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1살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인류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백범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한미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뉴스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14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주목받는 나사렛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주목받는 나사렛대

    충남 천안의 나사렛대학교가 높은 시청률로 종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로 주목을 받고 있다. 23일 나사렛대에 따르면 유아특수교육학과 김병건 교수가 드라마 속 ‘우영우’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와 연출자, 연기자에게 많은 자문을 했다. 제작진은 자폐인을 잘못 그려낼 경우 장애인들과 장애인 가족들에게 큰 피해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작가와 제작진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자폐를 잘못 묘사하면 사회적 반향이 크기 때문에 자문을 거절했으나, 대본을 읽고 난 후 자폐 스펙트럼의 인식 변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폐인들이 어떤 행동을 자주 하는지 등을 등장인물에 반영하며 ‘우영우’ 캐릭터를 제작진과 함께 만들었다. 김 교수는 “특수교육 측면에서 최종 목표는 자폐인들의 사회적 통합을 돕는 것”이라며 “우영우처럼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최고의 지원을 하더라도 그 효과는 반감된다”고 설명했다.나사렛대 음악학과에 재학 중인 21살의 임종현 씨는 ‘우영우 변호사’의 현실 판인 ‘피아니스트’로 불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그는 7살에 장애 판정을 받은 후 9살에 처음 건반을 접했고, 천재성을 알아본 중학교 방과 후 교사의 권유로 예고에 진학해 피아노를 공부했다고 한다. 박지원 교수는 임종현 학생의 실력은 장애인만이 아닌,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한다. 장애인은 물론 동양인들의 단점인 리듬감도 매우 안정적이고, 4~5페이지나 되는 어려운 곡도 금세 재현한다는 것이다. 임씨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내지 못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자신만의 연주를 위해 매일 6시간씩 연습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학기 학내 피아노 실기에서 1등을 차지했고, 장학금을 놓친 적도 없다고 한다. 임씨는 최근 ‘특별한 피아니스트 임종현’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자신의 연주 영상을 올리는 등 세상과 소통에도 나섰다.
  • ‘개콘’ 출신 고혜성, 간판 닦다 떨어져 영구 장애

    ‘개콘’ 출신 고혜성, 간판 닦다 떨어져 영구 장애

    개그맨 고혜성이 영구 장애 판정을 받게 된 사연을 털어놨다. 18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KBS2 ‘개그콘서트’로 얼굴을 알린 고혜성이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 이날 방송에서 고혜성은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 도망가’라고 했었다. 나는 늘 어머니가 도망가셔서 혼자 잘 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는 매일 같이 집에서 쌀 걱정, 월세 걱정하시고 돈 때문에 걱정하시고 늘 우셨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고혜성은 고등학교 자퇴 후 17살 때부터 생계에 뛰어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자퇴하고 17살 때부터 새벽 4시에 신문 배달하고, 힘든 밑바닥 일을 안 해본 게 없다. 총 20~30가지 되게 많이 했다”고 밝혔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했다는 고혜성은 25살이 되던 해에 간판을 닦던 중 3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그는 발뒤꿈치 부상을 입어 영구 장애 판정을 받게 됐다. 고혜성은 “평생 걸을 수 없다더라. 계속 기어 다니고 자빠지고 쓰러지고. 그걸 1년을 넘게 지옥 훈련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혼자서 피 흘리면서, 절뚝거리면서 재활했던 생각을 하면 저 스스로 너무 불쌍한 것 같다. ‘난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았지’ 싶었다”고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고혜성은 친동생 은성씨와 만나 과거 간판 닦을 때를 회상했다. 고혜성은 “둘이 같이 사다리 메고 다니면서 길거리에 더러운 간판 닦고 그랬다. 내가 그때 25살, 네가 21살 때였다”고 말했다. 이에 동생 은성씨는 “어떨 때는 가게 들어가서 ‘이거 간판 하나 닦는데 만 원인데 거지한테 적선하는 셈 치고 닦으시라’고 했었다. 그렇게 만 원씩 벌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은성씨는 또 “16~17살 때부터 쉬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봤다고 보면 된다. 형은 보면 ‘어떡하면 돈을 벌까?’ 그 생각밖에 안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에 고혜성은 “그렇다. 나는 돈만 생각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엄마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너도 뒷바라지하고. 하여튼 아빠 대신에 내가 어떻게든 우리집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고 공감했다. 고혜성은 코미디 무대를 떠난 뒤 7권의 책을 썼고, 현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프로그램이 갑자기 사라졌다. 어떻게 개그맨이 됐는지 책을 한 번 써보자 했다. 반응이 좋아서 많이 나갔다. 강연이 그때부터 계속 들어오더라”고 강사가 된 계기를 밝혔다. 한편 고혜성은 1975년생으로 2006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개그콘서트’의 ‘현대생활백수’ 코너에서 파란색 운동복을 입고 나타나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니? 다 되지”라는 유행어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 [열린세상] 아재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열린세상] 아재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건호 에이빅파트너스 대표

    ‘스타트업’이라는 말은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진 만큼 ‘기술과 혁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술과 혁신으로 막 사업을 시작한 신생기업이라는 의미다. 첨단기술, 혁신적 아이디어 그리고 소규모의 신생기업이라는 이 세 가지 요소는 불안정하지만 그럼에도 창대한 잠재성을 지닌 20~30대 청년들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20~30대 청년들이 스타트업을 만들고 성공한 사례가 많다.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가 19살 때 창업했고, 스티브 잡스는 21살, 빌 게이츠는 19살에 각각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그래서 그런지 스타트업 하면 ‘청년’이 떠오른다. 그러나 최근 스타트업에 대한 조사는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2018년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2007~2014년 사이 창업한 약 270만개의 스타트업들 중 상위 0.1%의 고속 성장을 이룬 기술혁신형 창업자의 평균 나이는 45세였다. 국내에서도 2021년 통계청 발표를 보면 50대와 40대가 창업한 기업의 ‘7년 생존율’이 각각 25.5%, 25.6%로, 30대 22.6%와 30대 미만 14.2%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아재’라 불리는 중장년 세대들이 MZ세대들보다 창업 분야에서 성적이 더 좋다는 것이다. 통계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많은 성공 사례들을 목격할 수 있다. 렌터카 가격과 조건을 비교해 주는 플랫폼 기업 ‘카모아‘, 문서 수발을 디지털화한 디지털 물류 기업 ‘디버’, 광학 센서로 질병을 모니터링하는 헬스케어 기업 ‘스카이랩스’ 등은 모두 게임회사나 대기업 등에서 경력을 쌓은 40대 이상의 중장년들이 창업하고 성장시키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들이다. 미국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다. 허핑턴 포스트, 아메리카 온라인, 피플 소프트, 고대디(GoDaddy) 등 이미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많은 회사들이 젊은 천재들이 아닌 소위 40세가 넘은 ‘아재’들에 의해 창업됐다. 이러한 통계와 사례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전문지식과 사업체 운영 노하우, 상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와 같이, 중장년들의 몸에 배어 있는 ‘무형자산’들이 창업에 큰 밑거름이 됐음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자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기술혁신형보다 단순생계형 창업의 비중이 증가한다는 산업연구원 최근 조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무형자산을 활용할 길이 마땅치 않아 시작은 쉽지만 경쟁은 치열한 생계형 창업에 올인하는 중장년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소중한 무형자산들이 대책 없이 방치돼 폐기 처분되는 셈이다. 이러한 국가적 낭비는 중장년들의 무형자산 즉,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이해가 낮기 때문이다. 중장년들의 무형자산은 개인만의 경험을 통해 개발돼 몸과 정신에 내재하는 일종의 암묵지(暗默知)다. 이 암묵지는 글이나 말로 전달하는 것이 어렵고 오로지 실행을 통해 드러난다. 또 한 개인의 암묵지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창업’이라는 모자이크를 완성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잘 드러나지도 않고, 개인별로 다르고 파편적인 암묵지를 활용해 창업은 물론 그 이후 성장까지도 가능토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창업교육이나 보육프로그램으로는 충분치 않다. 향후 관련 기관들이 이러한 특성들을 잘 반영해 중장년들 개개인의 독특한 무형자산을 잘 분석하고, 상호보완적 무형자산들을 매칭시켜 창업이라는 커다란 모자이크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중장년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된다면, 창업 생태계는 지금보다 훨씬 활력을 띠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성과도 배가될 것이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납’의 시대/우석대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납’의 시대/우석대 명예교수

    의회주의의 발상지 영국의 정치 수준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형편없었다. 영국 상류층의 타락상은 전설적이었다. 조지 3세의 장남인 웨일스(나중에 조지 4세) 왕세자는 동침한 여자가 7000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희대의 색마였다. 그의 천문학적 도박 빚은 의원 친구들이 국고에서 갚아 줬다. 정치인들 사이에는 알코올 중독이 만연했다. 영국 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인물은 ‘영국의 양심’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였다. 21살에 정치에 입문한 윌버포스의 첫 번째 목표는 도덕 개혁이었다. 그는 하수종말처리장 수준의 정치판을 1급 상수원 수준으로 정화했다. 영리한 전략으로 고위 공직자의 과도한 음주, 음란행위 등 비도덕적인 행동을 적발 및 고발할 수 있는 법령을 선포토록 유도했다. 도덕성을 강조한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시대정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윌버포스가 추구한 또 다른 목표는 노예제 폐지였다. 인기 없는 투쟁이었다. 해양 강국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의 북미 대륙 수송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노예무역은 국가 수입의 3분의1을 차지했다. 노예무역은 오늘날 미국의 방위산업만큼이나 영국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점했다. 노예제 지지 세력은 모든 반대 목소리를 매국(賣國)으로 몰아 침묵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고위직에 오를 희망을 접어야 했다. 개인적 야망을 초월한 목표와 의미를 추구하는 인물이 나와야 했다. 그러면서도 여론 주도층의 호의를 얻을 만큼 진정성과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두 차례나 암살 위기를 넘긴 윌버포스가 적임자였다. 1833년 7월 26일은 승리의 날이었다. 의회는 대영 제국의 모든 노예를 1년 안에 해방하라는 법령을 선포했다. 병상에서 이 소식을 들은 윌버포스는 기뻤다. 그는 사흘 뒤인 7월 29일 새벽 3시 운명했다. 윌버포스 덕분에 영국은 미국보다 30년 앞서 노예제를 폐지했다. 윌버포스는 영국 정치를 ‘납’에서 ‘금’으로 바꿨다. 비로소 정치가 존경받을 만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확립됐다. 대통령의 품격 없는 태도와 언어, 공사(公私) 분별없는 배우자, 인사 혼란 등 먹구름이 가득하다. 리더십이 무너진 ‘납’의 시대다.
  • [이광식의 천문학+] “죽은 이를 위한 ‘사후 세계’는 없다”

    [이광식의 천문학+] “죽은 이를 위한 ‘사후 세계’는 없다”

    "신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물리학자로 세인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던 스티븐 호킹이 이승을 떠난 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저승에서 그는 과연 천국에 갔을까?  21살 때부터 루게릭병을 앓아 운신을 잘 못했던 그가 무슨 큰 죄를 지을 리도 없었을 테니 천국을 믿는 사람들은 그가 천국으로 갔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전에 호킹은 자신은 천국에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말해왔다.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호킹은 죽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천국이나 사후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일 뿐이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한 다음 “뇌는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다.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된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뉴턴이 역임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루카스좌 교수였던 스티븐 호킹은 지난 세기 최고의 우주물리학자로 손꼽힌다. 그의 중요한 과학적 업적으로는 로저 펜로즈와 함께 일반상대론적 특이점에 대한 여러 정리를 증명한 것과 함께, 블랙홀이 열복사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가장 빼어난 우주론자로 21세기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린 호킹은 그의 저서 <위대한 설계(Grand Design)>를 통해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무신론은 조강지처였던 아내 제인 사이에 불화의 씨앗이 되어 결국 이혼에 이르는 불행한 개인사를 가져왔다.  "우리 행동에서 위대한 가치를 추구해야" 21세 때 불치병인 루게릭병 진단과 함께 몇 년 안에 사망할 것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호킹은 2009년 미국 투어 강연을 마친 뒤 심각한 합병증으로 1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지냈는데, 이 무렵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지난 49년간 언제라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살아왔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빨리 죽기를 바라지도 않았다”고 밝히며 “이 삶 동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병은 내 인생에 구름을 드리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병 덕분에 인생을 더 즐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호킹은 우리가 우리 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놨다.  “우리는 우리 행동에서 위대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호킹은 또다른 인터뷰에서 신과 종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우리가 모든 이론을 다 발견했다면, 이는 인간 이성의 궁극적인 승리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재 과학은 보다 믿을 만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의 의미는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아는 모든 것을 우리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난 무신론자다." "발밑만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별을 보라."  2012년 런던패럴림픽 개막식에서 휠체어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깜짝 등장, 세계인 향해 마지막 연설을 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애인”이라고 소개된 호킹 박사는 음성 인식기를 통해 ‘발견의 여정’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발밑만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보라”라는 명언을 포함, 다음과 같은 어록을 남겼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우주의 근본 질서를 이해하기를 갈망해왔다." "당신 발밑만 내려다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별들을 바라보라. 우리가 보고 있는 걸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무엇이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지 궁금해하라. 호기심을 가지라."  “우리는 모두 다르고 어떠한 ‘표준’도 없지만 공통적으로 모든 인간은 ‘인간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무언가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팽창하는 우주의 성질'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호킹은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서 보냈지만 누구보다 우주를 깊이 연구한 우주론자로 자신의 삶의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주의 향한 나의 목표는 우주에 대한 완전한 이해, 우주가 왜 이처럼 생겼고 왜 영원히 존재하는지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다음의 천재 과학자로 칭송받았던 호킹는 아인슈타인 탄생 139주기인 2018년 3월 14일 치열한 76년간의 삶을 마감하고 우주로 돌아갔다. 삶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삶이 아무리 힘들어 보일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무언가는 항상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 반려견 넷 ‘방앗간집 엄마’…“하나하나 생의 희로애락 온전하게 받아들여야죠”[2022 유기동물 리포트]

    반려견 넷 ‘방앗간집 엄마’…“하나하나 생의 희로애락 온전하게 받아들여야죠”[2022 유기동물 리포트]

    한 해 11만 마리(2021년 기준)나 버려지는 개와 고양이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반려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생명은 사고팔 수 없다. 대신 입양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서울신문은 ‘2022 유기동물 리포트: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를 5회로 마치며 유기동물을 입양해 가족처럼 키우는 이들을 릴레이 인터뷰한다. 첫 주인공은 네 마리 강아지의 엄마인 ‘골프 여제’ 박세리(45) 감독이다. #유행 美서 키운 비글 한국서 인기 외환위기의 삭풍이 가시지 않았던 1998년 7월, 21살의 ‘국민 영웅’ 박세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에서 시즌 세 번째 우승을 했다. 경제적 곤궁 탓에 속이 타던 국민에게 건넨 사이다 같은 승리였다. 우승 세리머니에서 오른손에 거머쥔 트로피보다 더 눈에 띈 건 왼쪽 품에 폭 안긴 반려견 ‘해피’(비글종). 이 강아지는 이후 한동안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박 감독은 24년 전 일을 떠올렸다. “사실 좋지는 않았어요. 강아지도 생명인데 유행을 탄다는 건 인기가 시들해지면 옷, 신발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새끼 비글이 덩치가 커지면 버려진다는 얘기가 들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2016년 은퇴 후 고국으로 돌아온 박 감독은 지도자이자 골프 교육 콘텐츠 회사 대표로 인생 2막을 보내고 있다. 명함에는 없는 소중한 직함이 하나 더 있다. 천둥이(진돗개)와 모찌(보스턴테리어), 찹쌀(포메라니안), 시루(믹스견)의 보호자다. 유독 사연 많은 강아지들이다. 어쩌다 보니 세 마리가 떡 이름이라 “방앗간집 엄마 같다”며 회사 동료들이 웃는다. “대전 집에서 강아지와 보내는 시간이 최고의 힐링 타임”이라는 그를 29일 서울 강남구 바즈인터내셔널 사무실에서 만났다.-유명세를 탔던 해피가 첫 강아지였나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개를 키우셨어요. 미국에서 선수 생활할 때 해피를 분양받았죠. 너무 귀여운 룸메이트였습니다. 그런데 여러 대회에 참가하다 보니 해피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죠. 원래 활동량이 많은 종이라 마음에 걸렸어요. 당시 캐디의 친구가 농장을 했는데 넓은 공간에서 살면 아이가 훨씬 행복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입양 보냈죠.” 길지 않은 인연이었지만 해피는 박 감독의 경기력에도 도움을 줬다.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더 의지하는 쪽은 사람이었다. LPGA라는 격전장. 스트레스가 치솟아도 강아지의 애교를 보면 복잡한 머릿속이 단박에 비워졌다. 이기든, 지든 조건 없이 반겨 주는 존재. 한국에 돌아가면 반려동물과 꼭 함께 살겠다고 마음먹었다.#인연 구조된 시루와의 만남 -귀국해 처음 키운 강아지가 모찌였지요. “네, 원래 집에서 키우던 천둥이 외에 모찌와 찹쌀이가 가족이 됐죠. 둘 다 성격이 좋아 금세 제 마음을 받아 줬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동물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졌어요. 이후 ‘애린원 사건’을 보며 가족 잃은 동물에게 더 마음이 쓰였죠.” 애린원. 국내 최대 민간 동물보호소였던 그곳은 사실 ‘유기견의 지옥’이었다. 관리자의 방치 속에 번식한 1000여 마리가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가 2019년 구조됐다.-시루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애린원에서 구조된 강아지 삼형제의 사진을 봤어요. 그중 한 마리가 ‘먼지’(시루의 옛 이름)였죠. 가장 아픈 아이여서 마음이 갔습니다. 제가 직접 보호소에 연락하고 찾아갔죠. 시루를 보고 ‘인연이다’ 싶었어요. 원래 키우던 아이들과 잘 지낼까 고민됐지만 다행히 사이가 좋았습니다.” 보호소에서는 ‘국가대표 감독 박세리’의 후광이 통하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입양했다가 파양하는 일이 적지 않았기에 입양자의 의지와 양육 여건 등을 꼼꼼히 검증했다. 이 때문에 더 믿음이 갔다고 한다.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강아지는 행동상 다른 점이 있나요. “시루는 제가 데려올 때 생후 4개월이었어요. 지금은 누나(찹쌀)보다 덩치가 큰데도 눈치를 좀 봐요. 아무래도 버려졌던 기억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요. 다만 기죽으면 안 되니까 장난감 같은 건 시루에게 먼저 챙겨 주는 편이에요. 사람에게 상처받아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조금씩 서로를 알아 가면 바뀌는 것 같아요. 사실 사람도 평생 못 고치는 성향 같은 게 있잖아요. 강아지에게 한두 달 사이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해서는 안 되죠.”#책임 입양은 신중하게 하세요 -찹쌀이는 몸이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찹쌀이는 한 팬이 회사로 데려왔던 아이예요. 키우기 어렵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막상 아이를 보니 그렇게 못 하겠더라구요. 집에 데려온 첫날 절뚝거리며 걷기에 다음 날 병원에 갔죠. ‘선천적으로 고관절이 안 좋다’며 키우기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파양하라고 한 분도 있고요. 못 보내겠더라고요.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 걸 아니까요. 찹쌀이는 이후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죠.” -지금은 건강이 어떤가요. “여전히 걸음이 불편해요. 지금도 차를 타면 굉장히 긴장하거든요. 차 타고 처음 간 곳이 병원이었으니까. 예전에는 반려견을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유난 떤다고 생각했어요. 찹쌀이를 키워 보니 알게 됐죠. 나이가 들거나 몸이 아파 힘든 반려견에게 바깥바람이라도 쐬어 주고 싶은 보호자의 마음이라는 걸요.” -입양을 고민하는 예비 반려인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동물을 입양해 키우려면 책임감이 필요해요. 한 생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니까요. 키우다 보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죠. 다만 입양도 충동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지 말고 입양하자’라는 구호가 있는데 거기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어요. ‘사지 말고 입양하되 입양은 신중하게’.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인 만큼 단단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 ‘방앗간집 엄마’된 박세리, “유기견 키우는 건 한 생을 받아들이는 일”

    ‘방앗간집 엄마’된 박세리, “유기견 키우는 건 한 생을 받아들이는 일”

    #우리 가족이 됐어요 1편 : ‘골프 여제’ 박세리 감독 한해 11만 마리(2021년 기준)나 버려지는 개와 고양이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반려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생명은 사고팔 수 없다. 대신 입양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서울신문은 ‘2022 유기동물 리포트 :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를 5회로 마치며 유기동물을 입양해 가족처럼 키우는 이들을 릴레이 인터뷰한다. 첫 주인공은 강아지 4마리의 엄마인 ‘골프 여제’ 박세리(45) 감독이다.외환위기의 삭풍이 가시지 않았던 1998년 7월, 21살의 ‘국민 영웅’ 박세리는 미국여자골프(LPGA)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에서 시즌 3번째 우승을 했다. 경제적 곤궁 탓에 속이 타던 국민에 건넨 사이다 같은 승리였다. 우승 세리머니에서 오른손에 거머쥔 트로피보다 더 눈에 띈 건 왼품에 폭 안긴 반려견 ‘해피’(비글 종). 목까지 덮는 펄렁이는 귀가 인상적인 이 강아지는 이후 한동안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박세리가 24년 만에 그때를 떠올렸다. “(당시 한국에서 비글이 유행한다는 게) 사실 좋지는 않았어요. 강아지도 생명인데 유행을 탄다는 건 인기가 시들해지면 옷, 신발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2016년 은퇴 후 고국으로 돌아온 박세리는 지도자이자 골프 교육콘텐츠 회사 대표로 바쁜 인생 2막을 보내고 있다. 명함에는 적혀 있지 않은 소중한 직함이 하나 더 있다. 천둥이(진돗개)와 모찌(보스턴테리어), 찹쌀(포메라니안), 시루(믹스견)의 보호자다. 친동생과 함께 돌보는 이 강아지들은 유독 사연이 많다. 어쩌다 보니 세 마리가 떡 이름이라 “방앗간 집 엄마 같다”며 회사 동료들이 웃는다. “대전 집에서 강아지와 보내는 시간이 최고의 힐링 타임”이라는 그를 29일 서울 강남구 바즈인터내셔널 사무실에서 만났다. -유명세를 탔던 해피가 첫 강아지였나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개를 키우셨어요. 미국에서 선수 생활할 때 해피와 가족이 됐죠. 너무 귀여운 룸메이트였습니다. 그런데 여러 대회에 참가하다 보니 해피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죠. 원래 활동량이 많은 종이라 마음에 걸렸어요. 당시 캐디의 친구가 농장을 했는데 넓은 공간에서 살면 아이가 훨씬 행복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입양 보냈죠.” 길지 않은 인연이었지만, 해피는 박 감독의 경기력에도 도움을 줬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더 의지하는 쪽은 사람이었다. LPGA라는 격전장. 스트레스가 치솟아도 강아지의 애교를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에 단박에 비워졌다. 이기든, 지든 조건없이 반겨주는 존재. 한국에 돌아가면 반려동물과 꼭 함께 살겠다고 마음먹었다.-귀국해 처음 키운 강아지가 모찌였지요. “네, 원래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 천둥이 외에 반려견 모찌와 찹쌀이가 가족이 됐죠. 강아지도 자식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동물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졌어요. 둘 다 성격이 좋아 금세 제 마음을 받아줬습니다. 이후 ‘애린원 사건’을 보며 가족 잃은 동물에 더 마음이 쓰였죠.” 애린원. 국내 최대 민간 동물보호소였던 그곳은 사실 ‘유기견의 지옥’이었다. 관리자의 방치 속에 개들이 번식해 1000여마리가 열악한 상황에서 신음하다 2019년 구조됐다. 아이들은 다른 보호소로 터전을 옮겨 새 가족을 찾고 있었다. 시루도 그 중 하나였다. -시루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인스타그램에 애린원에서 구조한 강아지 삼형제의 사진을 보게 됐어요. 그 중 한 마리가 ‘먼지’(시루의 옛 이름)였죠. 가장 아픈 아이여서 마음이 더 갔습니다. 치료를 마쳐야 입양할 수 있다기에 기다렸어요. 제가 직접 보호소에 연락하고 찾아갔죠. 단 한 마리라도 돌보고 싶었는데 시루를 보고 ‘인연이다’ 싶었어요. 원래 키우던 아이들과 잘 지낼까 고민됐는데 다행히 사이가 너무 좋았습니다.” 보호소에서 ‘국가대표 감독 박세리’의 후광은 통하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입양해 간 이들이 파양하는 일이 적지 않기에 입양자의 의지와 양육 여건 등을 꼼꼼히 검증했다. 이 때문에 더 믿음이 갔다고 한다.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강아지는 행동상 다른 점이 있나요. “시루는 제가 데려올 때 생후 4개월이었어요. 지금은 누나(찹쌀)보다 덩치가 큰데도 눈치를 조금 봐요. 아무래도 버려졌던 기억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요. 잘못했을 땐 혼내기도 하고요. 다만 기죽으면 안되니까 장난감 같은 건 시루에게 먼저 챙겨주는 편이에요. 사람에게 상처받아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조금씩 서로 알아가면 바뀌는 것 같아요. 사실 사람도 평생 못 고치는 성향 같은 게 있잖아요. 강아지가 한 두 달 사이에 드라마틱하게 변할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죠.” -찹쌀이는 몸이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찹쌀이는 한 팬께서 주셨던 아이예요. 키우기 어렵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막상 아이를 보니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집에 데려온 첫날 절뚝거리며 걷기에 다음 날 병원에 갔죠. ‘선천적으로 고관절이 안 좋다’며 키우기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파양 보내라고 한 분도 있고요. 못 보내겠더라고요. 한번 파양된 아이는 평생 트라우마가 남는다는 사실을 아니까요. 가족이 된 뒤 찹쌀이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죠.” -지금은 건강이 어떤가요. “여전히 걸음이 불편해요. 지금도 차를 타면 굉장히 긴장하거든요. 차를 타고 처음 간 곳이 수술받은 병원이었으니까. 예전에는 반려견을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유난 떤다고 생각했어요. 찹쌀이를 키워보니 알게 됐죠. 나이가 들거나 몸이 아파 힘든 반려견에게 바깥바람이라도 쐬어주고 싶은 보호자의 마음이라는 걸요.”-입양을 고민하는 예비 반려인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유기당한 경험이 있는 동물을 입양해 키운다는 건 책임감이 필요해요. 한 생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니까요. 키우다 보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죠. 다만, 입양도 충동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지말고 입양하자’라는 구호가 있는데 거기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어요. ‘사지 말고 입양하되, 입양은 신중하게’.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인 만큼 단단히 마음 먹으셔야 해요.”
  • 박인환·이봉구·천상병 ‘명동 샹송’… 서늘한 세월 품은 예술혼의 해방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박인환·이봉구·천상병 ‘명동 샹송’… 서늘한 세월 품은 예술혼의 해방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세월이 가면‘ 박인희의 목소리로 듣는다. 조용필, 최백호, 양하영, 이동원, 적우, 임태경의 목소리로 듣는다. 현인 그리고 나애심의 목소리로 듣는다. 박인환의 시(詩)를 가사로 이진섭이 작곡한 노래 ‘세월이 가면’을 들으며 명동을 걷는다.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편곡과 음색에 따라 노래는 다르게 들린다. 세월이 흐르는 이치를 아직 모르는 목소리의 낭만적인 떨림, 휙휙 쌩쌩 곁을 스쳐 지나는 세월을 온몸으로 느끼는 목소리의 흔들림, 지난 세월을 회한으로 돌이키는 젖은 목소리, 그 미련마저도 모두 지워져버린 듯 아련한 회상과 망각의 목소리. 1956년 시를 쓰고 곡을 붙이고 노래하던 처음의 그때, 그들에게 세월은 어떤 의미였을까?2009년 EBS에서 방영된 문화사 드라마 ‘명동 백작’은 1951년 3월 이봉구(박철호)가 폭격으로 폐허가 된 명동 거리를 걷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려했던 명동,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명동이 전쟁으로 초토화된 것을 목격한 이봉구는 끝내 설움이 북받쳐 엎드려 오열한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명동 또한 전쟁 아닌 전쟁으로 폐허의 분위기다. 인파로 북적대던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텅텅 비어 있다. 말마따나 인파(人波), 사람의 물결에 휩쓸린 채 멋쟁이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쏙 빠졌던 예전의 명동은 온데간데없다.그곳도 마찬가지다. 명동 한복판, 명동성당에서 을지로 입구로 가는 큰길에 눈에 잘 띄던 화장품 가게도 역병의 폭격을 이기지 못했다. 유리창에 붙은 ‘임대’라는 글자가 가슴에 슥, 붉은 빗금을 긋는다. 빈 가게 귀퉁이에 보도를 향해 돌 하나가 덩그러니 섰다. ‘문화예술인이 찾았던 은성 주점 터: 이곳에서 약 10m 앞에는 1960년대 소설가이자 언론인 이봉구(1915~1983)와 변영로, 박인환, 전혜린, 임만섭 등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던 주점 터이다. 특히 이봉구 선생은 명동을 좋아하여 명동 시장(市長)·명동 백작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낭만의 시대였다.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 전쟁이 끝나고 설움과 불안과 울화가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대던 때였다. 너나없이 가난했다.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암흑 세상을 하루하루 버텼다. 육신과 영혼의 허기가 는개처럼 자욱했던 그 시절의 명동 그리고 은성은 갈 곳 없는 예술가들의 은신처,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는 예술혼의 해방구였다.은성도 그 자리에 있던 화장품 가게도 없는 거리에 멀거니 섰다가 길을 건넜다. 명동파출소 옆 골목 안쪽 지하에 ‘명동백작5060’이라는 밥집 겸 술집이 옛 은성을 재현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크 타임을 막 지나서인지 점심 장사를 한 흔적만 남아 있고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다. 객쩍은 낮술일지나 음복하는 심정으로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하려 했더니, 불러도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빈 입을 쩍 다신다. 어두침침한 조명, 낮은 천장,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 쓸쓸하고도 아련하다. 그 시절의 은성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1956년 봄밤, 일군의 예술가들이 어김없이 은성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 열변과 췌담이 왁자지껄한 가운데 상고머리의 젊은 시인이 있었다. 그 시절의 평균키를 훌쩍 뛰어넘는 장신에 조니 워커와 카멜 담배를 좋아하는 멋쟁이였지만, 21살에 등단해 10년을 시인으로 사노라니 빈한한 살림살이에 세탁소에 맡긴 스프링코트를 찾을 돈이 없어 봄에도 두꺼운 겨울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은성 주점을 운영하던 사람은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1986년 작고)씨였다. 영화 제작자였던 남편이 과로로 숨지자 외아들을 키우고 생계를 잇기 위해 가게를 열었다. 그런 연고로 은성은 자연스럽게 문인들을 비롯한 영화인, 음악가, 화가 등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이 됐다. 박인환을 비롯해 김수영, 변영로, 전혜린, 오상순, 입구 쪽에 서서 막걸리 한 잔 사줄 사람을 기다리던 천상병 등이 단골이었다고 한다. 작가라는 작자들은 가난했다. 그럼에도 밥을 못 먹는 주제에 술은 잘도 먹었다. 예나 제나 쥐꼬리 같은 고료를 받으면 탈탈 털어 사먹고, 택택한 물주가 나타나면 얻어먹고, 뻔뻔하게 외상도 줄창 대고 먹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술을 주문하는 박인환 일행에게 은성의 주인이 밀린 외상값부터 갚으라고 지청구했다. 그러자 박인환이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사 삼아 작곡가 이진섭이 노래를 만들었다. 3년 전 ‘밤의 탱고’를 발표해 가수 활동을 시작한 연극배우 나애심이 노래를 했다. 노래를 들은 은성의 주인, 이명숙씨는 눈물을 훔치며 술을 내주었다. 그 곡이 명동의 노래, 명동 샹송, ‘세월이 가면’이었다. 얼핏 듣기에 사랑 노래였다. 아니, 그 사랑이 시들고 난 뒤 여전히 남은 기억에 대한 노래였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을 잃어도 잊지 못하는 것, 그것은 들끓는 가슴이 아니라 ‘서늘한 가슴’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가족을 잃은 사람, 연인을 잃은 사람, 영이별이 아니더라도 생이별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이 허깨비처럼 허정거리며 살았다. 잊고 싶은 기억에는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 속에도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기억이 섞여 있어, 이름은 잊어도 눈동자와 입술은 잊을 수 없었다.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처럼 시간 앞에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세월이 가면’은 그들을 위한 노래였다.어느덧 등단한 지 30년이 돼 버린 나는 꼬꼬마 때 까마득한 선배들로부터 ‘명동 시대’의 일화를 귀동냥했다. ‘영혼의 양식을 공급해 준 곡창’으로서 명동은 분야와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예술가와 문화 종사자들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음악과 미술과 문학과 무용은 물론 대중문화와 비평과 언론까지 경계가 없었다. 그 시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문화사 속에 이름으로 남았다. 그 말단에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이지 못한 아쉬움을 명동 시대의 에피소드들을 사(私)소설로 기록한 ‘명동 백작’ 이봉구 선생의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한다. 은성에서 소주를 마시는 말년의 이봉구를 김일주 선생이 찍었는데, 신인 시절 나도 문인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하던 그의 피사체가 됐던 적이 있다. 아, 그런데 김일주 선생도 지난해 여름 작고했다는 부고를 뒤늦게 읽었다. 이제 술 마시는 작가들, 침 튀기며 토론하는 작가들, 싸우는 작가들, 술상에서 조는 작가들의 모습을 기록할 사람도 더이상 없다…. 나애심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다. 안개 같은 담배 연기 속에 울려 퍼지는 깔깔한 목소리, ‘나는 천 년의 세월을 지나온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보들레르의 시구가 떠오른다. 은성은 1973년에 영업을 종료했고 그 자리에 2004년 서울문화재 기념표석이 설치됐다. 세월을 따라 사람들이, 사랑이 그렇게 가버렸다.(㉻에서 계속) 소설가
  • ‘尹대통령 자택 테러’ 글 작성자…잡고 보니 10대 남성

    ‘尹대통령 자택 테러’ 글 작성자…잡고 보니 10대 남성

    윤석열 대통령의 자택을 테러하겠단 글을 온라인에 게시한 1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날 새벽 김건희 여사 팬클럽인 네이버 ‘건사랑’ 카페에 대통령에 대한 테러 글을 작성·게시한 혐의로 10대 남성 A씨(19)를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검거했다. A씨는 지난 2일 오후 ‘건사랑’ 카페에 “2022년 6월 3일 오전 6시 정각에 윤석열 자택에 테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자신을 21살 대학생 남성이라 밝힌 A씨는 게시글에서 “군대 200만원 한다(준다) 해서 휴학했는데 시간 낭비하게 됐다”면서 김 여사도 테러 대상으로 지목했다. 해당 글을 본 시민들은 국정원 콜센터 등에 신고를 했고, 상황을 전달 받은 경찰이 대통령 자택에 경찰 특공대와 강력팀을 배치하는 등 수사에 나섰다. A씨는 범행의 전 과정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게시글을 올린 경위 등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다.
  • 尹대통령 자택 경찰특공대 배치…테러글 IP 추적

    尹대통령 자택 경찰특공대 배치…테러글 IP 추적

    윤석열 대통령의 자택에 테러하겠다는 온라인 게시물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3일 새벽 1시20분쯤 국정원으로부터 상황을 통보받고 대통령 자택 인근에 경찰특공대와 강력팀을 배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40분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3일 오전 6시 정각 윤 대통령 자택에 테러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전 21살 대학생 남자고 군대 200만원 한다 해서 휴학했는데 시간 낭비하게 됐다”고 적었다. 이 게시물을 본 네티즌은 2일 밤늦게 국정원에 해당 내용을 신고했다. 대통령 경호처와 총리실 대테러센터 등도 상황을 보고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게시물을 올린 IP를 추적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테러 관련 글이 올라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대통령 취임식 전날에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일 취임식에 수류탄 테러하실 분 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이 글의 작성자는 “친일파 후손들이 취임식을 하는 암울한 시대에 희망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서초경찰서는 당시 작성자를 하루 만에 검거했다. 해당 글의 작성자는 경찰 조사에서 ‘재미로 장난삼아 글을 올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반려견 23년 살면…‘기네스 세계기록’ 경신합니다

    반려견 23년 살면…‘기네스 세계기록’ 경신합니다

    미국에 사는 22살 토이폭스테리어가 ‘최고령견’ 기록을 경신했다.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2000년 3월 28일에 태어나 올해 22번째 생일을 맞은 암컷 토이폭스테리어 ‘페블스’가 세계 최고령견이 됐다. 이는 지난달 21살로 최고령견에 올랐던 치와와 ‘토이키스’의 기록을 한 달여 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지난 2000년부터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페블스와 함께 살아온 그레고리 부부는 21살 최고령견 뉴스를 보다가 페블스의 나이가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네스 세계기록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레고리 부부는 페블스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첫 만남 당시를 회상했다.줄리는 “페블스는 낮에는 자고 밤을 새는 거친 10대 같다”면서 “페블스는 컨트리 음악을 듣고, 품에 안기고, 오후 5시까지 낮잠을 자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22살이 세계 최고령이라니”, “50살까지 살았으면”, “강아지 너무 귀엽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길”, “나와 같은 나이네”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페블스는 22번째 생일날 갈비를 먹고 거품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 ‘난소암 4기’ 23세 유튜버 꾸밍 세상 떠났다

    ‘난소암 4기’ 23세 유튜버 꾸밍 세상 떠났다

    난소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유튜버 꾸밍(이솔비)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25일 꾸밍의 유튜브 영상 댓글을 통해 꾸밍의 지인이라 밝힌 누리꾼 A 씨가 “우리 꾸밍이, 우리 솔비가 오늘 힘든 여정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났다”라며 부고 소식을 전했다. A 씨는 “여러분이 주셨던 많은 사랑에 정말 감사하다. 유튜브 활동 동안 여러분이 주신 많은 사랑에 꾸밍이가 많이 기뻐했고 저도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며 “우리에게 또 삶이 있다면 다시 만나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꾸밍이에게 자그마한 애도를 부탁드린다고”라고 전했다. A 씨는 꾸밍의 부탁으로 글을 남긴다고 덧붙였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댓글에는 “현재 인증을 바라는 분들이 있지만, 식을 진행하고 있어 관련된 사진 등을 올리는 건 굉장히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정말 아끼던 사람을 떠나보내면서도 부탁받았기에 적은 말이니 모쪼록 믿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A 씨가 함께 공개한 SNS 계정을 통해 꾸밍과 A 씨가 지인 사이임이 확인됐다.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꾸밍의 유튜브와 SNS 댓글을 통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꾸밍은 만 21살 때 소세포성난소암(회귀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꾸밍은 “완치는 불가능하고 항암으로 연명할 수 있는 기간이 6개월~1년 정도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19일 꾸밍은 유튜브를 통해 “마지막으로 영상을 올리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남긴다. 일주일 전까지 멀쩡했는데 일주일 사이에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다”며 “여러분 덕분에 유튜브 수익으로 맛있는 거 사 먹고, 댓글로 응원 받아서 행복했다. 다음 생에 꼭 봐요”라고 그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구독자들에 고마운 마음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 “왜 내 남편 죽였나”… 러 군인 “용서받지 못할 것 안다”

    “왜 내 남편 죽였나”… 러 군인 “용서받지 못할 것 안다”

    “왜 러시아군이 여기에 왔나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당신이 죽인 내 남편으로부터 나를 지켰나요?” 러시아군의 총탄에 남편을 잃은 카테리나 쉘리포바는 까까머리의 21세 러시아 군인을 향해 따져물었다. 군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지방법원에서 열린 러시아 육군 기갑부대 소속 하사 바딤 시시마린(21)에 대한 공판에서 시시마린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쉘리포바를 향해 “당신은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고 말했다. 첫 러軍 전범 재판 열려 … 피해자 아내 “왜 여기 왔나” 영국 BBC와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검찰은 이날 시시마린에 대해 종신형을 구형했다. 시시마린에 대한 재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군 전범이 우크라이나의 법정에 선 사례로, 종신형은 우크라이나 형법상 그가 받을 수 있는 최대 형량이다. 시시마린은 침공 직후인 지난 2월 28일 북동부 수미주 추파히우카 마을에서 다른 부대원 4명과 차량을 훔쳐 도주하던 중 자전거를 타고 가던 올렉산드르 쉘리포프(62)를 사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이어 이날 재판에서는 당시 상황에 대해 보다 자세한 진술을 내놓았다. 그는 피해자와 마주쳤던 당시 피해자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면서 그가 자신들의 위치를 우크라이나군에 보고할 것을 의심해 사살 명령이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카푸로프라는 이름의 병사가 사살을 명령했으며 “총격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병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가 우리를 고발할 것이라면서 위협적인 어조로 시키는 대로 하라고 몰아세웠다”고 덧붙였다. 이날 증인으로 법정에 선 러시아 전쟁 포로 이반 말티세프(21)는 “이름을 모르는 한 병사가 차 안에서 몸을 돌려 시시마린에게 명령에 따르라고 소리쳤다”면서 “피해자와 거의 나란히 있던 순간 압박을 받고 있던 시시마린이 서너 발을 쐈다”고 설명했다.시시마린은 총격을 명령한 당사자는 상관이 아닌 다른 병사였다면서, 그의 말을 따를 의무가 있었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미 WP는 개별 병사가 상관 등의 명령에 따라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병사의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윌리엄 샤바스 런던 미들섹스대 국제법학 교수는 “시시마린이 유죄를 인정한 이상 기소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쉘리포바는 법정에서 남편을 잃었던 순간의 고통을 되새겼다. 집 밖에서 총성을 듣고 달려나간 그는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남편을 마주했다. 그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면서 “그는 내 보호자였다. 내 전부를 잃었다”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시시마린을 종신형에 처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마리우폴의 “우리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다면 그를 러시아로 송환하는 데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범 사건 1만여건 수사 중 우크라이나 검찰은 현재까지 1만 1000여건의 러시아군 전쟁범죄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해 자국 법정에 세우고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을 통해 단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 젖먹이 딸 학대치사에도 석방… “사회가 방치” 판사는 말했다[판결을 열다 판도라]

    태어난 지 고작 44일 된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법정에 선 21살 엄마가 “죽어서라도 딸에게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산후우울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엄마는 이제 자책감에 괴로워하며 우울증 약을 먹는다. 한때는 이혜주(가명)씨도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그녀가 제왕절개로 딸을 출산한 건 지난해 2월. 열아홉 나이에 임신한 사실을 알리자 주변 모두가 “지우라”고 했는데도 제 의지로 품어 낸 소중한 아이였다. 남자친구와 동거하던 비좁은 원룸은 신혼집이 됐고 부부는 새 식구를 맞이했다. 육아는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남편은 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주 6일 야간 택배 작업을 나갔다. 오후 4시에 출근해 밤을 지새운 뒤 아침 9시에 퇴근하는 남편은 집에선 잠만 잤다. 친정과 시가도 여유가 없긴 매한가지라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다. 결혼 전에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씨가 고교를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히려 근근이 생활비를 보태던 상황이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제대로 산후조리도 못 한 채 닷새 만에 원룸으로 돌아온 이씨는 몸도 마음도 급격히 피폐해졌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딸이 갈수록 미워졌다. 학대는 출산 한 달 뒤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분유를 먹이는데 아이가 계속 울자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왜 낳겠다고 했을까.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며칠 뒤에는 같은 이유로 아이의 목이 꺾일 정도로 몸통을 10초 동안 흔들었다. 또 며칠이 지난 날, 이번에는 아이를 제 가슴 높이까지 들었다가 침대 위로 떨어뜨렸다. 결국 병원에 옮겨진 딸은 지주막하출혈로 인한 두부 손상으로 숨졌다. 이씨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아동학대범죄 처벌특례법은 ‘아동학대로 아동이 사망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대전고법 형사3부(부장 정재오)는 지난 17일 정상 참작으로 형을 줄여 주는 ‘작량감경’을 결정해 이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행복의 원천이 되지는 못할망정 고통이나 불행의 씨앗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혼자 육아 책임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질러진 범행의 결과를 놓고 전적으로 피고인만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는 모성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36조 2항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주로 미혼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피고인같이 혼인했으나 경제적 형편이 매우 어려운 임산부 지원은 상대적으로 매우 소홀하다”면서 “불균형은 국가의 한정된 재원을 고려하더라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고 이마저도 홍보 부족으로 피고인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생후 1개월 딸 죽게 한 스무살 엄마의 ‘우울증’, 판사는 감쌌다 [판도라]

    생후 1개월 딸 죽게 한 스무살 엄마의 ‘우울증’, 판사는 감쌌다 [판도라]

    태어난 지 고작 44일 된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법정에 선 21살 엄마가 “죽어서라도 딸에게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산후우울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엄마는 이제 자책감에 괴로워하며 우울증 약을 먹는다. 한때는 이혜주(가명)씨도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그녀가 제왕절개로 딸을 출산한 건 지난해 2월. 열아홉 나이에 임신한 사실을 알리자 주변 모두가 “지우라”고 했는데도 제 의지로 품어낸 소중한 아이였다. 남자친구와 동거하던 비좁은 원룸은 신혼집이 됐고 부부는 새 식구를 맞이했다. 육아는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남편은 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주 6일 야간 택배 작업을 나갔다. 오후 4시에 출근해 밤을 지새운 뒤 아침 9시에 퇴근하는 남편은 집에선 잠만 잤다. 친정과 시가도 여유가 없긴 매한가지라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다. 결혼 전에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씨가 고교를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히려 근근히 생활비를 보태던 상황이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제대로 산후조리도 못 한 채 닷새 만에 원룸으로 돌아온 이씨는 몸도 마음도 급격히 피폐해졌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딸이 갈수록 미워졌다. 학대는 출산 한 달 뒤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분유를 먹이는데 아이가 계속 울자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왜 낳겠다고 했을까.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며칠 뒤에는 같은 이유로 아이의 목이 꺾일 정도로 몸통을 10초 동안 흔들었다. 또 며칠이 지난 날, 이번에는 아이를 제 가슴 높이까지 들었다가 침대 위로 떨어뜨렸다. 결국 병원에 옮겨진 딸은 지주막하출혈로 인한 두부 손상으로 숨졌다. 이씨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아동학대범죄 처벌특례법은 ‘아동학대로 아동이 사망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대전고법 형사3부(부장 정재오)는 지난 17일 정상 참작으로 형을 줄여주는 ‘작량감경’을 결정해 이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행복의 원천이 되지는 못할망정 고통이나 불행의 씨앗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혼자 육아 책임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질러진 범행의 결과를 놓고 전적으로 피고인만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는 모성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36조 2항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주로 미혼모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피고인 같이 혼인했으나 경제적 형편이 매우 어려운 임산부 지원은 상대적으로 매우 소홀하다”면서 “불균형은 국가의 한정된 재원을 고려하더라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고 이마저도 홍보 부족으로 피고인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지하실에 가족 가둔 채…우크라 소녀 집단 성폭행한 21살 러軍 신상 공개

    지하실에 가족 가둔 채…우크라 소녀 집단 성폭행한 21살 러軍 신상 공개

    우크라이나 소녀를 집단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러시아 군인의 신원이 공개됐다. 17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국가보안국(SSU)에 따르면, 키이우 지역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잔학 행위를 저지른 러시아 군인 1140명으로 확인됐다. SSU는 키이우 인근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 군인 파사코프 불랏 레나로비치(21)의 신원을 공개했다. 레나로비치는 어린 소녀를 제외한 가족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모두 지하실에 가뒀다. 그리고 군인 3명과 함께 소녀를 집단 성폭행했다. 공개된 신원 정보에 따르면, 레나로비치는 2001년생으로 올해 21살이다. 러시아 중부 타타르스탄공화국 출신으로, 러시아 연방 중부 군구 제2근위군 제30기동소총여단에서 복무 중이다. 현재 행방은 불명이며, 돈바스에 재배치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SSU는 “키이우 지방 검찰청 감독하에 레나로비치에게 전쟁법 및 관습 위반 혐의를 부재중 통보했다”고 밝혔다.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을 성폭행했다는 증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군이 북부 전선에서 퇴각한 후 성폭력 피해 사례를 수집해왔는데, 지난달 초에만 400여건의 성폭력 사건이 접수됐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군이 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민간인 대학살 정황이 드러난 부차에서 여성 25명이 한 지하실에 감금된 채 조직적으로 성폭행당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법의학자들은 집단 무덤에 묻힌 여성들이 살해당하기 전에 성폭행당한 사례도 발견했다고 전했다.
  • 임권택 감독 “故 강수연, 더 많이 살다가 가야 했는데” 애통

    임권택 감독 “故 강수연, 더 많이 살다가 가야 했는데” 애통

    임권택 감독이 고(故) 배우 강수연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지난 15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강수연의 빈소를 찾은 영화인들의 모습이 전해졌다. 이날 방송에서 임권택 감독은 강수연의 첫인상에 대해 “아마 무슨 방송에서 처음 봤을 거다. 드라마에 출연한 걸 보고 연기자로 캐스팅하고 싶단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수연이 워낙 좋은 얼굴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외모를 연기에 과장도 안하고 그렇다고 또 안으로 수줍게 감추는 것도 없이 그냥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해냈던 연기다다. 선천적으로 연기자로서 자질이 갖춰진 사람”라고 극찬했다. 강수연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1987)에 주연으로 출연해 제4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제16회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사랑받았다. 임권택 감독은 ‘씨받이’에서 21세에 산모 역할을 열연한 강수연에 대해 “그때 출산하는 산모의 연기를 꽤 잘했다. 21살 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였는데 수연이가 이것저것 많이 보고 왔다고 느낄 정도로 꽤 능숙하게 연기를 해서 내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임권택 감독은 “강수연을 보내는 장례식에 가는 길에 ‘나는 나이가 있으니 곧 죽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내 영결식 조사든 뭐든 수연이가 와서 읽어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거꾸로 된 상황이다. 참 말이 안돼”라며 “나하고 수연이하고 바뀐 것 같다. 내가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하고 수연이는 더 많이 살다가 가야했는데”라고 털어놓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고 강수연은 지난 5일 오후 5시 40분 경 서울 강남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지난 7일 오후 3시께 만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민간인 살해한 21살 러軍 병사의 자백 “한발에 쓰러졌고 우린 진격했다”

    민간인 살해한 21살 러軍 병사의 자백 “한발에 쓰러졌고 우린 진격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약 70여일 만에 러시아 군인이 전범 피의자로 우크라이나 법정에 섰다. 21살의 피의자는 법정에서 민간인 살해 사실을 인정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지방법원이 민간인을 사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러시아 육군 칸테미로프스카야 전차사단 소속 바딤 쉬시마린(21) 하사에 대한 첫 재판을 진행했다. 쉬시마린 하사는 개전 초기인 지난 2월 28일 교전 지역이던 우크라이나 동북부 수미주의 추파히우카 마을에서 민간인을 소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자전거에 올라 휴대전화로 통화하던 62세 민간인 남성을 AK-47 소총을 쏴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이 있는 장소를 우크라이나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현장에서 생포된 쉬시마린은 민간인 사살혐의를 인정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쉬시마린은 “사격 명령을 받았다. 한 발을 발사하자 그가 쓰러졌고, 우리는 계속 진격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전범 피의자로 우크라이나 법정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안국은 “쉬시마린의 증언은 침략자의 첫 번째 자백 중 하나”라고 평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비무장 상태였던 민간인이 우크라이나군에게 러시아군이 있는 장소를 알리지 못하게 하려고 범행한 것”이라면서 “쉬시마린은 징역 10~15년 내지 최고 무기징역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