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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우익 대립 극심(새로쓰는 한국현대사:9)

    ◎반탁대회 성공하자 김구 “과도정부 추진”/좌익 찬탁 급선회후 전국 암살·테러 잇따라/반탁운동 격렬… 서울 철시·군정종사원 파업/좌우 4개정당 “임정 세워 국난 수습… 대단결” 추구 모스크바삼상회의가 결정한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과 「5년이내 신탁통치」는 이 땅에 남긴 것이 없다.그런 뜻에서 회의 자체가 우리에게 대단한 역사적 의미를 던져주지 못했다.다만 이를 기화로 남북의 각 정치세력은 주도권잡기에 혈안이 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만다.일제 유산 처리는 뒷전으로 밀린채 좌우익 대결구도만이 전면에 떠올랐던 것이다. ○군정청 “가두시위 훌륭” 1945년 12월27일 「모스크바 결정」이 전해지자 38선 이남지역의 세밑 정국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쪽은 김구를 중심으로 한 중칭(중경)임시정부 세력이었다.중칭임정측은 28일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결성,4대국 결정에 대항해 시위와 파업을 벌이라고 백성에게 직접 촉구했다.이날 밤부터 서울시내에는 「반탁」벽보가 곳곳에 나붙고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가두연설을 한 몇몇 인사는 미 헌병에 의해 연행되기 시작했다. 김구는 「신탁통치에 대한 비협조」를 선언하고 나섰다.그는 선언문에서 『한반도는 유엔이 규정한 신탁통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4대국 신탁통치는 ▲민족자결을 바라는 민족 염원에 어긋나며 ▲제2차세계대전 중 영국이 되풀이 약속한 내용과 다른데다 ▲끝내는 극동 평화를 깨뜨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김구는 이 내용을 4개국 원수들에게 전달하라고 미군정청에 요구했다. 29일에는 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회의가 열려 중칭임시정부와 청년단체들이 긴밀하게 협조,조직적인 반탁국민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한다.좌파인 조선인민공화국(인공)중앙인민위원회와 조선인민당도 이날 「신탁통치 배격」담화를 발표해 반탁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부터 서울거리는 철시했고 미 군정청에 근무하는 한국인들도 총파업을 선언,집단결근하고 따로 반탁 가두시위를 벌였다.이같은 분위기에 놀란 미군정청은 이날 하오8시부터 헌병을 제외한 미군 병사와 민간인의 외출을제한하는 일종의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30일에는 국민총동원위가 「국민행동강령」발표를 통해 「중칭임시정부 절대 수호」와 「외국군정의 철폐」를 호소한다.이날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송진우가 암살된 것도 그가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국민총동원위는 곧이어 31일 하오2시 서울시민반탁대회를 열었다.당시 중앙신문(좌익지로 뒤에 찬탁으로 선회,46년 9월 미군정에 의해 폐간됨)은 대회상황을 「수만명의 남녀노소가 구름같이 모여들어 탁치반대 깃발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질서정연하게 걸어갔다」고 보도하고 『기미만세(3·1운동)때를 연상케 하는 우리 민족의 항쟁표시』라고 평했다.하오4시30분쯤 끝난 이 대회는 질서정연했고 비폭력적이었다. 미군정청 보고서도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격렬한 모습이었다.그러나 호스로 물을 뿌리는 미군장교나 미국인들에게 이상하리 만큼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폭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 시위는 훌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군정청이 추산한 시위 참가자는 5만∼7만5천명이었다. 대회 성공에 고무돼서인지 김구는 46년 1월4일 중칭임시정부를 강화해 과도정권을 수립한다고까지 선언한다.국민총동원위가 주최한 대규모 반탁집회가 1월12일 한차례 더 열린데 이어 학생들의 반탁시위가 줄을 지었다.반탁운동은 전국적 범위의 저항운동으로 전개돼 가고 있었다. ○북은 소 지령따라 찬탁 우익세력이 반탁운동의 주도권을 잡고 민심을 이끌자 남쪽의 조선공산당도 1월3일 서울운동장에서 「탁치반대민족통일촉성시민대회」를 연다.그러나 이 대회는 도중에 찬탁으로 성격이 변질됐다.조선공산당의 태도 급변은 물론 소련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다.소련군 민정사령관 로마넨코는 45년 12월28일 박헌영을 평양으로 불러 모스크바 결정을 따르라고 직접 지시한다.5일만에 서울로 돌아온 박헌영은 이 대회를 「모스크바 결정 지지대회」로 둔갑시킨다.이어 인공 중앙인민위원회도 모스크바 결정을 지지하고 나섰다. 엄밀한 의미에서 당시의 대립은 「반탁」대 「찬탁」이 아니라 「반탁」대 「모스크바 결정 지지」였다.즉 「찬탁」으로 분류된 세력은 「신탁통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기 보다 모스크바 결정에 포함된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에 더 비중을 뒀다.어쨌든 조선공산당이 「찬탁(모스크바 결정 지지)」으로 급선회하면서 남쪽의 정국은 아수라장이 됐다.「찬탁은 좌익,반탁은 우익」이란 등식은 모든 가치 평가기준을 압도했다. 좌익이 찬탁으로 돌자 전국에서 테러행위가 잇따랐다.1월12일 서울에서 찬탁 유인물을 돌린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회원 3명이 납치됐다.또 전북 전주에서는 2월8일 아침 인민위원회 회원이 죽음을 당했는데 곁에는 「신탁통치를 찬성하거나 우리 한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반역자는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고문이 놓여 있었다. ○좌우 중간파 태동 계기 이 와중에서 정국을 주도하는 좌우익 4개 정당이 뜻을 합쳐 민족단합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보여 그나마 한가닥 희망을 던져줬다.한민당·국민당·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의 대표들이 1월7일 회담을 열어 공동성명을 낸 것이다.이 자리에는 중칭임정과 인공측에서도 옵서버로 나왔다.4당은 『자주독립과 민주발전을 원조한다는 모스크바삼상회의의 정신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신탁통치 문제는 장차 수립될 임시정부에서 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이어 『암살과 테러활동은 민족단결을 파괴하며 국가독립을 방해하는 자멸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이를 중지할 것을 호소했다.중칭임시정부가 다음날 「4당 합의」를 공식지지하자 민족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희망은 곧 무산됐다.이승만이 7일 전에 없이 강경한 반탁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한민당과 국민당이 8일 당대표들이 서명한 4당합의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비록 4당합의는 우익정당들의 번복으로 깨졌지만 이 때 합의한 「선 임시정부 수립,후 신탁통치 해결」원칙은 좌우합작과 통일정부수립을 목표로 한 제3세력,곧 「중간파」를 태동시켰다. 그나마 좌우연합의 기대를 걸게 한 4당합의가 깨진 뒤 좌우익은 각각 자체 기반 확보에 열을 올렸다.이는 2월1일 중칭임정의 「비상정치회의주비회」와 이승만 계열인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합쳐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비상국민회의는 뒤에 미군정청의 행정자문기관 성격을 띤 「남조선국민대표민주위원」으로 변모한다.이어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29개 정당·사회단체들이 이달 15∼16일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를 열어 우파와 맞섰다. ○“반탁” 조만식 연금당해 한편 북쪽에서는 김일성주도 아래 일사불란하게 모스크바 결정을 지지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46년 1월3일 평양에서 대규모 지지결의대회를 여는 등 주민여론을 유도하는 동시에 한쪽에선 반대파들을 어김없이 숙청했다.평남인민정치위원회 조만식의장이 1월5일 열린 긴급회의에서 「신탁통치 반대」발언을 하자 그를 고려호텔에 연금시켰다.반탁을 외치는 시민·학생들에 대한 시베리아 유형이 시작됐다. 모스크바 결정을 실행하기 위한 실무회담인 미소공동위원회 1차회담은 46년 3월20일 덕수궁에서 열렸다.모스크바 결정이 내려지고 미소공동위 개최까지의 석달동안 이땅의 정치세력들은 뭉치지 못했다.민족의 통일·독립을 4대국에 강력히 요구하기는 커녕 사분오열돼 정파 이익찾기에 급급했던 것이다.결국 미소공동위는 결렬되고 남북에 주둔한 미·소군은 단독정부 수립 계획을 구체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 이 NPT거부 관련/대애 이견조정 실패

    【카이로 로이터 연합】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23일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관련된 분쟁을 해소하는데 실패했으며 이에 따라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의 2차회담을 포기한채 귀국할 예정이다. 페레스 장관은 이날 아므르 무사 이집트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뒤 기자들과 만나 『NPT문제와 관련,몇몇 부분에서는 합의를 이뤘으나 그 나머지에서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협의와 교섭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무사장관도 분쟁해결을 위해서는 추가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모스크바 3상회의(새로쓰는 한국현대사:8)

    ◎미,「신탁통치」 제의… 좌·우 극렬대립 초래/처음엔 온국민 “반탁”… 며칠새 좌익은 “보탁” 돌변/해방정국 혼란의 늪에… 「남북분단 고착」 빌미로/“한국문화·생활수준 높다” 미 군정서도 신탁 반대 광복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 45년 겨울 모스크바에서 불어온 한줄기 삭풍은 민족의 가슴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미국 소련 영국 중국 등 4개국이 한반도를 최장 5년 동안 신탁통치한다」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은 비보 그것이었다. ○미 43년초 탁치 첫언급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은 분노로 들끓었다.새 국가의 체제를 놓고 경쟁하던 우익·좌익 양대 세력은 반탁,찬탁으로 갈라서 서로가 적대관계 노선을 치달았다.또 한민족의 신탁통치 반대투쟁 과정을 지켜본 미·소 양국은 「한반도 독차지」의 야욕을 포기하고 자국 세력권에 각각 단독정부를 세우는 쪽으로 선회해버린다.결국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몰고온 「신탁통치 바람」은 남북분단을 고착하는 빌미로 작용했을 뿐이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은 이처럼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확한 내용은 물론 어느 나라가 신탁통치 계획을 주도했는지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한반도를 신탁통치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이를 실현시키려고 애쓴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인 1943년 초 이같은 구상을 처음 드러냈다.그해 3월27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 외상 이든과 만난 자리에서 전후 한국과 인도차이나에 신탁통치를 실시할 뜻을 비쳤다.이어 11월 열린 테헤란회담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스탈린에게도 같은 생각을 슬쩍 흘렸다. ○루스벨트 구상 흘려 이후 미국의 계획은 갈수록 구체화됐다.43년 12월 카이로회담에서는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독립시킨다는 표현으로 나타났다.그리고 얄타·포츠담회담에서는 더욱 은밀하게 추진된다.루즈벨트가 얄타회담에서 필리핀을 예로 들며 한국에서도 20∼30년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에 스탈린은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대답하기에 이른다. 전쟁이 끝나 38선을 경계로 남북에 미·소 양군이 진주하고 군정이시작되면서 「신탁통치」건은 얼핏 사라지는 듯 했다.그러나 10월1일 미국 삼성조정위원회는 맥아더 장군에게 「미군정에 이어 효과적인 4국 신탁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섭을 시작하라」는 통고를 보낸다.이어 미국이 신탁통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 고위관리의 발언으로 명확하게 표출됐다.국무성 극동국장 J C 빈센트는 그달 중순 외교정책협의회 포럼에서 『한국에는 당장 자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우선 신탁관리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한국 언론에 보도돼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매일신문(10월20일자)은 논평에서 신탁통치 기도를 『그것은 식민지화이며,다름아닌 쇠사슬』이라고 비난했다.좌우익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우익인 한민당은 미군정과의 협력을 중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좌익인 인민공화국도 『신탁통치를 강제 결의한다면 한국인은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식민지의 연장” 비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국립문서보관소(WNRC)에서 최근 찾아낸 미 외교문서와 「신탁통치에 관한 보고서」 등에 따르면 주한 미군정도 사실상 신탁통치안을 반대했다.하지의 정치고문 랭던은 11월20일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해방된 한국을 한달 동안 관찰한 경험에 미루어 신탁통치는 불가능하므로 철회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그 까닭을 『한국은 일제치하를 제외하면 남다른 역사를 산 민족이고,문자해득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생활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하지도 이 무렵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보고서 「한국의 상황」에서 『신탁통치가 지금 또는 장차 적용된다면 한국인들은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우익지 “소련서 제안” 이런 상황속에서 12월16일 소련 수도 모스크바에는 미국의 번스 국무장관,소련의 몰로토프 외상,영국의 베빈 외상 등 3명이 회동했다.얄타회담의 후속으로 마련된 이 모임에서는 한국 말고도 유럽·아시아지역의 여러국가들에 대한 처리방안이 논의됐다. 삼상회의 마지막날인 27일 「한국에 관한 결정」이국내에 보도됐다.우익지의 대표격인 D신문은 27일자에서 「워싱턴 25일발 합동 지급보」란 설명을 붙여 그 내용을 전했다.『소련은 신탁통치 주장,소련의 구실은 분할 점령,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란 제목의 기사는 벌집을 쑤셔놓은듯 파급이 컸다.미국의 「성조지」와 KPP통신도 이날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결국 이같은 첫보도는 한국민에게 ▲「모스크바 결정」의 주내용은 신탁통치 실시이고 ▲이를 주장,관철시킨 쪽은 소련이라는 인상을 깊이 각인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이 회담에서 미국은 4대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5년 동안 실시하되 1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제의했다.반면 소련은 한국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해 임시정부를 수립한 다음 4개국이 원조하자는 안을 내세웠던 것이다. 「한국에 관한 결정」은 미·소 양국안을 절충한 형태로 내려졌다.4개항의 요지는 ①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②준비모임으로 미소공동위원회 구성 ③5년 이내의 신탁통치 실시 ④2주 내 남북 주둔군사령부 대표자회의 개최 등으로 돼 있다.따라서 절차상 예비기구 설치를 규정한 조항을 빼놓고 본 주요내용은 「임시정부 수립」과 「5년 이내 신탁통치 실시」이다.특히 「임시정부 수립」에 우선 목표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음모」 오해 당시 일반적인 국민감정은 「어떤 형태로든 외국 지배가 연장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백성의 분노는 당연히 왼쪽을 겨냥했다.더욱이 처음 반탁에 동참했던 좌익세력이 며칠새 찬탁으로 입장이 돌변하면서 「신탁통치 기도는 공산주의의 음모」라는 시각이 자리를 굳혔다.그러나 사실은 곧바로 드러났다.46년 1월25일 소련 타스통신은 『신탁통치를 제안한 쪽은 미국』이라며 미국안을 공개했다. 미국이 신탁통치를 먼저 제의했다는 증거는,서울신문사 특별취재반이 역시 WNRC에서 입수한 「번스 국무장관이 주한미군 정치고문 베닝호프에게 보낸 전문(46년 1월26일)」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이 전문은 「타스통신 보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묻는 베닝호프에게 보낸 답신으로,번즈 장관은 『그 내용이 맞다』고 시인한 뒤 『하지 장군이 적절하게 판단해 처리하도록』지시했다. 하지만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누가 신탁통치를 획책했는지가 새로 밝혀졌다고 해서 대세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반탁·찬탁 투쟁을 통해 이미 전면전에 들어간 좌우익 세력은 상대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이에 따른 좌우익 충돌은 해방정국을 더욱 깊은 늪으로 빠뜨렸다. ◎한·소 신탁통치 결정 속셈/자기세력권 확보에 유리 판단/한국독립과는 무관… 냉전체제 대비 노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에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미국·소련 양국의 속셈은 무엇일까.신탁통치 구상이 처음 나와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결정되기까지 양국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미국은 전후 세계 질서 재편의 한 방안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여러 식민지 국가들을 신탁통치령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미국의 의도는 명확하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측을 주도한 미국은 전후세계가 자국 중심으로 개편되기를 원했다.다른 나라보다 보유 식민지가 적었던 미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은 영국·프랑스의 식민지들을 「민족 독립」의 명분으로 풀어주고자 했다.이는 실질적으로는 해당국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독립한 국가들을 자연스럽게 자국 세력권으로 유도하는 방안이었다.또 당시 이미 싹트고 있던 냉전체제에 대한 대비이기도 했다. 한국에 「4국 신탁통치」가 실시되면 미국은 영국·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함으로써 한국을 미국 세력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같은 이유로 소련은 처음 신탁통치안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그러나 「8·15」 후 북쪽에 진주한 소련은 신탁통치를 하더라도 한반도를 공산주의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나름대로 갖게 됐다.북쪽은 물론이고 남쪽에도 좌익세력이 만만치 않아 결국 대세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소 양국의 신탁통치 결정은 애당초 한국에 자주독립국가를 세운다는 것과는 상관 없었다.한반도에 들어선 정부를 자국 세력권으로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고 그 전략으로서 신탁통치가 양국의 입맛에 들어맞았을 뿐이었다.
  • 박재윤 장관에 듣는 통상산업정책(국정 어떻게 돼 갑니까)

    ◎“업종전문화 보완 추진… 폐지할 생각없다”/남북경협,기업인 방북·위탁가공부터 활성화/중기 구조개선 1년 연장… 1조원 추가지원/전력난 덜게 여름오기전 발전소 8기 완공 □대담=정신모 경제부장 『업종전문화 시책의 취지가 경쟁력 강화인만큼 대기업들이 주력 업종을 중심으로 성장하도록 보완·발전시키겠습니다』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은 업종전문화 시책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과 관련,『폐지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한국가스공사의 민영화에 대해선 경제력 집중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재벌의 참여를 제한할 뜻을 비쳤다.초대 통산부 장관으로 직원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박장관을 서울신문 정신모 경제부장이 만났다. ­삼성에 승용차 사업을 허용함으로써 업종전문화 시책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당초 기술인력 스카우트 등 부정적 영향 때문에 논란이 있었으나 삼성이 보완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허용했습니다.산업정책의 방향이 달라진 게 아닙니다.진입과 퇴출은 기업의 자유의사와 시장기능에 따르는 게원칙입니다.업종전문화의 취지는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으므로 입지나 기술개발 지원을 보완·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올 수출입 전망은 어떻습니까. ○올 수출 출발은 순조 ▲연초 수출은 비교적 순조롭게 출발했습니다.올 수출은 엔고의 약화 등 악재도 있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지난 해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입니다.수입도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설비투자 활성화로 증가가 예상됩니다.기술개발로 경쟁력을 키우고 기계류와 부품의 국산화를 적극 추진,수입이 안정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WTO 출범으로 시장개방이 가속화되면 중소기업은 더욱 경쟁력을 잃게 될 소지가 큰데요. ▲경쟁의 격화는 불가피합니다.그러나 우리만의 일이 아닙니다.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은 오히려 성장과 도약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정부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구조개선 사업을 1년 연장하고 1조원을 추가로 조성,지원합니다.지역 별로 신용보증조합도 세워 신용보증 지원을 늘리고 상업어음 할인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기업들은 아직도 규제완화가 미흡하다고 하는데요. ▲신정부 이후 지난 해까지 2천2백여건의 규제를 완화했습니다.정책목적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진 데다 관련법령의 정비 등 행정조치에 시간이 걸려 효과가 바로 안 나타나기 때문에 미흡하게 느낄 것입니다.앞으로 규제목적이 달성됐거나 행정편의적인 것은 개혁 차원에서 풀 생각입니다.그것도 어려우면 간접규제나 사후규제로 전환하겠습니다. ­통상환경은 어떻습니까. ▲협력을 하지 않고는 경쟁할 수 없게 됐습니다.시장과 투자를 개방하고 무역제도를 선진화해야 합니다.국가간 산업협력을 강화하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APEC) 등 다자간 협력체제를 통한 입체적 통상협력 기반을 구축해야 합니다.규제완화와 중장기 전략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WTO 체제에 맞는 통상정책을 추진할 생각입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는 남북경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경제집중예방 고심 ▲북한·미국간 핵 회담의 합의이행을 위해 통상규제법 등의 일부를 푼 데 지나지 않습니다.따라서 당장 남북경협을촉진하는 효과는 적다고 봅니다.남북경협이 활성화되려면 직교역 등 남북 기본합의서의 내용이 이행될 정도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돼야 합니다.우선은 기업인의 방북과 위탁가공 무역을 활성화할 생각입니다. ­등소평 사망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없겠습니까. ▲등소평 이후에도 중국 경제는 개혁·개방 노선을 유지할 것입니다.중국 지도자들이 개혁성향을 갖고 있고,93년 개정된 헌법에 시장경제화 노선이 명문화돼 있습니다.개방의 혜택이 국민들에게 널리 스며든 점을 감안하면 폐쇄적인 경제체제로의 복귀는 불가능할 것입니다.우리 기업의 투자가 일시 위축될 수는 있지만 중국의 권력승계가 순조로우면 불안요인은 없어질 것입니다. ­한국중공업과 한국가스공사의 민영화는 왜 늦어집니까. ▲두 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민영화 방안에 관한 연구용역 기간을 6개월 가량 연장했습니다.가스요금의 체계를 합리화하고 경제력 집중을 예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도 전력난이 우려되는 데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에어컨 등 냉방기기의 보급이 늘어나 올해에도 전력수급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건설 중인 발전소 5기(2백30만㎾) 외에 추가로 3기(74만개)를 여름철 이전에 완공하고 가스냉방 등 전기대체 냉방기기를 설치하도록 유도할 계획입니다.전기요금 인상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결정하겠습니다. ○가스 안전관리 개선 ­아현동 가스사고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한국가스안전공사를 중심으로 한 전문진단반이 주요 시설에 대해 이 달 25일까지 안전진단을 하고 있습니다.이를 토대로 근원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겠습니다.가스사고의 절반 이상이 취급 부주의로 일어나는 것이라,중고생과 예비군 등을 대상으로 한 안전 교육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유가 등 석유산업의 자유화는 언제쯤 이뤄집니까. ▲정부는 지난 해 1월부터 유가연동제를 시행하는 등 유가 및 석유산업의 자유화를 준비해 왔습니다.지난 해 발표한 유가자유화 등을 토대로 석유사업법 개정작업을 하고 있습니다.상반기 중 개정안을 마련하겠습니다. ­WTO 사무총장 경선은 어떻게돼갑니까. ▲살리나스 멕시코 전 대통령의 후보사퇴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나 단정하기엔 이릅니다.김철수 전 장관은 현재 아시아는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등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김후보의 당선을 위해 외교활동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가 김영삼 대통령의 후보시절 경제특보로 발탁된 박장관은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시절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근무한 「일꾼」.경제수석에서 재무부 장관으로 옮긴 지 2개월만에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초대 통상산업부 장관을 맡았다. 미국이 최근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통상압력을 강화하는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오는 12일 미국을 처음 방문하는 그가 어떤 수완을 발휘할 지 주목된다. ◎세계화 통산정책의 방향/“보호장벽 헐고 「개방형 통상」 지향”/「수입선 다변화」 축소… 상업차관 허용/해외투자 적극 촉진… 4천억원 지원 지난 달 19일 서울 삼성동 무역클럽에서 있은 한국무역협회 초청 강연 석상. 『앞으로 통상정책의 목표는 세계 경제 속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며,이익을 극대화하는 「개방형 통상국가」를 지향하는 데 두겠습니다…』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이 구평회 무협회장과 무역업계 대표 1백50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설정한 새해 통상정책의 방향이다. 개방형 통상국가­.이는 세계화를 지향하는 통상정책을 한마디로 집약한 말이다.올 국정목표가 「세계 속의 중심국가로 서는 세계화」라면 「국제 사회에서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개방형 통상국가는 실천적 각론인 셈이다. 올해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원년이다.2차 대전 이후 50년간 국제교역 질서를 다스려온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새 규범(WTO 협정)으로 대체됐다.개방과 자유·공정무역을 전제로 한 WTO협정은 세계 경제의 지구촌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때문에 개방형 통상은 무한경쟁 시대의 생존전략을 의미한다. 이제 상품을 팔기만 하면 끝나는 시대는 지났다.무역과 투자로 생존해야 할 우리로서는 상대국 시장만큼 국내 시장도 열어야 할 형편이다.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외국 업체와의 사활을 건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국내 시장이 폐쇄적이고 대외 통상기조가 「투쟁적」이었다면 앞으로는 국내 시장을 열고 외국과 「싸우면서 협력하는」 호혜의 관계가 정립돼야 한다. 통상산업부가 올해 정책의 지향점을 개방형 통상국가에 둔 것도 이 때문이다.이 기조에 따라 국내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투자에 걸림돌이 돼 온 모든 장벽과 장애물을 과감히 걷겠다는 구상이다. 개방을 위해 수입 자유화와 외국인 투자 제한,수입제한 조치의 대명사인 「수입선 다변화 제도」를 과감히 개선키로 했다.1백1개인 수입규제 품목 중 WTO 협정에 따른 쇠고기 등 8개 품목을 빼고는 97년 6월 말까지 모두 자유화할 생각이다. 2백4개인 수입선 다변화 품목도 당초 계획보다 「더 일찍,더 많이」 풀고,고도기술 분야의 외국인 투자기업에는 5년 이상 상업차관을 허용한다.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도 적극 촉진,부메랑 효과를 우려해 제한했던 나염 등 7개 업종의 해외 투자를 7월부터 전면 자유화할 계획이다.해외 투자 절차도 간소화한다. 올해 수출입은행에 해외투자 기금 4천억원을 지원,해외투자 기업의 자금애로를 돕고 현지에서의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해외투자 기업의 행동강령도 제정한다.수출입 승인이 간소화되고 무역·금융 등 WTO의 금지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정비하는 등 관련 제도도 대폭 손질한다. 모든 것이 보호 장벽을 털어버리고 공정한 경쟁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공격적 통상전략이다.
  • 심층취재/여객·화물 10개노선 「황금뱃길」로

    ◎한·중 해상직항로 실태와 문제점/90년이후 매년 급증… 올 18만 예상/여객/작년 「컨」27만TEU… 연내 38만넘어/화물/문제점·대책/추가항로·선박투입 지연… 적체 심화/부실 서비스에 도박·밀수·폭력 성행/상반기중 카페리노선 3곳 더 개설 지난 92년 8월 이뤄진 한중 수교로 양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교류가 확대되면서 새로운 협력관계의 발판을 구축해 가고 있다. 금단의 땅이었던 중국을 찾는 관광객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경제부문의 교류는 최근 대 중국 투자환경 여건의 개선에 따라 국내업체의 중국 진출붐이 일어 교역량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같이 교류활성화에 따른 여객·물동량의 급증추세에 힘입어 한중항로는 순항을 거듭하면서 「황금뱃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양국이 수교를 맺기 전인 지난 90년 인천∼위해간에 처음으로 개설된 한중해상항로는 현재 10개 항로로 늘어났으며 양국간에 추가항로 개설이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한중 항로의 전반적 실태 및 전망,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등을 종합,진단해 본다. ▷항로개설 경위◁ 한중간의 해운협력관계는 수교전인 지난 88년 6월 우리 경제대표단의 중국방문시 양국이 합작해운회사를 설립,공동운영하기로 합의하면서 시작됐으며 같은 해 8월 선주협회내에 「한중해운협의회」설치를 통해 한중간 해상직항로 개설을 추진하면서 본격화됐다. 이에 따라 지난 90년 9월 한중합작회사인 위동해운유한공사가 인천∼위해간 2백30마일 항로에 9천9백78t급 「뉴골든브릿지호」를 투입함으로써 한중항로시대의 막을 올렸다. 화물항로의 경우는 91년 8월 역시 한중합작회사인 경한해운의 1천6백t급 적재능력 1백37TEU의 「트레이드」호가 부산∼청도간을 첫 운항함으로써 시작됐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부차원의 해운협력은 한중수교 이후 해운회담 개최를 통해 이루어져 왔으며 92년 11월 북경에서 열린 제1차 해운회담에서는 정기선을 제외한 양국 국적선의 자유기항을 같은 달 13일자로 전면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93년 2월 서울에서 열린 제2차 해운회담에서 비로소 한중해운협정이 조인돼 양국간 해운협력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실태◁ 지난 90년 9월 인천∼위해간 취항으로 시작된 한중간 여객항로는 91년 12월 인천∼천진,93년 5월 인천∼청도,지난 8월에는 부산∼연태항로가 각각 추가로 개설돼 현재 모두 4개 노선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위해·청도는 위동항운유한공사의 9천9백78t급 「뉴골든브릿지호」에 의해 각각 주 1회·주 2회씩,천진은 진천항운유한공사의 1만9백56t급 「천인호」에 의해 월 6회 운항되고 있다. 또 부산∼연태간 항로는 연태진성국제선무유한공사의 「황해호」에 의해 월 6회 운항되고 있다. 이들 한중간을 운항하는 카페리호 선사는 모두 우리나라 기업과 중국측의 공사가 공동출자한 합작회사로 선원도 양국인이 혼성돼 있다. 이와 함께 양국간 화물을 운송하는 컨테이너항로는 현재 모두 6개의 항로가 개설돼 있다. 부산∼상해·청도·대련·천진간 항로는 지난 91년 8월,중국선사들이 독점운영하는 부산∼연운,부산∼남경간 항로는 지난해 2월과 5월 각각 개설돼 운항중이다. 이같은 항로 활성화에 힘입어 지난 91년 5만7천2백11명에 불과하던 이용승객이 92년에는 10만6백92명으로 76.7% 늘어났으며 93년에는 11만6천7백76명으로 15.9% 증가했다. 92년에는 중국교포의 국내 취업붐의 영향으로 입국인원이 5만3천95명으로 출국인원 4만7천5백97명보다 11.5% 많았으나 93년에는 불법취업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돼 오히려 출국이 6만4천2백36명으로 입국 5만2천5백40명보다 22.2% 많았다. 또 91년 8만3천9백62TEU의 수송에 그쳤던 화물컨테이너는 92년 12만8천4백62TEU로 53.9% 늘어났으며 93년 22만4천1백81TEU로 74.5% 증가했다. ▷전망◁ 관광객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다 경제교류 활성화에 따라 앞으로 한중간을 오가는 승객과 화물물동량은 증가추세가 계속돼 한중항로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수교이후 카페리항로를 이용하는 여객이 매년 약 20%의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 4월 중국여행 자유화조치 이후는 중국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 올해는 50%가 늘어난 18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난해 6월 백두산관광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승선이 어려울 정도로 가파른 상종가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양국간의 수출입 활성화로 화물수송도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대 중국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8% 증가했으며 수입도 10.9% 늘어나는 등 전체 물동량은 27만TEU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 늘어났으며 올해말까지는 38만TEU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품목도 수출의 경우 교류초기에는 섬유·합판·전자제품 등에 국한됐지만 자동차·화공약품 등으로,수입도 철강·고철·원당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이처럼 한중항로의 수요가 점차 늘어나자 당국은 현재의 항로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보고 항로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양국은 지난 93년 8월 열린 제1차 해운협의회에서 인천∼대련,인천∼청도,부산∼상해간 3개 카페리항로를 추가로 개설하기로 합의한바 있어 늦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이들 항로도 개설될 전망이다. 이와함께 지난해 6월말 제2차 해운협의회에서 목포∼연운간 카페리항로를 개설하고 화물항로에 양국에서 각각 4척의 컨테이너선을 추가,투입하기로 했으며 중국측이 제안한 인천∼단동,인천∼영구간 항로도 인천항의 접안시설이 확보되는대로 개설하기로 합의해 한중항로는 조만간 입체화될 전망이다. 문제점 지금까지 양국간의 해운정책이 실체적 상황에 맞춰졌다기 보다는 양국간의 정치적 상황논리에 의존하다 보니 정책이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단적으로 한중항로에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나 추가항로개설 및 선박투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승객적체 등 갖가지 문제점이 파생되고 있다. 카페리항로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보통 7∼15일씩 기다려도 정상적인 방법으론 표를 사기가 어려우며 특히 추석·설날 등 명절 때에는 웃돈을 주고 배표를 구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배표 품귀현상을 틈타 일부 여객선사 중국현지 매표소측이 승객들을 상대로 표값의 3∼5배에 이르는 웃돈을 요구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어 이용객들의 심한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해말 인천∼위해간 뉴골든브릿지호를 타고 입항한여행객들은 선사인 위동항운 중국사무소측이 고의로 창구에 「표매진」공고를 낸뒤 표를 빼돌려 2∼10배의 웃돈을 받고 팔고 있다며 항의하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또한 카페리호내에서 자주 발생하는 선상폭력 및 도박·서비스 부재 등도 이용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지난달 17일 인천항에 입항한 뉴골든브릿지호의 승객 일부는 선상폭력근절 및 서비스개선 등을 요구하며 선사사무실 및 인천지방해운항만청에 몰려가 6시간동안 항의하는 사태가 일기도 했다. 무역관계로 한달에 3차례이상 중국을 오간다는 김광수(57·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2가)씨는 『화교승객들끼리의 선상폭력이 자주 발생하고 선내 사우나실에서는 노름판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나 승무원들이 제지하는 일이 거의 없고 선내 음식값이 시중가의 2배에 이르는 등 서비스도 형편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함께 최근들어 우리나라와 중국을 오가는 출입국자가 크게 늘면서 인천항이 대중국밀수의 온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인천세관이 지난해 상반기중 적발한 대중국 밀수는 47건 2백29억7천만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69억9천만원보다 무려 2백48%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중국교포와 선원들이 배에 물건을 숨겨들여오는 밀수가 날로 급증하고 있으며 품목도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본 한­중 해상직항로/이용우 항만청 진흥과장/“해운보호주의 벗어야한다”/세계화·개방화 맞춰 서비스개선 등 시급 지금까지는 한·중항로에 대한 우리의 정책방향은 무엇보다도 중국의 사회주의 특성을 감안한 양국간 호혜평등주의를 실현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어왔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양국은 한·중항로를 개설하기에 앞서 합작선사를 설립하고 항로에 동일한 척수의 배를 투입,운항토록 하였으며 선박의 추가투입도 양국간에 합의를 통해서만 할수 있도록 운영되어 왔다. 이러한 규제는 항로개척 초기단계에서는 항로의 안정화라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점차 해운업의 자유로운 시장진입을 가로막는 해운보호주의의 한 유형이 되어가고 있다. 이와같은 보호주의는 해운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동시에 선진해운국과의 해운마찰의 한 요인이 될 수 있는 등 부작용 측면이 대두되고 있다. 자유로운 경쟁원리에 의해 기업의 경쟁력 및 서비스수준이 보다 향상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시장진입 제한이 계속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세계 9위의 해운국으로 부상해 있는 우리나라의 해운정책이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자율경쟁의 보장과 해운세계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 만큼 한·중항로도 이러한 추세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한·중양국은 현재 4개로 되어 있는 한·중간 여객항로와 6개의 화물항로만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보고 항로다각화를 추진하고 있어 개방화 추세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8월 한·중간 1차 해운협의회에서 인천∼대련,인천∼청도,부산∼상해,부산∼연태간 4개 카페리항로를 추가로 개설하기로 합의한바 있으며 이 가운데 부산∼연태 항로는 이미 지난해 8월 개설됐으며 나머지 항로도 늦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개설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와 관련,정책당국으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중항로 참여 선사들이 서비스 특화개발 등 전면개방에 대비한 수용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중항로를 운항중인 카페리호에서 웃돈요구와 서비스부재 등 각종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경쟁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방화시대에 맞춰 서비스의 현격한 개선이 없이는 역시 조만간 다각화될 것으로 보이는 한·중항공항로에 대해 점차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며 기존 참여 선사들의 도태현상마저 일 우려가 있다. 특히 화물의 경우 중국선사 및 외국선사와의 집하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화주에 대한 서비스개선 및 운임경쟁력을 확보하지 않고는 다른 특별한 대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정부로서도 중국정부와의 연례 해운협의회 등을 통해 우리 선사의 중국내 영업환경개선이 이뤄질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항로에 대한 규제도 점진적으로 철폐해 나갈 계획이다.
  • 「경수로 계약서」 문안 협의/북­미 2차전문가회의 개막

    【베를린 연합】 북한에 대한 경수로 공급문제를 둘러싼 세부사항을 협의하는 북한·미국 전문가회의가 28일 베를린에서 개막됐다. 지난해 10월 제네바 북·미 합의에 이어 11월말 북경에서 열렸던 경수로 전문가회의의 후속회담 성격을 가진 이번 회의에서는 북한과 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KEDO)간 맺게 될 경수로 공급 기본계약서 문안에 관한 집중적 협의가 이뤄어졌다. 김정우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측대표단과 게리 세이모어 미국 국무부 핵비확산국 부과장을 대표로 하는 미측 협의팀은 이날 상오 9시30분부터 베를린 북한이익대표부에서 첫날 접촉을 갖고 경수로 공급협정에 포함시킬 제반요소에 관한 기술적,법률적 사항에 관해 의견조정을 했다. 양측은 29일에 미국대사관 베를린 분관에서 둘째날 회의를 갖는등 양측 외교공관을 오가며 원칙적으로 31일까지 나흘간 협의를 계속키로 합의했다.
  • 유럽의 새모색/「카리스마」보다「융합의 리더」찾는다(신지도자론:3)

    ◎“발전적 EU건설” 외교력을 제일 덕목으로/불/좌파 개혁실패에 민의 우파 선호/독/화학적 민족통합·경제성장 기대/영/강력개혁 대처 영국병 치유 업적 21세기의 유럽국가들은 전반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프랑스의 한 국제문제연구소는 『민족주의 강화로 21세기가 반드시 장미빛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미국의 석학 새뮤얼 헌팅턴은 『앞으로 민족문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민족과 문화에 대한 비전이 미래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떠오를 것이라는 얘기다. 그와 함께 현재 경제적 통합의 중간지점까지 진전된 유럽연합의 앞날을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과의 협조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자질도 요구된다고 보고 있다. 선택은 국민에게 달렸다.시대 변화에 따라 국민이 원하는 국가지도자상은 늘 바뀌어 왔다.유럽 여러나라 지도자들의 진퇴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국민은 지난 58년 드 골장군을 막강한 권한까지 주면서 대통령으로 택했다.그러나 11년 뒤에는 그에게 심한 거부반응을 보여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했다.프랑스는 2차 대전이 끝난뒤 정치·사회적인 불안이 계속되는 데다 당시 식민지 알제리에 주둔하던 군부의 쿠데타조짐까지 겹친 위기상황을 맞자 초야에 묻혀 있던 드 골장군을 불렀다.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외교·국방·내치에 방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5공화국 헌법을 통과시켜주면서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드 골대통령은 카리스마적인 국가경영으로 전반적인 안정기를 이룩하지만 60년대말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하는 바람이 불어닥친다.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월남전 참전에 대한 젊은층의 반전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었고 국내적으로 2.7%라는 당시로서는 높은 실업문제와 학교시설 개선문제 해결등이 요구됐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조르주 퐁피두,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등장해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만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던 것같다.81년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프랑수아 미테랑의 사회당 정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미테랑 대통령에게 가히 혁명적인 개혁을 기대했다.사회당 정권의 출범에 겁을 먹은 일부 부유층은 해외로 도피했을 정도였다.하지만 이상적인 사회주의 정책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점차 퇴색했고 실패한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는 두번의 좌우 동거정부에서 나타난다. 프랑스는 오는 5월 대통령선거에서 21세기 지도자를 선출할 예정인데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크 들로르 전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의 인기가 높았다.이들은 정치인 출신이 아닌 행정관료에다 경제전문가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 프랑스의 미래 지도자상을 읽을수 있게 한다. 사회당 집권 14년에 대한 염증에다 사회당 후보로 유력시되던 들로르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국민의 선택은 우파로 결정될 것 같다.새로운 지도자의 자질로는 3백만명을 넘어선 실업자 문제 해결책,유럽통합(EU) 비전,외교력의 균형이 새롭게 요구되고 있다. 프랑스가 비교적 폭넓은 지도자의 변화를 추구했던데 비해 이웃나라 독일은 경제및 통일지도자를 한결같이 요구해왔다고 할수 있다.아데나워 총리(재임 49∼63년)은 패전국이던 서독에 완전한 주권을 회복케 하는 강력한 지도자로 적합했고 에르하르트 총리(63∼66년)는 경제부흥을 위한 경제전문가로 등장했다. 경제적인 기적을 이룬 독일국민들이 통일이라는 정치적인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택한 지도자는 빌리 브란트(66∼74년),헬무트 슈미트(74∼82년),헬무트 콜총리(82년∼)등으로 이어진다.특히 89년 역사적인 통일을 이룬 콜 총리의 신속한 상황판단과 기민성은 새시대의 지도자 덕목으로 지적된다. 콜 총리는 85년 옛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등장해 신데탕트시대를 맞이하자 이를 적극 활용해 89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독초청으로 2차대전의 남은 숙제를 해결한다.나아가 그는 동서독과 4대전승국간 회담을 통해 독일통일의 열매를 거둔다. 콜 총리는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거듭 지지를 받아 16년동안 최장수 총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국민이 요구하는 그의 활약상은 분명 바뀌고 있다.이제는 통일이후 문제해결과 화학적인 통합,경제성장을해야 한다는 쪽이다. 종전이후 영국에 나타난 현상은 국영기업의 비효율성,저조한 생산력,전국을 마비시킬 수 있는 호전적인 노동조합등 이른바 영국병의 만연이었다.대영제국의 광영은 커녕 유럽내 2류국가로 전락할 상황에서 국민이 요구한 것은 강력한 지도력이었다. 그래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여사가 79년 등장해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노조의 파업에 강력히 대응하는등 개혁조치를 취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대처 총리가 11년만에 다우닝가를 내준 것은 주민세 추진같은 비타협적인 강경함에 국민들이 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존 메이저 총리는 합의를 중시하는 온건정책을 펴면서 북아일랜드와의 휴전같은 내치문제로 눈을 돌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이제 유럽은 카리스마에 의한 강력한 지도력을 지닌 지도자들이 아닌 합의와 조화를 추구하는 지도자들의 시대가 되고 있다. 결국,지도자란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읽고 목표를 설정하며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 그 목표를 달성케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 일제통치의 해악(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

    ◎한민족 주체 말살… 남북분단 단초로/반일세력 살상·6백여만 강제징발/창씨개명·신사참배로 「정신」 황폐화/「황국 신민화」강요,「친일지식인」양산… 민족갈등의 불씨 남겨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 ▲김경운(조사부 〃 )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맞이한 광복의 빛은 찰나에 그치고 말았다.1910년 국권을 결정적으로 빼앗겼다가 일제가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1945년 8월15일 민족해방의 날.그 광복으로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났지만,환희의 기쁨은 곧 퇴색해버렸다.다만 예측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다른 시대가 민족의 미래로 다가서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현대사는 어언 50년이 되었다.그 반세기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얼핏 떠올려 볼 수 있는 말이 있다. 「미국이 한국에 깊숙이 개입해 온 시기는 일본 식민통치 전체기간을 상응하고도 남는다.팝뮤직등 한국의 잡동사니문화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지속적인 영향은 일본으로부터받았다.전후 한반도에서 두 국가를 건설한 것도 일본의 영향이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 브루스 커밍스(정치학)의 이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해방과 더불어 막을 올린 남북분단의 비극을 포함한 격동의 현대사 속에는 일제침략의 유산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우리가 8·15해방을 맞았을 때 민족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다시 말하면 일제36년의 파쇼통치를 통해 민족주체가 거의 말살되어 무력화한 상태였다.더구나 대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동맹국의 시각은 한반도에 뚜렷한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이 물음에 대답할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1910년 강제합병 이후 복벽운동 성격의 의병전쟁과 현대정치사상에 입각,독립선언의 의미를 지닌 3·1운동에서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한 현대사자료는 3·1운동의 경우만도 10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923년 8월 일본 도쿄 등을 휩쓴 간토(관동) 대지진의 피해를 한국인 폭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날조,무차별 살해한 대학살을 자행했다.당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독립신문」은 한국인 6천6백11명이 살해된 것으로 보도했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 비호아래 자경단이름으로 저절러진 만행현장에 대한 당시 경찰관의 증언.『아이들은 줄을 세워놓고 부모들이 보는데서 목을 잘랐다.그 다음은 부모들을 찔러 죽였다.온통 피바다를 이루었기 때문에 장화를 신지 않고는 걸어다니지 못할 지경이었다』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한 일제는 국내에서도 반일세력을 모두 잡아들였다.조선총독부가 각년판으로 펴낸 「조선의 최근 치안상황」에 따르면 1931년 한햇동안 붙잡아 투옥한 인원만도 3만8천7백93명에 이르고 있다.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육군특별지원령 공포(1938년)를 시발로 징용령(1939년)및 학병제(1943년)실시,여자정신대근무령 공포(1944년)등으로 인명을 수탈했다. 「조선인 강제연행기록」은 모두 6백만명이 끌려간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일제는 이 기간에 정신적 민족주체성 말살정책을 병행했다.동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말과 글을 못쓰게 한 한글교육금지(1938년),고유한 성과 이름을 강탈해버린 창씨개명이 그것이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1940년에는 황국신민화운동을 가속화했다.전통적 씨족관념마저도 앗긴 국민의 정서는 황폐 그것이었다. 일제는 황국신민화운동을 추진하면서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그리고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을 침략을 찬미하고 부추기는 자리에 끌어들였다.이 과정에 반민족적 지식인들이 생겨남으로써 민족내부의 분열을 가져왔다.이는 결국 민족갈등의 씨앗을 뿌려 일제 식민통치가 남긴 가장 큰 악영향으로 남게 되었다.일제하 독립운동이 희석된 까닭도 여기 있거니와 오랜 세월을 두고 민족화해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전의 전세를 차츰 유리하게 호전시키고 있던 연합동맹국의 눈에 들어온 한반도는 일본 패전 이후의 전리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나마 한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계를 유지해 왔던 중국 국민당정부의 장개석인 것으로 알려졌다.1943년 11월 미국,영국,중국의 수뇌가 만난 카이로 회담에서다.「조선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적당한 시기에 자유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의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각별히 주목할 것은 포츠담회담이다.카이로회담에서 합의한 「1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탈취한 모든 지역은 반환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재확인했다.그렇다고 한반도가 민족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고,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넘겨받기로 한 것이다.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킨다」는 카이로선언 원칙아래 처음으로 한반도 분할점령이 논의되었다.일본의 강점지역이라는 이유로 한반도와 거기 사는 사람들은 또 다른 운명을 기다려야 했다. 포츠담회담은 미국으로 하여금 다른 전략구상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원자폭탄을 이미 보유한 미국은 자국의 전력이 소련보다 우위라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이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에 관한 논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소련 진출을 적극 차단키로 한 미국은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1945년 7월25일 한반도 점령지시를 내렸다.하지만 미국의 주력병력은 한반도에서 먼 오키나와에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8월6일 서둘러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렸다.소련은 다급한 나머지 미국이 두번째로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기 전날인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그리고 한반도에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작전계획을 바꾸어 가면서 8월11일 밤 기계화군단을 포함한 소련군 25군 예하의 3개 군단과 2개사단이 황급히 한·소국경을 넘기 시작했다.미국은 소련군이 아직 한·소국경을 넘지 않은 8월11일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분할선을 부랴부랴 그어버렸다.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이날 하오 2∼3시 사이에 분할선을 긋기까지 워싱턴 미 육군성 차관보 부속실 벽시계바늘은 고작 30분을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분단의 역사는 너무 길었다. ◎“16세부터 노역·위안부… 한 어찌 풀까”/종군위안부 강덕경 할머니 증언/「역사의 진상」낱낱이 파헤쳐 사죄 반드시 받아야/민간기금으로 「과거」 무마 시도 일 태도 용납못해 「민간 위로금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일본찌 정부가 낱낱이 진상을 밝히고 과거의 죄과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합니다.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를 민간기금을 가지고 위로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 제국군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강덕경할머니(66)는 민족자존이 회복되길 바랄뿐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노했다. 『철 모르는 나이에 끌려가 아무 죄도 없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해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50년이 넘는 아픔을 누가 알겠습니까.세월을 탓하며 사라져 간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다소나마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도 사죄는 받아내야 합니다』 진주에서 태어난 강덕경할머니는 16세때인 1944년 요시노국민학교(현재의 중앙국민학교) 고등과 1학년 재학중 여자근로정신대 1기생으로 일본에 끌려가 후지코시 비행기공장에서 부품깎는 일을 했다.감옥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너무 고달파서 한밤중에 도망을 치다 군인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부대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위안부 생활이 남긴 급성신우신장염으로 시달리고 있지만 그는 유엔인권위원회,세계인권대회,국제사법재판소등을 통해 반세기 동안 청산되지 않은 군위안부 문제를 국제여론화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활동에 참여해 왔다.『한국 역사의 수치라고 생각하고 덮어 두어서는 안된다』는 강할머니는 민간단체들이 마련해 준 서울 혜화동 「나눔의 집」에서 같은 처지의 할머니 여섯분과 살고 있다.
  • 95한반도 주변 정세 전망/전문가 대담

    ◎전환기 동북아 “새질서 진통”/서울­평양관계 “제자리 걸음”/북­미합의 이행여부가 평화공존 관건/북,한국고립 노려 대미 「추파외교」 가속/「정상회담」 빠르면 하반기 성사 가능성/WTO출범 여파… 경제·안보환경 급변/주한미군 철수 쟁점화 가능성 대비를/중·러 불안 고려 일본과 급속한 군사교류는 “시기상조” 1995년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는 한해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김일성사망이후 북한에 새로운 체제가 출범하고 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위한 국제기구의 활동이 본격화 되는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역동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는 국제무역기구(WTO)의 출범에 따라 국제경제의 환경이 변화하고,핵확산금지조약(NPT) 연장등과 관련한 국제안보 환경의 변화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박수길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과 강성학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좌담을 통해 95년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와 우리 외교의 진로를 점검해 본다. ▲박수길원장=95년 국제정세는 일단 불확실성의 지속이라는 특성을 나타낼 것 같습니다.냉전체제가 붕괴한뒤 세계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을 예측했습니다.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런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95년에도 전환기적인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입니다.이는 세계정세를 주도해가는 주요국의 리더십 결여와도 관계가 있습니다.특히 미국이 국내문제에 전념해서 신세계질서 창출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결여된 전략적 무기력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확대등 지역주의의 확산과,유엔의 기구개편을 통한 역할 증대등과 같은 현상도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분쟁은 늘듯 ▲강성학교수=미래에 관해 얘기를 하는것만큼 모험적인 일은 없을 겁니다.새 국제질서가 아직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말하자면 청사진이 없다는 것입니다.나폴레옹전쟁이후엔 세력균형이란 것이 있었고 1차대전이후엔 국제연맹,2차대전이후에는 국제연합이란 것이 있어 어느정도 미래예측이 가능했었습니다.그러나 91년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소위「신세계질서」라는 국제질서를 꺼내봤지만 현재의 국제정세는 확실한 비전없이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적어도 95년까지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아 군사단극체제가 계속될 것입니다.이에 따라 국제체제는 안정을 유지할 것입니다.이 안정체제 아래서는 과거의 냉전체제에서도 그랬듯 한편으로 자유세계의 결속을 강화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많은 대립과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상됩니다.95년에도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소규모 지역분쟁이 다반사로 표출될 것입니다.현재는 미국의 초강대국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동의 문제에 대해 미국이 책임회피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셈입니다.아무래도 국내정치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고 비용을 요구하는 일에 대해 선뜻 나서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박원장=세계적인 현안(GLOBAL AGENDA)의 해결에 초점을 맞춰보면 좀더 밝은 면을 볼 수도 있겠습니다.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가 무기한,또는 상당기간 연장될 것으로 전망됩니다.화학무기협정(CWC)도 발효될 가능성이 크고요.또 내년에는 유엔이 50주년을 맞아 안전보장이사회 개편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되고,이는 결국 국제 분쟁에 대한 유엔의 대처능력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됩니다.세계무역기구의 출범도 국가간 상호의존성및 협력의 증대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겠죠.물론 종교·민족·인종 분쟁이 지속될 가능성은 여전합니다.그러나 전반적으로는 평화지향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강교수=최근의 유엔을 보면 2차대전후 마치 루스벨트의 꿈이 현실로 돼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올해 95년에는 유엔 50주년을 맞아 개편논의도 활성화될 것이고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문제나 한국의 비상임이사국 진출문제등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그러나 유엔기구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수단이어서 많은 한계를 노출시킬 것입니다.지금까지 유엔평화유지군 활동등을 보면 유엔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상당 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있습니다.많은 나라들이 유엔의 역할확대의 필요성을인지하면서도 실제로 성공을 뒷받침하는 재정문제등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저는 95년에 유엔이 국제적 갈등을 얼마나 해소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한·미관계 재정립 ▲박원장=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유엔은 보스니아 사태라든지,소말리아 내전에서 한계가 드러난 셈이죠.그러나 유엔이 없으면 인류가 기댈 수 있는 국제기구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또 현재 추진중인 평화유지상비군이 출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결국 유엔을 이끌어 가는 나라의 정치적 의지와 관계되는 일입니다. ▲강교수=지난 89년 예일대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앞으로의 세계가 상호의존시대 아래 글로벌 마켓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미 예언한 바 있습니다.이를 입증이나 하듯 WTO가 출범했습니다.여기서 성공하면 몫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고 실패하면 그만큼 위험부담이 커지는 셈입니다.지금까지 지역협력기구가 있었지만 전세계를 활동무대로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 될 것이며 그만큼 우리는 무한경쟁속에서 살게 됐다고나 할까요.미국과 한국은 지금까지의혈맹관계에서 하나의 비즈니스파트너로 될 가능성이 큽니다.미국에 대한 새인식이 요구된다고나 할까요.미국은 「동북아지역속에서의 한국」보다는 「전체속에서의 한반도」를 조망할 것입니다.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라도 군사적 개념에서 본다면 미국의 역할이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따라서 95년에는 주한미군철수문제라든가 유엔사령부의 해체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도 있을 것같아요. ▲박원장=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령부 해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최근 조지프 나이 미국 국방차관보가 제출한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동북아에서 미군의 전진배치를 계속 유지하고,다자안보대화를 추구하며,핵확산을 방지하고,동아시아에서 계속적으로 균형유지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부시 대통령 당시의 3단계 감축 계획을 모두 바꿔놓은 것이죠.동북아 정세는 이중적 측면이 있습니다.전체적으로 보면 평화무드로 가고 있지만 한반도에는 여전히 냉전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이죠.다행히 북·미합의가 실천되는 단계에 들어갔는데 북한이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한반도에도 평화공존 체제구축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강교수=주한미군철수문제가 본격 논의 될 수 있다는 것은 곧 철수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한·미 동맹관계를 보면 두나라사이에 경직되고 관료화돼있는 숙제들을 풀어야할 부분들이 많습니다.그러나 최근 제네바의 북·미합의 이후 미군의 계속주둔은 과연 필요한 것인가의 문제가 미국내는 물론 주변관계국들사이에 터져 나올 것입니다.따라서 우리는 『미군은 모두 떠날 것이다』라는 하나의 가정위에서 모든 안보전략을 새로 세울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미국이 다자간 안보대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없이도 안정과 평화상태가 유지되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박원장=동북아 정세를 점쳐보려면 미국의 대 동북아 정책에 유의해야 합니다.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동북아에서 안보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됩니다.이와 함께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클린턴 대통령이 93년 신태평양 공동체의 구성을 제안한 바와 같이 경제적 측면도 강조하고 있습니다.APEC등이 이러한 목표를 이루는 수단인 셈이죠.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역시 안보공약의 확인에 중점이 주어지고 있습니다.공화당이 의회선거에서 승리한뒤 이러한 측면이 더욱 강화됐죠.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패권주의를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 미국의 우려입니다. ○4강과 협력강화 ▲강교수=김일성사후 북한은 폭풍전야처럼 매우 조용합니다.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북한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하지만 남한과의 관계개선은 95년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같습니다.왜냐하면 북한은 근본적으로 남한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 두려움이 계속 커진다고 봤을 때 북한이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리라고 보여지지 않아요.남한과는 계속 거리를 두면서도 일본과 미국에는 「추파」를 던질 상황도 쉽게 예견되지요.특히 김정일의 리더십을 보면 자신감이 결여돼 있고 비전을 제시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조용한 상황이라는 것은 내부에서 김정일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없다는 뜻일 겁니다.대외적으로보다는 대내적인 혼란에 시달릴 수 있는 여러 징후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박원장=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만 이루어지면 일본은 저절로 따라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한국은 아예 제쳐두려고 하지요.그러니 95년에도 남북대화가 활발하게 재개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다만 북한에 한국형 경수로가 들어가자면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곤란합니다.그것이 북한이 가진 딜레마죠.한국에 대한 고립정책을 취하지만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아닙니까.때문에 내년 후반기에 대화가 재개되면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겠습니다. ▲강교수=북한이 1차로 원하는 것은 핵무장이지 경수로의 지원은 아닌것같아요.경수로지원을 통한 이번의 핵해결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때문입니다.그들로 봐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요.따라서 북한은 절대로 핵문제해결에 있어 수세적인 입장을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오히려 더욱 큰 소리칠 가능성이 있으며 경수로해결을 위한 남한과의 대화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을 것입니다.북한이 진실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한 경수로지원등으로 그들을 국제사회에 끌어낸다는 것은 서방의 자의적인 판단일수 있습니다. ▲박원장=한국의 안보는 스스로가 갖는 군사력과 미국의 안보공약이 가장 기본적인 요체입니다.좀더 나아가면 동북아 6개국을 중심으로한 안보대화를 통해 한반도 주변의 환경을 좀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다.만일 4강에 대해 차등외교를 한다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미국을 업고 4강과의 균형을 유지하며 우리의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죠.역사적으로 근세이후 한반도 주변에서 4번의 전쟁이 발발했는데 한국전쟁을 제외하면 청·일,러·일,중·일전쟁등 3번의 전쟁에 일본이 관련돼 있습니다.과거에 대한 올바른 인식 속에 일본과도 미래지향적으로 경제및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파트너십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중국은 이붕 총리가 방한한 이후에는 안보면에서의 협력조짐도 있습니다.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은 남북한 가운데 우리쪽이 더 실리가 많다고 보는 것이죠.러시아도 국교정상화이래 한국으로부터의 대접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같습니다.북·미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의 참여가 미흡한데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큰 테두리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우리 경수로를 두고 러시아 것을 제공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하지만 러시아는 4강의 다른 나라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강교수=한·일협정 이후 다소 예외적인 경우는 있었지만 한·일관계는 정부가 민간부문보다 앞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왔다고 보입니다.그러나 일본이 지금까지 보인 것은 대북지원을 통해 한반도분단이라는 현상유지정책을 취해왔다고 보여집니다.일본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며 일본과의 급속한 군사교류등도 서둘러 조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사고 탈피를 ▲박원장=끝으로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세계화의 문제를 한번 짚어봐야 하겠습니다.김영삼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의출범에 맞춰 세계화를 주창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생존전략으로 삼아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96년이면 우리가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기구(OECD)에도 가입하지만 우리 국민의 의식개혁이 가장 중요합니다.냉전시대를 지배하던 과거의 사고방식과 패러다임으로부터 탈피하여 세계를 활동무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강교수=동감입니다.세계화의 추진은 당연한 추세입니다.어떤 의미에서는 의도적으로라도 추진해야할 과제라고 여겨집니다.그러나 세계화를 추진하다 자칫 우리 자아를 상실할 우려도 있습니다.상대적으로 약소국가인 우리가 앞장서다 보면 틀림없이 스스로를 상실할 부분이 많지요.따라서 세계화의 추진만큼 우리의 주권강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남·북간의 경쟁은 끝난게 아니라 계속되고 있습니다.단지 그 경쟁에서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을 뿐입니다.이 유리한 위치를 강화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새로운 안보전략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북한이 「불장난」을 하지않도록 압도적인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이러한 바탕위에서 세계화의 추진이 의미가 있을 겁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광복 50/청산되지 않은 양국관계 6가지 과제

    ◎역사왜곡… 망언… 한·일 「감정의 골」 깊기만/재일교포 법적차별·냉대 곳곳 상존/사할린한인 영주귀국협상 작년에야 시작/정신대보상 대신 “위로금” 어물쩍 광복후 5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채 우리를 아프게 하는 일제의 상처들이 많다.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정신대의 한이 여전히 시퍼렇고 사할린 동포들의 귀국염원 또한 채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재일교포에 대한 일본의 차별대우 역시 시정되지 않고 있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현장에 있었던 한국인들은 그 2∼3세까지 고통을 겪고 있다.일본의 뿌리 깊은 역사왜곡은 지금도 일본 각급학교 교과서에 남아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며 수백만점으로 추정되는 일본의 우리 문화재 반환 전망은 어둡다.한국과 일본 두나라가 일제의 망령을 떨치고 진정한 선린우호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할 정신대 보상,사할린동포 귀환,원폭피해자 치료,재일교포 법적지위,문화재 반환,역사왜곡 문제의 현황을 살펴 본다. ▷침략사 왜곡◁ 일본의 한국사 왜곡은 뿌리깊다.19세기 중반 일본에서 「정한론」이 등장한 뒤 일본의 관계·학계는 한국침략의 당위성을 강조하느라 「임나일본부 설」따위를 조작해 퍼뜨리는등 왜곡된 한국사를 만들어 나갔다.「황국사관」이라는 이 군국주의적 역사관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일본의 각급학교 교과서에 남아 있다. 광복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정부에 역사왜곡을 고치라고 꾸준하게 요구해 왔으나 흐지부지되다 82년 7월 「마쓰노망언」이 터졌다.당시 일본 국토청장관 마쓰노 유키야스(송야행태)는 『한국이 일본 교과서 내용을 시비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주장에 이어 『한일합방은 침략이 아니다』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이때 우리 국사편찬위원회는 일본 교과서 16종을 검토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모두 24개 항목,1백67곳의 서술 잘못을 가려냈다. 「마쓰노 망언」파동은 일본정부가 넉달만에 「왜곡 시정」담화를 내는 것으로 일단 가라앉았지만 그 뒤로도 매년 일본이 교과서 검정을 하는 시기가 되면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시비」가 연례행사처럼 불거져 나온다.왜곡의정도가 점차 줄어들긴 하지만 그 틀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성이 교과서를 미리 검열하는 「검정제도」를 통해 역사서술을 조목조목 통제하고 있는 현실에서 역사 왜곡이 사라지지 않는 책임은 분명히 일본 정부에 있다.지난해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마쓰노식 망언은 계속됐다. 국민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치고 일제침략 행위를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계속 있는한 일본의 역사왜곡은 한일간의 현안문제로 계속 남을 것이다. ▷정신대 보상◁ 「인류역사의 치부」로 불릴 만큼 비인도적인 범죄로 낙인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우리민족의 역사에 남겨진 크나 큰 상처다. 90년 발족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공동대표 이효재·윤정옥·김희원)등 민간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 50년간 묻혀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전모가 상당부분 밝혀진 상태.그동안 씻지못할 고통속에 살다 많은 피해자들이 죽어갔고 현재 신고된 피해자 1백70명이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일본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총리가 강제성을 시인한 이후 가해당사자인 일본 정부의 입장은 개인보상은 해주되 국가책임차원이 아닌 민간주도의 보상인 「민간기금」을 마련,위로금 명목으로 보상비를 지급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미야자와 전총리의 발표후 우리 정부는 더 이상의 외교적 사안으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일본이 국제법상의 국가책임에 근거해 피해자 개인 보상및 정확한 전모공개,진실된 사죄를 해야 한다고 정대협등 민간단체와 재야법조계 등은 주장한다.이는 대체적인 국민정서이기도 하고 국제법조인회(ICJ)와 국제노동기구(ILO)유엔인권소위 등 국제 인권단체들이 일본에 대해 요구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효재 정대협대표등은 『65년의 한­일청구권 협정은 전후 두나라의 금전적 이해관계를 처리하기 의한 보상청구권협정으로,종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비인도적 전쟁범죄에 대한 손해배상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한­일협정으로 모든 과거가 씻어졌다는 일본 주장을 반박하고 현재 일본이 희망하고 있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입 자격을 얻기 위해서도 또 명실상부한 양국의 동반자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일본국가차원의 피해자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폭자 보상◁ 광복 50년이 되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의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폭 투하 현장에 있었던 한국인 가운데 귀국한 사람은 2만3천여명.이 가운데 2천4백여명만이 생존해 있고 이들이 낳은 2세가 6천여명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의 평균 생활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일본에서 한푼도 받지 못하고 귀국한데다 귀국 후에도 후유증으로 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 생계조차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또 즉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피해자들도 언제 각종 암이라든가 백혈병이 발병할 지 모를 일이었다. 이들은 현재 상병의 정도에 따라 10만원 안팎의 진료 보조비를 받고 있다.이는 지난 93년 일본 정부가 위로금 명목으로 건넨 40억엔 가운데 일부에서 지급되는 것이다.또 이 돈으로 현재 경남 합천에 8백평 규모의 원폭 피해자를 위한 복지관을 짓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 정부가 일본 거주 원폭 피해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보조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예컨대 일본의 피해자들은 건강 보조금 등의 명목으로 적게는 3만∼4만엔에서부터 많게는 13만∼14만엔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또 일본 거주 피해자들의 병원비는 완전 무료다. 한국 원폭 피해자들도 의료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항목은 무료 진료의 혜택을 받고 있다.그러나 컴퓨터 단층 촬영 등을 비롯,의료 보험 급여에서 제외되는 항목은 원폭 피해자들이 스스로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원폭 피해자는 『조금 형편이 나은 극소수의 사람들은 2세와 3세의 혼사를 위해서도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대부분의 원폭 피해자 1세들은 물론 2세,3세들까지 빈곤의 질곡에 빠져 정신적·신체적으로 고달프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현주소를 전했다. ▷재일교포 차별◁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법적 지위는 한일 두 나라간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어려운 외교 현안이다.재일한국인에 대한 대표적인 차별정책으로 인식되어오던 지문날인제도가 지난 93년 가족사항등록으로 바뀌었지만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가 적절하게 보장되고 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개최된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와 처우개선에 대한 한일 아주국장회의」에서 『가족사항등록이 외국인등록법 이외의 목적으로 남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를 일본측에 표명했다.또 외국인등록증을 상시휴대하지 않을 때 내려지는 형사처벌도 행정처벌로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이에 대해 일본측은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해보니 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위반자의 적발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면서 『앞으로도 상식적으로 유연히 운영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방공무원과 국·공립 교원채용,원호법상의 국적조항 철폐도 재일한국인에게는 중요한 현안이다.우리정부는 재일한국인의 지위개선을 위한 포괄적 조치로서 국적과 관계없이 지방공무원과 정규교사에 임용될 수 있도록 일본 중앙부처가 지도하도록 요청하고 있다.특히 「전쟁피해 보상은 일본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94년 7월의 구일본 상이군속 석성기씨등에 대한 재판결과를 들어 재일한국인 전상자에 대한 원호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이에 대해 일본측은 여전히 「노력」과 「검토」라는 표현으로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이밖에 민족학급의 설치,무연금 장애자·고령자의 구제,지방자치 참정권등이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및 처우개선과 관련,한일간에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억류자 송환◁ 지난 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일본 정부의 송환거부와 일방적 국적박탈로 사할린에 잔류하고 있는 한국인은 약 3만6천명에 달한다.종전 당시 소련측에서도 노동자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억류했기 때문에 이들은 귀국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사할린 동포들의 귀환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후한 시기이다.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소련의 관계가 개선돼 지금까지 6천8백여명의 사할린 한인이 모국을 방문했으며 2백46명이 영주 귀국했다.현재 사할린 한인사회에서는 원인제공자인 일본정부가 책임을 지고 희망자 전원에 대해 영주귀국을 실현시키고,사할린 잔류자에 대해서는 1인당 1천만엔씩을 보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당사국인 일본과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사할린 한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일본과는 지난 93년 9월 외무장관 회담에서 사할린 한인문제의 포괄적이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양국간 실무협의를 개최하기로 합의 했다.이에 따라 그동안 7차례 실무협의를 통해 일본이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아파트형 집단주택과 요양원 건설등 사할린 거주 한인 1세의 귀국과 정착을 위한 시범사업에 착수하기로 했다.정부는 사할린 잔류자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모국방문 기회부여등 영주귀국자와 유사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일본측에 요청했으며 러시아 정부와는 사할린 한인의 신분확인,영주귀국자의 출국과 국적처리 문제,재산반출,계속적인 연금수혜등을 협의하고 있다.러시아 정부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협조하겠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문화재 반환◁ 현재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6만4천7백28점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집계하고 있다.이 가운데 일본에 있는 것으로 확인 된 것은 2만9천6백37점이다.그러나 이 숫자가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 문화재는 일제 36년 동안 일본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약탈과 민간 수장가나 골동품 중개상에 의해 끊임없이 반출됐다.따라서 현재 일본에 나가있는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산은 수십만점도 아닌 수백만 단위에 이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정이다.우리 정부의 집계는 일본의 몇몇 박물관이 공개한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지난 65년 한·일협정 당시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른 1천3백26점 등 지금까지 불과 2천7백50점만을 반환하고는 『더 이상 돌려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국제교류재단은 지난 91∼93년 실시한 조사 결과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일회담 당시 일본이 제시한 우리 문화재목록에 들어있지 않은 1천여점을 추가로 확인하기도 했다.공공박물관도 우리 문화재에 관한 한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그 엄청난 숫자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약탈문화재」로 분류해 놓고 있는 것은 7백46점에 불과하다.이처럼 강제로 반출된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원소유국에 돌려주도록 한 유네스코의 협약이 있기는 하다.그러나 일본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아 우리 문화재 반환은 순전히 일본의 「선의」에 맡겨진 상태다.
  • 지구촌 수놓을 95빅 이벤트

    ◎1월/세계무역기구 새출발 세계무역기구(WTO)의 닻이 올랐다.미국을 비롯,1백여개국이 참여해 1일 출범한 WTO는 지난 47년간 세계무역자유화를 이끌어온 관세무역일반협정(가트)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음으로써 21세기 세계경제를 자유무역의 기치아래 더욱 철저하게 재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WTO는 93년 12월 타결된 우르과이라운드협정을 통해 만들어진 무역관련 국제규범을 실제로 관장하는 기구이다.WTO가 가트와 다른 점은 가트가 강제집행력이 없는 국가간의 무역협정임에 반해 WTO는 법인격을 갖춘 독립적 국제기구로서 국제무역제판소의 기능을 갖추고 나라간 무역분쟁을 해결한다는 점이다. ◎1월/EU15국 체제로 확대 유럽연합(EU)의 땅이 또 커졌다.유럽자유무역지대(EFTA)에 속했던 핀란드·스웨덴·오스트리아 3국이 1월 1일자로 EU에 합류함으로써 EU는 과거 12개국 체제에서 15개국 체제로 확대개편됐다.이로써 EU는 북미자유무역지대를 제치고 명실상부하게 세계최대의 경제블록으로 자리잡았다. 새 회원국이 생김에 따라 EU의 영토는 약 3분의 1이늘어났으며 인구는 6.2%가 늘어 3억7천만명을 넘어섰다.역내총생산도 7%가 증가해 7천4백억달러에 이름으로써 미국보다 10%,일본보다는 64%가 각각 많아지게 됐다. ◎3월/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개관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국제미술전인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전시관이 3월 하순 준공될 예정이다. 세계의 미술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8 95년 당시 이탈리아국왕이던 움베르토 1세에 의해 창설되어 1백년 가까이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을 배출했다. 베네치아에 독립전시관을 갖고 있는 나라는 24개국밖에 되지 않으며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전시관을 갖고 있다.한국은 25번째 독립전시관을 갖게되고 아시아에서는 두번째이다. 미술관계자들은 한국관의 개관으로 유럽에 한국미술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우리 미술의 국제화를 50년이나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5월/APEC 대전테크노마트 개최 아·태경제협력체(APEC) 18개 회원국간의 기술거래를 위한 「제1차 APEC테크노 마트」가 5월22일부터 27일까지 대전 엑스포전시장에서 열린다. 회원국의 기업체와 연구소·컨설팅회사·대학·개인 등 1천여명이 참가해 기술설명회와 기술전시 및 상담을 하는 이른바 「기술거래시장」이다.참가업체는 국내 1백개,국외 1백개이고 상담 참가업체는 국내 2백개,국외 2백50개다. APEC 테크노 마트는 아·태지역의 기술협력차원에서 지난해 11월 시애틀 APEC 각료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제안해 성사된 지역협력사업이다.현재 통상산업부 주관 아래 관련기관들이 준비하고 있다. ◎8월/일 패전50돌 평화축제 일본은 패전이라는 말보다는 종전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그 종전 50주년을 맞아 일본정부는 과거 침략사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과거청산작업」을 서두르고 있다.대표적인 청산작업으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종군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귀환문제,대만 주민등에 대한 확정채무의 변제등을 들 수 있으며 1천억엔규모의 각종 평화우호교류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일본은 침략전쟁기간의 잔학한 행위보다는 원자탄 피해국이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원자탄 폭격을 받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고 「평화이미지」 심기에 열을 올릴 계획이다. ◎3월/러 국립미술관 재개관 러시아 최대 국립미술관인 트레챠코프 미술관이 10년간에 걸친 대대적인 수리를 마치고 올해 3월쯤 다시 문을 연다.모스크바 시내의 유서깊은 라브루신스키 거리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제정 러시아때부터 볼셰비키혁명 이후 러시아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회화·조각·데생·러시아 정교회 성상조각 등 모두 6만여점의 작품을 소장,러시아문화계의 최대 명소로 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름/바그너축제 120년 결산 올해도 바이로이트에서는 1백여년 전통의 「바그너 음악제」가 여름 한달간 펼쳐진다. 19세기 독일 최고의 가극 작곡가 바그너는 말년의 대작 「니벨룽겐의 반지」를 상연하려고 18 76년 바이로이트에다 자신만의 오페라극장을 세웠다.「니벨룽겐…」이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초연된지 1백20여년,이 작은 도시는 이제 매년 열리는 「바그너 음악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바그너가 죽은뒤 그의 아내·아들·며느리가 차례로 운영을 맡아 맥을 이어온 음악제는 1,2차대전으로 인한 몇년간을 제외하고 지난 1백20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문을 열어왔다. ◎8월/U대회 후쿠오카 개막 올해 스포츠계의 국제 종합규모 대회는 올림픽,아시안게임이 모두 휴식기에 들어가 오는 8월23일부터 9월3일까지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릴 「대학생들의 제전」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유일하다. 이번이 19회째인 유니버시아드는 1백30개국,6천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하게 돼 역대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 전종목에 걸쳐 지난 93년 미국 버펄로대회의 1백41명보다 60여명이 늘어난 2백여명이 출전할 예정이며 종합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 ◎10월/유엔 50주년 축하행사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창설된 유엔의 50주년 기념행사는 업적 치하와 회고 뿐만 아니라 21세기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맞게될 다음 반세기의 준비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유엔헌장 정식 발효 50주년이 되는 올 10월24일을 전후해 3년가까이 계속되는 기념행사는 「유엔50주년 기념사업위」(사무총장 길리안 소렌슨 유엔사무차장)가 총괄,사무국 자체프로그램과 산하기구별 프로그램,각종 문화행사등으로 나뉘어 지구촌 한마당 잔치로 펼쳐진다. 이들 모든 행사는 특히 기념사업위 총괄국장인 한국인 구삼열씨(53)에 의해 기획,진행되고 있어 더욱 뜻깊다. ◎4월/NPT 연장 논의 지난 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체제를 평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국제회의가 4월17일부터 5월12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열린다.이번 회의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NPT조약의 연장이 결정될 전망이다. 그러나 연장의 방법에 대해서는 NPT에 가입한 1백69개국의 입장이 각각 다르다.NPT 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과 러시아 등 동구국가들은 NPT조약이 국제평화와 안전유지에 기여해온 점을 감안,무조건 무기한 연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에 반해 이집트와 나이지리아,멕시코 등과 같은 비동맹 국가들은 이 조약이 핵 보유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차별적조약이라는 점을 들어 시정과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현 체제의 존속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9월/여성대회 북경서 올해는 유엔이 19 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제정하고 평등·발전·평화를 주제로 멕시코시티에서 첫 세계여성대회를 개최한이래 20년이 되는 해이다.유엔은 이를 기념하여 9월4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북경에서 1백84개 유엔 회원국 대표들이 참여하는 제4차 세계여성대회를 열고 유엔 여성사업 20년을 평가하는 한편 남녀의 균형적 역할과 관계정립을 골자로 2천년대의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행동강령을 채택키로 했다. 이번 북경 세계여성대회는 유엔 회원국과 유엔기구의 정부간 대표 및 비정부기구(NGO)대표에 이르기까지 2만∼3만명의 각국 대표들이 참가,80년 코펜하겐과 85년 나이로비에서 가졌던 제2·3차 대회때보다 훨씬 규모가 큰 국제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우리 정부에서도 정무제2장관실이 주관부서가 되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 60여 여성단체로 구성된 한국NGO와 함께 자카르타와 뉴욕 등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대회 준비회의에 참석,각국의 관련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한국여성들의 현황을 정리한 자료집 발간을 서두르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11월/APEC 오사카회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지도자 및 각료회의가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다.지난해 인도네시아의 보고르에서 정상들이 합의한 무역자유화의 대명제를 구체화하는 것이 18개 APEC 참가 국가들이 안고있는 가장 큰 과제이다.주요 쟁점은 ▲무역자유화의 대상을 공산품·농산품·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부문으로 할 것인가,아니면 특정분야에 따라 어느정도 예외를 부여할 것인가 ▲무역자유화의 정도를 관세철폐로 할 것인가,또는 일정수준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인가,또 인하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가 등이다.
  • 외교실무진 중용… 추진력 강화/새내각 「안보팀」 색깔 분석

    ◎남북관계 개선 등 한반도문제에 비중둘 듯 새 외교·안보팀의 정책방향과 추진력은 어떻게 될까.이들의 진용을 보면 우선 「세계화」추진을 위한 실무진이 대거 자리잡은 것이 특징.한마디로 팀 모두가 경험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물들이다. 이는 김영삼정부 집권후반기의 국정지표인 세계화추진력을 가속화시키는 한편으로 「통일을 가져오는 외교」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인사라고 보여진다. 김대통령은 지난해 첫 조각때부터 외교·안보팀에 전문관료보다는 학자출신을 중용해 왔었다.그 결과 이들 외교·안보팀들은 비록 북한핵문제로 인해 「고생」했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공조에 균열조짐이 보였고 팀사이에 잡음을 일으키기도 했다.북핵타결 결과에 있어서도 국민들로부터 「혼쾌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김대통령이 전문관료 또는 실무형을 대폭 중용한 것도 바로 이같은 배경에서라는 지적이다.그러나 이들 새 진용의 외교·안보정책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이홍구전통일부총리가 총리로서 내각에그대로 남았고 김덕전안기부장이 통일부총리로 기용됐는가 하면 국방장관을 지낸 권령해안기부장이 이번 외교·안보팀에 포진,새 팀은 과거팀의 연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지금까지의 「신외교」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히려 강한 추진력을 부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새 외교안보팀의 두드러지는 점은 이홍구총리 김덕통일부총리 공로명외무장관 권령해안기부장등이 과거 남북관계를 다룬 인물이라는 점이다.통일부총리를 지낸 이총리,안기부장을 지낸 김덕부총리,국방장관을 지낸 권령해안기부장에다 새로 합류된 공장관도 지난 90년대 초 남북핵통제공동위남측위원장,남북고위급회담대변인등을 맡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새 외교·안보팀은 남북관계개선에 비중을 두는등 통일분위기 조성에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념성향으로 볼 때 교수출신등 이전의 자유주의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 퇴조하고 대부분 「외교력」을 뒷받침하는 「힘」을 중시하는 인물에다 보수성향을 짙게 풍기고 있어 대북관계 개선향방이 주목되고 있다.이들의 대외정책은 외무장관과 외교·안보수석의 이력을 보면 짐작이 간다.공장관은 27년 외교관생활을 주로 남북관계와 일본·중국·러시아문제해결사로 봉직해온 「동북아통」.과거 정부가 가급적 미국통을 중용해온 것에 비하면 이번 인사는 대미일변도 외교를 지양하고 우리 스스로의 문제인 한반도문제에 비중을 두겠다는 「외교다변화」포석으로 이해된다.유종하 외교·안보수석은 주미참사관 미주국장을 거친 미국통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경제담당인 제2차관보와 주EC대사,주벨기에대사를 역임한 바 있어 김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통상외교」가속화와도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 「세계화 내각」 발표되던날 정관가 표정(12·23 개각)

    ◎각부처/“혼선군단에 화합사령관” 재경원 환영/“대통령 의중 잘아는 실세” 총무처 기대/“주일대사 외무장관 발탁은 처음” 반겨/초유의 군수뇌부 일대개편에 “깜짝”… 후속인사에 촉각 ▷총리실◁ ○…국무총리실,총무처,공보처,법제처등 비경제 행정부처의 직원들은 이번 개각에서 예상밖의 인사가 많이 발탁된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 특히 김영삼대통령의 실세측근 4인방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되는 서석재민자당당무위원이 총무처장관에 임명된데 대해서는 매우 뜻밖이라는 반응.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서 우선적 폐지대상이라는 평을 들었던 총무처직원들은 『대통령과 교감이 통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원활한 업무수행이 기대된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 혹시 내년에 있지도 모를 2차정부조직 개편에서 바람막이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 문민정부 첫 내각의 각료로는 유일하게 오린환장관이 유임된 공보처직원들은 오장관이 문민정부 출범때부터 전력투구했을 뿐아니라 지역민간방송과 CA­TV 업체선정과정에서 끝까지 일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한 것을 유임의 가장 큰 배경으로 분석하면서 미리 예상했었다는 반응. ○발탁 미리 감지 ▷비서실◁ ○…한승수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은 오래전에 본인의 발탁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낌새를 못차리게 했으나 22일 밤 워싱턴주재 특파원들이 몰려올 것을 미리 감지한 듯 이날 자정이 가까워서야 관저에 도착.그는 『야밤중에 회견할 것없이 지금 할 말들을 미리 풀어달라』는 기자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일체 대꾸도 없이 관저 2층 내실로 잠적. 23일 새벽 1시15분 비서로부터 서울에서 개각발표가 났다는 보고를 정식으로 받고서야 1층 대회의실로 내려와 회견을 시작. 한 신임실장은 언제 귀국할 것이냐는 질문에 빨리 들어오라는 전갈이 있어서 성탄절날 바로 귀국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변. ▷재정경제원◁ ○…경제부총리겸 초대 재정경제원장관에 홍재형부총리가 기용되자 재경원으로 새 출발하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모두 환영. 재경원관계자들은 『양 부처 장관을 모두 거쳤으므로 양 부처를 속속들이 잘 알기 때문에 통합이후 최대 과제인 「화학적 융합」을 이뤄내는데 최적임자』라는 반응. 재경원관리들은 홍부총리가 재무부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금융실명제 등의 난제를 무리없이 치러냈으며 금융·외환·세제분야의 개혁으로 김영삼대통령의 신임을 얻었고 평소에도 모든 업무를 사심없이 추진한 것이 이번 발탁의 배경이라고 진단. 홍부총리도 이날 개각발표가 나자 기자실에 들러 『재무부와 기획원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경원장관으로서의 소임을 다 할 생각』이라며 『당장은 조직의 안정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므로 핵심 국·실장들은 당분간 현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피력. ▷통일원◁ ○…김덕안기부장을 신임 통일사령탑으로 맞은 통일원은 대북정보에 정통한 실세 장관을 맞게 됐다고 안도하는 표정과 『호된 시어머니를 맞게 됐다』는 기류가 뒤섞인 분위기.김신임통일부총리와 서울법대 동기동창인 정시성 남북회담사무국장 등 다수의 간부들은 『김부총리가 안기부장에 발탁되기 이전부터 15년이나 통일원 또는 적십자회담자문위원을 역임하는 등 남북문제에 깊숙이 관여했다』며 그의 전문성이 통일정책수행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 반면 일부 간부들은 『새부총리가 대북정보에 관해서는 당연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다 온화하지만 업무면에서는 극히 꼼꼼한 성품이라고 들었다』면서 『앞으로 보고서작성 등에 꽤 고생하게 생겼다』며 미리 걱정. ▷외무부◁ ○…외무부는 그동안 한승주전장관이 유임한다는 것과 공로명 신임장관이 부임할 것이라는 얘기가 팽팽히 맞서오다 이날 공장관쪽으로 「판결」이 나자 곧 바로 직원들의 일손이 바삐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평정을 되찾아가는 모습.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청와대가 외교·안보팀에 실무관료를 대폭 중용한 것은 외무부로 보아 나쁠 것이 없다』『외교·안보수석과 외무장관을 동시에 외교관출신을 쓴 것은 김영삼대통령이 세계화추진에 발맞춰 외무부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며 반기는 모습. ○…주일대사관직원들은 이날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공로명대사가 외무장관에 기용되자 『한반도를 둘러싼 4강가운데 러시아·일본 등 2강주재대사를 역임한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공대사의 장관기용은 외무부 경력공무원의 사기진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크게 반기는 모습. 공신임장관은 주일대사에서 장관으로 기용된 첫 케이스로 기록되게 됐는데 대사관의 한 직원은 『공대사는 초대 주소련대사,초대 주러시아대사 등 「첫사례」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같다』며 이색적인 풀이를 하기도. ▷내무부◁ ○…제59대 신임장관에 그동안 하마평이 전혀 없던 김용태민자당 의원이 기용되자 「의외의 인물」이라며 일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 간부직원들은 김 신임장관의 경력과 업무스타일 등에 신경을 곤두세우는가 하면 김장관의 합리적이고 강한 추진력에 크게 기대하는 모습. 대다수 직원들은 정치인출신 최형우 전 장관이 당초 우려와는 달리 권위적인 행정풍토에 확인행정 등 「새바람」을 불어 넣었던 점을 상기하며 신임 장관의 업무 스타일에 기대를 걸기도. ○성향 파악 분주 ▷법무부◁ ○…간부들은 안우만 전대법관(고시11회)이 장관에 임명된데 대해 다소 의외라는 표정들. 법무부는 김두희 전장관(고시14회)의 유임 또는 승진발탁을 점치면서도 경질될 경우 김도언 검찰총장(고시16회)의 고시선배 및 동기기수인 검찰출신을 내심 바랐으나 안 전대법관이 전격 발탁되자 그의 성향 등을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 ▷국방부◁ ○…국방부직원들은 이날 개각에서 이양호합참의장이 국방장관에,김동진육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에,윤용남3군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는등 사상 처음으로 한꺼번에 군수뇌부의 일대개편이 일루어지자 깜짝 놀라는 표정. 이들은 이에 따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듯 삼삼오오 모여 조만간 있을 후속인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놓고 분분한 의견. ▷문화체육부◁ ○…주돈식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이 신임 문화체육부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문체부 직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평소 온건하며 점잖은 주장관이 이임하는 이민섭장관과 같은 언론인출신인데다 정무수석비서관으로도 근무하면서 누구보다도 대통령의 국제화와 세계화구상을 잘 알아 앞으로의 업무추진이 잘 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더욱이 교통부 관광국과 공보처 해외공보관이 이관되어온 문체부의 위상이 새 장관의 부임으로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고 좋아하기도. ▷통상산업부◁ ○…초대 통상산업부장관에 박재윤 전재무부장관이 임명되자 통상산업부직원들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23일 상오까지만해도 세계무역기구(WTO)의 사무총장선거와 관련,김철수장관의 유임이 유력시됐었다. 신임 박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평소 좌우명대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소감을 피력.박장관은 미리 배포한 「신임장관 소감」이라는 유인물에서 『강하고 효율적인 기업을 만드는 것이 통상산업부의 임무』라며 『비전있는 통상산업정책을 펼치겠다』고 했다. ○겹경사에 “잔칫집” ▷정보통신부◁ ○…체신부에서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된데 이어 초대 장관도 경상현차관이 내부에서 승진돼 경사가 겹쳤다고 크게 반기는 분위기. 특히 경장관은 MIT공학박사 출신인데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한국전산원장을 거치면서 정보통신 발전에 기여했고 행정능력도 인정받아 초대 정보통신부장관으로 최적임자라고 평가. 정보통신부는 이와함께 공석이 된 차관자리도 내부에서 승진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 ○다소 의외라는 반응 ▷환경부◁ ○…초대 환경부장관으로 민자당 김중위의원이 임명되자 직원들은 다소 예상밖이라면서도 당내기반이 비교적 탄탄한 인물의 입각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거는 분위기. 직원들은 김장관이 3선의원으로 국회예결위원장과 과거 민정당 대변인,민자당 서울시지부장등을 등을 역임한 중량급 정치인이라 외풍을 막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특히 처에서 부로 승격하면서도 별다른 「업무확장」이 없어 다소 의기소침했는데 김장관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 ○“최적임자 임명” ▷과기처◁ ○…노태우대통령시절 과학기술처장관을 지내다 안면도사태로 9개월만에 도중하차한 정근모장관이 다시 발탁되자 과학기술처관계자들은 『국내 과학계인물들중 국제적으로 가장 안면이 넓고과학분야에서 대통령의 세계화 의지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이 발탁됐다』며 환영하는 분위기. ▷노동부◁ ○…정통 경제관료출신인 이형구산업은행총재가 장관으로 기용된데 대해 합리적이고 원만한 이장관이 노련한 경험을 살려 노동행정을 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반기는 분위기. 특히 장·차관 모두 경제기획원출신이어서 정책추진에 손발이 잘 맞을 것으로 기대하는 표정. ▷건설교통부◁ ○…건설교통부로 새로 출발한 건설부와 교통부직원들은 오명장관이 적임자라며 일제히 환영.대인관계가 원만하고 행정경험이 풍부해 통합으로 어수선한 조직을 빠른 시일안에 정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들이다. 그러나 건설부출신들은 내무부장관설이 나돌던 김우석 전 건설부장관이 퇴임하자 크게 놀라는 모습들. ◎여야/“폭넓은 기용… 철저한 능력 인사”/민자/“보수색깔 외교안보팀 정책방향 관심”/민주 23일의 전면적인 개각에 대해 여와 야는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이며 나름대로 이번 개각의 결과가 앞으로의 정국에 미칠 파장등을 점쳤다. ▷민자당◁ ○…민자당은 행정경험과 국정운영능력을 우선시한 김영삼대통령의 인사에 환영을 표시하면서 특히 계파를 초월한 안정적 국정기조로 정당과 정부가 함께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 박범진대변인은 『철저한 능력위주의 인사로 정부의 면모를 일신,새롭게 출발하려는 의지에 대해 국민들의 기대와 환영이 클 것』이라면서 『이홍구총리를 중심으로 호흡을 맞춰 세계화에 힘있는 업적을 남겨주기 바란다』고 논평. 김종필대표의 한 측근은 『폭넓은 기용이 돋보인다』면서 『김윤환정무장관과 서석재총무처장관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 백남치정조실장은 『서석재씨의 총무처장관 기용은 행정조직의 적극적 개혁과 적극적 관리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윤환의원의 정무장관 발탁도 정당과 정치권의 활성화,대화정치를 중시하려는 통치권자의 의지』로 풀이. 백실장은 민주계의 소외라는 평가에 대해 『물먹은게 아니라 뒤에서 실무와 모든 면을 적극 뒷받침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반박하면서도 그러나 『내년 당직개편의기준은 아직 알 수 없다』고 민주계의 소폭기용에 아쉬움을 표시. 민정계의 한 의원은 『이번 인선은 탈계파·무계보로 정치의 화합과 활성화,그리고 정책능력의 극대화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민정계의 대폭 기용을 환영. ▷민주당◁ 6공인사들이 기용된 점을 들어 이번 인사를 「보수로의 회기」로 규정짓고 못마땅하다는 반응이다.특히 지역안배가 고려되지 않은데 대해 크게 실망하는 모습.민정계 김윤환의원과 김영삼대통령의 측근인 서석재전의원의 입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박지원대변인은 『6공인사의 전면 등장과 민주계 실세들의 후퇴로 청와대의 친정체제가 더욱 강화됐다』면서 『이번 개각은 김대통령의 인사가운데 실패의 백미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 박대변인은 총무처장관에 서석재 전의원이 기용된데 대해 『전체 공무원의 기강을 다스려야 하는 만큼 누구보다 청렴결백해야 하는 자리에 동해시 부정선거를 저지른 사람을 기용한 것은 이번 인사가 실패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 외교안보팀의 인선과관련해 임채정·조순승의원등은 『보수색채가 한층 강화됐다』면서 개혁의지의 후퇴를 지적. 임의원은 『개혁적이던 한승주외무부장관을 퇴진시킨 것은 단적으로 이번 인사가 개혁의 후퇴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보수색깔의 새 외교안보팀이 어떻게 남북관계를 풀어 나갈지 우려된다』고 피력.
  • 일교조와 문부성의 대화/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의 요코야마위원장이 19일 도쿄 시내의 한 호텔에 들어서고 있었다.오랫동안 투쟁의 선봉에 서기도 했던 그였지만 벌써 머리는 반백이다.같은 장소에는 지난 83년 제2차 나카소네내각에서 문부성장관을 지낸 모리 자민당 간사장도 모습을 나타냈다.또 요사노 현 문부성장관도 등장했다. 50년 가까이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 오던 일교조와 문부성이 무릎을 맞댔다.논의는 교육문제 전반에 걸쳐 1시간여동안 계속됐다.최근 잇따르고 있는 청소년들의 자살문제,교육현장에서의 이지메(집단학대행위)문제를 비롯,일교조가 줄기차게 반대해 오던 교사초임자 연수·주임제 문제등도 논의됐다. 이들은 앞으로 자민당의 문교관계자와 일교조가 교육과제를 정기적으로 협의해 나가자고 의견을 모았다.회담후 요사노장관은 밝은 표정으로 『한시대의 획을 긋는 회담이었다』면서 협의결과를 문교행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돌이켜 보면 일교조와 문부성은 싸우려고 태어난 것처럼 사사건건 부딪혀 왔다.「교육의 민주화와 자유의 획득」,「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민주국가의 건설을 위한 단결」을 내세우는 일교조는 「반동적인 문교정책」에 줄곧 반대투쟁을 벌여왔다.50년대는 안보투쟁,60년대는 총저항운동을 벌였다.70·80년대에는 교사초임자 연수제·주임제등에 반발해 왔다.이 과정에서 일교조는 문부성에 의한 교과서 왜곡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중국등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문부성을 비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일교조는 지난 90년부터 조직률이 50%대에서 35%대까지 곤두박질쳤다.그뒤 반대·투쟁일변도에서 참가·제언으로 슬로건을 바꿔나갔다. 만년 여당이었던 자민당도 이즈음 사회당과 연립하고 있는 실정이다.또 정계개편을 앞두고 사회당을 끌어안으려면 노조와의 연대가 필요한 상황이다.문부성도 이지메 사건의 속발로 무언가 개혁적인 대책을 필요로 하고 있다.3자의 필요가 이제 교육계의 「갈등과 대립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아직도 교육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전교조 교사들,김영삼정부 초기 개혁의 바람속에 들춰졌던 교육계의 비리,교사들의 과중한 업무,잦은 변경으로 혼란을 겪고있는 입시제도등을 살펴보면 우리쪽에서도 일교조와 문부성처럼 무릎을 맞댈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북한소멸」(외언내언)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것과 같다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정치와 경제의 혼돈이 극심하던 때의 일이다.이 무렵 미국의 어떤 잡지는 세계의 미래지도를 그리면서 한반도를 붉게 칠해 충결을 준일도 있다.자유진영이 몰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2차대전을 마무리한 국제회의가 이른바 얄타회담이다.전승(전승)연합국들의 전후문제처리 정상회담이다.이 회담의 합의가 지난 50년의 세계를 지배해온 동서냉전의 얄타체제를 탄생시켰던 것.독·일(독·일)의 식민지 해방과 독일분단,새로운 국경선및 영향권설정 등이 내용이었다.한반도 분단도 이 얄타회담의 산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극의 한쪽을 지배했던 공산주의와 그 종주국 소련의 몰락·붕괴는 얄타체제와 그에 의해 설정되었던 국경선및 영향권의 변경을 예고하는 것이었다.국경선변경은 89년의 베를린장벽 붕괴로 시작되었으며 동구권의 자유화와 동서독의 통일 그리고 소련의 소멸로 이어졌던 것이다.결과적으로 세계지도상의 붉은색도 거의 다 지워지고 말아믿. 그것은 불가피한 역사의 흐름이자 과정이다.강제로 분단되었던 독일은 민주화통일로 갔고 인위적으로 무리하게 통합되었던 유고와 체코는 민주화로 분열되었으며 발트3국등 스탈린에 의해 강제 병합되었던 구소련 공화국들은 자유독립의 길을 찾았다.체첸과 유고같은 경우는 지금도 분열의 진통을 계속하고 있다. 불합리와 모순이 자연과 순리를 회복한 것이며 그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계사의 흐름이자 시대의 요구라 해야 할 것이다.같은 강대국들에 의한 인위적 분단의 한반도만 아직도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것은 우리의 불행이 아닐수 없다. 영국의 권위있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95년에 소멸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의 하나로 북한을 꼽았다고 한다.내년은 좀 빠를지 모르나 언젠가는 그렇게 되는것이 역사와 시대의 요구요 순리라 생각되지 않는가?
  • 이의회 수일내 연정 신임투표/「베」총리,표결 전격요구

    ◎북부동맹,야당 지지… 베를루스코니 타격 【로마 로이터 AFP 연합】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뇌물 제공 사실과 관련해 검찰을 신문을 받으면서 이탈리아 연정내의 불화가 14일 극에 달해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수일내 연정에 대한 신임 여부를 묻겠다고 의회에 전격 통고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날 이레네 피베티 하원의장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내년도 예산이 통과되는 즉시 의회에서 연설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시기는 오는 28일경으로 예상된다. 연정내서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지지해온 민족동맹당 지안프랑코 피니 당수는 이날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회담을 가진 후 정부가 연정 지속이 과연 가능한지를 의회에 묻게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한편 이탈리아 정계의 최후 중재자인 오스카르 루이지 스칼파로 대통령은 15일로 예정됐던 북부 코모시에서의 일정을 취소함으로써 연정이 임종의 순간에 접근하고 있다는 추측을 강력히 불러일으켰다. 이에 앞서 이날 하원에서 실시된 야당 발의의 방송사업 검토위원회 설치안 표결에서 연정 참여 북부동맹당은 지지표를 던져 베를루스코니 총리 진영을 격분시켰다. 이어 북부동맹의 움베르토 보시 당수는 실질적으로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알프레도 비온디 법무장관에 대한 불신임에 해당하는 동의안 채택을 요구함으로써 막바지에 이른 연정체제에 또 한차례 일대 타격을 가했다. ◎이 연정 붕괴 가능성/향후정국 시나리오/①베를루스코니 주도아래 정계재편/②스칼파로 대통령이 의회해산­총선/③극우정파 배제… 중도 연합정부 출현 혼미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이탈리아는 부패혐의를 받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현총리가 쫓겨 나거나 또는 그가 주도하고 있는 연정세력이 붕괴될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4번째 내각을 새로 구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가들이 현정부의 즉각적인 붕괴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의 각 정당들은 차기 정부의 형태는 어떻게 될 것이며,어떤 연정을 구성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를 계속하고 있다.새 총리는 불투명한 상태이지만 후보감으로 벌써부터 북부리그 소속의 로베르토 마로니 내무장관과 이렌느 피베티 하원의장,프란세스코 코시가 전대통령,전진이탈리아당의 카를로 스코냐밀리오 상원의장 등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다음은 「어둠속에 대모색」을 하고 있는 이탈리아 정국의 가상시나리오다. ▲이탈리아식 이혼=지난 5월 연정을 구성해 집권한 현연정세력들이 일련의 협상과정을 통해 새로운 총리하에 새정부를 구성한다는 구상.새 연정세력은 중도우익 작은 정당인 CCD의 의견을 수용해 기민당의 후신인 중도노선의 대중당(PPI)을 연정세력에 흡수함으로써 극우 국민동맹의 영향을 축소시키며 상원에서의 열세를 만회해 다수당의 위치에 서게 된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2기 집권=베를루스코니 총리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현연정세력과 혹은 PPI와 연합해 새로 구성한 제2기 정부를 이끌게 된다. ▲중도좌파연정=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비난해 왔던 북부동맹이 현연정에서 탈퇴하고 중도좌파 지도자인 움베르토 보시가 공산당의 후신인 좌익민주당(PDS),PPI를 비롯,군소 중도정당과 새로운 연정세력을 구성하다는 시나리오.그러나 이구상은 60명에 달하는 북부동맹소속 상하원 의원들이 PDS와의 어떠한 연계도 원치 않고 있다는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정치적 과도정부=보시와 PDS,PPI 등에 의해 활발히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구상이다.이구상의 지지자들은 비정치가가 이끄는 한시적인 과도정부만이 현재 이탈리아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이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헌법개정과 97년 선거를 이끌 선거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그러나 이구상은 국민동맹과 극좌공산주의세력들의 반대가 예상된다. ▲조기선거=베를루스코니 총리와 국민동맹 지도자 지안프란코 피니가 현총리가 사임할 경우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들은 유권자들이 지난 3월 선거에서 현연정세력에 권력을 부여했음으로 정치적 책략에 의한 정치적 변동은 「일종의 쿠데타」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그러나 헌법상 선거실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루이지 스칼파로대통령이 선거를 원치 않고 있고 몇몇 정당들이 현제도하에서의 선거를 반대하고 있어 어려움이 예상된다.
  • 콜드 피스(임춘웅칼럼)

    요며칠 사이 콜드피스(Cold Peace)라는 말이 부쩍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우리말로 번역을 하자면「차가운 평화」「얼어붙은 평화」정도의 말이 될 것이다.어떤 사람은 이를 냉전의 대응개념으로 내세우기 위해 냉화라고도 번역하고 있다. 지난 5∼6일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M) 52개국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처음으로 쓴 신조어다.옐친은 정상회담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방안을 거부하면서 『유럽은 지금 새로운 콜드피스 시대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동구권의 와해와 함께 나토에 맞서 생겼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자 미국은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인 동유럽제국을 나토에 흡수시키기 위해 그동안 꾸준히 정지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러시아의 불만인 즉슨 미국이 나토를 내세워 옛소련의 영향권에 있었던 나라들까지 모두 미국의 영향하에 두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안보회의에서의 「반란」이외에도 러시아는 최근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된다는 주장을 펴며 미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으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의 중동평화 방안에도 다른 목소리를 내보였다. 보스니아 사태에서도 러시아는 서방국들의 이해와는 명백히 상반된 입장을 견지했다. 이번 옛소련 영토였던 체첸공화국에 대한 군사력투입도 서방의 개입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의도였던게 분명해 보인다. 이같은 러시아의 일련의 외교적 몸짓은 소연방이 무너진 이후 보여왔던 러시아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러시아의 새로운 변신은 무엇보다 91년 소연방해체 이후 극도로 혼란에 빠졌던 러시아경제가 이제 한고비를 넘겨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든데서 온 자신감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여겨진다.때맞춰 러시아내 민족주의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지난해 12월총선에서 러시아민족주의자들의 약진이 눈부셨던 것이다. 쉽게 얘기 하자면 이제 한숨 돌렸으니 옛소련의 영광을 되찾아 보자는 심산일 것이다. 러시아는 러시아 만으로도 강대국이 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나라다.반세기에 걸쳐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제국의 영토와 인구,인력자원 대부분이 러시아의 것이다.러시아는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운영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자연자원을 자급할수 있는 땅덩어리를 갖고 있다.방대한 소련군사력의 태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를 일시에 파멸시킬수 있는 핵무장을 하고 있는 나라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후 영국의 재상 윈스턴 처칠은 전후 소련의 패권추구를 경계해 콜드워(Cold War·냉전)란 말을 만들었다.그냉전이 끝난후 러시아의 대통령이 미국의 독주를 경계해 콜드피스란 말을 쓰고있다.역사의 유전을 실감한다. 갚을 능력도 없는 나라에 30억달러씩이나 왜 돈을 빌려 주었느냐며 으스댈 때가 아니다.여전히 강력한 러시아가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때다.
  • 러­체첸 협상 결렬… 전투 격화/러군,그로즈니 로켓공격

    ◎체첸군 강력 저항… “러헬기 2대 격추” 【그로즈니·모스크바 로이터 AFP 연합 특약】 14일 재개된 러시아와 체첸 공화국간 3차 고위급 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체첸사태는 러시아와 체첸공화국간의 전면적인 무력충돌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공화국 대통령은 이날 협상결렬직후 러시아측과의 정치협상을 중지한다고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결전을 독려하는등 결사항전 태세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두다예프 대통령은 『민간인 지역에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선 협상을 계속할수없다』면서 『러시아는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학살만행처럼 체첸 국민들을 말살하려는 야욕을 갖고 있다』고 비난했다.그는 특히 『 대러시아전은 생사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라고 말하고 『현재의 러시아 정권은 체첸국민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체첸공화국간 협상이 결렬된 것과 때를 맞춰 러시아군이 14일 하오 4시30분(현지시간) 체첸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 중심부에 공습을 가하기 시작하는 등 강력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타르­타스통신은 이날 SU­25 전투기 5대가 그로즈니 외곽에 로켓공격을 가했으며 그로즈니 중심부에도 공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이와관련,체첸정부군측은 이 공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다른 러시아전투기 4대가 이날 하오 그로즈니 북부 돌린스키의 포로수용소를 로켓으로 강타했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또 러시아의 진격이 차단된 것으로 알려진 다게스탄 방면의 러시아군도 이날 국경부근에 배치된 체첸군에게 헬기공격을 가했다고 이 통신은 밝혔다. 이에앞서 북오세아티야의 모즈도크에 위치한 러시아군 임시공보본부는 러시아군이 극히 복잡한 상황속에서도 수도 그로즈니를 향해 꾸준히 접근하고 있으며 이날중으로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봉쇄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체첸군도 이에맞서 마을 상공을 비행하던 러시아군의 M­18 중무장 헬기 1대를 격추시켰으며 이로인해 3명의 헬기 승무원중 2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취재기자들이 전했다. 한편 체첸공화국을 지지하는 범카프카스 지역 무장단체는 체첸 공화국군을 지원하기 위한 모병소를 압하스공화국등 인근 지역 6개 공화국에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 미국은 너무 서두르는것 아닌가(사설)

    미국과 북한관계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지난 10월 제네바 핵합의로 이미 예상됐던 일이고 우리정부의 공식입장도 미·북수교를 환영한다는 것이긴 하나 그속도가 지나치게 빠르지 않느냐 하는 염려를 하지않을수 없다. 이번 전문가회담에서 연락사무소 개설시기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영사문제및 기술적인 현안들이 대부분 타결됨에 따라 내년 3월까지로 예정된 평양·워싱턴 후속회담에서 사무소부지 문제등이 해결되면 상반기중에는 미국과 북한의 외교창구인 연락사무소가 워싱턴과 평양에 각각 설치될 전망이다. 미·북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제2차 전문가회담 결과는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지극히 실무적인 접촉이어서 합의내용을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앞서도 지적했듯이 우리는 양측이 외교관계를 수립하는것 자체에 대해 시비할 생각은 없다.그러나 우리가 고언을 하지 않을수 없는 부분은 미국이 지난 10월 제네바 핵합의때 미·북수교의 전제조건으로 합의문에 명시했던 남북대화등 남북한간의 실질적 관계개선 조건이 등한시되고있는게 아니냐하는 점이다. 모두가 잘알고 있는것처럼 그동안 남북한간엔 대화는 물론 아무런 관계개선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있다.공교롭게도 미·북전문가회담 결과가 발표되던 날 북한측은 이미 초청장을 발부해준 한국기업인들의 방북 초청마저 전면 취소했다는 보도가 함께 나와 있다. 물론 내년 3월까지는 앞으로도 시간이 있고 그동안 남북문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으나 적어도 오늘 현재의 전망으로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또 이번 회담결과가 발표된 다음날인 11일엔 실력있는 미국의 상원의원 두사람이 군용기를 타고 북한에 들어가도록 일정이 잡혀있다. 우리는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는 사정을 모르는바 아니다.미국은 어떻게든 북한의 핵을 저지해야할 형편에 있고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앞으로의 한반도문제에서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장악하려 하고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의 어떤 관계개선도 한반도문제에 안정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남북관계의 진전없이 미·북관계의 일방적인 추진은 한반도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뿐아니라 한반도의 안정에 역작용을 일으킬 소지마저 있다.이는 미국의 이익과도 합치하지 않는 것이라 하겠다.당장 대북 경수로 지원문제에서도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을 경우 한미 양국은 적지않은 마찰을 빚게 될지도 모른다. 한반도문제의 핵심은 언제나 당사자인 남북한이며 미국은 아직도 한국에 더 많은 이해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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