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0년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1000만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미니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93
  • 1200년 재배역사 하동 야생차 연구·분석한 야생차 연구서 발간

    1200년 재배역사 하동 야생차 연구·분석한 야생차 연구서 발간

    재배역사가 1200년에 이르는 경남 하동지역 야생차 나무의 특성 등을 자세히 연구·분석한 야생차 연구서가 발간됐다. (재)하동녹차연구소는 17일 ‘우리나라 산림자원 차나무 특성평가 보고서’라는 제목의 야생차 연구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이 책은 하동녹차연구소가 화개면 지역 야생차나무를 비롯해 국내에 자생하는 야생차 나무의 잎색깔과 잎모양 등 24개 항목에 대한 특성을 연구·분석한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다. 보고서에는 차나무 기본정보와 주사전자현미경을 이용한 형태학적 미세형질 사진, 주요 병충해을 비롯한 생태적 특성, 차나무 형태·번식·이용특성·주요성분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차나무 자생지의 생육환경 특성조사를 통해 분석한 일반적인 환경과 기후적 요인, 차나무 수집지의 토양 분석 등에 관한 자료도 첨부돼 있다. 하동녹차연구소는 이같은 연구·분석 정보를 바탕으로 화개면 지역에서 수집된 특이적 야생 차나무 117개체에 대한 형태적 특성을 연구·분석해 보고서에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차 역사는 ‘삼국사기’에 ‘당나라 사신으로 간 대렴이 차 씨를 가져와 왕의 명령에 따라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화개지역은 서기 828년 차나무가 도입된 된 1200여년간 재배되고 있으며 최근 한국 차인들이 중심이 돼 화개면 정금리 지역이 차의 시배지임을 알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헌다례를 지내며 기념하고 있다. 하동 차나무는 천년이 넘는 동안 재배·생육되면서 자연 교잡과 돌연변이가 거듭돼 차나무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하동 전통 야생차농업은 지난해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돼 역사적·문화유산적 보존 가치가 높아졌다. 하동녹차연구소는 2012년 5월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로부터 ‘산림생명자원 관리기관’으로 지정됐다. 황정규 유전자원개발실장은 “이번 연구는 하동 야생차나무의 특성을 보다 실증적으로 연구·분석해 파악했다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황 실장은 “녹차연구소에서 국내육성 차 품종의 경남지역 재배 특성평가 및 하동지역 고유의 제다법을 활용한 가공 특성 등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어 국내 자생 차나무 자원의 주권강화와 신품종 육성 등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리은하 형태, 대체 어떻게 알아냈을까? - 400년의 기록

    [이광식의 천문학+] 우리은하 형태, 대체 어떻게 알아냈을까? - 400년의 기록

    숲속에선 숲의 형태를 알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의 형태가 나선팔을 가진 원반 꼴임을 잘 알고 있다. 최근에 중앙에 막대 구조가 있는 것까지 밝혀져 우리은하는 분류상 막대나선은하에 속한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은하의 형태와 크기를 알게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천문학자들의 400년에 걸친 노고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숲속에서 그 숲의 전체 형태를 잘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하 내부에 살면서 그 은하의 모양을 알아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류 중 그 누구도 우리은하 바깥으로 나간 이는 아직 없다. 우리은하의 단면적인 모습을 알려면 은하수를 보면 된다. 밤하늘에 동서로 길게 누워 가는 이 빛의 강, 은하수를 일컬어 서양에서 밀키웨이(milky way)라 하는 것은 헤라 여신의 젖이 뿜어져나와 만들어졌다고 하는 그리스 신화에 기원한다. 이처럼 일찍부터 인류와 친숙한 은하수지만, 이 은하수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놀랍게도 400년 밖에 안된다. 은하로의 먼 여정을 향해 첫 주자로 나선 사람은 17세기 이탈리아 물리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1610년 갈릴레오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원경을 은하수에 들이대어 관측한 결과, 흐릿하게 성운처럼 보이는 은하수가 실제로는 개개의 별들로 분해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리하여 갈릴레오는 은하수가 무수한 별들의 집적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하고 그것을 인류에 보고하는 영예를 얻었다. ​ ‘은하수’를 밝혀낸 철학자 그 다음 은하수에 관해 놀라운 추론을 한 사람이 1세기 후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였다. 1755년에 발표된 칸트의 박사학위 논문은 철학이 아니라 천문학 이론으로, 그 제목부터가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이었다. 하긴 그 시대는 철학과 천문학 사이에 명확한 선이 없던 때이기는 했지만 칸트의 논문은 명확히 천문학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도 우리 태양계의 생성에 관한 학설로, 흔히 성운설‘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현대 천문학 교과서에도 ‘칸트의 성운설’(Kant’s Nebula Hypothesis)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태양계 성운설을 제창한 칸트는 태양계가 만들어진 것과 같은 원리로 우리은하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즉 회전하는 거대한 성운이 수축하면서 원반 모양이 되고 원반에서 별이 탄생했으며, 은하수는 원반 위에 있는 관측자가 본 우리은하의 옆모습이라는 정확한 설명을 내놓았다. “지구가 은하 원반 면에 딱 붙어 있어 지구에서 은하수를 보는 시선방향이 우리은하를 횡단하게 된다. 따라서 지구에서 볼 때 중심부와 먼 가장자리 별들이 겹쳐져 보이므로 그처럼 밝은 띠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원반이 얇으므로 아래 위쪽은 당연히 성기게 보인다.” ​200년도 더 전에 나온 철학자 칸트의 이 같은 은하수 설명은 참으로 놀라운 예지와 직관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기도 한 칸트는 당대 최고의 우주론자로서, 우리 은하 바깥에도 우리 은하처럼 수많은 별로 이뤄진 독립된 은하들이 섬처럼 흩어져 있으며 우리 은하는 이처럼 수많은 은하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섬우주론을 주장했다. 허셜이 시도한 ‘하늘의 구축’ 칸트 다음으로 은하수 여정에 오른 사람은 칸트와 동시대인으로 천왕성 발견자인 윌리엄 허셜이었다. 은하수의 실제 모습과 태양이 은하수 내에 어디쯤 위치하는지 알아내려는 시도는 이 허셜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1784년, 그는 전인미답의 영역, 은하계 구조 연구에 착수했다. 이전의 어떤 천문학자도 시도해보지 않은 주제였다. 허셜은 이 계획을 ‘하늘의 구축’이라 이름했다. 그는 하늘을 여러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에 있는 별의 수를 헤아려 우리은하의 별 분포를 조사했다. 통계적으로 밝은 별은 가까운 별, 어두운 별은 먼 별임을 전제하고, 3400개의 성단들에 있는 별들의 수를 센 결과, 별의 분포는 타원체를 이루며 은하수에 있는 별들이 모두 3억 개라는 수치가 나왔다. 허셜은 별들이 은하수에 가까울수록 많이 밀집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태양계는 은하계의 일부분으로, 태양은 은하의 중심부분에 위치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은하계는 수레바퀴 모양의 별의 집단을 옆에서 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수레바퀴의 긴 지름이 짧은 지름의 4배라고 발표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은하수의 정체와 구조가 밝혀진 셈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은하계는 우주 안에서 별들이 모여 있는 유일한 집단이 아니며, 거대한 체계를 이루는 집단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허셜은 나아가 우주의 규모를 언급했다. 당시 가장 가까운 별들 간의 거리도 제대로 모를 시기에 그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들의 거리를 200만 광년으로 잡았다. 물론 오늘날 보면 턱없이 작게 잡은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현기증 날 만큼 어마어마한 거리였다. 사람들은 우주의 광막한 크기에 입을 딱 벌렸다. 요컨대, 허셜은 역사상 최초로 인류 앞에 광대한 우주의 규모를 펼쳐보여 주었던 것이다. 1920년에는 네덜란드의 야코뷔스 캅테인이 허셜의 방법에 따라 더 정교하게 별들의 분포를 관찰한 후, 1922년에 출간된 그의 필생 사업인 <항성계의 배열과 운동이론에 관한 최초의 시도>에서 우리은하를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별의 밀도가 감소하는 렌즈 모양의 섬우주로 묘사했다. 캅테인의 섬우주 모형에서 우리은하의 크기는 약 4만 광년, 두께가 6500광년이며, 태양의 위치는 우리은하 중심에서 2000광년 떨어진 지점이었다. 태양계의 위치는 여전히 크게 벗어난 것이지만, 우리은하의 실제 규모에 상당히 근접하는 값을 내놓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이것이 내 우주를 파괴한 편지다’ 이 허셜-캅테인 모형의 반대편에는 미국의 할로 섀플리의 우리은하 모형이 있는데, 섀플리는 1919년 늙은 별들의 집단인 구상성단들을 관측한 끝에, 그것들이 거의 구형으로 분포하며 지름이 30만 광년이고, 그 중심으로부터 태양은 약 4만5000광년 떨어져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구상성단들의 분포 중심이 우리은하의 중심이라고 보았다. 섀플리의 우리은하 모형은 허셜-캅테인 모형과는 달리 태양이 우리은하의 중심에 있지 않은 셈이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못지않은 우주관의 변혁을 가져왔다. 그러나 섀플리는 ‘안드로메다 성운’을 포함한 모든 천체가 우리 은하 안에 있으며 우리 은하 자체가 우주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이러한 섀플리의 주장은 얼마 후 에드윈 허블이라는 신참 천문학자에 의해 무참히 퇴출되었다. 1924년 허블은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변광성을 관측해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알아냄으로써 그것이 우리은하 밖의 외부 은하임을 밝혔다. 허블이 섀플리에게 자신이 발견한 결과를 편지로 알리자, 섀플리는 “이것이 내 우주를 파괴한 편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은하의 구조에 대해서는 섬우주론에서 채택한 허셜-캅테인 모형이 틀리고, 태양이 은하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섀플리 모형이 더 타당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전파로 은하중심을 헤집다 1940년대 들어 전파천문학이 발전함에 따라 천문학자들은 전파의 각 파장대의 특성을 이용한 관측으로 우리은하에 네 개의 주요 나선팔이 있으며, 이들이 어떤 분포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냈다. 그 결과, 우리은하는 전형적인 나선은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은하에 막대가 있을 거라는 주장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일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러나 확실한 관측에 바탕을 둔 주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천문학계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막대구조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은하의 중심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난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은하 중심이 눈부시게 밝을 뿐만 아니라, 은하 원반의 성간 먼지나 가스, 별 등이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산란이 적은 적외선 망원경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2005년 스피처 적외선 우주망원경이 마침내 은하 중심을 육박했다. 이 스피츠의 관측에 의해 우리은하 중심부에 2만7000광년 길이의 막대구조가 들어앉아 있음을 공식 확인했다. 그리고 우리은하의 팔도 막대구조 끝에서 뻗어나온 2개의 나선팔과, 여기서 가지치기한 2개의 작은 나선팔이 더 있는 전형적인 막대나선은하 형태임이 밝혀졌다. 이로써 우리은하 형태를 결정짓는 화룡점정이 이루어졌고, 덕분에 2005년 이후 우리은하의 형태는 막대나선은하로 확고히 자리매김되었다. 우리은하의 ‘맨얼굴’ 우리은하를 옆에서 보면 프라이팬 위에 놓인 계란 프라이와 흡사한 꼴이다. 가운데 노른자 부분을 팽대부라 한다. 거기에 늙고 오래 된 별들이 공 모양으로 밀집한 중심핵(Bulge)이 있고, 그 주위를 젊고 푸른 별, 가스, 먼지 등으로 이루어진 나선팔이 원반 형태로 회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외곽에는 주로 가스, 먼지, 구상성단 등의 별과 암흑물질로 이루어진 헤일로(Halo)가 지름 40만 광년의 타원형 모양으로 은하 주위를 감싸고 있다. 천구상에서 은하면은 북쪽으로 카시오페이아자리까지, 남쪽으로 남십자자리까지에 이른다. 은하수가 천구를 거의 똑같이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곧 태양계가 은하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은하수는 중심부가 있는 궁수자리 방향이 가장 밝게 보인다. 이 중심부에 태양질량의 약 400만 배인 지름 24km짜리 크기의 블랙홀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뿐더러, 이 블랙홀 근처에 작은 블랙홀이 하나 더 있어 쌍성처럼 서로 공전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이것은 바로 과거에 우리은하가 다른 작은 은하를 잡아먹었다는 증거다. 우리은하가 약 10억 년 전 젊은 다른 은하와 충돌, 합병하여 현재의 크기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은하의 지름은 10만 광년, 가장자리는 5000광년, 중심 부분은 2만 광년이다. 은하가 이처럼 납작한 이유는 은하 자체의 회전운동 때문이다. 이 안에 약 4000억 개의 별들이 중력의 힘으로 묶여 있다. 태양 역시 그 4000억 개 별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태양은 우리은하의 중심으로부터 2만8000광년 거리에 있으며, 나선팔 중의 하나인 오리온 팔의 안쪽 가장자리에 있다. 우리 태양계는 물론, 우리은하 전체가 중심핵을 둘러싸고 회전하고 있다. 태양이 은하중심을 도는 속도는 초속 220km나 되지만, 그래도 한 바퀴 도는 데 2억5000만 년이나 걸린다. 태양이 태어난 지 대략 50억 년이 됐으니까, 지금까지 미리내 은하를 20바퀴쯤 돈 셈이다. 앞으로 그만큼 더 돌면 태양도 종말을 맞을 것이다. 물론 인류는 훨씬 이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청정 지리산 화개골 명차 알리는 홍차축제

    청정 지리산 화개골 명차 알리는 홍차축제

    우리나라 차(茶) 시배지 경남 하동에서 홍차(紅茶) 축제가 열린다. 청정 지리산 화개골에서 생산되는 명품 홍차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올해 처음 열리는 행사로 홍차를 마시며 다례를 배우고, 시 노래를 부르고 감상하는 등 차와 함께 즐기는 자리다.5일 하동군에 따르면 오는 10일 화개면 켄싱턴리조트 하동 그랜드홀에서 홍차 축제인 ‘제1회 블랙 티데이’ 행사가 열린다. 하동 화개골에서 40여년간 차를 연구하며 생산하고 있는 대한민국 전통 홍차 명장 1호 권휘(59)씨가 지리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전통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사비를 들여 마련한 행사다.이날 행사는 ‘너와 나, 모두 함께 차 마시기 좋은 날! 화개골 홍차 지리산 물들이다’를 주제로 녹차·황차·홍차 등 대표적인 전통 차를 우려내는 법과 홍차시음, 다례 시연, 차시(茶詩) 낭송, 시 노래 공연 등으로 진행된다.김애숙 하동 대렴차문화원장이 차 자리를 펼치고, 강성금 수원 화성예다원장과 문하생들이 다례 시연과 차시를 낭송한다. 대표적인 시 노래 가수인 박경하씨가 특별 출연해 아름다운 시 노래를 들여준다. 행사를 마련하는 권씨는 “지리산 차 재배 농가의 판로확보와 지리산 명품 차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며 “해마다 10월 10일 행사를 계속 열어 1200년 전통을 이어온 지리산 차의 가치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DMZ에 묻힌 지뢰 200만발…완전히 없애려면 200년 걸린다

    DMZ에 묻힌 지뢰 200만발…완전히 없애려면 200년 걸린다

    남쪽 DMZ 52만발·민통선 이북 74만발 1㎡당 지뢰 2.3개꼴… 세계 최고 밀도 DMZ 97%는 매설여부 확인조차 못해 공병 1개 중대 200m】100m 수색에 1년 인력 확충·장비 따라 기간 앞당길 수도남북이 이달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강원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공동 지뢰 제거 작업에 착수하면서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묻혀 있는 지뢰가 점차 사라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에 맞닿은 11개 시·군, 24개 읍·면의 주민에게는 현실적인 문제다.군은 200만발 정도가 DMZ 인근의 남북 지역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국제 민간기구 ‘국제지뢰금지운동’(ICBL)도 DMZ의 경우 1㎡당 2.3개꼴의 지뢰가 매설돼, 세계 최고 수준의 지뢰 밀도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DMZ 전 지역은 6·25전쟁 이후 출입이 통제된 미확인 지대로 지뢰 매설량을 추정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게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지뢰제거연구소는 각종 군 자료를 토대로 남측에는 127만말, 북측에는 80만발의 지뢰가 묻힌 것으로 추정했다. 또 남한 지역에만 DMZ에 52만발, 민통선 이북에 74만발, 민통선 이남에 1만발이 설치된 것으로 봤다. 문제는 군이 지뢰의 매몰 현황을 파악한 ‘기확인지뢰지대’(3157만 6100㎡)보다 지뢰가 묻혀 있긴 하지만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수 없는 ‘미확인지뢰지대’(5억 7740만 5100㎡)가 훨씬 넓다는 점이다. 전체 지뢰지대 중 미확인지대가 94.8%나 된다. 특히 DMZ 내부의 경우 기확인지대가 2.7%뿐으로 사실상 모든 지역이 미확인지대다. 민통선 이북 지역은 15.4%가 기확인지대지만 역시 지뢰 매설 여부를 알수 없는 곳이 84.6%이다. 이곳은 거주 주민이 있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힌다. 100㎏ 이상의 압력을 받으면 터지는 대전차지뢰보다 밟기만 해도 폭발하는 대인지뢰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 철책선 순찰로 옆에는 ‘들어가면 죽는다’, ‘미확인지뢰지대’ 등의 경고판이 곳곳에 있다. 대인지뢰는 DMZ 인근에 90만발이 매몰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6·25전쟁부터 1980년대까지 묻은 냉전의 산물이다. 국방부는 대인지뢰 중에는 M2, M3, M14, M16A1 등을, 대전차지뢰로는 M6, M7, M15 등을 DMZ에 묻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발목지뢰로 불리는 ‘M14’는 약 40만발 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라스틱 재질로 무게가 9.4g에 불과해 폭우가 오면 유실되곤 한다. 밟으면 발목을 앗아 간다. M16A1은 밟으면 공중으로 도약해 폭발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북한의 대표 지뢰인 ‘목함지뢰’는 폭약의 파괴력이 M14의 7배다. 나무 상자에 TNT폭약을 넣었기 때문에 홍수가 나면 물에 떠서 유실되곤 한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 민간인 지뢰사고는 40건, 군 사고는 26건이 발생했다. 휴전 후부터 따지면 4000명이 넘게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 지뢰제거업자들은 11개 공병부대를 투입해 DMZ의 모든 지뢰를 제거할 경우 20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국방부는 선례를 볼때 공병 1개 중대가 가로 200m, 세로 100m의 지역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데 1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전방의 경우 지형의 굴곡이 심한 데다, 통상 금속탐지기로 수백번은 감지해야 한 개의 지뢰를 찾을 수 있긴 하다”면서도 “200년이란 기간은 전방 공병부대만 투입할 때로 인력 확충 및 최신형 장비 사용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글로벌 기업 없는 아르헨티나, 늪에 빠지다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글로벌 기업 없는 아르헨티나, 늪에 빠지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 초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직후 1827년 국가부채의 채무불이행으로 일찍이 위기에 직면한 바 있다. 이후에도 정책 난조와 대외환경의 영향으로 수많은 경제 위기를 반복적으로 경험했다.1980년대 이후만 봐도 1982년 대외부채 지급중지를 선언한 바 있고, 1989년에는 심각한 사회갈등으로까지 번진 위기를 경험했다. 199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 위기가 발생하자 어려움은 계속됐고, 1998~2002년에는 페소화 폭락과 실업, 금융시장 붕괴, 자금이탈 등 극심한 위기를 경험했다. 누적된 부채에 대한 국제투자자와의 채무 재조정에 실패하며 2014년 위기가 재발했는데, 2018년 다시 통화가치가 폭락하며 또 한번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르헨티나에 위기가 발생한 시점을 보면 비슷한 배경이 있다. 200년 전 독립선언 직후 처음 위기가 발생했을 때 아르헨티나는 런던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해 건국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초반 국제금융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영국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금리를 올리며 국제이자율이 급등하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경제가 위기를 경험한 시기는 이같이 국제금융시장에서 금리가 상승하거나 선진국 경기 활황으로 선진국 금융시장의 투자수익률이 상승하던 때다. 특히 아르헨티나 같은 경제에서 이 상황이 문제되는 것은 국채의 해외 의존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자금 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지만, 저축이 충분하지 않은 국내에서는 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주로 해외에 국채를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데, 선진국 상황이 개선되고 금리가 상승하면 이러한 자금 조달 방식이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즉 국제투자자에게 아르헨티나 같은 위험한 경제가 아니어도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안정적인 투자처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렇듯 자금의 해외 유출이 발생할 때 외화로 표시된 대외채권 형태의 국채를 갚으려면 외환이 필요한데, 결국 민간 수출 기업들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어 외환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는 수출로 외환을 벌어들여 경제 전반에 외환위기가 번지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 글로벌 기업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졸업하고 위기에서 벗어난 것도 결국 수출시장에서 외환을 확보할 수 있었던 글로벌 기업이 있었던 덕분이다. 반면 글로벌 기업이 약한 아르헨티나는 외채 부담과 외환 부족의 악순환으로 반복되는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을 선정하는데, 매출액 기준으로 2018년 글로벌 500대 기업에 삼성전자(12위)를 필두로 현대자동차(78위), SK(84위), LG전자(178위), 포스코(184위) 등 우리나라 회사 16개가 선정됐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기업은 발견하기 힘들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기업에 대한 세금 부담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노사 갈등을 포함해 각종 기업 환경 역시 열악하다고 평가된다. 지금은 반복되는 경제 위기의 대명사와 같은 오명을 쓴 아르헨티나가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원작 ‘아페니니산맥에서 안데스산맥까지’를 각색한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 리’에서 주인공인 ‘마르코’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난 엄마를 찾아 모험을 한다. 만화의 배경처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농축산업을 중심으로 세계시장에 떠오르며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페론 정부가 본격적인 대중영합 정책을 실시하면서 이후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는 기업들을 키우지 못하고 국제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져 외부 충격에 취약한 만성 위기 국가가 된다. 결국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 육성은 그 기업의 이윤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혁신해 생존하려고 노력하는 글로벌 수출 기업 없이는 국가의 외환 확보 자체가 어렵다. 그리고 외환 확보가 원활하지 않은 경제가 특히 재정이 불건전한 채 위기의 고리에 한 번 빠지면 그 악순환의 늪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고 작은 외부 충격에도 위기에 허덕이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기업 환경을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 [달콤한 사이언스] 美과학자들 “명왕성 퇴출 결정 잘못됐다” 주장

    [달콤한 사이언스] 美과학자들 “명왕성 퇴출 결정 잘못됐다” 주장

    1930년 발견 이후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 태양계 9개 행성 중 막내의 지위를 갖고 있다가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의 행성분류법 변경으로 행성 지위를 잃고 왜소행성으로 분류된 명왕성. 미국 천문학자들이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시키고 왜소행성으로 분류한 2006년의 IAU 결정이 근거 없다는 주장의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플로리다우주연구소, 애리조나 투손 행성과학연구소, 콜로라도 볼더 사우스웨스트연구소,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실험실 공동연구팀이 지난 200여년 동안 과학 논문을 분석검토한 결과 IAU의 행성분류 기준이 근거 없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천문학 분야 국제학술지 ‘이카루스’ 최신호에 실렸다. IAU는 2006년 8월 총회를 열고 ‘지름이 800㎞ 이상이며 태양을 공전할 것’ ‘지구의 1만 2000분의 1 정도의 질량을 가지며 중력이 있어 둥근 형태를 유지할 것’ 이외에 ‘자신의 궤도에서 지배적 역할을 하는 천체여야 할 것’이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이에 명왕성은 크기가 달의 3분의 2 수준이며 공전 궤도가 길쭉한 타원 모양으로 해왕성 궤도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한편 공전궤도면이 다른 태양계 행성들에 비해 기울어져 있다. 또 위성인 ‘카론’과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움직이고 있다. 이 때문에 IAU는 행성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134340 플루토’라는 왜행성으로 분류됐다. 연구팀은 지난 200년 동안 행성 분류와 관련해 발간된 모든 문헌을 찾아본 결과 명왕성을 퇴출한 근거를 언급한 것은 1802년에 발행된 단 1편의 논문 밖에 없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명확한’ 궤도라는 개념은 정의하기 어려운 비논리적 근거라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연구를 이끈 필립 메츠거 플로리다우주연구소 박사는 “행성을 정의할 때는 행성의 궤도처럼 변하기 쉬운 요건이 아니라 고유한 성질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임의적인 정의가 아니라 행성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지질학적 상태를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커비 런요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실험실 박사도 “태양계에서 지구 다음으로 복잡하고 흥미로은 행성인 명왕성을 행성에서 퇴출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미국항공우주국(NASA)가 발사한 뉴허라이즌스호가 명왕성을 탐사한 결과 명왕성의 지표활동이 상당히 활발했으며 지표에 액체가 흘렀거나 존재했을 가능성을 밝혀내기도 했다. 또 명왕성이 보유한 5개의 위성의 나이가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명왕성이 태양계 외곽의 카이퍼벨트에 있는 천체들을 끌어당겨 위성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천문학계에서는 이번 연구를 비롯해 미국 천문학자들이 지속적으로 명왕성의 지위 회복과 관련한 연구결과를 내놓는 것은 명왕성이 미국인 과학자 클라이드 톰보가 발견한 유일한 태양계 행성이기 때문에 다시 행성의 지위로 올리려고 하는 여러 시도 중 하나라고 보는 분위기이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브라질 ‘인류 유산’ 화마가 삼켰다… 유물 2000만점 잿더미 위기

    브라질 ‘인류 유산’ 화마가 삼켰다… 유물 2000만점 잿더미 위기

    소화전 고장 호수 물 퍼날라 초기진화 실패 여성 해골 ‘루치아’ 등 상당수 소실된 듯 테메르 대통령 “비통한 날”… 각계 ‘절망’“브라질 국민에게 비극적인 날”, “과거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 브라질의 국보급 문화재가 소장된 200년 역사의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이 2일(현지시간)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불탔다. 인류 유산으로 꼽히는 소장 문화재 상당수가 소실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브라질 각계에서 절망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국 BBC방송, AP통신 등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의 여성 해골 ‘루치아’ 등 2000만점에 달하는 소장 유물의 상당수가 소실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화재는 박물관 관람 시간이 종료된 오후 7시 30분 시작됐으며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브라질 정부는 3일 현재까지도 피해 상황을 공식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티아나 세레주 부관장은 “남미에서 가장 큰 자연사 박물관이자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브라질의 과학과 역사, 문화 소장품들이 이곳에 있다”고 말했다. 올해 200주년 기념 행사도 연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은 1818년 건립됐으며 포르투갈 왕족들이 거처하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의 인류 해골부터 미이라, 화석, 운석 등 자연사적 연구 가치가 높은 유물부터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돔 페드로 1세의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예술품 등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인류 유산들이 보관돼 있다. 리우 소방청은 초기 화재 진압에도 실패해 국립박물관이 불타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주변 소화전들이 작동하지 않아 주변 호숫가에서 물을 길어 진화에 나섰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트위터에 “200년 넘은 브라질의 지식과 연구 성과, 작품들을 잃게 됐다”며 “브라질 국민에게 비통한 날!”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국립박물관 측은 테메르 정부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긴축 정책으로 과학·문화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박물관이 황폐해졌다는 울분을 쏟아냈다. 또 다른 부관장인 루이스 두아르테는 현지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지금 파괴돼 버린 이 유산들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싸워 왔다. 이제 엄청난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물관이 최근 브라질개발은행(BNDES)과 계약을 맺고 화재 예방 예산을 마련했다는 사실도 드러나면서 “끔찍한 아이러니”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의 역사와 문화가 통째로 ‘재’가 됐다는 통탄이 쏟아지고 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베르나드 벨루 프랑쿠는 이날 “이 비극은 국가 자살 행위로 과거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탄식했다. BBC방송은 “브라질 국민들은 불에 탄 국립박물관 사태를 치솟는 범죄율과 폭력, 경제 쇠퇴, 정치적 부패 등 브라질이 처한 총체적인 위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뉴스 in] 200년 된 브라질 국립박물관 ‘큰불’

    [뉴스 in] 200년 된 브라질 국립박물관 ‘큰불’

    2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국립박물관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2000만점에 달하는 브라질의 국보급 문화재와 예술작품 상당수가 소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리우의 밤을 태운 국립박물관은 정확히 2세기 전인 1818년 건립됐다. 현지에서는 초동 화재 대응에 실패한 미셰우 테메르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브라질의 200년 역사와 문화 유산이 잿더미가 됐다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 ‘200년 역사’ 브라질 국립박물관 큰불…“브라질 비극의 날”

    ‘200년 역사’ 브라질 국립박물관 큰불…“브라질 비극의 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에 2일(현지시간) 오후 7시 30분쯤 큰불이 발생했다. 1818년 지어진 이 박물관은 한때 왕족이 거처하기도 한 유서 깊은 곳으로, 소장품이 2000만여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돔 페드로 1세가 가져온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가공 예술품이 다수 보존돼 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의 해골 ‘루치아’, 1974년 발견된 운석 등 진귀한 소장품이 많다. 화재는 폐관시간에 난 데다 불이 자면서 20개 소방서에서 소방관 80여명이 출동했지만 대응이 늦어 유물 상당부분이 소실됐을 우려가 크다. 화재 원인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0년 된 브라질국립박물관 대형 화재, 2000만점 소장품 소실될 판

    200년 된 브라질국립박물관 대형 화재, 2000만점 소장품 소실될 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브라질 국립박물관에 2일 밤(이하 현지시간) 대형 화재가 일어나 2000만점 이상의 소장품이 모두 소실될 위험에 처해 있다. 얼마 전 200주년 기념식을 치른 이 박물관은 식민 시절 포르투갈 왕가의 관저로 사용됐던 곳이며 현재 이 나라의 과학 관련 시설로는 최고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날 저녁에 폐관한 뒤 화재가 시작돼 건물 전체로 급격히 번졌다. 건물 안 인테리어에 목재가 많이 쓰인 데다 종이 문서들도 많아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화재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아직 다치거나 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첼 테르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트위터에 “모든 브라질 국민에게 슬픈 날”이라며 “우리 역사의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게 될지 잴 수조차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현지 방송인 TV 글로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물관 국장은 “문화적 재앙”이라고 비통해 했다. 이집트 유물도 적지 않고, 자연사 관련 소장품 중에는 공룡 화석들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 된 1만 2000년 전 여성의 두개골 등이 있었다. 박물관 직원들은 오래 전부터 기금이 자꾸 삭감되고 건물 상태가 너무 노후하다고 우려를 표시해왔던 것으로 현지 언론은 전했다. 영국 BBC는 2년 전 리우올림픽에 막대한 에산을 쏟아부은 결과 연방 정부의 재정난이 심각해 정부가 박물관 운영 기금을 계속 삭감한 것이 화재를 불러온 이유 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고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유럽 음식에 새겨진 이슬람의 흔적들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유럽 음식에 새겨진 이슬람의 흔적들

    서양 음식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언제였을까. 단골로 언급되는 순간은 1492년, 바로 신대륙이 발견된 해다. 미국의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즈비는 당시 벌어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 인적, 물적 교류를 두고 ‘콜럼버스의 교환’이라 이름 붙였다. 말이 좋아 교환이지 실제로는 일방적인 수탈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유럽 세계와 신대륙의 문화적 충돌 이후 세계 식문화 지형도는 크게 변했다. 유럽, 그러니까 구대륙에서는 구경도 하지 못했던 토마토, 감자, 옥수수, 고추 등 신대륙의 작물이 유입됐고 이들은 이내 유럽인의 식탁을 점령했다.‘콜럼버스의 교환’은 문화 간 충돌이 대개 비극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식문화의 관점에서만 보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후의 영향을 덜 받고 비교적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구황작물인 감자와 옥수수로 인해 유럽은 만성적 기근을 버틸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고추나 토마토 같은 작물은 식단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피멘톤이라 불리는 고추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재료 중 하나며 남미가 고향인 토마토는 비록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먹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신대륙 발견 말고도 식문화의 극적인 순간은 또 있었다. 두 문화 간의 뿌리 깊은 반목의 역사로 인해 자주 간과되는,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충돌이다. 기독교 문화권으로 대표되는 유럽 음식의 근원을 찾다 보면 많은 부분이 이슬람 식문화와 연관이 있음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유럽의 전통 음식 중 튀기는 요리, 달콤한 디저트, 증류한 술,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이용한 음식 그리고 형형색색 음식에 물을 들여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음식 등은 대부분 이슬람 문화에 빚을 지고 있다. 유럽에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가장 깊게 새겨져 있는 곳은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의 남쪽 섬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약 200년, 이베리아반도는 무려 780년 동안 무슬림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두 지역이었을까. 이유는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두 지역은 유럽에서 북아프리카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무슬림들의 안마당이었던 북아프리카와 가깝다는 건 쉽게 건너갈 수 있었다는 것과 동시에 기후도 비슷하다는 의미도 된다.한국인이 외국에 정착해 살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김치를 담그는 것이다. 배추와 고추가 있으면 좋으련만 없으면 직접 심고 키워야 한다. 낯선 땅을 점령한 무슬림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향의 뜨겁고 건조한 기후와 비슷한 그곳에 그들이 먹는 작물을 심었다. 대표적인 것이 레몬과 오렌지, 가지, 아몬드, 대추야자, 쌀 등이다. 이베리아반도와 시칠리아 두 지역의 식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이다. 스페인 발렌시아가 쌀로 만든 요리인 파에야와 오렌지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가 레몬과 아몬드로 유명한 건 이 때문이다. 이슬람 문화는 두 지역의 식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숨이 멎을 정도로 달콤한 디저트 문화는 무슬림이 남겨준 대표적인 유산 중 하나다. 달콤함에서 오는 쾌락을 죄악으로 여기던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 문화에서 달콤함은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하나의 목표였다. 음식 역사학자 레이첼 로던은 무슬림을 두고 ‘현세의 쾌락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낙원에서 누릴 기쁨의 예시로 여겼다’고 설명한다. 과일과 벌꿀에서 달콤함을 얻은 기독교인들과 달리 무슬림들은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설탕을 가공해 갖가지 디저트를 만들었다. 단맛에 눈뜬 유럽인들이 훗날 아프리카 노예를 동원해 신대륙에서 대규모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인류가 ‘인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는 걸 당시의 무슬림은 짐작이나 했을까. 무슬림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증류기술이다. 증류는 무슬림들이 선호하는 향수나 의약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됐다. 무슬림의 증류기술을 알게 된 유럽의 연금술사들은 액체를 증류해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데 열정을 다했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생명의 물’로 불리는 독한 증류주였다. 지금이야 유흥을 위해 독한 술을 즐기지만 당시에는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진귀한 약이었다. 위스키, 보드카, 테킬라, 코냑 등 오늘날 애주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증류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마시는 걸 율법으로 금한 무슬림의 기술과 연금술사의 황금을 향한 열정이 빚어낸 산물인 셈이다. 이 역시 무슬림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소형 서점’ 갈까요… 우선 책으로 서점 여행부터 하고요

    책골남은 2주 전 “무더운 여름, 잠깐 시간 내 서점으로 독서 여행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요”라는 뻔한 제안을 했습니다. 책은 골라 주지도 않느냐는 비난이 나올 듯해 이번 주에는 ‘서점’ 관련 책을 골라 봅니다.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는 많은 책을 둘러 볼 수 있지만 좀 심심하죠. 165㎡(50평) 이하 규모 서점을 총칭하는 ‘소형 서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동네에 있는 소형 서점은 ‘동네 서점’ 혹은 ‘지역 서점’이라 하고, 소규모로 출판하는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소형 서점은 ‘독립 서점’이라 부릅니다. 서울의 매력적인 소형 서점을 알려 주는 책으로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컴인)을 추천합니다. 일본 누마북스의 대표 우치누마 신타로와 아사히 출판사의 편집자 아야메 요시노부가 서울의 소형 서점을 둘러보고 쓴 책입니다. 큐레이션이 뛰어난 마포구 ‘땡스북스’와 자매가 맥주를 팔며 운영하는 ‘북바이북’,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서대문구 ‘유어마인드’를 비롯한 소형 서점 14곳과 출판사·북카페 16곳을 다룹니다. 저자들이 지난 4월 한국에 왔을 때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국 소형 서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능숙하게 활용한다”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잘 지내나요? 도쿄 책방’(책읽는수요일)은 도쿄에 있는 소형 서점을 소개합니다. 도쿄는 전 세계에서 오프라인 서점 비율이 가장 높지만, 한편으론 서점이 사라지는 속도도 가장 빠릅니다. 이런 가운데 살아남은 소형 서점을 안내합니다. 일주일에 책 한 권을 판매하는 ‘모리오카 서점’은 이미 한국에서도 유명하죠. 독립출판물 출판사와 서점을 함께 운영하는 ‘시부야 퍼블리싱 앤드 북 셀러스’를 포함해 독특한 서점 10곳을 담았습니다.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앨리스)도 읽어봄 직합니다. 일본 22곳의 소형 서점을 소개합니다. 죽은 사람을 위한 추천 도서를 알려 주는 ‘겟쇼쿠 서점’을 시작으로 창업 200년을 맞은 ‘홋코샤’까지, 시간 내어 찾아가볼 만한 곳이 가득합니다. 서점을 모두 방문하기는 어려우니 우선 책으로 여행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런! 결국 이번 주에도 이상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무더운 여름, 잠깐 시간 내 책으로 서점 여행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요.” gjkim@seoul.co.kr
  • [와우! 과학] 세계서 가장 오래된 3200년 전 치즈 발견…어떤 맛?

    [와우! 과학] 세계서 가장 오래된 3200년 전 치즈 발견…어떤 맛?

    고대 이집트 왕국의 첫 수도였던 멤피스에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치즈가 발견됐다. 수 천 년전 치즈가 발견된 곳은 고대 이집트 왕국이 존재하던 당시 멤피스의 시장을 지낸 프타메스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2010년 카이로 남부의 고대 공동묘지 터인 사카라 사막에서 100여 년 만에 재발굴 된 것이다. 당시 유물 발굴 팀은 프타메스의 무덤에서 다양한 유물을 발굴했는데, 여기에는 흰색으로 굳어진 고체가 담겨있는 항아리가 포함돼 있었다. 항아리는 위쪽 입구가 천으로 덮여 있었고, 내용물을 보관하는 용도였던 것으로 추측됐다. 이후 이탈리아 카타니아 대학 연구진이 항아리 속에 들어있던 흰색 고체를 용해해 내용물을 분석한 결과, 흰색 고체가 소나 양, 염소의 우유로 만들어진 유제품인 치즈류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 치즈가 32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치즈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항아리 위에 천을 덮었다는 것은 이것이 천 밖으로 새어나올 수 있는 액체가 아닌 고체 형태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광분석 등 현대 기술로 분석한 결과, 항아리 속 물체는 고체 형태의 치즈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연구진이 또 한 가지 주목한 것은 3200년 전 치즈가 함유하고 있던 박테리아다. 이 치즈에는 브뤼셀라 속의 일종인 말타열균(brucella melitensis)이 포함돼 있었다. 말타열균은 파상열(브뤼셀라증)을 유발하는 박테리아로, 양이나 염소를 매개로 사람에 감염된다. 감염될 경우 고저를 반복하는 고열이 지속되는 파상열에 걸릴 수 있다. 치사율은 낮지만 최소 6개월의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3200년 전 치즈에서 발견된 박테리아가 지금까지 발견된 것중 가장 오래된 말타열균 생체 분자 흔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 쓰인 유물 샘플은 2013~2014년 카이로 대학의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며, 프타메스는 당시 멤피스의 시장이자 국방장관의 역할까지 겸임한 이집트 고왕조의 고위 관료였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와우! 과학] “뇌 냉동해 200년 후 새 삶”…비용은 얼마?

    [와우! 과학] “뇌 냉동해 200년 후 새 삶”…비용은 얼마?

    “200년 후 새로운 세상에서 새롭게 살아볼 수 있을 것” 영국의 한 유력 사업가가 8만 파운드(한화 약 1억 1300만원)을 들여 사후 뇌를 냉동하는 서비스에 신청했다고 고백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스타의 13일 보도에 따르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60대 후반의 유력 사업가는 자신이 현재의 몸으로 사망한 뒤 200년 이내에, 지금의 뇌를 전혀 다른 사람의 몸과 연결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뇌 냉동 서비스를 신청했다. ‘극저온학’(cryogenics)으로 불리는 이것은 인체냉동보존술로도 알려져 있다. 시신이나 신체 일부를 보존하기 위해 냉동하는 기술이며, 이중에서도 뇌 보존은 냉동보존술이 성취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로 꼽힌다. 이 영국 사업가는 데일리 스타와 한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날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왜 시도도 해보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며 “모험을 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나는 200년 혹은 2000년 후에 다시 깨어날 것을 대비해 많은 돈을 투자해 놓았다. (뇌 냉동술로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인체냉동보존은 미국에 본사가 있는 두 그룹이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한 곳은 애리조나에 있는 알코르생명연장재단이고, 또 한 곳은 미시간에 있는 냉동보존연구소(CI)다. 알코르생명연장재단의 경우 이미 1000명이 비용을 지불하고 사후 인체냉동을 신청한 상태며, 신체 전체를 냉동하는데 드는 비용은 25만 5000달러(한화 약 2억 9000만원) 선이다. 이곳에는 이미 149명의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냉동돼 있으며, 이중에는 극저온술로 냉동된 최연소 인간인 태국 국적의 2세 아이 시신도 보관돼 있다. 냉동보존연구소의 비용은 조금 더 저렴하다. 이곳에서는 현재 1인당 2만 8000달러(한화 약 3200만원)을 받고 인체냉동보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이 연구소에는 환자 160명과 반려동물 100마리 이상이 냉동보존돼 있으며, 사후 냉동보존을 계획한 가입자만 2000명에 달한다. 냉동보존연구소 책임자인 데니스 코왈스키(49)는 “언젠가 인류는 냉동보존 상태에 있는 시신을 되살리고 줄기세포 기술로 다시 젊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인체냉동보존술로 냉동된 최초의 인간은 앞으로 50~100년 안에 소생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진=123rf.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아내의 맛’ 함소원, 결혼 반대했던 시아버지와 만남 ‘잔뜩 긴장’

    ‘아내의 맛’ 함소원, 결혼 반대했던 시아버지와 만남 ‘잔뜩 긴장’

    ‘아내의 맛’ 함소원이 결혼 전 반대가 극심했던 시아버지와 첫 만남을 갖는, 긴장감 넘치는 현장을 선보인다. 7일 방송되는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이하 ‘아내의 맛’) 10회 방송분에서는 함소원과 진화의 결혼을 결사반대했던 시아버지를 처음 만나는 모습이 담긴다. 이와 더불어 시어머니를 통해 함소원에게 선물을 보냈던 둘째 누나와 4살 조카까지 상봉하는 극적인 장면을 펼쳐내는 것. 무엇보다 지난 방송에서 함소원은 남편 진화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시어머니를 만나,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전하며 안방극장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눈물을 쏟아내며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드러낸 함소원과 그런 함소원과 같이 눈물을 글썽이다 이내 함소원을 다독이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펼쳐지면서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들었던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함소원은 시어머니와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시아버지와 영상 통화로 처음 인사를 나눴던 터. 시아버지는 당시 정산을 마친 후 쌓여있는 돈다발을 보여주며 “얼마면 되냐. 내가 돈 보내둘게. 며느리가 다 써라”고 말하는 등 결혼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며느리 사랑을 표현해 시선을 모았다. 이와 관련 함소원의 시아버지는 위아래로 명품을 휘감은 것은 물론 최신 유행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패션니스타의 면모로 한국 공항에 등장,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더욱이 시아버지는 함소원과 어딜 가든 “며느리가 먹고 싶은 거 다 사”라며 과일이며 먹거리를 박스째 대량 구입하는 대륙의 통 큰 시아버지 포스로 현장을 들썩였던 상태. 심지어 임신한 며느리를 위해 준비한 축하선물이라며 가방에서 계속 두둑한 빨간 봉투를 꺼내들어 궁금증을 돋웠다. 과연 시어머니가 함소원에게 선물한 200년된 가보에 이어, 시아버지가 건네는 빨간 봉투의 정체는 무엇인지 호기심을 높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날 방송에서는 시아버지의 입맛을 공략하기 위해 함소원이 준비한 요절복통 시루떡도 공개된다. 시어머니와의 만남 당시 무너졌던 명예 회복을 위해 요리에 다시 도전한 함소원이 떡을 좋아하는 시아버지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직접 시루떡 만들기에 도전한 것.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대접했던 다 타버린 밥을 생각하며 떡에 넉넉하게 물을 부었던 함소원이 완성된 시루떡을 썰기 시작하자, 떡에서 계속 물이 나오는 진기한 현상이 펼쳐져 주위를 경악케 했다. 함소원이 공들여 만든 시루떡이 ‘물시루떡’이 돼버리고 만 순간, 직접 요리를 본 시아버지의 반응이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낼 전망이다. 제작진은 “호쾌한 웃음과 함께 나이를 무색케 하는 자태로 등장, 제작진을 놀라게 했던 함소원의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향한 통 큰 애정까지 보이면서, 현장을 감탄으로 들끓게 했다”며 “함소원이 시어머니에 이어 시아버지에게도 합격점을 받고 진정한 가족의 탄생을 이룰 수 있을지 기대해 달라”고 전했다. 한편, TV조선 ‘아내의 맛’은 7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TV조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이모가 남긴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반세기 전 한 가족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뒤로 드문드문 들어선 새하얀 양옥 주택, 젊은 부부와 두 어린 아이가 함빡 웃는다. 1970년대 초 울산의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 사택이다. 막내의 가슴에는 유공유치원 이름표가 달랑거린다.울산에 정유공장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단지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사택 단지나 사원 아파트가 함께 조성되었다. 서구에서 온 엔지니어들은 공장과 함께 사택과 클럽을 조성하고, 유치원과 볼링장, 실내 수영장도 운영했다. 도심의 사원 아파트에는 무료 셔틀버스가 시간마다 운행되었다. 사택이라고 하면 탄광촌이나 철도 관사 등이 쉽게 떠오르지만, 노동자들의 살림집으로 회사에서 공급하는 주택(社宅)도 있다. 앞서 소개한 옥타비아 힐의 아버지가 추종했던 200년 전 영국 사람 로버트 오언(초상화·1771~1858)은 대개 공상적 사회주의자이자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전에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들의 주거를 기업의 주된 과제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최초의 실험을 한 인물이다.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계곡 골짜기의 뉴 래나크에서 말이다. “오언은 그전에 맨체스터에 있었어요. 같은 산업혁명 상황이라고 해도, 맨체스터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후에 엥겔스(1820~1895)가 나쁜 주거 환경을 묘사해서 보고서를 낸 곳이죠. 소셜리스트라는 말로 워낙 알려졌지만, 오언은 도시를 만드는 것, 타운 플래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에요. 도시 계획 자체가 오언에게는 자신의 사회적 이념을 적용한 것입니다. 오언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면 그 사람이 처한 환경 문제로 들어가서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오언은 웨일스 대장장이의 아들로, 9살 때 런던으로 상경해 포목점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면 방적 산업이 폭발적으로 커지던 맨체스터로 옮겼고, 20대 초에는 작은 공장을 인수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맨체스터에서 철학과 문학 클럽을 드나들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도 키워 나갔다. 20대 말인 1800년엔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산골로 들어가 뉴 래나크 면 방적 공장을 인수했다. 당시 발명된 리처드 아크라이트(1732~1792)의 수방적기를 도입해 데이비드 데일(1739~1806)이라는 기업가가 차린 공장이었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의 여러 공장이나 탄광이 그렇듯, 수력을 기계 동력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낙차가 큰 물 근처에 공장을 두어야 했고, 클라이드 강의 수려한 계곡이 바로 그랬다. “맨체스터에서 왜 래나크로 갔을까. 맨체스터에서 스스로 일하면서 노동자들 현실을 봤겠죠. 산업 혁명에 따른 문제를 풀지 못할 문제라고 보느냐, 아니면 풀 수 있느냐, 거기에서 두 길이 나뉘는 거예요.” 오언이 래나크로 간 것은 사랑에 빠져서였다. 데이비드 데일의 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출신의 격차가 컸다. 장인의 환심을 사려고 기업의 주주가 된 것이다. 공장을 인수하고 보니, 운영이 문제였다. 인근 주민들은 전통적인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공장에 출퇴근을 할 생각이 없었고, 기술자들은 먼 도시에 살았다. 공장에는 교회 구빈원에서 노동력이랍시고 보낸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과 일에 별 의욕이 없는 떠돌이 임시 노동자들뿐이었다. 돈만 생기면 술 마시고 뻗어 버리는 노동자들을 구타하거나, 적게 먹는 아이들을 초과 노동시키면서 영국은 위대한 산업화를 이루어 내는 중이었다. 몸집이 작고 손가락이 가는 아이들은 거대한 방적기 아래를 드나들며 실오라기를 줍고 실을 잇는 데 동원되었다.오언은 맨체스터 생활을 접고 뉴 래나크로 이사를 갔다. 그는 뉴 래나크에서 일하려고 먼 곳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반듯한 집과 더 많은 월급을 먼저 주기로 했다. 공장 곁에 사택을 조성해 한 가족이 한집에서 살게 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지 않아도 되었고, 노동자들은 출퇴근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일이 줄어도 월급을 주고, 하루에 8시간만 노동하게 했다. 마을 안에 매점을 조성해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도록 했는데, 월급은 적게 주면서 공산품은 턱없이 비싸게 팔아 두 배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식민지에서나 모국에서나 제국의 기업가들이 꾀한 기본 모델이었다. 1817년에 오언은 뉴 래나크에 노동자 자녀와 고아들을 위해서 영국 최초로 초등학교를 두었다. 오언의 경영 방식은 해마다 더 높은 수익률로 되돌아왔지만, 다른 주주들은 노동자를 위하느라 기업주의 이익을 줄인다며 투자에 훼방을 놓았다. 오언은 1813년에 반대자들의 주식을 몽땅 사 버렸다. 이후 10여 년간 이 산골 공장 마을은 유럽 곳곳의 정치가, 왕족의 방문 행차를 맞았다. 방문객들은 청결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에 만족한 활기찬 노동자들이 사업성을 높이고 수익 목표를 달성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한번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목도하고 대단히 놀랐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고 소개한 글이 1817년에 발표한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이다. “오언의 상상도는 뉴 래나크를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글로 썼는데, 나중에 그림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거죠.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엄청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도시가 그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그걸 직접 해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아닌가. 가난한 노동자에게 베풀어야겠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달라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찾은 거지요. 물론 이상 도시 계획은 그전에 르네상스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언이 다른 점은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산업, 기계 시대에 먹고사는 문제하고 연결한 거죠. 그리고 권력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해 냈어요.” 오언은 실업의 원인을 기업주들의 잘못된 수익 목표에 두었다. 나폴레옹 전쟁(1804~1813)을 거치면서 영국의 공장은 기계화되어 엄청난 공산품을 생산했지만 전쟁이 끝나고서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아 결국 불황이 닥쳤다. 그러자 기업주들은 노동자부터 대량 해고해 버렸다. 경기에 따라 해고되고 취업되는 노동자들은 결코 기술을 쌓거나 기계를 이기지 못한다. 오언의 대안은 인구 1000명 안팎의 작은 일자리 공동체를 많이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언론에 실리면서 환영과 함께 맹렬한 비난도 받았는데, 먹고살 만한 노동자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아서 결과적으로는 실업 빈민 수가 더 급증할 것이라는 위협이었다.아무리 수익성으로 증명해 보여도 기업주들의 욕심이 멈추지 않는 데 질린 오언은 1925년에 큰 이익을 본 뉴 래나크를 매각했다. 그 돈으로 한 건축가와 함께 만든 도면과 모형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워싱턴 하원에서 모형을 전시하고, 마침내 인디애나주의 개신교 정착촌 뉴 하모니에서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어중이떠중이 몰려든 사기꾼과 알코올 중독자들은 월급만 받고 일하려 들지 않았다. 뉴 래나크에서 25년 동안 모은 재산을 2년 만에 날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오언에게 공상가라느니, 협동주의 운동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하원에서 발표한 오언의 개념도는 이렇다. 네 방향의 반듯한 도로와 텃밭에 둘러싸인 블록이 있다. 블록 한가운데에는 공공시설과 어린이집, 각급 학교, 공동 부엌, 강당, 클럽, 도서관과 종교 시설이 들어간다. 야외는 녹지로 조성되어 운동과 여가 장소로 이용된다. 블록의 세 변에는 노동자를 포함한 4인 가족마다 방 4개짜리 주택들이 계획된다. 나머지 한 변은 독신자와 고아 숙소, 먼 곳에서 놀러 온 친지나 가족들을 위한 손님방, 교사나 의사의 관사, 공동 창고가 들어선다. 한쪽 도로 건너편에는 이들이 노동할 공장이나 회사가, 반대쪽 건너편에는 입주민들에게 식량으로 공급될 논밭과 과수원이 배치된다. 공장과 주거, 곧 사택 단지 사이에는 키 큰 나무를 심어 적절히 분리한다. “그 그림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공상적이었는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현실적인 거죠. 오언은 미봉책으로 조금조금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새로 만들어서 해결해 보자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이런 내용을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잘 몰랐어요.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말을 언제부터 쓸 수가 있었느냐고요.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서로 얘기를 못했잖아요.” 오언의 계획은 이후 여러 추종자들을 거쳐 20세기 미국과 일본, 수많은 근대 국가에서 실현되었다. 그를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가르쳤던 우리의 학교도 바로 그렇게 조성된 사택 단지나 아파트 안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오언은 공상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뉴 래나크라는 공장에서, 동시대 현실에서 직접 마주친 문제를 해결해 보았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갔을 뿐이다. “우리가 196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에 도시 주택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도 어떻게 보면 피상적이에요. 서구 사례에서 대응하기 쉬운 짝을 찾아서 사지선다형처럼 고르려고 한 거지 문제의 본질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요. 결과물로 나온 도시의 모양은 비슷한데, 근본적인 해결이 나오지는 않아요.”사택 살던 아이들이 그렇듯 이모네 가족도 이모부의 전근에 따라 몇 년 후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들의 주소는 사택이 아니라 강남의 아파트가 되었다. 오언의 개념도가 착실하게 실현된 200년 후 대한민국의 귀결은 협동조합이나 화폐 없는 공동체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서 월급보다 더 큰 재미를 보았다.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오언을 따른다며 사택을 짓고 특정 종교나 생활 방식을 강요하려 든 기업주도 역사상 많았다. 강점기 일제 관료의 사택은 문화재가 될지언정, 우리 노동자의 공단 사택과 클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됐다. 주택 청약권이 아니라 노동자가 이사하지 않고 일터 가까이에 거주할 권리, 회사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를 따질 수는 없었을까. 새벽 5시부터 30도를 오가는 날, 아득하게 펼쳐진 아파트 숲 사이를 매일 1시간 넘게 땀 흘리며 출근해야 하는 신도시 노동자들은 벌써 피곤하다.
  • [정대화의 더 정치] “文, 국회에 손 내밀 때다…밥이 되고 예술이 되는 정치를 위해”

    [정대화의 더 정치] “文, 국회에 손 내밀 때다…밥이 되고 예술이 되는 정치를 위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에는 사람이 밥으로만 살지 않는다는 모범 답안이 준비돼 있다. 그러나 유심론적으로는 정답이지만 유물론적으로는 오답이다. 세상에서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사람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모든 선택을 포기하며 자기와 가족의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생을 건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범 답안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됐을 때만 정답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예외일 뿐이다.우리 사회가 근현대사 200년의 질곡에서 벗어났다는 진단에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홍경래 난이나 진주민란이 일어났던 조선 후기의 혼란기가 아니다. 대한제국 말기의 망국적 위기를 맞아 동학전쟁을 벌이고 의병운동을 조직했던 풍전등화의 시기도 아니다. 참혹한 일본 제국주의 지배에서도 벗어났고 분단과 전쟁의 고통도 일부 세대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전후의 보릿고개도 옛말이 됐다. 그런 우리가 느닷없는 노회찬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고 원내교섭단체의 대표이고 진보정치의 아이콘이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유명 인사였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공의 반열에 오른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직은 이 사건의 황망함과 비통함이 가시지 않아 다른 생각의 겨를이 없지만, 그의 죽음은 많은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다. 소리 없는 아우성. 이 시구가 우리 시대의 현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옛날 석가모니가 구중궁궐 밖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했던 것처럼 우리는 급속한 근대화가 가져다준 풍요의 그늘에 가려진 수많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고 있다. 휴전 6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60만명의 젊은이를 전장으로 내모는 휴전선의 긴장감, 하루가 멀다 않고 터져 나오는 노동전선과 교육전선의 외침, 재벌 대기업에 억눌린 중소기업가들의 고달픔, 최저임금을 둘러싼 저임금 노동자와 배고픈 자영업자들 사이의 갈등. 선진국의 문턱에 선 한강의 기적은 도처에서 아우성을 동반하고 있다. 국회도 예외가 아니다.국회는 인류 역사가 발명한 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제도다. 민의의 전당이자 주권 기관으로 불리는 이 창조적 발명품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이래로 인류사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군주제, 사법제, 행정관료제, 상비군 등 수많은 근대의 발명품 중에서 국회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발명품은 없다. 그러나 이 위대한 발명품도 한국 땅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작동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로 불린다. 전쟁의 역사가 파멸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타협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는 전쟁과 타협의 변증법적 관계의 역사다. 한때 사람들은 중국의 삼국지나 서양의 십자군처럼 싸웠다. 그 시절 전쟁은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지만 근대 이후에는 총칼을 내려놓고 국회에서 말로 승부를 가르는 무기 없는 새로운 전쟁 방식으로 대체됐다. 정치적 상상력이 최고도로 발휘된 성과다. 그러나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돼 버리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이 발명품이 불량 수입품 취급을 받고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도 있고 싸우면서 큰다는 말도 있다. 마음에 새겨야 할 소중한 교훈이다. 그러나 성숙함을 동반하지 못하는 아픔은 고통일 뿐이며 성장을 동반하지 못하는 싸움은 파멸을 부를 뿐이다. 싸우더라도 요령 있게 싸워야 하는데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울리는 종인지 의문스럽다. 혹 목적 없이 싸우는 싸움닭이 돼 버리거나 구경꾼들을 위해 싸우다 죽는 싸움개가 돼 버리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그러나 나는 싸움을 백안시하는 관점에는 결단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신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신의 나라가 아닌 이상 싸움은 불가피하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들마저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 사이의 싸움은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다만 싸우면서도 타협의 여유를 발휘하면서 한 번의 싸움을 또 다른 싸움을 위한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지혜는 반드시 필요하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 남는 것은 죽음뿐이니까 싸움의 철학과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 장면으로 오버랩되고 있다. 첫째, 이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무지와 무능과 독단의 폐해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국정 운영의 새로운 모범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감은 행정부 수준에서만 유효할 뿐 국회와 사법부 영역에서는 여전히 구정권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처음이자 끝이고 사법부는 민주주의 보루라 할 수 있는데, 새 정부의 의지가 삼권의 영역으로까지는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쪽짜리 민주주의라는 말이다.둘째, 예정에 없던 남북 관계와 외치가 국정 운영의 방향타로 작동하면서 정부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반면 내치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기 어려운 정책 집행의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 구조화된 사회문제가 일거에 해결돼야 한다고 성화를 부릴 상황은 아니어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하겠지만 기다림에는 시한이 있는 법이다. 정부 임기 5년은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고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은 5년보다 더 짧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문재인 정부는 선거로 탄생했지만, 구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촛불이다. 헌법에도 선거법에도 없는 촛불혁명이 이 정부의 모태라는 사실을 다시금 재확인하고 이 원리가 국정 운영에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늘 강조하는 것처럼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을 중심에 놓고, 국민의 뜻에 따르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촛불정신이다. 촛불은 물과 같아서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고 전복시키기도 하는 것처럼 촛불 또한 권력을 만들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더구나 촛불은 작은 바람에도 쉬이 꺼진다.드디어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됐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 필요한 것은 오버랩된 세 장면을 하나로 묶어 내는 일이다. 대통령이 국회로 가서 국회와 타협하는 장면이 필요하다. 그 타협이 협치든 개혁연합이든 연립정부든 무방하다. 국회가 구시대의 폐습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지 않도록 정치적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대통령이 강한 나라는 단기적 효율성이 있고, 국회가 강한 나라는 장기적 지속성을 갖는다. 대통령은 리더십으로 강해지고 국회는 타협으로 강해진다. 정치에서 타협은 최적의 해법을 모색하는 예술과도 같은 것이다. 이 장면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회가 만들어지고, 부진한 내치에 돌파구가 만들어지고, 촛불이 지속된다면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500년 역사의 조선은 건국 200년 만에 임진년, 병자년 양란으로 허리가 꺾인 후 영·정조 시대의 마지막 시도가 실패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후 19세기와 20세기의 역사는 나라에는 굴욕이었고 백성에게는 고통이었다. 해방 이후에 우리가 겪은 분단과 전쟁과 독재의 역사는 그 일부였다. 다행히 굴욕과 고통의 역사를 중단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했다. 면면히 이어진 민주화의 흐름이 그 동력을 제공했고, 최근의 한반도 상황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우리가 미구에 마주하게 될 역사는 민주화를 넘어 민족 통일을 완수하고 우리 민족이 다시금 세계사의 일원으로 재등장해 단절된 민족사를 복원하게 될 원대한 역사다. 그리하여 우리를 대륙으로부터 단절시켜 한반도의 남쪽 섬으로 고립시킨 70년 분단 구조를 해체하고 유라시아와 소통하는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구상이 가능하게 됐다. 정치가 밥이라면 이보다 풍요한 밥상이 다시 있겠는가.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미래는 먼 후일의 일이 아니라 후일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자의 오늘의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그 길이 열리고 있고 문재인 정부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지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가 여의도 좁은 바닥에 갇힌 이념 구도와 지역 구도에서 벗어나 한반도와 동북아의 시각을 갖게 된다면 이 타협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역사적 타협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도 밥이 되고 예술이 되는 정치를 기대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상지대 총장직무대행
  • 페달 없는 자전거부터 초경량 합금 자전거까지…자전거 200년의 역사 한 눈에

    페달 없는 자전거부터 초경량 합금 자전거까지…자전거 200년의 역사 한 눈에

    1817년 독일 발명가 칼 폰 드라이스 남작은 희한한 것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녀 눈길을 끌었다. 두 개의 바퀴로 돼 있고 작은 안장이 장착돼 발을 구르며 움직이는데 시속 14㎞라는 제법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장치였다. 바로 핸들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자전거 ‘드라이지네’였다. 그 이후 페달이 장착되고 타이어에 공기가 들어가는 등 눈부신 발전을 해 최근에는 탄소나노소재로 만든 가볍고 튼튼한 산악용 자전거, 대나무 자전거, 접이식 자전거 등 다양한 자전거들이 선보이고 있다. 과학사가들은 자전거의 역사는 탈 것의 역사 뿐만 아니라 소재기술, 기계기술의 총합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국립과천과학관과 송강재단은 27일부터 오는 10월 28일까지 3개월 동안 과천과학관 특별전시관에서 지난 200여년 동안 자전거의 발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세계 희귀 자전거 총집합’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자전거 105대가 전시된다. 1817년 최초의 자전거 드라이지네, 페달이 처음 부착된 벨로시페드(1867년), 뒷바퀴로 방향을 조정하는 까뮤 벨로시페드(1868년) 등 19세기에 만들어진 초기 자전거들도 38대나 전시된다. 이 자전거들은 2009년부터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송강재단 구자열(LS그룹 회장) 이사장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 밖에도 1878년 파리 세계만국박람회에 출품된 르나르 프레르 자이언트 하이 휠 자전거, 2인승 세 바퀴 자전거로 세계에서 가장 큰 소셔블 삼륜자전거(1875년),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서 사용하던 접이식 군용자전거(1910년), 소방관들이 사용했더 소방용 자전거(1925년)도 전시된다. 구자열 이사장은 “소장하고 있는 자전거 300여대 중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고 가장 귀한 자전거들을 골랐다”면서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자전거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자전거가 사람에게 주는 혜택을 체험해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전시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에서는 자전거를 움직이는 과학 원리와 가상현실 자전거 체험은 물론 어린이들이 상상하는 미래 자전거 그림 공모전도 열릴 예정이다. 또 전시장 주변에서는 대한자전거연맹이 안전하게 자전거 타기 문화 확산을 위해 교통신호 및 표지 알기, 안전한 장비 착용과 타는 방법 등을 교육하는 ‘자전거 안전 체험교실’도 운영할 예정이다. 배재웅 국립과천과학관장은 “자전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전시회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았다”며 “200년 자전거 역사를 한 눈에 보면서 환경 오염 없는 친환경 탈거리인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서재를 떠나보내며(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더난출판 펴냄) 올해 구텐베르크상 수상자이자 현재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인 저자가 70여개의 상자에 자신의 책 3만 5000여권을 포장하며 느낀 소회를 담은 에세이. 서재를 해체하고 책들을 상자에 집어넣는 과정 속에서 문학이 갖는 힘에 대해 사유한다. 240쪽. 1만 4000원.곽재구의 신新 포구기행: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곽재구 지음, 해냄 펴냄) 바닷가 마을을 여행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전한 책 ‘곽재구의 포구기행’ 출간 이후 15년 만에 다시 포구마을을 찾은 곽 시인의 신작 기행 산문집. 서귀포 보목포구, 욕지도 자부포 등 포구마을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했다. 368쪽. 1만 6800원.잘돼가? 무엇이든(이경미 지음, 아르테 펴냄)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를 통해 평단과 관객의 관심을 모은 영화감독 이경미의 첫 번째 에세이. 영화 촬영 에피소드, 가족과의 대화, 외국인 남편과의 연애 및 결혼 과정 등 내밀한 기록을 담았다. 256쪽. 1만 4000원.시간여행자를 위한 고대 로마 안내서(필립 마티작 지음, 이지민 옮김, 리얼부커스 펴냄) 서기 200년 고대 로마의 모습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담은 안내서. 간단한 라틴어 회화, 로마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 꼭 봐야 할 관광지, 쇼핑할 만한 장소와 품목까지 자세히 실었다. 268쪽. 1만 6000원.그리움으로 가는 편지 1~3권(이서연 지음, 한강 펴냄) 이서연 시인이 2002년 8월부터 2005년 7월까지 영국 노팅엄에서 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홀로 한국에 있던 남편에게 보낸 이메일 237통을 엮었다. 각 권 354·415·438쪽. 각 권 1만 6000원.
  • ‘아내의 맛’ 함소원, 200년 된 가보 선물 받고 눈물 ‘감동’

    ‘아내의 맛’ 함소원, 200년 된 가보 선물 받고 눈물 ‘감동’

    ‘아내의 맛’ 함소원이 시어머니에게서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200년 된 가보 선물을 받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7일 방송된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이하 ‘아내의 맛’)에서는 함소원과 진화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던 시어머니의 솔직한 마음이 담겨 시선을 모았다. 딸 셋을 낳고 어렵게 얻은 아들 진화가 국적도 다른데다 나이도 18살이나 많은 함소원과 결혼하겠다는 것을 쉽게 수락할 수 없었다는 것. 뭉클한 가족들의 화해가 펼쳐진 가운데, 영상 통화를 통해 시아버지가 보여주는 대륙스케일의 며느리 사랑이 더해지면서 안방극장을 감동케 했다. 이와 관련 오는 24일 방송되는 TV조선 ‘아내의 맛’에서는 함소원이 시어머니로부터 진화 집안 대대로 며느리들에게 내려오는 특별한 선물을 받는 모습이 담긴다. 함소원은 ‘원조 불 맛 요리’로 진수성찬을 차리느라 피곤했을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위해 족욕을 준비했던 상황. 그리고 시댁 식구들과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붙인 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세 여인만의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시어머니가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들고 나타났던 것. 이미 첫 만남부터 남다른 대륙 스케일의 선물 보따리를 풀어냈던 시어머니가 케이스를 열고, 그 안에 또 다른 케이스를 열어 꺼낸 물건이 스튜디오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다름 아닌, 진화 집안 대대로 간직해온 200년 된 가보 은팔찌였던 것. 자그마치 200년 세월 동안 진화 집안의 며느리들에게 전해 내려온 은팔찌는 함소원의 시어머니조차 20대 초반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후 30년째 간직한 존귀한 물건이다. 귀한 가보를 이제 아들의 반려자인 함소원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시어머니의 마음이 현장의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결혼에 앞서 시댁의 반대로 마음의 상처가 있던 함소원은 이날 시어머니에게서 은팔찌를 전수 받으며 정식으로 며느리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뭉클함을 내비쳤다. 또한 시어머니는 가보를 건네며 며느리 함소원에게 당부를 전해 함소원은 물론 보는 이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던 터. 며느리에게 가보와 함께 건넨 시어머니의 말은 무엇일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날 방송에서는 ‘대륙의 시어머니’다운 진화 어머니의 주량도 공개됐다. 함진 부부와 시댁 식구들이 제주도 특색요리인 해물찜을 먹던 도중 도수가 세다는 제주도 소주를 접하게 되는 모습이 담기는 것. 특히 평소 60도짜리 고량주 3병을 마셔도 끄떡없을 정도로 센 주량을 자랑했던 시어머니는 제주도 소주 첫 잔을 원 샷 한 후 연달아 소주 3잔을 마시며 내뱉은 한마디로 스튜디오를 초토화시켰다. 제작진은 “시댁의 반대를 이겨내고 사랑을 지켜온 함진 부부가 이번 시댁과의 만남들 통해 진정한 부부로 허락을 받는 모습으로 감동을 전했다. 특히 200년 된 가보를 건네는 순간에는 현장의 모두가 숙연해졌다”며 “함진 부부와 시댁 식구들의 만남 그 마지막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TV조선 ‘아내의 맛’은 오는 24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TV조선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