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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시간대별 전황 담긴 美작전일지 공개

    6·25 시간대별 전황 담긴 美작전일지 공개

    6·25전쟁 당시 미국 육군 수뇌부가 직접 작성한 전쟁 관련 서류 1만여쪽이 국내에서 공개됐다. 국립중앙도서관은 1950년대 한국에서 전쟁을 치르던 미 육군 작전참모실의 ‘작전일지’ 파일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통해 입수했다고 11일 밝혔다.도서관은 2010년 4월부터 최근까지 모아 온 한국 관련 파일이 미 육군참모부 문서군 중 극동·태평양담당 부참모장실에서 1950년 7월 1일부터 1953년 5월 21일 사이에 발송됐거나 접수됐던 문서들이라고 전했다. 도서관 관계자는 “‘J-3’(합동군사령부 작전참모부), ‘S-3’(대대 및 연대 작전과) 파일과 달리 미군 상급 부대의 작전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미 수뇌부의 6·25전쟁 전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소개했다. 파일에는 전쟁 당시 군사작전 전개 상황을 비롯해 시간대별 전황과 적군에 대한 전력 평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미 국무부에 별도 보고한 전쟁 전황 평가서 등 외교 문서도 일부 포함돼 있다. 이번 작전일지와 한국 관련 기록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http://www.nl.go.kr)나 국립중앙도서관 전자도서관(http://www.dibrary.net)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국정원 정치 개입한단 인식 없었다… 야당·대선공약 비판댓글은 부적절”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은 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 댓글 사건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심리전단의 일부 사이버 활동이 적절치 못했다고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이 전 차장은 “종북 좌파의 국정 폄훼에 대한 대응과 야당에 대한 비판 여론 조성을 식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진술했다. 이 전 차장은 또 “내심의 주된 목적과 상관없이 드러난 활동이 야당 정치인의 실명과 그의 대선 공약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것이었다면 문제가 있지 않나”라는 검찰 측 신문에 “적절치 못했다고 본다”고 답했다. 찬반 클릭 활동에 관해서도 “어떤 주제에 찬반을 했는지에 따라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차장은 대북 정보 수집, 방첩 및 공작 업무를 총괄하는 국정원 3차장으로 2011년 4월 초부터 2년간 근무하다 퇴직했다. 이 전 차장은 다만 “종북 좌파의 선전·선동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부하들을 질책할 생각은 없다”며 “정치 개입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고 우리 스스로 안보 활동으로 봤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이 전 차장이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이 벌어진 지난해 12월 11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식사를 함께하고 이후 수차례 통화한 사실이 공개됐다. 이 전 차장은 “3주 전에 약속을 잡았고 김 전 청장을 그날 처음 만났다”며 “11일과 14일 두 차례 통화는 여직원 감금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 차장은 “김 전 청장이 국정조사나 특별검사까지 고려해야 하는 사건이라 철저히 수사를 하겠다고 했다”며 “우리 측 입장을 전달한 것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차장은 공판에서 ‘젊은 세대’를 수차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6·25전쟁이 북침인지 남침인지 혼동하고, 천안함이 (북한이 아닌) 다른 세력에 의해 공격받은 것으로 아는 젊은이가 많다”면서 “젊은 세대가 애국심을 갖고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이버 활동을 했다”고 강조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부산 영도다리 47년만에 다시 들려

    6·25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어 ‘민족의 다리’로 불리는 부산 영도다리가 47년 만에 다시 들어 올려졌다. 9일 오전 부산 중구 대교동 영도다리 재가설 건설현장을 방문한 허남식 부산시장이 교량을 들어 올리는 도개용 버튼을 누르자 거대한 다리 상판이 미세한 기계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허 시장은 오는 12월 개통을 앞두고 전동기와 기어방식이 혼합된 기계장치의 이상 유무를 확인차 이곳을 찾았다. 길이 31.3m, 무게 590t인 도개교는 큰 소음 없이 2분여 만에 75도 각도로 올라가 멈춰 섰다. 1966년 도심 교통량 증가로 도개 기능이 중단된 지 47년 만이다. 시는 2007년 7월 영도대교 보수·복원공사의 첫 삽을 뜬 지 6년여 만에 상부공(교각이나 기초공 위에 있는 상판)의 가설을 모두 완료하고 이날 도개교 시험운전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11월 개통된 영도다리는 부산 중구와 영도를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이자 최초의 도개교였다. 6·25전쟁 때에는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이 전쟁 와중에 헤어진 이들을 만나려고 다리 밑을 찾으면서 ‘우리나라 1호 만남의 광장’ 역할을 했던 부산 근대사의 중요한 역사 자산이자 문화재이기도 하다. 이 교량은 선박을 통행시키기 위해 교량의 본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한 다리로, 도개 기능이 중단될 때까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길이 31m의 상판이 하루 7차례 정도 올라가면서 그 아래로 배가 지나갔다. 현재 공정률 91%를 보이는 영도다리는 길이 215m, 폭 25.3m로 이전 왕복 4차로에서 왕복 6차로로 넓어졌고 도개교 길이는 31.3m 규모로 복원됐다. 상부공 가설은 5개 블록으로 나뉘어 설치됐다. 시는 오는 11월까지 마무리 작업과 함께 도개교 시험운전을 몇 차례 더 한 뒤 오는 12월 정식 개통할 예정이다. 허 시장은 “민족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영도대교의 도개 기능이 복원되면 부산의 새 관광명소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교통량 등을 감안해 하루 몇 차례 올릴지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낙동강 전투가 美軍에 끼친 영향은?

    낙동강 전투가 美軍에 끼친 영향은?

    낙동강전투가 6·25전쟁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재조명하는 국제학술세미나가 대구에서 열린다. 영남대는 경북도, 육군3사관학교와 공동으로 오는 11일 대구 인터불고호텔 국제회의실에서 ‘6·25전쟁 63주년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낙동강방어선 전투의 의의와 정전협정’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학술세미나에서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와 6·25전쟁이 미군의 현대 전략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최초로 연구한 결과가 발표된다. 기조 발표자로 나서는 텍사스A&M대 역사학과 린 교수는 ▲미 육군이 지원병제에서 징병제로 전환하는 데 낙동강전투의 영향이 컸다는 점 ▲낙동강전투로 인해 미 육군의 교육훈련에 ‘반공’과 같은 이념이 교리화되었다는 점 ▲한국전쟁 초기작전(낙동강방어전)의 결과로 미 육군이 대규모 미래전에 대한 구체적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키게 되었고, 새로운 무기체계와 전투조직, 교리를 개발하게 되었다는 점 등을 밝힌다. 린 교수는 미국에서 한국전쟁 연구 권위자로 손꼽힌다. 이 밖에도 세미나에서는 ‘6·25전쟁 휴전회담에서의 해상분계선 문제’(허만호·경북대), ‘정전협정 체제의 국가안보적 함의’(문성묵·전 국방부 군비통제차장), ‘6·25 전쟁 시기 경북지역에서 알려지지 않은 전투와 그 의미’(양영조·군사편찬연구소), ‘낙동강 전투 승리 의의와 국가방위 중심군으로서 육군의 역할’(노양규·영남대)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재밌는 역사/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재밌는 역사/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얼마 전 고교 동창들과 한라산에 오를 때였다. 중턱에서 쉬던 중 한 친구가 불쑥 한라산 높이를 아느냐는 말을 꺼냈다. 6명 중 1명을 빼곤 모두 ‘1950m’를 외치면서 오답을 낸 친구에게 이렇게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역사 시간에 졸았냐.’ ‘6·25전쟁 발발연도로 외우라고 했지.’ 한결같이 내뱉는 공유의 기억. 그러고 보니 가는 곳마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연상법’으로 외워놓은 수치며 사물들이 즐비하다. 수업 시간, 시험 때마다 줄창 외워댔던 암기의 역사공부가 톡톡히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척척 튀어나오는 그 연상의 수치며 사물도 한 뭉텅이의 역사로 이어지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다. 며칠 전 국내 언론을 통해 소개된 일본 NHK 방송내용만 해도 그렇다. 일본어 문자의 하나인 ‘가타카나’가 신라에서 전래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히로시마대 고바야시 요시노리 명예교수의 연구 말이다. 740년쯤 통일신라에서 일본에 건너간 불경 대방광불화엄경에서 가타카나의 조성원리와 똑같은 축약표기인 각필(角筆)문자 360개가 확인됐다는데. 일본인 교수가 가타카나의 전래문물에 천착한 것도 특이하지만 가타카나와 신라기 불경을 연결지은 착안이 흥미롭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한다. ‘한라산 높이=6·25전쟁’ 식의, 뚝뚝 잘리고 끊겨진 단순암기로 가타카나의 신라 불경 기원을 찾아낼 수 있을까. 따져 보면 그 단순반복학습이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리가 아닌 단절의 첩경이나 다름없다. 역사 공부가 ‘죽도록 좋아하는’ 과목이라면 지금처럼 고등학교 교실에서 기피하고 외면하는 대상이 됐을까. ‘외울 게 많고 복잡한 과목’이란 인식보다 배울수록 더 재미있고 빠져드는 과목이라면 벌써 수능시험 과목에 들었을 게 아닌가.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에 포함된 한국사 필수 지정을 놓고 논란이 많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이 대학에 입학하는 2017년부터 한국사를 수능 사회탐구 영역에서 분리해 별도 영역시험으로 필수화한다는 안이 나오자마자 교실에서 신음소리가 터져나온다. 그 신음의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지금도 할 게 많은데 그 외울 것 많고 까다로운 과목을 더 해야 하나’라는 부담이다. 벌써부터 사교육 시장이 들썩이고 다른 사회 과목 교사들의 볼멘소리도 봇물을 이룬다. 역사를 중시한다는 정책의 방향이야 뭐 탓할 게 있을까만, 그래도 ‘역사 중시’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이다. 어찌 보면 이번 개편안에 함께 든 수능 문·이과 융합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한 분야와 영역에 갇힌 단절이 아닌, 서로 넘나드는 소통과 통섭의 원칙 말이다. 이것 역시 교육과정 운영의 어려움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큰 물결을 이루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융합은 역사 교육에서 먼저 이뤄내야 한다. 그저 뚝뚝 끊어진 역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이어지는 진실의 흥미로운 교육 말이다. 하긴 지금 ‘좌편향이니 우편향이니’ 하는 역사 교과서 전쟁을 보자면 차라리 ‘한라산 높이=6·25전쟁’ 식의 암기가 나을 수도 있겠지만. kimus@seoul.co.kr
  • 문정왕후 어보, 국내 반환이냐 장기 대여냐

    문정왕후 어보, 국내 반환이냐 장기 대여냐

    6·25전쟁 당시 미국으로 불법 반출된 ‘문정왕후 어보(御寶)’가 조만간 국내에 반환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어떤 형식으로 돌아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보를 소장하고 있는 미 로스앤젤레스(LA)카운티박물관(LACMA)은 오는 18일 예정된 국내 시민단체 관계자와의 2차 면담을 전후해 어떤 형태로든 반환 계획을 발표할 전망이다. 하지만 잇따른 문화재 반환에 부담을 느낀 미 정부와 박물관 측이 막바지에 ‘장기 대여’ 형식을 취할 수도 있어 60여년 만의 완전 반환은 어려울 것이란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2일 시민단체와 검찰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미 국토안보부에 어보 유출 사건을 수사의뢰할 당시 한국 검찰은 문서에 ‘어보가 6·25전쟁 때 미군에 의해 도난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어보 반환 운동을 전개해온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미 국토안보부는 올 1월 디트로이트 경매장에서 거래된 ‘호조태환권’ 인쇄 원판에 대해서도 6·25전쟁 당시 미군이 불법 취득한 장물이라는 이유로 경매에서 낙찰받은 이로부터 압수한 전례가 있다”면서 “양국 정부 사이에 충분한 사전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미 연방 장물거래금지법 2314조는 5000달러 이상의 물건이 미국 내에 반입되었을 때 세관기록을 요구하고 있다. 또 정식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정왕후 어보의 경우 미국 유입 경로를 밝혀줄 세관기록이 없어 국토안보부 수사국이 불법 취득한 장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2010년 이후 어보 반환을 요구받아온 LACMA 측은 압박을 느끼고 있다. 국토안보부가 본격 수사에 나서기 전 먼저 어보의 반납을 제안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박물관 측은 그동안 “재단 기금으로 구입한 합법적인 소장품이어서 반환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선회했다. 지난 7월 성사된 국내 시민단체 관계자와의 1차 면담에선 “어보가 도난품이 확실하다면 증거를 제출해 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달 27일 LA카운티의 최고 책임자가 “한국 정부의 공식 요청이 있고, 도난품이란 사실이 입증된다면 돌려주겠다”는 서신을 보내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반환 형태를 놓고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LACMA 측은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특별전을 통한 대여 전시의 형태를 고수해 왔다.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으로 유출된 대표적인 약탈 문화재인 ‘어재연 장군기’(미 해사박물관 소장)가 2007년 장기 대여 형식으로 국내에 돌아온 것과 비슷하다. 미국은 1943년 ‘런던 선언’에 따라 약탈이 확인된 문화재를 반환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3일 반환되는 호조태환권 인쇄 원판 이외에는 1960년대 이후 이렇다 할 반환품이 없었다. 호조태환권은 경매 단계부터 미 정부가 수사를 벌여왔고, 소장자가 박물관이 아닌 재미교포였다는 점에서 회수가 비교적 수월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LACMA에 어보가 도난된 것이라는 증거를 모두 제출한 상태다. 1956년 당시 양유찬 주미 한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문정왕후 어보를 비롯한 47개의 어보가 도난됐다고 신고했던 녹취록과 미군의 어보 절도사건을 보도한 1953년 미 ‘볼티모어 선’지 기사 등이다. 문정왕후 어보는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의 인장(印章)으로 가로·세로 10.1㎝, 높이 6.45㎝의 도장에 거북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어보는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의 행적과 공덕을 담은 것으로 국내에는 모두 324과(顆)가 남아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교육의 힘으로” 백범정신 기린다

    “교육의 힘으로” 백범정신 기린다

    “앞으로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금남시장 로터리에 백범학원 설립 기념비가 들어선다. 성동구는 백범 김구 선생의 탄생일인 29일 오전 11시 기념비 제막식을 연다고 밝혔다. 백범은 성동구와 인연이 깊다. 백범은 광복 이후 전재민의 생활상을 크게 걱정했다. 2차대전 관련 노역에 시달리다 되돌아온 전재민들이 어렵게 사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1949년 전재민 부락이 있던 금호동에 백범학원을 세웠다. 또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기 위해 전재민주택, 일명 김구주택을 짓는 데 노력했다.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유해환국봉안식 때 들어온 부의금, 아들 김신의 결혼식 축의금 등을 탈탈 털어넣은 사업이었다. 구는 백범의 이런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백범학원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사업을 진행했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사라지고 남은 건 낡은 사진 한장뿐이었으니 주민들에게 수소문하고 전문가들의 자료 조사 결과를 참조했다. 또 최고의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김운성, 김서경 조각가가 기념비 제작을 맡았다.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소녀상을 만들었던 작가다. 새겨 넣을 문구는 국내 최고의 백범 전문가로 꼽히는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나의 소원’ 중에서 정했다. 글자꼴도 백범일지에 쓰인 친필 글자를 집자해 만들었다. 고재득 구청장은 “기념비 제막식을 통해 우리 후손들이 백범 선생의 동포애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62년만에 돌아오는 대한제국 지폐 원판

    62년만에 돌아오는 대한제국 지폐 원판

    6·25 전쟁 당시 미군이 불법 반출한 대한제국의 지폐 ‘호조태환권’(戶曹兌換券) 인쇄용 원판이 국내로 환수된다. 이는 1960년대 이후 미국으로부터 처음 돌려받는 도난 문화재이자 미국과의 공조 수사를 통해 환수되는 첫 사례로 기록됐다. 문화재청과 대검찰청은 다음 달 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변영섭 문화재청장과 채동욱 검찰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성 김 주한 미국대사로부터 호조태환권 인쇄 원판을 돌려받을 예정이라고 27일 밝혔다.호조태환권은 1893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화폐개혁을 단행하며 찍은 구화폐 회수용 교환권으로 실제 유통되지는 않았다. 상설 조폐기관인 인천전환국이 5냥, 10냥, 20냥, 50냥 등 네 종류의 호조태환권을 찍기 위한 원판을 만들었는데, 그중 덕수궁에 소장됐던 10냥짜리 원판을 6·25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라이오넬 헤이스가 1951년 미국으로 불법 반출했다. 헤이스의 유족은 2010년 미 미시간주의 경매회사를 통해 원판을 재미교포 수집가인 윤모(54)씨에게 3만 5000달러에 판매했다. 미국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은 올해 초 호조태환권 원판을 경매 처리한 경매회사 대표와 구매자인 윤씨를 긴급 체포했다. 반출된 원판은 가로 15.8㎝, 세로 9.5㎝, 무게 0.56㎏의 청동 재질 판이다. 중앙에는 ‘십냥’이라는 글자, 조선 왕실을 뜻하는 세 발톱의 용 두 마리, 꽃 문양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대한제국이 근대화된 인쇄술로 만든 최초의 지폐류였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미국은 1960년대 이전에도 6·25 전쟁 때 반출한 유물을 반환한 적이 있다”면서 “LA박물관의 문정왕후 어보도 조만간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소설 ‘밀다원 시대’ 29일 부산에서 문화공간으로 부활

    김동리의 소설 ‘밀다원 시대(詩帶)’가 부산 산복도로에서 되살아난다. 6·25전쟁 당시 부산 광복동에 있던 다방 밀다원은 피란 온 예술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이곳은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실의에 빠진 예술인들이 모여 희망찬 앞날을 기대하며 새로운 꿈을 얻어 가는 꿀물이 흐르는 찻집으로 이름을 얻었다. 당시 이 다방을 자주 찾은 작가 김동리는 밀다원을 배경으로 해 소설 ‘밀다원 시대’를 집필했다. 부산시는 26일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주민문화·소통공간인 ‘밀다원 시대, 노인 일자리 지원센터’를 조성해 오는 29일 문을 연다고 밝혔다. 중구 망양로 383번 안길 19(영주동)에 자리한 센터는 시비 8억원이 투입돼 전체면적 98.03㎡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건립됐다. 지하 1층은 노인 일자리 지원센터다. 북카페를 활용한 실버바리스타 양성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산복도로 지역 노인의 일자리 창출과 재취업에 이바지함은 물론 소통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운영을 맡은 사회복지법인 로사리오 카리타스는 중구 노인복지관과 연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1층에는 밀다원 다방을 모티브로 해 북카페 ‘밀다원 시대’를 운영한다. 김은숙 중구청장은 “북카페 밀다원 시대도 금수현의 음악살롱과 같이 내실 있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해 한국전쟁 등 역사적 산물인 원도심 산복도로를 관광명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北 ‘선군절’ 담화… 核 표현 자제, 노동당 역할 강조

    북한이 군 중심의 통치 체제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선군절’인 25일 핵 관련 표현을 자제하고 노동당의 유일 영도 체계를 강조했다. 선군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60년 8월 25일 ‘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처음으로 방문해 ‘선군(先軍)혁명’ 통치를 영도했다고 선전하는 날이다. 이 탱크사단은 6·25전쟁 당시 서울에 처음 진입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이날 담화를 통해 “당의 영도는 인민군대의 생명이며, 당의 영도를 떠나 인민군대의 위력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우리의 총대는 영원히 당과 그 위업을 굳건히 담보하는 억척의 지지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제1위원장이 선군절에 맞춰 당의 군대 지휘를 강조함으로써 노동당을 통치 체제의 주요 기반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인민군대가 혁명강군으로 자라고 인공위성 제작·발사국, 핵보유국이 됐다”고 평가하면서도 별도의 핵 관련 표현은 내놓지 않았다. 김 제1위원장의 최측근으로 군 서열 2위인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도 전날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중앙보고대회에서 핵무력·경제병진 노선 등을 언급하지 않았다. 최 총정치국장은 “인민은 전쟁을 바라지 않으며 평화적 통일을 바라고 있다”고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 북한이 한·미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기간 선군절에 핵개발 의지를 노골화하지 않은 것은 남북 및 북·미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김정은 정권의 강경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담장 싸움’에 현대미술관 완공 마침표 못 찍어

    ‘담장 싸움’에 현대미술관 완공 마침표 못 찍어

    오는 11월 개관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담장 복원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술계와 인근 주민들이 ‘담 없는 미술관’을 주장하는 반면 문화재 단체들은 문화재 보존을 이유로 반발하는 가운데 21일 문화재위원회가 현장 실사에 나섰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기무사 터에 건립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460억원 규모의 국책사업으로, 국립미술관을 이곳으로 옮기는 것은 미술계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러나 미술관 터는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국왕의 족보를 보관하고 왕족을 관리하던 관청)가 있던 자리로, 이를 둘러쌌던 담장을 복원하는 문제로 논쟁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는 현장 실사에 이어 우리문화재바르게지킴이, 북촌문화마을가꾸기 등 문화재 관련 단체들과 주민들이 참여한 공청회까지 열었다. 문화재 단체들은 “미술관 뒤편 종친부의 북쪽(북촌로)과 동쪽(율곡로) 담장은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문화재”라며 “사적지로 지정하지 않고 방치하다 미술관 터로 지정했고, 터파기 공사를 하다가 그나마 남아 있던 담장이 무너지거나 복원을 전제로 해체됐다”고 담장 복원을 주장했다. 이에 인근 주민들은 “1971년 들어선 3.8m 높이의 기무사 콘크리트 담장이 헐린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시 2.5m 높이의 담장을 쌓는 것은 일조권, 조망권 침해”라며 맞섰다. 이들은 연판장을 돌리고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하고 있다. 소격동에서 50년간 살아온 권현표(75)씨는 “주민들은 이곳에 종친부나 담장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면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종친부 담장은 허물어졌고 철조망이 처진 (기무사) 담벼락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전두환 정권 때 종친부의 주요 건물은 인근 정독도서관 터로 강제 이전됐고, 대신 테니스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현재 종친부 주요 건물은 미술관 건립과 함께 원래 자리에 복원된 상태다. 문화재위원회는 미술관 측이 내놓은 중재안대로 경복궁 쪽 북촌로 담장은 일부 구간(65m가량)만 복원하고, 율곡로 쪽은 담장을 쌓되 높이에 대해선 주민과 다시 협의하기로 잠정 결론을 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세계 어느 나라도 문화재 터를 밀어버리고 미술관을 짓진 않는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종면 칼럼] 역사지식 없이 역사인식 없다

    [김종면 칼럼] 역사지식 없이 역사인식 없다

    다시 꺼내어 말하기도 민망하다. 요즘 청소년들 중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독립운동가를 안중근이 아닌 안창호로 알고 있고, 3·1절을 ‘3점1절’로 읽는가 하면, 야스쿠니 신사를 ‘야스쿠니 젠틀맨’이라고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개그가 아니라면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수백만명의 동족이 희생된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인 줄 모르는 고등학생이 태반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현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근현대사에 대해 이처럼 까막눈인데 고대나 중세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한국사 교육을 홀대한 업보라고 하지만 꼭 맞는 말은 아니다. 한국사 교육이 강화된 1977년 3차 교육과정부터 한국사가 고등학교에서 필수, 선택, 또다시 필수로 30년 넘게 공깃돌 신세를 면치 못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역사인식 부재는 한국사 교육이 형식과 내용에서 부실했고, 더 결정적으로는 모든 것이 입시로 통하는 척박한 교육 현실 탓이 크다. 2011년 한국사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바꿀 때 이미 대입수능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국사 교육의 한계는 충분히 예견됐다. 집중이수제라는 이름으로 한 학기에 벼락치기로 몰아 가르치고 무슨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겠는가. 2005년도 수능부터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그해 전체의 27.7%였던 한국사 선택 비율은 2013학년도에는 7.1%로 떨어졌다. 인문계 대입에서 자국사를 필수로 하는 중국이나, 일본사의 대입 선택 비율이 40%나 되는 일본과 대비된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으로 비치지 않을까 두렵다. 한국사 수능 필수 문제는 이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가 문화융성이다. 이를 위해 인문학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한다. 기업들도 인문경영에 나섰다. 가히 ‘인문학 르네상스’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의 핵심인 역사에 대한 대접이 초라하다. 청소년들은 ‘역사문맹’ 증상까지 보이니 이 무슨 조화인가.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사가 수능 선택으로 남아 있는 한 아무리 역사교육을 강화한들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로 지정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수능 필수가 한국사 교육을 암기식으로 흐르게 해 역사의식을 키우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암기가 악인가. 어떤 학문이든 암기해 놓은 기초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더 넓은 응용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경(經)과 사(史)를 외우는 것이 흠이 아니듯 우리 역사의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잘못일 이유가 없다. 자잘한 지식의 조각들이 다 인문학적 상상력의 모태요 역사인식의 근원이다.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역사인식 지수를 재어 본다면 수능 필수를 가외의 부담으로만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사회 과목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한국사를 사회탐구 영역에서 떼어내 필수과목으로 하는 선에서 정리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명분이 있는 일이라면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뿌리 내린 역사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런 만큼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끝없는 역사교과서 정치편향 논란에 학생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른다. ‘정권사관’에 따라 근현대사 교육의 내용이 오락가락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좌·우 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개정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최종 검정 결과가 곧 나올 예정이다. 또다시 2008년 금성교과서 사태와 같은 ‘사관전쟁’이 재현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이다. 한국사 수능 필수화의 참뜻은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통해 세계인식의 지평을 넓혀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사’ 교육은 일국사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사까지 아우르는 ‘역사’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사 수능 필수의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 그 이후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jmkim@seoul.co.kr
  • 지한파 찰스 랭걸 의원 24일 한국에

    미국 의회의 대표적 지한파 인사로 알려진 찰스 랭걸(83) 민주당 하원 의원이 박근혜 정부 초청 1호 인사로 방한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통해 6·25전쟁 참전 용사인 랭걸 의원을 호명하며 감사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21일 “정부의 첫 공식 초청 인사로 랭걸 의원이 24일부터 30일까지 한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한·미 동맹 강화에 큰 목소리를 내 온 랭걸 의원은 방한 기간 박 대통령을 예방하고, 국내 정·재계 지인들과도 두루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하는 랭걸 의원은 미 하원 세입위원장을 지낸 22선의 거물 정치인이다.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의 창립을 주도해 초대 회장을 지냈다. 2008년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 의원도 방한한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매케인 의원은 1박 2일 일정으로 오는 25일 방한해 다음 날 주한 미대사관에서 안명철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사무총장 등 탈북자단체 대표들을 면담하고, 주한 미군 기지도 방문할 예정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육사생도, 이번엔 해외봉사중 음주·마사지

    태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육사생도 9명이 현지 주점과 전통마사지 업소를 출입했다가 적발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육군 관계자는 20일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태국의 6·25전쟁 참전 용사촌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치던 육사생도 3학년 173명 중 9명이 지난 9일 오후 11시 30분쯤 파타야의 숙소를 무단 이탈했다”면서 “호프집과 전통마사지(발마사지) 업소에 갔다가 육사 훈육요원에게 적발됐다”고 밝혔다. 육군에 따르면 이들 중 4명은 호프집에서 맥주 1명씩을 마셨고, 나머지 5명은 발마사지 업소에 들어갔다. 육사는 이들이 취침시간 중 무단으로 이탈한데다 최근 두 차례나 교내외 음주 금지 지시가 있었음에도 이를 위반했기 때문에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육군은 생도들의 일탈행위를 막는 방안 중 하나로 강력한 음주통제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날 “생도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가피한 경우 현재 지도교수, 학과장, 훈육관 이상의 승인이 있으면 음주를 허용하는 관행을 고쳐 생도대장 이상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외부인과 군인 가족 등이 학교를 출입하는 ‘생도의 날’에 술을 판매하는 관행도 바꿔 일절 금지하는 방안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육사에서는 지난 5월 생도 축제 기간에 남자 상급생도가 여자 하급생도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200명의 ‘따뜻한 품’

    소외가정과 민간 후원자를 연결해 주는 서대문구의 ‘100가정 보듬기 사업’이 시행 2년 반 만에 200가정에 도달했다. 문석진 구청장은 20일 오후 4시 구청장실에서 열린 197번째에서 200번째 가정과 후원자 결연식에 참석해 축하했다. ‘100가정 보듬기 사업’은 국가의 복지정책에 따라 공식적인 지원 대상에 포함된 수혜자를 제외한 한부모·조손 가정, 다문화·독거노인 가정 등을 발굴해 민간 후원자들과 이어주는 사업이다. 재정 여건 때문에 국가는 복지 혜택을 마구 넓힐 수 없고 민간 후원자는 돕고 싶어도 적절한 대상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착안, 이 둘을 잇는 역할을 맡으면 어떻겠냐고 문 구청장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2011년 1월 1호 가정 탄생을 시작으로 동주민센터, 복지기관, 서대문구 사회복지협의회, 동 지역사회복지협의체 등이 적극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후원자들과 연결해 주면서 200가정을 달성했다. 후원자가 매월 후원금을 내면 구 등은 공적부조 수혜자 수준의 종합적인 관리 체계를 가동한다. 현재까지 8억 3700만원이 지원됐다. 이날 200번째 가정 후원 결연식에 참석한 이는 박동열(79)씨다. 6·25전쟁 때 홀로 월남한 박씨는 온갖 일을 해가며 자수성가했다. 2011년 이미 세 가정 지원을 시작했고 이번에 또 네 가정 지원에 나섰다. 박씨는 “월남해 의지할 곳 없던 나에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없던 게 가장 가슴 아팠다”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남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문 구청장은 “다 함께 행복하고 따뜻한 서대문구를 만들고자 제안했던 사업인데 이처럼 훌륭한 후원자들 덕분에 빠른 시일 안에 200가정이나 품어 안을 수 있게 됐다”면서 “후원자들의 명예를 존중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후원자들에 대한 명예의 전당 같은 것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연말에는 후원자와 결연가족이 한데 모여 서로 격려하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연예병사 폐지에… 軍뮤지컬 공연 취소

    다음 달 예정됐던 군 창작 뮤지컬 ‘더 프라미스’의 재공연이 연예병사제도 폐지에 따라 취소됐다. 국방부는 다음 달 26일부터 30일까지 국립국장 해오름극장에 올릴 예정이었던 이 공연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1월 초연한 ‘더 프라미스’는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국방부와 육군본부, 한국뮤지컬협회가 공동 제작한 창작 뮤지컬이다. 당시 연예병사로 복무 중이던 배우 지현우, 김무열, 가수 이특(슈퍼주니어), 윤학(초신성) 등 30여명이 출연했다. 하지만 육군은 이달 초 이들을 야전부대로 재배치하고 일반 병사로 전환했다. 이번 재공연에는 연예병사로 복무했던 김무열, 이특과 뮤지컬 배우 김호영 등이 출연할 예정이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달 연예병사제도가 폐지된 상황에서 이 공연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내린 결정”이라면서 “연예병사들이 일반 병사의 신분으로도 출연할 수 있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해 공연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뮤지컬 사업 전반의 정리 방향에 대해서도 내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문화재 관리부실, 더 이상은 안된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옴부즈맨 칼럼] 문화재 관리부실, 더 이상은 안된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역대 왕의 행적을 알려주는 인장이자 상징물인 조선왕실의 ‘어보’에 낙서 흔적이 발견되었다. 조선 제8대 예종의 어보에서 한글로 ‘예종’이라고 쓴 글씨 이외에 썼다가 지운 흔적도 확인됐다. 이 문화재가 우리나라가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유물인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신문은 지난 16일 자(8면)에서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대표인 혜문 스님이 문화재청이 발간한 도록의 사진에서 예종의 어보에 낙서 흔적을 발견하고 문화재청에 훼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공문을 발송했다고 보도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와 민주당 안민석 의원실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 주립박물관에 소장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불법 반출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이미 국내 국립고궁박물관에 관리 중인 예종 어보에 낙서 흔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하지 않은가? 예종 어보 낙서사건을 계기로 서울신문이 낙서가 발견된 단편적인 상황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부실한 문화재 관리상황까지 짚었다면 더 생산적인 비판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문화재 당국은 언론 보도 이후 시민단체의 질의와 유물 훼손 여부에 관한 정보요청에 대응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어보에 한글로 ‘예종’이라는 글씨가 쓰인 것은 사실이나, 이는 낙서라기보다 이전에 유물의 관리를 위해 표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글씨를 새긴 것이 아니고 필기구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보존처리 기술로 쉽게 지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러나 유물의 관리를 위해 사인펜 등으로 유물에 직접 표기를 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이는 현재 문화재 부실관리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2012년 국정감사에 제출된 서울시 문화재 관리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시 소재 보물급 문화재 7건을 포함한 총 40건의 문화재가 훼손돼 26억원이 보수 예산으로 책정되었지만 유물 및 문화재의 상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법률소비자연맹 등 각종단체에서 저조한 목조문화재의 화재보험 가입률, 자연재해 위기대응 예방시스템과 실무 매뉴얼 부재, 문화재 안전관리 예산 감소, 잦은 도난과 7.2%에 불과한 회수율 등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불과 5년 전인 2008년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다시피 했는데 문화재 관리의식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내 비종교적 전통 문화재의 90% 이상은 이미 소실된 상태라고 한다. 지난 6월 서울신문을 통해 보도된 경복궁의 엉성한 문화재 훼손기준을 지적하는 기사와 같이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재 관리 부실을 비판하는 글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새로운 문화재의 발굴과 지정 못지않게 문화재의 관리·보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다뤘으면 한다. ‘문화재 기사는 따분하다’는 선입견은 진화하는 문화재 발굴과 보존·복원방법, 문화재와 지킴이들의 숨은 이야기 등을 통해 얼마든지 바꿔놓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문화재청은 어보 낙서 사례를 거울삼아 문화재·유물 보존·관리에 더욱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한다.
  • [글로벌 시대] 그리스의 한국전 참전 의의/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글로벌 시대] 그리스의 한국전 참전 의의/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갈파함으로써 인간 중심의 우주질서를 예견했다. 동시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정치지도자 페리클레스는 ‘데모크라티아’라는 정치이념을 전 세계 인류에 선사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인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 시작과 함께 인간 중심의 세계관인 헬레니즘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로 대표되는 그리스 문명은 그가 정복한 페르시아에서부터 이집트, 인도 북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대제국의 영토를 인문 고속도로로 삼아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인류문명의 핵심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민주주의와 인간 중심의 가치로 무장한 페리클레스와 알렉산더대왕의 후예인 그리스 병사 1만 581명이 한국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숫자는 2300년 전 알렉산더대왕이 4만명의 그리스 병사 호위를 받으며 페르시아 정벌에 나섰던 이후 지금까지 단일국가에 대한 그리스 파병 중 최대 규모의 병력이다. 당시 그리스 인구가 700만명 정도였음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규모의 파병 결정은 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내려온 민주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과 이를 지키고 확산시켜야겠다는 확고한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차대전 종전 이후 그리스는 1949년까지 5년간 공산세력과의 내란 와중에 국가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트루만독트린과 마셜플랜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과감한 공산주의 봉쇄정책과 서유럽 재건지원정책에 힘입어 그리스는 발칸반도 전체가 공산화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을 때 최후의 보루로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아테네 시내 중심지 헌법광장에 서 있는 무명용사비에는 그리스군이 참전한 나라와 지역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중에 그리스어로 뚜렷이 부각되어 있는‘한국’을 만나면 잠시 숙연함에 숨을 고르게 된다. 아테네시 교외 파파고시에 2004년 세워진 그리스의 한국전 참전비에는 ‘병사에게는 어느 곳이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대의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장열하게 전사한 병사는 그 업적과 용맹으로 어느 곳에 묻혀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된다는 의미이다. 이 비문은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 첫해에 희생된 아테네 병사의 장례식에서 페리클레스가 헌사한 추도사의 일부로 역사를 통해 두고두고 회자되는 말이다. 그리스 병사들이 한반도 창공에 높이 들어 휘날린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깃발은 전쟁의 상흔과 가난에 찌들려 있던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었다. 한국땅에서 지켜낸 민주주의의 승리는 그 후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지형을 바꾸면서 세계를 향해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올해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하여 민주주의 창조국 그리스의 한국전 참전이 가져다준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은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사이에서 더 이상 ‘잊힌 전쟁’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 신장과 창의력 창달이 어떤 꽃을 피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명예로운 전쟁’으로 기념되어야 할 것이다.
  • 친일논란 인사의 물품이 문화재? 역사 눈감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최근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백선엽, 민철훈, 윤웅렬, 윤치호, 민복기 등의 의복과 유물 등 총 11건 76점의 문화재 등록을 보류한 조치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문화재청은 지난 6월 21일 이들 유물이 “의생활 분야에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며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으나, 곧바로 항일 독립운동가 단체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운암 김성숙 선생 기념사업회’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등은 아예 이달 초 기자회견까지 열어 “친일행위자들의 물품이 문화재로 등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문화재 당국을 압박했다. 이는 역사적 맥락을 읽기보다 단순히 보전가치만을 따진 ‘기계적’ 행정이 불러온 결과로 풀이된다. 문화재청은 지난 6월 24일 경기 파주 소재 ‘감악산 결사대 사당’을 비롯한 6·25전쟁 관련 역사문화유산 5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하면서도 현장 답사도 없이 국가보훈처에서 발간한 ‘국가수호사적지 조사보고서’만을 근거로 결정하는 무성의함을 드러냈다. 친일 논란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문화재 행정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백선엽(92) 전 육군참모총장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1943년 4월부터 해방 때까지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며 항일단체들과 직접 교전까지 벌였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은 가장 죄질이 나쁜 친일 행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백 전 총장의 장군복 등 5점을 무더기로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를 재판했던 판사인 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도 마찬가지. 해방 이후 검찰국장과 대통령 비서관, 검찰총장을 지낸 그는 대법원장까지 오른다. 대법원장 시절인 1975년에는 인혁당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사법살인’이란 오명까지 남겼다. 민철훈(1856~1925) 대한제국 오스트리아·독일 전권대사는 한술 더 떠 1910년 국권 피탈 뒤 일본 황실로부터 아버지에 이어 남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문화재청은 민복기의 검사 법복, 민철훈의 대례복과 코트 등을 문화재로 지정하려 했다. 구한말 정치가인 윤치호(1865~1945)와 부친인 윤웅렬(1840~1911)도 반발을 불러왔다. 윤치호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로 변절해 조선 청년들의 자원입대를 독려하며 일본제국의회 귀족의원까지 지냈다. 윤웅렬은 구한말 형조판서, 대한제국 군부대신 등을 지냈으나 국권 상실 뒤 일본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이들 일가가 소유한 교지, 마패와 복식류 등 69점을 무더기로 문화재 지정 예고했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강원 “우리가 분단의 상징” 경기 “우린 벌써 사업진행”

    강원 “우리가 분단의 상징” 경기 “우린 벌써 사업진행”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유치를 놓고 강원도와 경기도가 벌이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14일 강원도와 경기도에 따르면 강원 철원과 고성군, 경기 파주시와 연천군이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강원도는 DMZ 전체 길이 248㎞ 가운데 60%인 145㎞를 차지하면서 고성 동쪽 끝으로 금강산과 설악산의 훼손되지 않은 관광자원과 통일전망대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철원지역도 분단된 국토의 중앙으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월정역과 6·25전쟁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인 백마고지를 활용하겠다는 취지로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강원도는 이렇게 조건이 뛰어난 만큼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철원군은 지난달 ‘평화공원유치위원회’ 창립총회를 열었고 고성군도 주민 서명이 담긴 평화공원 유치 건의문을 정부에 전달했다. 경기도는 최근 남북 대치 상황의 상징성을 갖는 판문점이 위치한 파주 일대를 활용하는 방안과 한강하구~파주~연천~철원~고성을 벨트로 묶고 북한지역까지 확대하는 4단계 ‘DMZ 세계평화공원’ 자체 구상안을 공개했다. 파주시는 2006년 DMZ를 생태체험관광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평화생태공원 조성 계획을 세워 놓고 생태탐방로, 에코뮤지엄거리 등 세부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파주 군내면 백연리 일원에 총 27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DMZ 평화생태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DMZ 일원에 평화공원이 조성되면 세계 최고의 생태·역사·안보 관광지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당위성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 DMZ 세계평화공원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철원과 고성, 파주와 연천 중 1곳을 우선 조성지역으로 선정해 시범사업을 벌인 뒤 조성 지역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과 신청 지역 모두를 선정하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현재 남북 관계가 경색돼 있어 사업을 구체화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성·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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