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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대통령 11월 방소 확실/정부소식통

    ◎한·소 수교따라 고르비 방한도 논의/이달내 상주대사관 교환 개설/경협회의도 앞당겨 월내 세목 확정 정부는 1일부터 한소간 국교가 수립됨에 따라 올 11월중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방문을 실현키로 하고 외교경로를 통한 구체협의에 착수했다. 정부는 특히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으로부터 방문초청을 받은 최호중 외무장관을 이달말쯤 모스크바를 방문케 해 노 대통령의 방소에 따른 현지 정지작업 및 정상회담에 앞선 양국 외무장관간 실무회담을 갖게 할 방침이다.〈관련기사 2·3·4면〉 이와 함께 셰바르드나제 장관도 내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서울방문과 관련해 연내에 방한,우리 정부관계자들과 협의할 것으로 알려져 한소간 정치·외교관계는 수교를 계기로 급진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양국 외무장관은 이보다 앞서 1일 상오 1시15분(한국시간) 뉴욕 유엔본부서 가진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이날자로 양국간 대사급 외교관계를 85년 만에 정상화시켰다. 양국은 수교시기가 이처럼 예상보다 앞당겨짐에 따라 이달중 상주대사관 교환개설을 완료하는 것을 포함,수교 이후의 후속조치도 당초계획보다 앞당겨 추진해나갈 방침이다. 이에 따라 오는 26일부터 서울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2차 양국 정부대표단간 경협회의는 예정보다 열흘 정도 빠른 15일을 전후해 열려 경협의 구체적 세목을 확정짓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수교날짜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진 것은 양국 정상의 회담필요성도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한다』고 전제,『가능한 한 11월중 모스크바에서 한소정상회담을 개최,동북아정세 및 남북한 관계에 관해 집중논의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 “유엔서 만나자” 셰바르드나제 언질로 급진전

    ◎크렘린의 문 열리기까지/“두 외상에 달렸다” 소,연내 수교 암시/「상항대좌」 이후 꾸준한 접촉이 주효한 셈 ○…한소 양국간의 첫번째 외무장관회담에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까지에는 지난 6월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간의 사상 첫 한소정상회담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 양국 정상은 샌프란시스코회담에서 국교수립 원칙에 합의했고 그후 상호 친서교환을 통해 이같은 정신을 거듭 확인함으로써 한소간 수교교섭이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부관계자들의 설명. 특히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 때 처음 인사를 나눈 공로명 주소 영사처장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외교담당 고문인 도브리닌 전 주미 대사가 정상회담 이후 수차례 접촉을 가졌던 것이 주효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결심을 앞당길 수 있었다는 후문. 이에 따라 한소 수교에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소련 외무부도 태도를 일변해 수교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는 것. 최호중 외무장관도 1일 셰바르드나제 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을 끝내고 국내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양국간 정식 외교관계 수립은 지난 6월4일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오늘 공식화에 합의하게 된 것』이라면서 수교의 결정적 계기가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이었음을 거듭 강조. 최 장관은 『노태우 대통령께서 긴 안목을 갖고 북방정책을 적극 추진한 결과 오늘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언급. ○…한소 수교에 대한 소련측의 확고한 의중은 지난 8월초 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 보좌관과 이정빈 외무부 제1차관보 등 정부대표단이 제1차 한소정부대표회담을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우리측에 전달됐다는 후문. 소련 외무부내에서 실력자로 알려진 겐리크 키레예프 아시아 사회주의제국 담당국장이 우리 대표의 숙소를 비밀리에 찾아와 양국 수교문제에 대해 『그것은 시간적인 문제』라고 확실한 언질을 주었다는 것. 당시 우리 대표단이 소련측의 비상한 관심사인 경협규모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소련정부의 고위관리가 이처럼 확언할 수 있었던 것은 소련정부가 이미 한국과의 수교 자체를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냐는 분석. ○…소련측의 이같은 입장은 지난달 3일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직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던 제2차 아태지역 대화·평화·협력 국제회의에 참석한 모스크바 주재 외교사절들과의 회동석상에서 표면화.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이 자리에 참석한 공 처장과 박철언 전 정무장관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이 제의한 「93년 아태지역 외무장관회담」을 공 처장이 지칭해 『93년까지 기다릴 것없이 이번 유엔총회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내가 최 장관의 회담제의(2월15일)를 잊은 줄 아느냐. 유엔에서 만나자』고 수락의사를 밝히며 연내수교 합의의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 또 키레예프 국장은 9월 중순쯤 공 처장을 소련 외무부로 초치,유엔에서의 한소외무장관회담을 정식 통보하면서 『양국 외무장관이 수교에 바로 합의할 수 있으며 시기는 문제될 것 없다』고 적극성을 보이면서 『두 장관이 하기에 달려있다』고 소련측의 최종입장을 전달. ○…이같은 적극적인 입장과는 달리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최 장관과의 회담에서는 수교날짜 문제에 있어 여러가지 일정을 이유로 내년 1월1일부터 발효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정식국교를 수립함에 있어 유예를 두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즉시 발효를 주장하는 최 장관과 잠시 실랑이. 이때 최 장관이 이날 유엔에 세계 78개국의 총리급 이상 정상이 참석하는 「아동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을 빗대 『미래의 동량인 아동들을 위해 정상회담이 열린 뜻깊은 이날로 정식국교를 맺도록 하자』고 거듭제의하자 셰바르드나제 장관도 『좋다.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들을 위한 정상회담이 열린 이날 국교를 맺는 것으로 하자』고 선뜻 응해 즉시 발효가 이뤄졌다고. 소련측은 이날 준비해온 러시아로 된 코뮈니케에 수교일자를 91년 1월1일로 명기했는데 양국 장관은 그 위에 검은 글씨로 90년 9월30일이라고 고쳐쓴 후 서명. 우리측은 회담시작 때까지 소련측이 수교일자를 내년 1월1일을 고집하는 바람에 공동코뮈니케 문안의 수교일자를 내년 1월1일로 된 것과 빈칸으로 남겨놓은 것 등 2가지를 준비. 양국 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소련 타스통신기자가 『수교일을 내년 1월1일이라고 해놓고 왜 바꿨느냐』고 러시아어로 질문하자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최 장관에게 귓속말로 이를 설명해주었고 최 장관은 이에 『그것은 우리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여기있는 사람들(배석한 회담 실무대표들)의 잘못』이라고 웃으면서 답변해 좌중은 한동안 폭소. 최 장관은 코뮈니케에 서명한 후 배석한 공로명 영사처장을 셰바르드나제 장관과 폐트로프스키 차관에게 소개하면서 『미스터 앰버서더(대사)』라고 격을 높여 호칭했는데 이는 대사관개설과 대사파견을 서두르자는 의사표시였다는 해석. ○…이번 회담의 우리측 실무진들은 소련측 실무진들과 하루에 1차례씩 유엔 건물내나 뉴욕시내 식당에서 만나 사전협의 절차를 가졌는데 한 실무관계자는 『의사소통이 이상스러울 정도로 잘돼 이심전심의 심정으로 일을 추진했다』고 소개. 그는 『협의과정에서 우리측이 하고 싶은 말을 소련측이먼저하는 등 손발이 맞았다』고 설명. 이같은 분위기는 양국 외무장관회담 석상까지 이어져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최 장관에게 커피와 크림을 직접 따라주는 등 회담이 시종 친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속에 진행.〈뉴욕=한종태 특파원〉
  • 수교까지의 협상 일지

    ▲88.1=소련 서울올림픽 참가 공식 발표. ▲88.8=서울올림픽 관련 소련영사단 방한. ▲88.4=소 연방 상공회의소 서울사무소 및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모스크바사무소 상호 개설 ▲88.6=김영삼 민주당 총재 방소. ▲88.11=한소 영사처 교환설치 합의. 사실상의 영사관계 수립. ▲90.2=주모스크바 영사처 개설. 최호중 외무 한·소외무장관회담 제의. ▲90.3=주한 소련 영사처 개설. ▲90.3=한소 정기항공노선 개설 합의. ▲90.3=김영삼 민자당대표 최고위원·박철언 정부 제1장관 등 고위당정대표단 방소. 김 대표와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면담. ▲90.6.4=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소정상회담. ▲90.7=한·소 정상간 친서 교환. 정부대표단 교섭에 합의. ▲90.8.2=제1차 한·소 정부대표간 공식회담 개최(모스크바) 제2차 서울회담 개최에 합의. ▲90.10.1=한·소 수교 발표.
  • “우리측 설득으로 「즉시 발효」 합의”/최호중외무 1문1답 요지

    ◎정상 교환방문 조석 실현 의견일치/한·중 관계개선에 긍정적 영향 기대 『이번 한소 양국 수교는 7·7선언 이후 끈질기게 추구해온 북방정책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한 것입니다』 30일(현지 시각) 한소 수교에 서명한 직후 최호중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수교의 의미를 이같이 설명하고 국민과 더불어 이같은 외교적 성과를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최 장관과의 일문일답 요지. ­당초 소련측은 수교 발효일자를 내년 1월1일자로 하자고 했다는데 수교 발효일자가 이 날로 앞당겨진 배경은. 『소련측은 당초 해가 바뀌는 의미깊은 날인 내년 1월1일자로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같은 올바르고 정당한 일을 하는데 이를 주저하거나 늦출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합의 당일 발효시키자고 소련측을 설득해 왔다. 지난 27일 일본·인도네시아가 공동주최했던 아태지역 외무장관 만찬에서도 셰바르드나제 장관에게 우리의 이같은 입장을 강하게 전달했고 오늘 회담을 통해 합의를 보게된 것이다』 ­양국 정상의 교환방문 문제는. 『원칙적으로 완전합의를 봤다. 그러나 일단 양측이 모두 귀국후 대통령께 보고해야 할 필요도 있고 해서 앞으로 외교경로를 통해 적절히 상호 편리한 일자를 전달키로 했다. 다만 가능한 한 조속히 교환방문을 실현하자는 데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한국측의 유엔 가입방안 설명에 대해 소련측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소련은 아직까지는 북한의 입장을 많이 염려해서 모처럼 남북대화도 이뤄지고 있는 만큼 남북간에 서로 합의를 보도록 노력해줄 것을 희망해 왔다. 우리로서도 이 문제가 고위급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는 만큼 10월 평양의 제2차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을 설득해 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우리 힘만으로는 모자랄 수 있으니 소련 등 다른 나라들이 북한을 설득해 주기를 바란다. 현재 유엔 총회에서 우리나라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각국 대표들의 발언이 잇따르고 있고 유엔의 권능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만큼 우리도 마땅히 유엔에 가입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이런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명백히했다』 ­수교 합의 형식을 의정서가 아닌 공동코뮈니케로 하게 된 이유는. 『형식에 대해서는 나라에 따라 중요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의정서는 오히려 중요도가 낮다」는 소련측의 설명도 있고 해서 코뮈니케로 하기로 일찍이 합의했었다』 ­경협문제 논의는 어느 정도 이뤄졌는가. 『상대방도 전혀 제기하지 않았고 우리도 제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경협문제는 전혀 얘기하지 않고 수교에 합의하게 됐다』 ­지역정세에 대해서는 어떤 협의가 있었는가. 『시간이 짧아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못했다. 다만 한소 관계개선이 한반도 평화정착 및 동북아와 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얘기를 나눴다. 특히 소련측에서는 북한과의 관계가 한소 수교로 인해 나쁜 영향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오늘 수교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중대지침」은. 『오늘 수교가 바로 지침대로 실현된 것이다. 오늘자로 수교에 합의하고 발표한 것이 바로 그 지침이다』 ­오늘 수교가 한중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우리는 항상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 수교가 한중 관계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한소 수교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예상되는데 소련측이 이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가. 『소련측은 우리나라와의 관계개선이 북한 때문에 저해받는 일은 없다는 것을 이번 회담뿐아니라 과거 정상회담이나 그간의 접촉과정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일·북한 관계개선 문제에 대해 소련측의 언급이 있었는가. 『오늘 회담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다』
  • 소­일 외무장관 회담/올 안 개최키로 합의

    【유엔본부 로이터 연합】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과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 일본 외무장관은 28일 소·일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오는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고 나카야마 장관의 대변인이 밝혔다. 소련과 일본은 2차대전 종전 시 소련이 점령한 일본북방 4개도서를 둘러싼 영유권분쟁 때문에 지금까지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이 대변인은 또 셰바르드나제 장관과 나카야마 장관이 2차대전 이래 최초인 소련 국가원수의 일본방문을 준비하기로 합의했으며 두 장관들이 나카야마 장관의 오는 12월 중순 방소계획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내년 4월 일본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다.
  • 북방외교의 최대 결실/한·소 수교 공동성명 발표의 의미

    ◎한반도 긴장완화의 새 받침대/한·중 관계개선도 급진전될듯 한소 외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첫 공식회담에서 양국간 국교수립에 관한 공동코뮈니케 서명·발표 사실은 우리 외교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북방외교의 종착역이 대소 수교인 데다 양국간의 관계정상화는 앞으로 국제정세,특히 동북아 질서재편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소 수교는 우리 북방외교가 큼직한 결실을 거뒀음을 뜻한다. 또한 양국 수교는 화해와 협력이라는 탈냉전·신데탕트 사고를 동북아에서 다시한번 입증,실천하는 외교적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수교는 특히 지난 6월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간에 한소 수교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지 4개월여 만에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한소 수교는 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활발한 접촉을 벌이고 있는 한중간의 관계개선에도 매우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관계개선 문제에 있어 소련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왔던 중국으로서도 한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자체 내부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형상 「하나의 조선」 논리를 포기한 북한의 대일 수교협상 제의는 한중 관계개선과 맞물려 돌아간다는 측면에서 한중 관계가 지금보다는 빠른 행보로 급진전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중 양국이 오는 16일부터 영사기능을 부여하는 무역사무소를 교환설치키로 한 것도 양국 관계의 급진전을 예고하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한소 수교는 또한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의 비망록 공개에서도 드러났듯이 단기적으로는 소·북한 관계의 급속냉각으로 남북 관계에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남북 관계개선과 이에 따른 한반도 긴장완화 및 평화통일 분위기 조성에 상당부분 기여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도 주변상황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냉엄한 국제현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보이며 단적인 증거가 바로 일·북한 관계개선 움직임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따라서 한소 수교는 이같이 남북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과 함께 정치적 측면에서도 소련이 더이상 북한 편향적인 사고방식을 취하지 않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남북한을 공평하게 바라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소 수교로 양국은 이제 『상주대사관을 언제 설치하고 대사를 누구를 임명하는지』 등에 관한 실무문제만 남은 셈이며 양국 정상간의 교환방문 문제에도 아무런 걸림돌이 없게 되었다.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양국 정상 교환방문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으나 빠른 시일내 추진하는 데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아 노 대통령의 연내 소련 방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의 방한도 내년 봄으로 예정된 일본 방문을 전후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소 관계는 수교를 분기점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제협력분야는 소측에서 강력히 원하고 있는 만큼 수교에 곧이어 체결되는 투자보장협정·2중과세방지협정등 대소 투자에 따른 안전보장책이 마련되는 즉시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 같다. 때문에 오는 10월26일쯤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제2차 한소정부대표단회담에서는 이들 협정에 대한 마무리와 함께 우리측이 제공할 대소 차관규모를 최종 확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이 최근 들어 이처럼 대한 수교를 서두르고 있는 데는 소련 경제의 심각성,북한과의 일정한 거리유지,아·태지역 특히 동북아지역에 대한 영향력 행사 등이 주요 동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소련입장에서 이번 수교를 보면 꾸준하게 경협파트너로 의사를 타진해봤던 일본이 지나칠 정도의 이해타산만을 추구하자 이같은 일본의 태도에 실망감을 느낀 나머지 한국과 꾸준한 접촉을 한 결과 『그래도 한국은 경협파트너로서 믿을 만하다』는 최종 판단을 내리고 한국측의 「선수교 후경협」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소련은 외교적 무례를 일삼는 북한에 대해 식상한 데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그동안의 자세를 포기하고 대한 수교를 강행한 것으로도 생각된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대한 수교를 통보하기 위해 지난 2,3일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밝힌 북방 4개 도서에 대한 일본측 입장지지 및 소련내 15개 공화국의 분리자치독립과 이들 공화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의사 천명 등은 소측에서 볼 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소련이 최근 셰바르드나제 장관을 통해 오는 93년 아·태외상회담을 제의한 것이나 아·태지역의 경제협력체인 APEC(아·태각료회의)에의 가입의사를 계속 피력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태지역에서의 확실한 위상확보전략에서 연유한다. 결국 이번 한소 외무장관간의 뉴욕회담은 양국간 실질협력을 위한 「기반 다지기」를 충분히 달성했으며 북방외교의 또다른 목표인 중국과의 관계정상화 및 남북 관계개선,나아가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세계 거의 모든 외상들이 모여 있는 유엔본부에서 한소 수교를 공식 발표했다는 사실은 다른 유엔회원국들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음은 물론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한껏 과시한 것으로도 평가된다.〈유엔본부=한종태 특파원〉
  • 한­소,역사적 국교수립/오늘 새벽 「수교공동성명」 발표/유엔본부서

    ◎최­셰바르드나제 양국 정상 조속 교환방문 실현 합의 【뉴욕=한종태 특파원】 한국과 소련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소 양국은 30일 낮 12시(한국시간 10월1일 상오 1시) 유엔본부에서 역사적인 첫 한소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수교 공동코뮈니케에 정식 서명,발표했다. 최호중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이날 유엔본부 2층 안보리 회의실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된 회담에서 수교문제를 합의한 뒤 안보리 의장실로 자리를 옮겨 공동코뮈니케 서명식을 갖고 이어 안보리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양국간 수교는 한중 및 남북 관계개선과 이에 따른 한반도 긴장완화,동북아정세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이 서명한 수교성명문은 『대한민국과 소연방 사회주의인민공화국은 양국 관계발전 및 국제적 평화분위기 고양을 위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다』고 돼 있다. 이로써 양국 장관은 지난 6월4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한소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정상화에 원칙적인 합의를 본 이후 4개월여 만에 수교를 달성했다. 양국 장관은 이날 수교문제와 함께 양국 정상의 교환방문 문제도 논의,적절한 시기를 골라 빠른 시일내 이를 실현시킨다는 데 의견접근을 보았다.〈관련기사 2·3면〉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연내 소련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내년봄 예정인 방일을 전후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 장관은 또 남북 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 및 국제정세 등 상호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반도 긴장완화 및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북한의 개방이 필수적이라 보고 이를 위해 양국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기로 했다. 양국 장관은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 가입에 북한측이 성의있는 자세를 보이도록 촉구키로 했다. 양국 장관은 경협문제와 관련,양국의 기본입장을 설명하고 오는 10월26일쯤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제2차 한소정부대표단회담에서 대소 차관규모를 확정하는 한편 투자보장협정·2중과세방지협정 등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날의 수교형식과 관련,『유엔에서의 실무접촉을 통해 소련측이 공동코뮈니케 방식을 제의해와 우리측은 아무런 이의없이 수락했다』고 밝히고 『소련 외무부측은 이에 앞서 지난 21일쯤 공로명 주소 영사처장을 통해 모종의 수교문서에 서명하자는 뜻을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소련측은 공동코뮈니케 방식이 수교형식의 수준으로 볼 때 수교의정서에 대한 서명방식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담에는 한국측에서 현홍주 주유엔대표부 대사·공로명 주소 영사처장·나원찬 외무부 구주국장·정의용 대변인·권종락 주유엔대표부 참사관·이수혁 외무부 동구1과장,소련측에서 보론초프 주유엔 대사·피아드체프 외무부본부 대사·팔라즈첸코 외무부본부 참사관·게레시네프 주유엔 참사관·예르몰로프 외무부 한국담당참사관 등이 각각 배석했다.
  • 「하나의 조선」·「배상」등 북한·일 선언 중시

    ◎정부,일에 공식해명 요구/「두개의 조선 반대」 북한 변화여부 주목/유엔 가입·남북대화에 활용/“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선언” 일,비공식통보 정부는 북한·일본간의 조기수교 등 「8개항 공동선언」과 관련,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설명을 듣고 북한의 반응 등을 종합분석한 뒤 필요할 경우 대북·대일·대유엔 정책을 수정,보완키로 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일·북한 접근을 대북 개방 및 남북 관계개선에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관련기사 3면〉 정부는 이에 따라 우선 북한 노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당 등 3당이 합의,발표한 8개항의 공동선언문이 「조선은 하나」 「대북사죄」 「대북배상」 등 3개 부분에 있어 한일간의 사전합의사항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음을 중시,일본 정부에 공식해명을 요구하고 만약 일본정부의 일방적인 대한반도정책 변경으로 판명되면 중대한 외교적 조치를 포함한 대일정책을 수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일본측이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방북기간중 합의한 공동선언문의 구체적인 사항은 일본정부와 사전에 의견이 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며 조속한 시일내에 북한과 수교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수교 이전에 북한에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것임을 외교채널을 통해 분명히 통보해옴에 따라 성급한 대북배상은 남북대화 활성화 등에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환기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와 함께 북한이 일본과 수교를 제의하는 과정에서 『대일수교 제의는 「두개의 조선반대」라는 기존정책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밝혔다는 일본 당국의 전언에 따라 오는 10월5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유엔가입 문제와 관련한 고위급회담 실무접촉에서 이를 확인,남북한 유엔동시가입 또는 남한 단독가입을 북한이 반대할 이유나 명분이 없음을 분명히할 방침이다. 외무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29일 일본정부의 이같은 북한 입장변화전달과 관련,『5일의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북의 태도를 보면 북한이 실제로 정책을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오는 10월10일의 「조선 노동당 창건 45주년」 기념식에서 북의 성명을 보면 북의 변화여부는 더욱 확연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10월16일 평양에서 열릴 남북고위급 2차 본회담 등에서도 이같은 점을 적시,북한이 두개의 「조선」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기본전제 위에서 남북간 교류와 협력에 적극 호응할 것을 촉구할 방침이다.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일·북한 관계개선이 중장기적으로는 남북한 교차승인,남북 관계개선,북한의 개방에 기여할 것으로 보나 현시점에서의 관계개선 방향이나 속도는 한일간,한미,미일간 긴밀한 사전협의아래 ▲남북대화 촉진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 ▲테러 및 대남적화의사 포기 등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조절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공동선언문」에서 「조선은 하나」라고 표명하면서도 일본과의 조속한 수교를 합의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유엔동시가입 반대,한반도에서의 두개의 실체 불인정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두개의 조선반대」를 포기하는 등 자체모순과 혼란을 빚고 있다고 말하고 5일의 판문점 실무접촉 반응과 10일의 노동당 창당 45주년 기념식상에서의 대외노선전환 여부 등을 지켜본 뒤 남북고위급 평양 2차 본회담에 임하는 우리의 대응전략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이원경 주일 대사로 하여금 10월1일 일본정부 고위인사와 만나 「8개항 공동선언」에 대한 해명을 요구토록 훈령을 내렸다.
  • 10월 평양 총리회담 준비상황 보고받아/노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은 28일 하오 청와대에서 강영훈 국무총리를 비롯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 7명으로부터 오는 10월16일부터 시작되는 제2차 평양회담에 관한 대책과 준비상황 보고를 들었다.
  • 한반도에 「교차승인」 기운 감돈다/북한·일본 급속접근의 파장

    북한이 27일 일본에 국교정상화 협의를 제의,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과의 수교는 「2개의 조선」을 인정,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해온 북한이 갑작스레 태도를 돌변,수교협상을 제의하고 나온 데 대해 갖가지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접근하고 있는 데서 오는 고립감 탈피가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으나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2개의 조선」 반대정책을 포기했느냐는 점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을 정리해본다. ◎도쿄의 반응/“수교 앞세워 경협흥정 치중” 의구심/한·소 수교 견제 전술적 전환 시각도 북한의 전격적인 대일 수교제의는 일본에도 큰 충격파를 던졌다. 전혀 「예상밖의 사태」로서 각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제안의 배경에는 어떤 판단이 작용했는가,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관계전문가들은 그 저의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외무성은 자민·사회 양당 북한방문단과 동행한 가와시마 유타카(천도유) 아시아국 심의관으로부터 상세한 귀국보고를 들은 뒤 대응책을 결정할 방침이다.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북한·일본간의 사상 첫 정부레벨 접촉인 외교 실무담당자 협의에서의 제안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천용복(북한 외교부 부부장)=곧바로라도 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자. ▲가와시마 유타카=그렇다면,(북한의) 방침이 변했다는 것이냐. ▲천=그렇다. ▲가와시마=지금까지 한반도에 2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반대해오지 않았는가. 동·서독은 분단국가이면서도 통일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북과 남을 2중 승인하고 있는 국가가 84개국이나 되지 않는가. 일본 외무성은 이같은 북한의 대일정책 전환의 요인으로서 다음 3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한국의 활발한 북방정책에 의한 소련·동구제국과의 눈부신 관계진전에 압도되어 있는 점. 둘째 어린이들의 영양부족마저 지적되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궁핍. 셋째 지난 9월 초순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으로부터 한국과의 국교수립방침을 통고받고 충격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북한의 정책전환에 대해 일본 외무성 수뇌는 27일 밤 『북한의 지금까지의 공식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을 기초로 자주·자립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일본 정부의 한반도정책에 대해 『한국 일변도로 북한에 적대정책을 취하고 있다. 분단고착화를 위한 한·미군사동맹에 가담하고 있다』는 등 격렬하게 비판해왔다. 이번 일본의 북한방문단이 평양에 도착한 당일인 지난 24일 밤 조선 로동당 주최 환영연에서도 국제부장인 김용순은 인사말을 통해 「2개의 조선」을 합법화하는 것에 의한 한반도 분단고착화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며 종전의 원칙론을 고수하고,한국과의 국교수립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일 국교정상화 제안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같은 북한이 일본측에 대해 국교정상화 교섭을 제의한 것은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한편,『통일의 깃발은내리지 않지만 당분간 정책을 변경,경제중심으로 힘을 쌓아 한국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기에 김일성 주석의 78세라는 나이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이 건재해 있을 때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김 주석이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했던 것도,한국과의 경제관계를 착실하게 확대해나가고 있는 중국에 대해 『최소한 중국만은 배신하지 않도록 못을 박아두려 했던 것』(외무성 간부)이 아닌가 보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 「2개의 조선」 불인정은 「국시」와 같은 것이다. 그 근간에 영향을 미치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문제와 대일 국교정상화는 응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북한은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다나카(전중) 내각시절인 지난 72년을 계기로 『한·일기본조약의 파기가 북한·일본 국교정상화의 전제』라는 방침을 완화,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유연한 자세를 취했던 일도 있다. 그러나 그후 관계개선은 기대했던 것 만큼 진전되지 않았으며,78년 일본 사회당의 아스카다 이치오(비조전일웅)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국교정상화를 거부,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제와서 느닷없이 국교정상화를 제의한 배경에 대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한·소 국교수립을 앞두고 한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술적 전환」이라는 것이다. 30일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소외무장관회담에서 양국의 국교수립은 결정적인 사실로 되어 있으며,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과의 경제교류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을 취해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국제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후계자인 김정일에의 정권이양이 원활하게 될 수 없다는 고도의 정치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유력하다. 또 외무성에는 『북한측에는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호 석방과 때를 맞춰 일본측으로부터 배상·청구권 문제 등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속히 끌어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차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게오(경응)대오고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북한의 진의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함으로써 배상을 빠른 시일내 받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일본은 국교정상화가 안된 상태에서는 북한에 보상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으며,정상화 교섭 없이는 대규모 경제협력을 얻기도 힘들다. 따라서 우선 국교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형식을 내놓았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일본과 국교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한편 시즈오카(정강)대학 이즈미 겐(이두견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지난 연초부터 줄곧 일본과의 관계개선 준비를 해왔다. 일본의 국내정치가 당시 안정되지 못해 시간이 걸렸던 것뿐,의외성은 없다. 북한측은 배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교수립이 전제가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북한의 논리로는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더라도 「2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일본이 북한을 적시하지 않고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라도 국교를 맺는 것은 가능했다.북한은 기본자세를 변치 않고 있다. 일본이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오해」가 풀린다면 분단고착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국교수립이라는 것이 된다. 다만 교섭은 쉽사리는 진전되지 못할 것이다. 우선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 국내의 합의조성이 필요한데,거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일본 정부는 또 한국의 반응에도 배려하며 교섭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응/핵협정 가입 등 평화보장장치 선결/남북한 대화 고려,속도조절을 희망 한소 양국이 30일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양국 수교 문제를 공식 협의하는 등 한소 수교가 임박한 가운데 북한이 일본측에 오는 11월 국교정상화 협의를 공식 제의함으로써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방북중인 일본의 가네마루(김환신) 전 부총리 일행이 『북한과 수교 전이라도 배상 문제를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일·북한 관계개선이 급진전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 급진전 관련보도에 대해 깊은 우려의 뜻을 일본 정부측에 전달하는 한편 이 보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강력한 대일 대응조치를 강구할 방침이어서 일·북한 관계개선 문제는 한일간 외교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일·북한 접근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범위내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특히 남북대화와 관계진전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7·7선언에서 북방정책 추진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조성을 위해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하거나 핵안전협정에 가입하지 않고 남북 관계개선이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일·북한간 급속한 접근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리어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일·북한이 접근하게 된 근본 동인은 한소 수교인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즉 한소 수교로 인해 일본과 북한의 「충족욕구」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 독점적인 동맹국이었던 소련을 잃게 된 북한은 일본을 경제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게 됐으며 일본은 동북아의 주도권을 소련에 뺏기지 않기 위해 「북한카드」를 이용하게 됐다고 관측된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간 경제협력을 모색하지 않고 일본과 긴밀한 경제협력을 하게 되면 결코 남북 문제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관계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이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있는 북한을 이용,핵안전협정 가입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한일관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일본이 대북접근에 적극적인 이유로는 또 ▲미·중국 수교의 닉슨쇼크(70년초) 이후 북한과의 수교는 미국보다 먼저 하겠다는 내부방침 ▲경제력에 상응한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압박감도 들 수 있다. 더욱이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한반도 4강중 내심 한반도 통일에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 점을 감안할 때 「북한 카드」를 활용해 정치대국으로 운신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개선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일·북한 관계 급진전과 관련,우려하고 있는 핵심은 현상황에서 북한에 일본의 돈이 들어가면 중단기적인 면에서 북한의 대화·개방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소련의 원조 중단,중국의 대북 경제협력 한계성에 비추어 북한은 지금 상당한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런 때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돈이 들어가면 오히려 전반적인 대외개방보다는 김일성 노선의 고수 강화쪽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우리 정부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과 수교전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지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보상 문제를 오랜동안 어렵게 처리했던점을 감안할 때 한일 관계를 고려치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다. 북한측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제의에 대해 『그동안 견지해온 「1개의 조선」 정책의 변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교차승인과 2개의 조선 정책으로 전환했는지는 오는 10월16일 제2차 평양총리회담에서 그들이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를 보면 그 허구여부가 확연히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앞으로 일·북한 관계개선 속도조절 문제는 한일 양국간 첨예한 외교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대북 관계개선 속도를 상당히 늦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북한의 조속수교 의사를 읽은만큼 일단 대북관계 속도를 조절한 뒤 한소 수교 진전과정을 지켜보면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외교관계자들은 관측하고 있다.〈박정현 기자〉 ◎일 자민·사회당 대표 방북 4박5일/수교원칙엔 접근… 배상액수 등 난제/예상밖 성과로 되레 큰 짐 떠안은 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너무 많은 것을 안고 돌아왔다.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와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출발 당시의 계산은 제18후지산(부사산)호 선원 2명의 석방과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만 합의되면 대성공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4일부터 28일까지 4박5일간의 짧은 교섭과정에서 대표단은 스스로 당황할 만큼 많은 것을 얻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국교정상화」 교섭 문제가 공동성명에까지 포함됐다. 가네마루 단장은 묘향산 초대소에서 이틀밤을 머물며 김일성 주석과 3차례의 회담을 가졌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외교적 성과」로 치부한다는 것은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성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측의 치밀한 「전술적 전환」에 타케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성과」란 하나의 목표를 놓고 대등한 입장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한쪽이 다른 목적을 갖고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은,아무리 상대편이 원하고 있던 사항이라 하더라도 성과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상대방 전략에 대한 「대응의 필요」라는 짐만 지는 셈이다. 북한은 종래의 대일 파이프라인이었던 일본 사회당을 제치고 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조준,전략의 카드를 마음껏 펼쳤다. 국제적 고립상황의 탈피,경제적 핍박의 해소,한국에 대한 견제 등 필요에 의한 카드였다. 어쨌든 이번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북한 방문결과는 엄청났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물론 국교정상화 제의였다.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당국자들이 27일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과의 수교를 제의해온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때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다만 『한반도 전체의 안정,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미국과도 의견을 교환해가며 교섭을 진전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번 북한 방문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자민당의 첫번째 대표단 단장으로서 김일성 주석과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는 가이후(해부)총리의 자민당 총재 명의 서한을 전달하고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며,북한·일본 쌍방은 전면적으로 관계를 개선,새로운 우호관계를 수립한다는 데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28일 하오 발표된 북한 로동당과 자민·사회 3당의 공동성명에는 국교정상화 교섭을 양쪽 정부에 요청한다는 것을 비롯,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반성을 명기했으며 보상의 실현을 위해 정부간 교섭을 개시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일본 정부발행 여권에 북한 제외조항을 삭제한다는 사실,도쿄∼평양간 직행편 개설,연락사무소 설치,통신위성의 이용 등 현안도 명기됐다. 전문 8장으로 된 이 공동성명은 당초 28일 상오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에 의견이 엇갈려 난항을 거듭,이날 하오 5시 넘어 조인됐다. 기초작업은 자민당의 이시이(석정) 대표단 사무총장,사회당 야마하나(산화) 부서기장 및 북한 로동당 김양건 국제부 부부장 등 사이에 27일 밤부터 28일 상오 8시에 걸쳐 철야로 진행됐으나 결론을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가네마루 다나베 양단장과 로동당 김용순 서기가 대표자회의를 열어 조정했다. 이날 문제가 된 보상 문제에 대해 자민당측은 『앞으로 양국 정부간의 교섭을 개시,하루라도 빨리 실현에 노력한다』는 취지로 표현하자는 데 대해 북한측은 『실행해야 할 것은 당장 해야 한다』며 직접적 표현을 고집,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대일 국교정상화를 제안해놓기는 했으나 교섭의 본격화로부터 국교수립까지의 타임테이블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보상 문제의 조기타결과 확약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많은 과제를 안고 돌아왔다. 특히 한일관계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은 『몇년 전 같았으면 한국으로부터 맹렬한 반발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겠으나,한국에 대한 배려 때문에 「황신호」의 서행운전을 해야 할 것은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북한 관계의 급속한 접근은 한국과의 관계는 물론,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미국·소련·중국 등 주변제국의 주목을 끌 것은 틀림없으며,일본 정부 자체로서도 일·소 관계 등과 관련되어 극히 어려운 외교교섭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남북 축구 10월 교환경기 확정/양쪽 대표팀

    ◎11일 평양(모란봉경기장)·23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서/우리팀 북경서 평양 직행/경평왕래는 판문점 통과 【북경=본사 특별취재단】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 축구대표팀이 오는 10월 평양과 서울에서 한차례씩 상호교환경기를 갖는다. 남북 축구대표팀은 아시안게임이 끝나는 직후인 오는 10월11일 평양 모란봉경기장에서 남북 축구친선경기 1차전을 가진 뒤 23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2차전을 갖기로 일정을 확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북경아시안게임에 참가중인 남북한 축구대표팀은 오는 10월9일 북경에서 평양으로 향하고 그 이후 남북간의 왕래는 모두 판문점을 경유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이같은 사실은 아시안게임과 관련,현재 북경에 머물고 있는 정부 및 체육관계자들에 의해 28일 확인됐다. 이 관계자들은 『남북한 축구 상호방문경기는 지난 23일 북경에서 열린 남북체육장관회담과는 별도로 당초 계획했던 대로 추진되고 있으며 최근 북경에서 양측의 고위관계자들간에 완전히 타결돼 이미 구체적인 실무접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의 박철언 의원과 북한의 리종옥 부주석이 북경에서 세차례 접촉을 통해 남북 축구교류 문제를 마무리하고 리종옥 부주석은 25일 북한으로,박철언 의원은 26일 대연으로 각각 떠났으며 중국측으로부터도 이와 관련한 모든 업무의 협조를 약속받았다는 것이다.
  • 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5ㆍ끝

    ◎북한,「한ㆍ소 수교 충격」 최소화에 전력/일본과의 관계개선은 조기경협 포석/「2개 조선」ㆍ「교차승인」 분리해석 시도 9월초 서울에서 제1차 남북한 총리회담이 개최되었다. 몇가지 사소한 문제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졌으나 기본적인 입장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받은 첫 인상은 평양에서의 제2차 총리회담에서 쌍방입장의 기본적인 대립이 표면화되어 결국은 결렬되고말 공산이 적지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생각은 그와는 조금 달라졌으며 남북한대화는 평양회담의 고개를 넘어 연내에 제3차 남북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다. 북한의 서방제국 특히 일본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북한은 그것을 좌절내지는 정체시킬 남북대화의 결렬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러한 생각의 근거다. 그러면 북한의 대일 접근의 진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통일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대화가 중요한 국면을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소 국교수립의움직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북한에 대단히 불리해지고 있으며 경제적인 곤란도 점점더 심각해지고 있어 서방제국 특히 일본에의 접근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데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진전시키고 싶은 것이 분명하며 북한은 앞으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거기에는 몇가지 해결곤란한 조건들이 방해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한 과거」의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북한이 원하면 언제든지 가능하고 일본측은 도의적인 관점에서도 교섭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나 관계가 개선되려면 거기에는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의 「배상」문제가 따르고 「재13 후지산마루」라는 외교적인 문제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북한의 대일 관계개선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계를 정상화하고 국교를 수립하면 소련에 이어 일본도 「2개의 한국」과 외교관계를 갖게되어 곧 미국이라든가 중국도 뒤따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교차승인」을 위한 길을 여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일성주석이 주장하는 「1국가 2체제」의 연방제통일 제안의 논리가 붕괴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어느 정도의 중간적 단계에 묶어두면서 전면적인 국교정상화에는 이르지 않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경제협력만 얻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해서 북한은 중요한 단계에 이른 남북대화를 위해 보다 견고한 발판을 구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까지의 필자의 견해였다. 그러나 가네마루(금환) 사절단의 평양방문의 과정에서 북한의 외교당국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을 제의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2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 첫째는 북한이 「2개의 한국」이라든가 「교차승인」에 반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며 그보다는 일ㆍ북한 정부간 교섭의 개시와 동시에 도쿄­평양­서울간에 격렬한 외교적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다. 권투에 비유한다면 일ㆍ북한 교섭은 여전히 「잽의 응수」,즉 정치적인 「줄다리기」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북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내걸지 않으면 일본으로부터의 대규모적일 뿐 아니라 신속한 조기 경제협력을 받아내는 것이 곤란하다는 판단을 기초로 한 정치적인 「책략」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무난할지 모른다. 일 외무성은 「국교정상화 이전의 경제협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제2의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북한이 한소 관계의 급속한 전개에 대항하고 또 국교정상화 없이는 일본으로부터의 대규모 경제협력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대일 관계의 급격하고도 다이내믹한 개선에 나섰다는 것이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일본ㆍ북한 관계는 한소 국교수립을 뒤쫓는 형태로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면,이 견해에 따른다면 북한은 「2개의 조선」 반대와 「교차승인」 반대의 원칙을 포기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개의 조선」 반대 원칙을 종래 이상으로 확고히 견지하면서 그것과 「교차승인」 반대의 원칙을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만약 이러한 견해가 옳다면 일본ㆍ북한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은 북한당국에 의한 「교차승인」의 암묵적이고도 단계적인 수락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암묵적이고도 단계적인」이라고 하는 것은 2개 원칙의 분리를 비공개적이고도 단계적으로 실행한다는 것이며 장차는 한중 및 미ㆍ북한간의 국교수립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통일은 균형잡힌 국제환경하에서 2개의 대등한 국가간의 통일로서 실현시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가령 제2의 견해가 옳다고 해도 그것은 한국에게는 대단히 환영해야할 일이며 한국 국민의 여유있는 대응을 기대하고 싶다.
  • 북한 “3차회담서 수교 논의” 제안/방북 가네마루 기자회견

    ◎평양태도 예상보다 상당히 진전/김일성,간절히 독대 요청… 국제정세 토론 북한 김일성주석과 2차례에 걸친 단독회담을 가진 가네마루 신(금환신) 전 부총리는 묘향산으로부터 평양에 돌아와 27일 하오 9시35분부터 고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회담내용을 설명했다. 어제(26일) 김주석으로부터 『어떻게해서라도 당신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전달이 있었다. 그때 나는 『혼자서는 곤란하다. 지금까지 같이 행동해 온 다나베(전변) 사회당 부위원장도 동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제발」이라는 바람에 만나게 됐다. 그날밤 김주석은 내 숙소를 찾아와 『세계정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회담에서는 지난번 김주석의 중국방문 및 이라크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라크문제에서 무력사용은 절대로 안된다고 말했더니 김주석은 『당신 생각에 찬성한다. 대화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보상문제에 대해 김주석은 돈문제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신의 성의는 잘 알겠다』고만 말했다. 이런 지도자가있어 오늘의 공화국이 있다고 절실히 느꼈다. 공동성명도 북한방문을 사전조정한 선발대에 맡겼다. 3당의 대화로 여러가지를 타결했다. 어느 신문사로부터 김주석에게 지국설치에 대해 진정해 달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했다. 이에 대해 김주석은 『공평한 보도를 해준다면,국교가 된다면 그런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어제부터 오늘에 걸쳐 국교정상화 및 후지산마루(부사산환)문제가 논의됐는가. ▲부탁은 했다. (이때는 석정일의원이 각론은 다나베 부위원장에게 부탁한다고 말했다) ▲다나베=각론이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이시이=나의 표현이 잘못됐다. 서론이 끝났기 때문에 총론의 계속을 부탁한다. ▲다나베=3자회담에서 국교수립을 서두르자는 제안이 북한측에서 있었다. 여기에는 2개의 측면이 있다. 첫째는 국제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둘째는 일본정부의 일부에 국교수립전에 보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을 고려한 것이다. 공동성명에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간 교섭을 오는 11월부터 시작하자는 것을 정부에 권고하는 내용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다. ­북한의 태도가 상당히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다나베=정확한 판단이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진전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상화의 전망은. ▲다나베=없다. 그런 것은 나오지 않았다. ­국교수립제안에 대한 자민당의 평가는. ▲이시이=논리적으로 옳은 것이다. 가네마루 선생은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 ­자주적 평화통일에의 협력은. ▲이시이=자민당도 그런 기분을 갖고 있다. 자주적 통일을 했으면 한다. 분담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의 기본적인 인식이다(이날 하오의 기자브리핑은 김일성주석­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단독회담 내용을 듣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서두에서만 잠시 언급했을 뿐이다. 「대물정치인 가네마루」는 무엇인가 절제하는 빛이 역력했다).
  • 북의 계산 “일본을 대 서방 접근창구로”/묘향산회담… 도쿄의 시각

    ◎「김환루트」 통한 돈줄 확보 타진/연락사무소는 한소수교 버금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일본 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의 2·3차에 걸친 파격적인 단독회담은 북한측 자세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도쿄의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26일 하오 6시30분 자민·사회 양당 북한방문단 일행과 떨어져 묘향산 초대소에 혼자 남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숙소로 방문,1시간 동안 세계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회담에서는 남북통일방안,남북한 유엔가입 문제,남북대화 및 교류촉진 문제 등도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지난 20일 북한방문을 앞두고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나는 자리에서 하루라도 빨리 남북 두 나라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대화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히고 『정치는 국민과 민족을 위해 하는 것이므로 남북대화를 촉진토록 하는 것이 이번 북한방문의 최대 바람』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같은 의욕을 가진가네마루 전 부총리와 45년간 북한을 이끌어 온 김일성 주석과의 한반도정세논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긴장완화를 위해 큰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동구의 사회주의 제국이 급격한 변혁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개방정책에 등을 돌려 온 북한측이 일본의 정치 지도자와 처음으로 세계정세를 논했다는 사실 자체가 태도변화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사회당부위원장을 포함한 26일의 수뇌급 3자회담이 북한·일본간의 새로운 우호관계수립을 위한 선언이며,쌍방의 현안 해결을 위한 방향 제시라고 본다면 26일과 27일의 2차에 걸친 단독회담은 북한의 입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구체적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번 단독회담은 북한측의 돌연한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묘향산체재 하루 연장은 대표단을 태우고 평양에 돌아오는 특별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조선로동당 김용순 서기를 통해 김 주석으로부터 『가네마루씨와 꼭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는뜻을 전해왔기 때문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26일 수뇌급 3자회담에서 일본을 지나칠 정도로 추켜올리는 발언을 해 일본 정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나는 지금 일본의 현상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치대국도 되어 있다. 여기까지 이른 것은 일본의 정책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채권국이며,미국은 채무국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의 저의가 무엇인지에 관해 북한관계 전문가들은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북한이 자존심을 꺾고 일본에 접근함으로써 경제협력이라는 실리를 취하고,동시에 고립화를 면해보자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동맹국인 중국·소련으로부터도 「다루기 어려운 상대」로 불릴만큼 폐쇄적 자존심이 강했던 북한이 이처럼 「대일추파」를 던지는 동기는 명백히 돈 때문이라고 27일자 산케이(산경)신문은 지적했다. 또 김일성 주석이 일본과의 우호친선을 꾀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한 것은 김일성체제 유지 및 북한의 당면 최대과제인 김정일 서기에의 세습을 어떤형태로든 굳히려는 의도에서 과감한 대일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평양정권은 지금 자본 기술은 물론 식량 에너지조차 부족,피폐상태에 있는 경제를 이대로 끌고 가다가는 김일성 주석 사후 후계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고 보아도 좋은 상황이다. 따라서 그 돌파구로서 일본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이번 김­김(환)단독회담이 내포하는 중요한 의미의 또 하나는 대일본 접근 파이프라인을 종전의 일본사회당에서 집권자민당으로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26일 하오 4시를 조금 지나 묘향산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특별열차내의 사회당 대표단 단장 다나베 부위원장의 표정은 착잡했다고 동행보도진이 전해왔다. 김일성 주석의 요청에 따라 자민당측 단장인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단독회담을 위해 묘향산에 그대로 남게되고 오래 전부터 대북한 파이프역을 자임해 온 사회당측 단장은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북한·일본의 외교주도권이 사회당으로부터 자민당으로 옮겨진 것을 상징한다. 이것은 또한 북한측이 자민당내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가네마루 루트를 조준한 것이다. 이제는 북한·일본관계는 배상·경제협력 등 보상문제 등의 구체적인 타결책을 마련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번 대표단과 동행한 일본정부의 외무·통상·운수·우정성 등 실무자들은 사상 최초로 북한당국 실무자들과 접촉을 개시했으며,이와 병행해 자민당대표단도 북한조선로동당 관계자들과 개별회담에 들어갔다. 북한의 대일접근 의욕은 로동당기관지 로동신문의 보도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7일자 로동신문은 1면 톱기사로 「위대한 김일성 주석이 가네마루 다나베 씨를 접견」이라는 제목아래 1면 거의 전부를 할애했다. 사진도 1면에는 김 주석을 둘러싼 가네마루 다나베 단장의 사진 및 대표단 전원과 김 주석과의 기념사진을 게재했으며,2면에는 동행기자단과의 기념촬영사진을 실었다. 이번 가네마루 대북한외교가 가져온 일련의 변화에 대해서는 일본의 학자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와다나베 아키오(도변소부) 동경대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이번 북한방문은 외교스타일로서는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당차원에서의 협의를 거쳐 정부레벨로 이행시키는 교량역으로서는 상당히 깊은 부분까지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로서는 이례적인 것이다. 한국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어 외교면에서 북한보다 앞서있기 때문에 전에 비해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한·일본 사이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그 의미는 크다. 한국도 침묵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북한에 서방측과의 파이프가 생겨 인적 정보교류가 가능해지면 북한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간의 문제이지만,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처럼 동서체제를 넘은 안전보장기구를 아시아에도 설치,한반도의 군사 정치 문제에 대해 무릎을 맞대고 협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북한의 대일 접근은 개방정책에로의 전환의 조짐일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나온 견해이다.〈도쿄=강수웅 특파원〉
  • 사실상 물건너간 야권통합/통추회의,3자회담 촉구의 안팎

    ◎2차례 중재안 싸고 평민ㆍ민주 또 엇갈린 주장/“섣불리 편들면 파장”… 통추회의,묘책없어 고심 야권통합이 사실상 가시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의원직사퇴서 제출 이후 불붙었던 통합 열기가 냉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27일 야권통합의 재야당사자인 통추회의측이 기자회견을 통해 3자회담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이미 꺼져버린 통합의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3차에 걸친 15인 통합추진기구에서의 공식협상과 막후접촉을 통해 통합신당의 지도체제 및 지분문제에 대한 쟁점을 압축하긴 했지만 그 압축된 내용에 대해서 양당이 양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날 통추회의측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평민ㆍ민주 양당이 모두 통추회의중재안을 수용했다고 주장하면서도 평민당은 8월24일자 중재안이,민주당은 9월4일자 통추회의 내부방침이 진정한 통추회의안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주장해 현격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통추회의측은 지난달 24일 지도체제는 ▲통합등록시점에서 창당전당대회 때까지로 하고 ▲그이후의 3인합의로전당대회에서 결정하며 지분문제는 「3자 대등일체」의 원칙에 따라 조직강화특위 및 당직에 3자가 균등참여해 해결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중재안에 대해 평민당측이 수용의사를 보인반면 민주당측이 「흡수통합」될 가능성을 우려,거부의사를 나타내자 통추회의측은 지난 4일 지도체제문제를 구체화해 ▲창당전당대회 이후 지도체제도 1인의 상임대표를 둔 3자 공동대표로 하고 ▲이 지도체제의 존속시기는 차기 총선직후 전당대회까지로 못박는 것을 골자로 한 「내부방침」을 만들어 평민ㆍ민주 양당에 통보했던 것. 이같은 통추회의측 협상용 내부방침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측은 창당전당대회 이후 지도체제문제가 창당등록 이전에 3자간 사전합의가 이뤄진다면 수용하겠다는 입장인데 반해 평민당측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견상 통합에 대한 쟁점은 상당히 압축된 것처럼 보이지만 양당이 지리한 통합협상을 벌이는 동안 극명한 견해차를 노정했던 「선통합선언」과 「선이견조정」의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국민적 여론에 떼밀려 통합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통합에 임하는 양당의 기본적 속셈부터 달랐던데서 비롯되고 있다. 차기 대권레이스를 앞두고 평민당이 갖고 있는 지역적 편중을 극복하고 중산층의 지지를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통합에 체중을 실은 평민당으로선 어차피 김대중총재 중심통합을 노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반해 민주당측은 8인8색으로 조금씩 다른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야권내 세대교체를 이루기 위한 장기적 포석과 민주당 입지강화를 위한 방편으로 「통합협상」을 활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평민당과는 그 출발점부터 달리했다. 평민당이 현재 소극적인 3자회담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양당의 근본적 자세변화가 없는한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해 극적인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다시 말해 동등지분하의 3인 공동대표제를 차기총선 직후까지 유지하는 것은 차기 대권 레이스 참여과정에 혼선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김대중총재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사안인 것이다. 또 내각제등 권력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을지도 모르는 대여 전면전을 앞두고 여권 핵심부와 직접 「담판」 또는 진두지휘를 바라는 김총재로서는 민주당과 통추회의측이 주장하고 있는 제3자(상임) 대표제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평민당측이 만에 하나라도 통추회의측의 내부방침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박찬종ㆍ김현규ㆍ홍사덕 부총재와 김광일ㆍ허탁의원 등 민주당의 상당수가 「잔류선언」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이기택총재를 비롯한 민주당 적극통합파만이 통합신당에 합류해 「부분통합」으로 낙착될 소지도 있다. 그러나 「부분통합」으로는 통합신당에서 이총재의 입지를 장기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 통합협상의 야권 3당사자중 가장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쪽은 통추회의측이다. 두 야당은 통합결렬 이후에도 제갈길을 가면 그만이지만 재야의 「도덕성」을 내세우는 김관석ㆍ오충일ㆍ최성묵목사 등 개신교측과 제도권 진입을 노리는 이부영ㆍ여익구ㆍ정연구씨 등 「민주연합파」등 통추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재야세력 모두가상당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특히 재야식 표현대로 이념에 따른 「창조적 분화」가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른 「세포분열」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통합의 대의를 이뤄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우재ㆍ장기표씨 등 진보정당추진그룹(가칭 민중당)과 결별한 민주연합파측이 가장 다급한 입장이다. 통추회의측이 8월24일자 안과 9월4일자안에 대해 명확한 선택적 입장표명을 피하고 있는 점이나 이날 통합압력용으로 갖기로 했던 서명자대회를 10월 중순으로 또다시 연기한 것은 섣불리 어느 한쪽을 편들 경우 통합의 불씨 자체가 꺼져버릴 위험성을 고려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 북,일에 11월 수교교섭 제의/김일성,가네마루에… 배상규모 협의

    【도쿄=강수웅 특파원】 북한 조선노동당의 김용순 서기(국제부장)는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노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과의 3당대표 정치회담 석상에서 배상·경제협력 등 보상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오는 11월부터 전제조건 없이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간 교섭을 개시하자』고 일본측에 공식 제의했다.〈관련기사 3·4면〉 또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별도로 개최된 북한·일본간의 사상 첫 정부간 교섭인 외교당국실무자 협의석상에서도 북한측은 『오는 11월 상순 평양에서 전제조건 없이 국교정상화교섭을 하면 어떠한가』라고 제의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 외무성도 확인했다. 북한측의 국교정상화 제안은 26일과 27일 열린 묘향산에서의 김일성 주석­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 등과의 회담에서도 나왔다고 일본의 대표단원들이 밝혔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국과 이미 국교를 맺고 있는 일본과의 수교는 「2개의 조선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라며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이번 북한측이예상을 뒤엎고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제안해온 것은 북한 외교방침의 일대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나아가 한반도정세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소련·중국 등에도 큰 파문을 불러 일이킬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국교정상화 제안은 28일 발표될 공동성명에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조선노동당 김용순 서기는 이날 저녁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개최된 노동당과 자민·사회 3당 정치회담에서 현안인 제18 후지산마루(당사산환)사건으로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베니코 이사무(홍분용) 선장과 구리우라 요시오(율포호웅) 기관장을 10월 중에 석방한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26일 하오와 27일 상오 2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와 단독회담을 갖고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세계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는 남북통일방안·유엔가입 문제 등에 관한 북한측 입장의 설명이 있었으며,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남북이 하루라도 빨리 통일될수 있도록 대화를 넓혀나가도록」 김 주석에게 권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은 김 주석의 돌연한 요청에 따라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묘향산 초대소에서 1박을 더하며 이루어졌다. 1차회담은 26일 하오 6시30분 김 주석이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숙소로 방문,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으며 2차회담은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27일 상오 9시 김 주석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개최됐다. 이로써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북한방문에서 모두 3번에 걸쳐 김 주석과 회담했다. 이번 2차례에 걸친 단독회담에서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보상방법과 규모 등에 관한 구체적이고 깊이있는 협의가 있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는 별도로 자민·사회 양당대표단과 함께 동행한 일본의 외무·통상·운수·우정성 등 정부실무자들은 27일 상오 9시30분 사상 처음으로 북한당국의 실무자들과 정부간 접촉을 개시해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일본 여권상의 북한 적용제외조항 삭제,직행편 개설,북한­일본간의 무역채무 문제,통신위성 이용 등 현안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 「남북공존」으로 체제유지 모색(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4)

    ◎비현실적 「대남혁명」 보류,노선전환 꾀할 듯 최근 북한은 대남·대외 관계에서 전례없이 유연한 자세를 보여 북한은 정말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북한은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에서,회담외적인 문제로 회담자체를 공전시켜오던 종래의 상투적인 태도를 바꿔 본회담 개최에 완전 합의를 하였다. 북한은 서울에서 개최된 1차 본회담에서 과거에는 보기드문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였고 2차 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할 것에도 합의했다. 그후 북한은 남한음악인들을 대거 초청하는 한편 북경에서는 남북공동 응원단 구성이 논의되었고,양측 선수들의 여느 때보다 다정한 소식들이 연일 들어오고 있다. 또 북한은 일본의 적극적인 대북한접근을 뜻밖에도 수용해버리는 대외전략 변화를 보였고,미국과의 정부간 접촉 촉진 등 대외관계의 모든 부문에서 유연성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였다. 폐쇄체제 속에서 제한된 변화만 해오던 북한이 동구를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이러한 변화의 조짐을 한꺼번에 보이는 것은무슨 까닭인가.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소련·중국 등 북한의 전통적 우방의 동요에 따른 고립의 심화,내부경제의 핍박 등 국가적 난경을 타개하고 「하나의 조선」을 가시적으로 실증시켜,이른바 분단고정화를 추구하는 한·소 수교와 한국의 유엔단독가입 추진의 부당성을 나타내려는 종합적인 처방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그러한 태도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이라면 북한의 대외적인 상황이 바뀌면 또다시 굳어진 자세로 바뀔 것은 정해진 이치다. 우리의 관심사는 그것이 북한의 대남전략의 근본적인 변화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한적인 북한의 태도 변화조짐에 그러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일이며,그러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충분한 증거가 없다. 북한의 1인 독재 체제는 폐쇄사회의 기초와 대남혁명 완성이라는 과업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을 개방함으로써 기존체제의 기초를 동요시키거나 대남혁명을 공공연하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남 적화전략도주변상황이 불리하게 변하면 어쩔 수 없이 일시 보류를 시키거나 크게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전반에 걸쳐 시작이 되었고,앞으로도 그러한 변화는 지속될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는 폐쇄사회의 특수한 성격상 급격한 변화를 수용할 수는 없으며,점진적인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북한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들 중 우리에게 관심있는 분야를 몇가지만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점진적인 개방을 통한 변화이다. 북한은 지금 폐쇄와 개방의 기로에 서있지만,개방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숙명적인 것이다. 체제와해의 위기를 최소한으로 피해가면서 서방국가들에 경제를 개방시켜,신속한 체제보강을 겨냥하는 것이다. 미·일을 비롯한 서방선진국가들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침체된 경제(89년도 2.4% 성장)를 활성화시키지 않고서는 체제의 유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의 성공적인 북방외교로 심화된 북한의 고립을 모면할 길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서울올림픽이 끝난 직후 88년 12월 연형묵 총리를 기용하면서 종래의 자력갱생을 앞세운 폐쇄적인 주체경제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정책 주력방향을 제시하는가 하면 합영공업부 전자자동화공업위원회 및 도시경영부 등 새로운 경제부서를 증설하는 등의 변화를 보였던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둘째는 북한주민들의 의식구조의 변화다. 세계적 추세인 개혁·개방·자유화·민주화의 영향이 북한사회에 점진적으로 침습됨에 따라 북한주민들이 인권회복과 민주화를 위한 독재권력에 항거하는 의식의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노청 국제부위원장 김창영은 당의 지속적인 이데올로기 교육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층의 당으로부터의 일탈현상은 점증되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한 바 있고 로동신문(9월21일)은 「제국주의자들이 썩어빠진 부르주아문화와 생활양식을 퍼뜨려 새세대 청년들을 정신적 불구자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 산케이신문(2월15일)은 도쿄의 관계소식통을 인용,최근 평양시내에서 「민주화요구 데모」가 발생했다는 미확인보도가 나돌고 있다고 했으며 통일일보(3월13일)는 김일성 독재를 타도,「북」과 그에 추종하는 조총련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재일동포 사이에서 처음 표면화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의 중앙집권체제가 한번 흔들리게 되면 주민들의 조직적인 자유화·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셋째 북한의 대남전략의 변화이다. 김일성이 생존하는 한 가까운 장래에 북한의 기존 대남전략이 획기적인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공산권의 본질적 변화 및 대한국수교,남북한 국력격차의 확대,한국의 민주화 발전을 통한 정치적 안정과 남북한 군사력의 균형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북한은 남북평화공존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대남 「인민민주주의혁명」의 기대를 포기하자마자 비현실적인 대남혁명노선을 일단 보류하고 남북공존으로 노선전환을 하게 될 전망이다. 김일성도 그동안남북공존에 반대했었으나 88년 신년사를 통해서 「남북한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으며 9월8일 40주년 9·9절 행사 연설에서는 「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공존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태도를 바꾼 바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태도변화는 통일을 외면하고 체제유지를 위한 자기적응이기 때문에 결국 조국의 통일은 그만큼 지연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북쪽에 다른 체제가 공존하는 한 남북한간의 경쟁과 대결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며 평화공존의 기초위에서 통일을 성취하는 일은 앞으로 우리 민족의 큰 과제가 될 것이다.〈유석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경협으로 풀리는 북한­일의 「빗장」/김일성ㆍ가네마루 회담의 의미

    ◎고립ㆍ경제난의 돌파구로 활용/「사죄ㆍ배상카드」로 서둘러 접근/격식 깬 묘향산대좌… 관계 정상화까진 험로 첩첩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마치고 나온 일본의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는 『일본을 위해 대단히 유익한 회담이었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사회당측 단장인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부위원장도 『주석의 관대한 결단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주목을 끌었던 김일성­가네마루­다나베의 3자회담은 일응 북한ㆍ일 쌍방이 만족할 만한 선에서 매듭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물론 김일성 주석이 자민당 총재명의로 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 총리의 「사죄서한」을 받아들고 새로운 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자고 말한 것은 틀림없다. 또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방문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계기인 제18후지산마루(부토산환)호 선원 2명의 석방을 확약했다는 사실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본이 전후 45년 만에 처음 파견한 자민ㆍ사회 양당의 초당파적 대표단이 거둘 수 있는 제1차 목표는달성됐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에 의한 36년간의 식민지 지배와 전후 45년간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계속 되어온 일ㆍ북한 관계가 81년 만에 본격적 관계개선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이 이처럼 유화제스처를 보이고 나온 배경은 여러가지 있다. 최근 한­소,한­중의 접근 등으로 외교적인 고립감을 더해가고 있는데다,심각한 정도를 넘는 국내 경제문제 등으로 일본측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활로를 찾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ㆍ일 사이의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일본이 대북한 관계에서 짊어지게 될 짐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은 이번 3자회담이 김일성 주석의 묘향산 별장에서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은 별장에 앉아 평양을 방문한 「손님」들을 불렀다. 가네마루라는 존재는 일본정계 최고의 실력자이다. 그가 이끄는 89명의 대표단은 25일 하오 6시30분 김일성스타디움에서 거행된 5만군중의 매스게임을 참관하기 직전,김일성 주석의 면담이 평양 이외의 장소에서 이루어진다는 통고를 받았다. 『1박할 준비를 하고 따라오라』는 말에 일본의 「최고실력자」는 3시간 동안 야간열차를 타고 1백50㎞나 떨어진 묘향산까지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북한방문단 멤버의 표현대로 『외교관례상 일본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24일 밤의 환영연이 30분 늦게 개최되었던 것도 같은 케이스에 속하는 일이다. 이같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가네마루­다나베 양단장이 흡족해 하는 것과는 달리,이번 대표단의 교섭이 결코 일본측의 페이스대로 움직여지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문제는 김일성 주석이 26일의 3자회담과 가네마루 단장만을 따로 불러 제2차 회담을 갖고 『우호관계 수립에 동의해 준 대가』에 있다. 이 대가는 배상과 경제협력을 통한 보상이며,결국 돈 문제에 귀착한다. 25일 조선노동당서기 김용순 국제부장과 자민ㆍ사회당 양쪽 단장 사이에 개최된 제1차 정치회담에서도 북한ㆍ일 쌍방은 사죄와 보상 문제의 선결로 관계개선을 꾀하자는 것에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단장은 보상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국교정상화가 안된 시점에서 보상한다는 것은 여러 이론이 있으며,국제법상의 관계에 비춰볼 때도 걸맞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온 이상,역시 정치적 결단으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국제법 및 관습이 있기 때문에 국가와 국가의 관계개선이 될 수 없다면 정치적 결단을 해서라도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다만 수속절차를 밟아야 될 필요는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정부간 절충의 창을 열고 사무소를 설치한 가운데 보상 문제를 착실히,가능한 한 조속히 실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나 자신은 일ㆍ북한 관계개선에 정치적 생명을 걸더라도 완수할 생각이다. 북한측이 응해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북한의 대일 청구권 및 경제협력은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을 진행시켜가는 과정중에 협의한다는 기본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있다. 단 일ㆍ북한 관계개선의 큰 전환점을 맞고 있는 단계에서 원칙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대화에 찬물을 끼얹는결과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우려도 강하다. 일본정부는 북한은 교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손해배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며,일ㆍ북한 쌍방이 각각 상대편에 갖고 있던 재산 및 청구권을 어떻게 처리할까라는 청구권 문제의 차원에서 다룰 방침이다. 전후 배상협정을 맺은 필리핀 등 아시아 제국과는 달리 식민지에서 독립한 북한에 대해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상 청구권 문제로 취급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한국과는 지난 65년 국교정상화때 청구권ㆍ경제협력협정으로 무상 3억달러,유상 2억달러의 경제협력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일본 외무성측은 북한과의 경우도 『한국과의 밸런스를 취한다』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처리할 생각이다. 이같은 일본측 입장에 대해 북한측에서는 지금 단계에서 그 어떤 견해도 나타내 보이지 않고 있다. 25일 김용순 서기와의 3자회담에서 『최종적인 타협점을 찾게 됐을 때 북한측의 견해를 밝히겠다』고만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주목을 끌었던 김일성 주석과의 수뇌급회담은 끝났다. 쌍방은 새로운우호관계를 수립한다는 데 동의했다. 남은 것은 세계 초일류의 경제대국 일본을 상대로 경제적 궁핍에 찌들어 있는 북한이 어떤 경제전략적 대가를 요구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일성ㆍ가네마루 제2차 단독회담은 바로 그 「전략」을 의미한다.
  • 북한­일,「새 관계수립」 합의/김일성ㆍ일 대표단 회담

    ◎연락사무소 설치ㆍ선원 석방등 타결/김­가네마루 오늘 2차 단독회담 【도쿄=강수웅 특파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26일 상오 9시45분부터 약 1시간30분동안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1백50㎞ 떨어진 묘향산 회의장에서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부총리,사회당의 타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과 수뇌급 3자회담을 갖고 새로운 북한­일본 관계를 수립할 것에 합의했다. 이 3자회담 이후 가네마루 단장은 대표단 일행과 떨어져 묘향산에서 1박을 더하며 27일 상오 김일성과 단독 제2차 회담을 갖는다. 이날 수뇌급 3자회담에서 북한­일본 사이의 「새로운 우호관계구축」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하게 됨으로써 보상에 관한 정부차원의 절충,상호 연락사무소설치,제18 후지산마루(부사산환) 선원 2명의 석방 등 현안은 일거에 해결되게 됐다. 제18 후지산마루 문제에 관해 김 주석은 『가네마루ㆍ타나베 두분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시기는 명시하지 않았으나 이들의 석방에 응한다는 자세를 보였다.이날 회담석상에서 김 주석은 핵 문제에도 언급,『북한은 핵을 제조하고 있지 않으며,핵을 제조할 수 있는 경제력도 없다』며 핵 보유 의혹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이날 1차회담에서 가네마루단장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의 뜻을 표명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의 자민당총재 명의 서한을 직접 전달했으며,속죄와 보상의 뜻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김 주석은 『높이 평가한다. 총재인 가이후 총리에게 잘 전해달라』며 사죄 문제는 이로써 일단락되었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로써 전후 45년간 외교적 공백기를 거쳤던 북한­일본 관계는 새로운 역사의 한 폐이지를 열게 됐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일본의 정권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자민당 실력자와 회담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예정에도 없던 제2차 단독회담을 갖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라고 일본 정가에서는 보고 있다. 이날 3자회담에는 김용순서기가 배석했다. 이날 회담은 지방순시중인 김일성의 일정에 맞춰 평양에서 떨어진 묘향산에서 실현됐다. 25일 밤 급거 특별열차편으로 묘향산으로 갔던 대표단과 동행기자단은 가네마루 단장만을 제외하고 26일 하오 2시 묘향산을 출발,하오 6시 열차편으로 평양에 되돌아 왔다. 자민ㆍ사회 양당의 대표단은 이날 상오 3자회담 종료후 김일성을 예방했다.
  • 유엔가입 2차 협의/새달 5일 판문점서/책임연락관 접촉

    남북한 쌍방은 25일 하오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회담 책임연락관 접촉을 갖고 오는 10월5일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유엔가입 문제 협의를 위한 2차 실무대표접촉을 갖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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