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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회 서울보훈대상] 6·25 참전유공자 안수옥

    [제44회 서울보훈대상] 6·25 참전유공자 안수옥

    안수옥(83)씨는 참전용사로서 6·25전쟁의 실상을 바로 알리는 데 큰 노력을 쏟았다. 그것이 국민들의 애국정신을 고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터이다. 참전유공자회 서울시지회 관악구지회장을 맡고 있는 안씨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관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6·25전쟁 바로 알리기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신림중을 비롯해 관내 9개 학교를 찾아 연중 수시로 안보교육을 실시했는가 하면 지난해 7월에는 미래의 장교들이 모여 있는 서울대 학군단에서 호국 강연을 통해 그들의 안보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관악구청과 협의해 참전유공자 사망위로금 제도를 신설하고, 명절 및 호국보훈의 달에 회원들에게 위문품이 전달될 수 있도록 앞장섰다.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과 관악산, 낙성대 등 회원뿐 아니라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에서 청소봉사 등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 [제44회 서울보훈대상] 아픔 딛고 봉사로 이어간 애국…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제44회 서울보훈대상] 아픔 딛고 봉사로 이어간 애국…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 하나 되는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올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내건 슬로건입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희생하신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그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우리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자유를 위해 얼마나 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피와 눈물을 흘렸는지 가름해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이 물려준 이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호국보훈의 가치를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고, 그 고귀한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서울보훈대상’이 어느덧 44회를 맞이했습니다. 수많은 분들을 발굴·포상함으로써 국가를 위한 공헌과 희생이 대한민국의 자긍심이 되고 영예가 됨을 널리 알림으로써 호국 보훈의식의 싹을 틔우고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올해 추천된 분들의 면면을 보면, 국가 안위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거나 가족을 잃는 등 큰 아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앞장서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랑스러운 분들이었습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소년 가장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나 보훈가족의 복리 증진과 사회공헌 활동, 지역사회 발전에 매진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전몰 미망인으로 어렵고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투철한 안보의식을 바탕으로 애국정신을 고양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신 분, 음지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하신 특수임무 유공자로 안보의식 고취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신 분, 6·25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이후 투철한 국가관으로 안보의식과 나라사랑 정신을 확산시키고 지역사회에 봉사하신 분,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세계 평화를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하였고 이후 국가유공자 복지 향상과 나라사랑 정신 확산에 진력하신 분 등 한 분 한 분이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시간이 흘러 전쟁의 기억은 차츰 희미해지고 평화에 대한 낙관적 희망이 점점 깊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가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예우받아야 마땅한 우리 사회의 영웅이라 할 수 있습니다.숨가쁘게 달려온 대한민국은 새로운 기로에 서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온 국민이 하나 된 모습으로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제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에게 감사하며 유족들을 따뜻이 보살펴야 할 때입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선열들의 호국의지와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아 우리가 향유하는 평화의 향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되새겨 보고, 그 고귀한 정신을 마음에 아로새겨 받들고 키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수많은 애국선열을 추모하고 국가 유공자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박제광 건국대 박물관 학예실장
  • “자주국이라면 당연”… 전작권 임기 내 환수할 듯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공개된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전작권을 진정한 자주국방의 상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작권 환수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이 명확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였던 ‘자주국방’ 강화와 맥이 닿아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는 압도적인 국방력을 확보한 뒤 미군이 갖고 있는 전작권을 조기에 환수한다는 입장이었다. 앞서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 대응하기 위해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의 조속한 구축을 주문해 왔다. 이는 전작권 전환 조건과도 맞물려 있어서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작권 환수를 자주국방의 요체로 규정하고 가급적 이른 시기에 환수하겠다고 공언했었다. 따라서 문 대통령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우리 군의 전작권은 1950년 6·25전쟁 때 처음으로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됐다. 이후 1978년 한미연합사가 생기면서 미군인 한미연합사령관이 전작권을 갖게 됐다. 평시작전권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에 우리 군에 이양됐다. 이어 2007년 2월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 17일부로 우리 군이 환수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시기상조라는 논란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1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양국 간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빼버렸다. 대신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개선되고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이 갖춰져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대응능력 등이 갖춰졌다고 판단될 때 인수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역사속 공무원] 팔만대장경이 강화에서 왔다고요?

    [역사속 공무원] 팔만대장경이 강화에서 왔다고요?

    지난 10일 해인사에서는 6·25전쟁 당시 팔만대장경을 지키고자 폭격 명령을 거부한 김영환(1920~1954·당시 대령) 제10전투비행단장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렸다. 김 장군은 1951년 8월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중 ‘무장공비가 주둔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으며, 1954년 F51기를 몰던 중 실종됐다.가치를 산정할 수 없어 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하는 이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 제32호로 고려 고종 23년인 1236년부터 16년 동안 연인원 125만명을 동원하여 제작한 인류 공동의 유산이다. 800년이 넘도록 단 한 장의 훼손이나 손실 없이 보존되고 있는 지금의 대장경판은 1232년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당시 고려 인구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연인원 125만 명을 동원하여 불심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 의지를 담아 한 자 한 자 새겨낸 것이다. 목판 수가 총 8만 1350장이어서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데, 목판 한 장의 평균 무게가 3.5㎏이므로 전체 무게 285t에 달한다. 이는 조선시대 우마차에 실으면 약 400대, 요즘의 5t 트럭에 실으면 57대 분량이다. 그런데 왜 조선 태조는 큰 위험과 비용을 무릅쓰고, 대장경판을 강화도 선원사에서 합천 해인사로 옮겼을까. 최근 주목을 받은 연구 중에는 외침을 피하기 위해 옮겼다는 주장과 조선의 정통성을 알리기 위한 기획성 행사였다는 주장이 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각했는데, 실제로 고려 공민왕 때인 1360년 왜구가 강화도에 침입해 선원사를 비롯한 두 곳의 사찰과 민가를 약탈했으며, 이때 무려 300여명의 승려와 양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운(移運)경로는 강화도 또는 서울 용산을 출발해 만리포, 진도 울돌목, 완도, 거제도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지금의 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포에 도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인사 대적광전 외벽에는 ‘대장경 이운벽화’가 있는데, 개포에서 해인사로 이운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조선 개국 이후에도 왜구의 노략질이 계속되긴 했지만, 강화도가 남해안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위험했을 것이라는 주장인데 그렇게 위험했다면 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 사고를 강화도에 두었겠느냐는 것. 팔만대장경의 이동은 조선 조정이 기획한 이벤트란 주장도 있다. 집권 7년차를 맞아 자신감을 얻은 태조가 자신이 불교 신자임을 확실히 하고, 조선이 고려 불교를 계승한 정통성 있는 나라임을 보여 주기 위해 이 같은 대형 행사를 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록에는 태조가 불교 신자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 많다. 1392년 12월 4일 조선왕조실록 첫 번째 기사는 임금의 종교를 두고 신하와 논쟁을 벌인 내용이다. 임금이 첨서중추원사(종2품) 정총에게 대장경 발간 인사말을 쓰라고 명하자 정총이 직격탄을 날렸다. “전하께서 어찌 불사에 정성을 쏟으십니까. 청하옵건대, 이제는 믿지 마시옵소서” “이색은 유학의 종사(宗師,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스승)인데도 불교를 믿는다. 만약 믿을 것이 못 된다면 이색 같은 학자가 믿겠느냐” “이색이 학식이 높은 학자임에도 비난을 받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색이 불교를 믿어 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다시는 말도 꺼내지 마라” 이날의 논쟁은 임금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억지로 끝났는데, 이후로도 많은 신하와 격론을 벌였으나 끝내 굽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팔만대장경은 천하제일의 길지를 찾았다. 그동안 해인사에 있었던 7차례의 대형 화재, 여러 번의 전쟁, 일본에 넘겨주려 했던 임금까지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단 한 장의 손실이나 훼손 없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것을 보면 그렇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 [씨줄날줄] 한·미 동맹과 연합사/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미 동맹과 연합사/최광숙 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북핵 문제로 외국인 투자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주한 미·유럽상공회의소를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북핵보다 한·미 동맹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한·미 동맹이 흔들려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급히 찾은 곳이 용산 한미연합사다. 대통령 신분이 아닌 당선자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연합사는 한·미 동맹을 상징한다. 6?25전쟁 발발 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유엔의 군사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에게 넘긴 게 그 단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형편없던 우리 군의 역량으로는 군 지휘권을 넘겨 받을 처지가 못됐다. 더욱이 1970년대 미국이 닉슨 독트린, 베트남 철수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를 단행하면서 유엔사 해체를 시작으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엔사를 대신해 유사시 한국군과 미군을 총괄 지휘하는 기구의 필요성을 미국 측에 역설해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전시작전권(전작권)을 한미연합사가 갖게 됐다. 총사령관은 미군, 부사령관은 우리 군이 맡다 보니 대한민국의 전작권이 미국에 있다는 논란이 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 한미연합사 해체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 핵 개발과 천안함 사건 등이 터지자 보수층을 중심으로 제기된 안보불안 등을 이유로 2012년으로 예정됐던 전작권 단독 행사를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전작권 공동 행사를 사실상 유지하기로 합의한다. 이듬해 박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전 대통령이 한?미 정상으론 처음으로 같이 연합사를 방문해 “한·미 동맹은 결코 깨지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연설 도중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지난 13일 한미연합사를 방문해 “21세기 들어 한·미 동맹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가고 있으며 이런 동맹의 핵심이 한미연합사”라고 강조했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에 보내는 메시지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오바마가 외쳤던 구호를 영어로 “위 고 투게더”(We go together)라고 선창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에서 ‘전작권 전환’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면 실과 바늘처럼 한미연합사의 운명도 바뀔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든 한·미 동맹에 금이 가서는 안 된다. 최광숙 논설위원
  • 먼저 와 기다린 대통령… 확 달라진 靑의전

    먼저 와 기다린 대통령… 확 달라진 靑의전

    청와대의 의전이 확 달라졌다. 대통령보다는 행사 참석자를 주인공처럼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청와대는 15일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파독 광부·간호사 등을 비롯해 6·25전쟁 文대통령, 허리 굽혀 인사도 영웅 유족, 정부 포상자, 민주화운동 희생자 등 260여명을 초청해 오찬 행사를 열었다. 특히 파독 간호사와 청계천 여성 노동자 등이 청와대에 초청된 것은 처음이다.파격적이었다. 참석자들은 국방부 전통의장대를 사열하며 행사가 열리는 영빈관에 입장했다. 국방부 전통의장대 사열은 외국 정상의 청와대 방문 등에만 있었다. 민간인 초청 행사에서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행사장 입구에서 이들을 맞이했다. 이전 정부에서는 참석자들이 먼저 와 대기하고 있으면 대통령이 나중에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는 식이었지만, 이날은 문 대통령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들을 영접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또 고령의 군 출신 국가유공자가 거수경례로 인사하자 깍듯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당초 인사 예상 시간은 15분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참석자 한 명 한 명에게 안부를 묻고 악수하며 260여명 모두를 챙기는 바람에 실제로는 30여분이 걸렸다. 이전 정부에선 대통령이 일부 주요 인사와만 악수하거나 전체를 향해 목례만 하는 정도였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악수할 때 찍은 사진을 인화해 각자의 자택에 선물로 보내기로 했다. 달라진 의전은 뒤이어 열린 27명의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부모와 배우자, 자녀를 동반했고 문 대통령은 꽃다발을 선물했다. 장·차관 배우자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도록 한 건 대통령의 아이디어다. 장·차관에 오르기까지 가족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 때문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임명식은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면 대통령의 옆으로 비서실장 이하 청와대 수석들이 도열해 축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흡사 결혼식장처럼 청와대 수석들이 임명된 장·차관들의 뒤에 서서 하객같이 축하해 주는 등 임명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대통령이 가운데 서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날 임명식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온 김외숙 법제처장과 박춘란 교육부 차관을 존중해 문 대통령이 직접 어머니들을 가운데로 모셔 와 사진을 찍도록 배려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새 정부의 각 부처 장관이 임명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차관 여러분이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오랫동안 써 왔던 덴마크 린드버그사의 모르텐 안경테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 안경테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등 유명 인사들이 착용해 유명해진 제품이다. 문 대통령은 5년 전 대선 때부터 이 안경테를 써 오다가 고장 나고 안경알의 도수가 맞지 않아 최근 국산 안경테로 바꿨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안경 2개를 번갈아 가면서 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유공자에 허리 굽혀 인사…“여러분이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 유공자에 허리 굽혀 인사…“여러분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애국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국가유공자와 파독 광부·간호사, 청계천 여성 근로자, 민주화운동 희생자, 6·25전쟁 영웅 유족 등 나라를 지키고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일일이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15일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226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 점심을 함께했다. 참석자들에게는 외국 정상 못지않은 극진한 대접을 했다. 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국방부 의장대가 이들을 맞이했다. 그동안 의장대는 외국 정상의 청와대 방문 등 높은 지위에 있는 손님이 방문했을 때만 행사에 나왔다. 민간인 초청 행사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 내외는 청와대 영빈관 2층 행사장 입구로 나와 참석자들에게 환영인사를 건넸다. 이전까지는 참석자들이 모두 착석한 뒤 대통령이 가장 나중에 입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문 대통령 내외는 참석자 226명 전원과 일일이 악수하고 안부를 물었다. 청와대 측은 애초 대통령의 환영 인사에 15분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걸린 시간은 36분이었다. 한 국가유공자가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하자 문 대통령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기도 했다.참석자들은 대통령 내외의 환대에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한 참석자는 문 대통령이 손을 잡아주자 눈물을 흘렸고, 다른 참석자는 큰 목소리로 “기분 좋습니다. 대통령님이 가슴 뻥 뚫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파독 간호사 출신인 한 참석자는 “저희들 정말 영광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보훈의 달에 이렇게 초청받아서 영광입니다”라고 했다. 보훈 행사에 파독 간호사가 초청받은 것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월남전참전자회의 한 회원은 “파월장병들 다 굶어 죽어갑니다. 죽기 전에 소원 좀 풀어주십시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고, 6·25 참전용사는 문 대통령에게 무공훈장을 보여주며 “우리는 나라를 지켰다. 그래서 오늘 훌륭한 대통령이 있다. 정말 잘해야 한다. 잘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여러분 모두를 잘 모시면서 따뜻한 보훈을 실천해 나가겠다”며 “무엇보다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이 억울하고 서럽고 불편함이 없도록 소통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월 호국보훈의 달, 현충시설 꼭 한 번은...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 이상호>

    6월 호국보훈의 달, 현충시설 꼭 한 번은...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 이상호>

    어느덧 6월 중순에 접어드는 요즘 초여름 날씨에 주말이면 나들이가기에 분주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맑은 하늘아래 푸르른 자연을 가족들과 함께 즐기기엔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헌데 이렇게 아름다운 6월이 바로 민족의 비극 6․25전쟁이 발발했던 달이며, 매년 현충일 추념식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각종 보훈행사가 거행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은 우리 국가보훈처 공무원들이 매우 바쁘게 지내는 달이기에 그 의의를 체감하는 정도가 남다르다. 올해도 어김없이 현충일 아침 일찍부터 추념식 행사에 지원근무를 나가면서 문득 생각에 잠겼다. “현충일 아침에 조기를 게양하고 오전 10시정각에 추모 사이렌에 맞춰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도 잠시, 국립서울현충원 추념식장에 참석한 인파와 주변에 오가는 다수의 참배객들을 보며 국민들이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의식이 아직은 남아 있음에 감격할 따름이다. 현충일 추념식에 가보지 못한 이는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현충시설을 꼭 한번 가보시길 권장한다. 현충시설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도 많을 것이기에 간략히 설명하자면, 국가를 위해 공헌․희생한 사람들의 공훈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시설들로서 기념관, 기념비, 사적지 등이 있으며 크게 독립운동이나 국가수호 관련시설로 나뉜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은 전국에 2,000여개소가 있으며, 국가보훈의 상징적인 정책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각 보훈관서에서는 주로 청소년들의 보훈의식함양을 위해 현충탐방을 통한 체험교육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현충시설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 겸 현충시설 탐방을 계획한다면 특히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현충시설에 가서 참배와 감사의 묵념이라도 간단히 하고 안내판에 새겨진 설명을 한번이라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동시에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금년도 현충일 추념식에서는 국가보훈처의 위상강화와 더불어 국민들의 애국심을 근간으로 국민통합을 이룩하자는 대통령의 추념사가 있었다. 각계각층을 아우르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독립․호국․민주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애국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겠다.
  • 벨기에 공주 16일 부산 방문…우호협력 방안 논의

    벨기에 공주 16일 부산 방문…우호협력 방안 논의

    아스트리드(55) 벨기에 공주가 이끄는 벨기에 경제사절단이 부산을 방문한다. 부산시는 벨기에 국왕의 여동생인 아스트리드 공주 일행이 오는 16일 부산을 방문해 투자, 통상, 항만 분야 교류방안을 논의한다고 14일 밝혔다.아스트리드 공주 일행은 서병수 부산시장, 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부산지역 경제인 등과 만나 우호협력 증진 방안을 모색하고 벨기에 투자청 주최 투자설명회를 연다. 서 시장은 6·25전쟁 당시 벨기에군 참전과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유라시아 관문도시 부산과 항만 분야 협력을 당부할 예정이다. 이어 16일 오후에는 부산항만공사와 벨기에 앤트워프항·제 브뤼헤항 간의 항만기술교류와 교역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 체결식을 한다. 이번 벨기에 경제사절단 방문은 평소 부산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아스트리드 공주가 부산을 직접 방문해 서 시장과 지역경제인들과 함께 투자 통상 항만분야 교류에 관해 논의하고 싶다는 뜻을 부산시에 전해와 이뤄지게 됐다. 부산시는 벨기에 공주 방문을 계기로 벨기에 도시와 자매도시 결연도 체결할 계획이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시루바·태권브이… 만화 속 로봇을 찾아서

    시루바·태권브이… 만화 속 로봇을 찾아서

    한국 슈퍼 로봇 열전-만화편/페니웨이 지음/한스미디어/636쪽/3만원 로봇 만화의 대명사 하면 철완 아톰과 철인 28호, 마징가 제트를 떠올리기 쉽다. 중장년층이라면 어렸을 때 한 번쯤은 열광했던 로봇들이다.한때 토종으로 알던 시절도 있었다. 일본산(産)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면 우리에겐 1976년 혜성같이 등장한 ‘로보트 태권브이’가 있다고 자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아닌 출판 만화를 살펴보면 우리 로봇의 역사는 꽤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최상권 작가의 ‘인조 인간’이 나왔다. 표지에는 대형 로봇의 가슴 부분에 소년 소녀가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이 등장한 바로 그해에, 한국에서는 탑승형 로봇 만화가 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최초의 탑승형 거대 로봇인 나가이 고의 ‘마징가 제트’의 등장보다 20년이나 이른 시점이다. 5년 전 만화, 특히 로봇 만화 애호가들을 열광케 했던 ‘한국 슈퍼 로봇 열전’의 속편이 나왔다. 전작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한국 로봇의 역사를 훑었다면 이번에는 출판 만화를 통해 한국 로봇의 기원까지 더듬는다. 한 번 해봤던 작업이라 쉬웠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애니메이션은 비디오테이프나 필름, DVD 등으로 정보가 보존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출판 만화는 종이 매체의 특성상 사멸되기가 쉬워 그 존재 여부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때 만화는 사회악으로 지목되어 해마다 화형식이 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디어 컬처 관련 전문 블로거인 저자는 개인 소장가, 만화 애호가, 만화박물관 등의 도움을 망라해 1950년대 김용환 작가의 ‘인조인간 시루바’, 이윤기 작가의 ‘로벗트’에서부터 최신 로봇 웹툰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미씽 링크를 채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제는 사라져버린 로봇 만화들을 기억하고 발굴하고 복원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면서 “어쩌면 최초의 로봇 만화로 알려진 일본의 철완 아톰보다 더 오래된 한국의 로봇 만화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홍지민 기자 icaus@seoul.co.kr
  • 서울시의회 황준환의원, 개화산 전투전사자 충혼 위령제 참석

    서울시의회 황준환의원, 개화산 전투전사자 충혼 위령제 참석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황준환 의원(자유한국당, 강서3)은 6월 8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6․25 당시 순국한 개화산 전투전사자 충혼 위령제에 참석하여 호국 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이번 위령제는 전유공자, 유족, 기관·단체장 등 관계자들도 참석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개화산 전투의 의미를 되새기고 6·25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우고 희생한 참전유공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애국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개최됐다. 호국충혼위령비는 한국전쟁 때 인민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전사한 무명용사 1,100명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서울 강서구 개화동 개화산자락은 1950년 6월 26일~30일, 비행장 사수를 위한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전투 결과 육군 전진부대 11·12·15연대의 대장, 준장 등 37명의 생존자를 제외한 무명용사 전원이 사망했다. 위령비는 1994년 3월에 건립됐으며, 개화공원 미타사(彌陀寺)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미타사는 해마다 6월이면 호국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위령제에 참석한 황의원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의 덕분이고, 이 분들의 희생정신이 퇴색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피우진 보훈처장 부산 유엔군 추모명비 둘러봐

    피우진 보훈처장 부산 유엔군 추모명비 둘러봐

    피우진(앞줄 가운데) 국가보훈처장이 8일 부산 남구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6·25전쟁 당시 유엔군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추모명비를 둘러보고 있다. 부산 연합뉴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전쟁 아닌, 평화를 노래하라!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전쟁 아닌, 평화를 노래하라!

    “삼촌이 인민군을 따라 어디론지 쫓겨가 버리고 그때까지 대밭 속에 굴을 파고 숨어 의용군을 피하던 외삼촌이 국군에 입대하게 되어 양쪽에 다 각기 입장을 달리하는 근심거리가 생긴 뒤로도 겉에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다.” 작가 윤흥길이 197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장마’는 한국전쟁 당시, 어린 ‘나’의 눈으로 본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국군 소위였던 외삼촌의 죽음 이후 인민군을 따라간 빨치산 삼촌을 저주하는 외할머니와 그 삼촌의 무사귀환만을 바라던 할머니와의 갈등이 전체 소설의 중심축이다. 바로 이렇듯 민족 간에 이루어진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넘어 가족 공동체의 운명마저 파괴한다. 이는 곧 민족 공동 운명체로서의 정체성을 각기 분리시켜 결국은 또 다른 반목을 만들게 되는 비극으로 되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또 다른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은 ‘호국자료의 수집, 보존 전시, 전쟁의 교훈과 호국정신 배양, 선열들의 호국 위훈 추모’라고 하는 다분히 교과서적(?)인 느낌 가득한 목표를 가지고 1990년 9월에 착공하여 1993년 12월에 완공한 기념관이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개관은 1994년 6월 10일에 하였는데, 서울 금싸라기 땅에 연건평이 2만 5000평에 달하는 건축물이 들어섰으니 우선은 규모부터가 남다른 전시관이다.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에 총 8500여점의 전시자료를 갖추고 있어 단일 전쟁 박물관 규모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임은 분명하다. 원래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주둔했던 군영(軍營) 자리였다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육군본부로 사용되었던 장소다. 전쟁기념관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노태우 대통령으로 1988년 6월 국방부 순시에서 ‘전쟁기념관 건립계획’을 발표한 후 일사천리로 건립은 진행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친필인 ‘전쟁기념관’ 휘호탑(揮毫塔)이 입구에 있는 이유다. 그런데 요사이 이곳이 의외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필수 한류관광코스가 되었다. 더구나 옥외에 전시된 한국전쟁 당시부터 최근까지 운용된 항공기, 전차, 대포, 군함 등 대형 전투장비는 다른 나라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들이라 쇼핑 위주 한류관광에 지친 남편과 아들들에게는 최고의 인기 장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창군 이후 17만 전사자들의 넋을 추모 전쟁기념관은 여타 다른 박물관들과는 달리 규모가 크고 전시물들의 가짓수가 많다. 그러다보니 대강 둘러 보려 해도 족히 반나절은 걸리는 곳이다. 현재 호국 추모실, 전쟁 역사실, 6.25전쟁실 1,2,3, 기증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 대형장비실과 옥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입구에 있는 호국 추모실에는 창군 이후 산화한 17만 전사자의 명부가 보관되어 있다. 이 곳에서 제일 처음 묵념을 하고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호국 추모실을 벗어나면 전쟁 역사실이 나온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적 전쟁 사료(史料)를 보관하고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동검과 돌칼, 화살촉, 주먹도끼 등도 만날 수 있어 관람객들의 흥미를 이끈다. 다음이 전쟁기념관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6·25전쟁실 1, 2, 3관이다. 이 곳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비밀문서, 전쟁의 과정, 당시 사용하였던 전쟁 물품, UN군의 활약 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자료가 구비되어 있다. 특히 6·25전쟁실 3관에는 유독 외국인 노병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3년 1개월간 유엔의 깃발 아래에서 유엔군 3만 7000여 명이 전사하였는데 동료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짓는 모습이 참으로 숙연하다. 6·25전쟁실을 지나면 일반인들의 기증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 대형장비실이 차례로 나오는 데, 특히 기증실에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수많은 노병들의 전쟁의 흔적을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한 해외 파병실은 베트남 파병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약 8년 6개월동안 연인원 32만여 명이 파병되어, 우리나라 현대사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베트남 파병의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곡사포에서 나이키 미사일까지 만져볼 수 있어 실내 전시관을 나오면 옥외 전시실이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으로 외국인과 어린이들에게 신기한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또한 얼핏 보아도 군대를 제대한지 20 여년이 훌쩍 넘은 아저씨들도 침을 튀기며 탱크를 구석구석 어루만지는 모습은 흡사 어른들의 놀이터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현재 옥외전시실에는 민간인이 접할 수 없는 6·25전쟁 당시의 공산군과 유엔군 주요무기들과 베트남 전쟁과 대 간첩작전 등에서 국가안보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수송기 및 장갑차 등 일부 장비는 탑승체험도 가능해서 늘 한 줄 가득 길게 늘어서 있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이 곳에는 에어보트, 40mm 4연장 함포, 수륙양용장갑차, KT-1 훈련기, 4,5인치 로켓포, 3인치 50 단연장 함포, 155mm 곡사포, 5인치 38함포, S-2 해상초계기, 나이키 지대지 미사일 등이 전시되어 있다. 흔히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민족 간의 상쟁이었던 한국전쟁 당시 발생하였던 숱한 잊혀진 죽음들과 역사가 외면한 희생들에 대하여도 이데올로기의 잣대가 아닌 진실을 척도로 다가서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우리 민족의 미래는 활짝 열릴 것이다. <전쟁 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꼭 가보길 권한다. 서울 내에서도 접근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전시물들도 여타 박물관의 그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훌륭하다. 2. 누구와 함께? -누구라도 좋지만 현역 군인들이나 군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 남성분들 -어린이 체험관 시설이 아주 훌륭해서 가족 동반 나들이 장소로도 훌륭하다. 3. 가는 방법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용산동 1가) -대중교통이 가장 편하다. ⑥호선 삼각지역 11번, 12번 출구 (도보 3분)/ ④호선 삼각지역 1번 출구 (도보 5분)/ ①호선 남영역 1번 출구 (도보 10분) 4. 감탄하는 점은? -옥외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실물 대포, 곡사포, 비행기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오히려 내국인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알려진 장소인 듯하다. 생각보다 훨씬 볼거리 체험거리가가 많고 다양한 행사가 늘 진행되고 있어 충분히 방문할 공간은 된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호국추모실. 이 곳에서 산화한 17만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은 기본!! 7. 먹거리 추천? -인근에 이태원이나 경리단길에 훌륭한 식당들이 많다.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warmemo.or.kr/newwm/main-new/main.js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이태원 거리, 국립중앙박물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가 아니라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기록, 보관하는 장소다. 무겁지는 않아도 되지만 너무 가벼운 발걸음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선열들에 대한 예의인 듯 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사설] “애국에 보수, 진보 없다”며 통합 강조한 文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애국은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이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통합의 가치이자 언어로 ‘애국’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 현대사는 좌와 우, 보수와 진보로 갈려 극단적인 대립과 불신을 키워 왔다. 상극의 이념 대결은 옳고 그름을 외면한 채 경멸과 증오심을 앞세워 서로를 원수 대하듯 해 왔던 게 사실이다.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그렇고, 지난 대선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만큼 국민 통합은 시대의 요청인 동시에 더 미룰 수 없는 국가 과제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 대통령 말고도 통합을 외친 정치지도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통합의 당위성과 필요성만 언급했지 통합을 이뤄 낼 이데올로기, 즉 새로운 사상과 이념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안철수의 새 정치나 안희정의 선의가 공격받고 배척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구호만 있었을 뿐 통합을 담아낼 구체적 이념이 없어서다. 이런 까닭에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통합할 새로운 이념으로 애국을 전면에 내건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이라고 강조한 것은 더는 좌우 이념에 사로잡혀 우리의 미래가 저당잡히는 불행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표현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 6·25전쟁에 참가했던 군인과 청년들, 베트남 참전 용사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산업화의 역군, 서해 용사와 그 가족 등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민주열사를 모두 애국자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다”고 한 것은 애국 그 자체를 강조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과 정치적 편 가르기를 치유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우리 사회를 지치게 하고 훼손했던 좌와 우, 보수와 진보라는 낡은 이념은 이제 펄펄 끓는 용광로에 넣어져 애국으로 승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치 못지않게 형식 또한 중요하다. 애국을 담아낼 단단한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애국을 언급하면서 보훈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자를 국가가 예우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국가의 의무이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첫걸음일 것이다. 언제까지 독립운동가 후손이 천대받고, 친일파가 자자손손 흥하는 비상식적인 나라가 될 것인가. 문 대통령이 차관급인 국가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시키겠다는 것은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과 같다. 국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에 화답해야 한다.
  • 발굴 안 된 국군 유해 12만 3000여구 달해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기념사를 통해 “아직도 백골로 묻힌 용사들의 유해, 단 한 구의 유골이라도 반드시 찾아내 이곳(현충원)에 모시겠다”며 국군 유해 발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힘에 따라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도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유엔군 15·북한군 715·중국군 569구 발굴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국군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래 지난해 말까지 모두 1만 808구의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국군이 9508구로 가장 많고, 유엔군 유해도 15구를 찾아냈다. 적군 유해도 다수 수습했다. 북한군 유해 715구와 중국군 유해 569구를 우리 장병들이 발굴했다. 이 중 중국군으로 판정된 유해는 2014년 이후 올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중국 측에 송환됐다. ●유가족 3만 6000여명만 DNA 채취 응해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되지만 아직도 ‘피의 능선’ 곳곳에는 이름 없는 무덤 속에 방치된 국군 유해가 12만 3000여구에 이른다. 10%도 발굴하지 못한 것이다. 막상 유해를 발굴해도 유족들에게 인계되는 경우는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신원 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굴 유해 중 118구, 1.2%만 신원이 확인됐다. 인식표나 사진 등 징표가 대부분 남아 있지 않아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친족들과 대조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현재까지 DNA 채취에 응한 유가족은 약 3만 6000여명에 불과하다. 수습해야 할 전사자 유해의 22% 수준이다. ●감식단, 올해도 11월까지 발굴 진행 한편 국군 유해 발굴 사업은 당초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 가운데 하나로 육군이 주도하는 한시적 사업으로 착수했으나 2005년 사업 주체가 국방부로 이관되면서 상설 사업으로 전환됐다. 유해발굴감식단이 이때 창설됐다. 감식단은 올해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전역의 6·25전쟁 주요 전투지역에서 11월까지 발굴을 진행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인 이학기 대령은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켜낸 영웅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영웅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대통령 옆엔 5부 요인 대신 지뢰 부상군인…병원 보행실 첫 방문, 공상자 고충 청취도

    대통령 옆엔 5부 요인 대신 지뢰 부상군인…병원 보행실 첫 방문, 공상자 고충 청취도

    유공자 아들 편지 낭독 마치자 직접 걸어나가 유공자 부축 안내 현충일인 6일 문재인 대통령의 일정 곳곳에서 국가 유공자들을 예우하려는 흔적이 보였다.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 대통령 내외의 주변엔 2015년 북한의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도발 사건으로 부상을 입은 김정원(26)·하재헌(23) 중사와 지난해 비무장지대에서 임무수행 중 지뢰 사고로 오른쪽 발목을 잃은 김경렬(22)씨 등이 앉았다. 보통 추념식에서 대통령 주변엔 국회의장, 대법원장, 총리,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의 자리가 배치돼 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입장할 때와 현충탑에 헌화와 분향을 할 때도 상이군경들, 광복회장, 대한민국상이군경회장,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장, 4·19혁명희생자유족회장 등과 함께했다. 6·25전쟁 당시 포병으로 근무했으며 이날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게 된 박용규(88)옹의 아들 종철(59)씨가 소감 편지 낭독을 마치자, 문 대통령은 지난달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희생자 유가족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걸어나가 박옹을 부축해 좌석까지 안내했다. 이날 추념 공연으로 소리꾼 장사익씨가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불렀다. 민중의 삶과 한을 토해내는 대표적 민중가수로,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오랜 지인이기도 한 그가 무대에 서게 된 것도 이전 정권에선 어려운 일이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추념식 뒤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을 방문, 김경렬씨와 함께 보장구센터 내 보행훈련실을 찾아 김씨에게 치료 경험담을 들었다. 대통령이 현충일에 보훈병원을 방문해 입원한 보훈 대상자들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보행훈련실을 직접 방문해 의족 등 보장구 적응 훈련을 받는 공상자들의 고충을 들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은 보훈병원에서 환자들의 요청으로 ‘셀카’를 찍거나 응원 메시지가 담긴 사인을 해줬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환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눈을 마주치며 응원했고 “가슴속이 다 타버린 어머님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고 꼭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박수현 대변인이 전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참전용사·파독 광부·봉제 여공… “헌신한 이들이 대한민국”

    참전용사·파독 광부·봉제 여공… “헌신한 이들이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6·25전쟁 호국영령과 서해를 지킨 용사,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의 민주 열사, 한 푼의 외화가 아쉬웠던 시절 낯선 땅에서 젊음을 바친 파독 광부와 간호사, 허리조차 펼 수 없는 곳에서 16시간 노동한 청계천 봉제공장의 여공들.이념과 전쟁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받아낸 영령들과 굴곡진 시대를 헤쳐 온 이름 없는 이들이 6일 국립현충원 현충일 기념식에서 차례로 호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사를 통해 국가가 보듬지 못한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어린 ‘시다’(봉제보조)까지 ‘애국’의 반열에 올렸고, 순국열사와 호국영령의 제단 옆에 민주열사를 나란히 모셨다. 그러면서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다”며 애국의 의미를 다시 새겼다. 문 대통령은 “애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이라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 분, 한 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식민지, 분단, 전쟁, 가난, 독재로 이어지는 시련의 역사를 극복할 수 있었던 정신적 원동력이 애국이었듯,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 역시 애국임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더 나아가 애국의 의미에 통합의 메시지를 더했다. “애국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며 애국을 보수진영의 전유물로 여겼던 과거와 선을 그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공헌한 유공자들에게 이념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데 앞장서 달라고 호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상징물처럼 쓰인 태극기의 의미도 되찾아 왔다. ‘독립운동가의 품속에 있던 태극기’,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의 신념이 새겨진 태극기’, ‘파독광부·간호사를 환송하던 태극기’, ‘서해를 지킨 용사들과 그 유가족의 마음에 새겨진 태극기’라는 말로 왜곡된 태극기의 본래 이미지를 바로잡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분단과 전쟁, 사회 갈등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낡은 체제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마땅한 예우와 지원도 약속했다. 보훈 정책을 국민통합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국가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를 통해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고, 원칙이 보상받고,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증오와 대립, 세대 갈등을 끝내 사회 통합을 이루고, 국민이 애국심을 바칠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메시지가 원고지 17장 분량의 추념사에 담겼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文대통령 “이념 정치·편가르기 청산”

    文대통령 “이념 정치·편가르기 청산”

    국가 지킨 후손에 예우·보답 약속…“국가보훈처, 장관급 격상하겠다”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은 6일 서울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저와 정부는 애국의 역사를 존중하고 지키겠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공헌하신 분들께서 그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데 앞장서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안보’를 정권 안위에 이용했던 보수정권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통합의 메시지를 강조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애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이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 분 한 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면서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대한민국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면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 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이곳 현충원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며 독립운동가와 6·25전쟁 당시 국군과 학도병 등 호국용사들, 베트남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렸다. 동시에 “애국의 대가가 말뿐인 명예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제 국가가 제대로 응답할 차례”라며 이들과 후손에 대한 예우와 보답을 약속했다. 이어 파독 광부 및 간호사는 물론, 산업화시대 청계천변 작업장에서 재봉틀을 돌렸던 여공들을 언급하며 “그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고, 그것이 애국”이라고 헌사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보훈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가는 길임을 분명히 선언한다”면서 “국회가 동의해주신다면 국가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해 위상부터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면서 “애국이, 정의가, 원칙이,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 총리, 참전용사에 큰절…“국가유공자 위해 보훈정책 고칠 것”

    이 총리, 참전용사에 큰절…“국가유공자 위해 보훈정책 고칠 것”

    이낙연 국무총리는 6일 “국가유공자님들을 잘 모시겠다”며 “유공자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달라”고 말했다.현충일인 이날 이 총리는 서울 양천구 임대빌라에 사는 6·25 참전용사 김몽익(96) 할아버지의 가정을 방문했다. 이 총리는 김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더니, 김 할아버지 부부를 소파에 앉히고 큰절을 올렸다. 이 총리는 김 할아버지에게 “어르신처럼 대대로 군인으로 헌신한 분이 진정한 애국자”라며 부상한 다리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정부 지원금으로 생활은 가능한지 물었다. 김 할아버지는 평양 출신으로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유격대원으로 자원입대해 북한침투작전 등 다수의 전투에 참전했다. 장남도 장교로 장기 복무하고 소령으로 예편했다. 그는 1951년 5월 전투 중 포탄 파편에 다쳤음에도 석 달간 입원치료를 받고 다시 함경북도 양도섬 상륙작전에 참가해 특수작전을 수행했다. 휴전 후인 1953년 10월 전역했다. 그는 전역 후 40여년이 1996년이 돼서야 국가 유공자로 등록됐다. 군번도 계급도 없는 비정규전 부대인 켈로(KLO·Korea Liaison Office) 부대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입이 있어, 뭐가 있어”라며 “고향산천 다 버리고 내려와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했다. 남북통일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의 아내 김숙행(91)씨는 “이사 오면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 이자를 내야 해서 힘들다”며 “한 달에 50만원 지원을 받는데 대출이자로 20만원 정도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할아버지 부부의 말을 경청한 이 총리는 함께 온 최완근 국가보훈처 차장에게 “유공자들이 실질적으로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 총리는 지난 5일 피우진 보훈처장을 만나 “최초의 여성 보훈처장이자 영관급 보훈처장으로서 지금까지 보훈 정책이 놓친 것, 빠뜨린 것, 불충분한 것을 챙겨 달라고 피 처장에게 당부했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전날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회의를 열고 국가보훈 대상자의 예우를 높이기 위해 차관급인 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얼마 전 서울남부보훈지청에서는 6·25전쟁 초기 전개된 한강방어전투 전사자 1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한강방어선 전투 전사자 명비”를 건립하였다. 명비 건립 사업은 국가보훈처에서 추진하는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 사업‘인 지역별 호국영웅 선양 사업의 일환이다. 서울남부보훈지청에서는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한강전투의 호국영웅을 발굴하고 그 업적과 뜻을 가까이서 되새길 수 있도록 한강방어선 전투 전사자 명비를 근린공원 내에 건립하게 되었다. 명비 제막식에 참석한 80고령의 참전유공자는 한 사람 한 사람 명각의 이름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말하지 않아도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아마도6·25전쟁의 아픔이 아련히 떠올랐던 것이 아닐까? 매년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의 달은 현충일을 포함하여 6·25전쟁, 연평해전이 일어난 6월을 기념하기 위해서 국가보훈처에서 지정하였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6월 한 달을 추모의 기간, 감사의 기간, 화합과 단결의 기간으로 나누어 기간에 맞는 호국․보훈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서울남부보훈지청에서는 호국보훈의 달이 시작되는 첫날인 1일 오후 6시, 강남스퀘어에서 6·25참전유공자에게 사랑과 감동의 프리허그를 실시하였다. 현재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참전유공자는 33만여 명으로 당시 참전했던 국가유공자의 평균 연령은 85세이며 매년 세상을 뜨시는 분들은 1만 7000여명으로 이 숫자는 점점 증가 추세에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살아가는 참전유공자에게 시민들의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는 프리허그 행사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참전유공자들의 희생과 공헌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가 되어 전달됐을 것이라 본다.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된 참전유공자를 위해 업무수행을 하는 공직자로서 뿌듯함과 감사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우리사회는 많은 갈등과 분열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6·25전쟁 등 수많은 국가안보의 위협 속에서도 피와 땀과 눈물로 희생한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우리가 안보현실을 직시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호국보훈의 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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