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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력 검증보다 약점 공격 쉬워”

    “능력 검증보다 약점 공격 쉬워”

    국가 공무원 인사행정의 사령탑인 전충렬(59) 행정안전부 인사실장이 최근 펴낸 ‘인사청문의 이해와 평가’에서 인사청문회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어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줄줄이 인사청문회가 예상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100만명에 이르는 공무원 인사정책의 총책임자인 전 실장은 24일 “2000년대 들어 국회 인사청문 대상 범위가 대폭 확대된 배경에는 혼란스러운 요소가 있다”며 “주요 공직자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임용의 정당성을 높이자는 취지이지만 대통령이 공직자 임용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국회와 분산 또는 공유하려는 다소 방어 지향적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 인사실은 국회 임명동의나 인사청문 절차가 필요한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또는 인사청문요청안을 대통령 이름으로 국회에 보낸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면서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야 하는 직위 수가 크게 늘었다. 당초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등 17개 직위였다. 2003년 2월부터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이 추가됐고, 2005년 7월에는 모든 국무위원과 헌재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 합참의장, 방송통신위원장이 인사청문 대상이 됐다. 지난해 5월에는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국가인권위원장, 한국은행 총재도 포함됐다. 모두 60개 직위에 이른다. 주요 공직자에 대한 국회 차원의 검증이 확대된 동기는 2005년 1월 교육부총리로 임명됐던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 자녀의 대학 특례입학 등 도덕성 문제로 임명된 지 5일 만에 면직되면서 비롯됐다. 전 실장은 “국정운영의 비효율성을 낳고 인력시장의 우수자원이 공직 지망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인 미국의 인준심사 과정을 임용의 책임 분담을 위해 한국에 이식하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밀실 인사’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임용 후보자를 사전에 언론에 흘리는 ‘여론 검증’은 미국 등에서 많이 하지만 유능한 인력이 사생활 침해를 꺼려 공직 참여를 피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밝혔다. 청문회는 앞으로 보여 줄 능력에 대해 검증하기는 어려운 반면, 과거의 흠결이나 표면적 약점을 공격하기는 쉽다고 덧붙였다. 또 인준동의 요청이 정치의 인질이 되어 행정의 비능률을 초래하는 부작용도 있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중국 軍지도부 ‘핵잠수함 무력시위’

    중국이 또다시 미국과 일본을 향해 ‘무력시위’에 나섰다. 이번에는 특히 중국 군의 최고위급 인사가 직접 등장했다는 점에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남중국해 분쟁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도 나온다. 22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중국의 쉬치량(許其亮)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최근 7대 군구 가운데 하나인 지난(濟南)군구를 시찰하면서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전략핵잠수함에 직접 탑승했다. 신문은 쉬 부주석의 전략핵잠수함 시찰 내용이 공개된 것은 진(晉·094형)급 전략핵잠수함에 탑재될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쥐랑(巨浪)2의 개발이 완료돼 조만간 실전 배치될 것임을 외부에 과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이 보유한 진급 전략핵잠수함의 경우 최근 취역했음에도 불구하고 쥐랑2를 탑재하지 못해 본격적인 운용이 어려웠으나 이제 취약점을 모두 극복했다는 것이다. 마카오국제군사학회 황둥(黃東) 회장은 “이번 시찰은 쥐랑2를 탑재한 진급 핵잠수함이 시험 항해에 나설 것임을 선포한 것인 데다 중·일 간 센카쿠 갈등 문제에서 일본에 기울어져 있는 미국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군 기관지인 해방군보와 관영 중국중앙(CC)TV도 전날 쉬 부주석의 전략핵잠수함 시찰 내용 등을 보도했으나 진급 핵잠수함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중국은 2000년대 후반부터 배수량 1만 2000t의 진급 핵잠수함 여러 척을 차례차례 실전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를 순항할 수 있는 공격형 전략핵잠수함으로 전장 140m, 폭 10m에 바닷속에서 시속 40노트(70㎞)의 속도로 운항한다. 사정거리 8000~1만 4000㎞인 쥐랑2 미사일 24기를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중국이 앞으로 2년 안에 SLBM을 실전 배치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한 바 있다. 위원회는 또 “중국의 SLBM은 수십년간 상징적 수준에 그쳤지만, 지금은 해상에서 거의 상시적인 전략적 억지력을 구축할 태세가 돼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재형저축 3월 출시 ‘꿈의 저축’ 될까

    늦어도 3월에는 서민·중산층의 필수 재테크 수단인 ‘재형저축’(재산형성저축)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18년 만의 부활이다. 절세가 곧 재테크인 초저금리 시대에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는 상품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2일 “재형저축 가입 대상과 면세율 등을 담은 소득세법 시행령·시행규칙이 거의 마무리 단계”라며 “늦어도 3월쯤에는 은행권 출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형저축은 1976년 도입됐으나 재원 고갈로 1995년 폐지됐다. 정부가 재형저축 부활을 결정한 것은 가계저축률 등이 급락하고 있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추산으로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1975년 7.5%에서 1988년 25.9%로 수직 상승하며 경제 발전의 젖줄이 됐지만 2000년대 부동산 투기와 카드 대란 등이 겹치면서 지난해 2.8%까지 급락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서 ‘장기주택마련저축’ 비과세 혜택을 없애는 대신 재형저축 재도입 방안을 내놓았다. 시행령에 따르면 재형저축 상품은 적금, 펀드, 보험 등 모든 금융회사가 취급하는 적립식 금융상품으로 7년 이상(최장 10년) 유지하면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한 소득세 14%가 면제된다. 분기별로 300만원(연간 1200만원)까지 넣을 수 있다. 한 달 100만원꼴이다. 재정부는 재형저축으로 연간 500억원 규모의 소득세를 지원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가입자격은 연봉 5000만원 이하인 근로자와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개인사업자다. 개인사업자에게도 가입자격을 준 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가입기한은 2015년 12월 31일까지다. 소득요건은 가입 시점에만 충족하면 된다. 가입 이후 연봉이 오르거나 소득이 늘더라도 비과세 혜택은 그대로 유지된다. 단, 가입 시점에 ‘소득금액증명서’를 담당 세무서에서 발급받아 은행 등 금융회사에 내야 한다. 5월 종합소득세 확정신고 이전에는 가입 희망자가 재형저축의 소득요건을 충족하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일단 확인 가능한 시점의 소득증명을 기초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입 이후에도 소득확인 절차가 남아 있다. 국세청장은 가입시점을 기준으로 이듬해 2월 말까지 재형저축 가입 근로자의 원천징수영수증·지급명세서를, 일반사업자의 종합소득신고서를 확인해 금융회사에 알려야 한다. 가입 대상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 즉시 해지된다. 해지 고객도 가입 시점부터 해지 시점까지의 이자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매기지 않는다. 자격이 되는 줄 알고 가입한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악용될 소지가 있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사망, 국외 이주, 저축자의 3개월 이상 장기요양이나 저축취급기관의 영업정지 때는 만기 전에 해지해도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시행령이 정한 사유 외에 개인 사정으로 7년 이내에 중도 인출·해지하면 이자·배당소득 감면세액을 토해내야 한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축제같은 시위 넌 어디서 왔니

    2009년 5월 1일, 일본 고엔지 스기나미 중앙공원을 출발한 대규모 시민들은 두 시간 가까이 걸어 아사가야역에 도착했다. ‘사운드카’로 불린 트럭이 줄을 잇고, DJ가 잇달아 댄스 뮤직을 틀어댔다. 겉모습은 축제인데, ‘거리 해방’,‘가난뱅이는 싸운다’, ‘경찰은 불심검문을 중단하라’고 적힌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보면 집회 같다. 놀이일까, 시위일까. 현대문화와 미디어,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비평 활동을 하는 모리 요시타카는 이것을 ‘스트리트 사상’이라고 부른다. 그가 2009년에 낸 ‘스트리트의 사상: 거리를 되찾아라!’(심정명 옮김, 그린비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저자가 말하는 스트리트 사상은 익명의 많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드러나는 사상이다. ‘스트리트’는 거리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공원, 카페, 클럽 등이 될 수도 있고, 정보가 유통되고 의견을 공유하는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스트리트 사상이 일본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발전하는지를, 스트리트 사상이 기저에 깔린 1980년대부터 지식의 지각변동이 일어난 1990년대를 거쳐 스트리트 사상이 결실을 맺는 2000년대까지, 지성계와 대중문화계 흐름을 따라 정리했다. 1968년 대학이나 사회의 기성 가치관에 격렬하게 도전한 학생운동 이후 40년 가까이 ‘데모를 할 수 없는 사회’로 불리던 일본에 어떻게 이런 시위문화가 출현했을까. 저자는 1990년대에 발현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배경으로 본다. 자본 권력의 변질과 팽창으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대안적 정치영역이던 대학은 기업 인력 양성소가 됐다. 이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스트리트 사상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일본)는 한국의 정치운동에서 많은 것을 배워왔다. …이 책 곳곳에서 그 영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독특한 맥락”으로 스트리트 사상을 분석했지만, 좌파,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 상당 부분에서 한국 현실에 접목해볼 수 있다. 1만 6000원.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커버스토리-위기의 활자매체] 스마트폰·태블릿PC에 밀린 신문, 종이옷 벗고 디지털 장벽 넘어라

    [커버스토리-위기의 활자매체] 스마트폰·태블릿PC에 밀린 신문, 종이옷 벗고 디지털 장벽 넘어라

    지난 17일 밤 서울 광화문의 한 신문가판대. 수은주가 영하로 뚝 떨어진 가운데 매대 앞은 한산했다. 퇴근길 직장인들은 간간이 캔커피나 초콜릿을 집어들 뿐 신문 가판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30대 남성은 아예 태블릿PC를 꺼내 PDF 형태의 경제지를 읽고 있었다. 15년째 가판대를 운영해 온 주인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하루 100부씩 나가던 일간신문은 2004년 무료신문 발행이 봇물을 이루며 판매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보급되면서는 하루 1~2부 팔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우리나라 종이신문의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유력 종합일간지는 물론이고 대다수 신문의 유료 부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신문산업 전체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신문사들은 기업회생절차, 부도, 매각 등에 시달리며 혹한기를 보냈다. 인천일보와 아시아경제는 극심한 누적 적자로 기업회생절차를 밟았고 67년 역사의 제주일보는 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일부 종합일간지는 자산 매각 등을 포함한 경영정상화를 고심하고 있다. 18일 신문업계에 따르면 두 차례의 금융위기와 뉴미디어의 득세에 따른 지속적인 부수 감소,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인한 광고 정체 등으로 신문의 위기는 급격히 가중되고 있다. 한국ABC협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1년 신문 부수 공사 보고’에 따르면 상위 20개 종합일간지의 유료부수는 614만 5087부로 전년보다 7.1% 줄었다. 발행부수도 868만 3135부로 1.8% 감소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지난달 내놓은 ‘2013년 광고경기 예측지수’에선 신문이 86.8인 반면 인터넷은 126.3, 케이블TV는 103 등으로 나타났다. 예측지수는 지출이 늘 것이라는 응답 수가 많으면 100이 넘고, 반대이면 100 미만이 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신문업계는 ‘녹다운’ 상태다. 2000년대 들어 신문업계는 구독률 급감(2001년 51.3%→2011년 24.8%)과 열독률 감소(2001년 69.0%→2011년 44.6%)에 시달렸다. 회귀분석을 통해 2020년 신문 구독률을 추정해 보니 0%에 가깝게 떨어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위기 타개를 위한 신문사들의 노력은 이전투구식 경쟁과 새로운 활로 모색으로 요약된다. 일부 대형 일간지의 보급소에선 1년 유료구독에 1년 무료구독, 스포츠지·경제지 끼워주기, 현금 제공 등의 행태가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신문보급소 관계자는 “지국장들이 급감하는 부수를 견디지 못해 매년 교체될 만큼 밑바닥 분위기는 심상찮다”고 전했다. “찍을수록 손해”라는 중소 규모 신문사들은 경영개선책의 일환으로 토요일자 휴간, 별쇄 축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새로운 활로 모색은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이다. 온라인과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 강화다. 주요 신문들은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을 내놨고, 본격적인 콘텐츠 유료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애플스토어에 ‘가판대 서비스’를 운영 중인 한 일간지의 경우 하루 평균 무료 다운로드 횟수가 30만건이 넘고 유료인 PDF서비스 이용도 3만건에 이른다. 하지만 이 신문의 독자서비스팀 관계자는 “한국의 뉴스 소비자들은 해외에 비해 ‘뉴스 유료화’에 부정적”이라며 “신문독자의 앱 무료이용 정책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김위근 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신문산업의 위기는 신문산업 전체의 위기라기보다 종이신문에 한정된 위기”라며 “디지털 환경에서 변해 버린 뉴스, 신문, 저널리스트, 이용자 등의 개념에 대한 신문사 구성원들의 이해와 적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대안으로 우수한 편집기자 확보와 편집조직 통합,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기사 아카이브 구축 등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문의 위상 회복과 여론 다양성 확보가 민주주의 구현에 필수적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신문을 살리자는 제안도 잇따르고 있다. 언론노조 등이 추진하는 프랑스식 신문산업지원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신문산업지원법은 정부가 신문을 공동 인쇄하고 배달하는 시스템을 지원할 공적 펀드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용성 한서대 교수는 “신문산업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신문법 개정과 신문지원제도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커버스토리-위기의 활자매체] 영상매체에 밀린 종이책, 우연히 만나는 책의 즐거움을 찾아라

    [커버스토리-위기의 활자매체] 영상매체에 밀린 종이책, 우연히 만나는 책의 즐거움을 찾아라

    “출판은 죽을 수가 없다. 출판은 인간의 본능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정보·지식을 발신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수신하고 싶어 하며, 그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고 본능이기 때문이다. 다만, 책이 전화번호부에서 학술서까지 팔방미인처럼 굴었다면, 이제부터 책은 가장 본질적인 것을 남기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책은 사라지지 못한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강무성(52) 주간은 17일 ‘출판의 위기, 활자매체의 고사’라는 주제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이 책을 안 읽는다거나, 대한민국 출판계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출판사는 장사해야 한다 치고, 사람들은 왜 책을 읽어야 하죠”라는 강력한 반론이 들어오기도 했다. 강 주간은 1985년 출판계에 들어와 지난 28년간 출판계의 성쇠를 경험하고 있다. 1980년대는 소설은 물론 인문·사회과학 서적의 폭발적 수요가 뒷받침된 출판의 중흥기였지만, 1990년대 개인컴퓨터(PC) 보급과 2000년대 말 스마트폰의 확산 등으로 출판은 날로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매체의 비약적 성장과 대비한 활자매체의 침체는 몰락으로 표현할 만하다. 고려대 불문과 81학번인 그는 동기들이 대기업에 입사할 때 출판계에 투신했다. 대학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러시아 문학을 제대로 소개하는 전문출판사를 하자’는 홍지웅 대표의 뜻을 반영해 출판사 이름을 순 한글인 ‘열린책들’이라 짓고 로고도 직접 만들었다. 그는 자신을 ‘책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기획·교정·교열이란 순수 편집자의 길보다는 서체 개발, 북디자인 등 책의 형태와 모양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쏟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출판계에 입문했을 때 ‘초판 1쇄’는 5000권을 의미했다. 대부분 5000권 정도는 소비됐고, 3000권 정도가 손익분기점이었던 만큼, 1쇄를 다 판매한 출판사는 다음 책을 준비할 여유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3000권으로 줄었고,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 이후부터는 2000권으로 줄었다. 요즘 1쇄는 1000권을 찍는 일도 허다하다. 학술서적은 최소 단위인 500부를 찍는다는 것이 이제 비밀도 아니다. 역사전문 출판사로 사랑받는 푸른역사는 최근 레미제라블과 함께 신문에 서평이 많이 소개된 ‘속물교양의 탄생’을 초판 1쇄로 1000권을 찍었고, 2쇄로 500권을 더 찍었다.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는 “요즘 1500부 이상 안 찍는다. 불황도 원인이지만 출판 도매상들이 다 도산해 뿌릴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 주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점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 5000부는 찍어야 달라는 서점에 다 넣을 수 있었다. 아마 문방구가 서점을 겸업하는 곳까지 치면 약 1만개가 넘었을 것이다. 출판사의 책이 말초 혈관, 모세혈관까지 들어갔다. 시골 작은 서점에서 책이 팔리지 않더라도 반품되지 않고 그 서점에서 운명을 마치는 일이 허다했다. 현재 출판사가 약 2000개가 된다고 하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출판사는 500여개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출판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의 서점은 2011년 1752곳으로 2004년의 2205개와 비교하면 453개(20.5%)가 줄었다. 그는 “서울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걸어갈 때 그 옆으로 줄줄이 서점이 있었는데, 이젠 다 사라지고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정도 살아남은 것 아니냐”고 했다. 1980년대 모세혈관이 팔아주던 만큼 인터넷서점에서 팔아주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인터넷서점을 통해서는 사람들이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는 책’을 바랄 수는 없게 됐다”고 말했다. 서점에서 만나는 우연한 책은 왜 중요할까? “문득 책을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치자.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집 근처에 서점이라도 있으면 둘러보다가 한 권 골라서 나오면 되는데, 서점들이 사라지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인터넷서점에서는 대형 출판사들이 노출하는 광고를 보거나, 검색해서 책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런 수많은 정보는 정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그냥 우연하게 책을 만나야 하는데, 주변에 서점이 없으니 그것이 안 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출판사가 독자를 찾기가 쉬웠다. 책 종류가 적었고, 독자들은 신간이 나오면 주목했다. 활자매체의 힘도 어마어마했다. 그는 1990년에 소설책 ‘빠빠라기’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적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티저광고를 신문사에 냈다. 5단 광고로 폭이 5㎝에 불과한 조인트 광고인데, 광고 세번 만에 대박이 났다. 당시 편집자들은 잘나가는 책이 아니라도 독자의 손에 책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독자를 만날 방법은 훨씬 더 다양해졌지만, 책의 움직임을 통해 독자를 만날 가능성은 훨씬 줄었다. 독자와 출판 편집자의 거리가 너무 멀다. 독서인은 줄었지만 출판사가 그럭저럭 유지되는 이유로 도서관의 꾸준한 증가를 꼽을 수 있다. 2011년 도서관 수는 1만 3320개로 2004년 1만 1793개와 비교하면 1527개(13.4%)가 늘었다. 2011년 도서구입비가 680억원으로 2005년 433억원과 비교하면 247억원(57%)이 증가한 덕분이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공공도서관은 도서구입비를 정가의 80%를 보존하도록 규정해 두었다. 출판사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출판의 위기는 문학의 위기이기도 하다. 1990년대까지 책의 분류는 ‘소설/비소설’이었다. 교보문고에서도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소설 관련 매대가 넓게 자리 잡았었다. 이제 그 자리를 인문학에 내주고 있다. 2000년대 ‘인문학의 위기’가 논란이 됐지만 인문학은 오히려 유지된다. 강 주간은 “인문·실용서는 폭발적이지 않아도 필요로 하는 인구를 겨냥해 큰 욕심을 내지 않으면 순환되는 구조다. 그런데 ‘인생 그 어딘가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을 서술하는 문학은 경기 위축에 같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문선공들이 납 활자를 찾아서 조판하던 시대에서, 1990년대 오프셋인쇄와 사진식자로 전환됐고, 이제 전자식자로 전환하는 것처럼 말이다. 1980년대 하루에 30~40쪽 이상의 조판을 할 수 없던 시절엔 하루 교정지도 30~40장만 보면 됐다. 시간은 느리고 여유롭게 흘렀다. 그러나 30여년 세월 사이에 출판과 관련된 수많은 직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문선공, 조판사, 컴퓨터 조판사, 사식 치는 아가씨들 등등. 출판 위기의 시대에 강 주간은 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왜 장담하는가. 그는 “책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주선이 달나라에 가는 요즘도 돌과 망치로 못을 박아야 할 때가 있지 않느냐. 석기시대, 철기시대가 아니더라도 어떤 도구는 사라질 수 없는데, 책이 그런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의 손에 들어간 칼은 나무도 베고, 요리도 하고, 사냥도 하고, 뗏목도 만들고, 머리카락과 수염도 자른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칼의 분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과도, 초밥 칼, 흉기, 부엌칼, 고기칼, 유화나이프 등등. 칼의 기능이 다양화된다고 해서 칼의 소비가 주는 것이 아니듯, 책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다만, 책의 본질적 기능을 남기도록 노력하고 다양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 전자출판을 위해 독립도 해봤던 강 주간은 이제 본격적인 전자책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직감하고 있다. “조선의 음향기기 시장은 1926년 윤심덕의 음반 ‘사의 찬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 음반으로 조선에 겨우 몇 개 있었던 축음기가 몇 천 개로 확산되는 거다. 물론 극작가 김우진과의 정사(情死)라는 스캔들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당시 축음기 가격을 현재가로 환산하면 아이폰 가격인데도 조선 식자층은 ‘사의 찬미’라는 음반 한 개 때문에 축음기를 구입했다. ‘사의 찬미’는 1920년대의 킬러 콘텐츠였다.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전자책으로 읽지 않으면 안 될 콘텐츠가 나오면 사람들은 그 책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종이책은 종이책에 최적화한 콘텐츠로 살아남을 것이다. 출판계는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도 찾고 있다.” 다시 “책을 꼭 읽어야 할까요”로 돌아가 보자.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좋은 책 필요 없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된다.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더 문제다. 책은 아무 때나 손에 걸리는 대로 읽어도 된다. 절망하거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만 읽는 것이 아니다. 아무 관련 없는 책도 몇 줄만 읽다 보면 내 안에서 어떤 생각이나 반발 등이 올라오는데, 그렇게 내 안에서 솟아 나오는 그 무엇을 찾는 시간이 소중한 것 아니겠나.” 글 사진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1955년 미국인 홀트 부부가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 12명을 입양하면서 세워진 홀트아동복지회 기록물이 국가기록원에 기증된다. 국가기록원과 홀트아동복지회는 17일 경기 성남시 나라기록관에서 기증 협약식을 하고, 홀트아동복지회가 갖고 있던 1950~2000년대 주요 기록물 5700여점을 국가기록원에서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주요 기록물은 ‘입원 아동 관리카드’를 비롯한 사진, 동영상 등으로 당시의 해외 입양 과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아동 관리카드에는 ‘뇌성마비’이며 ‘배변훈련이 필요’하고, ‘이름을 부르면 안다’는 등 아이의 특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심정을 담은 시와 글이 실린 ‘홀트아동문예선집’ 등 간행물도 기증된다. 1950년대 입양 초기 모습을 비롯해 소풍 가는 아이들의 모습, 홀트가 아동복지회를 창설하게 된 계기 등을 담은 필름 등 동영상 기록도 국가기록원에 영구 보존된다. 홀트아동복지회 설립자인 해리 홀트는 1965년 별세했으며, 2000년부터 창설자 홀트의 둘째 딸인 말리 홀트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말리는 스무 살이던 1956년부터 한국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1957년 최초로 국내 입양도 시작한 홀트아동복지회가 지금까지 가정을 찾아 준 어린이는 모두 2만 3000여명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양심적 병역 거부 실태는

    종교적 신념 등에 의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조항에 대한 위헌 심판 제청이 잇따르고 있다. 법조계와 시민단체에 따르면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로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1만 7000여명에 달한다. 이는 벌금형이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거나 예비군 훈련 거부로 처벌받은 이들을 제외한 것이어서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해 사법 처리를 받은 실제 인원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시기별로는 2001~2012년 중에 수감된 적이 있는 사람이 8295명으로 1994~2000년 4058명, 1980~1993년 3148명보다 많았다. 이번 위헌 심판 제청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한다”며 헌법 10조의 ‘인간의 존엄성’ 규정에서 도출되는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법원의 위헌 심판 제청은 주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내용에 국한됐다. 피고인의 법률 대리를 맡은 백종건 변호사는 “이번 결정에서는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인간의 존엄성 규정에서 발현되는 기본적 권리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사회가 한국 정부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 처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잇달아 내고 2000년대 들어 양심적 병역 거부가 증가세인 만큼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대체복무제 찬성 여론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늘어나는 등 이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강모(24)씨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면 병역 의무 기간보다 길거나 더 어려운 것을 하라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장복희 선문대 법학과 교수는 “그동안 소수자 인권 보호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위헌법률 제청이 계속될 경우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진념의 경륜+한덕수의 성실+이헌재의 카리스마

    진념·이헌재·한덕수. 전·현직 경제관료들이 2000년대 들어 최고의 경제부총리로 꼽는 인물들이다. 지금까지 경제부총리를 지낸 사람은 1964년 장기영 부총리부터 2008년 권오규 부총리까지 총 32명이다. 1998년 폐지됐다가 부활된 2001년 이후에는 진념 부총리를 포함해 6명이다. ‘직업이 장관’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진 전 부총리는 매해 경제운용계획의 밑그림을 그리는 경제기획원(EPB) 차관보를 4년간 했다. EPB의 종합기획과장도 거쳤다. 지금까지 경제운용계획을 가장 많이 짜 본 관료인 셈이다. “그 경험이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이 끝난 경제를 본 궤도에 올려놓는 데 큰 자산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넓게 보는 시각을 가졌으면서도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전 부총리도 EPB에서 5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통상전문가다. 한 전 부총리는 성실함과 꼼꼼함으로 유명하다. 보고를 받고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사무관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실·국장 회의를 전 직원들이 보도록 인터넷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당시 국장을 지냈던 한 관료는 “실·국장을 견제하기보다는 의사결정 과정을 보여주면서 직원들의 통합을 이끌어냈다”고 회고했다. 이 전 부총리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수장으로 꼽힌다.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1년 만에 중도하차했기 때문이다. 한 경제 관료는 “당시 이 부총리는 성장정책의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그만뒀다”며 “좀 더 오래했더라면 서비스산업이 지금보다 훨씬 발전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카리스마를 갖춘 천재’ 소리를 많이 듣는 이 전 부총리는 경제 현안에 대해 전체 그림을 그린 뒤 담당 국장들을 불러 각각 해야 할 일을 지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부총리를 60대 초반(진념 61세, 이헌재 60세)이나 50대 후반(한덕수 56세)에 했다. 54세에 경제부총리를 한 권오규 전 부총리가 예외적 경우다. 한 전직 관료는 “경제부총리는 다른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맏형 기질이 있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세세한 업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무부(MOF) 출신 관료는 “MOF는 실행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EPB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차근차근 이뤄내는 노하우가 있다”며 “두 분야의 장점을 이해하고 융합할 수 있는 인물이 (경제부총리) 적임자”라고 말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은행 임원되려면 뉴욕지점장 거쳐라”

    “은행 임원되려면 뉴욕지점장 거쳐라”

    은행권에서 미국 뉴욕지점장 출신이 ‘상한가’다. 뉴욕지점은 과거부터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이자 지점장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대였다. 뉴욕지점에서 성과를 낸 지점장은 부행장이나 부사장 승진 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곤 했는데, 요즘 이런 ‘승진 공식’이 더 공고해지는 양상이다. KDB금융지주는 14일 김인주(55) 기획관리실장을 신임 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김 부사장은 서울고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2년 산업은행에 입행해 자금거래실, 금융공학실을 거쳐 2009년 8월부터 2년 반 동안 뉴욕지점장을 지냈다. 은행권에는 김 부사장처럼 뉴욕지점장을 지낸 후 임원급으로 승진한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해 인사철에는 본부장도 거치지 않고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임원으로 고속 승진한 이상원(53) 국민은행 부행장이 화제였다. 이동철(52) KB금융지주 상무도 마찬가지다. 이 부행장과 이 상무는 모두 2000년대 중반에 뉴욕지점장을 지냈다. 지난해 말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에 오른 조용병(56) 전 신한은행 부행장도 대표적인 ‘뉴욕파’다. 김병호(52)·이현주(54) 하나은행 부행장, 유석하(57) 기업은행 부행장도 뉴욕지점장을 지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뉴욕지점장 출신들은 아무래도 글로벌 금융 중심인 미국 월가에 접해 있다 보니 실전경험이나 글로벌 감각이 발달돼 있다”면서 “국내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글로벌 진출 분야에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잇단 발탁 배경을 분석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씨줄날줄] 입양 수출 강국/박정현 논설위원

    러시아는 올해부터 러시아 아동들의 미국 입양을 법으로 금지했다. 러시아의 조치는 아동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양국 간 외교분쟁에 따른 보복 차원에서 나왔다. 미국이 러시아인 인권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피살사건에 연루된 관련자의 미국 입국을 거부하자 러시아는 입양금지로 맞대응한 것이다. 러시아 고아 46명이 오기를 기다리던 미국인 부부들의 희망은 좌절됐다. 러시아는 아동 입양을 미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 무기로 사용한 셈이다. 미국에 입양된 러시아 아동은 모두 4만 5000명으로 지난해에만 970명이 입양됐다. 러시아의 미국 입양 아동은 중국 2589명, 에티오피아 1727명에 이어 세번째다. 해외 입양이 까다로워지는 게 국제적인 추세인 모양이다. ‘아동 수출 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도 아동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 입양을 제한하고 있다. 6·25전쟁이 끝난 뒤 1955년 해리 홀트 부부에 의해 시작된 우리나라 해외 입양의 역사는 1980년대 한 해 9000명으로 피크를 이뤘다. 2000년대에도 1000명을 넘었지만 2007년 해외입양쿼터제를 도입한 뒤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미국 입양은 지난해에는 734명으로 러시아에 이어 네번째다. 우리나라는 작년 8월부터 해외 입양을 까다롭게 한 입양특례법을 시행하고 있다. 해외 입양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헤이그 국제아동 입양협약’ 가입도 추진 중이다. 전체 해외입양자가 16만명이 넘는 나라로서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특례법은 입양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입양 전에 먼저 출생신고를 하도록 했다. 출생정보와 관련한 입양아동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다. 입양아동이 성장한 뒤 친부모를 찾으려 해도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는 등 안타까운 사정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막상 법이 시행되자 한 달 평균 60명을 넘던 해외 입양은 절반으로 줄었다. 입양을 보내기 전에 반드시 자신의 호적에 아이를 올려야 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미혼모들이 공개 해외 입양을 꺼리기 때문이다. 대신에 종교단체 등에 몰래 아이를 갖다 버리는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한 달 새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엊그제 1면에 생후 18개월 된 한국계 입양아 ‘해나’의 사진과 함께 입양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미국 가정에서 입양을 하기가 한결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영문도 모른 채 해외로 떠나는 ‘슬픈 어린이’들을 방치한 채 국격을 논할 수는 없다.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을 생각해 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황금평 개발 사례에 고무… 특구 더 늘릴 수도

    북한이 독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베트남식 경제개방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황과 맞물려 새해 북한의 경제개방 계획의 실체와 전망이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의 장기적인 경제개혁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북한이 경제특구 방식이 아닌 외자유치 방식을 통해 개방을 추구한다는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이 1986년 12월부터 추구한 ‘도이머이’(쇄신) 정책은 베트남 공산당이 경제현실에 부적합한 중공업 및 대규모 투자사업에 대한 과오를 인정하고 1989년 대부분의 품목에 대해 가격통제를 철폐한 뒤 시장가격을 공인하고 배급제를 폐지하는 등 시장화 요소를 도입한 데서 비롯된다. 이 같은 방침 전환에는 특히 1989년 6차 당대회 당시 당내 보수파가 대거 퇴진하고 개혁파가 입성하는 등 권력 엘리트층의 변화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도 지난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의 안정화 과정을 통해 군부의 경제 권력을 대거 내각으로 이전하고 박봉주 등 2000년대 중반 물러났던 경제관료들이 재등장했으며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 숙청되는 등 권력 엘리트의 일부 변화를 겪었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경제강국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지도와 관리 개선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이는 경제관리방법의 개선, 즉 현실의 변화를 수용한 부분적 개혁과 경제특구 건설이나 외자 유치를 통한 합영사업 등 대외개방을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치를 시행했고 지난해 농업과 공장기업소에서 생산과 분배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경제개혁 실험 등을 실시해 왔다. 특히 북한이 지난해 나선특구와 황금평·위화도에서 중국과의 공동개발 및 관리 업무가 본격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힌 바 있어 경제 특구방식의 개발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13일 “경제 개방의 방식을 중국식과 베트남식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면서 “우선적으로 경제특구를 추구하고 이 같은 경험이 축적되면 본토에서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는 등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 경제개방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경제개방에 성공하려면 국내 경제개혁과 외부 환경적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면서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유엔 안보리 제재 국면과 북핵 문제 등 대외적 환경이 걸림돌이 되는 상황에서 당분간 북한이 소극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일은 동독시절부터 북한과 협력을 유지해왔고 북한이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다양한 국가들로부터 자문을 구해 온 만큼 독일의 협조를 얻을 개연성은 있다”면서 “김정은 체제가 안정됐다는 판단하에 대외경제개방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임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북한이 합영·합자 방식을 통한 외국인 투자와 경제 특구 개발을 모두 강조한 만큼 두 가지를 병행해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베트남이나 중국처럼 문호를 활짝 열어 놓는 문제에서 북한의 의지가 명확하지 않은 이상 중국식이냐 베트남식이냐를 거론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르다”고 말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대내적 부분 개혁 조치로 농업이나 공장기업소, 서비스와 상업의 자율성을 증대하고 대외적으로 위화도·황금평에 더해 개방 특구를 백두산, 청진, 원산 등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DB를 열다] 마감 앞둔 서울대 입시원서 접수창구

    [DB를 열다] 마감 앞둔 서울대 입시원서 접수창구

    1975년 1월 6일 서울대 입시원서 접수 창구에 지원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당시의 대학입시는 예비고사를 11월에 치르고 이듬해 1월에 대학별로 원서를 받은 뒤 본고사를 보는 제도로, 본고사의 반영률이 높아 당락을 결정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금이야 인터넷을 이용해 간편하게 원서를 내면 되지만 1990년대까지는 지원자가 대학의 접수 창구로 직접 가서 접수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웃지 못할 광경들이 벌어졌다. 소신지원파도 있었지만 대개는 경쟁률이 낮은 학과에 지원하려고 가족이 몇 사람씩 여러 대학에 나가 서로 연락하며 지원자가 적은 학과를 고르는 눈치작전을 펼쳤다. 또 창구에서 접수를 하다 보니 마감시간의 창구는 막판에 들이닥친 응시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기도 했고, 마감시간을 넘겨 늦게 도착해 원서를 접수하지 못한 응시생들도 적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대입원서를 최초로 접수한 때는 1996년으로 당시 대우정보시스템이 원서접수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해 아주대 일반전형에 적용했다. 그 뒤 창구 접수와 인터넷 접수가 혼용되다 2000년대에 들어서 인터넷 접수가 일반화되었다. 사진 속 접수 창구가 있는 곳은 현재의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이며, 1975년 그해에 서울대는 관악구 신림동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등산로엔 ‘축하 현수막’… 설경 즐기는 탐방객 북적

    등산로엔 ‘축하 현수막’… 설경 즐기는 탐방객 북적

    광주광역시의 무등산도립공원이 국립공원으로 승격 지정된 것은 지역사회와 주민이 국립공원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원 지정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앞서 2000년대 초 경북 울릉도·독도와 강원 태백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 했지만 지역사회의 반발로 무산됐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개발이나 재산권 행사 등에서 각종 규제와 제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주민들의 우려와 반발 때문이었다. 이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공단)은 무등산과 얽힌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협조를 구하면서 국립공원 지정에 큰 역할을 했다. 1988년 변산반도, 월출산 이후 24년 만에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을 지난 주말 찾아 지역 분위기와 향후 과제 등을 살펴봤다. 무등산 탐방길에는 환경부 영산강유역환경청 관계자들이 동행했다. 무등산은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등산로 초입부터 국립공원 승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진입로부터 정상의 설경을 즐기려는 탐방객들로 북적였다. 주흥봉 영산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은 “관공서와 거리 곳곳에 무등산의 국립공원 승격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축제 분위기”라며 “날씨가 풀리면 탐방객 수도 부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음식점들이 들어섰던 주변 계곡과 언덕에는 정비 후 생태를 복원한 사진을 전시해 놓아 눈길을 끌었다. 무등산은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광주시가 관리하고 있다. 자체 통계에 따르면 연간 720만명의 탐방객이 찾고 있다. 2010년 말 환경부에 국립공원 승격을 건의했고 이후 환경부는 국립공원 타당성 조사를 벌였다. 주민공청회와 시도지사 의견 조회, 관계 중앙행정기관 협의 등을 거쳐 지난해 말 국립공원위원회에서 국립공원(3월 4일 승격) 지정을 최종 승인했다. 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하는 과정에서 조직 축소를 우려한 광주시청 공무원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무등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는 것이 주민과 지역에 보탬이 된다는 논리에 승복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지금까지 무등산 도립공원에서는 광주시청 소속의 서기관, 사무관 각각 1명과 6급 직원 6명 등 총 21명이 근무해 왔다”고 설명했다. 처음 국립공원 지정을 요구할 당시 무등산 면적은 30㎢였다. 하지만 환경부와 공단은 생태계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면적을 넓힐 필요성이 있다며 75㎢로 확대했다. 무등산에는 멸종 위기종 10종, 희귀 식물 24종, 천연기념물 4종을 포함해 총 2296종의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등산은 천왕봉·지왕봉·인왕봉·중봉 등 산봉우리가 13개 있고, 주상절리(화산 폭발 때 용암이 다면체 돌기둥으로 굳은 모양)로 이루어진 기암 괴석도 9곳 있다. 대표적인 사찰로는 원효사와 증심사가 있으며 주변 계곡은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다.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약사암 석조여래좌상은 각각 보물 제131호와 제600호로 지정돼 있다. 또한 증심사 삼층석탑과 원효사 동부도 등도 유형문화재로 등재됐다. 공단은 무등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무소 2곳(무등산·동부)을 운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각 사무소에는 자원보전·탐방시설·행정과를 두고 총 100여명의 직원이 상주하게 된다. 이상배 공단 홍보실장은 “현재 11명으로 무등산 관리사무소 인수팀이 꾸려졌다”면서 “3월 국립공원 지정일에 맞춰 개소식과 함께 비전 선포식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1966년부터 최정상(해발 1187m)에 공군부대(10만 2034㎡ 부지에 건축물 17동)가 주둔하고 있다. 군용 차량 통행 등으로 생태계가 훼손되고 일대는 군사보호 구역이어서 탐방객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지역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무등산 정상 생태계복원 운동’이 펼쳐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군은 이전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해발 900m(부지 2만 505㎡)에 늘어선 각종 방송 송신탑도 경관을 헤치고 있어 이를 옮기고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밖에 원효사 집단시설지구(14만 3200㎡)의 상가 이전 정비도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글 사진 광주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공직 파워우먼] 외교통상부(상)

    [공직 파워우먼] 외교통상부(상)

    외교통상부의 ‘여성 파워’는 현재진행형 ‘혁명’이다. 1978년 외무고시에서 첫 여성 합격자가 나온 지 35년이 지나면서 ‘한국의 힐러리’를 꿈꾸는 여성 외교관이 국제 외교무대의 전면에 부상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국내 첫 여성 외시 합격자는 2007년 퇴임한 김경임 전 주튀니지 대사이며, 현재 여성 재외 공관장으로는 박동원 주파과라이 대사가 유일하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여성 합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여성 대사 발탁은 시간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외시 여풍(女風)은 2007년 전체 합격자의 67.7%로, 처음으로 남성 합격자를 추월한 후 지난해까지 매년 절반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1996년 이전까지 4급 이상에 여성이 단 1명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향후 10년 내에 외교부 고위직의 인적 구성은 ‘여인 천하’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올 1월 현재 여성은 전체 2157명 중 695명으로 32.2%에 이르고 있다. 4급 이상 여성은 97명으로 전체 971명 중 9.9%다. 고위공무원단 소속은 4명. 외시 18회인 백지아 안보리 업무지원 대사, 19회 박은하 개발협력국장, 특채 출신인 한혜진 부대변인, 22회 오영주 개발협력국 심의관이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한시적으로 비직제 대사 업무를 맡고 있는 백지아 대사는 주유엔대표부, 주제네바대표부, 국제기구국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며 외교부 내에서 다자외교의 꽃인 ‘유엔통’으로 꼽힌다. 1991년 한국의 유엔 가입 직후 유엔대표부에서 근무한 이후 20년 동안 다자외교 무대인 유엔 관련 업무를 맡았다. 다자외교 전문가이자 ‘중국통’으로 인정받는 박은하 국장은 한국 외교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총괄 지휘하고 있다. 박 국장은 국내 첫 부부 외교관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최측근인 김원수 유엔 개혁 사무차장보가 남편이다. 백 대사와 박 국장 모두 외시 출신으로 연이어 본부 국장으로 발탁된 인물들이다. 국내에서 국장급 이상 고위 여성 외교관은 두 사람 이전까지는 단 2명. 특채 출신으로 2005년 국제기구국장을 역임한 강경화 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와 외시 출신으로 문화국장을 지낸 김 전 튀니지 대사뿐이었다. 외교부 사상 첫 여성 부대변인 기록을 갖게 된 한혜진 부대변인은 국제 감각과 전문성을 갖춘 실력파로 꼽힌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외국계 홍보사인 버슨마스텔러 이사,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 외교부 정책홍보과장 등을 역임해 외교 이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오영주 심의관은 2006년 다자외교 분야의 요직인 유엔과장에 첫 여성으로 낙점된 유망주다. 그는 지난해 3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기획단 소속으로 58개국 정상 의전을 총괄하며 주목받았다. 오 심의관의 남편은 장석명 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다. 내년부터 기존 외무고시가 폐지되고, 실무 위주의 외교관 후보자 선발 시험이 시행된다. 외교관 후보자로 선발되면 1년 동안 국립외교원에서 실무 교육을 이수하고, 그중 우수한 인재들만 5급 공무원으로 최종 임용된다. 그동안 합격자의 절반 이상, 수석 합격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추세대로라면 바뀐 제도하에서도 여성 비율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성 차별이 크지 않은 외교 업무의 특성상 여성 외교관은 ‘고시 순혈주의’ 문화가 사라지는 속에서 강력한 파워 그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일본통신] ‘황금의 오른팔’ 오릭스 테라하라 팀 떠나다

    [일본통신] ‘황금의 오른팔’ 오릭스 테라하라 팀 떠나다

    이대호(31.오릭스)의 소속팀인 오릭스 버팔로스의 선발 투수 테라하라 하야토(29)가 팀을 떠났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획득한 테라하라가 선택한 곳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테라하라의 친정팀이다. 오릭스는 테라하라 대신 2011년까지 소프트뱅크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마하라 타카히로(31)를 보상 선수로 획득했다. 아라가키 나기사(소프트뱅크), 마쓰자카 다이스케, 테라하라 하야토, 다르빗슈 유(텍사스), 츠지우치 타카노부(요미우리), 타나카 마사히로(라쿠텐), 사토 요시노리(야쿠르트)는 2000년대 들어 고시엔이 배출한 강속구 투수들의 계보를 잇는 선수들이다. 그중에서, 프로데뷔 후 잠시나마 반짝 활약한 아라가키와 2005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대회에서 156km의 강속구를 뿌려 대회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한 츠지우치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선수들이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일본 최고의 투수로 주목받았던 마쓰자카와 지난해 미국에 진출한 다르빗슈, 현 일본 최고의 선발 투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타나카와 야쿠르트의 옛 명성을 재현 할 투수로 손꼽히는 요시노리는 이미 화려하게 전성기를 보냈거나 앞으로 보여줄게 더 많은 투수들이다. 2004년 일본에 진출했던 이승엽(36. 삼성)의 첫 홈런(150m 장외) 상대로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인 아라가키는 아직까지도 제구력 찾기의 퍼즐이 완성되지 않아 잊혀진 유망주가 됐다. 그리고 친정팀에 복귀 한 테라하라 역시 들쑥날쑥 한 피칭으로 과거와 같은 기대감은 많이 사라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테라하라는 과거 자신과 비슷한 평가를 받았던 고시엔 출신의 선후배 투수들이 프로데뷔 후 승승장구 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 선수였다. 미야자키 출신인 테라하라는 니치난학원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인 2001년 하계 고시엔 대회에 참가 해 고시엔 대회 역대 최고구속인 154km를 기록했다. 이 구속은 이후 사토 요시노리가 2007년 고시엔에서 155km를 그리고 그해 열린 미일 친선경기에서 157km의 광속구를 뿌리는 바람에 곧바로 잊혀졌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강속구 투수에 대한 로망은 일본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전도유망한 모습을 충분히 보여준 테라하라는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의 왕정치 감독으로부터 “황금의 오른팔”이란 찬사를 받으며 1순위로 지명, 2001년 전체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다이에 유니폼을 입는다. 당시 다이에가 3순위로 지명한 스기우치 토시야(현 요미우리)보다 테라하라가 더 높은 순위의 지명을 받았을 정도로 팀에서 생각하는 테라하라의 위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입단 첫해 6승(1세이브, 2패 평균자책점 3.59)을 올리지만(드래프트가 시행된 이후 다이에 구단 사상 신인 최다승) 본인은 첫해의 성적에 실망감을 표현했다. 이듬해인 2003년 시즌에 접어 들며 다이에의 선발 전력은 기대감과 더불어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중, 사이토 카즈미(Saitoh), 와다 츠요시(Wada), 아라가키 나기사(Arakaki), 테라하라 하야토(Terahara)로 이어지는 선발 4인의 첫 영문 이니셜을 따와 불리게 된 ‘SWAT’는 당시 개봉한 영화의 제목과 똑같은 것으로 그만큼 다이에를 바라보는 마운드 높이에 대한 위압감을 미루어 집작할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후 소프트뱅크로 팀명이 변경된 후 선발 4인이 생각만큼의 활약을 똑같이 보여주지 못해 이러한 기대는 어긋났지만 아직도 소프트뱅크 팬들은 이 시절을 그리워 하는 사람이 많다. 이후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며 공백기를 가졌던 테라하라는 2006년 시즌 후 타무라 히토시와 맞트레이드 돼 요코마하 유니폼을 입는다. 소프트뱅크에서 단 한번도 두자리수 승리를 거두지 못했던 테라하라는 이적 첫해인 2007년 12승(12패, 평균자책점 3.36)을 거두며 프로 첫 10승대 투수가 된다. 요코하마의 타력이 워낙 약해 패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150km대의 속구가 되살아 난 게 고무적이었다. 아마 시절의 명성을 회복했다는 진단과 더불어 이제부터 테라하라의 본 기량이 나올 것이란 전문가들의 평가도 상당했었다. 2008년 개막전 선발 투수가 됐던 테라하라는 그러나 이후 마무리 투수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팀 전력이 워낙 떨어져 역전패가 많았던 요코하마는 그나마 믿음직스런 테라하라로 하여금 뒷문을 책임지게 했지만 이기는 경기가 드문 팀 형편상 세이브 기회가 적어 그해 22세이브가 그쳤다. 이해 테라하라는 9패(평균자책점 3.29)를 기록했는데 마무리 투수로서 등판 간격이 들쑥날쑥 해 컨디션 조절등의 어려움을 겪었던게 평범한 성적을 남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다시 선발로 돌아온 테라하라는 2007년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잦은 어깨부상으로 인한 재활과 복귀를 반복하며 허송세월을 보낸 후 2010 시즌 후 타카미야 카즈야와 함께 오릭스 버팔로스로 맞트레이드 된다. 2011년 테라하라는 시즌 초반 7연승을 질주 하는 등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약체 오릭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 시킬 적임자로 평가 받았지만 그를 또다시 주저 앉게 만든 건 역시 부상이었다. 부상과 복귀를 반복하며 그해 12승(10패, 평균자책점 3.06)을 올린 테라하라는 지난해엔 허리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말소되는 등 초반부터 팀 전력에서 이탈하며 개인 성적은 물론 팀의 꼴찌 추락을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테라하라의 방황은 지난해 FA 자격을 획득하면서 끝이 났다. 돌고 돌아 다시 소프트뱅크로 이적 했는데 이제 30대를 바라보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리고 과거의 명성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을 생각하면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 한다. 비록 ‘SWAT’는 해체 된지 오래지만 한때 후쿠오카 팬들의 가장 큰 염원 중 하나였던 테라하라의 본모습과 고시엔이 배출한 강속구 투수 중 반드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야 하는 테라하라에 대한 기대치는 아직도 후쿠오카 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 구단은 지난해 리그 3연패에 실패 한 것을 올 시즌 테라하라로 하여금 우승을 되찾게 한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바 있다. 테라하라는 최고 155km의 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 커브, 슈트볼(인사이드 역회전볼), 포크볼, 그리고 종에서 대각선 모양으로 떨어지는 빠른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한다. 다만 마운드 운영이 아쉬운데 좋은 피칭을 하다가도 위기상황에서 연속 안타 등으로 집중타를 맞으며 대량 실점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지난해 오릭스에서도 위와 같은 모습을 종종 노출하며 안정적인 선발 투수로서는 부족한 선수였다. 하지만 지난해 빈타에 허덕였던 오릭스 타선과 다른 소프트뱅크라는 점을 감안하면 안정감 면에선 더 나은 조건에서 활약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편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으로 뽑히는 등 불같은 강속구가 돋보이는 마하라 타카히로(31)는 올 시즌 오릭스 유니폼으로 갈아 입는다. 지난해 어깨 수술로 인해 마운드에서 그 모습을 볼수 없었던 마하라는 부상과 재활을 끝내며 뒷문이 불안한 오릭스 마운드를 책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하라의 오릭스 이적은 소프트뱅크 입장에선 커다란 손실로 다소 충격적인 일이다. 통산 180세이브에 빛나는 마하라는 수술 전력 때문에 소프트뱅크가 28인의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했고 오릭스는 기다렸다는듯 마하라를 얻는데 성공했다. 물론 마하라 없이도 그를 대체할만한 선수가 많다는 소프트뱅크의 입장이지만 이미 검증이 끝난 마무리 투수를 같은 소속의 리그 팀에게 보낸 것은 다분히 모험적인 일이다는 평가다. 소프트뱅크는 선발감인 테라하라를 얻었지만 2011년까지 뒷문을 책임진 ‘수호신’ 을 잃어 올 시즌 팀 전력에 있어 얼마만큼의 손익계산이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 진다. 사진= 테라하라 하야토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건설·해운업계 ‘깊은 한숨’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설·해운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5년간 수차례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위기감은 여전하다. 건설업계에서는 올해 추가 구조조정이 닥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100대 건설사 중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 중인 업체는 21곳에 이른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비교적 건실하다고 평가받던 벽산, 풍림, 삼환 등의 중견 건설사들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 부실 등으로 차례로 무너졌다”면서 “올해도 건설 경기가 바닥권에 머물 것으로 보여 추가로 위기를 맞는 건설사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렵기는 해운업도 마찬가지다. 대형 해운사인 STX팬오션과 대한해운은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계열사를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이들은 벌크 중심의 화물에 주력했던 탓에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 호황기 때 늘어난 선박이 독이 되고 있다”면서 “하반기에 중국 경기 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워낙 유럽 쪽 상황이 좋지 않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길어지면서 무리하게 덩치를 키운 기업뿐 아니라 내실을 다지며 착실하게 성장했던 기업들도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2013 재계 이슈] (3) 올 국내 차시장 어디로

    [2013 재계 이슈] (3) 올 국내 차시장 어디로

    ‘1층 김 대리도, 3층 분식점 이 사장도 타는 수입차.’ 지난해 팔린 자동차 10대 중 1대는 수입차로, 내수 점유율이 10%를 넘어섰다. 수입차 전체를 하나의 업체로 보면 한국지엠보다 더 많은 차량을 팔았고 매출액을 놓고 보면 업계 1위인 BMW(약 2조여원)가 한국지엠을 넘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국내 자동차업계의 이슈는 ‘수입차 점유율 확대’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수입차의 거침없는 질주가 화두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현대·기아차 등 국내 업체들이 가격 대비 품질 만족도를 높이지 못한다면 수입차의 질주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답은 우리나라와 자동차 시장구조가 비슷한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다.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에서 자국 업체의 점유율이 30%가 넘는 나라는 미국(2010년 기준 수입차 점유율 32.8%)과 일본(7.3%), 독일(36.0%), 프랑스(46.1%), 이탈리아(69.4%), 한국(6.9%)뿐이다. 이 중 점유율에서는 일본이, 산업 구조 면에선 이탈리아가 우리와 비슷하다. 일본의 수입차 점유율은 1986년 2%대에서 10년 만인 1996년 10.6%를 정점으로 2000년대 7~8%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일본이 ‘수입차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공략하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자국 업체들의 경쟁력 때문이다. 일본은 토요타가 30%, 나머지 혼다와 닛산 등 6개 업체가 60%대로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토요타 외에도 미쓰비시와 스바루, 마쓰다 등 경쟁력 있는 업체가 여럿 있다. 여러 업체가 다양한 차종을 선보이는 만큼 소비자도 수입차에 눈길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는 대중차 브랜드로 피아트가 유일하다. 1984년 내수 점유율은 64%로 지금 현대차그룹과 비슷했다. 하지만 피아트는 1984년을 정점으로 최근엔 점유율 30%대로 곤두박질쳤다. 국내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폭스바겐 등 대중 수입차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지난해 마케팅인사이트가 국내 소비자 9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수입차가 초기 품질과 내구성 등 제품 만족도에서 국내 업체보다 월등한 점수를 받았다. 즉 현대·기아차 등 국내 업체들은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들이 수입차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수입차의 시장 잠식 속도는 한국지엠과 르노삼성, 쌍용차에 달렸다. 한국지엠 등 3개 업체가 높은 만족도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일본처럼 수입차 점유율은 10% 안팎에 머물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미국이나 이탈리아처럼 30~70%에 이를 수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제 차량 선택의 기준은 애국심이 아니라 가격 대비 품질 만족도”라면서 “현대·기아차 등 국내 5개 업체가 소비자 만족도를 높여야 수입차의 성장세를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길섶에서] 직업선택 기준/오승호 논설위원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장래희망으로 꼽는 직업으로 과학자가 가장 많은 적이 있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설문조사에서 연예인이 1위를 차지할 때가 많다. 이유는 멋져 보이기 때문이란다. 욕구를 발산하려는 심리나 화려함에 대한 동경이 작용한 것일까. 초등학교 6학년의 38.3%가 인생에서 가장 추구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꼽기도 한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사회상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척도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게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경향이 강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돈이 직업 선택의 주요 기준은 아니었으면 한다. 직업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미국의 직업 사전은 10년마다 개정되는데 그때마다 25%가량의 직업이 바뀐다. 싱글족 인테리어전문가, 증강현실 전문가, 3D갤러리 전문가, 분수설계디자이너, 지능형 의류디자이너, 막걸리 소믈리에…. 지난해 한 지자체 주최 청년일자리박람회에서 소개된 미래지향적 직업들이다. 입시철 막바지다. 베이비부머들이여, 자녀들이 미래사회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조폭 계보 및 향후 판도는

    범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씨가 지난 5일 사망하면서 조직폭력계의 판도와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거물급 인사의 사망으로 조폭계에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이 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하지만 경찰은 “신흥 조폭의 형태를 볼 때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1980년대 전국 3대 폭력조직으로 꼽히던 범서방파(김태촌), 양은이파(조양은), OB파(이동재) 등은 폭력·갈취·사채·성매매·마약 매매 등 전통적인 조폭 범죄를 일삼았다. 하지만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으로 전통적인 조폭은 세력이 크게 약화되거나 와해됐다. 실제 조폭계의 전설로 통하던 조양은씨와 김태촌씨는 살인 등의 혐의로 각각 20년, 30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이 틈을 타 신흥 조폭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과거보다 쪼그라든 형태로 조직들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7월 말 기준 경찰청이 파악한 전국 폭력조직은 217개, 조직원은 5384명이다. 평균 조직원 수가 25명이 채 못 된다. 조폭의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로 조직 22개, 조직원 484명이 활동 중이다. 부산은 조직 23개에 조직원 381명이 활동해 광역시도 중 인구 대비 조직원 비율이 가장 높다. 활동 영역도 변했다. 2000년대 신흥 조폭들은 건설업, 증권투자업, 연예, 대부업 등으로 눈을 돌려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다. 생존을 위한 진화를 거듭해 겉으로는 기업의 형태를 띤다. 과거 두목·부두목이란 호칭은 자연스럽게 회장·사장으로 바뀌었다. 세력 과시를 위해 수십명씩 떼를 지어 움직이는 일도 드물다. 돈이 되는 일이 생기면 여러 조직이 뭉쳤다가 해체하는 점조직 형태를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은 김씨의 사망이 조폭계의 세력 재편성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과거 지역 기반을 둔 보스 밑에 주먹으로 단결하던 때와 달리 이미 조폭들이 기업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김씨의 사망이 주먹판을 뒤흔드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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