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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해신’서 연기호흡 최수종·채시라

    KBS ‘해신’서 연기호흡 최수종·채시라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많이 호흡을 맞춘 경우가 아닐까 싶어요.안 보고도 서로 ‘이렇게 연기할 것’이란 예상이 80% 이상 맞아 떨어지죠.”(최수종) “유일무이하죠.굳이 말 한해도 믿음이 가요.함께 했던 작품마다 결과도 좋았구요.”(채시라) 환상의 콤비란 이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그동안 ‘각시방에 사랑걸렸네’,‘파일럿’,‘아들과 딸’,‘야망의 전설’,‘사람의 집’ 등 다섯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 호흡을 보여줬던 탤런트 최수종(42)과 채시라(36).그런 두 배우가 5년만에 다시 만나 6번째 찰떡궁합을 과시한다.오는 11월 17일 첫 전파를 탈 KBS2TV 특별기획 50부작 ‘해신(海神)’(극본 박상현,연출 강일수)을 통해서다.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해신’은 1200년 전 통일신라시대 해상왕국을 건설했던 장보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대작.총 제작비 180억원에 완도(청해진)·제주도·중국 현지 로케이션으로 만들어진다.오는 13일 첫 촬영을 앞둔 두 배우를 3일 완도 오픈 세트장에서 만났다. ●“새로운 장보고의 모습 보여드릴게요.” ‘태조 왕건’‘태양인 이제마’를 통해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던 최수종이 이번엔 장보고로 변신한다.‘태조 왕건’ 종영 이후 “다시는 사극에 출연 않겠다.”던 그였다.장보고의 어떤 매력에 끌렸을까.“천민 출신으로 온갖 난관을 헤치고 청해진 대사의 위치에까지 오르는 장보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런 역할이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두꺼운 갑옷 위로 긴머리를 늘어뜨리고 입술을 꽉 다문 채 “‘태조 왕건’때 4년 동안 200회 분량도 찍었는데 50회쯤이야 우습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단단한 각오와 여유가 함께 느껴졌다. 장보고역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당당한 대답이 돌아온다.“‘야망의 전설’과 ‘태조 왕건’때도 ‘쌍꺼풀’등을 운운하며 안 어울린다고 했지만,둘다 최고의 히트작이 됐잖아요.대하 드라마는 ‘마라톤’이에요.나중에 제가 결승선 테이프를 어떻게 끊는지 보여드릴게요.” 그는 2000년 이후 대하 사극만 3번째다.“배우라면 사극을 해야 됩니다.정말 공부가 많이 돼요.드라마로 얼굴을 알린 뒤 바로 영화판으로 가고,거기서 실패하면 다시 드라마로 돌아오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요즘 젊은 배우들은 정말 사극을 통해 더 배워야 해요.”후배 배우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와 함께 한마디 덧붙인다.“저도 아직은 어리죠.이덕화·유인촌 선배님과 같은 연륜 있는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계속 출연해야 우리나라 드라마가 발전한다고 생각해요.”이번 ‘해신’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색깔의 사극 연기를 선보이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표독한 카리스마 기대하세요.” 날카롭게 치켜올린 눈꼬리,화장으로 강조한 광대뼈,도도함이 느껴지는 자줏빛 의상과 장신구,그리고 농염한 미소.완도 오픈 세트장에서 만난 채시라는 매일 눈물 연기를 펼치는 KBS2TV ‘애정의 조건’의 ‘금파’역에서 벗어나,표독스러우면서도 카리스마 강한 천하 제일의 여걸로 변신해 있었다.그녀는 장보고와 상권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라이벌이자 권모술수에 능한 통일신라 최고의 진골귀족 자미부인 역으로 출연한다. “캐스팅 제의를 받고 다음날 곧바로 수락의사를 밝혔어요.대본 받고는 ‘아,이건 내가 해야 하는 배역이다.’라고 느꼈죠.남편(가수 김태욱)도 ‘당신이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자신의 평상시 매력을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 캐릭터라 느낌이 남다르다며 활짝 웃는다. 그녀에게 사극은 ‘왕과 비’이후 4년만이다.“그동안 정말로 사극을 해보고 싶었어요.현대물과 달리 개성 넘치는 카리스마는 물론 낭만과 여유도 보여줄 수 있거든요.”하지만 금파역만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단다.“실제 아기 엄마로서 공감가는 캐릭터예요.며칠전 놀이공원에서 아이와 노는 씬을 찍을때는 평소 집에 있는 남편과 아기에게 시간을 내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극중 결말을 묻자,금파가 남편과 재결합하게 되는 것까지만 알려준다며 미소 짓는다. “더 늙기 전에 와이어 액션 한번 해봐야 하는데….극중에서 워낙 높은 신분이라 ‘아랫것들’에게 명령만 할뿐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네요.(웃음)” 완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삼성 새 이미지광고 제작

    삼성그룹은 ‘좋은 기업 더 나은 삶’(Good Company,Better Life)을 주제로 한 새 이미지광고를 선보였다고 6일 밝혔다. 신문광고는 70년대 결혼하고 80년대 두 아이를 낳고 현재를 살아가는 윤수열(54·무역업)씨 가족의 실제 생활을 모티브로 삼았다.윤씨는 결혼 당시 전화가 혼수품이었을 만큼 귀했고 둘째 아들이 세살때 에버랜드(당시 자연농원)에 놀러간 기억이 새롭고,요즘 밝고 쾌적한 병원 영안실의 장례문화가 반갑다며 삼성과 함께 한 개인사를 생생하게 들려줬다.광고에는 윤씨 가족사진을 직접 활용할 계획이다. TV광고는 한 여주인공이 70년대 공중전화앞,80년대 레코드가게,90년대 카페,200년대 인천공항을 배경으로 나오며 각각 전화가 귀했던 시절,1가구 1전화 시대,세계최초 CDMA휴대전화,1인 1전화 시대를 보여준다. 삼성 관계자는 “기업이 경제발전과 함께 국민들의 생활을 향상시켜 좋은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건승기자 ksp@seoul.co.kr˝
  • 황금빛 명품 경주 ‘교동법주’

    소주가 안동소주라면 법주는 단연 경주 교동법주다. 수랏간 참봉 출신 최씨 집안에서 350년간 비법이 전수돼 온다는 교동법주. 경주 남산에서 내려다 보면 가장 아름다운 동네가 교동마을이다.민속자료 제27호로 지정된 목조 기와건물인 ‘최씨 고택’과 나란히 ‘무형문화재 86-다호 교동법주 양조장’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22살때 최씨 집안으로 시집 온 후 65년간 법주를 빚고 있다는 배영신(88)할머니.“누군교.내사 마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해서…,자슥하고 이야기 하소.”배할머니는 잠시 툇마루에 나왔다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린 이젠 마 기자들은 상대 안합니더.” 이 무슨 날벼락인가. 배 할머니의 자제인 최경(60)씨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동안 기자들이 뭔가 잘못을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이다. “어르신 그 이유나 한번 들어봅시다.” 사연인즉 이랬다.교동법주의 역사는 조선조 숙종때로 거슬러 올라간다.수라상과 궁중의 음식을 관장하던 사옹원의 참봉을 지낸 최국선 선생이 낙향해 궁중에서 마시는 곡주의 제조방법을 집안에 대대로 전승시켜 오늘까지 이어온다. 문제는 기능보유자 배 할머니는 최씨 집안의 종부가 아니고 작은집 며느리인데 기자들이 자꾸 종부라고 쓴단다.큰집에 종부가 어엿이 따로 있는데 큰집 보기가 너무 민망하고 죄송스럽다는 하소연이다. 또 최씨 집안에서 교동법주의 주조법을 출가하는 딸들에게는 아예 가르치지 않고 철저히 맏며느리에게만 전수시켰다고 알려진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사실인즉 교동법주는 큰집의 종손들이 한동안 명맥을 이어오다 사업 등으로 교동마을을 떠나면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작은 집에서 맥을 잇고 있다.작은집 며느리가 종부라니.큰집에서 보면 괘씸하게 여길 만한 일이다.더구나 뼈대 있는 가문에서야. 교동법주는 이땅의 법주 가운데 최고 대접을 받는다.혀끝에 착착 감기는 달큰하면서도 부드러운 술맛.노르스름하면서도 투명한 빛깔,과음해도 취하는 줄 모르고 마시고 난 뒤에도 뒤탈이 없는 술.지난 1986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후 교동법주는 1992년 상품화되면서 일반 애주가들에게도 선보였다.최씨 집 대문밖으로 나온 교동법주는 경주에 가서 이 맛을 보지 못했다면 경주에 ‘헛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애주가들의 혀끝을 감동시켰다. 처녀때 잠시 교편을 잡다 최씨 집안으로 시집온 배할머니는 시집오자마자 여인네들이 법주 담그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혔고 평생 좋은 술 빚기에 정성을 쏟고 있다. 술 익는 소리와 냄새만 맡아도 술이 어떤지 금방 알아챈다는 배 할머니는 정작 술을 마실 줄은 모른단다.술맛을 모르면서 최고의 술을 빚는다니 가히 장인이라는 소리가 아깝지 않다. 교동법주는 순수한 찹쌀과 통밀로 만든 누룩,샘물로 빚는다. 대부분의 술은 밀기울만 가지고 누룩을 만들지만 밀 전체와 쌀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특이하다. 더구나 술맛을 좌우하는 물은 최씨고택 안마당에 있는 200년이 넘은 우물 물을 고집한다.우물가에 서 있는 100년이 넘는 구기자 나무 뿌리가 샘에 닿아 물맛이 좋다는 것. 또 기온이 17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술이 쉽게 쉬어버려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만 술을 빚는다.더위가 찾아온 요즈음은 술을 빚지 않고 미리 빚은 술을 냉장보관해 판매만 한다.주도(酒度)는 보통 16∼19도 사이인데 17도 정도가 가장 좋은 술맛을 낸다. 대리점이 없는데다 인터넷이나 우편으로도 구입할 수 없고 오직 교동마을 최씨 고택 양조장에 가야만 살 수 있다.생산량이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최고의 술이라는 명품의 자부심이리라. 문전박대를 간신히 면하자 아내와 식품학을 전공한 자식과 함께 어머니로부터 주조법을 전수중인 최씨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가만히 꺼냈다. 젊어서 축구에 미쳐 당대에 그라운드를 휩쓸던 이회택,김재한과 공을 찼단다.술과 축구.음주축구라곤 듣도 보도 못했는데 술과 축구는 아무리 고민해 봐도 서로 궁합을 맞추기가 어렵다.아마도 이런 뜻일까.젊어서 축구에 미친 것처럼 어머니를 이어 앞으로 최고의 술을 빚는데 미쳐버리겠다는 각오가 아닐는지. 대∼한민국.교∼동법주.위스키가 점령한 이땅에 고집스럽게 토속주를 빚고 있는 전국의 장인들에게 박수를 마구 쳐주고 싶었다.짜·자·자·작·작. 경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곁들여 드세요 좋은 술에는 그에 맞는 맛깔스러운 안주가 있어야 제격인 법이다. 교동마을을 세거지로 하는 경주 최씨 일족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김치인 ‘사연지’는 교동법주와 궁합이 잘맞는다. ‘싸서 넣은 김치’라는 뜻의 사연지는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큰새우 속살 등을 때깔 좋은 실고추에 버무린 갖은 양념 속을 배춧잎으로 얌전히 싸 넣은 것으로 톡 쏘는 맛과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북어포를 아주 잘게 찢어 양념한 북어보푸림과 콩·밀을 띄운 메주를 갈아서 박,가지,무청,다시마,부추,닭고기,쇠고기 등을 넣고 만든 집장도 배 할머니의 솜씨가 느껴지는 안주거리다.˝
  • 황금빛 명품 경주 ‘교동법주’

    황금빛 명품 경주 ‘교동법주’

    소주가 안동소주라면 법주는 단연 경주 교동법주다. 수랏간 참봉 출신 최씨 집안에서 350년간 비법이 전수돼 온다는 교동법주. 경주 남산에서 내려다 보면 가장 아름다운 동네가 교동마을이다.민속자료 제27호로 지정된 목조 기와건물인 ‘최씨 고택’과 나란히 ‘무형문화재 86-다호 교동법주 양조장’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22살때 최씨 집안으로 시집 온 후 65년간 법주를 빚고 있다는 배영신(88)할머니.“누군교.내사 마 이제 정신이 오락가락해서…,자슥하고 이야기 하소.”배할머니는 잠시 툇마루에 나왔다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린 이젠 마 기자들은 상대 안합니더.” 이 무슨 날벼락인가. 배 할머니의 자제인 최경(60)씨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동안 기자들이 뭔가 잘못을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이다. “어르신 그 이유나 한번 들어봅시다.” 사연인즉 이랬다.교동법주의 역사는 조선조 숙종때로 거슬러 올라간다.수라상과 궁중의 음식을 관장하던 사옹원의 참봉을 지낸 최국선 선생이 낙향해 궁중에서 마시는 곡주의 제조방법을 집안에 대대로 전승시켜 오늘까지 이어온다. 문제는 기능보유자 배 할머니는 최씨 집안의 종부가 아니고 작은집 며느리인데 기자들이 자꾸 종부라고 쓴단다.큰집에 종부가 어엿이 따로 있는데 큰집 보기가 너무 민망하고 죄송스럽다는 하소연이다. 또 최씨 집안에서 교동법주의 주조법을 출가하는 딸들에게는 아예 가르치지 않고 철저히 맏며느리에게만 전수시켰다고 알려진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사실인즉 교동법주는 큰집의 종손들이 한동안 명맥을 이어오다 사업 등으로 교동마을을 떠나면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작은 집에서 맥을 잇고 있다.작은집 며느리가 종부라니.큰집에서 보면 괘씸하게 여길 만한 일이다.더구나 뼈대 있는 가문에서야. 교동법주는 이땅의 법주 가운데 최고 대접을 받는다.혀끝에 착착 감기는 달큰하면서도 부드러운 술맛.노르스름하면서도 투명한 빛깔,과음해도 취하는 줄 모르고 마시고 난 뒤에도 뒤탈이 없는 술.지난 1986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후 교동법주는 1992년 상품화되면서 일반 애주가들에게도 선보였다.최씨 집 대문밖으로 나온 교동법주는 경주에 가서 이 맛을 보지 못했다면 경주에 ‘헛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애주가들의 혀끝을 감동시켰다. 처녀때 잠시 교편을 잡다 최씨 집안으로 시집온 배할머니는 시집오자마자 여인네들이 법주 담그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혔고 평생 좋은 술 빚기에 정성을 쏟고 있다. 술 익는 소리와 냄새만 맡아도 술이 어떤지 금방 알아챈다는 배 할머니는 정작 술을 마실 줄은 모른단다.술맛을 모르면서 최고의 술을 빚는다니 가히 장인이라는 소리가 아깝지 않다. 교동법주는 순수한 찹쌀과 통밀로 만든 누룩,샘물로 빚는다. 대부분의 술은 밀기울만 가지고 누룩을 만들지만 밀 전체와 쌀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특이하다. 더구나 술맛을 좌우하는 물은 최씨고택 안마당에 있는 200년이 넘은 우물 물을 고집한다.우물가에 서 있는 100년이 넘는 구기자 나무 뿌리가 샘에 닿아 물맛이 좋다는 것. 또 기온이 17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술이 쉽게 쉬어버려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만 술을 빚는다.더위가 찾아온 요즈음은 술을 빚지 않고 미리 빚은 술을 냉장보관해 판매만 한다.주도(酒度)는 보통 16∼19도 사이인데 17도 정도가 가장 좋은 술맛을 낸다. 대리점이 없는데다 인터넷이나 우편으로도 구입할 수 없고 오직 교동마을 최씨 고택 양조장에 가야만 살 수 있다.생산량이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최고의 술이라는 명품의 자부심이리라. 문전박대를 간신히 면하자 아내와 식품학을 전공한 자식과 함께 어머니로부터 주조법을 전수중인 최씨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가만히 꺼냈다. 젊어서 축구에 미쳐 당대에 그라운드를 휩쓸던 이회택,김재한과 공을 찼단다.술과 축구.음주축구라곤 듣도 보도 못했는데 술과 축구는 아무리 고민해 봐도 서로 궁합을 맞추기가 어렵다.아마도 이런 뜻일까.젊어서 축구에 미친 것처럼 어머니를 이어 앞으로 최고의 술을 빚는데 미쳐버리겠다는 각오가 아닐는지. 대∼한민국.교∼동법주.위스키가 점령한 이땅에 고집스럽게 토속주를 빚고 있는 전국의 장인들에게 박수를 마구 쳐주고 싶었다.짜·자·자·작·작. 경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곁들여 드세요 좋은 술에는 그에 맞는 맛깔스러운 안주가 있어야 제격인 법이다. 교동마을을 세거지로 하는 경주 최씨 일족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김치인 ‘사연지’는 교동법주와 궁합이 잘맞는다. ‘싸서 넣은 김치’라는 뜻의 사연지는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큰새우 속살 등을 때깔 좋은 실고추에 버무린 갖은 양념 속을 배춧잎으로 얌전히 싸 넣은 것으로 톡 쏘는 맛과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북어포를 아주 잘게 찢어 양념한 북어보푸림과 콩·밀을 띄운 메주를 갈아서 박,가지,무청,다시마,부추,닭고기,쇠고기 등을 넣고 만든 집장도 배 할머니의 솜씨가 느껴지는 안주거리다.
  • 儒林(102)-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02)-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강당 천장 벽에는 송시열의 ‘강당기’를 비롯하여 ‘학규(學規)’,‘중건기(重建記)’등 많은 현판들이 걸려있었으나 대부분 일정한 규격 속에 많은 내용을 빼곡히 담고 있어 판독하기가 불가능하였지만 유독 숙종대왕의 어제만은 굵은 필체로 양각되어 있었고,마모상태도 양호하여 한자 한자 정확히 읽어 내릴 수 있었다.민진원이 추신하여 쓴 문장 제일 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崇禎後再庚戌首春 未死臣 閔鎭遠 敬識” 재경술이라면 1730년.수춘은 1월이니,민진원이 숙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어제를 삼가 적은 것은 조광조의 사후 200년 후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나는 팔짱을 낀 채 다시 생각하였다.조광조의 사후 200년이 흐른 뒤에 숙종은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나온다’고 노래하였다.숙종이 돌아갔음에도 신하인 자신은 황공하게도 살아 있다 하여서 죽지 못한 신하,즉 미사신(未死臣)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민진원 역시 ‘한번 읊어보고 세 번 탄식하여 감동하여 눈물이 절로 솟아나왔다’고 칭송하고 있다. 또한 효종의 어명으로 이시해는 치제문을 통해 조광조를 ‘위대하다.공의 경로는 오랠수록 빛이 나서 영원히 백세토록 종주(宗主)로 떠받드니’하고 축원하고 있다. 그 뿐인가.송시열은 ‘강당기’에서 조광조를 다음과 같이 영탄(詠歎)하고 있다. “선생은 뛰어난 자질로 문장의 기운을 지니시어 스승의 전수를 받지 않고 홀로 도의 묘리를 터득하시었다.이는 순수한 성현의 도요,순전한 제왕의 법이었다.비록 일시에 행하지는 못하였으나 후세에 전하는 것은 더욱 오랠수록 없어지지 않으리라.아,이것이 어찌 인력이 관여할 일인 것인가.하늘이 실로 그렇게 한 것이다.” 송시열로부터 ‘성현의 도’와 ‘제왕의 법’을 갖추었던 하늘이 내린 인물로 찬양 받았던 조광조. 그러나 조광조는 이처럼 후세의 사람들로부터 칭송만 받았던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조광조의 사후 그에 대한 복권운동이 시작되자 홍문관 직제학이었던 허흡(許洽) 등은 조광조를 ‘나라를 어지럽히는 괴수’라고 단정하고 맹렬하게 비난하였다고 실록은 전하고 있다.심지어 조광조와 같은 신진사림파로 함께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기묘사화 때는 조광조 일파로 몰려 삭직당하고 유배를 떠났던 김정국(金正國)은 ‘사재척언’에서 조광조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대사헌 조광조는 항상 총애를 받아 매양 소대(召對)할 때에는 반드시 의리를 끌어와 비유하였다.종으로 횡으로 경서의 말을 인용하여 말을 정지하는 때가 없으니 다른 사람은 그 동안에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한겨울과 한창 더위라도 한낮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고,소대를 마치고 나면 윤허되지 않은 일이 없었다.같이 있던 자는 매우 괴롭게 여겼고,모두 싫어하는 기색이 있었다.일찍이 대사헌으로서 아문에 출사하다가 길에서 고형산을 만났으나 경례하지 않고 지나갔는데,대사헌을 미워하는 자는 모두 이를 갈았다.‘한서’를 상고하여 보니 소망지(蕭望之)가 어사가 된 후에는 정승을 가볍게 여겨 만나고도 예를 표하는 일이 없는 것과도 같았다.또한 장탕(張湯)도 어사가 되어 매양 밤이 늦어야 일을 파하였다.두 사람이 어질고 어질지 않음은 비록 같지 않으나 거만하고 제 마음대로 하다가 죄를 당한 것은 같다.예나 지금이나 군자의 몸가짐에는 공경하고 겸손한 것이 복을 누리는 터전이 된다.어찌 경계하지 않으리오.”
  • 儒林(102)-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강당 천장 벽에는 송시열의 ‘강당기’를 비롯하여 ‘학규(學規)’,‘중건기(重建記)’등 많은 현판들이 걸려있었으나 대부분 일정한 규격 속에 많은 내용을 빼곡히 담고 있어 판독하기가 불가능하였지만 유독 숙종대왕의 어제만은 굵은 필체로 양각되어 있었고,마모상태도 양호하여 한자 한자 정확히 읽어 내릴 수 있었다.민진원이 추신하여 쓴 문장 제일 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崇禎後再庚戌首春 未死臣 閔鎭遠 敬識” 재경술이라면 1730년.수춘은 1월이니,민진원이 숙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어제를 삼가 적은 것은 조광조의 사후 200년 후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나는 팔짱을 낀 채 다시 생각하였다.조광조의 사후 200년이 흐른 뒤에 숙종은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나온다’고 노래하였다.숙종이 돌아갔음에도 신하인 자신은 황공하게도 살아 있다 하여서 죽지 못한 신하,즉 미사신(未死臣)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민진원 역시 ‘한번 읊어보고 세 번 탄식하여 감동하여 눈물이 절로 솟아나왔다’고 칭송하고 있다. 또한 효종의 어명으로 이시해는 치제문을 통해 조광조를 ‘위대하다.공의 경로는 오랠수록 빛이 나서 영원히 백세토록 종주(宗主)로 떠받드니’하고 축원하고 있다. 그 뿐인가.송시열은 ‘강당기’에서 조광조를 다음과 같이 영탄(詠歎)하고 있다. “선생은 뛰어난 자질로 문장의 기운을 지니시어 스승의 전수를 받지 않고 홀로 도의 묘리를 터득하시었다.이는 순수한 성현의 도요,순전한 제왕의 법이었다.비록 일시에 행하지는 못하였으나 후세에 전하는 것은 더욱 오랠수록 없어지지 않으리라.아,이것이 어찌 인력이 관여할 일인 것인가.하늘이 실로 그렇게 한 것이다.” 송시열로부터 ‘성현의 도’와 ‘제왕의 법’을 갖추었던 하늘이 내린 인물로 찬양 받았던 조광조. 그러나 조광조는 이처럼 후세의 사람들로부터 칭송만 받았던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조광조의 사후 그에 대한 복권운동이 시작되자 홍문관 직제학이었던 허흡(許洽) 등은 조광조를 ‘나라를 어지럽히는 괴수’라고 단정하고 맹렬하게 비난하였다고 실록은 전하고 있다.심지어 조광조와 같은 신진사림파로 함께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기묘사화 때는 조광조 일파로 몰려 삭직당하고 유배를 떠났던 김정국(金正國)은 ‘사재척언’에서 조광조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대사헌 조광조는 항상 총애를 받아 매양 소대(召對)할 때에는 반드시 의리를 끌어와 비유하였다.종으로 횡으로 경서의 말을 인용하여 말을 정지하는 때가 없으니 다른 사람은 그 동안에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한겨울과 한창 더위라도 한낮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고,소대를 마치고 나면 윤허되지 않은 일이 없었다.같이 있던 자는 매우 괴롭게 여겼고,모두 싫어하는 기색이 있었다.일찍이 대사헌으로서 아문에 출사하다가 길에서 고형산을 만났으나 경례하지 않고 지나갔는데,대사헌을 미워하는 자는 모두 이를 갈았다.‘한서’를 상고하여 보니 소망지(蕭望之)가 어사가 된 후에는 정승을 가볍게 여겨 만나고도 예를 표하는 일이 없는 것과도 같았다.또한 장탕(張湯)도 어사가 되어 매양 밤이 늦어야 일을 파하였다.두 사람이 어질고 어질지 않음은 비록 같지 않으나 거만하고 제 마음대로 하다가 죄를 당한 것은 같다.예나 지금이나 군자의 몸가짐에는 공경하고 겸손한 것이 복을 누리는 터전이 된다.어찌 경계하지 않으리오.”˝
  • ‘트로이’ 브래드피트 가상 인터뷰

    서사액션 ‘트로이’(Troy)가 21일 국내 개봉한다.올해 극장가에 가장 먼저 도전장을 던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셈이다.호머의 ‘일리아드’를 할리우드식으로 재해석한 액션영화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주인공 브래드 피트의 개인기가 가장 돋보인다.언제 저렇게 근육을 키웠을까,여성팬들의 가슴이 두근두근 뛸 성싶다. “이렇게 고생고생하며 영화를 찍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죠.스펙터클 시대극을 찍는 배우들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역시나 장난이 아니더라고요.무쇠방패를 들고 창,칼을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것부터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었으니까.그래도 나중엔 목에 힘이 쫙 들어갈 만큼 위엄있는 작업이었던 건 분명해요.톰 크루즈는 벽안의 사무라이로도 변신(‘라스트 사무라이’)한 판에 신화속 고대전사쯤 저라고 못할 이유가 없었지요.여성팬들은 제 달라진 분위기에 뜨거운 박수를 날려줄 거라 믿습니다. 극중 캐릭터는 그리스 연합군의 최정예 전사 아킬레스.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로 태어나 싸움 하나는 끝내주는,그리스 신화의 저 유명한 불멸의 전사죠.여러분,아킬레스건의 유래 다들 아시죠? 어머니 여신이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스틱스강에 몸을 담그다 그만 발뒤꿈치를 적시지 않는 바람에 그게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만….전투 족족 승리로 이끌다 막판에 그 급소에 창을 맞아 비극적 최후를 맞는 캐릭터가 됐습니다. 이쯤되면 제가 쌈닭으로만 비쳐질 듯한데,천만의 말씀!(물론 ‘마초영웅’이긴 합니다.) 이 섹시가이가 어찌 러브스토리없는 영화를 찍었을라고요? 신들의 예언으로 ‘트로이 전쟁’에 나섰다가 전장에서 적국 트로이의 여사제와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요.결국 그녀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는 거죠. 아 참! 미리 알면 김샐지도 모르는데….베드신이 아주 멋있을 거란 자랑을 안할 수가 없네요.탄탄한 근육으로 다져진 제 몸매가 화려하게 노출되는 장면이 몇 있어요.‘몸짱’소리 들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니까요,하하. 고대 비극전사의 느낌을 살리려 치렁치렁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나온답니다.영화가 끝나고 이곳저곳 인터뷰에 나서면서 아예 머리를 싹싹 밀어버렸어요.참신해 보일 거예요. 성질들도 정말 급하시네∼.다음 작품은 또 언제 볼 수 있냐고요? 지금 ‘미스터&미세스,스미스’란 영화를 촬영중이고요,그 다음엔 ‘오션스 12’를 찍기로 돼있답니다.OK,그럼 오늘 가상인터뷰는 여기까지!” 황수정기자 ■트로이는 어떤 영화 ‘트로이’는 한마디로 ‘규모의 영화’다.제작비 2억달러.BC 12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묘사한 액션블록버스터다.신화적인 분위기와 이야기 얼개를 만들어내야 하는 만큼 전투장면의 스케일도 엄청나다.한꺼번에 7만 5000명이 넘는 엑스트라들이 대규모 전투장면을 연출할 때는 숨이 막힐 정도. 줄거리는 단순하다.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란도 블룸)가 적국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다이앤 크루거)를 납치하면서 트로이 전쟁이 터진다.스파르타가 자랑하는 무소불위의 전사 아킬레스(브래드 피트)가 전쟁에 나서지만,트로이 왕족인 여사제 브리세이스(로즈 번)와 사랑에 빠지면서 영화는 비극과 멜로의 대조적인 색채를 비장감을 살려 덧입힌다.사랑과 분노,복수,암투 등이 복잡하게 얽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입이 딱 벌어지는 규모는 나무랄 데 없다.그러나 화려한 ‘포장’에 지나치게 기대를 걸었다간 내용물에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듯.컴퓨터그래픽 장난이 거의 없는 사실액션으로 화면이 채워진다.하지만 전쟁액션을 돋보이게 할 지략의 묘미는 보이지 않는다.화려한 캐스팅이 화젯거리다.아킬레스와 숙명적인 대결을 벌이는 트로이 헥토르 왕자 역에는 에릭 바나.원로스타 피터 오툴이 트로이 왕으로,줄리 크리스티가 아킬레스의 어머니 여신을 맡았다.‘퍼펙트 스톰’‘에어포스 원’ 등을 연출한 볼프강 페터슨 감독.˝
  • ‘앤티크 가구’ 웰빙바람 타고 유행

    ‘앤티크(Antique)’하면 왠지 무겁고,어둡다.따뜻한 느낌이랄까,중년의 느낌이랄까.그래서 가을인테리어나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공간을 꾸밀때 앤티크 스타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최근 섬세한 무늬와 우아한 곡선,사랑스러운 느낌으로 계절에 관계없이 앤티크 스타일이 사랑받는다.주로 가구에 많이 쓰이던 체리색(붉은 갈색),오크색(갈색) 등 어두운 색뿐만 아니라 화이트,화이트 오크 등 밝은 색의 앤티크풍 소품이 많아진 것이 이유.또 목재로 만들어진 것이 많아 자연주의적 경향의 ‘웰빙 인테리어’에 적합하고,인테리어 전반에 퍼진 ‘로맨틱 스타일’에도 맞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중고가 아니라,옛스러운 새것 외국 가족영화에서 보이는 집안의 풍경을 떠올려보자.폭신한 의자,부드러운 곡선의 테이블과 콘솔,콘솔 위에 놓인 사진과 그 옆에 화려한 촛대,그리고 은은한 조명….한없이 포근한 분위기다. ‘마네 컬렉션’의 마승희 사장이 앤티크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것.정확히 22년전 미국 친구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느낀 그 포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는 앤티크 스타일의 소품이 있었던 것이다. “앤티크를 흘러간 옛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하지만 앤티크를 경험하면 그저 중고가 아니라,밋밋한 공간을 훈훈하고 고풍적인 분위기로 만들어주는 것임을 발견하게 되죠.요즘 점점 그 멋에 반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앤티크는 시간을 초월한 멋 ‘제뉴인앤틱’의 최지혜 사장은 “앤티크는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고 오랜 세월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따스하면서도 정겹다.”며 “소모품이 아니라 소장가치가 있는 생활 속 예술품으로,똑같은 것이 없는 특별함이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인위적인 기준으로 두자면 앤티크는 100년 이상된,순수예술품을 제외한 장식미술품이다.하지만 이런 시간적 기준은 물건의 가치에 앞서지 못한다.앤티크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삶의 때가 묻어 있는 멋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앤티크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이런 ‘희소성의 가치’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가구나 소품에 비해 수공 의존도가 높아 자연주의적 경향이 높기 때문이라고 최 사장은 덧붙였다. ●앤티크 스타일에 도전해볼까 서울 한남동에 있는 마네 컬렉션 쇼룸은 100년 전 촛대,200년 된 의자,300년 묵은 책상 등 세월의 향기를 품은 가구로 꾸며져 있다.하얀 페인트칠된 한쪽 벽에는 대리석을 얹은 커다란 적갈색 벽난로가 놓여 있다.이렇게 ‘진짜 앤티크’로 꾸미는 것도 부럽다. 하지만 고가의 앤티크에 무리하게 도전할 필요는 없다.앤티크 스타일의 멋진 테이블보,아름다운 생활용품,진귀한 음반 한 장으로도 집안은 충분히 앤티크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앤티크는 놓는 위치에 따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기도 하고,집안을 골동품 가게처럼 만들 수도 있다.엔티크 소품의 가격보다는 얼마나 적재적소에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 복도끝이나 거실 한 켠에 앤티크 콘솔이나 의자만 두어도 감각적으로 보인다.샹들리에나 벽등과 같이 조명을 바꾸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목재를 통일하거나 컬러를 한가지 톤에 집착하면 지루하다.다양한 목재와 색상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것이 좋다. 최 사장은 “진짜 앤티크는 ‘골동품’이므로 흠집이나 닳은 흔적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너무 새것같다면 오히려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서랍을 열어 옆면과 내부를 살피고 손잡이,다리 등이 교체되었지도 살펴보아야 한다.조각이나 장식은 섬세한 것이 분위기를 더한다. 앤티크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면 오는 21∼22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마네 컬렉션 앤티크쇼’를 찾아보자.생활 속에 살아숨쉬는 앤티크를 체험할 수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탄핵기각] 전문가 좌담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이 갖는 의미를 평가해 달라. ●박명호 교수 헌재로선 최선의 헌법적·정치적 판단을 융합한 것이다.소수 의견을 공개하자는 소수 의견이 있었다니 아쉽다. ●신율 교수 헌재 발표를 보면 선거법과 헌법수호 의무 위반 부분이 인정됐다.의회쿠데타란 말이 나왔지만 헌재는 탄핵소추가 국회의 정상적 업무 과정이라는 점도 인정했다.다만 ‘중대한’ 사유가 아니어서 기각했는데 그렇다면 중대한 사유가 어떤 것인지,어디까지가 중대한지 그 기준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200년 후에도 기록될 역사적 사건인 만큼 소수 의견도 밝히고 그 분포도 어떻게 됐는지 밝혔어야 했다. 여론과 시대적 상황,정치적 파장 등을 고려한 것인가. ●박 교수 고려했을 것이다.‘몇 대 몇’이라고 공개하면 어느 쪽이든 재판관 개인들로서도 쉬운 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이번 평결문이 사실 헌정사 기초로 사용될 것이고 명문이 됐어야 하는데 소수 의견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권위에 손상을 입었다. ●신 교수 어쨌든 탄핵이라는 우리나라 초유의 사태가 끝났다는 데 대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스탠더드 푸어스사의 국가신용등급에도 당장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다.그러나 탄핵 문제가 끝났다 해서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문제가 다 풀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또 다른 평가와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박 교수 일정 기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을 마무리지은 감도 있지만 여권이 국회 권력을 장악한 만큼 또 다른 시험대에 서는 것이다.사회갈등 조정과 국정주도의 책임을 좀더 강하게 져야 하는 상황이 왔다.정치인 대통령과 행정부 수반 공무원으로서의 대통령 충돌이 이번에 법률적 판단 대상이 됐다.헌재는 헌법과 법률 위반이지만 파면의 대상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정치인 대통령과 공무원 대통령의 입장을 이번 기회에 제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탄핵정국은 탄핵 기각으로 해소됐지만 그러한 정국에 이르게 된 원인은 노 대통령의 과제로 남았다는 것인가. ●박 교수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승리에 이어 법률적 승리도 얻은 셈이다.일정 기간 명분상 우위에 설 수밖에 없고 한나라당에 당장 사과를 요구하던데 야당에 대한 압박도 가해질 전망이다.청와대와 내각 개편에 있어 청와대 직할체제,친정체제를 강화할 수 있고 천정배 체제와 맞물려 개혁 드라이브를 우선시할 확률이 높다.여기에 야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상생보다 대결의 정치를 또 한번 맛볼 가능성이 있다. ●신 교수 노 대통령 집권을 1,2기로 나눴을 때 1기는 정치환경이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엔 열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노 대통령 지지층을 혼란스럽게 한 이라크 파병 결정과 대북송금 특검,미국에서의 발언 문제 등을 여소야대 환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제 집권 2기에는 통하지 않는다.김혁규 총리나 비정규직 문제,8.8%에 이르는 청년실업 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는 노 대통령 지지기반과 직결된다. 정치는 예측가능성이 중요하다.노 대통령은 이런 정책에 있어 일관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노 대통령이란 인간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지지하는 것이어야만 3김(金) 시대 인물 위주의 정치,정치인격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 ●박 교수 노 대통령은 사실상 새 임기를 시작하는 셈이다.그 전에도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했지만 이러저러한 사유가 이해할 만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어려움을 더 안을 수밖에 없다. 탄핵을 전후로 노 대통령의 리더십이 바뀔 것 같나. ●박 교수 변화가 필요하다.과연 상생의 정치가 가능한지 결정적 단서는 노 대통령과 여권에 있다.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의 리더십이 보다 유연해지고 조심스러워져야 한다고 나왔다.대결적·이분법적이 아니라 통합지향 리더십으로 가야 국정이 안정된다. ●신 교수 첫 시험대가 김혁규 총리 임명 문제다.총리 임명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지만 내치를 총리에게 맡긴다고 얘기할 정도로 막강한 총리라면 왜 그가 아니면 안 되는지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한나라당도 왜 그는 안 되는지 설명해야 한다. 야당에서는 청와대 친정체제가 강화되면서 노 대통령 개인 중심의 국정운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제기하고 있다. ●신 교수 집권 2기에는 집중된 책임을 분산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책임을 회피할 의도가 있다고 본다.친정체제는 더 가속화되지만 형식적으론 책임을 분산시키려는 게 아니겠는가. ●박 교수 청와대 정무기능을 축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대국회 관계를 등한시한다는 것은 야당은 무시하는 게 되고 또 다른 대결 국면을 낳을 수도 있다.대통령의 힘은 설득력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국회의 야당에 대한 자세를 바꾸고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탄핵소추를 의결한 야당도 정국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박 교수 야당은 단기적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한나라당 내부에서 사과를 한다 만다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데 지난 4·15 총선에서 한번 걸러졌다고 봐야 하고 지금 당에 탄핵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사람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부산과 경남 지역 재·보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총선 때만 못할 것이다. ●신 교수 탄핵이 이번 총선에 결정적 요소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한나라당 지지기반은 전혀 요동이 없었다.오히려 탄핵 역풍이 없었다면 부산·경남에서 열린우리당이 한두 석 정도 더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얘기가 나올 정도다.지역구도에 기반한 지지층,그만큼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 된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4·15총선을 통한 여당의 17대 국회 과반의석 확보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년여와는 전혀 다른 집권 2기의 정치토양을 확보했다.이에 따라 국정 운영의 리더십도 통합과 상생의 방향으로 걸맞게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와 박명호 동국대 정외과 교수의 좌담을 통해 탄핵기각 결정의 의미와 노 대통령의 향후 국정 과제를 점검한다. ˝
  • 儒林(9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심곡서원(深谷書院). 심곡서원은 조광조와 그의 시신을 이곳까지 운구하였던 양팽손을 제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 선조 38년(1605년) 서원을 세우고 조광조의 위패를 모신 데에서 비롯된다. 선조는 특히 조광조를 존경하여 조광조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는데,‘문정공(文正公)’이라 하였다.이는 ‘도덕이 있고 학식이 넓으며 올바른 도리를 행한다.’는 뜻으로 선조의 이러한 배려에도 재력이 부족하여 서원이 세워지지 못하다가 시호를 받은 지 30년이 지난 후에야 서원을 세울 수 있었는데,서원의 이름을 ‘심곡(深谷)’이라 하였던 것은 원래 이곳이 조광조의 선영이 있었던 ‘심곡리’란 곳으로 조광조가 19세 되던 해 아버지 조원강이 별세하자 3년간 시묘를 하면서 이곳에 초당과 연못을 만들어 놓고 학문에 정진하던 유서가 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신히 서원이 세워졌어도 임금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지는 못하였다.임금으로부터 서원에 이름을 지어 그것이 새겨진 편액(扁額)을 받지 못하면 서원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데,그 후 인조 9년(1631년),유문서(柳文瑞) 등이 상소하여 사액해 줄 것을 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심곡’이란 사액을 받은 것은 효종 원년인 1650년이었다.서원이 세워진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것을 보면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사후 130년이 흘러가도 부정적인 평가를 완전히 씻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그 후 200년이 지난 고종 2년(1865년),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서원철폐령이 내려 전국의 서원 417개 중 27개소만 살아남을 때 조광조를 배향하고 있는 심곡서원이 존치(存置)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서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겨울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를 답사함으로써 시작된 조광조의 추적은 조광조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묘소와 심곡서원을 찾아감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조광조가 죽은 지 500년. 지금까지의 추적은 조광조의 생애와 살아있을 때의 그의 정치적 행적이었다면 심곡서원과 그의 무덤을 찾아감으로써 사후 500년이 흘러가는 동안 조광조가 역사에서 어떠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한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함인 것이다. 특히 숙종(肅宗)은 조광조를 매우 깊이 존경하여 ‘정암집’을 읽고 나서 ‘독정암집유감(讀靜菴集有感)’이란 어제(御製)를 내린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났었는데,지금 선생의 글을 읽어 보니 더욱 더 도덕이 밝았음을 알겠도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공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고,시골의 노파들도 존경하였다네. 부수적으로 예(藝)에 노닐며 굳센 필세(筆勢) 또한 아름답도다. (每思臨死言 涕淚自交 今讀先生書 益知道德晟 朝紳咸仰成 野亦尊敬 餘事游於藝 佳哉筆勢勁)” 조광조에 대한 숙종대왕의 어제는 지금도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내걸려 있다 한다. 차는 어느덧 신도시에서도 외곽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들을 싼값에 살 수 있는 아웃렛들이 갑자기 나타났다.지금까지 비교적 한적하였던 도로는 먼 곳에서 싼값에 고급 상품들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고 온 차량들의 행렬로 시장거리처럼 붐비고 있었다.˝
  • 儒林(9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9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심곡서원(深谷書院). 심곡서원은 조광조와 그의 시신을 이곳까지 운구하였던 양팽손을 제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 선조 38년(1605년) 서원을 세우고 조광조의 위패를 모신 데에서 비롯된다. 선조는 특히 조광조를 존경하여 조광조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는데,‘문정공(文正公)’이라 하였다.이는 ‘도덕이 있고 학식이 넓으며 올바른 도리를 행한다.’는 뜻으로 선조의 이러한 배려에도 재력이 부족하여 서원이 세워지지 못하다가 시호를 받은 지 30년이 지난 후에야 서원을 세울 수 있었는데,서원의 이름을 ‘심곡(深谷)’이라 하였던 것은 원래 이곳이 조광조의 선영이 있었던 ‘심곡리’란 곳으로 조광조가 19세 되던 해 아버지 조원강이 별세하자 3년간 시묘를 하면서 이곳에 초당과 연못을 만들어 놓고 학문에 정진하던 유서가 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신히 서원이 세워졌어도 임금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지는 못하였다.임금으로부터 서원에 이름을 지어 그것이 새겨진 편액(扁額)을 받지 못하면 서원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데,그 후 인조 9년(1631년),유문서(柳文瑞) 등이 상소하여 사액해 줄 것을 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심곡’이란 사액을 받은 것은 효종 원년인 1650년이었다.서원이 세워진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것을 보면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사후 130년이 흘러가도 부정적인 평가를 완전히 씻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그 후 200년이 지난 고종 2년(1865년),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서원철폐령이 내려 전국의 서원 417개 중 27개소만 살아남을 때 조광조를 배향하고 있는 심곡서원이 존치(存置)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서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겨울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를 답사함으로써 시작된 조광조의 추적은 조광조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묘소와 심곡서원을 찾아감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조광조가 죽은 지 500년. 지금까지의 추적은 조광조의 생애와 살아있을 때의 그의 정치적 행적이었다면 심곡서원과 그의 무덤을 찾아감으로써 사후 500년이 흘러가는 동안 조광조가 역사에서 어떠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한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함인 것이다. 특히 숙종(肅宗)은 조광조를 매우 깊이 존경하여 ‘정암집’을 읽고 나서 ‘독정암집유감(讀靜菴集有感)’이란 어제(御製)를 내린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났었는데,지금 선생의 글을 읽어 보니 더욱 더 도덕이 밝았음을 알겠도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공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고,시골의 노파들도 존경하였다네. 부수적으로 예(藝)에 노닐며 굳센 필세(筆勢) 또한 아름답도다. (每思臨死言 涕淚自交 今讀先生書 益知道德晟 朝紳咸仰成 野亦尊敬 餘事游於藝 佳哉筆勢勁)” 조광조에 대한 숙종대왕의 어제는 지금도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내걸려 있다 한다. 차는 어느덧 신도시에서도 외곽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들을 싼값에 살 수 있는 아웃렛들이 갑자기 나타났다.지금까지 비교적 한적하였던 도로는 먼 곳에서 싼값에 고급 상품들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고 온 차량들의 행렬로 시장거리처럼 붐비고 있었다.
  • 베토벤의 머리카락/러셀 마틴 지음

    히틀러는 베토벤의 음악을 게르만 민족정신의 가장 고귀한 표현이라고 찬양했다.자신의 생일 축하 연주곡도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었다.그런가 하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세번 짧고 한번 긴 박자(단단단 다…)는 2차대전 당시 연합군에선 승리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모스부호의 ‘V’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베토벤을 숭배한 인물은 한 둘이 아니다.클림트 등 빈 분리파를 비롯해 리스트,괴테,베를리오즈,멘델스존 등은 모두 베토벤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 러셀 마틴이 쓴 ‘베토벤의 머리카락’(문명식 옮김,지호 펴냄)은 베토벤이란 이름이 단지 위대한 음악가 이상의 의미를 지님을 하나의 극적인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바로 베토벤 머리카락 경매다. 베토벤이 죽은 다음 날,친구인 후멜은 열 다섯살 된 제자 힐러를 데리고 그를 찾았다.관 속의 베토벤은 유언에 따라 귀의 연골이 적출되고,사람들이 여기저기 잘라가 머리 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다.소년 힐러는 스승에게 눈짓으로 물었다.“가져도 될까요?” 스승의 허락을 받은 힐러는 몰래 한 뭉치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이 머리카락은 유리 로켓에 담겨져 세상을 떠돌다 1994년 마침내 런던 소더비 경매에 나오게 된다.200년 전 베토벤의 주검에서 한 소년이 잘라낸 이 머리카락은 결국 두 명의 미국인 베토벤 마니아에게 7300 달러에 팔렸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은 베토벤이 시달린 수많은 질병과 청각장애,죽음의 원인 등을 밝히기 위한 검사에 이용됐다.DNA검사 결과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선 건강한 사람의 머리카락에 있는 것보다 100배나 많은 납이 검출됐다.언론은 베토벤의 납중독 사망설을 대서특필했다.그러나 당시 성병치료 연고제로 쓰이던 수은은 별로 발견되지 않아 베토벤이 매독에 시달렸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책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통해 베토벤의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준다.베토벤의 죽음에 관해선 그의 사후 진단기록과 해부소견서가 불타 없어지면서 여러가지 억측이 나돌았다.1만3000원. 김종면기자˝
  • 中 ‘동방천서’ 미스터리를 풀어라

    |롄윈강(장쑤성) 오일만특파원| ‘동방천서(東方天書)’를 해독하라.’장쑤(江蘇)성 롄윈강(連雲港)시 관광국은 최근 중국 고고학계의 미스터리인 ‘동방천서’ 해독을 위해 현상금 100만위안(1억 5000만원)을 걸어 화제가 되고 있다. 동방천서는 롄윈강시 진팡산(錦屛山)의 장쥔야(將軍崖) 암벽에 새겨진 그림으로 지금까지 중국내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암석 벽화로 알려져 있다.지난 98년 국가급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됐다. 총 3개 부문으로 구성된 이 벽화는 검고 반들반들한 암석 위에 태양·연꽃·짐승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최근에는 물고기 형상이 발견되기도 했다.이들 그림이 선사시대 원시공동체 사회의 산물로 짐작이 되지만 누구에 의해 언제 그려졌는지,내포한 뜻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중국의 민족학,고고학,문화인류학,원시 종교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분석 중이지만 ‘지모숭배(地母崇拜)’,‘천문관측’ 등 다양한 설만 무성하다. 난징(南京)대학교 천징(陳競) 민속예술연구실 주임 등은 “동방천서는 풍년을 기원하고 혼을 부르는 무속의 기록”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바이화원(白化文)은 “현재의 과학기술 발전에 비춰 향후 100∼200년내에 동방천서를 해독할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 정부는 “천고의 비밀을 밝히고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을 계승하며 아울러 롄윈강의 관광자산을 홍보하기 위해 반드시 동방천서의 비밀을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oilman@˝
  • 정진성 교수, UN인권소위 위원 뽑혀

    |제네바 연합|정진성(鄭鎭星·여·50)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유엔 인권소위원회 정위원으로 선출됐다. 아시아 지역에 배정된 2명의 정위원 자리를 놓고 일본,시리아와 경합을 벌인 정 교수는 이날 실시된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의 표결에서 후보자 가운데 최다득표(44표)를 기록하며 가볍게 관문을 통과했다. 정 교수와 경합한 일본의 요코다 요조 후보는 40표를 얻었으며 시리아 후보는 18표에 그쳤다.이번 득표 결과를 보면 일찌감치 지지를 선언한 서방과 중남미 국가는 물론 아시아와 중동,아프리카권의 부동표도 대거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러닝메이트로 교체위원에 동반 당선된 백지아(여·41) 주제네바 대표부 참사관과 함께 2008년까지 4년간 활약하게 된다. 유엔 인권소위 위원에 외교관이 아닌 순수 민간인이 출마,당선된 것은 정 교수가 처음이다.그동안 한국인으로서는 박쌍용 전 외무차관(1997∼200년)과 박수길 전 유엔대사(2000∼2004년)가 인권소위 정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 [시론] 개성관광 ‘百年之大計’ 를/박춘규 관광公 남북관광협력단장·본사 명예논설위원

    독일 하이델베르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고도(古都)다.13세기부터 유럽 최고의 대학도시였고,이런 교육도시 배경이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더 알려졌다.산성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시 전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서울에서 1시간 남짓 거리의 개성관광이 곧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개성공단이 시공되면 관광도 가능할 것이라니,한반도에 이보다 더 훈훈한 소식은 없을 듯싶다.개성은 서울 인근이어서 하이델베르크처럼 필수 관광코스로 만들 수 있다.관광자원 면에서 세계의 자랑이 될 최고(最高)가 몇개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도시라는 점이다.유럽의 근대 대학이 13세기에 시작되었던 점과 비교하면 이보다 몇 백년은 족히 앞선 교육도시였다.성균관으로 국자감을 개칭한 것은 1310년이었으나 고려 초부터 대학교육을 담당,나라의 인재를 길렀으니 교육에 대한 열의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세계를 앞서가는 것 같다. 둘째는 세계 최초 활자의 생산지다.대학교육의 발달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글의 활자화를 통한 대중 매체화가 한반도의 개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면 과장일까.확실한 것은 서양보다 이백여년 전에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본거지가 바로 개성이다.활자를 필요로 하는 문화의 높은 열기와 이를 만들어 내는 놀라운 창의력이 비등하던 곳이 바로 옛 오백년 도읍지 개성이다.이곳에서 1234년에 찍어낸 ‘상정고금예문’은 이보다 앞선 목판활자본 ‘다라니경’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우리의 보배다.앞서가는 우리의 IT 기술과 활자술과의 연관성도 설명해 볼 일이다. 셋째는 고려자기의 생산,유통,이용 중심지가 개성이었다.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도자기 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낙찰된 철화백자가 고려자기를 빚은 후예의 손기술이나 예술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그래서 은은한 비취색 고려청자를 구워내는 기술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신비로 남아있다. 넷째는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 전흔과 그 삶의 현장 답사관광’이다.철책과 지뢰밭,땅굴 등 긴장을 배경으로 하는 개성관광은 세계역사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 답사’ 여행이다. 개성관광은 몇 가지 정책적인 목표를 전제로 준비되어야 한다. 첫째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통일 체험장이 되어야 한다.여기를 다녀오면 서로에 대한 생각이 변하여 왜 서로 도와야 하는가를 느끼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주최국에 고용,외화획득,생활 문화 공간의 개선 등 실익을 주도록 엮어져야 한다. 셋째는 모든 외국인의 필수 관광 코스로 발전시켜야 한다.남북 대치 현실 등 새로운 관광자원을 북으로까지 확대하는 의미를 살려서,향후 평양 중국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는 개성 인삼 등 생산품과 축제 등을 온 관광객이 공유하는 자연스러운 생활권의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넷째는 개성 다음 평양 관광 길의 디딤돌이 되도록 준비와 시행 방향을 함께 맞추어야 한다. 소설 ‘레미제라블’에 눈을 끈 배경 하나는 도시의 하수도가 넓었다는 점이다. 200년 전에 건설한 하수도가 시대가 변한 지금에도 거대한 도시 프랑스 파리의 기능을 말없이 받쳐가고 있다.개성 관광을 시작하는 준비가 통일 후의 한반도 관광의 청사진의 일부로 준비되어,서울을 찾는 1000만명의 외국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원대하고 기풍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커닝엄·볼쇼이’ 국내 공연-세계 최정상 무용단 자존심 대결

    머스 커닝엄과 볼쇼이발레단.현대무용과 고전발레를 대표하는 세계 최정상의 두 무용단이 잇따라 서울에 온다.머스 커닝엄은 15∼17일,볼쇼이발레단은 21∼24일 각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선다.지난 반세기 가장 혁신적인 무용가로 꼽히는 머스 커닝엄은 지난 84년 이후 20년 만의 내한 공연이고,정통 고전발레의 대명사로 통하는 러시아 볼쇼이발레단도 99년 서울신문(당시 대한매일)초청 공연 이후 모처럼의 한국 나들이다.무용팬들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게 된 셈.두 무용단의 공연 프로그램을 미리 살펴본다. ●85세 현역 무용가와 모던 록그룹의 만남 현대무용을 얘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머스 커닝엄(작은 사진)이다.인간의 내면세계나 심리적 묘사에 치중하던 전통적 관습을 거부하고,움직임 그 자체에 몰두하는 그의 무용 철학은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포스트모던무용의 기초가 됐다.즉 훈련 받지 않은 일반인도 무용수가 될 수 있고,어떠한 움직임이든 무용에 사용될 수 있으며,우연에 의한 순간적인 동작과 즉흥성을 중시하는 그만의 독특한 안무 기법은 20세기 무용계 전반에 핵폭풍 같은 변화를 불러왔다.존 케이지와 마찬가지로 동양의 선 사상과 주역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점,음악 미술 사진 영상 등 타 매체와의 긴밀한 교류를 모색한 점 등도 머스 커닝엄의 무용세계를 특징짓는 독창적인 요인들이다. 20년전 예술적 동지이자 연인인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와 함께 서울에 왔던 그는 이번 공연에선 모던 록그룹 라디오헤드와 시거 로스의 음악을 동반한다.팔순을 훌쩍 넘긴 고령에도 여전히 무대에 서는 고집스러운 면모만큼이나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로서의 열정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공연작은 지난해 10월 뉴욕 BAM(브루클린아카데미오브뮤직)극장에서 초연된 머스 커닝엄 무용단 50주년 기념작 ‘Split sides’와 92년 사망한 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Ground level overlay’,그리고 시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Pond way’ 등 3편. 이중 ‘Split sides’는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에 따라 공연 내용이 다르게 진행된다.그가 추구하는 ‘우연성의 미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여기에 몽환적이고 실험적인 음악 스타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젊은 록그룹 라디오헤드와 시거 로스가 음악 작업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시거 로스는 이번 내한무대에서 직접 연주를 할 예정이어서 더욱 기대를 모은다.(02)537-0300. ●비극적 버전의 ‘백조의 호수’ 200년 역사의 볼쇼이발레단이 마린스키(옛 키로프)발레단을 누르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64년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직후부터였다.당시 37세에 불과했던 그는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기량으로 단숨에 볼쇼이를 정상에 올려놓았다.‘잠자는 숲속의 미녀’‘호두까기 인형’‘스파르타쿠스’‘로미오와 줄리엣’ 등 그가 현대적으로 재안무한 작품들은 볼쇼이발레의 간판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에 공연되는 ‘백조의 호수’역시 그가 1969년에 재안무한 것.기존 작품에서 단순하게 그려졌던 악마의 캐릭터를 달리 해석해 왕자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천재적인 악마로 설정함으로써 보다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지난 2001년과 2003년 국립발레단에 의해 국내에도 이미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전 공연과 다른 점은 결말이 비극으로 끝난다는 것.원래 ‘백조의 호수’의 결말은 왕자가 악마를 물리치는 해피엔딩과 두 남녀가 죽음을 맞는 비극,두가지 버전이 있으나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해피엔딩 버전을 무대에 올렸었다. 오데트 공주와 악마 흑조 오딜 역은 95년에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갈리나 스테파넨코가 맡았다.지그프리드 왕자는 볼쇼이 주역 무용수 블라디미르 네포르지니가 열연한다. 12년째 이 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무용수 배주윤도 나폴리 예비신부역으로 고국 팬들에게 인사할 예정이다.(02)751-9685. 이순녀기자 coral@˝
  • 마야·마법의 도서관/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탐정소설의 기본 형식을 빌린 철학적 탐험”“평이한 문체로 서양철학을 투명하게 전달…”. 숱한 찬사 속에 45개국에서 널리 읽힌,소설로 읽는 철학책 ‘소피의 세계’의 저자 요슈타인 가아더.‘지식 대중화’를 향한 그의 발길이 ‘진화 생물학’과 ‘책의 역사’에 닿았다.현암사에서 나온 ‘마야’와 ‘마법의 도서관’은 꽉 닫힌 성채같은 두 분야의 이미지를 소설로 부드럽게 허물려는 시도의 결실이다. ●마야:소설로 읽는 진화생물학 저자는 이번에도 퍼즐게임하듯 궁금증을 잇따라 자아내며 호기심을 유발한다.주인공은 가아더의 분신인듯한 영국의 소설가인 존 스푸크.소설은 그가 원시의 풍광이 보존된 피지제도의 타베우니 섬에 머물면서 알게된 다양한 인물들의 토론과 사랑이야기를 축으로 우주의 역사,영장류라 뽐내는 인간의 유한성 등 광활한 주제를 탐색한다. 그렇다고 미리 혀를 내두를 필요는 없다.“진화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교재”라는 감수자 최재천 서울대교수의 말처럼 소설은 처음엔 너무 복잡해 이곳저곳 걸리지만 잇단 지적 모험으로 흥미진진하면서 갈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스푸크와 프랑크 일행이 벌이는 생명의 기원과 진화의 역사에 대한 토론을 중심으로 안나라는 여인이 200년전 고야의 그림의 주인공 마야임을 알고 그 비밀을 밝혀가는 과정도 곁들인다.그를 통해 가아더는 단순한 생물학 지식을 나열하는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 저 너머의 의미를 찾으면서 우리 삶의 유한성을 들려준다.그 길목에서 저자의 해박함은 생태운동·문화인류학·물리학으로의 짧은 산책도 곁들인다.‘소피의 세계’에서 “너는 누구니?”“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가아더는 이번에 “인류는 어디서 왔을까?”“사랑이야 말로 인류를 보존하는 미덕이 아닐까?”라고 자문자답하고 있다. ●마법의 도서관:소설로 읽는 책의 역사 ‘마야’가 어른들이 곱씹으며 읽을 소설이라면 ‘마법‘은 철저히 어린이를 위한 것이다.“아이들에게 책을 읽게하자.”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딱딱한 책의 이미지를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비결은 역시 호기심.이를 위해 저자는 노르웨이 영화감독인 카우스 하게루프와 함께 소설을 썼다.두 사람이 이종사촌 오누이인 베리트와 닐스의 눈높이에 맞춰 편지를 주고 받으며 추리기법 형식으로 소설을 이어간다. 소설은 오누이가 우연히 마주친 이상한 여인 비비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책에 대한 궁금증을 한꺼풀씩 벗겨간다. 비비가 받은 편지에 ‘내년에 세상에 나올 책’이라는 내용을 보고 그녀가 책도둑이자 지명수배된 살인범으로 생각한 남매가 진상을 밝혀가는 동안 다양한 이야기가 물고 물리면서 이어진다. 번역을 맡은 이용숙씨는 “가벼운 탐정소설 한 권 뒤적이는 기분으로 슬슬 읽다 보면,읽고 쓰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있는지를 자기도 모르게 깨닫게 된다.”고 추천한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중국을 속속들이 보여줍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중국 곡예단의 모든 것을 서울에서 즐기세요.” 주한 중국문화원 개원을 기념하는 ‘중국문화 관광 대축제’가 3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다.타이틀은 ‘니하오 차이나’.중국문화원은 종로구 내자동 세종로정부종합청사 인근에 오는 8월쯤 들어선다. 서울시가 후원하는 중국문화 축제는 대공원 봄꽃 축제 야간개장과 연계,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 내내 유료로 진행된다. 행사는 크게 8부문으로 나뉜다.특히 중국 전래의 화려한 등불 경연인 ‘등 축제’와 사자춤,수천년 역사를 지닌 서커스공연,민간 전통예술인 ‘종이오림 공예’가 눈길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설탕액을 굳혀 조형을 만들어내는 ‘당화(糖)’전시도 흥미롭다. 운남성 일부 종족 사이에 전해내려오는 2200여개의 상형문자 전시회와 200년 전인 1830년대 베이징의 모습을 그려낸 중국 유명화가의 ‘거리 풍경전’과 사진전도 있다. 특히 중국문화원 홍보대사를 맡은 탤런트 겸 가수 장나라의 특별무대도 마련된다. 관람료는 19세 이상 8000원,중·고생 7000원,4세∼초등생 6000원이며 65세 이상이거나 국가유공자,장애인에게는 4000원으로 할인해준다.행사 내용은 홈페이지(nihaochina.or.kr)에 소개돼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국제플러스] 쥐 유전자지도 해독

    |파리 AFP 연합|미국이 주도하는 쥐게놈 연구팀이 31일 쥐의 유전자암호 배열작업을 완료했다고 발표,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쥐는 이번 연구로 인간과 생쥐에 이어 게놈의 수수께끼가 풀린 3번째 포유동물이 됐다. 이번 연구를 후원하고 있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의 엘리어스 제루니 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200년 가까이 실험실 쥐는 인간의 생리를 이해하고 새로 개선된 약물을 개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쥐의 유전자암호 배열자료를 갖게 됨으로써 쥐 모델의 유용성이 크게 개선돼 인간의 건강 증진에 엄청난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인간은 29억개의 염기로 이뤄진데 비해 쥐는 27억 5000개,그의 사촌인 생쥐는 26억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각각 3만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 [21일 TV 하이라이트]

    ●까치가 울면(오전 9시) 어르신들의 시원한 속풀이 한마당이 벌어진다.60년전 8세 때 만난 첫사랑을 찾으러 나오신 어르신,200년 전의 노래를 알고 계시다는 어르신의 정체불명의 노랫가락,혼란한 정치판으로 보내는 어르신들의 간절하고도 따끔한 쓴소리까지 인생의 달인들이 세상으로 보내는 소중한 말씀들을 들어본다. ●인사이드 월드(오후 1시25분) 사람들이 자원은 무한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삶을 이어가는 대안은 친환경마을이다.태양열로 난방을 하고,물을 절약하는 수도꼭지와 좌변기를 사용하며,자연바람을 활용한 환기 방식 등을 채용한 영국의 친환경마을을 찾아간다. ●삼색토크 여자(오후 8시40분) 커밍아웃을 한 탤런트 홍석천,못생긴 모델 김동수,한국남자와 결혼한 일본인 노리코,고교를 중퇴하고 대안학교 하자작업장학교로 진학한 단편영화감독 원.이 네 사람과 조금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같다와 다르다의 구분,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점도 이야기해본다. ●게릴라 리포트(오후 8시25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매일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을 만나본다.총선에서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는 목소리들이 높아지면서 아줌마의 힘을 보여주자는 ‘물갈이 아줌마 연대’도 활동하고 있다.아줌마들이 바라는 정치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본다. ●세븐 데이즈(오후 10시55분)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남자 동성애자들이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동거만으로는 의료보험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결혼을 결심했다지만,이들의 앞날에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이다.사회적 분위기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 등으로 통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편견없이 들어본다. ●애정의 조건(오후 7시50분) 변해버린 은파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윤택은 결국 클럽에서 일하기로 하고,은파는 이런 윤택을 피하고만 싶다.달라진 태도에 신경이 곤두 선 금파는 출근하는 정한을 붙들고 캐묻다 결국 싸우고 만다.한편 애리와 현실을 만난 마진은 윤택의 교통사고를 빌미로 공갈협박을 한다. ●무인시대(오후 10시10분) 김사미는 황룡의 뜻을 알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지순을 풀어준다.황도에는 금강야차의 장남이 반란군과 내통한다는 소문이 퍼지고,최충헌은 최충수와 노석숭을 보내 약진 일행을 데려오기로 마음먹는다.최우와 최항도 동참하려 하나 아직 어리다며 거부당한다.이의민은 거병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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