 해를 끼칠 가능성도 많다. →이른바 권력의지가 약한 것 아닌가. 승부사적 기질도 있어야 하지 않나. -(정) 권력의지와 승부사 기질이 역대 정치인들을 단련시켰을 텐데 그게 우리 정치현실에서 무슨 기능을 했는지 의문이다. 리더십의 새로운 기준도 찾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어떤 기준인가. -‘성찰’이랄 수 있다. 정치인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상대편 얘기를 귀담아듣고 소통할 수 있다. 한두 사람 얘기로 결론 내고 끝내면 답답하다. 정치는 시작부터 정답이 없는 사회과학의 영역이다.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정치인의 카리스마는 다른 의미로는 독선일 수 있다. →정 의원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김) 말을 못한다고 평판이 나있을 것이다. 대중연설에 약하다. 소그룹에서는 잘하는데. -(정)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은 이렇다. 지금까지 경제학, 경영학, 국제정치 등을 공부하면서 어떤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일들이 결국 다 문제가 됐다. 1997년 금융위기(IMF 사태) 때도 그랬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건 실무적 능력이 아니다. 책임감으로 출마했다. 정치·경제·외교의 흐름으로 볼 때 이때 나서지 않으면 나라도, 나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건 좋은 투자다. 나의 경험과 능력을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출마했다. →‘체휼’(體恤)하는 대통령이 요구된다. 서민들의 어려움을 알까 하는 의문이 있다. -(김) 솔직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누군가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나. 다만 우리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건 아니다. 6·25전쟁 때 나서 1960년대 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부유하지도 않았고 큰 부자도 없이 다 어렵게 살았을 때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에 가기 전 명륜동 살 때 미군부대 분유 같은 거 얻어먹고 그랬다. 그것도 특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우리 경제가 다 어려웠다. 지금의 재벌 2, 3세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정) 그건 우리가 계속, 일생동안 생각해야 할 숙제다. 대통령이 되려고 뭘 하는 것보다 앞서 있는 일이다. 다만 ‘서민이 아니라 서민의 어려움을 모른다.’는 주장은 모순이 있다. 신분·계층·지위에 모든 것을 고착시킨 얘기 아닌가. 예컨대 탈모환자에게 필요한 게 발모제인데 그걸 꼭 탈모환자만 개발해야 한다고 하면 사회가 얼마나 답답한가. 모든 사람이 다 발모제를 개발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 노력할 텐가. -(김) 동작을구 선거를 하면서 악수를 해 보니 손가락 없는 분들이 그렇게 많았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남의 고통을 어떻게 100% 이해할 수 있겠나 생각하면서 노력할 뿐이다. 진정성이 중요할 것이다. 이번에 남편과 민생탐방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어떤 분들이 어떤 처지에 계신지를 더 알고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로 다녔다. 더 듣는 마음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그분들에게 도움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정) 이번 대선에 출마하면서 “위대한 국민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겠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는데 실감하게 됐다. 지하철역에서 출퇴근 인사를 하면서 거대한 인파를 통해 힘을 얻었다. 파도처럼 오가는 얼굴 하나하나와 대화하는 느낌으로 교감을 한 것 같다. 열심히 일하러 가는 표정에서 우리나라를 지탱해 주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힘을 느꼈다. →정치인으로서 어느 시점에 와있다고 생각하나. -(정) 번데기 없이 나비가 되지 못하듯, 처음부터 훌륭한 정치인이 태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미국에서도 정치꾼(politician)을 거쳐 정치인(statesman)이 된다고 한다. 국민께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셨으면 한다. ‘서울 재선’의 마음으로 하고 있다. 이지운·허백윤기자 jj@seoul.co.kr
  • 故권정생 작가의 따스한 이야기들

    동화작가 권정생(1937~2007)의 작고 5주기를 맞아 ‘빌뱅이 언덕’(창비 펴냄)이 나왔다. 경북 안동에 있는 빌뱅이 언덕은 고인이 1983년 여름 ‘몽실언니’ 계약금으로 지은 오두막집이 있는 곳으로, 2007년까지 이곳에 살았다. 산문 43편과 시 7편, 동화 1편이 있다. 1부는 자전적 이야기, 2부와 3부는 각각 1990~2000년대, 1970~1980년대에 발표한 글들이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과 출판사는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1986년 출판 후 절판)에 실린 내용 중 일부를 찾아 넣기도 했다. 책으로 위로받은 6·25전쟁 시절을 떠올리고 친절을 베푼 사람들은 따뜻한 동화 주인공으로 되살려냈다. ‘김 목사님께’로 시작해 ‘다시 김 목사님께 2’로 이어지는 산문에서는 더 많이 차지하고 더 많이 욕심 부리고 더 많이 소비하는 우리 사회에 일침을 가한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발문에 “가난과 질병을 벗어난 적이 없으되 자기 몸을 돌보는 일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일에 70년 생애를 바쳤던 그의 삶이야말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유산”이라고 했다. 신간은 그 ‘유산’의 바탕을 짐작하게 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

    심술 난다. 작품을 보고 있자니 작가가 걸어, 아니 ‘통통’ 튀어 온다. 하이톤 목소리로 묻는다. “음…자기는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미국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작가다운 발음과 말투다. 태도가 구김살없는 데다 작품도 따스하다. 색채는 물론이거니와 형상도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전반적으로 둥글둥글하다. 심지어 내용까지 그렇다. ‘오버플로잉’(Overflowing)에서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곳에서 물이 흘러나오면 남편이 만들고 있는 실제 호수에 그 물이 흘러든다. ‘포리스트 신’(Forest Scene) 연작은 슈만이 작곡한 ‘숲 속의 정경’을 기반으로 그렸다. 그 가운데 ‘예언하는 새’에는 작가가 직접 등장하는데 새가 작가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가리키는 듯한 분위기다. 이 새, 뭔가 새답지 않고 사람같다 싶더니 다른 작품에서는 남편이 아예 새가 됐다.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작가 뒤편에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 몸에는 깃털들이 잔뜩 돋아나 있다. “내 뮤즈, 남편”이라 했다. 다른 작품에서는 바깥 풍경은 차디찬 눈이 가득 쌓인 겨울인데 거실에서는 따스한 난로 곁에 작가와 남편이 다정하게 붙어 있다. 하나같이, 너무나도, 절대적으로 평화롭고 고즈넉하고 충만한 분위기다. 심술 난 이유다. 좀 무리이긴 하지만 대놓고 물었다. 인생에 힘든 일이 없었냐고. 김원숙(59) 작가는 “거지의 시선”이란 답을 내놨다. “제 남편이 6·25전쟁 고아예요. 말 그대로 고아이자 거지로 살다가 1957년 미국에 입양됐죠. 지금이야 특허만 37개를 가진 의료기구 사업가가 됐지만 전쟁고아라서 언제 어떻게 태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어요. 정확한 생년월일도 몰라요. 그런데도 남편만큼 긍정적인 사람을 못 봤어요. 세상을 거지 아이의 눈으로 보는 거죠.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모든 게 횡재고 대박이에요.” 인생의 어두운 경험에 대해 풀어놓고 ‘너도 슬프지?’라고 묻는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마디 덧붙인다. “그리고 제가 워낙 맛난 거 먹고 멋 부리고 그런 거 좋아하는 낙천적인 성격이에요. 저도 이 나이껏 살았는데 이런저런 어려움, 어두움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그런 건 지나 놓고 보면 다 별 볼 일 없으니 재미나게 살자는 게 제 주의거든요.” 3대 독자 아버지 밑에서 둘째 딸로 태어나 ‘후남’(後男)이로 살아온 얘기, “어느 것 하나 아버지 뜻대로 산 게 없다.”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그랬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이 하나의 창, 라디오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심오하고 대단한 얘기보다 딱 걸어 놨을 때, 우연히 스쳐가다 한번 봤을 때 행복을 줄 수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라디오를 틀 때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 별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창도 늘 의식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있다가 한번 슬쩍 내다보는 것, 그 정도가 그림인 것 같아요.” 작가는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의 딸이다. 아버지는 만우절을 그 어느 국경일보다 엄격히 지킨다는데 여기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다. 그걸 모아 ‘아버지의 만우절’이란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했더니 “나 죽고 나면 더 많이 공갈 쳐라.”고 대답했단다. 오는 12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두가헌갤러리. (02)2287-359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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