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5년간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탈퇴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포격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철거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서유럽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49
  • [기고] 막걸리의 세계화를 위한 과제/이동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정책연구본부장

    [기고] 막걸리의 세계화를 위한 과제/이동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정책연구본부장

    유통 중인 막걸리의 대부분이 수입산 쌀을 사용한다는 보도를 보고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위 20개 업체 중 1개사만 국산쌀을 사용하고 그나마 원료의 10% 정도에 불과하다니 막걸리산업을 통해 국산농산물의 소비촉진과 전통식문화의 부활을 기대하던 꿈이 물거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세법상 막걸리는 “곡류와 국 및 물을 원료로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하지 않고 혼탁하게 제성한 것”으로 규정하여 쌀을 얼마나 사용하라는 제한은 두지 않고 있다. 주류에는 제조자의 명칭과 제조장의 위치, 주류의 종류, 규격, 용기주입 연월일, 원료용주류 및 첨가물료의 명칭과 함량, 상표명만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굳이 수입쌀을 사용하였노라고 표시하지 않았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1965년 이후 무려 25년간이나 쌀을 원료로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하여 우리 스스로 품질을 떨어뜨려 왔을 뿐만 아니라 700여개 업체 중 민속주나 농민주로 지정받은 서너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는 전통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행 제도상 막걸리는 전통주도 아니고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원료의 종류와 사용량, 제조방법에 대한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같은 쌀술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의 청주와 중국의 황주는 어떠한가. 일본 청주는 품질표시기준법에 의해 60% 이하로 도정한 쌀을 사용하면 음양주, 70% 이하로 도정한 쌀을 사용하면 혼합청주로 구분하고 있다. 특히 품질이 우수한 원산지명칭보호주는 특정지역에서 생산된 쌀과 물의 사용은 물론 첨가물이나 효소제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쌀로 빚은 발효주인 중국의 황주 중에서도 소흥주는 원산지보호상품으로 찹쌀과 소맥 및 감호수를 사용하고, 진흙으로 빚은 항아리에 담아 3년 이상 숙성해야 ‘소흥주’란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다. 모두 전통적인 술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원료의 종류와 사용량, 제조방법을 표준화하고 엄격한 품질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막걸리는 알코올성분 6도 내외의 저도주이자 섬유소나 유산균·비타민이 풍부한 건강식품이다. 일본에서 불고 있다는 막걸리열풍을 보면 확실히 세계화는 물론 독한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우리 음주문화를 바꿀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개발하여 쌀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어떻게 하면 싸구려 막걸리를 세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고급명주이자 기능성알코올음료로 만들어 낼 것이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원료의 종류와 사용량, 제조방법에 있어서 막걸리의 규격기준을 마련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전통주로 지정하여 체계적인 지원 및 관리를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또한 연구개발을 통해 다양한 고급막걸리를 생산하고 생맥주처럼 새로운 유통방법을 찾는 것도 소비자들에게 한발 다가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산성막걸리나 제주오메기술 등 지역특산막걸리에 대해서는 원료나 물 등 별도의 조건을 명시하여 지리적표시보호대상으로 관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밖에 양조장과 유통시설을 현대화하고 양조에 적합한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계약재배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막걸리 용기 및 술잔의 포장과 디자인을 개량하고 막걸리안주와 함께 이를 서빙하는 운치 있는 목로주점과 전통음주문화를 엮어내는 것도 막걸리산업의 세계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동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정책연구본부장
  • [객원칼럼] 캘리포니아를 꿈꾸며/김동률 KDI 연구위원

    [객원칼럼] 캘리포니아를 꿈꾸며/김동률 KDI 연구위원

    “가로수 잎들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고/ 하늘이 잿빛이 되는 차가운 겨울/ LA에 가면 따뜻하고 안락할 텐데/겨울날에는 캘리포니아를 꿈꾸네/” 우리에게도 친숙한 마마스와 파파스가 부른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의 한 대목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다른 어느 주보다 한국인에게 특별한 곳이다. 가난한 아시아 이민자들의 천국이자, 한인들이 나라 밖에서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는 유일한 주다. 그뿐인가. “넓고 넓은 바닷가에/오막살이 집 한채/고기잡는 아버지와/철모르는 딸 있네”로 시작되는 캘리포니아의 상징 노래, 클레멘타인은 3·1운동의 실패로 조국을 떠난 선조들이 만주 등 타관에서 고향을 그리며 눈물과 함께 부르던 노래였다. 이른바 ‘골든 스테이트’로 불리는 캘리포니아는 이민자들의 땀과 꿈이 범벅이 된 주다. 거점도시 LA를 보더라도 인구 1000만명의 절반에 가까운 45.6%가 라틴계이고 아시아인이 12.6%, 백인이 32.2%이며 흑인은 9.4%에 불과하다. ‘서울 특별시 나성구’로 불리는 LA에서는 누구도 마이너리티가 아니다. 인종적인 다양성이 실리콘 밸리를 낳았다. 습기와 천적인 반도체나 컴퓨터 부품에 사막기후는 최고다. IT산업의 메카인 실리콘 밸리 내 기업들 중 외국인 출신 엔지니어는 전체의 35~40%에 이르고 있고 IT 산업을 상징하는 인텔, 선 마이크로 시스템 등도 모두 이민자가 세운 회사다. 캘리포니아에서 인종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초등학교에는 ‘우리는 서로 달라 즐겁다’ ‘우리는 서로 다른 점을 즐긴다’는 구호가 붙어 있다. 캘리포니언들의 공통언어는 ‘꿈의 실현’이라는 단어다. 미국 내에서도 가장 살기 좋다는 주였다. GDP를 개별국가와 비교할 때 세계 8위의 경제규모(IMF 발표·2008년 기준)를 자랑하는 주(州). 그러나 지금은 260억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로 인해 빈사상태다. 재정은 주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정책수단으로 재정이 ‘거덜났다’는 것은 가정으로 치면 ‘파산했다’는 의미다. 가장 풍요롭다는 캘리포니아에 어떻게 이런 사태가 났을까. 전문가들은 주력 산업인 실리콘 밸리의 IT산업이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의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세수가 준 데다 터미네이터의 인기에 힘입어 주지사 자리를 꿰찬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선심성 감세정책을 지적한다. 공화, 민주당 간의 정쟁도 제국의 몰락을 뒷받침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도요타가 GM과 지난 25년간 합작으로 운영하던 프레몬트 자동차 공장의 문을 닫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슈워제네거 주지사가 “떠나지 마오.”를 도요다 아키오 사장에게 읍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결정이다. 3만명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질 위험에 처해졌다. 이처럼 꿈의 공장, 캘리포니아가 이제 그 꿈을 잃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거대한 주(州)가 이제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을 잃었다.”고 단언한다. “캘리포니아는 어려운 순간을 거쳐왔고 앞으로도 어려운 순간을 극복할 겁니다.” 슈워제너거 주지사가 최근 막대한 재정적자 타개를 위한 주의회 차기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골든스테이트로 불리던 과거 좋은 시절은 끝난 게 아니냐는 언론의 냉소에 대해 주먹을 불끈 쥐며 답한 말이다. 캘리포니아에는 100만명을 훌쩍 넘는 많은 한인들이 저마다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살고 있다. 그의 말이 부디 실현되기를 빈다. 김동률 KDI 연구위원
  • 울산·부산항 선박 입출항 정상화

    울산항과 부산항의 예인선 노조 파업이 사흘째 이어졌지만, 선박 입·출항은 별다른 차질을 빚지 않고 있다.9일 울산항 소속 예인선 3척과 부산·여수·목포 등 다른 지역 항만에서 지원나온 예인선 8척 등 11척이 울산항 입출항을 신청한 54척에 대한 예인 서비스를 실시했다.울산항 입·출항 예인작업은 노조 파업 첫날인 지난 7일 오전 일부 차질을 빚었으나 이후 빠른 속도로 정상화되고 있다. 게다가 10일부터 평택항에서 지원한 예인선 8척 등이 합류하면 총 20척으로 늘어나 완전히 정상 운영될 전망이다.노조는 이날 남구 장생포동 매암부두에 예인선 26척을 묶어둔 채 파업을 계속 이어갔고, 10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처우개선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또 부산항은 7개 선사 소속 예인선 32척 가운데 19척이 운항하면서 선박의 입·출항을 지원했다. 부산항 예인선 선원 노조와 선사는 파업 돌입 나흘만인 10일 오후에 교섭을 재개, 기본협약 교섭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한편 예인선 노조의 파업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조는 외형적으로 사측에 노조 인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핵심은 노조원들에게 25년간 적용된 ‘선원법’ 대신 연장 및 야간 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는 ‘근로기준법’ 적용에 있다.이같은 법 적용 논란은 국토해양부가 지난 1월 ‘예인선의 성격을 규명해 달라.’며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요청한 결과, 법제처가 예인선을 ‘항내만 운항하는 선박’으로 해석하면서 비롯됐다. ‘호수나 강 또는 항내만을 항해하는 선박 종사자’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도록 돼 있어 예인선 운항자는 선원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예인선 갑판원이 야간 및 연장근로수당 등으로 월 30만원 이상 더 받을 수 있다.노조 측은 “회사 측이 노조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고, 법제처의 법령해석도 무시하고 있다.”면서 “예인선 노동자는 하루 24시간 근무에 수당 3만원, 월평균 400시간 근로, 연간 휴가 1일 등 최악의 상황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사측은 “법제처가 현실을 무시한 법령해석으로 현장에 논란만 가중시킨 상황”이라며 “선원은 선원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잭슨 머리카락으로 만든 다이아몬드 나온다

    잭슨 머리카락으로 만든 다이아몬드 나온다

    지난 달 갑작스럽게 사망해 전 세계 팬들에게 충격을 준 마이클 잭슨의 머리카락이 다이아몬드로 다시 태어난다. 다이아몬드 가공 전문업체 ‘라이프 짐’(Life Gem)은 1986년 펩시콜라 광고를 촬영할 당시 타버린 잭슨의 머리카락으로 다이아몬드 기념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 머리카락은 당시 광고 기획자인 랠프 코헨이 사고 현장에서 주운 것으로, ‘돈이 될 것’으로 여겨 25년간 보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코헨은 원래 존 케네디 대통령이나 마릴린 먼로, 베토벤 등 유명 인사들의 머리카락을 모으는 수집가에게 팔 예정이었으나, 마음을 바꿔 다이아몬드 회사와 손을 잡았다. 라이프 짐사는 “코헨이 보관한 머리카락 중 일부를 넣어 특별한 다이아몬드 세트를 제작할 것”이라며 “이 다이아몬드는 마이클 잭슨의 DNA로 만들어진 세계 유일의 보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전했다. 회사의 설명에 따르면 머리카락에서 탄소를 추출해 열을 가한 뒤 이것으로 흑연을 만든다. 다음 이것을 다이아몬드를 녹인 틀에 넣고 강한 열과 압력을 가해 융합시켜 ‘잭슨의 DNA 다이아몬드’를 완성한다. 라이브 짐은 현재 보유한 머리카락으로 약 10개의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며,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7년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넣어 만든 다이아몬드를 경매에서 20만 달러에 팔기도 했다. 한편 다이아몬드의 정확한 출시 날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잭슨의 특별한 기념품을 원하는 전 세계 팬들이 경매에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 사진=news.sky.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거장, 책임감을 지휘하다

    거장, 책임감을 지휘하다

    “언제나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즐깁니다. 젊은 시절에 듣고, 배우고, 연주한 경험들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고, 그들의 능력을 더욱 높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젊은 연주자들을 가르치는 데 항상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스위스 베르비어 페스티벌에 참석 중인 지휘자 샤를 뒤투아(73)는 이메일을 통해 제1회 린덴바움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이유를 전했다. 26일부터 새달 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등에서 열리는 린덴바움 뮤직 페스티벌은 음악 교육 페스티벌을 표방한다. 세계적인 지휘자와 유명 음악인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젊은 연주자들과 어우러져 음악적· 문화적 교류를 하는 자리다. 1990년 지휘자 번스타인이 만든 일본의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PMF)’, 1994년부터 꾸준히 발전해오면서 스위스가 자랑하는 축제가 된 베르비어 페스티벌이 모델이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라는 수식어를 갖는 뒤투아가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과 6개월 전. 3년간 스케줄이 빼곡한 특급 지휘자에게 새로운 일정을 추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그가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한 배경에는 그 ‘책임감’과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인 바이올리니스트 샹탈 쥐이예가 있었다. “많은 페스티벌을 함께 하며 오랫동안 음악적 동지로 지낸 샹탈에게 ‘아직 페스티벌의 지휘자를 찾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페스티벌에 참석할 많은 연주자들이 모두 나의 좋은 친구들이라 서울에서 함께하기로 결심했죠.” 이렇게 해서 뒤투아와 전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자 현 사라토가 뮤직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인 쥐이예, 전 암스테르담 로열 콘서트헤보우 수석 오보이스트 베르너 헤르베스, 로잔 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조엘 마로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트롬본 블레어 볼링저 등 각 파트의 수석 연주자 13명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뒤투아는 프랑스와 러시아 음악의 탁월한 해석으로 정평이 났을 뿐 아니라 무명 오케스트라를 최고 반열에 올려놓기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예가 몬트리올 심포니로, 1977년부터 25년간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탈바꿈시켰다. 첫 문을 여는 린덴바움 뮤직 페스티벌에 대해 그는 “예술성, 운영, 참가자 등 전반에 대해 화합하면서 확신을 갖고 프로젝트를 끝까지 이끌 조직을 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과 베르비어 페스티벌, PMF 등을 두고 “이들은 전 세계에서 연주자들이 한데 모여 교류하고 다른 문화를 폭넓게 접하도록 한다는 매력적인 요소로, 오랜 시간에 걸쳐 정착됐다.”면서 ‘일관성’을 핵심어로 꼽았다. 뒤투아는 페스티벌 마지막날에 말러의 교향곡 1번과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쇼스타코비치의 페스티벌 서곡을 들려준다. 그는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하는데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때론 단 며칠이 그들에게 새로운 접근법과 연주법, 소리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데 충분한 시간일 수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는 이날 공연을 끝내자마자 다음 일정을 위해 뉴욕으로 떠날 계획이다. (02)720-1013.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이인규 중수부장 퇴임 “수사책임론 걱정스럽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이끌었던 대검찰청 이인규 중수부장이 14일 오전 퇴임식을 갖고 25년간의 검사생활을 마감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퇴임사에서 “수뢰사건 수사 중 예기치 못한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수사팀을 비난과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라며 “중수부 폐지까지 거론되는 것은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사태의 원인과 본질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해 정확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모닝 브리핑] “美, 대북인권특사에 로버트 킹 내정”

    [모닝 브리핑] “美, 대북인권특사에 로버트 킹 내정”

    미국 정부가 신임 대북인권특사에 미 하원 외교위원회 로버트 킹 전 국장을 내정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일 보도했다. RFA는 복수의 외교소식통 말을 인용, “오바마 행정부가 1983년부터 톰 랜토스 전 하원 외교위원장이 지난해 2월 사망하기까지 25년간 랜토스 위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가장 최근에는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국장을 지낸 킹의 특사 내정 사실을 조만간 공식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어 “킹 내정자는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고(故) 랜토스 위원장과 북한을 두 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북한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 왔고, 특히 2004년 통과된 ‘북한인권법’을 발의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英연구팀 “공룡 몸무게, 생각보다 가볍다”

    英연구팀 “공룡 몸무게, 생각보다 가볍다”

    공룡, 생각보다 가볍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사나운 공룡들은 모두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지만, 실제 공룡들은 이보다 훨씬 작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런던의 동물사회학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몸집이 큰 공룡 중 하나인 아파토사우루스 루이재(Apatosaurus louisae)의 실제 크기는 알려진 것의 절반 정도로 밝혀졌다. 이전까지 아파토사우르스의 몸무게는 38t 가량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몸무게는 18t 정도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또 지금까지 발견된 공룡 중 가장 큰 공룡에 속하는 디플로도쿠스(Diplodocus)의 평균 몸무게도 6.1t이 아닌 4.4t인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를 이끈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게리 패커드 박사는 “지난 25년간 고생물 학자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공룡의 무게와 크기로 통계자료를 만든 뒤, 이것을 근거로 거대 공룡의 무게를 추측했다.”면서 “그러나 공룡들의 먹이 사슬과 실제 운동량 등의 정보로 재조사 한 결과 실제 공룡의 크기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작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어 “공룡 뿐 아니라 현재는 멸종된 포유류 중 33종의 실제 몸무게는 현재 알려진 것 보다 훨씬 적게 나간 것으로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연구결과는 런던동물학회지(Journal of Zoology)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express.co.uk 캡쳐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스페인 공화정은 내분으로 무너졌다”

    “스페인 공화정은 내분으로 무너졌다”

    전쟁은 뼈아픈 고통과 강렬한 외상을 남기지만 예술의 강력한 원천이 되기도 한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로버트 카파의 사진 ‘병사의 죽음’ 등은 하나의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바로 ‘스페인 내전’이다. 러시아혁명, 제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20세기를 규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는 스페인 내전은 특히 영화 감독에게 더 많은 영감을 주었다. 스페인의 국민 영화감독 카를로스 사우라와 영국 거장 켄 로치는 각각 ‘사냥’과 ‘랜드 앤드 프리덤’에서 내전 당시 남성과 노동자의 몰락을 그렸고, 판타지 영화의 대표주자 길예르모 델 토로는 스페인 내전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본 ‘악마의 등뼈’와 ‘판의 미로’를 만들기도 했다. 1936년부터 3년간 치열하게 벌어진 스페인 내전은 예술작품의 배경 정도로 접하기에는 매우 복잡한 원인과 다양한 이념의 충돌, 2차 세계대전의 포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 등을 내포한다. 스페인 내전 종결 70주년을 맞아 출간된 ‘스페인 내전’(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교양인 펴냄)은 이렇게 많은 예술작품으로 변주된 스페인 내전의 전모를 세밀하게 조명한다. 영국의 전쟁사학자 비버는 지난 25년간 스페인과 외국 역사가들의 연구, 독일 문서고에서 찾아낸 새 자료, 최근 공개된 소련의 자료 등을 종합해 스페인 왕정의 붕괴에 이은 공화정의 탄생부터 스페인 내전 종결 후까지 역사적 장면들을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재현했다. 단 3년 만에 스페인을 황폐화시킨 스페인 내전에서 사회주의, 자유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파시즘 등 온갖 정치 이념들이 충돌해 폭발했다. 공화진영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아나키즘 세력이 뒤섞여 있었고 프랑코군의 국민진영이 파시즘 세력의 지원을 받은 점에서 스페인 내전은 이념전쟁이었다. 스페인 민중과 그들을 억압한 가톨릭교회가 격돌한 종교전쟁이기도 하다. 자본가·지주 계급과 노동자·농민 계급도 맞붙었다. 또 공화진영을 지원한 소련과 국민진영을 뒷받침한 독일이 자신들의 군사력과 전략을 실험한 국제전으로, 그 실험의 결과는 고스란히 2차 대전으로 실현됐다. 일반적으로 스페인 내전에서 국민진영이 승리한 결정적인 이유로 독일의 군사 지원을 들지만, 비버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공개된 소련 비밀문서들을 근거로 “공화진영의 내부 분열과 치명적인 무능이 결정적 패인이 됐다.”고 분석한다. 일사불란한 국민진영에 비해 공화진영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등 여러 세력이 내부에서 자체 경쟁을 벌였다. 결국 1937년 권력을 장악한 공산세력이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 등을 반역자로 몰아 처형하며 분열을 자초했다는 설명이다. 비버는 “콘도르 군단(독일의 군사적 지원)이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완벽한 환경을 제공한 것은 공산주의자 군 지휘관들과 소련 군사 고문들의 형편없는 지도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위해 병사 3만 5000명이 목숨을 바친 투쟁으로 기억되는 스페인 내전을 별다른 기교 없이 꼼꼼히 기록했다. “스페인 내전에 관해 더 덧붙일 것이 없는 책”이라는 저명한 전쟁사학자 존 키건의 평가 그대로다. 3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교정대상 수상자-교정 참여인사] 봉사상-최동선 김천교도소 교육위원

    최동선 한국무용연구소장으로서 25년간 수용자 교정교화업무에 참여해 왔다. 수용자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한 불교법회 123회, 자매결연지도에 46회 참여했고 870여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지원했다. 1981년부터 김천시 교동 소재 보육원을 매월 방문해 목욕봉사를 하고 1984년부터 불우 학생들에게 1000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소년수형자 특별활동으로 농악반 지도 648회, 농악반 공연 28회를 열었다. 1996년부터 김천 전통 춤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매년 정기공연을 통해 얻는 수익금 일부를 심장병어린이 후원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2002년에는 교정참여인사와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하는 ‘화랑소년예술제’에서 사물놀이를 공연했다.
  • [비즈&피플] 구자영 SK에너지 사장

    “2007년 일면식도 없었던 최태원 SK 회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고민 끝에 직접 SK에너지의 울산 공장을 둘러보고 결심을 했던 저의 안목이 틀린 것 같지 않습니다. SK에너지는 성장 가능성이 엄청난 회사입니다.”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은 2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SK에너지는 더 이상 정유 회사가 아닌 토털에너지 기업”이라면서 “뛰어난 에너지 관련 기술로 글로벌 석유 메이저사와 경쟁하겠다.”고 밝혔다. 구 사장은 “그린카 배터리와 무공해 석탄에너지, 친환경 플라스틱 제품인 ‘그린 폴’ 등에서 앞선 기술을 보유한 만큼 석유 메이저사와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기브 앤드 테이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석유의 시대가 점차 저물고 이제는 기술이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석유개발 분야에서도 SK에너지가 ‘세계 톱10’에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가가 낮은 지금이 해외 석유자원개발에 적극 나설 시기”라고 설명했다. 구 사장은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50달러대로 급등하는 시기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면서 “5.7%에 불과한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일본 수준(20%)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이와 관련, SK에너지가 지난 25년간 해외자원 개발에 나서 현재 중동과 남미, 러시아 등 전 세계 17개국 34개 광구에서 5억배럴의 매장량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미국 과학·수학 능력 한국 학생보다 뒤져”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미국 학생들의 과학과 수학 능력이 한국 등의 학생들보다 뒤지고 있다며 과학 연구와 발전을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과학의 날을 맞아 워싱턴 시내에 있는 국립과학아카데미에서 행한 연설에서 물리 등 과학에 대한 GDP 대비 투자비율이 지난 25년간 절반으로 줄어들어 미국 학교들이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을 뒤쫓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능력이 한국과 싱가포르, 일본, 영국, 네덜란드, 홍콩 등의 학생들에 비해 뒤떨어지고 있다.”면서 “미국 15세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세계에서 15위, 과학에서는 21위를 차지했다는 평가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인력이 늘어나야 미국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우주과학과 태양전지 등 대체에너지 개발분야도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교육훈련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 소프트웨어가 개인교사나 다름없이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하고 우리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지식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美 인종문제 재판대에 오른다

    美 인종문제 재판대에 오른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연방 대법원이 미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인종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놓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보수적 성향 쪽으로 다소 기운 미 연방 대법원은 지난 20일부터 2주간 인종문제와 관련해 제기된 4건의 민감하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에 대한 심의에 착수했다.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과 흑인 법무장관의 탄생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미 최고법원의 법적 판단은 투표권과 고용, 주택, 교육 문제 등 50여년간 적용돼온 민권법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어 진보·보수 진영이 긴장하고 있다. 성별과 피부색에 따른 차별대우는 사라졌다는 주장과 미국사회에 아직도 인종에 대한 불평등이 존재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소수자에 대한 우대정책이 계속 필요하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미 대법원은 먼저 20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공립학교에서 이민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영어전용수업만 실시하는 것의 부당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사건은 22일부터 심리에 들어가는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백인 소방관 18명(히스패닉계 1명 포함)이 피부색 때문에 승진에서 역차별을 당했다며 시를 상대로 낸 소송. 뉴헤이븐의 백인 소방관들은 5년 전 필기와 면접으로 이뤄진 승진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 승진이 유력시됐으나 흑인 소방관들이 단 한 명도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자 시 당국은 부랴부랴 시험 성적을 승진심사에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는 28일에는 뉴욕주 법무장관이 은행들을 상대로 모기지 대출과 관련해 백인들에 비해 흑인 및 히스패닉 대출자들에게 더 높은 대출이자를 부과한 것이 정당한지 가리게 된다. 이밖에 29일에는 흑인 등 소수 인종이 투표과정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한 ‘투표권리법’의 존치 여부를 둘러싼 소송이 있다. 투표권리법 논란은 지난 2006년 연방의회가 1965년 제정한 투표권리법의 일부 조항이 향후 25년간 계속 유효하도록 갱신한 것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다. 제5항은 인종차별이 심했던 앨라배마, 루이지애나, 텍사스 등 남부지역 9개주 등에서 선거법을 개정할 경우 법무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연방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사회의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흑인 대통령을 맞은 미국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변해 가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9명으로 구성된 미 연방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보면 4대 5 정도로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다소 우세하다고 USA투데이가 보도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인 2005년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취임하고 2006년에도 보수적인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이 임명됐다. 미국 언론들은 결국 중도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전했다. kmkim@seoul.co.kr
  • 최강 항공모함 아이젠하워호 훈련과정

    최강 항공모함 아이젠하워호 훈련과정

    24층 건물 높이, 8만 6000t 무게에 승선인원 6000명. 항공모함 ‘아이젠하워호’는 그 규모에서부터 최강을 자랑한다. EBS ‘다큐+’는 21일 아이젠하워호의 주임무와 훈련과정을 소개하는 ‘최강의 항공모함, 아이젠하워호(원제·Inside Super Carrier)’를 오후 11시10분에 방송한다. 아이젠하워호는 미국 해군의 초대형 항공모함 중 하나로 최강의 해상 공군 기지 역할을 한다. 그 길이만 해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319m)을 눕혀놓은 것과 맞먹고, 무게는 대형 트럭 2000대와 맞먹는다. 자체의 원자력 발전으로 움직이며 두 개의 원자로는 25년간 연료 보급이 없이도 운항할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선체에 제공한다. 규모뿐 아니라 그 위력에 있어서도 아이젠하워호는 그야말로 바다 위에 떠다니는 군사 기지다. 아이젠하워 전투단은 모함을 중심으로 전투지원함 한 대, 미사일 순양함 한 대, 미사일 구축함 두 대, 초고속 원자력 잠수함 한 대는 물론 ‘F/A-18 호넷’을 주축으로 한 70여대의 전투기로 구성돼 전방위의 공격과 방어가 가능하다. 방송은 또 실전 배치를 앞두고 7일간 벌어진 아이젠하워호의 전투훈련 모습을 생생히 전해 준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시속 300㎞가 넘는 속도로 갑판에 접근해 9m 길이밖에 안 되는 착함 와이어에 무사히 착지를 한다. 19초 간격으로 떠올라야 하는 전투기들을 컨트롤하기 위해 갑판에서는 항공관제사와 항공기 유도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무기관제사는 또 정확한 목표물 조준을 위해 애쓰고 있다. 방송은 완벽한 전투를 위해 땀을 흘리는 아이젠하워호의 함장과 그외 6000여명 승무원들의 훈련과정을 곁에서 담아 소개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정만원 SKT 사장 “ICT산업 세계화 선도로 제2의 CDMA 신화 창조”

    정만원 SKT 사장 “ICT산업 세계화 선도로 제2의 CDMA 신화 창조”

     SK텔레콤 정만원 사장이 취임 100일 출입기자 간담회를 갖고, 지난 25년간 쌓아온 기술역량을 기반으로 국내 ICT(Information& Communications Technology) 산업의 세계화를 선도해 제2의 CDMA 신화를 창조하겠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이날 “6년 만에 돌아와 본 이동통신시장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성장정체의 늪에 빠져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지난 3개월간 성장문화와 성장 스토리를 확립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신규 서비스와 글로벌 시장 개척을 통한 성장을 추진키로 했다.이를 위한 4대 미션으로 ▲기술 리더십 확보를 통한 기술보국▲창조적 서비스 발굴을 통한 신규시장 개척▲상생적 산업생태계(Ecosystem) 구축을 통한 세계화(Globalization) 추구▲선도적·차별적 혁신을 통한 소비자 후생증대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 ICT 산업의 성장률이 계속 낮아지는 등 성장 정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간 불균형에 따른 것이라며 소프트웨어산업 경쟁력 강화를 역설했다.  정 사장은 국산 휴대전화가 세계시장의 25%를 점하는 등 성장세를 지속하는 반면,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은 세계 소프트웨어 매출액의 2%에 머물고 있어 ICT산업간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정 사장은 국내 정보통신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미래 ICT 산업성장의 기회영역으로 보고, 정보통신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 제고를 통한 글로벌 시장 개척을 역설했다.  4대 미션을 영역별로 나누면 ‘Tech.Leadership’ 측면에서 지금까지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은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고 추진해 왔으나 선진국 대비 산업적 활용이 미흡하다는 현실 인식에 기반해 ICT 인프라의 활용 범위 확대와 타 산업의 생산성 증대를 위한 기술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용자, 산업·기업, 국가 등으로 정보통신 인프라 활용 범위를 확대하고 그 파급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5대 성장기술 과제(5nGINE)를 추진해 기술 보국에 앞장 선다는 계획이다.  5nGINE은 ▲4G 등 유·무선 차세대 네트워크 고도화 기술 ▲자동번역, 개인화 기술 등 혁신적 유저 인터페이스 기술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등 비즈 플랫폼 기술 ▲지능형 전력망(Smart Grid) 등 스마트 기술 ▲이종산업간 융합기술 등이다.  SK텔레콤의 이러한 성장기술 추진방향의 모토인 ‘엔진(nGINE)’은 다음 세대를 선도하는 기술, 실질적 세계표준화(Global De-Facto Standard)를 지향하는 기술, 끊임없는 이노베이션을 추구하는 기술, 산업간 컨버전스(No-Border)를 촉진하는 기술,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Experience)을 제공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창조적 서비스 측면에서는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창조적 서비스를 지속 개발함으로써 신규시장을 개척하고 신성장 동력 창출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서비스 개발에 있어 ICT 산업 내 전면적 통합과, ICT산업이 경제전반의 효율성 증대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 인프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ICT산업과 타 산업과의 융합을 촉진하는 방식 등 두 가지 방향을 동시에 추진키로 했다.  상생을 통한 세계화와 관련해서는 ‘상생혁신센터(Collaborative Innovation Center)’를 신설해 마케팅 테스트 베드 공간 등을 제공하고 ‘Korea ICT Valley’를 구현할 계획이다. 또, 상생적 산업생태계(Ecosystem) 내의 실질적 협력과 경쟁력 제고를 바탕으로, 협력업체와의 동반 해외 진출을 통해 ‘실질적 세계 표준화(Global De Facto Standard)’를 추진키로 했다.  특히 SK텔레콤은 세계시장 진출 과정에서 SK그룹이 보유한 42개국 300여개 거점을 적극 활용하는 등 SK만의 차별적 지원을 통해 ICT산업의 세계 진출에 추진력을 배가하기로 했다.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는 선도적·차별적 혁신을 통한 소비자 후생 증대 노력을 지속적으로 시행하여 ‘고객 행복 Company’를 지향키로 했다.  이를 위해 향후 신개념의 무선인터넷 요금제를 출시하는 등 요금 경감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현재의 요금제를 보다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단순화하며, 장애인을 위한 요금제 및 단말기를 제공하는 등 소비자들의 요구에 적극 부응할 예정이다.  또한 고객에게 최선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고객 경험관리 프로그램’(CEM : Customer Experience Management)도 도입할 예정이다.  한편 정 사장은 미래성장을 위한 미션 정립 작업과 더불어 성장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혀 성장을 위한 전사적 일체감 형성을 강조했다.정 사장은 SK텔레콤의 미션을 결정하기까지 지난 3개월동안 전 임원과의 1대1 면담, 임원·팀장 워크숍 등을 거쳤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영철 서경대 총장·前국회부의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영철 서경대 총장·前국회부의장

    최영철(74) 전 국회부의장이 돌아왔다. 노태우 정부의 통일부총리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러나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왔던 그가 15년 만에 사회로 복귀했다. 이번에는 언론계·정계·관계가 아닌, 교육자가 되어서다. 서경대학교 총장을 맡은 지 1년 남짓 동안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던 최 총장이 서울 정릉의 서경대 총장실에서 서울신문과 첫 인터뷰를 갖고 입을 열었다.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들어봤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연말 경호권을 발동했을 때 최 전 국회부의장의 이름이 매스컴에 나왔다. 1986년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라는 대정부 질문으로 정국에 파란을 일으켰던 통일민주당 유성환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과정에서 경호권이 발동된 사례가 소개됐고, 그가 경호권을 발동했다는 것이다. 기억이 어슴프레한 당시에 국회의장이 아닌 부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한 이유가 궁금했다. 최 총장은 “당시 이재형 국회의장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제가 임기 2년 동안 의장 직무를 거의 대행하다시피 했어요. 그날도 이 의장이 밤 늦게까지 견디지를 못하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에 제가 총대를 메게 된 것이지요.”라고 소개했다. 경호권을 발동하면서 동료 의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지 않으려고 다리가 퉁퉁 부을 정도로 여야를 오가면서 중재를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3당 총무’. 담담하던 최 총장의 목소리는 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바뀌자 높아졌다. 최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었던 지지자들이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큰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법입니다. 대통령이 국민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으려다 모두는 고사하고 지지자들까지 등을 돌리게 하고 있어요. 자기 지지자만이라도 계속 박수를 치도록 해야 합니다. 다 가지려 하니까 좌고우면하게 되고 우유부단하게 되고 아무 것도 못하는 거예요. 옳다고 생각하면 소신대로 밀어붙여야 해요.” ●1987년 5년 중임제 제안에 여야 모두 거부 요즘의 국회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최 총장은 “국회요? 그게 국회요? 난장판이지. 국회가 전쟁터인지 이종격투기장인지 원…. 16년 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했지만 국회의원을 했다고 말하기조차 창피하고 부끄러워요.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때라면 몰라요. 여당과 야당이 서로 바꿔가며 집권을 해서 서로 상대방의 고충과 고민도 알게 돼 대화가 쉬워질 법도 한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대화를 통해 서로 조정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정치 아닌가요? 이게 존중되지 않는 국회라면 국회라고 할 수 없지요.” 최 총장은 이런 정치풍토는 25년간 지속돼 온 대통령 단임제의 적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단임제가 합법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데는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정치불안이라는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빠른 시일 안에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개헌하고 국회의원 선거구도 중선거구제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털어놓는 비화 한 가지.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위한 여야 8인 정치회담에서 그는 대통령 단임제를 임기 5년의 중임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여야 모두로부터 거부당했다. 최 총장은 “당시에 대통령을 직선할 경우 꼭 이긴다는 확신이 여야 모두에게 없었어요.”라고 전했다. 그는 정부형태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대통령 중심제가 옳으며, 늦어도 내년 상반기부터는 개헌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관계 서둘지 말고 차분히 분위기 조성 통일부총리를 지낸 뒤 1997년 ‘통일로, 막히면 돌아가자’라는 저서를 펴낸 최 총장에게 경색된 남북관계의 해법을 물었다. 그는 당장에 묘수는 없다고 했다. 노무현 정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남발한 부도수표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이명박 정부가 죽을 맛인 것 같은데, 우선은 서둘지 말고 꾸준히 대화의 문을 두들기며 분위기를 조성해 가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대중(DJ)·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최 총장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될 교섭 상대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나이브(순진)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햇볕정책이라는 말을 김대중 대통령보다 제가 먼저 저서 ‘통일로, 막히면 돌아가자’에서 제시한 바 있어요. 그러기에 당초 6·15 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때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햇볕과 함께 동시에 해결해야 할 핵문제 등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어 경악했어요.” DJ가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 통일고문회의를 열어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최 총장은 왜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 없었느냐고 따졌다. DJ는 공동성명에는 언급 되지 않았으나 문서로 써서 줬다고 대답했지만, 그런 문서는 없었다. 최 총장은 “엄청난 현금을 김정일에게 갖다 주고 천문학적인 경제지원을 하는 등 따뜻한 햇볕을 계속 쏟아 비췄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많은 돈으로 북이 협박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핵무기 개발을 하는 데 도와준 꼴밖에 안 되고 말았어요.”라고 비판했다. ■“권력무상에 가족 그리워 정치 버렸다” 최영철 서경대 총장이 1993년 통일부총리를 끝으로 사실상 15년 동안의 긴 은둔생활에 들어간 이유는 뭘까. 이런 궁금증을 에둘러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자 그는 “유유자적했다.”고 말했다. 그가 은둔생활을 결심한 이유는 세 가지. 첫째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패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16년 동안 선거구에 쏟아부었던 애정과 정성이, 하루아침에 외면당한 데 대한 충격이 너무 컸고 이제는 물러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둘째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23년의 공직생활(국회의원 16년·장관 5년·공무원 2년) 동안 매일 전투하듯 살았다. 자식들이 어느 학교, 무슨 과엘 가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고 일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앞으로는 가족에 봉사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은둔생활의 절반을 자녀들이 유학하고 있던 미국에서 함께 지냈다고 한다. ‘2등으로 만족하자.’는 그의 좌우명이 세번째 이유다. 국회부의장에 부총리에 3개 부처 장관까지 했으면 됐지,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호남의 인재 최영철’에게 정치권의 유혹이 없었을 리가 없다. 동향(목포) 출신의 김대중(DJ) 대통령이 집권하자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는 정중히 사절했다. “DJ와 제 선고(先考)는 사업을 함께 한 적도 있는 사이고 DJ의 막내동생이 저와 초등학교 같은 반이어서 어릴 때부터 내왕이 잦았던 사이예요. 함께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타진해 왔을 땐 참 고마웠지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그리 가는 것이 그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최 총장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웃해 근 40년을 연희동에 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2007년 12월. 노 전 대통령은 뇌의 운동신경에 이상이 있어 거동이 어렵고 사람은 알아보지만 말이 어눌한 상태라 방문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심장 관상동맥에 이상이 있어 작년 말에 조형시술을 했지만, 함께 골프를 칠 때면 드라이브 거리가 최 총장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갈 정도로 건강하다고 전했다. 최 총장은 정정했다. 20년이 훨씬 넘은 옛 얘기를 하면서도 사람 이름과 직책을 정확하게 들면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건강의 비결은 주말에 가끔 치는 골프와 주중에 서경대 뒤 북한산 정릉 언덕을 산책하는 것. 30대의 나이에 언론사 정치부장, 38세부터 시작한 4선 국회의원, 49세의 국회부의장, 3개 부처 장관 가운데 어느 자리가 가장 좋았었느냐고 물었다. 최 총장은 서슴지 않고 “대학 총장이 제일 좋아요. 이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밝고 발랄한 젊은이들 속에서 함께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라며 웃었다. 목포대와 서경대에서 북한학을 2년 정도 강의했던 그가 어떻게 총장이 됐을까. 최 총장은 “김성민 서경대 이사장과의 친분관계에서 비롯됐지요.”라고 했다. 서경대는 옛 국제대학. 이기붕 전 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씨가 1947년 설립한 한국대학이 국제대학으로 바뀌었다가 1988년 김성민 이사장이 인수해 정릉에 자리잡고 서경대로 개명한, 62년 전통의 종합대학교다. 대일외고, 대일고교와 대일관광디자인고가 모두 같은 뿌리다. ■ 최영철 서경대 총장·前국회부의장 프로필 ▲전남 목포 ▲목포고·서울대 정치학과 ▲동아일보 정치부장 ▲9·10·11·12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체신부 장관 ▲노동부 장관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목포해양대 객원교수 ▲서경대 석좌교수 ▲서경대 총장
  • 소주 19도 깨졌다

    소주 19도 깨졌다

    ㈜진로가 18.5도의 저도주 소주를 내놓으면서 소주업계의 적벽대전, ‘저도주 싸움’에 불을 댕겼다. 진로는 오는 23일부터 해양심층수로 만든 18.5도의 저도수 소주 ‘진로 제이’를 출시한다고 19일 밝혔다. 진로 제이는 지난해 9월 진로가 내놓은 소주 ‘J’(19.5도)의 알코올 도수를 1도 낮춘 리뉴얼 제품이다. 최근 라이벌 업체인 두산주류가 롯데칠성측에 인수되면서 소주업계의 판도 변화가 점쳐지는 가운데 진로측이 저도주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진로측은 “두산주류를 인수한 롯데가 오는 5~6월 저도수 소주를 개발, 출시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안다.”면서 “진로 J는 롯데의 저도수 소주를 겨냥,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롯데측은 “저도수 소주를 개발할 계획이 전혀 없다.”면서 “진로측이 지난해 내놓은 ‘J’가 시장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자 도수를 낮추고 이름을 바꿔 내놓는 제품일 뿐 저도주 시장의 판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주 시장의 저도주 경쟁은 2006년 2월 두산주류가 19.5도의 ‘처음처럼’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불 붙기 시작했다. 1965년 30도의 톡 쏘는 맛으로 출발한 소주는 이후 1974년 25도로 낮아진 뒤로 1998년까지 25년간 25도의 도수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전통곡주들이 순한 제품들로 잇달아 상품화되면서 소주와 순한 곡주의 경쟁이 펼쳐졌다. 결국 1998년 진로가 23도의 참이슬을 출시한 뒤 도수를 21도까지 떨어뜨리자 곧바로 두산이 20도의 처음처럼을 내놓으면서 순식간에 ‘마(魔)의 25도’가 무너졌다. 두산이 처음처럼을 내세워 역공에 나서자 진로는 참이슬 도수를 0.9도 떨어뜨린 뒤 다시 이보다 0.3도 낮춘 19.8도의 참이슬 후레시를 내놓으며 반격을 펼쳤다. 이후 저도주 시장의 경쟁은 매년 도수를 1도씩 낮춰가면서 애주가들의 입맛을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전개했다. 중원의 판도 변화에 맞춰 금복주와 무학, 대선 등 지역 소주업체들이 2006년부터 16.9~17.9도의 저도수 소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저도수 소주들은 시장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자연 퇴출되거나 일부 명맥만 유지하는 형태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진로측은 진로 제이 출시를 통해 2~3년 전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이른바 ‘소주 폭탄’ 시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도주를 선호하는 신세대의 취향을 감안할 때 맥주에 양주 대신 소주를 섞어 마시는 소주 폭탄 시장이 더욱 밝다고 판단했다. 롯데측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소주폭탄은 21세기의 최대 발명품으로 불릴 정도로 시장에서 폭발적 호응을 얻는 추세”라면서 “한동안 팽창을 거듭해 온 양주 시장은 최근의 음주 문화 변화에 따라 당분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WBC] ‘일본전’ 꼭 이기는 게 최선일까 ‘장자연 리스트’에 언론사 대표·금융계 회장 포함 이라크 침공 6주년…마실 물도 없는 바그다드 “대통령, 자기 지지자만이라도 계속 박수치게 해야” 춘정에 취한 얼룩말 밤낮없이 ‘러브모드’
  • 미네르바 옥중보고서…‘유동성 함정’이 걱정

    ‘미네르바’가 옥중에서 다시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서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활약하다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돼 17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는 박대성(31) 씨가 변호인을 통해 한국 경제를 전망하는 19쪽 짜리 글을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인터넷한겨레가 11일 보도했다.  박씨는 최근 며칠치 신문과 하루 1시간씩만 시청할 수 있는 텔레비전 방송을 참 고해 공책에 이 글을 썼으며 변호인이 타이핑해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한국경제 진단 글이 공개된 것은 지난 1월 검찰에 검거된 직후에 이어 두 번째.  박씨는 글에서 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전지구적 달러 강세 속에서 환율불안 피해를 계속 입을 가능성이 높고,기준금리를 낮춰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의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그는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구매 여력은 과연 정부가 어떤 식으로 상쇄시켜 주느냐에 따라 경기 회복속도가 2009년 연내일지 2011년으로 대폭 장기침체로 빠지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재정지출을 통한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는 2009년 3/4분기와 맞물려 국내 경기 리싸이클의 회복 속도가 결정된다.”며 “그에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경기방어전략이 달라진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박씨는 이 글과 함께 자신에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1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 신청서를 함께 제출했다.  다음은 ‘보고서’란 제목으로 법원에 제출된 글의 전문.    미네르바 ‘옥중 보고서’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걸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1997년 제 1차 IMF 사태가 왜 발생하게 되었는가 하는데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지금의 한국 경제 상황이라는 것은 1997년 제 1차 IMF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IMF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그 후의 한국에서의 IMF사태, 그리고 현재 동유럽 사태에 대한 상호 연관성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 IMF 탄생 배경  1997년 하반기 한국경제는 IMF 사태라는 특수한 경제 위기 상황을 겪게 된다. 그래서 한국 국내에서는 IMF사태라는 것이 일종의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상황의 뿌리와 그 근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IMF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약간 진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때는 1929년 미국 대공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에는 미국과 유럽간의 통제 받지 않는 무제한적인 자본의 상호 이동이 가능하였다. 그 당시에는 이런 상호 자본 이동에 제한이 없을 때에만 비로소 그에 따른 시장이윤 창출이 극대화 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적 신앙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브레튼우즈 체제의 모태가 되는 케인즈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초토화 된 유럽에 투하된 자본이 당시 무역 흑자국이던 미국에서 →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유럽에서 → 미국으로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실물경제 재건에 사용되어야 할 자본이 미국시장으로 역류하게 되는데 이를 케인즈는 투기자본이라고 불렀다.    이런 문제점들을 지켜보면서 1944년 미국 뉴햄프셔에서 소위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것이 만들어 지게 된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핵심은 모든 회원국들의 통화는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로 정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막대한 유동성 자본에 대한 족쇄로 제약과 통제가 따랐지만, 이것은 자본왕래에 따른 이윤 창출의 제한이 엄청난 성장률을 보이는 국제 상품 무역으로 보완이 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로 인하여 파생된 보완장치 성격의 기관이 IMF 국제통화기금이라는 것이다. 즉 케인스가 유도하고자 하였던 국제 자본 유동성에 따른 폐해를 고정 환율의 안정적인 통화시스템 하에서 상품교역으로 보완하고, 이 과정에서 IMF(국제통화기금)는 대규모 무역적자와 국제 수지적자를 겪는 나라에 다시 신용대출을 해 줌으로써 무역 당사자간 국제 무역 수지의 불균형 밸런스를 조정하는 완충기구로써 만들어진 기구였다.    이로써 이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25년간 G7내의 주요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 ~ 4%대를 육박하고 경제 규모는 3배 이상 확장하게 된다.    그래서 1953년 전후 한국경제가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파기 시점까지 폭발적인 수출 신장세와 고도의 경제 성장률을 구가할 수 있었던 뿌리가 시스템적 관점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로 인한 유동성 자본 규제에 따른 상품교역의 보완이라는 측면이 적용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GATT체제 하에서 이른바 개도국 특권에 따라서 한국, 대만과 같은 나라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구가하게 되는데, 이는 1995년 WTO 체제 이후 그 성격을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 모델에 기반한 아시아적 모델을 가리키는 말로 재포장되어 불리게 된다.    ▶ 체제의 붕괴  1969년 베트남 전쟁의 발발로 인한 막대한 전비지출의 필요성으로 미국 중앙은행은 결국 전비 지출을 위해서 대대적인 발권력을 동원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잉 통화 유동성으로 미국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킴과 동시에 달러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은행은 유럽 내 주요 기업에 싼 이자로 달러를 빌려주게 되었고, 기업은 고정환율로 달러 → 마르크를 교환했다. 그 결과 독일의 마르크, 프랑을 비롯한 유럽 내 주요국 통화는 달러 대비 통화 절상 압력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 당시 서독 연방은행은 계속 마르크로 달러를 사들여 달러 대비 마르크화의 통화 절상 압력을 상쇄시키려고 했으나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압박요인과 재정적 지원을 더 이상 충당하기 불가능해지게 되는 단계가 오자,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는 공식 파기 된다.    그 당시 서독 중앙은행 차원에서는 인플레이션 상승 부담 때문에도 파기가 불가피했다. 전통적으로 독일은 1920년에 살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피해를 당한 당사국이기 때문에 서독 중앙은행 차원에서의 제1차 정책목표가 물가 안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위기의 시작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그 전까지 제한을 받던 유동성 자본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된다. 기존 금융권 내에 있던 은행, 보험, 펀드를 포함한 최일선 기업들까지 총망라한 모든 경제 주체들에 대한 외환, 채권지대의 제약이 전면 해제되었다.    그로인하여 1998년 기준으로 채권거래는 1973년 대비 230배가 증가한 20조~24조 달러, 외환거래는 1일 기준 1조 2천억 달러의 유동성 자본으로, 금융산업 분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하에 1973년 ~ 1982년 사이에 총 1조 달러를 넘는 해외 대출이 발생하게 된다. 이중 전체 포지션의 50%가 남미로 가게 되는데 이를 기반으로 산업화 플랜을 단행하게 된다.    하지만 1982년 문제가 터지게 되는데 당시 1982년 미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20% 이상 올리게 된다. 그 이유는 제 ‘2차 오일쇼크’의 여파에 따른 비용증가, 인플레이션을 상쇄시키기 위한 조치로 이 조치로 인하여 해외 대출이 투입된 남미를 포함한 이머징마켓은 일대 타격을 받고 경기 후퇴를 하게 된다.    이러한 고이자율 정책은 주요 달러 채무국들의 이자비용을 3배 이상 증가 시켰는데 미국의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주요 유동성 화폐 자산이 투입된 곳은 기존 통화 포지션이 달러로 교체된다.    그 결과 1980년대 초반 미국 달러 통화는 G7내 주요국 통화대비 평균 35% 절상된다. 동일기간 멕시코 폐소화는 반년만에 -60% 폭락하게 된다.    결국 남미 부채위기의 핵심 원인은 80년대 초반 미국 통화정책의 고이자율로 3배 이상 커진 이자 부담과 달러포지션 변경에 따른 자본의 해외 도피 → 그로 인한 미국 통화의 급격한 환율 인하에 기인한다.    1982년 당시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미 재무부는 미국 국내은행의 남미 크레딧 라인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한 멕시코 사태 수습을 위한 즉각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산 집행에는 반드시 미 의회의 사전승인 없이는 불가능해지자 IMF를 간접 이용하여 브리지론(Bridge Loan)이라는 IMF 고유기능을 IMF 가맹국이 아닌 범위로 확장을 통해 지원 프로그램을 하게 된 배경이 이것이다.    원래 IMF의 기존 역할은 창설시 가맹국에 공여하는 브리지론 (Bridge Loan)을 중재하는 것이었으나, 고정 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바뀌면서 브리지론 중재 필요성은 상실 되었다. 그 후 멕시코 사태가 터지면서 브리지론의 필요성이 미국 FRB와 미 재무부의 필요에 따라 상황에 맞게 용도가 리모델링이 되어 변경된 것이다.    문제는 멕시코에 IMF 지원을 해주면서다. 멕시코의 자본시장 국유화, 국영기업 민영화, 국내시장 개방 → 국가 지출의 극단적인 삭감 → 변동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달러보다 폐소화에 투자하는 것이 이익이 될 정도로 폐소화의 이자율 상승, 결국 이러한 극단적인 이자율 상승은 국내 산업 붕괴와 은행 시스템 붕괴를 동반하면서 독자적인 자본시장 형성이 불가능해졌고, 고이자율에 따른 → 해외자본유입 = 해외 자본 종속으로, 결론적으로 경제 발전은 정체되고 부채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많은 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 IMF 지원 프로그램을 받게 되는데 미국은 IMF를 이용하여 자본의 접근 통로를 장악하고 IMF의 영향력 확대를 노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사회 간접 자본(SOC) 건설을 위해서는 해외 차관이나 개발원조금은 IMF 조건과 연계시키면서 승인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본 통제력으로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IMF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IMF 구제 금융을 통한 IMF 체제에 있을 경우 해외자본을 유지하려면 차관 제공자는 상대국가와의 계약체결에 앞서서 반드시 IMF나 세계은행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부 차관』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2008년 하반기 IMF 지원을 한국 먼저 받으라는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 국채 보유국의 달러 국채 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걸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FRB 달러 스왑 국가가 아닌 나라도 임시 달러 스왑 지정국으로 지정해서 각 보유 국가의 달러 국채 보유 물량 비용 대비로 인출을 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100억, 500억 달러도 아닌 300억 달러인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인 것이다.    ▶ 아시아 위기  한국이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이머징마켓들은 높은 수입 관세를 통해 국낸 산업을 보호 육성하고 외국과의 자본지대는 무역을 위한 결제에만 국한 시켰다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 조달한 차관을 배당하고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폭발적인 성장률을 구가하게 되었다.    1994년 한국은 OECD 가입을 통해서 유럽, 일본, 북미 시장에 쉽게 진입을 하려 했으나 일반 무역 통상 부분 이외에 금융시장 부분은 정부의 통제 하에 두려고 했다.    이는 국내 저축된 재원만으로도 산업개발을 위한 재원 도달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그 당시 대통령 본인이 OECD 가입을 기정사실처럼 떠들고 다녔다.    그 후에는 OECD내에서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금융시장 개방 부분의 문제는 미국의 의도대로 해외 차관 수용과 유가증권의 거래 등에 대한 국가 통제는 붕괴된다.    그로 인하여 1994년 3/4분기 이후부터 3개월 만기 달러차관 도입을 허용하게 되는데 한국의 높은 경제 성장률상 그로인해 수반되는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에 대해서 한국의 중앙은행은 통화 긴축 정책을 유지해서 인플레이션을 통제 하고자 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게 된다. 높은 이자율에 도달되고 통제 받던 원화 크레딧보다 그 당시 달러 크레딧이 역으로 더 싸지면서 (조달비용 = 원화 크레딧>달러 크레딧)인 상황에서 그 당시 유럽에서의 조달비용에 0.3% ~ 0.5%미만의 가산 금리로 계속 달러 크레딧을 기업에 제공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이 단기 차관을 기업들은 대규모 시설 투자가 동반되는 5년 ~ 10년 만기의 장기리스 산업에 단기차입금으로 동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1997년까지는 국내에 있는 단기 달러 차입금은 매달 규칙적으로 롤오버가 되면서 만기 연장도래가 있었고 이미 국내에 충분히 많은 달러가 돌고 있었던 상황에서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 때 태국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국,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이머징마켓들은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 확보하기 위해서 태국의 바트화 공격으로 인한 환율 폭락 즉시 주변국가의 자국 통화 절하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달러 채무에 대한 금융비용이 극단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한국을 포함한 신흥 국가들이 달러 크레딧 가운데 60%정도가 단기 채무였다. 이 경우 크레딧 라인(신용한도)철회시 달러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하여 정부 차원에서 IMF에서 달러 크레딧을 조달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IMF는 82년 멕시코 사태의 경우와 똑같은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그 중 하나가 고이자율 정책이었다. 결국 각국 중앙은행의 국내 이자율은 20% 이상 유지되었다.    이것은 IMF의 의도대로 신규달러 차입을 유도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기업과 은행 파산을 동반하면서 내수 시장 붕괴에 따른 대대적인 경기 침체를 불러오게 된다.    대량해고와 투자 설비, 소비재 판매가 수직하강하게 된다. IMF는 고이자율과 국영기업 민영화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 참여 제한 철폐,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포함한 모든 규제 철폐, 특히 자본투자자들에 대한 규제철폐가 핵심이었다.    이것이 현재 한국 시장이 이머징 마켓 중에서 가장 외국인 자본거래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다.    문제는 대외 시장 변수에 국내 경제가 연동된다는 것이다. 태국과 멕시코,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IMF지원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노출되던 상황에서 그 의심스런 처방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즉 한마디로 알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는 모두 알고 있는 IMF프로그램이라 불리는 고통스러운 진행과정이 진행되게 된다. 한국 국내의 만기 달러 차관의 상환은 미국 FRB와 미재무부의 중재를 통해서 3년 이상 상환이 연장되게 된다.    그 당시 IMF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에 지원프로그램이 발표될 당시 한국의 경우는 510억 달러의 크레딧 원조를 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이 금액을 모두 지원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은 표면상의 발표수치이고 일본+독일 중앙은행이 그 후 즉시 한국에 100억 달러의 유동성 자금을 공급하고 미국은 만기연장만 해 주면 자동으로 끝날 일이었다. 극히 간단한 일이였다.    그 후 환율에 따른 수출도 들어온 달러와 외국은행들이 신용 대출금 회수를 중단하면서 위기는 종식이 되었다. 이때 채권은행들은 만기 연장된 모든 신용 대출에 대해 국가 보증을 요구하면서 추가 이자 부담요구안이 나오게 된다.    3년 기한의 상환 연장의 경우는 리보 +2.7 ~ 3%가산 금리의 이자 부담을 지게 되면서 저렴하게 차입된 단기 달러 채무가 고금리의 3년 기한 미만으로 롤오버 되면서 연장된다. 이것은 매력적인 장사가 되었다.    그 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가 채무를 갚기 위해서는 달러나 엔화를 계속 차입해 와서 채무를 갚는 길 뿐이었다. 이를 위해서 남은 마지막 수단은 그 동안 수십년 동안 산업화 과정을 통해 조성한 국내 자본재를 해외 기업이나 투자자들한테 파는 길 뿐이었다. 그에 따른 세금 인하를 포함한 모든 특혜조치들이 이루어 졌다.    그로 인하여 산업계와 금융계를 포함한 은행, 보험 쪽을 비롯해서 외국인 투자 제한 철폐를 통한 싼 매물 수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결국 한국 국내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포장되고, 미국 상무부와 월스트리트에서는 10년 동안의 수익을 단 1년 안에 한국에서 뽑았다느니, 아시아 외환위기는 평생 한번 올까 말까한 포트폴리오 투자 기회라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S&P나 무디스나 한국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국가 신용등급에 맞추어 조정을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과거에 학습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IMF사태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정책적 실패로 합리화되고 잊혀 지면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와 똑같거나 유사한 일이 순환 반복이 된다.    결국 1997년 제1차 IMF 사태의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뿌리는 OECD가입 당시부터였다. 한창 민감한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 부분협상을 할 경우 마지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발언으로 OECD가입을 지정 사실화 시키는 바람에 최종 협상은 거기서 끝이 난 것이다. 그 후 과정을 거치면서 IMF단계를 거치게 되고 IMF는 82년 멕시코 사태부터 그 IMF 고유 기능의 변화와 확정을 거치면서 97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전이되면서 유동 자본에 따른 이윤 극대화라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 동유럽 사태의 발생  동유럽에 대해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동유럽의 전략적 중요성은 과거 냉전체체 하에서의 군사적 측면에서의 나토 군사 안보적 측면에서의 대립을 통한 동.서방간의 유럽지역내의 완충지역이라는 성격에서 이제는 석유, 가스송유관의 중간 경유지로써의 경제적 관점으로 그 포커스가 옮겨지게 된다.    현재 유럽 연합내 서유럽에서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가스의 90%가까이 소비가 되는 상황이며 2020년까지 50%이상 증가추세 속에서 유럽연합은 중동지역내의 에너지 의존도 축소와 북해에서 생산되는 원유.가스 생산량의 감소분을 메워줄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러시아다.    에너지 접근권에 대한 전략적 문제에서 동유럽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은 곧바로 서유럽의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속적인 EU 편입노력과 그에 따른 차관제공을 통해 동유럽의 경제적, 전략적 가치는 올라가게 된다.    2006년 현재 러시아는 유럽에서 소비하는 가스의 25%, 2020년까지 70% 가스를 공급해 주는 주요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총 조달 수요의 80% = 러시아 - 우크라이나 - 슬로바키아 - 체코 - EU공급라인(드 루바 라인), 20% = 러시아 - 벨로루시 - 폴란드- EU공급라인으로 통행료를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추가적인 복합적인 요소들과 맞물려 동유럽은 서유럽 자본의 대거 유입으로 연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3/4분기 이후 제 1차 금융위기가 진행이 된다. 2007년 4,010억 달러의 자본유입액이 2008년에 오면서 670억 달러로 축소되면서 유가 폭락이 겹치면서 동유럽 주주의 주요통화 가치는 50% 이상 폭락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일반외환자금으로 대출을 받았던, 가계의 부채로 직결되면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면서 IMF에 헝가리, 우크라이나, 라트비아가 구제 금융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폴란드와 체코가 검토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동유럽에 대출된 1조 5천억 달러가 서유럽 내 주요은행에서 대출이 된 구조가 최대 40배까지의 레버리지(Leverage: 대출금/자본금)를 높여서 대출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대규모 부도 리스크 압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에 대규모 구제자금을 쏟아 부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유로론 내의 독일내의 금융시장 안정화, 은행 국유화가 검토가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 은행의 총 부채 규모는 1조 5천억 달러 이상의 90%가 서유럽과 해외자본으로 구성된 상황에서 달러 대비 유로화 하락 압력은 유럽내 동시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선진국 증시를 거쳐 신흥시장으로 전이된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현재 2008년 9월 기준 한국의 총 외채의 60%가 유럽계 은행 포지션이다. 이 상황에서 동유럽에서 막대한 손실을 볼 경우 한국론이 만기연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추가 가산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대규모 선박 금융 제공을 하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이 자금압박을 받게 되면 자금 압박으로 인한 선박 주문 취소와 대금지급 지연에 따른 만기 환율 하락요인이 발생한다. 또한 동유럽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이 7~8% 내외인 상황에서 수출감소로 이어지는 상황이며 동유럽에 한국직접투자 FDI 비중이 90% 내외인 상황에서 동유럽내의 환율변동에 환차손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CDS 프리미엄의 상승과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단기 채권으로의 집중현상과 국내 미청산 엔케리 청산 압박으로 인한 자본유출로 환율의 추가 상승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달러는 대규모 재정지출을 위해서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찍어 내면 다른 준기축 통화인 엔화나, 유로화, 금 가격에 연동을 하여 달러 약세로 돌아서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정상적인 시장 작동 상황에서만 그렇다.    극히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계의 주요 경제 권역인 미주, 일본, 유럽연합의 통화 경제권에서 한쪽 경제권이 침체기거나 통화 정책 조정으로 통화 약세일 경우는 달러 약세 ↔ 엔화 강세가 성립이 되지만 미국, 일본, 유럽의 주요 경제란이 동시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는 상황에서는 기축 통화인 달러가 안전 자산으로 달러강세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2008년 3/4분기 이후 제1차 금융위기 당시 달러를 찍어 낼 때는 미국 경제에 대비해 일본 경제와 유로론은 상대적으로 경제 펀더맨탈이 견고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달러 발권력 동원에 따른 달러 약세는 당연하였으나, 2009년으로 바뀌면서 유로론의 동유럽 사태와 일본의 경제 성장률 하락과 1조엔에 달하는 무역수지 적자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금과 달러가 안전자산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은 인플레이션 방어성격의 자산이지만 현재 경제 성장률이 3대 경제권의 동시 다발적인 마이너스 성장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이 달러를 찍어내면서 달러 화폐 유동성이 증가함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상쇄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금값이 올라가면서 달러강세가 지속되는 원인 중 하나가 이것이다.    결국 시장불안으로 인하여 안전 자산인 금과 미 국채로 자금 수요가 집중이 되는 상황에서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지속적인 하락세로 돌아서게 된다.    현재의 엔화 변동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1995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995년 당시 엔화는 79엔의 달러 대비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 재무성 차관인 사카키 바라 에이스케는 미국에 가서 미국 달러 국채 매각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하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1달러=85엔대 밑으로 떨어질 경우 일본 은행들은 신용 대출 결손으로 타격을 받는 구조였다.    이 상황에서 시장에 미국 국채 매물이 나올 경우 미국 국채 가격은 떨어지면서 채권가격 하각은 이자율 상승을 동반하게 된다. 그러면 미국 전체 자본 시장의 이자율이 올라가면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일본, 유럽 중앙은행들의 공조하에 대규모의 달러 매입을 통한 환율 조정의 노력으로 1달러 = 100엔이 그해 4/4분기 이후 돌파되었고, 97년 까지 -60% 엔화가 평가 절하 되었다.    이는 2003년으로 넘어가면서 반전하게 된다. 장기간의 무역흑자에 따른 주적으로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2002년 130엔 → 2004년105엔 대로 급상승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35조~40조엔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달러 매수를 하여 엔화를 평가절하시킨다. 이때 매수한 달러가 미국 국채에 그대로 재투자 되었으며 2002년 - 2004년까지 매입한 미국 국채가 3,500억 ~ 4,000억 달러 수준으로 이때부터 일본에서 미국 국채를 사 모은다는 소리가 나오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현재 5,800억 달러 상당의 미 국채 보유량의 상당부분을 사 모은 이유가 이것이다.    현재 80엔대에 육박하는 엔화가 97엔대 후반으로 절하되는 이유중 하나가 일본 경제 자체에도 있지만 현재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물량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간 공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 주무장관인 힐러리가 일본 방문시 이 이야기부터 꺼낸 이유가 이것이다.    이는 향후 두가지 변수에 따라 작용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기간에 맞춘 추가 엔화 평가 절하와 미국 GM-크라이슬러의 자동차 구조조정에 따른 미국 국내 자동차 노조의 압력에 따른 추가 엔화 절하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그래서 티모시 가이트너 미재무장관이 취임전부터 ?강한달러?를 떠들고 다닌 이유가 이것이다. 그것은 1995년 당시 미 재무장관이 로버트 루빈이 취한 액션과 똑같은 것이다. 강한 달러의 달러 강세를 만드는 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봐야한다.    국제공조와 통제가 가능한 일본과는 다르게 달러 약세와 그로인한 달러대비 자산손실이라는 측면이 중국에서 심각하게 제기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총외환보유고는 1조 9천억 달러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닥치는대로 달러자산에서 실물자산으로 옮기는 이른바 자원외교도로 불리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자원확보 측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천연자원을 싼 값에 확보하고 글로벌경기회복에 따른 차익기대측면도 있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미 부채 등 달러자산에 편중된 외환보유고 투자의 다변화가 핵심이다.    현재의 천문학적인 미 국채발행의 압력으로 미 국채수익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달러약세로 달러표시 자산의 폭락은 중국입장에서는 재앙이다. 그래서 최소한 2009년도에 관해서는 자의든 타의든 달러강세기조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배경을 깔고 단기 달러강세가 기정사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도전으로 작용하게 된다. 달러강세에 따른 국제원자재가격의 하향안정세는 단기적으로는 물가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요인을 덜어준다. 그래서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2%대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던 핵심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하지만 달러강세 기조 속에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국채발행과 중국, 일본의 자국경기부양을 위한 추가 국채발행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 이미 이머징 마켓에 외환달러자금유동성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80%에 육박하는 무역의존도와 IMF로 인한 높은 대외 개방도로 인하여 외국인 투자감소와 자금이탈과 무역금융 감소에 따른 수출부진과 무역위축과 그에 따른 환율불안 등의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로 금리를 내려서 유동성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생각이다.    이 경우는 CP 매입을 통한 개입이나 회사채매입을 통해서 개입을 하는 선에서 조정이 되어야지, 이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하는 환율상승의 추가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 지금 상황은 통화정책으로는 소비와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무리인 부분적으로 유동성 함정의 리스크 징후들이 보이기 때이다.    금리를 내리면서 CP금리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우량회사채를 제외한 회사채 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와 더불어 금리인하에 따른 생산과 투자위축은 금리정책의 한계가 왔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일반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하게 되는데 국채를 발행해서 재원을 조달할 경우 금리를 내려 원화유동성을 늘린 화폐 유통량이 국채발행을 통해서 유동성이 다시 역으로 흡수가 돼버린다.    그러면 회사채발행에 따른 기업운영자금 조달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부가 대규모 국채들 발행하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회사채 불량은 시장에서 소화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래서 중앙은행의 국채직접매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부차적인 최소한 부작용을 최소화시켜준다.    우량회사채의 발행물량은 시장에서 소화가 되지만 비유량회사채의 경우는 매수세가 몰리지 않으면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을 통해서 자금조달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율급등에 따른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요구와 발주취소, 납품업체변경 등을 통한 피해 부분에 대해서도 소규모기업은 열외대상이며 고용보험료 연체에 따른 소액압류가 있어도 사실상 대출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결국 구조조정 지연을 통해서 2008넌 3/4분기 ~ 4/4분기에 걸린 3개월 ~ 6개월의 시간 소요를 통해서 선제대응 타이밍이 늦어짐에 따라 은행 자체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대손충당금과 경기하강에 따른 기업, 개인연체율 상승에 따른 BIS비율하락에 대비한 자본적립을 통해 자금시장이 사실상 경색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금리를 추가로 낮추어도 자금이 돌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빠질 공간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대외적으로는 미 국채발행과 그로 인한 미국경제 경기부양을 통한 달러강세는 최소 2009년 하반기 ~ 2010년 1/4분기까지는 재원도달을 마련하기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며 단기적으로 이와 연등하여 동유럽 리스크로 인한 달러 조달 금리 상승압력과 환율상승압력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금리는 동결, 금리 추가 하락시 환율상승압박요인에 따른 자산포트폴리오의 부분적 변경으로 방어하는 전략이 유효하며 현재 한국 경제는 미국,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 방어성격의 통화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이점은 각별히 주의해야한다.    미국, 일본, 중국은 디플레이션 초기 대응전략으로 기조가 가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디플레이션이 아닌 디스인플레이션이라는 상황적 인식하에 경기하강과 -2% ~ -4%이하의 성장률을 겪는 이색적인 체험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구매 여력은 과연 정부가 어떤 식으로 상쇄시켜 주느냐에 따라 경기 회복속도가 2009년 연내일지 2011년으로 대폭장기침체로 빠지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재정지출을 통한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는 2009년 3/4분기와 맞물려 국내 경기 리싸이클의 회복 속도가 결정된다. 그에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경기방어전략이 달라진다.    중국의 경우도 경기부양자금으로 800조원이 풀렸다. 그로 인하여 중국증시가 올라가는 이른 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유동성장세에 따른 증시부양이라는 착시현상이 벌어졌다. 중국 역시 수출이 총 GDP의 40%를 차지하고 상당기업의 60%가 영업이익 적자를 통한 적자기업이었음에도 2009년 1월 기준 수출(전년대비): -17%, 수입: -43%로 수입감소량 ≫ 수출감소량을 능가하면서 대규모 무역흑자구조가 나는 것은 한국과 동일하다. 이는 결국 수입감소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소비가 급감하면서 내수가 망가지고 있다는 징후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생존플랜이 나오면서 개개인이 준비를 해 나갈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대학들 ‘名博 남발’

    대학들 ‘名博 남발’

    국내 대학들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가 남발되고 있다. 대학들이 대상자를 가려내는 엄격한 기준이나 잣대를 마련하지 않고, 특정인과의 이해관계나 인맥 넓히기 차원에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실세 정치인들이 학위를 많이 받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7조에는 ‘명예 박사학위는 학술 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했거나, 인류문화 향상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규정돼 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명예박사 학위의 품격이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좀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권 바뀔 때마다 권력에 ‘줄대기’ 서울신문이 교육과학기술부, 민주당 김영진 의원, 서울지역 주요 대학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해방 이후인 1948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국내 15개 대학이 수여한 명예박사들은 모두 1778명으로 집계됐다. 경희대가 215명으로 가장 많았고 한양대(201명), 중앙대(180), 연세대(160명), 고려대(142명), 서울대(106명) 등이었다. 지난 2004년까지 전국 108개교에서 학위를 받은 1421명에 대해 분석해 보면 정·관계 유력 인사가 1155명으로 전체의 81.3%를 차지했다. 집계결과로만 보면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 학위가 남발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서울 사립대학의 한 관계자는 “각 단과대에서 추천을 올리면 추천위에서 심사해 결정하는 구조라 적격자를 걸러낼 장치가 미비하다.”고 털어놨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의 측근이나 요직 인사들에게 학위가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엔 한나라당 인사들에게 ‘명박’ 학위가 줄을 잇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부경대에서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경률 사무총장도 지난달 25일 같은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고 강재섭 전 대표 역시 지난달 4일 전북대에서 명예 수의학박사가 됐다.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전남대에서 명예철학박사를 수여하기로 했지만, 학내외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6월 원광대 명예정치학학위를 비롯해 취임 이후 학위를 3개나 받았다. 종전에는 하나도 없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9년 이희호 여사는 동아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김홍일 전 의원은 99년부터 2년 사이 배재대와 목포대에서 2개의 학위를 받았다. 문민정부 땐 강경식·박관용· 최형우 의원 등 정권 측근 인사들이 잇따라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노진철 상임공동의장은 “‘명박’ 학위를 정치인에게 수여할 경우 일종의 러브콜이나 마찬가지다. 대학이 사회비판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최소한 학문적 관련성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대 91%가 외국인 서울대의 경우 유독 외국인에 대한 수여가 많았다. 1948년 맥아더 장군이 1호로 선정된 이래 지금까지 학위를 받은 106명 가운데 한국인은 9명에 불과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이태규 당시 유타대 교수(64년) 이후 25년간 수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99년에야 고 김수환 추기경이 학위를 받았고 2000년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과 소설가 박완서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름을 올렸다. 반면 미국인은 전체의 40%에 이르는 42명이나 됐다. 독일 9명, 타이완 6명, 태국 4명 등이다. 상당수 지방 사립대는 정치권 인사들을 특히 선호했다. ●해외대학 학문적 성과 없으면 불허 해외 대학들은 엄격한 기준을 세워 학위를 주고 있다. 미국 MIT, 코넬, 버지니아대 등은 분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명예박사를 아예 수여하지 않는다. 조지타운대는 단과대 등의 후보 추천을 받으면 교수협의회, 각 대학원장협의회 심의를 거쳐 부학장 동의, 학장 승인 등 4단계를 거쳐야 수여가 가능토록 명문화돼 있다. 프랑스는 학문적 성과가 선행되지 않으면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이종구 교수는 국내 실태에 대해 “우리 사회는 박사 프리미엄이 너무 크다.”고 지적하면서 “학위를 주고 그린벨트 하나 푸는 식으로 대학 행정에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학위를 주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에서는 이같은 명예박사를 영광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방 사립대의 경우 재단 전입금이 거의 없어 돈벌이를 위해 정·재계 실력자들에게 학위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회 기여도나 학문 성취도 등 엄격하고 까다로운 선발 기준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이재연 오달란기자 oscal@seoul.co.kr
  • ‘울버린’ 휴 잭맨은 러셀 크로우의 대타?

    ‘울버린’ 휴 잭맨은 러셀 크로우의 대타?

    “엑스맨의 팬인 당신은 ‘울버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미국 포털사이트 ‘야후’의 영화섹션 ‘야후 무비’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 개봉을 앞두고 이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엑스맨에 대한 10가지 진실’이라는 특집을 마련했다. 사이트는 “손등에서 나오는 갈고리, 용맹함, 구레나룻 등은 울버린의 일부”라며 많이 알려지지 않은 ‘10가지 진실’을 소개했다. 국내에 이미 알려진 이번 영화의 캐스팅 배우들을 소개한 세 가지 항목 외의 일곱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울버린은 만화 ‘엑스맨’의 ‘원조 멤버’가 아니다 1960년대 마블코믹스 만화 엑스맨의 오리지널 라인업에는 울버린이 없다. 울버린은 1968년부터 ‘헐크’ 후속으로 제작된 ‘인크레더블 헐크’의 악역으로 처음 등장한 뒤 1975년 다시 시작한 엑스맨 시리즈에 합류했다. 2. 울버린의 갈고리는 장갑에 장착된 무기로 구상됐다 공동제작자 렌 웨인이 처음 구상했던 울버린의 캐릭터는 늑대인간이 아닌 작은 곰과 비슷한 족제비과 동물 ‘울버린’을 기초로 했다. 그의 무기인 갈고리 역시 손등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장갑에서 펼쳐지는 방식이었다. 그의 이같은 아이디어는 작가 크리스 클레어몬트가 합류하면서 현재와 같은 캐릭터로 전면 수정됐다. 3. 엑스맨의 주인공은 울버린이 아니었다 처음 울버린은 조연 캐릭터로 등장했다. 엑스맨의 스토리는 팀의 리더인 ‘사이클롭스’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당시 잡지 팬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만화 캐릭터로 선정될 만큼 울버린의 인기가 높아지자 그의 개인 스토리가 기획됐다. 4.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2001년 출간된 만화의 연장 마블코믹스는 로건(울버린)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캐릭터 기획 이후 25년간 숨겨오다가 지난 2001년 ‘Origin’이라는 시리즈로 다뤘다. 이 시리즈에서 로건은 1800년대 캐나다 출생으로, 가족의 비극을 경험한 이후 몸에서 뼈가 튀어나오는 능력을 발견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5. 울버린 배역은 당초 휴 잭맨이 아니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처음 울버린 역할로 염두한 사람은 러셀 크로우였다. 그러나 러셀 크로우가 감독의 생각보다 높은 출연료를 요구해 섭외에 실패했던 것. 다음으로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 더그레이 스콧에게 제안했으나 당시 ‘미션 임파서블2’의 촬영이 길어지면서 취소됐다. 캐스팅에 난항을 겪으면서 최종 섭외된 휴 잭맨은 결국 영화 엑스맨 첫편 촬영이 시작한지 2주가 지나서야 합류했다. 6. 엑스맨 영화 한편 촬영을 위해 필요한 울버린의 갈고리는? 엑스맨 첫편 제작시 울버린의 무기인 갈고리는 총 700쌍이 제작됐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금속 제작분, 일반 촬영에서는 플라스틱 제작분, 스턴트 장면에서는 고무 제작분이 사용됐다. 휴 잭맨의 손에 딱 맞는 크기와 전문 스턴트맨들에게 맞춘 크기가 각각 따로 제작됐으며 튀어나오는 장면을 위해 모형 팔에 맞춘 갈고리도 별도로 제작됐다. 7. 엑스맨 영화시대, 이제는 원작만화를 잊어야 할 때 시간 순으로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이 원작 오리지널 캐릭터들의 마지막 영화였다. 그러나 엑스맨 영화는 계속 준비되고 있다. 개봉을 앞둔 ‘울버린’에 이어 악역 ‘마그네토’의 배경을 다루는 영화가 준비되고 있으며 돌연변이 학교의 십대 학생들을 다룬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X-Men: First Class)도 집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드라마 ‘가십 걸’의 작가 조쉬 스와츠가 작업중이라고 전해졌다. 사진=20세기 폭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