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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전기료 누진제 축소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전이 현행 6단계인 주택용 전기요금을 3단계로 축소하되 최저와 최고 구간의 누진율을 11.7배에서 3배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가 ‘중장기 검토 과제’로 한발 물러섰다. 전기료 인상 때처럼 정부와 충분히 협의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불쑥 내놓았다가 제동이 걸린 듯하다. 한전은 2004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현행 6단계 누진 방식이 가전기기 보급 확대 및 대형화에 따른 전력 사용량 증가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18년 만에 닥친 폭염으로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전기요금도 급등했다. 한전은 누진제로 인한 ‘전기료 폭탄’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자 누진제 축소를 돌파구로 삼으려는 것 같다. 누진제 개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 변경을 느닷없이 들고나온 한전의 무신경과 판단 수준이 놀랍기만 하다.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전기 소비 절약과 서민층 보호를 위해 도입된 누진제가 다섯 차례의 개편에도 불구하고 전기 사용량 급증이라는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체 가구의 87%가 생산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전기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과도한 누진제로 인해 전기요금이 비싸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있다. 특히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혹한과 폭염이 반복되면서 전기 사용이 많은 저소득층이 누진제의 피해를 보고 있다. 따라서 공급 원가와의 괴리를 최소화하면서 요금이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원가회수율과 누진구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누진제 개편 시기는 전력수급난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2014년 이후가 돼야 할 것이다. 누진제 축소가 고소득층의 부담만 경감시키거나 서민층의 부담이 더 커지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전기를 펑펑 쓰는 소비 행태를 부추기는 꼴이 돼서도 안 된다. ‘수익자 부담’ 원칙 아래 원가회수율을 높이되 징벌적 누진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시간대별, 계절별 차등요금 적용 방식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누차 지적했지만 한전의 방만한 경영 형태는 뜯어고쳐야 한다. 모든 것을 요금 탓으로 돌리는 한전의 태도에 국민들의 인내도 한계에 이르렀다.
  • 디지털대성 티치미, 2014 새 수능 대비 ‘2014 노르망디패스’ 출시

    ㈜디지털대성(대표이사 최진영)이 운영하는 대성마이맥(www.mimacstudy.com)과 티치미(www.teachme.co.kr)가 새로 개편되는 2014 수능에 대비해 국·영·수 강좌를 무제한으로 수강할 수 있는 패스 상품을 출시했다. 2014년 이후 수능을 치르게 될 고1, 고2 대상 ‘2014 노르망디패스’는 국·영·수 60여개 강좌를 싼 값에 무제한 반복 수강할 수 있는 상품이다. 새로운 강좌와 기존 베스트 강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다음달 15일까지 판매되며 오는 12월 10일까지 이용할 수 있다. 강좌는 국어 김동욱·최진헌, 영어 이명학·김찬휘, 수학 한석원·한석만 등 대성마이맥과 티치미의 대표 강사들이 담당한다. 유명 수리영역 강사인 한석원의 ‘생각의 질서’, ‘2014 NEW 알파테크닉(미통, 기벡)’ 강좌도 수강할 수 있다. 2014 수능은 국어, 영어, 수학의 경우 현행 수능보다 쉬운 A형과 현행 수준인 B형으로 출제되고 수험생이 난이도를 선택해 응시할 수 있다. 6일 밤 11시에 공개되는 김동욱, 이명학, 한석원 강사의 새 수능 대비 무료특강 ‘2014 수능 일급 학습전략’을 다운로드하는 1만명에게는 선착순으로 컵라면을 준다. 이 특강을 보고 ‘수만휘 게시판’에 후기를 작성한 선착순 4028명에게는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을, ‘2014 노르망디패스’를 구매한 전원에게는 3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준다. 문의 (02)525-2110/ 569-4182.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市·정보공개센터 공동 워크숍 개최 “정보비공개 근거 빈약” “가이드라인 추진”

    지난해까지만 해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서울시 공무원들 사이에서 기피 1순위로 악명을 드날렸다. 정보공개센터는 기회만 나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시 정책을 비판했고 시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정보공개를 거부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심지어 정보를 공개하라는 행정심판 결정에도 불구하고 악의적으로 정보비공개를 반복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위자료 100만원을 정보공개센터에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적도 있다. 그처럼 냉랭했던 시와 정보공개센터가 ‘정보공개로 통하다’라는 주제로 5일 공동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창학 시 행정국장이나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모두 공감하듯이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시에서 가장 극적으로 바뀐 게 정보공개 관련 정책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자리였다. 워크숍에는 시와 자치구, 학계 등 약 300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임진희 명지대 디지털아카이빙연구소 연구실장은 ‘서울시 정보공개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발표에서 세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업무담당자들이 정보공개제도와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비공개 결정의 사유와 근거가 빈약하고 일관성도 없다. 게다가 정보공개 총괄 부서의 조정역할도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조영삼 한신대 한국사학과 초빙교수는 시 비공개대상 기록물을 분석한 결과 구체성이 없어 형식적 운영에 그쳤으며, 일단 작성한 비공개대상정보목록을 제대로 관리하지도 않는 등 공급자 중심이어서 시민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지못해 일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국장은 기조발제를 통해 시 정보공개제도 발전을 위한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그는 “시 정보창구 일원화를 위해 정보소통광장 포털을 조만간 개통할 예정”이라면서 “시정 기록정보를 열람하고 전시하는 가칭 기록문화관도 옛 시청 청사에 들어서는 서울도서관 3층에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현재 정보공개 가이드라인도 만들고 있다.”면서 “비공개 결정에 대한 직권심의제를 실시해 비공개 결정을 최소화하고, 부존재 입증 책임성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현재 40종만 무료 공개하는 공공데이터를 2014년까지 157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올 성장률 전망 3.3%로 하향

    유럽 재정 위기 등의 경제 여건 악재 장기화에 대비해 정부가 투자 확대를 통한 내수 진작에 나섰다. 하반기에 2조 3000억원의 기금 등 총 8조 5000억원을 풀어 경기를 지탱하기로 했다.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 보금자리론 금리는 0.2% 포인트 내리고 주택연금(역모기지) 자격 요건도 완화했다. 정부는 28일 과천청사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이 같은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 방향을 확정했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7%에서 3.3%로 내렸다. 이에 따라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달리 지금은 위기 국면이 상시화, 장기화되고 있으며 당분간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시장 불안이 반복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금 확충 외에도 댐 건설, 혁신도시 조기 추진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를 1조 7000억원 늘린다. 이미 잡힌 예산을 최대한 많이 써 내년으로 넘어가는 돈도 최소화할 방침이다. 예산집행률을 평년(95.1%)보다 1.6% 포인트 높여 4조 5000억원을 더 푼다는 계획이다. 사실상의 미니 추경 편성이다. 민간 분야에서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이 3조원 규모의 설비투자펀드를 조성해 중견·중소기업을 돕게 된다. 2014년까지 설비투자에 한해 투자와 대출 등의 방식으로 지원하되 예상 손실률에 따른 정부 출자도 추진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채권을 정리하는 PF 정상화에도 2조원가량 더 투입된다. 재정부는 이 정도면 은행들의 PF 부실 채권을 다 사들일 수 있는 규모라고 보고 있다. 3조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CBO(P-CBO·채권담보부증권)도 발행해 금융시장을 통한 중소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을 돕도록 할 계획이다. 보금자리론 금리는 연 4.4%에서 4.2%로 내리고 대출 규모도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과 같이 최대 2억원(주택 가격의 70%)으로 상향된다. 주택 소유자와 배우자 모두 60세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는 주택연금(역모기지)은 주택 소유자만 60세 이상이면 받을 수 있도록 자격 조건이 완화된다. 수혜자가 40%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정부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매달 민관 합동회의를 직접 개최하기로 했다.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2%에서 2.8%로 내렸다. 일자리는 기존 전망보다 12만개 더 많은 40만개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물 먹는 하마’ 노후 상수도관… 수돗물 年8억여t 샌다

    ‘물 먹는 하마’ 노후 상수도관… 수돗물 年8억여t 샌다

    이상기후로 가뭄이 지속돼 전국의 상수원마저 말라가고 있다. 특히 고지대나 도서벽지 등은 마실 물조차 끊겨 응급 급수 차량에 의지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가뭄 때 식수난을 겪게 되는 것은 상수원 고갈(지하수 등 간이 상수도)도 문제지만, 노후화된 관로가 많아 새나가는 양이 많기 때문이다. 높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상수도 보급률은 97.7%, 상수도관 총연장은 16만 5800㎞에 달한다. 이 가운데 20년 이상 된 노후관은 전국적으로 3만 5800㎞로 파악됐다. 낡은 상수도관으로 인해 허비되는 수돗물의 양(量)만도 한 해 8억여t에 이른다. 상수도 보급률은 높지만 가뭄 때면 제한 절수 등 비상수단이 동원되는 이유다. 24일 환경부와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과거 10년간(2001~2010년) 상수도 누수량은 84억㎥로 재정 손실액만도 6조원에 달한다. 이는 주암댐(2.7억㎥/년) 30개의 수량에 해당한다. 현재 상수도 노후관 보수사업은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예산확보가 어려워 누수 개선 사업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평균 유수율은 83.2%, 누수율은 10.8%로 집계됐다. ‘유수율’이란 수돗물 총생산량 대비 요금으로 받아들인 비율이다. 유수율이 높다는 것은 누수 등으로 버려지는 물의 양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평균 수치는 수도관 관리가 그나마 잘되고 있는 특별·광역시를 포함한 것으로, 일반 시·군만을 대상으로 하면 유수율 77.4%, 누수율 14.3%로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노후 수도관은 ▲수도사업 재정악화 ▲녹물이나 이물질 검출 등으로 국민불신 가중 ▲수자원 낭비 ▲사고 때마다 단수로 국민생활 불편 초래 ▲대형관 누수시 지반붕괴 현상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유수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여 왔다. 먼저 노후 상수관망 교체를 위해 1997년부터 국고 융자를 지원해 왔다. 2011년까지 상수관망 총 2만 3839㎞ 개선을 위해 총 6048억원의 국고가 지원됐다. 또한 ‘상수관망 최적화 사업’으로 재정자립도 30% 미만 지자체 46곳을 대상으로 2010년부터 올해까지 979억 9100만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정부가 10년도 넘게 유수율 제고와 누수율을 줄이기 위한 각종 사업을 벌였음에도 개선은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지방상수도 통합이라는 인센티브 개념으로 시작한 ‘상수관망 최적 관리 시스템 구축사업’의 실적도 지지부진하다. 2014년까지 한시적 사업인 데다 국고 보조율이 10~50%로 차등 지원되고, ‘지방상수도 통합’이라는 전제조건이 걸려 있어 지자체 간 협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는 국고 보조율을 감안한다고 해도 나머지 재원 확보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또한 국고 보조율이 낮은 지자체는 형평성의 문제 등을 제기하며 딴청을 부린다. 박흠복 태백시 수도사업소장은 “올해 말까지 유수율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으로 현재 상수도관망 최적 관리 시스템 구축사업을 벌이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 보조금 외에 지방비 부담 50% 확보가 어려워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노후관 개량 사업만으로는 유수율을 높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노후 수도관 개량사업을 시행했지만 물이 새는 관을 찾아서 교체하는 단순 작업에 그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투자 대비 효과가 미미하고, 구역개량과 수압관리 실패 등으로 누수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상수도 관망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과 기술개발, 정부와 지자체의 의식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통합 상수관망 시스템 구축을 전국 지자체에 확대할 수 있도록 적절한 예산 확보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구자용 서울시립대 교수는 “신상품을 만들어 판매했을 때 20% 가까운 손실이 발생한다면 생산업체는 단시일 내에 망하게 돼 있다.”며 “상수도의 경우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는데도 아직까지 적극적인 개선 의지가 약한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아직도 영세한 100개 이상의 수도사업자는 유수율이 형편없어 사업자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사업구조 혁신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획기적인 노력과 의식전환 없이 유수율을 높이는 과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조선 후기 콘텐츠의 보고 ‘임원경제지’ 개관서 나왔다

    조선 후기 콘텐츠의 보고 ‘임원경제지’ 개관서 나왔다

    ‘조선판 브리태니커’로 불릴 만한 조선 후기의 실학서 ‘임원경제지’의 개관서가 최근 나왔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조선 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徐有?·1764~1845)가 30여년에 걸쳐 쓴 책으로 총 54책 113권에 2만 8000여 가지의 지식을 담았다. 흔히 농경서로 알려졌지만, 조선 후기 실용백과사전이라고 보는 것이 책의 성격에 더 가깝다. 농사, 경제, 축산, 의학, 문학, 상업, 의례, 공업, 건축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의학을 기술한 ‘보양지’와 ‘인제지’ 부분은 광해군 때 완성된 허준의 ‘동의보감’과 비슷한 규모다. 단일 저작으로는 조선 최대의 저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하고, 전문적이다 보니 필요에 따라 일부만 번역됐을 뿐 책 전체가 번역된 적은 없다. ●서유구, 정약용과 비견될 ‘실학 대가’ 이번에 나온 ‘임원경제지 개관서’(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는 이같이 방대한 임원경제지의 구성과 구조 등에 대해 해제를 달고, 왜 중요한 책인지를 대중적으로 설명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풍석 서유구는 어떤 사람인지, 실학의 대가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1762~1836)과 비교할 때 임원경제지는 어떤 수준인지 등이 들어 있다. 고려대 유전공학과를 나와 이 책의 번역에 벌써 10년째 매달리고 있는 정명헌 임원경제연구소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2003년부터 학자 42명이 번역에 참여해 3년 동안 초벌 번역을 마쳤다.”면서 “2014년 3월 번역 완간을 목표로 정본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본으로 만든 뒤 초벌 번역한 것을 교정해 나가면 전집 55권으로 나오게 된다. 정 소장은 “정약용은 89학번, 서유구는 90학번으로 같은 시대의 실학자”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정조가 사랑한 ‘초계문신’으로, 정약용은 1789년에 갑과 2위로, 서유구는 1790년 병과 14위로 과거를 통과해 관리가 됐다. 재미있는 것은 정조는 시경 강의에서 500개의 시험문제를 제시하는데 정약용의 답변 중 채택된 답변은 117개로 채택률 20.2%이고, 서유구는 181개의 답변이 채택돼 31.3%에 이른다. 과거시험 결과는 정약용이 더 똑똑했지만, 시경 강의 답안 채택률을 보면 서유구가 더 똑똑했다. 이렇게 똑똑한 서유구는 벼슬을 살다가 작은아버지 서형수의 전라도 유배 등으로 벼슬이 떨어지고, 1806년 고향인 경기도 장단으로 낙향해 18년간 임진강변 장단에서 농사짓고, 물고기 잡으며 저술에 들어간다. 이때 그는 경학보다 실용 학문에 심취한다. 임원경제지에 나오는 실용 기술들은 대체로 서유구가 직접 해보고 써넣은 것으로 보면 된다. 논에 물을 대는 데 사용하는 ‘자승차’(自升車) 같은 큰 기구부터 베개 만드는 법, 밭의 두둑과 고랑을 만들어 생산량을 늘리는 법,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술과 음식에 관한 정보 등 구체적인 지식을 담았다. 다시 그가 벼슬에 나간 것은 1823년이다. 조선 후기 경학의 대가답게 규장각 제학과 예조판서, 호조판서, 홍문관 제관과 제학,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다. 아쉽게도 정승의 반열에는 들지 못했다. 또한 벼슬길에 다시 올랐을 때 귀향해 자신이 보고 겪고 느꼈던 조선 후기 가난한 국가 경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서울의 세도가, 이른바 경화세족(京華世族)이었던 그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사대부들이 일상을 개혁하면 국가 경제와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정책을 통해 빛을 보지는 못한 것이다. 임원경제연구소의 민철기 번역팀장은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어 전통음식 복원, 신약 개발, 드라마·영화의 문화 콘텐츠, 테마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보고”라고 말했다. ●전액 민간 후원금으로 번역작업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는 현재 학문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책은 모두 252만자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서유구가 중국·일본 책에서 인용한 부분을 아주 정확하게 기록했고, 인용이 부실한 대목도 명확하게 지적해 놓았다. 그 결과 서유구가 직접 자신의 생각과 기술을 저술한 부분이 46만 9000자로 전체 책의 18.6%라고 밝혀 낼 수 있었다. 이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학자들이 박사 학위 논문을 무작위로 베끼고, 자기 복제를 반복하는 행태와는 아주 다른, 엄격한 학문 태도다. 책의 번역에는 도올 김용옥의 제자들인 다양한 전공자와 직업인들이 매달리고 있다. 고전번역원이 아니라 전액 민간 후원금으로 진행된 점도 특이하다. 일본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에 있는 ‘임원경제지’ 초고, 고려대·연세대·규장각의 필사본을 종합해 정비하고, 분야별로 초벌 번역을 마치는 데 10억원이 들었다. 번역 완간까지 25억원 정도가 더 필요하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통영 충렬사 앞 여황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통영 충렬사 앞 여황로

    길은,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삶 사이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대처로 떠나는 자식의 발걸음이 잠시 떨리며 머뭇거렸음을, 옷고름 사이로 떨어진 어미의 눈물방울이 짭짜름했음을 동구밖 길은 아주 오래 기억했다. 동네 사이마다 아로새겨진 길이 2014년부터 우리네 삶의 새로운 주소로 본격 쓰인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잠시 낯설더라도 이내 편안해질 것임을 믿는다. 동네를 감아 도는 길에는 감칠맛 나면서도 예쁜 이름이 오롯이 붙어 있다. 서울신문은 매주 그 길의 결마다 숨겨진 기억을 더듬어보고, 지금 여기에 남겨진 의미를 되새겨본다. 1930년대 중반 그 봄,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으면 통영 앞바다가 훤히 펼쳐졌을 게다. 여황산자락 아래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이어진 집들을 지난 눈 속에는 쉴 새 없이 고깃배가 오갔고, 부푼 꿈을 안고 오는 이, 또 다른 꿈을 이고 타향으로 떠나는 이가 엇갈리는 낡은 선창이 비쳤을 테다. 하지만 사랑을 잃은 사내에게는 아름다운 통영의 풍경도 오롯이 아름답기 어려웠으리라. 한참 나중에 호사가들이 통영을 일컬어 ‘한국의 베니스’ 운운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칭송했지만, 스물넷 평안도 출신의 청년시인 백석(1912~1995)에게는 실연의 상처가 훨씬 컸을 수밖에 없었다. 백석은 사랑을 위해 멀리 남쪽 바다까지 헛걸음을 반복해야 했다. 한 번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른 두 번은 사랑을 기억하며 가슴 먹먹함을 달래기 위해 찾았다. 그러나 한 번 떠난 사랑이 돌아올 리는 없는 법. 통영을 다녀왔던 길은 그의 작품 속 중요한 지역의 하나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으로 갈무리됐다. ●삼도수군통제영 복판 여황산 끼고 돌아 백석의 발길로부터 80년 가까이 흐른 5월에 통영을 찾았다. 그가 시 ‘통영1’에서 묘사한 것처럼 통영 여황로에는 마침 ‘김 냄새 나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차들은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고, 타관의 학생들을 실은 수학여행 버스들은 줄을 지어 여황로 길을 지나고 있었다. 여황로는 174m의 야트막한 여황산(艅山)에서 비롯된 이름의 길이다. ‘여황’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임금이 아끼던 화려한 배로, 훌륭한 군세를 갖춘 큰 전선을 상징했다. 통영항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산세를 펼치고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의 복판에 자리잡은 산이니 딱 걸맞은 이름이다. 도로명 새주소를 만들기 전까지 통영 사람들은 그저 산복도로라고만 불렀으나 이름을 붙인다고 했을 때 여황로라는 이름을 다는 것에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통영시 북쪽 여황산 아래쪽으로 4113m 이어지며 문화동, 북신동, 명정동 등을 감싸고 돈다. 통영은 현대문화예술의 보물창고와도 같다. 특히 여황로 하면 일단 백석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여황로 251번 충렬사 앞에는 백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통영2’라는 시다. 편의상 ‘통영1’, ‘통영2’라고 했지만 발표 당시 원래 제목은 모두 ‘통영’이었다. ‘통영2’는 그가 통영에 대해 쓴 시편 중 가장 길고 유려하며 음율을 잘 살렸다. 그는 ‘통영2’에서 이곳을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또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에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고 노래했다. 사랑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여황로 길가에 앉아 한껏 달떠서 혼자 히죽거리는 백석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곧 깨지고 말 단꿈이었지만. 여기에 원체 아름다운 통영의 풍광까지 한눈에 들어왔으니 시인의 시심이 절로 우러났을 것임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백석 시비 앞 명정샘 박경리가 소설에 써 ‘난’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다. 막 문청을 벗고 등단해 시인이 된 그는 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통영 출신의 이화고녀 졸업반이던 박경련을 만나고, 첫눈에 반해 사귄다. ‘난’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는 박경련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통영을 찾았지만 걸음이 엇갈려 만남이 어긋나게 됐다. 난의 집이 충렬사 근처인 명정동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사이 그의 직장(조선일보) 동료이자 친구였던 이가 난과 결혼을 해 버리고 말았다. 사랑과 친구를 함께 잃은 아픔 탓이었을까. 그는 그해 조선일보를 그만뒀다. 그리고 기생 자야(子夜·본명 김영한·역시 백석이 붙여준 애칭이다)를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눴고, 고향집 부모님의 성화에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렀지만 다시 자야에게 돌아갔다. 1940년 자야마저도 떠나 고향땅인 신의주, 정주로 갔다. 그가 통영에 대해 직접 남긴 작품은 ‘통영 1, 2’ 외에 ‘남행시초2-통영’ 등 모두 세 편이다. 특히 ‘남행시초2-통영’ 시편 마지막에는 난의 외사촌 오빠인 ‘서병직씨에게’라고 적었다. 그를 통해 통영 장터며 선창 등을 둘러봤음을 알게 해준다. 백석이 들여다본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골 명정샘은 지금도 여황로 시비 앞에 있었다. 충렬사 문화해설사인 옥복주(47)씨는 “일(日)정과 월(月)정 두 개의 샘이 있어 명정(日+月=明井)이 됐다.”면서 “1670년 만든 이후 몇 년 전까지 330년 넘도록 식수로 썼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은 여전히 맑지만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통영2’ 중)을 찾을 수는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명정골은 통영이 고향인 박경리(1926~2008)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문장 속에도 그 흔적을 흩뿌려 놓았다. 박경리는 명정골에 대해 ‘고을 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고 했다. 박경리의 생가는 여황로 충렬사 주차장 맞은편 바로 곁의 좁은 골목길인 ‘토영 이야길’을 따라가면 있다. 새주소로는 충렬1길 76-38이다. 하지만 현재 다른 이가 살고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표지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남편과 사별한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에게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무려 5000통의 연서를 보냈던 유부남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사연이 남겨진 곳도 그리 멀지 않다. 유치환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복’ 중)고 노래했던 통영중앙우체국(세병로 5)은 여황로에서 서문로를 따라 7~8분 남짓 내려오다가 세병로(청마거리) 오른쪽으로 접어든 뒤 3~4분쯤 걸어가면 있으니 그리 멀지 않다. ●지긋한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읊어 이른 아침 여황로 어귀에서 만난,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는 늙수그레한 중년의 김모(58)씨는 “그 사람들이야 먹고살만 하니까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썼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면서도 유치환, 이영도의 ‘아름다운 불륜’이며, 시인 김춘수, 화가 김용주,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박경리 등 통영 출신 예술가의 이름들을 줄줄이 들먹였다. 흔히 돈을 잘 버는 동네에서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들 하는데, 통영이라면 ‘중늙은이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소설 한 토막쯤 읊조린다.’는 말이 좋이 쓰일 법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후딱 오른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통영시내 쪽으로는 강구안길이며, 여황산이 보이고, 다도해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산도, 매물도, 그리고 멀리 대마도까지 한눈에 푹 안긴다.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과분할 만큼의 통영이다. 이곳의 길 위에서 시집 한 권, 소설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그 옛 기억과 향취까지 가져간다면 더욱 어울릴 법하다. 글 사진 통영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역사의 보고 통영의 길들 동피랑·서문까꾸막… 토박이말 길이름 천국 통영은 바다의 왜적들과의 싸움, 그리고 평화에 대한 바람으로 다져진 곳이다. 통영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역사의 현장으로 뚜벅뚜벅 들어감을 의미한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4년(선조 37)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겨 세운 뒤 ‘통영’이라는 지명이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통제영의 약칭에서 따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인 충렬사와 통제영의 일종의 객사 역할을 했던 세병관(洗兵館·세병로 27), 그리고 북포루(北樓) 등은 통영 출신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이고,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는 수학여행 필수 방문지다. 길 이름 역시 이러한 역사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세병로, 충렬로 등은 물론이고 통제영을 굳게 지키던 문들도 이름을 남겼다. 동문로(東門路)와 서문로(西門路)는 모두 옛 통영성의 4대문 가운데 하나였던 동문과 서문의 이름을 그대로 땄다. 두 문 모두 고갯마루의 정상쯤에 위치해 있었으니, 통영 토박이들의 말로 ‘동문까꾸막’(동문고개), ‘서문까꾸막’(서문고개)이라고 불렀던 길들이다. 북신로(北新路) 역시 통영성 북문 바깥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길이라는 뜻이다. 또한 세병로와 여황로 사이를 잇는 갈림길인 운주길은 옛 통제영의 관아였던 운주당(運籌堂)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남해안대로에서 갈래져 나온 원문마을길은 통제영 입구였던 원문성(轅門城)에서 따온 마을 이름을 달았다. 이 밖에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동피랑길은 정겨운 마을 벽화로 유명하다. ‘피랑’은 벼랑을 일컫는 통영 말이다. 통영시의 동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배기로 통영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을 자랑한다. 통영성과 동포루(東樓)의 유적이 있다. 이는 서피랑길 역시 마찬가지. 서쪽 벼랑 즈음에 있으며 통영성과 서포루의 유적이 복원 과정에 있다. 통영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논문표절·중복게재 왜 뿌리뽑히지 않나

    4·11 총선을 앞두고 논문표절과 중복 게재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문대성·정우택·유승민 등 후보들의 논문표절과 중복 게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문 성취도의 핵심지표로 여겨지는 논문의 진실성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국무총리·장관 후보자, 각 대학 총장 선거 등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문제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논문 문제가 개인의 부도덕성은 물론, 성과만을 중시하는 국내 학계의 비정상적인 문화와, 정부 주도하의 기형적인 학술지 육성 체제가 빚은 총체적 문제로 보고 있다. 2일 한국연구재단의 고위 관계자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더 부도덕하게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 검증의 타깃이 되기 때문에 밝혀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면서 “지도하는 교수가 이를 적발하지 못한 채 학위를 주고, 학술지가 게재를 승인하는 것 자체가 학계의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재단은 국내 주요 학술지의 가치를 평가하고 학위 등록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이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학술지 운영과 논문 작성 및 연구윤리에 대한 교육과 인식 모두 국제수준에 크게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세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은 “해외의 경우에는 몇 개 단어 이상의 동일한 사용, 연구주제의 유사도 등을 심사나 리뷰단계에서 걸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제도가 정착된 지 오래”라며 “반면 한국에서는 쓰다 보면 단어가 반복될 수 있다고 이해해 주거나, 같은 전공에서 주제나 연구방법이 동일한 것 정도는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모 서울 약대 교수는 지난해 국제저널 ‘산화방지&산화 환원신호’에 논문을 게재한 후 논문조작 의혹이 제기되자 ‘단순한 사진 게재 실수’라고 해명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조사과정에서 같은 사진을 여러 논문에 중복 사용한 것은 물론, 하나의 연구를 3개의 논문에 대조군으로 게재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최근 소개한 한 해외언론은 “지도교수가 논문과 관련해 무엇을 가르쳤는지 모르겠다.”고 비꼬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정부가 1998년부터 추진한 ‘연구재단 학술지 등재 제도’가 논문과 학술지 전반에 걸친 부실을 낳았다는 비판도 있다. 일정 기준만 넘어서면 모두 등재학술지로 인정하면서 1998년 56종에 불과하던 등재 학술지수는 현재 2000종을 훌쩍 넘어섰다. 이 때문에 일부 학술지는 논문 수를 부풀리기 위해 표절을 장려하거나 교수가 학생들에게 표절할 논문을 나눠주는 일도 빈번하다. 한국조직공학회 학술지인 ‘조직공학과 재생의학’은 2005년 창간한 후 이 같은 방법으로 수십편의 표절논문을 편집위원장 주도로 게재했다가 일이 불거지자 2009년 자진 폐간하기도 했다. 이덕환 한국화학회장은 “이처럼 학술지의 논문 심사가 부실한데, 정작 대학들은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한다는 식의 기준만 두고 있다.”면서 “학계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국제기준에 맞춘 논문 작성 방법과 논문표절이 범죄라는 인식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과부 측은 “2014년 말까지 등재제도를 폐지하고 세계 수준이 될 수 있는 학술지만 선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KTX 정읍역사 신축 공방’ 정치권도 가세

    호남 고속철도(KTX) 전북 정읍역사 신축 사업이 정치 쟁점화되고 있다. KTX 정읍역사와 지하차도 건설 여부를 놓고 정읍시와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민주통합당과 지역 국회의원까지 가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철도시설관리공단 김광재 이사장은 지난 2일 전북 정읍시청을 방문해 김생기 시장, 시의원, 시민대표 등에게 “2009년 KTX 정읍역사와 지하차도를 신축할 것을 검토했으나 최근 현 역사를 이용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고 밝혔다. ●시설公 “교통불편 우려… 신축반대” 김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이용객 불편, 역사 이용 저조, 신축에 따른 도심 교통 불편, 역광장 이용의 어려움 등 현 역사 활용방침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역사를 신축할 경우 호남선 KTX 개통 시한을 2014년 말까지 못 맞출 수도 있다.”면서 “국가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이용객 편의를 위해 우선 기존 역사를 이용하면서 단계적으로 역사와 지하차도 공사를 해 가자.”고 시와 시민의 협조를 거듭 요청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의 이 같은 발언은 정읍지역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김생기 시장, 김철수 시의장, 김인권 정읍상공회의소 회장 등은 “서해안 7개 시·군의 교통중심지로 거듭나려는 시의 희망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며 “새 역사와 지하차도는 국토 균형발전, 국가의 미래 발전, 국민과의 신뢰 유지 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김 시장은 “지난달 31일 상위기관인 국토해양부 장관이 ‘당초 계획대로 반영하겠다’고 했는데 이사장은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며 “원안대로 추진되지 않을 경우 불행한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최고위원 “호남차별 말라” 민주통합당도 정읍역사 문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기로 하는 등 이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최고위원은 지난 5일 정읍역사 신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기철 지역위원장을 찾아가 “역사 신축을 취소하고 현 역사를 리모델링하기로 한 것은 호남권 차별”이라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당론으로 채택할 계획인 만큼 단식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유성엽(정읍·무소속) 의원도 “공단이 정읍시에 보낸 공문에 역사 신축, 동서 연결도로 개설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었다.”며 “김 이사장 취임 후에도 공문을 주고받았는데 이를 백지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철도시설공단은 521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정읍역사 신축을 위해 2009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공문을 통해 정읍시와 다양한 협의를 추진해 왔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박원순 “야당·시민단체 뭉쳐야”

    박원순 “야당·시민단체 뭉쳐야”

    박빙의 여론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박원순 범야권 후보가 젊은층과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사활을 걸었다. 보수 지지층들의 결집에 맞서기 위한 조치다. ●한명숙 “민주지지자는 꼭 투표하라” 박 후보는 20일 서울 안국동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야당의 맏형인 민주당을 포함해 모든 야당, 시민단체가 내 일처럼 뛰어준다면 질 수가 없다.”며 단결을 강조했다. 선대위원장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다. 투표하지 않거나 중도에 서서 자기표를 주지 않는 것은 한나라당 편”이라면서 “민주당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해야 한다.”고 투표를 독려했다. 당내 후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극적인 민주당 내 인사들과 지지자를 질타한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도 “‘백욕이 불여일표’다. 백번 욕하는 것보다 한 번 투표하는 게 훨씬 낫다.”며 투표로 심판해 줄 것을 호소했다. ●주거·보육 등 5대 시민복지기준선 발표 투표율 제고의 또 다른 무기는 ‘복지’다. 박 후보는 전날 ‘서울시민 권리선언’에 이어 보편적 복지를 근간으로 한 주거·보육·교육·의료·소득 등 5대 생활영역별 ‘시민복지기준선’을 발표했다. 복지최저선(2014년 달성)과 복지적정선(2018년)도 명시했다. ‘복지 대 반복지’의 구도를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다. 20~30대 유권자가 있는 동국대로 달려가 대학생과 정책 협약식을 갖고 반값 등록금 등 공약 실천도 약속했다. 영화 ‘도가니’의 공지영 작가, 배우 김여진, 신경민 전 MBC앵커, 박재동 화백 등 젊은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멘토단’과 오찬간담회를 가지며 표심을 다지기도 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발언대] 여름철 에너지 절약에 적극 동참을/강형구 한국전력거래소 차장

    [발언대] 여름철 에너지 절약에 적극 동참을/강형구 한국전력거래소 차장

    해마다 여름철, 겨울철이면 정부와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발전사 등은 차질 없는 전력 공급을 위해 긴장한다. 특히 매년 여름철엔 에어컨 등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수급 위기상황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2014년까지 획기적으로 전력 공급이 늘어나지 않아 국가적인 수급비상이 우려되고 있다. 최근 전 지구적인 온난화 현상으로 여름철마다 이상고온과 기상이변 현상이 반복돼 왔으며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올여름 전력 공급능력은 약 7900만㎾이며 예비전력은 420만㎾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여름철 기준으로 예비전력은 2000년 이후 가장 낮아 심각한 전력난이 우려된다. 예비전력이 400만㎾ 이하이면 전력 수급 경보 4단계 중 1단계인 관심수준으로 비상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전력 수요 억제와 전력피크 시간대 공장 가동 시간 조정 외에도 하반기부터 발전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전력요금을 인상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가장 절실한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서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에너지 절약 실천운동이 필요하다. 여름철 전력 사용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대인 오후 2~4시에 불요불급한 전력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세탁기·에어컨 등 가전기기도 전력 수요가 높은 시간대를 피해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매년 반복되는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밀한 장기수요예측을 기반으로 신재생에너지와 분산전원, 수요반응을 고려한 합리적인 전원계획과 송·변전시설 투자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전력부문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스마트그리드’ 성공을 위해 제도 개선 등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력 판매부문 경쟁 도입과 소매전력 자유화, 그리고 실시간 수요반응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들도 국가적인 전력재난을 피하기 위해 작은 불편 정도는 감수하고 여름철 에너지 절약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겠다.
  • 인류는 어디서 왔는가… 내년 6월이면 풀립니다

    인류는 어디서 왔는가… 내년 6월이면 풀립니다

    “지금은 인류가 수천년 동안 궁금해했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직전입니다. 늦어도 내년 여름이면 약 140억년 전 태초(太初)의 신비가 상당 부분 규명됩니다. 현대물리학의 기본 틀을 형성하고 있는 가설이 맞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과학은 이전에 이뤄낸 모든 성과의 총합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게 될 것입니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롤프 디터 호이어(63) 소장은 들떠 있었다. 14일 서울신문과 단독으로 가진 이메일·전화 인터뷰에서 전 지구적 과학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힉스(Higgs) 입자’ 규명이 당초 계획보다 6개월쯤 앞당겨져 내년 여름에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CERN의 수장이자 가속기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그는 현재 ‘인류 최대의 실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CERN은 7조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된 지구 최대의 대형 강입자 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LHC)를 2008년부터 가동하며 지구와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고 있다. LHC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일대 100m 지하에 마련된 직경 9㎞, 길이 27㎞의 원형 터널에 구축돼 있다. 호이어 소장과의 인터뷰는 기초기술연구회가 주선하고 최선호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의 의견을 받아 진행됐다. →CERN이 진행하는 전 지구적 프로젝트가 과학계에는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일반인에게는 그 개념조차 어려운 것 같다. -한마디로 138억년 전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대폭발) 직후의 상황을 재현하는 작업이다. 2개의 양성자 빔을 LHC 내에서 광속(光速)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정면으로 충돌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우주를 구성하는 데 관여한 16개 입자(표준 모형)의 질량을 정의해 낸 힉스입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태초에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반(反)물질을 추적하는 것도 우리가 우주의 진화를 규명하는 데 중요하다. 실험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필사적이다. 이번에 힉스 입자를 규명하지 못하면 현대물리학이 세운 대부분의 이론은 갈 길을 잃게 된다. 당분간 새로운 형태의 대규모 실험을 시도할 명분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진척도는 어느 정도인가. -다행히 LHC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성능을 발휘하고 있다. 물리학에서는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얼마나 쌓느냐가 중요한데, 올해의 경우 고작 절반 정도 지난 상황에서 연간 목표량을 웃돌고 있다. 현재 진행 속도와 데이터 분석 시간을 감안하면 내년 6월쯤이면 힉스 입자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당초 발표보다 6개월가량 빠른데. -그렇다. 예상보다 실험이 훨씬 더 원활하게 진행되어 태초의 신비에 더욱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 힉스 입자가 발견된다면 우리는 ‘표준 모형’을 완성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힉스 입자를 발견하더라도 우리 연구진이 ‘유레카’라고 외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워낙 짧은 시간만 존재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소멸되는 힉스 입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이미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론물리학을 통해 토대를 닦아 놓았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힉스 입자는 사라지면서 다른 입자들을 만들어낸다. 이 입자들은 힉스 입자보다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남아 있게 되는데, 우리는 이를 힉스 입자의 흔적으로 여긴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까지도 알고 있다. 이런 특이한 패턴이 우리가 설정한 예상치보다 많이 나오는 일이 반복되면 힉스 입자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힉스 입자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만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내년 6월이면 이를 단언할 만큼 충분한 데이터를 얻고 분석을 마칠 수 있다. →최근에 가시적인 성과들이 부쩍 늘었다고 들었다. -지난달 CERN이 보유한 반양성자 감속장치(AD)에서 반물질(반수소)을 1000초(16분 40초) 동안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전에도 반물질을 만든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잡아둔 적은 없었다. 반물질은 물질과 만나는 순간 함께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 연구진은 극저온 냉동기술을 동원해 반수소를 잡아두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이제는 잡아둔 반수소의 속성을 연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왜 반물질이 사라졌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힉스 입자의 존재 유무를 입증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CERN에서 이뤄지는 모든 연구는 긴 안목의 장기 프로그램들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장비인 만큼 처음 목표를 달성하면 그다음 단계에서 무슨 실험을 할지 계획을 짜 놓은 상태다. 우선 내년 힉스 입자 실험이 1차 완료되면 내년 말 가동을 중단한다. 현재의 에너지를 두배로 늘리기 위한 작업을 1년간 진행한 후 2014년에 다시 가동을 시작한다. 또 몇 년간 가동하고 다시 정지시켜 개선하는 작업이 반복될 것이다. 매 간격마다 우리는 좀 더 발전된 형태로 과학적 진리에 다가가게 될 것이다. →전 세계 60여개국, 1만여명의 과학자를 이끌고 있다. 어려움은 없나. -국적도, 전공도 다른 과학자들이 함께 작업하지만 의외로 어려움은 없다. 이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를 향한 공통된 집념은 연구 생산성도 자연스럽게 높여 준다.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형 과학 프로젝트는 결코 전통적인 형태의 닫힌 조직으로는 진행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시작 단계부터 분업과 협업을 유기적으로 이룰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도 핵심은 중이온가속기다. 어떻게 운용해야 경제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CERN을 운영하는 데는 고작 일개 대학의 예산 정도만 필요하다. 60년 전 CERN이 처음 만들어질 때 채택된 예산 조달 방식 덕분이다. CERN은 비용을 균등하게 나누고, 얻어지는 이익도 함께 나누는 구조다. 무엇보다 이런 거대 작업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 자체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점이 중요하다. 과학벨트도 가속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만큼 한국 내 기업과 대학, 연구소는 물론 해외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다. 기초과학은 새로운 지식을 사회에 불어넣는 선순환 고리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과학에 대한 투자는 이런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기본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약력 및 용어클릭 ●롤프 디터 호이어(Rolf-Dieter Heuer) 실험입자물리학자로, 거대 가속기 건축과 운영의 세계적 권위자다. 1948년 독일 괴팅겐에서 태어났다. 슈투트가르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후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1998년까지 CERN에서 근무하며 우주입자 추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1998년 함부르크대 물리학과장을 맡으며 전자-양전자 충돌기 실험에 대한 이론을 세계 최초로 정립했다. 가속기·광 과학·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는 독일 전자싱크로트론 연구소에서 고에너지 연구부장을 지낸 후 2007년 12월 CERN 소장으로 선출됐다. 기초기술연구회 1호 과학자문위원으로 각종 과학정책에도 조언하고 있다. ●힉스(Higgs) 입자 빅뱅 직후, 우주 만물을 이루는 16가지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 것으로 추정돼 ‘신의 입자’로 불린다. 1964년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제안해 이름 붙여졌다. 16가지 입자가 모두 발견돼 힉스의 존재가 확인되면 현대물리학의 표준 이론이 완성된다. 만약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지면, 입자물리학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반(反)물질·반(反)입자 물질은 원자, 원자는 입자(양성자·중성자·전자)로 구성된다. 입자와 성질이나 질량은 같지만 전하값(+ 또는 -)은 반대인 입자를 반입자(반양성자·반중성자·반전자)라고 하며, 이들로 구성된 물질을 반물질이라고 한다. 우주가 탄생할 때 같은 수의 입자와 반입자가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자연상태에서 물질과 입자만 존재한다. 입자와 반입자는 만나면 함께 소멸하는데 반입자가 사라지고 입자만 남은 원인을 찾으면 우주 진화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서울신문·기초기술연구회 공동기획
  • 차세대 핵심 메모리 STT-M램 하이닉스·도시바 공동생산 계약

    하이닉스반도체는 일본 도시바와 핵심 차세대 메모리인 ‘STT-M램’(이하 M램)에 대한 공동 개발 및 합작사 설립을 통한 공동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고 13일 밝혔다. M램 공동 개발은 차세대 유망 기술 분야에 대한 세계 반도체 상위 업체 간 협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M램은 초고속 및 저전력으로 동작할 수 있으며 전력 공급 없이도 데이터를 보관할 수 있어 안정성이 높다. 또 반도체 생산의 기술적 한계로 여겨지는 10나노 이하에서도 집적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3위인 도시바는 M램의 기술 및 개발 능력 면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고, 하이닉스는 업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과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두 회사는 합작사를 설립해 공동 개발한 M램 제품을 2014년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초기에는 저전력 특성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시장에 진입한 뒤 중·장기적으로 PC 및 서버 시장까지 공략할 방침이다. 권오철 하이닉스 사장은 “M램은 빠른 동작 속도와 낮은 전력 소비, 높은 신뢰성 등의 기존 메모리의 장점을 두루 갖춰 새로운 모바일 기기 수요 확대와 제품의 고성능이 요구되는 ‘메모리 신성장 시대’에 최적화된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용어 클릭] ●STT-M램(M램) 기존 D램이 저장된 전자의 유무를 이용해 0과 1의 정보를 구분한다면, M램은 자성 상태에 따른 저항 차이를 이용해 0과 1을 구분한다. 무제한에 가까운 반복 기록 및 재생이 가능하고 내성이 강한 메모리로 평가받는다.
  • [평창, 꿈을 이루다] “로또 된 듯 기뻐… 국제규격 연습장·실업팀도 생기겠죠”

    [평창, 꿈을 이루다] “로또 된 듯 기뻐… 국제규격 연습장·실업팀도 생기겠죠”

    떨리는 마음에 우황청심환을 깨물었다.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긴장되는 방송 출연, 게다가 생방송이었다. ‘방송 초보’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상황. 루지 대표팀 이창용(26) 코치는 모 방송사에 초대돼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발표 방송에 출연했다. ‘내 새끼’라고 표현한 국가대표 선수 6명 중 2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평창”이 발표되는 순간. 이 코치는 목이 메었다. 눈가가 그렁그렁했다. 생소한 카메라에 긴장해 얼떨떨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카메라가 꺼지자 비로소 실감났다. 이 코치는 방방 뛰었다. 꿈만 꾸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 코치는 발표 전까지 마음을 다스렸다. 2010년, 2014년 동계올림픽에서 두번이나 실패했던 평창이었다. 그때마다 이 코치는 울었고, 방황했다. 상실감이 워낙 컸기에 이번에는 기대를 안 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그는 “평창에서 올림픽을 열면 여건이 좋아지겠지만, 안 됐다고 풀죽어서 방황하는 건 선수 자격이 없는 거죠. 올림픽 개최와 상관없이 우리는 루지 국가대표인 걸요.”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되면 좋고 안 돼도 상관없다던 ‘쿨가이’는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어린아이처럼 표정관리를 못했다. 그동안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렀다. 숨을 고른 이 코치는 “로또 당첨된 것 같아요.”라고 했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이미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던 빙상(스피드스케이팅·쇼트트랙·피겨스케이팅)도 그렇지만 특히 썰매 종목의 여건은 열악하다. 경기장은 당연히 없고, 스타트 훈련장도 지난해에 겨우 생겼을 정도. 이 코치는 “올림픽을 치르게 됐으니 국제규격 경기장은 당연히 생길 거고요. 실업팀도 창단하고 전지훈련 횟수도 늘려 준다고 했거든요. 루지 선수들한테는 혁명이죠.”라고 눈을 반짝였다. 루지 대표팀은 대부분의 훈련을 경기장이 아닌 필드에서 해왔다. 다른 나라가 국제규격의 슬라이딩센터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탈 동안, 우리는 경사진 아스팔트를 내려오며 긁히고 넘어지고 뒹굴었다. 여름 내내 아스팔트에서 좌우로 턴하는 연습을 하며 컨트롤만 배웠다. 그나마 지난해 생긴 스타트 연습장이 큰 도움이 된다. 이 코치는 “월드컵 대회에 나가면 1등하고 10등 차이가 0.1초거든요. 그게 다 스타트에서 갈려요. 그나마 스타트 연습장이 생겨서 기록이 줄었죠.” 1년의 절반 이상을 강원도 알펜시아에서 보내지만 실제로 루지를 타는 건 겨울 시즌 때 ‘반짝’일 뿐이다. 겨울에 전지훈련 가서 한 달 정도 훈련하면서 슬슬 감을 잡았고 바짝 컨디션을 끌어올려 기량이 절정일 때 시즌이 끝났다. 그리고 또 하릴없이 아스팔트를 누볐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즌은 늘 새롭고 생소했다. ●힘든 환경에서도 작년 아시안컵 우승 이런 환경 속에서도 루지는 희망을 쏘았다. 지난해 12월 열린 아시안컵(일본 나가노)에서 남녀 동반우승을 차지한 것. 루지는 아시안게임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아시안컵이 사실상 지역에서 가장 알아주는 대회다. 자신감도 부쩍 생겼다. 이 코치는 “우리나라에 경기장만 생기면 썰매도 세계 톱 클래스에 설 종목이라고 확신해요. 썰매는 일단 많이 타는 게 중요하거든요. 평창에 경기장이 생기면 매일 타면서 감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라고 기대했다. 이 코치가 처음 루지와 인연을 맺을 때만 해도 이런 ‘빛나는 순간’은 꿈으로 생각했다. 시작도 다소 무모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보고 루지에 ‘꽂힌’ 이 코치는 그해 3월 바로 무주로 내려갔다.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올림픽 때 루지에 반해서 3월 18일에 혼자서 전학갔어요. 꿈 하나만 믿었죠.” 선수조차 없는 생소한 종목이었지만 가족들은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선수도, 실업팀도, 경기장도 없지만 언젠가 동계스포츠가 발전하면 ‘선구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루지는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루지 감독은 황당하게도(?) 레슬링 선수 출신의 박순식(현 무주리조트 과장)씨였다. 당시 루지연맹 회장이었던 쌍방울 회장이 종목을 육성시키려다 회사 직원 중 ‘운동했던 사람’을 추천받았고 레슬링을 했던 박순식씨가 덜컥 루지 감독을 맡았다. 말이 감독이었지 거의 선수와 함께 배우고 토론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 멤버가 ‘썰매박사’ 강광배 전 대표팀 감독과 이용 현 봅슬레이 대표팀 감독 등이다. 이들이 싹을 틔웠지만 강광배 감독이 오스트리아로 썰매 유학을 떠나면서 루지는 명맥이 끊겼다. ●이 코치 올림픽서 ‘썰매 전복’에 눈물 그 다음 세대가 이 코치. 겁 없이 덤비다 보니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부푼 기대를 안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워낙 어린 나이에 큰 무대에 출전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고. 공식 연습 때 60명 중 29등을 했던 이 코치는 실전에서 고꾸라졌다. 1차 시기에 썰매가 뒤집혔다. “관중들 환호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긴장했어요. 조종도 안 하고 그냥 정신없이 내려가다가 뒤집혔죠.” 참 많이도 울었단다. 올림픽 후 방황하던 이 코치는 2004년 루지를 그만뒀다. 군대 영장은 계속 날아오는데 철없이 돈만 써대며 운동하기에는 눈치가 보였다고. 마침 평창이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면서 희망도 사라졌다. 직업군인을 하려고 특수부대에 지원해서 교육받다가 다쳤다. 다시 일반 육군으로 재입대하는 등 꼬이고 꼬여 무려 4년을 군대에서 보냈다. 전역 즈음, 연맹에서 대표팀 지도자를 해보라는 러브콜이 왔다. “콜!” 지난해 4월 지휘봉을 잡았고 선발전을 거쳐 뽑힌 6명(남3, 여3)의 감독이 됐다. ‘초짜’들과 함께 아시안컵 동반우승으로 사고를 친 루지 대표팀은 평창 유치로 쾌속 드라이브가 걸렸다. 이제 탄탄대로다. 이 코치는 “2014년 소치올림픽 때 루지 전 종목에 출전하는 게 목표예요. 평창에서도 화끈하게 달려 보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31년이 흘렀는데 ‘5월 광주’를 말하고 있다. ‘또(혹은 아직도) 광주냐.’란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개의치 않는 눈치다. 2년 동안 아내(주로미, 조연출·내레이션·구성작가)와 아들(김상구, 촬영보조)까지 동원해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오월愛’(오월애)를 완성했다. 40여명 무명씨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기억하는 1980년 5월과 이후 30년의 사적(私的) 기억을 복원했다.  뿐만 아니다. 광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민중의 세계사’란 주제로 10부작 시리즈를 만들겠단다. 20년 가까이 다큐멘터리 한우물을 파고 있는 김태일(48) 감독 얘기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전국 18개관 개봉(12일)을 앞둔 그를 지난 4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졸업 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나선 ‘10대 스태프’ 상구(14) 군도 함께했다. “우리가 잊고 있던 31년을 살아온 분들이 궁금했다.” →경북 예천 출신인데 언제부터 광주항쟁에 관심을 두게 됐나. -대학(고려대 국문과 84학번)을 다닐 무렵이 아닐까. 엄청나게 피가 뜨거웠던 시절 아닌가.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살아남은 우리가 모두 죄인이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화려한 휴가’(2007) 같은 상업영화부터 각종 다큐멘터리까지 광주항쟁을 다룬 영상물은 넘쳐난다. 왜 지금, 광주를 다뤄야 했나. -기존 작품들을 대개 5월 항쟁 열흘의 기록이다. 당시 이름 없이 참가했던 분들의 기억과 지금의 모습을 통해 30년이 지난 이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아예 광주에 내려가서 살았던데. -2009년 3, 4월 두 차례 답사했다. 광주 대인시장의 방 한 칸을 ‘대인 예술인프로젝트’(시장의 문 닫은 공간에 작가를 상주시켜 예술작업을 지원하고 시장도 활성화하는 사업)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해 작업·생활공간을 얻었다. 실제 광주에 머문 건 6개월쯤이다. →40명에 이르는 무명씨(항쟁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뭉클했다. 이들의 마음을 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쉬울 줄 알았다(웃음). 2009년 5월1일 내려가서 처음 만난 인터뷰 대상에게 딱지를 맞았다. 그다음 뵌 게 양동시장 노점상 이영애(항쟁 당시 주먹밥 부대) 어머니다. 거리에서 30분을 혼났다. 매년 5월이면 언론에서 취재를 와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막상 보도는 시덥지 않으니까 화가 나 있던 게다. 일단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조연출(아내)이 나서 아줌마들끼리의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흐르고서 비로소 인터뷰를 담을 수 있었다. →다큐에 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있나. -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이 진압될 때 방송실에 3~5명 정도가 있었다. 그 중 중 3 여학생이 있었다는 복수의 증언을 확보했다. 그런데 구속자나 사망자 명단,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훈방되면서 기록이 안 남은 걸로 추정할 뿐이다. 당시 넝마주이들이 맹열하게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분들이 모여 살았다는 월산동 일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끝내 못 찾았다. “광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가슴이 아팠다” →‘언제부턴가 광주 안에서도 5·18이 우리 안의 타자가 된 것 같다’는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관련 단체끼리, 또는 단체와 시민 사이에 골이 깊어진 건 사실이다. 2년을 작업하면서 외부인으로 광주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봤다. 갈등은 90년대 중반 이후 보상과 함께 시작됐다. 이분들이 10년 정도를 폭도 취급을 받다 보니 생활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보상으로 목돈이 생기니까 빚을 갚거나 주식·사업을 한다고 90% 정도는 돈을 날려버렸다. 배운 것도 없고, 고문과 부상으로 막노동할 형편도 안 됐다. 5월의 트라우마는 고스란히 남았고, 후유증으로 최근까지 50여명이 자살했다.  현재는 도청 별관 철거 논란으로 갈등이 표면화돼 있다. 5월 정신을 계승하려면 도청별관을 보존해야 한다는 측과 하루빨리 (도청별관을 철거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남도청 일원의 17만㎡에 2014년까지 민주평화교류원·아시아문화원 등 완공 예정)을 건설해야 한다는 측이 맞서 있다. 후자 측은 5·18 관련 단체(5·18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유족회)를 통합해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공법단체를 만들면 아시아문화전당의 자판기 수익금 등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오랜 갈등을 지켜본 광주시민은 진절머리를 낸다. 결국 ‘5월’은 광주 안의 섬처럼 고립된 것이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생계 유지가 쉽지 않았을 텐데. -생활비와 제작비의 경계가 모호해서 제작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웃음).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영화제에서 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돈이 떨어지면 ‘알바’를 했다. 늘 외환위기 때처럼 살았다(옆에 있던 상구가 “내 통장도 털렸어요.”라고 폭로했다. 김 감독이 “빌린거지, 털었다고 하면 도둑 같잖아”라며 멋쩍게 웃었다). →부인과 아들까지 (영화 작업에) 끌어들였는데. -아내는 빈민촌 어린이집 교사였는데 문을 닫았다. 40대 중반이면 원장을 할 나이라 재취업이 안 됐다(웃음). 2008년 단편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부터 함께 했다. 이전에도 모든 작품을 가편집 단계부터 보고 상의했기 때문에 스태프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후원자, 동반자다. 10여년 동안 작품이 주목받지 못 해 갈등도 많았지만, 항상 아내가 ‘구애받지 말고 해라. 당신 만의 힘이 있다’고 토닥여줬다. 상구는 촬영보조로 딱히 한 일은 없다(이들 부자의 대화는 친구들끼리 말장난하듯 친근하다). →스태프로 뽑은 이유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나(상구가 “돈이 없으니까.”라며 끼어든다). 중학교를 안 다니는데 집에서 놀기만 하더라. 우리 부부는 거의 광주에 내려가 있어야 하니까 그럴 거면 와서 경험해 보라고 했다. 안 내려온다고 버티기에 ‘알바비’를 준다고 미끼를 던졌다. 작업일지를 잘 쓰고, 현장에 꼬박꼬박 출퇴근하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다(상구가 “아빠 말이 맞긴 한데 아직 못 받았어요. 다 합치면 360만~370만원은 받아야 해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영화를 전공한 적이 없다. 1993년 ‘원진별곡’부터 다큐에 뛰어들었는데.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내 길은 아닌 것 같더라.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영상으로 옮기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독립영화협회에서 하는 3개월짜리 기초교육만 받고 바로 연출을 시작했다. 그때 조연출을 한, 두 편이라도 했다면 지금 고생을 덜 했을 것 같다. 그때는 다 배웠다고 생각했다(웃음).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 10부작을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현장답사를 다녀온 인도차이나를 먼저 다룰 거다. 중동과 팔레스타인,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콩고 등 중앙아프리카,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동유럽, 호주와 남태평양 지역, 그리고 남미와 북미 등 얼개를 잡았다. →얼마나 걸릴까. -20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기자가 상구에게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업해도 되겠다’고 했더니 “전 관심없어요. 너무 무리 아닌가 싶어요. 10편에 집착하면 작품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라고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31년이 지난 지금, 광주정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뉴스를 보니 중고생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첫 순위로 꼽는다더라.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가치만을 좇고 있다. 31년전 광주에서는 국가폭력에 맞선 극한의 상황에서도 얼굴도 모르는 옆 사람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렇게 많은 시민이 죽어가면서 지키고자 했던 연대와 나눔 등의 가치를 우리가 어떤 의미로 승화시킬지는 각자의 몫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상구는 “5월의 공동체정신을 되새기자라고 하면 되는데 아빠가 너무 장황하게 얘기한다.”고 면박을 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백두산 화산 연구 20년 윤성효 교수 
 “백두산 폭발땐 아이슬란드 1500배 위력”

    백두산 화산 연구 20년 윤성효 교수 “백두산 폭발땐 아이슬란드 1500배 위력”

    애국가 첫 소절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는 동해물이 마르지도 않을뿐더러 백두산 또한 없어지지 않기에 영원히 우리나라를 사랑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활화산인 백두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애국가를 손질해야 하나.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요즘 백두산 화산 문제가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다. 북한에서 이례적으로 남측 학자들과 백두산 화산 연구를 하자고 제의해 올 정도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관심은 크게 세 가지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느냐는 것과 만약 한다면 언제 어느 정도의 폭발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 하여 백두산 신령한테 몇 가지만 물어보자. “신령님, 백두산이 폭발하는가요.” “그럼, 하지.” “왜요.” “산 밑이 점점 뜨거워지는데 안 할 수가 없어.” “언제가 될까요.” “학자들은 화산학적으로 100년 이내라고 하는 것 같아.” “폭발하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그건 옛날의 기록을 한번 뒤져 봐.”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668년과 1702년에 함경도 경성, 부령 지역에 화산재가 비처럼 내려 3㎝ 정도 쌓였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20년 동안 백두산 화산연구에만 몰두해 온 부산대 윤성효(54·지구과학교육과)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당시 기록을 보면 그 분화의 양이 ‘화산폭발 지수 5’에 해당하는 규모로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폭발 지수보다 10배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천지의 20억t 물이 쏟아져 항공대란은 물론 강진으로 인해 제주도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지요. 또 역사상 최대의 화산 분화사건으로 기록되는 1000년 전의 폭발적인 대분화(100~150㎦ 정도. 화산폭발 지수 7 이상)가 다시 발생하면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의 1000~1500배에 해당하며 이때에는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백두산 화산폭발로 생긴 분출물의 일부가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지요.” 대폭발의 경우 양강도와 함경도 지역은 화산재가 수m 두께로 쌓일 것이며 지역 대부분이 초토화될 것으로 윤 교수는 예상했다. 또한 식수 오염(산성비), 식생 파괴, 식생 고사 등은 물론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화산 이류(泥流)가 발생해 제방을 파괴하고 강 주변의 경작지 및 주택가를 황폐화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현재 백두산의 상태는 어느 정도일까. 윤 교수는 “백두산은 활동적인 활화산으로 언젠가는 분화할 것이 확실하다. 지하 마그마방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분화 가능성의 징후를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첫째, 최근 들어 천지 바로 지하 2~5㎞ 하부의 화산 지진 증가(2003년 월 250회). 둘째, 백두산 천지 주변 외륜산 일부 암반 붕괴와 균열 발생(2003년). 셋째, 백두산 천지 칼데라 주변의 암석 절리(틈새)를 따라 화산 가스 분출로 주변 일부 수목이 고사. 넷째, 2002년 8월부터 2003년 8월까지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을 이용해 백두산 천지 주변 지형의 연간 이동 속도를 관측한 결과 약 45~50㎜로 활발. 다섯째, 천지 주변 온천수의 수온(최대 섭씨 83도)과 가스 성분(헬륨, 수소 등) 증가. 여섯째, 지진파토모그래피에 의해 천지 지하 10~12㎞ 지점에 규장질 마그마방 존재 확인 등이다. “백두산은 현재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가장 위협적인 화산 중의 하나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히 천지 지하 규장질 마그마방 내에는 엄청난 양의 용존 고압가스가 있으며, 이 마그마가 지표로 상승해 깊이가 얕아지고 임계조건을 넘으면 일시에 대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우려됩니다. 게다가 천지에 담긴 20억t의 물이 지하 암반 틈새를 따라 지하 마그마와 만나는 경우 수증기와 화산재를 뿜어내는 초대형 화산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요.” 윤 교수는 또한 이럴 경우 백두산 반경 약 100㎞ 내에는 산사태와 대규모의 산불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발해의 멸망도 화산활동에 기인했을까. “발해의 멸망은 926년이고, 백두산 화산폭발은 936년의 일이니까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요. 다만 폭발 이전부터 이미 분화 전조 현상 등 화산활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에 따른 지각변동이 생기면서 재해가 발생하니까 백성들의 마음이 떠났겠지요. 아무튼 그 무렵 발해 유민들이 고려에 대거 유입되면서 요나라가 무혈입성한 것이 아닙니까.” 그 다음 궁금증. 백두산 화산활동으로 인해 주변의 수많은 나무가 고사했고 뱀 떼가 출현했다는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뱀 떼 출현은 2010년 봄과 가을에 두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 만주 쪽에 사는 청나라 후손들이 중국 남방에서 사육된 뱀을 사다가 누르하치가 태어난 백두산 북서쪽에 일시에 방생한 것입니다. 당시 방생한 뱀들이 야생에 적응하지 못해 먹을 것을 찾아 도로 쪽으로 기어나온 것이 관광객들에게 발견됐고 국내 한 언론이 화산의 전조현상이 아니냐고 추측보도하면서 그런 얘기가 확 퍼졌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인들은 방생할 때 주로 물고기로 하지만 중국인들은 뱀을 용처럼 여겨 방생하는 관습이 있다. 중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청나라의 후손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르며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 방생지로 자주 선택하는 데서 발생한 해프닝이라는 설명이다. 나무가 고사한 것과 관련해 윤 교수는 “2004년에 천지 주변의 많은 나무가 말라죽었는데 처음에는 병충해를 원인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분석해 보니 당시 단층 절리를 따라 흘러나온 화산가스(이산화탄소)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백두산의 높이를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2744m가 아닌 2750m라고 주장한다는 것에 대해 윤 교수는 “만주지역의 지각변동과 화산활동으로 산이 융기돼 어느정도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화산폭발은 언제쯤 일어나게 될까. 일부 언론에서는 2014년에 폭발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 보도는 잘못됐습니다. 기상청 세미나에서 한 질문자가 ‘2014년에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제게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화산학적으로 봤을 때 100년 이내의 가까운 장래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게 보도가 나가더군요. 화산폭발이 꼭 언제다 하고 못 박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최소 일주일 전에 예측이 가능하도록 해 대피명령을 내리고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관건이지요. 남북한이 공동으로 계속 연구해 나가면 예측의 가능성은 좀 더 정확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공동연구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한 국가 안보적 차원뿐만 아니라 백두산의 지질, 자연환경, 생태계 연구와 같은 학문적 차원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고구려, 발해역사 왜곡을 막아 백두대간을 올바로 세우는 민족정립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백두산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를 위해 지질, 생물, 역사, 물리탐사공학 등을 포함하는 최정예 학술연구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화산 전문가 양성 또한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당장 연구할 과제는 천지 지하의 마그마 양을 파악하고, 마그마의 이동 방향과 속도, 깊이 등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윤 교수는 말했다. 그가 백두산 화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년 전. 부산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1990년이었다. 이 무렵에 논문 ‘화산구조 칼데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독일에서 국제 화산학회가 열렸는데, 백두산에 대한 논문이 하나 있더라고요. 그런데 논문을 쓴 사람이 일본학자였어요. 우리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지는 백두산 논문을 일본인이 썼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좀 상했습니다.” 이때부터 백두산 화산연구로 방향을 잡은 윤 교수는 이듬해 옌볜의 지질학자와 함께 백두산에 처음 올랐다. “산에 오르는 순간 살아 있는 화산임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분화구를 보면서 여러번 화산활동을 했구나 하는 점과 과거에 폭발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지요. 지진이 끊임없이 일어난 흔적도 있었고 온천물도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도 직접 느꼈습니다.” 이후 매년 시간만 나면 백두산에 갔다. 1996년에는 중국에 교환 연구원으로 가서 백두산에서 아예 살다시피 했다. 그는 연구하면 할수록 ‘백두산은 1만년 전부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화산’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백두산이 활화산’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1996년 당시 중국에서 국제지질학회 회의가 열렸고 서양 학자들도 백두산을 답사했지요. 그들이 위험한 화산이라고 하자 그때서야 중국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중국은 1999년 ‘천지화산관측소’를 세우는 등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000년 전의 백두산 대폭발이 인간이 역사를 기록한 이래 최대였다는 점도 밝혀졌다. 그 이전까지 유사 이래 최대 화산 폭발은 1815년의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폭발로 화산재가 지구 전체를 떠돌아 유럽에 미니 빙하기와 대기근을 몰고 오기도 했다. 그는 백두산과 천지에 대한 연구 열의로 한때 중국에서 간첩이란 오해를 받아 일주일 동안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초가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일본과 뉴질랜드 등을 다니면서 칼데라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백두산에 대해서는 국제 공동연구가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다시 말하지만 대폭발이 일어나면 북한 함경도는 화산재로, 백두산의 중국 쪽은 홍수로 초토화되며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는 화산재가 함박눈처럼 내리게 됩니다. 분화 경험이 풍부하고 첨단 연구실적을 가진 일본의 도호쿠대학, 실제적으로 ‘천지화산관측소’를 운영하는 중국 국가지진국 활화산연구센터, 그리고 러시아와 북한의 핵심연구자들과 함께 협력교류를 통한 백두산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윤성효 교수는 경남 함안 출생인 그는 1976년 부산 중앙고를 나와 부산대 사범대를 졸업(1980년)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1982)와 박사(1987년) 과정을 마쳤다. 1989년 부터 지금까지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로 몸담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제주화산학연구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백두산 대폭발의 날’(해맞이, 2010년) 등이 있다.
  • “드라마 ‘싸인’으로 관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희선 원장에게 듣는다

    “드라마 ‘싸인’으로 관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희선 원장에게 듣는다

    2006년 겨울 서울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실. 한 법의학자가 능숙하게 40대 남성 시신의 두피를 벗겨냈다.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뇌에 흐르는 피. 자위를 하다 그대로 굳어버린 시신의 사인(死因)은 뇌출혈이었다. 부검대 아래쪽에는 허름한 싱크대와 각종 부검 도구, 장기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놓여 있었다. 유리벽 경계조차 없는 협소한 공간 속에서 유가족은 시신 머리맡에서 부검을 지켜봤다.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한 드라마 ‘싸인’에서 본 넓고 때깔 좋은 부검실은 5년 전 수습기자 당시 머릿속에 새겨진 기억과는 너무 달랐다. 드라마가 옳은지, 기자의 기억이 옳은지를 확인하고 싶어 지난 21일 국과수 법의학동 부검실을 다시 찾았다. 외양은 약간 달랐지만 더 이상 칙칙하고, 어둡고, 썩은 내장 냄새 때문에 속이 메스꺼웠던 열악한 공간이 아니었다. 검시관들의 건강을 위한 환기시설은 물론 참관실, 유족대기실, 면접실 등이 깔끔하게 분리돼 있었고, 폐쇄회로(CC)TV를 통해 외부에서 부검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에이즈 환자 등 부패와 전염 우려가 높은 시신 부검을 위해 완전 격리된 특수부검실도 갖췄다.  국과수를 전면 리모델링한 정희선(56) 원장을 만났다. 국과수 최초의 여성 소장이다. 지난해 10월 국과수가 ‘원’(院)으로 승격하면서 초대 원장이 됐다. 임기(3년) 만료를 4개월여 앞둔 그는 사회를 뜨겁게 달군 장자연 필체 진위 논란,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의혹 등을 감정한 국과수 사령탑으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 원장은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자연 필체와 관련, “명백히 장자연씨의 필체가 아니다.”라고 확신했다. 그는 감정 결과에 대한 외압, 국과수 내부의 권력 암투 및 증거 조작에 대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증거 조작은 시스템으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과수는 25일 개원 56돌을 맞는다.   ●장자연 필체 가짜 판명 순간 “재검토하라”  SBS가 장자연씨의 ‘친필’ 확인 감정서를 공개한 뒤 필적 감정 의뢰가 들어왔는데, 어땠나.  -필체가 맞다고 했지만 증거물이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실험을 시작하는 게 원칙이다.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져선 안 된다. 앞선 감정 내용들에 대해선 개의치 않는다. 증거물 양도 많고 주변에서 관심도 많아 고생했다.  지금 생각해도 명백히 가짜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있는 그대로 본다. 특징점들이 달랐고, 이는 아주 정확하다.  가짜로 판명 난 순간 기분은.  -‘친필이 아니다.’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그래도 다시 한번 검토하라고 했다. 난 우리 직원들을 100% 신뢰한다. 능력 있는 직원들이 반복해서 얻은 결과로 나왔다면 틀림없다고 믿는다. 가짜라고는 안 했다. 내가 봤을 때 특징점들이 달랐다. 직원들이 한 것에 공감하지만 또 검토하라고 그랬다.  SBS가 받은 필체 감정서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이유는.  -그게(SBS 기자가 가져간 편지) 사본이었다. 사본을 가지고 감정하면 무리가 있기에 사본 감정은 안 한다. 원본은 눌러쓴 표시가 있지만 사본은 없다. 사본은 글씨 특징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원본을 갖고 실험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이번 사건의 포인트는 ‘사본’이었다.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 베테랑 직원 4~5명이 같이 실험하면서 동료들 간 의견을 거쳐 나왔다.  사건과 연관된 언론사, 정부 등의 입장이 부담되지 않았나.  -전혀 상관없다. 우리는 증거물이 들어오면 과학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기관이다. 누가 관여됐는지 상관 없다. 나도 직원들한테 전혀 얘기 안 한다. 오래 근무했지만 그런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듣지도 않을 것이다. 감정서에 내 이름을 쓰고 법정에 가서 증언을 한다. 다른 사람이 (결과를 바꿔달라고) 말한다해서 바꾸겠나. 자기가 증언하고 자기가 책임지는데 그런 일은 생길 수가 없다. 밖에서 누가 뭐라해도 상관 없는 체제로 돼 있다.  ‘왕첸첸(전모 씨)’의 필체인지에 대해 발표하지 않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건 정자로 쓴 것과 필기로 쓴 것에 대해 맞춤법적으로 틀린 요인들이 몇 개가 나왔다. 그건 매우 중요하다. 발표 전까지 충분히 논의하고 자체 리뷰를 여러 번 한 것이기에 확신이 있다.  국과수 결과로 경찰은 재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한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이대로 묻히게 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인 여성 입장에서 묻는다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원장으로서는 그런 것보다 감정이 정확해야 한다. 다음 일은 수사하는 분이 해야 할 일이다. 업무가 다르며 나눠지는 게 원칙이다.  재수사는 필요 없다고 보나.  -국과수는 증거물이 들어왔을 때 과학의 힘으로 진실을 밝혀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최선이다. 재수사 여부는 수사하는 분들이 할 얘기다.   ●최면 걸어 진범 잡아  만삭의 의사 부인 죽음이 타살이라고 확신한 근거는.  -그냥 뒤로 넘어질 때와 누군가에 의해 목 졸려 질식사했을 때 부검 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용의자인 남편이 범행을 부인하는데 부검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나.  -어렵다. 증거를 법정에 제출하면 그 다음부터는 판사가 결정한다. 우리는 요청에 의해 감정을 하지 먼저 하지 않는다.  범죄 심리를 이용하기도 하나.  -상당히 중요하다. 그 남편도 여기서 거짓말 탐지기로 조사했다. 정말 거짓말을 했을 것 같은 부분을 물어봐야 하기에 질문 요령,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국과수는 프로파일러, 거짓말 탐지기, 법 최면도 활용한다. 법 최면은 심리학의 한 분야다. 2003년 오토바이를 친 뺑소니 차량의 끝 번호 하나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목격자를 데려다가 최면을 걸었는데 번호를 다 기억해내 진범을 잡았다. 사람들은 대개 차종은 기억하지만 번호판은 잘 기억하지 못 한다. 개인 차이가 있지만 최면에 걸리는 사람은 무의식중에 봤던 걸 다 기억해낸다.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다.   ●해적의 멜빵, 석 선장 쏜 용의자를 찾다  지난 2월 오만에서 해적에 납치된 삼호 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 몸에서 나온 탄환 한발이 해군 것이어서 당혹스러웠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 해군의 총탄이란 사실에 부담이 있었다. 다행히도 총알 한쪽이 편평하게 눌린 자국이 있었다. 이는 직접 쏜 게 아니라 어디 부딪쳤다가 유탄으로 들어갔다는 증거다.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다.  해적의 거짓말을 밝혀낸 결정적 증거는.  -지난 설 때 여기는 비상이었다. 전날 의뢰를 받은 직원은 쉬지도 못하고 오만으로 갔다. 가장 범인이 유력했던 해적은 ‘나는 총을 한번도 안 쐈다.’고 말했다. 탄환이 발사된 총기를 조사하던 직원은 배 안에서 총기를 어깨에 멜 때 쓰는 멜빵을 발견, 유전자 검사를 했다. 땀이나 손의 지문이 충분히 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 해적과 동일한 유전자가 나왔다.  드라마 ‘싸인’, 국과수에서도 인기가 많았나.  -처음부터 대여섯편 정도 봤다. 직원들도, 나도 많이 불편했다. 특히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은 과학하는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우리와 같지 않은 모습을 극화하니까. 다만 전체적으로 연구원의 인지도를 높이고 국민들에게 국과수를 알리는 기회가 돼 긍정적이었고 고맙게 생각한다.  (일부 대사를 읽어준 뒤)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있나.  -‘과학적인 진실만을 추구한다.’는 대사도 좋지만 그보다도 ‘우리가 마지막이다. 이 사람이 왜 죽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마지막.’이란 구절이다. 이곳은 그분들이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다. 그분들이 뭔가 마지막까지 몸으로 얘기하려는 걸 들어줘야 한다. 만약 안 들어주면 그분들은 그냥 이 세상을 (억울하게) 떠나게 되는거다. 우리에게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 부검은 숭고하다. 극중 원장으로 나오는 전광렬씨가 자신의 친구가 열악한 근무 조건 때문에 숨지자 다시는 그런 조건을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 부분도 있다. 내가 직원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지 정말 반성하게 됐다. 극중에서 원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문제였지만 순수하게 국과수와 직원을 사랑하는 마음은 감동이었다.  드라마처럼 자살, 타살에 대한 판단이 즉각 서나.  -질식사도 판단이 어려울 때가 많고, 추락사처럼 자신이 뛰어내린 것과 밀어서 뛰어내린 것들은 금방 판단이 안 된다.  드라마와 현실의 국과수 모습 중 닮은 점은.  -집념이다. 끝까지 진실을 찾아내려는 마음은 우리 직원들과 똑같다. 감정하는 과정은 별 차이가 없었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점은.  -아주 큰 차이점은 증거물을 싹 바꾸는 것. 극중 고다경(김아중)이 증거물을 가지고 나간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찰로부터 넘겨진 증거물은 바코드가 다 붙고 어디로 가는지 표시가 난다. 증거물을 빼낸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증거물 중 일부가 사라지면 실험을 할 수 없다. CCTV가 다 깔려 있다. 증거 조작은 시스템으로 막아야 한다.  법의학자들끼리 부검 결과가 다를 땐 어떻게 하나.  -완전히 다른 경우는 거의 없다. 팩트는 하나다. 사실을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 계속 전체 토의를 해 팩트에 가장 가까운 답을 내린다.  외압으로 유전자 검사나 부검 시 방해가 될 때가 있나.  -그런 건 받지도 않고, 없다. 외부에 있는 분들이 전혀 감정 얘기를 안 한다.  내부 권력 암투는 존재하나.  -나보고 암투를 거쳐 원장이 됐냐고 누가 묻던데 전혀 아니다. 연구원에 오래 있던 분들 중에 지원해서 뽑는다.  원장과 직원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수평 관계다. 한달 이상 고민하고, 위험한 화재 현장에 뛰어가는 건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거다. 그런 직원들을 참 존경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편지를 써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현실 속 국과수는 어떤 곳인가.  -굉장히 고립돼 있다. 바깥 세상과 연결되는 게 아니라 한 케이스를 갖고 씨름하는 곳이다. 그래서 다른 분들보다 융통성이 없다고들 한다. 가족적이긴 하지만 사교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매우 우수한 직원들이 있다. 국과수의 힘은 인재다. 항상 음지에서 수사를 지원하면서 죄가 있는 사람, 죄가 없는 사람을 판정해주는 기관이다.  직원이 가장 갖춰야할 덕목은.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주변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자기가 맡은 케이스에 정말 정성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거기에는 항상 피해자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연결돼있다. 하나뿐인 과학의 진실은 밝히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험과 지식, 열정을 갖고 해야 한다.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사건 등 대형재해가 났을 때 유가족을 대할 때 배려의 마음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성격의 소유자가 국과수에 적합한가.  -이 일은 꼼꼼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모기 눈물만큼 적은 양의 유전자를 분석하려면 꼼꼼해야 한다. 일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드라마 주인공 법의학자 윤지훈(박신양)처럼 일하는 직원도 있나.  -많다. 그분보다 더 낫다. 일에 대한 열정, 집념은 질 사람이 한명도 없다.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았다. 2008년 부임이래 2년 9개월간 목표는 이룬 것 같나.  -원으로 승격한 건 큰 자부심이다. 올해는 5월 아시아국과수학회를 우리나라에서 유치해 아시아를 선도하려 한다. 9월에는 세계학회(2014년 예정)를 유치하고자 한다. 세계 속의 국과수로 가자는 목표로 기초를 만들고 있다.  최근 다른 나라와 연대해 일한 적 있나.  -있다. 뉴질랜드 지진 참사 때 법의학, 법치의학자들이 가서 한·중·일 시신들에 대해 유전자 구분을 하고 왔다. 불에 타도 이는 남는데 이 치료 방법이 국가마다 다르다.  3년간 수장을 맡으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제일 어렵고 안 되는 게 예산 작업이다. 과학수사는 장비와의 싸움이다. 얼마나 좋은 장비를 가지고 실험하느냐에 따라 시간도 줄이고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예산 대부분이 장비비용인데 지금 장비는 옛날 것들이 많아 첨단 장비로 바꿔야 한다. 여기 이사온 지 25~30년이다. 건물도 옛날식으로 지어 환기도 안 된다. 에이즈·결핵 환자 시신 등에 대한 부검은 사실 위험 부담율이 매우 크다. 일주일에 2000건씩 들어오는 증거물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50명의 인력이 감당하는 것도 무리다.  국과수에서는 무슨 일을 하나.  -분야가 넓고 다양하다. 현재 국과수에는 극중 탤런트 박신양씨가 맡았던 부검하는 법의학자 23명. 유전자 분석팀 50명. 범죄심리·거짓말탐지 분야 10명. 문서감정과 CCTV 등의 흐려진 영상을 잘 보이게 해 범인을 잡는 영상분석팀이 있다. 이곳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범인을 찾아내는 프로그램 등을 자체 개발해 특화도 많이 했다. 약독물 부검, 마약·화학·화재·교통사고·목소리 분석가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낸다.   ●“내 딸도 이곳에서 일했으면”  남은 과제는.  -연구원의 감정결과를 전부 객관화하는 작업이다. 우리의 결과가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인정받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국내 법의학 수준을 평가한다면.  -굉장히 높다. 인도네시아 지진 해일 때 숨진 자국민(18명)을 모두 찾은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뉴질랜드 등에 강연도 간다.  부검에 대한 유가족의 인식을 바꾸려면.  -유교사상 때문에 아직도 싫어하는 분들이 많다. 미래에 영상 부검, 컴퓨터 단층 촬영(CT) 같은 걸 활용하면 도움을 줄 수 있다.  정 원장에게 국과수란 어떤 존재인가.  -국과수와 나는 아주 가깝다. 연구원이 1955년 설립됐는데 내가 1955년생이다. 대학 때 연구원에서 나온 강의를 듣고 여기로 오게 됐다. 하루 일의 90%가 이곳 일이다. 남편(유영찬 전 국과수 소장)도 여기서 만났고, 내 딸(고2·유학중)도 여기서 일했으면 좋겠다. 너무 매력적이고 지금도 일이 참 재미있다.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이곳은 매력적인 직장이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정희선 원장은 ▲출생 1955년 6월 6일 충북 충주 ▲가족 남편 유영찬 전 국과수 소장, 딸 1 ▲학력 충주여고-숙명여대 약학과 및 동대학원 석·박사,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박사 ▲입사 1978년 국과수 이화학과 근무 ▲이력 국과수 초대 원장(2010년 10월), 국과수 최초 여성 소장(2008년 7월), 국과수 법과학부 부장, 국과수 마약분석과 과장, 국과수 약독물 과장 ▲수상 비추미여성대상 별리상, 몽골정부 전문가 훈장, 옛 과학기술부 선정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서울신문 선정 마약퇴치 대상 등 국과수에 들어가려면] “탐구정신 중요… 올부터 학력제한 폐지” 드라마 ‘싸인’의 영향으로 인기가 급상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희선 국과수 원장은 지난 21일 국과수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탐구정신”이라면서 “그냥 보지 않고 왜 이럴까, 아까 것과 어떤 게 달라졌을까 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끈기와 집념이 있어야 한다.”면서 “한 케이스를 맡으면 끝까지 찾아낸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국과수에는 극중 탤런트 박신양씨가 맡았던 법의학자 외에도 유전자 분석, 범죄심리·거짓말탐지 분야, 문서감정팀과 CCTV 등의 흐려진 영상을 잘 보이게 해 범인을 잡는 영상분석팀이 있다. 영상분석팀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범인을 찾아내는 프로그램 등을 자체 개발해 특화도 많이 시켰다고 정 원장은 전했다. 약·독물 부검, 마약·화학·화재·교통사고·목소리 분석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국과수 채용은 행정안전부에서 일괄 배치하는 공채(5·7·9급)를 제외하면 모두 특별채용이다. 인터넷 홈페이지(www.nisi.go.kr) 등을 통해 수시로 뽑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특채에는 석사 이상만 지원할 수 있었으나 행안부 방침에 따라 학력제한이 폐지되면서 올해는 지원 폭이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소요정원은 26명이다. 자연과학 기술분야(이과)에 근무하면서 관련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유리하다.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학자는 10년차급 의사들을 뽑으며 행안부에서 공무원 4~5급(의무사무관)을 일괄 채용한다. 약·독극물·마약을 분석하는 보건연구사, 화학 분석을 담당하는 공업연구사, 유전자 DNA를 분석하는 공중보건연구사 등도 있다. 연구사는 통상 석사 이상, 연구관은 박사 이상이 지원했다. 연구사와 연구관은 공무원 6~7급에 해당한다. 특채는 필기시험 없이 1차 서류심사, 2차 면접으로 이뤄진다. 국과수 인사채용 관계자는 “5월 초 공무원 채용박람회를 하는데 행안부 인사방침이 확정되면 곧바로 채용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면서 “화학 분야는 올해 채용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과수는 업무강도 대비 처우가 열악하다는 이유로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려왔다. 현재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학자의 경우 정원 23명 중 4명이 결원 상태다. 하지만 정 원장은 방송 이후 올라간 국과수의 위상을 실감하며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한 고등학생이 정식으로 국과수에 민원을 보내 어떻게 해야 국과수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면서 “어린 학생들이 미래의 직업으로 이곳을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하려고 한다는 건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법의학자 자리도 지원자가 생겨 조만간 채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의학자의 연봉은 6000만~7000만원 정도다. 33년간 국과수를 지켜온 정 원장은 “미지의 물질을 찾는 기쁨이 사건의 해결로 이어지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만으로 국과수는 선택된 자부심을 느낄 만한 곳”이라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강남 인강’ 스타강사 3인의 신학기 고교 학습준비법

    ‘강남 인강’ 스타강사 3인의 신학기 고교 학습준비법

    내일부터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학생 입장에서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이름이 바뀐 것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는 ‘수험생’으로서의 압박감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고교 학습과 수능 준비가 전혀 다른 공부가 아닌 만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마음으로 착실히 준비하면 된다. 수년간 고교 수험생들을 가르쳐 온 스타 인터넷 강사들로부터 신학기 고교 학습 준비법에 대해 알아본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언어 - 문법 총정리 >>> 언어 하지혜 강사 ① 8차 교육과정에서는 국·영·수의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이를 중심축으로 삼아 공부하는 것이 좋다. 국어는 16종 교과서를 통틀어서 수학능력시험에 반영되기 때문에 자신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린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서의 작품도 따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문법, 문학, 비문학으로 장르를 나누어 학습하는 것도 국어를 쉽게 공부하는 요령이다. 또 고대문법부터 현대문법까지 전체 기본 문법을 정리해 두면 국어의 기초를 잡을 수 있어 앞으로의 학습에 많은 도움이 된다. 문학은 필수 작품에 속하는 단편 소설들을 읽고 줄거리를 정리하고, 필수 현대시도 예습해 두는 것이 좋다. 비문학은 이전에 출제되었던 고1용 모의고사 기출 문제집을 이용해 지문을 독해하고 문제 유형을 파악해 둔다면 수능 준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②학기 초에는 고1용 기출문제를 일주일에 한회 정도씩 풀어나가며 모의고사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비문학을 독해하는 능력이 생기면 다른 장르를 공부할 때에도 도움이 된다. 비문학 구조독해를 훈련하면서 글을 보는 능력을 키워 보자. 중학교 때 나왔던 문법이 고등학교에서도 기초 문제로 모의고사에 한두 문제씩 출제되기 때문에 중학교 문법을 완벽하게 복습하고, 동시에 고등학교 문법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선행학습을 해 두는 것이 좋다. 주말을 이용해 단편소설들을 읽고 줄거리를 정리하거나, 필수 현대시들을 정리해 놓으면 모의고사뿐만 아니라 내신과 수능 대비도 같이 할 수 있다. ③의외로 문법을 소홀히 여기는 학생들이 많다. 문법 파트는 국어의 기초를 다지는 데 매우 중요하다. 어휘력 또한 지문을 독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하지만 이를 간과하고 문학 작품만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초공사 없이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고1부터 문법의 기초와 어휘력을 다지고 비문학 지문을 독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언어영역의 기초체력을 기르는 길이다. 문법은 중학교 교과서부터 고교 문법까지 정리된 책이 서점에 있으므로 이를 활용하거나, 문법이 총정리된 인터넷강의를 봐도 좋다. 어휘력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핵심 요소. 책을 많이 읽는 것이 가장 좋지만, 어려운 어휘가 많이 나오는 신문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려운 어휘가 나올 때는 국어 단어장을 만들어서 정리해 두고, ‘사전적 의미’뿐만 아니라 어휘가 사용된 예문을 통해 어떤 문맥에서 사용되는지를 정리하면 책을 수십권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④문학작품을 짧게 핵심만 정리해서 10~20분 정도 분량씩 학습하면서 한 작품씩 정리해 나가는 것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문학작품이 정리된 자습서를 한 작품씩 매일 공부하는 것도 좋다. 비문학 지문 독해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매일 한두 지문씩 문제를 푸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 지문을 풀고 오답정리까지 10~15분이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남는 시간을 활용하기에도 좋다. ⑤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그 과목이 공부하기 싫고, 또다시 공부를 소홀히 해 점수가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마음을 잡고 치열하게 공부해서 점수가 잘 나오면 성취감 덕분에 과목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다. 국어를 싫어한다면 우선 범위가 정해져 있는 내신부터 준비해 보자. 작품 정리도 하고 문제도 자주 풀면서 준비해 보면 내신도 잘 나오고 동시에 국어에 대한 학습의욕도 높아져, 최종 목표인 수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수리 - 기본서 마스터 >>> 수리 이정수 강사 ①고교 1학년 수학 내용은 중학교 3년간 배웠던 내용의 심화·반복 과정이다. 수학 용어와 기호를 처음 접하는 것이 아니므로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어렵지 않게 예습할 수 있다. 수학 내신을 대비하려면 학교에서 선정한 교과서와 부교재 그리고 수업시간에 나눠주는 프린트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최소한 수업 전날에는 다음날 배울 내용을 읽고 숙지해서, 수업시간에 그 내용을 떠올리며 학습해야 한다. 수능에서도 1학년 과정은 문제풀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기본서 한권 정도는 두 학기 중에 마스터해야 한다. 수능준비는 고1 과정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②모의고사는 전국단위 시험이다. 내신과는 성격이 다르고 난이도가 높은 문제도 출제된다. 내신처럼 하루 전날 공부하는 것은 대책이 될 수 없다. 시험날은 쉬운 문제를 먼저 풀고, 어려운 문제는 나중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 지난해 시험지를 실제 시험환경 속에서 치러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어느 정도 난이도로 출제되는지, 또 시간 관리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 시험문제의 배열은 몇번부터 문제가 어려워지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시험마다 문제는 달라지지만, 문제 난이도의 배열이나 유형의 배열은 어느 정도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문제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당황하지 말고, 뒤쪽에 나오는 쉬운 문제들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③수학 각 단원마다 핵심 내용은 있지만, 이를 이해하고 해결하려면 전반적인 내용도 알고 있어야 한다. 수학 개념을 고르게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기출문제들을 통해 문제별 난이도와 풀이방법을 유형별로 익혀 두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꼭 알아야 할 단원은 다음과 같다. ▲집합(대칭 차집합 개념과 유한집합의 원소의 개수 실생활 문제) ▲명제(대우명제를 이용한 문제풀이와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실수(항등원 역원개념 대소판별과 절댓값 관련, 가우스 개념의 이해) ▲정수(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 ▲다항식의 연산(곱셈공식과 인수분해공식의 정확한 암기와 적용, 항등식의 성질과 미정계수법을 이용한 연산, 나머지 정리와 인수 정리에서 조립제법을 이용한 계산, 비례식과 가비의리, 무리식의 연산과 상등에 관한 정리, 복소수의 연산) ④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공부할 때는 그날 배울 내용에 대한 중요 개념을 여러번 읽어보고 부족한 설명은 인터넷 강의나 교육방송을 찾아 듣는 게 좋다. 학습 순서는 단원별 개념을 먼저 이해한 후 문제를 스스로 풀어보고, 그 다음에 문제 풀이 강의내용을 공부하는 게 좋다. 인강을 이용해 수학을 공부할 때에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학습효율이 달라질 수 있다. 편하게 강의만 보는 걸로는 절대 성적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수학은 이해가 중요하지만, 스스로 풀어보고 왜 틀렸는지 확인해 가는 과정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⑤수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 난이도가 높아지고, 개념이 어려워져 이 과정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예습과 복습이 밀려서 나태한 시간이 한동안 쌓이고 나면 갑자기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수학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고1 단계에서 쉬운 것부터 끈기있게 매일 일정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처음부터 난이도 있는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쉬운 문제부터 연습한다 생각하고 유형별로 풀어 보자. 이해력이 아무리 좋아도 문제를 스스로 풀지 않고는 수학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외국어 - 선택과 집중 >>> 영어 윤재남 강사 ①2014년 수능 영어는 2종(쉬운 A형과 현행 수준의 B형)으로 분리된다는 대원칙 아래, 전체 문항수는 감소하는 반면 실용영어 중심의 듣기 문항이 더 늘어난다. 국가영어능력평가(NEAT)가 수능 영어를 당장 대체하지는 않더라도 2013학년도부터 대입 수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빠뜨리지 말자.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입학 전부터 학원에 다니고, 심지어 쓰기·말하기에 대비해 텝스·토플 수업도 듣는다. 정반대로 선행학습을 전혀 하지 않은 학생도 있다. 이들에게 공통으로 줄 수 있는 조언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영어를 준비하라는 것. 바빠진 학교생활에서 구문·독해·어법·듣기 등 네개 파트를 모두 늘어놓고 순례하는 식의 공부는 시간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학습 효과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다. 자신에게 취약한 특정 파트 중심으로 학습하되, 내신에 직결되는 학교 영어수업에 집중해야 한다. 교과서는 내신과 수능 모두의 대비용으로 활용하자. ②1학기 전국연합학력평가(6월 15일)에 대비해 3월은 겨울방학 때 학습한 내용을 복습하자. 4월은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이다. 교과서가 최고의 수능 교재이며, 수능영어와 내신영어가 별개가 아님을 잊지 말자. 5월은 약점 파트별로 본격적인 심화학습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기간이다. 수능·모의고사의 핵심은 독해이므로 다양한 세부 유형을 익히고 유형별 전략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 필수 구문·문법 학습도 빠뜨리지 말자.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학습패턴을 확립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일 10여개 지문을 풀 때 ‘문제풀이→정답 확인 및 오답 분석→소재 파악·주제·요약→핵심문장 해석훈련→어휘·문법정리’ 순서로 공부하는 것이다. 6월에는 과거 기출문제 등을 대상으로 시험장과 같은 조건으로 풀면서 실전감각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시도해 보자. ③수능 영어문법은 중학교 때 배운 문법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중학 문법을 전반적으로 한번이라도 훑어 보자. 동사의 3단 변화와 같은 기본적인 사항을 놓친 채로 공부하면, 앞으로도 계속 영어에서 헤매거나 심지어 과목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 문법을 다루되, 문장의 구조를 익히고 해석하는 방식을 확실하게 익혀 두자. 다시 강조하지만 영어의 가장 중요한 파트인 ‘동사와 형식’과 ‘준동사(동명사·부정사·분사)’만이라도 꼭 복습하기 바란다. ④영어가 큰 벽으로 다가올 때 1차적인 원인으로 어휘 부족을 많이 거론한다. 해결 방법은 평소 문법·독해공부를 할 때 단어장에 정리해 둔 단어들을 등하교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암기하는 것이다. 나만의 차별적인 비밀무기가 필요한 학생들은 영어신문을 스크랩해서 읽는 것도 괜찮다. 개별 문장을 정확히 해석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책 읽듯이 전체적으로 훑으며 핵심 내용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⑤보통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휘만 외우는 경우가 많다. 지금부터 단어 암기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자. 단어를 공부하더라도 독해·어법·쓰기와 연관되도록 그 단어가 활용된 대표 예문을 적어 보자. 리스닝도 문제풀이에 그치지 말고, 핵심표현·대화문 딕테이션(받아 적기) 그리고 셰도잉(따라 읽기)을 통해 다른 파트에도 그 효과가 파급될 수 있도록 하자. 갈수록 어려워지는 독해는 눈높이를 정해 공부하자. 지문을 읽으면서 어휘량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목표일 수 있고, 주제를 파악하는 것도 모두 도움이 된다.
  • [피플 인 스포츠] K-리그 시민구단 새모델 도전 허정무 인천 감독

    [피플 인 스포츠] K-리그 시민구단 새모델 도전 허정무 인천 감독

    프로축구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허정무(56) 감독은 지난해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하며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대업’을 이뤘다. 그런데 월드컵 이후 그의 행보는 상식 밖이었다. 대한축구협회의 대표팀 감독 유임 권유를 고사하더니, 지난해 8월 연고도 없는 인천의 사령탑을 맡았다. 인천은 대기업 스폰서가 없는 시민구단이라 허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대우를 해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천이 K-리그 우승에 도전할 만한 전력을 갖춘 팀도 아니었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그리고 5개월이 흘렀다. 지난달 30일 올 시즌을 대비한 인천의 전지훈련지인 괌에서 허 감독을 만났다. ●“시민구단의 모범 되겠다” 3주 동안 남태평양의 따가운 태양 아래 지내다 보니 얼굴은 까무잡잡해졌지만 훈련 중인 선수들을 향한 허 감독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또 기대만큼 움직이지 못하는 선수를 독려하는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선수들은 체력훈련 뒤 곧바로 전술훈련에 돌입했다. ‘지옥훈련’이었다. 그래도 선수들은 허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허 감독은 “겨울에 힘들게 훈련한 것이 시즌 막판에 힘을 발휘한다.”면서 “지난 시즌 후반기에 인천은 전반에 세 골을 넣고도 후반에 네 골을 내줘 지는 팀이었다.”고 체력훈련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 “좋은 성적을 내려면 좋은 선수들이 많아야 되는데 형편이 넉넉지 않은 시민구단에서 그건 불가능하다.”면서 “그래서 선수들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주전과 비주전의 실력 격차를 줄이는 데 훈련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왜 인천에 와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물었더니 허 감독은 뜬금없이 “시민구단이 살아야 된다.”고 답했다. 그는 “시민구단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모델인데,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지원이 대기업 구단만큼 좋지 않아 좋은 선수들을 확보하기 힘들어서 성적은 대부분 하위권이다.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 지원은 계속 줄어든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데, 2013년부터 승강제가 시행된다.”면서 “송영길 인천시장과 인천 구단의 끈질긴 구애를 뿌리칠 수 없기도 했지만, 인천을 모범적인 시민구단으로 만들어 보임으로써 K-리그에 시민구단이 뿌리를 내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은 희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인천행 급행열차’를 탄 것은 한국 축구를 위한 ’새로운 도전’이었던 셈이다. 올 시즌 목표로 리그 우승을 내건 허 감독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이야기했다. 그는 “지난 시즌 11위였던 우리가 우승하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면서 “하지만 우승을 목표로 어리석을 만큼 꾸준하고 변함없이 노력하다 보면 우승권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요령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온 그의 축구 인생이 그대로 묻어나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허 감독 취임 뒤 인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김봉길 수석코치는 “체계가 생겼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클럽하우스가 없어 ‘자유분방한 팀’이라는 불가피한 별명이 붙었던 인천. 하지만 허 감독이 온 뒤 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는 것이 구단 프런트와 선수들의 설명이다. 허 감독은 오합지졸처럼 제각각이던 선수단을 꽉 틀어쥐었고, 인천은 공동의 목표인 우승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대표팀 두 번 맡으니 100년 내공 쌓여 허 감독은 ‘독이 든 성배’라는 대표팀 감독을 두 번이나 맡았다. 1998년 처음 대표팀을 맡아 2000년 아시안컵 직후 사퇴한 대표팀 1기 시절 허 감독은 이제는 ‘레전드’가 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알 힐랄), 설기현(포항) 등을 처음 발탁했다. 당시 주변의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허 감독이 발탁한 이들은 이후 10년 동안 한국 축구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또 핌 베어벡 감독 이후 다시 대표팀을 맡은 허 감독은 2008년 기성용(셀틱)과 이청용(볼턴) 등 당시 갓 스무살밖에 되지 않은 유망주들을 발탁했다. “너무 어리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이들은 남아공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고, 이영표-박지성 이후의 대표팀을 이끌어 갈 재목들로 성장했다. 그러고 보니 허 감독은 욕먹으면서 남(거스 히딩크와 조광래 감독) 좋은 일만 해 준 지도자였다. 그는 “내가 잘 뽑은 게 아니라, 그 선수들이 잘한 것일 뿐”이라며 “어쨌든 대표팀 감독 한 번 하면 50년의 내공이 쌓인다. 그걸 두 번이나 했으니 벌써 100살은 넘은 셈”이라며 웃었다. 허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있으면서 함께 훈련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면서 “그래도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 가서 당당하게 우리 선수들이 제 기량을 남김없이 보여줬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당시 선수로 출전해 실력은 못 보여주고 사람만 쫓아다니다 디에고 마라도나 허벅지 한 번 걷어차고 돌아오는 데 만족해야 했던 그때와 지금의 한국 축구는 확실히 다르다는 뜻이었다. ●세대교체 자연스럽게 진행돼야 그는 박지성, 이영표의 은퇴에 대해 “언제 다시 쓰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딱 잘라서 은퇴라고 하니까 좀 아쉽다.”면서 “그래도 자기들이 알아서 잘 결정했겠지.”라고 했다. 또 “지성이, 영표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거니까.”라며 “세대교체는 하는 듯 하지 않는 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이 제일 좋다. 경험 많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고 그러면서 물 흐르듯….”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후임자에게 잔소리가 될까 봐 신중한 모습이었다. 대표팀 감독 당시 전술적인 측면에서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 “‘미드필드를 두껍게’, ‘공격을 날카롭게’ 등 이야기로는 그럴듯하지만 경기장에서 그런 전술을 실현하는 것은 조기축구라도 한 번 해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면서 “특히 선수 특성을 잘 아는 프로팀이 아닌 대표팀 감독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래도 그런 지적은 악플에 비하면 고마웠다.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제공해 줬다.”고 덧붙였다. 마음고생이 많기는 많았던 모양이다. ‘대표팀 때보다 부담은 덜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허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부담이 더 크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잘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선수들과 함께 웃으며 땀 흘리는 모습은 ‘두 골 타이’를 매고 있을 때보다는 편안해 보였다. 글 사진 괌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입시이슈’ 기획기사로 발전됐으면/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3년

    [옴부즈맨 칼럼] ‘입시이슈’ 기획기사로 발전됐으면/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3년

    해마다 이맘때면 내 친구 A는 희한하게 가을을 탄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괜스레 불안해진단다. 증세는 수능시험일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올랐다 사그라진다. 수능시험을 몇 번씩 치렀던 친구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그렇다고 했다. 의학적으로는 전혀 규명된 바 없는 이른바 ‘수능후 증후군’이다. 내 또래의 수능 세대에게 수능시험은 일종의 성인식과 같은 통과의례다. 태어나서 처음, 맨몸으로 온전히 자기 미래와 맞서는 외롭고 힘겨운 절체절명의 단판승부! 부모님 곁을 떠나 시험장까지 후배들의 열렬한 응원과 배웅을 받지만, 결국 시험장에 들어서는 건 혼자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인생의 법칙 하나를 배운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달력을 붙들어 두고만 싶을 수험생 혹은 학부모들에게 신문이 힘을 불어넣어줄 수는 없을까. 수능을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언론기사는 매년 대동소이하다. 올해 출제경향은 어떻고 EBS 강의를 얼마나 반영하겠다든지, 마무리학습과 수험생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라 하는 것들이다. 서울신문 10월 19일자 22면의 ‘수험생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수능 D-30 영역별 학습 마무리 전략’ 기사나 26일자 23면의 ‘한 달 남은 정시모집, 나만의 학과 선택 전략은’ 기사는 내용도 충실하고 친절하지만 5년 전 내가 수험생이던 시절과 다를 바가 없다. 반면 짤막한 글이지만 불과 열흘 동안 3차례, 입시와 수험생을 향한 단상을 깊이 있게 담아낸 ‘길섶에서’의 ‘처성자옥’, ‘실패의 교훈’, ‘공부 스트레스’(18일, 27일, 28일자 30면)는 입시 세태와 수험생에 관한 따뜻한 관심이 묻어났다. 여러 군데 시험을 보기 위해 수험생들을 퀵서비스로 실어 나르는 비정상적 상황을 통해 한국 교육의 실태를 엿본 5일자 31면 ‘수험생 퀵서비스’ 기사도 날카로웠고, ‘대학입시, 단순해야 공정해진다’(21일자 30면)는 ‘이용원 칼럼’도 공감이 많이 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개개인의 칼럼과 단상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심층성과 풍부한 사례를 갖추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획기사로 체화되었으면 하는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8월 연 2회 시험시행과 탐구과목 변경을 골자로 하는 ‘2014년 수능체제 개편시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최근 서울대 사범대 교수진은 반박성명을 내고(서울신문 20일자 9면 기사) 전교조도 반대하면서 옥신각신 공방을 벌였다. 어느 방향이 옳은지는 사회 전체의 숙의가 필요한 문제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수년을 못가 바뀌는 불완전한 시험제도에 모든 것을 걸고 인생의 향방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승부를 벌여야 하는 셈이다. 이러한 교육현실에서 언론의 역할은 적어도 “참고 견뎌라”거나 “불쌍한 것들” 하는 위로의 말 이상이 되어야 한다. 몇 년째 반복되는 수험생 건강정보, 학습전략도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서울신문이 13일자 사설 ‘국·영·수 수능선택 개편 논의해 볼 만하다’를 통해 곽노현 교육감의 수능 개편안 제안에 화답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수능제도의 개편이나 입시와 관련한 교육 이슈를 기획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이 땅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어떤 ‘방향’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더불어 수험생에게 정말 위로가 되고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기사를 보고 싶다. 매년 똑같은 유명 입시학원 실장이나 스타강사의 조언보다는 실제 수능을 치렀던 이들의 생생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성의 있는 기사, 혹은 그저 시험만을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그 너머의 것, 방향을 제시하고 목표의식과 꿈을 심어줄 수 있는 대학 현장탐방기사가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족은 할 수 있는 게 응원뿐이지만 신문은 더 크고 높은 역할이 있다고 본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수험생들이 애꿎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지, 그 하늘에 길 하나, 신문이 놓아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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