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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아키타縣 지자제/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지난주 일본 혼슈(本州) 북부 아키다켄(秋田縣)을 방문할 수 있었다.한·일 합작 건설회사인 공영그룹 鄭秉勳 회장이 후원하는 ‘아키다성지순례지원본부’(본부장 鄭東柱)의 초청으로 아키다시(秋田市)의 작은 천주교 수녀원인 성체봉사회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그 수녀원에는 지난 75년 1월 4일부터 81년 9월 15일까지 6년 8개월동안 101차례나 눈물을 흘린 높이 68㎝의 조그마한 목각 성모 마리아상이 있어 더욱 유명한 곳이다.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상을 목격한 사람만도 2,000여명에 이르며 아키다대학 법의학부는 이 눈물을 사람의 체액성분과 똑같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다.니가타 교구와 로마 교황청도 다각적인 조사활동을 벌인 끝에 1984년 5월 이 성모상에 관련된 일들을 ‘초자연적인 것’,즉 기적(奇蹟)으로 결론내렸다. 이쯤 되면 프랑스의 루르드나 포르투갈의 파티마처럼 전 세계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성지(聖地)로 명성을 떨칠 법도 하지만 지금까지 한적한 시골지방으로 남아 있다.천주교가 전파된지 500년이나 되는 일본이지만 신자 수는 아직 30만명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신사(神社)의 나라,일본만의 뿌리깊은 토속신앙 때문이다.천주교 전래 200년만에 신자 수가 300만명이 넘고 개신교는 100년 역사에 1,000만 신자를 확보한 우리와 사뭇 다른 풍토다. 독실한 불교신자이며 한국인인 칠순(七旬)의 鄭회장이 이 곳에 순례객들을 위한 호텔을 짓고 서울∼아키다 직항로 개설추진 등 아키다 성지 개발사업에 발벗고 나선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각막장애로 시력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던 지난 96년 서울강남성모병원에서 모두 천주교 신자인 26세의 청년과 19세된 소녀의 안구를 기증받아 시력을 회복했기 때문이다.빛을 다시찾게 된 보은의 뜻을 나타낼 사업을 찾던 중 우연히 이 지방을 지나다 초라한 성모상에 관한 얘기를 듣고 전 재산과 남은 생을 바치기로 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들을 확인하는 우리 일행 22명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아키다켄과 시,그리고 그 지역 상공인들이 보여준 ‘고장 사랑’정신과 실천이었다.언론계 인사들로 구성된 우리 일행을 그들은 놓치지 않고이틀동안이나 식사 대접을 하며 관광명소와 특산품,미인과 인심좋은 지역사람들에 관해 열성적으로 설명했다.반도 구미코(板東久美子) 부지사와 이시카와 렌지로우(石川鍊沿郞) 아키다시장,中田건설 나카다 사장 등을 통해 지방자치제는 민·관이 힘을 하나로 뭉쳐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 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8)

    ◎주세페 베르디/희극,일상과 노년의 과정/호색한 팔스타프卿 계교에 빠져 망신살/세익스피어 원전으로 비극 극복의 오페라화/더 우월한 삶의 亂場 일상스민 죽음의 미소/83세 토스카니니 지휘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1.여인숙 술집. 응축한 음악이 웃음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응축과 폭발’이 시작부터 의인화(擬人化),따아,따아,딴,단 세 음(音)으로 딴전을 핀 후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뚱보에다 배불뚝이,모주꾼에 호색한인 팔스타프가 그렇게 소개된다. 소개는 반복되고 장면이 진행된다. 정작 팔스타프는 술에 쩐 상태. 게으르게 퍼져있다. “팔스타프!” 박사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그렇게 눈을 부라리지만 그는 대꾸가 없다. “팔스타프경!” 박사가 그렇게 고함을 질러도 소용이 없다. “왜 내 하인들을 두들겨 패고 그러나.” 그렇게 다그치는 박사를 그는 아예 무시해버린다. “주인장! 세리주 한 병 더!” 음악은 팔스타프 대신 돌아다니고…. 희극 오페라(오페라 부파) ‘팔스타프’는 그렇게 시작된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적절한 웃음 의 축제를 위한 무대가 그렇게 마련된다. 팔스타프는 유부녀를 꼬셔 재미도 보고 재정문제도 풀어보려 한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는 오히려 그 여자와 자기 주변사람들이 꾸민 계교에 빠져 지독하게 골탕먹고 호되게 망신당한다. 그것도 두 번 씩이나. 팔스타프는 실의에 빠지지만 끝내는 술과 웃음으로 낙천적이다. 해피엔딩도 있다. 젊은 딸이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젊은 연인과 결합에 성공한다. 2.오페라 ‘팔스타프’의 이야기장(場)은 이렇듯 매우 평범하다. 대본 자체가 셰익스피어 희극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과 사극 ‘헨리 4세’를 원전으로 하고 있다. 음악의 장은? 다르다. 의인화한 음악=웃음이 오페라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응축,폭발과정을 심화­확대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두 장의 관계 속에서 ‘과정’이 결론을 극복하는 광경. 일상을 매개로 웃음이 성(性)의 온습(溫濕)과 음탕을 포괄한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속에 다시 젊고 청아한 사랑이 탄생한다. “내 황홀의 노래가 내 입을 떠나 깊은 밤멀리 여행한 후 다른 사람의 입술을 만나고 그 입술이 단 한마디 대답해준다면 음악은 더 이상 홀로 있지 않고 은밀한 조화의 기쁨에 떨고 동틀 무렵 사랑으로 온 공기를 채우며 원래 입술로,다른 목소리와 함께 돌아오리니 돌아와 다시 소리를 얻고 그러나 노래의 목적은 자신을 가르는 것을 통합시키는 것 뿐 그렇게 나는 연인의 입술에 입맞추었네…” 그(가사와 선율의 겹침이 자아내는) 청아함은,낭만주의와 달리,문명의 나이를 아는 청아함이다. 그것은 비비꼬이지만 비비꼬임 자체를 순정성(純正性)의 자양분으로 전화한다. 그리고 육체의 순정­순결성보다 우월한 역사적 순정성을 일상 속에 창조한다. 이것은 상부구조의 반영인 비극을 하부구조의 반영인 희극이 극복하는 ‘과정’ 그 자체의 음악­오페라화에 다름아니다. 3.고대 그리스비극에서 일상인은 전령,보초 등 미미한 역할 뿐이었다. 그들의 우스갯소리가 하부구조의 유일한 반영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웃음은 ‘음탕을 동원한’ 정치 풍자였다. 그렇게 시작된 연극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극복하는데는 2천년 이상이 걸렸다. 오페라 부파는 연극의 극복과 더불어,특히 이탈리아 희극과 춤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다시 200년 이상의 발전 과정을 거쳐 베르디의 ‘팔스타프’에 달한다. 그토록 허랑방탕했던 웃음이 음악을 매개로 총체보다 더 우월한 삶의 난장(亂場)을 펼친다. 아니,난장으로 펼쳐진다.동시에 난장을 포괄하는 새로운 총체가 예감된다. 매우 강력하게. 이때,무엇이 보이는가. 아,음악이 죽음을 매개한다. 일상에 스며든 죽음. 그 죽음이 음악의 모습을 띠면서 모종의 미소를 흘린다. 마침내 검은 가면도 없이. 삶과 죽음이 살을 섞는 성(性)과 성(聖). 세속의 종교화. 그 속에 바리톤과 테너가,남자와 여자가,선율과 가사가,아리아와 레시타티브가 각각 완벽하면서도 더 큰 총체를 구성한다. 페르골레시­로시니를 계승한 오페라부파 테너 청아성(淸雅聲)의 경지가 절정에 달하면서 그 모태(母胎)인 바리톤 영역과 완벽하게 한 몸으로 겹쳐진다. 아니 그것은 이미,새로운 총체의 음악화이다. ‘팔스타프’에는 여느 오페라작품을 능가하는 아리아와 중창이 수두룩하지만 따로 분리되어 불리는 경우는 드믈다. 비극은 일상을 끝내지만 희극은 죽음을 일상속으로 ‘연장’시킨다. 희극이 낭만적일 수는 있어도 낭만주의적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이탈리아 부파 음악은 독일­프랑스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그날그날의 이름없는 일상으로 존재하면서 모차르트­바그너를 비롯한 오페라 대가들에게 ‘열등감의 교과서’로 작용했다. ‘팔스타프’는 그 과정을 역전시킨다.베르디로 하여 이탈리아는 대망하던 일상의 이름을 갖게 된다. 4.베르디는 1893년,즉 80세 때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렸다. 출세작 ‘나부코’(1841),대 히트작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등을 거쳐 ‘아이다’(1870)를 끝으로 무대 은퇴를 선언한지 장장 23년 만의 일이었다. 아 그랬던가. 체념과 노년의 과정조차 이 작품은 요했던 것인가. 대본작가 보이토는 베르디와 예술적으로 대립했던 사람. 그렇다. 이 작품은 화해의 과정조차 요했다. 그 모든 과정들이 ‘팔스타프’의 과정으로 응축­폭발,수천년 문명의 나이를 먹은 웃음을 노년화하면서 동시에 일상 속에 낯익은 죽음의 모습을,웃음으로 형상화 한다. 그렇게 과정이 과정화하고 그 총체를 능가하고 죽음은,허망한 채로,위안에 가깝다. 이 위대한 ‘과정의 미학’을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83세의 나이로 연주한다. 그는 27세 때,즉 ‘팔스타프’ 초연 1년 후 이 작품을 직접 지휘했다. 그후 둘 사이에 깊은 예술적 교감이 오간다. 그렇다. ‘팔스타프’는 토스카니니의 과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팔스타프’를 통해 토스카니니의 뿌리 깊은 바그너 취향이 극복된다. 그런 그의 83세 노년 연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1950.4&8 녹음. 1990. BMG60251­2­RG 바리톤 주세페 발뎅고 외(外) 로버트 쇼 합창단(지휘:로버트 쇼)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참소리축음기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6)

    ◎영혼을 두드렸던 ‘소리틀’ 오롯이/뮤직박스·축음기·첨단오디오/세월 들려주는 3,000점 망라/소리의 역사 따라 관람 가능/에디슨관 美보다 앞선 소장품 “십년 감수했다”라는 말이 있다.흔히 쓰면서도 이 말이 축음기와 관련됐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구한말 축음기가 이 땅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의 일이었다.일반인들은 대부분 소문으로만 그 신기한 ‘소리단지’를 들어 알고 있을 뿐이었다.황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고종이 당대의 유명한 광대 朴春載를 궁 안으로 불러 들였다. 박씨가 노래 한마디를 끝내고 축음기를 틀자 박씨의 노래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축음기 소리에 놀란 고종이 불쑥 꺼낸 말 한마디.“춘재,네 명이 10년은 감했구나”.축음기가 사람의 정기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시대의 한과 삶의 고달픔을 달래주던 추억의 축음기부터 첨단 오디오 시스템까지­.시공을 초월해 소리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이색 박물관이 있다.강원도 강릉시 송정동 216의 4 ‘참소리축음기오디오박물관’(관장 孫成木·55).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축음기부터 최신 음향기기까지 소리세계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아파트 숲 속에 덩그마니 자리잡아 조금은 삭막한 분위기지만 알맹이로는 세계 최고다. 200년전의 뮤직박스부터 축음기를 거쳐 최첨단 오디오세트로 안내하는 이 박물관의 소리여행은 흥미진진하다.규모는 비록 3층짜리 본 건물과 에디슨관·뮤직박스관 등 단층 건물 2동이 전부지만 담겨진 내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축음기만 해도 1877년∼1990년대 초기 왁스 실린더 300점,1890년∼1915년 원반 축음기 800점,1920년∼1940년대 중반의 포터블 축음기 200점 등 1,300점. 여기에 에디슨 발명품 500점과 라디오·텔레비전·전축·현대 오디오·음반·서적과 자료들이 곳곳에 진열돼 있어 전문가들도 쉽게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1901년 스페인에서 제작된 수공예 캐비넷형 축음기부터 1925년 영국산 최초의 리모트콘트롤형 축음기인 오토매틱 그래머혼,1930년대 미국산 웨스턴 일렉트릭 보이스 등 모두 내노라는 명품들.1800년도 외장형 나팔 축음기부터 1924년∼1940년 내장형 축음기,1925년형 최초의 텔레비전,1930년∼1940년대의 텔레비전·라디오를 샅샅히 보고나면 축음기 역사의 윤곽이 잡힌다. 에디슨관은 40여종 400점에 달하는 에디슨 발명품만 모아놓은 곳.최초의 벽부착용 스탠드형 전구와 주식시세표시기·영사기 등이 서로 최고를 자랑하듯 자리잡고 있다.최초의 축음기인 틴 호일과 클래스엠,엠베롤라,치펀데일은 금방이라도 에디슨의 탄성을 쏟아낼 것만 같다.현재 미국내에 에디슨 관련 전시관이 세 곳 있지만 에디슨의 명성에 비하면 부실한 편.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내 에디슨관과 디트로이트 포드자동차사내 에디슨관,뉴저지주 멜로파크 에디슨연구소의 소장품을 모두 합해도 여기에 비하면 턱도 없다는게 손관장의 귀띔이다. 뮤직박스는 1796년부터 1800년대까지 사람들의 귀와 혼을 자극하던 소리기기.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면서부터 사라져 갔지만 옛 사람들의 음악세계에선 빼놓을 수 없는 환상적인 소리단지다.이처럼 축음기에 앞서 명성을 떨치던 갖가지 뮤직박스들도 이곳의 자랑거리다.원통형과 원반형,플레이어 피아노,오케스트리온,노래하는 새,움직이는 인형이 있는 뮤직박스,의자 뮤직박스들이 200년전 소리의 세계로 시계추를 돌리고 있다. 박물관 소장품중엔 세계적인 희귀품이 상당수.이 가운데 아메리칸 포노그래프(1900년 미국산)는 아르헨티나의 한 경매에서 구입한 것.수제품으로 만들어진 6대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또 축음기의 여왕으로 불리는 멀티폰(1908년 미국산)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경매장에서 구입한 것으로 현존하는 2대중 한대다. 그런가 하면 1층에 놓여있는 웨스턴 일렉트릭 보이스도 1928년∼35년 당시 음악 애호가들이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 눈으로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일만큼 귀중한 것이라고 한다. ◎孫成木 관장/‘세계 유일’ 많지만 ‘내것’이란 집착 없어/남극 포함 60개국 찾아 강도 납치 사기 수난도/“공간 넓혔으면” 아쉬움 孫成木 관장(55)은 중학교 2년때 작은 아버지의 망가진 축음기를 고친 것을 계기로 축음기를 모으기 시작,박물관까지 만들어낸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축음기 전문가다.축음기를 찾아 돌아다닌 나라만도 60개국.남·북극까지도 다녀왔다고 한다. “한 해 평균 7∼9회,매년 7∼8개월 정도씩 외국에 살면서 소문난 축음기 경매나 소장가들은 빼놓지 않고 찾아 다녔습니다.” 수집 초기엔 가짜를 진품처럼 속은 적도 많고 오지의 소장자를 만나러 가던중 강도를 만나거나 납치당하기도 수십번.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손에 넣은 것이 모두 3,000점.이중엔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을 훨씬 웃도는 축음기도 들어 있다. “세계에서 하나 뿐인 축음기 등 희귀품이 많지만 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습니다.저는 단지 관리·보관 책임을 질 뿐입니다”.초등학생부터 노인들까지 찾아드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지만 가장 반가운 손님은 역시 학생들.단체 학생 방문객들이 찾아올 때면 직접 강의도 한다.이젠 국제적으로도 조금은 알려져 학위논문 자료수집차 찾는 외국인 방문객이 있을 정도다.지난 해 방문했던 張庭延 주한 중국대사는 에디슨 발명품과 중국 문화재 교환전시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孫씨의가장 큰 걱정은 시설확대문제.찾아드는 손님이 늘고 있고 무엇보다도 귀한 소장품을 모두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한다.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후세에 전해주는 게 제 소망입니다.부지만 확보되면 건물과 전시 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을텐데…” ◎참소리박물관 가는 길 강릉시내에서 20분∼25분 정도 소요된다.시내에서 송정·안목 방면 버스편을 이용하면 20분∼25분 정도 거리.터미널에서 48번·21번·19­1번 노선버스가 운행하고 있고 터미널과 강릉공항·오죽헌·경포에서 택시로 각각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연중무휴로 문을 열고 있고 개관시간은 상오 9시부터 하오 5시까지.관람시간은 1시간30분 정도.관람료는 어른 3,500원,중·고교생 2,500원,초등학생 1,500원,6세 미만은 무료,30인이상 단체는 어른이 2,500원,중·고교생 1,500원. 0391)652­2500.
  • ‘시앙스포’ 총서 한국어판 3권 발간/프랑스 지성계 흐름 한눈에

    ◎민주주의 개념·근세 정치사 등 분석 프랑스 지성계의 흐름을 가늠하는 시앙스포(Sciences Po,프랑스 국립 파리고등정치학교) 총서 한국어판이 나왔다. 한울출판사는 프랑스 시앙스포 출판부와 독점계약을 맺고 현재 14권이 발간된 시앙스포 총서 중 세 권을 1차분으로 냈다. 시앙스포는 1872년 프랑스 엘리트 교육을 진흥시키기 위해 ‘정치학 자유학교’로서 창립된 것으로,‘국립 정치학재단’과 ‘파리 정치학 연구원’을 통틀어 일컫는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과 시라크 현 프랑스 대통령,조스팽 현 프랑스 총리 등이 이곳 출신이다. 지난해부터 출간된 시앙스포 총서는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의 현실세계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프랑스 지성들의 연구성과를 모은 것. 전문인들의 영역으로만 논쟁을 한정짓지 않고 ‘대중적 논의 마당’을 지향하고 있는것이 특징이다. ‘한울­시앙스포 총서’란 제목으로 이번에 나온 책은 기 에르메의 ‘민주주의로 가는 길’,올리비에 돌퓌스의 ‘세계화’,모리스 아귈롱의 ‘쿠데타와 공화정’. 동국대 박순성 교수의 감수로 각권마다 국내 전문가의 해설을 붙였다. 비교정치학자인 에르메는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서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이고 근대 민주주의체제의 성립과정은 어떠했는가 등의 문제를 다룬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에의 길은 열정과 희망,환멸과 실망이 공존하는 길이다. 에르메는 이 책에서 편향적이고 고착된 민주주의적인 전제와 거리를 두고 민주주의로 가는 길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세계화’는 파리7(드니 디드로)대학 지리학과 교수의 저서로 세계화의 원리와 그 구체적 전개양상을 소개한다. 특히 그것이 제3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깊게 살핀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역사학 교수인 아귈롱의 ‘쿠데타와 공화정’은 프랑스 근세 200년 정치사를 정리한 책. 대혁명으로 구체제를 무너뜨린 뒤에도 프랑스는 제정,공화정,왕정을 넘나들며 혁명과 쿠데타를 거듭했다. 이 책에서는 대혁명 이후 프랑스가 경험한 세차례의 쿠데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쿠데타의 개념과 의미를 새롭게 정리한다. 시앙스포총서 한국판 2차분으로는 ‘일본과 신아시아’‘인터넷 도시’‘미디어와 민주주의’ 등 3권이 8월중 발간되며,이어 ‘공산주의의 황혼’‘현대사회와 다문화주의’‘유럽은 하나가 될 것인가’‘공공서비스와 시장경제’‘우리는 누구인가­어려운 정체성’‘내정간섭’‘이슬람의 정체’‘군사질서의 종말’ 등이 내년 6월까지 나올 예정이다.
  • 도산학회 연례 학술발표회 주제 발표/아라키 히로시

    ◎日 기토라 고분은 백제왕족 묘 일본 나라(奈良) 기토라 고분의 피장자는 일본 천황족인가,아니면 백제왕족인가.도산학회가 5일 대전시 도산회관에서 개최한 연례 학술발표회에서 日 히로시마(廣島)대 명예교수 아라키 히로시(荒木博之)씨는 이 고분의 피장자가 백제왕족이었음을 강조,눈길을 끌었다.다음은 발제 요지다. ○‘황국사관’ 아직도 남아 지난해 3월7일자 일본신문에는 일제히 기토라 고분 석실내부 사진이 실렸다.‘최고의 星宿圖(별자리그림) 확인’이라고 써놓고 ‘天武직계의 皇子墓’인가 라는 토를 달았다.실망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1971년에 高松塚 고분이 발견됐을 때도 일본학자들은 피장자를 天武天皇(672∼686)과 그 세 아들이라고 추정했었다.일본 역사가와 고고학자들의 눈에는 잘못된 꺼풀이 씌여 있다.그들은 藤原京과 天武·持統陵을 잇는 ‘성스러운 선’을 그어 그 위에 고송총을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이번 새로 발견된 기토라 고분도 고송총처럼 ‘성스러운 선’상에서 천황묘라고 생각하고 있다.이들 일본학자 뇌리에는 아직도‘황국사관’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황국사관’이란 “일본 역사는 반드시 大和(야마토)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즉 “태초에 야마토가 있었다”는 근거없는 선입견을 말하는 것이다.바로 이 황국사관 때문에 한국에 대한 차별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일본의 고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벽화,특히 고구려 계통의 사신상(四神像)이 고송총 고분에 있는데 이것은 고구려나 백제에서처럼 일본에서도 왕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이 주장에 따르면 그 피장자는 천황족이 된다.즉 고송총 고분을 고구려 백제의 왕릉으로 단정하면서도 왕릉인 이상 일본에서는 천황릉이 아니겠느냐고 추론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일본 땅에 백제의 왕릉이 있을 수 없다는 대전제 아래 내린 추단에 지나지 않는다.과연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의 한 교수가 피력한 ‘천궁에 잠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글은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성숙도는 천형으로된 우주를 표현한 것이나 동시에 지상의 황제를 중심으로 한 방형(方形)의 도성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이같은 벽화를 그려놓은 묘에 잠든 사람은 죽은 뒤에도 우주의 지배자요,세계의 지배자 계열에 드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고송총 고분이나 기토라 고분의 피장자를 천무·지통(673∼697)의 고위고관으로 추정하는 설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이들 고분에 일본의 황족,특히 천무의 황자들이 매장돼 있다는 설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으나 예컨대 草壁 황자의 묘일 가능이 높은 동명신 고분에는 벽화가 보이지 않는다.” 천무의 고위고관설과 천무의 왕자설을 부정한 이 견해에 따르면 석실내부에 별자리를 그려놓는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계집단은 629∼641년경에 도래한 백제왕족 뿐이라는 것. ○天武 황자 매장 근거 없어 이른바 ‘성스러운 선’상에 백제왕족의 능묘가 끼어 있다는 것은 백제와 야마토조정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긴밀한 연계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이 사실이야말로 태초에 야마토가 있다고 주장하는 강경파 학자들이 승복할 수 없는 점인 것이다.기토라 고분이 있는 飛鳥(야스카)는 대화조정이 平城京으로 천도하기 약 200년전에 도읍했던 곳이다. “그곳 인구의 80∼90%가 도래인이었다”고 하는 정사 ‘일본서기’의 기술을 냉정하게 검토해 보면 당시 비조의 상황이 어떠했는가 불을 보듯 명백한 것이다.
  • 스리랑카 불교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73·끝)

    ◎그곳에 가면 ‘부처’가 된다/아누라다푸라­부처가 정각이룬 보리수 50m 루완웰리탑 위용/폴론나루와­드러누운 열반상 푸근/시기리야­200m 암벽에 세운 궁전 벽화 미인 살가운 미소 【스리랑카=金鍾冕·金明國 특파원】 인도양 위에 한 점 외로이 떠있는 망고모양의 섬 스리랑카.‘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을 지닌 스리랑카의 옛 이름은 실론이다.동북부의 타밀 반군과 14년 넘게 내전을 치르고 있는 나라지만 스리랑카에는 정신적 풍요로움이 깃들어 있다.유구한 불교적 전통 때문일까. 스리랑카에는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쇼카왕의 아들 마힌다가 불교를 처음 전전했다.석존이 열반한 직후에 전파된 소승불교였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신할라 왕조의 보호 아래 민중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식민세력인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가 불교를 박해했을 때에도 스리랑카사람들은 미얀마나 타이의 고승을 맞아들이는 등 소승불교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갔다.스리랑카는 지금도 소승불교의 성지로 숭앙받고 있다. 스리랑카는 전국이 문화유적지라고 할 만큼 고대 문화가 온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그 유산은 주로 아누라다푸라와 폴론나루와,그리고 캔디를 잇는 이른바 문화삼각지대(cultural triangle)와 시기리야에 몰려 있다.아누라다푸라는 기원전 5세기경에 세워진 스리랑카의 첫 수도다.콜롬보에서 북쪽으로 200㎞쯤 떨어진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인 ‘스리 마하 보리수’가 있다.전하기로는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쇼카 왕의 딸 상가미타가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가지를 가져와 옮겨 심은 것이다.이 보리수는 부처가 정각(正覺)을 이룬 나무로 신성시된다.수령(樹齡)이 2천200년이 넘는 이 보리수는 잎은 무성하지만 줄기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보리수를 지나 오른편에는 40개씩의 돌기둥이 40줄로 늘어서 있는 ‘로하 파사다’ 절터가 있어 그 옛날의 영화를 전해 줬다.그 너머로는 높이가 50m에 이르는 루완웰리 대탑이 하늘을 찌를 듯 위용을 드러냈다.이 탑은 338개의 코끼리 조각품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채로웠다. 11세기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으로 타격을 받은 스리랑카는 수도를 아누라다푸라에서 폴론나루와로 옮겼다.밀림 속의 고대도시 폴론나루와의 유적은 남북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 둘러보기 편했다.이 옛 도읍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비자야 바후 1세와 파라크라마 바후 1세 두 왕 시대의 것들이다.폴론나루와에서의 주목거리는 단연 파라크라마 바후 1세 때 세워진 갈비하라 불교사원이었다.이 곳에는 열반상·입상·좌상 등 3기의 불상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길이가 14m나 되는 열반상은 오른팔로 머리를 괴고 왼팔은 몸을 따라 쭉 뻗은 형상이었다.열반상 특유의 좌우 크기가 다른 발 모습도 볼 수 있었다.발 밑에 자잘하게 뻗친 연꽃의 뿌리는 땅을,꽃은 하늘을 향했다.입상의 높이는 7m,좌불상은 5m에 달했다.팔짱을 끼고 있는 입상은 석가의 수제자인 아난 존자라고 한다.하지만 연꽃대좌에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석가의 제자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석가라는 설도 있다.좌불상은 진리를 터득한 석존을 나타낸 것이다. 계율을 중시하고 자기 인격완성에 힘을 쏟는 소승불교의 참뜻을 새기며 시기리야로 발길을 돌렸다.시기리야는 5세기 카샤파 왕조때의 수도로 고고학적으로 특히 가치있는 유적지다.폴론나루와에서 시기리야까지는 약 70㎞.자동차로 정글 속을 50분 가량 달리니 곧추선 적갈색의 바위산이 거대한 요새처럼 다가왔다.이 시기리야 록은 예술가이자 정신이상자이기도 했던 카샤파왕이 부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 뒤 후환이 두려워 바위 꼭대기에 세웠다는 궁전 터다.암벽의 높이는 200m는 족히 됐다.이곳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시기리야 벽화 때문이다. 벽화를 보려면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타고 꼬불꼬불 나 있는 철제 계단을 올라야 했다.그것은 마치 외줄을 타듯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고행이었다.정상에 오르니 앙가슴을 훤히 드러낸 시기리야 벽화 미인이 살가운 미소로 이방객을 맞아 줬다.시기리야 벽화는 왕의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압살라라는 요정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이 ‘시기리야 레이디’는 당초 50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훼손돼 18명만 남아 있다.시기리야 벽화 아래쪽에는 ‘미러 월(mirror wall)’이라 불리는 회랑 벽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달걀 흰자와 꿀,석회 등을 이겨 칠했다는 ‘거울 벽’은 진주처럼 반짝거렸다.벽에는 역대 왕조의 흥망을 노래한 서사시와 시기리야 벽화의 여인을 칭송하는 시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이 시들은 신할라어로 씌여진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의 치아사리를 모신 불치사(佛齒寺)로 유명한 고도(古都) 캔디는 신할라 왕조의 마지막 도읍지다.살색 벽에 갈색 지붕을 한 불치사는 인공호수인 캔디호를 끼고 있다.이 사원은 4세기에 자이나교의 세력에 쫓긴 남인도의 한 왕녀가 부처의 치아를 머리카락 속에 숨겨 스리랑카로 가지고 왔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그 부처의 치아는 지금도 불치사 본당에 있는 일곱 겹의 황금상자 속에 보관돼 있다.스리랑카 사람들은 이것을 민족의 상징이자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긴다.스리랑카에서는 매년 7∼8월에는 불치 축제가 열린다.화려한 의상을 걸친 코끼리의 등에 부처의 치아를 싣고 시내를 한바퀴 도는 행사다.‘불심(佛心)의 나라’스리랑카에 가면 부처의 얼굴을 닮는다. ◎여행 가이드/콜롬보서 200㎞ 거리… 시기리야는 버스타야 아누라다푸라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유적지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유적지는 도시를 흐르는 말와투 강의 서쪽에 주로 있다.유적순례는 유적지구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이수루무니야 사원에서 출발하거나 스리 마하 보리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폴론나루와는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교통은 좀 불편한 편이다.아누라다푸라에서 폴론나루와까지는 하루 여러 차례 버스가 다닌다.시기리야까지는 철도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가야 한다.직행편이 없을 경우에는 스리랑카 최대의 석굴사원이 있는 담불라를 거쳐 가야한다.‘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로 불리는 캔디에서는 캔디왕조시대에 궁전연회에서 추었던 춤에 민속무용적 요소를 가미한 캔디안 댄스를 관람할 수 있다.
  • 박광용 가톨릭대 교수 ‘영조와 정조의 나라’

    ◎18세기 탕평정치의 지혜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조명을 많이 받는 시기를 꼽으라면 우리는 흔히 영·정조 시대를 든다. 이는 90년대 들어 사회개혁이 절실한 화두로 등장한 우리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학계에서는 18세기를 ‘진경시대(眞景時代)’라고 해 문화사적으로 황금기 내지는 이상사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그러나 200년전 조선의 정치사라고 하면 우리는 아직도 당파싸움 때문에 뒤주에 갇혀 굶어 죽었다는 사도세자를 떠올리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정조시대가 현대의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가톨릭대 박광용 교수(국사학과)는 18세기의 조선사는 모름지기 정치사라는 역사의 본령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최근 출간된 그의 저서 ‘영조와 정조의 나라’(푸른 역사)에는 우리 현실에서 특히 교훈으로 삼을만한 18세기 탕평(蕩平)정치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 500년사는 흔히 보수와 정체의 역사로 인식된다.또한 조선의 유교문화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문화로 간주되기도 한다.이처럼 조선정치사를 부정적인 의미로,당파싸움의 역사로 규정한 것은 일본 식민사학자들로부터 였다.그들은 조선 정치사를 서술하면서 조선 건국 때는 친명파와 친원파의 대립에,16세기에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에,17세기부터는 4색당파간의 대립에 초점을 맞춰왔다.또 18세기 이후에는 시파와 벽파의 대립을 들춰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조선 정치사의 본색이라고 강변했다.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사회가 500년동안 유지된 것은 역사의 우연일뿐 사회통합 능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비생산적인 당쟁사와 지배층의 권력투쟁만 거듭된 국가가 어떻게 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속될 수 있었겠는가.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조선의 정치사를 새롭게 복구해낸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영조와 정조가 재위했던 기간은 모두 76년이다.그 중 영조가 닦아놓은 기반을 바탕으로 개혁을 추진한 정조의 재위기간은 24년에 이른다.개혁을 추진하기에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그런데 왜 정조가 죽자마자 모든 개혁이 무위로 돌아갔을까,이것이 박교수가 이 책에서 던지는 화두다.박교수는 영조가 추진한 개혁의 가장 큰 문제는 전면적인 관료제도 개혁을 내세웠지만 실력주의 원칙에 입각하지 못한 점이라고 본다.반면 정조가 추진한 개혁의 문제점은 제도개혁보다 실력주의에 입각한 점진적인 개혁을 표방함으로써 개혁의 기반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데 있다고 분석한다.요컨대 영·정조시대 개혁의 한계는 진보적 개혁을 꿈꾸면서 보수적 개혁을 추진한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18세기 탕평정치를 주도한 영조,사도세자,정조 등 3인과 당대 정치권력에 큰 영향을 미친 정순왕후 혜경궁 홍씨의 개인적·정치적 면모를 새롭게 해석해낸다. 특히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를 둔 영조의 컴플렉스와 인간적인 면모,‘학문정치’의 모델인 정조의 정치개혁의 성격,경종독살설,사도세자가 죽게 된 진짜 이유 등 역사의 뒷면을 밝혀내 주목된다. 탕평정치 시대를 이끈 이들에 대한 인물론도 눈길을 끄는 대목. 탕평론을 주도한 정치가들 즉 영조 탕평의 적극적인 참여파인 조현명과 원경하,비판적 참여파인 이천보·유척기·오광운,정조 탕평의 세 기둥인 채제공·김종수·윤시동,정조가 내친 실력자이자 측근인 홍국영,보수세력을 대표한 심환지,진보세력을 대표한 이가환 등의 사상을 다룬다.또 탕평정치에 힘입어 전개된 문예부흥이 배출한 실력자이자 남인 사회개혁론자인 정약용,노론 이용후생론자 박지원,소론양명론자이자 현실비판론자인 정제두에서 시작된 강화학파의 정치사상과 사회개혁론의 특징도 아울러 살핀다.
  • 濠서 인공각막 첫 개발/79세 실명자에 이식/3년내 실용화 계획

    【퍼스(호주) AFP 연합】 사상 최초의 인공각막이 호주에서 개발됨으로써 실명한 사람들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호주 퍼스에 있는 라이온 안질환연구소 원장이자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어대학 안과교수인 이언 콘스테이블 박사는 28일 7년간의 연구끝에 세계 최초의 ‘연성 합성각막’을 개발,이를 79세의 실명자에게 이식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인공각막은 안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는 연성 플래스틱으로 만들어졌으며 수분함유량이 높아 외형상으로는 콘택트 렌즈와 비슷하지만 가장자리를 따라 구멍이 뚫려있다. 콘스테이블 박사는 이 인공각막이 앞으로 3년안에 실용화되어 1천950달러(약 2백80만원)정도면 실명자들에게 이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년동안 많은 안과전문의들이 유리,방풍유리,강력 플래스틱,실리콘,티타늄,심지어는 인간치아를 이용하여 인공각막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지금까지 완전한 성공을 거둔 경우는 없었다.
  • 로마제국사/인드로 몬타넬리 지음(화제의 책)

    ◎저널리스트가 쓴 로마 흥망 1,200년 【金鍾冕 기자】 모든 위대한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제국은 외부의 적에 의해 무너진 게 아니라 내부의 문제들로 인해 스스로 붕괴된 것이다.로마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가족단위는 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됐고,고위층에는 낙태가 만연했다.티베리우스 황제시대에는 농민들이 자식을 많이 낳도록 격려금을 지불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이러한 로마몰락의 양상을 살펴보면 “생선은 머리부터 썩기 시작한다”는 나폴리의 속담이 한층 실감있게 다가온다. 이책을 지은 몬타넬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그런 만큼 그의 글은 현실감각과 비판의식이 돋보인다. 로마 제국사는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로부터 시작해 기원후 476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 시대에 종식됐다.로마제국은 1천2백여년의 기간동안 수많은 영광과 불명예를 서유럽에 남겼다.그 궤적은 곧바로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다. 로마 공화정은 상업과 무역을 주로 한 에트루리아족을 물리치고 등장한 농업계층에 의해 밝은 장래가 보장됐다.그러나 로마는 포에니 전쟁이라는 역사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전생애를 바쳐 농업사회의 전통을 주장했던 카토는 그리스문화를 추종하던 포에니 전쟁의 영웅 스키피오를 눌렀지만 절대권력을 꿈꾸던 공화정 말기의 야심가들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다.공화정은 루비콘 강의 일화에도 불구하고 브루투스에 의해 살해된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몬타넬리는 브루투스를 저속한 야심가라기 보다는 “세균이 아닌 열을 제거함으로써 심각한 병세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일종의 ‘작은 악마’”로 본다. 이 책에서는 인명과 칸나이 전투·자마 전투 등 몇몇 이름들을 로마시대 당시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김정하 옮김 까치 1만5천원.
  • 국제 금융계에 한국투자 손짓/英 경제인 초청 연설안팎

    ◎런던 은행·보험가 큰손 포함 250여명 성황/“여러분의 투자 온 국민이 두손들어 환영” 【런던=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의 속내가 엿보이는 행사가 2일 하오(한국시간) 잇따라 열렸다.영국 금융계 인사들과 조찬과 영국 경제인연합회(CBI) 오찬 연설이다.정상회담,회의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세일즈 외교’의 생생한 현장인 셈이다.朴智元 공보수석도 “의미있는 행사”라고 수차례 되뇌일 정도다. 金대통령은 두 행사에서 영어로 연설했다.사전에 원고내용을 손수 다듬었다. 특히 조찬행사는 리차드 에버라드 니콜스 런던시장이 마련한 것으로 내로라 하는 영국 금융·보험계 책임자 16명이 참석했다.에디 조지 중앙은행총재,윌리암 퍼버스 홍콩상하이그룹 회장,패트릭 길람 스탠다드 챠터레드그룹회장,브리안 피트맨 일로이드 TSB그룹 회장 등이 그들이다. 조찬장소도 1752년에 준공된 200년이 넘는 4층짜리 석조건물로 니콜스 런던시장의 집무실겸 거처다.金대통령에 대한 영국 금융계의 각별한 배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이어 파크 레인호텔에서 열린 金대통령의 영국 경제인연합회 초청,오찬연설에도 크리브 톰슨 CBI차기회장,로버트 하워레이 파트너쉽코리아자문회장,마이크 일로이드 GEC알스톰영국법인사장 등 영국 유력 경제인 250명이 참석,성황을 이뤘다. 金대통령 연설의 핵심은 ‘나는 앞으로 외국인의 투자가 세계 어느나라 보다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한국을 만들 것을 굳건히 약속한다’이다.그러면서 주식 및 채권시장의 개방,기업 인수합병(M&A) 제한 철폐 등 최근의 노력과 국내 상황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달안에 적대적 M&A와 외국인에 의한 부동산 취득을 허용하는 내용의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법을 개정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金대통령은 “우리국민들이 여러분을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며,다시 한국에서 만나길 기대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음했다.
  • ‘…아르모니코’의 ‘사계’·‘크로노스‘의 ‘초기음악’

    ◎신선함·실험성 가득한 연주 2선 상업적 이름하나 걸어놓고 속주,묘기부리기로 때우는 구태의연한 연주가 진력난다.어디선가 신선하고 진지한 실험의 바람 한줄기 불어오지 않을까. 이렇게 목마른 이들이라면 다음 두장을 주목하라.이탈리아 실내악단 ‘일지아르디노 아르모니코’(조화로운 정원사들이란 뜻)의 ‘사계’와 현악사중주단 ‘크로노스 콰르텟’의 ‘초기음악’(이상 텔덱). 지난해 소량 수입됐다가 이번에 라이센스로 다시 나오는 ‘사계’는 비발디 원전의 격식에 연주자들의 젊은 에너지가 결합,독특한 패기를 풍기는 음반.85년 탄생한 ‘…아르모니코’는 이탈리아에서 귀하다는 정격연주(고음악을 옛 격식대로 연주하는 것)단체.‘사계’는 허구 많은 이들이 녹음한 잘 팔리는 레퍼토리지만 ‘…아르모니코’의 연주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갈수록 빨라지기만 하는 연주 풍토에서 오히려 느긋하게 제 템포를 지키면서도 바로크 특유의 돌출적인 격렬함을 제때 집어내주고 있기 때문인듯. 한편 ‘초기음악’은 ‘크로노스…’의 최신보.지난 96년 내한연주로 더욱 친근해진 유명한 현대음악 연주단체 ‘크로노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초기음악’의 세계로 귀환한게 특이하다.하지만 몇곡 들어보면 ‘초기음악’이란 화두가 ‘크로노스…’의 갑작스런 선회나 변절(?)은 아닌듯.차라리 이들은 초기음악에 이미 간직된 ‘현대음악’의 맹아를 궁구하고 있는 것 같다.중세의 카시아,힐데가르트 빙엔부터 케이지,슈니트케,다울랜드 등 현대작곡가들까지 1200년 격조한 이들이 한 음반에서 소리로 협력,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엮어냈다.
  • 세종대왕별/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지구에서 육안으로 볼수 있는 가장 먼 천체는 안드로메다성좌다.그러나 거대한 이 와상성운은 2백만 광년이나 떨어져있어 밤하늘의 희미한 얼룩으로 보일 뿐이다.태양밖에 있는 별중에서 태양에 가장 가까운 별은 4.25광년 거리의 프록시마 켄타우리이고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은 천랑성으로 불리는 시리우스와 카노푸스,인마좌의 알파성과 목동좌의 아르크투루스 등이다.가장 작은 항성들은 행성정도의 크기로 직경이 1만6천㎞ 이하가 대부분이다.이제까지 발견된 가장 작은 별은 이리좌의 457번성으로 태양크기의 1천분의 3밖에 되지 않으며 지구보다 작다. 일본인 천문학자 와다나베 하나로(도변화랑)씨가 발견한 ‘1996 QV1’이라는 소행성에 우리의 세종대왕을 뜻하는 ‘(7365)SEJO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이름이 붙여진 7천여개 별중에서 7천365번째로 우리의 별이름을 갖게된 셈이다.평소 세종을 존경해온 도쿄천문대 후루카와 기이치로(길천기일랑)교수가 지난해 600주년을 맞은 세종대왕탄신을 기념하기 위해 발견자인 와타나베씨의 동의를 얻어 국제천문연맹에 제출하면서 이뤄진 것이다.세종의 업적은 한글창제 외에도 그 시대의 장영실 측우기는 1639년 이탈리아의 가스텔리가 발명한 것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것이다.궁중에 과학관인 흠경각을 설치하고 혼천의·해시계·물시계 외에 천문·역법에 관한 ‘제가역상집’을 펴낸 것도 세종대왕이다.만약 그가 일본의 왕이었다면 그는 세계를 통틀어 학문과 문화의 근본이요 과학의 원조로서 국민의 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힘이 아닌,일본학자들에 의해 붙여지긴 했으나 국경을 초월하여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는 그들의 자세는 뭔가 배울만 하다고 여겨진다.누구나 저많은 별중에서 하나의 별이 되고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고 흠모하며 꿈을 갖게되기 때문이다.가람이 ‘저별은 뉘별이며 내별 또한 어느 게요’한 것처럼 우리의 별도 있다고 생각하니 밤하늘의 별이 더욱 빛나고 희망차게 보일 것 같다.
  • 파키스탄에 대홍수/750여명 사망·실종

    【카라치 AP AFP 연합】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에 최근 200년 만의 최대홍수가 발생,주민 500여명이 숨지고 250여명의 실종됐다고 관리들이 4일 말했다. 주정부의 한 관리는 “지난 2일부터 내린 폭우로 케츠강이 범람,이란과 접경한 투르바트 등의 지역에서 70여개 마을이 물에 잠겨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 관리는 “공군당국이 수송기나 헬기를 이용,구호를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 비가 계속 내려 군용기가 착륙을 못하고 되돌아오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 관리는 “피해지역의 상당부분이 36시간 동안이나 물에 잠겨 사망자수는 더욱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 극심한 서울 지하수오염(사설)

    서울시 지하수 오염도가 이제는 더 방치할 수 없는 위기에 이르렀다.서울시가 8천470개 지하수공의 수질을 정밀 분석한 결과,음용적합판정을 받은 지하수는 4.9%에 불과하다.하지만 이것이 도봉산·북한산·관악산 부근에 있는 수공들이므로 실제로는 서울 전역에 걸쳐 생활구역에서는 지하수를 먹을수 없게 된것이다. 일부지역은 공업용수로도 쓸수 없게 되었다.이 분포가 또한 놀랍다.영등포·구로공단 지역이 오염됐다는 것은 납득할만하다.그러나 성동구청부지·동대문구 이문동·노원구 공릉1동등도 공업용수 사용불가지역이 된것은 지하수 오염상태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심화돼 있는가를 알려 주는 것이다.이 지역 악화원인은 쓰레기매립이나 이에 연관된 악성 침출수 이동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그러니 현재 뚫려 있는 수공 조사가 아니라 서울 전역을 검증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질 것이다. 지하수오염 개선은 당대에 불가능하다.최소 100년에서 200년이 소요된다.이것도 더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전제조건하에서다.서울시는 이 결과에 대처해 우선지하수조례를 개정키로 했다.지하수개발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지하수개발 실패공과 폐공 방치를 막기위해 개발사업자에게 원상복구이행보증금을 받는 등 몇가지 제도적 강화안을 마련했다.이런 접근도 물론 필요하다.그러나 더 급한 일은 현재의 지하수 오염상태를 거점별로 정확히 표시해서 시민들의 당면한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그리고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지역은 개발중지 명령을 내리는 것이 옳다. 이런 상황은 사실상 전국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한국수자원공사가 지난해 4월부터 8월까지 농어촌에서 식수로 사용하는 수공 1천17곳을 확인한 결과 48%가 식수부적합으로 판정됐다.축산농가지역에는 음용수 수질기준 7배를 넘는 곳까지 있다.지표수 오염보다 지하수오염이 더 근본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 포괄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 장관들의 고향/황병선 논설위원(외언내언)

    서울 주재 미국대사관의 한 고위 외교관은 한국말을 거침없이 잘 한다.핑계없는 무덤 없다느니,동상이몽같은 속담이나 고사성어까지 한국사람처럼 적절하게 구사해 ‘징그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그는 ‘전라도 사람’이다.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부인이 호남출신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다.50대 초반인 그는 젊은시절 영어를 가르치며 2년여 목포에서 살았는데 이국생활의 불편함 속에서도 그곳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과 해변의 풍광에 반해 그 지방과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고향(호남)사람’을 만나면 더 정겹게 느껴지고 개인적으로 ‘호남 대통령’ 당선이 기뻤다고 했다. 이 외교관의 조상은 200년전 미국으로 건너간 덴마크인이다.그들은 모국과 기후나 지형이 닮은 미국 중북부 미시간호반 밀워키에 정착했다고 한다.그래서 덴마크계가 많이 살고 맥주가 유명한 밀워키가 이 외교관의 또 다른 고향이다.하지만 그가 국무부 관리로 외교활동을 할때 그 기준은 엄격하다.덴마크,밀워키,목포가 있는 한국이 관계된다 해도 미합중국 국익이란 원칙에서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출신 주에서 수십,많게는 수백명의 심복을 거느리고 수도 워싱턴에 진주한다.카터의 조지아 마피아,레이건의 캘리포니아 사단,클린턴의 아칸소 사단처럼 이들이 백악관을 비롯,정부 요직에 실세로 포진한다.이런 사실은 언론에 보도되고 온 국민이 다 안다.그래도 불평이 터지거나 이를 문제삼는 일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 선거를 치를 때나 조각 또는 개각을 할때면 항상 후보의출신지역,각료의 지역별 안배가 온 국민의 첫 손가락 꼽히는 관심사가 된다.전문성이나 능력보다 지역 안배에 밀려 장관자리를 놓치는 일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자기 고장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또 고장사람을 미더워하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다.그러나 반드시 할만한 사람들이 요직을 맡기에,업무나 인사에 공사구분이 철저히 지켜져 국민 이해에 문제가 없기에 미국에서는 출신지가 문제되지 않는다.공직을 50여개 주별로 안배하라고 한다면 우스꽝스런 소리가 되고 말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공직사회에서 지연학연에 따른 정실인사를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이번 조각에서도 예의 지역안배가 주요 인선기준이 되었다.이것은 지역주의가 엄존한다는 현실적 증거다.오랫동안 홀대받았던 지역 인사들을 다수 기용한다면 과거와 균형을 맞추는 일이 될까,아니면 또다른 지역 차별이 될까.한국의 출신지문제는 참으로 껄끄럽다.
  • 요르단 페트라 고대도시(세계 문화유산 순례:64)

    ◎2㎞ 병목 협곡 끝에 펼쳐진 암벽 유적/예수의 아람어 쓰던 BC 100년 아랍왕국 수도/4세기 지진 매몰뒤 1958년 발굴… 웅장미 자랑 페트라는 남부 요르단의 보석으로 불리는 암벽도시이다.그래서 페트라의 의미는 현지어로 바위이다.기원전 100년경 나바티아 아랍인들이 세운 왕국의 수도였다.분홍빛과 노란색,홍옥같은 선홍 빛깔의 암벽을 깎고 갈아서 그 속에 궁전과 신전을 짓고,사람이 사는 집은 물론 무덤까지 만들었다.그리고는 거대한 도시를 이루었다.지상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요새도시가 되었다.용맹하고 건강한,그러면서도 열정과 로맨스가 있는 남성다운 도시이다.세상에 태어나서 페트라를 보지 않고는 사나이라 말하지 말라는 아랍인들의 자긍심을 다시 한번 읽게 된다. 페트라는 기원전후부터 사막 내륙의 캐러번 대상과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해로 교역의 필수적인 중간 기착지였다.사막 한가운데 유일하게 풍부한 물줄기가 있고,사막 유목민인 베두윈들의 습격을 막아줄 수 있는 바위로 된 성벽이 있었기 때문에 중동 일대 대상들의 안전한 휴식처가 되었다.그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요르단으로 들어가면서 바위를 쳐 물이 나오게 했다는 곳이 바로 페트라이다.유적 주변 마을인 와디무사에는 아직도 모세의 샘이 있고,지금 이 마을의 중요한 식수원이 되고 있다. ○바위산 깎아 궁전·신전 건설 상인들은 예멘에서 향료를 가져다가 지중해 연안도시로 운반했고,직물·곡식·그릇 등과 같은 북부의 산물을 아랍 내륙과 남쪽으로 실어 날랐다.예수의 언어였던 아람어를 사용하던 이 아랍왕국은 하리라트 4세때 전성기를 맞았다.북부 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 남부 및 시리아를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를 장악했다.국제무역이 가져다 준 풍요의 결과였다.당시 강성하던 로마제국이 이 사막의 보고를 그냥 둘 리 없었다.로마의 끈질긴 공격에 시달리던 나바티아 왕국은 결국 수도 페트라에서 최후의 일전을 맞았다. 도시 입구에는 200m 높이의 거대한 두 개의 바위산이 있고,2∼3m의 좁은 틈새를 통해 도시내부로 향한다.하늘을 깎아지르는 거대한 바위산을 헤집고 무려 2㎞에 달하는그 좁은 협곡을 지나야 비로소 도시안으로 들어 갈 수 있다.뚫을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한 로마 황제 트라얀은 이 난공불락의 요새왕국을 공격하기 위해 비상수단을 강구했다.사막 바깥에서 도시안으로 흐르는 샘물의 물줄기를 막아버린 것이다.물이 없는 페트라는 결국 서기 106년 지친 몸을 로마에게 맡기고 만다.기원전 100년에 시작한 200년의 짧은 역사였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새벽 자동차로 홍해를 향해 남쪽으로 네 시간을 달려온 후,페트라 입구에서 협곡을 따라 도시 안으로 향한다.30층 빌딩 높이의 협곡 양쪽에도 바위를 깎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건축물을 만들어 놓았다.거대한 생활조각의 현장이다.드디어 마지막 협곡의 좁은 틈 사이로 넓은 사막의 광장이 나타난다.또 다른 세계였다.이 공간이 높은 바위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다.도시는 땅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계곡의 바위 틈속에 있다. 궁전도 신전도,사람들이 사는 집들도,창고와 오락시설,심지어 왕과 귀족들의 무덤까지 모두 계곡의 바위 그 자체이다.그리고 하나하나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정교한 조각 예술품이다.로마시대 유적이라고는 유일하게 땅위에 지어진 8천석 규모의 원형극장이 눈에 띈다. ○카즈네 왕묘 건축물 압권 페트라의 압권은 역시 카즈네라 불리는 왕묘 건축물이다.협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처음 마주치게 되는 도시광장 맞은 편에 있는 핑크빛 건축물이다.건축물이라기 보다는 200m 높이의 바위산 전체를 하나의 신전으로 조각해 놓은 모습이다.2층으로 조각되어 아래층은 지상에서 걸어 들어갈 수 있게,속을 깊이 파 놓았다.6개의 정교한 기둥이 받치고 있고,2층은 창문과 발코니,돔식 처마에 이르기까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바로코식 석각이 연출된다.그리스 신전의 양식을 많이 닮았다.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는 정교한 건축조각의 미는 카즈네 신전에 못하지만,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엘­다이르 수도원이 있다.가로 60m·높이 45m에 달하는 역시 2층의 바위건물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화려한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항상 그러하듯이 해지는 쪽에 무덤지대인 네크로폴리스가 있고,궁전과 거주지들이 바위병풍을 따라 아파트촌을 연상시킬 정도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어느 하나 소홀하게 대충 지은 집이 없다. 또다른 한 쪽에는 로마의 아고라에 해당되는 옛 장터가 있고,나바티안의 공중목욕탕,샘터 등이 페트라의 2천년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다.일몰이 다가오면 황혼에 비친 페트라 전체가 선연한 핑크빛으로 변한다.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그저 환상적인 색조의 향연이라고 할까.햇빛의 방향이 바뀌면서,그 각도에 따라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분위기가 연출된다.붉은색,노란색,분홍색,오렌지색 그리고 그 명암들. 화려했던 난공불락의 도시 페트라도 기원전 4세기경 대지진이라는 재앙의 희생물이 된다.다시 1천500년간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 잊혀진 도시였다.그리고 1812년 스위스 탐험가에 의해 서방세계에 발견된 후,발굴이 시작되어 1958년에야 전체 모습이 다시 인류의 품에 안겼다.페트라가 멸망한 후,그 역할은 시리아의 사막도시 팔미라로 넘어 갔다.페트라도 팔미라도 로마가 사막에 만든 속령인 아라비아주에 편입되어,그리스­로마화라는 새로운 문화적 학습을 시작하게 된다. ◎여행가이드/암만서 자동차 4시간/모텔 등 숙박시설 갖춰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에 있다.주변의 사막풍광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다.페트라 시에서 유적지 입구까지 미니버스가 자주 있다. 유적 주변 마을인 와디 무사에 아트와시 호텔(03­33642) 등 조그만 모텔들이있다. 라 베두이나(03­336930)여행사와 한국계 컬처클럽 투어(06­632299)가 페트라 전문 여행사이다.
  • 한반도 30억년의 비밀/유정아 지음(화제의 책)

    ◎공룡의 생태와 멸종 과학적으로 고찰 중생대에 1억 6천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공룡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고찰한 공룡 입문서.거대한 호수로 이뤄져 있던 한반도의 중생대 백악기에 이 땅을 지배했던 공룡의 존재를 그 발자국과 뼈 화석,공룡 발굴과정 등을 통해 복원,최초로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들을 되살려 낸다.또 공룡발굴사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공룡의 정체와 생태에 관한 최신 이론,공룡 멸종의 미스터리 등을 추적한다. 공룡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지금으로부터 약 2억2천만년전 지구상에 등장했다.이 신비로운 동물은 그 뒤 1억 6천만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지구를 지배하다가 백악기 말에 갑자기 멸종했다.인간이 공룡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0년 밖에 되지 않는다.우리는 그동안 공룡에 관한 정보를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이나 ‘잃어버린 세계’ 등을 통해 얻어온 것이 고작이었다.때문에 공룡은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인식되어 온 측면이 있다.하지만 한반도는 세계적인 공룡화석의 산지다.우리나라에도 공룡이 살았다는 사실은 1972년 경남 하동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후 경북 의성에서 몇개의 작은 뼈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확인됐다.그러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종류의 공룡들이 살았을까.전남 해남 우항리에서는 세계 최대의 익룡 발자국과 세계 최고인 1억년전 새 발자국이 발견됐다. 하루 1톤의 먹이가 필요하다는 목긴공룡이나 초식공룡인 조각류,육식공룡의 발자국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뤄 볼 때 한반도는 다양한 공룡들이 어울려 살았던‘공룡들의 천국’이었음이 분명하다.이런 공룡들이 왜 멸종했을까.이 책에서는 운석충돌설,화산활동설,해수준 저하설,지자기 역전설 등 공룡멸종에 관한 다양한 설들을 소개한다.푸른숲 1만2천원.
  • 영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미 전기작가 키티 켈리의‘로열스’

    ◎1917년부터 80년간의 다큐멘터리 왕실사/찰스­다이애나의 파경 등 가감없이 기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가정교사에게 하루 한시간씩 영국사와 문장학을 배웠을 뿐이다.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에 약했고 자연계에 관해서는 개와 말밖에 몰랐다.그녀는 러드야드 키플링과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제외한 그밖의 모든 시들을 싫어했다.어느날 그녀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에 대해 ‘단테란 말(마)의 이름?’이라고 물었다” 영국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로열스’(전2권,키티 켈리 지음·이종인 옮김)가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에서 나왔다. 키티 켈리는 ‘낸시 레이건:비공식 전기’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베스트셀러 전기작가.켈리는 금세기 들어 윈저 왕가는 비영웅적일 뿐아니라 결손가정화해 ‘미디어를 위한 인형극’으로 전락했다고 꼬집는다. 이 책은 1917년에서 1997년에 이르기까지 80년의 영국왕실사를 다룬다.1917년,독일을 미워하는 영국의 국민정서를 잘 알고 있던 영국왕 조지 5세는 자신의 독일 뿌리를 감추기 위해 왕가의 이름을 하노버에서 윈저로 바꿨다.그는 하룻밤 사이에 바텐베르크,메클렌베르크­스트렐리츠,헤세,베틴 등 독일계 가문의 이름을 왕가의 계통에서 박탈해버리고 영국 이름과 타이틀을 만들어 넣었다. 켈리는 이 책에서 훗날 윈저 공작이 된 에드워드 8세의 느닷없는 양위와 그 뒤를 이어 동생 앨버트 왕자가 조지 6세로 등극하는 과정을 그린다.그리고 영국 왕실에 커다란 안정을 가져온 엘리자베스 왕비를 묘사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곧 현재의 ‘퀸 마더(Queen Mother)’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의 하나다.켈리는 우아한 미소에 강철같은 성품을 지닌 퀸 마더의 생생한 초상을 제시한다. 퀸 마더는 비록 평민 출신이지만 2차대전 당시의 런던 공습때 대피하지 않고 런던에 그대로 체류,왕가의 체통을 지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켈리는 퀸 마더의 출생을 둘러싼 신비를 밝히고 인공수정으로 두 딸을 낳게된 내막도 폭로해 눈길을 끈다. 켈리는 또 조지 6세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2세의 외로운 유년시절과에든버러공 필립과의 결혼,1952년 아버지의 급서로 인한 갑작스런 등극 등을 상세히 다룬다.켈리가 엘리자베스 2세의 생활에 대해 밝힌 구체적인 사항들 중에는 여왕이 냉정하고 무심한 어머니였다는 내용도 있어 자못 충격적이다.그에 의하면 윈저 왕가의 파탄은 여왕이 기능부전한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상당부분 그 원인이 있다. 여왕의 네 자녀 중 셋은 이혼했고 나머지 한명인 막내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바람둥이 남편인 필립 공,속만 썩이는 동생 마거릿 공주, 우유부단한 아들 찰스 왕세자,뻣세기가 남자 못지않은 앤 공주,왕족이 아닌 평민계급에서 데려온 두 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와 사라 퍼거슨….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모든 풍상을 헤치고 이제 2002년 대망의 즉위 50주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여왕의 부군으로 여왕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왕궁내의 실세’ 필립 공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묘사한다.켈리는 필립공이 아직도 가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이 책의 후반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파경,둘째 며느리인 요크 공작부인 사라 퍼거슨의 이해할 수 없는 음란한 행동 등을 가감없이 다룬다.이 책은 영국 왕실도 이혼과 결손가정의 증가라는 영국적 사회현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윈저 왕가는 또다시 위기의 시대를 맞았다.왕가를 ‘재창건’해야하는 과업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엘리자베스 여왕­찰스 왕세자­윌리엄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영국 왕실 상황은 빅토리아 여왕­에드워드 왕자­조지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1900년의 빅토리아 말기와 비슷하다.모후인 빅토리아 여왕 사후 에드워드 7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그는 이미 59세의 나이로 평생 여자들의 품에 안겨 샴페인이나 마시며 인생을 탕진한 사람이었다.그가 즉위한지 10년도 못돼 죽자 조지왕자는 조지 5세로 등극,윈저 왕가를 창건했다.영국 왕실은 이제 100년 세월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영국 왕실은 과연 ‘스캔들의 궁전’인가. 그러나 영국 왕실은 그 많은 스캔들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역경과 비난을 견뎌내는놀라운 능력을 보여왔다.켈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1천200년 역사의 영국 군주제는 이제 신과 같은 광휘가 부식되었고 또 위축될대로 위축돼 수모를 겪고 있다.그렇지만 장엄함에 대한 매혹과 새로워진 왕권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영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 한국적 시장경제를 찾자/송일 외국어대 교수·경영학(시론)

    ○다층적 가치충돌의 시대 IMF시대는 이율배반과 가치충돌의 시대이다.실물과금융,미국적 가치와 한국적 가치,그리고 정부기능과 시장기능이 끝없이 격돌하고 있다.2년전 평성유신회라는 간판을 내건 오마에 겐이치(대전연일)가 필자에게 한 말이 최근들어 새롭기만 하다.“한국이나 일본은 변하지 않으면 곧 망합니다.일본과 한국은 ‘삶은 개구리 증후군’에 빠진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이란 냄비 속에 개구리를 넣고 가열하면 몸이 익어 죽을 때까지 온도의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개구리의 둔감함에 빗대 환경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기업이나 국가를 꼬집어 하는 말이다. 세계적인 경영전략가로 명성을 떨치던 그가 신용평가회사인 멕킨지일본지사장을 그만 두고 정치단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그것은 일본의 강대한 관리경제의 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삶은 개구리 증후군’에 중독된 일본의 개혁은 정부의 개혁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정치 투신의 변이었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가 끝없는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들자 미국의 언론은 유교자본주의의 붕괴,일본식 모델의 종언,또는 아시아 가치의 몰락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특히 한국의 발전모델은 반시장경제적인 자본주의의 기형,이단 또는 세계경제의 교란자로 낙인찍으려 하고 있다.분명한 것은 그동안 시장의 힘을 무력화시킨 정부의 과규제나 역기능은 ‘시장의 실패’라는 경제학적 개념의 틀을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그러나 앞으로 ‘정부의 실패’라는 적신호 앞에 멈추어 선 한국경제가 경계할 신호등은 ‘시장의 실패’이다.최근 ‘IMF’ 다음으로 수시로 등장하는 용어는 아마도 ‘시장경제’일 것이다.엄밀한 의미로 시장경제란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표현한 가격기능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정부의 간섭없이 자유방임적으로 형성되는 시장이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자본주의가 전대미문의 붕괴위기에 직면하면서 케인즈는 그의 저서 ‘자유방임의 종언’에서 시장의 자동조정기능은 검증되지 않은 인류의 염원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그후 실업대책,유효수요의 창출,산업의 육성과 성장 등 경제 전반에 걸쳐 개입의 대소나 역할의 강약에 차이가 있을 뿐 정부가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혼합경제가 국가운영의 기본틀이 되었다. ○미국의 가치에 매몰 우려 IMF 관리체제로 접어든 한국에서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시장경제’의 개념은 아담 스미스 이후 신고전학파가 복음처럼 신봉한 자유방임주의가 아님은 물론이다.그렇다고 케인즈학파를 비판한 프리드만류의 통화주의자의 언어도 아니다.사회주의 붕괴 이후 계획경제에 대립된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 개념의 상투성과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는 최근 이의과 반론을 봉쇄하면서 소위 신패러다임의 이념적 키워드로 신앙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자유방임적 시장원리가 보장될 때 시장경제라 부를 수 있는가.한마디로 그 한계는 자의적이며 대단히 단호한 미국의 판단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프랑스의 포도농가에 지원된 보조금은 시장경제에 위배되지만 아칸소주의 쌀농사에 지원된 보조금은 시장경제에 합당하다.배기량을 기준으로 한 한국의 자동차 과세는 공정무역에 위배되지만 슈퍼301조는 시장경제를 수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으면 일단 시장경제적이라는 아이러니가 이 개념에 존재한다.‘시장경제’를 앞세운 IMF의 개혁요구에는 한국의 이익 뿐아니라 미국의 이익이라는 복선과 배수의 진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에 ‘시장경제’라는 미명 아래 미국적 가치와 충돌하는 한국적 가치가 몰락할 우려가 있다. 우리가 미국식 시장경제의 모순성과 다중적 의미를 깊이 음미할 필요는 여기에 있다.예컨데 국민,정부,기업이 하나로 뭉쳐 철의 삼각동맹을 구축하고한강의 기적을 연출했던 한국적 공동체 정신은 비록 기업이 가진 지배구조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매도될 수 만은 없다. 거기에는 서구식의 차가운 손익개념을 초월하는 패자부활적인 도전과 집념의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드러커에 따르면 서구기업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기 위해서는 창업이후 3∼4기의 세대교체기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서구 잣대에 끌려가서야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제 유아기의 불과한다.예컨데 기업자금의 저수지가되어 자본시장의 꽃이라고 불리는 증권시장은 이제 간신히 봉우리가 맺힌 정도다.한국기업이 증자보다 차입경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금융자본시장의 원시적 제약에 그 원인이 크게 있다.구조조정의 선후를 따진다면 차입경영의 차단에 앞서 간접금융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환경조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시장환경의 조성없이는 200년 역사의 서구자본주의의 잣대로 표시된 IMF이행조건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정부실패’에 버금가는 ‘시장실패’나 ‘IMF실패’를 야기할 위험성이 있다. IMF 체제하의 신패러다임은 우리 경제의 불합리한 단층을 깊숙히 들여다보면서 21세기 한국의 길을 뚜렷이 암시할 수 있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정부실패’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한국적 가치를 부활시킬 수 있는 우리 나름대로의 ‘시장경제’의 진지한 탐색작업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 발해항로/김호준 논설주간(외언내언)

    발해는 고구려 멸망 30년후 고구려 유민들이 말갈족을 끌어들여 세운 나라다.지금으로부터 꼭 1천300년전 일이다.옛 고구려 땅에 건국한 발해는 고구려 역사 계승에 자부심을 느끼고 주변국가와 폭넓게 교류하면서 이른바 ‘해동성국’의 번영을 구가했다. 중국 사서 ‘신당서’는 발해의 주요 대외교통로로 5개를 전하고 있다.3개는 당·거란과의 교통로이고 2개는 ‘일본도’와 ‘신라도’,즉 일본·신라와의 교통로이다.발해는 당·일본과 빈번하게 교류하며 정치적·문화적·경제적 이득을 취했다.그러나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와는 상호간의 정치적 반감 때문인지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다. 발해와 일본은 200년간 모두 49차례에 걸쳐 사절단을 교환했다.발해가 일본에 파견한 사절이 34차례,일본이 발해에 보낸 사절이 15차례다.이들이 동해를 종단하여 왕래한 위험한 바닷길이 바로 ‘일본도’다. 서기 727년 발해가 최초로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 24명은 혼슈 북쪽지방에 표착해 그중 16명이 토착민에게 살해당했다.또 12년후의 두번째 사절단은 대사가 탄배가 침몰해 40명이 몰사하는 수난을 겪었다.발해사절단을 실은 배는 가을이 되면 불기 시작하는 계절풍(북서풍)을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배도 작고 항해술도 신통치 않아 거의 매번 도착지가 달랐지만 신통하게도 모두 일본 땅에 닿았다.바람이나 해류에 밀려 신라 땅으로 표착했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다. ‘신라도’는 안전한 육로였다.신라와 발해는 동해안 지역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도’는 동해안 육로를 따라 경주로 향했다.당시 발해 5경의 하나인 남경용원부에서 신라 국경도시 천정군까지 531㎞에는 39개 역이 있었다고 한다. 발해인들의 해상교역로를 추적하기 위한 학술탐사대원 4명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뗏목을 타고 ‘신라땅’부산으로 항해하다 참변을 당했다.발해에서 배를 타고 신라로 갔다는 기록은 없다.‘신라도’와 ‘일본도’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면 이번 참변은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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