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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치산 신문」을 보고/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전문가 진단)

    ◎「남부군 총사령관 로명선」 처음 밝혀/김일성 동정 실려… 「북과 계속 연락」 입증/“빨치산의 투쟁양상 밝힐 실증자료” 평가 이번에 서울신문이 발굴한 유격대 발행 신문을 통해 유격투쟁의 구성원,전개양상및 실패 원인을 새롭게 실증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예를 들면 남부군이 발행한 「승리의 길」27호(19 51년 11월23일자)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보고한 내용이 실려 있다.지금까지 통설은 빨치산들이 북한과 직접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고립되어 싸웠던 것으로 이해해왔다.그러나 유격대 신문의 보도 내용들은 그것을 전면 수정하게끔 한다. 또 「승리의 길」10호(1951년 5월5일자)를 보면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총사령관을 「로명선」으로 기재한 것이 눈길을 끈다.당시 총사령관은 남도부로 알려져 있었다.「로명선」은 새롭게 밝혀진 인물이다. 이밖에 1952년 1월26일 이후 남부군이 조선인민유격대 독립 제4지대로 개편하였다는 사실을 자료로써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유격대가 발행한 신문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표적인 것은 이른바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의 기관지인 「승리의 길」이다.남부군 기관지부에서 1950년 말부터 순간으로 매월 10·20·30일에 간행했다.이것이 모체가 되어 회문산에서 「회문산 승리의 길」을 발행하였고,덕유산에 있는 남부군 22사단이 기관지로서 「덕유산 승리의 길」을 냈다.또 대구시 서문로 승리일보사에서 1951년 12월27일부터 1952년 1월31일께까지 등사판으로도 「승리의 길」을 계속 간행하였다. 이밖에 각 지역 유격대가 독자적으로 발행한 「산신문」으로는 부산 조국일보사에서 1951년 12월2일 창간호를 낸 「조국을 위하여」,광주에서 간행했다고 하는 「전남 빨치산」,동해남부지구당의 「앞으로」,제7군단보인 「붉은 별」,전남인민보사의 「전남인민보」등과 「별」,「무등산 빨치산」,「불갑 빨치산」,「경남 빨치산」,「유치 빨치산」,「경남 노동신문」등이 있었다. 특정주제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는 1951년 중반 조선 빨치산 독립제6지대 정치부가 간행한 「전투문학」이 있으며 여성을 주선전대상으로 삼은 전북민주여성사 명의의 「민주여성」은 전주에서 1951년 9월20일 창간되었다.
  • 군내무반에 수류탄 투척/구타불만 사병이… 6명 중상

    지난 18일 새벽 5시45분쯤 강원도 고성군 소재 육군 제22사단(사단장 김일갑소장·육사24기)55연대에서 보초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용구이병(21)이 상급자들의 구타에 불만을 품고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져 잠자던 김상범일병(21)등 동료사병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내무반에는 김일병등 14명이 잠을 자고 있었으나 수류탄이 침상에 떨어지면서 폭발,파편이 위로 날아가는 바람에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그러나 김일병과 신동석일병(22)등 2명은 각각 머리와 허벅지를 크게 다쳐 군헬기편으로 서울수도통합병원에 후송됐다. 육군에 따르면 김이병은 평소 김일병등 상급자 4명이 『동작이 느리다』 『군기가 빠졌다』면서 걸핏하면 구타하는등 괴롭히자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육군조사결과 김이병은 이날 새벽 야간경계근무를 위해 지급받았던 수류탄 1발을 방한장갑에 숨겨 내무반에 들여온뒤 침상위로 던진 것으로 밝혀졌다.이 수류탄은 잠자던 김일병과 신일병 틈새 마루바닥에 떨어진뒤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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