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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짓는 4형제’… 200년 옹기 맥잇기/ 무형문화재 37호 김일만씨 5부자

    “전통 옹기가 예쁜 플라스틱 그릇에 밀려났지만 전통 옹기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37호인 전통 옹기장이 김일만(63)씨는 네 아들과 함께 전통 옹기의 맥을 잇고 있다.벌써 200여년에 걸쳐 7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김씨의 이야기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올해 처음 실시한 ‘제1회 기능장려 수기 작품 공모전’에서 3남 창호(34)씨가 응모한 ‘옹기의 길’이 최우수작으로 선정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4남1녀를 둔 김일만씨는 아들 모두를 옹기장이로 만들었다.가업에 대한 애착은 김씨의 현조부 때부터 시작돼 아들 대까지 7대에 걸쳐 200여년 동안 이어져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인이 그러하듯 이들도 가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생활방식의 서구화로 시간이 지날수록 옹기 수요가 줄어들면서 가업을 잇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몇년 전부터 살림살이는 나아지기 시작했다.김씨는 1996년 기능전승자로 인정받았고 지난해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선정되고 산업포장까지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선정되고 산업포장까지 수상했다.솜씨를 인정받으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요즘은 주문생산을 하고 있다.김씨는 “손자 대에서도 전통 옹기의 맥이 끊기지 않길 바란다.” 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변산반도 내변산 산행 / 내소사 전나무 숲길 세월이 멈춰버린듯

    변산반도 하면 흔히 채석강·적벽강 등의 해안 절경,즉 외변산을 떠올리기 마련.그러나 반도 안쪽을 일주해 본 이들은 변산반도의 참매력은 내변산에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변산반도 안쪽은 바다가 지척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첩첩산중.400∼500m의 봉우리들이 겹겹이 이어져 있다.내변산은 비록 장대하지는 않지만 넉넉한 기품으로 찾는 이들을 포근히 감싸준다.산행의 최적기라는 5월,온통 연둣빛 세상의 내변산을 찾았다. 내변산은 내소사 및 원암,남여치,내변산 매표소를 통해 오를 수 있다.이중 내소사 매표소∼관음봉∼직소폭포∼월명암∼남여치 매표소 코스,또는 그 반대코스가 일반적이다.7.3㎞ 정도로 4시간쯤 걸린다.내변산 매표소∼내소사 코스(5.5㎞)는 비교적 짧으면서도 봉래구곡과 직소폭포 등 내변산의 진수를 맛볼 수 있어 가족단위 산행에 알맞다. ●7.3㎞ 등산 4시간 소요… 가족나들이 제격 내변산 매표소를 지나니 ‘등산로’ 대신 ‘탐방로’란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아이들의 자연학습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오솔길 양편의 나무들에 각각 이름표를 달아놓기도 하고,일부 평탄한 곳엔 학습장을 꾸며 놓았다. 졸참나무,개옻나무,조팝나무,호랑가시나무,이팝나무,예덕나무,미선나무 등 나무 종류와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요즘 가장 눈에 띄는 나무는 덜꿩나무.조그맣고 하얀 꽃이 모여 부챗살 모양을 이루고 있다.아직 피지 않은 것은 아이 새끼 손톱만한 꽃봉오리가 앙증맞게 매달려 있다.코를 가까이 대니 밤꽃 향기가 난다. 매표소부터 자연학습장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오솔길.이후부터 약간 가파른 길이 시작되고,길 아래로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줄기가 시원하다. 계곡은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이른바 ‘봉래구곡’(蓬萊九曲)이다.직소폭포에서부터 시작해 구절양장 꺾이고 감돌아 넓은 반석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마치 은반에 옥 구르듯 흘러 작은 소(沼)를 이루고,머무는 듯 넘나든다. 계곡의 물줄기는 자그마한 변산댐에 잠시 머무르며 산중 호수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댐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에서 보는 호수 풍광은 그야말로 운치 만점.거울처럼 맑은 수면엔 사방 연봉의 숲과 바위 하나하나가 그대로 비쳐 사람들의 넋을 뺀다. 직소폭포는 외변산의 채석강과 함께 변산을 대표하는 절경.육중한 암벽단애(岩壁斷崖) 사이로 흰 포말을 일으키며 23m 아래로 떨어져 ‘실상용추’(實相龍湫)란 깊고 둥근 소를 만든다. 우렁찬 폭포 소리를 뒤로하고 발길을 재촉했다.직소폭포로부터 재백이고개 까지는 계단 일색.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등산로 흙이 많이 흘러 내려 돌과 나무로 단장하다 보니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든다. ●23m ‘직소폭포' 우렁찬 소리에 감탄 절로 재백이고개 오른쪽은 원암 매표소,왼쪽은 관음봉,내소사 방향이다.관음봉으로 방향을 틀어 30분 쯤 가니 잠시 앉아 숨을 돌리라는 듯 능선에 널따란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바위에 걸터앉으니 내소사 경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절 뒤쪽으로 멀리 개펄이 널따랗게 펼쳐져 있다. 바위부터 내소사까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위험하지는 않지만 흙길에 미끄러져 자칫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다.1∼2㎞ 거리지만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힘들 것 같다. 등산로는 내소사 전나무 숲길과 만난다.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100m 정도 가면 내소사 경내다.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상당히 복잡할 것으로 예상했는데,비 때문인지 경내가 생각보다 한적하다.내소사 위로는 관음봉 처마 아래로 폭포수처럼 드리운 암벽이 올려다 보인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 창건된 절.창건 당시 대소래사·소소래사로 지어졌는데,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라고 한다.나·당 연합군의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이 절에 들러 시주한 이후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으나 근거자료는 없다. ●내소사~일주문 전나무 700그루 “날 반기네” 내소사는 예전엔 선계사,실상사,청림사와 함께 변산의 4대 명찰로 꼽혔다고 하나 나머지는 전란통에 타버렸다고 한다.내소사에서 인상적인 건물은 인조 11년(1633년) 중건됐다는 대웅보전(보물 제291호).못은 하나도 쓰지 않고 모두 나무를 깎아 끼워맞춰 지은 건물이다. 그 앞마당엔 고려때 만들어진 3층석탑과 동종,1000년 수령의 군나무가 내소사의 고색창연함을 대변해준다. 내소사 경내에서 매표소 못미처 나오는 일주문까지는 빽빽한 전나무 숲길.80∼200년 수령의 전나무 700여그루가 600m 남짓한 길 양편으로 빈틈없이 들어서 있다.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숲길을 걸어 매표소 쪽으로 향했다.전나무의 맑은 향기가 온 몸 깊숙하게 파고든다.마치 도심 공기에 찌든 뇌가 씻겨지는 듯 시원함이 느껴진다. 부안 글·사진 임창용 기자 sdargon@ [가이드] 낙조 못보면 후회해요 ●가는 길 변산반도는 해안도로인 30번 국도만 따라가면 내·외변산 대부분의 관광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내변산 매표소를 산행기점으로 하려면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30번 국도∼736번 지방도 코스를 이용해야 빠르다.반면 내소사를 기점으로 하려면 줄포IC∼710번 지방도∼23번 국도∼30번 국도 코스가 좋다. ●숙박 내변산 쪽엔 숙박업소가 별로 없고 해변쪽에 많다.특급호텔이나 콘도는 없지만 깨끗하고 전망 좋은 여관이나 민박은 많다.요즘은 여름 성수기가 아니기 때문에 값도 저렴한 편.새만금 인근의 변산온천 리조텔(063-582-5390),격포항 근처의 수협 바다모텔(〃-581-3102),모항 근처의 모항레저(〃-584-8867),호텔 썬비치(〃-584-8030) 등이 비교적 시설이 좋다. ●변산 낙조 변산반도를 여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낙조.변산 낙조는 특히 빛깔이 곱기로 유명하다.서쪽 해안 어디서나 낙조를 감상할 수 있지만 그중 변산,격포,고사포 해수욕장의 낙조가 장관이다. 특히 내변산의 월명암 뒤 낙조대에서 보는 일몰은 동해안 낙산의 일출과 견줄 정도로 절경을 이룬다.이곳은 전망도 좋아 변산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문의 부안군청 문화관광과(063-580-4224). [식후경] ‘소아새탕' 식도락가 유혹 서해안 조개중 최고로 치는 백합은 부안의 대표적 특산품.예부터 임금님 진상품으로 부안 백합을 올렸다고 한다.싱싱한 백합은 회로 먹기도 하지만 백합죽이 별미다. 변산의 식당 대부분이 죽을 내지만 부안읍 동중리 부안터미널 인근의 계화식당(063-584-3075)의 백합죽이 맛있다. 흰쌀에 백합 속살을 넣어 죽을 쑨 뒤 김과 깨소금을 고명으로 얹어 먹는다.참기름을 듬뿍 넣어 비린내를 제거하는 것이 포인트.6000원. 좀 독특한 것을 맛보려면 부안읍 대림아파트 정문 앞에 있는 ‘부림갈비’(063-583-3800)의 ‘소아새탕’을 먹어보자.소아새탕은 쇠고기와 아귀,새우(중하)에서 따온 이름.이 세가지 재료에 야채와 양념을 넣어 끓여낸다.다른 지역에서도 소아새탕을 내는 식당이 있지만 식도락가들은 부안의 소아새탕을 최고로 친다.시원하고 얼큰한 맛으로 식사와 술안주로 좋다.2만원 짜리 한 냄비면 2명이 먹기 적당하다. 회를 먹고 싶으면 격포항 앞의 격포 어촌계 수산물직판장에 가자.A·B동 2개 건물 안의 20여개의 좌판에서 자연산·양식 활어를 회로 쳐 준다.4만원만 내면 3∼4명이 자연산 우럭(1㎏) 회를 매운탕과 함께 먹을 수 있다.
  • ‘Korea 아닌 Corea 찾기’ 학계·시민단체도 가세

    ‘Corea’ 되찾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영문 국호인 ‘Korea’를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Corea’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난해 월드컵 때 일부 네티즌과 붉은악마가 표기 변경을 강력 주장했다.최근에는 학계와 시민사회단체까지 가세하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가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 사무실에서 가진 학술연구특별위원회 창립기념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 서굉일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영문국호 Corea-Korea 문제의 현 단계 연구 내용과 과제’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하멜표류기,각종 외교통상조약에 쓰인 국호 등 12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역사적 자료와 주변정황을 볼 때 우리나라 국호는 ‘Corea’였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통감부가 설치된 1906년부터 총독부 관보를 비롯한 모든 문서에 ‘Korea’로 변경됐다.”면서 “이는 일본 국호인 ‘Japan’보다 알파벳 순서를 뒤로 미루고자 하는 일제의 의도에따른 것으로,영문 국호를 바로잡아 식민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중론도 제기됐다.홍익대 역사교육과 김태식 교수는 “19세기에는 ‘C’와 ‘K’를 혼용한 흔적이 있는 만큼 일제가 고의적으로 바꿨다고 단언할 수 없다.”면서 “최근 영문 국호표기 변경운동은 대일 감정문제에 근거하는 것 같다.”고 피력했다. 구혜영기자 koohy@
  • 럼즈펠드 문건 계기로 본 ‘매파’들의 실체 / 美제국 움직이는 ‘장막뒤의 新保守’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베이징 3자회담을 앞두고 미 국방부가 북한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문건을 만들어 회람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북한의 정권교체가 미국의 목표가 아니라는 백악관과 국무부의 숱한 해명에도 이같은 문건이 나돈 것은 부시 행정부 내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숨은 세력’들이 있음을 반영한다.이들은 단순히 매파로 불렸던 기존 공화당 보수주의자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이들은 ‘신보수주의자(neocon)’로 불리며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줬듯이 국제사회의 여론과 관계없는 독자적인 선제공격론을 맹신한다.딕 체니 부통령과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필두로 백악관과 행정부 요직을 차지,부시 행정부를 지배하고 있다.9·11테러 이후 전면에 부상했으나 사상적 토대는 2세대에 걸쳐 5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이들은 감독에 비유된다.때문에 미국을 꿰뚫고 있는 인사들은 부시 대통령의 연설보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독설가들은 부시 대통령을 이들의‘꼭두각시’로 보기도 한다.친(親) 이스라엘계인 이들의 면면을 알고 나면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눈에 들어올 정도다.잇따라 터지는 대북 강경론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한때 사의를 표명한 것 역시 네오콘들의 위세에 밀려서다. ●21세기 새로운 미 제국주의의 서막 1991년 3월 당시 체니 국방장관은 펜타곤에서 극비 보고를 받았다.냉전 이후 미국의 안보에 관한 새로운 전략이다.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됐으나 이를 주도한 인물은 당시 국방정책 담당 차관이었던 월포위츠다. 그는 브리핑에서 “가까운 장래에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우월성’에 위협이 되는 국가나 세력들에 대해 예방적인(preventive)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정책이 채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체니는 이듬해 이같은 개념을 수용한 ‘국방계획지침(DPG)’을 발표했다. 월포위츠는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기습했던 것을 모델로 삼았으며 미국도 이라크와 시리아 등 미래의 ‘적’들을 겨냥,강력한 군사력 행사를 주장했다.그러나 당시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등은 이같은 선제공격 개념에 제동을 걸었다.특히 1992년 말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함으로써 이 독트린은 수면밑에 가라앉았다. ●다시 기회 포착에 나선 네오콘들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을 계기로 네오콘들의 활동이 재개됐다.이번에는 헨리 잭슨 전 상원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유대계인 리처드 펄 전 국방자문위원장이 중심이다.그는 1969년 의회 무기통제에 관한 연구에서 월포위츠와 함께 일한 인연으로 신보수주의의 선봉에 섰다. 미국계 유대인 연구기관의 도움으로 그는 1996년 중동평화를 위한 오슬로 협정의 무용론을 피력하며 테러리스트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오슬로 협정의 ‘확실한 중단(clean break)’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 터키 및 요르단과 협력,시리아를 봉쇄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그룹에는 찰스 페어뱅크스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더글러스 페이스 현 국방정책 차관,로버트 로웬버그 선진전략·정치연구소(IASPS) 회장,미 기업연구소(AEI) 회장을 지낸 존 볼턴 국무부 군축협상 차관 등이 포함됐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내건 신보수주의의 기치 1997년 초 워싱턴 시내에 위치한 AEI의 5층 사무실에서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싱크탱크가 출범했다.세금 감면을 위한 새로운 전선이라는 경제적 마인드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클린턴 행정부를 압박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일방적 정책을 위한 군사력 증강을 목표로 삼았다. ‘위크리 스탠더드’의 편집장인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버트 캐건 카네기재단 선임연구원이 주동이 됐다.창립멤버로는 체니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월포위츠 부장관,페이스 국방차관,피터 로드맨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담당,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등이 포함됐다. 크리스톨의 하버드대 룸 메이트인 프란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댄 퀘일 전 부통령 등도 가세했다.크리스톨과 캐건의 아버지인 어빙 AEI 연구원과 도널드 예일대 교수도 이들의 사상적 지주로 참여했다. 크리스톨과 캐건은 PNAC의 창립선언에서 미 외교정책의 지향점을 군사력에 우위를 둔 ‘우호적 글로벌 패권’으로 정의했다.크리스톨은 특히 200년간 유지돼 온 미국의 ‘반(反) 식민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9세기와 달리 미국은 유럽보다 강대하며 국제사회의 안보와 질서를 위해 미국이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의 일환으로 PNAC는 1998년 1월 클린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이라크와의 전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부활한 체니·월포위츠 독트린 2000년 9월 부시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직전 PNAC는 새로운 보고서 ‘미 국방의 재건:새로운 세기를 위한 전략과 군,그리고 자원’을 발표했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이 주도했으며 1991∼93년 체니와 월포위츠가 내놓은 선제공격 개념을 재도입했다.이는 지난해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전략으로 공식 채택됐다. PNAC는 당초 공화당 후보 지명전에서 부시가 아닌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지지했다.그러나 지명전에서 승리한 부시가 체니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전화위복이 됐다. 체니는 부시 대통령의 취임에 앞서 정권이양을 책임졌고 이를 통해 월포위츠 등 네오콘들을 대거 중용했다.반면 대선에서 부시를 도운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나 스코크로프트 전 안보보좌관 등의 중도 온건파들은 철저히 배제됐다.부시 대통령의 외교적 경험이 일천해 실질적인 대통령으로 불리던 파월 국무장관과 실용주의적 현실주의자인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입지도 당연히 크게 좁아졌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1998년 미사일 확산을 경고하는 이른바 럼즈펠드 보고서를 냈으나 월포위츠와 울시 전 CIA 국장이 주도,네오콘의 골수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다만 1969년부터 럼즈펠드의 참모를 지낸 체니의 추천으로 국방부의 좌장으로 나섰다.럼즈펠드는 처음 네오콘들의 독주에 사의까지 고려했으나 지금은 신보수주의편에 완전히 돌아섰다. ●대북 강경 대응 주문부시 대통령은 네오콘들에 둘러싸였으나 이들의 정책을 처음부터 적극 반영하지는 않았다.파월 장관보다 월포위츠의 ‘군단’들에 기울어진 게 사실이지만 이라크와의 전쟁을 계획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9·11테러는 네오콘들이 염원하던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외교정책을 현실로 옮기는 발판이 됐다. 때문에 한때 9·11테러의 음모설까지 나돌았다.오사마 빈 라덴의 능력만으로는 비행기 자살공격이 성공할 수 없으며 알 카에다가 아닌 미국내 보이지 않는 손의 방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최소한 이스라엘의 정보당국인 모사드의 관여설은 신빙성있게 나돌았다.실제 1998년 이스라엘 스파이의 네트워크인 ‘X 위원회’ 멤버를 추적한 결과 월포위츠와 리처드 펄,페이스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들은 ‘악의 축’이라는 표현이 나오도록 부시 대통령을 압박하고 설득했다.월포위츠 등은 9·11 직후 이라크 전쟁을 주장,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결국은 1년6개월 만에 이를 관철시켰다.북한에 대해서도 미래의 위협으로 간주,강경책을 서슴지 않고 있다.사실상 대북 군사행동을 의미하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모든 옵션’도 이들의 아이디어다. mip@ ■사상적 배경·인맥 신보수주의자들은 1899년 독일에서 태어난 레오 스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았다.그는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나치 당원인 마틴 하이데거의 제자였으나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로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대학에서 그의 사상을 전파했다.프랑크푸르트의 유대계 좌파 학자들도 미국에 정착하면서 우파로 변신했다.그들은 이른바 ‘로마제국의 현대화’를 주창,세계 경찰국가로서 미국과 영국 등의 역할을 강조했다.월포위츠는 시카고대에서 스트라우스의 제자인 앨런 블룸 교수로부터 수학했다.후쿠야마 교수는 블룸 교수가 코넬 대학에 있을 때 제자가 됐으며 하버드 대학원에서는 크리스톨 편집장과 함께 역시 스트라우스의 제자인 하비 맨스필드 교수로부터 배웠다. 중국과 북한 등 동북아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콕스 위원회’에서 강경론을 펼친 루이스 리비는 월포위츠가 예일대에 있을 때의 수제자다.스트라우스가 배출한 박사들은 100명이 넘고 이들의 제자들도 수십명을 헤아려 학계와 언론계,연구기관,행정부 등의 요직에 이들의 인맥이 뿌리내리고 있다.
  • [인터넷 스코프] 인터넷 세대와 진정한 언론개혁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인터넷 때문이라고 한다.노대통령은 또 주변에 386세대 참모가 많고 이들과 정신적 동지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이렇게 ‘인터넷’과 ‘386’이 키워드로 등장하게 된 것은 그 양자가 뭔가 과거와 다른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386세대로서 한때 기자를 하다가 학교로 옮겨 온 필자가 보기에도 요즘 기자들은 좀 다르다.술 접대한다고 기사를 빼주거나 실어주지도 않는다.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 강요하면 때려치우기 십상이다. 기자의 주요 정보원은 사람이다.출입처의 공무원에서부터 기업 홍보담당자에 이르기까지 취재원이야말로 기사의 시작이고 끝이다.그러나 요즘은 사람을 직접 만나기보다 전자우편으로 대화하는 걸 선호하는 기자가 늘고 있다.만약 정부의 취재지침에 따라 공무원을 절대 만날 수 없다고 하면 오히려 속으로는 잘됐다고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술 마시지 않아도 되고 부담스럽게 밥먹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인쇄술의 발명 이후 언론이라고 지칭하는 매체가 생겨난 이래 인가나 검열,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출판할 권리를 얻기 위해 언론은 국가권력과 500년 이상 투쟁해 왔다. 출판을 중심으로 한 언론 통제 유형은 크게 세가지다.첫째는 16세기 유럽에서 태동한 출판허가제로서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까지 수많은 출판인들이 화형을 당하거나 추방될 정도로 탄압을 겪었다.이러한 탄압은 존 밀턴이 저서 ‘아레오파지티카’에서 허가제의 폐해를 지적한 이래 세금에 의한 통제로 바뀌었다.교묘한 언론 탄압형태인 세금제도는 18세기 영국에서 큰 효과를 거두었다.세번째 유형의 언론탄압은 정부에 대한 비판자들을 국가비방이나 훼손죄로 형사처벌하는 것이었다.미국의 입법자들은 이러한 유럽의 법을 철폐하기 위해 수정헌법 제1조에 ‘의회는 언론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빼앗는 어떠한 입법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기에 이르렀다.오늘날 우리가 언론자유라 일컫는 권리는 이렇게 확립되었다.편안하게 받아보는 조간신문과 저녁 무렵 의자에 기대어 시청하는 뉴스는 200년전만 해도 꿈도 꿀 수 없었으며 누군가가 피를 흘려가며 얻어낸 것이었다.그러나 모순되게도 민주주의 국가인 21세기의 한국,컴퓨터만 켜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 초강국에서 우리 언론은 이 세가지 유형의 언론통제를 모두 겪고 있다. 언론은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은 제4부라 불린다.그만큼 언론이 권력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언론이 제4부로서 다른 권력기관과 평행한 분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입법부가 국민의 대의기구이듯 언론은 국민의 입이요,귀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참여정부는 정부에 대해 무한히 열려 있는 접근통로를 전제로 한다.이는 국민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예외일 수 없다.구리고 부패한 것이 없다면,그래서 국민이든 언론이든 그 누구에게든 당당할 수 있다면 열려 있는 참여정부여야만 한다. ‘인터넷’과 ‘386’이 상징하는 그 무엇이 정치에서 혁명을 가져온 것처럼 새 정부는 언론에서도 혁명이 일어나리라 믿어야 한다.언론은 정부와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언론은 결코 정부에 의해 개혁될 수 없는 대상이다.정치에서 이뤘던 것처럼 언론개혁을 갈망하는 모든 국민과 양심있는 언론인 스스로가 그 몫을 담당해 주리라 믿는다.그게 진정한 언론개혁이다. 권 만 우 경성대 교수 커뮤니케이션학부
  • 클로즈업/MBC ‘르포 - 세계의 新수도’ 수도이전, 200년 뒤를 내다본다

    “이 수도는 지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구가 100만명으로 늘어날 100년,200년 뒤를 내다보고 세워진 것입니다.” 호주 캔버라시 수도전기 국장의 말은,한 국가의 수도를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준비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인지를 짐작케 한다. MBC 특별기획 ‘르포-세계의 新수도’(오후 11시30분)는 수도 이전의 명암을 조명한 1부에 이어 2부 ‘타산지석의 교훈’을 방영한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8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네덜란드는 헤이그와 암스테르담이 수도의 기능을 정교하게 분담하고 있다.말레이시아는 93년 수도 이전을 시작한 이래 현재 전체 공정의 30% 정도가 진행됐다.일본은 90년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해 놓고도 아직까지 장소도 정하지 못했다. 이들 국가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도 이전은 보통 일이 아니다.제작진은 수도 이전의 찬반을 떠나,만약 이전한다면 어떤 점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지를 제시할 예정이다. 김소연기자 purple@
  • [시론]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화

    한국은 21세기에 이르러 안으로는 국민참여의 사회로 전환되고 있으며,밖으로는 이념을 초월한 평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런 변화와 참여의 시대에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 구체화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용산기지 100만평은 여의도와 비슷한 규모다.여의도가 국제화를 중심으로 한 개발이라면,용산기지는 친환경과 민족자주의 의미를 갖는 개념이어야 한다.오래 묵어서 오히려 서울의 노다지가 된 이 땅은 풍수지리학 차원에서뿐만 아니라,서울의 중심에 있기에 중요한 곳이다.예로부터 외침(外侵) 또는 외세(外勢)의 주둔지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중요한 땅이다. 이 땅을 돌려받는다면,서울의 중심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꿀 수 있음은 물론,특히 우리의 국제관계가 시혜와 종속,대립과 단절의 관계에서 호혜와 자주의 관계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 ‘평화와 자주’를 전 세계에 천명할 수 있다. 15년 전,서울시는 용산기지를 전 국민과 서울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었다.서구사회가 200년 정도 걸렸던 도시화·산업화 과정을 서울은 전쟁 이후 거의 50년 만에 이루었다.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도시문제는 환경악화,일조권·조망권 침해,무분별한 개발,교통체증 등 물리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심리적 황폐함,박탈감,왜소화 등을 심화시켰다. 최근 여가 및 스포츠에 대한 욕구의 증가도 이런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꽉 짜여진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억눌린 자신을 풀고,자연과 함께함으로써 자신을 재발견하고 다시 도시생활을 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이러한 수요는 상당하며,외국의 국제적 도시를 봐도 뉴욕의 센트럴파크,런던의 하이드파크,파리의 튈러리공원(루브르 박물관 앞)은 도시의 중심이며,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다.서울도 이런 차원의 충족되지 못한 수요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용산기지는 전 세계에 ‘평화와 자주’의 메시지를 주며,시민들에게 도시에서의 심리적 압박을 해소할 수 있고,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인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 어느 특정집단의 이기주의나 정치적인 계산을 뒤로하고,그동안 시·공간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했던 장벽을 허물며,모든 서울시민에게 열려있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자주공원’,‘참여공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참여공원’은 조성과정에서 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기능적으로는 내부적으로 시민의 여가공간을 제공하고,공원의 역사성 및 자주성을 밝혀야 할 것이다.외부적으로는 도시녹지축을 완성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도시교통체계를 보완하고,용산구 일원의 주변 개발 및 재개발을 촉진해 광역적인 공간구조로 조정해야 할 것이다.단순히 용산기지의 공원화뿐만이 아니라 주변 지역의 영향권을 고려한 모든 관련계획이 수반돼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참여공원’이 될 것이다. 이 소중한 땅,지난 100년간 묵혀왔던 이 땅은 현재를 사는 우리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가오는 100년 후의 후손을 위한 땅이다. 미래를 위해 국민의 합의와 참여를 모아 차근차근 가꾸어가는 지혜를 발휘할 때가 왔다.용산기지의 공원화 계획은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우리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양승우
  • 소대현.호연재 부부의 사대부 한평생/사대부는 쌀 꿀때도 ‘위풍당당’

    “호연당 위에 호연한 기운이 있어/물과 구름 사립문에서 호연함을 즐기네/호연함이 비록 좋으나 곡식에서 생겨/삼산태수님께 쌀을 빌리니 또한 호연하구나.” 한마디로 쌀을 좀 꾸어달라는 얘기다.안주인 호연당(浩然堂)은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이렇듯 당당하게 시를 지어 보냈다.‘마음이 넓고 태연하다.’는 당호가 빈말이 아니다.바깥주인 소대헌(小大軒)도 다르지 않다.‘큰 테두리만 보고,작은 마디에 얽매이지 않는다.’(見大體不拘小節)는 자호대로 대범하게 한 평생을 살았다. ‘소대헌·호연재 부부의 사대부 한평생’(푸른역사 펴냄)을 읽다 보면 화려한 삶이 아닌,아주 절제된 ‘귀족적인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다음 순간 조선시대 사대부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피상적이고,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소대헌과 호연당 부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18세기 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생과,사대부 집안의 일상을 재구성한 것이다.혼인부터 집 장만,가족 구성,교육,놀이,관직 생활,문학 생활,죽음과 문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자료와 관련 기록을 덧붙여 11개 장으로 정리했다. 지은이 허경진은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처음엔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제자에게 호연재 김씨의 한시(漢詩)를 학위논문의 주제로 정해 주었다.그런데 제자가 찾아간 대전 송촌동 종손집에서 자료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호연재의 한시 연구가 아니라,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생활사를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했고,호연재의 옛집과 그들의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선비 박물관까지 드나들게 됐다. 소대헌 송요화(1682∼1764)는 대사헌을 지낸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으로 자헌대부 지중추부사(정2품)에까지 오른 문신이자 학자이다.그의 부인 호연재 김씨(1681∼1722)는 병자호란 때 강화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질러 자결한 선원 김상용의 고손녀로,수많은 시문을 남겨 최근에는 17∼18세기 여성 문학사의 맥을 잇는 중요한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부만 감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후손들도 계속 문집을 남겼으며,고소설도 여러 종류를 필사하여 읽었다.여성들은 음식 솜씨를물려받아 요리책을 만들었다.200권이 넘는 책력도 남겼는데,그날그날 중요한 사항을 기록했다.200년치의 생활일기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본 순간,허경진 교수는 “잠시 숨이 멎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집안은 소대헌과 호연재 같은 옛 집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물론,쌍륙 같은 놀이도구부터 약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활용품들도 간직하고 있다.이것들은 299컷의 사진으로 담겨 소대헌 부부의 구체적인 삶을 눈으로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사진 김성철.1만 3000원. 서동철기자 dcsuh@
  • [외교관 통신] 박웅철 駐이라크 1등서기관

    대한매일은 전세계 128개 공관에 나가 활동하고 있는 우리 외교관들로부터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이슈를 생생하게 들어보는 정기코너를 마련했습니다.전운이 감도는 중동,바다보다 낮은 나라 네덜란드,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볼리비아,그리고 고난의 땅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움직이는 세계사의 현장을 외교관들의 따뜻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담아내겠습니다. 천일야화(千一夜話)의 도시이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바그다드에는 전운(戰雲)만 가득하다. 바그다드에 주재하던 각국 외교관들도 대부분 철수했고,상사 주재원들도 떠났다.인도적인 구호활동을 하는 유엔 직원들도 850명 가운데 500명이 이라크를 떠났다. 바그다드에는 대 이라크 무력 공격을 요구하는 미국과 유럽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시내 곳곳에는 전쟁에 대비해서인지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사람들의 표정은 12년 전 걸프전의 재연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두웠다.바그다드에서 산다 하는 부자들은 인근 시리아와 요르단으로 가족들을 피신시킨지 오래다.그러나 이라크의 일반 시민들은 비상식량을 비축하고 있으며,“전쟁이 나면 당하는 거지.”라며 체념하는 모습이다. 바그다드에 남아 있는 우리 교민은 7명이다.유엔 직원 1명은 상황을 보고 있고,부인이 이라크인인 가족(3명) 등 두 가족은 아직까지 철수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특히 7살 난 아들을 둔 30대 후반 유학생 부부는 여러차례 만나 요르단으로 철수할 것을 권고했지만 거절했다.“어려울수록 이라크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막상 전쟁이 나면 그들은 움직이기가 힘들다.일단 바그다드의 우리 대사관으로 피신하라고 하고,대사관을 관리하는 현지 직원들에게 조치는 해 놓았지만 옮겨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라크엔 최근 반전·평화 운동차 입국한 13명의 우리 젊은이들과 취재차 한국에서 온 기자 3명이 있다.전쟁이 일어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라크인들의 소요 사태다.걸프전 이후 계속된 경제제재로 사람들의 심성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이라크 관리들은 외적의 침입에 대한 저항 역사가 수천년이나 돼 역사가 200년이조금 넘은 미국이 공격해 온다면,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벼른다.“20세기 초 영국군이 이집트를 관할하는 데 5000명의 군대를 필요로 했는데,인구가 더 적은 이라크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12만명의 군인이 필요했다.” 이라크 외교부 관리가 한 말이다. 바그다드 주재 외교단은 대다수의 이라크 국민들이 후세인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아 이들이 후세인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미군에 항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한편에선 이라크 국민들이 완강히 저항할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 외부 사람들의 눈엔 반후세인 정서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다. 걸프전 이전 이라크 국민들은 “이집트인은 글을 잘 쓰고,레바논인은 인쇄술에 뛰어나지만,책을 읽는 국민은 이라크인들이다.”라고 주장했었다.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집트의 나깁 마흐푸즈,레바논의 인쇄술,그리고 대화의 주제에 전혀 막힘 없는 이라크 정부 고위인사들을 볼 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한때 이라크인들의 박사학위 보유는 인구비율로 볼 때 세계 1위였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라크의한 고위 인사는 “90년 8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유엔의 대 이라크 제재 때문에 이라크 어린이들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면서 첨단정보 유입의 차단으로 한 세대의 교육이 파괴된 것이 이라크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한탄한다.이라크엔 이동통신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유엔의 대 이라크 제재 때문이다. 이라크 지도부는 국민들에게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미국과 시오니스트들의 대 이라크 적대 정책 때문이라고 적극 홍보해 왔고,국민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이라크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망해라 미국!(Down America!)”이라고 적어 놓은 문구들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과연 미국이 이라크에 무력을 사용해 후세인 대통령 체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정권을 수립한다고 해도 이라크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반미 감정을 무마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박웅철(42)서기관 약력 카이로 아메리칸대 물리학과 졸업,요르단 대학원 석사,주 이집트 대사관 3등 서기관,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2등 서기관
  • 리오리엔트/너희가 세계 경제중심이라고? ‘유럽의 착각’ 깨기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 이산 펴냄 1980년대 초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뇌리엔 안드레 군더 프랑크(75)란 이름이 각인돼 있다.사회과학 붐을 일으킨 진원지였던 종속이론의 대표적 이론가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특히 그의 저작 ‘저발전의 발전’은 종속이론의 물꼬를 연 책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그는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가 저발전의 늪에 빠진 것은 봉건제 때문이 아니라 서양 자본주의의 수탈 때문이라고 주장,종속이론 진영의 우상이 됐다.그러나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은 차츰 희미해졌다.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학문적 명성을 안겨준 책이 ‘리오리엔트(ReOrient)’다.그동안 학계에서나 가끔 논의되던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지 4년만에 한국어로 완역돼 나왔다. 도서출판 이산에서 펴낸 ‘리오리엔트’(이희재 옮김)는 서양 지성계에 일대 충격을 던진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철옹성이나 다름없던 서양 근대학문의 역사서술과 사회과학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마르크스나 베버 같은고전적인 이론가는 물론 아날학파의 거장 페르낭 브로델,‘근대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문명의 충돌을 주장한 새뮤얼 헌팅턴까지 그의 비판엔 성역이 없다.비판의 논거는 무엇일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책 제목이 암시하듯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 함몰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와 현대 경제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바꿀 것을 요구한다.저자에 따르면 이른바 유럽중심주의란 것은 유럽지향의 역사가와 사회이론가들이 유럽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발명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유럽중심주의는 19세기 후반 이후 오늘날까지 유럽 혹은 서양의 패권을 재생산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버팀목 구실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배를 통해 전세계로 전파됐다.이같은 견해는 “유럽사는 없다.오직 세계사만이 존재한다.”고 한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관점과도 맥이 통한다. 책은 유럽중심사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났는가를 소상히 밝힌다.마르크스는 유럽만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맹아를 지니고 있으며,‘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대표되는 아시아는 정체성이 고착화돼 있다고 믿었다.나아가 아시아가 이런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해선 유럽으로부터 진보의 수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한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자본주의의 피와 살이라고 여긴 베버는 유럽이 아닌 지역의 종교는 모두 신화적이고 신비적이며 주술적인,한마디로 반(反)합리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따라서 합리적 정신이란 효모를 가진 ‘서양’은 발흥했고,그것을 결여한 ‘나머지 세계’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저자는 유럽의 역사가로선 예외적으로 넓은 시야를 지닌 페르낭 브로델조차 “중국이 낙후된 것은 이슬람이나 서양보다 덜 발달된 경제구조 때문이었다.”는 식의 그릇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뿐만이 아니다.저자에 의하면 유럽인들은 지리학도 ‘발명’했다.‘유라시아’란 말 자체가 유럽중심적이기 때문이다.유럽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의 일개 반도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유럽인들은 유럽중심으로 ‘역사의 진전’을 지도상에 표현해 왔다.예컨대 메르카토르 도법에서는 조그만 섬나라인 영국이 인도만큼 크게 그려진다. 이 책은 ‘아시아 시대의 글로벌 경제’란 부제에 걸맞게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세계경제 체제를 조망한다.저자는 유럽의 세계지배는 1800년 이후 지금까지 길어야 200년 남짓 이어진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근대 유럽의 경제성장은 유럽 스스로 달성한 것이 아니고,‘유럽 예외주의’로 이룩한 것도 아니다.1800년 이전의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중요하지도 앞서지도 않았다.1800년 이전에 세계경제에서 우세를 점한 지역이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였다.그 정점에 중국이 있었다.” 그러나 유럽중심자들은 이와 같은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보지 않는다.합리성이나 기업가정신,기술혁신 등을 모두 유럽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예외적 현상으로 간주한다.저자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재미있는 비유를 든다.“유럽은 아시아 경제라고 하는 열차의 3등칸에 달랑 표 한 장 끊고올라탔다가 얼마 뒤 객차를 통째로 빌리더니 19세기에 들어서는 아시아인을 열차에서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단순히 아시아의 재부상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쓴 건 아니다.그는 유럽중심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인종중심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에 반대한다.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패권을 쥔 중심이 주도하는 일방적 질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지역이 평등하게 교류하면서 공존하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란 인류 보편의 이상이다.이 책은 99년 세계사학회가 수여하는 ‘으뜸저작상’을 받은 데 이어 2000년엔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씨줄날줄] 평화 만들기

    독일 철학자 피히테는 1807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한 베를린에서 그 유명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란 연설을 통해 평화를 깨고 유럽 전역을 전쟁의 공포와 살육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나폴레옹에 대항해 단호히 싸울 것을 호소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정신에 도덕적 의무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신의 손에 쥐어진 채찍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벌거벗은 등을 채찍 앞에 내어놓고 핏자국이 맺혀서 주여!주여!하며 청할 것이 아니라 그 채찍을 꺾어 버려야 합니다.”힘의 행동을 권고한 것이다. 인류를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아돌프 히틀러도 외교적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무력으로써 목적한 바를 얻으려고 한다면 강해야 한다.그러나 협상으로써 그것을 얻으려고 하면 두 배로 강해야 한다.” 역시 힘의 논리다. 나폴레옹 시대가 지난 지 200년,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던 지난 세기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맞았건만 전쟁과 테러의 공포에인류는 여전히 ‘벌거벗은 등을 채찍 앞에 내어놓고’ 떨고 있다.‘이에는 이,눈에는 눈’이라는 철저한 힘의 논리와 보복이 되풀이된다.새천년 벽두에 일어난 9·11테러와 그에 따른 보복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2003년 봄,우리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북한핵 문제로 야기된 불편한 북·미 관계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이어가게 한다. 민족상잔의 처절한 아픔을 경험한 이 땅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이런 염원을 모아 평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시작돼 반갑다.불교,원불교,성균관,한국민족종교협의회,천주교,개신교,성공회 등 7대 종단이 모두 참여하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와 사회원로 92인은 지난주 ‘한반도평화만들기운동’ 세미나와 서명식을 가졌다고 한다.이어 3월 초 발대식과 함께 범국민운동으로 확산해 오는 7월27일 휴전 50주년일에 ‘한반도평화선언’을 채택하는 것으로 일단 막을 내린다.이들은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평화와 직결된다고 보고 미국과 북한,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전쟁과 테러의 악순환이 없길 촉구하고 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도 귀기울이며 동참하면 좋겠다. 최홍운 hwc77017@
  • 대한민국史/삐딱하지 않은 눈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보자

    한홍구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 구호 속 대한민국이 아니라 진정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우리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무엇보다 중요한 건 ‘편향을 거부하는 눈’이다.역사는 지루하고 재미 없는 것이란 선입견을 뛰어넘는 도발적 글쓰기로 주목받는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가 그의 저서 ‘대한민국史’(한겨레신문사 펴냄)를 통해 다시 한번 ‘역사를 보는 자신의 눈’을 보여줬다. 책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친일파 청산,반미와 친미문제 등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굵직한 이슈들을 26개의 주제로 나눠 다룬다. 역사적 진실은 섣불리 재단할 수 없다.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란 차라리 이상에 속하는 일인지도 모른다.저자가 유난히 개인의 사관(史觀)을 강조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저자는 친일파 청산문제가 프랑스에서의 나치협력자들에 대한 단죄와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프랑스는 4년여 동안의 나치 점령에서 벗어난 뒤 괴뢰 비시정권 아래서 독일에 협력했던 인사 7000여명을 처형했다.반면 우리는 단 한명의 민족반역자도 처단하지 못했다.이 대목에서 저자는 친일파 청산이 꼭 가혹한 처벌로 이어져야 하느냐고 반문한다.자치파가 집권한 인도는 영국 식민지 지배를 200년 동안 받았지만 친영파 청산은 독립 이후 핵심 과제로 부각되지 않았음도 상기시킨다.“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세력이 집권했더라도 인적 청산 폭이 프랑스에서처럼 광범위하지 않았을 것”이란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들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지혜로서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그들은 맹목적으로 전통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정녕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이 책에선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조선후기의 문신 영재 이건창과 매천 황현을 소개한다.이건창은 동학교도들이 난을 일으키자 짐승 사냥하듯 소탕해야 한다고 주장한 보수주의자였다.그러나 그들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한 뒤엔 오히려 그들이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고 학정을 비판한 인물이다.‘매천야록’을 남긴 역사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황현도 동학난을 일으킨 무리들을 모두 처단해야 한다던 보수주의자였다.그러나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했다.저자는 이들이 비록 보수주의자이지만 그 행적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고 말한다.나아가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편가르기에 앞서 보수세력이 먼저 수구세력과 스스로 결별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을 인용,똑같은 사건이라도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라쇼몽’은 부부가 길을 가다 도적을 만나 남편은 살해당하고 아내는 겁탈당하는,어찌보면 사실관계가 분명한 영화다.그러나 감독은 도적,아내,죽은 남편,그리고 숨어서 사건을 지켜본 나무꾼의 입장에서 각각 사건을 재구성해 4편의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물론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역사학자로서 ‘할말은 하는’ 저자는 어느 지점에선 매섭게 몰아치지만 편향을 거부하는 폭넓은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 애쓴다.그러나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다면 역사의 진실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저자의 불편부당한 관점은 때로 역사허무주의 혹은 도덕허무주의의 기미도 풍긴다.1만 1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백화점 끝없는 명품 마케팅/ 호두 한쌍 120만원

    주요 백화점의 ‘명품’ 마케팅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한 병에 1200만∼1300만원을 호가하는 꼬냑이 선보인데 이어 급기야 두 알에 120만원이나 하는 ‘귀족 호두(사진)’까지 나왔다. 현대백화점은 정월대보름을 4일 앞둔 10일 압구정 본점과 무역점,신촌점에서 한 쌍(2알)의 가격이 최고 120만원인 ‘귀족 호두’를 전시,판매하고 있다. 이 호두는 전남 장흥에 있는 수령 200년의 돌연변이 호두나무에서만 열리는 것으로 일반 호두에 비해 골이 깊고 단단하다는 게 백화점측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수요자와 시민단체들은 “백화점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다.경실련 관계자는 “일부 부유층을 겨냥한 명품 마케팅은 사행심을 조장하고 사회적 위화감을 부추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면서 “시장 원리도 중요하지만 정도가 심한 경우 정부 차원의 시장 개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광삼기자
  • [씨줄날줄] 트로이 목마

    BC 1200년경,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는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지혜의 여신 아테네,제우스의 아내 헤라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쓴 황금 사과를 던져준다.제우스는 여신들이 저마다 자기 것이라고 우기자,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판정을 맡긴다.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그 대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얻는다.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의 그리스군은 배 1000척을 이끌고 트로이 원정길에 나서 10년만에 승리를 거둔다.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를 남겨두고 철수하는 체했다가,트로이군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고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는 사이,목마 안에 숨어 있던 오디세우스 등이 성문을 열어주자 난공불락의 성 안으로 쳐들어가 함락한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BC 900년경에 쓴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전하는 트로이 전쟁은 19세기에 들어서자 신화나 전설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았으나,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3년에 유적지를 발굴함으로써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그러나 최근에는 슐리만의 공과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영국 BBC 다큐멘터리 방송은 슐리만이 발굴한 유적지는 트로이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여러 시기의 유적이 켜켜이 쌓인 곳에서 한 두층을 발굴했을 뿐,진짜 트로이 유적은 발굴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파괴해버렸다는 것이다.그리스가 트로이와 전쟁을 벌인 것도 에게해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보통신부가 개인용 컴퓨터(PC)에 ‘트로이 목마’가 광범위하게 유포돼 있다고 경보를 발령했다.‘트로이 목마’는 바이러스나 웜처럼 다른 파일을 감염시키거나 복제하지는 못하지만,목마 속에서 나온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멸망시켰듯이,유용한 프로그램을 가장해 PC에 숨어든 뒤 배포자의 의도에 따라 신용카드 번호나 비밀번호 등과 같은 사용자의 정보를 외부에 알려주거나 파일을 파괴한다.‘트로이 목마’는 트로이 전쟁에 얽힌 수많은 영웅과 신들에 대한 서사시가 네티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황진선 jshwang@
  • [사설]한용운·현진건 古宅도 사라지나

    우리 역사 문화 공간의 멸실을 걱정하는 한숨 소리가 가득하다.지난 27일 연세대 연신원 건물이 반대 여론 속에 기습 철거되더니 같은 날 서울 우이동의 육당 최남선 고택이 처참하게 뜯겨졌다.그런데 이번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저항시인인 만해 한용운선생이 15년간 기거했던 서울 계동 고택이 문화재당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이다.사실주의 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서울 홍지동의 빙허 현진건 고택,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원서동 고택도 버려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건물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니 더욱 놀랍다.만해 고택의 경우 15년 기거 정도로는 역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서울시에서 문화재 지정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그러나 3·1만세운동의 거사 계획 현장,‘님의 침묵’구상 현장 만큼 당당한 보호 명분이 어디 또 있겠는가.당국은 예산도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 또한 건물들의 훼손 속도를 생각할 때 팔짱만 끼고 있을 일은 아니다. 미국 역사는 기껏 200년 남짓이지만역사의 현장을 가보면 우리보다 훨씬 오랜 전통의 나라로 느껴질 때가 많다.사소한 것도 보존하고 후손들이 그 정신을 되새기기 때문이다.우리는 과연 후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가. 당국은 법규나 예산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있는 대상들을 긴급히 보호할 수 있는 적극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문화재 지정대상도 단계나 종류를 다양화해 법규 때문에 지정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또한 최근 횡행하고 있는 문화재 반달리즘에 대한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보호 논란이 있는 건물을 일단 훼손하고 보자는 식의 무지한 대처방식은 쐐기를 박아야 한다.
  • [공직자 에세이]평화의 섬 제주도

    ‘삼성신(三姓神)이 사는 낙원,저항의 섬이자 신혼여행지로 인기있는 한국의 제주도’ 독일의 대표적인 신문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FAG)가 지난해 11월28일자에 특집으로 소개한 제주도 관련기사의 제목이다.FAG는 기사에서 “제주도는 마치 거대한 느낌표의 한 점과 같은 형태로 한반도 대륙에서 떨어진 섬으로,독특한 문화,아름다운 자연환경,정감 넘치는 도민 등이 자산”이라고 극찬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동쪽으로 20분 가량 차를 달리면 ‘화북’마을이 나오고 그 왼편 길가에서 ‘삼사석’(三射石) 푯말을 만나게 된다.어린아이 머리만한 크기의 돌 3개가 있는 이곳은 삼성혈에서 솟아나온 고·양·부 삼신인(三神人)이 한라산 북쪽 기슭 ‘살쏜장오리’에서 활을 쏜 화살들이 꽂혔던 돌을 보관한 곳이다.이들은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와 배필을 정하고,거처를 정하는 방법으로 활쏘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제주시의 동(洞) 발상지가 1도동,2도동,3도동이 된 것도 화살이 꽂혔던 자리를 나눠 가진 데서 비롯된다.이때 벽랑국 공주가 가지고 온오곡과 육축에 의해 제주는 비로소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는다. 그러나 농경사회가 지극히 평화롭게 어어져 오지만은 않았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제주는 100년간의 몽골 지배,중앙권력으로 인한 200년간의 출륙금지령,또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에 의한 이중삼중의 수탈로 뼈저린 고통을 체험했던 땅이다.반세기 전에는 4·3의 광풍이 섬 전체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언젠가 한 역사학자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피해를 당한 사람만이 평화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 했던 그의 말은 두고두고 내 머리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다가오는 2005년,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주는 ‘세계 평화의 섬’임을 알리는 역사적인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제주는 지난 90년대 초,동서 냉전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무렵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미국 클린턴,중국 장쩌민,일본의 하시모토·오부치,중국 후진타오에 이르기까지 세계 지도자들의발길이 이어지면서 세계평화가 논의됐던 역사의 현장이다.제주는 아직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이미 그 역할이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북한동포들에게 감귤 보내기’사업도 같은 맥락이다.얼마 전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은 “제주도민들이 힘모아 벌이고 있는 대 북한 감귤지원사업은 ‘비타민C 외교’라 불릴 만큼 남북관계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과거 미국과 중국간의 ‘핑퐁외교’에 비유한 바 있다. 21세기는 평화가 나라와 민족의 생존을 결정할 중요한 키워드이자 컨셉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평화’ 하면 ‘제주’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시대,새로운 꿈을 위해 제주는 이제 큰 강을 건너려 하고 있다.평화,그것은 곧 제주프로젝트의 완성이자,탐라를 연 삼성신의 꿈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인도를 일주일 여행한 사람은 책을 한권 쓰고 일곱 달 머문 사람은 글을한편 쓰지만,인도에 7년동안 거주한 사람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인도란 그렇게,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역설의 나라’다.때문에 인도의 이미지는 흔히 보는 이의 ‘전지전능한’시선에 의해 박제되고 복제되고 또 무의식적으로 수용된다.‘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옥순지음,푸른역사 펴냄)은 바로 이러한 무분별한 ‘인도신화 만들기’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인도 근대사 전공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먼저 류시화·강석경·송기원 등 내로라하는 ‘인도전문’작가들의 산문집과 소설을 텍스트로 택해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베스트셀러 작가 류시화는 최근 출간된 산문집 ‘지구별 여행자’에서 인도에 관한 가장 ‘흔한’접근법을 보여줬다.신비와 명상,깨달음의 나라로서의인도.“…생은 어디에나 있었다.나는 사람들이 켜놓은 불빛이 보기 좋았다.내 정신은 여행길 위에서 망고 열매처럼 익어갔다.…” 또 그 뜬구름 잡는깨달음 이야기인가.인도는 왜언제나 삶의 교훈과 각성을 안겨주는 곳이어야 하는가.‘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류시화의 시선은 인도를 지배한 식민주의자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지적한다.그의 순수한 ‘인도 보기’ 역시 인도를 대상으로 여기고 ‘나와 다른’ 인도를 강조하며,10억 인구를 가진 광대한 인도의 다양한 층과 켜와 색채를 무시한 채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를테면 정신주의적인 측면만 골라 본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류시화는 19세기에 득세한 수많은 ‘키플링 아류’와 같은 배를 탄 셈이다.저자에 따르면 류시화는 후진적인 인도와 일정한 사회적·심리적 거리를 두며 인도를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강석경이나 송기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많은 소설가들에게 인도는 그저 추상으로 존재한다.‘실존하지 않는 그 무엇’이니까 그만큼 ‘무책임하게’ 그린다.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구원을 얻으려고 갑자기 인도로 떠난다.송기원 소설의 한 주인공은 이혼하고 잡지사를 그만둔 뒤 술을 마시고 여관에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 “인도로가자!”고 외친다.그런가 하면 강석경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에서의 “허위적인 결혼생활을 탈피”하려고 인도로 간다.은희경의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의강선배도 갑자기 직장을 내버리고 캘커타로 떠난다.주인공들은 무력한 순간에 홀연히 인도로 향한다.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인도가 거기에 있으니까 하는 식이다.그야말로 모호하고 무력한 글쓰기의 전형이다. 강석경과 송기원의 소설에 나오는 인도는 더러움과 가난만 가득할 뿐,즐거운 일이나 사람다운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강석경은 ‘문명 이전의본능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송기원은 ‘굶주린 아귀’로 인도 사람을그렸다.“인도인은 동물적인 기능만 한다.…개나 코끼리,원숭이보다 낫지 않다.”고 한 200년전 헤이스팅스 인도 총독의 말과 어쩌면 그리 닮은 꼴인가.저자는 이러한 묘사는 20세기 초 “난 그들을 언제나 일종의 동물 같다고 여기지요.우스꽝스러운 염소나 예쁜 사슴 같다구요.절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라고 한 헤르만 헤세의 ‘냉철한’시선을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한때 인도를 돌아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그는 인도를 가난하고 지저분한,구제불가능의 나라로 그릴 참이었다.그러나 글을 쓰기 전에 다시 돌아본 인도는 전혀 다른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트웨인이붓을 꺾은 것은 불문가지다.‘인도’를 들먹이기 좋아하는 작가라면 한번쯤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구잡이식’인도묘사는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 작가들이 생산하는 텍스트들은 대부분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한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을 담고 있다.저자는 이를 입증하고자 19세기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상대로 만들어낸 ‘박제 오리엔탈리즘’의 뿌리를 파고든다.영국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인도의 이미지를 역사가 없고 야만적이며 비합리적이고 나약하고 열등한 것으로 왜곡했다.그 고착된 이미지 탓에 인도는 숱한 세월 박제 상태였다.그리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이미지를내면화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이러한 시선이 200년의시차를 건너뛰어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소비된다는 사실이다.‘지독하게 가난하고 더럽고 혼란스러운 인도,그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행복을 잃지 않는다.’이런 종류의 이미지야말로 영국 식민주의가 낳은 ‘오염된’ 지식인데,우리는 무심코 이를 복제하고 확대 재생산한다.저자는 문학이나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이같은 이미지를 ‘이중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서양이 구성한 동양이 아닌 ‘동양이 구성한 동양’이라는 중층적인 구조를 띠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리엔탈리즘은 우리 안의 또 다른 파시즘이다.”라는 말로 끝을맺는다.시민사회를 규율하는 이념적 도구인 파시즘은 반공이나 전체주의 같은 데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남을 나와 다르게 보고 그것을 그대로 틀 안에 가둬버리는 것,그러한 시선이야말로 파시즘의 출발점이다.이 책에는 우리의 의식 속에 강력하게 자리잡은 닫힌 의식체계 즉,일상적 파시즘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9800원. 김종면기자 jmkim@
  • 현산어보를 찾아서정약전’자산어보’현대적 재구성

    유학사상 위주의 인문학이 지배했던 조선시대 학계에서 작으나마 자연과학관련 연구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현대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이러한 흔적들은 주로 18세기 실학이 융성했을 때의 것들인데,‘현산어보를 찾아서’(이태원 지음,청어람미디어) 시리즈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정약용의 형이자 천주학자였던 손암 정약전(丁若銓·1760∼1816)의 ‘자산어보’(玆山魚譜)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玆’(자)도 ‘검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현’으로 읽어야 한다는 논리를 옛 자료를 통해 확인,‘현산어보’란 이름을 썼다. 자산어보는 신유박해로 유배된 정약전이 유배지인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지로 조사·채집하여 기록한 것.수산동식물 200여종에 대한 명칭,분포,형태,습성 및 이용 등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수록돼 있다. 저자는 정약전의 발자취를 더듬어 7년여 동안 답사하며,바다 생물들을 살피고 현지인들을 인터뷰하면서 희미한 전설이 되어버린 옛 이야기를 되살렸다.내용 하나하나를 현대 생물학의 성과에 비추어 확인하고 있으며,해양생물들의 상세한 생태를 글과 세밀화,사진을 통해 다각도로 설명했다.이번에 나온것은 전 5권으로 예정된 시리즈중 1,2,3권.1권은 200년 전의 박물학자 정약전을 중심으로,2권은 그가 유배지에서 만난 생물들,3권은 그의 과학정신 위주로 살펴본다.각권 2만 3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
  • 巨富 - 역대 거상24인의 ‘경영 노하우’ 따라잡기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러 경제가 크게 발전하면서 거상(巨商)이자 정치가로 이름을 떨친 이들이 많이 생겨났다.초나라 출신인 도주공(陶朱公) 범려,무왕을 도와 왕조를 창업한 강상.제나라 환공을 오패의 맹주로 만든 관중,진나라 군대를 속여 정나라를 구한 현고,자초를 왕으로 옹립하고 천하를 한손에 넣은 여불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 고전에서나 들어보았을 법한 이런 인물들에게서 ‘돈 버는 방법’을배운다는 것,그것은 일견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 일처럼 보인다.더구나 중국은 중농억상(重農抑商)사상이 수천년을 지배해온 나라다.이런 나라에서 거만(巨萬)의 부를 모은 사람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중국에는 현재 5000만명이나 되는 억만장자들이 있다.그들은 어떤 경로를통해 부를 쌓았고 또 관리할까.‘巨富’(전2권,상성 지음,한은정 등 옮김,이지북 펴냄)는 중국의 역대 거상 24인의 인생역정과 지혜,경영이념을 통해 그 부의 비결을 밝힌다.스무살이 되면 장사의 모든 것을 배운다는 중국인.그들에게는 몸으로 배우고 가슴으로 실천하는 그들만의 경영전략이 있다.이 책에 소개된 거부들의 경영전략을 살펴보면 그것은 모두 중국의 고전에서 배운것임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친 거상들 가운데 성상(聖商)으로 불리는 인물이 한명 있다.오늘날까지 ‘부호의 대명사’로 통하는 춘추시대의 자유거상 범려다.범려의 상술의 핵심은 “귀함이 정점에 이르면 오히려 천하게 되고,천함이바닥에 닿으면 오히려 귀하게 된다.”는 이른바 귀천반복론이다.하늘 아래모든 것은 천할 때가 있으면 반드시 귀할 때가 있다.그러니 물건 값이 오를때 주저없이 내다 팔고 또 쌀 때 사들이는 가운데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물건의 품질은 엄격하게 따져야 하고,돈은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해야한다는 ‘무완물(務完物) 무식폐(無息幣)’의 원칙 또한 그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장사의 기본이다. 용은 가린 구름 사이로 가끔씩 비늘 덮인 뺨이나 발가락만 보여야지,그렇지 않으면 비상하는 기세를 느낄 수 없다.인간의 지혜도 마찬가지다.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는 것은 상대방에게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특히 지금처럼 기업간 경쟁이 치열하고 정보기술이 발달한 상황에서는 자신을 감추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그런 만큼 기업경영자에게는 자신을 적당히 감출 줄 아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전국시대 말 여불위는 이같은경영의 지혜로 천하를 거래하고,정치에서 성공한 몇 안되는 상인 중 한명이다. 이 책에는 중국 고대의 거상들뿐만 아니라 근대사를 장식한 경영 구루(guru)들도 꽤 많이 등장한다.상무인서관의 경영혁명을 이룬 출판 거목 장원제가그 두드러진 예다.상무인서관은 1897년 설립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번역·인쇄·출판·발행·판매를 하나로 아우른 초대형 출판사로 중국 제일의 문화기관으로 꼽힌다.장원제는 기업발전의 최대 원동력으로 ‘사람’을든다.그는 인재를 모으는 일이야말로 기업발전의 근원이며 변혁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인재를 제대로 구해 쓰는 것이 경영의 기본임은 역사가 증명한다.일찍이 강상은 이름없는 어부에 불과했지만 주 무왕이 그를 등용해 적을 멸망케 했고,이윤도 처음에는 보잘것 없는 관리 혹은 노비였다고 하지만 상 탕왕이 그를기용해 천하의 패권을 잡는 데 활용했다. 중국의 거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화교.중국은 어떤 면에서는 화교로 대표되는 나라다.화교의 자본규모는 9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약 2조 달러로 추정된다.이것은 중국 전체 GDP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이중 약 70%는 아시아 화교 자본이다.이 책에서는 화교 거상 진가경의 성공신화를소개한다.고무공장을 경영해 거부가 된 그의 기업가치관에서 핵심은 성실과신용이다.‘진가경 스타일’로 알려진 그 경영이념은 동양식 관리제도의 모범으로 통한다. 이밖에 양무파의 선구자 이홍장,상업이론가 백규,중화족 최대의 실업가 장예,화학공업계의 대두 범욱동,백화점 경영의 일인자 곽림상,금융업의 개척자 뇌이태,돈모(豚毛)왕국의 황제 고경우,선박왕 노작부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지혜와 용기,윤리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경영이념은 당장 무릎을칠 만큼 기발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구미에 비해 200년 이상 뒤쳐진 중국 자본주의를 불과 몇십년만에 선진 궤도에 올려놓은 그들의 경영사상의 일단을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각권 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골프와 트레킹… 태국의 ‘새로운 유혹’/현대와 전통 공존하는’북방의 장미’

    해외여행 몇 번 해본 사람치고태국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하지만 그중 대다수는 방콕이나 파타야,푸켓 등 태국 중남부에 머물다 돌아오면서 더이상 볼 것이 없다고 식상함을토로한다. 그렇다면 이젠 태국 북부에 눈을 돌려 보자.바다를 끼고 있는 남부와 달리북쪽 도시들은 대부분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으며,비교적 관광객들의 때가 덜 탄 곳이 많다.그중 치앙마이는 네팔에서 시작된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에위치한 곳으로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대표적 도시다.‘북방의 장미’란 애칭이 말해주듯 이곳은 서늘한 고산도시의 기후 덕에 피부 흰 미인이 많기로유명하다.방콕에 이어 태국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는 1200년대 태국의 고대왕조인 수코타이와 란나의 중심지.지금도 도심 곳곳엔 1000개를 웃도는 탑과 사원이 산재해 있다. 해발 2000m가 넘는 산악으로 둘러싸인 치앙마이는 트레킹과 골프의 천국.일년 내내 무더운 태국 남부와 달리 비교적 선선하면서도 습하지 않은 기후로정글 트레킹과 골프를 즐기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유럽 관광객들이 아직 대세를 이루나 최근 들어 한국 및 중국 관광객들이제법 찾는 편이다.특히 건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돼 추위 또는 더위를 피하려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도심에서 차로 30분만 나가면 정글과 계곡이 이어진다.정글 트레킹의 경우마니아들은 2박3일,3박4일 일정으로 탐험 코스를 즐긴다.그러나 일반 관광객은 하루나 한나절 코스를 선택해야 무리가 없다. 치앙마이 북쪽엔 5곳 정도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그 중 도심에서 1시간 정도 차로 올라간 거리의 매태만 계곡에 위치한 ‘매탱 코끼리 공원’이 운영하는 코스가 체험해 볼 만하다.이곳 단축코스는 코끼리 트레킹 및 뗏목 래프팅,물소 수레타기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상당히 재미 있다.코끼리를 타고 계곡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서 물소 수레를 타고 내려온 다음 다시 뗏목을타고 계곡을 내려가는 코스다. 특히 코끼리의 배까지 잠기는 계곡물을 건너 정글을 어슬렁거리며 헤쳐나가는 코끼리 트레킹,대나무를 엮어 만든 뗏목을 타는 래프팅은 꽤 스릴 있다.요금은 30달러 정도. 치앙마이엔 골프장이 10여 군데 있는데, 그중 관광객들이 즐길 만한 곳은로열·그린밸리·람푼·란나 등 4곳.이중 다양한 모양의 호수와 야자수가 조화를 이룬 그린밸리는 조니워커 골프대회 등 세계적 대회가 해마다 열리는명문코스다.람푼은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린이 보이는 코스가 거의 없을 정도로 고난도지만 아기자기하게 코스를 꾸며놓아 한국 골퍼들에게 인기가 높다. 로열 및 란나 골프장은 넓은 페어웨이와 탁 트인 시야가 특징.따라서 중·상급 골퍼들은 그랜밸리나 람푼을,초보자들은 로얄이나 란나 골프장을 선택해야 후회가 없다. 그린피는 골프장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8홀 기준 1200∼1500바트.환율은 1달러에 약 40바트다.캐디피는 200바트,골프클럽 대여료는 400바트 정도다. 캐디피가 싸기 때문에 골퍼가 별로 없는 주중에는 혼자 캐디 4명을 데리고치는 일명 ‘왕족골프’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즉 기존의 캐디 역에다 양산 받쳐주고,‘굿샷’을 외치며 박수를 쳐주거나 먹거리를 챙겨주는 캐디를별도로 ‘거느리고’ 라운딩한다고 한다. 산악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고산족 마을도 찾아볼 만하다.치앙마이엔 현재1000여곳에 달하는 고산족 마을이 산재해 있는데,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거나수공예품 등을 만들어 생계를 잇는다.시내와 달리 전통적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이들의 순박한 모습은 방문객들에게 여유로움을 준다. sdragon@ ★여행 가이드 ●항공편 겨울 성수기를 맞아 타이항공이 다음달부터 내년 2월까지 치앙마이 직항 전세기를 띄울 예정.직항기를 이용하면 방콕을 경유해 가는 것보다 소요시간이 크게 줄어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단 전세기를 이용하려면 전세기를 독점운영하는 여행사의 여행상품을 이용해야 한다. KC투어(02-761-0947)가 골프패키지상품은 84만 9000(3박5일)과 89만 9000원(4박6일),일반 관광패키지는64만 9000원(3박5일)과 74만 9000원(4박6일)에 각각 판매한다. 정기항공편을 이용하려면 방콕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인천공항에서 방콕까지 5시간,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1시간쯤 걸린다.한국∼방콕노선은주 54편,방콕∼치앙마이 국내선은 수시로 있다. ●먹거리 및 숙박 태국 북부지역 전통 만찬을 들며 전통 쇼를 관람하는 ‘칸토크(Kan Tak) 디너쇼’가 유명하다.밥과 함께 버섯수프,돼지고기,닭고기,야채볶음 등 7가지반찬이 나오며,음식이 떨어지면 알아서 채워준다.식사를 하는 동안 몇가지태국무용 및 고산족 전통춤을 공연하는데,애니미즘이 녹아 있는 이들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맛볼 수 있다.‘올드 치앙마이 센트럴 센터’의 칸토크 디너가 유명하다. 한국음식을 먹고 싶으면 치앙마이 시내에 있는 ‘KOREAN RESTAURANT’이 찾을 만하다.다른 한국 음식점이 관광객을 주고객으로 하는 반면 이곳은 50여명에 불과한 한국 교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이어서 싸고 맛도 괜찮다. 숙박은 아마리·엠프레스 등 4성 호텔 정도면 깨끗하면서 고급스럽다.숙박료는 2000∼3000바트.규모는 작지만 싸면서 각국 배낭족을 사귀고 싶다면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애플 게스트하우스’등,400바트 이하에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널려 있다. ●환전 및 쇼핑 인천공항에서 우리 돈을 바트화로 바꿀 수 있다.하지만 태국 공항의 경우환전코너에는 한화를 취급한다고 명시해 놓기는 했으나 실제론 환전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환율은 1바트에 30원,1달러에 40바트 정도다. 쇼핑은 시내 야시장인 ‘나이트 바자르’(Night Bazzar) 또는 세계적 수공예품 단지인 ‘산 캠팽’(San Kampaeng)에서 할 만하다. 야시장에선 태국 전통 공예품과 가구는 물론 이웃나라 미얀마와 중국의 골동품,티베트의 고미술품 등을 싼 값에 살 수 있다.산캠팽에선 타이 실크 및 가죽,은세공품,티크가구 등을 공장도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문의 태국관광청 서울사무소(02-779-54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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