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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장공비들이 출몰하던 속초 외용치 60년만에 국민에게 개방한다

    무장공비들이 출몰하던 속초 외용치 60년만에 국민에게 개방한다

    6·25전쟁 이후 60여 년간 민간인 출입을 통제한 강원 속초시 외용치 해안이 개방된다. 속초시는 1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한 2016년 관광특구 활성화 사업에 대포동 외옹치 ‘바다 향기로(路)’ 조성사업이 최종 선정돼 개방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속초해수욕장∼외옹치 해안간 2㎞에 산책로를 만드는 사업으로 국비 7억 900만원 등 모두 30억원이 소요돼 연내에 완공될 예정이다. 외옹치 해안은 휴전 이후 일반인 출입이 사실상 통제돼 온 곳으로 1970년 6월 무장공비가 침투하면서 해안경계 철조망이 설치되고 출입금지가 더 엄격해졌다. 해안 산책로 일대에는 1970년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곳임을 관광객들에게 알리고자 기존에 설치된 해안경계 철책을 그대로 둘 예정이다. 군부대 벙커나 초소는 전망대로 활용할 방침이다. 외옹치 마을의 유래와 성황제, 별신제를 모티브로 하는 장승과 솟대 등을 설치해 안보와 전통문화를 이야기로 담아내는 감성 로드도 만든다. 문화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과 방문객들이 쉴 수 있는 벤치 등 휴식시설도 설치된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실향민촌인 청호동 아바이마을과 갯배, 로데오거리, 닭강정과 아바이순대 등 관광수산시장의 먹거리 등 지역의 다른 관광상품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방침이다”면서 “60년간 아무도 볼 수 없었던 해안 비경이 시민과 관광객들 품으로 돌아오게 됐으니 알차게 사업을 추진해 명품 도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속초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골목마다 보물 같은 이야기보따리… 이번 주 토요일 ‘을지유람’ 어떠세요

    골목마다 보물 같은 이야기보따리… 이번 주 토요일 ‘을지유람’ 어떠세요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골목은 좁고 허름해 생활하기에 불편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추억과 정감을 물씬 풍기면서 이색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이 장단점을 모두 품은 곳이 서울 중구 을지로다. 6·25전쟁 후 한국 산업화의 중심으로서 큰 역할을 했지만 유통 환경 변화에 따라 조금씩 생기를 잃었다. 을지로 부활을 고심한 중구는 개발 대신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을지로의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을지유람’으로 관심과 애정을 끌어모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18일 “을지로는 한국 근대화의 역사를 바꾼 산업 역군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며 “을지유람을 통해 을지로의 참멋을 느끼고, 새로운 방식의 도심 재창조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23일부터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에 여는 을지유람은 구민해설사와 함께 을지로 골목을 누비며 볼거리, 이야깃거리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유람은 지하철 3호선 을지로3가역에서 출발한다. 140여개 타일·도기 상점이 모여 있는 특화거리가 유람단을 맞이한다. 6·25전쟁 당시에는 3개뿐이었던 타일가게가 도시 재건이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확산돼 타일·도기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유람단은 전통 있는 중식당 ‘오구반점’과 80년 역사를 가진 수제화 업체 ‘송림수제화’(서울시 미래유산), 맥주축제가 열리는 노가리골목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골목 탐방을 시작한다. 골목에서는 손글씨로 쓴 간판과 단순하게 만든 포스터, ‘빠킹’(패킹)이나 ‘로구로’(도르래의 일본말) 같은 낯선 단어 등 색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피에타’(2012), ‘도둑들’(2013), ‘감시자들’(2013) 등 영화의 배경이 된 골목도 즐비하다. ‘설계도만 있으면 못 만들 것이 없던’ 공구거리, 온갖 디자인의 조명을 구경하면서 눈이 즐거운 조명거리를 거쳐 유람을 마무리한다. 유람 중에 을지로의 역사와 명칭의 유래를 듣고, 빈 점포를 창작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청년 예술가들의 작업실도 둘러볼 수 있다. 을지유람은 중구 홈페이지(www.junggu.seoul.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참가비는 무료.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는 별도 재료비가 필요하다. 최 구청장은 “누구나 쉽게 찾고 즐길 수 있는 을지로를 만들면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 도심 산업이 유지,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울주군 석남사 스님 20명도 투표, 울산 103세 고령 김말순 할머니도 투표

    울산 울주군 석남사 스님 20여명은 13일 오전 7시쯤 궁근정초등학교에서 투표했다. 스님들은 아침공양 후 2∼3차례 승용차와 승합차에 나눠 타고 투표소를 찾았다. 교무스님은 “나라가 안정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신라 헌덕왕(824년) 때 호국기도를 위해 도의국사에 의해 창건된 석남사는 6·25전쟁 때 폐허가 됐다가 1959년 복원됐다. 또 이날 오전 11시 10분쯤 남구 수암동 롯데캐슬아파트 경로당의 제3투표소에서는 뇌병변 3급 김분례(88) 할머니가 119구급차를 타고 와 투표를 했다. 김 할머니는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 남편(92)의 도움으로 장애인 기표소에서 투표했다. 남편은 “아내가 투표할 의지가 강해 구급차를 타고 투표했다”고 말했다. 북구 강동동 제2투표소에서는 만 103세 김말순 할머니가 투표했다. 울산 최고령 108세 김소윤(중구 병영1동) 할머니는 지난 8∼9일 사전투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부고] 재일학도의용군 이봉남 회장 타계

    [부고] 재일학도의용군 이봉남 회장 타계

    1950년 6·25전쟁 당시 일본에 거주했지만 자진해서 참전했던 이봉남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명예회장이 지난 10일 별세했다. 97세. 12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일본 도쿄에 살던 이 회장은 조국에서 영면하고자 지난 9일 한국에 입국한 지 하루 만인 10일 오후 2시 30분 서울 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6·25 당시 일본에서 학업이나 생업을 중단하고 참전한 재일 학도의용군은 642명으로 집계됐다. 이 회장도 6·25전쟁 발발 당시 31세로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결혼해 자녀까지 두고 있었다. 이 회장은 생전에 “조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라디오로 듣고 ‘또다시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슬픈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참전을 결심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황호숙씨와 1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 14호실이며 발인은 14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이다. 010-2187-5771.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한·노르웨이 15일 정상회담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15일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솔베르그 총리는 노르웨이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로, 14일부터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방한한다. 박 대통령과 솔베르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국 정상은 1959년 수교 이래 발전시켜 온 전통적인 우호 협력을 바탕으로 실질협력 및 미래지향적 협력 방안, 한반도를 포함한 지역 정세, 지속가능 개발 및 기후변화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눌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노르웨이는 6·25전쟁 당시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고 1959년 북유럽에서 우리나라와 최초로 수교한 국가다. 조선·해양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핵심 파트너로, 지난해 양국 간 교역 규모는 사상 최대치인 74억 달러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노르웨이에 다산과학기지 및 한·노르웨이 극지연구협력센터 등을 설치했으며 한·노르웨이 북극협의회를 통해 북극과 관련한 협력을 강화 중이다. 노르웨이는 최근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했고, 대북 제재를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의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이 양국 간 실질협력을 심화시키고 한반도 정세를 포함한 여러 현안에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원로 문화예술평론가 박용구 옹 별세

    원로 문화예술평론가 박용구 옹 별세

    원로 문화예술평론가 박용구 옹이 6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102세. 1914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제 식민지배와 6·25전쟁 이후 척박한 예술 환경 속에서도 음악·무용 평론가, 뮤지컬 제작자, 극작가, 연출가 등 르네상스적 문화인으로 활동해 온 인물이다. 해방 후 최초의 음악 교과서 ‘임시 중등 음악 교본’(1945), 근대기 최초의 음악 평론집 ‘음악과 현실’(1948) 등을 썼다. 음악펜클럽 회장, 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유니세프(UNICEF) 문화예술인클럽 회장,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 등을 지냈다. 은관문화훈장, 서울시 문화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시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8일. (02)2258-5940.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인제군, ‘38선’ 관광자원화 나선다

    자작나무힐링캠프로 유명한 강원 인제 원대리 인근이 ‘38선 스토리텔링·형상화’로 관광자원화 된다. 인제군은 6일 ‘38선이 지나간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는 등 관대리 38공원~귀둔리 쓰리재 38㎞를 연결하는 38선 스토리텔링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업은 국비 7억원 등 예산 17억원을 들여 내년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인제군은 최근 ‘Let’s go 38선 스토리텔링·형상화 사업 타당성 검토·기본계획 수립 최종보고회’를 가졌다. 주요사업은 관대리 38공원∼남전리 남전계곡∼인제 원대리 자작나무힐링캠프·38선이 지나간 집∼고사리 수변공원∼하추리 하추자연체험학교∼북리 오지체험마을∼쓰리재의 마을별로 중요지점을 설정해 38m 높이의 국기게양대 3곳, 스토리 형상 조형물 11곳, 군사분계선 팻말·철책 7곳 등 스토리 형상화 시설을 설치한다. 하추리 김일성·박정희 길 3.8㎞와 원대리 복주깨봉 산책로 4㎞ 등 일부 탐방로도 새로 정비한다. 이 가운데 관대리는 6·25전쟁 중 소련군이 막걸리를 얻어 먹기 위해 민간인을 잡아간 뒤 막걸리를 가져다주면 풀어주곤 했던 곳으로 전해져 이곳에 38대교를 배경으로 하는 형상조형물도 설치한다. 권흥기 인제군 홍보계장은 “고사리마을에는 6·25 복주깨봉 전투 때 북한 인민군이 군수물자· 군인의 원활한 투입을 위해 주민을 동원해 만들었던 ‘출렁다리’가 재현돼 모험 체험시설로 활용된다”면서 “부대 콘텐츠로 당시 38선에 인접한 도로변과 산책로 코스에 군사분계선이 복원·설치된다”고 말했다. 인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산수유 심는 환경부 장관… 영동서 식목행사

    산수유 심는 환경부 장관… 영동서 식목행사

    윤성규(앞줄 왼쪽) 환경부 장관은 제71회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충북 영동의 금강 수변 구역에서 식목행사를 가졌다. 이날 식목행사에는 환경부 공무원과 금강유역환경청·한국환경공단·환경보전협회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해 수변 지역에서 잘 자라고 온실가스 흡수 능력이 뛰어난 산수유 1000그루를 심었다. 윤 장관은 “우리나라는 6·25전쟁 등으로 황폐해진 국토에서 40여년 만에 선진국 수준의 산림률을 달성한 저력이 있다”며 “한 사람이 평생 내쉬는 이산화탄소 2.6t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947그루의 소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잊고 산 결핵, 면역력 떨어지면 찾아와요

    잊고 산 결핵, 면역력 떨어지면 찾아와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속 소녀는 소나기를 흠뻑 맞고 그만 병이 악화돼 “내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는 잔망스러운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가을날 소나기가 소녀를 시름시름 앓게 했지만 죽음으로 이끈 건 결핵이었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여주인공 미미,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도 애절한 사랑을 하다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창백한 피부에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몸이어야 ‘비련’에 어울리다 보니 결핵 환자의 모습이 병적인 아름다움으로 미화돼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의 단골 소재가 됐다. 결핵은 문인의 병이기도 했다. 이상, 김유정, 나도향, 채만식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상당수 문인이 결핵 투병을 했다. 하지만 결핵은 비련의 여주인공과 문인이 앓는 ‘낭만적’ 질병만은 아니다. 문인 가운데 유독 결핵 환자가 많았던 건 가난과 흡연, 잦은 음주 때문이다. 손현진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연구관은 “결핵은 대체로 폐에 생기는데 흡연은 폐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리며 알코올 중독, 당뇨병, 스트레스, 영양 결핍 등 면역을 떨어뜨리는 모든 요인이 결핵 발병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결핵 환자 통계를 보면 지난해 신규 환자 수는 남성 1만 8695명, 여성 1만 3486명으로 남성 환자가 여성보다 1.4배가량 많다. 손 연구관은 “남성의 높은 흡연율, 군대에서의 집단생활 등이 결핵 발생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핵균에 감염됐지만 아직 증상은 나타나지 않은 잠복결핵자라도 면역력이 강하면 결핵으로 발병하지 않는다. 문인뿐만 아니라 못 먹고 못살았던 그 시절 가난한 이들은 결핵을 앓았다. 그래서 결핵을 다른 말로 ‘가난의 질병’이라고도 부른다. 1965년만 해도 결핵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5100명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야 인구 10만명당 10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핵에 걸리면 객혈, 호흡곤란, 무력감과 피곤함, 미열·오한 등의 발열 증상이 나타난다. 감기나 폐렴, 폐암, 기관지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호흡기 관련 질환과 증상이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식욕이 떨어지면서 체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결핵에 걸린 예술작품 속 여성들이 하나같이 여윈 몸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결핵은 대체로 폐에 생긴다. 기침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열이 나며 기침 증상이 밤에 더 심해지면 폐결핵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다만 결핵 발병 부위에 따라 신장결핵이면 혈뇨가 나타나고 배뇨 곤란·잦은 요의(尿意) 등 방광염과 비슷한 증상을 동반하기도 하며, 척추결핵은 허리 통증, 결핵성 뇌막염이면 두통·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증상만 가지고 결핵 종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결핵을 예방하기 위해 2017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생과 40세 성인을 대상으로 잠복결핵 검진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결핵 환자 돕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크리스마스실’이 기억 저편으로 밀려난 것처럼, 못 먹고 못살던 시대의 전유물로 여겼던 결핵도 잊힌 지 오래지만 없어진 질병은 아니다. 2015년 기준 국내 신규 결핵 환자 3만 2181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10만명당 86.0명)란 통계가 말해 준다. 그냥 1위도 아니라 결핵 발생률이 2위인 포르투갈(10만명당 25.0명)보다 무려 3배 이상 많은 압도적 1위다. 북한의 결핵 환자는 세계보건기구(WHO) 추산 10만명당 442명(2014년)이다. 우리나라에 유독 결핵 환자가 많은 것은 6·25전쟁 때문이다. 전쟁 전후 결핵이 많이 발병했고, 피란 생활을 하며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됐다.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공부하고 군대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결핵균이 더 많이 전파됐고, 이렇게 감염된 이들이 노년기 들어 발병하며 2차 감염을 일으키고 있다. 결핵은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다. 결핵 치료를 시작해 2주 정도 약을 복용하면 대개 전염력은 사라진다. 그러나 결핵균은 증식 속도가 무척 느려 최소 6개월 약을 복용해야 하며, 복용을 마음대로 중단하면 아직 죽지 않은 결핵균이 다시 증식해 재발하게 될 위험이 크다. 또 기존 약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결핵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1차 치료는 6개월이지만, 다제내성결핵의 치료 기간은 2년이며 부작용이 많아 매우 힘들고 치료 성공률도 50~60%에 불과하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통조림 부산물로 만든 고깃국, 담백한 나주곰탕 되다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통조림 부산물로 만든 고깃국, 담백한 나주곰탕 되다

    한국인은 국물에 주식인 밥을 말아 먹는 특징을 지녔다. 그 대표적인 국밥에 곰탕과 설렁탕이 있다. 곰탕은 우리말 ‘고다’에서 나온 말이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소고기의 사태, 곱창, 양, 곤자소니와 무, 다시마 등을 넣고 푹 끓인다. 곤자소니는 대창의 끝으로 기름기가 많은 부위다. ●소 푹 끓인 곰탕·설렁탕, 흔치 않은 서울 음식 반면 설렁탕은 도가니, 양지머리를 기본으로 우설, 허파, 지라 등과 함께 사골과 소머리뼈 등 잡뼈를 넣어 허연 국물이 나올 때까지 곤다. 국물 찌꺼기를 걷어내며 몇 번씩 끓인다. 곰탕이 비교적 누런 국물이라면 설렁탕에는 소뼈가 들어가 뽀얗다. 본래 곰탕은 간장으로 간을 하고 설렁탕은 소금으로 입맛에 맞췄다. 둘 다 반찬은 깍두기만 있으면 된다. 소는 우리 땅에선 귀한 고기였다. 설렁탕은 조선 때 매년 경칩이 지난 첫 번째 해(亥)일, 축(丑)시에 동대문 밖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백성들과 함께하는 신농제를 지내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소 사육 정책에 따라 소고기를 쉽게 접했다. 덕분에 서울 무교동과 청계천 수표교를 중심으로 가마솥을 걸어 놓은 곰탕집과 설렁탕집이 늘었다. 따라서 곰탕과 설렁탕은 흔치 않은 서울 음식 중 하나다. 깍두기의 무는 그 어디보다 한양의 것을 제일로 꼽았다. ●6·25 이후 전국에 퍼져… 현풍·마산 등 유명 곰탕은 6·25전쟁 이후 전국적으로 퍼졌다. 전남의 나주곰탕, 경북의 현풍곰탕, 경남의 마산곰탕, 황해도의 해주곰탕 등이 유명하다. 함경도에는 갈비탕과 비슷한 가릿국이 있다. 현풍곰탕과 마산곰탕은 고기를 넣기 전에 설렁탕처럼 사골로 깊은 맛의 육수를 내는 게 특징이다. 영산강을 끼고 있는 나주에는 사연도 많다. 일제 때 나주에는 군납용 통조림 공장이 있었다. 고기는 통조림에 쓰고 가죽으로는 군용 벨트와 신발, 가방 등을 만들었다. 통조림 공장에서 내장 등 부산물이 버려졌는데, 이를 마을 사람들이 주워 고깃국을 만든 게 나주곰탕의 효시다. 탕을 끓이며 부산물의 비릿한 노린내를 잡기 위해 국물 위에 뜨는 누런 기름기를 밤새 걷어냈다. 그 결과 영양이 더 뛰어나면서도 담백한 맛과 맑은 빛깔의 나주곰탕이 탄생한다. 어머니의 놀라운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영산강과 나주 일대에는 청동기 후기부터 1000년 가까이 존속했던 문명 집단이 거주했다. 장례에 쓰인 분묘의 경우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옹관묘를 사용했다. 옹관묘는 대형 항아리 2개를 서로 붙여 시신을 담은 묘를 말한다. 그때는 고열에서 항아리를 굽는 것만 해도 어려운 기술인데, 큰 항아리를 상용했다는 게 신기한 일이다. 나주인은 비슷한 시기인 그리스 문명기의 지중해인처럼 풍요로운 해상 세력이었다. 300여년 후 영산강과 나주는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왕건이 고려를 창건하기 전 후백제의 견훤과 패권을 다툴 때 나주를 공략하기로 했다. 나주는 후백제 도읍인 완산주(전주)의 배후 지역이다. 왕건의 밀사는 나주의 토착 귀족을 몰래 찾았고, 후백제를 치는 데 협조를 구한다. 야사에서는 개성의 해상 세력인 왕건이 “오랜 인연을 지닌 해상인들끼리 뭉쳐야지, 왜 북방계 부여인(백제)을 따르느냐”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왕건을 도운 귀족은 나주 오씨의 시조가 되고, 그 딸이 장화왕후가 된다. 곰탕 한 그릇에 진한 얘기가 배어 있다. kkwoon@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김은숙 부산 중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김은숙 부산 중구청장

    ‘만면에 늘 미소가 가득하다. 그에게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아마 친화력이리라. 그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남을 배려하는 타고난 성품과 오랜 사회 경륜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이리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여성 특유의 모성애로감싸주는 넉넉함과 푸근함도 갖췄다. 주민들은 소탈하고 정이 많다며 마치 제 식구처럼 편안하게 대한다. 김은숙(71) 부산 중구청장에 대한 평가다. “엄마의 마음으로 지역 구석구석을 누비며 구민들의 가려운 곳,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는 김 구청장을 지난 16일 집무실에서 만나 인생관과 구정운영 등을 들어봤다. 그는 “크게 버릴 줄 아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내가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약사 출신… 10년마다 찾아온 인생 전환점 김 구청장의 인생 전환점은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약사 생활 10년, 정당인 10년, 부산시 공무원 10년, 여약사회와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등 사회봉사활동 10년, 민선 6기를 마무리하면 중구청장으로도 10년을 근무하게 된다. 10년마다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왔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그는 4세 때 당시 부산일보 기자인 아버지를 따라 부산 영도에 정착한다. 부산의 명문인 부산여중·고를 나와 부산대 약대를 다녔다. 은막의 스타였던 영화배우 고은아씨가 고교 동창이다.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는 선친의 영향이 컸다. 결혼을 하고 26세 때 자갈치시장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그에게 “약사로 만족하지 말고 더 크고 넓은 곳에서 일해봐라”는 선친의 조언이 크게 가슴에 와 닿았다. 10년간 운영하던 약국을 접고 지인의 추천으로 민정당(현 새누리당) 사무처 1기 공채모집에 응시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여자 약사 출신으로 집권여당의 사무처 직원으로 뽑힌 것은 그가 처음이다. “1981년 7월 민정당 부산시지부 여성부장으로서 정당생활을 시작하면서 전공인 약사와 다른 길을 걷게 됐다”고 회상했다. 1991년 7월 부산시의회 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다가 부산시 가정복지국 부녀복지과장과 여성정책과장을 거쳐 부산시 초대 보건복지 여성국장을 역임했다. 명예퇴직을 하고 부산시여약사회장과 여성단체협의회장을 맡는 등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앞장섰다. 공직생활 10년 동안 다양한 리더십과 행정경험은 물론 각계각층의 사람을 접하면서 신뢰도 쌓았고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는 향후 구청장직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권유로 2006년 5월 지방선거에 처음 출마했으나 근소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다시 도전 기회를 얻어 이듬해 12월 부산 중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2010년 재선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전국 첫 3선 여성 구청장이란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국제시장·깡통시장 등 볼거리·먹거리 풍성 부산 중구는 전국 최대 규모의 수산물 시장인 자갈치시장. 영화 ‘국제시장’으로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한 국제시장과 부평동 깡통시장,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40계단 등 질곡의 근현대사를 마주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먹고살려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정착해 삶의 터전을 이루고 동화되고 꽃을 피운 곳이 부산에서도 중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 수가 채 5만명이 되지 않지만 광복동, 국제시장 등 상가가 많아 상주인구는 30만여명, 유동인구는 100만명에 달하는 강소(强小)구이다. 하지만 부산항 개항 이래 부산의 최고 번화가였던 중구는 시청 등 공공기관이 옮겨가면서 상권 침체와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취임 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업도 원도심 중구의 상권 부활과 산복도로 등 고지대 지역의 삶의 향상을 위한 도시재개발 사업이다. 이들 사업은 이제 서서히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광복로 등에 다채로운 문화관광 축제 행사를 펼쳐 부산 중구에 오면 항상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 살거리가 넘친다는 인식을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심어주는 등 원도심 지역경제 활성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요.” 마땅한 겨울축제가 없는 부산에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를 기획해 세계적인 대표 겨울축제로 만든 것과 부평동 깡통야시장 개설 등에 대해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부산의 일부 구에서 부평통 깡통야시장을 벤치마킹해 운영하고 있고, 크리스마스트리축제는 부산지역 자치단체는 물론 서울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뿌듯해했다. 때마침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한국 근대사의 애환을 간직한 영도대교가 47년 만에 재가동한 것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특히 ‘국제시장’의 인기에 힘입어 중구가 부산을 대표하는 명품도시로 자리매김해 국내외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 명소로 도약했다. 이에 힘입어 국제시장이 지난해 3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선정된 데 이어 부산의 대표 수산물시장인 자갈치시장도 글로벌 명품 시장으로 뽑히는 경사를 맞았다. 이들 시장은 3년간 각각 국·시비 50억원을 지원받는다. 이러한 결과로 최근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주관 공약실천 계획평가에서 최고 등급(SA), 제1회 지방자치특별상, 신리협동조합 우수마을 기업선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올렸다. ●100억 지원받는 ‘보수동 도시재생사업’ 큰 기대 고지대 산복도로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한 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년 전 전국 최초로 복지형 모노레일을 영주동에 설치해 어르신들의 보행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웃 동구에서도 최근 이를 벤치마킹해 산복도로 모노레일을 개통했다. 특히 고지대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을 ‘보수동 도시재생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김 구청장은 “지난 연말 국토교통부 ‘2016 도시재생 공모사업’에 중구 보수동 근린재생형 도시재생사업이 선정돼 100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2020년까지 5년 동안 고지대 맞춤형 주거지 재생사업과 게스트하우스 설치와 함께 보수동 상가재생사업, 마을기업 교육 등을 전담할 근린 재생지원센터 등도 운영할 방침이다. “최근 피난시절 만들어진 산복도로가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어요. 부산만의 전경을 보여주는 산복도로, 그 골목골목에 담긴 서민들의 삶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산복도로 르네상스 도시재생 사업으로 영주동 망양로에 ‘역사의 디오라마’와 같은 조망시설과 카페를 설치했고, 금수현의 음악살롱, 밀다원시대 등의 문화공간을 대폭 확대해 보는 재미와 더불어 쉬어갈 수 있는 휴식공간을 관광객들에게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부임 후 지난 8년간 원도심 중구는 상권 활성화는 물론 문화관광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등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회상한 그는 “도시재생사업, 대청로 상징거리 조성, 자갈치 수산관광단지 조성 등의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반드시 중구를 문화관광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고 하자 “하루 4시간 푹 자고 세 끼 식사 등 규칙적인 생활과 면역력 증가와 암을 예방하는 비타민 C 복용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라며 웃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청년실업, 사회적 일자리 창출로 극복을”

    “청년실업, 사회적 일자리 창출로 극복을”

    # 부산 중구 중앙동의 ‘또따또가’는 부산시 지원으로 조성된 도심형 예술 창작 공간이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살았던 40계단 주변 도심의 빈 공간에 부산문화예술교육연합회가 2010년 부산시로부터 3억원을 지원받아 만든 곳이다. ‘또따또가’에 무료로 입주한 예술인 355명은 수시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시민들과 소통하며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인근에는 자연스럽게 청년층이 운영하는 수공예, 북카페 등의 문화 공간들이 생기면서 상권도 되살아났다. #부산 수영구 광안2동에는 지난해 1월 마을기업 ‘오랜지바다’가 문을 열었다. 행정자치부로부터 5000만원의 지원금을 받는 사회적기업이다. 수익성이 낮아 민간 기업은 참여하기 어려운 분야에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비영리단체가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지역의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어 인테리어 소품, 그림엽서 등을 전시, 판매한다. 청년·대학생 10명 가운데 4명 정도는 청년 실업 문제의 원인으로 ‘사회적 일자리의 부족’을 꼽았다. 사회적 일자리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에 의해 창출되는 일자리를 말한다. 한국지역진흥재단이 지난 7~11일 전국 17개 시·도의 청년, 대학생, 기업·상공인, 경제 전문가, 관련 공무원 등 6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일자리 현황에 대한 전국 인식 조사’ 결과다. 이 같은 내용은 17일 부산문화콘텐츠콤플렉스(BCC)에서 ‘청년 일자리는 대한민국의 내일’이라는 주제로 열린 행자부 주최 제1회 지역경제정책협의회에서 소개됐다. 홍윤식 행자부 장관과 17개 시·도의 경제부시장·부지사, 청년 기업가,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전대욱 한국지역진흥재단 마을공동체발전센터장은 “기업인·상공인, 경제 전문가, 관련 공무원 등은 청년 실업의 원인 중에서도 근로 의욕 부족 등을 크게 보지만 청년·대학생은 임금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문화, 예술 서비스 분야 일자리 등이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모성은 한국지역경제연구원 원장은 “투자 심리 위축에 따른 고용 둔화도 청년 실업의 원인이지만 정부의 산만한 청년 일자리 정책이 크게 실효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선진국처럼 처음에는 질 낮은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노력과 경쟁을 통해 점차 나은 수준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사다리 제도나 사회적 경제에 관심이 많은 청년층의 수요에 맞춘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산의 스타트업(신생 벤처) 제조 업체인 권익환 샤픈고트 대표는 “정부 창업 지원 정책이 단기 성과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창업에 뛰어들면 애로 사항이 많다”며 “청년취업인턴제 지원금도 지난해 6개월에서 올해부터 3개월로 바뀌었는데 막 시작한 업체들로서는 3개월 만에 인턴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부산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新국토기행] 강원도 양구군

    [新국토기행] 강원도 양구군

    첩첩산골 강원 양구군이 관광 자원과 스포츠 마케팅으로 부를 일구고 있다. 휴전선과 인접한 지역이고 인구도 2만 4100여명에 불과한 작은 내륙의 섬 같은 고장이지만 일찌감치 제4땅굴 등 안보관광과 두타연 등 청정 자연 자원을 활용하고 스포츠 마케팅을 접목해 잘사는 고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양호와 파로호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일명 ‘꼬부랑길’도 오토바이와 자전거 동호인들이 찾는 유명한 코스가 됐다. 연간 80~90건에 이르는 도 단위, 전국 단위 스포츠 대회를 유치해 140억원 안팎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음식·숙박업소들이 연중 성업하는 이유다. 뱃길로 이어지던 춘천~양구가 터널로 30분 거리에 놓이고 강원외국어고등학교가 있어 교육도시로 자리잡으며 덩달아 수도권에서 귀농, 귀촌하려는 인구도 늘고 있다. 작지만 알찬 양구로 봄 여행을 떠나 보자. ■볼거리 ●가칠봉·도솔산 등 산에 둘러싸인 분지 ‘펀치볼’ 6·25전쟁 때 격전지인 해안면에 있는 분지가 ‘펀치볼’로 잘 알려졌다. 전쟁 당시 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마치 화채 그릇(펀치볼)처럼 생겼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펀치볼은 가칠봉, 도솔산, 대암산 등 해발 1100m 이상 산에 둘러싸인 분지로 남북 11.95㎞, 동서 6.6㎞, 면적은 44.7㎢로 여의도의 5배가 넘는다. 펀치볼에는 제4땅굴 등 안보관광지가 자리한다.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로 이어지는 초입의 통일관에는 북한 실상을 알 수 있는 생활용품, 수출품, 사진 등이 상설 전시된다.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을 관광하려면 통일관에서 출입 신청을 해야 한다. 날씨 좋은 날 해발 1049m 높이의 을지전망대에 오르면 북쪽 비로봉을 비롯해 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일출봉 등 5개의 금강산 봉우리를 볼 수 있다. 통일관과 가까운 곳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는 6·25전쟁 때 양구 지역에서 있었던 도솔산·대우산·피의 능선·백석산·펀치볼·가칠봉·단장의 능선·949고지·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등 치열했던 9개 전투를 엿볼 수 있다. 전시실마다 치열했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디오라마와 동영상, 슬라이드 영상 등이 있다. 1990년 발견된 제4땅굴은 지하 145m에 높이와 폭이 각각 1.7m로, 북한이 남침용으로 파 놓은 길이 2052m의 굴이다. 땅굴 내부에서는 투명 유리 덮개로 덮인 15인승 전동차가 운행된다. ●멸종 위기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 ‘두타연’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 지류에서부터 동면 비아리와 사태리 하류에 이르는 청정수 폭포와 계곡으로 1000년 전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예부터 금강산 북쪽 장안사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잘 알려졌다. 두타연은 민간인 출입 통제선 북쪽에 있어 오염원이 없고 주변의 풍광이 뛰어나 힐링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연간 10만명 이상이 찾는다. 멸종 위기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다. 높이 10m, 폭 60여m의 계곡물이 한곳에 모여 떨어지는 두타폭포는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고 한낮에도 안개가 자욱해 신선의 경지를 연출한다.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두타연은 20m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보덕굴이 있다. 민통선 내 북쪽에 있지만 입구에서 신청서와 신분증을 제출하면 즉시 출입할 수 있다. ●박수근이 쓰던 연적·편지…‘박수근미술관’ ‘국민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 화백은 우리 민족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서민 화가이면서 20세기의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2002년 박수근 선생의 생가인 양구읍 정림리에 건립된 박수근미술관은 작가의 작품 세계와 예술혼을 기리는 양구 지역의 대표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미술관에서는 박 화백이 생전에 사용하던 안경·연적·편지·책 등의 유품과 미공개 스케치·유화·수채화·드로잉·판화·삽화 등 여러 미술 작품, 박 화백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린 동화책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엽서 모음과 스크랩북 등을 선별해 상설 전시한다. 또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근현대 한국 화단 주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도 소장하며 기획 전시하고 있다. 역량 있는 작가들이 창작 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람객들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동산도 조성돼 있다. 미술관 뒷산에는 박 화백의 묘가 있다. ●국내 최대 습지 한가운데 조성한 ‘한반도섬’ 파로호 상류에 163만㎡의 국내 최대 습지를 조성하고 호수 한가운데에 한반도섬(4만 5000㎡)을 만들어 놨다. 길에서 섬까지 곧장 나무 데크 다리로 연결돼 강바람을 맞으며 걷기에 좋다. 한반도섬에는 각 지역이 지닌 특징을 표현한 조형물이 있다. 가장 북단에는 백두산이 자리하고 목조 데크로 연결된 제주도에는 한라산과 돌하르방, 돌담이 놓여 있다. 동쪽에 있는 독도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강원도에는 상징물인 반달곰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한반도섬은 해가 질 때와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 오를 때가 가장 인상적이다. 또 65m 높이의 타워에서 출발해 와이어를 타고 물 위를 날아 750m 거리의 한반도섬에 도달하는 집라인도 즐길 수 있다. 빠른 속도감과 함께 파로호와 한반도섬을 아우르는 양구의 수려한 경관을 즐길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국토 정중앙 점·국토정중앙천문대 우리나라 동서남북 끝단인 독도, 평안북도 마안도, 제주도 마라도, 함경북도 유포면을 기준으로 국토 정중앙 지점이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이다. 이곳에는 정중앙을 알리는 ‘휘모리’라는 이름이 붙은 상징물이 만들어져 있다. 찾는 관광객들이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국토 정중앙 방문 기념품 코너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또 국내 최대 규모의 반사망원경 등을 갖춘 국토정중앙천문대가 있다. 천문대 내의 체험·전시 공간에서는 국내 어느 과학관에서도 볼 수 없는 최신 천문학 내용을 접할 수 있고, 56석 규모의 천체투영실에서는 디지털 천체투영기를 이용해 환상적인 과학 영상물을 보거나 가상의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를 공부할 수 있다. ■먹거리 해발 1100m서 건조한 시래기… 웰빙 산채 곰취… 전국 으뜸 사과 시래기 큰 일교차와 적절한 바람이 부는 양구 펀치볼 지역은 해발 1100m의 산으로 둘러싸여 전통 방식으로 시래기를 건조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펀치볼 시래기는 해발 600m 고랭지에서 키운 시래기 전용 무로 만들어 잎이 많고 뿌리가 작으며 추운 날씨에 두 달간 자연 건조해 맛이 좋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최고로 인정받는다. 펀치볼 시래기는 겨울철에 모자라기 쉬운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 섬유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 건강에 좋은 식품이다. 또 철분이 많아 빈혈에 좋고, 칼슘 및 식이 섬유소가 함유돼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려 동맥경화 억제 효과가 있다. 소비자들이 집에서 바로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삶은 시래기를 진공 포장한 제품과 시래기를 넣은 고등어조림 진공팩 제품도 개발했다. 곰취 향미가 좋은 곰취는 식탁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웰빙 산채다. 살짝 데쳐서 무침을 해도 맛과 향이 뛰어나고, 데친 후 볶아서 먹어도 좋다. 장아찌와 겉절이, 된장국, 부침개 등 다양한 요리에 재료로 사용해도 원재료의 맛을 방해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 특히 삼겹살 등 육류를 곰취와 함께 쌈을 싸서 먹으면 느끼함이 사라지고, 입 안 가득 곰취 특유의 향이 퍼져 식감이 매우 좋다. 곰취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좋고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C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혈액 순환 개선과 기침, 천식에 대한 치료에도 좋아 옛날부터 민간요법에 사용돼 왔다. 멜론 양구 멜론은 2011년과 2012년 전국 톱 과채 품질평가회에서 2년 연속 대상을 받는 등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과수 작물이다. 멜론은 비타민A, 비타민C, 베타카로틴, 항산화제인 플라보노이드 등의 성분이 많은 과일로, 시력 감소 예방과 피로 해소, 콜레스테롤 감소 등 면역력 증가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알려져 영양학적 가치가 높다. 사과 ‘2015 대한민국 과일산업대전’의 대표 과일 선발대회에서 양구 사과가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4년에도 ‘2014년도 톱 프로젝트 과수 품질평가’에서 사과(홍로, 부사)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양구 지역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밤낮의 기온차가 크고 풍수해가 적어 안정된 과수 생산이 가능하고, 토양의 배수가 좋아 사과나무 재배의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수박 양구 수박은 매년 첫 출하 경매에서 전국 최고가를 기록하며 명품 수박으로 자리잡았다. 양구 수박은 양구 지역의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높고 아삭아삭하며 육질이 단단해 저장 기간이 긴 장점이 있어 과일 상인들에게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는다. 타 지역 수박에 비해 가격이 항상 30~60%가량 높게 형성된다. 수박은 노화 방지와 암 예방에 효과가 있고 이뇨작용을 촉진해 몸속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양구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130여년 ‘태극기 변천사’ 한눈에

    130여년 ‘태극기 변천사’ 한눈에

    조선과 미국이 통상 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1882년 5월(고종 19년), 국기가 처음 등장한다. 이로부터 넉 달 후 고종의 밀명을 받고 일본으로 향한 외교사절(수신사) 박영효는 선상에서 ‘태극과 4괘’를 도안으로 기를 만들어 썼다. 이듬해 3월 6일 고종은 ‘태극과 4괘’ 도안의 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다. 정부는 이날을 태극기가 국기로 제정된 날로 보고 있다. 130여년간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함께해 온 태극기의 변천사가 17일부터 공개된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국기 제정일(3월 6일)을 기념해 이달의 기록 주제를 ‘민족의 얼과 염원 담은 태극기의 변천사 한눈에 본다’로 정하고, 관련 기록물 45건(동영상 5건, 사진 21건, 문서 4건, 유물 9건, 우표·엽서·포스터 등 6건)을 홈페이지(www.archives.go.kr)에서 제공한다고 16일 밝혔다. 기록물에 등장하는 태극기의 도안은 다양하다. 국기가 제정·공포된 뒤에도 상세 도안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제각각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1886~1890년 조선의 외교고문으로 활약한 미국인 오언 데니가 소장한 1890년 무렵 태극기와 1907년 의병장 고광순이 사용한 태극기 등은 문양과 괘의 위치가 전부 다르다. 광복 후 정부는 1949년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해 국기제작법(문교부고시 제2호)을 확정했다. 현재 태극기에 관한 규정은 2007년 제정된 대한민국국기법을 따른다. 태극기는 6·25전쟁 등 나라의 위기 때마다 조국수호 의지를 결집하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서울 흥천사 감로왕도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서울 흥천사 감로왕도

    감로탱(甘露幀)은 외래 종교인 불교를 한국인들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신앙했는지 보여 주는 불교 회화이다. 전생에 지은 죄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에 고통받는 중생이 구제 과정을 거쳐 극락에 이른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감로탱 중생이 구제 통해 극락 이른다는 내용 감로탱화, 감로도, 감로왕도라고도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과거-현재-미래가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3단 구성으로 그려졌다. 아래부터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헤매는 중생도 단이슬(甘露)이 상징하는 풍성한 음식이 베풀어진 의식을 거치고 나면 부처가 머물고 있는 세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감로탱은 목련존자가 아귀도에 빠져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하려 도움을 청하자 부처가 가르쳐 준 방법을 담은 그림이다. 부처의 가르침대로 산천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수륙재나 조상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우란분재에서 쓰였다. 이렇듯 경전 내용을 의식용 그림으로 재창조한 독창적인 그림이 불교가 극심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 꽃을 피웠다는 것은 흥미롭다.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있는 약산사 감로탱(1589)이다. 감로탱은 하단의 육도윤회상이 조성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풍속화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39년 조성된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는 특히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흥천사는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의 원찰이다. 공주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룡산파 화맥(畵脈)의 보응 문성(普應 文性)과 그의 제자인 남산 병문(南山 炳文)이 그렸다. 두 화승은 기존의 감로왕도 도상을 바탕으로 당시의 핵심적 사회상을 서양화법으로 과감하게 담아냈다. 남산 병문은 사회주의 문화예술 운동에 가담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한국 현대 미술의 1세대 조각가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를 주도한 김복진과도 교류했다. 1949년 출범한 불교미술연구회에 미술부장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흥천사 감로왕도 1939년 현실에 맞게 재해석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고, 일본이 1941년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기 직전이었다. 두 화승은 이 언저리의 시대상을 먹선으로 분할한 31개의 화면에 담았다. 전투함이 돌진하고 전투기가 날아가는 가운데 엄청난 위력을 가진 포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가 하면, 육군은 기세등등하게 탱크를 앞세우고 상대 진영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지옥도 빠져 고통받는 중생의 모습이 바로 이럴 것이다. 일제가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과 침략의 본거지 통감부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담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설치된 통감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총독부로 바뀌었으니 당대의 모습은 아니다. 자동차 여행, 기차가 다니는 어촌, 코끼리 서커스단, 전당포, 전신주 공사, 전화 거는 모습, 스케이트 타는 모습 등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문물의 양상도 펼쳐진다. 흥천사 감로왕도는 최근까지 전쟁 장면이 담긴 몇몇 장면은 호분칠을 하고 흰 종이로 가려놓기도 했다. 지난해 불교중앙박물관 전시회에서는 종이를 모두 떼어냈지만 하단의 오른쪽 맨 아래 장총을 둘러메고 일렬로 행진하는 일본군의 모습은 호분칠이 짙어 흐릿하게 보일 정도다. 흥천사 감로왕도에 담긴 새로운 사회상은 이 그림을 한때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목적을 가진 불화(佛畵)로 분류하게 만든 이유가 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당대 삶의 모습을 가감 없이 투영한 이 그림을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불교 회화의 하나로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서울시는 이 그림이 보존 및 활용 가치가 큰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등록문화재 지정을 최근 문화재청에 요청했다고 한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전사한 남편 이름으로”… 평생 모은 12억 쾌척

    “전사한 남편 이름으로”… 평생 모은 12억 쾌척

    80대 할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 12억원을 6·25전쟁 때 전사한 남편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박수년(86) 할머니는 7일 수성구청을 방문해 전 재산을 남편 김만용씨 이름으로 기탁했다. 박 할머니는 결혼 1년 만에 남편이 6·25전쟁에 강제소집되면서 19세에 홀몸이 됐다. 전장으로 떠난 지 2년 만에 돌아온 것은 그리던 남편이 아니라 사망통지서였다. 이후 홀로 아들을 키우며 억척같이 돈을 벌었다. 옷 보따리 하나 들고 여기저기 다니며 돈을 모아 수성구에 땅을 사고 농사를 지었다. 40세가 되어서는 보훈청에 취직해 60세까지 근무했다. 박 할머니는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 왔다”면서 “이제야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남편 이름으로 생전에 보람된 일 하나를 하고 싶었다”며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니 이제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은 이 돈을 별도 기금으로 관리해 부부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돼지국밥과 육개장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돼지국밥과 육개장

    이젠 외국인들도 곰탕, 설렁탕, 삼계탕 등 우리 고유의 뜨끈한 탕반(장국밥) 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제법 즐긴다. 하지만 아직은 눈치를 보며 손사래를 치는 게 돼지국밥과 육개장이다. 돼지국밥의 약간 비릿한 냄새, 육개장의 얼얼한 매운맛이 낯설 것이다. 돼지국밥은 돼지 뼈와 머릿고기 등으로 곤 육수에 내장 등 잡육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이며 밥을 토렴해 먹는다. 토렴이란 밥을 담은 그릇에 국물을 부었다 빼는 것을 반복하면서 탱글한 밥알에 국물이 배도록 하는 조리법이다. 국밥에는 삶은 잡육을 삼베 보자기에 싸서 누른 뒤 가지런히 썬 제육편육을 넣기도 한다. 여기에 새우젓, 부추, 양파 등을 곁들인다. 본래 순대를 넣으면 순대국밥이라고도 하지만 순대는 만들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부산 등 경남 지역에선 머릿고기와 오소리감투라는 별칭을 지닌 위장, 허파, 염통, 간, 곱창 등을 넣는다. 이를 또는 내장국밥이라고도 한다. 육개장은 본래 개고기와 대파, 고춧가루 등으로 땀을 흠뻑 내면서 즐기던 보양식이었다. 개고기는 식용을 하는 데 호불호가 갈리니까 조선 후기 궁중 등에서 소고기의 양지머리로 대체됐다. 마늘, 숙주, 부추, 고사리 등 약성이 강한 채소에 고춧가루와 고추장, 고추기름을 넣고 팔팔 끓인다. 오래전부터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주로 사육되던 돼지가 갑자기 남쪽인 부산에 나타나 돼지국밥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더 아래로 내려가 제주나 오키나와에 돼지가 등장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우선 6·25전쟁 직후 부산엔 함경도에서 배를 타고 남하한 피란민이 많았다. 돼지국밥이나 순대는 그들의 고유 음식이다. 부산에 밀집된 미군 부대에서 돼지고기의 안심, 등심 등 질 좋은 살코기를 제외한 뼈나 잡육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실향민들이 고향의 맛으로 재현했다. 1960~70년대엔 경제 부흥기를 맞은 일본에서 돼지고기의 등심과 안심으로 만드는 돈가스가 유행한 덕분에 김해 등지에 수출용 축산단지가 조성되기도 했다. 제주 북부의 삼성혈에는 선사 시대에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라는 3명의 신이 땅에서 솟구쳐 탐라왕국을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을나’는 고구려의 고위 직함이다. 고씨는 고구려 왕족이고, 양씨는 양만춘 장군처럼 중국 요동 지방의 군벌 세력이다. 또 부씨는 평양의 지방 토호 세력이다. 고구려 역사에서 서로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이던 3개 집안의 어떤 이와 그 식솔이 제주에 느닷없이 등장한 것은 본국의 변란을 피해 망명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발해만에서 배를 타고 남하하면 제주 북부에 닿는다. 이때 고향에서 즐기던 돼지고기가 함께 전해졌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돼지 불고기는 제주 등에 머물다가 추격을 피해 탈출한 몽골 저항군 삼별초의 후손들에 의해 개발됐을 가능성이 있다. 소고기는 남하한 돼지고기와 달리 벼농사가 발달한 아시아 남방에서 북상했다. 조선 시대에 한양에선 소고기를 먹었으나, 평양 등에선 돼지고기를 즐겼다. 일제강점기 때 경북·대구에는 소 사육장이 많았다. 골목의 허름한 가게에서 손마디가 굽은 주인 할머니가 말없이 국자로 퍼주는 돼지국밥이나 육개장이 언젠가는 그 시대 주인공들의 입맛에 맞게 바뀌겠지만, 음식 문명의 뿌리는 꼭 흔적을 남긴다. kkwoon@seoul.co.kr
  • [고난 속 한국 사랑하고 도운 외국인들] ‘전쟁 고아의 아버지’ 헤스 대령 1주기

    [고난 속 한국 사랑하고 도운 외국인들] ‘전쟁 고아의 아버지’ 헤스 대령 1주기

    지난해 98세를 일기로 타계한 6·25전쟁 영웅 딘 헤스 미국 공군 예비역 대령의 1주기 추모식이 4일 서울에서 열린다. 헤스 대령은 전쟁 당시 서울의 고아 1000여명을 구해 ‘전쟁고아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공군은 3일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주관으로 내일 오후 6시 30분 서울 공군회관에서 헤스 대령의 1주기 추모식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식에는 역대 공군참모총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런스 오샤너시 미7공군사령관, 고인의 아들인 에드워드 헤스 등이 참석한다. 이 밖에 헤스 대령의 도움을 받았던 전쟁고아 4명도 참석할 예정이다. 헤스 대령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당시 중국군이 서울로 밀고 내려오는 급박한 상황에서 미 공군 지휘부를 끈질기게 설득해 C54 수송기 15대로 서울의 전쟁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안전하게 피신시켰다. 6·25전쟁에서 250여회나 출격했던 헤스 대령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전쟁고아를 위한 기금을 만들어 한국 고아원에 지원했다. 헤스 대령은 생전 “남북 통일을 볼 때까지 살고 싶다”고 말했고 지난해 3월 3일 미 오하이오주에서 타계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씨줄날줄] 사라지는 대학신문/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라지는 대학신문/최광숙 논설위원

    고교 때부터 학보로 불리는 대학신문 애독자였다. 군대 갔다가 복학한 오빠가 학보를 보내 준 덕분이다. 갈래머리 여고생 눈에는 신문 기사보다는 석탑의 학교 건물과 캠퍼스에 더 눈길이 가면서 미래의 대학 생활을 동경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꼼꼼히 읽게 된 학보에는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아카데믹한 진리의 향연도 있었고, 사회를 향한 비판과 고뇌도 담겨 있었다. 1970~1980년대는 특히 학생들이 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대학신문과 정부 당국 간의 충돌이 심했던 시기다. 5공 시절 고려대의 ‘고대신문’(1947년 창간)만 하더라도 시험 인쇄본이 나오는 월요일 아침이면 학생회관 2층에서 기관원들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어떤 경우는 배포 금지되기도 했다. 그 후 당국의 외압 대신 원고의 사전 검토를 주장하는 주간 교수와 학생 기자 사이에 편집 자율권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렇듯 학보는 단순히 학생들만의 신문이 아니었다. 부조리한 정치권력과 횡포를 단호히 거부하고자 하는 날 선 시대정신을 담아 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1960년도 ‘고대신문’의 사설을 보면 졸업생에게는 ‘낡은 사회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라’고, 신입생들에게는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거부한다’고 썼다. 지금도 가슴을 뛰게 하는 사설이지 않은가. 이런 대학신문들이 3·15 부정선거 이후 학생들의 저항의식에 불을 댕겨 4·19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토양이 됐던 것은 당연하다. 연세대의 ‘연세춘추’는 1935년 ‘연전타임스’라는 이름으로 창간됐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던 시절인데도 학생 기자들이 한글 신문을 고집하는 결기를 보였다고 한다. 그후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발행이 중단됐다가 6·25전쟁 중인 1953년 재발행됐다. 전쟁통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윤동주 시인 특집호를 기획해 민족의 자긍심 고취에 나서기도 했다. 학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2년 미국의 선교사가 운영한 평양 숭실학교에서 ‘숭대시보’를 창간하면서다. 광복 후 1946년 지금의 서울대인 경성대학에서 ‘경성대학예과신문’(훗날 대학신문으로 재창간)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대학신문들이 발행되면서 지금은 학보를 내지 않는 대학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대학생 10명 중 3~4명은 학보를 읽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없어서’ ‘바빠서’ 등이 이유란다. 그러다 보니 학교 측도 예산 등을 핑계로 학보를 폐간하거나 온라인 발행으로 바꾸려고 한단다. 취업난, 인터넷 매체의 등장 등을 고려하면 대학신문의 미래가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기에 대학신문의 위기가 더 안타깝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북한산에 휘날리는 32년 태극기 사랑

    북한산에 휘날리는 32년 태극기 사랑

    29일, 바람이 거세게 부는 북한산 최정상. ‘백운대, 해발 836m’라고 쓰인 거대한 화강암석 옆 4m 높이 깃대에서 태극기 한 장이 마지막 겨울바람에 힘차게 펄럭였다. 북한산 등산객들에게 ‘백운대 전속 사진사’로 잘 알려진 박현우(70·현 명동성당 미화원)씨가 30여 년 전인 1985년 처음 깃대를 세우고 15년여 동안 교체 관리해 온 태극기다. 2000년쯤부터는 정왕원(66·개인택시 기사)씨도 함께하고 있다. 태극기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화강암석 위에는 기미년(1919년)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정재용(1886~1976)의 ‘3·1운동 암각문’(고양시 향토유적 제32호)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박씨는 원래 1968년부터 백운대 등산객을 상대로 사진사로 일했다. 그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백운대에 태극기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 뒤로 17년쯤 지난 1985년 전후로 박씨는 나무 막대로 깃대를 세워 태극기를 처음 달았다. 백운대의 모양새가 훨씬 좋아졌고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줄을 섰다. 백운대로 부는 바람이 워낙 거세 나무로 만든 깃대는 수시로 부러졌고 태극기도 가장자리가 쉽게 해졌다. 한 장당 1만 2000원씩 하는 태극기를 한 달에 3~4차례는 바꿔 달았다. 박씨의 외로운 ‘태극기 지킴이’ 활동은 우연히 백운대를 찾은 전관(72·예비역 소장) 백마부대장의 눈에 띄었다. 전 소장은 며칠 뒤 부대원들을 백운대로 보내 쇠로 된 깃대를 세워 주고 부대로 초청해 식사도 같이했다. 특별한 예우였다. 당시 서울의 한 구청장은 “좋은 일을 한다”며 1년여간 태극기를 지원했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가 등장하자 ‘백운대 사진사’인 박씨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무렵 택시 운전을 하는 정씨를 만났다. 정씨는 박씨에게서 사진사로는 생계 유지가 안 돼 더는 산을 오를 수 없게 됐다는 말을 듣고 흔쾌히 ‘태극기 교체 관리’라는 짐을 대신 지기로 약속했다. 이후 15년 가까이 정씨의 태극기 사랑은 조용히 이어져 왔다. 정씨는 사흘에 한 번씩 백운대에 올라 태극기 상태를 살핀다. 15년 동안 1350여회 백운대를 오르내렸다. 연간 태극기 30~40장이 필요한데 모두 자비로 부담한다. 최근 수년 동안은 태극기 공장에서 직접 구입해 부담을 절반으로 줄였다. 박씨와 정씨는 “누가 알아 주기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다”면서 “세상에 알려지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며 사진 찍기를 극구 사양했다. 이창우(75) 전 파주부시장은 “6·25전쟁 때 장단에서 피란 온 탓에 태극기의 소중함을 잘 안다. 백운대 태극기를 볼 때마다 두 분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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