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3세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77
  • 白凡 재조명:1/金九 연구 어디까지(정직한 역사 되찾기)

    ◎그의 죽음은 ‘불행한 역사’의 시작/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참역사의 불꽃 스러지고/식민유산 씻을 주체 상실 평화통일론 어둠속 유배/국가차원 연구후원 全無 이젠 정당한 평가 필요 백범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다.순수한 열정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독립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섰다.그러나 그는 1949년 6월26일 암살됐다.타계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면 현대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국민의 존경을 받았지만 권력은 그를 왜곡했다.이제 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한다.정직한 역사를 되찾기 위해 金九 선생을 재조명한다. 어둠의 시대에 등불이었던 민족의 큰 스승 백범 金九.그는 일제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밝혀온 민족의 등불이었다.그의 헌신적 민족사랑은 조국독립이라는 찬란한 불빛으로 빛났다.그러나 그 불빛은 정의의 역사로 승화되지 못한 채 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꺼지고 말았다.그의 비극적 죽음은 ‘정의의 역사’가 현실에서 패배한 민족의 비극이다. 그는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됐다.암살범은 일본인이 아닌 그가 사랑했던 같은 민족이었다.그러나 ‘암살범’은 안두희라는 개인이 아니었다.그는 거대한 음모의 한낱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金九 선생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에 희생된 것이다.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안두희의 총성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결국 잘못된 현대사에서 파생된 권력의 폭력은 5·18 광주민주항쟁도 무력으로 진압했다. 金九 선생을 죽인 권력과 친일세력들은 그를 낡은 역사속에 묻어두려했다.그들은 金九 선생의 최고 가치였던 독립과 민족통일론을 매도했다.그의 평화통일론은 냉전체제속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그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현실에서의 ‘패배자’로 왜곡됐다.자유당정권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출판도 금지시켰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과 그이후 全斗煥·盧泰愚 정권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군사정권들은냉전체제의 분단상황에서 백범의 민족통일론을 외면했다”고 창원대학의 都珍淳 교수(한국사)는 말했다. 金九 선생을 죽게한 일그러진 현대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현대사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마땅히 단죄됐어야 할 민족반역자 친일세력들이 해방후에도 부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것이다.백범의 죽음은 일제식민통치의 유산을 청산할 주도세력의 상실을 의미했다.그러한 불행한 역사과정은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며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 굴절된 현대사의 어둡고 긴 그림자 속에서도 백범은 일반대중들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아왔다.SBS방송 조사결과,金九 선생은 광복이후 50년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타났다.그는 고대 신문이 실시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백범은 국민들에게는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도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현대사가 권력지향적 사회였기 때문에 백범연구는 활발할 수 없었다.문민정부에 들어와 그의 연구는좀더 적극화됐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일부 정치세력이 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면서도 그의 기념관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중국에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임시정부 국무회의까지 열렸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도 불투명하다.그가 서울에 설립했던 2개의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들은 흔적조차 없어졌다.백범 푸대접은 정통성이 약한 과거의 권력이 그의 영웅화를 두려워하고 그의 통일론과 분단상황이라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었다.그러나 냉전체제도 무너지고 金九 선생에 각별한 존경과 관심을 갖고 있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都교수는 예상한다. 金九 선생은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한다.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일이다.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백범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그의 열린 민족주의와 삶의 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에도 ‘등불’이 될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 생애 ▲1876년(고종13년) 해주에서 탄생 ▲1893년(18세) 동학에 입도 동학접주가 됨 ▲1896년(21세) 황해도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인 쓰치다 때려 죽임. 해주감옥에 감금됐다 인천으로 이감 ▲1898년(23세) 인천감옥 탈옥.마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됨 ▲1904년(29세) 최준례와 결혼 ▲1909년(34세)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자로 체포됐다 석방 ▲1919년(44세)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망명.임시정부 경무국장 취임 ▲1923년(48세) 임시정부 내무총장 취임 ▲1924년(49세) 부인 최준례 여사 사망 ▲1926년(51세) 임시정부 국무령에 선출 ▲1930년(55세) 이동녕·안창호·조완구·조소앙 등과 한국독립당 조직 ▲1932년(57세) 이봉창 의사의 日王 저격,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지휘.상하이에서 자싱(嘉興)으로 피신 ▲1933년(58세)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훈련반 설치 합의 ▲1935년(60세) 난징(南京)에 학생훈련소 설치 ▲1938년(63세) 호남성 장사로 피신.민족진영3당 통합을 논의하던중 이운환의 저격으로 중상 ▲1939년(64세) 어머니 곽낙원(81세) 여사 사망 ▲1940년(65세)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 ▲1941년(66세)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정.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대일선전포고 ▲1945년(70세) 중국에서 귀국.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 전개 ▲1947년(72세) 제2차 반탁운동 전개.인재 양성을 위한 건국실천원양성소개설 ▲1948년(73세)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발표.남북연석회의 위해 평양방문후 귀국 ▲1949년(74세) 백범학원·창암학원 설립.6월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추서 ▲1969년 남산에 동상 세움(서거 20주년)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cslee@seoul.co.kr
  • 고종즉위 40년(秘錄 南柯夢:10)

    ◎외채위기에도 팔도 名妓·악공불러 “지화자…”/세자탄신과 번갈아 요란한 경축행사/극심한 가뭄에 굶주린 백성 줄 이었지만 덕수궁서 잔치상받은 3천여 내직관료/함포고복 속에 “堯임금 시절보다 좋은 세상” 1902년은 지금의 IMF사태에 버금갈만한 대한제국 위기의 해였다.국가의 연간 총세입이 7백50만원에 지나지 않았지난 대포 몇문 사들이는데 20만원이 나들였다.그러니 외채는 늘어나고 돈값은 날로 폭락해 갔다.전라,경상,충청 등 3남에서 거둬들인 토지세 전액이 일본 외채를 갚는데 들어갔다 할 정도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럴 때 큰 행사날이 돌아왔다.고종 즉위 40주년 경축대회가 그것이다.고종의 나이도 바로 이 해에 50을 맞았다.일찍이 조선왕조로서는 이렇게 경사스런 일이 없었다.거기다 세자의 탄신일까지 겹쳐서 부자간에 번갈아 생일잔치를 벌여야만 했다.먼저 세자(순종)의 탄신일 경축행사 광경을 살펴보자. ○50주년 생일잔치 겸해 “음정월을 지나 중춘(仲春) 2월 9일이 오니 세자(명성황후 소생)의 탄신일이다.많은 영재들을 뽑는과거시험을 치르게 됐으니 이를 경과(慶科)라 했다.그래서 그날 팔도의 유생들이 과거보러 상경을 했는데,황상(皇上) 부자분께서는 친히 창경궁의 춘당대(春塘台)에 납시어 합격자를 가리셨다.그러나지난 갑오년(1894년) 경장(更張) 이후로 모든 과거가 폐지되다 보니 경연(經筵)에서 임금께 강의하던 유학은 낡은 학문이 되어 비웃음받는 처지가 되었다.대신 일본과 태서(泰西=유럽)에서 들어온 신학문이 교과목이 되어 마치 국학처럼 우대를 받았다.이러한 시국을 당하여 아관박대(갓 쓰고띠 두른) 차림을 한 선비들은 적막공산에서 썩어버리고 대신 높은 모자에 단장 짚고 뽐내는 들뜬 놈들이 세상에 가득찼으니 선왕이 남긴 정신문화는 영원히 끊어져 없어지고 시세를 타는 서양 풍조만 날마다 급하게 불어닥쳤다.” 세자도 나이 28세.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모후인 명성황후가 비명에 돌아가신 뒤라 고종은 세자의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치르고 싶어했다.옛날같으면 과거시험을 치러 선비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을 터이지만 개화바람에 폐지돼버렸으니 다만 먹고마시고 춤추는 잔치만 요란하였다. ○“5백칸 마당 장막 치고” “지금 춘궁(春宮·세자)의 탄신일을 맞이하여 다만 기생의 노래와 춤으로 요란할 뿐이다.9일 탄신일을 맞아 상감께서는 궁내부에 분부하시기를 관명전(觀明殿) 앞뜰에 장전(張殿·임금이 앉도록 임시로 꾸민 자리)을 베풀고우구청(雨具廳)으로 이름하라 하셨는데 5백여칸이나 되는 마당에 기름먹인 장막을 치고 그 안에 나무판자를 깔았다.그 위에는 비단 무늬를 그린 담요를 깔았다.한가운데 전등을 매달아놓았는데 큰 전등은 해와 달같이 둥글었고 작은 것은 별과 같이 촘촘히 반짝거렸다.” 세자의 생일찬치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었으나 고종의 즉위 40주년 경축잔치는 어마어마했다.고종이 26대 임금인데 22대 순조부터 내리 4대에 걸쳐 모두가 단명,재위 40년에 향년 50년을 채운 분이 없었다.22대 정조는 재위 24년에 수(壽)는 49세였고,23대 순조는 34년에 45세,24대 헌종은 더욱 짧아 15년에 23세,25대 철종도 14년에 불과 33세였다.따라서 당시의 정부는 고종즉위 40주년 경축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외채 때문에 빛더미에 올라 오늘 내일 하는 지경인데,엄청난 예산을 들여 잔치를 벌이고 외국사신을 초청하고,그 때문에 새로 영빈관을 짓고,광화문 네거리에 비각을 세웠다.광화문 비각에는 이런 글이 새겨있다.‘신민의 간절한 소망에 부응하여 원구(圓丘)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제위에 오른 뒤 천하를 소유할 칭호를 대한이라 하고 연호로 광무라 하였다’. 이 얼마나 좋은 글귀인가.대한이 천하를 소유하고 무(武)에 빛났다 하여연호를 광무라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현실은 글귀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1897년에 조선왕조가 허울좋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겉으로는 면모를 일신한 것처럼 보였으나 6년만인 1902년(광무 6년) 마침내 외채위기를 맞게 되고2년뒤 러일전쟁 발발,그리고 을사조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해마다 대소조(大小朝·고종과 세자) 두분의 탄신일에는 팔도의 명기(名妓)들을 뽑아올려 무대 위에서 노래와 춤을 추는데 이것을 진연이라 불렀다.궁궐 뜰에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화초가 사시장철 봄경치를 방불케 했다.장막 앞에 선 악공과 선녀도 일대의 기관(奇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해 극심한 흉년에다 호열자가 만연하여 모든 행사가 다음해로 연기되었다.잇따른 가뭄과 기근,거기다가 유행병까지 만연하였으니 민심이 흉흉했다.사람들은 모두 정감록에 귀를 기울였다.정감록에는 공공연히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궁궐의 잔치는 성황을 이루었다. ○유행병 만연 인심 흉흉 “이해 7월 25일은 고종황제께서 탄신하신 날이다.함녕전 앞뜰에 또 한번장전을 설치하였는데 한결같이 관명전의 앞뜰에 설치했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기생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악공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기를 한결같이 세자의 탄신때와 같이 하였다.상을 겹겹이 차릴 필요가 없었으나 고기를 산처럼 쌓아놓고 포는 숲처럼 준비하였으며(肉山脯林) 술도 샘처럼 차려 잔치를 즐기니(酒泉需雲) 보통 때의 수라상에 비하면 10배가 넘는 가지수였다.또 상에 진열한 것으로 논하면 주척(周尺)으로 1척 이상 높이 진열하였다.내직 3천명의 관료에게 균일하게 지급하여 주어 함께 먹게 하니 흡사 함께떼지어 강에서 물을 먹는 것과도 같았다.각자가 배를 채우되 한 사람도 모퉁이에 돌아 앉아 탄식하는 자가 없었으니 위대하도다,왕의 덕이여. 옛날 요임금 시절에 한사람의 백성이 굶주리면 임금이 말하기를‘내가 배고픈 것이다’라고 했으니 오늘로 보면 모두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니(含哺鼓腹) 한 사람도 굶주린 자가 없는 것이다.요임금 시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다.” ○서울­옷 전라­음식 사치 3천명의 중앙 공무원들이 덕수궁 뜰에 앉아 잔치상을 받아 먹었으니 나라는 먹고 마시는 가운데 망해가고 있었다.시골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못먹고 굶어죽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었지만 서울의 덕수궁 밖을 보면 일부 부유층이 외제 비단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자고로 서울은 옷사치,전라도는 음식 사치,경상도는 집 사치로 유명했으나 1902년에는 서울의 옷사치를 빼놓고는 먹고 죽을래도 먹을 것이 없고 집을 지을래도 지을 돈이 없었다.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기쁨이 극에 달하면 서러움이 오게 마련이다.돌연 인천 감리 하상기(河相冀)로부터 월미도가 일본인 손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주지육림 속에 빠져 있을때 인천의 월미도가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 ‘45년만에 免役 신고’ 탈북 국군포로 梁珣容씨 증언

    ◎“국군포로 50∼60명 北 생존”/7명 이름 공개… 5명 실종자 명단서 확인/대부분 탄광 배치… 자녀들도 막장 생활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붙잡힌 국군 포로의 대부분이 노령으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고 현재 50∼60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귀환 국군포로 梁珣容씨(72)가 24일 밝혔다. 45년만에 북한을 탈출,지난해 말 귀환한 梁씨는 이 날 육군회관에서 면역(免役)신고를 한 뒤 이같이 말했다. 국방부는 특히 梁씨가 이름을 밝힌 생존 국군포로 7명 가운데 5명이 6·25전쟁 실종자 1만9천여명의 명단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김수동 이차식 임점용 양재구 강성용씨는 실종자 명단에 들어 있어 실제로 생존 국군포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용환기 이영찬씨는 전사자 명단에 올라 있다. 梁씨는 “국군포로들은 56년 6월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면서 대부분 탄광에 배치되고 극소수만 협동농장 등으로 옮겨졌다”며 “당시 아오지 탄광에만 국군포로 5백여명이 있었으며 미군 포로 3명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들은 대부분 탄광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결혼했고 자녀들도 대를 이어 채탄작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梁씨는 “지난 해 9월 국제적십자사 식량 조사단이 함북지역을 방문했을때 노숙자와 부랑아 등에 대한 일제 단속이 실시됐고 일부 주민들은 특정 지역에 격리되거나 외출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북한당국은 95년 8월 노동력 부족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결혼 최저연령을 남자는 25세에서 29세,여자는 23세에서 27세로 상향 조정했으나 먹고살기가 힘들어 주민들 사이에 결혼을 기피하고 이혼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梁씨는 북한을 탈출한 뒤인 지난해 10월 중국에서의 첫 상봉에 이어 이날 본처 朴옥임씨(72)와 재회했다. 朴씨는 일제말 결혼한 남편이 53년 입대해 행방불명된 뒤젖먹이였던 두 딸을 의지해 왔으나 이들마저 병으로 잃고 시동생 집에 얹혀살아왔다고 말했다.
  • 존 애덤스­퀸시 애덤스(미국의 대통령 문화:15)

    ◎2대­6대 유일한 부자 대통령/존­제퍼슨과 독립선언 기초… 당선후 해군부 창설//퀸시­뛰어난 국무장관 꼽혀… 취임뒤 복지정책 주력 【퀸시(미매사추세츠주)=나윤도 특파원】 1825년 3월4일,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의 대통령 취임식장.미국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1825­1829)의 취임선서가 끝나자 군중들은 환호했고 새대통령은 줄곧 뒤에서 지켜보던 백발 노인의 손을 번쩍 치켜들어 답했다.89세의 이 노인은 2대 대통령 존 애덤스(1797­1801) 였다.미역사상 전무후무한 부자 대통령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두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애덤스 가문은 1633년 잉글랜드에서 보스턴 해안에 도착한 이민 후손으로 이들 대통령 이외에도 보스턴 일대에서 과격파 청년단체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계기를 마련한 새뮤얼 애덤스,외교관으로 명성을 떨친 찰스 프란시스 애덤스 등 많은 국가적 인재를 배출,오늘날 케네디가문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부자 모두 하버드대 출시 특히 이들 부자는 모두 하버드대 출신의 변호사로 독립초기 유럽 각국의 외교관을 역임하며 신생 미합중국의 국제적 지지 획득을 위해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기 때문에 건국초 버지니아왕조라 불릴만큼 버지니아주 출신의 위세가 드센 가운데서도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입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존 애덤스는 1735년 보스턴 인근의 브레인트리(오늘날의 퀸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그러나 부모의 높은 교육열로 하버드에 진학할 수 있었으며 23세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고향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당시는 점차 영국의 식민지에 대한 횡포가 높아질때 였고 마침내 1765년 영국의회가 인지조례를 통과시키자 그는 사촌인 새뮤얼과 함께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사용되는 서류,증권 등 모든 문서에 인지를 의무적으로 붙이도록한 이 법은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는 식민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듬해 폐기되고 말았다.애덤스는 이어 보스톤 학살사건,보스톤차 사건 등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매사추세츠 주의원으로 대륙회의에 참가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는 벤자민 프랭클린,토마스 제퍼슨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기초위원으로 활약했고 초대 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 대통령 아래서 8년을 지낸뒤 1797년연방당 출신으로 2대 대통령에 선출됐다.그는 해군부를 창설,해로 안전확보에 노력했고 재임 4년 동안 신생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열강 사이에서 전쟁에 휘말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다.4년후 친구이자 정적인 제퍼슨에게 패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저술에 몰두하며 90세까지 생존,최장수 전직 대통령의 기록을 세웠다. 특히 그는 평생 애증관계로 지낸 친구 제퍼슨과 독립선언 50주년 기념일인 1826년 7월4일 함께 눈을 감음으로써 두 독립영웅의 죽음에 있어 묘한 우연의 일치가 지금까지도 화제로 남아 있다. 존 애덤스가 32세때인 1767년 5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존 퀸시 애덤스 역시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애썼다.아버지와 같은 하버드대 출신으로 같은 나이인 23세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그는 어렸을때부터 대륙회의 대외 협상대표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을 장기간 광범위하게 여행할 기회를 가졌다.이는 그가 국제적 감각을 키우고 많은 건국초기의 지도자들을 만나는데 도움을 주었다. ○3대가 영 대사 역임 기록 27세때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네델란드대사로 임명돼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그는 프러시아,영국대사를 역임했다.후에 남북전쟁때 그의 아들 찰스가 영국대사를 역임함으로써 3대가 같은 지역에 부임하는 기록도 세웠다. 퀸시 애덤스는 매사추세츠 주의원을 거쳐 연방상원의원을 역임했으며 5대대통령 제임스 먼로 하에서 8년간 국무장관을 지냈다.그는 미국에 대한 유럽열강의 간섭 배제를 천명한 먼로선언을 기초하는등 가장 훌륭한 국무장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1825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그는 대통령 선출과정에서 앤드루 잭슨과의 경쟁에서 부정거래 의혹에 휩싸여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국민복지를 위해 국립대학및 천문대신설.도로·수로건설 등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의회 반대에 직면했다. 4년후 잭슨에 패배,단임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는 1년후 다시 자신의 고향에서 연방하원의원으로 재기했다.노예제도 폐지와 남북갈등 해소에 진력하면서 존경받는 하원의원으로서 8선 임기를 수행중 80세의 고령으로 워싱턴 의사당에서 쓰러져 숨을 거뒀다.특히 그가 13세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미독립 전후의 뒷얘기들을 수록한 귀중한 역사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같은 부자 대통령의 탄생 뒤에는 남편과 아들을 모두 대통령으로 만든 애비게일 애덤스 여사의 선각자적인 노력이 전해지고 있다.목사 딸로 신실한 신앙인으로 성장한 그녀는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지않던 당시의 학교제도에 반발,독학으로 신학문을 깨쳐 후에 부통령부인으로 또 퍼스트레이디로서 제도적인 여성권익의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 보스톤 남쪽 10㎞에 위치한 인구 9만의 작은 도시인 퀸시는 ‘대통령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도시 곳곳에 흩어진 애덤스 일가의 유적들은 ‘애덤스 국립사적지’로 지정,국립공원국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켈리 코블 애덤스 사적지 관리담당관/“국립사적지로 지정 보호”/대통령부자 생가·‘올드하우스’로 구분/1870년 지은 대통령도서관 가장 애착 【퀸시(미매사추세츠주)=나윤도 특파원】 애덤스 국립사적지의 캘리 코블 관리담당관은 퀸시 일대에 흩어져 있는 애덤스 가문의 유적들을 국립공원관리국에서 사적지로 지정,보호 관리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발굴작업 등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애덤스 국립사적지는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 ▲존 애덤스의 생가와 존 퀸시 애덤스의 생가,애덤스가의 사저인 ‘올드하우스’등 크게 3부분으로 돼있다.올드하우스는 1788년부터 1927년까지 140년간 애덤스가 4대의 사저로 사용되던 곳으로 많은 역사적 유물들이 보관돼 있다. ­소장 유물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올드하우스 옆에 별채로 지어진 도서관이다.존 퀸시 애덤스의 아들 찰스 프란시스 애덤스가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부친의 책들을 한군데 모아놓기 위해 1870년에 지은 것으로 사실상 최초의 대통령도서관이라 할수 있다.소장 도서는 모두 1만4천권으로 주로 문학과 종교서적이 많으며 14개 언어의 책들이 있어 그의 언어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말해주고 있다.조부 존 애덤스의 책들은 매사추세츠대학에 기증돼 있었다. ­올드하우스의 유래를 설명해달라. ▲존 애덤스가 외교사절로 오래 유럽에 체재하는 동안 부인 애비게일이 구입해서 지은 방6개의 작은 집이었다.존은 이 집을 ‘평화터’(Peacefield)라고 부르며 매우 좋아했다.대통령 퇴임후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후손들에의해 집이 증축돼 오늘날은 방60개의 대저택이 됐다. ­애덤스 부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 조사에 따르면 42명중 존 애덤스는 14위,존 퀸시 애덤스는 18위로 비교적 상위에 랭크돼 있다.
  • 차세대 선두주자 줄리엣 강/슈만 바이올린곡 국내 초연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KBS향과 함께 국내 2대 교향악단인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새해 첫 정기연주회를 갖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한다.11일 하오 7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거품빼기 일환으로 우리 정예연주자 초청을 98년 대주제로 잡았다.그 첫 초청자는 줄리엣 강.올해 23세 된 강씨는 10대때 예후디 메뉴힌 국제 콩쿠르,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 등에서 우승,일찌감치 차세대 선두자리를 예약한 한국인 2세.최근 뉴욕 타임즈는 향후 30년간 예술계를 이끌어갈 30세 이하 아티스트 30명 가운데 하나로 강씨를 꼽기도 했다.이번엔 슈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고왔다.국내 초연. 객원지휘를 맡은 장윤성씨는 93년 프로코피에프 국제 지휘콩쿠르 2위,97년동경 국제음악콩쿠르 1위없는 2위에 입상하는 등 맹활약중인 젊은 지휘자.리스트 전주곡,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등도 준비했다.399­1629.
  • 자연보호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미국의 대통령 문화:9)

    ◎도약의 20세기 연 ‘공익의 조정자’/트러스트 해체 등 대기업 부당행위에 철퇴/포츠머스 조약 중재… 미 최초의 노벨상 수상/역사·자연·여행·정책관련 등 저서 38권 남겨 【메도라(미 노스다코타주)=나윤도 특파원】 ‘컬러드(colored canyon) 캐년’.미중부 대평원 북단 노스다코타주의 서쪽끝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국립공원 초입에 위치한 이 거대한 골짜기는 이름 그대로 형형색색의 띠를 두른 바위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신비의 조화를 이룬다. 남북 다코타주의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미주리강의 지류인 리틀미주리강을 따라 색동 바위의 군무를 연상케 하는 비경이 루즈벨트 컨트리가 된 내역은 이 공원의 입구에 해당하는 인구 100명의 소읍 메도라에 들어서면 이내 알 수 있다. 루즈벨트가 3년간 머무르던 ‘말티즈크로스’통나무집 앞에 세워진 그의 기념관에는 자연보호 대통령인 그의 생활에 관한 자료들과 함께 미국의 자연보호역사가 다양하게 전시돼 있어 다코타의 황량한 벌판을 달려온 여행객들에 컬러드 캐년의장관과 함께 위대한 대통령과의 만남이라는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다. 미 26대 태통령으로 미 역사상 도약의 시대인 20세기를 연 그는 저술가,언론인,등산가,카우보이,전쟁영웅,노벨 첫 수상자 등 미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타이들을 보존하고 있을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그같은 루즈벨트의 업적에 대한 설명이 다코타에서 시작하는 것은 젊은 시절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의 정치철학이던 ‘공익정신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 출신인 루즈벨트는 1884년 2월14일 발렌타인데이에 23세의 젊은 부인 앨리스와 부친을 한날 병으로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컬러드 캐년으로 훌쩍 떠나 왔다.이곳 목장에서 카우보이 생활을 하며 갖게 된 자연의 애착과 그것들이 방치된 채 손상돼가는 안타까움이 후에 그가 대통령이 된 후 국립공원 시스템을 창안하게 했다는 것이다.이는 오늘날 미국이 많은 자연을 원형대로 보존할 수 있었고 또 엄청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큰 업적으로 꼽힌다. 그의 공익정신이 유명해진 원인은 취임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대기업 조정정책 때문이었다.남북전쟁이후 급격한 산업발전은 미국의 경제를 과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팽창시켰고 문명기기의 발달로 국민생활을 몰라보게 바꿔놓았지만 그 발전의 뒤안길에 만연돼 가는 각종 병폐는 미국 사회를 엄청난 불평등의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특히 당시 가장 크게 대두된 문제는 대기업들의 횡포였다.철도 철강 석유 등 분야에서 통합과 독점을 통해 경제권을 장악한 기업인들은 정치인들과 언론까지 돈의 힘으로 매수,자신들에 유리하게 이끄는 등 국민 전체의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협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19세기말 20세기초 미국내에는 사회 도처에 만연된 부정부패 일소와 진정한 민주사회로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지고 있었다.루즈벨트의 공익정신은 이같은 시대적 요구와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당시 부통령으로 있다가 1901년 9월14일 대통령의 암살로 예기치 않게 대통령이 된 그는 “연방정부는 어떤 특별한 세력의 대변자가 아니다.바로 공익의 조정자가 돼야만 한다.또한 대통령은 바로 이같은 조정자의 중심인물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강조,대기업 병폐의 치유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할 것을 천명했다. 루즈벨트의 정책 핵심은 대기업들의 부당행위를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 힘을 정부가 갖도록 하는 것으로,우선 악명높은 몇몇 기업의 통합을 해체시키는데 주력했다. 그 첫대상은 철도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던 북부증권회사였다.당시 미 최대의 금융가 J.P 모건과 철도업자 제임스 힐이 공동으로 만든 막강한 파워를 가진 이 회사에 대해 손을 댄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그러나 루즈벨트는 과감하게 법무부에 이 회사에 대한 셔먼 트러스트 금지법위반 여부 조사를 명령했다.모건과 힐이 이에 강력히 반발했으나 루즈벨트는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결국 2년후 대법원의 판결로 해산명령이 내려지게 됐다.그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트러스트 해체에 나섰으며 반발하는 기업인들에게 “만일 대기업들이 정부가 불법이라고 간주한 무엇인가를 행해 왔다면나는 그것을 끝까지 척결해 버릴 것이다”,“부패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부패기업들에도 칼이 필요하다”는 등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그동안 노사분규시 일방적으로 고용주 편을 드는 것으로 돼 있던 정부의 입장을 노동자의 입장도 동동하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이같은 그의 온건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는 과격한 변화를 반대하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을 만족시켰으며 1904년 압도적 지지로 재선 대통령이 되었다. 루즈벨트는 대외적으로 미국의 위상을 제고,국제사회의 지도국으로 부상케 했다.파나마를 콜롬비아에서 분리독립시키고 파나마 운하를 완성시킨 것은 중요한 그의 업적의 하나로 지적되며 1905년에는 러·일 전쟁 당시 양국 대표를 뉴햄프셔의 포츠머스로 불러 평화조약을 중재하기도 했다.이같은 그의 국제평화 노력은 이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미국에 첫 노벨상 수여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1858년 뉴욕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하버드에서 수학한 루즈벨트는 24세때 뉴욕주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뉴욕경찰국장,해군부 차관보를 역임했다.또 1898년 미·스페인 전쟁 발발시에는 의용기병대 대장으로 참전,산 후안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전쟁영웅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후 뉴욕주지사에 당선됐으며 1900년 선거에서 매킨리 공화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부통령이 된 후 8개월 만에 42세의 나이로 미국 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취임했다.그는 21세때 첫 저서인 ‘1812년 해전’을 발간한 이래 역사,자연,여행,정책관련책 등 38권을 펴내 미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저서를 남겼다.또 대통령 퇴임후 10년간 ‘The Out look’이라는 잡지의 편집자 등 언론인 생활도 하고 아프리카 사냥여행,브라질,정글 탐험을 했으며 새로운 정당을 결성,정치적 재기를 꿈꾸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도을 하다가 1919년 60세의 나이로 롱 아일랜드의 자택에서 생을 마쳤다.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에 따르면 는 종합순위 5위를 나타내 2위를 기록한 제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12촌간)와 함께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수잔 사르나 루즈벨트박물관 큐레이터/백악관 역사상 첫 흑인 초청/애칭 딴 ‘테디 베어’ 곰인형 인기/미국 이상적 남편·아버지의 전형 【오이스터베이(미 뉴욕주)=나윤도 특파원】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적지인 사가모어 힐은 뉴욕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사저와 박물관,당시 농장건물 등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이곳 박물의 수잔 사르나 큐레이터는 “아직까지 그가 대통령같다”며 설명에 들어갔다. ­루즈벨트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남북전쟁 이후 19세기말 30여년 대통령들이 지나치게 무능했고 기업들에 매수되다시피해 땅에 떨어졌던 대통령직의 권위를 되살렸기 때문이다.그리고 부통령에서 승계한 대통령의 경우 그때까지는 대부분 잔여임기만 때우는 식이었는데 그는 그같은 관행을 종식시켰다. ­그가 애칭으로 많이 불리는 이유. ▲미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이었고 또 최초의 현대적 대통령으로 친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래서 TR이라는 이니셜도 처음으로 사용됐다.또 애칭 테디(Teddy)가 광범위하게 불렸으며 그를 딴‘테디 베어’라는 곰인형은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유명하다. ­루즈벨트의 가족관계는. ▲첫 부인 앨리스와 1녀,소꿉친구로 두번째 부인이 된 에디트와 4남 1녀를 두었다.무척 자상한 성격으로 미국의 이상적 남편,이상적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특히 전투기 조종사이던 막내아들이 1918년 프랑스 공중전에서 전사해 슬픔을 안겨 주었으며 그후 큰 아들이 노르만디 상륙작전에서 전사,1,2차 대전에 아들 하나씩을 잃은 아버지가 됐다. ­그의 성품은 어떠했는가. ▲상당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대통령 취임직후 백악관 첫 손님으로 흑인 지도자였던 부커 워싱턴을 초청했던 것은 유명하다.백악관 역사상 첫 흑인 초청을 놓고 남부 정치가들로부터 반감을 사 고전하기도 했다.그는 사냥 등산 등 야외생활을 좋아하면서도 틈만 있으면 책을 읽었으며 6천여권의 장서를 남겼다.
  • 은둔…유랑…출가 일본의‘방랑문학’/고대 김충영 교수 연구서 펴내

    ◎사이교 등 대표적 3인 삶과 작품세계 일본 고전문학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문인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불교적 무상관에서 출발한 은둔생활을 했거나 아예불교에 귀의해 평생을 출가생활로 보낸 사실을 알 수 있다.특히 헤이안(평안)시대 말기부터 중세에 걸쳐서는 전란이 끊이지 않아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이러한 세태 속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문인들은 시대적 유행처럼 출가의 길로 향했다.일본 고전 문학사의 두드러진 흐름 가운데 하나인 ‘방랑문학’의세계를 본격적으로 고찰한 연구서 ‘일본 고전의 방랑문학’(고려대학교 출판부)가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지은이는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김충영 교수. 이 책은 일본 고전문학사상 방랑문학을 대표하는 사이교(서행),제아미(세아미),바쇼(파초) 등 3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다.1118년 호족급의 무사집안에서 태어난 사이교는 표박(표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23세때 속세를 버리고 출가해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평생을 떠돌이 생활로 보낸 방랑 문인이었다. 흔히 ‘꽃과 달의 가인’으로 불리는 사이교는 곳곳을 떠돌며 꽃과 달을 소재로 한 수많은 와카(화가)를 읊었다.와카는 5·7·5·7·7의 5구31음을 정형으로 하는 일본 고유의 시.일본 고전문학에 나오는 ‘꽃’이란 말은 대개 ‘벚꽃’을 가리킨다.이것은 중고시대 중기 이후 궁정의귀족들이 매화 대신 벚꽃을 유달리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경향이다. 제아미는 일본 중세의 무로마치(실정) 초기에 활약했던 문인이자 예능인.일본이 자랑하는 전통예능인 노(능)의 대가인 그는 시인이라기 보다는 극작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그는 노의 연기자였을 뿐 아니라 노의 대본인 요쿄쿠(요곡)의 작자였다.제아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도심과 집심 사이에서 갈등하며 방황하는 정신적 유랑자가 많다.한 예로 그의 대표작인 ‘이즈츠(정통)’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주인공으로 한 이른바 ‘무겐노(몽환능)’로 오늘날 일본의 노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이즈츠는 대부분의 ‘무겐노’가 그렇듯이 전장과 후장의 이장구성으로 되어있다. 바쇼(1644∼1694)는 5·7·5의 3구 17음으로 운율이 정해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인 하이쿠(배귀)를 대성시킨 시인이다.일본의 근세를 대표하는 문인 가운데 한 명인 그는 사이교의 행적을 흠모해 일생을 유랑생활로 보냈다.일본의 근세는 일본 문학사상 중세와 근대 사이를 구분해 일컫는 말로 에도시대로도 불린다.바쇼에게 담석증이란 지병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하지만 그는 하이쿠가 좋아 방방곳곳을 떠돌며 자연을 읊었다.바쇼는 47세때 교토 북동쪽에 있는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호(비파호)서안에 위치한 가타다(견전) 근처를 여행했다.다음은 이때 남긴 구(귀).[병든 기러기/밤 추위에 떨어져/객지잠인가] 자신을 병든 기러기에 비유한 대목이 늦가을이란 계절의 처량함과 어우러져 객수를 더해준다.
  • 한총련 수뇌부,폭행치사 축소/이석씨 사망후 대책회의

    ◎조통위장 “가담자 3명으로 하라”/한총련의장·투쟁국장도 보고 받아 이석씨 상해치사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9일 한총련 지도부가 폭행가담자의 수를 줄이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증거를 없애려 한 사실을 밝혀냈다.이에 따라 검거전담반을 편성,한총련 지도부 검거에 나섰다.〈관련기사 22·23〉 경찰은 구속된 권순욱씨(24·건국대 농화학 2년) 등으로부터 이석씨가 숨진 직후인 지난 4일 상오 11시30분쯤 한양대에서 권씨와 길소연씨(24·여·구속) 등 폭행가담자를 비롯,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 이준구씨(26·수배·건국대 총학생회장)와 각각 「푸우」와 「순이」라는 가명을 쓰는 한총련 정책위원과 조직위원 등 5명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대책회의를 가졌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경찰은 이들에게 범인은닉 혐의를 추가키로 했다. 대책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권씨와 길씨,이호준씨(21·구속) 등 3명이 책임지고 중간 폭행가담자들을 보호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또 길씨 등이 『한총련 투쟁국장과 의장인 강위원씨(24)가 대책회의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안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들을 붙잡으면 범인은닉 혐의를 추가하기로 했다. 경찰은 특히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 이석씨에 대한 폭행에 직접 가담한 학생이 9명 이상일 것으로 보고 나머지 가담자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드러난 용의자들은 구속된 3명 외에 「주길남」이라는 가명을 쓰며 폭행을 주도한 서총련 투쟁국장과 각각 키 184㎝에 24세와 23세 가량의 마스크를 쓴 학생 2명,프락치로 몰려 학생들의 조사를 받았던 이모씨(42)가 이석씨 폭행현장에 있었다고 진술한 사수대원 3명 등 6명이다. 경찰은 또 사건 현장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 전 학생들이 폭행에 사용한 경찰진압봉과 이석씨의 피묻은 청바지 등 증거물을 감추고 현장을 깨끗이 치우는등 적극적으로 증거를 없앤 경위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다. 경찰은 한총련 시위와 관련한 보안 및 형사 사범 227명을 1차 검거 대상자로 선정,각 지방청별로 전담반을 편성해 검거에 나섰다. 대학안에 머물고 있는 검거 대상자들은 즉시 체포영장과 함께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보안 관련 수배자 99명에 대해 출국금지를 요청키로 했다. 검거 대상은 보안사범 99명,형사사범 128명 등이다.보안 사범은 제5기 한총련 의장 강위원씨(23·전남대 총학생회장) 등 사전영장 발부자 11명,제5기 지역·지구 총련의장 및 특별기구장 17명,제4기 한총련 수배자 12명,중앙집행위원회 간부 33명 등이다. 경찰은 이번 제5기 한총련 출범식과 관련,전국에서 1천262명을 연행,이 가운데 222명을 구속하고 136명을 불구속 입건했으며 125명은 즉심에 넘겼다.
  • 문학동네,불 크리스티앙 자크 역사소설 순차 발간

    ◎「람세스」의 왕위계승 비화·정복사/배신·음모·도전 뿌리친 BC13세기 애 통치자/신화·역사 성찰… 당대의 문명과 삶 꼼곰히 복원 프랑스 현지에서 2백만부 넘게 팔려나갔다는 역사소설 「람세스」(크리스티앙 자크 지음)가 국내독자들과 만난다.문학동네 출판사는 제1권 「빛의 아들」(김정란 옮김)을 이번주 펴내는 것을 필두로 몇주마다 한권씩 덧붙여 전5권을 모두 선보인다. 람세스는 기원전 13세기 이집트 통치자였던 람세스 2세를 지칭한다.그는 불타는 정복욕으로 누비아와 히타이트족,시리아며 레바논 등을 제압,이집트 영토를 극대화했고 치적을 후대에 전하려 나라 곳곳에 거대한 건축물을 축조하는 등 영토며 건축,종교 등 모든 면에서 이집트 전성기를 꽃피웠던 인물.소설은 선왕의 둘째아들로 천덕꾸러기에 불과했던 소년 람세스가 배신과 음모를 뚫고 후계자로 올라서는 과정,모략과 도전을 뿌리쳐나간 잔혹한 정복사,또 여섯명 이상의 왕비를 두고 100명이 넘는 후손을 낳은 달콤한 연애담 등을 담아낼 예정이다. 작가인 크리스티앙 자크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이집트학을 전공한 이집트학자.원래 철학과 고전문학을 공부하다가 신혼여행길에 맛본 이집트의 정취를 잊지못해 고고학과 이집트학으로 방향을 튼뒤 고향처럼 이집트를 드나드는 「이집트광」이 됐다.전에도 「이집트인 샹폴리옹」「태양의 여왕」 등 짬짬이 이집트 관련 소설을 썼지만 95년 나오기 시작한 「람세스」로 일약 프랑스 최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이같은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속엔 이집트 신화와 역사에 대한 작가나름의 성찰,당대의 문명과 삶의 세부에 대한 꼼꼼한 복원이 풍부하게 담겨있다.스스로 신의 경지를 꿈꾼 영웅의 호쾌한 정복사와 여성편력을 빠른 전개에 담은데다 이집트 지식까지 박물지처럼 곁들여 읽는 재미에다 지적 호기심,이국취향까지 만족시켰다는 점이 성공요인으로 작용한 듯 보인다. 람세스2세의 90여년에 걸친 삶에서 1권은 람세스가 23세로 왕위에 오르는데까지를 그리고 있다.람세스는 장자로 선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던 형 세나르로부터 강력한 경계를 받고 아버지인 세티왕에게선 각종 단련을 받는 등 죽음을 무릅쓴 통과제의를 거친다.그의 곁엔 신분은 미천해도 재능있고 심지 곧은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며 그중엔 영화 「십계」의 주인공 모세도 있다.재색을 겸비한 숱한 미녀들의 유혹을 마다하고 운명적 여인 네페르타리와 사랑을 싹틔우는 계기도 그려지고 있다.
  • 신임 에콰도르대통령 알라르콘/군부·의회의 지원받는 뛰어난 협상가

    우여곡절끝에 에콰도르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파비안 알라르콘(50)의회의장은 의회의 지지와 군부의 지원을 받고있으며 정치적 협상에 능한 인물.앞으로 큰 정치적 변수가 돌출되지 않는한 전임대통령의 잔여임기인 98년 8월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된다.비교적 합리적이며 의회의 탄핵을 받아 물러난 부카람 전대통령과는 크게 대비되는 인물로 통한다.정계진출전 법률가로서 명성이 높았다. 불과 이틀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아르테아가측의 반발,예측불허의 세력인 군부와의 관계,전임대통령때부터 누적돼온 경제난등 산적한 문제를 제대로 헤쳐 나갈지는 미지수이다.70년 23세의 나이로 고향인 핀치차주 키토시에서 대중애국당 후보로 출마,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 84년 핀치차 주지사에 당선됐으며 4년뒤 의회에 진출,본격적으로 중앙정치무대에 진출 하면서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혀왔다.
  • 「아리랑」 작가 님 웨일즈 타계

    【도쿄 교도 연합】 지난 30∼40년대 한국 및 중국 관련 저술로 널리 알려진 「아리랑」의 작가 헬렌 포스터 스노우가 11일 미국에서 사망했다고 그녀의 일본 친구들이 13일 전했다.향년 89세. 님 웨일스라는 필명으로 더욱 친숙한 스노우 여사는 23세 때인 31년 상해주재 미국 영사관에 자리를 얻어 중국에 건너갔으며 당시 중국공산당 지도자 모택동에 대한 저술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했다. 극동지역에 머무는 동안 스노우는 남편의 저술활동에 조력하는 한편 한국과 중국의 항일투쟁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생생한 서술로 명성을 얻었다. 「붉은 중국의 내부」,「중국노동운동」,「아리랑」,「홍진」,「나의 연안일기」 등이 그녀의 손꼽히는 명저들.
  • 김 대통령 군복무 사진 첫공개 안팎

    ◎함께 찍은 군동료가 46년 보관/50년 정훈국 거제도파견대 근무/“병역시비 말끔히 해소돼 기쁘다” 『계급도 없던 시절이지만 항상 동료들보다 앞장서 일을 처리하면서 거제도 주민과 포로,피란민을 상대로 열변을 토하며 선무활동을 하던 김영삼대통령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김대통령의 군복무시절 사진을 46년간 보관해오다 처음으로 공개한 김성배씨(65·동양화재 중부지점 동성대리점사장)는 『당시 학도의용대 거제도 특별파견대는 전방못지않게 힘든 생활을 했다』고 회고했다. 김사장으로부터 지난 12일 저녁 사진을 전달받은 김대통령은 14일 상오 김광일 비서실장과 이원종 정무수석을 비롯한 전 수석비서관들을 본관 집무실로 불렀다.김대통령은 『기쁨을 나누고 싶어 불렀다』고 빛바랜 한장의 사진을 내놓았다. 사진은 김대통령이 국방부 정훈국 거제도 특별파견대에 복무할 당시인 1950년 12월30일 동료 5명과 함께 찍은 것.「국방부 정훈국 거제도 특별파견대.4283년 12월30일」이라는 글씨도 써있었다.당시 23세였던 김대통령은 8개월간 거제도에 파견돼 포로수용소의 포로와 주민들을 선무,관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김대통령은 『과거 선거때 내가 군에 가지 않았다며 심하게 공격을 당하는 등 병역문제로 굉장히 고통을 당한 일이 있었다』며 『군에 간 사진을 받고보니 지금 어린애처럼 마음껏 기쁜 심정』이라고 말했다고 윤여준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김대통령은 병역문제로 공격을 받았을때 E­135라는 군번까지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믿어주지 않더라고 소개했다. 김대통령은 『5·16후 가택수색을 당해 결혼사진을 포함해 모든 사진이 없어졌다』면서 『대통령취임후 안기부와 국방부에 뺏긴 사진을 찾아보라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김사장은 『김대통령이 군복무문제로 마음고생을 하는 것을 알았다면 벌써 사진을 공개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대통령은 6·25발발후 거제도 파견전에는 학도의용대원으로서 부산에서 매일 30분씩 대북 방송을 전담했는데 원고집필,음악선곡,원고낭독 등 「1인3역」을 했다는 것. 김대통령은 김사장을 비롯,함께 사진을 찍은 군동료들을 수소문해 가까운 시일안에 청와대로 초청해 즐거움을 나눌 계획이다.
  • 16회 농어촌 청소년대상 18명 발표/15일 시상

    ◎대상 「양구 4­H회」·통영 유영신씨/서울신문사·KBS·농림부·해양수산부 공동제정 서울신문사와 한국방송공사·농림부 및 해양수산부가 복지농어촌 건설의 주역이 될 젊은 농어촌청소년을 발굴,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제16회 농어촌 청소년대상」 수상자 18명이 4일 확정 됐다. 대상은 강원도 양구군 원예 4­H회(대표 서경호·양구군 남면 가오작 1리)와 유영신씨(34·경남 통영시 염호리)가 각각 선정됐다.특별상은 김낙천(27·충남 예산군 오가면 분천리)·윤주흠씨(28·충북 충주시 동량면 서운리)가 차지했다. 본상은 조순천씨(29·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 등 12명이,공로상은 허지도씨(43·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등 2명이 각각 뽑혔다. 대상 수상자는 2백만원,특별상은 1백50만원,본상및 공로상은 각 1백만원의 상금을 받는다.대상과 특별상·본상 수상자들은 농림부·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해외연수 특전도 주어진다. 시상식은 15일 상오 11시 서울신문사·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농어촌 청소년대상 수상자 명단 〈대상〉 ◇농업부문 ▲강원도 양구군 원예 4­H회 ◇수산부문 ▲유영신 〈특별상〉 ◇농업 ▲김낙천 ◇수산 ▲윤주흠 〈본상〉 ◇농업 ▲조순천 ▲김종화(27·충북 괴산군 사리면 중흥리 574) ▲전성수(26·전북 군산시 옥구읍 선제리 180의1) ▲정대원(27·경북 영천시 대전동 420) ▲안창용(29·경남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15) ▲조은덕(33·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금악리 422의4) ▲유자영(26·경남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 1234) ▲김정현(28·전남 보성군 보성읍 원봉리 191의2) ◇수산 ▲서도환(27·전북 정읍시 칠보면 서산리 456의2) ▲김명기(34·경북 울진군 후포면 삼율리 258) ▲조종필(29·충남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47) ▲김선탁(32·전북 장흥군 죽청리 54) 〈공로상〉 ◇농업 ▲허지도 ◇수산 ▲최진수(48·경남 통영시 정량동 1158의35) □대상 ◎농럽 「양구 4­H회」/무의탁노인·소년소녀가장 돕기에 헌신 『회원들에게 우선 감사드립니다.무의탁 노인들과 소년소녀가장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강원도 양구군 원예 4H회 회장 서경호씨(27)는 『농촌을 지키면서 불우이웃까지 보살펴 온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오늘을 있게 했다』며 공로를 회원들에게 돌렸다. 서씨는 87년 고교를 졸업,농사일에 뛰어든 뒤 지난 92년 양구읍 남면지역 30세이하 청년 23명과 함께 원예 4H회를 조직했다. 남면 창1리 3천300여평의 밭에 학습포를 만들어 고추·피망·찰옥수수는 물론 취나물·백합 등 특수작물도 재배,해마다 1억1천6백여만원씩의 수익을 올리며 부농의 꿈을 키우고 있다. 원예회는 수익의 일부를 무의탁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돕기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다.지난 여름에는 갈곳 없는 쌍둥이 남매에게 17평짜리 집을 손수 지어줘 주위의 칭송을 받기도 했다. 원예작물 외에 한우까지 키우며 연간 3천5백만원씩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서씨는 『지금 17마리인 한우를 더 증식시키고 4H회원들과 함께 원예작목개발에도 힘써 살기 좋은 농촌을 가꿔 나가는 것이 소망이라』며 부농의 집념을 보였다. ◎수산 유영신씨/굴양식법 개선·기계자동화로 기술 향상 『어업을 생업으로 삼는 어민으로서 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니 송구스럽고 어깨가 더욱 무겁습니다』 대상 수상자로 뽑힌 유영신씨(34)는 『이 상을 더욱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로 생각하고 잘 사는 어촌건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학창시절 수산업을 하는 아버지를 도와 바다와 친해지긴 했지만 처음에는 어업에 뜻을 두지 않아 공고로 진학,공업전문대를 졸업했다. 23세 젊은 나이에 굴양식을 시작으로 어민의 길로 들어선 류씨는 87년 굴가격하락으로 수천만원의 빚을 지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양식방법 개선과 자동기계화 장비도입 등 꾸준한 기술개발로 93년 1억7천여만원의 순소득을 올렸다. 유씨는 부침이 심한 굴양식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해상 가두리양식을 시작했다.이같은 복합양식으로 지난해 7억여원의 소득을 올려 고소득 어민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현재 한산면 어업인후계자협의회장과 통영시 어업인후계자협의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특별상 ◎농업 김낙천씨/표고·팽이버섯 재배… 연수입 3억 특별상을 수상한 김낙천씨(27)는 『이런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걱정부터 앞선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한층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표고버섯과 병 팽이버섯을 길러 연간 3억여원의 수익을 올리는 김씨는 삽교고를 졸업한 해인 지난 86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벼농사를 지으며 표고버섯을 재배하기 시작했다.지금도 규모는 2만본으로 예전과 같으나 예산농전 졸업과 농촌진흥청에서 2년6개월간 버섯재배기술을 배우고 경북 칠곡에서 6개월간 현장경험으로 기술이 향상되면서 수익은 부쩍 늘었다. 이와함께 병으로 팽이버섯 종균을 매일 3천본씩 배양하고 같은 양의 질좋은 버섯을 계속 생산,연간 2억5천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그는 또 4H활동의 하나로 휴경지를 빌려 공동경작,기금을 모은 뒤 고아원 등 불우이웃돕기에 쓰는 등 각종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수산 윤주흠씨/충북 최대 송어전문 양식업자 『갖은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 항상 힘을 북돋워줘 온 작은 아버지와 처남,그리고 식구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농어촌청소년 특별상을 차지한 윤주흠씨(28)는 충북 최연소 양식업자로 올해 3천9백㎡의 양어장에서 150t의 송어를 생산,6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2억원 정도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름철 비브리오패혈증 보도로 가격이 폭락해 겨우 1억원 정도 순수익을 올리는데 그쳤습니다』 충주농고를 졸업한 뒤 지난 89년부터 도내 최초로 송어양식을 시작한 윤씨는 90년 수해로 송어를 전량 유실당하는 피해를 당하면서도 송어연구와 과감한 투자로 명실공히 도내 최대의 육상양식업자로 자리를 잡았다. □본상 ◎조순천씨/“시설채소 공동영농 실시 90년 군대를 제대한 뒤 시설채소 영농에 종사,현재 8명의 회원들과 시설채소 4­H회를 조직해 공동영농을 실시하고 있다.작년에는 시설채소 3천평을 재배,연 6천5백만원의 소득을 올렸다.90년에 고양시 지도읍 4­H회에 가입,현재 경기도 4­H연합회장을 역임. ◎김종화씨/4­H회 활성화에 온 힘 88년 청주농고를 졸업한 뒤 농어촌 청소년들의 희망인 4­H회 활성화에 온힘을 쏟고있다.학교 4­H회 졸업생 25명에게 3백만원의 지원금을 주기도.새소득작목 과제포로 사슴 25마리·버섯 100평·자동화하우스 900평을 운영하며 괴산군 사리면 산정리 이장직을 맡아 지역발전에 힘쓰고 있다. ◎전성수씨/미 연수 선진농업 습득 전북산업대학교를 졸업한 뒤 과학영농의 보급을 위해 농촌에 남아 기술영농을 솔선수범.선진 농업국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 연수를 가기도 했으며 쌀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4만2천평의 기계화 벼농사로 연간 3천만원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현재 전라북도 4­H회 회장. ◎정대원씨/청소년 순회교육에 열성 경북 4­H 연합회 부회장 등 7년간 4­H조직을 이끌며 청소년 순회교육과 자연보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95년에는 4­H 중앙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포도 비가림재배 시범포를 운영하면서 시범포를 농가에 보급했으며 포도·사과 재배와 위탁영농으로 7천5백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복합영농가. ◎안창용씨/꽃학습포 운영… 효도관광 평소 꿈인 농촌 원예를 실현시키기 위해 김해농업고등학교 원예과를 졸업하고 경남대 최고경영자과정 화훼 전공을 수료한 석학.공동학습포를 운영,1백50만원의 기금을 조성「효도관광」을 실시했으며 5천여평에 장미와 카네이션을 재배,연 2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현재 경남 4­H 연합회장. ◎조은덕씨/양돈 분뇨처리 자동화 돼지 2천마리를 사육,일본 수출길을 연 전업농.94년에는 유럽에 양돈연수를 다녀올 만큼 양돈에 대한 지식이 넓다.돼지 사육장은 분뇨처리 자동화시설 등을 갖춰 시범농장으로 활용.양돈조합 돼지 출하반장을 맡고 있으며 출하반 회비를 적립,소년 소녀가장돕기와 생활환경개선 사업도 하고 있다. ◎유자영씨/영농회·방역사업에 앞장 올해 농민후계자로 선정된 이후 영농회운영과 방역사업·불우이웃돕기에 앞장서고 있다.함양 안의농협 청년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제사업에도 참여,봉사활동에 적극적.한우와 특용작물인 둥글레를 주작목으로 영농기반을 다지고 있는 풍운의 농촌청년으로 95년에는 군 우수 4­H회원으로 선정. ◎김정현씨/농장 개방… 낙농기술 전파 83년 13세의 나이로 4­H에 가입한 후 92년에는 보성군 4­H회장을 역임.90년부터 자신의 축산농장을 개방,매년 100명에게 낙농과 사료작물 재배기술 등을 전파.젖소 42마리,사슴 7마리를 사육,연 8천9백여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연소득 2억원을 목표로 시설자동화에 앞장. ◎서도환씨/내수면 양어기술 자문역 군산 수산전문대를 졸업한 뒤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2천500평에 태화수산을 설립,내수면 양어사업을 고소득 사업으로 끌어올렸다.최신 양어기술과 시설을 갖춰 어민들에 대한 기술자문을 하고 있으며 95년에는 뱀장어 20t을 생산,3억4천만원의 소득을 올렸다.정읍시 내수면 양식협회 재무담당. ◎김명기씨/어민협에 종묘 무상지원 울진어민후계자협의회 회원으로 양식업에 대한 교육 및 현장체험을 전수하고 있다.94년부터는 어민협의회 등에 넙치 치어 등 종묘 13만마리를 무상으로 지원,자원조성 및 소득증대에 기여.작년에는 가리비양식으로 3천9백만원의 소득을 올려 도내 가리비양식업 개발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종필씨/매월 바다오물 10t 수거 바다청소의 날을 지정해 주민들과 매월 10t의 오물을 수거하고 있는 바다환경 파수꾼.과학적 김양식으로 연 5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어민에게 그 방법을 전수.최근 낚시어업도 병행,자원보호와 불법어업 근절에 앞장서고 있다.마을친목 모임인 「저두회」 회장으로 불우이웃을 돕기도. ◎김선탁씨/어류 종묘생산기술 전수 육상어류양식 선진지인 제주에서 6년간 종묘생산과 양성기술을 배운 뒤 고향에 돌아와 양식기술을 전수.지난 4월 마을청년들과 공동소득사업으로 60t의 고막종패를 마을 앞바다에 살포,2년후에는 높은 소득을 기대하고 있다.95년에는 넙치종묘 50만마리를 생산,2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 대통령의 나이/나윤도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19일로 50세 생일을 맞았다.동양식으로 한다면 불혹의 나이에서 지명의 나이로 접어든 셈이다.한 인간이 하늘의 뜻을 알만한 인격체로서의 성장을 인정받는 나이인 것이다. 92년 46세의 그가 세번째로 젊은 미대통령으로 당선됐을때 루스벨트(41세),케네디(43세) 등 젊은 대통령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 미국민들이 보낸 그에 대한 기대는 컸다.그가 지난 4년간 그같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했는가 여부는 이번 선거결과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1946년생으로 전후세대이자 베이비부머세대의 맏형격인 그의 나이는 92년 대선에서는 부시(당시 64세),또 올해는 돌(73세) 등 나이차가 많이 나는 후보들과 격돌하면서 미숙하고 경험이 없는 「불안한 풋내기」로 공격받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이번 선거는 23세의 가장큰 나이차이에 돌은 2차대전 참전용사로 구세대를 대표하는 입장으로 자신의 고령핸디캡에 대한 최선의 방어로 클린턴의 어린 나이를 역공격 해왔다.보수주의적 평론가인 에미트 티렐도 최근 「소년 클린턴」이라는 저서에서 클린턴의 베트남전 참전기피등의 예를 들며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은 지도자 자질이 없는 인물로 맹공을 퍼부었다. 이에대해 클린턴측도 이같은 나이를 건 공격에 대해 돌의 고령을 최대의 장애로 집중 공격하며 『젊음은 경험으로 성숙된다』면서 클린턴의 4년간 대통령경험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클린턴은 50세 생일에 앞서 18일 CBS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유세전에서 인신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며 돌의 고령등 나이문제에 대해서도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얼마나 참신한 것이냐가 중요하다』면서 오직 정책대결로 승부를 벌이겠다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가 나이문제를 크게 내세우지 않으려는 것은 92년 선거에서 과거 케네디가 동세대층의 열광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했던 것과 같은 열기를 불러오지 못했기 때문이다.즉 금년에도 50세가 되는 3백40만명을 포함 7천8백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세대(32­50세)의 지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거를 세대간의 대결로 몰고 갈수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50세대 73세라는 육체적인 나이 대결보다는 아이디어의 참신성,정책의 실현성,도덕적 가치 등이 대결을 벌이는 민주주의선거의 참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뇌파로 인간의 사고 인식한다

    ◎일,뇌연구­컴퓨터과학 결합움직임 활발/입 움직일때 발생된 뇌파로 상대의사 식별/음성합성기술로 청각장애자 등 통신 가능 인간의 뇌를 정복하라.인간의 뇌를 정복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란 미래학자의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연구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그 중에서도 컴퓨터 관련분야에서는 인간과 컴퓨터의 접촉(MMI·Man­Machine Interface),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CI·Human­Computer Interaction),인간요소(HF·Human Facter) 등의 개념이 주목을 받으면서 뇌에 관한 연구결과를 컴퓨터개발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근 일본에서는 인간의 뇌파인식을 통신시스템에 이용하려는 연구가 기초적인 성공을 거둬 눈길을 끌고 있다. 와타나베 박사등이 수행한 이 연구는 인간 뇌파의 움직임으로 인간의 사고를 인식,언어장애나 청각장애자 등의 복지통신을 실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인간의 뇌파란 인간의 정신활동때 뇌세포 사이에서 발생하는 생체전기현상을 말한다.인간의 뇌파는 20년대부터 주로 정신질환 진단 등 의학적 목적에서 연구가 시작돼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7종류의 뇌파가 발견돼 있다. 연구팀은 23세된 남자를 상대로 일본어의 5개 모음을 생각할 때 발생하는 뇌파와 발성을 하지 않고 입만 움직일 때 발생하는 뇌파의 식별가능성을 실험했다.피험자가 의자에 않아 신호를 발생하는 스위치를 오른손에 쥐고 눈을 감고 안정을 취한 상태에서 수행된 이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사고시 유효식별률 25%내외,입을 움직일 때 유효식별률 10∼45%를 실현시켰다.연구팀은 또 뇌파측정에 있어 유효한 부위는 후두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아주 기초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정보분석실 김정환 연구원은 『이는 이제까지 인간과 기계의 통신방법으로 촉각(키보드)·청각(음성입력) 및 시각(영상마이크로폰)이 사용돼 온 것 외에 뇌파에 의한 사고식별시스템이라는 제4의 지각을 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험에서와 같은 모음수준을 넘어 자음·단음절·단어,그리고 문장에 대한 뇌파인식데이터가 축적되고 신경망에 의한 좀더 효과적인 학습법이 개발된다면 앞으로 언어장애와 청각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닌 날이 올 수도 있다.예를 들면 언어장애자가 뇌파인식장치를 통해 사고를 표현하면 이에 연결된 음성합성장치는 이를 소리로 합성해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가 있다.음성인식 및 음성합성기술은 2000년대초에 실현가능한 기술로 평가되고 있는 만큼 이 정도 기술실현은 공상적인 것만은 아니다.다만 역으로 상대방의 언어를 음성인식기가 듣고 뇌를 자극해 청각장애자가 의사를 전달받는 데는 「뇌자극」에 따른 윤리적·의학적 문제가 뒤따를 것이란 분석이다. 어쨌든 뇌연구와 컴퓨터과학의 결합은 인간의 장애를 극복하는 복지기술의 실현을 앞당길 것이 분명하다.〈신연숙 기자〉
  • 북한 일가족 아사 빈발

    ◎「김영삼 만세」·「김일성탑 폭파」 구호 나돌아/귀순 미용사 정순영씨 회견… 현대 정 회장 친척 북한에서는 「김일성 영생탑」이 폭파되고 「김영삼 만세」라는 구호가 나타나는 등 체제에 대한 불만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일가족 동반 자살이 잇따른다.〈관련기사 6면〉 이달 초 귀순한 정순영씨(37·여)는 9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증언했다.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편의관리소의 미용사 출신인 정씨는 아들 박철(15),딸 영미(9) 남매와 함께 제3국을 거쳐 귀순했다. 정씨는 『지난 3월말 원산 조선소안에 설치돼 있던 15m 높이의 「김일성 영생탑」이 폭약에 의해 완전히 파괴됐다』고 전했다.또 비슷한 시기에 역시 원산에 있는 동해고등학교 담벽에 뾰족한 도구로 「김영삼 만세」라는 글씨가 새겨졌다는 말을 현지 미용사 김모씨(42·여)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또 『지난 93년부터 식량난이 급격히 악화돼 강냉이·수수·두부콩 등을 조금씩 배급받아 겨우 연명해 왔지만,지난해 3월부터는 이것마저 완전히 끊겼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식량난이 악화돼 어린애를 버리기도 하며 버려진 아이들은 길에서 굶어 죽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통천군은 다른 곳보다는 비교적 생활수준이 나은 편이지만 내가 속했던 인민반 23세대 가운데 일가족 4명과 5명 등 두세대가 배고픔을 참지 못해 지난 1월과 3월,독약을 먹고 동반자살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집안에는 강냉이 한 톨 남아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때문에 먹을 것을 찾아 각지를 떠도는 주민이 늘고 있으며 자식들의 구박에 못이겨 자살하는 늙은 부모가 많고,부모들이 어린 자식들을 길거리에 내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먼 친척』이라고 말했다.
  • 체육계 준비(출발 2002년 월드컵:3)

    ◎조직·시설 국제수준 손색없게/주최국 명예 고려 경기력 향상 최우선/대규모 전용구장 확보… 팬 열기 모아야 라이벌 일본보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공동개최를 이끌어낸 것은 스포츠외교의 성과인 반면 88서울올림픽에 이어 한국스포츠의 세계화를 위해 다시 한번 큰 발걸을 내디딜 수 있는 기폭제를 마련했다. 특히 월드컵은 단일종목으로 올림픽보다 더 인기를 누리고 있어 앞으로 6년간 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리게 됐다. 이제 그동안의 흥분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대회개최를 위해 차분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동안 대회유치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벌여온 유치위원회는 비록 공동개최이긴 하나 한국을 올림픽과 월드컵을 번갈아 치러본 7개 국가그룹대열에 올려놓는 값진 성과와 함께 맡은 바 임무를 끝내고 이달말 해체되고 대회개최에 따른 조직위원회가 다시 구성된다. FIFA가 한국의 월드컵개최지로 우려한 것도 조직·시설·축구붐 등 3대기준에서 일본에 뒤져 있다는 점을 들었다. 앞으로 구성되는 조직위는 이같은 점을 감안,계획을 세워야 할것이다. 우선 경기력향상을 위해 어느 때보다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할 걸로 보인다. 2002년 대회가 한·일공동개최로 결정됨으로써 두 나라의 자존심대결이 경기를 통해 다시 한번 재연될 것이 틀림없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나누어 경기를 치르는 만큼 결승전에서 만나지 않는 한 직접 격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그러나 두 나라 모두 단순참가국이 아닌 이상 서로의 성적을 의식하는 국민감정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정몽준 대한축구협회회장이 공동개최 확정 뒤 한·일 두 나라가 시합을 치러 결승전장소를 결정하자는 사견을 밝혔을 만큼 지금 우리의 경기력은 일본을 다소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월드컵 4회진출이라는 겉포장과 달리 우리의 역대 월드컵성적이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2002년에도 예선탈락하게 되는 상황을 맞는다면 일본과의 경쟁은 고사하고 월드컵사상 첫번째로 예선탈락 주최국이 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지금까지 주최국이 기록한 최하위성적은 미국의 94년 월드컵 16강이다.따라서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16강진출이라는 과업이 부과돼 있는 셈이다.게다가 우리와는 달리 2002년에 대비,96애틀랜타올림픽대표팀을 모두 23세이하로 구성한 일본을 의식한다면 16강진출만 가지고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형편이다. 경기력향상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조건은 전용구장건설이다.현재 우리는 포항과 광양 두 군데에 전용구장을 갖고 있으나 그나마 모두 2만5천 미만을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그러나 이제 월드컵을 유치한 만큼 과감하게 전용구장수를 늘리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축구인의 한결같은 지적이다.전용구장은 FIFA의 대회개최지조건일 뿐 아니라 팬을 운동장으로 모여들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저력으로 볼 때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으로 6년은 충분한 시간이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을 21세기의 중심국가로 부상시킬 것이다.〈박해옥 기자〉
  • 상대조직원 살해 폭력배 징역 15년/서울고법 선고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최병학 부장판사)는 7일 서울 영등포의 폭력조직 「북부동파」 행동대원 반종진 피고인(24)과 행동대장 이승환 피고인(33)에게 원심대로 각각 징역 15년과 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반피고인은 지난 94년 8월 행동대원 10여명과 함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신사 4거리에서 흉기와 각목 등으로 「불출이파」 행동대장 오일씨(당시 23세)를 살해한 혐의로,이씨는 범행을 지시하고 증거를 조작토록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됐었다.
  • 「무기선고」46년만의 재심/7순 할머니「빨갱이」몰려 24년 복역

    ◎판결 불복 94년 청구… 26일 예비심리 6·25 때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모함을 당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4년간 복역한 김복련 할머니(78·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은 풀릴까. 김할머니가 지난 94년 6월11일 제기한 재심청구 사건의 예비 심리가 무기징역 선고 46년만인 오는 26일 서울지법에서 열린다.담당은 형사 7단독 김동환 판사. 김할머니에 따르면 지난 50년 6월29일 인민군에 쫓기던 국군 5사단 3연대 소속 김현호 일병(69·당시 23세·전남 장성군 부기면)이 서울 종로구 인의동 자신의 집 창문을 넘어들어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빨래줄에 널려있던 이웃집 양모씨의 옷을 입혀 피신시켰다. 그러나 이웃 김모씨와 양씨가 내무서에 이를 신고,김할머니는 반동 혐의와 함께 경찰관이던 남편 전영석씨의 소재까지 추궁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다행히 같은 해 7월9일 밤 경기도 양주군 백성면 조태훈씨(65) 집으로 달아났다. 서울이 수복된 직후인 50년 10월10일 아들과 함께 인의동 집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양씨와 김씨 일가는 자신들의 부역사실이 두려워 오히려 김할머니가 부역했다고 신고했다. 김할머니는 종로경찰서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고 같은 해 12월 2일 서울지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4년간 복역했다.이 과정에서 아들 전학철씨(51·당시 5세·경남 장승포시 능포동)와도 생이별했다. 김할머니는 지난 93년 6월20일 TV에 출연해 억울함을 호소,그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한 당시의 김일병,「부역시점」인 50년 7월30일에 경기도로 피신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조모씨를 찾았다.〈박상렬 기자〉
  • 중 3단계훈련 대만 최근해서 실시/중­대만 현지모습

    ◎중국언론 「양안긴장」 함구… 일반인 거의 몰라/대만정부,외화 불법송금관련 외국은 조사 ○…대만당국은 대만인들이 불법으로 해외에 송금하는 것을 도와 대만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위기를 맞는 때에 대만의 자금사정을 악화시킨 혐의로 외국은행지점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커머셜 타임스지가 14일 보도.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실시하고 있는 군사훈련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할 경우 얼마나 신속하게 전투가 결판날 수 있는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중국의 한 군사전문가가 15일 분석. 홍콩의 친중국계 일간지 문회보는 이날 한 중국 군사전문가의 말을 인용,중국의 대만해협 군사훈련은 대만에 대한 모의 봉쇄훈현이라면서 그같이 분석하고 그러나 중국의 군사훈련을 감시키 위해 대만근해로 파견된 미군 병력과의 충돌 가능성을 전면 배제. ○…중국측이 대만해협 인근에서 실탄사격 훈련을 실시하자 대만은 인터넷의 사이버 스페이스(가상공간)를 통해 북경에 대한 전쟁을 진행중이라고.인터넷에서는 오성홍기 아래 「중국:동방의 파시즘」이라는 문구등 대만인들이 중국의 군사위협에 항의하기 위해 띄워보낸 각종 비난 메시지와 그래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일부 대만 여행사들이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호 전단을 유람선으로 구경시켜주는 신종 관광상품을 개발했다고 15일 중국시보가 보도.이들 여행사는 막강한 미항모 니미츠호를 보고싶어 하는 대만주민들의 요청에 못이겨 이같은 관광상품을 내놓았는데 관광회사들은 이 유람선을 타고 니미츠호의 항로를 횡단할 생각이라고. ○…중국군이 대만해협에서 벌이는 군사훈련으로 양안간 긴장이 고조되자 이 틈에 한몫 보려는 외국 매춘부들이 대만으로 몰리는가 하면 홍등가 여성들의 화대도 급등하고 있다고. 대만의 이브닝 포스트지에 따르면 최근 대만경찰에 체포된 야오(23세)라는 홍콩출신 매춘부는 『대만해협의 긴장으로 서비스료를 올릴 수 밖에 없다』고 고객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뒤 화대를 7천대만달러(약 20만원상당)에서 9천대만달러로 약 30%를 올렸다고 진술했다고. ○…중국의 신문 및 TV들은 여전히 대만해협에서의 실탄사격훈련 등과 미국의 군함파견 등에 대해 보도하고 있지 않아 일반인들은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 한편 인민일보는 15일자에 해협양안의 통신 및 우편사용량이 크게 늘었다고 교류증가를 강조.이에 따르면 지난해 양안간 전화사용량은 전년도에 비해 21% 늘었다고.이에 따라 89년 우편교류 1천5백만건,전화량 1백80만차례에서 95년에는 각각 3천6백40만건,4천83만차례로 급증했다고. ○…중국이 오는 18일부터 25일까지 실시하는 육·해·공군 합동훈련은 지금까지 중국의 군사훈련중 대만 영토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실시된다고 대만 국방부가 15일 발표. 국방부는 특히 이번 군사훈련이 중국의 평담도 부근에서 실시될 것이며 훈현해역이 대만과 가장 가까운 곳은 대만 영토인 마조도 부근의 오구도와 퉁슈도·시슈도 등 3개 섬에서 10해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강조. ○…중국과 대만의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양측을 대표하는 관리들이 16,17일 일본 교토에서 개최되는 제3차 아태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회담에 나란히 참석하게 됐다고. 대만중앙통신(CAN)은 이와 관련,임진국 재정부장이 현 사태에 대한 대만당국의 정책과 입장을 설명할 권한을 갖고 회담에 참석할 것이라고 설명.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