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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P 찾는 2030세대, 아빠에겐 ‘향수’ 우리엔 ‘새로움’

    LP 찾는 2030세대, 아빠에겐 ‘향수’ 우리엔 ‘새로움’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의 LP전문 레코드숍인 ‘메타복스’에는 수십년 동안 국내외에서 발표된 클래식과 재즈, 팝 LP와 CD가 선반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다. 지난 1일 매장에서 만난 조남길 대표는 온라인으로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고 LP들을 한 장 한 장 포장하느라 분주했다. 조 대표는 “중장년층이 주로 찾던 매장에 5~6년 전부터 LP를 찾는 20~30대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다”면서 “2000년대까지만 해도 CD 판매량이 전체의 70~80%였는데 이제는 LP가 70%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메타복스’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위치한 ‘김밥레코즈’는 영미권 록과 국내 인디음악 LP 및 CD를 갖추고 지난해 문을 열었다. 김영혁 김밥레코즈 대표는 “최신 LP들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20~30대 손님들이 대부분이며 고등학생들도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CD와 MP3에 밀려나 골동품으로 인식됐던 LP를 찾는 손길이 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영국은 ‘LP 붐’이라고 할 만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음반시장 조사업체 ‘닐슨 사운드스캔’의 2014년 상반기 발표에 따르면 미국 내 LP 판매량은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460만장이 판매됐으며 올해는 700만장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LP 시장은 영미권과 견줘보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최근 가수들이 잇따라 LP를 발매하며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과거의 향수를 찾아 LP를 구입하는 중장년층이 여전한 가운데, 최근에는 20~30대의 젊은 음악애호가들도 LP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MP3를 다운로드하거나 음원사이트에서 스트리밍을 하던 젊은이들이 음악을 소장하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LP를 찾는 것이다. LP가 더 이상 남성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님은 최근 3년간의 LP 판매량에서 엿볼 수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LP 구매자 중 20대의 비중은 2011년 4.3%에서 2014년 9월까지 10%로, 30대의 비중은 24.1%에서 26.9%로 늘었다. 여성의 비중도 13.3%에서 20.8%로 늘었다. 전체 LP 판매량은 2012년에 전년 대비 66.5%, 2013년에 102.7% 증가했다. 김혜란 예스24 가요담당 MD는 “전체적으로 LP 구매자의 연령대가 넓어지고 남성 편중현상도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1~2년간 국내에서는 과거 앨범의 재발매나 새 앨범의 한정판 LP 발매가 줄을 이었다. 신중현, 김추자, 들국화, 유재하 등의 음반이 LP로 재발매돼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했고 버스커버스커, 장기하와 얼굴들, 브라운아이드 소울, 에피톤 프로젝트 등도 LP를 내놓아 2030세대들의 시선을 모았다. 솔로 앨범 LP 8888장을 찍어 하루 만에 팔아치운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을 비롯해 2AM, 조권, 아이유 등 아이돌 가수들도 LP 대열에 합류했다. ‘만추’ 등 국내 영화 OST도 LP에 담기기 시작했다. 음악 애호가는 물론 LP라는 단어조차 낯선 10대들의 구매욕구까지 자극하는 현상이다. 지난해 조용필의 19집 LP가 시중에 풀리던 날 팬들이 음반 매장 앞에 줄을 선 풍경은 국내 LP 시장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LP를 찾는 이유로는 흔히 디지털 시대에 잊고 있었던 아날로그 감성의 부활이 꼽힌다. 손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부피감과 무게감,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한 곡 한 곡 빠짐없이 순서대로 들어야 하는 수고로움, 턴테이블로 재생했을 때 들려오는 풍성한 사운드 등이 LP가 주는 특별한 감성이다. 2030세대에게는 이 모든 것이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회사원 정영준(32)씨는 “음원을 다운로드하거나 스트리밍해서 듣고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CD를 사 모으다 최근 LP를 몇 장 구입했다”면서 “CD의 작은 재킷과 디스크만 만지다 커다란 LP를 접하니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LP는 턴테이블로만 재생이 가능하지만 2030세대는 고가의 턴테이블 없이도 LP를 소비한다. LP는 소장용으로 삼고 음악은 MP3나 음원으로 듣는 식이다. 이같은 소비 행태에 맞춰 최근 발매되는 LP는 CD를 끼워넣거나 MP3 다운로드 쿠폰을 동봉하는 전략을 취한다. LP가 제법 쌓이면 휴대용 LP 플레이어를 장만하기도 한다. LP의 음악을 MP3 파일로 변환하는 기능까지 갖춘 휴대용 LP 플레이어는 10만원 이내에서 구입할 수 있어 최근 젊은이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LP의 디자인도 2030세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일러스트 아티스트나 디자이너가 공을 들인 큼직한 표지와 재킷은 물론 레코드판에 사진이나 그림을 새겨넣은 ‘픽처 디스크’도 많다. 이응민 파스텔뮤직 대표는 “LP는 사이즈가 크다 보니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 LP 디자이너가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한 사례도 있다. LP 표지 자체가 디자인 작품인 셈”이라고 말했다. LP 마니아들은 표지가 멋스러운 LP를 구매하고 액자를 맞춤제작해 벽에 걸어놓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가수와 팬들 사이에서 LP는 음악의 가치를 높이는 매개체로 떠오르고 있다. 가수들은 제작 비용이 적잖은 LP 발매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팬들은 LP를 구매해 소장 욕구를 충족시킨다. 가수들은 LP 속에 CD에는 없는 사진과 일러스트 등을 담고 일련번호를 매긴다. 한정판 CD가 해오던 역할을 LP가 이어받는 셈이다. 이응민 대표는 “음악이 소장되지 않고 소비되다 보니 이에 대한 반발심이 적잖다”면서 “CD보다도 내용물이 충실하고 생명력이 강한 LP는 팬들에게 좋아하는 뮤지션의 모든 것이 담긴 선물과 같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LP를 발매하는 이도, 찾는 이도 전체 가요 시장에서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LP의 대부분은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한정판으로 발매되고 있어 음악 애호가가 아닌 이들에게 LP는 여전히 거리가 먼 매체다. 가장 큰 이유는 높은 가격이다. 레코드 한 장이 담긴 LP의 오프라인 정가는 4만원이 넘는다. 국내 단 한 곳뿐인 LP 공장만으로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어 대부분 독일에서 생산하다 보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김영혁 대표는 “아직은 LP 수요가 한정돼 있으니 공급이 묶여 있고, 그러다 보니 가격이 내려가지 않아 수요가 늘 수 없는 현상이 반복된다”면서 “팬덤을 갖춘 인기 가수들이 LP를 다량 생산하는 흐름이 생기면 LP의 대중화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앞으로 국내 LP 시장은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최근에도 가수들과 음반제작사들의 LP 발매 계획이 심심찮게 발표되고 있다. 이응민 대표는 “CD는 디스크가 훼손되면 재생이 불가능하지만 LP는 오랜 시간이 지나 먼지가 쌓이고 긁혀도 소리는 저장된다”면서 “CD는 사라져도 LP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만추’를 시작으로 국내영화 OST 제작을 진행하고 있는 남궁정 유앤아이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음악을 좋아하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생겨난 MP3와 CD의 틈새시장을 LP가 파고들고 있다”면서 “아직 시장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지만 2030세대들이 LP를 세련된 방식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新 국토기행] 수원

    [新 국토기행] 수원

    경기도의 수부도시 수원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대왕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이다.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를 향한 효심과 웅대한 개혁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도시를 만들었다. 정조 18년(1794년) 부친 장헌세자의 묘인 현륭원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성(華城)을 쌓기 시작했다. 설계는 다산 정약용이 맡았으며 착공 2년 10개월 만에 완공됐다. 정조는 화성 안 팔달산 기슭에 새 읍치(마을 중심 공간)를 조성하고 행정기관인 관아를 비롯해 향교(교육기관), 역참(교통기관) 등을 옮겼다. 인근 주민 244가구에 보상금과 이사 비용을 지급해 이주시키고 국비 6만 5000냥의 기금을 조성해 공업과 상업을 촉진시켰다. 화성이 축성되면서 수원은 한양 남쪽의 군사와 행정, 농업, 상업 중심도시로 자리 잡았다. 특히 팔달로, 남창동, 장안동, 신풍동 등 화성 성안마을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팔달문 바로 앞에 형성된 수원장은 사방 100리 경기 남부의 상권 중심지였다. 지금의 ‘팔달문 시장’이다. 팔달문 시장은 남문상가, 영동시장, 지동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1980~1990년대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되면서 전통상가와 금융기관, 다양한 공산품 등 소비업종이 복합적으로 들어서며 수원은 물론 수도권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0여전 전부터 수원 곳곳에 대형 백화점과 쇼핑몰이 속속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최근 수원지역 전통시장 상인들이 롯데쇼핑몰 수원역점 개점을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도 대형 유통업체에 더이상 밀리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또한 대단위 택지개발로 영통·정자·인계지구, 광교신도시 등 신시가지가 건설되면서 성안 마을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는 역사 이면으로 사라져가는 상황을 맞게 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리를 200년 전의 자취가 다시 채워주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게 됐다는 말을 듣는다. 팔달로 종로 4거리에서 팔달산 쪽으로 화성행궁이 복원돼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행궁 앞 광장은 화성문화제가 열리는 등 수원 문화행사의 중심지가 됐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우수성과 정조의 개혁정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화성 박물관도 세워졌다. 화성행궁 앞을 통과하는 행궁길은 서울 인사동과 같은 공방거리로 변신 중이다. 수원 토박이인 김찬영(58)씨는 3일 “화성 성안마을은 경기 남부 상권의 중심지였으나 외곽의 급속한 도시화로 구도심은 낙후를 면치 못하게 됐다. 과거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다행히도 그곳에 200년 전 역사로 채워지는 것 같아 위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은 선경그룹의 태동지이자 세계 굴지의 기업인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기업도시이다. 수원시와 시민들은 “세계적인 기업이 있어 도시 이미지가 좋아졌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1969년 창립한 삼성전자의 출발은 수원 매탄동에 라디오와 TV 생산라인을 세우면서부터였다. 이듬해 일본기업과 합작 투자계약을 성사시키면서 대규모 공장을 짓고 1973년에는 본사를 아예 수원시로 이전시켰다. 2000년대 들어 IT 중심의 첨단산업 비중이 높아지면서 가전제품 위주 생산라인은 대부분 지방으로 내려가고 그 자리에 첨단 연구개발(R&D) 단지가 조성되면서 ‘수원디지털시티’의 중심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역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3만여 임직원 중 71%인 2만 2000여명이 수원을 중심으로 경기지역 곳곳에 거주하고 있다. 수원시는 지난해 삼성전자로부터 지방소득세 1440억원, 취득세 330억원, 재산세 41억원 등 총 1849억원을 징수했다. 수원시 입장에서 보면 삼성전자는 집안의 명예를 높여주고 적지 않은 생활비까지 보태주는 금쪽 같은 효자다. 광교테크노밸리는 경기도 내 중소기업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광교신도시 26만 9404㎡(약 8만 1494평)에 2008년 둥지를 튼 광교테크노밸리에는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를 비롯해 경기R&DB센터, 한국나노기술원,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등 5개 기관과 211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조만간 CJ제일제당 등 굵직한 민간 R&D 기업 8개도 들어올 예정이다. 성균관대, 경희대, 아주대 등 인근 대학들도 R&D 및 인력 양성 기반시설을 갖추고 기업들을 지원해 주고 있다. 수원은 얼마 전까지 농업의 메카로 대접을 받았다. 우리나라 농업과학기술의 총본산인 농촌진흥청과 각종 연구소 등이 있었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농업 100여년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됐다. 자연히 한국 농업 연구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전신인 수원농림전문학교가 1918년에, 수원농고의 전신인 수원공립농업학교가 1936년에 각각 문을 열면서 농업 연구의 산실 노릇을 해 왔다. 수원농고를 졸업한 김용태(54)씨는 “정조 때 서호(농업용 저수지)를 만든 것부터 따지면 수원은 200년 된 한국 농업의 메카였다. 친구들과 함께 농고를 진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고 아쉬워했다. 8월 말 현재 수원시의 인구는 120만 1500명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많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인구팽창으로 이미 포화상태이다. 그래서 수원시는 인근의 화성·오산시 등 3개시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 3개 시가 합쳐지면 853.3㎢의 면적, 인구 200만명, 재정 3조 5000억원에 이르는 전국 5대 도시로 부상한다. 수원시는 이에 따라 인구 100만명 이상 대도시를 ‘특정시’로 구분해 그에 걸맞은 권한을 주는 방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대통령직속기구인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이르면 올해 말 이와 관련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서수원권은 상대적으로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수원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경부선 철도와 수원 공군비행장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최근 공군비행장이 이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서수원권이 활력을 찾고 있다. 2020년 이전이 완료되면 비행장 이전 부지에는 친환경 첨단산업과 문화 공간을 비롯한 첨단복합공간이 조성될 예정이다. 또 서수원권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으로 꼽히던 구운동과 압북동 일대에도 수원 R&D 사이언스 파크가 조성돼 최첨단 지식 기반 산업 벨트의 거점으로 육성될 예정이다. 이재준 수원시 제2부시장은 “군공항 이전으로 서수원권은 24만여명이 소음 피해에서 벗어나게 될 뿐 아니라 고도제한 폐지로 지역 발전은 10년 이상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왕십리에서 분당을 거쳐 수원 영통과 시청, 수원역으로 연결되는 분당선이 개통되면서 수원 주민들의 서울 나들이가 훨씬 수월해졌다. 수인선과 분당선 외에도 신분당선 연장선(분당 정자~광교), 인덕원~수원선 복선전철이 2019년 말까지 개통될 예정이어서 수원은 바야흐로 지하철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프로야구 10구단 KT와 수원 고등법원을 유치한 것도 수원의 미래를 더욱 밝혀주고 있다. 프로야구단의 경제적 효과는 최소 137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원고등법원이 2019년 설치되면 서울 대형 로펌들의 수원행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가정법원까지 신설될 경우 삼성전자 하나를 유치한 것과 맞먹는 연간 1000억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한국경제 매출액 중 대기업 비중 30% 달해

    한국경제 매출액 중 대기업 비중 30% 달해

    대기업이 한국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29.1%에 달했다. 이재형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위원이 29일 발표한 ‘기업집단의 경제적 비중과 시장지배력’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55개 대기업(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2010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제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9%, 서비스업에서의 비중은 18.4%였다. 제조업 부문 매출액에서 30대 대기업 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0~80년대 초 35% 수준에서 1990년대 중반 40% 선에 이르렀고, 2009년 45%를 넘어선 뒤 2011년에는 47.3%까지 올랐다. 상위 10대 기업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36.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전문위원은 “2000년대 말부터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서 극소수 초대형 기업의 성장은 두드러진 반면 다른 기업의 성장세가 둔화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 전체 1131개 업종 중 대기업이 발을 들여 놓은 산업은 55.3%(626개)로 절반을 넘었다. 대기업 계열사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산업은 23.7%에 달했다. 대기업 집단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매출 규모보다 훨씬 작았다. 55개 대기업 집단의 종사자 수 비중은 제조업에서 18.7%, 서비스업에서 5.5%로 전체 산업의 일자리 중 8.0%에 불과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그들만의 잔치 ‘비엔날레’

    그들만의 잔치 ‘비엔날레’

    짝수해인 올해 전국 각지에서 5개의 대형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면서 ‘비엔날레 피로증후군’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크고 작은 미술행사까지 가세한 탓에 ‘비엔날레 공화국’이란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정작 이름 한번 들어보지 못한 행사도 한둘이 아닌 데다, 대다수 비엔날레의 수준이 기대치를 밑돌면서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국고 보조를 받는 전국의 5대 비엔날레가 거의 같은 시기에 봇물을 이뤄 ‘그들만의 잔치’라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자연미술에 초점을 맞춘 제6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일찌감치 지난 8월 말 개막해 충남 공주 일대에서 이어지고 있다. 종합비엔날레로 불리는 제10회 광주비엔날레와 제8회 부산비엔날레는 지난 4일과 20일 각각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또 ‘사진의 기억’과 ‘달그림자’를 주제로 한 제5회 대구사진비엔날레와 제2회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지난 12일과 25일 개막했다. 이 가운데 대구사진비엔날레를 제외한 나머지 4개 비엔날레는 오는 11월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여기에 격년제 예술행사로 지난 2일 개막한 제8회 미디어시티서울이 열리고 있고, 오는 11월에는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을 모색하는 대전비엔날레가 개막한다. 이 같은 흐름은 내년 4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가 바통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이코리아전북비엔날레,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프로젝트 대전,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평창비엔날레 등 다른 행사들까지 합하면 국내에서는 연중 비엔날레가 끊이지 않는다. 격년제 미술제인 비엔날레는 국내의 경우 전국적으로 10여개로 추산된다. 비엔날레라는 이름까지 붙진 않았으나 비슷한 형태의 ‘미술제’나 ‘미디어 아트’ 등을 합하면 20개에 육박한다. 전 세계적으로 비엔날레가 200여개인 점을 감안하면 절대 과잉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이름만 그럴 듯할 뿐 외국 작가 몇 명의 작품을 들여와 비엔날레라고 부르는 적지 않은 행사들에 미술계의 경계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판을 벌여놨으나 신통치 않은 결과에 실망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존재감이 없어진 행사도 적지 않다. 2000년대 중반 개막해 2010년 문을 닫은 인천여성비엔날레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행사는 3만명 안팎의 관람객을 모으다 국비지원이 끊긴 직후 자취를 감췄다. 운영 미숙과 예산 부족, 입장객 부풀리기 등은 이들 비엔날레의 대표적 부작용이다. 대다수 지자체 수장들이 공적을 쌓기 위해 무리하게 행사를 주도하면서 정부에 터무니없는 국고보조금을 요구하거나 산하 재단이나 조직위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수십만명의 입장객이 들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1명의 유료 입장객이 통합권을 이용해 세 곳의 각기 다른 전시장을 돌아볼 경우 이를 3명의 유료 입장객으로 중복 집계하거나 해수욕장에서 부설 전람회를 열고 해변을 찾는 피서객을 모두 입장객으로 산정하는 촌극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갈수록 떨어지거나 정체되는 비엔날레의 작품 수준은 피로감을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관람객 숫자가 예전만 못한 까닭은 광주나 부산과 같은 대형 종합비엔날레조차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이 좁은 땅에 이렇게 많은 비엔날레가 존재해야 하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개운한 맛이 없다”는 비판은 한창 진행 중인 5대 비엔날레에도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광주비엔날레는 비교적 주제가 명확하게 표현됐으나 아쉬움이 남고, 부산비엔날레는 다소 난해하며 방향성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진일보한 움직임을 찾기 힘들고, 창원조각비엔날레는 2년 전의 이정표가 올해도 그대로 방치돼 있을 만큼 불친절한 전시라고 평가했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새로운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장기적인 계획이 빠져 있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에 위탁해 현재 진행중인 5대 비엔날레에 대한 평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 3월 보고서가 완성되면, 국고 보조금 결정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국내 비엔날레들은 뚜렷한 목적성 없이 관성에 따라 움직인다”면서 “작지만 알찬 미술축제를 이어가는 폴란드 그단스크시의 사례처럼 비엔날레를 도시 마케팅 차원에서 여는 국내 지자체들은 각 지역에 걸맞은 예술행사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네이버] ‘서울대 공대 86학번’ ‘서울대 법대 82학번’의 황금 라인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네이버] ‘서울대 공대 86학번’ ‘서울대 법대 82학번’의 황금 라인

    정보통신(IT)계 최강으로 알려진 네이버 이해진 이사회 의장의 인적 네트워크는 2007년 판사 출신 김상헌 대표를 영입하면서 외연을 한층 넓혔다. 김정주 NXC 넥슨 대표를 비롯해 김범수 카카오 의장, 송재경 XL게임즈 대표 등 IT 업계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이 이 의장과 같은 서울대 공대 86학번이다. 최근 들어 정치·경제·사회·문화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서울대 법대 82학번, 그중에서도 ‘사법시험-서울중앙지법 판사’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김 대표의 인맥이 더해졌다. 이 의장을 비롯해 김정주 대표, 송재경 대표는 같은 컴퓨터공학과(컴공)로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다. 모두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 의장과 김 대표는 단짝으로 카이스트에선 같은 방에서 기숙사 생활(1991년)을 했다. 김 대표는 카이스트 박사과정을 밟던 1994년 넥슨을 창업해 송 대표와 함께 최초의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 우리나라 온라인게임 흥행을 일으켰다. 현재 이 의장과 함께 주식재산만 1조원이 넘는 우리나라 대표 IT 부호다. 김 대표는 1999년 넥슨의 자회사인 엠플레이와 네이버컴의 주식을 맞바꿔 이 의장에게 사업자금을 지원했고, 2012년까지 네이버(NHN) 지분을 1~2% 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같은 해 그 옆방에서는 송 대표와 김상범 넥슨 전 이사가 같은 방을 썼다. 송 대표는 카이스트 재학 시절 학교 내에 화제가 될 만한 개발 사례를 양산해 ‘천재’ 소리를 듣던 우리나라 대표 게임 개발자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86학번인 김 전 이사 역시 넥슨의 초창기 멤버로 메이플스토리, 퀴즈퀴즈 등을 만든 뛰어난 개발자다. 넥슨과 함께 양대 게임업체인 NC소프트 김택진 대표도 이들과 같은 시기에 학교에 다닌 85학번(전자과)이다. 송 대표와 함께 개발해 1998년 내놓은 리니지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에 버금가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자연어 검색을 최초로 개발해 2000년대 네이버를 1위 포털로 만드는 이준호(전 네이버 최고운영책임자)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역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3학번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역시 서울대 공대(산업) 86학번으로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여기에 삼성SDS 입사 동기까지 이 의장과 겹친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네이버와 포털 1위 경쟁을 벌였던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 전 대표는 연세대 컴퓨터 공학과 86학번이지만 이 의장과는 죽마고우다. 둘은 어려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진흥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고 어머니들도 친분이 두텁다. 왜 유독 86학번이 한국 IT 업계를 주도하게 됐을까.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중·고교 시절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 갖게 된 시기적 요인과 대학 때 컴퓨터 관련 동아리가 활발했던 시대적 요인이 있을 것”이라며 “김택진, 김정주, 이해진, 송재경 등은 같은 시기 대학에 다니면서 서로 보고 배우고 자극을 받는 등 시너지 효과를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 86학번이 우리나라 자연계 대표 학맥이라면 법대 82학번은 인문대 대표 학맥인 셈이다. 김상헌 대표와 같은 서울대 법대 82학번은 지난 7월 재·보궐선거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대 접전지인 서울 동작을에서 당선된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가 모두 김 대표와 같은 학과 동기이기 때문이다.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한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도 이들과 과 동기다. 최상목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송언석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등 정부 핵심 관계자들도 김 대표의 네트워크에 들어와 있다. 또 연수원 17기로 대법원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한승 판사도 김 대표와 가깝다. 이처럼 서울대 법대 82학번이 승승장구한 것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1981년 대규모 미달 사태 탓에 1982학년도부터 1·2·3지망제가 도입됐다. ‘운 좋게’ 서울대 법대생이 되는 기회가 차단됐고, 전국의 수재들이 한곳에 모인 것이다. 실제 서울대 법대 82학번 졸업생 360여명 가운데는 법조인이 183명, 대학교수가 33명에 달한다. 이런 전방위 인맥의 도움 때문인지 김 대표 취임 이후 네이버가 세련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적 개선은 물론이고 여론 대응에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네이버가 검색시장을 독점한다’는 비판에 이렇다 할 대응도 못했던 네이버였다. 하지만 최근 모바일 안드로이드(OS) 기반으로 국내에 영향력을 넓혀 가는 구글을 언급하며 “1위 사업자라고 규제하는 것은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반격에 나설 정도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네이버] ‘벤처 DNA’ 7인의 한발 앞선 도전… 검색시장 최강자 일궜다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네이버] ‘벤처 DNA’ 7인의 한발 앞선 도전… 검색시장 최강자 일궜다

    30대 젊은이 7명이 전 직장 퇴직금 3억 5000만원을 모아 만든 벤처 기업 ‘네이버컴’은 15년 만에 연매출 3조 3122억원(지난해 기준), 시가총액 27조 3590억원(이달 29일 기준)의 한국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의 개인 주식재산은 1조 3460억원(지난 8월 재벌닷컴 집계)으로 웬만한 대기업 오너 부럽지 않다. 네이버에 대한 국민 체감은 실적 이상이다. 네이버에는 매일 1600만명이 방문하고 1억개 이상의 검색어가 입력된다. 검색시장의 압도적인 1위(지난해 12월 기준 77.4% 점유율)다. 최근 조성된 모바일 환경에서도 메신저 ‘라인’으로 일본 등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의장은 지금으로 따지면 ‘엄친아’(여러 조건이 좋은 젊은이)다. 삼성생명 임원인 아버지가 있었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에서 살았다. 8학군인 상문고를 졸업(1986년)해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카이스트에서 전산학을 전공했다. 배경은 좋았지만 사업가 기질이 특출했던 건 아니다. 같은 ‘86학번’으로 1994~1995년 일찌감치 창업에 나선 ‘과 동기’ 김정주 NXC 넥슨 대표와 송재경 XL게임즈 대표, ‘동네 친구’ 이재웅 다음 창업자 등이 이 의장보다는 사업가에 더 어울렸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이 의장 자신도 당시를 회상하며 “다재다능하고 자유로운 김정주와 달리 나는 전형적인 대기업 사원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1992년 삼성SDS에 입사해 ‘검색’을 접하면서 그의 인생은 빠르게 전환기를 맞는다. 입사 직후 유니텔(PC통신 서비스) 개발팀에 속해 검색 솔루션 개발업무를 맡았다. 일에 매력을 느낀 그는 1994년 윗사람들을 설득해 한글 검색엔진 개발에 도전했다. 1997년 그의 검색엔진 개발 프로젝트가 삼성SDS 사내벤처 1호로 선정됐고, 같은 해 12월 무료 인터넷 검색 서비스 ‘네이버’를 출시했다. 인터넷 이용자가 급증하고 해외 인터넷 광고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 그는 결국 회사 동료 6명과 함께 1999년 네이버컴을 세운다. 이때 이 의장과 함께 삼성SDS를 박차고 나온 사람은 권혁일(현 해피빈 이사장), 오승환(현 네이버문화재단 이사장), 강석호(현 네이버 이사), 김보경, 최재영, 김희숙 이사다. 설립 직후 합류한 김정호 전 NHN 글로벌 게임사업 총괄까지 포함해 ‘네이버 개국공신 7인’이라고 한다. 현재는 강석호 이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네이버를 떠났다. 1999년은 정부가 벤처 육성을 위해 대규모 규제완화 정책을 펴고 있던 때다. 네이버컴은 설립 5개월 만에 100억원의 투자(한국기술투자)를 유치하고 첫해 9200만원의 영업흑자를 기록하는 등 순항했다. 하지만 이듬해 2000년 3월 전 세계 벤처 버블 붕괴와 함께 국내 대표 벤처기업이었던 새롬기술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하는 등 정보기술(IT) 업계에 위기가 찾아왔다. 이때 이 의장은 네이버 15년 역사상 ‘두 가지 중대 결정’ 중 하나인 한게임과의 합병(다른 하나는 2006년 검색업체 ‘첫눈’ 인수)을 결심한다. 네이버컴은 트래픽(접속자)이 필요했고, 한게임은 사람과 자금이 필요했다. 이 의장은 삼성SDS 입사 동기였던 김범수(현 카카오 의장) 당시 한게임 대표를 만나 일을 성사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한게임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네이버에 유입됐다. 2001년 3월 한게임 유료화까지 성공을 거두면서 수익이 생겼고, 이는 향후 네이버가 성장하는 데 종잣돈으로 활용됐다. 그래도 이 의장에게 있어 핵심 사업은 검색이었다. 2000년 8월 통합검색이, 2002년 인터넷 이용자들끼리 질문과 답변을 하도록 하는 지식인(iN)서비스가 도입되면서 2003년 네이버는 검색어 유입 순위 1위를, 2006년엔 포털 사이트 방문자 수 1위를 차지한다. 검색광고는 네이버 최대 수익원으로 떠오른다. 2001년 10월 키워드와 매칭되는 검색 결과 페이지에 광고주 브랜드를 상위에 노출하는 키워드 광고를, 2004년 7월엔 클릭 수에 따라 광고비를 내는 CPC방식 광고를 도입하면서부터다. 검색광고 등 광고는 올 2분기 기준 매출의 72%를 차지하는 네이버의 주 수익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2002년 10월 코스닥 상장 당시 주당 4만 4000원이던 네이버 주가는 나날이 상승해 2008년 11월 코스피 상장 땐 12만 2500원까지 올랐다. 현재 주가(9월 29일 기준) 83만원에 달한다. 핵심 사업인 검색 역량을 키워 이를 수익원으로 만들어 낸 결과다. 탄탄대로만 있었던 건 아니다. 10여년에 걸친 해외 진출은 번번이 실패했다. 2000년 일본 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중국, 미국 등에 게임, 검색 등을 무기로 진출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네이버에 남아 있던 벤처 DNA가 이런 ‘무모한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평소 이 의장은 실패한 사업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 임직원들에게는 종종 “실패 경험이 곧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보편화로 해외 진출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첫눈’ 출신 개발자들이 2011년 6월 만들어 낸 라인은 일본, 타이완, 태국 등에서 1위 메신저 자리에 올랐다. 올 7월 말 기준 전 세계 라인 가입자 수는 4억 9000만명이다. 페이스북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 10여년 해외 공략 실패에서 얻은 교훈인 ‘현지화’에 초점을 맞춘 결과라는 게 네이버 측 설명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세계 4위 내해(內海)서 메마른 땅으로…‘아랄 해’ 13년새 충격 변화

    세계 4위 내해(內海)서 메마른 땅으로…‘아랄 해’ 13년새 충격 변화

    세계 네 번째 크기의 거대한 내해(內海, 육지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 해협을 통해 더 큰 대양으로 이어지는 바다)에서 이제는 메마른 육지로 변해가는 ‘아랄 해’의 사진이 공개됐다. NASA(미 항공 우주국)는 최근 13년 동안 급격히 물이 말라 메마르고 있는 아랄 해의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NASA가 공개한 위성사진을 보면, 최초 촬영 때인 2001년 8월 15일에 촬영된 아랄 해의 모습과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올해 8월 19일의 모습은 과연 같은 지역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변해있다. 10여년 전만해도 풍부한 수량을 자랑했던 아랄 해가 이제는 거의 육지 수준으로 메말라 버린 것이다. 중앙아시아 중심부인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사이, 카스피 해(海) 동쪽에 위치한 아랄 해는 1960년 당시 면적 6만 8000㎢에 깊이 20∼25m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내해(內海)였지만 이후 1987년에는 면적 4만 1000㎢에 물 수위도 12m 이상 내려가면서 총 면적이 40%나 줄어들어 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래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럭저럭 바다다운 모습을 유지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이렇게 아랄 해가 메마르게 된 주원인은 1960년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정책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관개농지로 바꾸기 위해 아랄 해의 주요 수원(水源)인 시르다리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의 물길을 돌리면서 점점 메마르게 됐다. 아랄 해는 염분과 광물질 함유량이 늘어나 물을 마실 수 없는 상태며 철갑상어, 잉어 등의 어류도 멸종 위기에 놓이면서 연안어업은 거의 폐업상태가 됐다. NASA에 따르면, 이런 아랄 해의 수량변화는 해당 지역의 기후를 여름에는 더욱 덥고 겨울은 매우 추운 극단적인 환경으로 바뀌게 만들었다. 현재 아랄 해의 중앙부분은 거의 완전히 메마른 상태며 북부 지역 일부만 물이 존재하고 있다. 사진=NASA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구소련의 탐욕…13년 새 말라버린 아랄海 (NASA 공개)

    구소련의 탐욕…13년 새 말라버린 아랄海 (NASA 공개)

    세계 네 번째 크기의 거대한 내해(內海, 육지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 해협을 통해 더 큰 대양으로 이어지는 바다)에서 이제는 메마른 육지로 변해가는 ‘아랄 해’의 사진이 공개됐다. NASA(미 항공 우주국)는 최근 13년 동안 급격히 물이 말라 메마르고 있는 아랄 해의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NASA가 공개한 위성사진을 보면, 최초 촬영 때인 2001년 8월 15일에 촬영된 아랄 해의 모습과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올해 8월 19일의 모습은 과연 같은 지역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변해있다. 10여년 전만해도 풍부한 수량을 자랑했던 아랄 해가 이제는 거의 육지 수준으로 메말라 버린 것이다. 중앙아시아 중심부인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사이, 카스피 해(海) 동쪽에 위치한 아랄 해는 1960년 당시 면적 6만 8000㎢에 깊이 20∼25m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내해(內海)였지만 이후 1987년에는 면적 4만 1000㎢에 물 수위도 12m 이상 내려가면서 총 면적이 40%나 줄어들어 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래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럭저럭 바다다운 모습을 유지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이렇게 아랄 해가 메마르게 된 주원인은 1960년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정책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관개농지로 바꾸기 위해 아랄 해의 주요 수원(水源)인 시르다리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의 물길을 돌리면서 점점 메마르게 됐다. 아랄 해는 염분과 광물질 함유량이 늘어나 물을 마실 수 없는 상태며 철갑상어, 잉어 등의 어류도 멸종 위기에 놓이면서 연안어업은 거의 폐업상태가 됐다. NASA에 따르면, 이런 아랄 해의 수량변화는 해당 지역의 기후를 여름에는 더욱 덥고 겨울은 매우 추운 극단적인 환경으로 바뀌게 만들었다. 현재 아랄 해의 중앙부분은 거의 완전히 메마른 상태며 북부 지역 일부만 물이 존재하고 있다. 사진=NASA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인재경영 특집] 숨은 1%의 인재가 경영을 이끈다…글로벌 미래인재가 기업을 살린다

    [인재경영 특집] 숨은 1%의 인재가 경영을 이끈다…글로벌 미래인재가 기업을 살린다

    인재를 발굴하고 활용하는 일이 기업경영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인재의 힘은 단순 노동력은 물론이고 거대 설비나 자본의 힘도 넘어선다. 요즘 ‘인재전쟁’에는 국경도 없다.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모래 속 바늘’을 찾듯이 핵심 인재 확보를 위해 지구를 몇 바퀴씩 돌아야 하는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는다. 시공을 초월하는 디지털 시대에 인재의 역량과 영역은 무한대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인재 1명이 조직과 집단의 명운을 좌우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기업들이 인재를 중시하고 있다는 것은 용어 변천으로도 나타난다. 1970~80년대에는 인사관리라는 용어가 널리 쓰였지만 1990년대엔 인적자원관리, 2000년대 들어선 인적자본관리라는 말도 등장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인사를 핵심 경영가치로 반영해 ‘인재경영’이라는 말이 일반화됐다. 인재경영은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재 배치 ▲자기계발 지원 ▲업적평가 등이 모두 인재경영의 영역이다.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의 인재경영을 조명해 봤다.
  • “개천서 용 나는 게 힘든 요즘 세상… 젊은이들에게 미안하죠”

    “개천서 용 나는 게 힘든 요즘 세상… 젊은이들에게 미안하죠”

    “초고가 밖으로 나가면 전 죽어야 돼요(웃음). 고치고 고치다 보면 ‘소설이 되겠구나’ 하는 지점이 오는데 그때가 행복하죠.” ‘과작(寡作)의 작가’ 이혜경(54)이 20년 만에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2009~2010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연재했던 ‘사금파리’를 4년간 다듬어 낸 ‘저녁이 깊다’(문학과지성사)다. 연재 당시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소설은 ‘온전하게 살고 싶었지만 깨져서 조각조각난 삶’들의 이야기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념과 자본이 소용돌이쳤던 시대를 통과해 낸 또래 세대들의 핍진한 내면 풍경을 공들여 세공했다. ●1960~2000년대 이념·자본의 시대 통과한 또래들 이야기 이야기는 1960년대 지방 소읍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동급생들에게서 갈래갈래 펼쳐진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외삼촌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공부에 몰두하는 전학생 지표, 잡화상집 딸로 넉넉한 환경이지만 그 삶이 못내 불편한 기주, 노름으로 빚만 남긴 아버지 때문에 일찌감치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돌이’의 삶을 택한 병묵, 극장과 연탄공장을 소유한 유지의 외동아들로 첩인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여 엇나가는 형태 등이다. 출신도 기질도 다르지만 이들이 거치는 시대는 일상 공간에까지 폭력이 만연해 있다. 1960년대 초등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 외우기와 혼분식이 강제되고,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선생님들의 사랑도 나뉜다. 1970년대에는 고학생들의 입주과외 열풍이 불어닥치고 1980년대에는 통금, 불심 검문, 검열 등 금기와 규제가 제멋대로 작동한다. 1990년대는 삼풍백화점 붕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이 보통 사람들의 귀한 삶을 덮친다. 이념과 자본이 소용돌이치던 시대를 복원해 내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 “요즘 젊은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였어요. 우리 때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나는 게 가능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기성세대가 된 지금은 타고난 계층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됐어요. 50대는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왜 (젊은 세대들에게 기회를) 못 열어 준 거지,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딱딱하게 만든 걸까’ 하는 의문에 답을 찾고 싶었어요.” 바꿔 말하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글을 추동했다. 작가는 “스마트폰, 인터넷 등의 첨단 기기와 미디어가 생겨나도 우리 사회 바닥에 흐르는 정서는 학창 시절 가장 공포스러웠던 ‘선착순 달리기’ ‘맞뺨치기’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선착순 달리기는 못한 사람을 스스로 비하하게 만드는 역할밖엔 안 해요. 맞뺨치기도 제도나 선생님에 대한 분노를 아랫사람끼리 상대에 대한 분노로 전이시키는 거죠. 우리 사회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구나 하는 절망이 엄습했습니다.” ●“첨단 기기 넘쳐도 ‘맞뺨치기’ 하던 시절 머물러 있는 듯해 절망” 소설의 끝자락, 인생의 저녁을 맞은 인물들의 삶에는 무력감과 비애가 씁쓰레하게 감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살고 싶었던 삶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둔 채 그와 동떨어진 곳에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실패’는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비애는 우리 삶의 뗄 수 없는 본질인 것 같아요. 사는 게 쉬우면 아기가 왜 울면서 태어나겠어요. 부처님도 삶이 고(苦)라고 했죠. 산다는 건 고통이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살 힘을 얻지 못하니 사랑이든 뭐든 작은 씨앗을 전심전력을 다해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파 먹히지 않도록 스스로를 가꿀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거죠.” 작가에게 글쓰기는 사랑의 한 방식이다. 1982년 중편 ‘우리들의 떨켜’로 데뷔하고 단편 두 편을 낸 이후 그는 몇 번이나 소설에서 달아나려 했다. 쓰지 못한 시간이 13년이나 된다. ‘가까운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글을 쓰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장편 1권, 소설집 4권으로 더디게 작품을 내놓지만,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그는 오늘의작가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상복 많은 작가가 됐다. ●“사랑하는 법을 알기 위해 소설 쓰는 것 같아요” 인터뷰 다음날 아침 기자의 메일함에는 작가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새 장편을 쓰기 위해 6개월간 에콰도르로 떠나기 직전 작가는 전날 못다 한 말이 생각났던 거다. “최근 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를 사게 된 이유가 책 뒤표지의 말 때문이었어요.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걸까요.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그걸 알기 위해서일 거예요. 자신을 사랑하고 목숨 있는 다른 존재들을 사랑하는 건 목숨 받아 태어난 이들의 의무이자 권리 아닐까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 톡 경제 콘서트] 만기별 국고채 수익률 보면 경기가

    [한국은행과 함께하는 톡 톡 경제 콘서트] 만기별 국고채 수익률 보면 경기가

    사람들은 모두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특히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산 주식이 오를지, 대출받아서 집을 사고 싶은데 앞으로 금리가 어떻게 될지, 근처에 식당을 차리려는데 잘 될는지 등 이유도 다양하다. 이렇게 미래 경제상황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정부나 중앙은행의 정책 담당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경기를 예측하기 위해 수익률 곡선을 꼭 참고한다. 도대체 수익률 곡선은 무엇일까. 우리가 은행에서 가입하는 정기예금은 만기가 1년이냐 3년이냐에 따라 금리가 다르다. 채권 등 금융상품은 신용도 등 다른 조건이 모두 같더라도 만기에 따라 수익률에 차이가 난다. 이처럼 같은 특성을 지닌 채권, 특히 신용위험이 없는 국채의 만기와 수익률의 관계를 그린 곡선 모양의 그림이 수익률 곡선이다. 이런 수익률 곡선은 통상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으므로 대체로 만기가 길수록(오른쪽으로 갈수록) 금리가 오른다(우상향). 그러나 가끔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더 낮은 경우도 나타나 오른쪽으로 갈수록 내려가기도 한다(우하향). 수익률 곡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장기금리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아야 한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개월 만기 국고채 금리와 왜 다르고 이들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금리결정이론에 따르면 장기금리는 예상되는 미래 단기금리들의 평균치와 기간 프리미엄의 합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첫 번째 부분은 투자자가 장기채권에 투자했을 때의 수익률이 최소한 현재의 단기채권에 투자한 후 미래의 단기채권에 계속 재투자했을 때의 기대수익률과 적어도 같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장기채권에 투자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수익률이 연 3.0%인 1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년 뒤 4.0%, 2년 뒤에는 5.0%로 오른다고 예상된다면 현재의 3년 만기 금리는 적어도 이들의 평균치인 대략 연 4.0% 수준에서 거래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경기가 과열돼 물가가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고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을 경우 장기금리는 미래의 단기금리들이 오르면서 상승한다. 반대로 미래에 경기가 침체되고 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을 때에는 미래의 단기금리들이 떨어지면서 장기금리는 하락한다. 장기금리를 결정하는 두 번째 요인인 기간 프리미엄은 장기채권이 단기채권에 비해 유동성이 낮고 금리변동, 채무불이행 등의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채권의 만기가 길수록 더 높은 대가를 요구하는 데서 발생한다. 즉 기간 프리미엄은 만기 이전에 별안간 돈이 필요해졌을 때 즉시 현금화할 수 없을지도 모를 위험, 현금으로 바꾸더라도 손해를 보고 팔지 모를 위험 등에 대한 보상의 성격으로 보통 플러스(+)값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기간 프리미엄은 유동성 프리미엄 또는 리스크 프리미엄이라고도 부른다. 장기금리는 이 두 요소 간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데 미래에 단기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면 두 요소 모두 플러스값을 가져 장기금리가 현재의 단기금리보다 항상 높게 결정되고 이에 따라 수익률 곡선은 우상향한다. 반면 미래의 단기금리가 하락할 것으로 기대되고 하락폭이 기간 프리미엄 변동을 상쇄할 정도로 크다면 장기금리가 현재의 단기금리보다 낮아져서 수익률 곡선은 우하향한다. 이처럼 수익률 곡선의 기울기, 즉 장단기금리차는 일정 시점에서 기간 프리미엄이 작거나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면 시장의 경기 및 인플레이션 기대, 중앙은행의 정책기조 변화 전망 등 미래 단기금리를 결정하는 요인에 주로 영향을 받아 바뀐다. 이와 같이 장단기금리차는 미래 경제상황 및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잘 반영하고 속보성도 우수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에서는 이를 경기선행지수 산정항목에 포함시키는 등 유용한 정보변수로 쓰고 있다. 특히 장단기금리차는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예측력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 1960년 이후 2000년대 초까지 장단기금리가 역전돼 수익률 곡선이 우하향하는 현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된 사례가 총 10차례 발생했다. 그런데 이 중 7차례에서 장단기금리 역전 이후 약 1년 이내에 실제 경기침체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들어 소위 ‘그린스펀의 수수께끼’ 논란이 생기면서 장단기금리차와 경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즉 2004~06년 중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정책금리를 크게 인상했음에도 장기금리가 상승하지 않자 미래 단기금리에 대한 기대가 수익률 곡선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그간의 인식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많은 연구 결과 이런 현상은 그간 작거나 거의 변동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됐던 기간 프리미엄이 시장의 불확실성, 채권시장의 수급상황 등을 반영해 크게 변동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준의 전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 등 미국 정책당국자들도 ‘그린스펀의 수수께끼’ 현상이 중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외환보유액으로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함에 따라 기간 프리미엄이 크게 감소한 데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데도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크게 하락한 것은 위기가 점차 진정되면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줄어들자 기간 프리미엄이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장단기금리차는 대체로 경기에 선행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미래의 경제상황을 예측하는 유용한 지표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00%에서 3.25%로 1.25% 포인트 인상했으나 같은 기간 장단기금리차는 오히려 축소돼 수익률 곡선이 평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장단기금리차의 경기예측력을 근거로 이런 현상을 경기 둔화 신호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는 연준의 양적완화정책 등의 영향으로 주요국 장기금리가 하락하고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을 바탕으로 외국인의 채권투자자금이 대규모로 들어온 시기였다. 따라서 당시 현상이 경기둔화의 신호보다는 채권 매수세 우위에 의한 기간 프리미엄 축소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수익률 곡선, 즉 장단기금리차의 경기예측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며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장단기금리차가 미래의 경제상황, 중앙은행의 정책방향 등에 대해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많은 정보를 주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기가 어렵다. 평소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 금리 관련 기사를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말고 장기금리에서 단기금리를 빼서 그 격차를 살펴보는 습관을 기른다면 우리 모두 미래를 잘 예측하는 경제전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쏙쏙 경제용어] ■경기선행지수 비교적 가까운 장래의 경기 동향을 예측하는 데 가장 유용한 소비자심리지수, 기계수주액, 자본재 수입액, 건설 수주액, 금융기관 유동성, 장단기금리차 등 10개의 지표를 선정해 이들의 계절 및 불규칙 요인에 의한 변동을 제거하고 진폭을 표준화하는 가공 과정을 거쳐 작성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월 통계청이 작성해 발표한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Greenspan’s Conundrum) 2000년대 중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이름을 딴 것으로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했는데도 시장금리가 그만큼 오르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다. 2004년 6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연준이 정책금리를 3.75% 포인트나 인상했음에도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4.62%에서 4.85%로 0.23% 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는데 그린스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했다.
  • [新 국토기행] 호반의 도시 춘천

    [新 국토기행] 호반의 도시 춘천

    지방도시들이 급변하고 있다.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한다. 우리 모두의 고향인 지방도시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 볼 때이다. 서울·수도권을 지척에 두고도 60년이 넘도록 군사지역, 수도권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개발의 손길에서 밀려났던 강원도 춘천이 변화하고 있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된 낡은 경춘선과 구불구불한 경춘국도로 서울을 오가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동해안의 중심 강릉까지는 무려 5~6시간씩 버스를 타야 했다. 도청 소재지라는 명분이 무색했다. 하지만 2001년 중앙고속도로 개통을 시작으로 2009년 서울~춘천을 잇는 경춘고속도로(61.4㎞)가 뚫리고 2년 뒤 경춘선 복선전철(170㎞)이 개통되면서 도시가 급변하고 있다. 연간 1000만명 이상의 유동인구가 생겨나고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정주 인구도 현재 28만명에서 2020년쯤에는 35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춘천은 1960년대 중반 이후 각종 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북한강과 소양강, 신영강 등 소규모 강이 흐르던 평범한 소도시였다. 3대째 춘천에 살고 있는 토박이 박정호(83) 할아버지는 “1922년에 만들어진 신작로 수준의 경춘국도와 1939년에 개통된 경춘선 단선 열차길이 수도권과의 유일한 소통길이었다”며 “댐들이 만들어지면서 호수가 생겨났고 도시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춘천에 댐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65년이다. 순수 우리 기술만으로 완공한 춘천댐으로 인근의 화천 시가지 입구까지 물이 차올라 오늘의 춘천호가 만들어졌다. 1967년에는 삼악산과 드름산의 암반지형을 이용해 건설된 높이 23m의 의암댐이 만들어지면서 춘천 시가지의 문화와 환경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의암댐이 물을 담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춘천 시가지 서쪽 대부분이 물 속에 잠겨 17㎢에 이르는 도심 속의 의암호가 생겨났다. 호수 안에서 지대가 높았던 곳은 자연스레 섬으로 남아 지금의 위도와 중도, 붕어섬으로 자리 잡았다. 흙을 쌓아 올려 만든 동양 최대 사력댐인 소양강댐은 6년 7개월의 긴 공사 기간을 거쳐 1973년 건설됐다. 높이만 123m에 이르고 총저수량이 29억t에 이르는 댐이다. 이처럼 도시의 상당 부분을 댐과 호수가 차지하면서 주민들의 생활상도 변했다. 외곽의 주민들은 배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해야 했고 농사꾼들은 어부로 생업을 바꿔야 했다. 무엇보다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생겨난 수도권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이면서 도시는 산업단지 등 이렇다 할 개발이 불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춘천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발전 방향은 문화가 접목된 청정산업으로 물꼬를 틀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멀티미디어와 바이오산업, 애니메이션산업이 태동하면서 가능성을 열었다. 2000년대 들어 고속도로가 뚫리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속도가 크게 빨라졌다. 2001년 춘천~대구를 잇는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며 영동고속도로와 연계해 영동권으로의 소통이 원활해지기 시작했다. 낙후된 강원중북부와 경북 북부지역 등 중부내륙지역의 자원과 지역개발이 목적이었지만 강원도 내 지역 간 소통의 물꼬까지 터준 고마운 도로가 됐다. 이전에는 열악한 교통 여건으로 강릉지역에 별도의 출장소를 두고 도청 업무를 보게 할 만큼 불편했다. 본격적인 도시 변화는 2009년 8월 민자도로 경춘고속도로가 뚫리고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이 생겨나면서부터다. 경춘고속도로는 그동안 유일하게 서울과 이어지던 경춘국도를 대신하며 서울 등 수도권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단선으로 이어지던 경춘선 기찻길이 복선전철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이동이 한층 활발해졌다. 전철 개통 이전까지 춘천을 찾는 외지인은 연간 500만명선에 불과했지만 전철시대 이후 불과 4년 만에 춘천을 오가는 유동인구는 1000만명까지 늘었다. 순수 외국 관광객들도 연간 70만명 이상이 찾고 있다. 1939년 사설 철도로 개통된 지 70여년 만에 경춘선은 준고속열차인 ‘IT-청춘’과 일반 전철로 수도권 출퇴근이 가능해졌다. 당연히 기업들도 앞다퉈 춘천으로 몰려들고 있다. 국내 굴지의 닷컴회사인 네이버연구소를 비롯해 KD파워를 중심으로 한 IT전력 생산단지, 더존그룹, 커피생산단지 등이 아예 산업단지를 꾸려 입주했다. 애니메이션산업은 세계적인 히트작 ‘구름빵’을 계기로 국내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지로 자리 잡았다. 주변에 애니메이션 전문 고등학교까지 생겨났다. 문화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종전 강촌을 중심으로 한 북한강 주변의 청춘문화와 미군부대인 캠프페이지 등 주변 군부대의 영향으로 군인들을 위한 문화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도로 여건이 좋아지면서 신레저문화가 붐을 타는 등 다양한 문화가 접목되고 있다. 호수와 주변 산악지역을 이용해 자전거도로가 놓이고 행글라이더와 요트, 카약 등 레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로 변하고 있다. 춘천을 대표하던 마임축제와 인형극제, 애니메이션축제, 닭갈비·막국수축제 등 다양한 지역축제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0년 이전까지는 덜컹대는 경춘선 기차를 타고 통기타를 메고 찾던 강촌시대를 가수 김현철의 낭만적인 ‘춘천 가는 기차’가 대신했다면 2000년 이후에는 전철을 타고 춘천에 생겨난 상상마당에서 펼쳐지는 K팝 공연을 찾아 전국에서 청소년들이 몰려들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춘천 시민들의 소비패턴에서도 나타난다. 편리해진 교통의 영향으로 서울 등 수도권으로 올라가 소비하면서 지역 상권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탓에 지역 의류상가들이 많이 사라졌다. 음식문화도 기존 닭갈비, 막국수 위주에서 외지인들의 입맛에 맛는 다양한 먹거리 문화로 바뀌고 있다. 전동경 시 관광기획계장은 “전철이 개통되면서 춘천의 문화가 서울 등 수도권 중심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면서 “춘천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문화를 살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춘천시는 현재 의암호 내 중도 일대에 레고랜드를 추진하고 있다. 이곳과 연계해서 삼악산과 삼천유원지를 잇는 삼각관광벨트를 조성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겠다는 복안이다. 중도 129만 1000㎡에 들어서게 될 레고랜드에는 테마파크와 호텔, 아웃렛, 워터파크 등 관광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영국 멀린사가 1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모두 5011억원을 들여 만들어진다. 2012년부터 추진 중인 레고랜드는 2017년 3월 개장해 일반 관람객을 맞게 될 예정이다. 레고랜드가 완공되면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이 춘천을 찾을 것으로 점쳐진다. 춘천시민들에게도 1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식자재 공급, 각종 지역 축제가 이어져 해마다 5조원 이상의 생산효과가 기대된다. 케이블카로 레고랜드~삼악산~삼천유원지를 잇는 삼각관광벨트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1280억원을 들여 레고랜드~삼천유원지 간 1.2㎞와 레고랜드~삼악산 간 5.2㎞에 케이블카를 건설해 의암호 일대를 체류형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서면 애니메이션박물관과 로봇체험관 일대는 레고랜드 배후지역으로 2017년까지 ‘미래콘텐츠 체험공원’을 조성해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3D·4D 영상 콘텐츠 체험 스튜디오와 애니·로봇 원리 체험교실, 교육장을 갖춘 체험공원으로 꾸며져 해마다 50만명 이상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준우 시 행정국장은 “교통 여건이 좋아지면서 춘천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옛 미군부대 터인 캠프페이지 일대를 시민의 숲으로 조성하고 낙후된 시청사도 단장해 도시면모를 새롭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현대제철 맞은편 당진 토지 매각…투자자 반응 ‘후끈’

    현대제철 맞은편 당진 토지 매각…투자자 반응 ‘후끈’

    상록수영농조합이 38번 국도변에 인접한 현대제철 맞은편 토지인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와 송산면 유곡리 일대의 토지를 매각한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100km 이내)로 서해안고속도로 송악 IC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이 곳은. 아산국가산업단지(부곡지구, 고대지구), 송산산업단지, 송악산업단지 내에 있다. 현대제철, 동부제철, 동국제강 등이 들어선 만큼 지가상승 요소가 많아 부동산 투자를 하려는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당진시가 지난 2012년 시로 승격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해 도로개발, 항만개발, 서해안복선전철, 산업단지, 신도시조성, 택지개발, 관광단지 등으로 앞으로 무수한 개발사항이 현재 진행형이어서 최고의 투자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05년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와 투기적 거래 및 지가 급등 우려로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던 곳이기도 하다. 또 송악읍과 송산면 일대는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를 중심으로 관련업체 및 외국기업의 입주가 기대되는 곳이다. 인근지역 개발호재로 빠른 지가상승과 매물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대규모 배후 주거단지 및 신도시 지정 예정으로 관심이 집중된 지역이다. 현재 충남 지역은 9년 연속 연 9%대 ‘중국처럼 폭풍 성장’ 중이다. 특히 당진이 시승격이 된 후 인구와 기업체가 늘어나면서 땅값이 상승하고 있다. 20여 년 전 한적한 어촌이던 당진시 송악읍 송산면 일대는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거대한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이 지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엿볼 수 있다. 당진에는 대형 철강업체 6곳이 입주했고, 1년에 공장 100여 개씩 몰리고 있어 골라서 유치할 정도다. 때문에 머지않아 연구•교육 기능까지 갖춘 국내 최대의 종합 철강 클러스트가 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한편 상록수 영농조합은 현지 농민이 소유한 농지를 선별하고 확보해 분양부터 등기까지 법무사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등기 시까지 모든 자금은 법무사에서 보증서를 발행해 신뢰를 할 수 있다. 현재 현대하이스코 앞에 조합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토지 매각금액은 1㎡당 6만원부터이며, 위치별로 차이가 있다. 매각된 토지는 위탁영농으로 매년 친환경 쌀 991㎡당 120kg씩 추수 시점에 공급하게 된다. 매매 상담 시 원하는 평수와 필지가 지정되면 청약금을 법무사 계좌로 입금하고, 현장 답사 후 정식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계약의사가 없으면 청약금은 전액 환불 받을 수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70년대의 강남•압구정, 90년대의 분당•일산, 2000년대의 판교•세종시 이 모두의 공통점이 모두 논, 밭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당진은 신당진 시대에 문을 여는 미래의 투자가치로 손색이 없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또한 “당진의 변모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4년에서 5년을 내다보면 지금이 투자 적기”라며 “곳곳에 공단을 조성하느라 땅이 파헤쳐지고 있고, 지난해 9월 현대제철이 제3고로 가동를 시작해 20만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와 밀려드는 공장들과 인구 유입으로 변화 속도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문의: 1577-0783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한국관광공사가 소개하는 가을 관광주간 명소 6선

    한국관광공사가 소개하는 가을 관광주간 명소 6선

     가을 관광주간이 25일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가을 시즌에 벌이는 가장 큰 이벤트다. 관광주간 실무기관인 관광공사는 관광주간 홈페이지(fall.visitkorea.or.kr)를 별도로 마련하고 ‘테마가 있는 관광공사 추천 여행코스 23선’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족, 연인, 친구 등과 함께 가면 좋을 여행코스 6선을 소개한다.  ●부부가 함께 떠나는 낭만여행  1. 바다와 호수 보며 느린 심호흡(충남 태안~예산, 2박3일)  <1일차 태안> 신진도, 영목항, 안면도자연휴양림, 꽃지해변  <2일차 태안~예산> 천리포수목원, 신두리 해안사구, 꾸지나무골 솔향기길  <3일차 예산> 예당호(느린꼬부랑길), 추사고택, 수덕사  태안에서 예산으로의 여행코스는 바다와 호수, 숲이 동행하는 여정이다. 첫째 날은 태안해안국립공원을 따라 바지락, 소라, 우럭, 농어 등이 가득한 영목항에서 싱싱한 해산물로 배를 채우고, 안면송 자생지인 안면도자연휴양림을 산책한다. 이어 서해안 최고의 일몰을 자랑하는 꽃지해변에서 해넘이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둘째 날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천리포수목원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두리 해안사구를 지나 솔향기길이 조성된 꾸지해변을 산책한다. 마지막 날은 예산의 예당호를 따라 이어진 시골길에서 추억을 만들고, 추사 김정희의 혼이 담긴 추사고택과 덕숭산 자락 천년 고찰인 수덕사에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2. 눈부신 가을, 책 한 권 들고 문학여행 떠나볼까(경북 군위~안동~영양~청송 3박4일)  <1일차 군위> 한밤마을, 인각사, 권정생 선생 생가  <2일차 안동> 안동군자마을, 도산서원, 이육사문학관  <3일차 영양> 주실마을, 감천마을, 두들마을  <4일차 청송> 객주문학관, 주왕산국립공원  경북의 군위, 안동, 영양, 청송에는 문학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 많다. 3박4일의 여행코스는 돌담이 아름다운 군위의 한밤마을에서 시작해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와 ‘몽실언니’ 등 많은 작품을 남긴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생가를 둘러본다.  둘째 날에는 안동군자마을과 퇴계 이황의 학문과 행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도산서원 등에서 옛 향기를 느껴보고, 이어 육사문학관을 찾아 일제강점기의 민족시인인 이육사의 문학세계를 엿본다.  셋째 날에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고향인 영양 주실마을을 찾아 그의 작품과 유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 절필로 항거한 저항시인 오일도의 생가를 지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문열이 태어난 두들마을에서 고향의 향수를 느껴본다. 마지막 날은 청송의 객주문학관과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주왕산국립공원을 둘러본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체험여행  1. 특별한 테마가 가득한 이색 체험여행(충북 음성~괴산~충주 2박3일)  <1일차 음성~괴산> 음성 철박물관, 음성동요마을, 괴산 둔율올갱이마을  <2일차 괴산~충주> 산막이옛길, 괴산한지체험박물관, 충주 하늘재&미륵대원지, 수안보온천  <3일차 충주> 충주조정체험학교, 술박물관 리쿼리움,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충북 음성에서 괴산을 지나 충주로 이어지는 2박3일 코스는 철, 한지, 동요, 조정, 다슬기 등 다양한 이색 테마로 가득하다. 음성의 철박물관에서는 철을 친근하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다. 음성동요마을은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놀이형 체험프로그램을 잘 꾸려놨다. 괴산 둔율올갱이마을에서의 다슬기 잡기 체험도 이색적이다.  둘째 날에는 산과 호수가 절경을 이루는 산막이 옛길을 걷는다. 괴산한지체험박물관에서 한지와 관련된 귀한 유물과 전통한지 뜨기 등의 다채로운 체험도 맛본다. 충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인 하늘재를 만나볼 수 있으며, ‘왕의 온천’ 이라고 불리는 수안보온천에서 여행의 피로도 풀 수 있다.  셋째 날은 충주조정체험학교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조정 체험 후에는 세계술문화박물관인 리쿼리움에서 세계 술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둘러본다. 이어 국내 유일의 고구려 석비인 고구려비가 위치한 충주고구려비전시관에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2. 맛 골목, 어촌, 동굴 등 종합선물세트(강원 강릉~삼척~태백 3박4일)  <1일차 강릉> 초당두부마을, 오죽헌, 안목해변 커피촌  <2일차 삼척> 삼척해양레일바이크, 장호어촌체험마을, 해신당  <3일차 삼척~태백> 새천년해안도로, 대금굴,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4일차 태백> 검룡소, 365세이프타운  강원 강릉에서 삼척을 거쳐 태백에 이르는 3박4일 코스는 초당두부마을에서 시작한다. 초당두부는 바닷물을 간수로 쓰는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지며,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허균·허난설헌 생가터’ 에서는 ‘홍길동전’의 허균과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매년 가을 강릉커피축제가 열리는 안목해변 커피촌에서는 직접 내린 커피도 맛 볼 수 있다.  삼척에서는 해양레일바이크 체험과 장호어촌체험마을의 투명 카누 바다 래프팅으로 삼척의 절경을 감상한다.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내는 해신당의 독특한 풍경도 매력적이다. 셋째 날에는 삼척항이 보이는 새천년해안도로를 따라 경치를 구경하고, 모노레일을 따라 수억 년 전의 자연유산인 대금굴을 탐방하는 이색 체험을 해본다.  여행의 종착지인 태백에서는 태백의 생태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등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자녀들을 위한 안전체험 테마파크인 365세이프 타운은 자연재해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안전교육도 실시한다.  ●친구와 함께 떠나는 가을추억여행  1. 20대의 감성을 채우는 서남 해안 온 더 로드(전남 여수~강진~해남~목포 3박4일)  <1일차 여수> 여수 엑스포해양공원, 해양레일바이크, 진남관, 수산물특화시장, 돌산공원(돌산대교 야경)  <2일차 여수~강진> 오동도, 다산초당, 백련사  <3일차 해남~목포> 땅끝전망대, 대흥사, 두륜산케이블카, 유달산 야경  <4일차 목포> 목포근대역사관, 구 목포 일본영사관, 유달산조각공원  전라도에는 바다를 품은 해안도시 명소들이 많다. 여수에서 강진, 해남을 지나 목포에 이르는 3박4일 코스는 여수엑스포해양공원을 산책하고 해양레일바이크를 즐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위풍당당한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의 객사를 지나 노래로 유명해진 여수 밤바다에서 돌산공원과 돌산대교의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한다.  다음날에는 동백나무로 유명한 오동도에서 아주 특별한 바다를 경험하고,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강진에서는 정약용 선생이 머물렀던 다산초당과 백련사로 이어지는 옛길을 산책한다. 3일차에는 해남으로 이동해 한반도 육지 끝에 위치한 땅끝전망대를 오른다. 모노레일을 타면 전망대 입구까지 쉽게 오를 수 있으며, 다도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두륜산의 천년 고찰인 대흥사와 두륜산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두륜산의 전경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마지막 날에는 목포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유달산과 목포구시가지, 근대역사관을 둘러본다. 아름다운 목포의 야경은 별미다.  2. 전지현 루트에서 멜로 영화의 주인공처럼(부산, 경남 거제~통영 2박3일)  <1일차 부산> 영화의전당, 광안리해수욕장, 광안리 카페거리, 동백섬 등대전망대와 해운대해수욕장,달맞이길  <2일차 부산>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 남포동 영화광장, 자갈치시장, 송도해수욕장, 을숙도  <3일차 거제~통영> 바람의 언덕, 장사도해상공원  부산은 영화의 도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하는 10월에는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유명한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를 돌아보는 특별한 여행은 부산에서 시작해 거제를 지나 통영에 이르는 2박3일 코스다. 영화의 전당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행사가 펼쳐지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 행사와 함께 아름다운 건축물이 볼거리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고운 백사장을 거닐 어 보고, 카페거리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도 즐겨본다. 동백섬 등대전망대에서 해운대해수욕장을 감상하고 소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달맞이길도 산책한다.  다음날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지인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를 둘러본다. 남포동 영화의 광장과 더불어 부산의 명물인 자갈치 시장에서 다양한 해산물도 만나 볼 수 있다. 영화 ‘깡철이’의 주요 촬영지인 송도해변과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인 을숙도 역시 부산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이다.  마지막 날은 거제의 2000년대 초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바람의 언덕에 오른다. 이어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지인 통영 장사도해상공원의 동백숲에 들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한국 기업 비상구 찾아라] (6) 증권

    [한국 기업 비상구 찾아라] (6) 증권

    25일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걷힌 증권거래세는 3조 15억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2조 7546억원 이후 가장 적다. 증권거래세는 2009년과 2010년 3조원을 넘었고 2011년에는 4조 3363억원을 기록했으나 2012년 3조 5013억원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는 3조원에 턱걸이했다. 증권거래세율의 경우 상장주식은 투자액의 0.3%, 비상장주식은 0.5%가 적용된다. 주식이 거래될 때 내는 세금이 1년 사이에 14.3%(4998억원)나 줄어들 정도로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3조 9934억원으로 2011년 6조 8631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거래가 활발하지 않기는 올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올 4∼6월(2분기) 주식거래대금은 331조 2000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398조 6000억원)에 비해 16.9%가 줄어들었다. 거래대금 감소는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 2013년 한 해 동안 증권업계가 거둔 순이익은 2592억원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거둔 순익 1조 3041억원의 6분의1 수준이다. 또 신한금융이 올 2분기, 즉 3개월 동안 번 5776억원의 절반에 그친다. 그렇다 보니 증권업계는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지난 6월 말 현재 증권사 직원은 3만 7723명으로 지난해 6월 말(4만 1687명)과 비교해 1년 사이에 3964명이 줄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3만 9000명)보다 적다. 지점 수는 1565개에서 1343개로 줄었다. 그러나 증권업종의 구조조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이후에도 현대증권에서 400명, HMC투자증권에서 200명이 회사를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다. 문제는 직원 수만 줄었지 회사 수는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증권사는 현재 61개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36개사에서 자본시장을 발전시킨다는 논리하에 인허가 규제가 완화되면서 우후죽순으로 증권사가 생겨 62개까지 늘어났었다. 기존 증권사가 주인이 바뀌면서 이름이 바뀌기도 여러 번이라 전신이 어느 증권사인지는 증권업 종사자조차 헷갈린다. 지난해 애플투자증권이 10년 만에 자진 청산을 신청해 61개로 줄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나 주식시장 규모에 비춰 증권사 수는 30~40개면 충분하다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증권사는 많지만 업무 영역은 비슷비슷하다. 증권사의 크기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증권사가 주식 매매나 펀드 판매 수수료로 연명하는 수익 모델은 지난 10년간 큰 변화가 없다. 채권 발행이나 상장(IPO) 등의 이벤트가 가끔 있지만 대부분 계열사 증권사에서 담당하는 구조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12년 기준 증권사 규모별 수익 구조 현황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자본 기준 1~10위인 중대형 증권사의 수익 구조는 위탁 매매(52%), 자기 매매(24%), 상품 판매(12%), 투자 은행(8%) 순이다. 중소형 증권사도 위탁 매매(45%), 자기 매매(36%), 투자 은행(10%), 상품 판매(8%) 순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성과가 좋은 편도 아니다. 국내 증권사의 1인당 당기순익은 1100만원으로 일본계 투자은행(IB)인 노무라(4300만원)의 4분의1 수준이다. 탁월한 위험(리스크) 관리로 많은 수익을 거둔다고 평가받는 세계적 IB인 골드만삭스(2억 5800만원)에 견줘 보면 23분의1에 그친다. 자본력 자체가 이들과 비교해서 작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에서 국내 1위인 KDB대우증권의 자기자본은 지난 6월 말 기준 4조 207억원이다. 하지만 골드만삭스 757억 달러(78조 6900억원), 노무라 621억 달러(64조 5530억원)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수준이다. 리스크 관리에 서툰 실력은 해외 진출 성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증권사가 진출한 14개 지역 중에서 이익을 내는 곳은 홍콩,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3곳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반 한때 호기롭게 나갔던 해외에서 철수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신뢰 상실이다. 증권은 금융업인지라 투자자의 신뢰가 기본이다. 그러나 동양그룹이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다른 계열사의 회사채를 판매해 투자자들에게 1조원이 넘는 피해를 안겼다. 고객의 이익을 무시하고 회사를 살리려 한 행태로, 증권업 전체에 투자자 신뢰 하락이라는 치명적인 오명을 남겼다. 미래 전망도 밝지 않다. 고성장 시대와 달리 중간 수준의 성장, 때로는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데 인구구조마저 고령화되고 있다. 만 14세 이하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을 뜻하는 고령화지수는 현재 12%로 고령화사회를 지나 고령사회로 진행 중이다. 고령화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빠른 편이라 그 영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인구가 고령화될수록 위험자산인 주식 투자에서 멀어진다는 경험치만 나와 있다. 또 직접 투자보다는 펀드 등 간접 투자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더 낮춰 줘야 하는 기관투자가가 더 중요한 고객이 된다는 뜻이다. 수수료가 아닌 자산 운용 서비스의 차별화나 금융투자상품의 수익성 개선이 더욱 중요해진 시기가 도래함을 의미한다. 증권사의 변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詩 쓰기는 무력하지만 폭력시대에 詩는 희망”

    “詩 쓰기는 무력하지만 폭력시대에 詩는 희망”

    “시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은 모국어를 벗어나기 쉽지 않은 문학 장르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내 몸과 같은 언어와 후천적으로 익힌 외국어 사이의 충돌을 시로 만들어 내시는지 궁금했어요.”(김행숙 시인) “시인으로서 제 영혼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모국어죠. 그런데 문학상을 타고 원고료를 받다 보니 계속 쓰게 되더군요(웃음). 처음엔 재미로 했는데 이젠 한자를 뿌리로 서로 다른 두 언어의 차이를 즐기며 시 쓰는 매력에 푹 빠졌어요.”(톈위안 시인) 중국 시인으로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동시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이색적인 이력을 밟고 있는 톈위안(49)과 2000년대 ‘미래파’의 대표 기수로 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김행숙(44) 시인. 지난 23일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2014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만난 한·중 양국의 시인은 만나자마자 서로의 문학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쏟아냈다. 두 시인의 만남은 2009년 톈위안이 일본에서 펴낸 시집 ‘돌의 기억’을 읽고 매료된 김 시인의 러브콜로 성사됐다. 김 시인은 모국어인 중국어와 외국어인 일본어를 오가며 시를 쓰는 톈위안을 “언어의 충돌을 시로 빚어내는 만큼 ‘에로스와 꿈’을 주제로 하는 이번 축제에 가장 어울리는 작가”라고 했다. 톈위안은 김 시인을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가 되는 분”이라고 화답했다. 한·중·일이라는 동일 문화권을 공유하고 있는 두 작가의 시는 질감은 달라도 같은 주제 의식으로 교집합을 이룬다. 최근 펴낸 ‘에코의 초상’까지 지금까지 출간한 네 권의 시집을 돌이켜 보면 “이 말썽 많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줄곧 써온 것 같다”는 김 시인의 말에 톈은 “인간성과 세계의 관계, 삶의 근원, 죽음 등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찾아오는 이 주제들은 내 시의 질문이기도 하다”며 공감했다. 두 시인은 시 쓰기를 ‘삶의 운동, 사랑의 행위’(김행숙)이자 ‘정신적인 중독’(톈)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오롯이 시에 매달려 왔다. 하지만 요즘은 시를 외면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문에 더 열광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시와 문학의 역할에 회의가 엄습하지는 않을까. “요즘 ‘우리는 말로 너무 많이 타인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딱딱한 돌멩이로 굴러다니는 말들이 불러일으키는 행위들이 폭력적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요. 이런 폭력적인 시대에 시란, 문학이란, 어쩌면 가장 무력하고 무용한 방식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유용함과 유력함만을 앞세우는 현실의 논리와 세력을 ‘느린 소통’으로 이해하고 가다듬는 희망이지 않을까요.” 귀 기울여 듣던 톈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적으로 현대시 독자가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시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도와주거나 전쟁을 멈추지는 못하죠. 하지만 시는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지 않나 싶어요. 시는 인스턴트 라면처럼 한 번 먹고 버리는 일회성 소비품이 아니라 이백, 도연명의 시처럼 현재의 독자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읽히고 영향을 미치는 불변성을 갖죠. 때문에 시인은 시간과의 싸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해요.” 톈은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등 4개국 시인들이 모여 상대국의 작품을 자신의 나라 언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모임인 ‘동아시아현대시의 현재’에서 중국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아시아 작가의 작품을 고루 접하며 문학 교류에 앞장서는 그답게 한국 시에 대한 관심도 높다. “정신과 육체, 감성과 이성의 균형이 잘 잡힌 고은 시인과 정치색이 강한 김지하 시인의 작품을 인상 깊게 읽었다”는 그는 “최근 중국에서도 서정성이 풍부한 한국 현대시를 높게 평가하고 출간하려는 흐름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두 시인은 세계 문단에서는 아직도 ‘주변부’로 치부되는 아시아 문학에 대한 고민과 기대도 함께 나눴다. “이제 곧 노벨문학상 시즌이 다가오는데 유럽에서 생긴 상이라 아시아 문학이 주목받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 있어요. 하지만 최근 다양한 나라의 시를 읽어보면 아시아 문학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작품이 지닌 힘과 감성 등에 있어서 결코 뒤처지지 않아요. 활발한 교류, 번역 등이 전제된다면 아시아 시가 주류가 되는 시기가 곧 올 겁니다.”(톈) “언어가 자신의 언어 공동체를 벗어나 다른 언어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우리 문학에도, 작가 개인에게도 도전이에요. 영미권 중심이던 세계 문단이 최근 남미권 문학에서 큰 에너지와 영감을 수혈받고 있듯 아시아 문학이 지닌 독특한 특질이 세계 문학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거라 저도 기대해요.”(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행성인듯 행성아닌 ‘명왕성’ 다시 지위 찾을까?

    행성인듯 행성아닌 ‘명왕성’ 다시 지위 찾을까?

    지난 2006년 행성의 지위를 잃고 ‘아웃사이더’가 된 비운의 천체가 있다. 바로 태양계 끝자락에 위치한 명왕성이다. 현재 명왕성의 공식이름은 ‘134340 플루토’. 1930년 처음 발견된 이후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었던 명왕성은 지난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의 행성 분류 정의가 바뀌면서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격하됐다.   최근 미국 천문학계에서 명왕성의 지위를 다시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관심을 끌고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에서 일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 이색적인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행성이란 무엇인가?’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바로 명왕성이었다. 토론 참가자로 나선 전문가들은 하버드대의 오웬 깅그리치 천문학 명예교수와 디미타 사세로브 교수, 그리고 국제천문연맹 산하 소행성센터의 가레스 윌리암스 박사로 그 면면도 쟁쟁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하버드대 교수들이었다. 깅그리치 교수는 “행성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시점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면서 “명왕성은 역사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이미 태양계의 한 행성”이라고 주장했다.   사세로브 교수도 “명왕성은 별과 별의 잔유물로 형성된 작은 구체 덩어리로 볼 수 있다”며 역시 명왕성의 행성 복귀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윌리암스 박사는 이같은 주장을 단칼에 반박했다. 윌리암스 박사는 “명왕성은 다른 행성들과 달리 궤도면과 황도면의 경사각이 17도나 기울어져 있으며 그 지역의 지배적인 천체도 아니다” 면서 “만약 명왕성이 행성이 된다면 태양계 행성은 향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전문가들 논쟁의 배경에는 사실 행성 정의에 대한 이견에 있다. 지난 2006년 국제천문연맹은 행성의 정의를 크게 3가지 조건으로 제시했다. 첫째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둘째 충분한 질량과 중력을 가지고 구(sphere·球) 형태를 유지해야 하며 셋째 그 지역의 가장 지배적인 천체여야 한다. 문제는 2000년대 들어 명왕성 인근에서 카론 등 새로운 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명왕성의 위성으로 생각됐던 카론에 명왕성이 휘둘린다는(맞돌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명왕성이 행성이 되면 인근 카론, 제나, 케레스 등도 모두 행성이 돼 태양계의 행성 숫자는 최대 12개로 늘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이에 유럽 천문학자들을 중심으로 행성의 정의를 위와같은 3가지 조건으로 정리하며 투표를 통해 명왕성 행성 퇴출을 결정했다. 그러나 명왕성에 탐사선까지 보낸 미국 천문학자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으며 이후 툭하면 명왕성의 복권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마친 후 벌어진 찬반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청중들은 명왕성의 행성 지위 복원에 찬성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AG 하이라이트] 양학선, 부상을 넘어라

    [AG 하이라이트] 양학선, 부상을 넘어라

    스포츠에서는 한 하늘 아래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다. ‘도마의 신’ 자리를 놓고 겨루는 양학선(22·한국체대)과 리세광(29·북한)이 25일 인천아시안게임 기계체조 도마 결승에서 사실상 처음인 숙명의 맞대결을 펼친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기계체조 도마 금메달을 딴 리세광은 2000년대 중·후반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2007년 세계선수권 동메달에 이어 이듬해 아시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어 ‘북한의 체조영웅’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그러나 리세광은 2010년을 기점으로 국제무대에 서지 못했다. 북한이 그해 열린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간판스타 홍은정의 나이를 조작한 사실이 발각돼 2년간 국제대회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기 때문. 리세광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양학선이 등장했다. 당시 18세였던 양학선은 광저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양학선’으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따고 세계적 스타로 우뚝 섰다. 지난해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마저 접수한 양학선은 별명 그대로 ‘도마의 신’이었다. 리세광은 2012년 징계가 풀려 복귀했지만 양학선과의 맞대결은 번번이 무산됐다. 그해 아시아선수권에서 리세광은 도마는 물론 링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등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였으나 양학선이 출전하지 않았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는 둘 모두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리세광의 예선 탈락으로 진검 승부가 무산됐다. 최고 난도(난도 6.4)의 기술을 두 개나 보유한 둘에게도 걸림돌이 있다. 리세광은 서른에 가까운 나이가 부담이고, 양학선은 최근 당한 햄스트링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한편 둘은 24일 마루 종목 결승에 출전했으나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리세광은 14.533점으로 8명의 선수 중 6위에 그쳤고, 양학선은 14.100점으로 7위에 머물렀다. 저우카이(중국·15.533점)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양학선은 뒤이어 링 결승에도 출전했으나 14.700점으로 역시 7위에 그쳤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美법원 “아랍은행, 테러 피해자에 보상”

    테러단체에 자금이체 서비스를 제공한 은행도 테러 피해자에게 보상할 책임이 있다는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22일(현지시간) 요르단에 기반을 둔 아랍은행이 2000년대 초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저지른 24건의 테러 피해자 300명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평결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미국인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은행이 하마스 대원들의 계좌를 발견하고도 이를 없애지 않았으며, 테러 행위의 대가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원이나 그 가족의 계좌로 자금을 이체했다며 2004년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연방법원이 테러 관련 단체의 업무를 처리한 금융기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랍은행 측은 일상적인 은행의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이고 원고가 증거로 제시한 대원들이 대부분 당시 미국 정부에 테러리스트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아랍은행이 의도적으로 하마스의 금융 업무를 지원했고, 이것이 테러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증거로 제출된 은행 기록 중에는 하마스의 창시자인 아메드 야신의 명의로 된 계좌도 있었다.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 숨진 대원들에게 5300달러(약 550만원)씩 이체된 기록도 있었다. 이번 판결은 중국은행, 프랑스 크레디트 리요네 등을 상대로 진행 중인 비슷한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이슬람국가(IS) 응징하는 ‘저승사자’ 미군 A-10C 공격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이슬람국가(IS) 응징하는 ‘저승사자’ 미군 A-10C 공격기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일대를 휩쓸며 닥치는 대로 살육과 약탈을 일삼아 온 광기어린 테러 집단 IS(Islamic State)를 응징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습이 시작됐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에서 발진한 F/A-18E/F 슈퍼 호넷을 필두로 F-16과 F-15, B-1B 폭격기는 물론 인류 역사상 최강의 전투기라 평가되는 F-22A ‘랩터’를 공습에 투입했다. 50여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동원된 이번 공습에서 미국은 IS와 알 카에다(Al-Queada) 계열 무장조직 호라산 그룹(Khorasan group)의 시설을 파괴했다. 공습을 당한 시설들은 철저하게 파괴됐고, 수 십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 “이번 공습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 것처럼 미국은 IS가 F-22A나 B-1B보다 더 두려워할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중장갑 공격기 A-10C 워호그(warthog)였다. 흑멧돼지가 중동으로 날아간 이유 IS는 국가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국가보다는 비교적 조직화가 잘 되어있는 대규모 무장 집단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군으로부터 노획한 전차와 항공기 등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된 관청이나 지휘시설 같은 것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공습했을 때 이라크와 탈레반은 정규군이 있었고, 각지에 정규군이 주둔하고 있는 기지와 각종 병참 시설들이 건설되어 있었다. 정규군이었던 이라크군과 탈레반군은 이러한 시설이 파괴되면 작전에 상당한 지장을 받았지만, IS는 다르다. IS는 정규군보다는 ‘마적단’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에 모든 시설은 임시 시설이다. 기존의 학교나 관공서, 아파트를 빼앗아 그곳에 병력이 머물면 막사가 되는 것이고, 탄약과 물자를 보관해 놓으면 병참 시설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중앙 지도부에서 무기를 구매해 전투부대에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통해 약탈하고 노획해 무기와 탄약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이라크군이나 탈레반군처럼 제대로 된 병참 시설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군과 동맹국들이 수십여 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정밀 유도 폭탄과 미사일로 표적을 공습한다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 어차피 빼앗은 건물이고, 물자와 인력은 점령지에서 약탈하고 징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B-1B와 F-22와 같은 최첨단 전력은 이러한 테러 조직을 상대하는데 적절하지 않다. 미국도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첩보활동으로 획득한 IS 지도부 은거지를 초정밀 폭격으로 파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IS 격퇴의 핵심은 소위 ‘테크니컬(Technical)’, 즉 무장 트럭을 타고 떼 지어 몰려다니는 IS 병력을 제거하는데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지상에 전투부대를 보내야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장기전의 늪에 빠졌던 미국이 또 다시 자충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의외의 카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A-10C 공격기의 중동 배치였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국방부는 인디애나주 주방위공군 제122전투비행단 예하 제163비행대의 A-10C 공격기 12대와 병력 300여 명을 다음 달 초까지 중동 지역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이번 조치가 IS 공습과는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현지 언론은 이번 A-10C 중동 배치의 시기가 미묘하다고 꼬집으면서 이 공격기가 이라크 정부군을 지원해 IS를 격퇴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IS와 같은 ‘마적단’에게 A-10C는 과거 냉전시절 불렸던 별명 그대로 ‘죽음의 십자가’ 그 자체다. A-10C의 주무장인 GAU-8 30mm 기관포는 현존하는 거의 대부분의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할 수 있는 포탄을 분당 4,200발의 속도로 쏟아 부을 수 있다. 이밖에도 JDAM과 헬파이어 미사일은 물론 각종 정밀유도무기를 최대 7톤까지 탑재한다. 막강한 화력만큼이나 방어력도 대단히 강력하다. A-10C는 IS가 상용 트럭에 얹어 운용하는 23mm 기관포로 쉽게 격추시킬 수 없다. 주요부위가 티타늄 장갑재로 되어 있고, 피격되어 유압 장치가 파괴되더라도 기체 조종이 가능하도록 조종간과 조종면 사이에 강철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다. 이라크 자유 작전 때 23mm 기관포는 물론 57mm 기관포탄 4발에 직격 당하고도 추락하지 않고 기지로 무사 귀환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중무장・중장갑 공격기가 중동 지역에 배치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지상군 대용’이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할 수 없으니 지상전투는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자치정부 민병대가 대신하되, 이들의 실력이 못미더우니 강력한 공격기를 지원해 이라크군의 실력 부족을 화력 지원으로 커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기사회생할까? 사실, 이번 중동 배치와 IS 격퇴 전쟁 참전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A-10C 자신이다. 퇴역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또 한 번 그 가치를 증명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A-10은 1970년대 구소련의 대규모 기갑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등장한 대전차 공격기였으나, 냉전 붕괴 직후 더 이상 구소련과 동구권의 기갑부대를 상대할 일이 없어지자 조기 퇴역이 추진됐으나 1991년 걸프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2000년대 초 또 다시 퇴역론이 대두되었으나,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그 존재 가치를 또 한 번 입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역할이 끝나자 미 공군은 F-35A 도입을 위해 A-10 퇴역을 추진하고 나섰다. A-10 프로그램을 종료해 여기서 아낀 돈으로 F-35A 프로그램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의회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 하원은 2014년 국방예산안을 심의하면서 미 공군이 A-10 퇴역을 위해 단 한 푼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다. A-10만큼 근접항공지원에 효과적인 기체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미 공군은 Charles Davis 중장을 의회에 보내 “이제 더 이상 티타늄으로 감싼 기체를 저속으로 비행시킬 필요는 없다”면서 “이미 F-16이나 B-52, B-1B가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예산안은 미 하원의 결정대로 통과되어 A-10C는 내년도 예산안이 집행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이번에 A-10이 IS를 상대로 얼마나 위력을 떨칠 것이며, 그 유효성을 인정받아 또다시 수명을 연장 받을 수 있을지 여부에 과심이 몰리고 있다. A-10C가 IS를 상대로 펼치는 전쟁에서 또 한 번 그 진가를 입증 받는다면 적어도 2020년대 중반까지는 장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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