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0년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6세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본청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017
  • [염주영칼럼] ‘황우석 재판’이 남긴 것

    [염주영칼럼] ‘황우석 재판’이 남긴 것

    수학자였던 갈릴레이는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천체망원경을 만들어 하늘의 별들을 관찰했다. 관찰을 통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천문대화’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일로 교황청에 소환돼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 재판에서 그 책의 내용을 부인하라는 자백을 강요받았다. 그는 파문돼 가택연금에 처해졌으며, 책은 금서처분을 당했다. ‘천문대화’는 그가 죽은 후 200년이 지나서야 금서에서 풀려났다. 갈릴레이가 완전복권을 받기까지는 이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무덤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가 재판장에서 풀려 나오는 날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한 말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633년에 있었던 ‘갈릴레이 재판’과 흡사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MBC의 ‘황우석 재판’이다. 재판의 주재자는 교황청에서 MBC로 바뀌었고, 피고인석에는 갈릴레이 대신 황우석 교수와 그의 연구원들이 앉았다. 세월이 흘러 등장인물들은 바뀌었지만 재판의 본질은 동일했다. 과학을 비과학의 잣대로 검증한다는 것이다. 갈릴레이 재판에서는 성서와 당대 신학자들의 성서해석이 과학을 검증하는 잣대로 사용됐다. 그렇게 한 검증의 결과를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파문’의 협박이 가해졌다. 그리곤 자신의 연구결과물을 스스로 부인하도록 자백을 강요했다. MBC의 황우석 재판에서는 그 과학적 근거를 입증할 수 없는 악의적 제보가 검증의 잣대로 사용됐다. 황 교수의 연구원들에게 ‘구속’의 협박이 가해졌으며, 그들의 연구결과물인 사이언스 논문이 ‘페이크’(fake, 가짜)임을 자백하라고 강요했다. 갈릴레이 재판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필자는 황우석 재판의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내내 가슴이 아팠다. 한 과학자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내용을 담은 논문을 비전문가들이 이리저리 재단하며 마치 ‘인민재판’을 하는 식으로 심판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400년 전으로 되돌아간 우리 사회의 과학문화의 후진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과학자들이 느꼈을 마음의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황우석 재판은 MBC PD 몇사람의 돈키호테적 만용에서 시작됐다. 돈키호테의 만용은 문학적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지만 언론기관의 만용은 사회적 흉기와 같은 것이다. 국내 과학자들은 과학의 문외한들이 세계 과학계를 상대로 ‘당신들이 틀렸다.’라고 외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황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PD 몇사람의 불장난으로 돌릴 수 있을까. 과학에서 윤리문제를 감시하는 것은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 과학논문의 진위를 검증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과학논문의 검증은 과학자들이 할 일이다. 세계 생명공학의 대가들이 지금 황우석의 논문을 검증하는 중이다. 그들은 같은 방법으로 실험을 할 것이고 오류가 발견되면 새로운 논문으로, 혹은 보다 진전된 논문으로 이를 수정할 것이다. 과학적 절차를 무시한 황우석 재판은 과학에 대한 만행이며, 과학자들에 대한 테러다. 과학을 비과학적으로 검증할 때 과학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 400년 전의 갈릴레이 재판에서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이다. 그럼에도 PD들의 위험한 불장난을 제지하지 않았던 MBC의 경영진들은 1차적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우리 사회의 낙후된 과학문화를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yeomjs@seoul.co.kr
  • 대형오페라 자체제작 봇물

    대형오페라 자체제작 봇물

    최근 국내 공연예술단체들이 자체 제작한 대형 오페라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성남아트센터를 비롯해 국립오페라단이 거액의 예산을 들여 외국 전문공연기획사의 블록버스트 오페라에 버금하는 대형 오페라를 앞다투어 제작해 무대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예산 규모가 10억원대에 가까운 거액에다 흥행의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같은 ‘도전’은 음악계 내에서도 실험적인 무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휘자를 제외하고 연출에서부터 주역 가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아티스트로 구성, 한국 오페라의 자존심을 살리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파우스트 지난 10월 개관한 성남아트센터가 개관기념 페스티벌 레퍼토리로 야심차게 준비한 오페라다. 오는 24∼27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 극장무대에 오르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는 전 5막짜리 그랜드 오페라. 올 상반기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로 흥행에 성공하며 고정관객을 확보한 이소영씨가 연출을 맡았다. 김석철, 나승서, 김성은, 김혜진, 강순원, 사무엘 윤등 주역 6명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맹활약하는 30대 유망주들이다.8억원의 예산을 들여 제작한 이번 공연은 주역 솔리스트외에 100여명의 합창단과 무용단,60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총 출동해 스펙터클한 무대로 꾸며진다. 여성 연출가 이씨는 ‘사랑을 위해 영혼을 거는’이야기인 이 오페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여성성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무대도 건축구조물 몇 개에 조명으로 단순하게 꾸미고, 의상도 현대의상으로 준비했다. ‘파우스트’는 오페라의 본고장에서조차 쉽게 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할 대작중의 대작. 스케일에 있어 지존의 자리를 지키던 바그너조차 구노의 이 작품을 보고 같은 소재의 오페라에 도전했으나 결국 단념했던 작품이기도 하다.(031)783-8022. ●호프만 이야기 국립오페라단이 22∼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리는 ‘호프만 이야기’는 연극 연출가 출신 이윤택씨의 첫 오페라 데뷔 무대여서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됐다. 약 1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 오페라는 출연진과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합하면 130여명에 이르는 ‘빅’공연이다. 기존의 ‘소리’중심에서 ‘액팅’까지 가미한 새로운 오페라를 시도하고 있는 이씨는 공연 무대를 연극 무대처럼 꾸며 놓는다. 무대 바닥을 방탄 유리로 만들었고, 이 유리 또한 극의 분위기에 맞추어 색이 바뀐다. 200년 전 주인공 호프만이 200년후 우주공간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펼치는 이야기로 전개되는 이 공연은 ‘SF식 호프만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합창단원들이 우주복장을 하는 등 사이버 분위기가 물씬 풍기도록 했다.(02)586-5283.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국립광주박물관 등 9곳 고조선 누락·연대표 오류”

    “국립광주박물관 등 9곳 고조선 누락·연대표 오류”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조선시대 연대표 누락’ 파문에 이어 전국 시·국립 박물관들도 고조선을 표기하지 않거나 시대별 건국 연대가 잘못 기록돼 있는 등 오류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학운동시민연합·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등 역사 관련 5개 시민단체는 16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어 국립광주박물관 등 6개 국립박물관을 포함한 전국 13개 박물관을 상대로 연대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9곳에서 이같은 오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립광주박물관은 고조선 및 삼국의 건국 관련 설명이 없는 데다가 연대표에 삼국의 건국 연대가 300년경으로 잘못 기록, 국립중앙박물관보다 200년이나 늦은 것으로 표기됐다. 또 ‘선사와 고대의 여행’특별전에는 우리나라 기원이 삼국시대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잘못 기재됐다. 경기도박물관은 선사철기시대(기원전 3세기∼2세기)·선삼국시대(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 등 모호한 표현을 사용, 고조선이 누락됐으며 경남대박물관은 한국사의 시작이 기원전 1세기경으로 축소됐다. 청주·의령·밀양·부산·공주·창원대박물관 등에서도 고조선 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부여·경주·충주·제주박물관은 청동기와 고조선이 병기되는 등 시대별 연대표가 정확하게 표기돼 있었다. 국학운동시민연합 이성민 상임대표는 “연대표에 누락된 고조선을 표기하고 삼국 건국 기원을 정확하게 바로잡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국립중앙박물관 및 지방 박물관의 연대표 오류 수정운동과 함께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와 청와대, 법원에 청원서 제출 및 행정심판 청구를 추진키로 했다. 또 박물관 연대표 오류를 식민사관의 산물로 보고,‘식민잔재국민고발센터’(www.kookhak-ngo.org)를 통해 제보도 받기로 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십자군전쟁의 진실 제대로 보기

    십자군전쟁의 진실 제대로 보기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는 교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7세기 이래 이슬람 지배하에 있던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 탈환에 칼을 빼들었다. 약 200년 동안 유럽 기독교도들은 ‘신의 뜻’을 등에 짊어지고 8차례나 동방으로 달려갔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었으나 기독교도는 결국 예루살렘 탈환에 실패했다.700여년이 흐른 지난 2000년, 로마 교황청은 기독교가 인류에게 저지른 잘못 가운데 하나로 이 십자군 원정을 꼽기도 했다. 그런데 두 문명의 충돌은 중세로 박제된 옛말이 아니다. 여전히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반목하고 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을 십자군 원정에 빗대기도 했고, 오사마 빈 라덴 등은 이에 맞서 성전을 외치고 있다. 역사전문다큐채널 히스토리채널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십자군 원정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현재를 조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11일과 18일 오전·오후 10시 4부작 HD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 ‘십자군 전쟁, 초승달과 십자가의 충돌’을 두 차례로 나눠 방송한다. 130개국 2억 3000만 시청 가구를 확보하고 있는 전 세계 히스토리채널이 거의 동시에 내보내는 ‘월드 와이드 이벤트’의 7번째 시리즈. 미국에서 현지시간으로 지난 7일 방영했을 정도로 따끈따끈한 작품이다. 1년여 제작기간에 기존 다큐멘터리 비용을 훨씬 웃도는 400만달러가 투입됐다. 200년 전쟁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파헤치며, 또 각자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전사들의 투쟁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재연한다. 서구적 또는 기독교적 시각에 치우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 각 종교 관점을 지닌 역사학자와 신학자들의 설명을 곁들여 교활했던 교황의 모습이나, 영토에 목말랐던 지방 영주, 이슬람의 입장 등을 그리며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전투분석학자가 고증한 중세 시대 전투 테크놀로지와 사자왕 리처드 1세나 살라딘 같은 영웅의 이야기도 흥미를 끈다. 이번 다큐는 1차에서 3차 원정이 있었던 초기 100년에 집중한다.1,2부에서는 십자군 원정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기독교가 400년 만에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과정을,3,4부에서는 예루살렘을 되찾고자 했던 이슬람의 반격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모로코 사막에서 실감나게 재연된 전투 장면이 흥미롭다. 영화 못지 않은 최첨단 컴퓨터그래픽(CG)과 배경음악, 효과음이 돋보인다. 2,3차 십자군 원정을 소재로 올란도 블룸이 주연을 맡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 나왔던 배우 상당수가 이번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점도 이채롭다. 이번 다큐는 방영과 동시에 비트윈에서 DVD로 발매될 예정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윤택의 첫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요즘 공연계에서는 연극 연출가 출신 이윤택의 첫 오페라 데뷔 무대인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공연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난 17일부터 예술감독 이씨의 지휘로 연습에 들어간 국립오페라단은 이제 그로부터 ‘소리’는 물론 ‘몸’(액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소리’에만 열중하던 오페라 가수들은 이제 “팔을 올리며 노래할 때 얼굴이 가리지 않도록 하세요.”“무대 위에서 사람들이 너무 붙어 있으면 관객들이 답답해 합니다. 조금 떨어지세요.”등 그의 여러가지 주문에 익숙해졌다. 별도의 액팅 트레이너와 안무가도 초빙해 연극적 무대의 장점들을 오페라 무대에 접목시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200년전 주인공 호프만이 세명의 여인을 만나서 꿈꾸고 체험하는 사랑의 이야기를 이씨는 이번에는 200년후의 미래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도록 극의 전개를 바꿨다. 환경과 생태가 파괴된 200년후의 지구의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사랑마저도 그 의미를 잃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담아낼 계획이다. 한 인간의 사랑의 역사가 지구의 역사와 다르지 않음을 반영하도록 했다.환경과 생태문제도 제기할 계획이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에는 테너 박현재와 하석배가 주인공을 맡고 소프라노 신지화 이현정 오미선, 메조소프라노 추희명, 베이스 함석헌 등이 출연한다. 공연계에서 ‘게릴라’로 불리는 이씨는 “노래만 잡고 있던 성악가들은 연기를 하고, 각 막의 느낌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봄으로 끊임없이 장면이 바뀌는 무대와 환상적인 특수분장으로 관객들이 지루할 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페라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이씨의 지론이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인 ‘호프만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킬지 자못 궁금하다.22~2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6-5282.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1일 TV 하이라이트]

    ●특별기획(EBS 오후 11시5분) 지난 6월 말, 전국 주요 대학들이 논술의 비중을 강화하면서 통합형 논술시험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면서 변별력 확보에 어려움을 느낀 대학들이 내놓은 논술 강화 방안.2008논술시험, 무엇이 바뀌고, 또 어떻게 준비를 해야하는지 서울의 주요 대학 입학처장들과 교수들에게 들어본다. ●서동요(SBS 오후 9시55분) 신라 선화공주는 전쟁으로 백제에 빼앗긴 땅을 다시 찾기 위해 진평왕과 함께 묘책을 짜낸다. 백제 위덕왕은 신라에서 보낸 선대 성황폐하의 금으로 된 머리띠를 받는다. 위덕왕은 신라에서 찾아온 성황의 머리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선화공주는 빼앗긴 땅을 돌려주면 진짜 성황의 머리를 돌려 주겠다고 제안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중국에서 에이즈 감염자 1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난한 농부들이 피를 팔면서 오염된 장비에서 에이즈가 감염되기 시작했다. 마을에는 에이즈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노인들만 남게 됐다. 그래서 에이즈 전도사로 불리는 투청 박사는 이런 고아들에게 양부모를 연결시켜 주는 일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요리보고 세계보고(MBC 오후 5시20분)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교토는 유서깊은 사찰과 유적이 많은 도시로 손꼽힌다. 그런 까닭에 이곳의 음식문화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면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기도 하다. 절임음식과 유바, 교야채 등으로 만든 다양한 퓨전음식 등 일본 교토의 멋과 맛을 따라가 보자. ●문화스페셜(KBS1 밤 12시55분) 현대음악을 선도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1월3일이면 그의 서거 10주기를 맞는다. 그의 음악은 유럽에서 현대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고국을 떠나살아야 했다. 끝내 고국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임종을 맞아야했던 윤이상, 그의 음악세계로 들어가 보자.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10분) 스크린 속에 보인 버섯돌이의 얼굴이 돌이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르. 미르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돌이의 사진에서 버섯돌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버섯돌이가 주워간 액세서리를 돌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미르는 힘들지만 돌이가 암흑전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지난 60년은 그만두고 양류목운(楊柳木運)의 해에는 갑자기 군대가 소요를 일으켜 여(女)군주가 도망을 칠 것이다. 만일 동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하게 되리라. 나라의 태공은 푸른 바다에 외로운 그림자가 되어 신세가 처량해질 것이나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백성들은 달아나 숨기 바쁘니, 삼강오륜이 끊어지도다. 하늘 재앙 혹독해 벌레의 독을 무어라 형언하랴. 부자가 먼저 죽나니 후회해도 소용없도다.”(경주이선생 가장결) ‘정감록’의 일부로 돼 있는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이다. 정치적 격변을 알리는 끔찍한 예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 내용을 일일이 살피기에 앞서 우선 거기에 보이는 연도 표기방식이 특이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양류목운’이라고 했다.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임오년과 계미년의 운세를 말한 것이다.‘경주이선생’은 조선 후기에 정착된 편년체 예언이 분명한데, 특히나 음양오행설로 육십갑자를 푼 셈이다. ●한국의 운세를 나무에 빗대는 이유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의 운세는 나무 운세(木運)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그랬다. 다들 우리나라를 나무(木)로 상정했다. 그 기원은 지금부터 약 650년 전인 고려 공민왕 6년(135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음양오행에 달통해 사천소감 벼슬에 있던 우천흥이란 일관(日官)이 있었다. 그는 공민왕에게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도선국사가 지은 ‘옥룡기’(玉龍記)란 예언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 지세가 물(북쪽)은 뿌리요, 나무(남쪽)는 줄기가 됩니다.” 우천흥은 도선이 한 말이라며 자신의 견해에 권위를 부여하려 애쓴다. 과연 이 주장이 도선에게서 비롯됐는지는 증명할 길이 없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백두산을 뿌리로 삼아 지리산까지 줄기가 뻗친 한 그루의 나무로 이해된 사실만은 틀림없다. 역사 기록을 좀 더 살펴보면 그보다 200년쯤 앞서 고려 인종 때도 비슷한 인식이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알다시피 묘청은 도읍을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는데, 그 역시 고려란 나라를 한 그루 나무로 보았다. 묘청이 서경에 새 궁궐터로 잡은 곳이 ‘대화세’(大華勢), 즉 큰 꽃봉오리 형상의 명당이었다. 그는 나라 전체를 커다란 나무로 인식했고, 그 중에서 지세가 강한 여러 명당을 꽃으로 간주했다. 대화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꽃 즉, 최고의 길지를 뜻했다. 한국이 음양오행으로 보면 나무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듯하다. 한반도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는데, 나무가 바로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동국(東國)’ 또는 ‘진단(震檀)’이라 불렀다. 동쪽 나라를 뜻하는 ‘동국’이야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진단’의 진(震) 역시 팔괘의 하나로 동쪽을 가리킨다. 단(檀)은 우리나라의 시조가 단군이라서 덧붙여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라 하고 그래서 나무 운세로 보는 것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표현된 것이다. 지구가 둥근데 하필 우리나라를 동쪽으로 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약용이나 홍대용과 같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마침내 지구가 둥글다든가 자전하는 줄을 알게 돼 중국적 세계관에 본격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인습의 뿌리는 정말 끈질기다.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역시 ‘고려사’에 실려 전한다. 한국 고대 풍수지리의 아버지라 할 도선국사가 고려 태조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정할 때의 전설이다. 그 때도 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과 함께 곡령 고갯 마루에 올라 지맥을 두루 살폈다. 위로 천문을 보고 아래로는 시수(時數)를 살핀 다음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곳 지맥은 임방(壬方:북쪽)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물을 어머니(水母)로 삼은 나무(동쪽)가 줄기인데, 말머리 명당에 이르러 멈춰선 형세입니다. 공 역시 물의 운명이오니 마땅히 물의 대수(大數·물의 수는 1과 6으로 6이 대수다)에 따라 집을 지어야 합니다. 대수인 6에 6을 곱하면 36구가 되는데 이것이 천지의 대수에 부응합니다. 제 말대로 하시면 내년에는 반드시 성스러운 아들(미래의 임금)을 낳게 될 것이오니 이름을 부디 왕건이라 하십시오.”(고려사 세계 7) 도선은 태조 왕건의 운세를 나무로 보고, 그 아버지는 나무를 살리는 물이라 여겼다. 마찬가지로 송악 명당이 있게 한 뿌리는 백두산인데 북쪽의 임방에 위치하므로, 오행으로 풀이해 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송악 명당을 낳은 금강산과 태백산 등 백두대간은 송악에서 바라보면 동쪽에 위치해 나무로 간주됐다. 따지고 보면 송악 역시 그 나무의 꽃 또는 열매에 해당해 근본적으로는 나무로 파악됐다. 도선의 머릿속에서 송악과 고려 태조 왕건은 나무로 동일시되었다. 나무인 왕건이 태어나서 자랄 집은 당연히 물이라야 하므로 대수 36구가 길하다는 결론이 나왔으며, 송악에는 푸른 소나무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도선의 처방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의 운세는 늘 나무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壬午와 癸未가 楊柳木이 되는 이유 오행상생설로 보면 나무를 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물(水), 죽이는 것은 불(火)이다. 따라서 나무인 한국에게 물의 해는 길하고 불의 해는 흉하다는 식의 운세 풀이가 나오게 된다. 흉한 해 즉, 불(火)로 정의되는 해는 말(午)의 해요, 그 뒤를 이은 양(未)의 해도 좋지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런데 한국의 운세는 말과 양 등 십이간지(十二干支)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육십갑자를 구성하는 열 개의 천간(天干)이 또 있어서다. 나무에 해로운 불은 병정(丙丁) 둘이며, 이로운 물이 또 두 가지이다. 임(壬)과 계(癸)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임과 계년이라면 나라 운세가 보통은 아주 좋다. 하지만 십이간지인 말과 양의 해가 나무와 상극인 관계로 임오년과 갑신년의 운세는 상생과 상극이 맞부딪쳐 어정쩡해진다. 비유하자면 어린 나무(柔木)다. 역술가들은 임오년과 계미년의 국운을 흔히 양류목(버드나무) 운세라 부른다.‘경주이선생’도 예외가 아니어서 버드나무 운세라는 말로 두 해의 운세풀이를 시작한다. 하고 많은 나무 가운데서 버드나무란 또 무엇일까? 옛 사람들은 버드나무라면 으레 생명력이 끈질기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명유(名儒) 하서 김인후는 귀양 가는 친구에게 뜰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기도 했는데, 버드나무가 정든 임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버드나무는 가늘고 긴 가지가 특별하다. 축 늘어진 모양은 마치 미인이 긴 머리를 풀어헤친 듯도 하려니와 하늘하늘한 여인의 허리를 연상케 한다. 낙락장송의 꼿꼿한 기개는 아닐지라도 유려함과 생명의 활기가 느껴지는 나무다. 버드나무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물이 올라 푸르름을 선사하기도 한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양류목’ 운세는 다소 불리한 가운데도 끝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을 가진다. 말과 양의 해라면 나무가 죽을 수이고, 특히 큰나무가 해를 많이 입을 운이다. 다행히 임과 계년이라서 다 죽지는 않는다. 산불 때 그렇듯 큰 나무는 힘없이 쓰러지되 작은 나무는 도리어 살아남을 운세다. ●임오군란과 양류목운 다시 맨 앞에서 인용한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을 상기해보자. 고종19년(1882) 임오년의 정세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참 많다. 첫째, 군대의 소요가 일어난다는 예언이 있는데 그 해에는 실제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당시 정국은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가 개화파와 대립하는 형세였다. 개화파는 사실상 국왕 고종과 명성황후가 손수 이끌다시피 했다. 왕이 개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개화파 관료가 점차 조정에 많이 임용되었다. 고종18년(1881)에는 신식군대인 별기군까지 창설되었는데, 소외감을 느낀 구식 군인들은 그것을 왜별기(倭別技)라 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 대원군이 집권하던 시절만 해도 구식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좋았다. 하지만 개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져 그들은 봉급이 13개월치나 밀리는 등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재정을 담당하는 선혜청 당상이자 병조판서였던 민겸호야말로 이런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 구식 군인들의 믿음이었다. 마침 그해 6월, 전라도에서 올라온 세미(稅米)가 서울에 도착하자 구식 군인들에게도 1개월분의 급료가 지불되었다. 그런데 선혜청 담당 관리들의 농간으로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이 지급되자 구식 군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평소 불신하던 민겸호의 집에 난입했고, 장차 민씨 일파의 보복이 있을까 염려한 나머지 반대파인 대원군에게 의지했다. 대원군은 몰래 심복을 보내 구식 군인들을 통솔했고 이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자신의 재집권을 꾀했다. 그 바람에 구식 군인들의 폭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군인들은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강화한 뒤 명성황후의 측근들과 개화파 주요 관리들의 집을 차례로 습격했다. 대원군의 밀명에 의해 그들은 친왕적이고 개화정책에 우호적이던 대신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부자가 먼저 목숨을 잃는다.”는 ‘경주이선생’의 예언처럼 부와 권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상해를 입었다. 개화파의 군사적 기반인 별기군 병영도 무사하지 못했다. 구식 군인들은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살해했고, 일본 대사관에도 침입해 13명의 일본인 목숨을 빼앗았다. 둘째, 예언서 ‘경주이선생’에는 여 군주가 도망친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실권을 행사하던 명성황후가 충주로 도피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구식 군인들은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 궐내로 난입했다. 그들은 개화파의 우두머리라며 명성황후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수구파의 우두머리인 대원군의 조종을 받은 것이었다. 목숨이 위급해진 왕후는 무예별감 홍재희의 도움을 얻어 충주 장호원에 있던 친척집으로 피신했다. 셋째, 국태공이 납치된다는 예언도 적중해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었다. 국왕인 고종은 임오군란으로 벌어진 정치적 난맥상을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단 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시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대원군은 왕의 의지에 상반된 조치를 연달아 취했다. 대원군은 그동안 실시돼온 개화정책을 거의 모두 파기했다. 별기군을 혁파하고 구식 군대인 5군영을 복구하였으며, 신식 정부기관인 통리기무아문을 없애고 3군부를 설치했다. 대원군은 최대의 정적인 명성황후의 실종을 서둘러 사망으로 단정하고 국상을 치렀다. 개화파로서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자 개화파는 톈진(天津)에 주재하던 영선사 김윤식을 통해 청나라에 군사적 후원을 부탁했다. 청나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다. 오장경(吳長慶)이 이끈 청나라 군대 4500명이 서울로 급파됐다. 그는 군대를 앞세워 한국의 내정에 직·간접으로 간섭하였고, 자신을 찾아온 대원군을 불법 체포해 톈진으로 압송했다. 한국 내에서 청나라의 입지를 강화시킬 방안에서였다. 이로써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하던 ‘호랑이’ 대원군은 권좌에서 영원히 축출되었다. 예언대로 되고 만 것이다. 이밖에도 ‘양류목운’의 예언은 적중했다.“손님이 주인행세를 할 것”이라 했는데 과연 오장경이 지휘하는 청나라 군대가 멋대로 주인행세를 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임오년은 ‘경주이선생’이 말하듯 숱한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라가 아주 망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충주로 피난한 명성황후도 무사했고, 불시에 청나라로 붙잡혀간 대원군도 다시 귀환할 수 있게 된다. ●갑신정변까지 ‘경주이선생’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경주이선생’에는 고종21년(1884)에 일어난 갑신정변도 정확히 예측돼 있다.“정중수운(井中水運)은 자미(북두성) 자리에 저녁 무지개가 뜬 형국이다. 그러다 다시 동쪽으로 달아나리라. 나라에 변고가 일어나 죽음이 참혹하구나. 남북 군사들이 부딪쳐 화가 점차 심한 불길처럼 번져나갈 것이다.”자미성이라면 천자 또는 임금을 가리킨다. 그 자리에 무지개가 뜨는 것은 무척 흉하다. 무지개는 하늘에 보이는 벌레로 해석되기 때문에 변란이 일어난다는 예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고 한 것도 불길하며, 변란의 주체가 동쪽으로 달아난다고 한 것도 심상치 않다. 더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남과 북의 세력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대립한다고도 했으므로 후환이 두렵다. 이 예언대로 한 해가 흘러갔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김옥균과 박영효를 비롯한 개화파 청년 인사들이 그 해 10월17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의 정변은 일단 성공했으나 지지기반이 미약했던 탓에 정권이 오래 가지 못했다. 겨우 사흘밖에 집권하지 못해 ‘삼일천하’란 다소 비웃는 듯한 표현까지 등장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신정변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위로부터의 근대적인 개혁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김옥균 등 정변의 주체세력은 그들 스스로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양반 출신이었지만, 오랜 사회적 악습으로 남아 있던 문벌 타파를 실천하고자 했다. 개화당 인사들은 능력 본위로 인재를 등용하자며 평등권을 부르짖었다. 아쉽게도 정변은 실패로 돌아갔고 후유증도 심각했다. 서울에 와 있던 청나라 장수 위안스카이의 무력 공세에 밀린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후일을 기약하며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은 일본과 청나라의 세력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불쌍한 처지에 놓인다. 청·일 양국은 그 이듬해인 1885년 4월 18일, 톈진조약을 체결해 장차 한국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두 나라가 동시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약속하기에 이른다. 과연 갑신정변이 일어 난지 정확히 10년 뒤인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청·일 두 나라는 톈진조약에 의거해 한국에 동시 출병했고, 마침내 한국을 독점하기 위해 청·일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일본은 장차 한국을 병합할 기초를 다진다. 불행의 씨앗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맞는 ‘경주이선생’ 갑신정변을 분기점으로 잘 맞아 들어가던 ‘경주이선생’도 틀리기 시작해, 고종 23년(1886) 이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맞고 틀리고는 ‘경주이선생’이 저술된 시기와 직접 관계가 있다. 나는 이 예언서가 1884년 갑신정변이 끝나자마자 쓰였다고 본다. 이미 다 알고 쓴 것이라서 1880년대 초반의 일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한 1886년 이후를 무슨 수로 맞히겠는가? 맞는 예언서는 이미 예언서가 아니다. 그것은 술사를 비롯한 민중의 역사적 인식이 기록된 일종의 역사서일 뿐이다. 그 때 있었던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주된 관심사만을 한데 주워 담은 역사 말이다. 예언은 사실 미래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뜻밖에도 거기에 민중의 역사적 기억이 집적돼 있다.‘경주이선생’에는 특히 민중이 바라본 정치와 경제 이야기가 많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권력과 돈의 향방을 따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감 익는 청도 ‘감 좋다’

    감 익는 청도 ‘감 좋다’

    가을 청도는 풍요롭다. 국내 최대의 감 생산지답게 청도는 진홍빛 감에 폭 싸여 있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반시(盤枾)를 따는 농부의 모습은 가을의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조용한 산사를 울리는 운문사 비구니의 예불 소리는 아늑한 가을의 품속에 안긴 듯 마음이 편하다. 새벽을 여는 운문호의 물안개는 가을을 더욱 호사스럽게 한다.‘맑은 길이 있는 고장’이라는 뜻의 청도(淸道). 그 곳에 가면 높고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 여유로운 전원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파란 하늘에 홍시가 걸렸네 청도에는 감나무 천지다. 감나무 밭인지 마을인지 구분 하기 힘들 만큼 가는 곳마다 온통 감나무다. 추수가 한창인 논과 밭, 산등성이, 마을 담장은 물론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까지 감나무가 즐비하다. 때문에 청도의 가을 하늘은 붉은 감과 어우러져 유달리 높고 푸르다. 차를 달려 비슬산 자락에 있는 풍각면 상수월 마을에 들어서자 때묻지 않는 시골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호박 넝쿨이 휘감긴 돌담과 도리깨질을 하며 깨를 터는 농부, 하늘을 향해 갈고리가 달린 긴 장대를 휘두르며 감을 따는 농부의 모습에서 시골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감이나 하나 맛보소.”감을 따던 마을 주민 정육지(71)씨가 갓 딴 홍시를 건넨다. 환갑도 채 안돼 보이는 그의 나이를 듣고 놀라자 “감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라며 농을 건넨다. 정씨는 “청도에는 흔한게 감나무여, 우리 동네 감은 씨가 없어서 먹기에도 좋아.”라며 자랑을 늘어 놓는다. 청도하면 으레 소싸움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감의 고장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감이 연간 2만여t. 전국 생산량의 20%에 이를 정도로 국내 최대 생산지다. 주민의 70% 이상이 감농사에 의지해 살고 있다. 청도의 감은 반시(盤枾)라 부르는데 감이 납작한 모양이 쟁반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명종 때인 1545년 청도 이서면 출신의 박호 선생이 평해 군수로 있다가 귀향하면서 가져온 감나무가 반시의 효시라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될 정도로 유명했다. 반시는 씨가 없다. 타 지역에서 새 종자를 들여와도 청도에만 오면 씨가 없어진다. 청도군에서 대학 연구소에 이 같은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연구 의뢰를 했지만 암나무가 대부분이라서 수정을 못하고 씨가 맺히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놨을 뿐 정확한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반시는 공판장에서 10㎏(60∼80개)에 1만 5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웰빙’으로 거듭난 감 흔한 게 감나무다 보니 감을 이용한 ‘웰빙’ 제품들이 많다. 눈길을 끄는 것은 감 와인. 세계 최초로 지난해 감와인 ‘감그린’을 개발했다. 청도와인(gamwine.com·054-372-8314)의 하상오(45)대표가 5년여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개발했다. 그는 “감은 화이트와인에 많은 ‘탄닌’ 성분이 많아 심장병과 노화방지에 좋은 고급 와인으로 청도 감은 씨가 없어 와인 생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750㎖ 1병에 2만 2000원. 아이스 홍시와 감말랭이는 대표 먹거리. 반시는 수분과 당도가 높아 곶감을 만들기 쉽지 않아 그 대신 감을 네 조각으로 나눠 말린 감말랭이를 만들거나 통째로 얼린 아이스 홍시로 판매한다. 곶감에 비해 부드럽고 쫄깃한 감말랭이를 만드는 농가는 두산농원(054-372-2428) 등 10여곳이 있다. 감말랭이는 1㎏(250g짜리 4박스)에 1만 5000원. 전통 염색기법에 따라 감물 천연염색은 색다른 체험거리다. 감을 씻어 즙을 낸 뒤 염색과 건조를 4∼5회 반복해서 천연 원단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개량한복과 침구류, 커튼, 가방, 차받침, 지갑 등을 만든다. 개량 한복 한벌을 만드는데 감즙 한말(20∼30㎏), 감 150∼160개 정도가 들어간다. 때문에 가격은 한벌에 30만∼50만원선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감물들이기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예던길따라(054-372-8314)에서는 손수건과 스카프 등 간단한 소품을 물들여 가져갈 수 있다. 체험료는 1인당 5000∼1만원. ●산사에 울리는 은은한 예불소리 병풍처럼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년고찰 운문사(054-372-8800)는 호젓한 가을 분위기가 묻어난다. 울창한 솔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조용한 산사를 울리는 예불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천년의 세월을 지킨 비구니 도량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함과 섬세함이 숨어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때인 560년 창건된 사찰로 현재는 270여명이 불법을 닦는 비구니 승가대학 등 총 30여동의 전각을 갖춘 도량이다. 이름난 법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 1200년전 원광법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속오계를 이곳에서 전수했고,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왕명에 따라 운문사에서 주지를 맡은 바 있다. 신라 때는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경내에는 화려한 당대 불교예술의 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신라때 지어진 삼층석탑과 석등, 고려때 지어진 원응국사비, 조선초에 세워진 비로전 등 7점의 보물이 있다. 불가의 예법도 볼 수 있다. 오후 6시면 어김없이 저녁예불이 행해진다. 가죽짐승을 깨우는 북소리, 물고기를 위한 목어, 그리고 입구에 걸린 커다란 범종 소리와 함께 예불이 진행된다. 10년전 운문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운문호는 청도의 아침을 연다. 새벽이면 몽환적인 물안개를 토해낸다. 구불구불한 호반길을 돌다 보면 호수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신라의 고도 경주와 청도를 잇는 운문댐 주변 도로는 운문사와 삼계리 계곡의 전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이 밖에 소요당 박하담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운강고택과 운곡 김몽로의 생가인 운곡정사, 전국 6개의 석빙고중 가장 오래된 숙종 때 세워진 석빙고 등은 역사 체험코스로 손색이 없다. ●시원한 청도 추어탕 청도역 주변의 추어탕 거리에서는 시원한 청도 추어탕을 맛볼 수 있다. 청도 추어탕은 남도 추어탕과는 달리 운문댐 아래 동창천에서 잡은 미꾸라지 외에 떡붕어와 쏘가리, 미꾸라지, 꺽지, 메기 등을 갈아서 맑은 국물을 낸 뒤 시래기를 듬뿍 넣어 끓인다. 자연산청도추어탕(054-371-5510)은 추어탕(4000원)과 올갱이로 끊인 고디탕(4500원)을 판매한다. 용암온천 인근의 음식점 하늘정원(054-373-3334)은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오리황토연잎구이와 오리바비큐보쌈 등을 맛볼 수 있다. 숙박은 이 지역에서 유일한 1급 호텔인 용암온천관광호텔(054-371-5500)이 좋다. 숙박료는 주중 6만 8000원, 주말 7만 8000원. 호텔에 있는 용암온천은 1000m의 암반에서 뿜어나오는 양질의 게르마늄 유황온천으로 각종 성인병에 좋다.6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요금 6500원. ●청도로 가는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북대구IC에서 빠져 대구신천대로와 30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5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로는 서울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를 타고 내려가 청도행 무궁화로 갈아타면 2시간30분에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barota.com·1544-7788) 청도군청 문화관광과(054-370-6373). 청도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보수정책 지지… 낙태등 판례 유지 관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이 200년 만에 가장 젊은 대법원장 시대를 맞게 됐다. 존 로버츠(50) 미국 연방 대법원장 지명자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상원에서 인준이 통과된 뒤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서식을 가졌다. 로버츠는 2일 대법원에서 제17대 대법원장 취임식을 갖고 집무에 들어간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난 1801년 45세에 대법원장에 오른 존 마셜 이후 최연소 대법원장이다. 이날 로버츠로부터 취임 선서를 받은 존 폴 스티븐스 연방 대법관이 85세의 진보파 판사여서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미국의 대법원장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로버츠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미 사법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법원은 낙태와 동성애, 안락사, 복제 등의 사회적 현안을 둘러싸고 대법관들이 마치 정치권처럼 뚜렷한 분열 현상을 보이고 있어 향후 로버츠의 행보가 주목된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백악관 선서식에서 “나는 미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할 것을 맹세한다.”고 선서했다. 앞서 미 상원은 로버츠 대법원장 인준안을 찬성 78, 반대 22로 가결했다.55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인준안을 전원 찬성했으나 민주당 의원 절반이 낙태, 시민권 등에 대한 로버츠 지명자의 보수적 세계관을 문제 삼아 반대했다. 힐러리 클린턴·존 케리·에드워드 케네디 의원 등이 반대표를 던졌다. 뉴욕주 버펄로에서 태어난 로버츠는 전기공인 부친을 따라 철강 공장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등 공화당 정권의 법무부, 백악관에서 일했다.특히 부시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법무차관으로 국가 소송을 담당하면서 낙태를 합법화한 역사적인 판결인 ‘로 대 웨이드’사건에 대한 1973년의 대법원 판결은 뒤집어져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에 서명하고, 최근 쿠바 관타나모 테러 용의자를 미국의 군사재판이 다룰 수 있다고 판결하는 등 공화당의 보수적인 정책을 지지해 왔다. 가톨릭교도인 그는 상원 청문회에서 낙태, 시민권과 관련한 판례에 대해 “존중하지만, 이에 대한 의견은 밝힐 수 없다.”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로버츠는 그러나 “이데올로그가 되지는 않겠다.”고 민주당 의원들에게 약속했다.dawn@seoul.co.kr
  • 쉰다섯, 도전은 계속된다

    “모험가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지요.” 50대가 아웃리거카누(Outrigger Canoe)를 타고 전남 완도항을 출발하는 제주도 논스톱 횡단에 나서 화제다. 주인공은 마라톤과 철인 3종경기에 이어 365일 달리기까지 우리나라 극한 스포츠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조의행(55·경기도)씨. 조씨는 한국 아웃리거카누 연맹(회장 박기섭) 창립을 기념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바다 전용 카누를 타고 1200년 전 해상왕 장보고의 도전정신이 살아 숨쉬는 완도항을 28일 오전 출발한다. 그는 바다의 특성상 북서 계절풍과 조수간만의 차가 적은 시기를 선택, 완도∼제주간을 운항하는 여객선의 항로를 따라 횡단에 나선다. 공식적인 횡단거리는 90㎞이지만 카누로 이동하는 실제거리는 100㎞ 이상이 될 전망이다. 횡단하는 동안 조씨는 30시간에서 최대 40시간을 제주해협의 거친 파도와 싸워야 한다. 졸음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횡단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조씨는 “지난 10개월여 동안 한강 등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며 “이번에 꼭 성공해 낙심하고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조씨가 탈 아웃리거카누는 국내에 처음 들여온 1인용으로 길이 6.45m, 무게 10㎏으로 ‘장보고호’로 명명됐다. 아웃리거카누는 일명 ‘하와이안 카누’로도 불리며 옛 하와이 원주민들이 바다에서 사용하던 전통적인 통나무 카누. 지금은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 가볍고 단단한 카본 재질로 교체돼 속도와 안정감이 향상됐다. 한편 조씨는 2001년 세계 최초로 365일 마라톤(1만 2478㎞) 기록을 세운 데 이어 국내 최초로 24시간 마라톤 1위(2000년)를 차지하는 등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모험심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경찰청팀 공정한 선발을

    돔 구장, 아마야구 진흥과 더불어 야구계의 3대 현안으로 꼽히던 선수들의 병역 문제가 경찰청 팀의 창단으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게 됐다.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는 대학 입시와 병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수들의 병역 문제는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과제였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병역 비리에 연루된 선수들까지 밝혀져 프로야구의 이미지에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국민 개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모두가 공평하게 병역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스포츠 선수들의 기량이 최절정기에 도달하는 연령대가 병역 의무 기간과 겹친다는 점이다.특히 야구는 올림픽에서도 퇴출됐고 아시안 게임에서도 위치가 불안해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 더욱 사정이 심각했다. 선수들이 병역을 기피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기간에 받는 연봉이 아깝기보다는 운동을 하지 못해 기량이 쇠퇴할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경찰청 팀이 사회에 공헌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팀을 잘 운영하고 홍보하는 일이다. 병역은 워낙 민감한 이슈라서 경찰청 팀의 창단에 대해서도 비난이 생길 수 있다. 야구 선수, 특히 프로 선수들에게 왜 특혜를 주느냐고. 그런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상무나 경찰청 야구단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팀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벌일 수도 있고 전문 기량을 활용해 유소년 야구팀에 대한 지도를 해줄 수도 있다. 겉보기 행사로만 비치지 않도록 성심을 다해 사회에 봉사한다면 특혜를 준다는 비난은 없어질 것이다. 개인이나 단체의 이미지는 백 번을 잘 하더라도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친다. 메이저리그가 200년 동안 가꿔온 건강한 이미지는 스테로이드 파동 하나로 땅에 떨어졌다. 한국 야구가 20년간 가꿔온 이미지는 병역 파동 하나로 망가졌다.경찰청 팀이 창단돼도 모든 선수가 혜택을 받기에는 자리가 부족하다. 팀의 선수 선발을 놓고 프로 구단끼리 이전투구를 벌인다거나 부정이 생긴다면 어렵게 만들어진 기회를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다. 좋은 이미지는 오랜 기간 공을 들여야 얻어지지만 나쁜 이미지는 소문만으로도 쉽게 생겨난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열린세상] 기술혁신과 인력양성/한민구 서울대 공대 교수

    삼성전자가 16기가 낸드플래시메모리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하고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쾌거를 이룩하였다.16기가 낸드플래시메모리는 손톱만한 실리콘 반도체 칩 안에 164억개의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경이적인 첨단기술의 결정체이다. 이러한 반도체는 MP3 음악파일 기준으로 8000곡의 음악, 영화 20편 이상 또는 일간신문 200년치의 분량을 저장할 수 있으며 부피가 크고 깨지기 쉬운 하드디스크를 대체할 수 있어 향후에 막대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첨단제품이다. 특히 머리카락 두께 2000분의1에 해당하는 50나노 공정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상품화할 수 있는 뛰어난 제조공정기술을 개발한 것은 높이 평가된다. 백만여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1메가 메모리를 개발했다고 떠들썩한 것이 불과 15년밖에 안되는 데 비하여 무려 1만 6000배가 더 많은 16억개의 트랜지스터가 상품화되는 것은 반도체 산업의 기술발전 속도와 역동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필자가 20여년 전 첨단기술의 본거지라는 미국 대학원에서 반도체과목을 강의할 때,1메가 이상의 메모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공정을 채택하여야 되고 1기가 이상의 메모리는 실리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러한 정설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으로 틀린 이야기가 되었으며 향후에도 실리콘 반도체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첨단반도체 산업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불과 20여년 만에 우리의 힘으로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는 기술혁신을 이룩한 저력이 자랑스럽다. 이러한 경이적인 발전은 우연이 아니라 과감한 투자 및 기업가 정신은 물론 우수한 과학기술인력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밤을 새우며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에 매진하여 이룩한 소중한 결과이다. 즉, 우수한 인력들이 기업에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기술개발에 정진하는 소위 선택과 집중에 의한 연구개발의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반도체기술은 물론 우리경제에 효자노릇을 하는 디스플레이 기술도 종래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술혁신이 이룩되고 있다. 액정 디스플레이의 경우 32인치 이상은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몇 년 전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60인치 이상이 시장에 나오고 있으며 대량생산과 기술혁신에 따라 가격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액정 디스플레이의 경우도 전 세계 시장의 1등과 2등을 우리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반도체산업과 디스플레이 산업 등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우수한 기술개발인력의 확보와 양성에 있다. 이러한 첨단산업에서는 평범한 인력보다는 창의적이고 탁월한 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게 된다. 즉, 한명의 창의적인 과학기술자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시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유능한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우선 대학 스스로가 변해야 된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교육방법을 활용하여 학생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탐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수들의 연구 및 교육능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교수평가제도의 구축은 물론 대학행정체제의 효율화 없이는 우수한 인력의 양성은 어려워진다. 이를 위하여 우리사회가 대학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하여야 한다. 열악한 교육여건 및 부실한 연구시설로는 국제경쟁력을 갖는 창의적인 인재를 확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의 나라들도 우수한 이공계대학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다만 몇 개의 대학이라도 국제적 수준으로 육성하여야 한다. 한민구 서울대 공대 교수
  • [사설] ‘제2의 종이혁명’ 연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적 혁명을 주도해온 삼성전자가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번에 개발한 16기가비트(Gb) 용량의 낸드(NAND) 플래시 메모리는 머리카락 굵기의 2000분의1인 50나노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엄지손톱만한 칩 하나에 154억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있고, 이 메모리 16개를 붙이면 신문 200년치를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웬만한 규모의 도서관에 진열된 모든 서적의 내용을 이 조그마한 칩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을 정도라니 참으로 경이로운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플래시 메모리 개발을 ‘제2의 종이혁명’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자화자찬 치고는 오히려 겸손한 감이 있다. 돌이켜보라.2세기 초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된 이후 인류문명은 상상도 못할 변화를 겪지 않았는가. 당시 파피루스 풀이나 대나무 판에 제한적으로 기록됐던 정보는 종이발명으로 방대한 인류사의 기록을 담아냈다. 더 큰 변화는 인간의 생각, 즉 사고의 격변을 몰고 왔다는 점일 것이다.2000년이 흐른 지금, 삼성전자가 속도와 파급력에서 종이의 출현을 능가하는 정보기술 변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현재 전자제품의 저장장치를 장악한 하드디스크는 이제 2∼3년이 지나면 플래시 메모리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또 플래시 메모리의 양산체제가 갖춰지는 5년 후면 30조원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분명 경기침체로 우울한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새 성장동력이요, 국민적 자랑거리다. 반도체 분야는 분초를 다투는 치열한 전쟁터다. 우리의 기술이 일본보다 1년 앞섰다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삼성전자는 신기술 개발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함은 물론이고, 세계 선도기업이란 명성에 걸맞은 ‘기업 품성’도 갖춰 나가길 바란다.
  • 하드디스크 대체 시작됐다

    하드디스크 대체 시작됐다

    낸드 플래시메모리 하나로 2시간짜리 고화질 영화를 완벽하게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영화 20편 이상의 동영상(32시간)과 MP3 음악파일 기준으로 8000곡(670시간), 일간지 200년치 분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도 있다. 지난해 세계 처음으로 8기가 낸드 플래시를 개발했던 삼성전자가 이번에는 16기가 낸드 플래시를 개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낸드 플래시의 저장 용량을 1년 만에 또 2배 높인 것이어서 세계 전자업계는 삼성전자의 ‘1년 만의 메모리 용량 2배 증가’ 기록 행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휴대전화나 MP3 플레이어, 노트북 등 모바일 기기의 저장 수단으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아닌 플래시메모리가 각광받을 전망이다.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하면 크기나 가격, 디자인 등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12일 세계 최초로 50나노 기술을 이용한 16기가 낸드 플래시메모리 개발에 성공, 플래시메모리의 새 장을 열었다. 지난해 개발된 60나노 8기가보다 용량은 2배, 크기는 25%가량 작아졌다.8기가 낸드 플래시메모리는 2시간짜리 영화 가운데 1시간가량만 저장할 수 있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은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 최초로 16기가 낸드 플래시메모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앞으로 대용량 낸드 플래시가 디지털 저장기기 분야의 가장 강력한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16기가 낸드 플래시는 미니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는 물론 노트북의 HDD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최대 32기가 바이트의 메모리카드 제작도 가능하다. 이는 영화 20편 이상의 동영상(32시간)이나 MP3 음악파일 기준으로 8000곡(670시간)을 저장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 하반기 16기가 낸드 플래시의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시장 규모는 2010년까지 140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50나노 기술을 8기가와 4기가 낸드 플래시에 확대 적용하면 시장 규모는 무려 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MP3 8000곡 저장… 모바일 혁명

    MP3 8000곡 저장… 모바일 혁명

    삼성전자가 12일 내놓은 50나노 16기가비트 낸드플래시메모리는 인간 유전자의 모든 정보(12.16기가비트)를 담고도 남는 용량으로 앞으로 휴대가 가능한 모든 ‘모바일 저장매체’를 플래시메모리가 차지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반도체 부문에서 1849년 미국의 ‘골드 러시’에 비견되는 ‘플래시 러시’를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특히 50나노 양산 기술의 확보는 16기가 낸드플래시메모리뿐 아니라 기존 8기가와 4기가 플래시메모리에도 확대 적용이 가능해 2010년까지 총 300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디지털 페이퍼 시대’ 개막 16기가비트 낸드플래시메모리는 최대 32기가 바이트의 메모리카드 제작이 가능해 영화 20편 이상의 동영상(32시간)이나 MP3 음악파일 기준으로 8000곡(670시간), 일간지 200년치 분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16기가비트 플래시메모리 하나만으로 2시간짜리 고화질급 영화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으며, 자동차 네비게이션용 지도로 미국과 캐나다 지리를 모두 저장할 수 있다. 이는 플래시메모리가 단일 저장매체로서 문자와 사진, 음악, 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손톱만한 칩 안에 저장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창규 반도체 총괄 사장은 “필름과 테이프,CD, 하드디스크(HDD) 등 휴대 가능한 모든 모바일 저장매체는 궁극적으로 플래시메모리가 완전히 대체해 플래시메모리가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면서 “이는 종이 개발에 이은 정보전달 매체 변화의 두 번째 전환점으로 인류는 지금 ‘디지털 페이퍼 시대’를 경험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한 미국의 애플사는 최근 하드디스크 대신 삼성전자의 4기가,2기가 낸드플래시메모리를 장착한 ‘아이팟 나노’를 선보여 가격과 성능, 디자인에서 기존 제품보다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플래시메모리는 MP3 플레이어에 이어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등의 하드디스크를 빠른 속도로 교체해 나갈 전망이다. ●삼성 플래시메모리 매출 매년 2배씩 증가 삼성전자는 2001년 100나노 기술을 처음 상용화한 데 이어 5년 연속 각 세대별 나노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번 50나노 16기가 낸드플래시메모리는 지난해 개발한 60나노 8기가 플래시보다 용량은 2배로 커졌지만 크기는 25%가량 감소했는데 이는 50나노 기술 확보 때문이다.50나노(1나노는 10억분의1m)는 머리카락 두께 2000분의1에 해당하는 굵기다. 황 사장은 “이번에 개발한 50나노 기술은 16기가뿐 아니라 기존 8기가,4기가 낸드플래시메모리에도 확대 적용이 가능하며,2010년까지 총 300억달러의 시장이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가트너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올해 낸드플래시메모리 시장은 100억달러를 웃도는 규모.2001년(14억달러)보다 7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단일 메모리로는 D램에 이어 100억달러를 돌파하는 셈이다.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메모리 매출은 2001년 4억달러,02년 11억달러,03년 21억달러, 지난해 41억달러 등 해마다 2배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낸드(NAND) 플래시메모리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플래시메모리 가운데 용량이 크고 쓰기 속도가 빠른 특징을 갖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MP3 플레이어, 휴대전화 등에 주로 쓰인다. 쓰기 속도가 빠른 노어(NOR) 플래시메모리보다 비중이 낮았지만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낸드가 노어 플래시메모리 시장(지난해 84억달러) 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7) 당나라 문인 육우의 ‘茶經’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7) 당나라 문인 육우의 ‘茶經’

    중국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차의 종주국이다. 그런 중국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항주의 매가촌에서 시작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차’개발이 그것이다. 연 300만에 이르는 한국 관광객들이 들르는 필수코스가 바로 매가촌이다. 그들이 만든 ‘새로운 용정차’는 이른바 한국인만을 겨냥한 ‘신상품’이다. 신상품의 핵심은 그 옛날 가마솥에서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구수한 숭늉맛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맛을 낸 매가촌의 ‘용정차’가 연간 수십억원어치나 한국인들에게 판매된다는 것이다. 한사람의 차인으로서 참으로 무섭고도 어이없는 일이 차의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차를 차답게 한 것은 차의 고전인 (다경)을 쓴 육우(陸羽·733-804)이다. 육우는 차인들에게 ‘다성’이요 ‘다신’으로 불린다. 육우의 자는 홍점(鴻漸) 또는 계자(季疵), 호는 경릉자(竟陵子) 상저옹(桑苧翁) 다산어사(茶山御使)다. 당나라 현종 개원 21년에 경릉군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으나 부모 출생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육우의 연표에 따르면 중국 복주 경릉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서쪽 서호의 강가에 버려졌다. 인근의 용개사 주지인 지적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호숫가에서 기러기 떼 울어대는 소리에 가까이 가보니 새들이 깃털로 영아를 덮고 있어서 거두어 길렀다고 한다. 매우 어린시절부터 육우는 지적 스님을 시봉하며 불경과 차를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대나무 꼬챙이로 소의 등에다 글을 혼자 연습할 정도로 유교에 심취했던 육우는 불교를 뛰쳐나와 광대가 되어 단역배우 역할을 했다. 나무인형, 아전, 구슬감추기 등을 하는 단역배우였던 그는 얼굴이 못생기고 말마저 심하게 더듬었지만 성실하고 재주가 많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육우의 삶이 바뀌게 되는 것은 20세 때부터다. 경릉으로 좌천되어온 예부랑중 최국보와 교분을 쌓으면서부터다. 최국보와 의형제를 맺은 육우는 그와함께 시·서·화뿐만 아니라 차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펼치게 된다.22세때 육우는 최국보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짐을 아쉬워한 최국보는 육우를 위해 흰나귀 한 마리와 괴목으로 만든 서함을 선물한다. 육우는 오늘날 하남성의 신양일대와 파산협천등 주요 차산지를 여행하며 당시의 최고 명차였던 ‘파동진향명’‘협주차’등을 마셔본다.23세 여름 다시 경릉으로 돌아온 육우는 청탄역 석호옆 동강촌에 은거하며 그동안 수집한 차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한다.(다경)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차 여행이었던 셈이다.‘안사의 난’은 육우를 또 한번 변신시킨다. 그가 제2의 고향으로 불렸던 호주로 피란 간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당대의 시인이자 차승이었던 저산 묘희사의 교연스님과 친구가 된다. 교연스님을 통해 육우의 호주시대가 열린 것이다. 초계로 거처를 옮긴 육우는 피란길을 거쳐왔던 양자강 중유 및 회하유역의 차에 관한 자료들을 다량 수집하고 정리한다. 전란중에도 차에 대해 연구한 육우의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27세때 모산으로 거처를 옮긴 육우는 악동 감북 환남 환북 강소의 승주 윤주 상주 등 차구(茶區)를 유람했다. 강소유람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안진경뿐만 아니라 황보중 등 훗날 그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서로 반한 안진경은 후일 육우를 위해 삼계정을 지어줄 뿐만 아니라 조자겸 왕희지 등 당대최고의 문사들과 교류도 주선해준다. 육우는 단순한 차인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는 것이 (저산기)(오흥도경)등 그의 수많은 노작들을 통해 확인된다. ●유명 차생산지 떠돌며 자료모아 육우(32세)가 제작했다는 차 달이는 풍로(茶爐)도 매우 흥미롭다. 육우는 오랑캐로부터 자신이 사는 성스러운 땅을 지킨 기념으로 세발 달린 풍로를 제작한다. 한발에는 주역의 궤인 호랑이(바람을 상징), 꿩(불을 상징), 물고기(물을 상징)를, 한발에는 당이오랑캐를 무리친 기념글을, 한발에는 세상에서 차를 가장 잘끓이는 육씨(자신)와 곰국을 잘끓였다는 진미공을 새겼다. 세발달린 풍로는 평화와 평정을 상징한다. 물 바람 불은 조화롭게 융화해 차의 ‘진미’(眞味)를 맛보게 한다. 육우는 자연과 삶이 완벽하게 조화된 세상을 표현해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시대의 정치지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로를 통해 육우가 차와 함께 자연과 평화를 사랑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육우가 (다경)초고를 완성한 것은 33세때다. 당시 32개 주(州), 군(郡)을 답사한 후 띠집에 은거하며 (다경)의 초고를 마침내 완성했다. 차에 대한 육우의 명성이 점점 높아가자 그를 음해하려던 세력도 나타났다.(만구지)란 기록은 그것을 잘 나타내준다. “어느날 육우가 월강차를 따다 불에 쬐어 말리고 있었다. 잠깐 일이 생긴 육우는 어린 노비로 하여금 월강차를 지켜보도록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 어린노비는 그만 졸다가 월강차를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이에 화가난 육우는 그 어린 종을 철끈으로 꼬아 묶어 불속에 던져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차의 물질성보다도 차의 정신과 품격을 강조했던 다신이었던 육우의 삶을 의도적으로 폄하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34세때 젊은 어사대부 이계경과의 ‘훼다론’에 관한 일화도 유명하다. 젊은 어사대부였던 이계경이 강남을 순찰하며 명성이 자자하던 육우를 알고 초대했다. 육우는 들옷을 입고 다기를 든 채 초청에 응했다. 초의스님이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몸체이니 진수(眞水:참된 물)가 아니면 그 신기가 나타나지 않고 정제된 차가 아니면 그 몸체를 엿볼 수 없다.”고 말했듯이 차와 물은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다. 육우는 그런 점에서 최고의 물 품평가였다. 그는 그가 거처했던 곳들이나 유람했던 곳들의 물을 품천했다. 광주의 곡렴천을 맛본 후 “천길 바위 틈을 뚫고 솟아 나와 구강에 이르러 배를 띄운다.”며 천하제일천이라 품했고, 황주의 난계수는 천하제삼천이라 품하며 중국산천의 물들의 ‘등급’을 매겼다. 육우는 그런 점에서 물의 ‘달인’이었다. 찻자리에 초청을 받은 육우는 이계경에게 우중수인 양자강물을 부탁했다. 이계경은 육우에게 “육군이 차를 잘 한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바이요. 거기다 양자강의 중류는 물이 빼어나니 오늘 두 오묘함이 천재일우하였습니다.”라고 했다. 육우가 이에 “이 물은 양자강물이 아닙니다.”라고 답하자 얼굴이 붉어진 이계경은 물을 떠온 노비를 불렀다. 노비는 이계경에게 양자강물을 떠오다 그만 미끄러져 3분1정도를 다른 물로 채웠음을 고백했다. 최고의 물품천가였던 육우의 뛰어남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집에 돌아온 육우는 이계경이 찻자리를 모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훼다론)을 지었다. 육우는 48세때 비로소 10년에 걸쳐 정리해왔던 (다경)을 탈고 완성했다. 무려 38년간 섭렵했던 차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낸 것이다.(다경)에 대해 당나라 피일휴는 “주나라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차에 관한 일은 경릉사람 육계자의 말이 상세하다. 그러나 계자 이전에도 명(茗)을 마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뒤죽박죽 섞어 삶아 마셨으니 시래기 삶아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계자가 비로소 경 세권을 지었더니 그 근원과 제조법, 차 만드는 도구와 만드는 법, 차 끓이는 방법과 그릇, 차를 다려서 마심 등이 자세히 분류되었던 것이다. 소갈증을 풀어주고 역기를 제거시킴은 비록 의원이라도 그와 같지는 않을 것이니, 그 이익됨이 사람들에게 어찌 작다고 하리오.”라고 적고 있다. 송나라의 진사도는 “무릇 차에 대한 저술은 육우로부터 비롯되고, 세간에서의 쓰임 또한 육우로부터 비롯되니, 육우야말로 진리로 차에 공이 있는 사람이다. 위로는 궁성으로부터 아래로는 읍리에 이르고 밖으로 융이만적에 이르기 까지 손님 접대하고 제사지낼 때 먼저 앞에 진설하고, 산과 못으로써 저자를 이루고 장사를 하여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 또한 사람에게 공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롭다고 할 것이다.”고 적고 있다. ●‘다경3권´ 1200년 이어온 고전 육우가 현세의 우리에게까지 남긴 (다경 3권)은 그를 다신(茶神)으로 만들었다. 후일 중국에서는 그런 다신을 추모하여 차를 끓여파는 다점에서 도자기로 육우의 상을 만들어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낼 정도였다고 한다. 다신이었던 육우의 위상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다경)을 저술한 육우는 태상시태축이란 관직에 봉해졌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호주의 청당에서 72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육우암정을 파 소주산차를 심어 가꾸고 차를 제다하며 살았다. 전문(全文) 약 7000자(字)로 육우가 편찬한 (다경)(780년쯤) 은 당대(唐代)와 당대이전의 차에 관한 과학적 지식과 실천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중국차 문화의 기초를 확립했다.12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온 (다경)은 단순히 차의 종류나 마시는 방법을 말한 표면적인 책이라기 보다는 ‘차의 정신’을 중요시하고 있다. 육우가 확립한 다학(茶學) 다예(茶藝) 다도(茶道)의 사상과 그것을 정리한 (다경)은 시대를 초월한 차의 명작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다경)은 3권 10장규모로 1장에는 차의 근원,2장에는 차의 연장,3장에는 차 만들기,4장 찻그릇,5장 차 달이기,6장 차 마시기,7장 차의 옛일,8장 차의 산출,9장 차의 생략,10장 차의 그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존하는 (다경)은 4종이 있다. 주(註)가 있는 것으로 이른 것이 남송대 좌규본(左圭本:백천학해본)이고, 주가 없는 것으로는 (백권(百倦)의 설부본)이며, 하나의 증본으로 다기권(茶器卷)을 다구도찬(茶具圖讚)에서 추가한, 명의 (정화은본(鄭火恩本))(선화당본(宣和堂本))이 있다. 넷째는 원문을 가감한 삭절본(削節本)으로 명대(왕기본(王圻本))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다경)은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세계최고의 차 문화를 보유했던 중국 최초의 다서인 (다경)을 수입하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다경)은 고려나 조선의 문집에서 간간이 나타나고 있어서 그런 정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다경)이 우리에게도 전해졌거나 간행되었겠지만 그 흔적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 육우가 (다경)을 저술한 이후에 쓰여진 다서들은 대략 2000여권에 이른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분량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그 어느 저술보다도 1200년전 다신 육우가 저술한 (다경)은 지금까지 차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완벽한 고전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지금 육우가 묻혀 있는 곳은 중국 호주시 묘서향에 있는 저산이다. 그곳에는 중국 항주시인민위원회가 1995년 10월 새롭게 조성한 묘역에 ‘당옹육우지묘’라고 쓰여져 있다. 육우는 우리에게 다도의 길이 무엇인지를 지금까지도 일깨우고 있다. 그같은 육우의 차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바로 9장인 ‘찻일의 생략’이다.“차를 만드는 도구는 만약 봄에 불을 금하는 때 들의 절간이나 동산에서 일손을 모아 찻잎을 따고 쪄내고 절구질하고 불에 말려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송곳 두드리개 꿰뚫개 시렁 숙석통등 일곱가지 다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차 다리는 그릇들을 만약 소나무 사이의 바위위에 놓을 수만 있다면 구열은 쓰지 않아도 된다. 만약 샘물이나 산곡물 근처에서 차를 달이게 된다면 물통 개수통 물거름자루 등은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도시의 왕공(王公)의 집안에서 찻일을 행할 때에는 스물네가지의 찻그릇 가운데서 하나만 빠져도 다도는 무너진다.”고 적고 있다. 차의 일상성과 현장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찻자리를 빼고는 상황과 현장에 맞게 편안한 찻자리를 일상에서 즐기라는 것이다. 이른바 조주선사가 말했던 ‘차나 한잔 마시는’ 일상의 차도를 강조함이다. 육우는 그의 은사였던 지적스님이 열반하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백옥찻잔도 부럽지 않고 황금술독도 탐나지 않는다. 벼슬하여 아침에 조회드는 것도 부럽지 않고, 저녁에 퇴청하여 고대광실에 오르는 것도 부럽지 않다. 천만번 그리운 것은 서강의 물뿐….” 마치 소동파의 ‘귀거래사’를 보는 듯하다. 소동파는 작은 초암을 짓고 몇 평 안되는 작은 땅에 반은 노란황국을 심어 생을 노래했고, 반은 조(당시 중국의 주식)를 심어 삶을 노래했다. 육우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의 작은 초당인 청당별업에 은거하며 샘을 파고, 차나무를 가꾸며 삶과 자연이 조화된 무욕(無慾)의 삶을 살았다. 만물이 자신의 삶을 회향하는 가을이다. 일지암 초당에 앉아 반야차 한잔 기울이니 겨드랑이에 바람이 일고 몸은 가벼워져 저 멀리 하늘을 거니는 듯하다. 일지암 암주
  • [논술이 술술] 도덕경/노자

    도가 사상은 유가와 함께 중국 사상의 커다란 두 흐름으로 동아시아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이 책을 지은 ‘노자’가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노자에 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에 실려 있다. 이름은 이이. 주나라의 장서실에서 관리로 일하다가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은퇴를 결심, 서쪽의 관문을 지날 때 관문의 경비 책임자인 윤희라는 사람의 간절한 요청으로 5000자로 된 도덕에 관한 책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사마천은 노자에 대해 초나라 사람 노래자나 주나라 역사학자 담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이고 있으며, 나이도 160세나 200세라는 소문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대체로 ‘도덕경’을 어느 한 개인의 저작이 아니라, 기원전 350년에서 200년경 사이에 여러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본다. 81개 장으로 구성된 각 장은 대부분 짤막한 운문체 문장으로 돼 있다. 제1장부터 37장까지를 상편,38장부터 81장까지를 하편으로 나눈다.“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상편을 ‘도경’이라고 하며,“최상의 덕은 스스로 덕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 때문에 덕이 있는 것이다.”로 시작하는 하편을 ‘덕경’이라고도 한다. 상편은 도론, 곧 도와 관련된 형이상학적 문제를, 하편은 덕론, 곧 인간 사회의 윤리에 관한 문제를 주로 다룬다. 문장은 시처럼 운율이 있으면서도 내용이 깊어,‘문약의풍’ 곧 “문장이 간결하고 뜻은 깊다.”는 평을 받아왔다. 때문에 도가는 물론 유가와 불교 사상가들도 ‘도덕경’을 탐독하고 연구해 왔으며,1788년 라틴어로 된 번역본이 나온 뒤 영어 번역본만 해도 44종에 이를 정도로 서양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도’와 ‘무위자연’으로 표현된다. 노자의 도는 공자의 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자가 말하는 ‘도’는 인간 생활에서의 도리와 도덕이다. 하지만 노자의 ‘도’는 만물을 생성, 변화, 발전, 소멸시키는 궁극적 형이상학적 실체를 말한다. 그것은 만물의 배후에서 만물을 낳고 기르고 보살펴 주며, 인간의 감각 기능을 초월해 있으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만물을 기르면서 군림하지 않고 대립 속에서 대립을 초월한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은 우리가 흔히 쓰는 ‘자연’과는 다른 뜻이다.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근본 원리인 ‘도’의 상태와 성질을 나타낸다. 곧 ‘저절로 그러하다.’,‘본래 그러하다.’의 뜻이다. 따라서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 일도 작위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일을 스스로 다 해내는 ‘도’의 섭리를 본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위적 분별에서 비롯된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가치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마치 산에서 갓 베어 낸 통나무처럼 순박한 인간 본연의 상태를 회복하고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다. 또한 노자는 ‘무’의 효용을 강조한다. 그릇이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내부에 빈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들지만 그 속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방으로서의 용도를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것이 유익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의 구실 때문이다. 이것은 유는 무에 의지하여 무를 기다려서 비로소 유일 수 있다는 말이다. ‘도덕경’의 내용은 현대 과학문명의 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풍족해졌지만 자기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잃은 채 심각한 존재의 위기를 낳고 있다. 경쟁 속에서 인간 관계는 더욱 적대적으로 바뀌어 가고, 자연과의 대립은 인간 자체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을 낳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인간의 문명과 지혜를 상대화시켜 비판하며 인간 본연의 순박함의 회복을 강조하는 노자의 사상은 현대 문명을 좀더 근원적인 시각에서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또한 인간이 문명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 www.unidream.co.kr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3 -관련 교과:도덕, 국사, 윤리와 사상, 전통 윤리 -함께 읽어볼 고전 및 원전:논어(공자), 장자(장주), 맹자(맹자), 동양철학에세이(김교빈 외), 동양철학은 물질문명의 대안인가(〃) -기출 논제:서울대 2005학년도 논술 예시문제 ■ 생각해보기 -노자가 말하는 ‘도(道)’의 뜻을 정리하고, 유가 사상과 비교해보자. -다음의 말에 대한 생각을 써보자.“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만인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수표교 이전복원 어려울것”

    현재 장충단공원에 있는 수표교를 원위치인 청계천에 옮겨 복원하면 하천이 범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석재 상태도 불량해 복원 과정에서 밑받침돌의 36%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수표교 이전 복원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사실은 서울시가 문화재청의 권고에 따라 2004년 4월 시 유형문화재 18호인 수표교를 원위치에 이전 복원하기로 방침을 정한 뒤 같은해 8월부터 최근까지 실시한 ‘수표교 기본설계 용역’에 따른 것이다. 시 문화재위원회는 이달중 수표교 이전 복원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22일 시에 따르면 수표교를 3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으로 50년·200년 빈도의 최대 폭우 때를 실험한 결과 많은 비가 내리면 수표교가 물 흐름을 방해해 수표교가 완전히 물에 잠기며, 청계천이 넘쳤다.50년 강우빈도에 청계천 수위는 24.28m로 복원되는 수표교 높이(23.56m)를 넘어섰다.200년 강우빈도의 경우에도 청계천 수위는 24.67m로 높아졌다. 수표교의 45개 교각의 두께가 총 6.3m로 복원된 청계천의 폭인 23m의 27%를 차지해 물의 흐름을 막기 때문이다. 이같은 병목현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수표교 주변의 200m구간의 폭을 중구쪽으로는 9m, 종로구쪽으로는 5∼6m 넓혀야 한다. 비용만도 청계천 복원사업 비용의 20%안팎인 800억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설치한 통수(通水)상자도 다시 뜯어내고 새로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문제도 따른다. 옮기는 과정에서 석재 훼손은 불가피하다. 구조적으로 중요한 하부 교각석 45개 가운데 36%인 16개 돌이 심한 풍화에 의해 내구성 문제가 예상되거나 구조적으로 균열이 생기는 ‘불량’ 등급 평가를 받았다.육안으로 보기에 흙으로 덮여 있는 하부 교각석은 1959년 청계천 복개당시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오면서 각각 50㎝ 깊이로 콘크리트에 묻혔다. 이를 콘크리트에서 떼어내는 과정에서 추가 훼손이 발생할 우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마지막 여름 잡으러 숲으로

    마지막 여름 잡으러 숲으로

    숲은 어머니의 품속과 같이 아늑한 휴식을 제공한다. 울창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와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모를 풀들의 춤사위, 벌레들의 노랫소리가 편안하게 한다. 지치고 힘들 때 조용히 숲을 걸어보자. 몸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나무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풀들의 몸짓을 느끼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늦여름, 초가을의 문턱에서 세상 모든 일을잠시 잊고 숲속의 생명들과 호흡한다면 진정한 휴(休)가 되지 않을까.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다섯살배기를 데리고 강원도 인제의 한계령에 있는 장수대숲으로. 이 곳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별장을 지었다는 곳이다. ●호랑이가 있을까 떠나기에 앞서 어린이용 동·식물도감을 펼쳤다.“성주 이리와, 내일 숲에 가면 뭘 만날 수 있을까….”“숲, 숲이 뭐야.”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이건 소나무, 저건 전나무야.” “사마귀, 딱정벌레, 나비, 잠자리…” “그런데 아빠 그럼 사자도 있어요?”아이가 한술 더 뜬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살았다고 하자, 아이는 “난 안가. 무서워. 아빠 혼자갔다와.”라며 벌떡 일어나 가버린다. 호랑이는 동물원에 있지, 숲에는 없다고 설명해줬다. 아이는 “왜 거짓말해. 선생님한테이른다!”며 점잖게 타이르고(?)다짐까지 받고서야 다시 숲 공부를 계속했다. ●생명이 가득한 곳으로 강원도 한계령이 시작하는 곳에 있는 장수대. 서울에서 길이 시원하게 나있다. 홍천까지는 거의 고속도로. 홍천부터 인제까지는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서울에서 3시간이 채 안돼 도착했다. 상쾌한 공기의 향기가 느껴진다.“다람쥐다, 다람쥐!” 사람들을 자주봐서인지 사람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다람쥐는 아이가 손을 뻗을 때까지 가만히 있다 순간 몸을 숨긴다. 다람쥐를 놓친아이의 웃음이 울려퍼진다. 소나무가 볼 만하다.300년이 넘은 소나무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심은 가느다란 소나무가 어우러져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하고 생명력이 넘쳐 보인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장수대숲의 자랑은 가로지르며 흐르는 계곡.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맑아 마셔도 괜찮을 듯싶을 정도다. “아빠 우리도 계곡에 들어가자.”신발을 신은 채 계곡물로 그냥 들어간다. 조심하란 잔소리에 그제서야 아이는 “아빠 난 물이 없는 줄알았어. 물이 잘 안보여.”라고 소리쳤다. 맑고 투명한 계곡에 발을 담근다.“얼음물 같아. 너무 차가워…” 숲에서는 모든 것이신선하고 맑고 깨끗했다. ●숲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한참을 걸었다. 아이가 “아빠 정말 호랑이 없지.”라고 묻는다. 인적도 드물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무서운 생각이 드는가 보다.마침 노부부를 만났다.“여기 오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고 몸도 건강해지거든. 이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 이걸 어디서 느낄 수있겠어.”라고 말하는 김주환(78)씨는 팔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한달가량을 지낸다는 이씨 부부는“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뭔지 아나.”라는 선문답을 남겨 놓고는 내려간다. 그 뒷모습이 20대의 연인들보다 더 아름답고여유가 느껴진다. 이번엔 물장난을 치는 대학생을 만났다. 김명득(20·명지대)군과 친구들은 계곡에서 옷이 흠뻑 젖었지만 그얼굴에서 젊음이 빛난다.“이렇게 나무가 많은 곳은 처음이에요. 몸도 마음도 한결 튼튼해지는 것이 느껴져요.”친구김신(20·경원대)군의 얼굴도 투명하다. 아, 행복하다. ●숲과 같은 아이가 되라 “성주야 너는 이담에 커서 숲과 같은 사람이 돼야해.”아비의 말에 아이는 “에이 아빠는…. 내가 어떻게 숲이 돼요?”라고 이해 못하겠다는 듯 되묻는다. 숲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자기 품안에 들어온 모든 것들이 함께 살아 갈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 있다. 저 구석에 힘없이 피어있는 꽃부터 여기저기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벌레들까지 자기 역할에 충실하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않도록 조절해주는 것이 숲 아닌가.“성주야, 너도 숲처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란 뜻이야.”아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끄덕인다. 아쉬웠다.4시간 정도 머무르고 떠나는 것이. 잠깐이나마 좋은 공기, 깨끗한 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몸도 마음도가벼워졌다. ●장수대숲은 장수대숲은 해발 450∼1000m지역에위치하고 있으며 한계산성, 한계사지 등 문화재와 대승폭포,12선녀탕, 한계령 등 관광지가 주변에 널려 있다. 또한 한계령에서내려오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크고 작은 계곡들이 많고 300년생 안팎의 소나무와 신갈나무, 박달나무 등이 울창하다. 입구에는이승만대통령이 별장으로 썼다는 기와집이 아직 남아 있다. 여름철에는 민박도 할 수 있다. ■ 늦여름이 놓지못하는 숲 Best 6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지인 우리나라는 그만큼 가볼 만한 아름다운 숲이 많다. 생명의숲운동본부에서 추천한 가볼 만한 숲을 소개한다. (1) 관방제림 전남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동자정마을을 중심으로 형성된 숲으로 200년 이상된 노거수림이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다. 수해와 토사방지를 위해 조성된 이 풍치림은 1628년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제방 아래로 흐르는 관방천을 중심으로 약 2㎞에 이른다. 천연의 자연이 아니라 수해를 막기 위해 조성된 이 인위적인 수림에서는200년 이상된 팽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음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숲이너무 울창하고 아름다워 천연기념물(제366호)로 지정됐다. 담양군청 문화관광과(061-380-3140). (2) 돈내코숲 제주도 서귀포시 상효동일대에 있는 숲으로 계곡이 깊고 아름답다. 돈내코 계곡은 한라산 1300m 이상의 고지에서 시작되며 양쪽계곡에는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을 포함한 1800여 종의 난대식물들이 아름다운 숲을이루고 있다. 또한 다양한 동물과 곤충류가 서식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지대에는 천연기념물 제432호인 한란 자생지가 있다. 이곳은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항상 흐르는 곳으로 음력 7월 보름백중날에 물을 맞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 하여 ‘물맞이’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서귀포시 환경녹지과(064-735-3421). (3) 소광리 소나무숲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에 형성된 숲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향토수종이라고 불리는 금강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일반 소나무보다 생장이 빠르고 나무줄기가 곧은 것이 특징인데 유독 소광리에서 잘 자라는 이유는 오지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보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4) 장성편백림 전남 장성군 서삼면에 위치한 숲으로 임종국씨가 1956년부터 44년 동안 90만평에 나무를 심어 친자식처럼 정성껏 관리한 조림지로유명하다. 삼나무와 편백 등 상록수림대의 특유한 향과 신선한 분위기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잘 가꾸어진수림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숲 사이에 난 임도를 통해 갈 수 있는 모암산촌마을에는 산림휴양관 통나무집과 생태산림욕장이조성되어 있다. 영화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 촬영지인 영화민속촌 금곡마을의 특이한 경관도 즐길 수 있어 가족나들이를하기에 제격이다. (5) 청령포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숲으로 조선 제6대왕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 뒤편은 병풍을 두른 듯 절벽이 솟아있고 주위는 강으로 둘러싸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있어 배를 타야만 접근할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 청령포는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특히 천연기념물 제349호인 관음송은 수령600여년, 높이 3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다. 청령포에 유배되었던 단종이 걸터앉아 말벗을 삼았다고 해서관음송이라 불린다. 또한 청령포에는 단종이 유배당시에 세운 금표비와 1726년(영조 2년)에 세운 단묘유적비, 단종이 한양에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직접 쌓았다는 망향탑이 문화 유적으로 남아있다. 영월군청 산림환경과(033-370-2422). (6) 상림숲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숲으로 천연 기념물 제154호. 면적이 20만 5000여㎡ 로 길이가 1.6㎞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인공림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숲은 120여종 2000여 그루의낙엽활엽수림으로 조성되어 있고, 옆으로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이 흐른다. 이곳에는 이온리 석불(유형문화재 제32호)과함화루(유형문화재 제258호) 및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문화재 자료 제 75호), 척화비(문화재 자료 제264호), 초선정 등정자와 만세기념비, 독립 투사들의 기념비 등 문화재들이 많다. 숲속에는 3000여평의 잔디밭과 야외 공연장인 다별당이 있다.
  • [지금 부산에선] 韓流 원조 ‘조선통신사’ 200년만의 행차

    [지금 부산에선] 韓流 원조 ‘조선통신사’ 200년만의 행차

    17∼18세기 200여년간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 첨병역할을 한 조선통신사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화려하게 부활한다. 특히 광복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한국인 남편을 따라 관부연락선을 타고 한국으로 온 일본인 처들의 모임인 부용회 회원들이 행사에 동참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통신사 학회의 출범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조선통신사’는 생소한 단어로 느껴졌다. 조선통신사에 대해 연구를 해오던 학자와 대학교수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단지 조선시대 일본에 문물을 전파했다는 단편적인 내용만 알고 있었을 뿐 정확히 조선통신사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 등 학계 및 관계 전문가 19명이 지난 2002년 3월 조선통신사 행렬재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위원회는 이후 매년 일본과 국내 도시들을 순방하며 17세기 조선통신사 활동과 한국 전통공연 등을 소개해 왔다. 이후 행렬재현위원회는 조선통신사문화사업추진위원회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지난 3월 문화관광부로부터 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올해는 문화부와 부산시로부터 각각 5억원씩 1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행사 규모가 확대되고, 재현행렬 행사를 갖고 학술행사도 개최한다. 특히 지난달에는 조선통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조선통신사학회가 창립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 학회는 그동안 사단법인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통신사의 복원작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교류의 폭을 넓히는 활동을 하게 된다. 강 위원장은 “최근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일 관계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양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학회는 의견을 같이하는 지식인들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행사 올해는 한·일국교 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하는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지난 5월부터 오는 10월까지 부산 , 의성, 밀양, 서울과 일본의 쓰시마(對馬島), 시모노세키(下關) 등지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라는 문화기행 행사는 지난 4일부터 국내와 일본 현지 등에서 8일까지 개최됐다.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조선시대 200여년간 한·일 문화 교류의 첨병 역할을 했던 당시 조선통신사의 주요 행렬을 예술기행단이 답사하게 된다. 예술기행단은 조선통신사학회 소속 학자와 시인, 수필가, 극작가, 사진작가, 미술가, 국악인 등 예술가와 대학생, 일본의 언론인 및 미술가 등이 참여한다. 이들은 국내와 일본 등지의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를 탐방해 사진촬영, 문예작품 창작, 현장 학술토론 등을 벌이게 되며 기행을 마친 뒤 기행문과 그림, 사진 등을 모아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특히 오는 19∼22일에 열리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가는 뱃길’ 행사와 9월8∼11일에 열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오는 뱃길’ 행사인 ‘교류의 뱃길 100년’ 이벤트는 행사의 백미로 꼽힌다. 이 행사는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의 뱃길이 열린 100주년을 짚어보는 이벤트로 가는 뱃길에는 일본인 부인들인 부용회 소속 할머니들이 동행한다. 오는 뱃길에는 시모노세키 민단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20∼21일 양일간 시모노세키 일원에서 열리는 ‘바칸마쓰리’ 행사에는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과 조선통신사 복식 패션쇼 등이 열린다. 이에 앞서 8∼9일에는 일본 쓰시마에서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마쓰리’와 한·일 공연단의 예술공연이 이어져 현지인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에는 1711년 조선통신사 정사였던 조태억의 9대 후손 조동호씨가 정사를 맡아 더욱 눈길을 끌었다. 조선통신사학회는 오는 9월6일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마련, 조선통신사 연구자인 일본 교토예술단기대학 나카오 히로시 명예교수 등 국내외 학자들을 초청해 강연과 통신사와 문학, 회화, 음악 등에 대해 폭넓은 내용을 살펴볼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