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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래판 폭격기서 씨름 부활 전도사로… 매일 11시11분 ‘우승 알람’이 울린다

    모래판 폭격기서 씨름 부활 전도사로… 매일 11시11분 ‘우승 알람’이 울린다

    김기태(41) 영암군 민속씨름단 감독은 15년 현역 시절 동안 한라장사 10회를 포함해 올스타장사 1회, 백호장사 1회 타이틀을 차지하며 모래판을 호령한 스타다. 그보다 많이 한라장사를 차지한 건 ‘탱크’ 김용대(45), ‘잡초’ 모제욱(47) 정도다. 2000년대 한라급 최강이었던 김용대를 잡으라는 의미에서 데뷔 초 ‘폭격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실제 역대 전적에서 김용대를 유일하게 앞섰다. 그의 안다리는 천하무적이었다. 걸리면 99% 상대를 모래판에 눕혔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김기태 존’이 있었다. 안다리로 상대를 쓰러뜨릴 때마다 기금을 적립해 장학금 등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라이벌’ 김용대와 적수에서 한팀으로 감독 5년차에 접어드는 그는 지도자로 34번 장사를 배출했다. 3차례 단체전 우승을 일구기도 했다. 특히 올해 설날 대회에서는 태백, 금강, 한라, 백두급 중 금강급을 제외한 세 체급 석권을 지휘했다. 민속씨름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이렇듯 화려한 씨름 인생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두 차례 큰 부상에 두 번의 팀 해체까지 굴곡이 많았다. 그러나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모래판을 오뚝이처럼 일으켜 세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18일 전남 영암에서 만난 김 감독은 “파란만장한 씨름 인생을 걸어왔다”면서도 “그래도 사랑하는 씨름과 지금까지 함께할 수 있어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씨름을 시작한 그는 5관왕에 올랐던 고교 3학년 때 일반, 대학 선수가 총출동하는 등 프로씨름 입문 테스트 대회 격이었던 전국선수권에서 고교생 신분으로 정상에 서며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대학 최강팀인 인하대에 입학하자마자 무릎 부상을 당하며 시련을 겪었다. 부상을 극복하고 대학 무대를 평정한 뒤 2002년 LG투자증권 황소씨름단 유니폼을 입었다. 그해 신인상을 타기도 했으나 다시 무릎 부상으로 고생해야 했다. 데뷔 1년 남짓 만인 2003년 4월 진안 대회에서의 첫 우승은 부상을 이겨 내고 쟁취한 성과다. 이듬해 5월 고흥 대회에서 김용대를 꺾고 다시 정상을 밟으며 ‘김기태 시대’를 알렸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말 황소씨름단이 전격 해체된 것이다. 데모도 하고 단식도 해봤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혈기왕성하던 때라 어느 팀에라도 가지 못하겠느냐는 생각을 했어요. 구미시 체육회에 새 둥지를 틀었는데 사업 등 딴생각이 많다 보니 최고의 활약을 하지 못했죠. 이길 수 있는 선수에게도 자꾸 져서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고 믿고 불러준 분들에게 너무 죄송했습니다.”●이적·연봉 삭감… 47개월 만에 다시 정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당대 최강이던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씨름단으로 2007년 전격 이적하면서다. 라이벌 김용대가 소속된 곳이기도 했다. 험지에 뛰어들어 살아남는다면 ‘제2의 씨름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연봉 삭감도 감내했다. 그리고 2008년 6월 문경 대회에서 무려 47개월 만에 다시 정상을 밟으며 부활을 알렸다. 2011년에는 설날, 단오, 추석 등 명절 대회를 싹쓸이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김 감독은 씨름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08년 12월 경남 남해 천하장사 대회를 꼽았다. 몸무게 104㎏이던 그는 자신보다 50㎏ 안팎이 더 나가는 백두급 거구들을 안다리로 줄줄이 무너뜨리며 ‘제2의 이만기’ 열풍을 일으켰다. 당시 백두급은 지금과 달리 체중 제한이 없었다. 결승에서 170㎏의 윤정수(현재 영암군 민속씨름단 코치)를 만나 두 번이나 눕혔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이만기 선배처럼 한라급으로 천하장사에 오르는 게 제 꿈이었기 때문에 늘 도전하고 싸웠어요. 그랬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은 씨름 인생을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시련은 2016년 여름에 또 찾아왔다. 마지막 프로팀인 코끼리씨름단이 해단 결정을 내렸다. 고참으로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씨름단을 인수할 곳을 찾아 직접 뛰어다닌 끝에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 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보다는 이 팀을 한 번 움직여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 기업과는 양해각서(MOU) 체결 직전까지 갔다가 좌절을 맛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코끼리씨름단의 연고지나 다름없던 영암의 전동평 군수님을 만나 길을 찾게 됐죠. 제가 씨름 비전을 브리핑하기도 했었는데 운동선수 출신이 잘하면 얼마나 잘했겠어요, 나중에 들으니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감독으로 제3 전성기… “씨름은 동료애” 어렵게 일궈 낸 영암군 민속씨름단은 상한가를 치고 있다. 2017년부터 초창기에는 코끼리씨름단의 맥을 이은 이슬기, 윤정수, 최정만 등이 중심을 잡아준 데 이어 장성우, 오창록, 최성환, 이민호, 허선행 등 새 피가 수혈되며 세대교체에 성공한 게 밑거름이 됐다. “선수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게 제 지도 철학입니다. 늘 인성과 진실함, 노력 삼박자를 갖추고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강조하는 건 동료애입니다. 농구에서 식스맨이 좋아야 강한 팀이 되는 것처럼 씨름도 마찬가지예요. 에이스도 좋은 파트너가 있어야 오래갈 수 있고 에이스가 있어야 밑에 있는 선수들도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죠.” 김 감독은 영암에서 씨름이 야구, 축구 못지않은 인기 스포츠라고 자랑했다. 서포터스가 5700여명에 달한다. 영암군 전체 인구가 5만 5000명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군민 10명 중 1명은 씨름 팬인 셈이다. 창단 첫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꼬리표도 조례 개정을 통해 떼어내고 전폭적인 지원이이뤄지고 있다. 정규 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을 갖춘 전용 훈련장이 내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해 10월부터는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직은 어색한 예능감을 발휘해 보려 애쓰고 있다. 씨름의 인기를 되찾으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해보자는 마음에서다. 요즘은 전 체급 석권을 욕심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매일 오전과 오후 11시 11분에 휴대전화 알람을 맞춰 놓고 있다며 웃었다. 한 팀만 잘하면 보는 재미가 줄어들지 않겠냐고 했더니 “한 번쯤 그런 일도 필요하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은 팀에서 선수로 뛰었고 또 좋은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인 목표를 이미 이뤘어요. 앞으로 남은 목표가 있다면 우리 씨름이 다시 전성기를 되찾는 드라마를 만드는 거예요. 영암군 민속씨름단이 그 주인공이 되고 제가 그 팀을 이끄는 수장이면 그보다 더 좋은 꿈이 어디 있겠습니까.”글 사진 영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속이 든든, 힘이 불끈… 한 뚝배기 하실래요?

    속이 든든, 힘이 불끈… 한 뚝배기 하실래요?

    16시간 푹 고아낸 육수쫄깃한 수육 일품 콜라겐아미노산 풍부… 기력보강에 탁월 골퍼들 입소문 타고 국밥 거리 문전성시 지금은 코로나 직격탄… 손님 절반으로 뚝 ‘소머리국밥’은 한우 사골을 푹 고아 만든 국물에 쫄깃한 소머리고기를 넣어 만든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속풀이 해장국인 ‘효종갱’과 함께 경기 광주 지역의 대표 음식이다. 광주는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지나던 길목으로 광주에서 묵을 때 지친 선비들이 보양식으로 먹던 음식으로 전해진다. 설렁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음식이 소머리국밥이다. 소고기와 뼈를 함께 넣고 끓여 사골국물을 내는 것은 같다. 이 사골국물에 양지머리를 넣으면 설렁탕, 소머리고기를 넣으면 소머리국밥이다. 곤지암에 소머리국밥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다. 원조는 최미자 할머니로 알려졌다. 최 할머니는 1980년대 초 지금의 곤지암고등학교 인근에서 연탄불에 끓인 소머리국밥을 팔았다. 인근에 중부컨트리클럽과 그린힐CC 등 골프장이 대거 들어서면서 골퍼들에게 입소문이 나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1987년에는 중부고속도로 곤지암나들목이 생기면서 손님이 더욱 많아졌다. 이후 인근에 생긴 스키장 손님이 더해지면서 20여곳의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됐다. 주말이면 골퍼들이 몰려 30~40m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관광버스가 단체 손님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곤지암에는 한때 20곳이 넘는 소머리국밥집이 있었으며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는 등 유명세를 탔었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광우병 파동 등으로 쇠퇴해 현재는 골목집소머리국밥, 구일가든, 동서소머리국밥, 본가소머리국밥, 배연정소머리국밥 1·2관, 최미자소머리국밥 등 7곳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선비들의 보양식서 서민들의 보양식으로 지난 18일 점심시간인 낮 12시에 찾아간 곤지암소머리국밥 거리는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더욱 썰렁해졌다. 현재 남아 있는 7곳 가운데 들어간 골목집소머리국밥도 손님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노부부 두 쌍과 인근의 사무실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이 몇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식사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 문을 연 골목집소머리국밥은 박영자(71)씨가 30여년 운영하다가 2009년부터 아들인 전태근(43)씨가 합류해 맛을 전수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한숨을 짓는 전 대표는 “2000년대 초 소머리국밥이 한창 인기가 있을 땐 하루에 500~600명이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건물을 뺑 둘러 줄을 섰다”며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진정돼 곤지암 소머리국밥의 명성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0년 역사의 곤지암 소머리국밥은 푹 고아 낸 진한 육수와 야들야글하고 쫄깃한 수육맛이 일품이다. 우선 소머리는 한우를 골라야 잡내가 없다고 한다. 전 대표는 “소머리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한 차례 삶은 후 찬물에 다시 씻은 뒤 지방을 제거하고 숙성 과정을 거친다”면서 “소머리뼈와 사골을 16시간 이상 고아 만든 육수에 소머리고기를 넣고 3~4시간 삶으면 쫄깃쫄깃한 수육이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소머리에는 잔털이 많이 있는데 이것을 깨끗이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우설(소혀)은 냄새가 나므로 1차 데친 후 따로 삶아 하얀 껍질을 벗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형 솥에서 소머리뼈와 사골을 밤새 끓일 땐 수시로 기름을 떠내고 물을 보충해 줘야 해서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예부터 소머리국밥은 뼈와 위장에 좋고 기운 보강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보양식으로 알려져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음식이다. 소머리와 사골을 푹 끓여 낸 고단백 음식이다. 쫀득쫀득한 살들이 많은데 이곳에 콜라겐과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푹 고아서 우려낸 만큼 영양이 풍부한 아미노산이 흡수되기 쉽게 국물에 우러나 있다. 철분,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해 면역력을 높여 주고 힘든 육체 운동을 한 뒤 먹으면 좋다. 기력을 회복시켜 주는 음식인 것이다. 곤지암 인근의 직장인 A(56)씨는 “진한 사골국물에 쫀득쫀득한 머리고기가 질리지 않아 점심시간에 자주 온다”며 “퇴근할 때는 수험생 아들의 건강식으로 자주 포장을 해 간다”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에서 왔다는 B(76)씨 부부는 “국물이 구수하고 고기가 부드러워 기력이 달리는 노인들의 보양식으로 그만”이라며 “친구들과 와서 머리고기로 반주도 들곤 하는 30년 단골”이라고 말했다.●광주시, 소머리국밥 거리 되살리기 나서 광주시가 곤지암 소머리국밥 거리 명성 되살리기에 나섰다. 광주시는 음식 문화거리 지도와 종합 안내도를 제작해 곤지암을 찾는 방문객들이 소머리국밥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식당에는 포장용기 등 위생용품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경강선 곤지암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점을 알리기 위해 경강선 전철 내 광고판을 설치하고 시 홈페이지(www.gjcity.go.kr)와 블로그 등을 통해서도 집중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소머리국밥을 주제로 한 지역 축제도 준비하고 있다. 글 사진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나우뉴스] 30년전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낡은 집 알고보니 108억원

    [나우뉴스] 30년전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낡은 집 알고보니 108억원

    베트남 하노이의 한 남성이 30년 전 외조모에게 물려받은 낡은 집의 가치가 무려 2200억동(한화 107억8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집 마당에 놓여있던 간장 항아리는 10억 동(한화 49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안씨가 30년 전 외조모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집은 하노이 드엉람에 위치한다. 현지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외조모가 돌아가신 뒤 십수 년 만에 이 집이 수백 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거 외할머니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또안씨는 타지에 살았지만, 외할머니를 뵙기 위해 자주 이곳을 찾았다. 1990년 외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이 가옥을 또안씨에게 선물로 남겼다.당시 이 가옥의 가치를 몰랐던 그는 오로지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소중히 집을 지켜왔다. 비록 타지에 살고 있어 자주 이 집을 찾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고용해 청소하고, 건기에 접어들면 마당에 있는 화초들이 말라 죽지 않도록 물을 주고 보살폈다. 일 년에 한두 번 이곳에 들렀는데,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고가(古家)에서 풍기는 평온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좋아 마당에 앉아 차를 마시곤 했다. 2000년대 중반 이 낡은 집이 현지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선정, 전문가의 감정 평가를 받게 됐는데 그 결과 2200억 동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평가사들은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골동품이 많이 소재하고, 마당에 있는 간장 항아리만 해도 그 가치가 10억 동이 넘는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하노이시가 이 집을 1급 보호 건축물로 지정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현재 또안씨는 관광객들을 위해 집을 개방하고, 고가에 관한 자료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 집을 너무 아껴서 팔 수가 없다”면서 “잘 보존해서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라고 전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41년 만의 사과와 용서, 우리와 미얀마에 던진 교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41년 만의 사과와 용서, 우리와 미얀마에 던진 교훈

    “죄송합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 저의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아 망설였다.”(A씨) “정말 저는 이제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 이런 마음으로 용서를 하고 싶다. 동생도 이제 (하늘에서) 편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고 박병현씨의 형 박종수씨) 지난 16일 국립 5·18 민주묘지 접견실에 들어선 A씨가 41년 전 광주에서 자신의 총격으로 숨진 고(故) 박병현(당시 24) 씨의 유가족을 만나 사죄의 눈물을 흘리고 박씨의 형 박종수(73)씨와 얼싸안으며 오열하는 모습을 18일 종일 되풀이 봤다. 역사적 장면이다. 5·18 총격 가해자가 잘못을 고백하며 유가족에게 직접 사과하고 묘역을 유족과 함께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사에서도 이런 장면은 흔치 않다. 지금 미얀마 군부의 무차별 총격에 수많은 이들이 스러지고 있지만 이들 군경이 A씨처럼 무릎 꿇고 사죄하고 유족들이 용서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가 묻게 된다. 그의 용기도 대단하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게 만든 이들이 여전히 살아있을지 모른다. 배신자라는 옛 동료들의 시선도 의식될 것이다. 잠시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고교 2학년 때 광주를 경험한 기자가 대학에 진학했더니 광주에 공수부대원으로 투입됐던 형님 둘이 뒤늦게 입학해 함께 수업을 듣게 됐다. 한 형은 늘 조용했는데 다른 형은 “광주 빨갱이 새끼들 다 죽이지 못한 게 한”이라고 말하곤 했다. 광주 출신보다 더 피가 끓던 학과 선배들과 그 형은 주먹다짐도 서슴지 않았다. 광주가 고향인 아이들은 무서워 숨을 죽여야 했다. 벌써 40년 전 일이다. 회사에 들어오니 한 선배가 자신도 하필 그 때 광주 상무대에 있어 계엄군으로 투입됐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하며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고백하는 용기를 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민간인을 학살한 자란 오명을 얻을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로 5·18 민간인 학살 사건 중 대표적인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과 관련됐던 공수부대원 출신 최영신 씨는 양심 고백 후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A씨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으로 광주에 투입됐다. 그해 5월 23일 광주 밖으로 빠져나가는 사람을 차단하라는 명령을 받고 민간인을 향해 총을 쐈다. 그 바람에 농사 일을 도우러 보성 고향집으로 향하던 박씨가 변을 당했다. 박씨 주검은 저수지 인근에 암매장됐다. 같은 달 31일 7공수여단이 철수했고 열흘 뒤 시신은 가족들에게 발견됐다. 이후 선산에 안장됐다가 1990년 광주 망월묘역으로 이장됐고, 1997년 다시 국립5·18민주묘지로 옮겨졌다. A씨는 2000년대 이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최용주 조사1과장이 7공수여단의 행적을 추적하다 A씨가 총격을 가했다고 털어놓은 사실을 알게 됐다. 최근 A씨를 만나 보니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A씨는 사과를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유가족들이 사죄를 받아 줄지, 잊고 있던 아픈 기억을 꺼내게 해 또다시 상처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용기를 내 이날 함께 박씨의 묘에 무릎 꿇어 절하며 사죄하게 됐다.사죄와 용서는 그것만으로도 값지지만, 5·18이란 불행한 과거를 치유하는 시작점이 된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또 다른 공수부대원, 계엄군의 고백과 증언, 사죄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를 낳는다. 실제로 조사위는 조사 활동 과정에 A씨와 비슷한 사례를 두 건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해서 앞으로는 계엄군과 피해자나 유족이 동의하면 조사위가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어렵사리 용기를 내준 가해자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지원하는 등 어려움을 나눠 짊어지겠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계엄군 병사들이 고백하고 증언해주면 여전히 미완인 5·18 진실의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다. A씨는 박씨에게 방아쇠를 당겼을 때 “주변에 총기나 위협이 될만한 물건이 없었다. 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시위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란 신군부 주장이 허구임이 드러난 셈이다. 발포 명령자를 규명하고 행방불명자, 암매장지를 찾는 데도 계엄군의 용기 있는 고백이 절실하다. 나아가 지금 미얀마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이들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일이 있다. 그 죗값의 무게에 짓눌려 평생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 등 군부 지도자들은 전두환(90) 일당이 부당하게 확보한 권력으로 한때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다수의 민간인을 희생시킨 죗값을 돌려받아 지금도 역사의 심판에 짓눌려 살아간다는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A씨와 박씨 유족이 사과하고 용서한 날, 광주고법 형사1부(이승철·신용호·김진환 고법판사)는 5·18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전두환 씨가 항소심을 앞두고 낸 관할 이전 신청을 기각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곳이 광주 시내이고, 증인 대다수가 광주나 인근에 거주해 실체적 진실 발견과 효율적인 재판 진행을 위해 광주지법에서 재판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한 “신청인 주장처럼 호남 일부 정치인, 시민단체 등의 반발과 부정적인 지역 정서가 존재한다고 해서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판의 진행과 결론에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전씨는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굴다 지리멸렬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 발전에 광주의 희생이 값진 원동력이 됐다는 점을 처절히 깨달아야 한다. 이제라도 계엄군으로서 과오를 저지른 이들이 진정 참회하고 무등산 자락보다 너른 광주 시민들의 용서를 받길 바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젠 슬퍼 매치 하지 말아요’…상승세 타며 만난 수원-FC서울

    ‘이젠 슬퍼 매치 하지 말아요’…상승세 타며 만난 수원-FC서울

    지난해 첫 슈퍼매치가 7월 열렸을 때 수원 삼성은 10위, FC서울은 9위였다. 9월 두번째 만남에선 수원은 11위, 서울은 9위였다. 마지막 슈퍼매치는 하위 스플릿에 떨어진 상태에서 이뤄졌다. 2000년대부터 K리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인기 구단에, 명가를 자처하는 두 팀의 대결은 이렇듯 슈퍼 매치를 비틀어 표현한 ‘슬퍼 매치’로 전락했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현재 수원이 3위, 서울이 4위로 두 팀 모두 상위권에 자리 잡은 가운데 첫 슈퍼매치가 열린다. 슈퍼매치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수원과 서울이 오는 2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격돌한다. 수원은 개막 5경기 연속 무패(3승2무)로, 서울은 최근 2연승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기는 팀은 전북 현대, 울산 현대와 선두권 레이스를 이어가고, 지는 팀은 중위권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두 팀 모두 중요한 길목에서 라이벌을 맞닥뜨리는 셈이다. 역대 전적에서는 35승24무33패로 서울이 근소하게 앞선다. 지난해에는 1승1무1패로 팽팽했다. 서울은 2015년 4월 패배 이후 18경기(10승8무) 연속 패배가 없다가 지난해 마지막 경기에서 무릎을 꿇어 연속 무패가 끊긴 상황이다. 수원과 서울 모두 지난해와는 다른 팀이다. 지난시즌 후반 소방수로 긴급 투입된 박건하 감독의 조련 아래 수원은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새로 사령탑에 오른 박진섭 감독이 지휘를 받고 있는 서울도 마찬가지다. 고승범, 김태환, 김민우, 한석종, 이기제의 기동력이 돋보이는 수원과 기성용과 팔로세비치, 오스마르의 패싱력이 꿈틀거리는 서울의 중원 싸움이 볼만할 것으로 보인다. 박건하 수원 감독은 “포항 스틸러스를 3-0으로 이긴 게 서울과 경기를 치를 때도 힘이 될 것”이라며 “선수들도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섭 서울 감독은 “따로 이야기 안해도 선수들 다 알고 잘 준비할 것”이라면서 “좋은 승부를 펼쳐 많은 팬들이 즐거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2경기 연속 결승골 등 개막 5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는 기성용이 어떠 플레이를 펼칠지도 주목된다. 지난해 후반 국내 복귀해 한 차례 경험한 슈퍼매치에서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기성용은 “수원이 박건하 감독님이 오신 뒤 좋은 팀으로 변화해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A매치 휴식기 전 승점을 쌓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성난 원숭이떼의 습격…놀라 달아나던 인도 여대생 추락사

    성난 원숭이떼의 습격…놀라 달아나던 인도 여대생 추락사

    원숭이떼를 피해 달아나던 인도 여대생이 추락사했다. 11일 더한스인디아는 인도 텔랑가나주의 한 아파트를 습격한 원숭이떼로 인해 1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10일 텔랑가나주 와랑갈시 카지페트 지역의 한 아파트에 원숭이떼가 출몰했다. 아파트 옥상에서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치던 G. 시리샤(21)는 원숭이떼 공격에 놀라 몸을 피하다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건물 높이는 4~5m에 불과했지만 추락 충격으로 크게 다친 시리샤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건물 반대편 CCTV에는 원숭이떼를 피해 옥상 난간으로 기어 올라간 시리샤가 중심을 잃고 추락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추락과 동시에 시리샤에게 달려들던 원숭이 두 마리도 양 옆으로 흩어졌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주민 너덧 명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시리샤는 다발성 골절로 끝내 숨을 거뒀다. 인도에서는 원숭이 공격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타밀나두주에서는 가정집에 난입한 야생 원숭이떼가 쌍둥이 아기를 납치해 이 중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0월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에서는 원숭이떼가 무너뜨린 담장에 맞아 남성 2명이 숨졌다. 같은 해 7월 우타르프라데시주 샤자한푸르시에서도 비슷한 사고로 일가족 5명이 사망했다. 2007년 당시 뉴델리 부시장이 자택 테라스에서 달려드는 원숭이떼를 뿌리치다 추락사한 사건은 매우 유명하다.전문가들은 인도 경제발전과 함께 주택 수요가 폭증하면서 원숭이 서식지가 파괴됐고, 이 때문에 난폭해진 원숭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힌두교 신자인 주민 대부분이 하누만(원숭이신)의 화신인 원숭이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어 적극적 대처가 어려운 상황이다. 주민들이 원숭이 도살에 반대하는 것 역시 관리 당국에는 걸림돌이다. 2000년대 초반 인도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덩치가 크고 사나운 랑구르원숭이를 동원해보기도 했으나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2000자 인터뷰 50] 이명찬 “한일 갑을관계 시정돼야 혐한도 대립도 해소될 것”

    [2000자 인터뷰 50] 이명찬 “한일 갑을관계 시정돼야 혐한도 대립도 해소될 것”

    일본의 혐한 목도하고 충격받아 책 집필 코로나19 日 아날로그 체질 만천하에 드러내 戰前 체제 온존한 노인 정치가 일본 발전 막아 각 분야의 한일 역전에 분노한 일본 우익들 한국 공격 역사문제 대립 또한 한일역전에서 비롯해 한일역전이 더 진전돼야 양국관계도 풀릴 것2000년대 초반 삼성이 소니를 제치고,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피겨스케이트 김연아가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우승했다. 2017년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고, 같은 해 근로자 임금은 근속 5년차부터 한국(월 362만원)이 일본(343만원)을 넘어섰다. 곳곳에서 한국이 일본에 역전하는 일들이 일상화된 가운데 지난해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등 아카데미 4개 부분 수상을 하면서 문화예술 부문에서 역전의 정점을 찍었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은 이런 한일 역전 현상이 지금의 한일 대립의 근간에 있다고 설파한다. 이 위원으로부터 각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일 역전 현상과 양국 관계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이명찬 위원은 1960년생으로 고려대에서 학사·석사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국제정치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20년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퇴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Q. 지난 1월 중순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서울셀렉션·2만2000원)이란 책을 펴냈다. 책을 쓴 계기는 무엇인가. A. 2019년 1월부터 10월 초까지 일본에 방문연구원으로 생활하면서 그 때까지 가지고 있던 일본의 인상과는 너무나 다른 일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데 이 충격이 출간 동력이었다. 첫째, 90년대 초부터 10년 가까이 생활했던 유학 시절의 일본은 한국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회였다. 2019년의 일본은 사회 곳곳에 한국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넘치고 있었다. 그런데 보수 언론이나 지상파 방송에서 보이는 한국에 대한 관심 대부분이 혐한에 가까운 것이라 충격적이었다. 다만 지상파 방송을 거의 보지 않는 10~20대 젊은이들은 한류에 폭 빠져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는 비율이 일본 내각부 2019년 6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57% 이상이었다. 둘째, 작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아베 정권을 지켜보면서 아날로그 시스템의 비효율성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 비효율성이 디지털에 취약한 장노년정치의 리더십 부재에 기인하는 것인데 그 근본 원인이 전전(戰前)의 일본을 군국주의로 몰아갔던 그 체제의 온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전에 뿌리를 둔 구체제는 아날로그에 기반한 것으로 디지털 사회로의 변환을 거부하는 속성을 가진다. 반면 디지털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한국 사회의 코로나19 대응은 일본을 압도했다. 셋째,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가 되살아났다는 평가와는 달리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비롯된 경제적 타격은 ‘잃어버린 30년’간 허덕이던 일본 경제를 가속적인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노출된 일본의 암울한 민낯을 보면서 한일 간 힘의 역전은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일 역전이 가지는 의미는 한일관계에서의 갑을 관계를 뒤집어 놓을 동력이 된다. 한일 역사 문제의 장기적 고착은 막강한 힘을 가진 일본과 허약한 한국이 갑을 관계로 맺어진 역학관계의 결과물인 셈이다. 한일역전은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역사문제에 내재한 갑을 관계를 새롭게 추동할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는 게 출판 목적이다.Q. 지금의 일본을 어떻게 보는가. A. 패전을 종전이라 칭함으로써 패전의 책임자를 단죄하고 청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 전전 체제가 온존하고 있다. 봉건제의 잔존을 연상시키는 다수의 자민당 세습 의원, 대대로 물려받아 온 국회의원을 가업으로 인식하는 이들은 민의를 대변하기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한다. 자민당의 노인 정치 특성을 나타내는 다선 세습의원으로 구성된 이 구체제는 지난 1년 비효율성이 만천하에 폭로됐다. 세계 경제는 디지털 시스템을 기반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아날로그로 점철된 일본의 구체제는 일본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임은 불 보듯 명확하다. 일본의 자민당 노인 정치가 디지털 사회로의 탈바꿈을 이끌 것 같지 않다. Q. 한국과 일본의 역전이 일어난 시기는 언제인가. 그리고 그런 역전은 현재 어디까지 진행돼 있다고 보는가. A. 한국과 일본의 역전은 여러 분야별로 각각 시기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미 시작된 분야와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분야로 구분할 수 있겠다. 한류로 대변되는 문화 대부분은 이미 역전이 이루어졌다. ‘아베 정치’로 상징되는 자민당 정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 분야에서도 민주화를 향해 줄기차게 나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역전이 됐다고 봐야 한다. 일본의 특기였던 경제는 ‘잃어버린 30년’ 동안 침체가 이어져 한국 대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의 대부분 영역에서 역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장인 정신이 힘을 발휘하여 유일하게 일본의 강점으로 남아 있던 소재, 부품, 장비 영역에서도 한국이 정부와 대기업 및 중소기업이 힘을 합하여 역전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수출규제에서 보여준 것 같은 일본의 갑질이 다시는 통하지 않는 한국이 갑의 위치로 역전이 될 시점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일 것이다. Q. 한 때 아시아를 제패하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4위 독일과는 적지 않은 국내총생산(GDP) 차이를 보이는 게 일본이다. 한일역전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건 일본이 정체하거나 퇴행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아베 정치’로 상징되는 자민당 세습정치의 비민주성, 비효율성이 그 이유다. ‘잃어버린 30년’으로 상징되는 경제시스템의 비효율성은 아날로그 사회인 일본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과도한 정부 부채(약 270%), 고령화 사회, 일본 사회에 내재한 거품경제의 후유증, 제4차 산업이 미래를 결정지을 격변의 국제사회에서 변화를 싫어하는 초보수 사회. 이에 더하여 역사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지 않아 빈번하게 일어나는 주변국과의 갈등으로 인한 과도한 국력 소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비효율성의 결정물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정치’가 초래한 이 외교적 우책은 한국의 일본 불매운동을 격발시켜 지방 관광산업을 초토화시켰고, 한국의 선진적인 코로나 대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Q. 한일 간 대립이 2011년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부작위 위헌 판결 이후 근 10년간 지속되고 있다. 한일 대립의 배경에 한일역전이 있다고 보는가. A. 자민당 ‘아베 정치’의 구성원들은 아직도 한국을 과거 피식민지 취급을 한다. 억누르면 한국이 굽히고 들어올 것으로 생각하는데 시대착오적이다. ‘아베 정치’를 지지하는 우익들은 피식민지 국가였던 한국이 일본을 능가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다. 한국이 더 크기 전에 주저앉혀야 하겠다는 심뽀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일 간 힘의 아노미 상황이 현재 혼란의 근본 원인이다. Q. 일본 우익들이 ‘일본은 언제나 옳고 우월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데. A. 이런 생각을 가진 우익들이 혐한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은 한일 역사에서 나쁜 짓을 한 일이 없으며 한국이 일본에 감히 대드느냐고 생각한다. 이런 우익들을 핵심 지지 세력으로 삼는 아베 정권이 한국과 역사 문제 해결을 하려 했으니 풀리겠는가. 한국 보수 언론들은 정부 대일 외교력을 비판하는데, 무지의 소산이다. 일본의 우익들은 한국과 역사문제를 풀 생각이 없다. Q.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한미일 연대를 위해 한일관계를 중재할 움직임을 보인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한일에 끼어들어 2015년 12월 위안부합의가 나왔다.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한일관계의 복원은 필요하지만 자칫 2015년의 재판이 될 수 있는데. A. 2015년과 2021년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일역전 현상은 상당히 진전되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통해 한국이 그때의 한국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이 모를 리 없다. Q. 지금의 한일 대립은 역사문제에 기인한다. 2018년의 강제동원 판결, 2021년 1월의 위안부 판결에 대한 한일의 정치적 접근 없이는 대립을 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일제피해자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가, 일본은 일제피해자가 요구하는 가해 사실 인정과 사죄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를 얻을 수 있는가인데. 가능하다고 보는가. A.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의 정치적 타결은 자민당의 ‘아베 정치’가 지속되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민당의 노인 정치 세력은 해결 의도도 능력도 없다. 머지않아 자민당의 ‘아베 정치’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 세력이 붕괴되고 새롭게 나타날 정치 세력은 한국과 척지고는 일본의 국익 손실이 막대하다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한국 주장에 접근하는 결단을 보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한일역전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양국 관계를 푸는 해법에 대한 컨센서스의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Q. 일본의 혐한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한일이 역사적 화해를 이룬다면 혐한은 소멸할까. A. 혐한은 역사문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며, 혐한은 한일역전으로 인해 심해졌다. 인과관계를 생각해 보면 역사문제가 혐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한일역전을 완성하면 혐한은 급속도로 소멸할 것이며 그 결과 역사문제는 한국의 주장이 많이 반영되는 선에서 결착될 것이다. 이 사실을 확실히 인식한다면 자민당의 ‘아베 정치’(노인 정치)가 활개치는 상황에서는 역사문제는 우리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적 타협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며 해서도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의 국력을 빠르게 증진시키는 길만이 한일 역사문제를 피해자인 우리 국민이 바라는 대로 해결할 유일한 길이다. 늦어도 10년 이내에 그날이 오지 않을까.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30년전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낡은 집 알고보니 108억원

    [여기는 베트남] 30년전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낡은 집 알고보니 108억원

    베트남 하노이의 한 남성이 30년 전 외조모에게 물려받은 낡은 집의 가치가 무려 2200억동(한화 107억8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집 마당에 놓여있던 간장 항아리는 10억 동(한화 49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안씨가 30년 전 외조모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집은 하노이 드엉람에 위치한다. 현지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외조모가 돌아가신 뒤 십수 년 만에 이 집이 수백 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거 외할머니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또안씨는 타지에 살았지만, 외할머니를 뵙기 위해 자주 이곳을 찾았다. 1990년 외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이 가옥을 또안씨에게 선물로 남겼다.당시 이 가옥의 가치를 몰랐던 그는 오로지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소중히 집을 지켜왔다. 비록 타지에 살고 있어 자주 이 집을 찾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고용해 청소하고, 건기에 접어들면 마당에 있는 화초들이 말라 죽지 않도록 물을 주고 보살폈다. 일 년에 한두 번 이곳에 들렀는데,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고가(古家)에서 풍기는 평온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좋아 마당에 앉아 차를 마시곤 했다. 2000년대 중반 이 낡은 집이 현지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선정, 전문가의 감정 평가를 받게 됐는데 그 결과 2200억 동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평가사들은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골동품이 많이 소재하고, 마당에 있는 간장 항아리만 해도 그 가치가 10억 동이 넘는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하노이시가 이 집을 1급 보호 건축물로 지정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현재 또안씨는 관광객들을 위해 집을 개방하고, 고가에 관한 자료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 집을 너무 아껴서 팔 수가 없다"면서 "잘 보존해서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라고 전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곰 덫’쯤이야… 임성재, 1년 만에 다시 우승 사냥

    ‘곰 덫’쯤이야… 임성재, 1년 만에 다시 우승 사냥

    임성재(23)가 1년 만에 ‘곰 사냥’에 다시 나선다. 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올해 생애 처음으로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가든스의 PGA 내셔널 리조트&스파 챔피언 코스가 사냥터다. 임성재는 지난해 3월 이 코스에서 열린 혼다 클래식에서 PGA 투어 데뷔 두 시즌 만에 마수걸이 승을 신고했다. PGA 투어는 당시 4라운드가 끝난 뒤 “임성재가 ‘베어 트랩’을 길들였다”면서 15번~17번 홀까지 3개 홀에서의 돌파 능력을 영상으로 재조명했다. 이 코스는 투어 선수들이 매년 고역을 치르는 장소 중 하나다. 마스터스에 ‘아멘 코너’가 있다면 혼다 클래식에는 ‘베어 트랩’이 있다.페어웨이가 연달아 물을 끼고 도는 데다 벙커까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함부로 긴 클럽을 꺼내기 쉽지 않다. 그린이 단단한 데다 바람이라도 불면 공은 낙엽처럼 공중에서 날리다 물속으로 사라진다. 당초 톰 파지오가 설계해 만들었지만 ‘황금곰(골든베어)’ 별명이 붙은 잭 니클라우스(미국)가 2000년대 초 리모델링했다. 미국 골프위크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3개 홀에서 모두 1515개의 공이 물속으로 향했다. 임성재는 지난해 4라운드에서 ‘베어 트랩’에서 버디-파-버디를 잇달아 기록하며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간 뒤 2위 매켄지 휴즈(캐나다)를 1타 차로 밀어내고 짜릿한 우승을 신고했다. 올해도 베어 트랩에서 힘을 낸다면 1972년 창설된 이후 유일하게 2연패(1977~78년)한 니클라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PGA 투어는 16일 임성재의 파워랭킹(우승 가능 순위)을 3위에 올려놨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독특한 외관·공간 지식산업센터… 품격있는 설계 ‘다산 한강 프리미어 갤러리’

    독특한 외관·공간 지식산업센터… 품격있는 설계 ‘다산 한강 프리미어 갤러리’

    지식산업센터의 특화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고급스러운 외관 디자인 적용으로 수요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면서 흥행과 더불어 지역 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는 곳이 속속 나타나는가 하면, 사회 트렌드 변화에 맞춰 업무 효율을 고려한 공간 설계를 적용 하는 등 저마다의 개성을 갖춘 곳이 각광 받아서다. 과거 지식산업센터는 아파트형 공장이라는 명칭에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형태로 지어져 기존의 공장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지식산업센터로 법정 용어가 변경되고 산업의 고도화, 벤처 붐 등이 맞물리면서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다양한 업종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 외관 변화에 각별히 신경을 기울인 지식산업센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식산업센터의 변신은 외부 모습에 그치지 않고 내부에서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전의 지식산업센터가 좁은 면적의 답답한 업무환경을 제공했다면 최근에는 워라밸, 주 52시간 근무 등 사회적 변화에 걸맞게 중앙, 옥상정원, 테라스 등 개방감 있는 공간을 내부에 설계해 쾌적한 업무환경을 구축하고 업무 효율성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다. 현재 공급되는 지식산업센터 중 외관, 공간 특화 설계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바로 ‘다산 한강 프리미어 갤러리’다.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 6245(다산신도시 지금지구 자족2블록)에 지하 3층 ~ 지상 7층 연면적 64,948㎡ 규모로 들어서며, 지식산업센터 665실과 상업시설 73실로 구성된다.먼저 다산 한강 프리미어 갤러리에 적용된 독특한 외관이 돋보인다. 단지명에 갤러리가 들어간 만큼 외 ‘숲 속에 자리한 갤러리’가 연상될 수 있도록 외관에 그린루버를 활용한 품격있는 디자인으로 설계돼 입주 기업체의 자부심을 높여줄 계획이다. 상업시설 역시 바로 옆에 자리한 초대형 공원과 연결된 스트리트몰 애비뉴 갤러리로 조성돼 수요자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우수한 내부 공간 설계도 자랑거리다. 중정 설계를 통해 개방감을 높이고 채광과 통풍을 극대화했다. 또한 옥상에는 수목 자수 화단, 무지개 정원 등 풍부한 녹지 공간으로 조성돼 종사자들이 업무 중 자연 공간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개폐식 옥상 돔을 도입해 사계절 내내 날씨에 관계없이 운영 가능하다. 이밖에도 업무 공간에는 발코니가 설계돼 폭넓은 공간 활용과 휴식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 지식산업센터의 필수 요건인 교통 환경도 잘 갖췄다. 인근에 위치한 수석IC를 통해 강변북로 진입이 용이하며 서울 잠실까지 15분 대로 이동 가능하다. 또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토평IC, 북부간선도로 구리IC가 인접해 수도권 주요 도시로 신속한 이동이 가능하다. 투자 장벽도 비교적 낮은 편이다. 총 분양가의 최대 80%까지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며, 중소기업 육성자금, 창업기원지원자금 등 정부지원 정책자금 활용도 가능하다. 대출과 정부지원 정책자금 등을 이용하면 실투자금액이 다른 부동산보다 낮아 비교적 소액의 초기 자금으로도 투자가 가능해 투자자들의 부담을 한껏 덜었다. 한편 다산 한강 프리미어 갤러리 분양홍보관은 경기도 구리시 경춘로에 위치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정구호 손잡고 리움 다시 여는 이서현… 삼성家 문화예술 도맡나

    [단독]정구호 손잡고 리움 다시 여는 이서현… 삼성家 문화예술 도맡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인연이 깊은 정구호 삼성물산 전 고문이 삼성미술관 리움의 재개관 기획전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국내 최고 사립미술관인 리움이 4년 만에 내놓는 기획전 제목은 가칭 ‘인류’로, 삼성 일가의 행보와 이 회장이 남긴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의 향방 등과 맞물려 관심이 쏠린다.업계에 따르면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정 고문은 현재 재개관을 앞둔 리움이 준비 중인 소장전 성격의 차기 기획전에 참여하고 있다. 정 고문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자문으로 도움을 드리고 있다. (재개관) 일정은 코로나19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리움은 이번 전시를 앞두고 직원 채용도 진행했다. 정 고문은 2000년대 초반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 동문인 이 이사장에게 직접 영입돼 제일모직의 전성기를 이끌며 국내 패션계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2013년 제일모직에서 퇴사한 뒤 패션뿐만 아니라 오페라, 무용 연출 등 문화계 전방위로 활동 영역을 넓혀 왔고, 최근에는 삼성물산 고문직을 맡아 회사의 전반적인 사업 방향을 수정하는 데도 역할을 한 바 있다. 정 고문으로서는 제일모직에서 이 이사장과 함께 ‘빈폴’의 성공 신화를 쓰며 한국 패션계를 선도했던 인연을 리움에서 다시 잇게 된 셈이다. 정 고문의 재개관전 참여는 이 이사장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리움의 재개관 상황은 이 미술관의 운영위원장이자 과거 삼성그룹의 패션사업을 총괄했던 이 이사장의 행보와 맞물리며 더욱 관심이 쏠린다. 이 이사장이 이번 리움 재개관전을 계기로 어머니 홍라희씨의 뒤를 이어 리움 운영 등 삼성 문화예술사업의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건희 컬렉션’의 처리 과정에서도 이 이사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서양 유명 미술품을 총망라한 1만 2000여점의 이 회장 소장품 가운데 상당수는 리움 수장고에도 보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상속세 납부를 위해 삼성 일가가 이들 소장품을 매각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이나 호암미술관에 이를 기증하자는 주장이 일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전시회 제목까지 정해진 리움 재개관은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되는 시점과 맞물려 이뤄진다. 이 이사장은 2017년 3월 홍씨가 일신상의 이유로 리움과 호암미술관장직에서 돌연 사퇴한 뒤 리움 운영위원장을 맡아 왔다. 이후 리움은 상설전만을 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있다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사태로 휴관에 들어갔으며, 재개관 여부와 전시회 준비 상황 등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안석 기자sartori@seoul.co.kr
  • [단독]정구호 손잡고 리움 다시 여는 이서현… 삼성家 문화예술 도맡나

    [단독]정구호 손잡고 리움 다시 여는 이서현… 삼성家 문화예술 도맡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인연이 깊은 정구호 삼성물산 전 고문이 삼성미술관 리움의 재개관 기획전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국내 최고 사립미술관인 리움이 4년 만에 내놓는 기획전 제목은 ‘인류’로, 삼성 일가의 행보와 이 회장이 남긴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의 향방 등과 맞물려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 따르면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정 고문은 현재 재개관을 앞둔 리움이 준비 중인 소장전 성격의 차기 기획전에 참여하고 있다. 정 고문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자문으로 도움을 드리고 있다. (재개관) 일정은 코로나19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리움은 이번 전시를 앞두고 직원 채용도 진행했다. 정 고문은 2000년대 초반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 동문인 이 이사장에게 직접 영입돼 제일모직의 전성기를 이끌며 국내 패션계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2013년 제일모직에서 퇴사한 뒤 패션뿐만 아니라 오페라, 무용 연출 등 문화계 전방위로 활동 영역을 넓혀 왔고, 최근에는 삼성물산 고문직을 맡아 회사의 전반적인 사업 방향을 수정하는 데도 역할을 한 바 있다. 정 고문으로서는 제일모직에서 이 이사장과 함께 ‘빈폴’의 성공 신화를 쓰며 한국 패션계를 선도했던 인연을 리움에서 다시 잇게 된 셈이다. 정 고문의 재개관전 참여는 이 이사장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리움의 재개관 상황은 이 미술관의 운영위원장이자 과거 삼성그룹의 패션사업을 총괄했던 이 이사장의 행보와 맞물리며 더욱 관심이 쏠린다. 이 이사장이 이번 리움 재개관전을 계기로 어머니 홍라희씨의 뒤를 이어 리움 운영 등 삼성 문화예술사업의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건희 컬렉션’의 처리 과정에서도 이 이사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서양 유명 미술품을 총망라한 1만 2000여점의 이 회장 소장품 가운데 상당수는 리움 수장고에도 보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상속세 납부를 위해 삼성 일가가 이들 소장품을 매각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이나 호암미술관에 이를 기증하자는 주장이 일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전시회 제목까지 정해진 리움 재개관은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되는 시점과 맞물려 이뤄진다. 이 이사장은 2017년 3월 홍씨가 일신상의 이유로 리움과 호암미술관장직에서 돌연 사퇴한 뒤 리움 운영위원장을 맡아 왔다. 이후 리움은 상설전만을 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있다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사태로 휴관에 들어갔으며, 재개관 여부와 전시회 준비 상황 등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씨줄날줄] 복부인/문소영 논설실장

    [씨줄날줄] 복부인/문소영 논설실장

    복부인(福婦人). 한자어를 그대로 해석해 ‘복을 가져오는 부인’인가 생각할 수 있겠다. 최근 사용 빈도가 떨어져 사어(死語)처럼 느껴지지만, 복부인은 ‘부동산 투기로 큰 이익을 남긴 가정주부’를 속되게 일컫는 신조어였다. 복부인들은 1970~1990년대에 부동산 가격 폭등 때마다 부동산 투기로 시세차익을 크게 남겼다. 지금은 가옥이나 토지 같은 부동산을 매매하는 일이나 임대차를 중개해 주는 곳에서 ‘부동산중개업소’, ‘공인중개사 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지만, 과거에 부동산 거래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는 가운데 담배 연기가 자욱한 복덕방(福德房)에서 이뤄졌다. 이 복덕방을 자주 들락거리는 가정주부를 복부인이라고 부르며 조롱한 것이다. 지방의 구도심 등에서는 여전히 복덕방 간판을 걸고 있는 중개업소를 간혹 발견할 수 있다. 토지와 주택을 거래하는 업소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는데 가거간(家居間), 가쾌(家?)라고 불리었고, 가쾌는 구한말까지도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덕방이란 이름이 사용된 시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37년 잡지 ‘조광’에 이태준이 발표한 단편소설 제목에 ‘복덕방’이 있다.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과 도시 발전이 본격화된 후 농촌에서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토지와 가옥 거래가 활발해졌다. 복덕방도 덩달아 바빠졌다. ‘이촌향도’는 1970년대까지 극심했는데, 서울 청계천변 등에는 무허가 건물들이 들어찼고 성북·관악·은평·노원구 등의 구릉지에는 달동네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서울 압구정동 등 강남 개발을 시작으로 1980년대 목동 개발, 1990년대 제1기 신도시 건설, 2000년대 제2기 신도시 건설 등 국책사업들이 진행될 때마다 복부인들의 투기 치맛바람은 늘 화제에 올랐다. 한국 최초의 신도시인 강남의 토지 가격은 개발 초기에 1년 새 10배 이상 뛴 적도 있다. 강남 일대의 토지는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꾼들의 집중적 투기 대상이 됐다. 어떤 강력한 대책도 투기를 완전히 근절하지 못하고 있다. ‘택지소유상한제법’ 등 ‘토지공개념 3법’ 도입 시도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무산됐듯이 헌법적 한계도 있다. 이런 마당에 경기 광명 등 제3기 신도시 조성 정보를 이용한 LH 직원들의 땅투기에 민심이 흉흉하다. 뼈 빠지게 노동을 하는 근로소득자의 입장에서는 투기로 떼돈을 버는 투기꾼들을 보면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유력 정치인의 부인과 어머니, 여성 의원들도 투기 혐의자로 거론되고 있다. 숨어 있던 복부인의 귀환이라고 할까.
  • 여자농구 2000년대생이 떴다… 언니들보다 더 무서운 막내들

    여자농구 2000년대생이 떴다… 언니들보다 더 무서운 막내들

    여자 프로농구 포스트 시즌은 ‘언니들의 대활약’으로 요약된다. 김보미(35·용인 삼성생명)로 대표되는 베테랑은 매 경기 미친 활약으로 관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언니들 틈에서 2000년대생 선수도 조용히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신이슬(21·삼성생명)과 허예은(20·청주 KB)은 각각 2000년과 2001년생 농구선수 중 가장 먼저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 무대를 밟은 선수다. 차세대 대표 주자답게 두 선수 모두 게임의 흐름을 바꾸는 모습을 보여줬다. 언니들보다 더 무시무시한 막내들이다. 두 선수는 특히 2차전에서 빛났다. 신이슬은 2차전 삼성생명 승리의 주역이었다. 4쿼터 58-66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3점슛을 꽂아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연장전에서는 종료 1분 44초 전 81-81 동점을 만드는 결정적인 3점슛을 넣었다. 경기 후 신이슬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보인 김보미는 “2차전 수훈 선수는 이슬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슬이한테 ‘너 때문에 이겼다’고 얘기해줬다”고 칭찬했다. 2차전에서 KB가 한때 14점 앞섰던 데는 허예은을 빼놓을 수 없다. 허예은은 3쿼터 종료 8분 전 38-36으로 KB가 앞설 때 메인 볼핸들러로 투입된 후 언니들을 진두지휘하며 흐름을 바꿨다. 허예은의 리딩 덕분에 팽팽하던 경기가 갑자기 KB로 흐름이 넘어왔다. 이날 기록은 18분 2초 12득점 1리바운드 1어시스트. 허벅지 통증으로 더 많은 시간을 소화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두 선수의 활약에 감독도 웃었다.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은 “중요한 순간에 이슬이가 한방씩 해줬다”며 “이런 경기에서 이기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안덕수 KB 감독도 “예은이가 3쿼터 들어가서 좋은 역할을 해줬다”면서 “충분히 자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손대범 KBSN 해설위원은 11일 “신이슬은 정규리그보다 더 집중해서 뛰는 것 같다”며 “정말 큰 심장을 가진 선수”라고 평했다. 허예은에 대해서는 “박지수와 2대2 플레이가 빛났다. 좋은 패스워크와 슛까지 보여준 챔프전은 허예은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돌아온 룰라 “난 사법농단의 피해자”

    돌아온 룰라 “난 사법농단의 피해자”

    “나는 사법농단 피해자였다. 나라는 광기에 장악됐다. (27만명이 죽는 동안) 이 나라에 정부는 없었다. 무정부 상태였다.” 2000년대 남미 ‘핑크 타이드’(선거를 통한 진보 집권)의 구심점이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6)가 귀환했다. 2003~2010년 브라질 대통령인 룰라는 온건한 개혁으로 퇴임 직전까지 80%대 지지율을 유지한 인물이다. 그러나 2016년 자신의 후계자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2년 뒤 룰라 자신도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며 무너졌다. 그랬던 룰라가 10일(현지시간) 80분 동안의 연설로 건재함을 알렸다. 그에게 내려졌던 유죄 판결 전부가 절차상 하자 때문에 무효라는 연방대법원 판결 이틀 만에 룰라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상파울루시 근처 금속노조 건물에 마련된 무대에 올랐다. 연설의 많은 부분은 ‘남미의 스트롱맨’ 자이르 보우소나루(65) 대통령이 팬데믹 동안 드러낸 실정을 비판하는 데 할애됐다. 룰라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고 가족을 부양할 급여를 받지 못했다”면서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룰라는 또 백신을 불신하며 오락가락 공급 정책을 편 보우소나루의 행보를 상기시킨 뒤 “백신 공급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얼마나 염려하는지에 관한 문제”라고 일갈했다. 연방판사 시절 룰라를 체포했던 세루지우 모루 전 법무부 장관도 저격했다. 룰라는 자신이 부패 혐의로 수사·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부인과 동생이 사망했고 동생 장례식에는 참석도 못 했다며 비통해했다. 그는 자신이 “500년 브라질 역사 최대의 사법농단 피해자였다”고 주장했다. 모루가 룰라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사들과 담합 모의를 한 정황을 염두에 둔 주장인데, 이 정황들이 지난해 현지 언론을 통해 밝혀진 뒤에야 룰라의 유죄 판결들이 무효가 됐다. 연설장의 열기는 내년 치러지는 대선의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그러나 룰라는 이날 2022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적절히 답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고령임에도 룰라를 제외한 대선 후보가 노동자당에 없긴 하지만, 룰라가 피선거권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연방대법원의 또 다른 결정이 필요한 터라 말을 아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출마 선언은 없었지만, 룰라는 연설 중 “세계는 가능하다. 그러니 투쟁하자”며 의지를 드러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룰라와 노동자당 집권 시기의 구호이다. 룰라의 출마가 실현된다면, 그가 연설 중 저격한 두 명이 유력 경쟁자가 된다. 룰라와 보우소나루 간 2파전이 아닌 모루까지 3파전 양상이 된 이유는 룰라가 수감돼 있는 동안 한배를 탔던 둘의 사이가 벌어져서다. 보우소나루는 2019년 취임과 함께 연방판사였던 모루를 법무부 장관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측근 비리를 조사하던 경찰청장을 법무부와의 상의 없이 교체한 데 반발해 모루는 장관직을 사퇴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2000년대 모델 겸 배우로 활동”...‘그알’ 김선○ 찾는다

    “2000년대 모델 겸 배우로 활동”...‘그알’ 김선○ 찾는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모델 겸 배우로 활동한 김선○를 찾는다. 지난 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스타그램에는 김선○에 대한 제보를 기다린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 측은 김선○에 대해 “1974년생으로(활동나이:1978년생) 충남지역 국립대학교에서 관현악을 전공했으며, SFAA 서울컬렉션 등에서 모델을 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에서 배우로도 활동한 김씨 또는 김씨의 가족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살펴보는 대표적인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만큼 어떤 이유로 김 씨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는 것인지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챔프전 최초의 ‘2000년대생’ 언니들보다 더 무서운 여자농구 막내들

    챔프전 최초의 ‘2000년대생’ 언니들보다 더 무서운 여자농구 막내들

    이번 여자프로농구 포스트 시즌은 ‘언니들의 대활약’으로 요약된다. 김보미(35·용인 삼성생명)로 대표되는 베테랑들은 매 경기 미친 활약으로 관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언니들 틈에서 2000년대생 선수들도 조용히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신이슬(21·삼성생명)과 허예은(20·청주 KB)은 각각 2000년생과 2001년생 농구선수 중 가장 먼저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 무대를 밟은 선수다. 차세대 대표 주자답게 두 선수 모두 게임 체인저로 활약했다. 연장 접전 끝에 삼성생명이 84-83으로 승리를 거두는 과정에서 2000년대생 막내들은 중요한 순간에 게임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언니들보다 더 무시무시한 막내들이다. 두 선수는 1차전에서 3득점 3어시스트(신이슬), 1리바운드 1어시스트(허예은)으로 조용했지만 2차전에서 빛났다. 신이슬은 2차전 삼성생명 승리의 주역이었다. 4쿼터 58-66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3점슛을 넣어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연장전에서는 종료 1분 44초 전 81-81 동점을 만드는 결정적인 3점슛을 넣었다. 2차전 성적은 8득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 2차전에서 14득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승리 후 신이슬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보인 김보미는 “2차전 수훈 선수는 이슬이라고 생각한다. 이슬이한테 ‘너 때문에 이겼다’고 얘기해줬다”고 칭찬했다. 2차전에서 KB가 한때 14점 앞섰던 데는 허예은을 빼놓을 수 없다. 허예은은 3쿼터 종료 8분 전 38-36으로 KB가 앞설 때 메인 볼핸들러로 투입된 후 언니들을 진두지휘하며 흐름을 바꿨다. 허예은의 리딩 덕분에 팽팽하던 경기가 갑자기 KB로 흐름이 넘어왔다. 특히 2차전에서 20득점 16리바운드로 1차전에서 끊겼던 더블더블을 다시 기록한 박지수와의 호흡이 좋았다. 이날 기록은 18분 2초 12득점 1리바운드 1어시스트. 허벅지 통증으로 더 많은 시간을 소화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두 선수의 활약에 감독들도 웃었다.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은 “중요한 순간에 이슬이가 한방씩 해줬다. 이런 경기에서 이기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안덕수 KB 감독도 “예은이가 3쿼터 들어가서 좋은 역할을 해줬다. 충분히 자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손대범 KBSN 해설위원은 11일 “신이슬은 정규리그보다 더 집중해서 뛰는 것 같다. 정말 큰 심장을 가진 선수”라고 평했다. 허예은에 대해서는 “박지수와 2대2 플레이가 빛났다. 좋은 패스워크와 슛까지 보여준 챔프전은 허예은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추억의 카세트 테이프 발명한 루 오텐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추억의 카세트 테이프 발명한 루 오텐스

    지독하게도 음원 구하기가 힘들었던 젊은날, 우리 모두는 카세트 테이프를 끼고 살았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으면 연필이나 볼펜을 꽂아 돌려 팽팽하게 만들곤 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2014년 6월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유명 DJ 케이시 케이슴이 진행하던 ‘아메리칸 톱 40’를 주한미군(AFKN) 라디오로 아예 통째로 녹음해가며 미국 음악을 엿들었다. 연말이면 흠모하는 여학생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이 선별한 음악들만 골라 편집해 곡명과 아티스트 이름을 정성껏 적어 건네곤 했다. 그것을 발명한 이가 누구일까 당연히 궁금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1960년대 필립스의 엔지니어 루 오텐스가 처음 만들었는데 그가 지난 주말 고향인 네덜란드 두이젤 마을에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전날 가족들이 뒤늦게 알렸다며 10일(현지시간) 전했다. 사인은 전해지지 않았다. 오텐스는 필립스의 제품개발 부서 책임자가 돼 팀원들과 함께 만들었다. 1963년 베를린 라디오 전자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돼 곧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카세트 테이프가 1000억 개가 팔려나갔다. 레코드 LP를 대체할 저장장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이 가운데 필립스가 ‘오픈 릴’(open reel) 방식의 저장장치를 표준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오텐스는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나무 원형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또 필립스를 설득해 그의 발명품을 다른 제조업체가 무료로 쓸 수 있도록 해 일본 회사 소니와 필립스가 함께 카세트를 만들게 했다. 일본의 많은 회사들이 비슷한 제품을 베껴 만들자 그제야 특허를 신청했다. 카세트테이프는 테이프 자성체 개선 노력과 더불어 소니에서 낸 ‘워크맨’ 덕분에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음반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필립스는 그 뒤 릴이 손상되거나 워크맨 기기의 벨트가 파손되는 등의 휴대용 카세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카세트테이프의 디지털판인 디지털 콤팩트카세트(DCC)를 만들었다. 오텐스는 여기에도 참여했다. DCC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000억 개 팔렸다. 고인은 카세트 테이프 발명 50주년을 맞아 타임지 인터뷰를 통해 공개된 첫날부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털어놓았다. 1982년 필립스가 CD 플레이어 시제품을 선보이자 그는 “지금 이 순간부터 전래 레코드 플레이어는 낡은 것이 됐다”고 말했다. 4년 뒤 그는 은퇴했다. 오랜 엔지니어 경력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묻자 필립스가 아니라 소니가 워크맨을 개발한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2000년대 들어 카세트 테이프나 DCC, 워크맨 모두 서랍이나 장식장 안에 먼지를 뒤집어 쓰게 됐는데 최근 몇년 동안 다시 사랑을 받고 있다. 레이디 가가나 킬러스, 메탈리카 같은 음악인들이 카세트 테이프로 앨범을 발매했다. 영국의 공식 차트 집계회사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이전 해 같은 기간보다 카세트 판매량이 103% 늘었다고 집계했다. 미국에서는 닐슨 뮤직 집계에 따르면 2018년에 전해보다 23% 발매량이 늘었다. 며칠 전 BBC는 코로나19로 록다운(봉쇄)된 동안 낡은 LP 300장을 모두 들어봤다는 음악 팬의 사연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K과채류 열풍… 짝퉁도 판친다

    K과채류 열풍… 짝퉁도 판친다

    ‘K 과일, 넘버 원’ K팝과 K푸드에 이어 우리의 과일과 채소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예전엔 ‘로열티’를 지급했던 키위와 딸기 등 각종 과일이 역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또 동남아 등지에서는 한국산 배·딸기 등의 인기를 등에 업고 ‘짝퉁’까지 판치고 있다. ●유럽으로 가는 전남 키위 ‘해금’ ‘해원’ 전남도 농업기술원은 10일 자체 개발한 키위 2개 품종 ‘해금’, ‘해원’을 최근 유럽에 수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 농업기술원은 프랑스의 다국적 키위 유통업체인 ‘소프뤼레그’사와 향후 30년간 유럽 27개국에 2개 품종을 독점 공급할 수 있는 전용실시 계약을 체결했다. 유럽에서 100㏊가 보급될 경우 10년간 약 30억원의 로열티를 받는다. 키위의 역수출은 병충해에 강하고 당도가 높은 육종 개발에서 비롯됐다. 국내에는 1970년대 뉴질랜드에서 개량된 육묘가 수입되면서 재배가 시작됐다. 2000년대부터는 뉴질랜드 J사가 개발한 골드키위가 힛트를 쳤으나 회사측의 독점권 행사로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도 농기원은 기존 키위 교배를 통해 여러 신품종을 개발하고 나무에 궤양병균을 주입해 최종 살아남은 품종인 ‘해금’과 ‘해원’을 2016~2020년 유럽에서 시험재배했다. 맛과 품질,병충해 등에서 뉴질랜드산보다 훨씬 우수한 것으로 입증됐다. 농기원 조혜성 연구사는 “국제학술회의 등을 통해 자체 개발한 과일 품종을 널리 알리면서 해외 진출이 이뤄졌다”고 말했다.●담양 딸기 ‘죽향’ 동남아 입맛 저격 전남 담양군이 자체 육성한 딸기 ‘죽향’도 해외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군은 최근 말레시아에 죽향 600㎏을 처음 수출했다. 기존 딸기보다 당도와 경도가 높아 저장성이 크게 개선됐다. ‘죽향’은 네덜란드 등 유럽인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이에 힘입어 자체 개발한 또다른 품종인 ‘담향’과 함께 국내 처음으로 유럽에서 품종 등록에 성공했다. 10여년 전만해도 전국 딸기의 대부분이 일본 품종이어서 ‘로열티’를 지급해야 했으나 지금 일본산은 거의 사라졌다. 나주시는 자체 개발한 조생종 배 ‘원황’ 등을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베트남 등 18개국에 2500여t 가량을 수출한다. 50여년 전 대만에 수출을 시작한 이후 동남아시장으로까지 시장을 넓히고 있다. ‘원황’은 황갈색 빛깔에 높은 당도와 풍부한 과즙으로 해외에서 더 호평받고 있다. ●중국산 과일이 ‘K’ 달고 한국산 둔갑 이처럼 한국산 신선 농산물이 동남아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중국산 과일이 한국산으로 둔갑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은 최근 태국에서 현지 최대 규모의 농산물 바이어 4개사와 ‘한국산 둔갑 짝퉁 농산물근절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현지 주요 마케팅 업체의 매대에 태극기 또는 품목별 QR코드 안내를 통해 소비자가 쉽게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태국 현지 로펌과 연계해 딸기·배 등 공동브랜드 상표권 현지 출원을 진행 중이다. aT 관계자는 “해외 짝퉁 농산물 유통을 막기 위해 현지 소비자보호원과 연계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내 집 없는’ LH 1타 토지 강사…경찰 조사 착수

    ‘내 집 없는’ LH 1타 토지 강사…경찰 조사 착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오모씨(45)가 자칭 ‘대한민국 1위 토지경매 강사, 경매 1타 강사’로 유료사이트에서 활동한 정황이 파악돼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특히 그가 정작 자신의 집 없이 남의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끈다. 10일 ‘사법시험준비생모임(대표 권민식)’에 따르면 오씨는 의정부시 민락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등기부등본상 소유자는 다른 사람이다. 사준모 권 대표는 “상가건물 등에 수십억원을 투자하는 사람이 ‘내 집 없이’ 남의 집에 얹혀 산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면서 “세금을 회피할 목적이 아닐까 싶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이날 오전 경기북부경찰청 부동산 투기사범 특별수사팀에서 출석해 오씨 등에 대한 고발인 신분으로 자료를 제출하고 조사를 받았다. 이날 경기북부경찰청 부동산 투기사범 특별수사팀은 LH 서울지역 본부 의정부사업단에 근무하면서 인터넷 토지 경매 강의로 영리 활동을 한 오씨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오씨는 공기업에 근무하면서 내부정보를 활용해 영리 활동을 벌이면서 세간에 부동산 투기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LH 사규는 업무 외 다른 영리활동 등의 겸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오씨는 수 년 동안 유료사이트 등을 통해 부동산 관련 강사로 활동하며 이익을 취했다. 오씨는 실명이 아닌 필명을 쓰면서 자신을 “부동산 투자회사 경력 18년 경험으로 토지를 이해한 후 토지와 관련한 무수한 투자와 수익을 실현했다”고 홍보했다. 오씨가 홍보한 ‘토지 기초반’ 5개월 과정의 수강료는 23만원에 달했다. 오씨는 2000년대 중반에 입사했기 때문에 LH 근무경력은 18년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LH에서 토지 보상 업무를 한 적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일자 LH는 오씨에 대해 “겸직 금지 의무를 위반하고 거짓말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오씨를 조만간 소환할 방침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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