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0년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93
  • 삼성전자, 51나노 16기가 낸드플래시 세계 첫 양산 돌입

    삼성전자, 51나노 16기가 낸드플래시 세계 첫 양산 돌입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51나노(머리카락 두께의 2000분의1) 공정을 적용한 세계 최대 용량의 16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 양산에 들어갔다. ●8개월만에 용량·성능 두 배 높여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전원이 공급되지 않아도 저장된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반도체이다. 주로 휴대전화,MP3플레이어,PMP 등 모바일 기기에 많이 사용된다. 삼성전자는 29일 “지난해 8월 60나노급 공정을 적용한 8Gb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한 데 이어 8개월만에 용량과 성능을 두 배로 높인 16Gb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 2005년 9월에 처음 개발한 제품이다. ●2010년까지 누적 시장 규모 210억 달러 이 제품은 55∼57나노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다른 업체들의 50나노급 제품과 월등한 성능 차이를 보여 시장 반응이 주목된다. 특히 이 제품이 양산됨으로써 황창규 반도체부문 총괄사장이 밝힌 반도체의 집적도가 해마다 2배씩 높아진다는 ‘메모리 신성장론’이 또 한번 증명됐다. 반도체 업계는 50나노급 16Gb 제품은 내년에 시장 주력 제품으로 떠올라 2010년까지 누적 시장 규모가 210억달러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낸드플래시 개발과 양산 두 분야 모두에서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음을 다시 증명하게 됐다.”며 “51나노 기술을 적용한 낸드플래시는 기존 60나노급 제품에 비해 60% 정도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51나노 16Gb 낸드플래시는 기존의 멀티레벨셀(MLC·한 셀에 2개의 데이터 저장) 낸드플래시의 약점을 보완했다는 특장점도 갖고 있다. 그동안 MLC는 고용량 구현은 가능했지만 읽기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 삼성전자는 “51나노 16Gb 제품은 4킬로바이트(KB)를 기본 단위로 데이터를 처리,60나노급 낸드 플래시에 비해 읽기·쓰기 속도가 2배 정도 빠르다.”고 설명했다. ●칩 1개에 164억개 트랜지스터 집적 51나노 16Gb 낸드플래시는 손톱만한 칩안에 164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것이다. 16Gb 16개를 합친 32기가바이트(GB) 메모리카드로 만들면 DVD급 영화 20편(약 32시간) 또는 MP3파일 8000곡이나 일간지 200년치 분량 저장이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신제품 출시와 동시에 이를 지원하는 최적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예정이다.”면서 “51나노 16Gb MLC 낸드플래시는 출하와 동시에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장자제…눈물나게 아름답다

    장자제…눈물나게 아름답다

    사람이 태어나 장자제(張家界)에 가보지 않았다면 백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人生不到張家界 白歲豈能稱老翁) 중국인들 사이에 이렇게 표현할 만큼 누구나 장자제를 동경한다. 중국 후난성(湖南省) 서북부에 위치한 장자제의 공식 명칭은 ‘무릉원’이다.무릉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등장한다.대략 이렇다.동진(東晋)의 태원(太元·376~396)때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도화림(桃花林) 속에서 길을 잃었다.어부는 배에서 내려 산 속의 동굴을 따라 들어갔는데.마침내 어떤 평화경(平和境)에 이르렀다.그곳은 논밭과 연못이 모두 아름답고.닭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한가로우며?남녀가 모두 외계인과 같은 옷을 입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그들은 진(秦)나라의 전란을 피하여 그곳까지 온 사람들이었다.수백 년 동안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산다고 했다.어부는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면서 그곳의 이야기를 절대 입 밖에 내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하지만 어부는 이 당부를 어기고 돌아오는 도중에 표시를 해 두었으나 다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전설이 이러하니 장자제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수려한 산세와 청량한 계곡.그리고 기이한 동굴이 빚어내는 원시의 자연이 영락없이 무릉도원이다.구름에 반쯤 잠긴 기묘한 형상의 수많은 봉우리들.억만년의 침수와 자연붕괴를 견뎌낸 기암괴석과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걸려 있는 수려한 산세를 보고 있노라면 세월마저 멈춘 듯하다. 태고의 전설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장자제야 말로 꿈 속에서 그리던 말 그대로의 ‘무릉도원’이 아닐까 싶다.아울러 인간의 넋을 송두리째 빼앗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미혼대(迷魂臺)에서 내려다보는 위안자제(袁家界)의 풍경은 그 어떤 첨단 장비와 기술로도 감지할 수 없는 선경(仙境)이다. 400~500m 높이의 송곳처럼 솟아 있는 석봉들을 보며 걷다가 잠시 발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낭떠러지.정신을 잃을 듯한 아찔함에 스릴마저 느껴진다.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을 터?지난주 무릉도원을 다녀왔다. 글 사진 장자제 김경희특파원 saranghe@seoul.co.kr ■ 장자제 가볼만한 곳 ●넋을 빼앗는 미혼대 협곡에서 솟은 바위 봉우리가 인간의 넋을 빼앗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미혼대에서 내려다보는 위안자제의 절경은 한 폭의 산수화 같다. 높이 500m에 달하는 뾰족바위 수백 개가 버티고 있는 형상이 마치 하늘에서 맨해튼의 고층빌딩을 보는 것 과 같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걸려 있고, 봉우리 아래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이 병풍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무릉원의 하이라이트는 해발 2084m의 천자산(天子山). 무려 350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1997년 길이 2㎞의 케이블카가 설치 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붓을 거꾸로 꽂은 어필봉 천자산 정상에서 버스로 5분쯤 이동하면 하룡공원이 나온다. 이곳에서 만나는 어필봉은 바위 봉우리에서 자란 소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놓은 형상이다. 전쟁에서 진 황제가 천자산을 향해 쓰던 붓을 내던졌다고 해서 ‘어필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 ‘천대서해’는 황제를 호위하는 천군마마의 기세로 솟은 봉우리가 운무에 휩싸여 마치 바다를 이룬다. ●토가족 소녀와 보봉호수 11㎞ 길이의 황룡동굴과 ‘보봉호수’도 여행의 필수 코스. 동굴 안에서 보트를 타고 유람할 정도로 웅장한 황룡동굴엔 미사일 모양의 석순에 울긋불긋한 조명까지 더해져 환상의 극치를 이룬다. 산정호수인 보봉호는 기이한 봉우리 들에 둘러싸인 반 인공 호수로, 배를 타고 호수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배에서 토가족 소녀가 나와 손을 흔들며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다. ●천문산 천문산은 장자제 내의 최고봉(1528m)이다. 아흔아홉 굽이를 돌아 통천대로를 지나면 봉우리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 모양새가 독특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터널의 이름은 천문동(天門洞)으로 지난 1999년 세계 곡예비행 대회가 이곳에서 열리면서 유명해졌다. ●황석채 장자제에서 제일 큰 관람대. 해발 1300m로 주위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황석채에 오르지 않으면 장자제에 오지 않은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한나라 대신 장량이 이 곳에서 도를 닦는 중 조난당했을 때 그의 스승인 황석공이 구해줬다고 해서 ‘황석채’로 불린다. ●백장협, 용왕동 높이가 백장이라고 해서 이름 지어진 백장협은 삭계욕 동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가욕, 왕가욕 등과 함께 3개의 협곡으로 구성됐다. 전설에 의하면 토가족 농민봉기 수령향대군이 백장협에서 관군들과 백번이나 싸웠다고 한다. 용왕동은 장자제시 무릉원관광구 동쪽 17㎞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석회암 카르스트동굴로서 중국에서 가장 크고 원시적인 동굴 중 하나. 관광에만 약 2시간정도 걸린다. # 장자제는 어떤 곳 ‘장씨의 마을’이라는 뜻의 장자제(張家界)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BC200년 경이었다. 당시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장량’이 토사구팽을 눈치채고 도망쳐서 정착한 곳, 바로 소수 민족인 토가족(土家族)이 살던 장자제다. 장량은 유방의 군사를 피해 황석채의 바위봉우리에서 무려 49일을 버텼다고 전한다. 외부와 격리된 채 살고 있던 토가족의 터전인 장자제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때는 2200년이 흐른, 지금부터 20여년 전이다. 이 지역 출신의 화가가 장자제의 산수를 담은 그림을 발표하면서 장자제는 중국 정부에 의해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82년에 중국 최초의 국가삼림공원(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장자제는 1992년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되면서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로 부상했다. # 여행정보 장자제는 4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계곡이 널리 분포돼 있다. 고산분지 기후로서 연평균기온이 섭씨 12.8도 이며, 겨울에 혹한이 없고 여름에 무더위가 없어 4계절 관광하기에 좋다. 장자제를 꼼꼼하게 둘러보려면 최소한 4∼5일은 걸리지만 명승지를 중심으로 돌아본다면 이틀이면 충분하다. 인천공항-샤먼(廈門)-(국내선 비행기)-장자제, 인천공항-창사-(버스)-장자제로 가는 방법 등이 있다. 최근 격린여행사(www.greentravel.com)에서 샤먼을 거쳐 장자제를 찾는 여행 상품을 출시했다.02)778-9338 # 여행팁, 가는 길에 골프를 치려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샤먼에 내리면 4개의 골프장을 접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동방골프장이 가장 유명하다. 세계 100대 명문골프클럽에 선정됐다.1994년 4월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아시아프로골프대회를 개최한 곳이다. 바다를 끼고 있으며 샤먼시내가 멀리 보인다. 샤먼공항에서 20여분 정도 거리. 보통 300년 이상된 고목들이 즐비한 환경 친화적인 골프장이다. 난이도는 중급정도.18홀 가운데 11개 홀이 해안가에 위치해 바다와 푸른 잔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 ‘토박이를 찾습니다’

    ‘토박이를 찾습니다.’ 중구는 23일 ‘중구 토박이’를 찾는다고 밝혔다. 현재 중구 토박이는 모두 98명.2002년 이전에 49명,2002년 16명,2003년 6명,2004년 5명,2005년 14명,2006년 8명이 새롭게 등재됐다. 이들은 1999년 6월 중구 토박이회를 결성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70대 후반이다. 토박이회 가운데 최장 토박이는 최동원 황학동 새마을금고 이사장의 가문이다. 조상 대대로 중구 황학동에 거주한 지 200년이 지났다고 한다. 김성완 토박이회 회장은 “2개월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중구 문화에 대한 발굴과 토박이로서 친목을 도모하고, 문화재 탐방, 한문 교실 등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신청할 토박이 대상은 1947년 10월1일 이전부터 중구에서 60년 이상 거주자 중 실제로 중구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이다. 신청 기간은 23일부터 6월22일까지 2개월간이다. 신고서에 성명, 주소, 거주 기간, 집안의 자랑거리 등을 기재해 자치행정과나 각 동사무소로 신청하면 된다. 중구 홈페이지(www.junggu.seoul.kr)를 통해서도 신청할 수 있다. 접수된 토박이 신청자들은 구청 담당 직원들의 직접 면담과 관련 조사 등을 통해 확정된다.10월 구민의 날 행사 때 토박이패를 증정할 계획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북리뷰] 비잔티움 1200년史 한눈에 ‘로마인’ 아쉽다면 읽을만

    ‘비잔티움 연대기’는 1부 ‘창건과 혼란’,2부 ‘번영과 절정’,3부 ‘쇠퇴와 멸망’으로 구성된 3부작 1285쪽(번역본은 2196쪽)의 방대한 저작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비잔티움사 연구의 권위자인 존 줄리어스 노리치가 비잔티움에 매료된 지 25년 만에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역작이다. 이 작품은 종간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의 후속작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감을 느끼는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흥미진진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책이 될 것이다. 읽기 편한 구어체 문장과 전쟁과 음모, 군주들의 야망과 힘겨루기 등 정치사의 짜임새 있는 주제 구성을 보면 노련한 외교관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1200년 가까이 지속된 비잔티움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비잔티움 역사의 실타래를 우리들에게 사랑스러운 연인의 숨결처럼 전해주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1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 이후 19세기를 거쳐 20세기까지 지속된 비잔티움에 대한 혹독한 평가가 20세기 전반까지 계속돼 많은 사람들에게 모호한 인식을 심어준 만큼, 이런 잘못된 평가를 바로잡기 위한 의도에서 쓰여졌다. 이 책은 프랑스 학자 폴 르메를이 지적한 계몽주의 시대부터 시작된 조잡한 해석에 기초한 경멸적인 평가로부터 비잔티움을 구출한 책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비잔티움 세계를 전부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책은 1980년 이전까지 대부분의 비잔티움 역사가들이 그들의 저서에서 다뤘던 정치, 군사, 신학적 논쟁, 인물의 개성과 특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경제, 사회, 사생활, 여성, 문화와 예술, 고고학 등의 내용이 빈약한 것이 흠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20년 이상 비잔티움사를 연구한 서평자로서 단언하건대 지금까지 출판된 책 가운데 이처럼 치밀한 구성을 가진 책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비잔티움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은 분명 전문 학술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 책을 대충 엮여진 책으로 인식한다면 저자를 모욕하는 것이다. 역사가가 아니라 외교관인 저자는 그리스어 실력이 모자라 그리스 문헌들 중 번역되거나 요약된 2차 문헌에 주로 의존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저자가 “비전문가인 독자들에게 최대한 정확한 역사를 최대한 흥미롭게 제시하는 것이 바로 나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만큼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믿음을 가질 권리를 부여하노라.”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설득한다 해도 우리는 따르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이곳을 파괴했고 시간은 도시의 이름을 파괴했다.” 등의 수많은 명대사들이 나온다. 과거의 죽은 말이 아니라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살아있는 말들이다. 저자가 우리들에게 주려는 교훈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김차규 명지대 사학과 교수
  • [20&30] 간밤의 알코올 잡는 우리의 속풀이법

    [20&30] 간밤의 알코올 잡는 우리의 속풀이법

    술 먹은 다음 날 찾아오는 숙취와 속쓰림은 ‘애주가’들의 영원한 숙제(?)다. 머리는 터질 듯 지끈거리고 속은 부글부글 끓어 화장실에 들락거리다 보면 제대로 앉아 있기 조차 힘들다. 그러나 한방에 이런 고통을 날려버릴 수 있는 ‘마법의 약’ 따위는 없다. 숙취해소 음료 시장이 연간 6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지만 절대강자 없이 새로운 제품들이 명멸을 거듭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꿀물이나 북어국, 콩나물국, 해장국 같은 검증된 속풀이 방법 외에도 ‘20&30’들이 갖가지 시행착오 끝에 체득한 자기만의 노하우를 알아봤다. 5년차 직장인 성모(28·여)씨의 해장 파트너는 초코 도넛과 핫초코다. 대학에 다닐 때는 설렁탕으로 쓰린 속을 달랬지만 언젠가부터 설렁탕에 대한 내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느끼함으로 쓰린 속 달랜다 도넛 마니아인 성씨는 지난해 여름 술을 마신 다음 날 D사 체인점 앞을 지나다가 초코 도넛에 시선이 꽂혔다. 성씨는 “초코 도넛을 한 입 베어물면 울렁거림이 싹 사라져요. 거기에 핫초코를 곁들이면 입안에 향긋한 기운이 남아 해장에는 짱이에요.”라고 말했다. 성씨는 “초콜릿 특유의 기분 좋아지게 하는 느낌이 술 마신 다음 날 찾아오는 후회와 두통까지 날려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회사원 김모(28)씨는 술 먹은 다음 날 중국집을 애용한다. 다만 동료들이 짬뽕이나 짬뽕밥, 기스면 등을 시킬 때 김씨는 자장면을 고집한다. “원래 맵고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해장국 종류는 거의 안 먹는 편이죠. 자장면으로 위와 장을 훑어 주는 게 최고예요. 기름기가 나쁜 성분들을 함께 씻어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든든해져서 좋습니다.” 김씨가 자장면을 해장 친구로 맞이한 것은 대학 1학년 때부터다. 전날 술을 마시고 해장을 못해서 속이 쓰라렸는데 마침 좋아하는 여자 선배가 점심을 사준다며 따라오라 했다. 선배가 쏜다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어 중국집에 갔는데 의외의 효과를 봤다고 한다. 회사원 장지수(30)씨도 ‘느끼한 음식으로 쓰린 속을 다스린다.’는 주의다. 피자나 치킨 버거·치즈 버거 등에 마요네즈를 듬뿍 뿌려서 먹는다. 기름기로 위를 덮어준다는 생각으로 먹는데 생각처럼 느끼하지도 않고 속이 편안해지며 머리도 맑아진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장씨는 “한번 이렇게 해장을 시작했더니 다른 음식은 입에 못 대겠더라고요. 평소 치즈 종류를 좋아하는 편인데 술 마신 다음 날 속이 허할 때는 정말 특효약입니다.”라고 말했다. 은행원 최영준(30)씨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해장 비법이 있다. 아버지가 형과 영준씨에게 전수해준 비법은 ‘냉면 해장’이다. 단골인 S면옥에 가서 먼저 뜨끈한 육수를 두 컵 정도 ‘후후∼’ 불어마시면 땀이 주루룩 흐른다. 충분히 땀이 빠졌다고 생각되면 머릿속까지 얼얼해지는 물냉면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한다. 쓰라림이 사라질 뿐 아니라 뱃속까지 든든해지는 1석2조의 효과다.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는 현모(36)씨는 두 단계에 걸쳐 아픈 속을 달랜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동네 설렁탕 집에 가서 뱃속을 채우고 들어간다. 따뜻하고 기름기 있는 걸죽한 국물로 쓰라린 위벽을 덮어주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현씨는 다음 날 눈을 뜨면 냉장고로 달려간다.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딸기우유다. 목구멍을 ‘열고(?)’ 딸기우유를 부으면 밤새 괴롭혔던 갈증이 사라지고 속도 편안해진다. 전날 음주량에 따라 딸기우유를 한 꺼번에 두 개 이상 마시기도 한다. ●검증된 전통 방법으로 해장한다. 오랜 세월을 통해 검증된 전통적 해장법들도 일부 20&30들 사이에서 여전히 지지를 얻고 있다. ‘주류(酒流)’에 뛰어든지 15년째라는 회사원 강모(34)씨는 북어국 신봉자다. 강씨는 “대학 다닐 때 술을 먹고 들어온 다음 날이면 어머니가 항상 북어국을 끓여주셨다. 북어에서 우러나오는 깊고 개운한 국물맛은 어떤 영약보다도 효과가 만점”이라고 말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 아침을 못 먹고 나오는 일이 잦아졌지만 회사 근처에서 찾아낸 허름한 북어국 전문점에서 아쉬운 대로 해결하고 있다고 강씨는 귀띔했다. 회사원 오승엽(30)씨는 오로지 콩나물 해장국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단, 콩나물 건더기는 거의 안 먹고 오로지 국물만 훌훌 마신다.2003년 입사한 뒤 회사 근처에서 딱 입맛에 맞는 콩나물 해장국을 만난 것은 오씨에게 행운이었다. 오씨는 “콩나물 국물을 들이켜면 땀이 쭉 나면서 몸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죠. 먹을 땐 땀이 비오듯 쏟아지지만 먹고 나면 깔끔하게 숙취가 가신답니다.”라고 밝혔다. 로펌에 다니는 윤모(31)씨는 복지리(맑은 복국) 애호가다. 술 마신 뒤 유난히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윤씨는 생수나 이온음료 병을 들고 다니면서 오전 내내 목을 축인다. 갈증이 어느 정도 풀린 뒤 점심시간에 찾는 곳은 회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복지리 전문점이다. 가격이 다소 부담되지만 아프고 헐벗은 속을 달래는 데는 복지리만한 것이 없다는 게 윤씨의 투철한 믿음이다. 복지리에 나오는 미나리와 콩나물을 조금 먹다보면 어느새 말간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윤씨는 “국물을 덜어서 후루룩 마시면 언제 술을 마셨냐는 듯 뱃속이 편안해져요. 국물을 충분히 마신 다음에 복 몇 점과 촉촉하게 끓인 죽으로 허기진 뱃속을 달래면 술 몇잔쯤은 다시 마셔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죠.”라고 말했다. 물론 해장술은 몇 배의 고통이 돌아오는 ‘쥐약(?)’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가급적 피한다고 윤씨는 귀띔했다. 은행원 김모(31)씨는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 앞 사우나에 들렀다 출근을 한다. 주위에선 ‘술 먹고 사우나 갔다가 큰 일 난다.’며 말리지만 김씨에게는 이만한 숙취 해소법이 없다. 사우나에 들어가서 10분 정도 지나면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20분 정도면 온 몸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데 이 정도면 몸 속의 알코올 기운은 이미 다 빠져나간 뒤다. 사우나에서 나오자 마자 물을 잔뜩 마시면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김씨는 “몸속에 쌓인 알코올을 싹 빼내고 물을 마시면 마치 새로운 피가 도는 느낌이에요. 땀을 빼준 뒤 수면실에서 10∼15분 정도만 졸아도 머리가 맑아지죠.”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밖에 숙취해소용 드링크나 약국에서 판매하는 각종 앰플도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다. 대학원생 김모씨는 “숙취해소 드링크 A와 약국에서 파는 앰플을 함께 먹으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끝내주는 해장국도 이것만한 효과는 없어요.”라고 강조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나라마다 다양한 해장법 주당들에게 속 푸는 노하우는 술을 잘 마시는 방법만큼이나 ‘절대적 지식’이다. 각국 술꾼들이 개발, 전수해 온 해장법은 오랜 숙취의 고통을 이겨내고 탄생시킨 ‘땀의 결실’인 셈이다. 개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뜨거운 국물’이 굳건하게 왕좌를 지키고 있는 한국의 해장문화와는 달리 해외의 해장법은 각양각색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술 마신 뒤 뜨거운 고깃국을 먹고 뜨거운 물에 샤워한 뒤 30분 이상 잔다. 양배추와 오이즙에 소금을 넣어 만든 ‘라솔’이란 음료도 즐겨 마신다. 라솔은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로 러시아인들이 대취하는 5월9일 저녁 특히 사랑받는다. ‘해장술로 해장’하는 고수들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영국은 술을 마신 다음날 ‘개털(Hair of the Dog)’을 마신다. 개털이란 어젯밤 술 마신 바로 그 술집에 가서 마시는 해장술을 일컫는데, 개에 물린 상처에 자신을 문 개의 털을 뽑아 덧대면 상처가 낫는다는 속설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인들은 감과 매실을 절인 우메보시를 즐겨 먹고, 중국인들은 ‘싱주링’이란 전통차를 마신다. 싱주링은 인삼, 귤껍질, 칡뿌리 등의 천연재료를 넣어 달인 차로 기원전 200년부터 중국인들이 숙취 해소를 위해 즐겨 마셨다. 느끼한 음식의 왕국인 태국에선 해장음식도 느끼할 듯하다. 기름에 튀긴 삶은 달걀에 매콤한 소스를 듬뿍 얹은 ‘까이 룩 꿰이’라는 음식이 전통적인 해장 음식이다. 아주 특이한 해장법도 있다. 몽골인들은 삭힌 양의 눈알을 토마토 주스에 넣어 마시고, 푸에르토리코인들은 겨드랑이 밑에 레몬즙을 발라 쓰린 속을 달랜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요하문명은 韓·中·蒙 공동의 뿌리”

    “요하문명은 韓·中·蒙 공동의 뿌리”

    “요하(遼河)문명은 결코 중국만의 문명이 아닙니다. 요하문명을 동북아 공동의 시원(始原)문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요하문명론’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요하문명을 ‘흐름과 교류’의 역사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항공대 교양학부 우실하 교수는 16일 “우리가 동북공정만을 경계하는 사이에 중국은 요하문명론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면서 “자칫 우리 상고사 전체가 중국의 방계역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우 교수에 따르면 요하문명론은 중국이 만주의 서쪽인 요하일대의 고대문명을 중국문명의 시발점으로 삼아, 이 지역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민족과 역사를 중화민족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논리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지역에서 기원한 예·맥족은 물론 단군, 주몽 등 한국사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황제의 후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大)중화주의’ 완결판 그렇다면 중국은 왜 요하문명론에 집착하는 것일까. 중국은 신화와 전설의 시대인 하(夏), 상(商), 주(周)시대를 역사에 편입하는 작업(하상주단대공정)을 필두로,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 동북공정 등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을 진행해 왔다. 이미 1950년대부터 정립하기 시작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이론적 배경을 갖추기 위한 작업이다. “현재의 중국영토 위에 있는 모든 민족과 역사는 통일적 다민족인 중화민족과 중국사에 속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작업은 21세기 ‘대(大)중화주의’ 건설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국가적 전략이었다. 우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는 요하지역으로 중국문명의 기원을 옮기는 것이 요하문명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실제 요하지역에서는 지금껏 지구상에 있었던 그 어떤 문명보다도 앞선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요하일대에서 대량으로 발굴되고 있는 신석기시대 유적은 소하서문화(기원전 7000∼6500년), 흥륭와문화(기원전 6200∼5200년), 사해문화(기원전 5600년), 조보구문화(기원전 5000∼4400년), 홍산문화(기원전 4500∼3000년) 등이다. 이는 애당초 중국이 문명의 시초라고 떠들었던 황하유역의 앙소문화(기원전 4500년∼ )나 장강 하류의 하모도문화(기원전 5000년∼ )보다도 훨씬 앞서는 것이다. 더욱이 홍산문화 후반부로 보이는 우하량 유적(기원전 3500년∼ )에서는 ‘초기국가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대량 발굴돼 충격을 던져줬다. 이들 지역은 종래 중국에서는 ‘오랑캐’ 땅으로 알려진 데다 발굴되는 유물들이 중국문명의 본거지로 알려진 중원과는 사뭇 다르고, 오히려 내몽골이나 만주·한반도와 유사하다. 중국이 서둘러 문명의 기원을 황하에서 요하로 옮기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흐름과 교류’의 역사 우 교수는 “동북아 고대사는 수많은 민족과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이동하는 ‘흐름과 교류’의 역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중국이나 우리나 ‘닫힌 민족주의’를 벗고, 요하문명을 끊임없는 흐름과 교류의 역사로 바라봐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또 “요하문명은 세계사를 다시 쓰는 계기를 마련할 정도로 엄청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요하문명을 어느 한 국가의 고유한 문명이 아닌 동북아 공동의 시원문명으로 삼을 때 ‘동방 르네상스’가 빛을 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 교수는 신간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소나무 펴냄)에서 한·중·일·몽골 등 동북아 각국의 연구진들이 이같은 요하문명을 공동으로 연구해 21세기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근원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효창공원 야생화 품은 습지생태공원으로

    효창공원 야생화 품은 습지생태공원으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거대한 습지가 탄생한다. 바위 밑에서 샘이 솟아 생명이 움트더니, 용산구가 지난해 말 연못 19개를 조성하면서 습지 3000㎡(약 907평)가 생겨났다. ●연못 19개 만들어 효창공원은 원래 사적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등 애국지사들의 묘역이 있다. 게다가 조선조 제22대 정조의 큰아들로 5세 때 죽은 문효세자의 무덤(효창원)도 이곳에 있었다. 일제가 1945년 3월 무덤을 서삼릉(고양시)으로 강제로 옮기고 공원을 조성해 ‘비운의 사적지’로도 불린다. 문효세자 무덤을 이곳에 조성한 이유는 맑은 물이 솟아났기 때문이다. 문효세자묘소도감의궤에 따르면 숲이 울창하고, 강물 같은 물이 솟아 연못을 채우고 한강으로 흘러갔다고 전해진다. 200년이 흐른 지금도 물은 바위 틈에서 쏟아진다. 생명의 씨앗이 흘러넘치자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고, 나무와 풀, 꽃, 곤충이 어우러져 작은 습지가 형성됐다. 습지는 수많은 생물의 보금자리여서 개구리, 두꺼비, 잠자리, 소금쟁이, 여치, 거위벌레, 벼메뚜기, 사마귀, 실베짱이 등이 더불어 산다. 용산구는 지난해 11∼12월 3억원을 들여 습지를 넓혔다. 비탈진 공터에 생태연못 19개를 조성, 수생식물 18종 6390본을 심고 달팽이와 우렁이, 두꺼비, 다람쥐 등을 풀어 놓았다. 자연수가 넘쳐 연못을 가득 채웠다. 날이 따뜻해지면 경남 창녕군 우포늪에서 작은 생명체를 얻어올 계획이다. 김문철 공원녹지과장은 “도심에 습지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감격했다.”면서 “많은 시민들이 생명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름드리나무, 야생화 가득 26일 봄맞이 준비가 한창인 효창공원을 찾았다. 흐린 날씨에도 방문객이 북적였다.24시간 무료 개방이라 동네 주민들이 산책하러, 운동하러 공원을 즐겨 찾는다. 묘역을 지나자 오른 편에 거대한 자연이 펼쳐진다. 참나무·소나무·오리나무·측백나무 등 30∼40년 된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하다. 그 사이에는 작은 연못과 습지가 층층이 자리한다. 이름 모를 야생화는 금방이라도 꽃봉오리를 터뜨릴 듯 생명을 품고 있다. 까치도 도심 속 자연을 구경하려는 듯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한 아주머니는 “나무 숲과 연못을 보니까 답답하던 숨통이 탁 트인다.”고 즐거워했다. 김 과장은 “4,5월에 꽃이 피어나고 곤충, 동물이 뛰어다니면 도심 속에서 자연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5월부터는 아이들을 위한 습지관찰 프로그램을 한 달에 두 차례씩 운영할 계획이다. 교육은 녹색소비자연대가 맡는다. 박화영 생태여가팀장은 “도심에서 역사와 자연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생명이 되살아나는 곳이라 자연, 습지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02)3273-7117.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김석의 Let’s Wine]코냑 제대로 알기

    서양에서는 ‘향수는 여성의 성격을 표현하고, 술은 남성의 취향을 상징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인지 서양의 남성들은 자존심, 지위, 일류의 이미지를 술을 통해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술 중에 하나가 바로 코냑이다. 코냑은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생산되는 브랜디(와인 증류주)를 말한다. 와인의 품성을 그대로 농축시킨 것에, 오랜 숙성 기간 중 오크 통에서 우러나오는 원숙한 향이 더해진 것으로 브랜디의 제왕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이 아니라 분위기를 즐기고, 향을 음미하며, 시가를 입에 비스듬히 물고 클래식 음악을 함께 듣는 것이 바로 코냑이다. 코냑이 이렇듯 명품으로 거듭난 데에는 코냑을 만든 사람들의 수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프랑스 코냑 지방 사람들은 코냑을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 믿으며 자연과 날씨에 좌우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며 만들어낸다. 프랑스에서 코냑의 보존과 품질관리에 쏟는 정성도 각별하여 1909년에 ‘코냑제조법령’을 선포, 엄격한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코냑의 제조에 필요한 포도는 법적으로 나누어진 6개의 코냑지방에서만 재배하도록 하고, 코냑을 저장하여 숙성시키는 오크통 역시, 이 지방의 숲에서 자란 리무쟁 오크(Limousin oak)통만을 쓰도록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를 두고 ‘All brandy is not cognac,but all cognac is brandy’ (모든 브랜디가 코냑은 아니지만 코냑은 모두 브랜디이다.) 라고 회자한다. 똑같은 발포 성 와인이라 하더라도, 프랑스의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만을 샴페인이라 부를 수 있는 이치와 똑같다. 코냑을 만들 수 있는 포도는 총 7종류가 허용되는데, 최근에는 3가지 종류의 포도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두 번에 걸친 증류과정을 통해 ‘오드비’라는 코냑 원액을 추출하고 품질 및 숙성기간이 서로 다른 ‘오드비’들을 잘 소화시켜 정성을 다하여 블렌딩을 한다. 이 블렌딩 기법에 따라 서로 다른 개성과 향취를 지닌 코냑이 탄생되는데 이 비법은 200년 동안 각 가문 별로 철저한 베일에 싸여 그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러한 코냑 브랜드로는 카뮤, 헤네시, 레미마르땡이 코냑 삼총사로 불린다. 특히 카뮤의 경우는 5세대에 걸쳐 가족 소유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독립된 형태로 남아 있는 가장 큰 코냑 하우스이다.VSOP급 이상의 프리미엄 제품에 치중하고 있는 고급 코냑 하우스로 150여 개의 국가와,50개 이상의 항공노선에서 인기리에 판매되며, 주요 면세점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제품으로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굳건한 브랜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코냑 회사들은 별이나 글자로 그들 회사의 품질을 표시한다. 각 코냑 회사는 여러 단계의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이러한 부호가 각 사의 공통된 숙성 연도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코냑 회사의 관습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법에서 정한 규정과 브랜드 마다의 숙성 연도 표시를 별도로 알아두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코냑은 각각 다른 연도의 코냑들을 블렌딩한다. 우리가 보통 몇 년, 몇 십년된 코냑이 들어갔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블렌딩에 사용된 가장 어린 코냑의 연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5년 된 코냑과 100년 된 코냑을 블렌딩하면 그 코냑은 5년 숙성 코냑이라 칭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주류수입협회 와인총괄 부회장 (금양인터내셔널 전무)
  • [씨줄날줄] 한일관계사/이용원 수석논설위원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문구만큼 한국·일본 양국의 관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표현은 달리 없을 것이다. 지리상으로는 50㎞ 거리에 불과한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이웃국가요, 혈통상으로도 두 나라 국민은 이웃사촌이다.1987년 도쿄대 인류학과 가쓰로 하니하라 교수는, 서기 700년 무렵 일본 총인구에서 한반도 이주자의 비율이 80∼90%에 이른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대 일본인 유전자의 형질은 충남 지역 한국인의 것과 가장 비슷하다는 일본 학자의 연구 결과도 있었다. 따라서 지리상·혈통상으로 양국은 어떤 나라보다 가까울 수밖에 없다. 반면 양 국민이 상대에게 느끼는 정서적 간극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보다 더 넓으니 ‘먼 나라’라는 표현 또한 틀린 말이 아니다. 정서적 간극이 넓은 까닭은 우선 역사인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고대에 우리 조상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고 대대로 문화를 전해줬는데, 지난 100∼200년새 강해졌다고 우리를 침략해?’라는 서운한 감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에 견줘 일본인들은 ‘고대에도 한반도에는 일본 식민지가 있었을 정도로 한·일 관계에서 우리가 항상 우위에 있었지.’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역사인식의 틈새를 좁히려는 노력이 양국 사학자·교육자 사이에서 꾸준히 있어 왔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가 공동 집필한 교재 ‘마주 보는 한일사’가 출간됐다. 양국의 역사교육을 담당한 교사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적잖은 가치를 지닌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집필 범위를 고대에서 개항기까지로 축소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근현대사를 다루는 부담이 큰 것이다. 이번에는 한·일 관계를 통사적(通史的)으로 다룬 고교생용 역사교재 ‘한일 교류의 역사-선사부터 현대까지’가 다음달 1일 양국에서 동시 시판된다고 한다. 한국의 역사교과서연구회와 일본의 역사교육연구회가 10년동안 공동 연구·집필한 이 책이 한·일 양 국민의 편향된 역사인식을 깨고 상대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서로 미워하고 견제만 한다면 한·일 양국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기 때문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훗날 문화재 될만한 이 시대의 건축물 남겨야”

    “한국 사회는 호화주택이나 별장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올바른 건축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무엇을 만들어 놓으면 세월이 지난 뒤 미술관 같은 문화공간이 돼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7일 “100년이나 200년 뒤 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것이 지금 이 시대 어디에서 창출되고 있느냐.”면서 “후손들이 이 시대를 산 선조들을 원망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청장을 그만두면 시대에 걸맞은 문화유산을 남기는 사회운동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면서 “돈 있는 사람이 최고의 인력과 기술을 들여 문화재가 될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 수 있도록 권장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청장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올해 문화재청 주요업무계획 설명회 말미에 “그동안 고민만 해왔지 해결하지 못한 대목이 있다.”면서 이렇게 토로했다. 유 청장은 “오해도 살 수 있는 얘기”라고 전제하고는 “훗날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을 만한 대저택이 지어지고 있는 사례를 알고 있는 것이 없다.”면서 “어떤 재벌은 국민정서에 부정적으로 지목되는 것이 귀찮아 일본이나 싱가포르에 별장을 짓고 있는데 결국은 국가적 손해”라고 강조했다. 유 청장은 청와대를 지칭하는 듯 “대통령 관저가 100년 후 존속한다고 했을 때 역사적 가치는 몰라도 건축적 가치는 어떻게 평가받겠느냐.”면서 “정부청사도 100년 후에 살아남을 수 있는 건물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6) 인왕산이 중인 터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6) 인왕산이 중인 터전

    위항(委巷)은 꼬불꼬불한 거리나 골목,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를 가리킨다. 양반들은 넓은 집에 살았으므로, 좁은 골목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인 이하였다. 한양을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면 그 중간지대인 청계천 일대가 위항이었으며, 좁은 집들이 모여 있던 누상동(樓上洞) 누하동(樓下洞)을 중심으로 한 인왕산 일대도 위항이었다. 청계천 일대에는 역관이나 의원으로부터 상인에 이르기까지 재산이 넉넉한 중인들이 살았으며, 인왕산 언저리는 위항인 가운데 주로 서리나 아전들이 많이 살았다. ●왕기 서린 인왕산 서울의 물길은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흐르는데, 도성 한가운데를 흐르는 이 물을 개천(開川)이라고 하였다. 백악의 남쪽, 인왕산의 동쪽 명당에 궁궐을 지었다. 조선시대 한양의 주민들은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종로를 경계로 하여 살았다. 왕족과 양반 관료들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연결하는 직선 이북의 지역, 지금의 율곡로 양쪽 일대에 모여 살았다. 즉 계동·가회동·원서동·안국동 등의 북촌이 그들의 거주지역이었다.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은 백악(白岳·北岳)이다. 백악의 좌청룡인 동쪽의 낙산은 밋밋하고 얕은 지세인데, 우백호인 서쪽의 인왕산은 높고도 우람하다. 인왕산의 주봉은 둥글넓적하면서도 남산같이 부드럽거나 단조롭지 않으며, 북악처럼 빼어나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남성적이다. 그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할 무렵에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는 의논도 있었다. 이는 전설이 돼 민중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해온 듯하다. 실제로 임진왜란을 겪고 나자 인왕산에 왕기가 있다는 소문이 다시 퍼져, 광해군 시대에 인왕산 기슭에다 경희궁(慶熙宮)을 세웠으며, 자수궁(慈壽宮)이나 인경궁(仁慶宮)도 세웠다. 실제로 이 부근에서 살았던 능양군(綾陽君)이 반정(反正)을 일으켜 광해군을 내몰고 왕위에 올라 인조(仁祖)가 되었으니, 인왕산 왕기설이 입증된 셈이다. ●장안의 명승지 인왕산 인왕산에는 왕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치도 좋았다. 서울의 명승지로는 반드시 인왕산이 꼽혔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의 국도팔영(國都八詠)에는 필운대(弼雲臺)·청풍계(淸風溪)·반송지(盤松池)·세검정(洗劍亭)을 포함했다. 인왕산 자락의 명승지가 서울 명승지의 절반을 차지한 셈이다. 서울의 5대 명승지 가운데 인왕동과 백운동이 모두 인왕산에 있었다. 장안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도심 가까이 있으니, 성안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명승지였다. 서울 시내에서 인왕산을 보면 앞 모습만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습을 인왕산의 전부로 알고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이 부분에만 집과 관청이 들어섰고 사람이 살았으며, 역사가 이뤄졌다. 골짜기를 따라 여러 개의 마을이 생겼는데, 강희언(姜熙彦·1710∼1764)의 그림에 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뒤 몇개씩 합해져서 지금의 법정동이 되었으며, 몇개의 법정동이 합해져서 다시 행정동이 되었다. 사직동부터 체부동을 거쳐 필운동·누상동·누하동·옥인동·효자동·신교동·창성동·통인동·통의동·청운동·부암동까지가 경복궁에서 볼 수 있는 인왕산의 동네들이다. 인왕산에는 약수터도 많아서 조선시대만이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서울 사람들이 자주 찾아갔다. 그러나 1968년 1월21일 북한 특수군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군부대가 주둔하며 일반인들에게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러다가 입산통제 25년 만인 1993년 2월25일부터 출입이 자유로워져, 서울시민들에게 등산로가 다시 개방되었다. 인왕산은 338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등산로가 14곳이나 되며,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인왕산의 네 구역 인왕산은 경치가 좋은 명승지면서 경복궁에서 가까운 주택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 건물이 모두 불타버려 폐허가 되기는 했지만, 양반과 중인들이 대대로 터를 물려가며 살았다. 그런데 명승지라는 이름에 비해, 이름난 정자들은 많지 않았다. 임금이 사는 경복궁이 너무 가까운 데다, 높은 곳에서 궁궐을 내려다보며 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이 일대에 건물을 지으려면 고도제한이 있다. 그래서 인왕산에 지어진 집들은 시대마다 그 구역이 달랐다. 경복궁이 정궁이었던 조선 초기에는 경복궁 옆동네에 관청만 있었고, 주택들은 많지 않았다.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가 인왕산에 있었지만,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지 않는 옆자락이었다. 그의 살림집은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는 뜻의 수성동(水聲洞) 기린교(麒麟橋) 부근에 따로 있었다. 수성동은 옥인아파트 자리라고 추정되는데,1960년대에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기린교를 없앴다고 김영상 선생이 증언하였다. 장동 김씨들이 모여 살았던 청풍계(지금의 청운동)나 위항시인들이 모여 활동했던 옥류동(지금의 옥인동)은 조선 후기에 와서야 활기를 띠었다. 임진왜란 중에 경복궁이 불타버려 오랫동안 폐허가 되자, 높은 곳에 집을 지어도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아전들이 관아와 거리가 가까운 인왕산 중턱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인왕산은 구역과 높이에 따라 고관들의 호화주택이나 별장, 위항인들의 초가집들이 섞이게 되었다. 6·25 전까지만 해도 누상동이나 누하동, 필운동 일대에는 초가집들이 듬성듬성 섞여 있었다. 다음 회에는 인왕산을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안평대군과 무계정사, 안동 김씨와 청풍계, 김수항의 청휘각과 송석원, 필운대와 육각현 순으로 살펴본다. ■ 역사기록이 전하는 인왕산 인왕산은 역사 기록에서만 보더라도 명산으로 꼽을 만하다. 조선시대 차천로(車天輅·1556∼1615)는 ‘오산설림(五山說林)’에서 인왕산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무학(無學)이 점을 쳐서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정하고,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하였다. 그러고는 백악과 남산을 좌청룡과 우백호로 삼자고 하였다. 그러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옛날부터 제왕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다스렸지, 동쪽을 향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무학이 “지금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200년 뒤에 가서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고 답했다. 이는 후에 인조반정으로 현재화된다. 또한 성현(成俔·1439∼1504)은 ‘용재총화(齋叢話)’에서 인왕산의 경치를 자랑했다. 한성 도성 안에 경치 좋은 곳이 적은데, 그중 놀 만한 곳으로는 삼청동이 으뜸이고, 인왕동이 그 다음이며, 쌍계동·백운동·청학동이 또 그 다음이다.(줄임) 인왕동은 인왕산 아래인데, 깊은 골짜기가 비스듬히 길게 뻗어 있다고 말했다. 유본해가 서울의 명승지와 동네를 소개하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서도 그 사실을 적시했다. 수성동은 인왕산 기슭에 있는데, 골짜기가 깊고 그윽하다. 물 맑고 바위도 좋은 경치가 있어서, 더울 때 소풍하기에 가장 좋다. 이 동네는 옛날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이 살던 집터라고 한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데, 이름을 기린교라고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대권, 재상집안 사람이 잡는다”

    한국역술인협회 백운산(64) 회장은 최근 펴낸 에세이집 ‘인생상담’(등대출판사 펴냄)에서 “야권에서 분명히 목(木)성이 대권후보가 되고, 지지도도 아주 높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백씨는 그러나 “다만 6월 이후에 여권에서 새로운 인물이 출현하면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정치상황에 따라 대권경쟁의 판도가 크게 변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백씨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남쪽지방 출신으로 집 주변에는 강과 저수지, 집 앞에는 맑은 우물이 있고, 명문학교를 나온 재상 집안의 사람이 대권을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부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는 “역술에서 목성이라 함은 성씨에 기역(ㄱ)이나 한문의 나무 목(木) 변이 들어간 경우를 말한다.”면서 “대선까지는 아직 기간이 남아 있어 지금은 구체적으로 승자가 누구인지 점칠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남북 통일문제의 큰 진전이 이뤄지고, 그에 따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이나 노무현 대통령 혹은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는 등의 이슈가 생길 것”이라고 점친 뒤 “2010년 국가적으로 큰 환란이 점쳐지지만 향후 200년간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이라크 전쟁비용 $1,000,000,000,000 얼마나 큰 돈일까

    이라크 전쟁비용 $1,000,000,000,000 얼마나 큰 돈일까

    미국 정부 정책의 우선 순위를 제시하는 ‘내셔널 프라이오리티즈(National Priorities)’ 사이트에는 초단위로 액수가 올라가는 ‘이라크 전쟁비용 시계’가 공개되어 있다. 지난 2003년 3월 개전 이후 시계 눈금은 초당 ‘1000달러’씩 숨가쁘게 상승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군 3000명이 숨지고 2만명이 부상당했다. 전쟁과 테러로 희생된 이라크인은 산출조차 되지 않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에 쓴 돈은 직접 비용 7000억달러에 부상 미군 치료 등 간접 비용을 합치면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1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미 국방부가 이라크 전쟁 전에 밝힌 예상 전비(500억달러)의 14배에 달한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각종 기회 비용과 사망·부상자 손실을 환산하면 2조달러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미 abc방송은 4일(현지시간) ‘1조달러가 얼마나 큰 돈이며,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소개했다. 정치적 수단을 총동원해 이라크 추가 파병을 서두르는 부시 대통령이 매일 3억달러씩 이라크에 쓰는 돈이 어떤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 제기이다. 1조달러(약 936조원)는 얼마나 큰 돈일까. 이 방송은 1초당 1000달러씩 쓴다고 해도 30년 동안 쓸 수 있는 돈이라고 설명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업무시간에만 돈을 뿌린다 해도 120년 이상 쓸 수 있다. 이 돈이 이라크 전쟁이 아닌 지구촌에 쓰인다면 인류의 삶이 바뀐다. 암이 정복될 수 있고 심장병과 당뇨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전 세계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은 더이상 비극적인 죽음을 맞지 않아도 된다. 매년 홍역, 파상풍, 호홉기 질환과 설사로 숨지는 어린이 수백만명을 구할 수 있다. 예방 비용은 단돈 2달러. 어린이 1명에게 공급할 수 있는 항생제는 1달러이며 설사약은 10센트면 된다. 현재 에이즈로는 1분마다 어린이 1명이 숨지고 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기부금 10달러로 영양실조 어린이 15명에게 고단백 분말 영양식 한 끼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끝없는 분쟁으로 30만명 이상이 학살당한 수단 다르푸르 사태를 종식시킬 수도 있다. 1조달러는 인류의 과학 발전에 헌신하는 미 국립과학재단(NSF)과 같은 연구재단 170개를 운영할 수 있고 미 국립암센터의 200년 예산과 맞먹는다. 한해 예산 75억달러로 전 미국 기업과 공장의 공해 방지활동을 벌이는 환경보호국(EPA)이 130년이나 쓸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교육 개혁을 위해 추진해온 낙제방지법도 해결된다. 미 교육부의 1년 예산은 550억달러이지만 이라크 전쟁 비용이라면 18년 동안 빈곤층 자녀들에게 질높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이 방송은 1조달러로 미국이 좀더 안전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수십명 정도 있다면서 그들은 딕 체니 부통령이 최고경영자(CEO)로 있던 에너지업체 핼리버튼사의 성공에 흔쾌히 동의할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핼리버튼은 이라크 복구사업을 싹쓸이하면서 10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27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신나는 겨울놀이와 추억의 먹거리들이 마련된 겨울축제의 현장, 포천으로 떠난다. 포천에서 열리고 있는 동장군 축제를 찾아 논밭 얼음에서 즐기는 얼음썰매와 백운계곡 산비탈 눈썰매장에서 짜릿한 눈썰매도 타본다. 나무를 톱질하며 산촌체험도 해보고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산골짜기도 유람해 본다.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EBS 오후 9시30분)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라며 반복되는 일상. 미운 오리새끼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200년 전 안데르센의 동화를 현대의 일터에 탁월하게 적용한 ‘미운 오리새끼의 출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자.   ●그것이 알고 싶다(SBS 오후 11시5분)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3.5%가 신앙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종교 국가인 관계로 종교 간의 갈등이 적지 않다. 특히 제사나 혼례를 둘러싼 가족간의 종교 갈등은 가족화목을 저해하고, 이혼·가출 등 가정파탄을 부르기도 한다. 설날을 앞두고 종교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본다.   ●누나(MBC 오후 7시55분) 경찰서에 가서 미리 사채업자를 고소했던 승주는 혁주와 함께 공원에서 사채업자를 만난다. 주변 눈치를 살핀 사채업자는 의심스러운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승주 남매를 비웃는다. 건우가 학교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수아는 학과장에게 가서 왜 돈 보고 학원으로 옮긴 작자에게 다시 강의를 주냐며 따진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하영은 준호에게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점점 더 다가선다. 준호는 죄책감도 없이 지연 몰래 하영과의 만남을 즐기기 시작한다. 태섭은 종민의 부탁으로 어머니의 목걸이를 사러 나갔다가 지연을 만난다. 태섭은 지연의 추천대로 목걸이를 구입하지만, 망가진 목걸이라는 것을 알고 화가 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KBS1 오전 10시) 태국의 수도이자 관문이 되는 도시 방콕.1782년 라마1세 국왕 때 세워진 방콕은 차오프라야강 기슭에 위치해 발달한 도시다. 차오프라야강을 따라 늘어선 수상가옥과 도로의 체증을 피해 이용할 수 있는 수상버스는 태국의 명물로 손꼽힌다. 미소를 품은 물의 나라, 태국 방콕으로 떠나본다.
  • 알라딘? 장금이? 뭐 볼지 고민이네…

    알라딘? 장금이? 뭐 볼지 고민이네…

    방학도 다 끝나간다. 과외로부터 학원에 캠프까지 오히려 방학이 더 바쁜 아이들이지만 남은 방학기간 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문화공연 하나는 가슴에 담게 해주는 것은 어떨까.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자치구와 서울시 산하기관 등에서 준비한 부담 없는 알짜공연들을 정리해 봤다. ●어린이 뮤지컬 ‘알라딘’ 어린이 뮤지컬 분야의 최고의 스태프들이 모여 만든 총3막7장의 대형뮤지컬. 천일야화 중 ‘요술램프’를 모체로 삼았다. 재미있는 스토리와 탄탄한 구성, 개성강한 캐릭터는 어른관객마저도 매료되게 한다. 극단 ‘예일’이 야심차게 준비했다.31일까지 오후 2시,4시. 창동문화체육센터. ●어린이 뮤지컬 ‘피노키오’ ‘미녀와 야수’‘보물섬’‘2006 어린이 캣츠’등을 공연했던 극단 하늘의 작품이다.15t차량 분량의 무대세트, 실물 크기의 대형 인형들이 피노키오의 고향 피렌체로 관객들을 이끈다. 전국 순회공연으로 가다듬어진 춤과 노래, 농익은 연기가 압권.26∼28일까지 양천문화회관 대극장. ●창작놀이 교육극 ‘손 씻을래요’ 30일과 31일 금천구민문화체육센터 소극장에서 어린이 교육극 ‘손 씻을래요-미안해 친구야’를 공연한다. 극단 ‘십년후’ 연출가 송용일씨가 만든 창작극으로 어린이들이 나쁜 세균의 공격을 올바른 손씻기를 통해 막아낸다는 내용이다. 오후 2시,4시 공연. 단 구청 홈페이지(www.geuncheon.go.kr)에서 26일까지 인터넷 접수를 한다. ●헨델과 그레텔 ‘과자성의 비밀’ 서울시 극단의 공연이다. 그림 형제가 200년 전 쓴 고전에서 이야기를 빌렸지만 우리시대로 시계를 돌려 재구성했다. 원작에서는 소년, 소녀가 주인공이지만 작품에서는 대학생들이 주연을 맡는다. 노래와 춤, 마술까지 어우러진다. 강서(31일), 강동구민회관(2월1일) ●그림자극 ‘동물의 사육제 & 피터와 늑대’ 요즘 아이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그림자 연극이다. 빛과 실루엣을 통해 연출되는 다소 평면적이고 단순한 무대는 어린이 등에게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26일(단체)은 오전 11시·오후 4시, 주말은 오후 1·3시. 입장료는 할인권 지참시 1만 2000원, 사랑티켓 구입시 5000원이다. ●장금이의 꿈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에서는 드라마 대장금을 원작으로 한 만화영화 ‘장금이의 꿈’을 상영한다. 음식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꿈인 장금이가 역경을 딛고 최고의 요리사가 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장금이의 꿈’은 2006년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대상 수상작품이다,2월4일까지 평일 3회(13,15,17시) 주말4회(11,13,15,17시)상영된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거리 미술관 속으로] 세계 최대 도자벽화

    [거리 미술관 속으로] 세계 최대 도자벽화

    서울 청계천 도자(陶瓷)벽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광교부터 삼일교까지 벽면을 병풍처럼 휘감고 있다. 청계천 반차도는 높이 2.4m, 길이 186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벽화이다. 벽에 붙은 도자타일(30×30㎝)만 4960장이다. 반차도는 고증한 작품인 동시에 창작품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200년을 넘나들며 작품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원본은 정조가 1795년 2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환갑을 맞아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 화성과 현륭원(사도세자 무덤)을 다녀와서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 나왔다. 이 책에 단원 김홍도 등이 창덕궁에서 광통교를 지나 화성으로 가는 왕의 행차 모습을 흑백 목판화로 그렸다. 1994년 한영우 전 서울대 교수가 목판화에 채색을 입혔다. 세월 탓에 색이 바랜 채색 목판화와 뒷모습을 그린 두루마리 행렬도를 고증해 작품의 색깔을 하나하나 정했다. 가로 15m, 세로 18m의 반차도를 청계천 도자벽화로 확대 제작하면서 강석영 이화여대 교수가 채색의 명암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헌정 작가가 조선시대 백자를 재현해 타일 원판을 제작하고, 여기에 17가지 안료를 써서 인물 1779명과 말 779필을 그렸다. 도자를 빚어 굽고 채색하는 일은 모두 손으로 했다. 이로써 과거의 유물이 생명력을 지닌 현재의 미술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작품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정조는 왕의 가마 정가교(正駕轎)를 타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한 터라 어머니 혜경궁 홍씨 앞에 갈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혜경궁 홍씨의 자궁가교(慈宮駕轎)에 이어 정조가 탔다는 좌마(座馬)가 보이지만 정조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일부러 그리지 않았다. 왕을 대충 작게 그릴 수 없었던 것이다. 반차도는 한 폭의 풍속화이기도 하다. 나인의 웃는 표정, 찡그린 표정조차 생생히 살아있다. 작품을 제작, 기증해 도자벽화에 이름을 새긴 조흥은행도 이제 역사가 됐다. 신한은행과 합병하면서 그 이름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영우 교수는 “왕조의 위엄, 질서와 더불어 낙천적이고 자유분방한 인물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면서 “정조 반차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독일 나치군이나 북한 인민군과 확연히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관광지하철’ 5~8호선을 즐기세요

    공연장과 박물관으로 떠나는 서대문 나들이,10만평 가족공원이 펼쳐지는 화랑대, 도심 속 사찰 봉은사와 화려한 코엑스몰이 닿은 청담역, 역사와 자연으로 산책하는 몽촌토성…. 지하철 5∼8호선의 역 주변에는 이처럼 갈 만한 곳들이 다양하게 숨어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9일 지하철 5∼8호선 역세권에 있는 명소를 담은 안내 책자 ‘문화철도 5678 지하철로 떠나는 서울기행’을 내놓았다. 지난해 봄에 나온 ‘광화문-청계천 가는 길’에 이은 두 번째 소책자다. 정동극장·난타전용극장과 다양한 박물관이 있는 5호선 서대문역을 비롯해 ▲계절마다 다른 색깔을 내는 가족공원 태릉푸른동산으로 가는 6호선 화랑대역 ▲1200년 역사를 지닌 봉은사와 문화가 집중된 코엑스몰이 있는 7호선 청담역 ▲소마미술관, 몽촌토성, 석촌호수 등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8호선 몽촌토성역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역명 유래, 주변 약도, 명소, 사진 등과 함께 호선별로 대표적인 문화명소, 조망명소를 간략하게 소개한 노선도도 실었다. 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시민과 관광객이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 곳곳의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책자를 발간했다.”면서 “서울의 역사적 상징이나 문화 가치를 한 데 엮어 문화네트워크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철도공사는 5∼8호선 148개 역사에 노선별로 각 1종씩 모두 20만부를 비치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0) 석가 진신사리 모신 오대산 상원사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0) 석가 진신사리 모신 오대산 상원사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에서 서북쪽으로 9㎞쯤 떨어진 오대산 산록에 아담하게 앉은 상원사(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건물이래야 목조 문수동자좌상을 모신 주 전각 문수전에 딸린 영산전과 청량선원, 범종각 정도가 고작인 소박한 사찰이다. 가람의 규모가 작은 탓에 흔히 월정사의 ‘산내 암자’쯤으로 인식되지만 숱한 고승을 배출해온 1200년 신라 고찰이자 나라 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선원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에겐 ‘한국 최고의 범종’인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으로 인해 잘 알려진 사찰. 불교계에선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에,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문수신앙이 보태져 수행하는 운수납자(雲水衲子)와 신도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지이다. 원래 오대산의 산명(山名)은 처음 산문을 연 개산조인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중국의 오대산에서 꿈속 게송을 받고 돌아와 절을 창건한 데서 비롯된 이름. 자장 스님은 중국 오대산에서 한 노 스님으로부터 “당신의 나라 동북방 명주 땅에 일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니 가서 뵙도록 하라.”는 말과 함께 가사와 발우 한벌, 부처님 정골사리를 받고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귀국해 월정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상원사는 한참 후인 성덕왕 4년(705)에 두 왕자인 보천·효명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진여원(眞如院)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는데 당시 오대산은 오류성중(五類聖衆), 즉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함께 예배하고 염불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로,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삼국유사) 당시 사람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보천태자에게 신문왕의 후계를 권했지만 보천태자가 한사코 거부해 결국 효명태자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성덕왕이다. 왕위에 오른 효명태자가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중 여러 모습의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 세운 것이 진여원, 지금의 상원사다. 이 설화를 뒷받침하듯 지금도 오대산에는 상원사를 중심으로 중대 사자암, 동대 관음암, 서대 염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상두암(미륵암)이 포진해 있다. 이 오대 중에서 상원사가 있는 중대는 바로 오만 보살신앙의 중심으로 여겨진다. 상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무래도 적멸보궁과 상원사동종.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란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러운 궁전이란 뜻.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이 없으니 괴로울 것이 없는 부처님의 경지를 말한다. 국내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등 모두 다섯군데의 적멸보궁이 있는데 불교계는 상원사의 적멸보궁을 가장 먼저의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는 ‘천하의 명당’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정식 사리탑은 없고 최근 증축한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 뒤쪽에 1m 높이의 판석에 석탑을 모각한 상징물이 서 있다. 문수전 앞 마당 작은 건물 안에 달려 있는 상원사동종은 종소리와 청동 합금, 주조기술 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종의 모범. 무릎을 세우고 허공에 뜬 채 수공후와 생(笙)을 연주하는 비천상을 비롯한 의장(意匠)과 우아한 문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종의 마멸과 훼손을 막기 위해 타종을 중단해 지금은 아쉽게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 예종 1년(1469) 윤2월조와 경북 안동읍지인 ‘영가지(永嘉誌) 6권´에 따르면 이 종은 신라 성덕왕 25년(725년)에 제작되어 안동의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조선 예종1년(1469년)에 이곳 상원사로 옮겨왔다. 죽령을 넘을 무렵 종이 너무 무거워 애를 먹던 중 종유(鐘乳) 하나를 떼어 안동으로 돌려보내자 종이 수월하게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원래 종의 동서남북 사방 면에는 각각 9개씩 36개의 종유를 만들었는데 1개가 없어진 35개만 남아 있어 흥미롭다. 상원사에서 특이한 것은 불교 중흥기인 고려대엔 사찰의 중창과 관련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오히려 숭유억불책을 썼던 조선조에 왕실의 각별한 비호와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는 등 척불에 앞장섰던 태종은 만년에 상원사 사자암을 중건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을 정도였다. 특히 세조와 관련된 흔적은 사찰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서울에서 상원사까지는 달포나 걸리는 먼 길이었지만 세조는 재위기간 중 3차례나 상원사를 찾았다고 한다. 상원사 주차장 앞에는 세조가 몸을 씻기 위해 의관을 걸어두었다는 관대걸이가 지금도 서있다. 단종을 죽인 세조는 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가 자신에게 침을 뱉는 꿈을 꾸고 난 뒤 온 몸에 종기가 돋고 고름이 나는 병에 걸리자 오대산을 다니며 기도를 올려 병이 낫도록 발원했다고 한다. 어느날 오대산 계곡에서 목욕을 할 때 우연히 지나던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했는데 동자승이 등을 밀어준 뒤 씻은 듯이 나았다. 이에 감격한 세조가 화원을 불러 그 동자승의 화상을 그리게 했는데 지금 문수전 오른쪽 외벽에 그 모습을 재현한 벽화가 걸려 있다. 문수전 안의 목조 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도 그런 연유에서 조성해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1984년에 발견된 문수동자 복장에서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문수동자상을 봉안한다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30여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세조의 왕사인 신미 스님이 복을 빌기 위해 상원사를 중수하려 하자 세조가 채색·쌀·무명·베와 철재 등을 보내면서 그 취지를 적었다는 ‘중창권선문’(국보 제292호)도 왕실과 상원사의 관계를 짐작게 한다. 세조가 대(大)시주자로 앞장서자 왕비를 비롯한 궁인, 종실, 조정 신료와 전국의 수령방백들이 앞다투어 시주에 나섰던 사실을 보여준다. 문수전 앞 두마리의 고양이가 나란히 선 석조상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고양이가 상원사 법당에 들어가려는 자신의 옷소매를 물고 늘어진 것을 수상하게 여긴 세조가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진 끝에 불상 좌대 밑에 칼을 품고 숨은 자객을 찾아냈다고 한다.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세조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상원사의 고양이를 잘 보살피라는 뜻으로 묘전(猫田)을 하사해 상원사는 사방 80리의 땅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세조의 원찰이 되었던 상원사는 안타깝게도 1946년 선원 뒤의 조실(祖室)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건물이 전소되었으며 지금의 문수전과 청량선원 등 대부분의 전각은 모두 그 이후 복원되거나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kimus@seoul.co.kr ■ 천고에 자취감춘 학이 머물렀던… ● 한암 스님과 상원사 상원사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스님을 비롯해 수월 운봉 동산 등 역대 선지식(善知識)들이 주석하며 수행했던 유서깊은 곳. 이들 선지식 중에서도 27년간 오대산문을 나서지 않은 채 ‘오대산 도인’으로 통했던 한암(1876-1951)스님은 상원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선승이다. 금강산에 유람갔다가 발심해 장안사 행름 노사를 은사로 출가한 한암 스님이 상원사에 든 것은 50세 때인 1925년. 당시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었던 스님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오대산을 찾았다. 들고 다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상원사 산 중턱의 중대 사자암 앞뜰에 심었는데 지팡이가 꽂힌 자리에서 잎사귀와 가지가 돋아 나무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 단풍나무가 서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이 된 것도 그 즈음이다. 일제시대 일본 조동종 사토가 상원사로 한암 스님을 찾아와 법거량을 한 끝에 “한암 스님은 세계에서 둘도 없는 인물”이라며 떠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이 일이 있은 뒤 상원사에는 한암 스님을 만나려는 일본 저명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6·25전쟁 중에는 국군이 “월정사와 상원사가 적의 소굴이 된다.”는 이유로 상원사 법당을 불태우려고 하자 법당에 앉아 “법당을 지키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니 어서 불을 지르라.”며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국군이 어쩔 수 없이 법당 문짝만 뜯어내 불지르고 떠나는 바람에 상원사가 남아 있게 됐다고 한다. 한암 스님은 이곳에서 보문 난암 탄허 스님 등 한국불교의 기라성같은 제자들을 키워내다가 6·25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 좌탈입망(앉은 자세로 입적)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현대판 우륵’ 천익창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현대판 우륵’ 천익창씨

    아득히 깊은 전설의 밤, 말라 죽은 오동나무가 불쑥 일어나 명주실에 단단히 꼬여 ‘가얏고’로 변신한다. 기러기발에 의지하더니 중모리 자진모리 애끊는 장단을 뱉어낸다. 옆에서 자태 고운 여인네가 얇은 모시적삼 사이로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버선발로 사뿐사뿐 춤을 춘다. 마음 또한 새벽녘 옹달샘처럼 청아해 열두줄의 심현(心絃)이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칭칭 휘어 감는다. 문득 생각나는 대사가 있다.‘황진이’의 스승 백무가 읊조렸다.“단전에 네 슬픔을 두어라. 그리고 천천히 풀어내라. 억지로 잊으려 할 것 없다. 깊이 숨을 들이켜 단전에 두듯 네 사랑도 그저 거기에 두면 돼.”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의 16평 작은 아파트 안. 아버지와 아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가야금 앞에 앉았다. 아버지가 흥얼흥얼 장단을 넣자 열아홉살 아들은 열손가락으로 학의 날갯짓처럼 48현(25현+23현) 가야금줄을 날렵하게 넘나든다. 빠르고 늘어짐이 절묘해 청산을 휘젓는 바람 같았다. 팔과 다리, 어깨가 저절로 들썩인다. 아버지가 직접 창작한 ‘오솔길’이다. 이윽고 아버지가 입식 가야금 앞에 선다. 기존의 좌식 가야금과는 사뭇 다른 개량 가야금이다. 왼손으로 현을 타고 오른 손으로 활을 켠다. 영화 ‘타이타닉’의 배경음악이 나온다. 뱃머리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릿의 멋진 사랑 장면이 새삼 그려진다. 이어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뮤직’을 연주하더니 간드러진 ‘오돌똘기’‘새타령’으로 넘어간다. ●설 전날 아들과 함께 ‘뼈피리´ 등 연주회 이쯤해서 아들의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이른바 ‘현대판 우륵’으로 불리는 천익창(55)씨. 아들 새빛군과 1994년부터 매년 이맘 때면 어김없이 특별한 무대를 갖는다. 설날을 앞두고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량 국악기 연주회를 가져왔던 것. 올해에도 설날 전날인 2월17일 오후 3시 같은 장소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특히 올해는 인류의 원초적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뼈피리’를 비롯, 그가 직접 복원한 신석기 현악기, 철기시대 현악기, 신라시대의 신라금 등 이른바 가야금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색무대까지 마련했다. 아울러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손가락으로 가야금을 연주하는 새빛군의 솜씨를 접할 수 있다. 천씨는 1973년부터 전통 가야금에 전자장치를 부착하면서 국악 개량화의 길을 걸어왔다.‘천익창 연구소’라고 부르는 그의 아파트에는 23현,25현 가야금을 비롯,1200년 전의 신라금(新羅琴), 신석기·철기 시대의 현악기,10현 아쟁 등 개량 국악기만 20여점이 전시돼 있다. 그가 ‘제2의 우륵’이라는 찬사를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악계선 이단시… 박동진 명창에 욕먹어 하지만 전통 국악계에서는 ‘이단시’한다.1993년 KBS-TV ‘국악춘추’ 프로그램에 초청을 받았을 때 개량 가야금을 들고 나와 팝밴드와 협연을 가졌다. 그런데 녹화가 끝나자 명창 박동진 선생이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천씨의 귀를 아프게 잡아당기며 “야, 씨부랄 놈아, 니가 왜 국악계 욕먹이고 지랄이야.”를 시작으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육두문자를 퍼부어댔다. 천씨는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귀가 얼얼하다며 웃는다. 2002년 단국대 멀티미디어실에서 열린 ‘남북한 개량 국악기’ 세미나에 참석, 혼자서 개발해온 전자가야금,23현 가야금,10현 아쟁 등의 개량 국악기를 직접 연주하며 선보여 토론의 불을 붙이기도 했다. “전통 국악계에서는 저를 여전히 인정하려 들지 않아요. 변종으로 여기지요. 어릴 때부터 저와 함께 개량 국악을 연주해온 아들놈이 창작무대에서는 수십 차례 상을 받았지만 정작 대학입학에는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아들은 최근 모 대학 국악과에 응시했다. 아들 새빛군은 1999년 ‘국악 한마당’에서 가야금 연주로 데뷔했으며 2003년 남북한 개량 국악기 비교 연주를 했던 ‘제1회 서울 가야금 경연대회’에서 아버지의 23현 가야금을 들고 나와 창작곡 ‘오솔길’로 대상을 수상했다. 천씨가 잠시 생각하더니 아들을 다시 불러 2005년에 복원한 신석기 시대 현악기를 연주하란다. 아들은 원시인 의상을 그럴듯하게 차려 입더니 6현의 줄을 튕긴다. 아버지는 “원시 음악은 악보없이 음정과 박자가 즉흥적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천씨는 “경주박물관에 가면 신석기인들이 악기를 가슴에 안고 연주했던 모습이 전시돼 있다.”면서 “여러 연구자료를 뒤진 끝에 당시의 악기를 복원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어 “일부 역사서에 가야금이 당나라의 쟁을 보고 만든 것처럼 나오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일본 정창원(왕실 유물창고)에 가면 신라금이 보관돼 있는데 아직도 공개를 안 하고 있다.”면서 “조선시대 이전까지 가야금 연주는 남성 전용이었다.”고 덧붙인다. ●‘삼선보´ 등 음계 조율법도 창안 천씨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중학때 음악시간에 접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에 매료돼 음악 선생에게 몰래 교습을 받는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년간 영남대 음대 교수에게 작곡 레슨을 받고는 서울대 음대에 원서를 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차녀 근영씨도 같이 응시했다. 텃세에다 운이 따르지 않아서인지 낙방했다. 서울 시내를 무작정 쏘다니던 그는 종로2가 YMCA 옆에 있는 세기음악학원에 들어가 홧김에 피아노를 마구 쳐댔다. 때마침 거기에 와 있던 미8군 클럽매니저가 이를 보고 즉석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이후 천씨는 미8군 클럽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전국 순회공연에 나선다. 몇 달 뒤에는 세운상가 극장식 레스토랑 ‘아마존’에서 20인조 악단의 전자오르간 연주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는 한편 평소 관심 있었던 가야금과 아쟁을 배우기 시작했다. 결국 전자오르간과 가야금을 동시에 연주하게 되면서 천씨는 가야금의 현을 금속선으로 바꾸고 전자장치를 넣은 입식 가야금을 개발해내기에 이르렀다. 양악밴드에서 최초의 가야금 연주자가 된 셈이다. 이때가 1973년 8월 무렵. 이후 고음·명주·저음 등 3개의 창금(昌琴·천익창이 만든 가야금)을 개량발전시킨다. 고음창금의 경우 현이 금속이고 전통가야금의 밧줄 모양 부들을 제거하고 악기 뒤판 머리부분에 조율기를 장착, 음양증폭 장치를 내장했다. 연주방법 또한 튕겨서 내는 전통적 방법과 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음계의 조율법도 창안해 냈다.1980년 초 서양 오선악보와 한자악보인 정감보’의 장점을 살린 ‘삼선보’를 발표했다.3옥타브 36개의 기본음과 미분음을 표현하며, 활 연주시 바이올린 음력을 능가하도록 했다. 이같은 개량작업은 철저히 현장성과 국악사랑 일념에서 이루어졌다. “개량 가야금은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만 모든 클래식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국악기를 복원하고 개량하는 일이 외로웠지요. 다소나마 국악계에 활력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3년 경북 예천 출생 ▲1972년 안동 경안고 졸업 ▲1973년 서울대 작곡과 응시 낙방후 미8군에서 음악활동, 전자오르간 및 가야금 연주.1987년까지 일반무대 협연 및 독주 300회 ▲1986년 천익창 3선보이론 발표 ▲1987년 KBS 송년 대음악회 KBS 팝스오케스트라와 협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89년 MBC-TV ‘음악이 있는곳에’ MBC 관현악단과 협연 ▲1994년 우리민속 한마당 초청연주 ‘제13회 천익창과 창금’(국립민속박물관) ▲1996년 충무공 탄신451주년. 광복 51주년 기념음악회(탑골공원) ▲2000년 국립중앙박물관 초청연주 ▲2002년 천익창, 천새빛 개량가야금 해설 겸한 연주회(국립민속박물관) ▲2004년 고대악기 신라금 복원 ▲2005년 신석기 한반도 현악기 복원 ▲2006년 철기시대 한반도 현악기 복원, 원시인류 뼈피리 복원 발표
  • 30일 연재 마치는 ‘유림’ 작가 최인호씨

    30일 연재 마치는 ‘유림’ 작가 최인호씨

    작가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그려졌다.3년간의 대역사(役事)였지만 피곤한 기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신문에 대하장편소설 유림(儒林)을 연재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이야기꾼’ 최인호(61)는 그랬다. 아쉽게도 유림은 오는 30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21일 서울 한남동의 집필실에서 만난 작가는 연신 “이처럼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수백명의 아이(작품)를 낳았지만 특히 이번에는 명분 있는 아이를 낳았습니다.3년간 꼬박 연재할 때도 그랬지만 작가라는 사실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두시간여 동안 그의 입에서 ‘키워드’들이 툭툭 튀어 나왔다.‘혼돈의 시대, 작가적 충정, 동방예의지국, 선비정신의 부활’. 그가 행복하게 ‘유교의 숲’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이 차츰 조합되기 시작했다. 그는 “21세기에는 하이에나 논리로 가득 찬 서구적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더불어 사는 유교적 자본주의가 화두가 될 것”이라면서 “이러한 때 우리의 훌륭한 유산인 ‘선비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자, 맹자, 순자, 조광조, 율곡, 안향 등 유림의 무수한 주인공 가운데 작가 최인호가 가장 주목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거침없이 퇴계 이황을 꼽았다.“석가모니의 불교가 원효에 의해서 사상적으로 완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공자의 유교 역시 퇴계에 의해 사상적으로 완성됐습니다. 일본에서는 퇴계를 ‘해동의 공자’라고 불렀습니다. 퇴계는 불세출의 위대한 사상가였습니다.” 퇴계 사상의 골수인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주목했다는 그는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쓰려고 무지하게 노력했다.”고 토로했다. 퇴계가 왜 위대한지, 이기이원론의 정수가 무엇인지 등이 모두 유림속에 농축돼 있다는 것. 그는 유교의 필요성을 교육문제와도 연결지었다. 교육의 난맥상을 해결하는 첫걸음은 선비사상의 부활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한 사람의 ‘난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어서 문제입니다. 백사람의 ‘된 사람’을 기르는 교육으로 회귀해야 합니다. 공자는 정치가이자 외교가이자 위대한 교육자였습니다. 유교에 해법이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육필원고를 고집한다. 머릿속의 진수를 짜내는 데 컴퓨터 키보드는 적합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3년간 써내려간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6500장에 이른다. 한동안 가야시대를 다룬 ‘제4의 제국’을 동시에 썼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집필만 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태어나서 가장 초인적으로 써내려간 시기”라고 말했다. 불교(길없는 길), 유교(유림)에 이어 이제 그는 기독교에 숨결을 불어넣으려고 한다.200년 전 이 땅에서 수만명이 순교함으로써 우리와도 인연이 깊은 예수 그리스도 사상의 본류를 꿰뚫어볼 작정이다. “불교다운 불교가 남아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고, 유교도 한반도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이들은 우리 민족의 원형질입니다. 이제 마무리 개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순례 등을 통해 곧 자료수집에 착수,2년 뒤쯤 작품을 ‘출산’할 계획이다. 작가의 창작열을 ‘입덧’에 비유한 그는 스스로 ‘가임(可姙)성 작가’라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글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유림’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최인호 대하장편소설 ‘유림’은 2004년 1월5일 서울신문 지면을 통해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이 보다 12∼13년 전 작가의 심장에서는 이미 유림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시 불교를 주제로 한 장편소설 ‘길없는 길’을 집필하던 그는 우리 민족의 혈관 속에 불교뿐 아니라 유교라는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고 거리낌 없이 다음 작품 주제로 유교를 점찍었다. 곧바로 공자의 고향 곡부를 둘러보고, 공자의 사당이 있는 태산에 올라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이름까지 미리 정해 두었다. 유림은 연재 시작과 함께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몰고 왔다. 학술서적 외에 유교를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소설로 형상화된 유교와 유학의 대가들을 만난 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유교를 다시 보게 됐다.”고 탄복했다. 천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이 사실상 2000년 유학을 집대성했다는 사실에도 뿌듯해했다. 무엇보다 혼탁 일색인 오늘을 살아가야 할 지혜를 제공해준 작가에게 감사해했다. 연재가 완성되기도 전에 지난해 7월 조광조의 개혁정치(1권), 공자의 주유천하(2권), 퇴계의 군자유종(3권)을 묶어 이례적으로 먼저 1부 3권을 출간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식지 않았다. 한 중학생 독자는 TV 교양프로그램에 출연한 작가를 상대로 “서점에서 선 채로 유림을 읽었다. 공자가 이렇게 재밌는지 알게 해줘 고맙다.”고 말해 작가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공자에서 퇴계로 이어지는 유림의 숲을 다룬 4권과 과감히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학문에 정진했던 퇴계의 일생을 다룬 5권까지 모두 50만부 정도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출판사(열림원)나 작가 모두 이같은 호응에 깜짝 놀라고 있다. 공자의 생애를 되살린 6권은 내년 1월15일쯤 출간된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