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1세기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277
  • “亞 최대 국립인체자원은행 개관… 100만명분 100년 이상 보관”

    “亞 최대 국립인체자원은행 개관… 100만명분 100년 이상 보관”

    “국립 중앙인체자원은행이 가동되면 100만명분 이상의 인체자원을 100년 이상 보관할 수 있게 됩니다.” 국립 중앙인체자원은행 개관을 하루 앞둔 25일 한복기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유전체센터장은 중앙인체자원은행을 이렇게 설명했다. 충북 오송 보건의료행정타운에 들어서는 중앙인체자원은행은 274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은 인체자원 전용 건물이다. 은행에는 100만명분(보관 유리병으로 3000만개 규모) 이상의 인체자원을 보관할 수 있는 대규모 저장실과 100년 이상 자원 보관이 가능한 초저온 냉동고, 전자동 자원관리시스템 등의 시설과 장비가 갖춰져 있다. 한 센터장은 “규모와 시설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뱅크인 이곳에 2008년부터 확보한 국내 인체자원을 체계적으로 재분류해 보관할 것”이라며 “국가 주도 연구뿐 아니라 기업·연구자 등에게 적시에 분양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인체자원은행(Biobank)은 인체자원을 수집·보관하고 연구 목적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연구자 등에게 분양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 센터장은 “흔히 21세기를 맞춤의료 시대라고 하는데 실질적인 맞춤의료가 가능하려면 대규모 인체자원을 확보해 연구해야 한다.”면서 “또 한국인을 위한 예방이나 진단, 치료법 개발도 한국인의 인체자원을 활용한 보건의료기술 개발연구를 통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본, 중국이 벌써 인체자원은행을 가동하는 등 인체자원을 바이오산업의 신성장동력으로 인식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전한 한 센터장은 “우리나라도 2008년 인체자원은행을 만들고 관련 네트워크를 구축해 현재 50만명분의 인체자원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인체자원을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전용시설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유전자(DNA), 혈청, 혈장, 세포 등 인체자원은 영하 75도 초저온 냉동고나 영하 195도의 액체질소 냉동고에 보관해야 한다. 한 센터장은 “중앙인체자원은행이 개관함으로써 인체자원의 안전한 보존이 가능해졌다.”면서 “보관된 인체자원이 많아 이를 자동으로 분류, 사용할 수 있는 로봇시스템의 확대 구축 등에 국가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26일 개관식에 이어 국립보건연구원이 주최하는 국제심포지엄도 열린다. 심포지엄에는 유럽연합(EU)과 영국, 미국, 일본 등 국내외 인체자원은행 전문가들이 참석해 인체자원은행 운영 등에 대한 연구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도 가질 예정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김용 세계은행 총재 어머니의 가정교육

    [김병일 사람과 향기] 김용 세계은행 총재 어머니의 가정교육

    화제를 모았던 김용 전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의 세계은행 총재 선임이 세계은행 이사회에서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지난주에 뉴스를 탔다. 세계은행의 대주주인 미국의 추천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변은 없을 것이라고 언론들이 예상했지만 그래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은행은 유엔 및 국제통화기금과 함께 통상 3대 국제기구의 하나로 꼽힌다. 이런 중요한 기구의 수장 자리에 비록 미국 시민권자이기는 하지만 이민 1.5세대인 한국인이 선임되었으니 기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방면의 선배 격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에 이은 또 한번의 경사이다. 김용 총재 선임과정에서 느끼는 ‘신선한 충격’은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다시 한번 증명했다는 식의 애국주의적 감성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김 총재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따라서 그가 세계은행 총재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가 주목하지 못한 또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김 총재는 하버드대에서 의학과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에서 의대 교수로 봉직하면서 동료 교수와 비영리 의료봉사 기구를 조직해 활동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뒤에 세계보건기구와 공동으로 결핵과 에이즈 등 저개발국의 질병 퇴치를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 왔다. 이런 이력은 김용이라는 한 자연인의 삶이 그동안 어떤 가치를 지향해 왔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 다트머스대가 2009년 그를 아시아계 최초의 아이비리그 총장으로 선임하면서 ‘봉사와 헌신’의 정신을 선임 이유 가운데 하나로 든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저개발국의 질병 퇴치를 위해 펼쳐온 열정적인 봉사활동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한 것이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김 총재가 세계은행 수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그동안 보여준 이런 봉사와 헌신의 열정이 빈곤 퇴치를 통한 세계평화를 목표로 하는 세계은행의 설립 이념에 맞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봉사하는 삶에 대한 김 총재의 열정은 가정교육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오늘의 자신을 만든 가치는 부친의 실용성과 모친의 헌신하는 삶에 대한 강조라고 말하였다. 이민 1세로서 치과의사였던 부친은 한국계로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데는 무엇보다 기술이 필요함을 조언하면서 의사자격 취득을 권했다. 이에 비하여 철학을 전공한 모친은 항상 자신은 누구이며,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니까 김 총재는 성인이 된 이후 모친이 강조한 삶의 가치를 부친이 권유한 기술을 가지고 실천하며 살아온 셈이다. 김총재의 모친인 전옥숙 여사는 서울에서 여고를 졸업한 후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퇴계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이다. 이후 국제퇴계학회 활동을 통해 퇴계학의 가치를 조명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모국을 방문할 때면 틈나는 대로 도산서원과 퇴계종택을 들르곤 했다. 미국 남가주대(UCLA)의 한국학연구소장을 맡아 미국 학생들에게 한국의 유교문화를 가르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력이다.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 그녀는 김 총재에게 늘 퇴계 선생과 같은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고 전한다.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에서 퇴계 선생의 성학십도를 강의하는 전헌 교수가 김 총재의 외삼촌이며 의지하는 멘토라는 사실도 성장기 김 총재의 가정교육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김 총재의 인격 형성 과정과 삶을 통해 자신을 낮추며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우선하는 우리 선현들의 삶의 자세가 21세기 오늘 세계인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인 봉사와 헌신의 정신과 다시 만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 문제들을 풀어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도 결국은 이것이 아닌가 싶다. 바람직한 삶에 대한 기준은 양의 동서와 때의 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 백악관 “北 추가도발 가능성 배제못해”

    미국 백악관은 23일(현지시간) 북한의 ‘대남 특별행동’ 위협과 관련, “추가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도 24일 북한이 3차 핵실험 준비를 거의 마쳤다고 보도했다. 제이 카니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 정권은 분명히 도발적인 행동으로 알려져 있고, 연속적으로 도발을 해 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카니 대변인은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는 특별히 대응할 게 없다.”면서 “다만 북한 정권의 행동은 국제사회의 규탄을 초래했고 영양 지원을 진전시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분명한 것은 도발적인 행동은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오히려 정반대”라면서 “아울러 경제성장이나 국제사회 고립 완화와도 관계가 없고 역시 정반대”라고 거듭 강조했다.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도 “북한의 새 지도부는 에너지를 잘못된 곳에 투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뉼런드 대변인은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앞서 지적했듯 북한은 위협과 (로켓) 발사 등을 통해 고립과 압박이 심화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면서 “북한의 새 지도부는 체제를 개방하고 주민들이 잘 먹고 존엄성을 갖고 살 수 있는 21세기의 현대사회로 움직이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과 북한에 정통한 소식통에게 북한이 핵실험을 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핵실험) 준비는 거의 끝났다.”고 한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통신은 “북한의 의중을 아는 관리가 핵실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 소식통은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을 수일 전에 알려 줬다고 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한국계 입양 여성 佛 장관 오를까

    한국계 입양 여성 佛 장관 오를까

    한국계 입양 여성이 프랑스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 캠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주인공은 플뢰르 펠르랭(38). 프랑스 주간지 ‘르 피가로 매거진’은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캠프 내 ‘미래의 정치인 후보’ 7명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펠르랭을 ‘가장 날카로운 인물’이라고 지난 22일 평가했다. 매거진은 “올랑드가 당선되면 펠르랭이 디지털경제장관에 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선 캠프에서 문화·방송·디지털경제 분야를 이끄는 펠르랭은 2002년 대선 때 사회당 후보였던 리오넬 조스팽을 도와 연설문안 작성 등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2007년 대선 때에도 사회당에서 디지털경제 전문가로 언론 분야를 담당하며 활약했다. 펠르랭은 1973년 8월 29일 한국에서 태어나 이듬해 2월 프랑스 가정에 입양됐다. 프랑스 최고 명문학교인 상경계 그랑제콜 에섹(ESSEC)과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감사원에서 문화·시청각·미디어·국가교육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올랑드 캠프에 발탁된 그는 문화·미디어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매거진은 “펠르랭은 초대받지 않은 회의에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참석하는 배짱 있는 여성”이라며 “이번이 정계에 진출할 절호의 찬스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당적을 초월한 프랑스 최고 여성 엘리트 정치인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21세기 클럽’을 이끄는 회장을 맡기도 했다. 한편 한국계 입양아였던 장 뱅상 플라세 녹색당 사무부총장은 지난해 프랑스 상원의원에 당선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연합뉴스·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외무고시 폐지 앞두고… 국립외교원 개원

    외무고시 폐지 앞두고… 국립외교원 개원

    ‘뽑는 외교관’이 아닌 ‘길러지는 외교관’ 양성을 목표로 한 국립외교원이 24일 공식 문을 열었다. 2013년을 끝으로 외무고시가 폐지됨에 따라 외교통상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이 새로운 외교관 후보자 선발·교육을 맡는 외교인력 양성기관 역할까지 하게 되면서 명칭을 국립외교원으로 바꾸고 기능을 확대한 것이다.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개원식에는 김황식 국무총리와 김성환 외교부 장관, 김병국 초대 국립외교원장 등이 참석, 국립외교원의 의미와 역할을 강조했다. 김 장관은 “국립외교원은 정예 외교인력을 선발, 21세기 국제환경에 능동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재로 육성함으로써 외교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국립외교원은 국제적 감각, 종합적 사고능력, 다양한 경험 및 판단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고 이들에게 집중적인 전문 실무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정예 외교관을 육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외교원은 행정안전부와 함께 2013년 1월 입학 공고를 낸 뒤 영어와 전공, 논술, 면접 등 3차에 걸친 선발시험을 진행, 같은 해 12월 첫 입교생을 받을 예정이다. 입교생들은 1년 동안 3학기에 걸쳐 다양한 전문교육을 받은 뒤 졸업할 때 70% 정도가 외교관으로 최종 임용된다. 관계자는 “5등급 외교관 수요가 매년 40명 정도라고 본다면 시험을 통해 60명 정도를 뽑아 국립외교원을 수료할 때 20명쯤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립외교원 내 외교안보연구소장(차관보급)에 최강(53) 전 외교안보연구원 미주연구부장이 임명됐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조광조(호 靜庵·정암, 시호 文正·문정)의 일생은 짧고 격절(激切)했다. 1519년(중종14) 겨울, 전라도 능주에서 사약을 마시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 젊은 선비가 남긴 일화들은 금세 신화가 되었고, 후세는 그를 성리학의 순교자로 기억하였다. ●절명시 전승되는 그의 최후 장면은 장엄한 서사다. 그때 조광조는 서울에서 내려온 금부도사(禁府都事)를 정중히 맞이하고, “임금께서 죽음을 명하셨다면 반드시 죄명이 있을 것이다.” 라며 죄명을 물었다. 그런데 가져온 명령서에는 죄명이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을 대접하는 도리가 이렇게도 초라하단 말인가.” 라면서 “당장에 상소를 올려 바로잡아야 될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에 관한 일이라 그만둔다”고 훈계했다. 사약을 마시기 전에 조광조는 시 한편을 읊었다. “나라님 사랑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소(愛君如愛父). 나라일 걱정 내 집안일처럼 걱정하였소(憂國如憂家). 밝은 해가 세상을 내리쬐시니(白日臨下土), 밝고 밝게 비추어 내 마음 아시리라(昭昭照丹衷).” 이 서사에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그는 만고 충신이며, 지순(至純)한 도덕군자이고, 세사를 초탈한 영웅이란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조광조에 대한 집단기억으로 정착되어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끝없는 추모의 정을 불러일으켰다. ●기묘사화와 후세의 평가 정치가 조광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쉬움으로 일관되었다. 학문이 완숙되기도 전에 정치에 뛰어들어 과격한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하였으니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이이(1536~1584, 호 栗谷·율곡)는 “사람들은 입 모아 말하기를, 시기가 성숙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라고 말했다. 조광조를 쓰러뜨린 것은 기묘사화(己卯士禍)였다. 그 시작은 1519년 11월 16일(음력) 아침이었다. 중종은 남곤, 심정 및 홍경주와 함께 정치적 소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사사로이 붕당을 지은” 죄로 조광조와 김정, 김식 및 김구 등 4명을 주범으로 몰았다. 윤자임, 박세희, 박훈 및 기준 등도 부화뇌동한 혐의로 엮였다. 붕당의 몸통으로 거론된 이들 8명은 당년 20~30대로, 사건 발생 나흘 만에 각지로 유배되었다. 그들 대다수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문제가 된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해 조광조는 “나라의 병통이 이원(利源)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국가의 명맥을 영구히 새롭게 할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알다시피 사적 ‘이익’의 추구는 성리학의 금기사항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종반정 때 117명이나 되는 신하들이 마구잡이로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봉된 것이 조광조 등의 입장에서 보면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가 있는 76명의 공신칭호를 박탈하였다. 공신세력은 이에 분노했고, 중종은 반색하였다. 조광조 등이 숙청의 역풍을 맞은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네 가지 사실이 가려져 있었다. 첫째, 사건의 총지휘자가 중종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훈구파의 우두머리라는 남곤이 실상은 공신이 아니고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의 제자였다는 사실이다. 셋째, 조광조 일파의 정치적 성격은 다양해, 기준과 권전 등의 급진파가 있었나 하면, 김안국·김정국 형제 등 소극적 지지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조광조의 노선이 실은 선배 박경(?~1507)의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였다는 점이다. ●조광조는 박경의 후계자 1507년(중종2) 박경 등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였다. 놀랍게도 조광조를 비롯해 그 동지 김식, 공서린 및 조광좌 등이 연루되었다. 주모자 박경은 사림파의 종장(宗匠) 김일손(1464~1498) 계열의 학자였다. 서얼이었던 박경은 정국공신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변란을 꾀했으나 실패하였다.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박경은 정치적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중용’(中庸)‘대학’(大學)을 숙독하는 것이 제일”이라며 성리학의 근본가치를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제를 폐지하고 대신에 ‘향리 선거법’ 즉, 추천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또한 관행에 구애되지 않고 인재를 발탁할 것, 특히 서얼과 종친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았다. 청년 조광조 등은 박경의 견해에 공감하였다. 서얼과 종친에 관한 부분을 뺀 나머지 사항들은 고스란히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중심축이 되었다. 한마디로 조광조 등은 박경의 뜻을 계승하여 성리학의 이상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조광조의 도학적 리더십 조광조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 데는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우선 그는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법 집행이 공정하였기 때문에 서민들의 지지가 컸다. 오죽했으면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자 한성부 향도들이 들고 일어날 정도였겠는가. 그때 1000명이 넘는 유생들도 대궐에 난입해 조광조의 구명을 요구했다. 조광조는 소통에 능하였고, 그래서 동지들의 신뢰가 대단했다. 특히 김정 및 한충 등과는 큰 이불과 긴 베개를 펴놓고 함께 잠을 잘 정도로 가까웠다. 그들의 우정은 죽기까지 조금도 변치 않았다. 또한 조광조는 정치적 명분이 뚜렷했고, 모든 일을 끝까지 정열적으로 밀고나가는 사람이었다. 반대파에 대한 공격 역시 격렬했다. “벼슬을 얻으려고 애쓰거나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중요한 자리에 설 수 없게 되어, 겉으로는 칭찬하나 속으로는 욕하였다.”고 할 정도였다. 조광조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찬반 양편으로 갈라섰다. ●왕이 최고의 성리학자라야! 조광조는 요순시대의 재현을 확신했다. 1515년(중종15)의 증광문과시험 시권(답안지)에서 그는, 명도(明道)와 근독(謹獨)을 통해 황금시대를 복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펼친 이상(理想) 정치운동의 핵심은 왕도정치(王道政治)에 있었다.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조광조는 이런 주장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왕을 만인의 스승, 즉 군사(君師) 또는 철인군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광조는 중종에게 ‘근독’과 ‘명도’를 주문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상정치가 구현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훗날의 예를 보아도 ‘군사’를 자처한 당대 최고의 석학 정조 때에도 요순시대는 재현되지 않았다. 그야 어떻든 조광조는 이상정치의 구현을 위해 중종에게 대학과 중용 공부를 강조하였다. 특히 대학을 중시하였다. “비록 대학 한 권밖에 없다 해도 (왕은)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조광조는 ‘소학’도 높이 평가했다. “세종 때는 오직 ‘소학’의 도(道)에 마음을 썼으므로, 그 책을 널리 반포하였습니다.”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주희를 비롯한 송나라의 성리학자들도 이미 ‘소학’과 ‘대학’이 표리관계임을 말하였다. ‘소학’은 성리학적 행동규범을 가르치는 교과서요, ‘대학’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길을 단계적으로 제시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광조는 성리학으로 새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중종 물론 조광조 등이 이념에만 매달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실제로 공신세력을 약화시켰고, 현량과를 실시하고 향약을 보급하는 등 몇 가지 개혁안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럼에도 기묘사화라는 역풍에 휩쓸려 좌초하였다. 조광조 등은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대세를 뒤엎지 못하였다. 왕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종이었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왕은 누구든 불신하였다. 우선 자신을 추대한 반정공신들도 믿지 못했다. 사림파를 요직에 임명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림파라고 해서 중종이 끝까지 총애할 리가 없었다. 중종은 4년간의 정치적 밀월 끝에 결국 조광조를 배신하였다. 처음부터 중종에게는 이상정치의 구현이라는 바람이 없었다. “왕은 (경연에서) 몸이 피로하고 괴로워서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고쳐 앉기도 하고 때로는 용상(龍床)에서 퉁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조광조와 김식 등은 중종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종이 ‘소인’(小人)들에게 쏠리는 날이 올 것을 예측하였다. 특히 조광조는 자신들이 붕당(朋黨)을 만든 죄로 일망타진될 것을 내다보았다. 이러한 위험을 짐작하고서도 왕도정치의 길을 계속 걸어갔으니, 그들은 이상을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조광조의 유산 중종이 공신들의 품에서 벗어날 생각을 구체화한 것은 1512년(중종7년)쯤이었다. 부왕 성종이 사림파를 등용했던 것처럼 중종도 새 인물들을 찾았다. 그에 부응해 이조판서 안당이 조광조를 추천했다. 조광조는 동지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이성동 등 급진파는 삼정승까지 노골적으로 공격하며 개혁을 외쳤다. 왕과 공신들은 그들을 혐오하였다. 1519년 겨울, 그들은 사화를 일으켜 이상주의자들을 내쫓았다. 그러자 낡은 정치가 재연되었다. 중종은 외척과 권신들을 들였다 내쳤다하며 세월을 허비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선비들은 ‘불나비’ 조광조를 잊지 못했다. 그들은 조광조의 뒤를 이어 성리학 지상주의의 깃발을 더욱 높이 세웠다. 마침내 백인걸 등의 노력으로 조광조는 문묘에 배향되어 조선 선비들의 영원한 아이콘이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여기저기서 굉장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그 본영인 미국 경제가 벌써 몇 년째 신음소리를 낸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은 아예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사회의 현안인 양극화와 청년실업의 문제 또한 신자유주의의 여파다. 그래서 지금은 근본적인 대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고식적인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 의미의 새로움이 요청된다. 우리가 조광조의 부활을 소망하는 이유다. 21세기의 그 개혁사상가는 구체제의 귀결인 지배와 종속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 공존공생의 평화공동체를 일으킬 것이다. 착취와 오염으로 병든 생태계에 새 숨을 불어넣을 그의 출현을 기다린다. 백승종(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 “해외경험 김정은, 北변화 희망 품었을 수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북·미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개혁 추진’을 기대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어르신이 젊은이에게 진지하게 충고하는 듯한 투여서 눈길을 끌었다. 힐러리 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20대 후반인 김정은의 의도를 판단하기는 너무 이르다.”면서 “김정은이 해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북한의 여건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 세계에 노출된 김정은이 북한의 오랜 고립을 종식시킴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길 기회를 잡았다.”면서 “앞날이 창창한 청년인 그는 북한을 21세기로 나아가게 하는 지도자가 돼야 하며 인민을 교육해 그들의 재능을 깨닫게 해 줘야 한다.”고 했다. 한편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국(MDA) 국장인 패트릭 오라일리 중장은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관련, “이번 실패로 북한이 우주항공 프로그램에서 기술적 진전을 전혀 이루지 못했음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청문회에 출석한 중앙정보국(CIA) 출신 군사 전문가 프레데릭 플라이츠는 “북한이 단시일 내 3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은 50% 미만”이라며 “북한은 서해에서 미사일을 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동해 명칭 ‘한국해’로 바꿔야 ‘독도는 한국땅’ 설득력 더해”

    “동해 명칭 ‘한국해’로 바꿔야 ‘독도는 한국땅’ 설득력 더해”

    독도를 지키려면 동해의 영문표기를 ‘한국해’(Korea sea)로 변경해 국제사회에 호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독도본부는 최근 ‘조선해, Korea sea-동해의 정식 이름’(우리영토 펴냄)이라는 책을 내고, 한국인들 대다수가 지지하는 ‘동해’라는 보통명사를 일본해와 병기해 달라고 할 경우,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한국해’로 명칭을 바꾸어 한목소리를 내자고 주문했다. 17~19세기 국제사회에 통용된 표기가 조선해인 만큼 한국해로 변경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남가주대학(USC)이 소장한 서양 고지도 168종을 살펴보면 조선해라는 표기가 127건이고 동해라고 단독표기한 것은 한 건도 없다. 일본해라는 표현은 11개다. 조선해라는 표기는 18세기 제작된 지도에는 93건, 19세기 지도에는 30건이 나온다. 반면 일본해라는 표기는 19세기부터 나타나는데 9건이다. 즉 서양의 조선 동쪽바다에 대한 주된 공인된 인식은 ‘조선해’(Sea of Corea, Mer de Coree, Gulf of Corea, Chosun Sea, Zee van Korea, 朝鮮海)라는 방증이라는 주장이다. 영국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고지도 90건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다. 18세기 제작된 지도들은 조선해로 표기한 것이 62개이고, 동해라는 표현은 17세기 1건, 18세기 7건 등 8건에 불과하다. 일본해의 경우는 19세기 6건, 20세기 3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창용 21세기국가정책연구원장도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이 끝난 뒤 슬슬 조선해를 일본해로 개칭해 나가기 시작하더니, 러일전쟁이 끝난 뒤 1905년 주인 없는 땅이라는 억지 주장으로 독도를 강점했고, 독도는 다케시마로, 조선해협은 쓰시마해협으로, 조선해는 일본해로 개칭했다.”면서 “동해(East Sea)라는 방위적 이름으로는 세계를 상대로 설득하기 어렵고,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의 고지도는 모두 ‘조선해’(Sea of Corea)이면서 동해 표기를 홍보하는 것도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종학 전 독도박물관장은 이 책에서 ‘잊혀진 우리의 바다 조선해’라는 소논문을 통해 “독도박물관이 소장한 일본 제작 지도를 살펴보면 ‘조선해’로 표기돼 있고, 1907년부터는 ‘조선해’ 또는 ‘대한해’라고 표기됐다. 이것이 어느덧 ‘일본 서해’, ‘조선일본양해’로 바뀌더니 ‘일본해’로 굳어졌다.”고 한탄하면서 “일본은 ‘조선해’에서 ‘일본해’로 나가지만, 한국은 ‘조선해’라는 고유명칭에서 방위개념인 ‘동해’로 퇴보했다.”고 비판했다. 이돈수 한국해 연구소장도 “한국해로 표기한다고 해서 민족주의적이거나 이기적인 주장이 아니다.”라면서 “국제사회에서 논리적으로 ‘일본해’에 대응하려면 한국해가 최선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종교플러스]

    ●단기선교여행 표준지침 발표 선교한국 파트너스는 최근 ‘21세기형 단기선교여행 표준지침’을 발표했다. 선교한국 39개 회원단체가 서명한 이 표준지침은 전국 교회에 배포돼 선교여행 준비 지침으로 사용된다. 표준지침서는 선교한국 파트너스 사무실로 연락하면 받아볼 수 있다. 선교한국 파트너스는 이와 관련해 다음 달 8일 남서울교회에서 ‘이제 우리는 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연다. ●국제선센터, 외국인 스님 연수회 조계종 교육원은 다음 달 11일 서울 신정동 국제선센터에서 ‘외국인 스님들을 위한 연수회’를 개최한다. 이번 연수회는 국내외서 활동하는 외국인 스님들에게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주요 사업과 활동 방향을 설명하고 외국인 스님들의 동참을 독려하기 위한 자리. 교육원 측은 이날 외국인 스님들에게 한국불교 세계화 관련기관에 대한 정보와 주요사업을 전달하고 외국인 스님들이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 및 요구사항을 수렴해 종단 운영에 반영한다.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창립총회 탈북민 교회·선교단체 연합체인 ‘북한기독교총연합회’(북기총)가 21일 오후 3시 서울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창립총회를 연다. 북기총 창립총회 준비위원회는 “북한을 잘 아는 탈북민들을 영적 신앙으로 무장시켜 통일의 날을 대비하고 북한 복음화를 준비하고자 기독 탈북민 단체들이 힘을 모았다.”고 밝혔다. 북기총은 특히 북한의 봉수·칠골교회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을 북한 기독교회 대표 기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 [2012 런던올림픽 D-100] 돈 돈 돈… “한 살배기도 입장료 내라”

    [2012 런던올림픽 D-100] 돈 돈 돈… “한 살배기도 입장료 내라”

    “런던올림픽은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지만 그래도 갈 길이 멀다. 세부적인 개선, 미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미세한 개선은 수백분의 1초로 승부가 갈리는 경기에서 메달의 색깔을 결정한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올림픽 준비사항을 최종 점검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데니스 오스왈드 위원이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LOCOG)에 당부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경기 시설들은 모두 완공되면서 손님 맞이를 위한 마무리 손질 단계다. 런던은 2005년 유치 확정 이후 8년 동안 올림픽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경기시설 건립뿐만 아니라 잿빛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향으로 도심 재개발 사업도 같이 추진했다. 런던의 본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유분방한 활기가 넘치는 21세기형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경기장 접근도 자동차 이용을 제한하고 대중교통과 보행자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뒀다. 주경기장이 있는 올림픽공원은 런던 동부 스트래트퍼드의 리벨리 지역에 조성됐다. 창고와 쓰레기 매립지 등이 있어 낙후지역이었던 이곳은 시민들의 휴식처인 도심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재개발을 위해 철거된 건물 잔해의 90% 이상은 경기장 건설에 재활용됐다. 올림픽공원에는 주경기장 이외에도 수상스포츠센터, 농구·수구 경기장, 선수촌 등 9개의 시설이 들어섰다. 관람석 8만석 규모의 주경기장은 대회가 끝나면 해체돼 2만 5000석 규모로 줄어든다. 런던에는 이미 8만 5000석 규모의 웸블리스타디움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기장은 주민들을 위한 스포츠센터로 바뀐다. 주택 4000동이 들어선 선수촌은 주거단지로 변모한다. 경기장 신축에다 도심 재개발사업까지 겹치면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었다. 하원 공공회계위원회(PAC)는 이를 우려했다. 전체 경비는 올림픽 유치 신청 당시보다 4배가 증가한 115억 파운드(약 20조 8700억원)에 이른다. 이는 1948년의 영국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한 수준이다. 올해 올림픽은 64년 전에 치른 1948년 런던올림픽과 곧잘 비교된다. 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국고는 텅텅 비었고, 실업과 경기침체로 지금처럼 신음했다. 국가부채는 GDP의 250%에 달했고, 개최비용 74만 3000파운드는 당시 GDP의 0.01%였다. 반면 올해 올림픽 전체경비 추정치는 GDP의 0.7%다. 당시 영국은 ‘짠돌이 경영’을 했다. 새 경기장도, 선수촌도 짓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남자 선수들은 억스브리지 공군기지에서, 여자 선수들은 대학 기숙사에서 각각 체류했다. 조직위는 숙박을 제공했지만 선수들은 자기 타월을 가져와야 했다. 캐나다에서 수영장의 점프대 발판을 제공받는 등 다른 나라로부터 장비와 음식, 생수 등을 기부받았다. 1948년 올림픽은 크게 성공했다. 전후 처음 대규모 스포츠 행사가 재개되면서 인기가 엄청났다. TV 중계권이 처음으로 BBC방송에 1만 파운드에 팔렸다. 배정된 예산 가운데 1만 파운드를 남겼다. 3만 파운드를 벌어 9000파운드를 세금으로 냈다. 올해 올림픽에서 조직위원회는 입장권 판매를 대회 성공 개최의 관건으로 보고 이에 집중하고 있다. 전체 경기 입장권 880만장 가운데 75%가 일반판매됐다. 부모와 동반하는 1살 미만의 영아에게도 입장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3040’ 新복고 열광하라

    ‘3040’ 新복고 열광하라

    요즘 대중문화계는 1990년대에 푹 빠져 있다. 지난해 ‘세시봉’ 열풍에서 비롯된 7080 문화가 주목받았던 것과 달리 올해는 1990년대의 문화를 추억하는 ‘신복고’ 열풍이 한창인 것. 대중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왜 1990년대에 주목하게 된 것일까.  신복고 열풍의 선두주자는 누가 뭐래도 영화 ‘건축학개론’(①)이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는 250만 관객을 넘어 입소문을 타고 장기 흥행에 돌입했다. 이 영화는 1990년대 대중문화 정서를 관통하고 있다. MP3 대신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휴대 전화 대신 무선 호출기(삐삐)로 연락을 주고받던 시대적 배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영화 속에 삽입된 가요들은 당시의 추억을 더욱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1990년대 한국형 발라드의 중흥기를 대표하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X세대의 통통 튀는 가사로 인기를 끌었던 015B의 ‘신인류의 사랑’ 등은 단순한 OST를 뛰어넘어 당시의 시대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하나의 영화적 장치다.  영화 ‘댄싱퀸’(②)의 엄정화도 극 중에서 ‘신촌 마돈나’로 이름을 떨쳤던 91학번으로 등장하고,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도 노태우 정권 때 범죄와의 전쟁을 펼쳤던 1990년대 사회상이 영화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영화계에서 ‘가까운 과거’인 1990년대의 문화를 영화적 소재로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한국 대중음악은 황금기였던 1990년대 가요에 대한 향수도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3일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③)은 1990년대 인기 스타들이 총출동한 특집 ‘청춘 나이트’를 방송해 큰 호응을 얻었다. 출연진은 김건모, 현진영, 박미경, 구준엽, 김조한, 윤종신 등 발라드와 댄스 음악으로 가요계를 풍미했던 가수들이었다. 당시 히트곡이 이어지자 현장의 방청객은 열광적으로 환호했을 뿐만 아니라, 3040 시청자들이 “모처럼 신나는 무대였다.”는 평을 인터넷에 줄줄이 달았다.  1998년에 데뷔한 1세대 아이돌 그룹 신화의 컴백도 복고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24~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신화 14주년 기념 콘서트 ‘더 리턴’(④)에는 20~30대 여성 팬들이 대거 몰렸다. 신화와 학창시절을 보내다 지금은 직장인이 된 팬들은 ‘으쌰으쌰’, ‘퍼펙트 맨’ 등 신화의 히트곡을 따라부르며 추억을 곱씹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1990년대 LP음악 틀어주는 주점 ‘밤과 음악사이’에도 당시 향수를 느끼려는 3040들이 몰려들고 있다.  1990년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때가 대학가에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기로서 두 문화가 공존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1990년대는 386의 집단주의 대신 개인주의 문화가 들어오고, 대중문화가 캠퍼스로 본격적으로 유입된 시기”라면서 “15~20년 전 비교적 가까운 시대인 ‘신복고’는 아련한 느낌을 줄 수 있고, 아날로그 정서가 남아있기 때문에 3040은 물론 그 윗세대 관객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왕자웨이의 영화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유행하던 ‘90년대 학번’들은 문화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첫 세대였다. 쿨하고 세련된 도시 감성과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공존하던 1990년대는 현재의 감수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평론가는 “90년대, 2000년대 영화계가 20년 전인 70, 80년대 복고가 유행했는데, 올해 유행하는 90년대 신복고도 이런 ‘빼기 20년 법칙’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의 중흥기였던 90년대 학번들이 이제는 문화 콘텐츠의 중추적인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로 등장했다는 점도 ‘신복고’ 열풍의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을 비롯한 90년대 학번 감독들이 영화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과 1994년에 데뷔해 전성기를 맞았던 박진영은 YG와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으로 가요계를 이끌고 있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안정된 3040들도 대중문화를 소비하는데 적극성을 띠는 것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성시권씨는 “7080세대의 세시봉 열풍과 10대 아이돌 음악 사이에서 즐길 문화가 부재했던 세대들에게 90년대 문화의 부활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면서 “마케팅에서 경제력을 갖춘 3040을 안정적으로 공략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94학번 홍민수(36)씨는 “90년대가 바로 전인 것 같았는데, 벌써 추억으로 소비되니까 좀 씁쓸하기도 하지만 반갑기도 하다.”면서 “IMF 전 90년대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풍족했고, 가요계에는 김건모, 신승훈, 듀스, 015B 등 좋은 음악, 가수들이 많아 행복했다.”고 추억했다.  김동률, 이적의 소속사인 뮤직팜의 강태규 이사는 “음반으로 음악을 소비하던 1990년대는 생산자와 수용자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대중음악의 호황기였다.”면서 “당시 수혜세대인 90년대 학번들은 능동적으로 문화를 소비하고 참여하는 습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문화 콘텐츠의 측면에서도 당분간 신복고 열풍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은주·김정은 기자 erin@seoul.co.kr
  • [CEO 칼럼] 벽이 허물어져야 하는 시대/장영철 캠코 사장

    [CEO 칼럼] 벽이 허물어져야 하는 시대/장영철 캠코 사장

    최근 몇년 새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가 많아 감회가 덜하겠지만, 건국 이래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온 국제행사는 뭐니뭐니해도 ‘88서울올림픽’일 것이다. 대회 이념인 ‘화합과 전진’을 잘 표현한 공식 주제가의 후렴구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마 올림픽 이듬해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을 이뤄 마치 그 노랫말이 예지력을 발휘한 듯해 가슴에 더 와 닿지 않았나 싶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독일 통일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지난 세기를 지배했던 시대착오적인 유물이 사라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20세기는 높든 낮든 물리적이고 인위적인 수많은 장벽으로 꽉 막혀 있던 시대였다. 베를린 장벽,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을 비롯해 우리 국토의 허리를 가르는 휴전선 등 동서냉전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장벽이 개인 간, 나라 간 소통을 불가능하게 했다. 대한민국을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만들고 있는 휴전선만 사라지면 세상을 가르는 모든 벽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최근 북한의 로켓 발사로 남북 간 긴장이 여전하지만 언젠가는 올림픽 주제가가 ‘예견’한 것처럼 휴전선이 사라지는 날을 꿈꿔 본다. 물리적 장벽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휴전선만큼 우리를 가르는 높고 두꺼운 벽을 맞닥뜨릴 때가 많다. 출신지역, 학력, 성별, 지위, 신분 등으로 사람과 조직을 구분짓게 만드는 편견들이 여전히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어 안타깝다. 지난 4·11 총선에서도 지역주의의 망령을 제거하지 못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절망스럽지는 않다. 최근 들어 부쩍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벽을 무너뜨릴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출현으로 개인 간 정보 유통량이 증가됨에 따라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고 있는 폐쇄성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경제활동의 영토 또한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전 세계로 넓어지고 있다. 이제 과거처럼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제주체를 감싸주던 국경, 지역별 관행, 법적 환경 등의 보호막이 지금도 기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기대이다. 정치·경제·사회의 각 부문에서 폐쇄성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오히려 기득권에 의지하고 이를 더 강화하고자 한다면, 국가 발전이 저하됨은 물론 생존마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 우리는 대외교역을 통해 여러 국가, 기업과 치열하게 다투며 제조업의 경쟁력을 당당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유럽연합(EU), 미국 등을 넘어 더욱 확산되면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가 세계와의 직접 경쟁에 노출될 것이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시대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 의료 등 공공서비스, 연구·개발(R&D) 등 일부 부문에서는 여전히 물리적인 개념의 국경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수용하지 않고 안주한다면 고립을 자초해 결국 경쟁력 상실이라는 쓰라린 결과를 맛보게 될 뿐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독자적으로 진화한 고유의 생태계를 형성했던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생물종들이 외래종의 유입으로 멸종 위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전문가들은 한때 세계를 석권했던 일본의 전자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것 또한 자국 시장에만 안주했던 탓으로 설명한다. 21세기는 모든 벽이 허물어진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아무리 벽을 높이 쌓는다 해도 변화의 바람을 막지 못한다. 그 흐름을 억지로 방해한다 하더라도 벽은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 벽 뒤에 쪼그리고 앉아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다면 역사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 한·중 수교 20주년 공동취재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과 21세기 한·중 교류협회(회장 김한규 전 총무처장관),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한·중 언론 공동취재 프로젝트’가 16일부터 20일까지 중국 베이징과 장쑤(江蘇)성 지역에서 진행된다. 서울신문 등과 중국의 인민일보 등 한국과 중국에서 각각 9개 언론사가 참가해 녹색산업 및 환경보호 등에 대해 취재한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소장

    [저자와 차 한 잔]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소장

    논어(論語)를 이리 보고 저리 본 책이 쏟아진다. 왜 논어인가. 사상의 꼭대기에 놓인 공자가 ‘가라사대’ 수많은 명언을 쏟아내시니 이 험한 세상 나침반으로 삼기에 딱이다. ‘논어’의 첫 문장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이다. 평생 공부를 강요하는 이 사회를 이미 2500년 전에 간파했으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으리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51) 소장은 다른 생각이다. 특히 ‘논어’를 처세서로 보는 것이 마뜩하지 않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난 이 소장은 “공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논어’는 성공한 책이지만, 공자 자신은 처세에 실패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처세서로 나온다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강조하는 ‘공자의 의미’는 끊임없이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던 지식인이라는 데 있다. “공자의 일생을 파악하지 않으면 ‘논어’의 많은 말들은 맥락 없이 엉뚱하게 여겨질 뿐”이라는 그는 “그 말들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알아야 비로소 큰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그가 공자의 일생을 조명하고, 그의 말을 분석한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옥당 펴냄)를 내놓은 이유이다. ‘학이시습’을 놓고 보자. 이 구절만 놓고서는 거부감을 느꼈다고 했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외우기만 하는 주입식 교육에, 무지막지한 폭력이 수반되기도 했던 배움이 즐겁다니,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거죠. 특히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에 반기를 들면 사형을 당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왜곡된 역사를 강요당했죠. 그런 역사를 걸어온 우리에게 학(學)이 어찌 즐거울까요.” 그래도 스무 편에 달하는 ‘논어’의 첫 편 첫머리가 ‘학’이라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생겼다. 책을 뒤적거리고 공자의 일생을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공자는 늘 수기(修己)와 제세(濟世), 이인(利人)을 추구했습니다. 안으로는 자신의 몸을 닦고, 밖으로는 세상을 구제하면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죠. 유학자가 평생을 따라야 하는 ‘학’이 이 한마디에 담겨 있는 겁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리를 한 글자로 응축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삶이 어렵고, 권력자의 주변이 시끄러운 이유는 이 한 글자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왜곡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럼 이토록 도의 경지에 오른 공자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 소장은 “전쟁과 권력이 난무한 춘추전국시대에 이상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공자를 현실 군주들이 기용하고 싶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하지만 공자의 삶과 말은 21세기에 부활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난 은자(隱子)들이 많았는데, 공자는 세상에 나가려고 한 사람이었어요. 책에 은자들과의 대화도 많이 썼지만, 그들은 공자에게 ‘안 될 것을 하는 자’라고 조롱했죠. 그 은자들은 다 사라지고 공자는 남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잘못된 천하를 바로잡고,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던, 참지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속수지례(束脩之禮)가 있다. ‘육포 열 조각’이라는 뜻으로, 이것 이상만 가지고 오면 누구든지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공자가 재물을 받아야 가르치겠다는 것이었을까. 하찮은 육포만으로도 가르침과 바꿀 수 있다는, 최초의 ‘반값등록금’ 개념이다. 유교무류(有敎無類)라고, 가르치는 데는 계급이 없다고도 했다. 인불양사(仁不讓師·인에 대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로서, 스승의 잘못도 거리낌없이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논했다. 이 소장을 만난 날이 4·11 국회의원 선거 당일이라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나라의 4년을 책임질 국회의원들의 덕목은 무엇인가. 그는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노나라 실권자인 계강자가 “무도한 자를 죽여서 도를 증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대가 착하고자 하면 백성도 착해지리다.”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너나 잘하라.’이다. “백성에게는 더없이 따뜻했고 지배층에는 한없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인물이 공자였다.”는 그는 “공자 같은 인물이 나타나는 세상이 되면 사람들은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공자의 삶과 말을 살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자가 광야에서 방랑한 시기를 설명하면서 신라 말 최고의 지식인 최치원이 관직을 떠나 노년에 은거한 배경을 설명하고, 도를 실천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공자를 소개하면서 고려 말 자신의 개혁프로그램을 실현하기 위해 이성계과 손잡은 정도전을 비교한다. 또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한 공자를 두고, 조선시대 부당한 토지 문제를 고민하면서 ‘한전론’을 주창한 이익을 떠올리기도 한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 봄 봄 봄… 연극도 꽃핀다

    올봄, 연극계가 풍성하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선 배우의 작품이라든지, 탄탄한 스토리와 독특한 소재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작품이 연달아 공연되기 때문이다. 이윤택 연출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연극 ‘궁리’는 관노비 출신의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의 역사적 실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장영실은 21세기에도 조선의 왕 못지않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442년(세종 24년) 임금이 타고 갈 수레의 바퀴가 빠지는 등으로 문제가 되자 태형 80대를 맞고 쫓겨났다는 기록(조선왕조실록)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장영실은 중국 원나라에서 귀화한 과학자 아버지와 부산 동래현의 관노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인간 장영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오직 그의 이름과 그가 남긴 발명품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궁리’는 장영실의 역사적 실종을 당시 조선을 둘러싼 동북아 국제 정세 속에서 파악한다. 세종대에 중국을 등에 업은 사대부들의 사대주의와 천민을 포함한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주 세력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장영실이 희생됐다고 해석해 낸다. 궁리는 24일부터 5월 13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 무대에 오른다. 1만~5만원. (02)3279-2233. TV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엄마로도 유명한 카리스마 넘치는 여배우 이혜영이 13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5월 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헤다 가블러’를 통해서다. 한국에서 프로 무대로 처음 선보이는 ‘헤다 가블러’는 ‘현대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으로 애정 없이 결혼한 가블러 장군의 외동딸 헤다가 옛 애인에 대한 사랑과 질투로 자살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연극이다. 2만~5만원. 1644-2003. 한 무대에서 공연계 대표 연출가들의 각기 다른 연극 작품 3개를 연달아 볼 특별한 기회가 마련된다. 국립극단 손진책 예술감독과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의 윤호진 연출가,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 아버지’의 박근형 연출가가 21일부터 5월 13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단막극 연작’을 올린다. 이들의 작품은 40~50분 분량의 단막 연극으로 극장에선 세 편이 연달아 공연된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데스크 시각] 아직도 견고한 지역주의/김학준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아직도 견고한 지역주의/김학준 사회2부 차장

    그랬다. 이번에도 지역주의는 어떤 변수나 명분보다 상위의 법칙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인물 본위로 뽑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강조했으나 결과는 당이었다. 그것도 수십년째 신물나게 찍어온 정당에 대한 일편단심이었다. 지역구도 완화를 예측한 사람들만 머쓱하게 됐다. 대구·경북·경남·울산은 새누리당이 거의 싹쓸이했다. 경남에서 민주당과 무소속이 각각 1명씩 당선됐을 뿐이다. 18대 총선 때 이들 지역에서 친박연대(4명)를 제외하더라도 11명의 무소속·민주노동당·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점을 감안하면 지역주의가 오히려 강화된 느낌마저 준다. ‘낙동강 벨트’의 보루인 부산에서는 민주당이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새누리당 이정현·정운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각각 적지인 광주, 전주, 대구에서 선전할 때만 해도 지역구도 타파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지역주의는 견고했다. 이정현 후보는 “노랑 일색의 땅에 붉은 싹 하나만 틔워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지만 시민들의 마음을 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쯤 되면 대의제도가 지역주의 앞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정치학자들이 강조하는 “민의는 정확하다.”는 말이 얼마나 입에 발린 수사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21세기 들어 선거판에도 탈이념 기류가 형성되고 있지만 지역주의만은 철옹성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지역적 기반을 시민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강변도 현실성 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대의제도 실현을 위해서는 선거가 필수적인 전제다. 하지만 선거에 지역주의가 너무 강하게 작용함으로써 대의제의 모순과 한계로 작용한다. 지역주의 수혜자는 당연히 새누리당이다. 영남 지역구가 67곳으로 호남(30곳)보다 2배 이상 많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 패배에도 불구하고 제1당을 차지했다. 40년 넘게 정권을 잡아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지역주의는 웬만한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최소한 영·호남에 한정해 볼 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긴 짧은 기간에 생겨난 이슈가 국민의 뇌리와 뼛속까지 박혀 있는 지역주의를 잠재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지역주의의 원인과 현상을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이라는 말이 수십년째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말해야 한다. 국민의 상식과 이성에 호소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은 오랜 경험이 잘 말해준다. 유권자들의 의식개혁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면 제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비록 똑 떨어지는 묘안은 아니지만 중선거구제를 떠올려 본다.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는 지역주의 폐해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1990년대 이후 정치권에서 도입이 거론돼 왔다. 그러나 정치주체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다른 지역에 뿌리를 둔 정당의 후보는 2등 당선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제대로 논의의 장에 오르지 못했다. 즉 중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를 경우, 지역구도 타파 의도와는 달리 “영남은 새누리당, 호남은 민주당 후보가 모두 당선되거나 지역 출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보면 이런 분석에 크게 힘이 실리지 않는다. 비록 당선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영·호남 20여곳에서 지역기반이 없는 정당의 후보들이 의미 있는 선전을 펼쳤다. 지역구도가 아직 총론에서는 완강하지만 각론에서는 흔들릴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후보들이 2명 이상을 뽑는 중선거구제에서 당선 가능하리라는 전망이 무리만은 아니다. 20∼30대를 중심으로 싹 트고 있는 지역주의 타파 분위기에 중선거구제로 불을 지피면 지역구도를 허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선거구제는 군소정당 난립 등의 단점을 안고 있지만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대명제가 우선이다. kimhj@seoul.co.kr
  • [사설] 아직도 인신매매·강제노역이 판치다니…

    ‘현대판 노예시장’이 따로 없다. 해양경찰청(청장 모강인)이 엊그제 밝힌 지적장애인 인권유린 참상은 우리가 과연 21세기 문명국가에 살고 있는가 의문이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해경에 따르면 이모씨 등 일당 6명은 전북 군산에서 여관을 운영하며 수십년 동안 지적장애인 수십명을 남해안 외딴섬 양식장과 어선 등에 강제로 팔아넘겨 임금을 갈취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당 중 4명은 가족관계로 이 같은 일을 모친으로부터 대물림받아 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은 총책, 모집책, 성매매알선책 등 업무를 분장해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지적장애인들 명의로 사망과 부상에 대비한 각종 보험에 가입한 뒤 가로채려 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치밀하고 총체적으로 이뤄진 범죄라면 이런 조직이 더 있을 공산이 크다. 경찰이 밝힌 군산과 목포지역 어선과 낙도뿐 아니라 전국 해안 어느 후미진 곳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해 지적장애인 인권유린 실태를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강제노역에 시달려온 이들은 사회연령이 9.25세, 사회지수가 19.8세로 지적·심리적으로 일상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틈새를 파고드는 지적장애인 대상의 파렴치 범죄는 줄어들기는커녕 날로 지능화·교묘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의사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니 지적장애인의 인권은 누가 대신 말해주고 행동해주지 않는 한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여타 장애인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수십년 동안 대낮에 현대판 노예장사가 버젓이 행해져 온 것이야말로 지적장애인에 대한 우리 인식의 현주소다. 지적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부터 거둬 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섬노예’ 사건을 지적장애인에 대한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기고] 전자정부 1위와 국가브랜드/손연기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기고] 전자정부 1위와 국가브랜드/손연기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국력을 이루는 요소는 다양하다. 국토의 넓이, 인구수, 자원의 양과 질, 국방, 경제와 더불어 문화·역사·교육 등 다양한 광의·협의적 요소를 통해 국력을 따진다. 20세기를 지나면서는 지구촌 개념의 확대에 따라 국가 간 교류의 질과 관계유지 및 지속발전 능력 등이 국력을 이루는 새로운 요소로 등장했다. 21세기 들어 부쩍 주목받는 국력의 요소로 국가 브랜드를 꼽을 수 있다. 국력을 이루는 기존의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국가 브랜드로 연결되는 까닭에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역사 속에서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격동이라는 단어로 함축되는 근대만 해도 그렇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짧은 기간 산업사회의 성장기반을 닦은 ‘한강의 기적’, 부족한 부존자원의 한계를 극복한 힘의 원천인 ‘고도의 교육열’, 올림픽과 월드컵 등을 통해 주목받은 ‘스포츠 강국’, 그리고 반세기 넘게 휴전선을 경계로 총부리를 맞댄 ‘분단국’ 등이 그것이다. 특히 지난 30여년 동안 ‘산업사회는 뒤졌지만 정보사회는 이끌어간다.’는 뚜렷하고 확고한 목표를 갖고 추진해 획득한 ‘정보화 강국 코리아’라는 이미지는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속성상 친환경성, 지식기반, 지속성장을 담고 있어 더욱 그렇다. ‘정보화 강국 코리아’는 국가이미지를 넘어 국가 브랜드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ICT에 기반을 둔 산업·사회의 발전을 선도하는 가운데 정보화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도국’의 입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최근 ICT사회를 선도하는 ‘정보화 강국 코리아’를 세계 속에 확인시킨 낭보가 있었다. 유엔은 국가 간 전자정부발전 수준을 비교해 글로벌 전자정부 협력 촉진 및 국가경쟁력 강화를 유도하고자 지난 2003년부터 유엔 회원국 190여개국을 대상으로 전자정부 수준을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유엔 전자정부 평가 세계 1위에 이어 2012년에도 1위를 달성하며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유엔이 발표한 2012년 전자정부 평가 결과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발전지수, 온라인 참여지수 부문에서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해 종합 1위를 차지했다.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국가발전 모델을 수입하는 나라였다.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ICT 기술을 앞서 구현하는 가운데, 사회 각 부문에서 ICT 기반의 앞선 모델을 그려 가고 있다. ‘정보화 강국 코리아’는 정부는 물론 온 국민이 짧지 않은 기간에 함께 만든 국가 브랜드다.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 브랜드를 앞세워 또 다른 국가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개도국은 물론 정보화 선진국들조차 ICT에 기반을 둔 한국의 성장 배경과 꿈을 배우고자 힘쓰고 있다. 나아가 우리가 먼저 찾아가 우리가 이룬 것을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구촌 안에서 ICT 기반의 앞선 경험과 비전을 나누고 누리는 모습을 통해 ‘ICT 리딩 코리아’라는 업그레이드된 브랜드를 이끌어 내는 내일을 기대한다.
  • 섹시한 하이힐… 냄새나는 ‘출생의 비밀’

    ‘하이힐의 유래’라고 운을 떼면 벌써 몇몇 사람들은 쿡쿡 웃기 시작할 것이다. 유럽의 하루 일과는 창 열고 길바닥에다 요강 비우는 것으로 시작됐다. 하수도 시설이 시원찮아서다. 파라솔은 여자들이 머리 위를 덮치는 오물을 막아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이힐은 오물 범벅인 땅 위를 걷기 위한 일종의 나막신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남자들은 나막신에서 묘한 힘을 발견해냈다. 뒷부분을 극단적으로 높이면 사람의 자세를 변형시켜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는 데 도움 된다는, 그래서 여자가 더욱 섹시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더 은밀하게는 중국의 옛 풍습인 전족과 같은 원리라는 주장도 나온다. 요즘은 아예 하이힐 밑바닥에 빨간 밑창을 붙여 두는 데서 이는 더 명확히 드러난다. 섹스 어필이다. ‘사물의 민낯’(김지룡·갈릴레오SNC 지음, 애플북스 펴냄)은 이런 류의, 그러니까 현대 세계의 풍속사라 할 만한 내용들을 가득 담았다. 은밀한 것·익숙한 것·맛있는 것·신기한 것·재미있는 것 등 5가지 카테고리 아래 모두 49가지 사물들의 유래를 밝혀놨다. 비아그라, 시멘트, 우표, 치즈, 게임기, 엘리베이터, 콘플레이크, 뽀로로, 헬로키티 등을 다루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버무려 놓았기에 읽는 내내 큭큭 웃을 수 있다. 가령 옛 로마 사람들의 치약은 오줌이었다. 심지어 포르투갈 남자의 오줌을 특별히 선호하기도 했다. 현대 의학자들도 일정 부분 인정한다. 암모니아 성분이 긍정적 역할을 하고 현대 치약에도 이 성분이 약간 들어 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산 오줌은? 아마 로마로 운송되는 과정에서 발효돼서 효과가 배가됐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마요네즈 얘기도 재밌다. 18세기 중반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군이 전승파티를 열게 됐다. 그런데 너무 치열하게 싸운 뒤라 파티를 열겠답시고 마혼섬에 모이긴 했는데 뭘 만들어 먹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낙담한 요리사가 될대로 되라며 아무거나 막 섞어 소스를 만들었는데 이게 의외로 인기를 끌었다. 바로 마혼섬의 소스, 마혼네즈(Mahonnaise)가 원조라는 것이다. 마냥 웃긴 얘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8년 주기로 열리던 올림픽이 왜 4년마다 열리게 됐는지, 달력을 두고 지금이 21세기인지 아니면 18세기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은 과학적 지식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1만 68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1세기에 서양 고전풍을 고집하다… 그게 어때서?

    21세기에 서양 고전풍을 고집하다… 그게 어때서?

    젊은 작가의 작품 하면 으레 수수께끼를 기대할 법도 하다. ‘전위적’이라는 명분이 있으니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감정이 폭발하는, 아니면 감탄사가 터져나올 반어법적 요소를 숨겨놓은 작품을 선보일 것만 같다. 그런데 박민준(42) 작가의 그림은 그렇지 않다. 때는 바야흐로 21세기 최첨단의 시대라는데 버젓하니 서양 고전풍의 그림을 그린다. 숱한 도상과 상징을 품고 있던 그 시대 그림들 말이다. 이런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령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같은 움직임의 고양이를 두 번 보는 데자뷔 현상을 통해 공간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상이나 상징에서 흔히 고양이가 활용되는 방식이다. 배낭여행, 어학연수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그림 ‘읽기’가 유행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긴 했으나 지금은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옛이야기들 같아서다. 그런데 작가는 여전히 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가령 타로카드에서 힌트를 얻어 그린 ‘7개의 삶’ 같은 작품은 ‘정의’가 ‘중용’ 카드를 내밀고 있는 광경이다. 여자가 정의고, 내밀고 있는 그림이 중용이다. 여자의 뒷 배경에 있는 그림들은 모두 각 카드마다 ‘정의’, ‘용기’, ‘절제’ 같은 덕목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용이란 뭘까. ‘영원으로 가는 길2’에 그려진, 외줄타기하는 그림이다. 그 옆에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떨어지는 이에겐 중심 잡는 이가 이상형일테고, 중심 잡는 이에겐 떨어지는 이가 긴장감을 더해줄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올림포스의 방’이라는 작품에 다시 고스란히 등장한다. 여러 작품에다 일관된 세계를 부여한 것이다. 왜 이런 스타일이 좋았을까. “어릴 적부터 21세기의 카라바조, 21세기의 렘브란트가 되겠다는 게 목표였거든요. 굉장히 이성적으로 그림 그리는 푸생도 무척 좋아했어요.” 그러고 보니 2006년 홍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간 곳이 일본의 동경예대 ‘재료기법학과’다. “원래는 이탈리아를 가고 싶었는데, 언어 익히는데만도 몇년이 걸릴 것 같아서 일본을 택했습니다. 재료기법학과에선 뭘 배우냐고요? 물감, 캔버스 같은 재료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워요. 회화과라기보다 화학과하고 비슷해요.” 어린 시절부터 늘 궁금했단다. 어떻게 그 옛 시절에 만든 그림이 요즘 그림보다 더 때깔이 좋을까. 그 덕에 작품 하나 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고 한다. 캔버스 제작에서부터 밑그림 작업에다 세밀한 마무리까지 공이 많이 들어서다. 그나마 손이 워낙 빨라 서너 달이면 한 작품이 나온다 했다. 지향점도 특이하다. ‘예술가’보다는 ‘장인’이 되고 싶다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같은데, ‘예술혼’과 ‘영감’ 운운하는 ‘아티스트’가 워낙 넘쳐나다 보니 특이하게 들리기도 한다. 동시대 미술에 대한 생각도 간명했다. “스타일은 옛것이라도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그게 동시대 미술이라 했다. 요즘은 약간 벗어나볼까 생각 중이다. 기법적인 부분에 너무 관심이 쏠려서다. 그러고 보니 작품 가운데 ‘아르고호의 선원들’이 눈에 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원정대에 빗댄 것인데,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는 작가가 투영되어 있다. 그 결과는? 전시장 입구에 걸린 ‘무곡’ 연작을 보면 된다. 스타일의 변화가 슬쩍 눈에 들어온다. 전시는 22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 (02)519-08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