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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탁의 시식남녀] 가난과 억척의 맛, 부산

    [김영탁의 시식남녀] 가난과 억척의 맛, 부산

    부산의 전철 안에는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이 가사 없는 선율로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곳곳에서 시끌시끌한 경상도 사투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처럼 느껴졌다. 목련 빛 바바리를 걸친 영화배우 같은 김종미 시인을 비롯해 최영철, 김종미, 고명자, 김다희, 김성배, 김요아킴, 김예강, 정온, 신정민 시인 등 부산에서 시 쓰는 이들이 많이들 모였다. 박효운 사장이 15년 째 운영한다는 '부광돼지국밥'은 부산시인들의 단골식당이라 한다. 투박하고 오래된 뚝배기국밥에 국물보다 돼지고기를 수북하게 쌓아 내온다. 큰 스테인레스 함지박에 담은 부추를 함께 내준다. 아무쪼록 국밥은 뜨거운 김 후후 불어가며, 입천장도 살짝 데어가며 먹어야 제맛이다. 국밥이 입으로 들어오는지 코로 들어오는지 모르쇠로 퍼먹다가 국그릇이 바닥이 보일 때쯤 소주잔을 채워 건배를 했다. '야성을 연마하려고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그것도 모자라 정구지 마늘 양파 새우젓이 있다/ 푸른 물 뚝뚝 흐르는 도장을 찍으러 간다/(중략)/ 히죽이 웃는 대가리에서 야성을 캐다/ 홀로 돼지국밥을 먹는 이마에서 야성은 빛나다'(최영철, '야성은 빛나다') '전쟁 직후 검은 솥바닥 같은 부산/ 산을 타고 오르는 좁은 골목엔/ 피난민의 눈물로 끓여낸/ 국물이 있다// 뜨거운 돼지국밥과/ 차가운 가야밀면이/ 온도가 똑같다면// 그것은 눈물의 온도/ 버리고 온 피의 온도'(김종미, '슬픈 음식') 야성에 유혹되지 않고 야성을 연마함으로써 극복하는 행위로 국밥을 먹는 최 시인이야말로 진짜 부산 사내인 듯하다. 또한 돼지국밥 한 그릇에서 눈물과 피를 건져내는 김 시인은 민족과 지역의 역사를 견뎌온 사람들의 슬프고도 힘겨운 삶을 고스란히 시에 담았다. 부산 중앙동은 옛 냄새가 났다. 거리 곳곳에 문화유산이나 유적지를 잘 복원하였다. 국밥집 곁에는 나선 형태라 이름 붙여진 '소라 계단'이 있다. 층층이 나가는 길이 있고, 사람과 오토바이도 함께 다니는 조심스럽지만, 재미있는 계단이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탄생한 부산은 산과 바다 사이의 땅이 좁으미 산을 깎아 집을 지었고, 그러다보니 중간중간 도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단을 다 올라와 ‘40계단 문화관’으로 들어갔다. 아련한 근현대의 역사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유산을 모아 낳은 보물창고라 할 만하다. 갖은 옛 음식들이 모형으로 즐비한 음식 코너에는 꿀꿀이죽이 눈길을 끈다. 일명 ‘유엔탕’이라고 불린 것은 이름으로나마 격을 높게 부르고 싶은 탓일 테다. 먹을 것이 너무나 귀한 시절, 유엔군 병사들이 먹다 남긴 음식과 난민구제회에서 나눠주던 강냉이가루를 함께 넣고 끓인 게 꿀꿀이죽이며 ‘유엔탕’이었다. 어쩌다 기름진 쇠고기 살점이 나오는 날이면 운수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부산은 계단의 도시다. 아래위를 잇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계단이 곳곳에 산재한다는 것은 부산이 그만큼 경사진 도시라는 얘기다. 땅만 경사진 것이 아니라 부산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칠 할이 경사라는 게 최영철 시인의 설명이다. 작은 포구였던 시절부터, 일제의 수탈을 거쳐 한국전쟁의 아수라까지 한몸에 받아낸 지역이니 부산은 언제나 늘 가파랐고, 사람들의 삶 역시 자칫 발을 헛디딜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승과 하강을 거듭했다. '그냥 엎어질 걸 그랬다// 그날 밤 꽃무늬 팬티를 내릴까 말까/ 망설이다 돌아선 젊은 그 밤/ 식은 밥처럼 굳은/ 계단을 내려오며 골목을 돌며/ 여전히 여관 이름만 만지작거렸지// 지금은 모처럼 화창한 봄날/ 황급히 여관을 빠져나오다 엎어진 여인의/ 코피처럼/ 맞은편 철쭉이 비리다/ 아니 쌉싸름하다'(정온, '화춘장') 정온 시인은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귀화했다. 그가 발견한 ‘40계단’ 초입에 화춘장여관이라니. 사실 우리는 여관 앞 화단에 흐드러지게 핀 붉은 철쭉을 바라보며 탄성을 연발했다. 부끄러워 급하게 여관을 빠져나오다 엎어진 여인의 코피 맛은 비리고 쌉싸름하다. 활달하고 분방한 시는 진퇴(進退)를 잘 알고 있다. 정 시인은 화춘장과 철쭉을 식재료로 한편 맛있는 시를 버무렸다. 터벅터벅 걸어갈만한 거리에 보수동 헌책방골목이 있다. 어림잡아 보니 쇠락해 가는 서울의 청계천 헌책방보다 대여섯 배나 많은 헌책방들(47개)이 즐비했고 책을 사거나 팔러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책 안 읽는 한국인이라고 세계 독서통계에도 부끄러운 낙인이 찍혔지만 최소한 이곳은 책에 대한 갈증과 아름다운 책 향기로 가득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함경북도에서 피난 온 부부가 최초로 헌 잡지 등을 팔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보문서점(현 글방쉼터)을 시작으로 1970년대 70여 점포가 들어설 정도로 흥성했다. 피난 온 예술인들은 용두산을 오르내리는 게 일과였고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단골로 드나들었다. 하여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문화와 추억의 거리로 기억됐다. 헌책이 새 주인을 만나 재탄생되는 창조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집 한 권을 반값에 사고/ 나머지는 보수동 헌책방골목/ 소문난 찹쌀도너츠를 책장에서/ 방금 튀겨 나온 향기를 따라/ 문장 곱씹은 시가 오물거린다'(김성배, '헌책과 찹쌀도너츠')한참을 걸어서인지 약간의 시장기를 느끼고 있던 차에 김종미 시인이 찹쌀 도넛을 사서 일행들에게 나누어준다. 이 골목에서 도넛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명물집 '유진스넥'이다. 김성배 시인이 시 한편을 뚝딱 토해낸 배경이다. 용두산 공원 밑 광복동에 위치한 40년 된 고갈비집 '남마담'이 있다. 고갈비는 큰 고등어를 숙성하여 구워서 먹는데 고등어도 뼈가 있으니 갈비라 할 만하다.80년대까지만 해도 고갈비로 알려진 고등어구이는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던 '소박한 호사'였다. 고갈비는 자갈치에서 막 들여온 고등어에 소금간을 하고 숙성을 한 다음 연탄불에 올려서 바싹하게 굽는데, 요즘은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남마담'이란 애초에 남자가 요리를 하고 마담 구실을 했다는 뜻이다. 고갈비의 원조로 고갈비 골목을 형성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할매집'과 두 곳만 남았고 사람들의 왕래도 뜸해 보였다. '날 선 세상에 저 멀리 잘려나간/ 한 줌의 희망마저 그려보지 못한 창백한 아가미/ 파르르 저며 떠는 잔비늘들의 서걱거림/ 끝내 버둥거렸던 긴 꼬리의 외마디 침묵'(김요아킴, '자갈치 횟집에서') 김요아킴 시인의 목을 메이게 한 건, 우리들에게 바다의 쫄깃한 맛으로 허기진 저녁 뱃속을 위로할 회 몇 점이었다. 아마도 김 시인은 수족관에서 유영하는 그 맑은 두 눈을 마주쳤을 것이고, 회를 뜨는 광경을 목격했을 터. 그러나 날 선 세상에 저 멀리 잘려나간 한 줌의 희망은 시인의 몸으로 들어오면서 연민과 함께 피가 되고 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줌의 희망과 외마디 침묵은 김 시인에게 육화되면서 시로 살아났다. 자갈치시장 안팎은 싱싱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부두와 밤바다를 불빛으로 몸을 나타내는 묵직한 배의 윤곽들이 그림 같다. 다음날 영도다리를 보기 위해 택시를 탔다. 영도다리엔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버스와 사람들로 보슬비가 내리는데도 북적였다.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를 듣다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우람한 몸체를 뽐내며 상판 일부를 끄떡 들어 올린 영도대교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경계라인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제지하는 경비는 연신 호루라기를 불었다. 가장 큰 유산이었던 다리 난간의 낙서들, 거기 베인 눈물과 한숨, 그리운 이름들을 애타게 부르던 흔적들은 사라지고 이제는 관광객만 몰려오고 있다. 여기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민족의 비극 6․25전쟁과 가난한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래도 값진 유산일 것이다. 가난과 눈물, 흥청거림과 억척스러움, 그리고 돼지국밥과 간밤에 남긴 회 몇 점을 뒤로 하고 부산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한국戰 중요성 알아… 맥아더 카리스마 연기 영광”

    “한국戰 중요성 알아… 맥아더 카리스마 연기 영광”

    “한국에서 성자(聖子)와 같은 대접을 받는 분을 어떻게 연기할 수 있을지 매우 긴장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리더를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영국 출신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64)이 13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영화 ‘인천상륙작전’ 기자회견에서 생애 처음 한국 영화에 출연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오는 27일 개봉하는 이 영화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연기했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초기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 위해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라는 작전을 세운다. 우리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이다. 리암 니슨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전쟁이 얼마나 중요한 전쟁인지 배우가 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큰 흥미를 느꼈다”며 “카리스마가 있는 맥아더 장군은 많은 대립과 충돌을 일으킨 인물이자 동시에 매력적인 인물이라 그를 연기한다는 게 영광이었다”고 출연 배경을 설명했다. 촬영에 앞서 영감을 얻기 위해 지난 1월 인천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찾아 헌화했던 그는 많은 다큐멘터리와 서적, 연설 녹음 등을 섭렵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허구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실존 인물이라도 캐릭터를 재창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항상 모자를 조금 삐딱한 각도로 쓰거나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세심하게 신경 썼다. 다른 장군들은 불편했을지 몰라도 병사들에겐 따뜻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을 줬을 것 같다.” 그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외신 기자들이 북한 반응이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자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된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그 부분을 걱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과 한국은 휴전 상태라 괜찮다.” 영화에는 성공 확률이 5000분의1에 불과했던 작전의 성공을 위해 맥아더 장군의 지시에 따라 북한군으로 위장한 채 위험천만한 마중물 작전을 수행하는 우리 해군 첩보부대원들과 미군 직속인 켈로부대원들의 모습이 담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포화 속으로’의 이재한 감독은 스펙터클에 이념의 대립, 동족 상잔의 비극, 인간애, 동지애, 애국심 등을 버무려 넣었다. 실존 인물인 해군 첩보부대 장학수 대위를 연기한 이정재는 “전쟁을 소재로 한 흥미 위주의 영화가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숭고한 희생과 노력을 치른 이름 모를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고 말했다. 또 “의상, 소품부터 현장 상황까지 신경 쓰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며 리암 니슨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에 리암 니슨도 “(이정재를) 처음 만나자마자 진정한 배우, 순수한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훌륭한 배우라 호흡을 맞춰 연기하기가 편했다”고 화답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리암 니슨 “맥아더 연기 영광… 한국전쟁 중요성 잘 알아”

    리암 니슨 “맥아더 연기 영광… 한국전쟁 중요성 잘 알아”

     “한국에서 성자(聖子)와 같은 대접을 받는 분을 어떻게 연기할 수 있을지 매우 긴장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리더를 연기한다는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영국 출신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64)이 13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영화 ‘인천상륙작전’ 기자회견에서 생애 처음 한국 영화에 출연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오는 27일 개봉하는 이 영화에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을 연기했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초기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 위해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라는 작전을 세운다. 우리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이다. 리암 니슨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전쟁이 얼마나 중요한 전쟁인지 배우가 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큰 흥미를 느꼈다”며 “카리스마가 있는 맥아더 장군은 많은 대립과 충돌을 일으킨 인물이자 동시에 매력적인 인물이라 그를 연기한다는 게 영광이었다”고 출연 배경을 설명했다.  촬영에 앞서 영감을 얻기 위해 지난 1월 인천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찾아 헌화했던 그는 많은 다큐멘터리와 서적, 연설 녹음 등을 섭렵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허구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실존 인물이라도 캐릭터를 재창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항상 모자를 조금 삐딱한 각도로 쓰거나 파이프로 담배를 피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세심하게 신경썼다. 다른 장군들은 불편했을지 몰라도 병사들에겐 따뜻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을 줬을 것 같다.” 그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외신 기자들이 북한 반응이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자,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된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그 부분을 걱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과 한국은 휴전 상태라 괜찮다.”  영화에는 성공 확률이 5000분의1에 불과했던 작전의 성공을 위해 맥아더 장군의 지시에 따라 북한군으로 위장한 채 위험천만한 마중물 작전을 수행하는 우리 해군 첩보부대원들과 미군 직속인 켈로부대원들의 모습이 담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포화속으로’의 이재한 감독은 스펙터클에 이념의 대립, 동족 상잔의 비극, 인간애, 동지애, 애국심 등을 버무려 넣었다.  실존 인물인 해군 첩보부대 장학수 대위를 연기한 이정재는 “전쟁을 소재로 한 흥미 위주의 영화가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숭고한 희생과 노력을 치른 이름 모를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고 말했다. 또 “의상, 소품부터 현장 상황까지 신경 쓰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며 리암 니슨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에 리암 니슨도 “(이정재를) 처음 만나자마자 진정한 배우, 순수한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훌륭한 배우와 호흡을 맞춰 연기하기가 편했다”고 화답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주한미군 전우회 연내 출범…샤프 前사령관 초대 회장 내정

    주한미군 근무 경력이 있는 미군들의 전우회가 연내 출범한다. 초대 회장으로는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내정됐다. 김종욱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장은 5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주한미군에 근무한 미군 전우회를 연내 창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9월 말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와 기업들에 협조를 요청해 50만~100만 달러를 확보하기 위한 재단 설립 기금 모금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6·25전쟁 이후 한국에서 근무한 미군은 약 350만명으로 주한미군 전우회(KDVA)가 결성되면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친한(親韓) 조직으로서 한·미 동맹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KDVA는 월터 샤프(2008.6∼2011.7), 리언 러포트(2002.5∼2006.2), 제임스 서먼(2011.7∼2013.10) 등 전직 주한미군사령관들을 중심으로 창설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 측에선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국방무관인 신경수 육군소장이 KDVA 창설을 실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는 한국전참전용사협회(KWVA)를 비롯해 미2사단 전우회, 미19지원사령부 전우회 등 부대별 전우회는 있지만 주한미군 전체를 아우르는 전우회는 없었다. KDVA는 KWVA 소속 회원은 물론 주한미군 예비역을 정회원, 현재 복무 중인 이들은 준회원으로 맞을 예정이다. 또한 주한미군에 배속돼 근무한 카투사 예비역들도 정회원으로 대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KDVA는 주한미군 출신 장병 자녀 장학금 지급, 한반도 관련 안보세미나 개최, 주한미군 모범장병 포상 등의 사업과 함께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한 다양한 행사들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효봉선사 가라사대, ‘너나 잘 하세요!’ 순천 송광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효봉선사 가라사대, ‘너나 잘 하세요!’ 순천 송광사

    영화 ‘친절한 금자씨' 속 금자씨(이영애)의 명대사는 바로 “너나 잘 하세요.‘ 이다. 이 말은 한동안 유행어 반열에서 빠지지 않더니 이제는 아예 일상으로 쓰이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이 대사의 원래 모습은 이러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종정이자, 판사 출신 스님으로 알려진 효봉(曉峰)스님(1888∼1966)에게 어떤 제자가 와서 다른 스님의 잘못을 이른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여색(女色)까지 합니다. 그런 자에게 중요한 소임을 주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효봉스님 되묻기를, “수행자는 술마시면 안 되나?” “그렇습니다” “담배를 피우면 안되나?” “그렇습니다” “여인을 가까이 해서도 안 되나?” “그렇습니다” 이때 나오는 불세출의 명대사. “그리 잘 알면, 너나 잘 해라! 너나 잘 해.” 옳고 그름을 그리 잘 안다면서도 남을 헐뜯는 것이 더 큰 잘못인지는 모르는 제자에게 한 바탕 버럭 소리를 지른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너나 잘 해라 스님'으로도 불리운 ‘효봉선사’가 1937년부터 10년을 머문 곳이 순천 송광사(松廣寺)다. 송광사에서 스님은 꿈에서 16 국사 중 마지막 국사인 고봉화상을 만나 “이 도량을 빛내 달라”며 내린 법명 ‘효봉(曉峰)’을 받는다. ● 승보사찰(僧寶寺刹)의 맥(脈)을 잇는다 순천을 애둘러 지나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면, 맞은 편에서 차 한 대 오지 않는 담담한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다. 사찰이 당연히 있을 만하다. 처음부터 송광사는 절의 자리 앉음새가 애당초 조계산 한 자락 넉넉하다 보니 가는 길 또한 고즈넉하다. 우리나라 3대 사찰이자 조계정의 발원이라 하니, 펜 움켜쥔 손 한 줌에 옮길 만한 만만한 내력이 아니다. 말 그대로 1000년 세월 깊이가 단단한 절이다. 워낙 유명하다보니 기대감 한층 드높여 드디어 사찰 입구인 일주문에 이르면, 가지런히 높이 솟은 요사채 지붕들 칸칸이 흡족한 모양새로 둘러 있다. 더욱이 눈빛 맑은 젊은 납승(衲僧·누더기로 기운 옷을 입은 스님)들이 공부하는 절이라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듯 송광사의 첫 인상은 반듯하고, 정갈하고, 소박하고, 준수하며 깊다. 부처님, 가르침, 스님을 두고 일찍이 한국 불교에는 세 가지 보배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이를 가리키는 삼대 사찰이 있는데 흔히들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고 한다. 곧 경남 양산의 통도사, 경남 합천의 해인사 그리고 전남 순천의 송광사이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기 때문에 불보사찰(佛寶寺刹),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있기 때문에 법보사찰(法寶寺刹), 그리고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송광사의 역사는 고려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흐트러져가는 불교를 바로세우고자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중심으로 정혜결사(定慧結社) 즉, 세속화되고 정치와 연관되어 타락한 불교를 지양하며 산림에서 선(禪) 수행에 전념하자는 운동을 단행했던 곳이 송광사다. 이후 왕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보조국사의 법맥을 이은 ‘나라의 스승’ 국사들을 많이 배출해 지금까지도 명실상부한 승보종찰의 맥을 잇고 있다. 흔히들 송광사를 조계총림(叢林)이라고도 일컫는다. 총림은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一處住)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 삼무(三無) 사찰로 수행에 전념하다 예로부터 송광사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세 가지 없는 것(三無)이 있다. 석탑, 주련(기둥에 새기는 글귀), 풍경이다. 지형적으로 연꽃의 중심이기에 무거운 석탑이나 석등을 세우지 않았고, 설익은 지식을 경계해 글로 기둥에 새기지 않았다. 그리고 수행에 거추장스런 소리조차 만들지 않고자 풍경을 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하니 송광사 안에 텔레비전이 없어 2002년 월드컵 당시 TV수상기를 빌려다가 대중이 모여 시청했던 일이 지금도 시중에 회자되고 있다. 이쯤 되면 송광사에서 대중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깨침을 향한 스님들의 구도열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짐작케 한다. 막상 송광사 경내로 접어들면 완연히 공부하는 절이라는 느낌이 든다. 젊은 스님들이 바삐 길을 가면서도, 그 눈매는 언뜻 보아도 매섭기 끝이 없다. 그러다보니 부처님이나 관음상을 모신 불전보다는 지금도 학승들이 기거하는 승방이나 요사채들이 훨씬 많다. 송광사의 많은 건축물들을 살펴 보자면, 시간에 따른 부침이 많았다. 1842년(헌종 8)에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삼존불(三尊佛), 지장보살상, 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 남게 되었다. 이후 1922년부터 1928년까지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였지만 또다시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에 타버리는 아픔을 겪게 된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들은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석불이나 탱화와 같은 조형미와 예술감각이 넘치는 문화재보다는 고려후기부터 내려오는 불교 관련 문서와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지금 송광사에는 국보 56호 국사전이 있으며 보물로는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이 있다. 현재 송광사는 지눌스님까지 포함하면 모두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한 한국 선종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조계총림의 본원으로 그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또한 일반 대중들을 위하여 템플 스테이나 각종 세미나를 열고 사보(寺報) 발간 및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E-Book으로 된 송광사 소식지를 만드는 등 일반 대중과 함께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알 듯이 사찰이 유명하다면 허명(虛名)이 없다. 대개 이름날만하고 정성스러운 구석이 하나라도 있다. 이런 면에서 송광사는 도시 삶에 메마른 사람들에게 참으로 여유롭게 정성되게 푸른 조계산 큼직한 그늘 한 폭을 내어준다. 함초롬하니 뻗어있는 송광사 편백나무 숲 사이로 햇무리가 지는 광경을 일주문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1000년 도량 처음 중건할 때부터 온새미로 남아있는 송광사의 곱고 맑은 정신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내려갈 것이다. <송광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요? -당연하다. 한국사람이라면 우리나라 삼보사찰인 양산의 통도사, 합천의 해인사, 순천의 송광사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가 보길 바란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갈 것인가 시간의 문제이다.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을 추천한다. 2. 교통편은 어때요? -송광사의 홈페이지가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다. 확인바람. -교통편 : http://www.songgwangsa.org/about/about07.jsp?top_menu_idx=1&sub_menu_idx=8 -대중교통의 경우 KTX 순천역에서 111번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3.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등의 시설환경은 괜찮은가요 ? -주변에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이 풍부하지는 못하다. 따라서, 순천시내나 광주 등지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좋다. 주차장에서 내려 약 20분 정도 걸어올라 가야 한다. 4. 유명세에 비하여 실제 모습은? -송광사도 아름답지만, 송광사까지 올라가는 길을 걷노라면 천년고찰이라는 이름이 함부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깊고 그윽해서 순천이나 여수 주변을 갈 일이 있다면 꼭 들리길. 절대 후회하지 않는 장소다. 5. 자동차로 가는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국도 주변에 뜻하지 않게 과속 단속 카메라가 많다. 꼭 속도를 지켜 주행하기를. 꼭! 꼭! 꼭! 과태료가 만만치가 않다. 6. 홈페이지 주소 및 도움되는 사이트 주소는? - 사찰의 홈페이지가 이렇게 알차도 되는지 감탄한다. E-Book도 볼 수 있고 자료도 풍부하다. - http://www.songgwangsa.org/ 7. 먹거리 정보와 식당 정보는? -송광사 버스 공용주차장 주변에 식당가가 있다. 대개 관광지 식당들의 경우 뜨내기 손님들을 상대하는 모습이 역력해서 늘 식당선택에 망설여질 때가 많다. 하지만, 송광사 주변의 식당들의 경우 1인분에 8000~9000원 선에서 훌륭한 남도 식당 특유의 푸짐한 식사가 가능하다. 8. 주변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나요? -당연히 여수와 순천 지역이다. 송광사가 있는 곳이 순천이다. 국가 정원이나 순천만 생태공원, 오동도 등 볼 만한 곳이 많다. 9. 이 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공간이나 장소는? -해우소다. 비록 1993년에 새로 증개축하여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천년고찰의 해우소의 모양이 흥미롭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비록 송광사가 최근에 많은 건축물들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송광사가 들어 있는 조계산의 산세가 이미 1000년을 품고 있다. 종교가 불교가 아니더라도 경치 수려한 산행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굉장히 흡족한 여행 공간은 될 듯 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대작 전쟁, 대박 전쟁

    대작 전쟁, 대박 전쟁

    여름 극장가 블록버스터 ‘봇물’ 천만 영화, 5년 연속 이어질까 4년 만에 맥이 끊길까. 올해 상반기 천만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서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역대 천만 영화 15편 중 6편이 7~8월 개봉작이었기 때문이다. 천만 흥행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재 영화 시장이 소강상태라 영화계에서는 ‘암살’과 ‘베테랑’이 영화 팬들을 시원하게 만들었던 지난해 여름이 재현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흥행을 크게 좌우할 개봉일 샅바 싸움도 치열하다. 김형호 영화시장분석가는 “여름 성수기 중에서도 8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관객이 특히 몰리는 기간”이라며 “최근 2~3년 한국 영화가 여름을 지배했고 올해도 그럴 것으로 예상되지만 흐름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터져줄 때도 됐다”고 분석했다. 국내 4대 메이저 투자 배급사가 선택한 빅4가 일주일 간격으로 여름 시장을 공략한다. 모두 제작비 100억원대 작품들이다. 좀비 재난물 ‘부산행’(NEW)이 새달 20일 가장 먼저 출격한다. 후반 작업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첫선을 보인 지난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의 반응이 무척 뜨거워 일찌감치 개봉일을 확정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열차라는 제한된 공간에 인간과 좀비를 몰아넣는다. 공유와 마동석 등은 사랑하는 딸과 아내,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좀비가 가득한 객실을 뚫고 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다. 화끈한 액션에 웃음과 눈물까지 주는 ‘순정 마초’ 마동석의 연기가 키포인트다.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이 처음 연출한 실사 영화다. 전쟁물 ‘인천상륙작전’(CJ엔터테인먼트)은 일주일 뒤 스크린에 걸린다. 빅4 중 가장 많은 16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집게 한 인천상륙작전의 방아쇠를 당긴 영흥도 첩보전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포화 속으로’를 연출한 이재한 감독의 작품이다.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에, 애국심을 자극할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는 이정재, 이범수, 진세연, 정준호 등이 출연한다. 특히 할리우드 스타 리엄 니슨이 맥아더 장군으로 열연해 더욱 화제다. 이어 ‘덕혜옹주’(롯데엔터테인먼트)가 8월 4일 스크린에 걸린다. 최근 스릴러 ‘비밀은 없다’에서 절정의 연기를 펼친 손예진이, 일본에 끌려가 비운의 삶을 살아야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이덕혜를 연기한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며,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에서 여성 관객들의 기대가 높다. 빅4의 마지막 주자는 또 다른 재난물 ‘터널’(쇼박스)이다. 8월 11일 개봉이 확정적이다. 퇴근길에 만든 지 일주일밖에 안 된 터널이 무너지며 고립된 한 남자가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그를 구하기 위한 터널 바깥의 이야기를 다룬다.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이 연출했다.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 등이 열연했다.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추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천만 요정’ 오달수가 기대가 크다고 꼽은 작품이다. 8월 개봉 예정인 ‘국가대표2’(메가박스)는 다크호스다. 수애를 주인공으로, 급조된 여자 아이스하키 팀 이야기를 그리며 감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 작품에도 오달수가 감독으로 나온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에는 ‘제이슨 본’(7월 28일)과 ‘수어사이드 스쿼드’(8월 4일)가 단연 눈에 띈다. ‘제이슨 본’은 ‘본’ 시리즈 세 편으로 세계 첩보 액션물의 흐름을 바꿔 놨던 맷 데이먼이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9년 만에 다시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둘은 “사상 최고 스케일”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조커(재러드 레토), 데드샷(윌 스미스), 할리 퀸(마고 로비) 등 DC코믹스를 대표하는 사고뭉치 악당들이 팀으로 뭉쳤기 때문에 모범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 멀리사 매카시를 앞세워 27년 만에 리메이크되며 여성 버전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코믹 SF물 ‘고스터버스터즈’(8월 중)와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안톤 옐친의 유작이 된 SF물 ‘스타트렉 비욘드’(8월 중)도 영화 팬들이 기다리는 작품이다. 장외 대결도 후끈하다. 같은 주 개봉하는 ‘인천상륙작전’과 ‘제이슨 본’은 내한 맞대결을 펼친다. 맷 데이먼과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제이슨 본’ 아시아 홍보 투어의 첫 순서로 7월 8일 한국을 찾는다. 13일에는 리엄 니슨이 한국을 방문해 ‘인천상륙작전’을 독려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김영탁의 詩食男女] 인천 밴댕이회, 근현대의 문틈에서 꼬리치다

    [김영탁의 詩食男女] 인천 밴댕이회, 근현대의 문틈에서 꼬리치다

    인천역으로 가는 전동차에서 꾸벅거린다. 서울 혜화역에서 4호선을 타고 동대문서 1호선 인천행으로 갈아탄 뒤 빈자리 욕심을 부리며 냉큼 앉았나 싶었는데, 종점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누군가가 "영탁형"하며 부른다. 인천역에서 만나기로 한 호병탁 평론가가 씨익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아마 용산쯤에서 탔을 테고, 졸고 있는 이를 애써 깨우지 않고 목적지까지 함께 덜컹거렸나 보다. 인천역에 김원옥 시인이 대처 나갔다 돌아온 동생 대하는 외사촌 누나처럼 맞으러 나와 있다. 인천이 무에 얼마나 낯선 곳이라고 마중씩이나 나오셨을까. 김 시인은 인천의 내력에 대하여 얘기를 들려주었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지』기록에는 인천을 미추홀국이라고 하였다. 미추홀이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인천의 옛 이름이다. 미추홀국은 일명 비류왕국이다. 백제의 건국 시조로서 온조설과 비류설이 있다. 두 가지 설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비류와 온조가 형제이고 또 그 생모가 ‘소서노’라는 점, 비류의 아버지는 우태이고 온조의 아버지는 주몽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의 생모인 소서노가 전남편인 우태와의 사이에서 비류를 낳고, 개가한 뒤의 남편인 주몽과의 사이에서 온조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줄줄줄 이어지는 설명이 숨 가쁘다. 김 시인은 시도 좋지만 역사지식도 해박하기만 하다. 『동국여지승람』의 잘못을 바로잡은 지리책 『대동여지지』에는 문학산성이 곧 미추홀의 고도라고 하였다. 인천 연수구 제2, 3대 연수문화원 원장을 지냈다. 내친 김에 인천의 역사와 문화예술의 내면까지 짚어본 『연수문화유적깊이알기』라는 책을 썼다. 이가림 시인은 그의 부군이다. 그나저나 옛 역사이야기로 시작한 인천에서는 대체 무얼 먹어야 하는가. 일행은 40여 년 된 화상(華商)이 하는 한 중국집으로 들어섰다. 중국집에 가면 영화배우 이소령 성룡 등이 생각난다. 그들이 한국식 짜장면을 알기는 할까. 이소룡이 전국의 극장가를 평정하던 시절, 까까머리 중고등학생들은 이소령을 흉내 내며, 개목걸이와 나무를 이어 얼기설기 만든 쌍절곤을 휘두르곤 했다. 하지만 인천의 중국집은 다른 느낌이다. 청일조계지가 있는 차이나타운 자체가 일제강점기를 연상하기에 ‘독립운동자금’이나 ‘독립투사’ ‘상해 임시정부’ 등이 떠오른다. 인천의 시인들이 타관의 시인들에게 이 중국집을 소개한 건 필시 이유가 있을 터다. 늦은 점심에 김원옥 김윤식 이경림 김영승 이병춘 정세훈 시인과 이성재 수필가, 조근직․김보섭 사진가, 호병탁 평론가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커다란 회전원탁에 둘러앉았다. 오풍냉채, 부추잡채, 간소새우, 유산슬, 간풍육, 계란탕, 꽃빵, 물만두 등이 나올 때고 젓가락 한 번씩 집을 때마다 꼬박 고량주 한 잔씩이다. 단무지 집어 먹는 젓가락에도 고량주는 어김없이 한 잔씩이다. 맛도 맛이지만 오랜 세월을 맛보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밥 먹는 것에도 법이 있다는 걸/ 엄동설한 공사판 새참/ 야간노동 공장 야식/ 더불어 허겁지겁 먹어 본/ 없는 반찬 가난한 밥상/ 함께 옹기종기 먹어 본/ 우리는 절실하게 안다네// 내 밥 수저에 올릴/ 반찬 한 젓가락 집어/ 상대방의/ 부실한 밥 수저에/ 말없이, 고이 올려주는, 법'(정세훈 '밥 먹는 법') 충남 홍성이 고향인 정 시인은 인천에서 거의 30년을 살았다. 스물도 되기 전 인천 땅을 밟았고 꼬박 30년의 세월을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인천은 그에게 직업병인 진폐증을 안겼고, 건강을 추스르라며 인천 바깥 김포로 그를 밀어냈다. 겨우 병마에서 벗어났건만 무엇에 홀린 듯 2011년 초부터 다시 인천을 오가며 이런저런 일을 보고 있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본 정 시인은 부족한 자신의 밥을 타인의 수저에 고이 올릴 줄 아는 마음씨 고운 이다. 고량주에 젖어든 소년소녀의 달뜬 발걸음은 연오정(然吾亭)에 가닿는다. 독립운동동가 조훈(1886-1938)의 후손인 한의사 조길이 그의 부친의 뜻에 따라 1960년 건립한 육각정자가 바로 연오정이다. 연오정에 눈길이 가는 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느낌 때문에 여백이 풍부해서였다. 아예 저기 가서 독립운동가를 부르며 막걸리 한잔 생각이 나는 건 어쩌면 언덕을 오르며 계속 목이 마른 탓일지도. 드디어 인천항이 보인다. 수목과 건물이 어우러져 보이는 바다는 호수로 당겨왔다가 화물선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서해를 예약하는 지평이 아득하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어 서로 얼굴을 지그재그로 위치를 잡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한때 철거 문제로 논란이 컸던 맥아더 장군 동상이 보인다.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던 맥아더 장군 동상을 보면서 UN성냥과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미국이 원조한 잉여농산물 밀가루 포대가 생각난다. 밀가루 포대엔 한국과 미국이 악수하는 투박한 손 그림과 USA라고 크게 표기된 게 떠오른다. 밀가루를 다 먹고 나면, 포대는 종이가 귀한 시절 다양하게 쓰였다. 도배지도 되고 바닥지도 되고 노트를 대신하고 곡식류를 저장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쓰다가 지치면 화장실 화장지로도 고급이었다.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옛 제물포구락부는 근대 제국주의 국가에 침략받은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882년 임오군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은 인천을 놓고 세력다툼을 벌였다. 제물포구락부는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지붕은 양철로 덮고 사교실․도서실․당구대 등의 시설이 있다. 아래층이 위층보다 면적이 적은 건물이며 옥외에는 테니스장도 있었다. 1901년 6월 22일 주한 미국공사 알렌의 부인이 은제 열쇠로 출입문을 여는 것으로 개관되어 본격적인 교류활동이 시작되었다. 각국의 조계들이 철폐됨에 따라 이 건물은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에 이관되어 정방각(情芳閣)이라 불렸다. 1934년 일본부인회관으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의 장교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대한부인회인천지부회관으로 이용되다가 한국전쟁 당시 다시 미군사병구락부가 된다. 1952년 7월 미군은 이곳을 우리 측에 인계하고 1953년부터 1990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천시립박물관청사로 문을 열게 되었다. '상투 틀던 시절, 응봉산 자락에/ 노랑머리로 일어나 보헤미안들에게/ 술친구도 되어주고/ 정오 사이렌 소리도 듣고/ 게다짝에 밟히고 군화에 차이고/ 이제는/ 맥아더와 더불어/ 자유공원에서 자유를 누리는가'(김원옥 '구 제물포구락부) 이렇듯 인천은 근현대의 관문이며, 치욕스러운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노천 박물관이다. 이제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거리마다 일본․중국 등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길이 보전하여 치욕의 역사를 상기할 일이다. 역사의 향기가 짙고 깊게 배어있는 인천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또 하나. 인천은 항구다. 또한 6월은 밴댕이 철이다. 김윤식 시인과 정세훈 시인에게 늘 정겹게 밴댕이를 썰어주던 밴댕이 식당 안주인은 꿈속 같다며 그를 반겼다. 오래전 정 시인은 이곳에 “난 참으로 행복한 놈이다/ 남을 억누르며 못살게 구는/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그러한 힘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리하여, 남을 하나도 때려눕힐 수 없다는 것이”라는 시 '행복'을 걸어 뒀다고 했다. 낡은 건물 천장이 무너지며 '행복' 편액은 사라졌지만 행복함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일이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다만/ 밴댕이 속 같은 하루의 속에서/ 밴댕이 속 같은 저녁의 속에서// 죽은 밴댕이를 질겅거리고 있는/ 죽어가는 밴댕이들이었으므로'(이경림 '인천역 앞 수원집') 문경에서 태어나 인천으로 귀화한 이경림 시인 덕분에 인천과 문경의 거리는 훌쩍 지척으로 당겨졌다. 내륙 오지에서 태어난 그녀는 한시도 쉬지 않는 인천 바다만큼 시작활동이 왕성하다. 시 또한 독특하고 감각적인 정신세계를 엿보인다. 자아와 대상의 실존의 거리를 좁혔다 동일시했다 자유자재다. 그간 밴댕이를 손질했던 칼이 보고 싶어 주인에게 부탁하여, 도마 위에 나열해봤다. 칼날이 닳아 쇠의 면적이 사라져 더는 못 쓰는 칼부터 얼마 전 복무를 마친 칼까지 이 집의 연륜을 자랑하고 있었다. 시인들은 북성부두, 이른바 똥바다로 갔다. 먹고 싶은 건 많고, 나눌 얘기도 많다. 하지만 밤은 짧고, 취기는 밤샘 통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더리탕과 민어, 물텀벙탕을 뒤로 하고 다시 인천역으로 향한다. 여러 시인들이 다시 한 번 인천에서 만날 핑계 정도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근현대의 관문 인천은 넓고 깊다. 시인들도 많고 먹거리도 풍부하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황 총리 訪中… 시진핑과 북핵 논의

    황 총리 訪中… 시진핑과 북핵 논의

    황교안 국무총리가 4박 5일간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26일 출국했다. 황 총리는 첫 번째 일정으로 이날 톈진(天津)에서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인들과 만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어 황 총리는 27일 오전 톈진 메이장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2016 세계경제포럼(WEF) 하계대회’(하계 다보스포럼) 개막식에 참석한 뒤 오후엔 ‘제4차 산업혁명과 한국의 대응’을 주제로 열리는 특별 세션에서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을 소개한다. 포럼 중간엔 톈진에 투자한 우리 기업을 방문한다. 황 총리는 두 번째 방문지인 베이징(北京)으로 이동해 28일 리커창(李克强) 총리와의 회담 및 만찬에 이어 29일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만나 북한의 최근 ‘무수단’(화성10)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응 방안과 북핵 문제, 최근 양국 간 현안으로 떠오른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문제, 경제협력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29∼30일에는 동북 3성의 하나인 랴오닝(遼寧)성을 방문한다. 조선족 문제와 대북 관계의 민감성 때문에 우리나라 현직 정상급 인사가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곳이다. 황 총리는 랴오닝 성도인 선양(瀋陽)에서 동북 3성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하고 랴오닝성 당서기를 만나 내년 수교 25주년을 맞는 양국 간 교류·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한다. 한편 황 총리는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6주년 6·25전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지난 22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북한의 대화 제의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총리는 “정부는 6·25전쟁에 참전했지만 제대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미등록 국가유공자들의 공적 발굴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독자의 소리] 6·25전쟁, 월남전 참전용사 예우해야

    한국전쟁은 20세기 4대 전쟁의 하나로 국제 공산주의의 확산에 최초의 제동을 걸었다.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6·25 남침을 소련의 세계 적화 전략이란 관점에서 파악하고 국방비를 3배로 늘려 본격적인 대결 전략을 추진한다. 그리고 1964년 정부는 미국의 6·25 파병에 대한 보답으로 월남전(참전 기간 1964~1973년 32만여명)에 파병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에 주둔한 미 2개 사단을 빼내 월남 전선에 보내겠다고 정부를 압박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미국이 한국에 있는 2개 사단을 빼내 월남전에 투입했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됐을까. 정부는 6·25 참전용사와 월남전 참전용사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가. 국가유공자증서 한 장 주고 마는 것은 현재 국가가 내세우는 복지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16~19대 국회까지 참전자 예우에 대한 의원 입법이 300여건 발의됐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5%에도 못 미친다. 이것은 선심용 법안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희생된 분들을 먼저 대우하고 나라의 부름으로 의무를 다하다가 희생된 분들에게는 마땅한 예우를 하지 않는다. 한국전(13만 7899명 희생)과 월남전(5099명 희생)에서 흘린 국군의 피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자유 세계의 수호에도 기여했다. 전쟁은 참혹하지만 전쟁에서 뿌려진 피는 역사를 전진시키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다 안락하게 만든다. 그래서 군인의 피는 가장 비싸고 고귀한 것이다. 김주황 전 월남참전유공전우회 부회장
  • [주말 영화]

    ■맥아더(EBS1 토요일 밤 11시 45분·사진) 올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전쟁 블록버스터 ‘인천상륙작전’에서는 6·25전쟁 당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하며 형세를 뒤집은 맥아더 장군을 리엄 니슨이 연기한다. 앞서 여러 배우가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맥아더 장군을 연기했는데 선글라스에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문 이미지를 제대로 남긴 배우는 ‘맥아더’의 그레고리 펙이 아닌가 한다. 처음 캐스팅 당시엔 맥아더 장군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아시아권에선 인기가 높았던 맥아더 장군은 본국인 미국에선 고집불통에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다른 이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공산당 혐오주의자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전술가로서의 모습보다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가 더 부각됐다고 하는데, 영화를 다 찍고 난 그레고리 펙은 맥아더 장군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됐다고 한다. 1977년 작. ■고!(OBS 일요일 밤 10시 55분) 국내에서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로 널리 알려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초기 작품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유키사다 감독은 이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민족 정체성 문제와 일본 사회 차별 문제를 맞닥뜨린 재일 한국인 고교생 스기하라(구보즈카 요스케)가 일본인 여고생 사쿠라이(시바사키 고)를 만나며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모색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재일 한국인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가 자신의 청춘 시절을 돌아보며 쓴 자전적 소설이 원작이다. 그는 첫 번째 장편인 이 책으로 빼어난 신진 작가에게 주는 나오키상을 받았다. 2001년 작.
  • 참전용사 자서전 만든 고딩들… “내신보다 내실” 수재들의 선택… 2살 한민고, 발랄하게 Go Go!

    참전용사 자서전 만든 고딩들… “내신보다 내실” 수재들의 선택… 2살 한민고, 발랄하게 Go Go!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지요. 내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네요.”(6·25 참전용사 엄봉용씨) 지난 23일 경기 파주시의 백마부대 2만여평 부지에 자리잡은 군인 자녀들을 위한 기숙형 학교인 한민고등학교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6·25전쟁 66주년을 맞아 학교 인근의 참전용사 4명을 모시고 ‘6·25전쟁 참전용사 자서전 발간 기념식’을 개최했다. 조선영(89), 장오봉(86), 엄봉용(82), 김구현(85)씨 등 총 4명의 참전용사가 주인공이었다. 두 달 전 심장수술을 받아 입원한 김씨를 대신해서는 부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해 자서전을 발간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20여명의 학생들은 이날 본 행사에 앞서 참전용사들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프로젝트는 해가 갈수록 생존한 6·25 참전용사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한 한민고 학생들이 자서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지난 1년여 동안 진행됐다. 참전용사들은 한 명 한 명 소감을 얘기하며 전쟁 당시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했다. 조씨는 “전투라는 건 한도 끝도 없지만 일주일 내내 자지 못해도 조금도 졸지 않았다. 그런 쓰라린 고통 속에서 전투를 했다”고 전했다. 김씨 대신 참석한 부인은 “남편이 참전했을 당시 총탄 3발을 맞은 흉터가 지금도 그대로 있다. 당시에 소대를 살리겠다고 양말을 벗어서 상처를 꽉 동여매고 십리 길을 뛰어서 인민군이 있는 장소를 알리자마자 기절했다고 한다. 일주일 만에 깨어났는데 한 달 휴가를 받고 집에 와서 저와 선을 본 뒤 바로 결혼을 했다”고 회고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한민고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2014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아직 1회 졸업생도 배출하지 않은 신생 고등학교다. 후기 일반고이면서도 자사고 또는 특목고의 성격을 지닌 학교다. 군인 자녀가 70%이고 경기도에 거주하는 일반인 자녀가 30%다. 특히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술·담배와 폭력, 불건전한 이성교제 등을 3금(禁)으로 정해 실천하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은 금지돼 있지만, 층마다 ‘카카오톡’과 영상 통화가 가능한 다기능 영상 공중전화기가 설치돼 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전교생이 오전 6시에 기상을 해 6시 10분까지 운동장에 모여 국가와 부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30분간 체조와 달리기를 한 뒤 하루를 시작한다. 군인 자녀들이라서 군대식 교육이 익숙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민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얘기를 듣고 난 뒤 이런 편견은 한순간에 깨졌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전국 1위라는 게 이 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의 자랑이다. 한민고는 중학교 때 전교 1, 2등을 하던 전국 최고 성적의 중학생들이 모인 신생 명문고다. 김형중 교사는 “학생들 성적은 전국 평균 8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4년 개교 당시 일반 학생들의 입학 성적은 경기도교육청 내신성적 산출 기준으로 평균 197.5점(200점 만점), 군자녀 학생들은 193.7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학교가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비결은 뭘까. 교사와 학생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난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제1순위로 꼽았다.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를 비롯한 27명의 ‘한민고 서울대 멘토단’이 교육과정에 참여해 창의성을 배가했다. 가장 특별한 수업은 개교 이래 6개월 만에 자체 개발한 ‘융합수업’이다. 이 수업은 여러 선생님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 교과목의 관점에서 설명함으로써 기존 교과목 간의 벽을 허무는 수업이다. 박정민(18)양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과목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는 방식인데, 다른 학교에서도 참관 올 정도로 히트를 친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1인1기’도 자랑할 만하다. 문화인의 소양을 키우기 위해 학생 1명당 악기를 1가지씩은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한바다(18)양은 “외부 강사를 초빙해 1주일에 두 번씩 악기를 배우는데, 각자 악기를 맡아 공연을 하기도 한다”면서 “해외 배낭여행을 간 아이들이 6·25참전용사비 앞에서 직접 작사·작곡한 ‘못다 부른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학년 학생들은 6박7일간 국내로, 2학년 학생들은 같은 기간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는 것도 이 학교만의 강점이다.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주제를 선택해 경쟁을 통해 최종 주제를 선정, 해외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 뒤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김 교사는 “학생 전원이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는 학교는 우리 학교가 유일하다”고 자랑했다. 학생들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 밤을 제외하고는 휴일과 공휴일에도 집에 가지 못한다. 학교에서 공휴일과 휴일에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말특강프로그램인 ‘아낌없이 주는 한민’에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 가수 인순이 등 유명인사들이 초빙됐다. 한민고 교사들의 교원 선발 경쟁률은 최고 80대1을 기록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최고 수준의 교사들을 갖춘 것도 한민고의 장점이다. 학비는 기숙사와 방과후학교 등 제반 비용을 모두 포함해 연간 1100만원이다. 하지만 신설 학교인 데다 1회 졸업생도 배출하지 못한 학교에 자식을 보내기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듯하다. 전교 1등을 하던 학생들일지라도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기숙형 학교에서는 성적이 떨어질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내신 성적에서 상당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대해 김려원(18)양의 어머니 정유경(45)씨는 “군인이었던 아빠 때문에 아이가 중학교까지 무려 11번을 이사했고, 결국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더이상 이사 가기 싫어해 아빠가 전역을 했다”면서 “그런데 아이가 사교육을 할 수 없는 한민고를 가겠다고 해서 갈등도 많았지만 지금 너무 만족해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박기성(18)군의 어머니 강성아(45)씨는 “아이가 졸업을 하고도 3년을 더 다니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학교”라며 흐뭇해했다. 이해선(18)양의 어머니 김은주(52)씨는 “대학 진학 실적만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일반고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과 인성을 배운다”고 했다. 과학영재학교인 경기과학고의 교장을 지내고 한민고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 전영호 교장은 “나라사랑 정신과 함께 인성과 창의 교육이 학교 교훈”이라면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세간의 편견과 법적 미비 등으로 인해 한민고의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사실이다. 2010년도 2월 국방부에서 학교 설립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고 군인복지기본법으로 학교 설립 근거가 마련됐다. 당시 550억원의 국방부 예산이 투입돼 학교를 설립했지만, 이후 학교 운영과 관련해 법제처에서 제동을 걸고 있다. 19대 국회에 제출된 군인복지법에 학교 운영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었으나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재는 학부모·법인이 75%, 교육청이 25% 비율로 운영비와 교원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에서 법적 미비로 법정부담금(교원 4대 보험 등)을 지원하지 못하면 교육청 산하로 바뀌게 된다. 한민고 설립 과정에 참여한 학교법인 한민학원 이재봉(육군 대령 출신) 사무국장은 “군인들은 명령에 따라 갑자기 이사를 가는 등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데 자녀들이 무슨 죄가 있나”라면서 “군인 자녀에 대한 기숙형 학교 설립 및 지원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 사진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66년 전처럼… 거장의 건반, 전우를 울리다

    66년 전처럼… 거장의 건반, 전우를 울리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 참석 최전방서 자주 쳤던 리스트 ‘위안’ 연주 “김정은에게 피아노 가르치고 싶다” 朴대통령 “자유·평화는 여러분 덕”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라는 영화를 보면 아무리 음악 문외한이라도 당장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영화는 피아노 거장 세이모어 번스타인(89)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피아노와 결혼해 일생을 살다시피 하고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번스타인은 어릴 적 운명처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 순간을 영화에서 밝힌다. “어느 날 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피아노로 연주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잠에서 깬 어머니가 ‘너 왜 우는 거니’라고 물었고, 나는 ‘엄마, 어떻게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죠’라고 답했어요.” 영화 속 그 번스타인이 2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을 방문했다. 한밤중에 자신이 연주한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흘린 천부적 감수성의 소유자 번스타인은 살육의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1950년 입대한 그는 1951년 4월부터 1년 6개월간 미 8군 보병으로 6·25에 참전했다. 이날 행사는 ‘6·25전쟁 제66주년 국군 및 유엔군 참전 유공자 위로연’으로, 참전용사와 주한 외교사절 등 500여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6·25 당시 경기도 파주와 연천 등 최전방에서 100여 차례 피아노 공연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에 상처받은 전우들의 마음을 치유했던 번스타인은 이날 66년 만에 옛 전우들 앞에서 다시 한번 피아노를 연주해 감동을 줬다. 번스타인은 연주에 앞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박근혜 대통령님 만나서 영광입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어 “1951년 4월 24일 새벽 5시 30분 인천에 도착한 날은 저의 23세 생일이었는데 이는 한국과 끈끈히 맺고 살라는 계시처럼 여겨졌으며, 동시에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최전선에서의 연주는 두려움에 지친 병사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됐다”면서 “열화와 같은 기립박수와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던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전방에서 군인들을 위해 자주 연주했던 프란츠 리스트의 ‘위안’이란 곡을 이번에 7시간 동안 연습했다”며 ‘위안’을 연주했다. 앞서 이날 오전 번스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 가서 김정은에게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고 싶다”면서 “오직 농구에만 관심을 보이는 김정은이 교화되도록 첫 피아노 레슨을 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이날 위로연에서 박 대통령은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 용사님을 비롯한 참전용사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여러분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큰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지켜져 왔는지를 보여 주는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말했다. 위로연에서는 미국 정부 선정 한국전쟁 4대 영웅 중 한 명인 고(故) 김동석 대령의 딸인 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씨가 ‘아버지께 바치는 편지’를 낭독해 주위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서울포토] 박대통령,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 인사말

    [서울포토] 박대통령,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 인사말

    2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6·25전쟁 제66주년을 맞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다함께 건배!’…박대통령,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 참석

    [서울포토] ‘다함께 건배!’…박대통령,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 참석

    2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6·25전쟁 제66주년을 맞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서 건배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서 인사말 하는 박대통령

    [서울포토]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서 인사말 하는 박대통령

    2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6·25전쟁 제66주년을 맞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한·미, 카투사로 하나 되다...6·25 전사자 호명식 개최

    한·미, 카투사로 하나 되다...6·25 전사자 호명식 개최

     “감사합니다. 같이 갑시다.”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한식당에서 열린 ‘카투사 전사자 호명식 한국방문단 환영의 밤’ 행사에서 버나드 샴포 전 미8군사령관은 한국말로 이렇게 축사를 했다. 샴포 전 사령관은 “윌리엄 웨버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이사장의 노력으로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카투사 7000여명에 대한 호명식을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갖게 돼 의미가 크다”며 “한국에서 사령관으로 활동할 때 카투사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전에서 카투사가 많이 희생됐음을 미국에 알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과 주미한국대사관 국방무관부는 25일 6·25전쟁 66주년을 맞아 워싱턴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6·25전쟁 당시 미군부대에 배속돼 전투 중 사망한 카투사 7052명에 대한 호명식을 개최한다. 지난해 7월 6·25전쟁 때 사망한 미군 3만 6000여명 호명식에 이어 카투사 호명식이 처음 마련된 것이다. 이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찾은 김종욱 카투사전우회연합회장은 “6·25 때 최일선에서 싸운 카투사의 존재가 잊혀져 있었는데 호명식이 마련돼 기쁘다”며 “카투사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호명식을 마련한 웨버 이사장은 “카투사가 한국전쟁에서 싸우지 않았다면 더 많은 미군이 죽었을 것”이라며 “카투사의 과거와 오늘, 앞으로의 역할이 한·미 동맹 발전에 더 많이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25일 호명식은 오전 9시부터 12시간 동안 한·미 양국 관계자들이 릴레이로 전사자 이름을 한국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부르는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앞서 주미대사관은 24일 ‘6·25 66주년 추모 기념식’을 열였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녹슨 파편의 사연들’ 6·25전쟁 추모기획전

    ‘녹슨 파편의 사연들’ 6·25전쟁 추모기획전

    86세 작가와 31세의 그림작가가 만나 몸으로 경험한 전쟁을 이야기로 전하고, 이를 그림으로 펼치는 새로운 형식의 6·25전쟁 추모기획전이 열린다. 경기 군포문화재단 군포시평생학습원은 24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녹슨 파편의 사연들’을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녹슨 파편의 사연들’의 저자 백대현(86)옹은 21세에 입대, 자대에 배치받은 지 하루 만에 6·25가 발발해 2년 2개월 동안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며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전선에서 운명의 날들을 보내야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전쟁에 대한 녹슨 기억의 조각들이 이어져 2000매가 넘는 원고는 책으로 출판됐다. 이 책과 당시 사진은 젊은 그림작가 조민아(여)씨에게 전달됐고, 두 작가가 만나 전쟁세대와 전후세대 사이 공감과 소통을 통해 이번 전시가 마련됐다. 백옹의 자필 원고, 저서 수록 사진과 조 작가의 평면회화 및 벽면드로잉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군포시평생학습원 관계자는 “전쟁 세대와 전후세대 사이, 남과 북 사이에 오래된 기억들이 피어오르며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전쟁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는 전시”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긴박했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 6·25전쟁 작전 명령서 복원

    “육본(육군본부) 직할 유격대장은 예하 제1대대를 상륙 감행시켜 동대산을 거점으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 (인천상륙작전에 나선 연합군) 제1군단의 작전을 유리케 하라.” 1950년 9월 10일 당시 정일권(1917~1994) 육군 참모총장은 이런 내용으로 된 육본 제174호 작전 명령서(장사상륙작전 명령서)를 하달한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9월 14일 후방 교란을 겨냥해 경북 영덕 장사리에 자리한 학도병 부대를 긴급 투입하는 내용이다. 작전 명령서에 나오는 유격대가 바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숱하게 목숨을 바친 학도병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일한 자료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절박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갱지에 적은 것이라 피란 와중에 훼손돼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6·25전쟁 66주년을 맞아 이를 포함해 낙동강 방어선 관련 작전 명령서와 작전 요도 등 기록물 55매를 추가로 복원했다고 22일 밝혔다. 복원된 기록물 중엔 경북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벌어진 다부동전투의 작전 명령서(육본 138, 139호)와 작전도도 포함됐다. 그해 8월 3일~9월 22일, 두달 가까이 피를 말리는 접전을 벌여 가장 치열한 전투로 알려져 있다.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요충지이자 대구로 향하는 길목에서 국군 제1사단이 적군 3개 사단에 맞서 마지노선 방어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드론 이용 측량기술 에티오피아에 전수

    드론 이용 측량기술 에티오피아에 전수

    에티오피아에서 토지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들이 22일 오후 강원 춘천시 공지천을 찾아 드론을 활용한 측량 기술을 배우고 있다. 이번 행사는 6·25전쟁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견했던 에티오피아에 한국형 최신 측량 기술을 전수하고자 한국국토정보공사 강원지역본부가 마련했다. 춘천 연합뉴스
  • 평생 모은 12억 기부한 할머니

    6·25전쟁 때 남편을 잃고 홀로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재단에 기탁한 박수년(85)씨가 보건복지부로부터 ‘행복나눔인상’을 받았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박씨는 지난 3월 남편 ‘김만용’씨의 이름으로 수성구 ‘수성 인재육성 장학재단’에 12억원을 기증했다. 박씨는 “결혼 2년 만에 사별한 남편 이름으로 보람된 일 한 가지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1948년 17세 때 김씨와 결혼했다. 신혼생활도 잠시, 전쟁이 터지자 남편은 참전했고 그로부터 2년 후 박씨는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았다. 이후 박씨는 농사부터 직물공장 일까지 억척스럽게 일하며 조금씩 재산을 모았다. 번 돈은 대부분 저축했고 정작 자신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12억원을 기탁하면서도 박씨는 얼굴 공개를 거부했다. 장학재단은 부부의 이름을 딴 ‘김만용·박수년 장학금’ 1000만원을 수성구에서 지내는 성적 우수 학생과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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